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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균 작가론> 시대의 서얼 허균
    1세(1569, 선조2년) : 허균은 1569년 11월 3일 기사년 병자월 임신일 계묘시에 초당 허엽의삼남 삼녀 가운데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12세(1580, 선조13년) : 허균의 부친 허엽이 이 해 상주 객관에서 별세하였다.17세(1585, 선조18년) : 초시에 급제. 김대섭의 차녀와 결혼.21세(1589, 선조22년) : 생원시에 급제.24세(1592, 선조25년) : 임진왜란 피난 중 부인이 단천에서 첫아들을 낳고 사망. 외가 애일당 뒷산 이름을 따서 교산(蛟山)이 라는 호를 쓰게 되었다.25세(1593, 선조26년) : 최초 시평론집 『학산초담』을 지었다.26세(1594, 선조27년) : 정시을과 급제 하였다.28세(1596, 선조29년) : 강릉부사 정구와 함께 『강릉지』를 엮었다.29세(1597, 선조30년) : 문과 중시에 장원급제 하였다.35세(1603, 선조36년) : 대관령에서 행해지는 산신제를 보고 『대령산신 찬병서』를 지었다.36세(1604, 선조37년) : 성균관 전적(典籍)이 되고 수안군수가 되었다.38세(1606, 선조39년) : 『난설헌집』을 주지번에게 줌. 『난설헌집』은 그녀가 죽고 나서18년 뒤에 비로소 중국에서 간행되었다.39세(1607, 선조40년) : 삼척부사, 공주목사 역임, 『국조시산』을 편찬.43세(1611, 광해군3년) : 문집『성소부부고』64권 엮었다.44세(1612, 광해군4년) : 최초 한글소설 『홍길동전』지음(허경진 교수 이이 화씨 추정)46세(1614, 광해군6년) : 호조참의, 천추사가 되어 중국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다.47세(1615, 광해군7년) : 문신정시에서 1등을 하고 정2품 가정대부에 올랐으며 동지겸 진주부사가 되어 중국에 사신으로 다녀옴.48세(1616, 광해군8년) : 정2품 형조판서가 되었다.49세(1617, 광해군9년) : 정2품 좌참찬에 오름.50세(1618, 광해군10년) : 기준격이 상소를 올려 허균을 모함하였다. 4월 7일에 허균이 상 소를 오렸으나 죄목을 알리는 결안도 없이 음으셨다.이렇게 홀어머니와 형들의 귀여움을 받으며 제멋대로 자라던 허균에게 참다운 스승이 나타났으니 그가 바로 천재 시인 손곡(蓀谷) 이달(李達)이다. 미천한 기생에게서 태어난 서얼이기에 뛰어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높은 벼슬을 할 수 없었던 그는 허균의 작은 형과 절친한 벗으로 지내며, 허균에게 많은 생각들을 심어주게 된다. “스승은 영원까지 영향을 준다”는 진리를 허균의 삶 곳곳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뛰어난 스승 이달에 대해 살펴보기 전에 허균에게 영향을 주었던 가족들의 이야기를 하고 넘어가도록 하자.허균에게 시의 세계를 가르쳐준 작은 형 허봉(許?)은 허균보다 18년이 위였으므로, 형인 동시에 스승이었다. 허균은 그를 통해 당대의 이름난 시인이나 문장가를 만났고, 허봉이 죽은 뒤에는 그를 위해 문집과 연보를 엮어 제자로서의 도리를 다했다.허봉은 당시 유행대로 소동파의 시를 배웠고, 이어서 당나라 시를 익혀 맑고 굳건한 시를 썼다. 중국에 사신으로 가서 여러 선비들과 시를 나누고, 뛰어난 학자라든가 높은 관리, 임금 앞에서도 자신의 뜻을 거침없이 말하는 호인이었다. 그러다 임금(선조)의 미움을 사게 되어 함경남도 갑산으로 귀양을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이태백의 시집을 읽으며 자신도 귀양 온 신선처럼 살았다. 그러다 석방 된 후에도 서울에 발을 들이지 말라는 임금의 명에 기약 없는 떠돌이 길에 올라 세상과 어울릴 수 없는 괴로움을 견디기 위해 불교에 몸을 담았다. 그러던 중 병에 걸려 서른여덟 젊은 나이에 숨을 거둔다.아버지와 같은 형에게서 허균은 굽힘 없는 성격과 있는 그대로의 성정을 노래하는 시심(詩心)과 유교라는 굴레에서 벗어난 불교, 도교를 배운 것이다.처마 밑 풍경 소리가 댕그랑거리며 밤이 깊어가는데잠도 이룰 수 없어 멀리서 글 읽는 소리만 듣는단다.네 생각하다가 어머니 그리워 다시 눈물 흘리니한강 남쪽 언덕엔 봄풀 새로 돋겠구나.「傷懷贈舍弟」또 하나, 지금까지도 허균 하면 따라 오는 이름 하나가 바로 그의 작은 누나 허난설헌이다. 조선을 살면서 떳떳하게 5편의 전 중 「손곡산인전」은 바로 이달의 이야기인데 이 작품에서 허균은 이달이 세상에 쓰이지 못한 이유를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기생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후에 서자도 아닌 허균이 『홍길동전』을 짓게 된 것도 스승 이달에게서 느낀 한을 사회적 문제로 형상화 한 것이라고 보여진다.이달과 함께 그에게 영향을 준 또 하나의 인물이 사명당이다. 역시 작은 형의 친구로 불교 뿐 아니라 문학에도 뛰어나 여러모로 허균의 스승 역할을 해 주었다.이렇게 여러 사람들의 영향을 받으며 자라난 허균은 열일곱에 결혼을 하고, 그로부터 8년 뒤 임진왜란이 일어나 홀어머니를 모시고 만삭이 된 아내와 딸을 데리고 피난길에 오른다. 피난길에서 기승을 부리는 관리들의 행패를 보고 민심이 떠난 정부를 비판하는 허균의 개혁 정신은 점차 싹트게 된다.해는 지는데 늙은 아낙네가 황폐한 마을에서 통곡하네.헝클어진 머리엔 서리 내리고 두 눈동자는 흐릿하네.사내는 빚 갚을 돈이 모자라 차가운 감옥에 갇혀 있고아들놈은 도위를 따라 청주 땅으로 향해 떠났다네.집안은 난리를 겪느라고 기둥 서까래마저 다 불타버리고자신은 숲 속에 숨느라고 베 잠방이마저 잃어버렸네.살림도 썰렁하고 살 생각마저 없어졌는데관가 아전은 또 무슨 일로 이 집 대문을 두드리시나.「記見」허균은 전쟁 중에 아내와 갓 태어난 아들을 잃는다. 겨우 스물넷에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을 지켜본 그는 강릉에서 피난을 하며 자신이 태어난 곳에 있는 뒷산 이름을 따서 자신의 호를 교산(蛟山)이라 짓는다. 이무기가 바위를 두 동강내고 사라졌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인데 허균은 자신을 아직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피난을 하며 허균은 스물 다섯에 첫 저서 『학산초담』을 지었다. 『학산초담』은 108개의 이야기로 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시화와 시평이 99개이며 주로 그가 살았던 선조대 시인들에 대한 시평이 실려 있다. 특히 자신이 학당파 시인인 이달에게 배웠던 만큼 학당파 삼당시인(최경창, 백광훈,려는 그의 의지는 결국 그를 죽이게 된다. 그러나 일부 방외인 들처럼 그가 세상에 도전하지 않은 채 속세를 떠나 살았더라면 지금의 허균은 없었을 것이다.예나 지금이나 지식인은 실패를 알면서도 목숨 걸고 도전하는 지식인과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실감하고 현실을 피해 홀로 고뇌만 하는 지식인으로 나눠지는가 보다. 어쨌든 허균은 실천한 지식인이었다.가슴에 이상을 품고 1597년 파란만장한 벼슬길에 다시 오른 그는 정9품의 낮은 벼슬인 사관이 되었다가 바로 이어서 중시에 장원하여 정6품으로 뛰어올라 문장의 힘을 보여준다.그러면서 동시에 인생에 대해서 고뇌하며 헛된 이익, 명예를 쫓는 삶을 그만 두는 것이 자신을 위한 것이라 생각한다.사람 산다는 게 백 년도 못 되는데몸을 위해 일하는 게 너무나 번거롭구나.명예와 이익도 또한 헛된 것이니일찌감치 그만두지 않고 무얼 하고 있나.「百祥樓」시대를 바꿔야 한다는 자신의 이상과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성정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그의 삶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세상을 떠나 신선처럼 자유롭고자 했던 그의 소망을 일생의 꿈으로 남긴 채 끝나버리고 만다. 그렇게 삶이 힘겨워질수록 그의 시정신은 더욱 건강해지게 되었다. 그는 전쟁 와중에도 중국의 시인 오명제를 만나 신라 최치원의 시에서 선조 때까지의 시 332수를 묶어『조선시선』을 엮어 주었고, 당대 최고의 비평가로서 우리의 문학작품을 중국에 널리 알리는 일에도 힘썼다. 그는 진정한 문인이었다.1599년 종5품 도사(都事)로 승진된 그는 황해도사가 되어 황해도 산천을 돌아다니며 또 다시 신선의 삶을 노래하며 즐기고, 때로는 장사꾼이나 농부들을 찾아가서 그들의 신세타령을 들어주고, 그들의 이야기를 시로 읊기도 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기생들과 놀러 다니다가 탄핵을 받기까지 했으니 관리들의 불법을 조사하고 기강을 세워야 할 그가 오히려 불법을 저지르고 기강을 무너뜨린 셈이 되었으니 위정자로서 그의 모습이 과연 어떤 것이었는가는 상상에 맡겨야 할 것이다. 어쨌든 그는 오십게 그는 승복하지 않았다. 그는 나름대로의 사람을 주어진 천성에 따라 살고자 했던 것이다.벼슬이 떨어진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내자시정(정3품)이 되었고 이 동안 조선의 시를 모아 산정하고 시평을 지어 『국조시산(國朝詩刪)』을 엮게 된다. 그 무렵 허균은 자기의 글도 마음껏 지었다. 또한 달 무렵 시행하는 고과에서 아홉 제목이나 연달아 장원을 하여 공주목사가 되었으니 그의 나이 39세의 일이다. 웬만한 일이면 다 할 수 있는 자리였기에 그는 능력이 있으면서도 소외되었던 친구들을 불러모으기 시작했다. 그는 신분이나 나이를 따지지 않고 서얼들과 친구로 사귀었으며, 이들을 통해서 조선 사회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새로운 사회를 꿈꾸었던 것이다.이어 선조가 승하하자 광해군이 즉위했다. 허균은 온갖 수난을 겪으면서도 광해조에 들어와서도 중국 관계 일을 계속 맡았고 뛰어난 문재(文才)로 인해 광해의 눈에 들게 된다. 물론 계속하여 다른 사람들의 배척을 받았고 많은 탄핵이 이어졌으니 주로 '사람이 경망스럽다'는 이유에서였다. 특히 광해 3년에는 과거 부정 사건에 연루되어 그가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전라도 함열로 유배를 가게 된다. 유배 중에 자신의 글을 모아 자신의 문집인 『성소부부고(惺所부?藁)』를 정리해 엮어 낸다. 이것은 허균이 사형 당하기 전에 외가로 보내어 보전케 하여 지금까지 전해 온다. 허균의 문학과 사상을 알아볼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문헌이다. 그가 『홍길동전』을 언제 지었는지에 대한 확실한 기록은 없다. 심지어 그의 작품이 아니라는 학설도 있지만, 그의 제자 택당 이식의 「택당잡서」를 보면,균은 『수호전』을 모방하여 『홍길동전』을 지었다. 그의 무리 서양갑과 심우영 등도 그 도적의 행동을 직접 행하다가 마을이 결단났다. 균도 또한 역적으로 죽었다.라고 씌어 있으며 이를 무시할 근거는 아직 없다고 본다. 그는 이를 통해 현실을 반영하고 비판하며, 자신을 따르는 서얼들에게 깨우쳐 주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물론 조선을 바꾸지 못 하고 율도국이라는 새로운 나라를 만들까?
    인문/어학| 2007.03.13| 10페이지| 1,000원| 조회(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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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경룡전(王慶龍傳)
    < 발표문>왕경룡전(王慶龍傳)- 꽃 찾는 길손에게 부탁하오니,부디 화류계엘랑 비기지 마오과목명 :교수명 : 교수님학과 :학번 :이름 :제출일:1. 들어가며고전을 읽다보면 소설 속에서 양반과 기녀와의 사랑을 그리는 장면을 심심찮게 찾아 볼 수 있다. 물론 그들 대부분은 특권귀족과 천민의 관계, 받들어 모셔야 할 대상인 남자와 순종하는 여자의 관계를 맺고 있다. 봉건적 시대상황에 비추어 보면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왕경룡전에서의 귀족과 기녀의 사랑은 조금 다른 면모를 보여 준다. 당시 소설들에 등장하는 불평등한 존재간의 사랑이 아닌, 서로를 동등한 입장에서 바라보려하는 그런 새로운 관점의 사랑이 담겨져 있다. 왕경룡전이 다른 애정소설에 비해 밋밋하고, 이야기의 짜임새 역시 우수하다고 볼 수 없지만 작품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부분인 것 같다.이 글에서는 왕경룡전이 담고 있는 사회적 메시지를 시대 상황에 비추어 살펴보고, 그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기녀'라는 인물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자 한다. 그리고 왕경룡전의 탄생 배경과 여러 이본들에 대해서도 알아보고, 후대에 미치는 의의까지도 알아보려 한다.2. 본론왕경룡전은 17세기 초반에 창작되었으며 중편소설로서 , 이라고도 한다. 작자미상의 한문전기소설이며 중국 소설인 를 원작으로 한 번안작품이라고 널리 알려져 있다. 또 기녀를 소재로 하는 기녀신분갈등형 애정소설로 분류할 수 있다.* 줄거리왕각로(王閣老)는 낙향하면서 거상(巨商)에게 빌려준 은자(銀子)를 받아오라고 하고 아들 경룡(慶龍)을 남겨 두고 떠난다. 경룡은 돈을 받아 내려오다가 서주(徐州)에 들러 주모의 소개로 기생 옥단(玉檀)을 사귀게 되면서 수만금을 탕진한다. 옥단이 돈이 떨어진 경룡을 쫓아내라는 기모(妓母)의 말을 듣지 않자, 기모는 집을 옮겨 경룡으로 하여금 길을 잃고 방황하게 한다. 쫓겨난 경룡은 기모가 시킨 도적들에게 맞아 기절하였다가 마을 노인에게 구출되고, 그 길로 양주(楊州)지방 광대의 무리에 예속된다.우연히 전날 옥단을 소개하였 다음, 황금을 주면서 새 옷을 사 입고 다시 집으로 찾아오라고 일러준다. 경룡은 옥단의 말대로 비단옷을 사서 입고 빈 상자를 재물로 가장하여 그 집을 찾아간다. 전날의 기모는 다시 반기며 이전의 잘못을 사과하면서 극진히 접대한다. 이날 밤 옥단과 경룡은 기생집의 보화를 훔쳐 집을 나오고, 이튿날 관가에 기모를 고발하게 된다.마침, 기모에게 돈을 주고 옥단을 첩으로 삼으려던 조모(趙某)는 화가 나서 옥단을 자기집으로 납치해간다. 그러나 조모의 처는 옥단을 시기하여 남편과 옥단을 독살하려고 밥에 독약을 넣었는데 남편만 그 밥을 먹고 죽는다. 관가에서는 남편을 죽인 죄로 본처와 옥단을 함께 옥에 가두게 된다. 한편, 경룡은 옥단을 잃은 뒤 그 길로 본가에 돌아가 부친으로부터 엄한 훈계를 받은 다음, 학업에 열중한 결과 장원급제를 하고 암행어사를 제수 받는다. 옥단의 연락을 받은 경룡은 곧 암행어사로 출두하여 옥단을 구하고 이들은 행복을 누린다.* 왕경룡전의 탄생 배경- 시간적 배경 : 17세기의 조선17~18세기의 조선은 르네상스라고 부를 정도로 문화가 최고로 발달한 시기였다. 이렇게 문화가 발달할 수 있던 배경을 살펴보면 17세기의 영조는 노론과 소론의 당쟁을 막고자 탕평책을 실시한다. 그리고 노론과 소론에 상관없이 골고루 등용하거나 당시 차별받던 서얼들을 등용해서 그들을 견제하고자 했다. 즉 신분제가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정조가 왕위에 오른 뒤 쌓은 수원화성은 경제, 군사, 정치적으로도 아주 중요해진다. 모든 길이 모이는 교통의 요충지로서 자연스레 사람이 모이게 된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 돈 난다는 말처럼 이 시기부터 화폐유통이 활발해지면서 상업이 급속히 발전한다. 상업이 발달하면서 빈부격차가 생겨나고, 족보만 있는 거지같은 양반들보다 돈이 훨씬 많은 평민들이 많이 생기면서 신분제를 뒤흔드는 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를 바탕으로 서민중심의 문화가 형성되고, 발달하게 된 것이다.- 창작 배경 : 단지 번안작품에 불과한 것인가?본론 첫머리에 언급한 것를 지닌 다른 견해를 보이는 글이 있어 소개하려 한다.현재 학계에서는 이『警世通言』제24권 를 改作한 작품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것 같다. 학계 의견을 좇아 의 번안창작소설로 인정한다면 이 소설집의 국내 유입과 讀書受容하는 데 까지의 相距로 미루어, 늦어도 1627년 이후 인조연간(~1649)에 이 창작되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과연 풍몽룡(馮夢龍:1574~1646)이 天啓 甲子年(1627)년 출판한『警世通言』에 있는 를 본 뒤 저작되었다는 논의는 문제가 있다.는 李昉 등이 편찬한『太平廣記』권 484 ‘雜傳記類’ 의 제 1편에 수록된 을 저본으로 창의적 변개된 작품이다. 그리고 이은 백거이의 친 동생인 백행간(白行簡:776~826)의 을 대본으로 한 것이다. 즉, 백행간의 『태평광기』소재 로 이어진다.우리 나라에서 『태평광기』는 1154년에 黃文通이 지은에 관련 기록이 처음 보인다. 이후, 『世宗實錄』(1455~1468) 등 여러 문헌에서 관련 기록을 찾을 수 있다. 이로 미루어 보아 상당히 이른 시기에 이 우리 나라에 수입되어 널리 전사되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단순하게 의 번안창작소설이라는 견해는 수정되어야 마땅하다. )* 왕경룡전이 지닌 의미- 신분사회 모순과의 대립 : 꽃 찾는 길손에게 부탁하오니, 부디 화류계엘랑 비기지 마오중국의 소설들 중에선 왕경룡전의 형식과 구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작품들이 많다. 왕경룡전의 모태라고 알려져 있는 을 비롯한 이런 구성의 작품들은 ‘특권 귀족의 아들이 창가에서 재물을 잃고 패가망신 하게 되면, 남성 주인공을 망신시킨 기생이 후회하여 그 남성을 돌본다.’는 이야기 전개과정을 공통적으로 가진다.하지만 왕경룡전에서는 다르다. 그 일부로 작품 중간을 보면 왕경룡이 기생 옥단과 처음 만났을 때 시를 지어 서로의 마음을 시험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옥단이 지은 시는 다음과 같다.강에는 매화가 있다면,산에는 대나무가 있으니,맑은 격조 어떻게 보통 꽃과 같으리.봄에는 피지 않고,가을엔 떨어지지 않아,곧은 그네에게 말하노니,부디 화류장엘랑 비기지 마오.)이처럼 등장인물이 서정시 형식을 빌어 자신의 내적 심리를 고백하는 것은 소설에서 서술자가 표면적으로 취하고 있는 관념적인 서술시각을 넘어서서 등장인물의 개성적인 목소리를 표현하기 위해서이다.) 이런 등장인물의 개성적 목소리는 기녀인 ‘옥단’에게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서술자는 표면적으로는 사대부의 아들 왕경의 삶을 관념적 서술시각으로 그리는 듯 하지만, 실상은 옥단의 개성적 목소리와 의지를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기생이 시를 지어 자신의 처지와 입장을 밝히고 그것에 합당한 인물은 선택한다는 것은, 자신이 기생의 입장에서 남성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한 여성의 입장에서 대등하게 남성을 대하는 것임을 선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그리고 왕경룡이 옥단의 시에 화답하고 난 뒤 동침을 하려 하자, 옥단은 자신이 그와 함께 정을 나눌 생각은 있지만 강압적으로 범하면 죽음뿐이라고 말한다. 그 연유를 묻자 이렇게 대답한다.저는 본래 양가집 자식으로 어려서 부모를 잃었답니다. 또 의탁할 만한 친척도 없어서 어린 여종 하나를 데리고 이웃집으로 구걸하러 다녔지요. 이 집의 창모가 나의 재주와 얼굴을 살펴보고 딸로 데려다가 길렀으니, 바로 오늘의 몸값을 취하는 이익을 위해서였지요. 때문에 제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에요. 그러나 늘 여분의 정조)를 흠모하였고 하간의 음란한 행실)을 미워해 왔지요. 이제 만약 공자를 한 번 사랑하면 맹세코 다시는 다른 사람을 섬기지 않을 터인데, 공자께서 저를 노류장화(路柳墻花)로)여겨 한 번 꺽고 난 뒤 영영 버릴까 걱정됩니다.....(이하 생략).)이렇게 고백조로 장황하게 이어지는 등장인물의 자신의 처지에 대한 이야기는 그가 당대의 관습적인 시각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려는 의식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는 조선시대 기녀신분갈등형 소설에 가장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담화 방식이며, 이런 방식을 통해 작가는 문제적 인물은 기생의이므로, 비록 기생일지라도 일부종사 하려는 의지가 있음을 밝힌다. 옥단의 이러한 태도는 당대의 윤리체계 내에서이지만, 왕경룡과 대등한 위치에서 관계를 맺을 것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또한공자께서 첩으로 인하여 부모에게 득죄하고 사림에서 비웃음을 받고서 어떻게 장부의 큰 뜻을 이루겠습니까.)처럼 집으로 돌아갈 것을 권유하는 것이나, 그 뒤 재물을 탕진한 뒤 기생어미에게 구박을 받을 때 그와 같이 근심하는 행위, 부호에게 팔려가서도 정절을 지키는 행위 등은 모두 기생의 신분을 떠나서 한 여인으로서 왕경룡을 대하는 태도에 기초를 두고 있다.- 이후 작품들에게 미친 영향이처럼 왕경룡전은 서술시각의 초점이 “양반의 패가망신과 기생에 의한 복원”이 아닌, “신분적 질곡을 넘어 사랑을 쟁취하려는 기생의 의지”에 맞추어져 있다. 그리고 왕경룡전 이후작품에는 더 강한 의지를 가진 기생이 등장하기도 하며, 그 대표작으로 을 들 수 있다. 청년회심곡의 여주인공은 신분이 기생임에도 불구하고 자수, 그림 등의 방편으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여기서는 양반의 후손인 남자 주인공과 대등한 결합을 주장하는 기녀의 모습을 통해 여주인공의 의지가 현실성을 획득하였음을 알 수 있다.이처럼 왕경룡전과 청년회심곡은 기녀신분갈등형 애정소설의 전형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으며, 조선 후기에 기녀신분갈등형 애정소설이 여러 갈래로 변형되어 나타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조선 후기 사회의 핵심적 모순인 신분갈등의 측면을 강화함으로서, 조선후기의 소설사에서 독자적인 위치를 구축하게 된다.이렇듯 조선후기 애정소설의 시작을 알린 왕경룡전은 우리민족을 대표하는 소설 중 하나인 춘향전의 모태가 되었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새로운 용어의 탄생 : 각설)이 소설에서는 ‘却說’ 이라는 단어가 보이는데 아마도 우리 고소설 문헌에 보이는 최초의 용어가 아닌가 한다. 이 ‘각설’은 백화소설에 흔히 보이는 용어이다. 16세기까지의 우리나라 전기소설들은 간보(干寶:4세기 경)의 지괴.
    인문/어학| 2007.03.13| 7페이지| 1,000원| 조회(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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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균 작가론
    1. 서 론우리에게 최초의 국문소설이라 일컬어지는『홍길동전』과 조선중기 유명한 여류문인인 허난설헌(許蘭雪軒)의 동생으로 잘 알려진 허균(許筠)에 대한 평가처럼 사람에 따라 견해의 차이가 큰 경우는 드물 것이다. 혹자는 허균을 우리 국문학사에 뚜렷한 획을 남긴 작가이며, 독창적인 문학을 주장하고 기존의 가치와 사고방식에 구애받지 않은 글을 남긴 소위 ‘개혁가’로서 평을 하고, 혹자는 반역에 가담한 인물로 성격과 행동에 문제가 있던, 정말 그가『홍길동전』의 작가인지 의심스럽다고 평하고 있다.이와 같이 허균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가 다른 이유는 시대가 변함에 따라 사람들의 가치관이나 사고방식이 변화됨에 따른 결과일 수도 있고, 같은 시대라 할지라도 사람들마다 개개인의 견해 차이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허균에 대한 이러한 다양한 평가가 나온다는 것은 그만큼 허균이 우리 국문학사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 인물이라는 것에 대한 반증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허균이 우리 국문학사에 있어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했다면 그가 어떤 일을 하고, 무슨 작품을 남겼던들 우리가 관심을 가졌겠는가?이렇게 사람들마다 다른 평가를 받고 지금까지 수많은 논문에 등장한 허균은 어떤 인물이며 어떤 작가였을까? 허균의 생애, 문학관, 저작 등을 바탕으로 그에 대해 나름대로 의견을 개진해 보고자 한다.2. 본 론2.1 허균의 생애)허균(許筠, 1569~1618)의 자는 단보(端甫)요, 호는 교산(蛟山)?학산(鶴山)?성소(惺所)?성수(惺?)?성옹(惺翁)?백월거사(白月居士)이고, 본관은 양천(陽川)이다. 그는 학자요 문장가로 이름이 높았던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使) 초당(草堂) 허엽(許曄)의 막내아들이다. 부친 허엽은 청주 한씨 부인과의 사이에 아들 허성(許?)과 두 딸을 두었는데, 한씨 부인이 일찍 죽자 다시 예조참판 김광철의 여식을 후취로 맞이하였다. 그리고 강릉 김씨 부인 사이에서 허봉(許?), 허난설헌(許蘭雪軒), 허균을 낳았다.허균은 서울의 마른내[乾川洞 : 지금의 오장동 부근]에서때 형조정랑을 거쳐 이듬해에는 사예(司藝), 사복시정(司僕寺正)을 역임하였다. 이 해에 원접사 이정구(李廷龜)의 종사관이 되어 활약하기도 하였다. 36세 되던 해에는 수안군수(遂安郡守) 재직시설 불교에 심취했다는 이유로 탄핵을 받아 두번째 파직을 당하였다. 그는 이 무렵 불교에 빠져들어 한때 승려가 되기 위해 출가를 결심했을 정도였다 한다.허균은 37세에 명나라 사신 주지번(朱之蕃)을 영접하는 종사관이 되었는데 그에게 학문과 문장력을 높이 인정받았다. 그리고 누이 난설헌의 시를 주지번에게 보여 누이의 시집이 중국에서 출판되는 계기를 만들기도 하였다. 그는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이듬해 삼척부사(三陟府使)로 부임하였으나 여기서도 불상을 모시고 염불과 참선을 한다는 이유로 탄핵받아 석 달 만에 파직되었다. 그 뒤 40세에 다시 공주목사로 부임하게 되는데 이 때부터 서류(庶流)들과 어울렸다. 그는 처삼촌인 심우영, 이경준 등과 사귀었으며 또한 그들을 돕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일이 광해군이 보낸 충청지방 암행어사의 감사에 걸려 또다시 파직되었다.그 후 허균은 전라도 부안의 봉산(蓬山)에 내려가 그곳의 산천을 유람하였다. 이 때 명기(名妓) 매창(梅窓)을 만나게 되는데 그녀는 원래 천민 출신인 시인 유희경(劉希慶)과 깊은 정을 나누고 있었다. 허균의『성소부부고』를 보면, 그가 매창과 시를 읊으며 즐기다가 밤이 되자 매창이 그녀의 조카딸을 자신의 침소로 들여보낸 일을 기록하고 있다. 허균은 매창이 죽자 그녀를 기리는「애계랑」(哀桂娘) 이라는 시를 남겼다.허균은 41세(1609) 되던 해 명나라에서 책봉사신이 오자 원접사 이상의(李尙毅)의 부름을 받아 서장관의 일을 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왔다. 이 해에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가 되었고 이어서 형조참의가 되었다. 이듬해(1610)에는 명나라 성절사로 가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거절했다가 면직되었다. 그러다가 그 해 궁중에서 치르는 과거시험[殿試]의 시관(試官)이 되었는데, 이 때 ‘자서제질사돈방’(子?弟개할 때도 나왔듯이, 그는 본의 아니게 그와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이 칠서사건에 연루되어 신변의 위협을 느꼈고, 그 당시 권력의 핵심이었던 대북파의 수장인 이이첨에게 할 수 없이 의탁하게 된다. 허균 역시 우리들과 같은 사람이었기에 목숨을 잃는 것, 자기의 지위를 잃는 것을 당연히 두려워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물론 목숨 잃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의 소신대로 행동한 선인들도 있지만 그들은 우리가 위인, 성인, 지사라 하여 존경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안타깝게도 허균을 훌륭한 문인이라고는 하지만 어렸을 때 우리가 많이 읽었던 위인전에는 ‘허균’이라는 인물이 나오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위안을 느끼고 허균을 이해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또한, 허균에 대한 기록이 많은『광해군일기』는 인조반정을 주도한 허균과는 반대세력에 의해 편찬되었다. 따라서 그들은 허균을 질책하는 것이 바로 반대당인 대북파를 매도하는 것이 되고, 대북을 매도하는 것은 광해군의 죄악을 폭로하는 것이 되며, 광해군의 죄악을 폭로하는 것은 인조반정을 합리화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허균의 부정적인 모습은 어느정도 과장된 것이며 액면 그대로 믿을 수는 없는 것이다.2.2 허균의 사상)허균은 자신과 세상의 관계를 ‘불여세합(不與世合), 즉 “세상과 화합하지 못한다”(「四友薺記」)고 하였다. 이 때 세상은 허균이 살았던 그 당시의 완고한 중세적 질서를 말하는데 그가 벼슬살이에서 여섯 번의 파직과 세 번의 유배를 겪었음을 볼 때 이 ‘불여세합’ 이란 말보다 허균을 잘 표현한 말은 없다고 생각된다. 그만큼 그가 우리가 흔히 상식이라고 말하는 기존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고 그런 사상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이러한 허균의 사상적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는 것이 정치사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성소부부고』에 ‘논’(論)의 형식으로 된 각종 글 속에서 제시되고 있다. 이 글들은 대체로 이념과 내정의 개혁, 국방정책의 강화, 신분계급의 타파 등으로 정리된다.「정론」(定論)에서 그는 나라있을 것이다. 또한「유재론」에서 인재를 등용할 때 신분의 고저(高低)에 관계없이 인재를 등용할 것과 서자(庶子)와 개가(改嫁)한 집 자손들도 벼슬길에 나아가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하였는데 이러한 그의 사상도 홍길동전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홍길동전』에서 홍길동은 호부호형(呼父呼兄)하지 못하는 서자출신이며, 그 홍길동을 통해 허균은 적서차별의 부당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종합해 보면 허균은『홍길동전』이라는 소설 속에 그가 주장한 사상을 집약시켰다고 말할 수 있다.자신의 문집 어디에도『홍길동전』에 대한 기록을 남기지 않아 고소설 작가로서의 영예를 위협받고 있는) 허균이 정말『홍길동전』의 작가이냐 그렇지 않느냐에 대한 논쟁에 대한 답으로 이런 그의 사상적 배경이나, 성장과정을 살펴봄을 통해 그가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었던 것처럼『홍길동전』의 작가가 아닐까 하고 짐작해 본다.)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그동안 허균이 주장한 사상, 그의 성장과정 등을 통해 허균이『홍길동전』을 창작한 동기를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물론 그런 이유에서도 허균이『홍길동전』을 창작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작품은 하루아침에 갑자기 생겨나는 것이아니다. 작가가 작품을 써야 겠다 생각한 후 그 작품의 스토리를 생각하고, 구성을 하는 등의 과정을 거칠 때에는 작가가 그동안 읽었던 소설이 반영될 수도 있고 그동안 보고 들었던 것들이 반영될 수도 있을 것이다. 즉 그동안 작가가 경험한 여러 가지 것들이 소설을 창작하는 과정에서 반영되었을 거라는 것이다. 허균도 마찬가지로『홍길동전』을 지을 때 그가 전에 읽었던 소설의 내용을 가미 시켰을 수도, 또 사람들 사이에서 떠도는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를『홍길동전』에 반영시켰을 수도 있다. 평소에 서자들과 잘 어울렸던 허균은 자신을 서자 출신이라 가정하고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한다. 따라서 남모를 차별과 정실출신이 아니라는 점에서 많은 멸시와 모멸감을 받으며 살아가는 자신을 상상한다. 이러한 접적으로 알 수 있으며, 홍길동이 결국에 관직을 버리고 율도국을 다스려 이상국을 건설한 부분은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는 즉 절대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기자신을 소설에 형상화 함으로써 허균의 권력에 대한 욕망을 표현한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한편 홍길동이 사용한 둔갑법, 축지법, 분신법 등은 다분히 도교적인 요소로 그 당시 이단시 되던 도교사상을 소설에 표현했다는 것은 그의 진보적인 생각을 엿볼 수 있는 한 부분이라 생각한다.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이러한『홍길동전』이 순전히 그의 머릿속에서 나왔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이 소설을 짓기 전에 수많이 이야기를 듣고 소설을 읽었을 것이며, 그러한 것이 이 홍길동전에 이입되었을 것이다. 그러한 것을 바탕으로 ‘홍길동’ 이라는 인물을 자기 자신의 분신으로 가정하고 자기가 평소에 가졌던 생각, 하고 싶었던 것, 되고 싶었던 것 등 이 소설을 통해 허균 자신의 욕망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한편, 허균의 작품으로『홍길동전』이외에 다섯 편의 전(傳)이 전해지고 있는데, 이것들은 전통적인 전 양식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독창적인 허구성을 가미한 작품들이다. 그리고 등장인물도 전통적인 전(傳)과 마찬가지로 재능은 있지만 불우한 일생을 살았던 인물이거나 도가 계통의 인물이라는 특이성을 갖는다. 여기서 허균이 남긴 5편의 전(傳) 줄거리를 간략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남궁선생전』: 전라도 임피에 사는 남궁두에 관한 이야기인데, 남궁두는 조부대로부터 아전으로 넉넉하게 살았는데 나이 30세인 을묘(1555)에 진사 급제하여 명성을 날렸다. 그는 시골에 첩 하나를 두고 전답을 관리하게 하고는 서울로 집을 옮겼는데, 어느날 첩이 이성당질(異性堂姪)과 간통하는 것을 목격하고 두 사람을 활로 쏘아 죽여 물이 고인 논에 묻고 돌아왔다. 그런데 농장의 종 하나가 남궁두가 두 사람을 죽였을 것을 의심하여 살피던 중, 무논에서 기름이 뜨는 것을 보고 시체를 발굴하여 고발하였다. 이에 남궁두는 시골로 압송되었는데 그의 처가 이산(尼山)겼다.
    인문/어학| 2007.03.13| 11페이지| 1,000원| 조회(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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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eller의 학습동기이론
    Keller의 학습동기이론1. 학습과 동기유발“말을 물가로 데리고 갈 수는 있지만 물을 먹일 수는 없다.”는 속담처럼, 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으면 학습 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이러한 생각의 근거에는 동기유발의 개념이 자리 잡고 있다.1) 동기유발의 기능첫째, 활성적 기능 - 행동을 유발, 지속하게 하며 성공적으로 추진하는 힘을 줌둘째, 지향적 기능 - 행동의 방향을 어느 쪽으로 결정짓느냐는 동기에 따라 달라짐셋째, 조절적 기능 - 선택된 목표 행동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다양한 동작이 선택, 수행됨넷째, 강화적 기능 - 행동 수행이 유기체에게 미치는 효과에 따라 행동이 일어날 확률이 변함2) 학습에 있어서의 동기유발(1) 내발적 동기유발과 외발적 동기유발내발적 동기 : 행동의 전개 자체가 목표인 동기외발적 동기 : 행동의 목표가 행동 이외의 것이어서 행동이 수단의 역할을 하는 동기(2) 학습동기의 유발① 학습자의 능력에 따라 적절한 수준의 학습목표가 선정되어야 함 - 내발적 동기유발② 학습의 결과에 대한 정보가 제공되어야 한다. - 외발적 동기유발③ 상과 벌을 적절하게 사용④ 인지적 동기유발의 활용을 더 많이 제공 - 학습자에게 지적 호기심 환기⑤ 경쟁적인 방법의 활용을 통해서 동기를 유발시킬 수 있다.3) 동기유발과 욕구(1) 생리적 욕구는 기본적 욕구라고 하는데, 기본적인 욕구가 만족되지 않으면 인간은 다른 무엇에도 주의를 집중하기가 힘들다. 이러한 기본적인 것이 충족되어야만 걱정이나 불안감이 줄어들 것이다.(2) 정서적 욕구에는 능력적 욕구, 성취 욕구 및 자아 존중의 욕구가 포함된다. 학생들로 하여금 그런 목표에 대처하기 위한 목표와 활동을 선정하는 일에 참여하게 하고, 학생들에게 유의미한 일을 제공해야 한다.(3) 인지 욕구는 강력한 동기적 힘이 될 수 있다.2. Keller의 동기이론 : ARCS 이론- Keller의 ARCS 이론의 특징① 네 개의 ‘개념적 범주’를 포함하고 있음② 교수 ? 학습 상황에서 동기를 유발하고 유지하기 위한 구체적이고 처방적인 전략 제시③ 교수 설계 모형들과 병행하여 활용될 수 있는 동기 설계의 체제적 과정을 소개1) ARCS 이론의 기본 가정Keller가 지적한 동기의 문제점 : 교육공학자들의 태도, 동기의 측정과 이론에 관한 기술2) 학업 성취와 동기 : 어떻게 교수 학습 상황을 보다 흥미있게 만들 수 있느냐에 관심수행 : 실제적인 학업 성취 & 노력 : 주어진 과제 달성을 위한 활동 참여를 지칭수행 : 외적으로 나타나는 실제적인 성취 & 결과 : 학습자의 정의적 반응, 사회적 보상 및 물질적 보상결과 : 동기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 (인지적 평가를 포함하기 때문)B = f ( P ? E )B : behavior P : Person E : Environment3. ARCS 이론의 요소1) 주의 - 호기심과 관심을 유발·유지- Keller는 호기심을 설명하기 위해 Maw와 Maw의 정의(P.282)를 이용2) 관련성 - 교수를 주요한 필요와 가치에 관련- Keller는 관련성에는 결과와 과정이라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고 봄 그러나 결과 측면 에서의 관련성이 반드시 미래에 초점을 맞출 필요는 없다는 것도 역설.3) 자신감 - 성공에 대한 자신감과 긍정적 기대를 갖도록 함- Keller는 자심감에는 여러 측면이 있는데 그중 중요한 것으로 능력에 대한 지각, 통제 가능성에 대한 지각, 성공에 대한 기대를 들었다.4) 만족감 - 강화를 관리하고 자기통제가 가능하도록 한다.- 만족감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크게 학습의 내적 결과와 외적 결과로 구분내적 결과에는 학습자의 학업 수행과 결과에 대한 인지적 평가와 기타 내적 보상이 포함
    교육학| 2007.03.13| 2페이지| 1,000원| 조회(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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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llport 의 특질심리학
    Allport 의 특질심리학올포트의 생애올포트는 미국 인디애나 주 몽테주마에서 4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수줍음이 많고 공부에만 열중했던 올포트는 이미 하버드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있던 형(Floyd Allport)의 권유로 하버드 대학에 입학하여, 형처럼 심리학을 전공하였다. 후에 형은 사회심리학자로서 명성을 떨치게 되었고, 올포트는 1922년에 하버드 대학에서 성격특성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대학원 과정에 다니면서 인간행동에 대해 다른 학생들과는 다른 견해를 갖게 되었다. 대학원 세미나에서 저명한 심리학자인 티츠너(Edward titchner)는 성격 특질에 관한 올포트의 발표내용을 무시했으나, 올포트는 이에 굴하지 않고 1937년에 미국 심리학회(APA)의 회장을 역임했고 학회에서 주는 학술상을 받았다. 1942년부터 하버드 대학에서 교수로 있다가 1967년 메사추세츠 주 캠브리지(Cambridge)에서 사망하였다.올포트의 이론은 무의식에 관한 프로이트의 견해와는 매우 달랐으며, 아들러의 견해에 보다 더 가까웠다. 그는 인간 행동을 타고난 본능, 아동기 경험 혹은 억압된 콤플렉스의 탓으로 돌리는 환원주의적 이론을 거부하였다. 성격이란 습관과 고착으로 뭉친 덩어리가 아니라 조직화된 전체(whole)이며, 과거가 아닌 미래를 지향하면서 현재에 뿌리를 둔다고 주장하였다. 미국 심리학계의 지도자로서 길고 영향력 있는 생해동안 올포트는 인간다움, 건강함, 통합성 등을 강조하였다. 그의 성격이론은 당시 행동주의적 경험주의를 지향하는 대다수의 미국 심리학자들에게 낯설었지만, 그의 관점은 존중되었다. 주요 저서로는 ‘편견의 본질(The Nature of Prejudice, 1954), '성격의 패턴과 성장(Pattern and Growth in Personality, 1961)' 이다.주요개념1. 성격의 정의“성격은 개인 특유한 행동과 사고를 결정하는 심리신체적 체계인 개인 내의 역동적 조직이다”.이 정의를 분석해 보면 다음과 같은 아니며 항상 한 개인에게만 국한되는 특정 한 것이다. 따라서 올포트는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이 쥐, 햄스터, 혹은 원숭 이들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는 결코 인간에게 적용될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또한 백분위점수, 표준편차 등의 개념은 인간의 성격을 제대로 기술하지 못 한다고 보았다. 올포트는 특질이라는 개념을 인간의 성격을 기술하는 목적 으로만 사용하였고, 두 사람이 똑같은 특질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입장을 취했다.? 자아 원리 : 프로이트와 달리 자아 자체 내부에 막강한 긍정적 힘을 지닌 역동적 과정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프로이트의 개념에서 자아는 원초아와 초자아라는 두 마 리 말을 잘 조정하는 마부와 같은 개념이다. 반면 올포트는 자아가 인간의 모 든 습관, 특질, 태도, 감정, 경향성 등을 통합하는 힘이라고 생각하였다. 올포 트는 고유자아(proprium)제안하였다. 고유자아는 한 개인의 성격의 총체인 측 면들의 합이며 초기에는 학습의 보편적 원리들로 개발되기 시작한다고 보았 다. 고유자아는 두 가지 주관적인 조건, 즉 열등감과 지나친 양심의 조건하에 서는 효과적으로 발달되지 않을 수 있다.? 연속성-비연속성 원리 : 삶의 여려 측면이 연속선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즉, 심리검사의 결과로 한 사람을 판단하려 할 때, 바깥으로 드러난 심리검사 결과는 연속선상에 있는 점수이지만, 이러한 결과를 도출 하게 한 내면의 역동 혹은 과정은 연속적인 것이 아닐 수 있다. 올 포트는 인간 각각의 삶은 매우 다르다고 보았고, 한 사람의 삶은 다 른 사람과 연속선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분리된 개별적 실체라 생각하였다. 프로이트가 성인의 모든 동기들을 유아기의 생물학적 동기들과 연관시키려고 했던 것에 반대하며, 인간은 유아기의 생물 학적 동기들로부터 성장한다고 보았다. 유아기를 지배했던 생물학 적, 원초적 동기들은 성인기에 작용하는 동기들과 연속선상에 있지 않다고 올포트는 생각하였다.? 특질 원리 : 특질을 ‘사람과 비교하고자 할 때 유일하게 사용할 수 있는 접근방식’ 내에서 그 나름의 독특한 방식으로 작용하며, 개인의 성격구조를 가장 정확하게 반영한다고 한다.올포트는 나중에 특질 유형의 호칭에 따른 혼란을 피하기 위해 공통특질은 단순히 특질로, 그리고 개인특질을 ‘개인적 성향’으로 다시 명명하였다. 개인적 성향에는 주특질, 중심특질, 이차적 특질 등 세 가지 유형의 특질이 있다.? 주특질: 주특질은 개인의 생활 전반에 아주 광범위하게 퍼져있어 거의 모든 생활에서 영 향력이 발견되는 성향을 가리킨다. 올포트는 주특질을 ‘지배적 열정’, ‘감정의 지 배자’라고 불렀으며, 가학성과 맹목주의를 그 예로 들었다.? 중심특질: 중심특질은 개인의 행동을 기술하는 5~10가지 정도의 두드러진 특질이다. 주 특질에 비해 덜 일반적이고 덜 지배적인 특질이다. 올포트는 중심특질의 예로서 개인이 갖는 정직함, 친절함, 공격성, 자기연민, 냉소주의 등을 들었다.? 이차적 특질: 이차적 특질은 개인에게 가장 적게 영향을 주는 개인특질로 주특질과 중심 특질보다 덜 두드러지고 덜 일관적으로 나타난다. 이차적 특질은 좀처럼 드 러나지 않고 매우 약해서 매우 절친한 친구만이 그것을 알아챌 수 있는 특질 이다.? 특질, 습관, 태도의 차이올포트는 개인의 행동을 야기하고 이끌 수 있는 것으로 습관과 태도를 특질과 구별하였다.? 습관 : 습관은 특질보다 훨씬 좁고 제한된 영향력을 가진다. 특질과 개인적 성향은 많은 개인적 습관의 통합으로부터 생기기 때문에 훨씬 광범위하다. 습관은 역시 유연성 이 없어 특별한 자극에 대한 특별한 반응이다. 즉, 구체적 상황에 구체적으로 눈 에 보이고 유연성이 없는 반응이 습관이다. 그리고 많은 습관이 모여서 하나의 특 질을 구성할 수 있다.? 태도 :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방식으로 특질과 태도는 구별된다.ⅰ) 태도는 항상 구체적인 참조 대상이 있다. 즉 개인은 어떤 것, 즉 동성애자, 교 사, 학교, 도시 등에 대한 태도를 가진다. 그러나 특질은 그렇게 구체적으로 어떤 단일 대상 혹은 집단에 지향되지 않는다.ⅱ) 태도는 어떤 해 조직화한다.? 숙달과 능력우리가 동기를 만족시키려고 선택하는 높은 수준을 의미하는 원리. 적당한 수준으로 성취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성숙한 성인은 새로운 기술을 숙달하고, 보다 효율적으로 수행하고, 자신의 능력수준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동기를 갖는다.? 고유자아 패턴화성격의 일관성과 통합을 위한 추구를 의미하는 원리. 우리는 자신의 자아상을 향상시키 는 것을 유지하고 그렇지 않은 것을 버리면서 자기에 대한 지각 및 인지과정을 조직화하 거나 패턴화한다. 그러므로 개인의 고유자아 동기는 자기의 구조 혹은 패턴에 따라 달라 진다.성격 발달올포트는 성격의 비연속성을 주장하였다. 즉 출생하여 청소년기까지의 성격과 성인의 성격은 전혀 다르다고 생각하였다.1. 고유자아의 발달단계올포트는 아동기에서 청소년기에 걸친 고유자아의 발달을 일곱 단계로 나누어 제시하였다. 이러한 일곱 단계는 신체적 자아, 자아정체감, 자아존중감, 자아확장, 자아상, 합리적 적응체로서 자아, 고유자아 추구이다. 이러한 고유자아의 발달단계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단계: 신체적 자아(bodily self)이 단계에서 유아는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고 자신의 신체와 환경에 있는 대상을 구별하게 된다. 즉, 이 시기에 고유자아의 형성이 시작되며 유아는 신체적인 자기를 인식하기 시작한다. 예를 들면, 유아는 자기가 잡고 있거나 다루고 있는 물체와 자신의 손가락을 구별하기 시작한다.? 2단계: 자아정체감(self-identity)이 단계는 아이가 정체감의 연속성을 느끼는 시기이다. 즉 아이는 일어나는 많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같은 사람으로 유지됨을 깨달음으로써 자아정체감을 갖게 된다. 이러한 자아정체감은 아이가 자신의 이름을 알게 되고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될 때 향상된다.? 3단계: 자아존중감(self-esteem)아이는 이 단계에서 자기의 성취에 대해 자랑스러워하며 자존감을 느낀다. 올포트는 이 단계가 매우 중요하다고 보았다. 아이는 그가 접한 환경에 평가기법올포트는 다른 성격이론가들보다 성격 평가기법에 대해 많은 내용을 기술했다. 그는 인간 성격은 너무 복잡해서 그것을 평가하기 위해 모든 적절한 기술을 이용해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올포트는 성격 연구를 위한 일반적인 틀을 제공하기 위해 과학의 기본적인 방법으로 가정하는 관찰과 해석에 근거한 11가지 방법을 기술하였다.1. 체질적 그리고 생리적인 진단2. 사회 문화적 환경, 구성원 의식, 역할3. 개인적 자료와 사례연구4. 자기평가5. 행동표본6. 등급평가7. 검사와 척도8. 투사기법9. 심층분석10. 표현적 행동11. 개요 절차(개요에 있는 다양한 자료에서 정보를 종합)올포트는 이러한 성격 평가기법을 통해 개인의 독특한 성격을 연구하는데 있어 법칙정립접근보다 개체기술접근을 사용하였다. 개성의 탐색을 중시한 올포트는 자연과학의 방법들을 가지고 연구하기에는 인간이 너무 복잡하다고 믿었고, 성격심리학자들이 집단평균 비교에 집중하는 경향을 비판하였다. ‘평균인’에 대한 자료가 아무리 많이 쌓여도 개별인간에 대해, 그의 무한한 복잡성과 그 밑에 깔려 있는 일관성에 대해 말해주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그는 일반적 특질들에서 사람들을 서로 비교하는 것보다 개인에게 독특한 특질들, 그리고 특질들의 개인 내 조직화 패턴을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본 사람이었다. 따라서 그는 성격을 연구, 평가하기 위한 차원들을 정하지 않았다.3. 이론의 평가올포트는 심리치료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구체적인 치료 기법을 제안하지 않았다. 하지만 기능 자율성, 고유자아 등의 개념은 임상가들에게 유용하게 적용된다. 올포트의 개념들은 심리측정학과 법칙정립적 연구를 강조하는 학문으로서의 심리학과 성격을 이해하는 데 사례연구를 보다 강조하는 임상심리학을 연결하는 다리역할을 하였다. 올포트가 성격을 이해하기 위해 실시한 언어에 대한 분석은 5요인 모델의 발달에 임상적이며 개념적인 영향을 끼쳤다. 올포트의 성격이론이 성격연구에 기여한 점은 첫째, 성격심리학을 과학적 심리학의 영역으로 포함시켰다는 점이다.것이다.
    교육학| 2007.03.08| 12페이지| 1,000원| 조회(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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