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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북세력의 실체
    대한민국은 탄생 당시 일제 침략하에 많은 경제적으로나 인적자원등 많은 자원들을 식민지라는 명분아래 빼앗겼다. 또한 독립후 불과 5년후에 남과 북이 전쟁으로 우리나라는 폐허가 되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엄청난 노력과 의지로 세계10위권의 경제강대국으로 올려 놓았으며 2011년 G20정상회의 개최, 2012핵안보회의 개최등 세계속의 대한민국의 위상을 훌륭히 펼쳐나가고 있다. 또한 전기,전자,건설,조선등 많은 산업등이 강대국에 속하는 경제강국을 이루었으며, 이러한 대한민국은 반세기도 안되는 시간에 발전을 시킨 훌륭한 나라로 세계는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피땀흘려 가꾼 고귀한 삶의 터전을 북한으로 넘기려고 하는 종북세력들이 존재하고 있다. 이들은 대한민국 내에서 갈등을 조장하여 국가를 분열시키고, 유사시 대한민국을 전복시키기 위해 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다. 특히 종북세력들은 정치,외교,경제,사회,교육,문화등 각계각층에 침투하여 좌파네트워크를 구축함으로써 조직적으로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현재 종북세력에 대해 우리나라에서는 논란이 많다. 19대총선의 이석기,김재연 당선자들의 과거 북한지지발언과 5월 23일에 있었던 ‘100분토론’ 에서의 이상규 국회의원의 북한에 대한 대답은 당일 검색어에 등재될 정도로 많은 논란이 있다. 그렇다면 과연 종북이란 무엇이고 어떠한 존재이길래 이러한 많은 논란을 끼치며, 인터넷등에서도 종북세력에 대한 키워드가 상위권까지 올라가는것인지에 대한 질문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레포트를 작성하기에 앞서 종북세력이란 무엇이고 종북세력의 역할, 그리고 우리나라에 끼치는 영향에 대하여 조사를 해보고자 한다.종북이란, 종북주의(從北主義) 또는 종북(從北)은 대한민국에서 쓰이는 표현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집권 정당인 조선노동당과 그 지도자인 김일성 전 국가주석, 김정일 국방위원장 등의 외교 방침을 무비판적으로 추종하는 경향을 일컫는 말이다. 단순한 친북(親北)과 구별하기 위해 1990년대 말부터 사회당이 이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2001년 사회당 등에서는 종북주의자와 함께할 수 없다는 의사를 발표함으로써 본격적으로 알려졌다.비슷한 용어로 친북이 있지만, 친북은 종북과는 다른 개념으로 남북한의 통일에 있어서 북한과의 대결이 아닌 타협과 대화를 통해 평화적인 방식으로 북한을 포용해야 한다는 평화주의에 가까운 용어이다. 즉. 대한민국 정권 자체를 부정하고 북한을 무조건적으로 따르는 종북과는 구분되는 용어이다.종북세력의 시작은 1920년대의 한반도에서 태동된 막스·레닌주의 세력에 기원을 두고 있다. 1925년 국내최초의 사회주의 정당인 ‘조선공산당’이 결성되었으며 러시아의 영향을 받은 해외 한인들과 일본 유학생들이 막스·레닌주의를 박습하여 국내에 유포하여 사회주의세력이 싹트기 시작했으며 1945년 광복후에 조선공산당이 재건되고 1946년 11월23일에 남조선 노동당 결성, 이후 대한민국 정부 수립 방해 및 사회주의식 인민정권 수립을 꾀하였다.또한 많은 빨치산 활동으로 우리나라 곳곳에 피해를 주기도 하였으며 정부수립후 많은 반민주적투쟁을 벌이고 세력확산을 기도하기도 하였다. 또한 2000년대에 들어 제도권과 정부내부에 안착하여 친북·사회주의 활동을 미화하여 영향력을 국가전반에 확산하기 시작하였으며, 지금도 지하에서 수많은 대한민국 정부 전복과 사회혼란을 야기시키기 위해 음모를 꾸미고 있다. 지금 현재에도 종북세력의 규모가 얼마인지 규정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이유는 대다수 종북세력은 스스로 종북세력이라고 밝히지 않고 있으며, 대체로 좌경세력과 혼재해 있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나 개념적으로는 좌익세력과 좌경을 구분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구분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전문가에 의하면 한국 좌파를 넓게 잡으면 종북세력은 3만여 명이고 동조 종북세력은 30-50만명으로, 부동세력은 300여만 명이라고 분석하였다고 한다. 심심찮게 우리가 술자리를 해도 지금 술을 마시고 있는 상황에서도 북한 간첩들이 존재한다고 하는 말이 이러한 근거에서 나온다고 하니 종북세력의 숫자는 실로 어마하다고 할 수 있겠다.또한 종북세력의 행동 지침은 대략 10가지로 나눌수 있다.1. 대한민국의 저통성을 부정한다.2. 핵심 투쟁방향은 ‘반대한민국, 반미국, 반자본, 친북화’ 등이다.3. 우리사회 각계 각 분야에 침투하여 ‘좌파네트워크’를 형성하여 활동을 한다.4. 사회지도층인사를 대상으로 의식화공작에 주력한다.5. 북한의 통일전선 용어혼란전술을 그대로 수용하여 사용한다.6. 북한의 연방제 동일방안을 정당화하는 통일론을 주장, 확산시키고 ‘강성국가 건설’을 외치 고 있다.7. 문화예술투쟁을 가속화 시킨다.8. 군사투쟁이론은 ‘국군와해 전취전술’이다9. 사이버 투쟁을 강화한다.10. 천안함 피격사건과 관련하여 북한 공산독재정권에 대한 충성경쟁을 지속한다.위와같은 활동 양상과 과거와 현재, 미래의 종북세력을 보았을 때,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의 안보의식과 굳건한 한미동맹을 유지하지 않는다면, 과거 월남패방의 교훈의 사례에서 알수 있듯이 그들의 사상을 각계각층에 침투하여 국민의 여론을 분열하고 내부 갈등을 조성하여 국가를 전복 시킬것이다. 병력 115만명 해군력세계3위 공군력세계4위의 자유 월남군은 전투복조차 없는 40만의 공산월남군에게 패배하였다. 6000명의 정예 공산당원을 침투시켜 민족을 내새워 사회 지식인들을 배후 조종하여 반미,반정부 시위를 주도하였다. 결국 국론은 사분오열되고, 미군은 철수하였으며, 그들은 적에 대한 경계심조차 무너졌다. 그리하여 월맹군이 공격하자 월남의 전투기 조종사는 자기가 지켜야할 월남대통령궁을 향해 기수를 돌리고 폭격을 가했다. 그리하여 자유월남은 1975년 영원히 지도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하지만 놀라운 사실은 시위를 지도한 종교지도자, 제1야당총수 대통령정치고문이 간첩들이었으며 정부기관, 군대에도 심어놓은 간첩들이 침투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대가로 600만명이 학살당했으며 106만명의 보트피플들이 발생하게 되었다. 또한 공산 월맹에 협조했던 자들이 가장 먼저 처형을 당했다. 한번 변절한 사람은 다시 변절할수 있다는 이유로 말이다.종북세력에 대하여 조사를 하고자 하니 현재 우리나라는 통합진보당과 관련하여 뜨겁게 종북세력에 대하여 논의가 한창이다. 북한의 종북세력 행동지침에서 보았듯이 북한은 현재 사회지도층인사를 대상으로한 침투가 제일 우선이라고 생각을 한다. 그렇기에 이번 19대 총선에 종북의식을 지닌 국회의원들의 입성을 실로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국민의 대변인인 국회의원에 종북세력들이 진출하여 국회의 의석에 앉아있다는 사실과 그들이 점점 힘을 써가며 세력을 넓히려고 생각을 하면 벌써 이 나라의 미래가 깜깜해지는 것 같다.또한 이석기 의원의 경우 과거 민족민주혁명당 사건(반국가단체 구성)으로 국가보안법에 의하여 구속되었으며, 김재연 의원의 경우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다 징역2년과 집행유예2년에 처벌받았던 사람들이다. 이러한 사람들이 국회에 들어간다고 하니 정말 할말이 없을 정도이다.종북주의는 과거에는 안기부나 군사정권하에서 아주 강력한 단속과 처벌로 국민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측면이 있지만 민주정권이 들어서면서 인권탄압이다, 표현의 자유다 등 다양한 이유를 들어가면서 대중들 앞에 노출되고 있습니다. 종북주의가 위험하며 반국가적인 이유중 가장 큰 점은 온갖 독재와 민중에 대한 탄압으로 호위호식하는 북한 지도층의 모순을 덮어놓고 무조건적으로 찬양하고 따르려하는 점,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임에도 국가를 부정하려 하는 점이다. 이러한 종북주의가 개인의 사상문제로 끝나면 좋겠지만 그들에 동조하는 사람이 늘어나면 결국 반국가적인 사회혼란세력이 되기 때문이고, 행여나 북한으로부터 직·간접적으로 지원을 받아 활동한다면 간첩과 다를 바가 없다. 반국가적인 이적단체를 구성하거나 일부 동조하는 사람들이 대중을 선동한다면 이는 국가에서 나서서 처벌해야할 중대 범죄행위이다.
    사회과학| 2015.06.13| 3페이지| 1,000원| 조회(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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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전산 이야기
    일본전산은 어떤 기업인가?일본전산이야기의 모티브가 된 일본전산은 1973년에 설립된 기업으로서, 그들은 ‘모터’라는 단 하나의 키워드에 집중하여 나가모리 사장을 포함하여 4명이 3평짜리 시골창고를 가지고 시작을 하게된 기업입니다. 오일쇼크와 장기 불황속에서도 나가모리 사장의 독특한 인재경영방식과 한 분야에서의 끊임없는 연구와 노력을 통해 현재는 소형초정밀 모터산업에서 140여개의 계열사와 13만 명이 넘는 직원들이 일하고 있는 막강한 기업이 되었습니다.최악의 환경속 에서도 막대한 기술 개발 비용과 탁월한 경쟁력이 필요한 하드웨어 산업만을 고수하였고 회사의 독특한 인재등용방식과 육성시스템 등을 활용하여 현재 팬용 모터, 초정밀 모터, 하드디스크 모터, 자동차용 모터 등 손대는 분야마다 세계 1위를 고수하며, IBM, 애플, 삼성전자 등 세계 글로벌 기업들에게 부품을 제공하는 우수한 회사가 되었습니다.위기를 기회로 삼아 성공을 하였고, I CAN DO IT!의 정신을 통한 마음가짐과 열정의 중요성과 또한 경영진의 뛰어난 리더십과 판단력과 인적자원의 관리를 통하여 인재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끼게끔 해주는 기업으로서 그들의 성공 과정과 성공할수 없었던 이유에 대하여 알아보아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1. 인재의 중요성현재 존재하는 글로벌 기업들은 열정적인 리더와 열정적인 직원들이 만들어 나갑니다. 이 책에 나와 있는 그대로 시도하려 해도 나가모리 사장과 같이 끊임없는 열정으로 직원들에게 그 열정을 심어 줄 수 있는 그런 리더가 없으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 나가모리 사장은 항상 ‘남보다 두 배로 일하라, 휴일도 반납하고 일하라, 십입사원은 쉴 생각을 하지마라, 결근 없이 일찍 출근하고 청소를 잘하는 사람은 반드시 다른 사람보다 앞설수 있다.’ 라는 식으로 직원들에게 끊임없는 요구를 하고 일본전산의 모토는 ‘즉시 한다(Do it now), 반드시 한다(Dio it without fail), 될 대까지 한다(Do it until completed)’ 의 정신은 모든 기업이직무에 충실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의 독특한 인재 관리기법은 직원 선발 방식과 육성 방식에도 다른 기업과 큰 차이가 있습니다. 나가모리 사장은 인재등용시 학벌,능력 등을 중시하지 않고 '큰소리로 말하기' 시험과 ‘밥 빨리 먹기’ 시험, ‘화장실 청소’시험, ‘오래달리기’ 시험을 실시하였습니다. 이는 기존 기업들이 진행하는 서류전형과 면접등의 시험과는 확연히 다른 입사시험입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큰소리 말하기 시험’은 자기표현을 할줄 알고 실수를 하여도 반성도 빠르며 이러한 점은 곧 진보할수 있는 가능성으로 표출된다는 점입니다. ‘밥 빨리 먹기 시험’ 은 긍정적 태도를 시험하기 위한 시험이었으며 밥을 빨리 먹는 사람이 일하는 것도 빠르다는 마인드로 이런 유형들은 대부분 결단력이 빠르고, 동작이 빠르며, 일하는 속도도 빠르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화장실 청소 시험은’ 은 밑바닥 일을 제대로 할수 있어야 ‘모든 일’을 잘할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밑바닥 일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하면, 나중에 관리자로 성장했을 때 직원들을 제대로 통솔하기 어렵고, 부하 직원들을 이해하기도 어렵다는 것이 나가모리 사장의 지론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래 달리기 시험’ 은 투지를 테스트하는 시험으로서 ‘인내심’과 ‘끈질김’을 평가받는 시험이었습니다. 즉, 절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지속하는 습관을 보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러한 괴짜 테스트를 통해 일본전산의 일원이 된 직원들은 그 어디서도 경험하지 못한 가장 혹독한 신고식을 치러야 했습니다. 그들이 초일류로 단련된 비결은 바로 여기에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2. 회사의 역량강화 원칙나가모리 사장은 직장생활을 하는 내내 월등히 잘하기 위한 행동강령으로 ‘배의 법칙’ 과 ‘절반의 법칙’ 을 실시하였습니다. ‘배의 법칙’ 은 다른 기업의 직원들보다 두 배 더 오래 일하라는 뜻입니다. ‘절반의 법칙’ 은 능숙하게 되어 시간을 줄여나가는 뜻입니다. 하지만 그저 파상적으로 ‘열심히 일 한다’, ‘하루 16시간씩 일한다’ 라는 원칙을 세워놓는다고 창업 이래 줄곧 실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스피드 경영으로 인하여 일본전산은 3M과의 거래를 ‘스피드’를 통하여 성사시켰습니다. 그리고 3M과 납품을 하게 되자, 국내 기업에서도 자연스레 기회가 많아져서 성장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또한 쉬운 것만 찾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할수 없다는 것만 공략하여 남들이 할수 없는 모터분야에서 세계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내에 ‘3 Quality, 6 Basic’ 이라는 기본지침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3 Quality- 좋은 직원으로 변신하면 좋은 회사가 만들어지고, 좋은 회사의 좋은 직원ㄷ르이 결국 좋은 제품을 만들어 낸다.1. 좋은 직원 (Quality Worker)2. 좋은 회사 (Quality Company)3. 좋은 제품 (Quality Products)* 6 Basic1. 정리 - 항상 반듯하게 정리된 일터.2. 정돈 - 항상 모든 것들이 사용하기 편리하게 놓여 있는 일터.3. 청결 - 지저분한 곳이 없는 깨끗한 일터.4. 단정 - 복장이 만듯한 직원.5. 예의 - 올바르게 행동하는 직원.6. 소양 - 누구라도 좋아하는 직원.이러한 ‘3Q, 6B’ 시스템으로 하여금 직원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올바른 기본 지침이 되고 있습니다. 일본 전산은 3Q를 인식하지 않고, 6B를 철저하게 이행하지 않고서는 스피드 경영이나 효율 경영을 할수 없습니다. 즉 기술력과 능력이 있는 인재들만 갖췄다고 회사가 제대로 윤영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회사의 역량강화 원칙이 존재함으로서 직원들에게 정확한 동기가 부여되고 직무능력이 향상되는 결과를 창출하다고 생각합니다.3. 경영자의 리더십나가모리 사장은 독특한 리더십과 열정으로 직원들을 이끄는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첫째. ‘호통경영’으로 인한 직원들의 성장을 유도한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전문가나 사람들은 칭찬이 사람들에게 동기부여의 가장 큰 힘이라고 생각하지만 나가모리 사장은 일분 일초도 쉼 없이 직원들을 혼내기에 바쁘다고리할 수 없는 사람이며, 반대로 꾸중을 듣게 되면 자신을 직책하면서 발전적 반발심을 가지고 일에 더 덤벼드는 사람이 진짜 클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의 ‘호통 경영’ 에서도 무조건적인 호통보다는 핵심사항을 지니고 있습니다. 1. 혼이 나본 사람이 더욱 성공한다는 풍토를 보여주며, 2. 혼을 내기전에 좋은점을 찾은후에 혼을 내며, 3. 상대에 따라 혼내는 방식을 달리하고, 4. 눈에 보이는 성과와 관련된 인재들을 중심으로 혼을 낸다. 는 점입니다. 즉 리더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꾸지람을 받아들일 줄 알고, 반대로 남도 나무랄 줄도 알아야 하며 그 과정을 통하여 회사가 강해진다는 점을 나가모리 사장의 호통경영을 통하여 배울수 있습니다.둘째. 그의 리더십은 일반 기업들과의 ‘감점주의’가 아닌 ‘가점주의’ 를 통한 경영방식을 들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감점주의’는 직원들로 하여금 실패를 두려워하게 합니다. 서로 자존심을 세우거나 체면 때문에 실패하고 싶지 않기에, 새로운 것을 시도하지 않고 검증된 것들만 하려는 특성이 있습니다. 실패하면 점수가 깍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점수가 깍이지 않아야 승진을 할 수 있습니다. 적극적으로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다가 실패한 직원보다, 새로운 것을 전혀 시도하지 않아 실패할 턱이 없는 직언이 훨씬 높은 평가를 받게 되는 어처구니 없는 결과를 낳기도 합니다. 이러한 것이 감점주의의 폐해입니다. 하지만 ‘가점주의’는 직원들이 실수하거나 실패한 일에 대해서는 그날로 잊어버리고, 그는 직원들이 이 실패에 교훈을 얻을수 있도록 후회없이 혼을 내로 잊어버린다고 합니다. 즉, 실패는 잊어버리고 잘한 일에 대하여 계속 점수를 더해주어 가점주의로 평균수준을 위로 올리는 논리입니다. 직원들은 그때 비로소 ‘책임’에 대하여 진정 깨닫고 직원들에게 엄청난 기폭제, 훌륭한 ‘동력’으로 작용시키는 힘이 있다고 합니다. 나가모리 사장의 가점주의는 ‘실패하면 다시 도전하고, 자신이 모든 업무에 대해 확실하게 책임을 진다.’ 라는 교훈을 주고즉 이러한 적당한 자극은 ‘자신이 할수 있는일’ 즉 항상 새롭게 변화하는 업계에 관심을 두고 개척할 시장을 찾는 것에 몰두하면서 스스로 너무 강압적이 되거나 반대로 너무 무기력해지는 것을 예방해주며 한단계 아래 직원의 일을 주시하고 독려하면서, 리더 스스로 한발 앞서 나가는 모습을 보여줄때 ‘매력적인 인재’로서의 역할 모델을 제시한다고 할수 있습니다. 이러한 나가모리 사장의 경영 리더십과 열정이 일본전산을 이루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고 생각 됩니다.4. 기회를 제공하는 회사일본 전산은 직원교육을 매우 중요시하고 그에 대한 투자도 적극적으로 한다. 그러한 이유는 ‘교육이야말로 직원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최고의 복리후생 제도’라고 믿기 때문이다. 직원 교육을 통해 직원들이 성장하고 더 많은 결과를 내면 좋은 평가로 이어지고, 승급, 승진으로 이어집니다. 또 회사는 그렇게 성장한 직원들의 역량에 의해 한층 더 발전하고, 결과적으로 직원들에게 더 좋은 대우를 해 줄수 있게 됩니다. 나가모리 사장은 1년 52주를 통틀어 대략 35주에 걸쳐 토요일, 일요일에 실시하는 1박2일 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직원들은 연초에 정해진 교육 일정을 확인하고, 참가할 일정을 뺀 나머지 일정 중에서 연간 휴일을 정하며, 교육 일정은 회사에서 가장 주요한 스케줄이기 때문에 연초에 가장 먼저 정하는 것이 회사 망침입니다. 또한 토요일과 일요일로 잡는 것은 직원들이 업무에 구애받지 않고 자율적으로 참석해 자기계발에 전념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러한 역량 강화와 자기계발을 통해 자신의 복리후생 수준을 올리겠다는 것은 자기 인생에 대한 책임 의식이 강하다는 뜻으로 표출됩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거액을 투자하며 프로그램을 준비해주는 회사가 고마울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또한 일본전산은 획기적인 기업 전략으로 성공한 케이스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들은 숱한 실패에도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현재의 발전에 만족하기 않았으며, 틈만 나면 자신들의 미래 모습에 대해 침을 튀겨가며 애기.
    독후감/창작| 2015.06.13| 6페이지| 1,000원| 조회(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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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주의 역사와 문화재
    〈목 차〉1. 충주의 연혁2. 충주의 문화유산3. 충주의 문화4. 충주의 인물5. 조사를 마치고...※ 참고자료1. 충주의 연혁 [忠州, Chungju]삼국 및 통일신라시대에 충청북도는 삼국에 접하고 있었던 땅으로 청주, 문의, 화인지방은 충남을 근거로 백제에 속하고, 옥천, 영동, 황간, 청산, 보은 등 5개 군은 신라가 점령하고, 진천, 청안, 음성, 괴산, 충주, 연풍, 단양, 청풍, 제천, 영춘 등의 10개 군은 고구려의 영토이었다. 임진왜란 때에는 경주, 안동, 풍기를 지나 진격해온 가등세력은 죽령을 넘고, 상주를 경유하여 돌진해 온 소서의 군대는 조령을 넘어 충북에 들어와 충주에서 결합함으로써 조선의 장수인 신립은 고전을 하였다고 한다. 신립 장군이 배수진을 치고 맹렬히 싸웠던 유적은 충주읍 서쪽 10리 달천강변의 탄금대 아래에 있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은 국익을 위하여 남쪽 왜구의 침입에 방비를 튼튼히 하고자 충북의 충주와 청주에 도호부 목사 겸 방어사를 배치한 일도 있었다. 그 후 조선개국 503년에 이르러 한국을 23부로 나누고 관찰사를 임명하여 이를 관할토록 하였다가 이듬해에 또다시 23부제를 폐지하여 13개 도로 나누었다. 이때 충주를 충청북도의 수부로 하고 지금의 18개 군을 관할하도록 하였다. 그러다가 1908년 6월 28일 칙령으로 충북도청의 소재지를 청주로 고치고 동년 6월 5일 도청 이전을 완료하였다. 여기에서 충주시의 역사적 명칭변화를 살펴보면 삼한시대에는 마한지역에 속하였고,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의 영토로 원성으로 불렸으며, 통일신라시대에는 중원경으로 불리었다. 그후 고려시대에 접어들어 현재의 지명과 같은 명칭인 “충주(忠州)”로 불려지기 시작하였다.B.C 3~4세기경 삼한 중 마한에 속함350년 백제 근초고왕 5년 백제 영역(낭자곡성,낭자성,화성)475년 고구려 장수왕 63년 국원성(일명 미을성, 완장성)550년 신라 진흥왕 11년 국원성에 목 설치557년 신라 진흥왕 18년 국원소경으로 개칭685년 신라 신문왕 5년 중원소경으트계단을 12단으로 만든 것도 그런 의미가 내포하고 있다.· 충렬사 (忠烈詞)충주에서 서남쪽 4Km 지점에 단월동이 있고 우리학교 바로 근처에 있는 이곳은 충렬사로 알려져 있다. 사적 189호로 지정·보호되고 있는 충렬사는 충민공 임경업(林慶業) 장군을 모신 사당이다. 1679년(숙족 23년)에 건립되고, 영조 3년에 사액된 이래에 수차에 걸친 중수를 거듭하다가, 1978년 성역화 사업으로 지금의 규모로 확작하고 전시관까지 마련하게 되었다. 충렬사에는 임경업 장군의 영정을 봉안하고 춘추로 유림에서 제향한다. 임충민공은 충주의 명현중의 한분이다. 그래서 우륵문화재 행사 때에는 ‘임경업장군 출전 행렬’이라고 하는 가장행렬과 이 고장 명현(名賢) 5위(五位: 우륵, 강수, 김생, 신립, 임경업)와 함께 추모제를 모시는 분이다. 유물전시관에는 임경업 장군의 유품과 행적에 참고되는 문적이 장군이 쓰던 추련검과 함께 전시되고 있다. 임경업 장군의 영정은 이곳 외에도 4점이 더있는데, 단원 김홍도가 그린 연정도 있다는데 충렬사에 보전된 이 영전이 화상찬도 없고, 작가 연대미상인데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보여진다.(임경업장군 영정: ① 충렬사의 지본색채본, ② 살미면 사당의 명나라 화가가 그렸다는 견복채색본, ③ 평북 의주에 있는 남사본, ④ 국립박물관본 등이 있다.)· 충주산성 (忠州山城)충주산성은 남산에 위치해 있는데 해발 636m의 산으로 충주시내 동남쪽에 위치했고 금봉산이라고 불리었는데 이 산 정상에 충주산성이 있다. 충주산성은 고려시대 몽고의 침략을 물리친 현장으로 고려사에서 가장 높이 평가하는 곳인데, 이 성이 고려사에 나오는 충주산성인지는 불분명하다고 한다. 고려사의 기록으로는 천하무적 몽고 대장이 충주를 함락하지 못하고 퇴각하자, 승리의 땅이라고 해서 충주를 국원경(國原京)으로 승격시켰던 곳인데, 당시의 승장이 김윤후 승병대장이란 기록이다.만약 고려사에 나타나는 충주산성에 이 성이라면 몽고군을 물리치고 이곳을 사수한 김윤호 승장과 충주백성들의 우국충정이 이곳을 릉과 고구려쪽의 중원고구려비) 이 비는 당시의 정치·경제·사회상과 삼국관계를 엿볼 수 있으며 고구려의 관제·이두 연구에도 귀중한 자로로써 아직까지 한반도에 유일한 고구려비인점 등이 역사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어서 많은 학자들의 연구대상이 되고 있는 비(碑)인 점에서 그 가치가 실로 얼마나 위대한지를 알 수가 있었다.·미륵사지 (彌勒寺址)와 미륵리 석불입상, 미륵리 5층 석탑미륵사지는 고려시대 전기에 이룩된 석굴사원으로 창건과 사적 등에 대해서는 좀 더 깊은 연구가 되지 않았다. 장방형 평면을 이루고 있는 약 만4천 평방미터 정도의 큰 절터로 1977년도부터 세 차례에 걸친 발굴작업을 하여 옛날 절터의 모습을 한 주춧돌 등의 배치된 상태를 알 수 있게 되었다. 남쪽 끝의 3면에 석축을 한 사원 중앙에 북쪽을 바라보고 위치한 석불입상과 그 앞 북쪽으로 향하여 일직선 상에 5층 석탑, 석등 등이 배치되어 있다.석굴은 반까지 석축을 하였으며 그 이상은 목조가구하여 옥개부가 있었으며 석불 입상 앞으로는 전실이 있었음을 알 수가 있다. 한국 석굴사원의 계보를 찾고 연구함에 있어서 절대적인 유적으로 창건연대 등 많은 연구가 계속되어야 할 곳이다. 발굴시에는 용두상, 사자상과 청동귀면상, 금동소탑옥개석 등과 각종 와당이 출토되었으며 특히 군마가 그려진 기와, 호랑이가 노루를 좇는 그림이 있는 기와 인면와 등 독특한 것들이 출토되어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미륵리 석불입상은 보물 제 96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석굴사원의 중심을 이루는 석불 입상으로 높이 10.6m의 거대한 미륵불이다. 보관까지 합하여 6개의 돌로 조각ㅎ여 세운 불상으로 육계와 나발이 있고 얼굴은 동글며 둥근 눈썹이 직선적으로 감은 듯한 눈과 적은 입을 두텁게 표현하고 있다. 목은 굵고 3도는 겨우 표현하였으며 어깨에서 발끝까지 같은 넓이로서 마치 판석을 이룬 듯 만들었다. 팔은 형체만 겨우 살렸으며 오른손은 가슴에서 펴고 있는 시무외인을 하고 왼속은 약합같은 것을 들고 있다.미륵리 5층 석탑은 보물 제 96호로 지견은 문헌상으로 볼 때 원시시대부터 발달해온 기층문화의 하나로 보인다. 조선 정조때 간행된 〈재물보 才物譜〉에는 "手搏爲卞 角力爲武 若今之 탁견"이라고 하여 〈고려사〉·〈조선왕조실록〉 등에 나오는 수박(手搏)·각력(角力) 등을 택견으로 해석하고 있다. 택견의 기원은 삼국시대 이전으로 거슬러올라가며 정립과정에서 중국·일본 등 주변국들의 무술과 영향을 주고받은 것으로 보여진다. 고려시대에는 무인들의 무예로서 장려되었을 뿐 아니라 민간에서도 활발히 전승되었으며, 조선시대에 들어와 민속경기의 하나로 정착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우리문화에 대한 일제의 탄압으로 택견이 거의 자취를 감추었는데, 해방 이후 조선후기의 택견꾼이었던 송덕기에 의해 되살아나 다시 맥을 이었다. 그가 전한 택견은 낱기술을 혼자 익히거나 두 사람이 상대하여 메기고(攻擊) 받기(防禦)를 주로 연습한 후 바로 경기를 하는 겨루기 위주의 체계였는데 이 체계가, 그에게 배운 신한승이 1980년대에 본때뵈기 12마당을 창안하여 전수한 형식위주의 체계와 함께 택견의 2대 학습체계를 이루고 있다. 경기방법은 경기자가 각각 상대방을 향해 한쪽 발을 내딛는 대접(待接)의 상태에서 손발을 사용하여 상대방을 넘어뜨리거나 얼굴을 발로 차면 이기게 된다. 그러나 상대방의 옷을 찢거나 상해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타격적 공격을 가하거나 상대방의 급소를 공격해서는 안 되며 손장심·발장심·발등만을 써서 무르고 연하게 공격해야 한다. 택견 동작은 율동적이고 부드러운 동선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숙련된 경기자의 경기모습은 마치 대무(對舞)를 추는 것처럼 우아하게 보인다. 택견에는 원래 품계가 없었으나 1980년대 이후 택견의 대중화 방편으로 다른 무술이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단·급 제도를 도입했다. 무급, 8∼1급, 초단∼9단의 18품계가 있고, 초보자가 9단이 되려면 40년의 수련기간이 소요된다. 1983년 중요무형문화재 제76호로 지정되었으며, 충북 전역이 소재지이다. 이듬해 창설된 사단법인 대한택견협회의 주도하에 생활체육으로 전 것으로 보인다. 또한 탄금대의 넓은 들판에서 빠른 기동력을 갖춘 철기마대를 예봉으로 삼아 왜군의 보병을 공격하면 승리할 수 있을 것으로 본 것 같다. 그러나 전투가 시작되자 왜군의 조총 사격에 대오가 흩어지고 신립의 작전은 어긋난 채 결국 8천여 조선군은 전멸하고 말았다. 신립은 전투 중 남한강에 뛰어들어 자결하였다고 전해진다. 신립의 패전으로 민심이 극도로 혼란해지고 선조도 마침내 한성을 떠나 평안도로 피난을 가기에 이르렀다.[상훈과 추모]사후 영의정에 추증되고 평양부원군에 봉해졌다. 시호는 충장(忠壯)이다. 충주시민의 축제인 우륵문화제 때 명현추모제를 지내며, 탄금대에 세워진 임진왜란 팔천고혼 위령탑에서 매년 제사를 지낸다. 탄금대에 충장공 신립 장군 순절비와 신립 장군 순국지지비가 있고, 충주시 호암동 우륵당 앞에 신립 장군 동상이 있다.②. 우륵 (于勒)우륵은 가야의 가실왕(嘉實王) 시대 사람으로 현 경상북도 고령 지역으로 일컬어지는 성열현(省熱縣)에서 태어났다. 가실왕의 재위 기간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우륵이 귀화했을 당시 신라가 진흥왕(540~575)의 재위 기간이었던 것으로 보아 우륵도 500년대 초반에 태어나 중반을 넘게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활동사항]가야금은 원래 가야국의 악기였다. 가야국의 가실왕이 재위 당시 중국의 쟁(箏)을 모방하여 12현 가야금을 만들도록 한 데 이어 우륵으로 하여금 가야금 악곡(樂曲)을 작곡하게 하였다. 그것이 「하가라도(下加羅都)」, 「상가라도(上加羅都)」 등 12곡이다. 그러나 우륵은 550년경 가야국의 내부 사정으로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가야금을 들고 신라에 귀화했으며, 신라 진흥왕은 그를 현 충주 지역인 국원경에서 편안히 살도록 배려하였다.그로 인해 우륵은 자신의 음악적 재질을 충분히 발휘하여 가야금을 연구하고 제자들을 양성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제자들 중 대표적인 사람이 가야국에서 활동하던 당시부터 음악을 함께 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이문(泥文)과, 진흥왕이 가야금을 배우도록 국원경으로 보낸 법지(法知),하였다.
    사회과학| 2012.06.11| 18페이지| 1,500원| 조회(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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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이름은 칸 (영화감상문)
    〈줄거리〉My name is Khan.. and I'm not terrorist!!주인공 칸이 미국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펼쳐지는 장면으로 이 영화는 시작이 된다. 칸은 인도에서 태어났으며 이슬람교도이다. 또한 그는 ‘아스퍼거 장애’ 즉 자폐증을 앓고 있는 남자이다. 칸은 지성과 덕을 갖춘 현명한 어머니 아래에서 훌륭한 성인으로 자라왔다. 인도에서 그는 어머니를 통해서 스승을 만나고 그 스승을 통해서 많은 학문과 지식을 접하게 된다. 하지만 그의 정상적인 동생은 칸을 질투하게 되며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과 격려를 받지 못한다. 남동생은 결국 미국의 유명대학에 장학금을 받고 입학하게 되며, 칸과 어머니는 인도에 남게 되며 생활을 한다. 하지만 어머니가 심근경색으로 돌아가게 되시고 칸은 남동생이 있는 미국으로 향하게 된다. 미국에서 그는 남동생의 회사에서 화장품 판매원으로 자신의 직업을 갖게 된다. 그러는 도중 샌프란시스코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만다라를 만나게 된다. 만다라는 19살에 결혼을 하여 22살에 이혼을 하였으며 그녀에게는 샘이라는 아들도 있다. 그녀를 사랑하게 되버린 칸은 적극적으로 샌프란시스코의 장소를 데리고 다니며 만다라와의 정을 키워 나가게 된다. 하지만 만다라는 자신은 이혼녀이고 아이도 있는 상태이기에 칸의 적극적인 구애를 거절하게 된다. 하지만 6일을 기다리며 안개가 자욱이 깔려있고 해가 뜨는 샌프란시스코의 마천루들을 보게되며 결국 칸과의 결혼을 승낙한다. 만다라는 유능한 헤어디자이너 이였기에 그의 고객이 있는 장소로 이사를 하여 행복한 생활을 이루어 나간다. 칸은 이슬람교, 만다라는 힌두교. 둘이서 서로 다른 종교지만 사랑하는 그들의 마음이 종교적 신념을 뛰어 넘어 생활을 하게 된다. 하지만 2001년 9월 11일 미국에서 발생한 9.11 테러로 인하여 무슬림들은 많은 핍박과 박해를 받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이웃인 리스의 아버지는 아프가니스탄의 종군기자로 활동하였지만 결국 아버지는 싸늘한 주검으로 미국에 묻히게 된다. 리스는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무슬림을 증오하며 모든 무슬림들을 적으로 간주하며 샘과의 관계도 점점 멀어지게 된다. 그렇지만 샘은 리스에게 적극적으로 이유를 묻고, 둘이 좋아하는 축구장에서 그만 몸싸움을 벌이게 된다. 이 광경을 본 미국아이들은 샘을 결국 축구공에 심장을 맞은 샘은 비장파열로 결국 숨을 거두게 된다.이렇게 샘의 죽음을 접하게된 만다라는 자신의 남편인 칸까지 증오 하게되며 모든 책임과 증오를 칸에게 돌리게 된다. 테러를 일으킨 장본인은 빈라덴인데 왜 같은 종교라고 같은 테러리스트 취급을 받아야 하는지를 칸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결국 만다라는 샘이 죽은자리에서 오열을 하며 칸에게 증오를 퍼부으며 미국 대통령과 만나서 자신이 테러리스트가 아니라고 애기하라고 하는 말을, 칸은 진심으로 받아들이며 미국 곳곳을 누비며 대통령을 만나려고 노력한다. 그러던중 엄마제니를 만나 그곳의 마을사람들과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면서 따뜻한 대접을 받고 가족의 사랑과 인종의 차별에 대한 메시지를 접하기도 한다. 또한 모스크에서 이슬람교도들이 테러를 일으킬 계획을 세우는걸 알게되어 FBI에 신고도 하게 된다. 하지만, 결국 헐리우드의 한 대학에서 미국 대통령을 만날 기회를 접하지만, “제이름은 칸이고 전 테러리스트가 아닙니다!” 라고 외치던중 이 외침을 잘못들은 시민들에 의하여 그는 경찰에 진압되고 결국 감옥에 들어가고 만다.많은 고문과 억압으로 칸은 점점 피폐해지고 괴로워하였다. 하지만 때마침 그 촬영을 하던 취재팀이 칸에게 뭔가 사연이 있다는걸 눈치채고 그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많은 방송국에서 거절을 당하였던 취재팀은 결국 무슬림의로서의 의무와 책임, 열등감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방속담당자를 설득하였고, 취재팀은 칸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하여 방송을 시작하게 된다. 결국 이 방송으로 인하여 칸은 모든 오해가 풀리고 감옥에서 나올수 있게 되었다. 다시 미국 대통령을 만나기 위한 여정을 계속하던 칸은 엄마제니가 있는 조지아주의 작은 마을에 태풍으로 인한 피해사실을 접하게 되었고, 칸은 곧바로 엄마제니가 있는 마을로 향하게 된다. 정부의 구제가 이루어지지도 않는 그 작은 마을에서 칸은 열심히 구조활동을 하며 마을 사람들을 돕게 된다. 결국 칸의 위치가 취재팀에 알려지게 되면서 취재진은 방송을 내보내게 되고 뜻을 같이하고자 하는 많은 미국인들과 무슬림들이 작은 마을에 구조물품과 활동을 시작하면서 작은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한다. 결국 이러한 모습이 또 한번 TV에 나오게 되면서 칸에 대한 모든 무슬림에 대한 미국인들의 시선은 점점 바뀌어져 간다. 결국 샘의 죽음도 함구하던 리스도 샘을 죽게 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만다라에게 모든 내용을 고백한다. 결국 칸의 사람과 희생정신을 느낀 만다라 또한 자신의 마음에 쌓인 노여움과 증오, 그녀를 힘들게 했던 샘의 죽음도 놓아주게 된다. 결국 만다라와 칸은 엄마제니가 있는 곳에서 재회를 하게 되지만, 칸에 의해 붙잡힌 이슬람 테러리스트의 지지자가 칸을 찌르게 된다. 하지만 칸은 가까스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고 회복 후에 병원을 나오자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응원하고 있는 광경을 보게 된다.때마침 조지아주를 방문하고 있다는 오바마 대통령을 보기 위해 칸은 다시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대통령을 찾아간다. 대통령이 공식일정을 마치고 돌아가려던 찰나에 도착한 칸. 결국 대통령이 칸을 보기위하여 직접 찾아간다. 그 자리에서 칸이 애기하려던 “저는 칸입니다. 저는 테러리스트가 아닙니다!” 라는 말을 대통령이 말하게 된다. 결국 대통령과 마주치게 된 칸은 모든 목표를 달성하고 사람들의 환호와 축복 속에서 집으로 향하게 된다.〈느낀점〉이 영화를 보고 지금 생각나는 것은 칸의 어머니가 말했던 “이 세상에는 좋은행동을 하는 사람과 나쁜 행동을 하는 사람. 두 종류의 사람만 있다.” 이 말은 세상에서 어떤 종교나 이념들로 하여 사람을 나누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요즘 주위를 둘러보면 아군과 적군을 종교적 관점과 이념으로 나뉘는 것이 너무나도 많다. 이 수업을 듣게되었을때도 졸업을 위한 학점채우기. 수업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 하는 이점을 들어 이수업을 듣게 되었지만, 이 수업을 듣게 된 나는 지금 너무나도 행운아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 영화를 시청하게 된 계기도 단지 이슬람에 관하여 공부를 하는 학생이 과제를 제출하기 위하여 시청하였지만, 결국에는 너무나도 많은 인종과 종교적 윤리에 따른 이중잣대에 대하여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다. 또한 기독교적 관점에서는 이슬람교는 모두 악마를 믿는 종교로 배척하곤 하였다. 하지만 이슬람의 이해를 들으면서 이러한 나의 관점이 많이 틀렸고,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의 종교적인 관점은 똑같다는 것도 배우게 되었다. 영화에서도 나왔듯이 지금 세상은 세 가지의 시대로 구분된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기원전과 기원후, 그리고 9.11테러 이후로 이 시대는 많은 변화를 가지게 되었다. 미국은 9.11테러 이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대한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전쟁을 지금도 하고 있다. 또한 많은 무슬림들이 9.11 테러 이후 상점과 가게들이 피해를 입고, 무슬림이란 이유로 집단 따돌림을 당하며, 폭행과 심지어 살인사건도 벌어지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영화를 통하여 나는 다시 한번 자신의 신념과 종교적 신념, 인종문제에 대하여 생각해보게 되었다. 11주차 수업을 진행하면서 서구에 대한 무슬림의 반발 배경과 원인을 알게 되었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합병과 이러한 문제로 인하여 이슬람과 서구의 불신이 시작되었다. 그러면서 여성의 히잡착용, 일부다처제, 그들의 문화와 관습을 서구사회에서는 뒤떨어지고 불평등하며 미개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다. 분명 히잡착용과 일부다처제등, 이슬람의 많은 문화에 대해서 나도 이해를 하지 못하였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과목을 수강하게 되면서 이슬람에 대하여 변하는 나의 관점을 느끼게 되었다. 분명 지금 세계는 미국에 의하여 돌아가고 있다. 또한 미국이 전세계의 경찰국이며 자유와 정의를 수호하는 국가로 대변되는 세상이다. 9.11 테러는 미국에 대한 무슬림의 공격. 그리고 테러가 분명하다. 이것은 변할수 없는 사실이며 역사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렇게 무슬림들이 미국과 서방세계를 증오하며 지하드를 펼치는 원인에 대하여 생각을 해보았다면 그렇게 애기를 할 수가 없을 것이다. 팔레스타인은 생각지 않고 무조건적인 이스라엘 지지를 펼치는 서방세계와 이들을 적대하는 미국의 행동이 이러한 사건과 지금 직면하고 있는 이슬람과 미국의 구도를 만들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이슬람세력은 테러리스트이며 악의축 국가들이다. 하지만 과거 우리가 일제시대의 탄압에 맞서 싸웠던 의거활동들은 우리의 입장에서는 독립운동이다. 일제는 그러한 우리들의 행동을 테러라고 간주하였다. 마찬가지이다. 현재 이슬람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이러한 행위는 테러가 아닌 자신들의 권리를 찾고 주장하기 위한 행동의 수단일 뿐이다. 서로 지향하는 견해가 틀리기에 이러한 모순이 발생하는 것이다. 테러는 이슬람의 원리주의자 극우적인 성격을 지양하는 이슬람의 단체에 의하여 발생한 것이다. 이러한 것을 이슬람세계 전체로의 문제로 확대시켜 적이라고 주장을 하는 논리는 절대로 용납할수 없으며 잘못된 행동이다. 이슬람의 시각과 서구의 시각이 일치가 되지 않아 지금 현재에도 크고 작은 분쟁이 한창이다. 서로 자신의 입장을 내세우지 않고, 자신을 진정시키며 서로 다른 관점에서 상대를 이해한다면 절대로 발생하지 않을 일들이 지금 이시간에도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독후감/창작| 2012.05.22| 3페이지| 1,000원| 조회(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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