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읽는 구약성서나는 이 책을 읽으며 그동안 내가 얼마나 성경을 알지 못하고 수박 겉핥기만 하고 있었는가를 깨달았다. 사울시대에는 제정분리가 확립되지 않았었다는 것, 다윗에게 그런 아킬레스건과 노력이 있었다는 것 등 책 내용의 대부분이 내가 전혀 생각해 보지 못했던 것들이다. 그리고 욥기8:7의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창대하리라” 이 성경 구절의 잘못된 인용을 지적한 것은 나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지적하고 싶었던 것이며 이 책에는 소개되지 않았지만 솔로몬의 일천번제 또한 일천 번을 헌금 하는 것으로 왜곡되어 사용되고 있는 것 또한 같은 맥락일 것이다. 이 책을 읽은 대부분의 사람들의 마음이 그렇겠지만 내 마음도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그러나 20장 지혜의 왕 솔로몬의 실정에서 솔로몬이 엄청나게 거둬들인 세금으로 빈부의 격차는 더욱 커지고 국가의 재정이 파탄지경에 이르러 급기야 영토의 일부분인 ‘가불땅’을 양도 했다는 대목에서는 나는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 지혜를 구한 솔로몬에게 하나님께서 부와 영광도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과중한 세금징수 또한 허락하신 것이며 또 열왕기상 9:11에는 솔로몬이 두로 왕 히람에게 ‘가불땅’을 준 이유가 명백히 명시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두로왕 히람이 솔로몬에게 그 온갖 소원대로 백향목과 잣나무와 금을 제공한데 대한 대가를 솔로몬은 왜 금전으로 지불하지 않고 갈릴리 땅의 성읍 스무 곳 일명 ‘가불땅’으로 지불하였냐는 것에 대한 해석이 국가의 재정이 파탄지경이라 그것을 지불할 만큼 금전이 없었을 것 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돈을 가질수록 욕심도 불어나는 것처럼 부를 맛본 솔로몬 또한 욕심이 생겨 귀한 돈으로 주기보다는 쓸모없는 땅을 선택했던 것으로 본다. 그리고 나는 부를 주시겠다고 한 하나님께서 국가의 재정이 파탄에 이르기까지 그냥 보고만 계셨을 리가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구약성서는 끝이 없는 인간의 하나님에 대한 배신과 죄악 또 그런 인간에 대한 끝없는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 그리고 기다림이 반복된다. 그리고 신약성서는 이 악순환을 끝내고자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모든 인간을 위해 희생시키시고 그 아들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인간을 구원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인 것이다.
‘새벽을 깨우리로다.’예전부터 주위사람들에게서 이 책을 한번 읽어보라는 권유를 자주 받았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 책을 권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잘 몰랐었다. 어쨌든 두레마을로 유명하신 김진홍 목사님에 대해서도 많이 들어 본 터라 강의계획서를 본 후에 곧바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철학 수업을 듣기 시작한 나는 김진홍 목사님도 철학을 전공하셨다는 것에 놀랍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다. 또 윤택하고 편한 삶을 살수 있을 교수의 길을 진리를 찾기 위해 그토록 과감하게 미련 없이 던져 버릴 수 있는 목사님에게서 비범함을 느꼈고 존경스러웠다.저자는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신앙이 대학에 들어가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성경의 내용이 미신과 과장에 차 있는 것 같고 교회는 위선자들의 모임 같았다. 우리 한민족(韓民族)에게도 훌륭한 신화가 있다. 우리에게 종교가 필요하다면 서양의 종교가 아니라 한민족의 민족 종교를 형성함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특히 영국 철학자 버트란트 럿셀의 《나는 왜 크리스찬이 아닌가》라는 글을 읽고, 기독교의 허구성과 교회가 역사에 끼친 해독에 대해 공감하게 되었다. 그리고 기독교 신앙을 버렸다. 미성숙한 종교인에서 성숙한 자유인이 되기로 결심하고, 성경을 불태워 버렸다. 그 후 나는 무신론자 내지 불가지론자가 되었다. 신의 존재를 부정하였다. 회의론자는 다시 무신론자로 무신론자는 점차 허무주의로 그리고 마침내 염세주의자로 발전해 갔다. 그러던 중 학교 근처 화장터를 서성이며 하나의 시체가 타서 재가 되고 한줌의 재만 남는 것을 보며 어느새 삶의 비결을 터득한 도사가 된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삶이란 것이 뜬구름같이 그렇고 그런 것이다. 학문이란 무엇이며 철학이란 무엇인가? 한 낱 부질없는 공리공론일 따름이라 생각하던 중 어느 날 스님을 찾아가 불도를 알고자 청하여 불경 공부를 시작한다. 하지만 효봉 스님이 입적(入寂)때 남기신 ?무(無)?라는 외마디 말을 듣고 곤란을 느꼈다. 목사님은 무언가 ?있는’ 것을 찾으려 애쓰고 있는데 아무 것도 없다번으로 주어진 것이다. 좀더 의미 있고 알차게 살아야 할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하게 되고 결국 확고한 진리를 터득하기 위해 미국유학도 포기한 채 인생수업을 나서기로 결심하였다. 장사하여 한두 푼 모은 돈으로 노동자 합숙소에서 국수도 사주기도 하였으나 가방을 도둑질 당해 가출한 지 수개월 만에 입은 옷과 신발만 남은 신세가 되기도 하였다. 이미 심신이 피곤하여 견딜 수 없었다. 게다가 요도염도 더 심해져 갔다. 인간의 한계 상황에 다다른 것이었다. 결국 집으로 돌아온 나는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 속에 신앙 없이 다시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저자는 죽은 도서관 속에서가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이웃의 숨결 속에서 삶의 참된 의미를 찾기를 원했다. 그래서 1967년 한해를 아이스크림 장수, 약장수, 장난감 장사, 화장품 외판원 등을 겪으며 세상 견문을 넓혀간다.1967년 여름 홍응표란 선배를 만나게 되고 선배의 제의로 신약성경의 로마서를 같이 읽고 연구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였으나 점차 진지한 마음으로 변해 갔다. 읽을수록 의문점도 많이 생겨났다. 그러다 인간 바울에 큰 매력을 느끼고 연구에 더욱 몰두하게 되었다. 특히 바울이 가졌던 문제가 내가 가진 문제가 공통점이 있다는데 공감을 느꼈다. 이러한 바울이 일생을 걸어 충성할 수 있었던 예수라면 나도 그렇게 되어질 가능성이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생기게 되었다. 드디어 12월 4일 1장 7절 ?우리가 그리스도안에서 그의 은혜를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라는 구절을 읽게 된다. ?그리스도 안?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결집된 곳. 자신의 방황을 끝내게 되는 곳. 한계상황을 초월하고 새로운 존재로서 하느님의 아들이 되기를 결심하고 주를 자신의 주인으로 모신다.저자가 드디어 목사가 되기로 결심하자 어머니는 무척 기뻐하셨다. 사실 저자의 어머니는 아들이 목사가 되도록 계속 기도해 오셨다. 몇 분 목사님의 권유로 입학 전 농촌교회에 가서 교역자로 수련을 쌓게 되었다 저자는 큰 갈등에 부딪쳤다. ‘여기까지 오기에 얼마나 큰 댓가를 치루었던가.’ 드디어 나는 목사란 직업인으로서가 아니라 한 순수한 인간으로 사랑을 실천하겠다고 마음먹는다. 목사란 칭호를 가질 때 타성과 위선이 따르기 마련이다. 아무것에도 구속되지 아니하고 누구에게도 거리낌없는 맨몸으로 나를 필요로 하는 이웃 속에서 살기 원했다. 민중 속에서 울고 웃으며 예수를 전하고 싶었고 입으로 설교하는 목사가 아니라 몸짓으로 증거하는 예수의 제자가 되겠다고 결심한다. 신학교를 자퇴하고 노동자의 친구가 되기를 원했다. 그들의 기본권 확보를 위해 살기로 결심하고 철공소에 입사하게 되었다. 노동자들이 착취당하는 것을 보고 노동운동을 시작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기업주의 횡포에 착취당하는 근로자의 권익을 위해 투쟁함으로써 현대화된 예수가 되어 보려던 패기는 사라지고 기가 죽어 다시 대구로 돌아오게 된다. 신학교에 다시 복교하여 영적 훈련을 쌓으려고 애썼다. 특히 방언을 배우려고 산에 올라가 소나무를 움켜쥐고 기도를 하였다. 하지만 내가 이미 믿고 있는 만큼의 신앙대로 전도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다.그해 여름방학 때 연희동 빈민지구에서 도시선교훈련을 받게 된다. 판자촌의 어려움을 직접 겪고 또 해결해 나가야 하는 임무는 힘들었다. 판자촌 인구에 대한 교회의 영향력이나 역할은 거의 전무한 상태였다. 하지만 일본 종교인 일련정종 창가학회는 많이 퍼져 있어 교회와 비교 당하기도 하였다. 또 돈 있는 사람이 다닐 곳이 교회지 우리 같은 노가다는 끼일 수 없는 곳이라는 말을 들었다. 나는 가난한 자들을 위한 교회를 세워야겠다고 간절히 생각했다. 그리고 저자는 판자촌 지역에 교회를 세우기 위해 후보지를 물색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김학형 이라는 척추결핵을 앓는 아이를 알게 된다. 그 아이의 병이 기적적으로 완치됨을 경험한 후 빈민선교에 더욱 확고한 뜻을 세우게 되었다. 그리고 빈민선교의 모체인 활빈교회를 창립하게 되었다.송정동 빈민 판자촌에 활빈교회를 세우기 위해 갖은 정성을 다하였다. 반에 의해 집이 헐리는 힘든 일이 있었지만 무사히 창립예배를 볼 수 있었다. 활빈교회 설립 목적 다섯 가지는 이러하다. (1) 가난한 자, 억눌린 자, 착취당하는 자의 해방의 종교, 빈민과 영세농민에게 예수를 심는 교회. (2) 교회가 속한 지역사회를 섬기고 개발하는 교회. (3) 사랑하기를 배우고 가르치고 훈련시켜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 (4) 한국인의 체질과 요구에 맞는 제도와 신학을 형성하고, 지역사회 복음화의 전락과 기동을 가지는 교회. (5) 사회정의의 선포. 이 다섯 가지 목표를 내걸고 이를 성취하기 위한 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활빈교회 설립 목적을 달성하려면 문제들을 파악하고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각 가정의 실정을 파악하기 위해 그들이 개발한 것이 D.D.T. 작전이다. D.D.T.란 ‘Door to Door Trackel Operation(집집마다 뛰어드는 작전)의 머릿글자를 딴 말이다. 또 D.D.T.작전과 같이 T.L.C.(Tender Loving Care)라는 요법도 쓰였다. 그들이 여러 가지 심신의 아픔을 부드러운 사랑의 보살핌으로 치료한다는 것이다. 개개인의 아픔과 문제점을, 각 가정의 문제점을 하나씩 상담하고 해결해 나갈 때 보람을 느꼈다. 하지만 판자촌의 최악의 문제는 날마다 이어지는 철거반과의 싸움이다. 또 가난한 사람들이 고통, 좌절, 나태함을 상대로 피나는 나의 노력은 시작되었다. 저자는 사소한 일부터 맡아 처리하기 시작했다. 장례, 양식을 구해 주는 일, 영혼은 구하는 일 등 등, 하지만 남을 위해 사는 것이 행복하다는 것을 느꼈다. 저자는 영혼의 만족감을 느꼈다. 혼의 깊이에서 우러나오는 희열을 맛보기도 한다.‘이 빈민촌 사람들은 한번 빈민촌에 떨어지면 일생을 벗어나지 못한 걸까?’ 그들의 의식구조 탓만은 아니다. 그들은 너무나 굶주렸기 때문에 무기력과 빈곤에서 오는 결과이지 원인은 아니다. 저자는 굶주리는 자신과 가족을 위해 넝마주의를 시작했다. 그 돈으로 가족도 돌보고 동네 사람들을 돕는다. 동네사람들 싸움 말리자기가 자신도 굶어 가면서까지 넝마주의를 해서 어렵게 얻은 돈으로 밀가루를 사다 도와주었더니 일은 하지 않고 남의 도움만 바라는 사람들도 생겼다.지난 일년 동안 이룬 일들을 보고 저자는 크게 만족하였다. 하지만 외형의 발전 속에 안으로는 곪아 들어가고 있는 줄은 몰랐던 것이었다. 성실해 보이는 사람에게 재정 담당을 맡겼는데 들어오는 대로 써 버리고, 그에 대해 힐책하자 ?전도사도 예배당 돈을 쓰는데 나는 쓰면 안되나요.?라고 당당히 맞서고 가 버렸다. 사람 잃고 돈 잃고 양쪽으로 손해를 보았다. 이렇게 한번 혼이 난 뒤로 교인 전체가 투표하여 헌금 관리인을 뽑았다. 하지만새로 선출 된 사람도 또 돈을 쓰고 다닌다는 소문이 돌아 장부를 보여 달라고 했더니 도리어 예배시간에 설교하는 도중 “김진홍 전도사는 사기꾼이다 위선자이다” 라고 도리어 삿대질을 하며 말했다. 개인이 타락해 단체에 맡기니 단체로 타락해 저자는 충격을 받게된다. 또 6?25의 폐해중 하나인 ‘구호물자 공해’의 문제이다. 여기서 생긴 심리적인 공해로 공짜를 좋아하고 남에게 쉽게 의지해서 살려는 근성이 생긴 것이다. 또 넝마주의로 번 돈으로 겨우 결핵 3기의 환자를 살려주었더니, 부인을 폭행하여 부인은 도망가고 자신도 술로 세월을 보내다가 비참한 죽음을 맞는 사람도 있었다. 병을 고쳐도 문제, 안 고쳐도 문제, 인간세상은 왜 이리 문제가 많은지. 지혜가 떠오르지 않았다. 스스로가 만든 지옥에 빠져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다 내면의 갈등이 정리되어지면서 자신이 일하고 있는 의도나 자세가 바르지 못함 못하거나 오류가 있는 것 같다고 느끼게 된다. 빈민문제를 경제문제로 만 파악하여 인간의 영혼을 살리는 말씀 선포를 등한히 하고 있었던 것이다. 개인과 조직의 자립과 소득증대를 위해 동분서주하였으되 그들의 영혼 속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을 도외시 한 것이다 라고 생각하며 활빈 선교의 방향을 ‘떡과 말씀’이 균형 있게 추진되도록 방향을 전환했다. 그 첫 사업으로 집중 전도운동을 시작했다. D.D.T. 요원들이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