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문학론을 읽고...이 책에는 여러 가지 소설들을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바라본 것을 쓴다. 심청전, 바리공주, 춘향가, 염상섭의 삼대를 여성의 시각에서 본 것이 나온다.심청전에 관한 글은 보면 심청전의 주인공을 심청으로 보아야 하느냐 심봉사로 보아야 하느냐로 시작한다. 심청전에서 나오는 것은 가부장제 하에서의 여성이다. 심청의 친모인 곽씨 부인은 가부장제 질서에 순종하고 희생을 하므로 선한 사람이고 뺑덕어미는 자기의 이익을 위해 어떤 일도 서슴지 않는 전형적인 악한 사람으로 나온다. 특히 뺑덕어미를 악인으로 보는 이유 중 하나에는 성의 쾌락을 추구한다는 것이 있다. 뺑덕어미는 성을 쾌락의 수단으로 삼음으로써 현대적인 여성에 가깝고, 곽씨는 성을 가문을 이을 자식을 낳는 수단으로 삼음으로써 전형적인 가부장제하의 여성이다. 객관적인 시각에서 보자면 뺑덕어미는 이해관계에 움직인다. 심청전에 드러나는 것은 가족주의 가치관이다. 가족주의 가치관은 유교적 가부장제와 깊은 관련을 맺는데 그 속에서 여성은 가부장제의 유지를 위한 도구의 지위로 떨어졌다고 한다.두 번째로 바리공주를 여성중심적인 시각으로 분석해 본 것을 보면 바리공주 서사의 주체가 여성이라는 점과 당대의 가치관이 남성중심의 가부장적 질서라는 점이 주목된다(p89)고 한다. 바리공주에서 주인공 바리는 탁월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버려지는 이유는 바리가 가부장질서에 부합되지 못한 존재로 평가되는 데서 비롯된다. 바리공주는 죽어가는 부친을 살리기 위해 생명수를 구해 부친을 살려 내고 국가 통치를 하게 된다. 이는 남성들에 의해 피폐화된 국가를 위기로부터 구해낸 것은 여성인 바리라는 것을 강조한다.세 번째로 춘향가에서는 가부장 이데올로기를 주입시키고 선전하는 측면을 다분히 지니고 있고 춘향은 가부장제 유지의 여성상인 열녀이미지로 민중에게 다가온다(p113). 라고 한다. 춘향이 양반의 서녀이고 사대부의 선비인 이몽룡이 춘향을 구원한다. 서녀이면서 기생의 딸인 춘향의 고통을 이몽룡이 덜어줌으로써 현대에서 흔히 유행하는 ‘신데렐라 증후군’처럼 성치되기 어려운 그릇된 환상을 민중에게 심어준다. 그 것도 남성이 여성을 구원하는 것이다.마지막으로 삼대를 가족 이데올로기에 관해 본 글을 보면 가부장의 독선을 철두철미하게 보호하는 규율과 관습, 결혼의 의무화, 가족 단위의 사회 인식과 평가 등. 한 인간이기에 앞서 가족의 일원임이 강제되어 개인의 자유로운 진정성이 억압되고 가족의 원리가 가족 내에서뿐만 아니라 가족 의부에까지 확대되어 국가마저 가족의 질서에 의해 이룩되는 사회 풍토를 조성하게 된 것이다(p142)라고 한다. 개인이 사회라는 집단적인 삶을 조화롭게 살아내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가족 이데올로기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보면 당대(삼대가 나올 당시인 1930년대)의 엘리트인 조상훈이 위선적이고 파렴치한 인격자로 전락하게 된 원인을 시대의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 당시 시대문제가 조상훈의 타락에 결정적인 원인일 수도 있지만 가족이라는 관념에 따른 개인의 특수성이 억압 받음이 조상훈 타락의 원인이 될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이 네 작품들에 관한 글들을 보면 모두 가부장제가 강제되어 있는 당시 사회 시대에 대한 비판이 있다. 특히 춘향가에서 춘향과 이몽룡의 순수한 사랑을 당시 가부장제의 선전으로 봤다는 시각은 신선(?)한 느낌으로 내게 다가왔다. 난 소설이나 문학작품을 읽을 때 그 속에서 무슨 뜻이나 의미를 찾아내고 싶지 않고 그저 재미로 읽고 싶다. 문학작품을 재밌게 읽고 나서 그 재밌는 것만 찾으면 되는 것이다. 굳이 여성적 시각, 남성적 시각을 구분하여 보거나, 이 작품 속에서 무슨 뜻을 찾아야지...라는 생각으로 글을 보고 싶지 않다.내가 많은 비평이론 가운데서 페미니즘을 택한 이유는 평소에 페미니즘에 관심이 많아서다. 그렇다고 내가 페미니스트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난 반 페미니스트에 가깝다. 여성들의 권리를 되찾고 양성평등을 주장함에 있어서는 나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동의한다. 그렇지만 페미니스트들의 지나치다 싶은 발언이라던가 혹은 행동은 참을 수가 없다. 군대문제에 관해서 특히 그렇다. 물론 가족과 친구, 나라를 위해 군대를 가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전쟁이 끝나지 않은 휴전상태의 지역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건강한 남성이라면 꼭 가야하는 것이 군대라지만 정말 군대를 가고 싶어서 가는 사람은(간혹 있을지도 모르지만) 없다. 가고 싶어서 가는 것이 아니라 가야 하기 때문에 가는 것이다. 남녀 구분 없이 일생에서 가장 화려한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20대에 그 것도 사회에 나가 자리를 잡기 시작해야할 한창 때 남성은 군대에서 허비한다. 현재는 2년 과거에는 3년을 말이다. 그럼에도 국가에서는 남성들에 대한 제대로 된 대우를 해주지 않는다. 그런 남성의 권리를 찾고자 함을 바라는 남성들에게 극단적 페미니스트들은 이렇게 얘기한다. ‘남성들은 군대를 갔다 오지만 여성들은 아이를 낳는다’
배비장전과 오유란전을 읽고...한국어문학과200520050한현수처음 이 소설들을 읽기 전에 훼절소설이라 해서 무엇인지 생각을 해 보았다. 훼절소설. 생소한 이름이어서 훼절이라는 단어를 검색해 보았다. 훼절(毁節): 절개나 지조를 깨뜨림. 이라는 뜻이 있었다. 이 뜻을 인지하면서 소설을 읽어보니 과연 훼절소설이 맞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배비장전이나 오유란전이나 모두 기생들이 정절을 지키지 않은 내용이다. 무덤덤하고 유머러스한 소설들이지만 과거에는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을 것이다. 정절을 여인의 미덕으로 삼는 유교주의 국가에서 기생이라지만 정절을 지키지 않다니. 그 것도 남자가 먼저 유혹을 하는 것도 아니고 여자가 유혹을 한다. 배비장전에서의 배비장과 오유란전에서의 이생. 두 사람 모두 사또와 기생의 짜고 치는 고스톱(?)에 놀아난다. 특히 배비장은 절대 여자를 가까이 하여 한심한 꼴을 보이지 않겠다고 하며 방자와 내기까지 하는데도 애랑에게 빠져서 결국엔 뒤주에 갇히고 관아에서 창피를 창한다.어느 누가 착하다 나쁘다를 따져보자면 내가 보기엔 등장인물 다 나쁘다. 배비장전에서는 주인공 배비장, 애랑 뿐 아니라 방자까지 나쁘다. 배비장은 이중적인 성격을 지닌 인물이고 애랑은 여우같고 염치없으며 방자는 건방지고 재물에 혹한다. 오유란전에서는 이생은 배비장과 비슷한 인물로 고고하고 선비인척 하지만 색(色) 앞에선 어쩔 줄 모르는 본색을 드러내는 늑대고, 오유란은 애란과 마찬가지로 여우같다. 이생의 친구인 사또는 단순히 이생을 놀려주기 위해 백성들을 억압(?)하기까지 한다. 이 글을 쓰며 우리과 홈페이지에 있는 자료를 보니 홈페이지에는 풍자소설이라고 나와 있다. 이 소설들은 절개나 지조를 깨뜨리는 여인들이 등장하니 훼절소설이면서, 이중적인 성격의 인간의 모순적인 모습, 양반들의 허위의식 등이 반영 된 풍자소설 같다.재미의 측면에서 보자면 난 솔직히 배비장전이 더 재밌었다. 배비장전은 소설이긴 하지만 판소리와 탈춤을 보는 것이 아닌 읽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방자가 배비장을 골려주는 장면은 배비장전의 백미다. 마치 봉산탈춤에서 초랭이가 양반들을 놀리는 대목과 비슷했다. 이번 학기 고전산문의 미학 수업시간에 읽은 소설 중에 가장 재밌었다고 생각한다. 혼자 이 소설을 읽으면서 피식피식 웃으니까 주위 에 있던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기도 했다. 그만큼 이 소설은 재치 있었고, 재밌었다. 오유란전은 전에 KBS에서 어떤 프로그램에서 간략한 사극으로 해준 적이 있었다. 무슨 프로그램인지, 오유란전이 확실한지 기억은 안 나지만 내용은 똑 같다. 선비가 기생에게 유혹당해서 자신이 실제로 죽은 것으로 착각하고 투명인간마냥 속옷차림으로 거리를 돌아다니고 사또가 벌이는 잔치에 가서 사또밥상에 앉아 음식 먹다가 창피 당하는 내용인 것이 말이다.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고전소설에는 현대소설에 없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현대소설의 유머와 는 다른 유머 예를 들면 동음이의어라던가 유사한 말의 사용을 이용한 말장난, 해학성, 풍자성 등등. 또 그냥 웃어넘기기보다 다시 한 번 생각을 하면서 읽어보면 간단히 넘기지 못 할 내용이 많이 있다. 그런 부분이 특히 배비장전에 많이 나타난다. 배비장은 애랑을 만나지 않겠다는 방자와의 내기를 하고서도 애랑을 만나고 싶어 함으로써 인간의 이중적 성격과, 본능의 절제력 부족, 소설의 도입부분에서 나오는 정비장이 가진 것을 모두 가지려는 애랑의 욕심 등등. 당시의 사회상황을 풍자한 것이 아닌가 생각 든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정절의 대명사인 춘향과 애랑을 비교해 보면 더욱 재밌을 것이다. 과연 애랑이 춘향의 상황이라면? 춘향이 애랑의 상황이라면? 애랑이 춘향의 상황이 된다면 그 때부터는 배신감에 의한 이몽룡의 복수극이 예상된다. 춘향이 애랑의 상황이라면 춘향은 제주 땅에서 정비장만 한 없이 기다리다가 늙어 죽거나 신임 사또들에게 죽을 것이 뻔하다. 좀 엉뚱하지만 난 이런 식으로 상황과 성격이 정반대인 서로 다른 소설의 주인공들의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면서 재미를 느끼곤 한다.
전우치전 감상전우치전은 홍길동전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드는 작품이었다. 다만 이 작품에는 서자니, 신분차별이니 하는 문제는 없고, 전우치가 요술을 부리는 이야기를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홍길동전에서 홍길동은 천하무적인데 반해, 전우치에게는 천적도 있다. 야담집 천예록에 나오는 전우치의 천적은 윤세평이라는 사람이고, 야담집 동패락송과, 소설 전우치전에서의 천적은 화담 서경덕 선생이 천적이다. 윤세평은 둘째치고라도 하필 전우치의 천적이 서경덕 선생일까?라는 생각이 미치게 되었다. 내가 알기로 서경덕은 주기론의 선구자로 조선 중기 중종시대의 유학자이며 남북파로 나뉠 때 북인에 영향을 준 인물로만 알고 있었다. 또 송도삼절로 유명하고, 요즘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황진이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황진이가 평생을 존경하는 사람으로 섬겼다는 일화로만 알고 있었던 서경덕에 대한 얉은 지식이 있었다. 그래도 내 생각이 틀린 것은 아닐까 하고 인터넷을 통해 알아 봤더니, 서경덕은 유학자이긴 하지만 과거에 뜻이 없었고 산림에 은둔생활을 하며 도학에도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특히 저번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말씀해 주신 ‘토정비결’의 저자 토정 이지함의 스승이라고도 한다. 이를 봐서도 서경덕을 단순한 유학자로 볼 수 없고, 또 그의 학문의 깊이를 알 수 있게 해 준다. 서경덕 이야기는 이만 하고 다시 전우치에 대해 살펴보자면 전우치가 실존인물인가를 알고 싶어서 알아보았더니 전우치 역시 실존인물이었다. 다만 언제 태어나고 죽었는지 모르지만 서경덕과 같은 시기인 중종임금 때, 그리고 같은 송도에 살았다는 기록이 나와 있다. 이를 연관시켜 사람들이 덕망과 학식 높은 서경덕을 일개 도술가인 전우치의 천적으로 삼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소설 전우치전에서 전우치는 살생을 하지 않는다고 한 것을 보아, 도술을 사용함에 있어 악의가 없다. 홍길동과 마찬가지로 어려운 사람들을 돕긴 하지만 홍길동보다 개인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선전관들을 괴롭히는 게 가장 큰 예이다. 자신에게 잘 보이지 않고 잘난 체 한다는 이유로 선전관들을 괴롭히는 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비한 능력을 이용해 사람들 위에 서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어서가 아닐까. 또 지인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절개를 지키는 과부를 유인하려 하다 강림도령에게 당하는 내용을 봐서도 전우치가 순전히 착한 사람인 것이 아닌 게 보인다. 소설의 결말부분에 화담이 전우치에게 ‘.....사특함은 마침내 정대함이 아니요,.........’ 라고 말 하는 것을 봐도 전우치가 하는 게 좋은 일만은 아닌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