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 과미술교육학과학 번이 름강 의 명조형교육의 실제제출일자2006년 12/20< 일제강점기의 미술교육에 대해서 >인류생활의 모습은 그 사회의 자연적 혹은 문화적 환경의 특징에 따라 매우 다르며, 미술 역시 그 시대의 정치, 경제, 문화적 상황에 따라 매우 다르게 변화하고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들이 초상화를 그리고, 자신의 환상이나 공상을 그린 것에 비해 중세시대의 화가들은 종교를 주제로 한 그림을 많이 그린 것만 봐도 그런 관계를 쉽게 알 수 있다. 맥피)라는 학자는 예술가는 사회로부터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천재적인 창조자가 아니라 그가 존재하는 사회의 정치, 종교, 문화 등에 영향을 받으며 자신의 작품을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역설하며 미술을 사회와의 맥락적 관점에서 파악하였고 미술사가 이자 사회학자인 피에르 프랑카스텔) 역시 ‘원근법은 화가의 창조물이 아니라 그 사회의 발견이다’라며 미술이라는 공간을 독립된 미적 공간이 아니라 사회적 공간과 연계된 상징체계로 간주하였다. 이렇듯 미술과 사회는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고, 그 관계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전에 미술과 사회가 무엇인지 그 개념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내릴 필요가 있겠다.먼저, 미술이라 함은 한자로 美術이라고 쓰며 미(美)를 재현 또는 표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여러 재주[術], 또는 기예(技藝)를 뜻하는 프랑스어 보자르(beaux arts)를 번역한 말이다. 영어의 파인 아트(fine arts)도 같은 뜻이다. 다시 말해서 일정한 세계상(世界像)·인간상을 미적(美的)·조형적(造形的)으로 표현하는 예술을 뜻한다. 그럼 여기에 쓰인 예술에 대해 다시 살펴보면 사전적 의미로 기예와 학술을 아울러 이르는 말로서 특별한 재료, 기교, 양식 따위로 감상의 대상이 되는 아름다움을 표현하려는 인간의 활동 및 그 작품을 이르기도 하며, 공간 예술, 시간 예술, 종합 예술 따위로 나눌 수 있다. 미술은 이러한 예술의 하위개념으로서 주로 시각예술, 조형예술을 의미하게 되었다.다음으로 사회의 개념에 대해서 알아보면, 사회는 한자로는 社會, 영어로는 society라고 하여 일정한 경계가 설정된 영토에서 종교 ·가치관 ·규범 ·언어 ·문화 등을 상호 공유하고 특정한 제도와 조직을 형성하여 질서를 유지하고 성적 관계를 통하여 성원을 재생산하면서 존속하는 인간집단을 의미하는데, 여기서 문화라는 개념에 미술이 속한다고 보면 서로 같은 사회 내에 존재하는 사람은 같은 문화를 공유한다는 의미로서 개념적 정의에서도 미술과 사회의 관계에 대해 알 수 있다.이렇게 미술과 사회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여러모로 알아봤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우리나라 미술교육과 사회와의 관계, 그 중에서도 일제강점기의 미술교육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우리나라 미술교육 과정은 한국적 교육풍토를 일궈가며 주체적으로 발전해 왔다기 보다는 역사적 변동과 더불어 외국 미술교육 사조들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아왔다. 그 과정에서 원래의 이론이 잘못 이해되거나 적용된 경우도 적지 않으나 그러한 상황들도 당시의 우리나라 교육의 주체적 역량과 사회적 맥락의 결과라고 보면 역사를 돌이켜 ‘...했었다면 어땠을까?’라고 가정해 보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고 본다). 따라서 이런저런 것들을 따지지 말고 그저 순수하게 일제강점기의 미술교육의 실상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보겠다.일제 강점기의 미술교육)은 조선교육령 시대의 미술교육, 개정 조선교육령 시대의 미술교육, 제 3차 조선교육령과 전시체제 하의 미술교육 이렇게 세 시기로 구분해 볼 수 있다.먼저, 조선교육령 시대의 미술교육에 대해서 살펴보면 조선교육령 시기의 보통학교 규칙에 의하면 도화는 이전의 필수과목에서 가설(加設)과목으로 전락하게 된다. 수공에 관해서도, 수공은 남아에게, 재봉 및 수예는 여아에게 교수할 것이라 규정되어 있어, 수공의 대상범위는 남아로 제한되게 되었다. 교수목적은 이전과 유사하나, 내용면에 있어서 도화는 보통학교 전 학년에 걸쳐서 자재화(自在畵)가 중심이 되고 있다. 자재화란 기하화(幾何畵)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자, 컴퍼스 등의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자유롭게 그리는 그림을 의미한다. 수공에 있어서는 전 학년에 걸쳐 간이한 세공의 교수가 행해졌다. 여러 문헌을 종합해 볼 때, 도화와 수공은 일본의 국가의식을 고취시키고자 하는 정치적 의도와는 관련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일본의 한국민에 대한 전체적인 식민주의적 교육관을 고려할 때, 당시의 미술교육은 교과 성격상 국가 발전을 위한 실용적 역할을 담당하는 수단적인 입장에 놓여졌음이 분명하다. 그 결과 미감을 기른다, 취미를 기른다라는 형식을 취하면서도 그 내용은 다분히 기능적인 전수에만 머물러 있어, 어린이의 개성 표현과 자유를 존중함을 교육의 이상으로 삼고 있는 오늘날의 미술교육 이념과는 전혀 상반되는 양상을 띠고 있었다. 이는 일제 강점기라는 표면적인 이유와 함께, 각국의 근대화 과정에 수반되는 실리주의 노선의 채택 기운 또한 커다란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었다.다음으로 개정 조선교육령 시대의 미술교육에 대해서 살펴보면 1919년 3.1운동을 계기로 이른바 문화정치라는 미명하에 조선총독부의 식민지 정책이 대폭 수정되면서 교육면에 있어서도 1922년 개정 조선교육령이 발포되고 외형상 일본인과의 차별조항이 폐지되었다. 이에 부응하여 도화의 교과적 성격이 보다 구체화되었고, 수공에 관해서는 ‘공업의 취미, 근로를 숭상하는 습관’등의 용어가 새로이 추가되어 보통교육에 있어서의 실업교육이 강화되었다. 한편, 종전에는 일본의 교과서를 그대로 도입해서 사용했으나 1926년 한국의 실정을 감안한 ‘보통학교도화첩(普通學校圖畵帖)이 조선총독부에서 발행되었다. 그 내용은 일본 문부성 저작의 교과서와 보조를 맞춰 그 수준에 있어서도 거의 동일하게 하는 방침 아래, 한국 어린이와 관계되는 교재를 중심으로 하였고, 거기에 일본관계의 교재를 부가시켰다. 이 교과서를 통해 임화, 기억화, 사생화, 고안화 등의 표현활동과 감상활동이 이루어졌는데, 여기에서의 감상활동은 오늘날과는 내용 면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 예를 들면, 감상용으로 교과서에 제시된 제재에는 ’그리는 방법 및 설명‘이라는 항목이 자세하게 명기되어 있고, 거기에는 기법의 설명에 관한 것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한편, 수공은 간단한 물품을 제작하는 능력을 기르게 하고 사고를 정확히 하며 근로를 좋아하는 습관을 기르도록 함을 목적으로 하여 종이, 실, 점토, 볏짚, 나무, 대나무, 금속 등, 그 지역에 적절한 재료를 써서 간단한 세공을 교수하도록 되어 있었다. 당시, 수공을 통해 근로를 좋아하는 습관을 기른다는 내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수공교육은 국가 산업발전에 도움이 되게 하려는 초기의 실질주의 교육목표에 입각하고 있다. 이 시기에 또 하나의 특기할 만한 일로서는 한국과 일본에 있어서 정부의 시책에 부응하는 교육과는 별도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예술 교육적 접근이 시도되었다는 점이다. ART라는 용어에는 예술적 의미와 함께, 기술적인 개념도 동시에 내포되고 있는데, 한국의 교육 근대화 과정에 있어서의 미술교육의 시발은 후자에 편중되는 경향이 강했다. 따라서 엄밀한 의미에서의 예술 지향적 미술교육은 해방 이후에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이 잠시나마 이루어졌는데 일본의 예술가들이 일으킨 자유화 교육운동이 바로 그것이다. 한국과 일본의 종래 미술교육이 임화주의로 치닫고 있는 데 대한 반발로서, 순수 화가의 예리한 예술적 감성과 일부 교육자들의 비판정신이, 어린이들의 다양한 재능과 개성 등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당시의 미술 교과서와 임화주의에 대한 절대성만을 강조한 데 대해 이의를 제기한 것이었다. 즉, 어린이의 감정을 무시한, 어른에 의한 교재와 교수법을 철저히 비판하고, 미술교육에서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근본문제인 어린이의 측면에 선 미술교육의 필요성이 역설되었다. 그 결과, 임화에 대한 반대개념으로서 자유화란 용어가 새로이 사용되고 교과서의 모사가 아닌 어린이의 직접적인 표현이 존중되었다. 그들은 어린이의 시선을 풍성한 자연으로 유도할 것을 권장하여 종래의 임화 일변도의 미술교육으로부터 전혀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시켰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이 운동은 일부뿐만 아니라 일제 강점기라는 사회적, 정치적 상황에 따라 한국에도 자연스럽게 전파되어 일부 미술교육계에 신선한 자극을 안겨주었다. 비록 그에 관한 상세한 자료가 잔존하진 않지만, 이 운동이 우리의 미술교육에 대해 시사하는 점은 대단히 큰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