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키스의 여인들』 - 비극적 운명 앞에 선 데이아네이라와 헤라클레스‘트라키스 여인들’은 여성의 세계와 남성의 세계를 대표하는 데이아네이라와 헤라클레스라는 두 중심인물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며, 전반부와 후반부의 주인공이 다른 이분 구성을 취하고 있다. 즉, 전반부에서는 매우 여성적인 인물로 그려지는 데이아네이라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다가 데이아네이라가 죽고 후반부로 가면서 남성적인 면이 강하게 부각된 헤라클레스가 이야기의 중심이 된다. 이처럼 주인공이 죽고 다른 인물을 주인공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는 독특한 방식이 흥미롭다. 여기서는 두 인물의 대비되는 성격과 이들로 대표되는 남성과 여성의 세계가 어떻게 다른지에 초점을 맞추어 분석하고자 한다. 또 비극적인 운명 앞에서 두 인물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프롤로고스의 데이아네이라와 유모의 대화는 데이아네이라의 성격을 잘 드러내고 있다. 그녀는 자신과 남편의 불행을 예감하고 운명을 두려워하지만 기도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해결책을 모색하지 않는 소극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헤라클레스에게 재앙이 닥칠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유모의 충고를 듣고 나서야 아들인 휠로스를 헤라클레스에게 보내게 된다. 한편 그녀는 에우뤼토스의 도시에서 붙잡힌 포로들에게, 그 중에서도 특히 이올레에게 진심으로 동정심을 갖게 되었다가, 자신의 남편인 헤라클레스가 이올레와 사랑에 빠졌다는 소식을 듣자 그녀를 질투하게 된다. 하지만 남편을 탓하지 못하고 겉으로는 의연한 체 이올레를 받아들인다. 이처럼 이 작품에서는 소극적, 수동적이고 우유부단하면서 동정심과 두려움이 많은 데이아네이라라는 극도로 여성적인 인물을 통해 여성의 세계가 지니고 있는 성질을 보여 주고 있다.그러나 극도로 소극적 태도를 일관하던 그녀가 헤라클레스에게 나쁜 재앙이 닥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벗어남과 동시에 그의 사랑을 이올레에게 빼앗기게 될 것을 두려워하게 되면서 스스로 해결책을 생각하게 된다. 처음에 헤라클레스에게 휠로스를 보내는 결정도 스스로 하지 못한 그녀가 스스로 내린 이 결정이 끝내는 비극적인 결말을 초래하게 되는데, 그것은 넷소스가 일러 준 대로 독을 바른 의복을 헤라클레스에게 입히는 것이었다. 시종인 리카스가 의복을 가지고 떠난 후에서야 그것이 독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힌 데이아네이라는, 휠로스로부터 헤라클레스가 의복 때문에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고통스러운 나머지 스스로를 파멸한다. 완전히 여성적인 인물인 데이아네이라가 여성의 세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죽음을 맞게 된 것은 남성의 세계와 여성의 세계가 결코 만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또 그녀가 헤라클레스가 집에 도착하기 전에 죽음으로써 데이아네이라와 헤라클레스가 결국 작품 내에서 만나지 못했다는 점도 두 세계의 엇갈림을 의미한다.각각 서로 이질적인 성질의 세계에 속한 데이아네이라와 헤라클레스, 이들의 연결은 시종인 리카스나 아들 휠로스와 같은 가까운 인물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 연결이 비극적 결말로 이야기를 이끌며 긴장을 고조시킨다. 작품의 도입부부터 자신의 불행을 예감하는 데이아네이라의 말과 비극적인 운명을 암시하는 서판의 존재로 독자는 수면 아래에서 흐르는 긴장을 느낄 수 있고, 전체적으로 희망보다 절망과 재난을 암시하는 구절을 작품의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올레의 등장과 넷소스의 독을 바른 의복이 전달되는 과정에서 긴장감은 수면 위로 떠오르고 급격하게 고조된다. 자신의 실수를 인지한 데이아네이라가 절망하고 괴로워하며 스스로 죽음을 택하게 되는 장면은 꽤나 파격적이다. 그녀가 헤라클레스의 침상 위에서 옷을 풀어헤치고 옆구리에 칼을 찔러넣어 최후를 맞았다는 사실을 곁에서 지켜본 유모가 전달하는데, 스스로 대담한 여자를 싫어한다고 말한 바 있는 데이아네이라가 마지막 순간 이처럼 누구보다 대담한 방식으로 죽음을 택했다는 점은 상당히 충격적인 느낌을 준다.이제 작품은 후반부로 접어들고, 헤라클레스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맺게 된다. 헤라클레스는 신화에서 그려지는 이미지 대로 강하고 용맹하며 매우 남성적인 인물이다. 그가 강의 신 아켈로오스와 싸워 이김으로써 불행한 결혼을 할 뻔 했던 데이아네이라를 차지했으며 넷소스를 비롯한 수많은 존재들을 살해하고 승리를 차지했고, 최근에는 에우뤼토스의 도시 전체를 멸했다는 사실을 여러 등장인물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는 지상의 모든 인간 가운데 가장 뛰어난 인물로, 모든 희랍 사람들에게 존경의 대상이라는 점이 작품에서 몇 번이나 언급된다. 분노의 대상을 용서하지 않으며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고 모든 이들을 지배하는 그는 남성성의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 앞에서 보여진 데이아네이라의 여성적인 성격과는 매우 대비된다. 그러나 그는 독자의 호감을 사기에는 너무나 강압적이고 잔인하며, 모든 사람을 자신의 소유로 여기고 지배하려는 태도로 다소 거부감을 불러일으키는 말과 행동을 하기도 한다. 시종을 잔인하게 죽이고 심지어는 자신의 아들에게 조차도 어머니의 죽음과 모든 비극의 원인인 이올레를 아내로 삼으라는 거북한 명령에 복종하기를 강요하는 등 작품에서 그려지는 그의 성격은 다소 파렴치하게 여겨질 만 하다. 뿐만 아니라 자신을 재앙으로 몰아넣은 데이아네이라를 향해 분노와 저주의 말을 퍼붓고, 그녀가 의도치 않은 실수로 저지른 일임을 전해 듣고서도 끝내 데이아네이라를 동정하거나 용서하지 않는다. 이러한 태도는 그녀가 죽고 나자 책임을 느끼고 몹시 애통해했던 휠로스의 태도와 차이를 보인다.헤라클레스가 재앙을 당할 것임은 초반부터 암시되며 줄곧 긴장의 요인이 된다. 그는 이야기의시작부터 운명의 저울 위에 서 있는 극도로 불안정한 상태였는데, 이것은 모든 인간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영웅적인 인물일지라도 신이 결정한 운명 앞에서는 나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각인시켜 준다. 헤라클레스는 운명이 비극적으로 흘러감에 따라 여성적인 나약함을 점차 드러내게 되는 인물이다. 치욕스럽게도 뤼디아 여왕 옴팔레 밑에서 종살이를 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데 강한 남성의 상징인 그가 여자 밑에서 종으로 지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헤라클레스가 의복의 독으로 인해 끔찍한 고통을 겪으면서, 자신이 ‘처녀처럼’ 울부짖고 있으며 언제나 고통을 신음 없이 좇았었지만 이 일로 여자로 드러났다고 말하는 대목에서 그가 죽음 앞에서 여성의 세계에 들어서고 있다는 점이 확인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운명이 죽음에 도달했음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그것을 받아들인다. 즉 죽음으로써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를 밝히며 아들에게 오이테 언덕으로 자신을 옮겨서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기를 명령하며 당당함을 잃지 않는다. 죽음을 앞두고 그는 “내키는 일은 아니지만 즐거움으로 끝나리니.”라고 말하며 운명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운명을 받아들이고 있음을 밝힌다.‘트라키스의 여인들’은 이처럼 서로 상반되는 두 인물의 충돌과 다가올 불행한 운명 앞에서 보이는 태도를 묘사하며 남성과 여성의 세계의 대립을 보여주고 있다. 교차될 수 없었던 두 세계는 휘몰아치는 운명 속에서 잠깐이나마 어떤 교차점을 찾게 된다. 즉 두 인물은 재난이 닥치자 절망하며 고통받게 되지만 각각의 의지와 방식으로 죽음이라는 결단을 내리며 그 고통을 벗어나기를 택한다. 삶에 대한 집착 없이 목숨을 던져 스스로 최후를 맞은 인간이라는 존재를 통찰한 이 작품에서 자신의 삶에 당당하고 주체적인 면을 잃지 않는 인간에 관한 메시지를 얻을 수 있다.
[날짜 선택]목차 TOC o "1-3" h z u Hyperlink l "_Toc246055622" Ⅰ. 서론 PAGEREF _Toc246055622 h 3 Hyperlink l "_Toc246055623" Ⅱ. 본론 PAGEREF _Toc246055623 h 31. 국민의 정부 이전의 대북정책1) 제 1 공화국 (1948~1960)2) 제 2 공화국 (1960~1961)3) 제 3 공화국 (1961~1972)4) 제 4 공화국 (1972~1979)5) 제 5 공화국 (1980~1988)6) 제 6 공화국 (1988~1993)7) 문민 정부 (1993~1998)2.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포용정책1)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2) 노무현 정부의 평화번영정책3.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Hyperlink l "_Toc246055624" Ⅲ. 결론 PAGEREF _Toc246055624 h 19Ⅰ. 서론한반도는 반 세기가 넘게 분단 상태를 유지하며 대내외적으로 정치 군사적 쟁점의 중심이 되었으며, 우리에게는 북한과의 통일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하는 중대한 과제를 남겼다. 분단 이후 우리 정부는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고 통일을 이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으며 시대의 흐름과 북한에 대한 인식변화로 대북정책의 변화도 계속되었다. 따라서 앞으로 평화교류와 협력을 통한 남북관계 발전의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과거의 정책들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시대별로 대북정책의 변화 과정을 살펴보고, 현 이명박 정부의 새로운 대북정책의 현황을 살펴본 후 앞으로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지금까지 대북정책에 대한 연구가 적지 않게 이루어졌으나, 대북정책은 진행 중이고 변화 과정에 있다는 특성을 고려해 최근의 정부 각 부서의 인터넷 홈페이지 게시물과 북한 관련연구소의 연구 자료, 뉴스 매체의 보도 자료 등을 이용하여 과거와 비교해 최근의 동향을 살펴보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고찰해 보는 것은 의의가 있을 것이다. 본론에서는 켜 나가자는 것이었다. 또한 그 실천조치의 일환으로 1990년 8월 1일에는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을 제정, 시행함으로써 남북교류협력시대의 개막을 가능하게 하였다. 이로써 민족 공동체 형성을 위한 남북간 인적․물적 교류 협력의 기본 방향이 설정되었다. 이와 함께 노태우 정부는 1989년 9월 11일 대통령의 국회연설을 통해 7.7선언을 발전시킨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발표하였다. 여기서 자주, 민주, 평화라는 통일의 기본 원칙과 6단계에 걸친 통일의 절차를 제시했다.이러한 노력을 바탕으로 역사적인 남북고위급회담이 1990년 9월 4일 서울에서 개최되었으며, 1992년 2월 19일 평양에서 개최된 제 6차 회담에서는 ‘남북기본합의서’와 ‘비핵화 공동선언’ 및 ‘분과위원회 구성·운영에 관한 합의서’가 발효되었다. 또한 제 7차 회담에서는 ‘남북군사공동위원회’와 ‘남북교류·협력 공동위원회’ 구성·운영에 관한 합의서와 ‘남북연락사무소 설치·운영에 관한 합의서’를 채택·발효시켰다. 1992년 9월에 개최된 제 8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는 ‘남북화해공동위원회 구성·운영에 관한 합의서’와 분야별 부속합의서를 채택·발효시켰다. 그러나 이후 북한의 핵무기개발 의혹이 증폭되고, 북한이 팀스피리트 훈련을 구실로 1993년 1월 29일 모든 남북당국간 대화를 재개할 의사가 없음을 선언함으로써 남북관계는 다시금 교착상태에 빠지게 되었다.7) 문민 정부 (1993~1998)1993년 2월 출범한 김영삼 정부도 정상회담 추진 의지를 천명하는 등 적극적인 대북정책을 모색하였다. 통일 환경 변화에 적응하는 ‘3단계 3기조 통일 정책’을 제시하고, 통일 과정을 ‘화해․협력’, ‘남북 연합’, ‘통일 국가’의 3단계로 설정했으며, 이러한 과정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민주적 합의’, ‘공존 공영’, ‘민족 복리’를 3기조로 채택했다. 또한 국민 합의를 바탕으로 통일 정책을 추진하고, 북한을 고립․봉쇄시키지 않으며, 특정 이념과 체제보다 민족 복리를 우선시한다는 입장을 통하여 통일에 대 원칙에 입각한 남북간 경제협력을 활성화하여 남북 상호간 이익이 되고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사안을 중점 육성하는데 노력하면서 국민적 합의의 토대 위에서 정책을 추진해 나가기 위해 다양한 의견에 대해 개방적 자세를 취하고 있다.햇볕정책의 성과김대중 정부의 포용정책은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성과는 남북정상회담의 개최라고 할 수 있다. 유일지배체제인 북한에서 최고지도자가 차지하는 절대적 권위로 인해 정상회담은 남북관계를 변화시키는 데 매우 중요하다는 인식 하에서 전두환 정부이래 정상회담은 끊임없이 추진되었으나 성사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가 대북 포용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함으로써 마침내 정상회담 개최에 성공하였다. 남북 정상은 이는 남북관계의 획기적 발전을 위한 계기를 만들었다. 실제로 정상회담 이후 남북대화는 그 어느 때보다도 활성화되었다. 남북한은 장관급회담, 특사회담, 국방장관회담, 군사실무회담, 경제실무회담, 적십자회담 등을 통해 남북관계 개선에 있어서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특히 장관급 회담은, 비록 개최와 연기를 반복했지만, 햇볕정책 하에서 가장 활성화된 대화 통로로서 자리 매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장관급 회담을 통해 남북간의 사안들을 큰 틀에서 조정할 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사업에 대해서도 협의할 수 있었다. 또한 장관급 회담의 지속적 개최는 남북대화의 연속성 확보에도 기여했다. 대북 포용정책은 당국간 대화는 물론 민간협력 부문에서도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햇볕정책의 상징이라고까지 불리는 금강산 사업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 사업은 북한에 대한 현금지급 문제 등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으나, 과거 서해 교전이 발생했을 때에도 금강산 관광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짐으로써 긴장 완화의 효과를 십분 발휘했다. 또한 언론․방송, 문화․예술, 체육 분야에서의 민간교류는 남북관계의 과거 어느 시점보다도 활성화되는 동시에 당국간 회담이 동결된 상황에서도 지속되었다.당국간 대화 및 민간교류의 활성화는 제한적이나마 한반도 평화체제의 행과정에서 민간 전문가 및 NGO의 참여를 확대하여 국민적 합의를 형성한다. 남북관계 상황에 대해 국민들이 올바르게 인식할 수 있도록 균형있는 대국민 교육 및 홍보 활동을 전개한다.대북포용정책의 성과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포용정책은 남북관계의 발전차원에서 다음과 같은 성과를 거두었다.첫째로, 분단 이후 최초로 2000년 남북정상회담과 2007년 남북정상회담의 개최를 가능하게 했고, 이로써 전쟁·대결·단절·대립·쇠퇴의 남북관계를 평화·화해·교류·협력·번영의 관계로 전환시키는 토대와 기틀을 마련하였다. 특히 남북정상회담의 개최로 채택된 6.15 공동선언과 10.4 정상선언은 남북최고당국자가 남북관계의 현안문제들에 대해 직접 구체적 실천사항들을 합의하고 이 합의를 이행해나감으로써 안정적인 남북관계의 발전을 지향하였다. 이는 곧 대북포용정책이 일관성 있게 추진된 결과 가능해진 것이다.둘째로, 이전 시대에서 이루지 못한 남북대화의 지속적, 정례적인 제도화를 이룸으로써 한반도에 위기상황이 닥치더라도 남북관계 발전의 동력을 계속 이어갈 수 있게 만들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남북대화가 두 차례의 정상회담을 비롯하여 정치, 경제, 문화, 사회, 인도 분야에서 다차원적으로 진행되었다. 그 결과 1998-2007년의 10년 간 총 249회의 남북회담이 열렸다.셋째로, 남북교역과 인적 물적 자원의 교류의 차원에서 과거 정부들과 비교할 수 없는 성과를 이루었다. 남북교역의 규모가 크게 증가하였고, 대북포용정책의 틀 속에서 개성공단사업이 추진되었으며 남북경협의 법적, 제도적 장치 마련을 위해 투자보장, 이중과세방지, 청산결제, 상사분쟁해결 등 4개 경협합의서가 타결되었다. 남북 인적 교류도 엄청나게 증가했다.넷째로, 남북이산가족문제 등 인도적 분야에서도 괄목할 성과를 보였다. 생사확인, 서신교환, 방남상봉, 방북상봉, 화상상봉이 당국차원으로 실시되었고 금강산에 이산가족면회소를 설치, 운영하기로 합의하고 2008년 공사를 완공함으로써 이산가족문제의 정례화와 제도화 기반도 마련하였다. 라는 조건 하에 경제, 교육, 재정, 인프라, 복지의 5대 중점 분야에서 다음과 같은 정책의 비전을 제시했다.(1) 경제 분야(300만 불 이상 수출기업 100개 육성)- 경제, 법률, 금융 분야의 전문컨설팅 인력 파견- 북한지역 내 5대 자유뮤역지대 설치- 연 300만 불 이상 수출 가능한 100개 기업 육성- KOTRA 등 한국의 해외네트워크 활용(2) 교육 분야(30만 산업인력 양성)- 30만 북한 경제, 금융, 기술 전문 인력 육성- 북한 주요도시 10곳에 기술교육센터 설립- 북한판 KID, KAIST 설립 지원- 북한 대학의 경제, 금융, 통상 교육과정 지원(3) 재정 분야(400억불 상당 국제협력자금 조성)- World Bank(세계은행) 및 ADB(아시아개발은행) 국제차관- 남북교류협력기금- 해외직접투자 유치 협력- 북. 일 관계 개선에 따른 일본의 대북지원금(4) 인프라 분야(신경의고속도로 건설)- 에너지난 해소를 위한 협력- 기간통신망 연결 및 항만, 철도, 도로 정비- 400Km 신경의(서울-신의주) 고속도로 건설- 대운하와 연계(5) 복지 분야(인간다운 삶을 위한 복지 지원)- 식량난 해소를 통한 절대빈곤 해소- 의료진 파견, 병원설비 개선 등 의료 지원- 주택 및 상하수도 개선사업 협력- 산림녹화를 위한 1억 그루 나무심기한계점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한계를 갖는다고 평가된다.첫째, 선 비핵화 실현이라는 최우선전략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이는 6자회담의 구도 하에서 진행되고 있는 비핵화의 이행 3단계를 무시한 것으로, 이미 부시행정부가 대북강경전략을 통해 9.19공동성명 이후 북한에게 일방적으로 선핵폐기의 목표로 움직이다가 북한의 핵실험까지 몰고가 오히려 북한의 핵문제만 악화시키고 그런 다음 대북유화전략으로 선회한 바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북한의 완전 비핵화는 대북포용정책이 더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실용적, 효율적 추진전략이라는 점을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둘째, 남북관계 발전을 안보와 한미공조007
동양 국제사의 전개1. 서구제국주의의 전개1) 중국의 개국(1) 아편전쟁 (1839)- 유럽문명과 동양문명이 처음으로 정면충돌- 종래의 봉건적, 폐쇄적 중국사회를 개방하는 불평등조약을 수락하게끔 한 역사적 사건- 원인① 직접적 원인 : 아편을 둘러싼 분규② 간접적 원인 : 광둥무역을 통한 서구인들에 대한 굴욕적인 경제, 사회, 정치적 생활조 건 시정 의도와 1833년 영국의회의 동인도회사 해산에 대한 영국인들의 불만(2) 난징조약 (1842)- 아편전쟁의 결과 체결된 조약- 내용① 청국은 영국에게 2,100만 은화의 전쟁배상금 지불② 통상에 관한 규정③ 외교적 평등권④ 홍콩의 할양- 의의① 점차적으로 중국을 각국의 침투에 개방시킨 단서 제공② 영국이 조약상으로 확보한 정치, 경제, 사회적 우월권이 타국에 확대되는 결과(3) 왕샤조약 (쿠싱조약, 1844)- 미국은 영국의 독점적 이익에 균점. 영국과 같은 내용의 조약을 체결- 치외법권 명시 - 미국은 아무 희생없이 중국의 국익을 침범하며 특권을 획득(4) 황푸조약 (1844)- 프랑스는 영국이나 미국이 원하는 확대된 통상권보다 포교에 의한 세력 확장에 관심- 후일 청국의 벨기에, 스웨덴, 노르웨이 등과의 조약에 영향(5) 태평천국의 난 (1850~1865)- 성격① 중국민족혁명운동의 성격 : 점유지역에 토지 분배, 청조의 관리 축출 등② 종교적 성격 : 프로테스탄트의 교리를 채용하여 서구세력의 성원을 유도하는 등- 결과① 중국영토 내 외국인조계제도의 기초 확립② 외국에 의한 중국의 해관관리제도 수립③ 청조의 국권이 상실되고 외국의 권익 신장(6) 톈진조약 (1858)- 원인: 난징조약의 이행과정에서 중국정부의 소극적 태도- 애로우호 사건과 프랑스 신부 샤프드레에느 살해 사건을 계기로 영국과 프랑스가 청 국과 무력전을 벌인 결과 영·프·미·러 4개국이 별도로 청국과 일련의 조약 체결- 결과 : 국교상·통상상의 권리 구체화, 아편무역 공인, 치외법권과 포교권 확대(7) 아이훈조약 (1858)- 러시아의 대청 남하정책을 위한 영토할양조약(8) 베이징조약 (1860)- 톈진조약은 1년 이내에 비준·교환키로 되었으나 청에서 비준교환 거부론이 지배함에 따라 영·불은 다시 연합하여 청과 전쟁- 영·불 대 청의 전쟁 결과 영·불·러 대 청국 간 배이징조약 타결(9) 즈푸조약 (마거리조약, 1876)- 마거리 사건을 계기로 영국이 그들만의 특권적 지위 확보를 목적으로 조약 체결2) 일본의 개국(1) 일본의 개항- 배경 : 막번 체제의 동요, 중국의 아편 전쟁 패배를 확인하고 개항의 불가피성 인식- 개항 : 미국의 강요(페리 제독)(2) 미·일 화친 조약 - 영사 재판권과 협정관세를 인정(불평등 조약)- 미국의 강압에 일본이 굴복한 결과로서 체결- 일본 도쿠가와 막부시대 쇄국체제를 타파한 최초 국제조약- 내용 : 시모다·하코다테의 개항 및 항구의 유보구역 설정, 미국 선박에 대한 식량 ·연 료·식수의 공급, 외교관의 시모다 주재, 최혜국대우 등의 승인(3) 일본의 개국- 1857년 미국은 일본에 영사재판권을 설정- 1858년 미 ·일수호통상조약 체결(4) 막번 체제의 동요- 존왕 양이 운동- 사회혼란 : 물가 폭등, 외국제품의 범람.- 반막부 운동 - 양이 운동과 촌왕 운동이 결합. 국왕 중심의 정귄 수립 기도.(2) 메이지 유신- 무사 계급의 막부 타도 -> 국왕 중심 정권 수립- 목표① 위로 부터의 근대화② 군국주의·국수주의 체개③ 부국강병을 통한 서양과 대등한 지위확보④ 서양 문물의 적극 수용⑤ 중앙집권적인 입헌군주 체제 수립⑥ 제국 주의화- 내용 : 폐번 치현, 지조 개정, 사민 평등, 징병제 실시, 국민 교육, 근대적 공장 설립- 의의 :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근대화에 성공3) 조선의 개국- 16~19세기 조선의 대외관계① 중국을 주축으로 한 사대질서 속에서 동쪽은 일본, 북쪽은 여진과의 간헐적인 관계② 대원군의 철저한 배외정책② 프랑스와 미국이 조선과의 통교에 실패 :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서구국가들에게 있어서 조선반도는 중국이나 일본경략을 위한 하나의 주변에 불과하였 기에 인접한 일본은 조선에의 교접기회가 증가(1) 운요 호 사건(1875)- 1875년 강화도 초지진 포대에 접근한 일본군함 운요호에 포격을 가한 사건- 이를 계기로 조선에 국교 개설을 요구- 동시에 청국과의 교섭을 추진하여 일본의 입장 강화(2) 강화도조약(1876. 2. 3)- 조선의 개국에 관한 정치적 조약- 내용① 조선이 자주국임을 규정 (실제적으로는 조선에 대한 청국의 종주권 단절 목적)
세계화(Globalization)Ⅰ. 서론우리는 오늘날의 국제관계를 이해할 때 세계화 현상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그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기 어렵다. 세계화는 아직 다양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진행과정에 있는 개념이고, 세계화 자체에 대한 평가는 국가마다 다르지만, 세계화가 경제?정치?사회?문화 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며 과거와 전혀 다른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세계화의 개념과 특징, 그리고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 알아보며 새로운 시대의 주체가 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Ⅱ. 본론1. 세계화의 개념- 세계화(globalization)란, 기존의 민족국가의 개념을 초월하여 전인류·전지구적 수준에서 경쟁과 협력을 통하여 통합이 이루어져 가는 과정1) 경제적 의미국가간 무역의 증가, 초국적기업의 활동 증가, 세계금융시장의 거대화 및 통합심화, 국경 을 뛰어넘는 정보·통신·방송의 흐름 증대 등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세계경제의 통합2) 정치적 의미 : 대개 국가간 상호 의존의 심화로 정의됨- 멕그루 (A. McGrew)"세계화는 근대세계체제를 형성하고 있는 국가들 및 사회들 사이에 존재하는 연계와 상 호연관의 다수성을 가리킨다. 이것은 세계의 한 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들, 결정들, 행위 들이 지구의 매우 먼 지역에 있는 개인들과 공동체들에 대하여 중요한 결과를 갖게 되는 과정을 말한다.“- 기든스(A. Giddens)“세계화란 지방들 상호간의 사회적 관계가 세계적으로 확대·심화되어 어느 한 지방에서 일어나는 일이 다른 지방에서 일어나는 일을 형성하고 형성받는 현상”2. 세계화의 배경1) 국제정치적 측면탈냉전으로 인하여 복수의 세계체제가 하나의 세계가 됨. 특히 공산주의정권의 붕괴로 인 한 계획경제체제의 포기와 개방경제의 지향은 자본주의의 범세계적 확산을 초래하면서 세 계가 하나의 시장경제체제로 통합되는데 일조2) 경제적 측면- “자본주의는 끝없는 자본축적을 목적으로 삼고 있으며, 그 지배의 법칙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 생산수단의 통합된 체제이다. 따라서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세계적이 된 다.”(I. Wallerstein)- 이러한 자본주의의 속성이 탈냉전으로 인하여 공산권이 개혁·개방경제체제로 전환함으로 써 하나의 경제권으로의 일원적 통합에 박차를 가함3. 세계화의 촉진요인1) 초국적금융자본의 성장- 초국적금융자본이 전세계적으로 연결된 금융망을 통하여, 또한 상호간의 전략적 제휴관 계를 통하여 일국의 금융정책을 무력화시킬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함으로써 돈의 흐름을 촉진하고 자본의 이동을 활발하게 함2) 정보통신혁명과 생산기술혁명- 인적·물적 자원의 시간적·공간적 제약을 해제하여 기업들로 하여금 국경을 넘어서 이윤 이 나는 곳이면 어디서나 생산활동을 가능케 함. 그 결과 기업에 대한 국가의 통제는 갈 수록 약회되고, 생산에 있어 국경의 개념은 점점 흐려짐3) 과학기술의 발달과 정보통신혁명- 기술의 발전이 세계적 상호연계를 심화시킴. 이처럼 세계화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은 ‘공간조정 테크놀로지(space-adjusting technology)’로, 공간이라는 물리적 거리의 장 벽을 허물어 줌으로써 세계화의 물리적 기초를 제공4) 전지구적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의 증대- 환경·마약·테러·질병 등 국경을 가로질러 나타나고 있는 문제를 지구적 차원의 공동노 력 없이 해결이 어려움3. 세계화의 주요특성1) 전지구적 상호의존의 심화세계화의 일차적 의미는 전지구를 대상으로 하는 상호연관 및 상호의존의 심화이다. 이제 사회관계가 세계적 차원으로 확산되면서 영토적 경계의 의미가 약화되고 있다. 오늘날 세계 어느 한 부분에서 발생한 사건, 결정, 활동은 그 시·공간적 고립성을 뛰어 넘어 다른 지역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재화·자본·인력을 비롯하여 이미지·문화·신념·유행·환경에 이르기까지 거래나 소통이 가능한 곳이면 무엇이나 지역적 경계를 초월하여 거래와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2) 시간과 공간의 재구성세계가 하나의 네트워크로 엮어지면서 시간과 공간의 의미가 재구성되면서 이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경험이 변하고 있다. 하비(D. Harvey)에 의하면 세상의 종합적 모습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동시간대 세계시민들에 의해 경험된다. 즉 전 세계의 이미지를 전 세계시민들이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지에 힘입어 동시에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3) 국제관계에서 행위자(actor)의 다양화세계화는 전 지구적 상호의존 동력으로서 다양한 행위자를 등장시키고, 이들 모두를 주인공으로 설정하고 있다. 국민국가가 유일하고도 강력한 행위자였던 전시대와는 대조적으로 세계화의 추동세력은 고전적인 의미의 국민국가를 포함하여 자본(기업), 국제조직, 민간조직, 다양한 형태의 사회운동 등으로 다양화되고 있다. 따라서 국제기구 및 국제레짐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여기에는 정부간기구(IGO) 뿐만 아니라 비정부간기구(NGO)의 비중과 위상이 강화되고 있음이 주목된다.4) 세계성과 지역성 및 국가성의 공존세계화는 인간의 상호작용, 상호연관 및 상호인식을 세계라는 하나의 단일공간 위에 펼쳐 놓으면서 상대방의 존재가치를 인정하는 공존의 논리에 기초하고 있다. 따라서 세계화의 생명력은 세계적인 것의 일반성과 지역적인 것의 특수성 가운데 어느 하나만으로는 안된다는 것이다. 즉 세계화는 다른 사회의 존재와 문화의 가치를 인정하면서 이들과 기꺼이 교류하고 교제하는 데서 형성되는 만큼 획일보다는 대비를 추구하는 문화적 환경의 다양성을 중시한다.4. 세계화의 모습들1) 경제적 측면에서의 세계화① 기업활동(생산과 판매)의 세계화- 어떤 상품이 어느 나라 제품인지는 그 의미가 점차 사라짐. 생산이 전 세계적인 수준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가격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생산거점을 임금이 싼 국가로 옮기고, 비핵심부품은 아웃소싱(outsourcing)을 통해 해외에서 조달해 오는 추세- 이처럼 세계경제에서 다국적기업의 비중이 점차 커지면서 기업들은 이제 전 세계를 무대로 기업 활동을 펴나가고 있다. 제품의 개발과 기획 등 핵심 활동은 모국에서 하고, 생산은 인건비가 싼 국가에서 하도록 하는 등 기업 활동의 무대는 이제 국경을 넘어 전 세계가 되고 있다.② 금융의 세계화- 국제금융거래의 양적 성장 : 1일 외환거래량은 1조 달러에 이르고 있고, 1일 주식거래량은 1조 5000억 달러에 육박- 금융 및 자본의 자유화로 인해 자본의 국제적 흐름이 가속화되고, 해외투자가 전 세계적으로 눈에 띄게 늘어남- 소위 초국적 자본이라고 일컬어지는 거대한 투기성 자본이 높은 투자이윤을 얻을 수 있는 지역으로 빠르게 이동2) 문화의 세계화- 국제위성네트워크, 인터넷, CNN 같은 전 세계적인 통신매체들을 통해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이 지구 도처에서 일어나는 중요한 사건들을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게 됨. 이러한 통신매체의 혁명적 발전은 전 세계의 인구가 유사한 관심, 기호, 문화를 공유할 수 있게 하는 기반을 제공하여 지구적 차원의 문화적 공감대 형성이 가능해짐- 다국적 미디어들이 문화의 세계화에서 핵심적 역할 수행3) 세계화의 정치적 영향- 국가경제가 보호막 없이 외부의 충격에 노출됨을 의미- 범지구적 수준의 상호종속의 증대는 국가가 담당했던 국가의 국경 안의 활동을 통제할 수 있게 해주던 정책수단을 무력화시킴으로써 국가의 존재에 대해 위협* 초국적 자본의 흐름은 환율, 물가정책 등에 관한 정부정책의 효과를 크게 감소시킴* 국제비정부기구, 초국적기업, 국제기구 등의 역할이 증가하고 환경이나 국제적 범죄, 문화 등 범지구적 쟁점이 등장하면서 국가들은 이들 비국가적 행위자들과의 협력 필요 해짐5. 세계화의 기회와 가능성1) 민주주의의 확대·심화세계화가 경제적 비효율성과 정치적 억압의 근원이었던 국가주의를 마침내 지구촌으로부터 추방하고 시민사회를 해방할 것이라는 데 근거. 세계화는 보호지대와 기득권의 온상이 되어 온 국경의 장벽을 해체함으로써 주어진 영토 내에서 물리적 폭력의 사용을 합법적으로 독점해 온 국가의 권력을 잠식하고 국경의 보호하에 독점적 기득권을 누려 온 이익집단의 영향력을 감소시키는 반면,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권을 증대시킬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