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말 REPORT출판기획서I ♡DOGS사랑스런 우리강아지,왜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일까나에게 무엇을 말하려는 걸까강아지에 대한 비밀이 벗겨진다!과목명 :교수명 :학과 :학번 :성명 :제출일 :출 판 기 획 서I ♡DOGS2007.12.11(화)1. 취 지1-1. 배 경① 인간의 삶이 점점 풍요로워지고 여가시간이 많이 생기면서 애완견에 대한 관심 확산② 애완견을 키우는 사람들은 점점 증가하는데 반해 애완견에 대한 지식이 많이 부족함③ 애완견을 키우는 인구가 늘어남에 따른 사회적 문제대두1-2. 목 표① 애완견을 키우기에 앞서 준비과정과 애완견에 대한 책임감 전달② 문답 형식의 애완견에 대한 기본적 정보와 특징을 소개③ 귀여운 그림과 에피소드 중심으로 반려동물로서의 인식변화2. 책의 상(像)2-1. 성 격① 그림 삽입된 에피소드와 문답형식의 애견의 대한 정보를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형식② 전문필자가 여러 애견인과 수의사를 취재. 집필한 책2-2. 형 태신국판 판형, 반양장 장정, 200쪽 전후 분량의 단행본3. 이 책을 읽을 사람3-1. 예상독자 - 1차 대상(우선구매층) : 10대 초~ 20대 후반의 학생 및 직장인2차 대상(구매층) : 20~ 30대 미혼직장인3차 대상(관찰층) : 30~ 40대 직장인 및 주부3-2. 니즈분석- 1차 대상(우선구매층) : 애완견에 키우기에 관심이 높은 적극적 신세대애완견의 행동 및 기타 여러 궁금증과 정보 수집을 위한 강한 흥미와 관심- 2차 대상(구매층) : 애완견 애호가들이 애완견에 대한 재미있는 에피소드나 필요한 정보 수집하려는 욕구 잠재- 3차 대상(관찰층) : 재미있는 교양물 및 정보 요구4. 기 획 방 향4-1. 컨 셉 트① “아~ 이런 행동을 한 게 이런 이유 때문이었구나!” (몰랐던 강아지의 행동에 대한 이해)② “강아지에겐 이런 것을 피하고 이런 것을 해줘야하는구나” (기본적인 정보제공)③ “강아지도 우리와 똑같이 보고 느끼는구나” (반려동물로서의 애완견 인식)출 판 기 획 서4-2. 기 본 구 도① 전문필자의 취재 -> 집필 -> 전문가의 감수② 전문적인 정보를 재미있고 알기 쉽게 에피소드와 문답형식으로 나타내는 형식으로 재미와 정보를 동시에 전달하는 효과4-3. 구 성 방 향① 기존 애완견 기르기 취미생활 도서류와의 차별화에 유의② 지나친 전문적인 정보전달은 배제하고 전문성과 대중성을 적절히 배합③ 다양한 기술방법을 통해 애완견에 대해 친근하고 흥미롭게 접근5. 예상 형식5-1. 기본 사양제목 : 'I♡DOGS'부제 : 사랑스런 우리강아지, 왜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일까/나에게 무엇을 말하려는 걸까/ 강아지에 대한 비밀이 벗겨진다!형식 : 신국판, 반양장 200쪽 내외가격 : 10000원 (추후확정)5-2. 예상 필자5-3. 예상 주요 목차 및 구성 개요 - 별첨 [구성 개요] 참조5-4. 출간예정일 - 2008년 10월 10일6. 예상 판매부수6-1. 판매 목표 - Min. 24,750 (~ Max. 82,500)6-2. 산출 근거 - 경쟁환경 분석상 최대 시장규모 110000부- 시장기회요인에 따른 시장확대 변수 50%- 최소목표 : 총 시장크기 165000부(110000+50%)의 15% Market Share- 최대범위 : 총 시장크기 165000부(110000+50%)의 50% Market Share6-3. 추진 일정2008. 5.~ 6.8 1차기획서 작성2008. 6.12 ~ 6.15 취재처 1차 협의(제작원칙 및 방침)2008. 6.16 ~ 6.23 취재처 2차 협의(기획안 확정)2008. 6.24 ~ 7.30 자료수집 및 취재. 인터뷰2008. 8.1 ~ 8.15 집필2008. 8.16 ~ 8.22 전문가 협의(원고 감수)2008. 9.23 ~ 10.2 편집2008. 10.3 ~ 10.9 인쇄. 제본2008. 10. 10 출고별첨 : [ I ♡ DOGS ] 구성 개요대 목 차분 량구성 방향소 목 차 (예시)프롤로그*“우리에게 애완견이란?”20매애완견의 수가 급증하고 있는 현재. 애완견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와,애완견의 급증에 따른 문제,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제1부*애완견,우리의새로운 가족?50매애완견을 키우기에 앞서 마음가짐과책임감에 대해 이야기하고강아지가 처음 가족들에게 인정받기까지의 에피소드 및 강아지에 대한 기본적 정보를 전달한다.1. 선서2. 똑똑,당신의 가족이 되고 싶어요.
하위문화입장에서조명해본 서태지 현상-서태지 담론우리사회에서의 대중매체의 영향력은 엄청나다. 그리고 대중매체 안에선 각가지 오락 프로그램이 난무하고 수많은 연예인들이 화면에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2000년 여름, 서태지의 컴백소식과 함께 활동하는 모습이 텔레비전, 라디오에서 시끌벅적 하게 나오고 있었을 때 난 그저 그런 서태지의 은퇴선언 이후 4년 7개월 만의 컴백을 바라보며 락 음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로선 채널을 돌리기 일쑤였다. 그렇게 서태지의 활동도 끝난 2006년인 지금 서태지를 중심으로 한 책이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게 되었고, 의문이 생었다. 과연 서태지란 인물이 무엇이기에 책으로 나올 만큼 특별한 것인지, 왜 현제까지도 서태지에 대해 끝없이 이야기 되는 것인지, 이러한 서태지의 대한 나의 호기심이 나로 하여금 이 책을 선택하게 하였다.하위문화(subculture)란 표현의 형태이다.그러나 그것이 표현하는 것은, 결국 권력을 가진 자들과 그들의 하위에 종속되어 2류 계급의 생활을 하도록 운명지어진 자들 사이의 근본적인 긴장이다. - 딕 헤브디지이 책은 저자의 논문 [Seo Taiji : A Sample Approach to Korean Subculture]를 기본으로 하여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1장에선 서태지로 대표되는 특정 문화적 현상을 문화와 하위문화의 상관관계에서 어떻게 살펴볼 것인가를 논하였고, 2장에선 서태지의 등장이 우리 대중문화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와 그 가치를 조명하고 있다. 3장에서는 서태지가 대중문화 전면으로 부상할 당시의 우리 사회의 상황을 여러 각도에서 살펴보았고, 마지막 4장에선 ‘서태지 현상’이 가지고 있는, 특히 우리 사회에서의 하위문화적인 성격을 분석하였다.딕 헤브디지의 하위문화 이론을 차용한 이 책은 대중문화계의 서태지 현상을 하위문화의 입장에서 조명해본 책이라 할 수 있다.저자는 서태지로 대표되는 1990년대 전반부의 젊은 세대의 문화현상을 ‘하위문화’로 전제하여 설명하면서 1990년대 대중문화계의 한 사건이자 상징적인 존재로서 서태지를 나타낸다. 서태지의 등장은 대중문화 안에서의 대중음악의 영향력을 확대시켰고, ‘신세대’의 부상과 때를 같이한 서태지의 출현은 서태지로 대표되는 신세대 취향의 음악을 대중음악의 주류로서 자리 잡게 하였다. 뿐만 아니라 탄탄한지지 기반(팬)을 바탕으로 하여 대담한 실험성을 보여준 서태지의 음악적 편력은 서태지 한 개인의 음악적 성취에 머물지 않았다. 그의 뛰어난 실험 정신은 그때까지 성인 취향 가요를 주류로 하고 있던 우리 대중음악계의 변방에서 명맥을 유지해가던 비주류 음악의 전면 부상을 가능하게 하였던 것이다.Ⅰ이 책은 하위문화 입장에서 본 서태지 현상에 대해 설명을 하려 한다.하위문화와 관련지어 서태지에 논하기에 앞서 저자는 하위문화의 개념을 대중문화라는 틀 안에서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먼저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하위문화는 그 사회의 지배 계급과 헤게모니투쟁을 하고 있는 하나의 피지배 계급에 의하여 상징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로니컬하게도 이처럼 두 개의 계급에 의하여 상징되는 두 개의 문화는, 비록 그들이 서로에 반대하는 입장에 있다고 하여도 동일한 사회 안에서 공존하고 있다. 딕 헤브디지는 하위문화를 ‘지배 계급에 대한 모순과 반대가 간접적으로 표현되어 스타일로 상징되는 저항의 형태’라고 이해하였다.이런 헤브디지의 입장은 하위문화로서 대중문화를 이해하는 데에 핵심적인 몇 가지 초점을 제시한다. 우선 그러한 하위문화가 존재하는 사회의 형태이다. 하위문화에 대한 정의는 자본주의를 기본으로 하고 있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를 근본으로 하고 있다. 둘째로, 그 사회에서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한 문제이다. 한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는 그 사회 안에서의 주류문화를 지배하고 있으며, 다른 여러 가지 하위문화들을 그들이 지배하는 주류문화에 접합하고자 한다. 바로 여기서 마지막 조건이 성립하는데, 주류문화에 편입되기를 거부하는 하위문화가 어떤 식으로, 어떻게 ‘간접적이고 비뚤어진 스타일로’ 표현되는가 하는 문제이다.저자는 우리나라 상황에서의 하위문화로서의 대중문화를 대중문화 논쟁을 전면에 부상하도록 한 이슈로서 서태지를 선택하여 위에서 제시한 세가지 조건에 맞추어 검토하고자 한다.Ⅱ신세대는 변화에 민감하다. 그들은 우리 사회가 속도의 경제학으로 눈부시게 성장가도를 달리던 70년대 이후 출생한 세대, 즉 어린시절부터 변화를 소화하는 능력을 몸으로 습득한 세대들이다. 낡은 것, 느린 것, 정지한 것을 체질적으로 거부하는 신세대 감성에 서태지의 음악이 정확히 자극하는 것이다. 서태지가 1집을 들고 나온 1992년. 그 때 신세대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New Generation. 즉, 기성세대와는 다른 새로운 세대라는 말 뜻 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들은 새로움을 추구하는 세대이다. 서태지가 들고 나온 음악은 당시로서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었던 한국어로 된 랩 댄스 뮤직 이였다. 새로운 문화에 목말라 하던 신세대들의 코드를 완벽하게 읽어낸 그들은 첫 방송 후 얼마 되지 않아서 확고한 위치의 스타로 발돋움하게 된다.여기서, 당시 주목 받은 것은 그들의 음악 뿐만은 아니었는데, 1집 시절의 랩 댄스 뮤직, 스쿨룩, 남성의 치마 패션, 2집 때의 힙합, 힙합 패션, 브레이킨, 3집 시절의 태극기로 만든 옷, 손수건 손에 감기, 스노우 보드 패션, 5집의 매니아, 핌프 락 등등 이런 유행을 만들어 왔고, 한동안 ‘서태지 패션’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는 점에서 문화 대통령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서태지는 청소년들의 생활 방식을 만들어 왔다.자아 정체감이 형성되는 시기의 청소년들에게 서태지의 존재는 당시 자신의 생활방식과 사고방식의 지침서가 되었고 새로움의 추구, 자유로움, 사회의 모순에 저항, 자신의 길을 스스로 개척해 가는 자신감과 의지력이었다.서태지가 특히 10대 팬들에게 많은 지지기반을 쌓을 수 있었던 이유도 서태지가 당시 청소년들에 모방할 만한 모델이었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서태지의 3집에 포함 되어져 있는 [교실 이데아]는 10대 팬들을 대상으로 제도적 문화를 공개적으로 공격한 최초의 주류 대중가요였다. 우리 교육 현실의 가장 고질적인 문제인 일류주의와 이기주의가 모두 집적되어 있었고 입시 위주 교육의 현실을 직접적인 언어로 묘사되어 졌다. 이 곡을 통해 서태지는 대중가요가 겉도는 문화가 아니다라는 것을 보여 주었다. , 처럼 선정적인 가사가 대부분이 었던 서태지의 3집은 당시 ‘혼란’에 직면하고 있던 우리사회와 시기적절하게 잘 맞아 떨어졌고, 랩 댄스 음악으로 데뷔한 서태지의 음악은 자연스럽게 메탈로 변형되어져 있었다.Ⅲ서태지가 1992년 데뷔를 하던 때 우리사회는 정치적으로 중요한 변화를 겪는 중이었다. 우리사회에 막강한 권력을 누리던 군사정권이 1980년대 후반부터 조금씩 쇠퇴하기 시작하여 1987년 6월의 민주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가 시행되고, 30년동안의 군사정권은 1993년 2월 25일 민간인 출신의 김영삼이 14대 대통령으로 취임함으로써 비로소 문민정부로 대치되었다.그리고 이러한 변화 속에, 92년 서태지의 가 대중음악 문화를 강타하고 있을 때 쯤 일부매체에서 신세대론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서태지는 신세대들의 표본이었고 그의 노래 요즘 신세대들의 생각을 여지없이 잘 드러내놓고 있었다. 신세대들은 전쟁의 폐허, 보릿고개 등을 겪은 부모들이 자식들에 대한 지나친 사랑으로 사회의 일반적 수준을 넘는 물질적 배려를 누릴 수 있었고 새로운 문화적 체험을 경험할 수 있었다. 이러한 부모들의 넘치는 사랑이 현제 우리사회의 배금주의나 학벌주의를 더 부추긴 한 이유라 생각한다. 또한 신세대들은 외국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을 뿐더러 개방적인 사고를 구축하고 있었다. 그로인해 ‘우리’보다는 ‘나’에 충실했으며 기존의 질서를 겁내지 않았다.서태지의 등장과 신세대의 등장의 관계는 분리해서 이야기 할 수가 없다.서태지는 신세대의 지지기반으로 입지를 구축할 수 있었고, 신세대는 서태지의 음악을 통하여 정체성의 상당 부분을 정립할 수 있었다.이렇게 신세대가 서로의 정체성에 영향을 받으며 연대감을 다져가고 있을 때, 기성세대는 신세대들의 문화, 사고방식에 무관심을 남기고, 부모와 자녀 즉, 기성세대와 신세대는 시간적 문화적인 격차는 점점 깊어져 갔다.
① 신사실주의 [Neorealism]-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이탈리아에서 꽃핀 문학. 영화 운동전쟁의 원인이 된 사건과 전쟁 전후에 생겨난 사회문제를 사실적으로 다루고자 했다.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이탈리아에서는 보다 생생하고 감동적인 영화들이 출현한다. 그것이 바로 네오리얼리즘이란 용어이다. 네오리얼리즘은 전후의 리얼리즘이라고 명명하듯이 파시스트 정권의 몰락과 전쟁의 좌절감과 굴욕감에서 벗어나게 되는 탈출감으로 충만하게 된다.특히 영화에 있어서는 그 당시 보아온 줄거리 위주의 표현양식과는 현저히 다른 새로운 영화기법을 제시한 것이다.네오리얼리즘의 대표적인 영화로는 우리가 수업시간에 보았던 1948년에 제작된 대표적 네오리얼리즘 감독인 비토리오 데 시타의 자전거 도둑(원제Ladri di Biciclette)이 있다.② 네오리얼리즘 영화의 특징적 스타일1) 현장 작업(야외 촬영, 자연 조명, 즉흥 연출)-전쟁으로 인한 제작 환경의 부실은 이들을 자연스럽게 거리로 내몰았고 거기서 야외촬영과 자연광 선호의 전통이 싹트게 된다. 이것은 뒤에 나오는 다른 특징들과 함께 다큐멘터리 식의 사실적인 영상으로 네오리얼리즘을 규정짓게 하는 요인이 된다.2) 비직업 배우-생생하고 사실적인 외모나 행동을 위하여 비직업 배우들을 다수 기용하였다3) 후시 녹음-이탈리아 영화의 관행이기도 한 후시 녹음은 저예산 소규모의 제작진으로 현장촬영을 가능하게 했다.4) 일상적 소재-대중의 몽상을 자극하는 해피 앤딩의 이야기가 아닌, 답답하고 해답이 없는 현실의 곤란한 일상을 소재로 삼았다. ‘현실이 거기에 있다. 왜 대상을 연출해야 하는가?’라고 반문한 로셀리니 감독의 신조는 현실을 정직하게 담으려는 사실주의 영화감독들의 금과옥조가 되었다.5) 롱쇼트/롱 테이크/트래킹 샷-롱쇼트와 롱 테이크를 주고 채택했으며, 움직이는 인물을 화면 속에서 배경과 함께 흔들리지 않게 잡아내기 위해 트래킹 샷을 사용했다. 그들은 단순성과 자발성과 직접성을 최대의 장점으로 섬겼기 때문에 편집은 될 수 있으면 피하려고 애썼다.6) 단순한 서사 형식- 네오리얼리즘 감독들이 즐겼던 현장 작업은 느슨한 서사 구조를 허용했다. 영화 속 인물들은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구체적인 상황 속에 배치되지만 그들의 삶의 모습은 지극히 단편적으로 그려지고 있으며, 그 어떤 해결책도 제시되지 않는다. 이들의 영화는 열린 결말 구조를 취하고 있어서 꽉 짜인 플롯을 배제하고 있다. 실제 삶의 한 단편을 제시하는 그들의 영화는 사람들의 삶과 결정에 대 한 솔직한 시각을 수정 없이 드러내고 있다. 그들이 즐겨 다루었던 주제들은 가난, 실업, 매춘, 속임수 등이며 그 배경은 빈민가가 대부분이었다. 등장인물들도 전후 이탈리아 사회 어느 곳에서나 흔히 만날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네오리얼리즘 계열의 감독들의 목적은 사람의 일상성을 찬양하거나 주목받게 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이전부터 그곳에 존재했지만 주목받지 못했던 삶의 모습들을 세부적 묘사를 통해 잡아냈다.③ 네오리얼리즘 의 대표적 영화_ 자전거 도둑의 줄거리2차 대전이 끝나고 폐허가 된 로마에서 오랫동안 실직상태이던 안토니오 리치는 어느날 일자리를 구하게 된다. 포스터를 붙이는 일이다. 그 일에는 자전거가 필요하다.아내 마리아에게 말해 헌 옷가지를 전당포에 맡기고 자전거를 구한다. 어린 아들 브루노도 따라 나선다. 그러나 어느 모퉁이에서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누가 자전거를 훔쳐 타고 달아난다. 안토니오는 쫓아가나 허사다. 경찰에 신고하지만 경찰은 하찮은 일이라는 듯 반응이 없다.허탈해진 안토니오는 자전거포를 뒤지다 어느 젊은이가 자기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것을 본다. 쫓아가지만 또 허사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그 젊은이 집을 찾는다. 안토니오는 빈민가의 그 집을 보고 절망에 빠진다. 자기처럼 가난한 데다 젊은이는 간질을 일으키며 길가에 쓰러진다. 경찰이 오나 증거도 없다. 그러던 중 아들과 다투고 아들이 없어진다. 안토니오는 강가에서 어린애가 빠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들을 찾아 나선다. 아들은 계단 위에 나타난다.경기장에서는 축구시합이 한참이다. 밖에는 자전거들이 즐비하다. 안토니오는 아들에게 먼저 집에 가 있으라고 하고 자전거 한대를 훔쳐 달아나다 곧 주인에게 붙잡힌다. 경찰이 온다. 그는 자전거 주인의 선처로 풀려난다. 석양의 거리를 아들은 뒤따르고 안토니오는 허탈한 모습으로 걸어가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④ 네오리얼리즘의 대표적 영화_ 자전거 도둑 분석자전거 도둑 (1948)캐스팅비전문 배우 기용촬영과 구성다큐멘터리적인 촬영대사일상적 언어 사용, 문어체 지양미학적 배경아리스토텔레스의 몰입(감정이입)접근방식문학적, 사회적목표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줌감독의 이전 전공유명 연극인 -> 영화배우 겸 감독⑤ 네오리얼리즘의 대표적 작품*감독1) 로베르토 로셀리니는 1943-1944년에 로마 사람들이 겪었던 실제 사건들을 기초로 했다. 이 시기는 연합군 부대가 로마에 입성하기 전이며 여전히 독일의 통제하에 있던 때였다. 로셀리니는 다양한 원천으로 재원을 끌어모아 비밀리에 영화를 만들었는데, 돈은 계속 부족했고, 제작 조건은 믿을 수 없이 원시적이었다. 기술적이고 재정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 영화는 다른 이탈리아 영화 제작자들로 하여금 동시대의 현실을 다루는 그 개념들과 방법을 추구하도록 고무시키는 하나의 기념비적인 업적으로 나타났다.1943년부터 영화 작업을 해왔던 로셀리니는 무솔리니의 정권 아래에서 백색전화가 영화류의 작품을 만들어 오다가 시나리오 작가인 세르지오 아미다이와 페데리코 펠리니와 함께 혼란스러운 이탈리아의 실상을 그들이 할 수 있는 최대 한도의 것으로 보여주려고 했고 그 거친 아름다움과 강렬한 정서는 이전의 어떤 것보다 앞서는 것이었다.2) 루키노 비스콘티그의 은 가 나타나기 전 네오리얼리즘의 전조라는 것이 인정되어야 하는데, 그것은 그 영화의 주제내용보다도 의도적으로 단조롭고 매끄럽지 못한 그 자연주의적 양식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1948년 그는 라는 네오리얼리즘의 걸작이라고 인정되는 작품을 만들었으나 이 경우에는 주로 양식보다는 오히려 그 제재와 제작방법에서 네오리얼리즘 적이었다.는 독점적인 지배를 행사하는 상인들에 의해 가난에 시달리는 한 시실리어 부일가에 대한 영화로, 공산당의 후원을 받아 전적으로 현지에서 야외 촬영되고 비직업배우를 기용하였다. 그러나 이 영화는 사실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요소들이 극단적인 양식화의 형식에 기대고 있는데 어부들은 조심스럽게 장식적으로 모여있고 그들의 움직임은 안무에 따라 이루어진다. 조명은 풍부한 대비로 정교하며 마치 스튜디오에서 찍은 것처럼 조절되고 배치되어 있다. 다른 네오리얼리스트들의 영화들보다는 그리스고대연극에 더 적합할 것 같은 장면들도 보인다.
목 차Ⅰ. WHO IS J. S. BACH (1686 - 1750)Ⅱ. ABOUT J. S. BACH# J. S. Bach 의 생애# 바흐의 가계# Bach 작품의 양식요소# Bach 주요 작품Ⅲ. J. S. BACH 를 마치며Ⅰ. WHO IS J. S. BACH (1686 - 1750)서양 음악의 아버지라고 불리며 서양음악사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커다란 위치와 영역을 차지하는 예술 역사상의 거인 중에 한 사람 이다.그의 음악은 '바로크 음악의 집대성' 이라는 말로 흔히 표현 되며 음악사의 구분에 있어서 바로크시기를 결정짓는 정점이 될 만큼 중요하게 인식되고 있다. 그는 오페라를 제외한 당시의 거의 모든 음악의 영역에 걸쳐 작품을 남기고 있으며 생의 시기에 따라 조금씩 발전하는 음악적 양식을 보여 주고 있다. 또한, 우수한 자식들과 많은 제자를 두었기 때문에 후대 음악의 발전에도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특히 19세기에는 팔레스트리나와 나란히 오랜 음악전통의 상징적 존재로 간주되어 모든 음악가의 학습 대상이 되었다.모차르트도 바흐를 연구하여, 을 비롯한 만년의 걸작을 완성했다.베토벤도 소년시절에 스승인 네페의 지시로 바흐가 지은 을 배우고"바흐는 작은 강이 아니라 큰 바다이다!" 라고 말할 정도로 바흐를 존경하고 큰 영향을 받았다. 그런데 바흐를 결정적으로 평가한 것은 1802년에 출판된 포르켈이 쓴 과 29년 20세의 멘델스존에 의해 베를린에서 실시된 의 역사적인 연주였다.더욱이 브람스는 베토벤을 능가하기 위해 창조력의 원천을 바흐에게서 찾았다. 현대음악의 문을 연 쇤베르크가 의 이론적 기초를 바흐의 대위법에서 구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바흐의 작품번호는 오늘날 슈미더가 엮은 이 널리 사용되고 있으므로 여기에서도 그것에 따른다.Ⅱ. ABOUT J. S. BACH# J. S. Bach 의 생애Johann Sebastian Bach는 1685년 3월 21일 독일의 Eisenach에서 태어나 1750년 7월 28일 독일 Leipzig에서 생을 마감 하였다.1685 : Eisenach에서 3월 21일 출생1700 : 뤼네부뤀 성 미하엘 교회의 성가대원1703 : 아른슈타트에서 오르가니스트1705-1706 : 북스테후데의 음악을 듣기 위해 뤼백 방문1707 : 뮐하우젠의 성 블라시우스 교회 오르가니스트 _ 마리아 마르바라와 결혼1708 : 바이마르 궁정의 오르간 주자 ; 오르간 작품 다수 작곡한 시기1713 : 바이마르 궁정의 음악 감독 (Konzertmeister) _ 4주 마다 새로운 칸타타 작곡1717 : 쾨텐 레오폴드 공의 음악감독 (Kapellmeister) _ 많은 기악 작품들 작곡1720 : 부인 마리아 바르바라 바흐 사망1721 : 안나 막달레나 빌켄과 재혼1722 : 평균율 클라비어 곡직 작곡1723 : 성 토마스 학교의 성가대장 ; 매주 많은 도시교회들을 위해 칸타타 제공1724 : “요한 수난곡” 작곡1727 : “마태 수난곡” 작곡1729 : 라이프찌히 콜레기움 무지쿰의 지휘자1741 : 베를린과 드레스덴 ; “골드베르크 변주곡” 작곡1745 : “푸가의 기법” 작곡1747 : 베를린 프리데릭 대제의 궁정 방문 ; “음악의 헌정”1749 : “B단조 미사” 작곡1750 : 7월 28일 Leipzig에서 사망# 바흐의 가계17세기 후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음악가를 탄생시킨 바흐의 가문은 200여 년에 걸쳐 50명 이상의 음악가를 배출하였다. 중부 독일 튀링겐주에 있는 빵집 주인으로 치터(Zither:발현악기)의 애호가였다는 파이트(1619년 사망)가 바흐 가문의 옛 조상이라 하며, 파이트의 장남 요하네스(1580?~1626)가 바로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증조부가 된다.유명한 거리의 악사였던 요하네스의 세 아들 요한, 크리스토프, 하인리히는 모두 작곡가였으며 수편의 작품이 남아 있다. 요한 제바스티안의 조부는 그중 차남인 크리스토프(1613~1661)이며, 그에게는 아들 셋이 있었다.장남 게오르그 크리스토프는 바흐 가문에서는 처음으로 교회합창단장인 칸토르의 지위에 올랐으며, 쌍둥이 동생 요한 크리스토프와 요한 암브로지우스(1645~1695)는 거리의 악사가 되었다. 그리고 암브로지우스의 막내로 태어난 사람이 바로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大바흐)이다.그에게는 20명의 자녀가 있었는데, 그 중에서 장남인 빌헬름 프리데만(1710~1784), 차남 카를 필립 에마누엘(1714~1788), 막내 요한 크리스티안(1735~1782)의 3명은 음악사에 찬란한 업적을 남겼다. 특히 에마누엘과 크리스티안은 전자가 '함부르크의 바흐', '베를린의 바흐', 후자가 '밀라노의 바흐', '런던의 바흐'로 일컬어질 정도로 전 유럽에서 활약하고 대바흐와 헨델을 정점으로 하는 바로크음악에서 하이든·모차르트의 빈고전파로 음악사를 크게 전환시켰다.# Bach 작품의 양식요소바흐의 대표적인 양식요소로는 긴장감이 높은 변화화성의 사용, 늠름한 에너지가 충만해 있는 동기나 선율의 구성, 밀도가 높은 폴리포니, 극도로 확대된 선율법, 정밀한 메트릭 - Metric(박절법), 단일 또는 소수의 소재에 의한 전체의 통일 등을 현저한 특징으로 지적할 수 있다.또한 색다른 표현매체의 이디엄 교환과 색다른 양식이나 형식의 융합도 바흐의 음악을 형성하는 두드러진 특색이다. 예를 들면, 완전히 기악적인 합창이 있는가 하면 기악에 성악적인 칸틸레나가 자주 나타나 푸가와 협주곡 형식과의, 혹은 무곡과 전주곡과의 융합 같은 것을 볼 수 있다. 바흐가 사용한 악곡형식 자체는 당시의 관용형태에서 많이 벗어나지는 않았으나 이상과 같은 이디엄의 상호침투와 양식의 융합으로써 기존의 형식은 그 극한에까지 확대되고, 내부해체를 야기시키며 붕괴직전까지 몰리고 만다. 관용형식의 테두리를 지키면서도 그 내부는 폭발의 위험을 잉태한 긴장된 에너지로 가득차 있는 것이다.이러한 악곡형식에 있어서 본질적으로 바로크시대의 관용법위를 벗어나지 못했던 바흐를 동시대의 많은 작곡가들과 구별 짓는 것으로써, 이상과 같은 형식내부의 긴장력과 뛰어난 작곡기법뿐만 아니라 그 형식에 담긴 표출내용마저 지적되어야 한다.프리드리히 블루메 - Friedrich Blume 교수도 지적했듯이 의 첫머리, 종반부 곡의 합창이나 등에서는 이미 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 같은 주관적 표출력의 확대를 볼 수 있다.다음으로 바흐의 두드러진 특색으로 편곡, 개작, 패러디의 세 가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바흐는 비발디나 텔레만 등 다른 작곡가의 작품도 편곡했을 뿐만 아니라 자작곡을 편곡하거나 개정하는 일도 많았다. 패러디라 함은 기존의 성악곡에 다른 가사를 붙여서 새로운 작품을 만드는 것으로 바흐의 경우는 교회음악에서 교회음악으로, 세속음악에서 교회음악으로 패러디하는 두 종류가 있으며, 교회음악을 세속음악으로 패러디하는 것은 현재까지 별로 발견되지 않고 있다. 패러디에 의한 대작은 를 들 수 있다.# Bach 주요 작품1. 관현악 모음곡 제 2번 B minor (BWV 1067)2.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BWV 1046~1051)
※ 독일 고유의 특징ㄱ. 소시지, 감자, 그리고 맥주- 독일의 음식은 주변 국가인 이탈리아의 스파게티나 프랑스의 화려한 음식들에 비하여 특 별히 훌륭하다거나 내세울 만한 음식은 없다. 이러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는 데 독일의 불리한 지리적 위치와 독일 특유의 음식 변천사가 그것이다. 우선 독일은 일조 량이 적고 산림지역이 많은 지리적인 여건으로 인해 고기 및 곡식이 부족하고, 해산물 또 한 그리 풍부하지 못한 편이다. 그리고 독일은 역사적으로 16개 주들이 요리가 각기 서로 다르게 변화되어왔기 때문에 현재 ‘전형적인 독일음식’ 이나 ‘국민음식’ 은 찾아볼 수 없 다 .이러한 연유로 독일인들은 과거로부터 돼지고기, 소고기, 감자, 호밀 등을 즐겨먹어 왔는데, 현대에 와서 독일인이 있는 자리에 꼭 빠지지 않는 음식이 있다면 바로 소시지와 감자, 그리고 맥주이다. 즉, 다양한 먹을거리의 부족으로 인해 이를 대신했던 음식들이 오 늘날의 독일 음식 문화의 특징을 만들어 냈다고 말할 수 있다. ‘사람은 빵만 먹고 살 수 없다. 반드시 소시지와 햄이 있어야 한다.’ 라는 독일의 속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소시지 는 독일 사람들에게 있어 빼놓을 수 없는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음식이 되었으며, 이들 음식은 대부분의 독일 가정 식탁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오른다.ㄴ. 재료의 원맛을 중시- 어떤 음식이든 본고장의 맛을 능가할 만한 것은 없겠지만, 특히 독일에서 맛보는 소시지 와 햄은 특별하다. 어떤 것을 먹든 육질 본래의 쫀득쫀득함을 느낄 수 있어 개인적으로 입에 맞는 것을 만나면 감탄이 절로 나혼다한다. 이것은 재료의 원맛을 중시하는 독일 음 식문화의 특징에서 나온 것이기도 한데, 햄이나 소시지의 끈기를 내기 위해서 낮은 급의 고기를 섞지않으며, 화학조미료나 착색제, 방부제 같은 것 또한 사용하지 않는 것이 그것 이다.ㄷ. 따뜻한 음식을 선호- 독일인들은 찬 음식보다는 더운 음식을 즐기며, 특히 점심시간에 따뜻한 음식을 먹는 것 을 선호한다. 특히 냄비에 채고, 콩, 고기 등을 넣고 어우러지게 끓여 따뜻하게 먹는 음식 인 아인토프(Eintopt)는 영양면에서도 좋고, 근면하고 검소한 독일인들에게 잘 맞는 그들 이 선호하는 음식이다.ㄹ. 환경을 중시- 독일인의 실용성과 검소함에 알맞게 이들의 품성은 음식에서도 나타난다. 자연환경보존에 대해 관심이 많은 독일인들은 물건의 포장을 최소화함은 물론 포장재료 또한 환경 친화적 인 것을 사용하는데, 이는 음식에 있어서 환경파괴의 초래를 대비하여 가능한 적게 먹고 자하는 그들의 뜻과 맞물린다. 이들은 음식을 하는데 있어 한 가지 재료를 남김없이 조리 에 사용하며, 필요없는 장식은 거의 하지 않는다. 또한 식사시 여러 코스를 즐기며 그릇 을 몇 개씩 사용하는 것조차도 환경오염을 초래한다고 생각하여 그 날 식사로 나오는 모 든 요리를 각자 커다란 접시 하나에 담아서 남김없이 깨끗하게 비우는 간편한 식습관이 정착되어 있다.※ 지역간 특징- 지방자치국가인 독일의 특성은 음식에도 그대로 나타나는데, 각 지방마다 먹는 법, 즐기 는 음식이 다르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들이 가장 즐기는 음식인 소시지와 맥주도 지방마다 조금씩 혹은 많은 차이를 보인다. 즉, 지방색을 중요시 여기는 독일에서는 요리 에서도 지방색이 농후하여, 각양각색의 그 지방 특유의 요리들이 있다. 독일의 지역은 지 리적으로 동부, 서부, 남부, 북부로 나눌 수 있다.ㄱ. 동부- 파프리카(Paprika; 서양고추)와 캐러웨이(Kummel) 등의 강한 향신료를 많이 사용한다.ㄴ. 서부- 라인 강 유역으로써 와인이 많이 나며, 다른 지방과 비교해 양념이 강하지 않다.ㄷ. 남부- 소시지와 맥주, 감자를 이용한 요리가 다른 지역에 비해 많아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 는 독일요리에 가장 가까우며, 전반적으로 기름기 많은 육류 요리가 많은 편이다.ㄹ. 북부- 바닷가에 면한 지역으로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영향을 받아 청어와 같은 생선을 많이 먹 는다. 이 밖에도 어패류의 요리가 풍부하다.※ 독일의 두드러진 요리문화ㄱ. 브뢰첸과 함께 아침을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신선하게 구운 브뢰첸을 빵집에서 사는 것이 독일 주부들의 주요한 일과 중 하나일 정도로 아침에 빵을 많이 먹는다. 이들이 아침에 많이 먹는 빵으로는 주먹만한 브뢰첸(Broechen)이 있는데, 프랑스의 바게트처럼 겉은 딱딱하지만, 밀가루, 효모와 물 이외에는 다른 첨가물이 들어가지 않는다. 한국인이 처음 이 빵을 먹으면 딱딱한 겉껍질 때문에 입안이 헐어 버리기도 한다. 독일인은 나이프로 반을 갈라 여기에 취향에 따라 버터나 마가린 또는 크림 치즈, 잼 등을 바르고 여기에 햄을 넣어서 2개쯤 먹는데, 유학간지 얼마 안된 한국인은 2개로 양이 안 차서 4∼5개를 먹기도 한다. 하지만 일요일 아침은 빵집이 문을 닫기 때문에 신선하게 구운 브뢰첸을 살 수 없어 그들은 매우 슬퍼하며 식빵 등을 먹는다.달콤한 빵에 길들여진 한국인에게 가장 맛있는 빵은 다양한 종류의 독일식 케이크인 쿠헨(Kuchen)이다. 하지만 오후 3시쯤 커피나 차와 함께 먹는 쿠헨은 비만의 주범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렇게 커피와 쿠헨을 먹는 간식 시간은 독일인에게 매우 신성한 휴식과 사교의 시간이지만 유학온지 얼마 안 되는 한국 음대생들이 피아노 연습을 하다가 시끄럽다는 이웃 주민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의 훈계를 받는 시간이기도 하다.ㄴ. '순수한' 독일인의 친구, 맥주독일에는 4천여 종 이상의 맥주가 전국 각지에서 생산되고 있다. 예전에는 양조장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지만 대형화 추세 때문에 현재는 1천300여 개만 살아 남았다.우리나라 지방마다 특유의 소주가 있는 것처럼 현재 독일 각 지방에는 그 지방 특유의 맥주들이 있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비교적 인기 있는 맥주도 있는데 깨끗한 맛의 필스맥주, 적갈색으로 호프 맛이 강한 알트맥주, 황금색으로 맛이 산뜻한 쾰쉬맥주, 텁텁한 맛이 나는 베를린너비스, 훈제한 맛이 나는 라우흐비어 등이다. 오랜 연방제 전통 때문에 생겨난 각 지방 고유의 맥주들은 -포천 이동 막걸리나 전주 비빔밥처럼 - 지역 정체성을 나타내는 상징물들이다. 예를 든다면 쾰른 사람들은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쾰쉬맥주만을 고집스럽게 마신다. 그러나 뮌헨 사람들은 쾰쉬가 맛이 없다고 거들떠보지도 않으며, 그 지역 특산인 뢰벤스브로이 맥주만을 고집스럽게 마신다.일반적으로 독일 국민은 자국 맥주에 대해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이들의 자부심은 자국 맥주 생산에 적용되는 '순수규정(Reinheitsgebot)'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이것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음식물에 대한 규정으로, 1516년에 발효되었다. 여기에 따르면 맥주는 보리(후에 맥아로 변함), 호프 그리고 순수한 물로만 만들어야 하며, 다른 첨가물을 넣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이 규정이 나오게 된 배경을 잠시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옛날 독일 전역에서는 맥주의 맛과 향을 내거나 보관의 장기화를 위해 다양한 첨가물들을 넣었는데, 이 중에는 독초들도 있었다. 이렇게 양조된 맥주에 의해 국민 건강이 심각하게 위협을 받았으며, 행정 당국자들은 이를 막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순수규정'을 발효한 것이다.대다수 독일인들은 맥주가 신비한 효능을 갖고 있다고 믿고 있다. 물론 맥주에는 - 임상적으로 증명된 바와 같이 - 필수 비타민이 풍부하고, 홉성분이 다량 함유되어 있는데, 이는 침, 위액, 쓸개즙의 분비를 촉진하여 식욕 증진과 이뇨 작용을 돕는다. 하지만 그들의 맥주사랑은 단순히 음료를 즐기는 정도가 아니다. 이는 필자가 공부하던 쾰른 지방의 속담에서도 잘 발견할 수 있는데 "쾰쉬(맥주)는 갈증을 해소해 주는 청량제가 아니라, 어느 경우에나 나의 곁에 있고, 나와 희로애락을 함께 할 수 있는 친구이다." 라고 한다. 그들에게 맥주는 사람을 취하게만 하는 알코올 음료가 아니라 블행에 빠진 사람을 위로해 주는 둘도 없는 친구로 여겨지고 있다. 언젠가 필자의 친구가 공부와 삶의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투신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이 친구는 몸을 심하게 다쳤는데, 몇 차례의 대수술을 통해 어느 정도 상태가 호전되었고, 바로 재활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여기서 친구가 정신적으로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자, 의사는 맥주는 당신 마음을 편하게 해 줄 것이라는 말과 함께 매일 저녁 작은 맥주 한 병씩을 주었다. 한국에서 상상할 수 없는 이 행동은 맥주의 신비한 효능에 대한 믿음에서 나온 것이다. 독일 맥주를 이해하는 것이 독일인 아니 독일 문화를 이해하는 지름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