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희곡작품분석의 실제「살아있는 이중생 각하」현대희곡작품 분석의 실제 - 「살아있는 이중생 각하」Ⅰ. 들어가며희곡의 기본요소로는 구성, 등장인물, 사상, 어법, 소리, 장관 등 있다. 이를 바탕으로 분석해 볼 작품은 오영진의 「살아있는 이중생 각하」로, 이는 보여주기 문학의 한 유형으로 그 당시 친일파가 해방 후에도 득세하는 상황을 풍자, 비판하고 있는 극이다. 시대의 한 단면을 잘 나타내는 이 작품을 통해 인물제시 방법이나 갈등구조, 구성단계는 물론 작품 안에 내재되어 있는 시사성과 풍자적 해학성 등을 사회와 연관시켜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Ⅱ. 작품 설명오영진(1916~1974)의 「살아 있는 이중생 각하」는 「맹진사댁 경사」로 잘 알려져 있는 작가의 희극적 재능이 뛰어나게 발휘된 작품이다. 3막 4장으로 된 「살아 있는 이중생 각하」는 1949년 5월 에 의해 초연 되었으나 별 주목을 끌지 못했고, 1957년 극단 이 으로 개명하여 공연하면서 대단한 호평을 이끌어냈다.Ⅲ. 작가의 의도와 관점이 작품은 해방과 더불어 마땅히 청산되었어야 할 친일세력이 해방 후에도 새롭게 밀려드는 외세에 아첨해서 권력과 부를 누리며 여전히 건재하는 병든 사회상을 가차없이 풍자, 비판하고 있다. 이중생의 몰락과 사망은 낡고 부패한 기성질서의 지배로부터 정의롭고 건강한 질서가 지배하는 새 시대로의 전환에 대한 희망을 담고 있다. 희극의 결말은 통상 관객들이 바람직하게 소망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어 있다. 물론 좀 평이하고 진부한 주제를 띄지만 연극적 효과를 빌려 전달한다면 더욱 생동 감있게 느껴진다. 살아있는 움직임으로 우리의 현실을 얘기하고, 등장인물의 느낌이나 감정들이 배우들의 연기로 뿜어져 나오기 때문에 우리가 이해하기 쉬워지며, 공감하기도 용이하다. 희곡은 그 자체만으로는 단지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지만 그것이 연극으로 전환되면 현실이 되는 것이다.Ⅳ. 희곡작품의 분석1. 구성(Plot)희곡에서 구성은 뼈대를 의미한다. 구성이 있어야만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구성은 구--- 인생이 길거니 짧거니 사랑이 둥글거니 모가 났거니 어이그 그이들이 당신 밥먹여 준답니까? 아버지께선 임업회사 방계루 지업회사를 만든대요. 오이씨 자금으로---송달지: 결정됐대?하주: 여보세요. 돈 있으면 누군들 못해요. 해방 후에도 돈 한푼 안들이고 암야 5만정보를 손에 넣은 아버님이예요. 알아 들었어요?송달지; 그게 뭐, 아버지 건가? 일본놈에게서 뺏은 국유림이지. 아버진 그 관리인이다 뿐이지.하주: 관리인이자, 주인이지 뭐유.송달지: 그렇게 되나?(중략)임표운: (떨며) 저야 뭐--- 그저 깽팬가 했죠. 그랬더니 그게 바로 형사이더군요. 저를 내리우고는 철거덕 사장님께 고랑을 채우고는---하주: 고랑을?임표운: (여전히 떨며) 네, 그러구는 그 차에 올라타더니 쏜살같이 을지로 쪽으로 가는게 중부서가 틀림없읍니다.우씨: 글쎄 무슨 이유로 우리 영감을---하주: 전에라두 아버니께 좋찮은 건이 있었에요?우씨: 그 어진 양반이 뭘 했다구 넌 상서롭잖은 말도 하는구나.임표운: 그저 제 생각엔 영강님이 임업사업을 도맡다시피 했는데다가 또 막대한 원조를 얻어 제지회사까지 차리게 되니까--- 아마 누가 시기해서 고자질이나 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만---이처럼 「살아있는 이중생 각하」는 이야기가 전개될 숨도 없이 바로 위기가 찾아온다. 이중생이 일제시절 국유림을 관리하였다. 현재는 이것을 바탕으로 부를 축적하려는 상황이 전개되다가 덜컥 감옥에 가게된 것이다. 즉 관청손님을 맞이하려던 잔치 분위기에서 갑작스런 반전이 일어난 것으로 위기와 함께 사건이 전개된다.2) 제 2막제2막은 이 희곡에 있어서 빠져서는 안 되는 중요한 부분이다. 만일 이것이 없었으면 "악한 죄를 지었다...고로 망한다"라는 단순한 권선징악의 구조만을 띄었을 것이다. 하지만 제2막을 통해서 더욱 풍자적으로, 더욱 비참하게 이중생의 몰락을 이끌어갔다.⑴ 제 1장이 부분은 앞의 제1막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해서 이중생 집안이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주 내용이다. 이중생은 최변호사를 통해서 자신의 죄 때문에의원: (그냥 달지에게) 보건 시설 같은 것은 어떻습니까, 선생이 의사라구 허시니 말씀입니다만......최변호사: 보건 시설?김의원: 네, 우리나라처럼 보건 시설이 불충분한 나라도 없지요. (이중생 펄펄 뛴다) 그야 그럴 것이, 지금 꺼정은 저마다 도회지서만 개업할랴 했구 주사 한대 두 돈 있는 이만 맞게 생겼구, 돈 몇환 있구 없구루 귀중한 생명이 왔다갔다하지 않었습니까. 무료루 치료해 주는 국립병원이 있지만, 아주 시설이 불충분하거든요.옆방의 병풍 뒤에 숨어 김의원의 일거수일투족에 신경을 곤두세우던 이중생은, 이중건이 유서의 초를 잡은 것이 자기라고 말하자 "기절할 듯"이 놀래면서도 그 자리를 뜨지 못하고 무료 병원 건립으로 결정되는 순간엔 전혀 손쓰지 못한다. 자신이 판 함정에 자신이 빠진 것이다. 이 과정에서 병풍 뒤에서 송달지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흥분하는 모습이 우리에게 재미를 더해준다. 최변호사가 재산을 지키기 위해 애를 쓰지만 김의원의 완강한 의지에 눌리고, 송달지의 뜻하지 않은 말 한마디에 두 손을 들어버린다. 재산이 모두 날아간 상황에서 이중생의 발악하는 모습은 이 희곡의 압권이다. 나름대로 비극적인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모두가 웃음 짓게 한다. 거짓 자살을 할 정도로 사활을 걸었던 재산을 지킬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결국엔 허무하게 끝을 맺게 되었다. 즉, 이 극에서 가장 핵심이 되었던 재산을 지키는 것이 재산이 무료병원 건립사업에 기증이 됨에 따라 극은 결말로 치닫게 된다.결론에서 이중생은 송달지에 대해 분노를 표하게 되고 또한 최변호사와 논쟁을 벌이다가 그와 결별하게 된다. 이 와중에 이중생이 아들인 하식이 도착한다. 이중생은 이내 하소연을 하지만 가족들의 냉대를 받다가 자살을 함으로 막이 내린다. 결말이기는 하지만 최변호사와의 논쟁, 가족들과의 관계 등으로 인해 극은 긴장감을 가지며 하나하나 얽힌 이야기들이 풀리게 되는 것이다.4) 인과응보의 구조(전체적인 구성)기존의 발단-전개-위기-결말 등는 재산으로 불법 행위로 불리다가 사기를 당하고 죄가 발각되어 진퇴양난의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리하여 출구를 이곳 저곳 모색하다가 끝내는 죽음의 길을 택하는 어떻게 보면 불쌍한 인물이다. 그것은 마치 작가가 이 시대의 졸부들에게 반성하라는 외마디의 고함과도 같다.⑵ 우씨 (54세, 그의 처)이중생의 부인으로써 그녀 역시 부창부수로 욕심이 많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재산을 지키려 한다. 우씨는 가정의 모든 일을 총괄하지만 그리 능력이 있지는 않다. 사람을 부리는데도 인정이 없어서 하인들로부터 불만을 산다. 하지만 옆집 여인 박씨만은 신임하여 친근하게 대한다.⑶ 하주 (35세, 맏딸)남편인 송달지와는 달리 의지가 강하고, 현실 감각이 뛰어나다. 그래서인지 남편을 무시하기 일쑤이고, 꼭두각시 부리듯 한다. 자매와의 관계도 원만치 않은 것으로 보아 인정도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하주 역시 욕심이 많다.⑷ 송달지 (40세, 사위)무능력하고, 의지가 약하다. 또한 솔직하고 진실하여서 거짓행위를 잘 못한다.그래서 이중생이 꾸민 일을 망쳐 놓기도 한다. 주위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생활하지만 마지막에는 자신의 의지를 표명하고, 나라의 안전을 위하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고 주장한다.⑸ 하연 (30세, 막내딸)아버지인 이중생의 욕심 때문에 사기꾼에게 농락당하고서 이중생을 미워한다. 그리하여 집안의 문제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일에만 열중한다. 한편으로는 철없는 행동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버지가 경영했던 공장에 취직하는 등 아버지와는 비교될 정도로 건실한 여성이다.⑹ 하식 (24세, 아들)아버지가 일본인의 환심을 사기위해 징용으로 끌려간 인물이다. 아버지의 행동에 힐난한 비판을 할 만큼 정의를 중요시하고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등 호국적 인식을 갖고 있다. 이는 이 시대의 젊은이들이 같은 마음으로 미래의 새 일꾼이 되기를 바라는 작가의 바람일 것이다.⑺ 이중건 (63세, 그의 형)동생의 출세를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한 형이다. 그렇지만 의롭고 우애가 좋은 것은 아니다. 동부정적 인물들이다. 이에 반해 이상적인 것을 대변하는 인물로는 하연과 송달지, 하식, 김의원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새롭게 다가올 시대를 인식하고 이에 걸맞는 가치관에 따라 행동하려는 인물이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하연이나 송달지, 하식 등은 힘이 없다. 이들은 갈등을 일으키지만 미묘한 마찰에 불과할 뿐이다. 현실적인 힘의 불균형에 의해서 흐름에 별다른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이중생: 뭣을 어떻게 해? 이 이중생이가 한 번 허기루 결심했던 걸 변하는 위인인 줄 알어? 그래 내 사위놈이 사망진단서에 도장 안 찍었다구 까딱할 내야? 한 번 내쳤던 걸음은 촌보두 물러서지 않는 게 이중생의 주의 주장야, 내 결심을 누가 꺾는단말야현실적인 힘의 불균형에 의해서 아무리 저항하고 비꼬아도 별다른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흐름상 이들의 욕망은 이뤄지는 듯 했으나 뜻밖의 계기로 실패로 돌아간다. 사람이 죽어도 고인의 빚은 상속된다는 법과 함께 김의원이 등장해서 이중생의 재산으로 병원건립을 하는 것으로 이끌고 가기 때문이다. 상속법의 대가라는 최변호사가 이러한 법을 몰랐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면서도 이젠 아무리 발버둥쳐봤자 새 시대의 도래를, 그 흐름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중생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이중생과 최변호사는 의기투합한다. 이 과정에서 친일과 함께 미군정에 붙으려 했던 이중생의 이중적인 삶이 드러나고 최 변호사 또한 계획했던 모든 일이 수포로 돌아가자 마지막으로 자신의 이익은 보장하라며 본색을 드러낸다.2) 공산주의에 대한 경고이것은 월남한 오영진의 목소리인데 하식의 대사를 통해 나타난다.하 식: 제가 하식인 걸 아시겠습니까. 제 이 얘긴 왜 하나도 묻지 않으십니까?이중생: 오 참! 그래 얼마나 고생했니?하 식: 일본놈들에게 끌려가 죽을 고생을 하다가 그것두 모자라 우리 나라가 독립된 줄도 모르고 화태에서 십년이나 고역을 치르고 돌아온 하식이올시다. 화태(사할린)에서는 아직두 아버지 같은 사람이 떠밀다시피 보낸 젊은이와 북한에서 잡 헛헛
[한국정치연구]Ⅰ. 1997년 암울했던 그때경제개발 이래 35년 간 한강의 기적을 이룩했던 한국경제는 97년 말 외환위기의 발발로 한순간에 맥없이 무너졌다. 한국에서 발생한 경제 위기는 경기 침체, 경상 수지 적자 등 실물 경제의 악화뿐만 아니라 동남아 외환위기, 국제 금융 자본의 이탈, 정부의 정책 실패 등 총체적 요인의 결정체였다. 1997년 12월 국제통화기금으로부터 구제 금융을 받은 후 2001년 8월 23일 남아있는 IMF 차입금 1억 4천만 달러를 상환했다. 이는 2004년 5월까지 갚기로 했던 것을 3년이나 앞당겨 갚은 것이며, 이로써 우리나라는 IMF의 정책 간섭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었다. 외형상 위기 완전 극복하고,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맞이한 지금 IMF 경제 개혁이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는 과제는 무엇인가.Ⅱ. 한국 경제 위기의 원인1. 위기발생과정① 기업들의 연쇄부도② 동남아의 외환위기와 종금사(종합 금융사)의 돈놀이※ 종금사의 돈놀이㉠ 이자가 싼 단기 자금을 외국에서 빌림→ 동남 아시아, 한국, 러시아 고금리 장기 채권을 사들임㉡ 동남 아시아 외환 위기 → 장기 채권 무용지물 → 장기채권을 담보로 달러 빌려주었던 국제 금융 기관 빚 독촉 → 국내 외환 시장에서 달러 사들임 → 달러값 ↑③ 금융 개혁법 무산※ 11월 18일 금융 개혁 법안 상정㉠ 총 13개 법안 가운데 11개 법안 여야 합의 이루어졌으나 2개 법안 합의 X㉡ 2개 법안: 한국은행법, 통합 금융 감독 기구 설립법㉢ 정부와 여당: 금융 기관의 감독권 장악하려다 뜻대로 되지 않자 시급한 금융 개혁법 자체를 무산시킴.㉣ 결과: 신뢰감 회복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 깨버린 결과 외화 인출 사태가 이어짐.→ 외환 위기, 금융 위기 파국으로 치달았음.2. 한국 경제 위기의 근본 원인① 정부㉠ 민주적 시장 경제 질서의 미정착과 도덕적 해이 심화ⓐ 과거 30년 동안 정부 주도의 성장 일변도 정책 추진 → 민주주의를 토대로 한 시장 경제 구축되지 못함.ⓑ 다양한 이해 관계와 갈등을 민도덕적 해이가 심화되고, 자원 배분의 비효율성이 초래됨.※ 정경 유착- 재벌: 회계 장부 엉터리로 써 회사돈 빼냄 → 권력에 바침- 권력: 금융기관에 압력 행사 → 재벌에게 막대한 부실 대출 해줌 → 검은돈 챙김㉡ 세계 경제 변화에 대응 부족ⓐ 통제 능력도 없이 자본시장, 금융 시장을 개방함.ⓑ 문민정부의 말뿐인 세계화 정책㉢ 잘못된 환율 정책ⓐ 종금사 해외지점과 자회사에 한국은행이 가지고 있는 달러를 투입해 만기가연장되지 않는 단기 부채를 갚는 데 쓰게 했음. → 달러부족ⓑ 달러에 대한 원화 가치의 지나친 평가 절하를 막기 위해 외환시장에 개입)- 과정: 원화가 평가 절화되기 전에 달러를 사두려는 사람에게 한국은행이 보유한달러를 한국은행이 지키고자 하는 환율 수준에서 팔아야 함.- 결과: 달러바닥 → 환율 ↑ → 원화 평가절하 막지 못함 → 외화낭비㉣ 미숙한 대기업 부도 처리 & 기업에 대한 각종 규제② 관치 금융㉠ 정부가 인사권을 통해 사실상 장악하고 있었음. → 대규모 부실 대출 지속예) 1997년 한보 사태 - 모 은행장. 한보에 대출해주라는 정부의 압력 거절했다 사표.㉡ 대출: 객관적 기준으로 결정 X, 정치권과 금융 기관 내 실력자의 결탁으로 결정.㉢ 이러한 관치 금융이 정경유착을 지탱해주고 있음.③ 기업㉠ 방만한 사업 경영ⓐ 관치경제시스템ⓑ 대마불사(大馬不死)의 인식이 보편화ⓒ 권력으로부터 대접 → 정부 특혜 & 많은 은행돈㉡ 불투명한 경영㉢ 고비용 구조ⓐ 고금리- 원인: -관치 금융 → 부실 기업에 막대한 지출 → 자금 수요 ↑-차입 경영 → 관치 금융에 의해 정치권 줄만 잘 서면 자금 얻을 수 있음.- 결과: 자금 필요하고 대출해 줄 만한 기업은 대출 받지도 못한 채 늘 자금 부족.ⓑ 고임금- 원인: 노동 시장 경직 → 임금 인상 요구- 결과: 노동자의 도덕적 해이 → 생산성 ↓Ⅲ. 구제 금융 지원 내용1.구제 금융 지원 내용① 총 지원금: 570억 달러IMF 자금은 3년 거치 2년 상환의 3년간 대기성 차관② 지원 받는 과정㉠ IMF는 1차 김대중 대통령, 비상 경제 대책 위원회, 개혁 의지 재차 천명 → 추가 지원금 100억 달러(1차 방어선 중 20억, G7 80억) 앞당겨 받기로 함 → 2차 위기 모면2. IMF 합의 내용 구 분내 용거시경제적목표◆GDP 성장률 : 98년 3%, 99년 잠재성장률 수준(약 5%)◆물가상승률 : 5% 이하◆경상수지 적자 : 98년 GDP대비 1% 이내(97년은 3%)◆외환보유고 : 98년말까지 2개월분의 외환보유고 적립통화 정책◆목표 : 물가상승을 억제하기 위한 긴축통화정책◆내용 : 단기적으로 고금리 허용, 변동환율제 유지재정정책◆목표 : 재정적자 축소와 (부실채권정리에 따른) 금융부문 부담 완화를 위해 GDP의 1.5%에 해당하는 재정조정 실시◆세수 확대 : 교통세와 특별소비세 인상, 세금감면조항 축소◆지출 축소 : 경상경비 축소 및 SOC투자 등의 자본지출 축소금융산업구조조정◆기본방향 : 명확하고 엄격한 퇴출정책, 강력한 시장과 감독정책, 경쟁촉진◆퇴출정책 : 9개 부실 종금사 정리, BIS기준(위험가중 자기자본비율 8%)에 미달하는 은행은 증자나 M&A를 통해 구조조정◆예금보장 : 2000년말까지만 전액 보장, 이후부터는 소액예금자만 보호◆회계의 투명성 제고 : 외국 회계법인이 대형금융기관의 회계장부 감사◆통합금융감독기구 설립 : 독립성 확보 (*두 법안의 입법과정에서 IMF가◆한국은행 독립 : 물가안정을 주임무 자신의 의견을 강력 반영할 계획*)◆개방 : 98년 중반까지 외국은행 자회사 및 외국증권사 현지법인 설립 허용무역 및자본자유화◆무역자유화 : 무역관련 보조금, 수입선 다변화제도, 규제적인 수입허가제 폐지에 관한 일정표제시 요구◆자본자유화- 외국인 주식매입한도 : 종목당 한도(현 26%)를 97년말 50%, 98년말 55%로 확대, 1인당 한도(현 7%)를 97년말 50%로 확대- 기업의 해외차입 : 98년 2월말까지 제한 폐지기업지배구조 및기업구조◆ 기본방향 :- 금융개혁을 통해 재벌의 은행 차입의존 경영행태 쇄신- 기업경영 투명성 제고 : 기업에 의한 감사 의무화, 결합재무제표 도입, 계열사간 상호지급보증 폐지- 파산관련제도 : 부실기업에 대한 정부보조나 건전기업과의 강제합병 금지노동시장◆노동시장 유연화 : 정리해고 제한 완화, 파견근로제 도입◆고용보험제도 강화Ⅳ. 위기극복을 위한 노력1. 기업① 「5+3원칙」에 따른 제도 개혁의 추진5원칙? 경영 투명성 제고? 재무구조의 획기적 개선? 핵심기업 설정? 상호지급보증 해소? 지배주주와 경영진의 책임성 강화3원칙? 제2 금융권 경영지배구조 개선? 순환출자와 부당내부거래 차단? 부의 변칙상속, 증여 금지② 외형 중시 경영 → 내실 경영㉠ 수익성 위주의 경영으로 기업의 재무구조가 지속적으로 개선됨㉡ 영업이익 증가와 대규모 유상증자를 실시하여 부채비율 및 자기자본비율의 개선③ 투명성 제고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 기업회계 기준을 국제회계 기준에 부합되도록 개정(1998.12)㉡ 분식회계 방지를 위한 '외부감사선임위원회' 구성 의무화(1998.2) 및 부실 감사에 대한 엄격한 책임추궁과 제재조치 강화㉢ 독립적인 사외이사 선임 의무화㉣ 대표소송권?회계장부열람권 등 기업경영에 대한 주주의 경영감시 기능 제고 및민간차원의 소액주주운동 활성화④ 상시구조조정 시스템 정착㉠ 상시적인 기업구조조정 시스템으로의 전환㉡ 기업구조조정회사를 통한 부실기업의 경영정상화 및 전문적인 구조조정 체제 구축ⓐ 기업구조조정투자회사(CRV)ⓑ 구조조정전문회사(CRC)⑤ 책임경영 체제의 확립 및 전문경영인 체제 확산㉠ 부실금융기관 관련자에 대한 민?형사상 책임추궁 및 부실기업 경영진에 대한책임추궁 강화㉡ 민간기업?금융기관뿐만 아니라 정부투자?출연기관에도 전문경영인 체제 확산,특히 외국계 인사도 CEO로 등장⑥ 기업부담 완화를 통한 기업의 활력 제고㉠ 저금리 정책기조를 유지하여 기업의 금융비용 부담을 완화㉡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 ? 행정규제 완화 ? 준조세 부담의 완화 등 기업 경영 환경 개선2. 금융구분조치내용은행경영의자율성 확립? 금융기관 인사에 정부 불개입? 정부가 대주주인 은행에도 일치제도의 도입(98.6)클린뱅크의 탄생 및 은행의 경쟁력 강화? 부실금융기관 정리? 금융기관의 대형화 ? 겸업화를 통한 금융 산업의 경쟁력 제고예금부분보장제도 도입? 예금 전액보장 → 부분보장제도로 전환? 금융기관 파산시 금융기관별로 예금자 1인당 최고 5천만원까지 보호Ⅴ. 10년이 지난 지금한국에 경제 위기가 몰아닥친 후 10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은 외형상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사회 곳곳에는 삶에 대한 호소를 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는 IMF 경제 위기 10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가 한계에 도달했다는 신호라고 볼 수 있다. 지난 97년 한시가 급한 정부로서는 위기를 해결하는데 필요 수준을 넘어선 IMF의 경제 개혁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급진적, 일방적인 개혁은 위기를 극복하는 데 있어 수익 중심의 기업, 금융기관을 양산하는 등 국가 기반을 튼튼하게 하는 긍정적인 성과는 있었으나, 저성장, 양극화라는 또다른 문제를 야기하면서 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이는 경제 위기 이후 재무구조 개선과 단기실적 향상을 중시하는 주주자본주의가 확산되면서 기업들은 재무건전성 향상 위주로 경영 방식을 바꾸고, 설비투자에는 소홀히 함에 기인한다. 이로써 경제 위기 전 활발한 투자로 고용과 소비로 이어진 고도 성장기의 튼튼한 구조는 사라지고 말았다. 현재 저투자 현상은 한국 경제의 성장기반을 약화시키고, 고실업 특히 청년 실업이라는 새로운 문제를 낳고 있다. 신조어 88만원 세대는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가는 상위 5%를 제외한 평생 88만원(비정규직 평균 월급 119만원에 20대 평균 급여 비율 74%를 곱한 수치)가량의 월급을 받게 될 20대를 지칭하는 말로, 현재 청년 실업의 현상이 심각한 사회문제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95%의 20대 전체는 88만원에 머물 수 밖에 없고, 이는 사회의 나머지 부분에도 많은 문제를 야기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투자 부진으로 인한 청년 실업과 비정규직 양산은 저성장과 양극화.
[대안교육과 대안학교를 읽고]대안학교.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 정말 친숙한 단어다. 자주 들어온 말이라서 익숙하지만 정확하게 이 학교가 어떠한 학교인지, 무엇을 가르치는지, 왜 생겼는지, 우리나라에는 어떠한 대안학교가 있는지 등 어떠한 것도 자세히 알고 있지 않았다. 부끄럽지만, 내게는 대안학교가 그저 추상적인 단어일 뿐이었다. 이종태가 지은 대안교육과 대안학교 책에는 대안학교. 대안교육이 나온 이유, 그것들이 우리 교육에 던지는 시사점, 의미, 우리나라 교육의 현실, 대안교육과 대안학교가 풀어야 할 과제들 등 여러 소주제가 잘 정리되어 있었다.이 책을 파고들기 전에 나는 부록 2. 특성화고등학교 교과과정표를 보았다. 국어, 영어, 수학, 과학처럼 일반 고등학교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보통교과도 있었지만, 텃밭 가꾸기, 농장체험, 국토순례, 배낭여행 등과 같은 일반 고등학교에서는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특성화교과들이 있었다. 무조건 입시를 위한 공부만이 아닌, 환경과 더불어, 공동체의식을 가지고 함께 하는 교육. 이것이 진정한 교육이 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과목은 마음일기와, 성교육, 청소년비행예방 프로그램이었다. 요즘 우리사회의 교육은 경쟁에서 이기고자하는 수단으로써의 교육이 되고 있는 것 같다. 항상 남보다 앞서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서 높은 사회적 지위를 위해서 공부하고, 남들과 경쟁하다 보니 청소년들이 중간에 포기, 좌절하거나 일탈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와 같은 현상을 청소년 비행예방 프로그램을 통해서 조금이나마 줄이거나, 일탈 청소년들을 사전에 도와줄 수 있을 것 같고, 성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호기심으로 인해 일어나는 성범죄를 성교육이라는 과목을 도입함으로 사전에 예방할 수 있을 것 생각이 든다.“ 밥을 지을 줄은 모르지만 가정 시험은 만점을 맞고, 갑오경장의 주요 내용은 외워도 그 역사적 의미는 모른다 ” “ 전 스물다섯 살이고 대학을 두 군데나 졸업했습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전혀 없어요. 폭설 속에 차를 타고 시골길을 달리다가 팬벨트라도 끊어지면 전 아마 망할 놈의 피타고라스 정리를 외우며 얼어 죽을 거예요”내가 이 책 중에서 가장 절실히 동의했던 부분이다. 우리는 학교를 다니면서, 교사가 가르치는 교과내용을 그대로 스펀지처럼 흡수하지만, 실제 생활에서 발산하지는 못한다.능률성, 효율성 때문에 단절된 교육이 실행되고 있는 것이다. 온갖 지식이 머릿속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것을 살아있는 지식으로 사용하지 못하고 단순히 가지고만 있게 되는 교육.나는 ‘학교에서 가르쳐 주는 것을 내가 왜 배워야 하는지, 어떠한 점에서 도움이 되는지, 실생활에서 쓰여질 수 있는 것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아무런 의심. 비판도 하지 못하고 무조건적으로 시험을 잘 보기 위해 받아쓰고 암기해왔었다. 우리 학생들은 사회와 정치구조를 분석해 현실을 냉철히 파악할 틈이 없다. 그 결과 단절된 학교교육을 받은 대중들은 다양한 정치 현상들 사이에 연관성을 파악할 능력을 상실한 채 지배층이 제시하는 정책과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경쟁과 효율의 추구를 특징으로 하는 교육. 이 처럼 문제 많은 빠름의 교육을 막기 위해 ‘느림’의 교육이 나왔다.“잘 치는 것은 중요하지 않아. 그런 마음이 크게 되면 기교만 늘게 되지. 나는 스물 살에 음악을 시작했어.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지. 늦게 시작한 것이지만, 우리 선생님은 오히려 나를 천천히 가르쳐 주셨어. 건반 하나하나에서 울려나오는 소리를 즐겨보는 그런 식으로 말이야. ‘도’ 하나를 치더라도 그 음의 아름다움과 느낌을 가져보려고 하는 사람은 아름다운 ‘도’를 칠 수가 있고 그냥 잘 연주하려는 사람은 아무리 실수 없이 연주를 하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주지 못해”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교육은 이처럼 하나를 하더라도 그것에 대해 살펴보고, 즐기고 느끼는 것이다. 느림의 교육은 빠른 교육의 대안으로, 빠른 교육이 추구하던 경쟁 대신에 공생과 협동을 추구하고, 효율 대신에 진정한 만족을, 양 대신에 질을 추구하는 교육으로, 대안학교나 홈스쿨링 등이 있다. 대안학교가 나오게 된 계기는 공교육이 가지는 문제점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공교육이 이렇게 반신불수 지경에 이른 것도 시험 문제만 쳐다볼 뿐 정작 삶의 문제는 외면하는 데 있음을 알기에, 대안학교는 학교와 사회에서 일어나는 온갖 문제들을 배움의 기회로 삼고자 애쓰고 있다. 그런 뜻에서 대안학교는 아이들을 위한 학교만이 아니라 교사와 부모들을 위한 학교이기도 하다. 아이와 어른이 함께 배우며 성장하는 곳이다. 내가 더 찾아본 바에 의하면 모 대안학교에서는 아이들이 교사를 별명으로 부르고, 높임말을 쓰지 않는다고 한다. 진달래, 팬더, 바람개비, 이런 별명을 스스로 짓기도 하고 서로 지어주기도 한다. 대개의 부모와 자식 사이가 그렇듯이, 교사와 학생 사이에서도 예사말을 하면서 서로를 존중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초등 대안학교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대안학교 중 하나인 벼리학교는 오후에는 주로 노작수업을 진행하며, 수업이 끝나고 함께 모여 그날의 느낌과 생활을 나누며 마무리하며, 볍씨학교 경우에도 학습과 관련된 사교육은 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한다. 나처럼 무조건적으로 외우는 학습이 아니라, 이와 같이 생활과 연관해 체험하고, 느끼고 자기 주도적으로 공부하는 이들. 부럽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과거에 대안학교는 학교 부적응자 등을 위한 특별학교라는 인식이 강했다. 내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도 대안학교는 부적응자들이 가는 곳이라고 회피하고 꺼려했다. 하지만, 이제 새로운 교육과정을 바탕으로 한 여러 형태의 대안학교가 나오며 제도권 교육의 대안이 될 수 있는 과정으로 인식되며,10년 만에 대안학교가 정규학교로 인정되고, 새로운 형태의 대안학교가 연달아 설립되면서 이제는 대안학교를 공교육의 파트너로 인식되고 있는 것 같다.
지눌의 생애와 사상Ⅰ. 들어가며죽음이란 삶의 총결산이기 때문에 한 사람의 삶이 어떠하였는가는 그 사람의 죽음의 장면을 보면 알 수 있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의 죽음은 그들 삶의 질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데 보조국사 지눌의 생의 마지막 장면 또한 그가 어떠한 삶을 살았는가를 잘 보여준다. 「불일보조국사비명」에 의하면 그는 타계하던 날 새벽 목욕재계하고 법당에 올라 향을 사루고 큰 북을 쳐 송광사 내 대중을 법당에 운집시켰다. 그리고는 육환장(六環杖)을 들고 법상(法床)에 올라 제자들과 일문일답으로 자상하게 진리에 대한 대담을 계속하였다. 마지막으로 한 제자가 [옛날에는 유마거사가 병을 보이었고 오늘은 스님께서 병을 보이시니 같습니까 다릅니까.]라고 물었다. 같은가[同] 다른가[別]하는 질문은 선가에서 진리를 시험해 보는 질문이다. 임종이 가까운 스승께 이러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것은 오직 진리의 세계에서만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여기에 대하여 지눌은 육환장을 높히 들어 법상을 세 번 내리친 다음 [일체의 모든 진리가 이 가운데 있느니라]하고는 법상에 앉은 채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이때가 1210년 3월 27일 그의 나이 53세였다. 그의 생의 마지막 장면은 최후의 순간까지 제자들과 진리에 대한 가르침으로 일관하신 불타의 입멸 장면을 연상하게 한다. 그는 진리 속에 살다가 진리 속에 간 영원한 스승이다.Ⅱ. 지눌의 생애지금으로부터 약 840년 전인 고려 중엽 제18대 의종 12년(1158) 황해도 서흥군에서 당시 국학(國學-지금의 대학 및 대학원과 같은 기관으로 신라 및 고려에서 쓰던 이름. 조선시대의 성균관)의 학정(學正-국학 및 성균관 안에서 종사하는 정 8품의 벼슬)인 정광우를 아버지로 부인 조씨를 어머니로 하여 태어났으나, 태어날 때부터 허약한 고병이 잦아 백방으로 약을 썼으나 효험이 없었다. 부친은 부처님 전에 맹세하기를 "병만 나으면 자식을 부처님께 바치겠으니, 병만 낫게 해달라"고 기도하였다. 이후 아이의 병은 깨끗이 나았고 데까지 맡은 일을 다하여 인연따라 심성(心性)을 수양하여 한 평생을 구속 없이 지내어 달사(達士)와 진인(眞人)을 따르면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그러나 보제사 이후 각자의 득실에 이끌려 사방으로 흩어지고, 스님은 개인적인 수행에 전념하게 된다. 그러던 중 전라도 창평현(나주) 청원사에서 어느 날 육조단경(六祖壇經)은 보다가 라는 구절에 이르러 일찍이 겪지 못했던 것을 체험하고 일어나 법당 안을 돌며 기뻐하였다. 이후 더욱 굳건한 마음으로 구도에 전념하였다.그 후 스님은 28세(1185)되던 해 예천 하가산 보문사에서 3년 동안 대장경을 열람하게 된다. 선승으로서 교학의 총서인 대장경을 열람하게 된 동기는 매우 특이하다.당시는 참선을 주로 하는 선종과, 부처님 말씀을 따르려는 교종이 서로 대립되어, 교종에서는 부처님이 말씀한 대장경이 참된 불법이라고 하고, 선종에서는 부처님이 교밖에 따로 마음을 전한 것(敎外別傳)이 선이 되었다 하여, 서로 그 우열을 다투는 것이 마치 적을 대하는 것 같이 하였다. 스님은 이에 대하여 '크게 잘못되었다'라고 생각하고, 대장경을 열람하게 되었던 것이다. 반야경(般若經)과 원각경(圓覺經)과 능엄경(楞嚴經)과 기신론(起信論)등 많은 경론을 열람하게 되는데, 그 귀결 처는 한결같이 마음의 본 바탕이 어떻다는 것, 마음을 밝히라는 것, 본성을 되찾으라는 것 등이며, 그것이 바로 선종에서 하는 일임을 알게 되었고, 화엄경을 열람하다가 화엄경 출현품에 '한 티끌이 대천세계를 머금었다'는 비유와 그 뒤의 '여래의 지혜도 그와 같아서 중생들 마음에 갖추어져 있지만, 어리석은 범부들은 그런 줄을 깨닫지 못한다'라는 구절을 읽고 문득 눈물을 흘렸다고 하며, 이것이 바로 선종에서 말하는 견성성불의 법임을 알게 되었다. 그 후(30세경) 당나라 이통현장자(李通玄長者)가 지은 화엄론의 십신초위(十信初位)를 해석하는 각수보살에 대한 설명, 즉 '범부가 믿음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모두 자기가 범부임만을 인정하고, 자기 마음이 바로 부처임을 인정 함께 있는 것 같았다.’는 그의 진술을 통하여도 이를 짐작할 수 있다. 그는 마침내 「대혜보각선사어록(大慧普覺禪師語錄)」을 읽다가 ‘선정은 고요한 곳에도 있지 않고 또 시끄러운 곳에도 있지 않으며 날마다 반연하여 응하는 곳에도 있지 않고 생각하고 분별하는 곳에도 있지 않다. 그러나 먼저 고요한 곳을 버리고 참구하지도 말아야 한다. 만일 갑자기 눈이 열리면 비로소 그것이 집안일임을 알 것이다.’하는 구절에 문득 크게 깨치어 ‘저절로 물건이 가슴에 걸리지 않고 원수도 한자리에 있지 않아 당장에 편하고 즐거워졌다.’고 한다.② 스승으로서의 생애상무주암에서의 깨침은 그의 생애의 분기점이 되었다. 이제 남은 10여 년의 생은 깨침에 즉한 세찬 자비의 실천이 있을 뿐이다. 그는 신종 3년(1200)에 송광사로 옮기어 본격적인 교화에 전력하였다. 거조사에 있던 정혜결사도 그곳으로 옮기어 인근의 같은 이름의 절과 혼동을 피하여 수선사(修禪社)로 바꾸어 독특한 보조선풍을 진작시키니 세인들이 평하여 [禪學之盛 近古莫比]라 하였다. 수선사의 선풍은 정과 혜를 고루 닦으며 교와 선을 함께하는 수심불교(修心佛敎)로 이는 고려불교를 일신하기 위한 국사의 처방이기도 하였다. 즉 타락한 궁중불교에서 수심의 불교로, 선교의 대립, 갈등에서 선교융회로의 원융한 정법을 구현하기 위한 것이었다.그는 ‘오직 스스로 도에 맡겨 남의 칭찬이나 비방에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고 그 성품은 인자하고 참을성이 있어 성질이 부랑한 사람이 뜻을 거슬리더라도 잘 지도하였다’고 한다. 사람들에게 읽기를 권할 때에는 언제나 「금강경」으로 하였으며 이치를 연설할 때에는 「육조단경」을 기본으로 하였고 통현의 「화엄론」와 「대혜어록」을 또한 중요하게 여겼다고 한다.지눌의 교화는 그의 종교적 체험을 기본으로 하고 또 듣는 이의 능력과 소질을 중요시하는 특질을 가졌다. 선교를 융회함은 그가 「화엄론」을 통하여 선교가 각기 불심과 불어로 계합하는 것을 친증한 체험을 기본으로 하며 성적등지(惺寂等持), 원돈신해(圓頓信解), 경교는 정도(正道)와 멀어지며, 쓸데없는 시비에 떨어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가 생을 마칠 때까지 정혜결사로 일관한 것도 이러한 때문이다. 지눌에 있어서 수심의 길은 인간의 가능성에 대한 깊은 신뢰를 그 기본으로 한다., 즉, 인간은 본래 부처와 추호도 다르지 않은 공적영지(空寂靈知)한 마음의 소유자이며, 그는 또 그 마음을 구현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의 수심의 길은 밖을 향한 어떤 것이 아니라, 본래 부처인 마음을 향한 것이다. 지눌이 "밖으로 찾지 말라"(切莫外求)고 간절히 당부하고 있음도 바로 이러한 때문이다. 마음을 밖으로 찾는 한 그것은 영원히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에 있어서 수심의 기본은 심즉불(心卽佛)의 자기확신이며, 그 과정은 바로 본래의 나, 참 나의 실현인 것이다. 이러한 지기실현의 과정인 수심에 있어서 그는 모든 사람에게 일률적인 길을 가리킨 것이 아니라, 각기 능력과 소질에 맞는 다양한 방편문을 제시하였다. 이제 그의 중요 사상을 간략히 고찰해 보고자 한다.① 돈오점수(頓悟漸修) 사상자기 마음에 대한 확신과 그의 실현을 이상으로 하는 수심에 있어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깨침과 닦음이다. 따라서 지눌은 깨침과 닦음의 성격을 밝히고 체계화하는 일에 진력하였다. 깨침과 닦음에 관한 바른 길을 제시하는 것이 그의 돈오점수설이다. 즉, 지눌에 의하면 올바른 수심의 길은 먼저 마음의 성품을 분명히 깨치고, 그 깨침을 의거하여 점차로 닦아 가는 선오후수(先悟後修)라는 것이다. 돈오를 그는 이렇게 말한다.돈오란 범부가 미혹했을 때, 사대(四大)를 몸이라 하고 망상을 마음이라 하여, 자기의 성품이 참 법신(法身)인 줄 모르고 자기의 영지(靈知)가 참 부처인 줄 몰라 마음 밖에서 부처를 찾아 헤매다가, 갑자기 선지식의 지시로 바른 길에 들어가 한 생각에 빛을 돌이켜 제 본성을 보면, 번뇌 없는 지혜의 성품이 본래부터 스스로 갖추어져 있어 모든 부처님과 털끝만큼도 다르지 않음을 아나니 그 때문에 돈오라 한다.돈오 필요하다고 한다. 마음의 성상(性相)을 확실히 아는 것이 구태여 완전한 실천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돈오는 수행의 완성이 아니라 참다운 닦음의 출발이며 진정한 의미의 신(信)의 확립인 것이다. 그렇다면 점수란 무엇인가,점수란 비록 본래의 성품이 부처와 다르지 않음을 깨달았으나 오랫동안의 습기(習氣)는 갑자기 버리기 어려우므로 깨달음에 의해 닦아 차츰 공이 이루어져서 성인의 태를 길러 오랜 동안을 지나 성인이 되는 것이므로 점수라 한다. 마치 어린애가 처음 낳을 때 갖추어진 모든 기관이 어른과 다를 것이 없지만 그 힘이 아직 충실하지 못하기 때문에 제법 세월이 지난 뒤에 비로소 사람이 되는 것과 같다.깨침은 아는 것이며 닦음은 실천이다. 우리의 본래 성품이 부처와 다름이 없음을 분명히 깨치는 것이 돈오이다. 그러나 그 깨친 것을 그대로 생활 속에 구현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닦음의 중요한 문제이다. 지눌에 의하면 깨친 즉시로 행동이 깨침과 일치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그러므로 점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무엇 때문에 깨친 것과 행하는 것이 일치하지 않는가? 지눌에 의하면 그것은 우리가 오랫동안 길들어 온 습기(習氣) 때문이라고 한다. 미혹한 채 몸, 입, 생각[身口意]으로 익혀온 습성이 돈오로 일시에 완전히 소멸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깨친대로 실천할 수 있게 하는 닦음이 필요한 것이다. 돈오가 迷에서 悟로의 전환이라면 점수는 凡에서 聖으로의 실천행이다. 돈오를 통하여 자성을 깨친 사람이 그대로 성인은 아니다. 그는 성인이 될 수 있는 자질을 갖춘 사람이다. 깨침과 성인의 차이는 理와事, 가능성과 완성의 차이이다. 점수란 바로 이 가능성을 완성으로 구체화하는 과정이며 노력이다. 지눌은 돈오와 점수를 어린 아기와 어른에 비유하고 있다. 어린 아기가 금방 태어났을 때 팔다리며 모든 기관이 어른과 다름없이 다 갖추어 있지만 세월이 가고 자라나야 어른처럼 팔다리를 움직이고 활동할 수 있는 것이다. 돈오가 아기의 탄생이라면 점수는 그 아)
Ⅰ. 불교의 등장 배경과 의의불교는 불타(붓다), 석가모니가 창시한 종교이다. 불타 생존 당시 인도는 신분제인 카스트 제도와 그 제도의 기본인 브라만교의 권위가 무너지고 육외사도(六師外道)사상이 유행하였다. 육사외도(六師外道)사상은 삶의 당면 문제 해결보다는 우주와 인생의 본질 등의 문제를 사유할 것을 주장하는 초현실적 사변 철학을 이야기 한다. 이로 인해 평민들의 삶이 피폐해지고 고통스러워 짐에 따라 사람들이 새로운 세상을 갈망하게 되었고, 그 때에 등장한 것이 석가모니이다. 석가모니는 인간세상의 삶을 고통의 바다라 비유하고 현실에 얽매이지 않고, 우주 본질과 현실문제 양면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中道 사상에 입각하여 올바른 삶의 길[正道]을 가도록 수행을 통해 부처가 되길 가르쳤다. 불교(佛敎)란 부처님의 가르침을 뜻하며, 동시에 부처가 되는 길을 제시한 가르침을 말한다. 부처라는 말은 산스크리트 어인 '붓다'(Buddha)를 따서 만들었으며, 깨달은 사람을 뜻한다. 깨달음이란 단순한 개념이나 관념이 아니며, 부처님이 체험을 통하여 증득한 것으로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가르쳐 주신 그 가르침 또한 배워서 알아야 하는 지식에 그치는 것이 아니며, 오로지 그 가르침을 믿고, 그에 따라 실천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깊고 참된 진리를 깨달은 이는, 다른 사람도 깨달음을 얻도록 가르침을 주며, 지혜와 복덕이 원만하고, 이치와 사리에 어긋남이 없으며, 5욕(欲)에 집착하는 미혹(迷惑)에서 벗어나 깨달음의 세계를 열고, 마음을 괴롭히는 번뇌를 끊는다. 그리하여 마침내 생사의 괴로움이 완전히 없어진, 불교 최고의 이상인 열반(涅槃)을 성취한다.Ⅱ. 불교의 근본 교설1. 연기설(緣起說)석가는 “연기(緣起)를 보는 자는 법(法)을 보고, 법을 보는 자는 연기를 본다.”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석가는 연기를 인생과 우주를 설명하는 가장 근원적인 이법(理法)으로 생각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연기설은 불교에 있어서 가장 근간이 되는 사상이라 할 수 있으며, 연기의 의미를 아는 것은 불사상을 이해하는 첩경이 된다. 연기라고 하는 것은 ‘~을 연(緣)하여 일어나는(起) 것’이라는 의미로, 일체의 사물은 다양한 원인과 조건을 연하여 성립한다고 하는 말이다. 즉 우주만물은 단독의 힘으로 생기발전(生起發展)할 수 없고, 반드시 인(因)과 연(緣)의 결합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원시경전에 나탄 연기설의 가장 원초적인 형태는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긴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고, 이것이 멸하면 저것이 멸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모든 존재, 즉 만유(萬有)는 곧 소멸되어 공(空)으로 돌아가고, 공은 곧 만유가 되는데, 만유의 이와 같은 변화는 서로 의지하고 상관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예컨대 한 알의 콩이 있다고 할 때, 콩은 하나의 인(因) 즉 제일원인이다. 그러나 콩이라는 종자만으로 싹이 터서 자라 열매를 맺을 수는 없고, 거기에 반드시 흙, 수분, 온도 등의 연(緣) 즉 보조원인이 필요하다. 이와 같이 만유는 인(因)과 연(緣)의 상호관계에 있어서 끊임없이 생멸하므로 영구불변의 독자적인 본성(本性), 즉 자성(自性)을 가진 존재는 없다. 우리 인간도 역시 인연으로 말미암은 일시적 결합에 의하여 잠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원래 인간은 사대(四大)라는 물질적 요소로 구성된 육체와 사온(四蘊)이라는 정신적 기능이 결합된 것이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육체(色), 감각(受), 이성(想), 의지(行), 의식(識)의 5가지 요소의 화합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이 오온(五蘊)으로 구성되어 있는 인간은 다시 분해되어 소멸하는 것이므로 실재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오온은 공(空)이며, 무아(無我)이며, 무상(無常)이다. 그리하여 인생은 고(苦)라고 하였다. 초기불교에서는 모든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이러한 연기설을 적용하였는데, 그 보편타당성이 널리 인정되었다. 즉 무명(無明)), 행(行)), 식(識)), 명색(名色)), 육처(六處)), 촉(觸)), 수(受)), 애(愛)), 취(取)), 유(有)), (生)), 노사(老死))의 12항목으로 나누어 인간의 삶을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三世)에 걸쳐 윤회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러한 연기의 진리는 불교사상의 기본이다. 깨침의 내용이 연기요, 그것을 풀어 설명한 것이 가르침이요 사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연기의 진리에 눈뜬 삶은 어떠할까? 우리는 모든 존재와 깊은 관계 속에 더불어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또한 간단없는 흐름 속에 있다는 것을 모른다. 그러므로 나를 고정불변한 것으로, 남과 세계로부터 분리된 존재로 착각하고 있다. 그러한 착각이 항상 나와 남, 나와 세계를 분리하고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게 하는 미망(迷妄)이다. 그러나 연기의 진리에 눈뜰 때 우리의 삶은 질적인 전환을 일으키게 된다. 그것이 한없는 감사의 삶이요, 동체자비(同體慈悲)의 삶이다. 나는 나만의 내가 아니라 모든 생명, 모든 존재로 살려지는 그런 나이다. 이것이 더불어 있는 연기의 실상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을 향해 무한한 감사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알고보면 우리와 모든 생명, 모든 존재는 더불어 있는 하나인 것이다. 즉 나와 모든 생명이 둘이 아닌 자타불이(自他不二)가 되는 것이다. 그러한 존재의 실상을 분명히 알 때, 우리의 삶은 나와 모든 생명을 하나로 보는 실천, 즉 동체자비의 삶이 비로소 가능해진다.2. 사성제(四聖諦)연기의 진리를 실천적으로 체계화한 것이 바로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 즉 사성제이다. 이는 석가모니께서 큰 깨침을 이룬 후 처음으로 설(說)한 가르침의 내용으로 우리들 인간에 있어서 괴로움이 생기는 원인과 그를 멸할 수 있는 길을 밝히고 있는 불교의 실천론이다. 다시 말해서 미오(迷悟) 두 세계의 인과를 설명하여 우리들에게 바른 인생관과 세계관을 가르쳐 준 원시불교의 근본의(根本義)이다. 사성(四聖)은 내관(內觀)한 연기의 교설을 수행자의 실천에 중점을 두고 설한 것으로 네 가지 성스러움이라는 뜻으로 여기에 제(諦) 즉 진실 ? 진리라는 말을 더하여 사성제라 하고 인생의 괴로움을 설 고성제(苦聖諦), 괴로움의 원인인 집성제(集聖諦), 괴로움의 소멸인 멸성제(滅聖諦),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인 도성제(道聖諦)가 바로 그것이다.① 고성제(苦聖諦)우리들의 현상적 삶은 고통이라는 이른바 현실판단이다. 그 구체적인 내용으로는 불교는 여덟 가지 고통, 즉 인생팔고(人生八苦)를 들고 있다. 그것은 나고, 병들며, 죽는 생로병사의 사고(四苦)와 사랑하는 자와 이별하는 괴로움인 애별리고(愛別離苦), 미워하는 자와 만나는 괴로움인 원증회고(怨憎會苦), 구하는 바를 얻지 못하는 괴로움인 구부득고(求不得苦), 그리고 ‘나’라는 몸을 가짐으로써 생기는 괴로움인 오음성고(五陰盛苦)의 여덟 가지를 가리킨다. 고통을 성스러운 진리라고 하는 것은 고통의 실상을 직시할 수 있을 때 그를 해결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고성제란 자각하지 못하고 고뇌에 차있는 현실세계를 가리킨다.② 집성제(集聖諦)고통의 원인을 규명한 것으로 존재의 실상을 모르는 무명(無明)으로 인하여 모든 것에 탐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원인으로 애욕(愛慾)을 들 수 있다. 인간 존재와 그 삶이 고통인 것은 우리가 끊임없는 애욕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러한 애욕이 계속되는 한 인간은 집착을 하게 되고, 그 결과로서 사후에 또 다른 고통의 존재로 태어나 같은 과정을 또다시 반복하게 된다. 결국 집성제는 현실의 세계가 어떠한 원인과 이유로 괴로움에 차있는가를 설명한다.③ 멸성제(滅聖諦)괴로움이 멸한 상태, 즉 무명과 애욕이 멸한 상태에 관한 진리를 말한다. 그러한 상태를 불교에서는 涅槃이라 부른다. 열반은 탐욕, 성냄, 무지의 삼독(三毒)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로서 생사의 세계를 초월한 경지를 뜻한다. 결국 멸성제란 자각한 이상세계를 말하고 있다.④ 도성제(道聖諦)도성제란 고통의 종식인 열반으로 가는 길, 팔정도(八正道)에 관한 설법이다. 여기에는 여덟 가지의 방도, 즉 8정도(正道)가 있습니다. 8정도란, 정견(正見) 즉 바른 견해, 정사(正思) 즉 바른사유, 정정진(正精進) 즉 바른 노력, 정념(正念) 즉 바른 명심, 정어(正語) 즉 바른 말, 정업(正業) 즉 바른 행위, 정명(正命) 즉 바른 생활, 정정(正定) 즉 바른 명상 등입니다.3. 삼법인(三法印)인(印)이란 확실하고 변경할 수 없는 것, 불변의 진리 등을 뜻한다. 따라서 법인이란 불교의 근본 교의를 나타낸 것으로서 법은 영원한 진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삼법인은 세 가지의 거짓 아닌 진실한 가르침이라는 뜻으로, 세상의 모든 현상과 존재의 참다운 모습에 대한 불타의 깨달음에 대해 설명한 것이다. 이 세 가지는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 일체개고(一切皆苦)를 말한다. 여기에 열반적정(涅槃寂靜)을 더하여 사법인(四法印)이라고도 한다.① 제행무상(諸行無常)제행이란 모든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며, 무상은 인간이든 사물이든 모든 현상계가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우주만상은 어떤 인연에 의하여 모습을 드러내어 유지하다가 점차 파괴되어 소멸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대(四大: 地, 水, 火, 風 )라는 물질적인 현상(色)이 곧 텅 빈 것(空)이라 하였다. 즉 ‘色卽是空, 空卽是色’인 것이다.② 제법무아(諸法無我)제법이란 모든 현상을 가리키며, 무아란 ‘내가 아닌 것’, ‘나를 갖지 않는 것’이라는 의미다. 제법무아란 만물을 시간적으로 볼 때 무상(無常)한 것과 같이, 다시 공간적으로 볼 때 실체는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세상에는 단일하고 독립적이며 자아존재적이고 자아결정적인 영원한 사물을 없으며, 모든 사물은 모두 인연의 화합으로 이루어진 것이어서 상대적이고 임시적이라는 것이다.③ 일체개고(一切皆苦)일체는 모든 것을 말하고, 고는 고통을 의미하므로 이것은 현실세계의 모든 것이 고통이라는 것이다.④ 열반적정(涅槃寂靜)열반만이 모든 무상과 고통 등으로부터 고요할 수 있다는 뜻이다. 즉 모든 존재가 헛된 것임을 깨달아서 집착을 벗어나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이상세계의 본체계(本體界)로서 이것은 불교에서 신비적 색채가 가장 짙은 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