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냉전과 한국의 정치이념』1. 머리말1987년 6월 항쟁 이후, 한국에서는 ‘진보이론’이 변혁운동의 진영뿐 아니라 국민적 가치로 급속하게 침투해 갔다. 그러나 소련과 동유럽권에서 70여 년에 걸친 사회주의의 역사적 실험이 실패로 끝나자, 진보진영은 거센 동요에 휩쓸렸고 사상?이론 면에서의 우위도 순식간에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후, 보수진영에서 주장한 것이 자유민주주의였으며 진보진영의 사상적 논리는 포스트마르크스주의나 사회민주주의가 대안으로 논의되었다.제6공화국과 문민정부에 접어들면서 지역주의에 편승한 보수정당 정치가 고착화 되었고 이로 인해 미국적 신자유주의(종속적 신자유주의) 정책이 무분별하게 시행되면서 결국 IMF사태를 맞이하였고 이러한 사회 전반적 보수적 민주주의는 많은 문제점을 도출해 내고 있다.탈냉전이후 유일한 분단국가로서 한국 민주주의의 현재와 미래를 정치이념을 통해 진단해 볼 수 있을 것이다.2. 탈냉전과 정치사상80년대가 국가주의와 자유주의 및 진보진영 동맹군의 대결장이었다고 한다면 90년대는 후자의 승리와 더불어 그 속에서 자유주의가 마르크스주의를 압도해 가는 시대였다. 그러나 자유주의의 역사가 짧은 한국사회에서 80년대의 마르크스주의적 급진주의는 90년대 들어와서 자유주의를 뛰어넘어서 각종 포스트주의 범람으로 나아갔다. 게다가 자유주의자들이 애타게 기다리던 ‘문민화’가 도래함으로서 자유주의는 실제로 미국 중심의 ‘금융세계화’를 주축으로 한 신자유주의 방향으로 통합되어 갔다. 이는 한국사회의 자유주의의 허약성이 정치사상의 발전에 치명적인 것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80년대까지의 사상적 틀은 체제와 반체제의 적대관계를 기본으로 해서 성립되었다면 90년대 들어와서부터는 부르주아민주주의 아래서 진보와 보수가 건강한 의미에서 공존할 수 있는 과제로 부상했다. 다시 말하면 극좌적 스탈린주의와 극우적 반공주의가 함께 배제되고 진보와 보수가 상호보완적, 경쟁적 관계로 병존하여 한국사회의 순조로운 발전을 이끌어 내도록 하였다. 한편 90년대 들어와서 사회운동의 중심은 당시까지의 민중운동 및 노동운동에서 급속하게 ‘시민운동’으로 바뀌어갔다. 이리하여 노동자나 민중대신 ‘시민’이라는 말이 사용되기 시작하고 시민운동의 개념이 모색되었다. ‘민중’이나 ‘시민’의 개념설정과 그 차이, ‘민중운동’과 ‘시민운동’의 구별과 그 평가가 문제가 되었으나 그 밑바탕에는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민중운동?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이 서로 배타적인 상황이 가로놓여 있었다. 민중과 시민이 어떻게 다르고 민중운동과 시민운동의 차이는 무엇인가 하는 문제 등이 민주주의를 둘러싼 논쟁으로 발전 하였다.3. 탈냉전과 신자유주의신자유주의는20세기 전반에 자유주의와 자유방임적 시장경제가 낳은 세계적인 자본주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도입된 케인즈주의적 국가개입주의와 포드주의적 국가독점자본주의체제가 70년대 들어 다시 위기에 처하면서 생겨난 시장주의적 처방이다. 즉, 시장의 실패를 해결하기위한 해결사로서의 국가가 해결사에서 다시 문제로 전화하면서 국가가 해결하고자 했던 문제인 시장이 다시 해결사로 복귀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의 순환을 통해 원점으로 되돌아온 것이다.한국에서 신자유주의를 논하는데 있어서 우선 명확하게 하고 넘어갈 것은 우리에게 신자유주의는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신자유주의는 박정희 말기 중화학공업의 과잉투자에 의한 공황과 제2차 오일쇼크의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잠시 처음 선을 보인 뒤, 전두환에 의해 본격적으로 도입되었다.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정책 기조는 노태우 ? 김영삼 정권으로 이어지면서 더욱 심화되어 김영삼 정권의 세계화 전략으로 집약되었다.한국의 신자유주의가 한국 민주주의에 갖는 함의는 어떠한가? 한국의 신자유주의는 다른 신자유주의와 마찬가지로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의 심각한 후퇴를 초래하고 있다. 특히, 우리의 경우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라는 것이 제3세계를 기준으로 하여도 극히 낙후되어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이는 심각한 문제이다. 사실 신자유주의란 ‘복지국가의 위기’에서 생겨난 것인데, 우리의 경우 복지국가와 사회경제적 민주주의가 부재한 상태에서 신자유주의부터 먼저 맛보고 있다는 아이러니에 처해 있다. 즉, ‘복지국가 없는 신자유주의’인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지금까지 복지제도가 있었다면 그것은 그간의 고도성장에 따른 높은 취업률과 안정된 고용이었다. 이 점에서 한국자본주의는 그동안 복지제도를 기업, 개인, 가족들에게 의존하는 ‘복지제도의 사유화’를 제도화 했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이 같은 유일한 복지제도인 고용안정이 깨지면서 많은 국민들이 길거리로 내동댕이쳐지고 있다는 점이다. 즉, 그동안은 복지국가의 부재를 고용이 보상해주었으나 이제는 복지국가의 부재와 실업의 일상화라는 최악의 조합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실업 등의 고통이 여성과 장애자 등 사회적 약자에게 집중되고 있다는 점이다.민주화 이후 우리정부는 경제정책 및 사회정책에서 권위주의정부보다도 더 신자유주의적이고 시장근본주의적인 경제독트린과 정책노선을 추구해 왔다. 물론, 신자유주의를 전면적으로 부정해야 했다거나 혹은 신자유주의에 안티테제가 될 수 있는 어떤 대안적 경제체제를 구현해야 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 이념과 논리가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해 왔지만 나라마다 수용되는 형태와 내용은 크게 다르다. 따라서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노선의 틀 안에서도 사회해체적 효과를 통제 할 수 있는 정책적 보완을 할 수 있으며 노동정책이나 사회정책과 같은 다른 정책분야에서 우리의 현실조건에 상응하는 대안들을 모색하고 발전시키는 일은 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우리 사회의 정치적 역량을 어떻게 조직하고 발전시키느냐에 따라 그 가능성의 영역이 확대될 수 있다는 것, 그렇게 함으로써 신자유주의적 경제독트린으로 요약되는 외적 제약에서도 이를 한국식으로 변형시키고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IMF금융위기 이후 10년도 채 안되는 기간동안 시장근본주의적 정책기조가 너무 급진적으로 취해지고 있다. 그 결과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모든 구조가 신자유주의적으로 과격하게 재편되고 있다.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민주주의’는 경제적 민주화와 실질적 민주화의 퇴보를 가져왔으며, 현재에도 계속 퇴보하고 있다. 이렇듯 정부가 신자유주의적 가치를 정책의 최우선으로 한다면 한국사회는 ‘사회양극화’라는 말이 표현하듯 두 개의 사회로 급속히 분화되어 한국민주주의는 계급구조와 사회분열을 완화하는 체제의 기능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4. 탈냉전과 분단패러다임20세기의 한반도는 식민지지배와 남북분단이라는 치욕의 역사를 걸어왔다. 100년에 걸친 압축근대의 역사는 남북 쌍방의 정치, 경제, 문화, 교육 등 사회의 모든 분야에 심각한 왜곡을 가져왔을 뿐 아니라 인권과 민주주의 측면에서도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의 정신과 의식에 적지 않은 왜곡을 초래했다. 특히 남북분단은 여전히 남북한 현대사의 기초를 이루는 최대의 정치적 요소가 되고 있다. 냉전이 종결된 지금도 한반도의 정세는 긴장의 연속이고 민족분단은 사람들의 생활뿐 아니라 정신 및 사상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따라서 한국의 현대 사상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남북한의 분단패러다임과 통일문제를 반드시 다루어야 할 것이다.냉전시기의 분단 패러다임과 탈냉전시기의 분단 패러다임은 어떻게 다른가. 남북분단이 제2차 세계대전 후 미소 양군의 분할점령으로 시작되었고 냉전시기에는 한?미?일의 자유주의진영과 북한?중?소의 사회주의 진영의 삼각관계가 남북대립을 규정하게 되었다. 이후, 80년대의 냉전체제의 붕괴, 즉 탈냉전기가 도래하면서 분단 패러다임 역시 크게 변화하였다. 북?중?소 삼각관계는 완전히 해체되고 남북한과 미국의 삼각관계가 분단 패러다임의 기본이 되었다. 이러한 남북한과 미국의 구도에서 남한은 한미동맹과 남북관계, 북한은 북미관계와 남북관계를 축으로 해서 국면에 따라 제각각 이 두 가지 관계에서 정략적 우선순위를 설정하면서 대치해 왔다. 하지만 남북한, 미국의 삼각관계가 탈냉전 후의 기본적인 분단 패러다임이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가변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었다. 국제관계와 남북한의 관계에 의한 분단 패러다임은 언제나 미묘하게 때로는 전혀 예상 밖으로 크게 변하는 경우도 있다.
『이슈와 선거』(수성구청장 선거 한나라당 김형렬 후보를 중심으로)-목 차-1. 머리말2. 수성구의 특성1) 정치적 특성2) 사회적 특성3. 선거이슈1) 선거이슈의 중요성2) 이슈의 제기4. 후보자 공천1) 한나라당 공천 과정5. 이슈와 선거운동과정1) 선거이슈의 선정2) 후보자간 비교3) 연설 및 토론회4) 공약 및 정책5) 박근혜 대표 피습사건6. 결론1. 머리말제4회 동시지방선거는 노무현 정부의 중반기를 넘긴 시점에 치러지는 전국단위의 선거라는 측면에서 「노무현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결국, 여당의 「부패한 지방 정부 심판론」)과 야당의 「무능력한 중앙 정부 심판론」) 이라는 정치구호아래 치러진 이번 선거에서 국민들은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에게 냉혹하리만큼 가혹한 심판을 내리게 되었고 그 결과 대한민국 선거사상 여당으로서는 최악의 참패를 기록한 선거가 되었다.본 연구는 대구지역의 기초단체장 선거 중에서 수성구청장 선거를 대상으로 하여 선거과정에서 선거이슈의 선정과정과 이러한 이슈가 선거운동과정에서 어떻게 접목되는가를 관찰하고 비록 주관적이지만 이러한 행위가 유권자의 투표행위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는가를 평가한 기록물이다.수성구청장 선거를 대상으로 한 것은 한나라당을 제외한 어떤 정당도 이 지역에 후보를 내지 못함으로서 한나라당 후보(김형렬)와 친 한나라당 성향의 무소속 후보(이성수) 만이 출마한 상황에서 정당 간 정치적인 쟁점이 압도한 타 지역과는 달리 후보자, 정책, 공약, 다양한 선거운동 방법 등의 이슈가 유권자의 결정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선거환경을 가지고 있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2. 수성구의 특성1) 정치적 특성- 김대중 정부 이후의 선거결과를 중심으로 - 제2회 동시지방선거 결과(1998. 6.)선거구명선거인수투표자수유효투표수수성구청장 선거316,295145,410후보자별 득표수계한나라당국민회의김규택정병국115,70026,679142,379*출처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16대 국회의원선거 결과(2000. 54,478107,897수성구을153,199(3,923)95,415(3,614)후보자별 득표수계한나라당민주당우리당자민련무소속주호영김성현윤덕홍안준범남칠우62,92764520,53444610,08194,633*( )는 부재자수 *출처 : 중앙선거관리위원회위의 표들의 결과를 살펴보면 김대중 정부 이후, 수성구에서 치러진 다섯 번의 선거에서 모두 한나라당 후보가 압도적인 득표차로 승리한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여타 다른 대구지역의 선거결과도 이와 대동소이한 결과를 나타내고 있다. 이와 같은 결과의 주된 요인은 ‘대구지역민의 지역주의적 성향’에 기인한 바가 크다고 할 수 있지만 김대중 정부이후 이러한 현상이 더욱 공고해지는 현상을 나타내는 것은 두 번에 걸친 대통령선거에서 대구지역의 압도적 지지를 받은 후보의 패배로 인해 생겨난 좌절감과 상대적으로 대구지역이 홀대를 받고 있다는 박탈감으로 인해 대구?경북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한나라당에 일방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대구지역의 장기간에 걸친 일당독점이 대구지역의 폐쇄성을 더욱더 강화시키고 갈수록 어려워지는 대구 경제를 회복하는데 장애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2) 사회적 특성대구 동남구의 관문지역인 수성구는 유치원 35개소, 초등학교 30개소, 중학교 22개소, 고등학교 16개소, 지역인접 대학 33개소 등 전국최고의 교육여건을 가지고 있으며, 서울 강남지역 학생들보다 높은 수능 평균 점수를 유지할 정도로 높은 교육열과 높은 진학률을 자랑하고 있다.) 또한 수성구는 지역의 76.6%가 녹지지역으로 대구제일의 쾌적한 주거지역이며 대구의 중추기능인 행정, 금융, 교육의 중심지역이다.) 민선자치 10년 주민만족도 종합1위)를 차지하기도 했으며, 엘리트 계층 거주 분포율 전국1위)를 차지할 정도로 대구를 대표하는 자치구이다.3. 선거이슈1) 선거이슈의 중요성선거에 있어서의 성공을 위한 기획은 마치 제품의 마케팅기획과 비교 될 수 있다.) 즉 유권자들의 욕구를 어떻게 파악하는가에서 부터 시작된다. 선거슈에 말려들어 방어내지 적극적인 공격을 할 경우 경쟁후보는 더 불리해지는 경우가 많다.(3) 이슈의 주요내용① 정책이슈정책이슈는 무엇보다도 유권자들의 필요와 욕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제기하여야 하며 생색내기용 선심성이라는 정책이라는 상대후보의 비난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② 선거관련이슈선거관련이슈는 선거와 관련한 부정적 내용 등을 이슈화 하는 경우가 많다. 이와 같은 경우 구체적으로 제시 할 수 있는 내용을 근거로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 좋다.③ 후보관련이슈후보관련이슈는 후보자 자신의 자질과 능력, 도덕성, 신뢰성, 과거경험, 이념, 정치행태 등의 문제점이나 후보의 우위점 등을 중심으로 하며 상대후보 관련내용 제기 시 허위사실 유포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④ 정치관련이슈정치관련이슈는 현재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후보자의 입장을 후보자에게 유리한 측면을 강조하여 제기하는 것이 좋다.4. 후보자 공천1) 한나라당의 공천과정「대구의 신정치 1번지」로 불리는 수성구지역 구청장 선거는 김규택 현 구청장이 3선 연임 제한으로 출마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전직 국회의원, 전 ? 현직 공직자, 당료 등이 대거 한나라당 공천을 바라며 출사표를 던져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특히,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 등 한나라당을 제외한 다른 정당에서는 출마희망자 조차 나서지 않는 상황이 계속되면서 한나라당 후보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었다. 출마희망자들 가운데 관심은 끄는 인물은 대략 10여명으로 그중 공직자 출신으로는 이진훈 수성구 부구청장, 김훈진 전 남구청 행정관리국장, 최정이 수성구 총무국장, 금태남 전 수성구 총무국장, 이현희 대구도시개발공사 이사장 등이며, 정치권에서는 이원형 전 국회의원과 이성수 전 대구시의회 의장, 김재우 대구시의원 등이 공천을 희망 하였고, 당료출신으로는 김형렬 중앙당 부대변인이 오랜 정당활동을 내세워 공천을 희망했다. 이중 최종적으로 한나라당 공천을 신청한 사람은 총 8명으로 그 명단은 의 내용과 같다. 수성구청장 선거 한나라당 후보 공천 신청자 현황이 름성축하였으며 위 3명을 대상으로 하여 4월 11일 공개토론회를 치른 후 후보를 결정하기로 하였다.4월 11일 제14차 한나라당 대구시 공천심사위원회 회의에서 김형렬 한나라당 중앙당 부대변인을 한나라당 후보로 최종 확정 하였는데 김형렬 후보를 공천한 배경을 놓고 공천심사위원장인 안택수 의원이 언론과 인터뷰한 내용 중에 “한나라당 중앙당 사무처 노조가 전국 기초단체장 후보로 공천을 신청한 7명의 사무처 출신 중 모두가 공천에서 탈락했으니 김형렬 부대변인의 공천을 정책적으로 배려해 달라고 요청해 이 부분이 고려됐다”라고 해서 논란이 되었는데 이로 인해 김형렬 후보는 선거기간 중에도 상대후보로부터 공천의 정당성과 후보자로서의 자격에 대해 집요한 공격을 받았다.5. 이슈와 선거운동과정1) 선거이슈의 선정치열한 공천경쟁을 통해 수성구청장 선거 한나라당 후보로 선출된 김형렬 후보는 공천경쟁과정에서 나타난 정책?기획 부분의 취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공천경쟁자였던 이원형 전 국회의원의 정책보좌관 출신인 박남수와 유니온 리서치 대표를 역임한 권칠용을 정책?기획팀의 책임자로 영입하였다. 위 두 사람은 이원형 전 의원의 최측근으로 이원형 전 의원의 후보 공천을 대비해 사실상 수개월 전부터 수성구를 대상으로 한 정책방향과 공약들을 이미 준비해 놓은 상태였다. 김형렬 후보는 위 두 사람을 이원형 전 의원의 협조아래 별 어려움 없이 영입함으로서 선거캠프의 정책?기획부분을 손쉽게 강화 할 수 있었으며 이로 인해 이번 5.31 지방선거의 사회적 흐름인 「메니페스토 운동」에도 적절히 대응 할 수 있었다. 김형렬 후보 측의 부문별 이슈 현황부 문내 용선거 캐치프레이즈(슬로건)업그레이드 수성구정책 구호비전 U - 수성후보자홍보 구호열정적인 구청장후보자홍보를 위한 컨셉포용력, 업무조정능력, 참신성, 개혁성, 전문성, 정책개발능력정 책성장동력 구축 2대 전략과 7대 프로젝트공 약교육, 생활, 문화, 복지, 행정 5대 실천공약 정책발표회 포스터과 같은 다양한 선거이슈를 마련한 김형렬 후 보는 행정경험이 0년 수성구 토박이정책 구호비전 U - 수성후보자홍보 구호열정적인 구청장수성구의 자존심후보자홍보를 위한 컨셉포용력, 업무조정능력, 참신성,개혁성, 전문성, 정책개발능력깨끗함, 서민의 편, 소신, 정직,성실, 능력정 책성장동력 구축 2대 전략과7대 프로젝트최고의 복지도시 수성구와 구민이 주인이 되는 수성구청공 약교육, 생활, 문화, 복지, 행정5대 실천공약5대 공약(공약 서약서 공증) 김형렬 후보 포스터 이성수 후보 포스터3) 연설 및 토론회한나라당 후보자 공동 정책발표회를 주관하는 등 정책적 이슈를 선점하면서 패기에 찬 젊은 정책전문가의 이미지를 착실히 쌓아가던 김형렬 후보에게도 고민은 있었는데 그것은 당내 공천 경쟁과정 속에서도 약점으로 부각되었던 「토론회에 약하다는 점」이었다. 결국, 김형렬 후보 캠프에서도 각종 토론회의 참가여부를 포함해서 토론회대책이 가장 중요한 선거전략 중 하나로 부각되었다. 결국, 선관위에서 주관하는 MBC TV 토론만 참여하고 나머지 토론회는 여러 이유를 들어 참석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이와 같은 결정은 단 두 명의 후보자밖에 없는 지역에서 토론회를 원천적으로 무산시키는 것으로 상대후보의 격렬한 비난에 직면했고, 유권자의 참정권을 침해했다는 비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토론회 불참이 유권자들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심지어는 선거법상 토론회가 무산되었을 경우 방송연설로 변경 할 수 있어서 김형렬 후보 측의 토론회 불참 전략이 반드시 손해를 본 것만은 아니었다. 결국, 이와 같은 유사한 사례가 많아짐에 따라 토론회 관련 세부규칙을 수정?보완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이 제기되었다.4) 공약 및 정책다음의 는 후보자들의 구체적인 공약사항을 검토?비교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공약내용을 통해서 후보자들이 공약을 어떻게 선거이슈로 활용하고 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정리한 것이다. 즉, 김형렬 후보는 구체적인 정책목표와 발전전략을 제시함으로서 정책전문가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하는데 적극적으로 활용하였고 이성수 후보는 공약제고
봉건천하의 정치사상노자(老子)와 장자(莊子)제1절 노?장의 생애와 시대1. 노자의 생애노자는 초나라 고현(苦縣)의 여향(?鄕) 곡인리(曲仁里) 사람이다. 성은 이(李)이고 이름은 이(耳)이며 자가 백양(伯陽), 시호는 담(聃)이다. 주나라 수장실(守藏室)의 사관을 지냈다. 공자가 주나라에 갔을 때 노자에게 예를 물은 적이 있다. 이때 노자는 공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훌륭한 장사꾼은 재물을 깊이 감추어 두고 없는 것처럼 하며 군자는 성대하지만 용모는 어리석은 것처럼 한다 하였다. 그대는 교만한 기운과 과한 욕심과 꾸민 자태와 음란한 뜻을 버려라. 이것은 모두 그대의 몸에 무익한 것이다. 내가 그대에게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이뿐이다.” 공자가 노자를 떠나면서 제자에게 말했다. “새라면 날 수 있고 물고기라면 헤엄칠 수 있으며 짐승이라면 달릴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달리는 것은 그물로 잡을 수 있고 헤엄치는 것은 낚시로 잡을 수 있으며 나는 것은 주살로 잡을 수 있다. 그러나 용(龍)에 대해서는 나는 알지 못한다. 바람과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오르기 때문이다. 내가 오늘 노자를 보니 용과 같았다.”노자는 도덕을 수양하면서 스스로 숨기고 이름이 알려지지 않도록 하는 데에 힘썼다. 주나라에 오랫동안 살다가 주나라가 쇠미해지는 것을 보고는 마침내 떠나고자 하였다. 함곡관에 이르자 관령(關令)인 윤희(尹喜)가 말했다. “선생이 장차 숨으려고 하시니 억지로라도 나를 위해 책을 지어 주십시오” 이에 노자가 상?하편의 책을 지어 도덕의 의미를 5천여 자로 말하고 떠났는데, 그가 죽은 곳을 아무도 알지 못한다. 혹자는 노래자(老萊子) 역시 초나라 사람으로 15편의 책을 지어 도가의 운용을 말한바 있고 공자와 동시대 사람이라고 말한다. 노자는 160여 세를 살았다고 하기도 하고 혹은 200여 세까지 도를 닦으며 살았다고 하기도 한다. 공자가 죽은지 129년이 지난 뒤 주나라 태사(太史) 담(?)이 진헌공을 보고 한 이야기가 기록에 남아 있는데, 혹자는 담이 노자라고 이다. 농경방식의 발전은 인민들에게 많은 수확을 얻을 수 있도록 해 주었지만 동시에 그에 따른 과중한 세금과 부역까지도 안겨 주었던 것이다. 이에 대해 노?장은 타락하고 부패한 권력층의 ‘인도(人道)’와 만물에게 공평한 ‘천도(天道)’를 비교하여, 천도를 따르지 않고 인민들을 가혹하게 착취하는, 권력층 중심의 ‘인도’로 통치되는 사회를 비판하였다. 그들이 보기에 천도가 실현된 사회와 인도로 다스려지는 사회는 정반대로 나타났던 것이다. ‘천도’의 세계는 남의 것을 덜어 부족한 것을 도움으로써 사람과 사물을 버리지 않아 만물이 안정되는 세계이다. 이에 반해 ‘인도’의 세계는 부족한 것을 빼앗아 남는 것에 보탬으로써 인민이 쉽게 굶주림과 죽음을 생각하게 되어 도적이 창궐하는 혼란의 세계이다. 노?장은 춘추시대 말기에 나타난 혼란의 원인을 인간 사회의 모순 구조 속에서 찾아 피치자를 외면한 치지의 욕심을 비판한 것이다. 이처럼 노?장의 비판대상은 항상 치자 계층이었다.제2절 반자(反者)는 도(道)의 운동이다(反者道之動, 되돌아오는 것은 도의 움직임)노자는 어떤 사물이든지 그것이 발전하여 어떤 한계에 이르면 그것의 반대방향으로 변화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도덕경 58장에서 그는 ‘화(禍)여! 복(福)이 의지하여 있는 바요, 복이여! 화가 잠복해 있는 바니, 누가 그 궁극을 알리오! 설마 정상적인 기준이 없을까? 정상은 다시 기이한 것으로 변할 수 있고, 선(善)은 다시 요사스러운 것이 될 수 있다.’ 라고 했다. 이와 같이 노자는 대립상태는 서로 변하여 전화(轉化)한다고 생각한다. 사물?사건들이 이와 같이 대립전화(對立轉化)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노자의 세계인식에 의하면 모든 사물들은 그의 대립자가 있고, 그러한 대립적 존재자들은 서로 상대방을 자기 존재 성립의 근거로 삼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서로 반대되는 것을 자기 존재 성립의 전제로 삼는 것을 상반상성(相反相成)이라고 한다. 그래서 노자는 상반상성이 사물들을 변화 발전하도록 하는 기본적인 추진력이라고 보았다.이도의 작용’이라는 생각에 주로 근거하여 성립되었고, 그 작용은 소극적인 것에의 경향을 띠는 것으로 보이지만, 소극적인 가운데 적극적인 태도가 함께 있음을 알 수 있다. 만일 ‘반자(叛者)가 도의 운동’이라고 한다면, 반의 방향으로 움직이는 자의 의도는 바른 것을 얻는데 있는 것이며 이러한 주장을 따른다면, ‘암컷의 태도를 지키는 자’는 ‘천하의 계곡이 되기[천하가 복종하기]’를 바라는 것이기 때문이다.또한 우리는 노자의 유야과 겸하의 술을 보면서 유?묵과는 다른 노자의 사상을 옅 볼 수 있다. 공?묵 제가는 모두 군주전제의 관점에서 접근한 반면에 노자는 ‘허군(虛君: 명목상의 임금)’ 아래서 행해지는 인민에 의한 정치를 지향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의 고대에는 이러한 민치라는 제도가 없었기 때문에 노자가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민치사상을 수립하는 근거를 찾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노자의 유약?겸하의 방법은 소극적인 정치적 항의만으로 그치고 말았다.제3절 무위(無爲)이나 불위(不爲)는 없다(無爲이나 無不爲이다)노자사상의 기본 개념은 둘이다. 하나는 ‘반(反)’이고, 다른 하나는 ‘무(無)’이다. 노자는 우주를 깊이 관찰하고, 천지만물이 모두 자연의 도에서 생성되고 있음을 인식하였다. 그러므로 유형(有形)은 무형(無形)에서 생겨났고, 현허(玄虛: 현묘하고 허무한 것)는 실질의 근본이라는 것이다. 만일 ‘유(有)가 무(無)에서 나온다’는 진행의 순서를 관찰한다고 하면, 우주의 생성은 허(虛)에서 실(實)로 진행이 되고, 정(靜)에서 연유하여 동(動)을 낳는 것이며, 먼저 간단한 것이 있은 다음에 복잡한 것이 있게 된다는 것이다. 더구나 도는 순전히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만물을 낳고, 무심(無心)에서 그것이 이루어지는데, 그 일은 확실히 유의(有意)의 조작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노자는 뒤에 일어나는 유는 앞서 존재하던 무를 가지고 그 법칙을 삼아야 한다고 단정하였다. 그리하여 노자는 이러한 앞의 것을 본받는 일들을 ‘관복(觀復)’ ‘복명(復命)’ ‘했다. 자연의 성명(性命)을 바르게 따르는 자는 그 성명 본래의 실질을 버리지 않는다. 따라서 손가락이 하나 더 있거나 없다고 해서 과잉된 것이나 부족한 것이 아니다. 즉 외생(外生)은 그 의의가 생의 깊은 본질을 추구하는 것이며, 제물(齊物)은 그 효용에 있어서는 물(物)자체의 본연적 기인함에 맡기는 것이다. 만약 어떤 기준으로 사물을 바르게 고친다고 하는 것은 천진(天眞)함의 손상을 가져온다. 각자는 자적(自適)함에 따르고 돌아다니나 항상 소요(逍遙)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만약 명예를 위해 죽은 자와 이익을 위해 죽은 자가 있다면 그 이유는 다르나 그 죽음이란 면에서 천성을 손상시킨 점이 같다. 따라서 어떤 것을 위한 희생은 남의 즐거움의 희생이지 결코 자신의 즐거움[자적(自適)]에 의해 산사람은 아닌 것이다.이런 의미에서 일체의 정치적 제재(制裁)와 사회적 예속은 모두 아무 소용없는 굴레와 같다.제5절 재유(在宥)장자의 생각은 마치 유가의 천지만물은 일체를 이룬다는 것과 유사해 보인다. 그러나 이는 다르다. 유가에서 물아가 일체를 이룬다는 것은 물아가 공동의 기쁨과 근심을 나누어 갖는 다는 것이고, 장자의 물아일체는 물아 사이의 모든 연계를 단절시킬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 유가는 인(仁)을 행하는 것을 기본으로 , 장자는 위아의 극치를 추구했으므로 이는 정반대된다. 제물외생도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다.장자가 물아의 구별을 배제한 것은 2가지 의미를 가진다. 하나는 사물을 위하여 일에 골몰하지 않는 것이다. 즉 다른 사람을 간섭하지 않는 것이다. 둘째는 마음 내키는 대로 자적(自適)하는 것이니, 즉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나에게 간섭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나와 다른 사람이 서로 간섭하여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확대 시킨다면, 곧 무치(無治)의 이상과 재유(在宥)의 정술(政術)에 도달하게 된다. 무치는 오늘날로 얘기하면, 의무와 권리를 없애고 잊게 하는 것이다. 이는 절대자유를 의미하는 것이며, 선진시대의 가장 철저한 위아사상이다. 내가 임금을 위하 정치는 비관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으나, 인간의 본성에 관해서는 낙관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 이는 장자가 시종일관 견지했던 인성과 물성에는 각기 그 이치에 맞음이 있다는 것에서 기인한다. 이는 맹자가 말한 성(性)이 선을 포함하나, 그 전부가 아니고 교화로서 완성될 수 있는 것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순자의 성(性)은 악(惡)이 일단 포함되어 있으나 그것을 교정하여, 평화와 질서로 돌아가기를 바랬다.그러나 장자는 인성은 자연적으로 완선(完善)한 것으로 보았다.따라서 필요한 것은 사회의 자유이며, 군자의 교화는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장자의 사상에서 주의할 것은 그는 현실세상을 파괴하자는 것이 아니라, 평민으로 하여금 진인(眞人)이 되게 함이었다. 제물(齊物)의 관점에서는 모든 사람이 절대적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진인이 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이런 한 사람들은 상성(常性)을 가지고 있어서, 사람들은 옷을 만들어 입고, 밭을 갈고, 먹는다. 이런 모든 곳에 지도(至道)가 있으며, 이런 상성(常性)은 바로 재유가 사람들에게 허락하는 것이다.모든 백성들에게 재유(在宥)의 술(術)을 행한다는 것은 가장 철저한 개인주의를 의미하는 것이며, 이는 가장 극단적인 자유사상이다.서양의 개인주의와 자유주의는 확대되고 발전하여 전제에 반대하는 혁명조류를 이루거나, 공화주의적 정치사상이 되었으나 장자나 노자가 그렇지 못한 것은 왜인가?이를 그 사상내부에서 찾아본다면, 개인주의가 혁명적 민주사상으로 되기 위해서는 개인에 대하여 반드시 적극적인 태도를 지녀야 한다. 또한 사회와 정치에도 적극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반항도 일체의 제도가 아니라 사람들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바로 그 제도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 혁명의 주장은 신제도로서 개인의 행복을 도모할 수 있다는 희망에서 근거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인성에 대한 철저한 낙관주의를 결핍하는 것이며, 절대적인 자유를 인간이 향유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들에게 조직은 필수적이다.그러나 장자의 경우는 매우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