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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쟁과 평화]고대 전쟁에 대한 고찰
    Ⅰ. 서론Ⅱ. 본론1. 코린토스와 코르키라2. 아테네와 페리클레스3. 스파르타와 동맹국4. 과거와 현재Ⅲ. 결론서론한 나라의 외교정책은 해당국가의 외부환경, 내부 환경 그리고 정책결정 구조?기관?개인의 성향 등에 의해 달라진다. 비록 투키디데스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원인이 아테네 힘의 증가와 그에 대한 스파르타의 두려움이라고 정의하였지만 그의 글을 잘 살펴보면 단순한 두려움이 아닌 국?내외적 환경과 구조, 개인의 성향에 영향을 받아 전쟁이 발발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그런 요소들과 함께 티모스적인 요인들이 현실주의에서는 설명하기 힘든 부분들을 설명해주고 있다. 본 글에서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원인에 따라 이에 영향을 미친 여러 가지 요소들을 살펴보고 그것들을 통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살펴보고자 한다.본문1. 코린토스와 코르키라아마도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티모스적 시각의 설명이 가장 필요한 부분이 코린토스와 코르키라의 관계가 아닌가 싶다. 이 들의 분쟁이 없었다면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전쟁을 치를 필요는 없었다. 비록 투키디데스가 펠로폰네소스전쟁의 원인을 아테네 힘의 증가에 그에 대한 스파르타의 두려움이라고 하였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이 두 국가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코르키라는 코린토스의 식민지에도 불구하고 보통의 식민지들이 모국에 대하는 태도와는 달리 코르키라가 식민지로서 공개적인 축제에서 공공연한 모욕을 한 경우에서처럼 코린토스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다. 코르키라 또한 코린토스와 동격의 대접을 받기를 원하는 둥 두 국가는 상대방에게 서로 인정받고 싶어하고 존경받고 싶어했지만 실제로는 서로가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한다는 생각으로 분노를 느꼈고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비이성적으로 행동하였으며 나아가 스파르타와 아테네를 끌어들여 전쟁을 확산시켰다. 반드시 전쟁이 필요한 경우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두 국가는 불타는 복수심에 사로잡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맞이하게 되었다.2. 아테네와 페리클레스우선, 아테네가 코르키라와 동맹을 맺지 않았다면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테네는 왜 동맹을 맺었을까? 우선 아테네는 코르키라가 코린토스에 넘어가 코린토스의 힘이 강해져서 상대적으로 아테네의 힘이 작아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테네는 또한 전쟁에 개입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코르키라와 방위동맹을 맺게 된다.아테네의 경우에는 페리클레스라는 지도자의 역할에 주목해야 한다. 가장 눈에 점은 그의 뛰어난 정치적 전술이다. 그는 자신의 오래된 경험과 개인적인 카리스마를 이용해서 대다수의 시민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후에 스파르타가 양보와 법령의 철회를 요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페리클레스는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켜 결국 전쟁의 길로 나아갔다. 페리클레스가 법령을 철회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스파르타와 대등한 강대국으로서의 위상과 자존심을 지키고 싶은 이유에서 위와 같은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한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아테네가 계속해서 전쟁을 회피하려고 노력하였지만 자국의 위상과 관련된 문제에서 페리클레스는 양보할 수 없었던 것이다.3. 스파르타와 동맹국스파르타의 경우에는 동맹국들과의 관계와 자국 내의 노예폭동 가능성, 그리고 오래 전부터 있어왔던 반 아테네세력 등에 의한 복합적인 영향으로 전쟁을 선택했다고 본다. 기본적으로 스파르타는 자국 내에 존재하는 노예들이 폭동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유사시에 이를 제압할 수 있도록 동맹국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비록 스파르타가 펠로폰네소스연맹의 중심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동맹국들을 막 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펠로폰네소스 동맹은 현실을 해석의 원리로 한 느슨한 동맹이었기 때문에 스파르타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동맹국들이 반드시 도와줘야 한다는 의무가 없으므로 스파르타가 동맹국들에게 인심을 잃을 경우 절박한 상황에선 어려움에 처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스파르타의 입장에서는 동맹국들과의 관계가 중요하다. 이런 스파르타의 특수한 국내?국외적 상황 때문에 스파르타 또한 전쟁에 개입되는 것을 꺼렸다. 물론 전쟁에 지쳐있었기도 하지만 그런 국내적 요소 때문에 스파르타는 자신의 국력을 쓸데없이 낭비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결국 스파르타가 아테네와 전쟁을 하게 되는데 그것 또한 아테네처럼 강대국으로서의 자존심과 위상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고 생각된다.아테네의 연설에서 그들이 펠로폰네소스 동맹국가들에게 부당 행위를 하고 있다는 반성 없이 고압적인 자세로 스파르타에 선전포고를 하였다. 거기다가 스테넬라이다스의 감정적이고 비이성적인 연설은 평소 아테네를 적대시하던 스파르타인들에게 감정적인 동요를 일으킨다.이번 일을 계기로 아테네를 혼내주어야겠다는 결정적인 확신하게 되는 것이다. 비록 아르키다무스의 이성적인 판단에 의해 전쟁이 비합리적이라는 것을 알고 전쟁을 막아보고자 하였으나 스테넬라이다스의 연설에 의해 감정적으로 격앙된 국민들의 마음을 돌리기는 어려웠다. 마지막까지 스파르타도 전쟁을 회피하려고 하였으나 메가라 법령의 철수를 거부한 아테네와 전쟁을 시작하게 된다.
    사회과학| 2008.06.27| 3페이지| 2,000원| 조회(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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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남미 정치경제]민주주의 및 조합주의 문화
    -저발전의 발전 : 라틴아메리칸와 세계자본주의와의 만남-1.민중주의의 두 유형2.조합주의 정치문화1.민중주의의 두 유형 : 또는 민중주의는 “노동계급과 농민의, 또는 어느 일방의 지지를 향유하는 , 그러나 이 두 부분 중 어느 일방에서도 조직성 자율성을 갖추지 못한 정치운동”으로 규정된다. 또한 이것은 “반 현상유지 이데올로기를 신봉하는 비노동계급 부분들에 의해 지지된다”라는 광범위한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이런 민중주의의 개념은 너무나도 광범위하고 일반적이기 때문에 라틴아메리카에서 발생한 민중주의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본문에서는 , 민중주의의 지도부 구성뿐 아니라 그것의 대중기반 이데올로기와 프로그램 그리고 그 조직과 리더쉽의 스타일까지 검토함으로써 민중주의의 변형들이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와 정치에 대해 갖는 의미를 유추하고자 한다.앞의 기준을 중심으로 라틴아메리카에서 발생한 유형의 민중주의는 크게 와 로 나눠진다. 권위주의적 민중주의의 사례로 아르헨티나의 페론주의, 칠레의 이바네스주의, 콜롬비아의 로하스주의이고 민주주의적 민중주의는 베네주엘라의 민주행동당, 페루의 아메리카 인민혁명 연합, 볼리비아의 민족혁명운동이다. 위의 민중주의의 2가지 유형의 여러 가지 사례들은 대체로 유사한 사회적 역사적 정치적 환경 속에서 발생했으며 다계급적 구성이나 광범위한 대중기반 등 대략적으로 유사한 환경을 공유하지만 각 정당들 또는 운동들 자체의 사회적 구성과 성격에 존재하는 어떤 중요한 차이들로 인해 그 국가의 정치에 상이한 영향을 끼쳐왔다.첫번째로 살펴볼 두 유형간의 차이점은 “리더쉽”에 관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민중주의의 지도자들은 주로 중간계급에 의존하는 주변부적 위치를 차지하는 “소외된 엘리트들”이라고 특징 지워진다. 그러나 권위주의적 민중주의의 포퓰리스트들의 지도자들은 고위 군부와 상당한 소유의 재산 소유자인 반면 민주주의적 민중주의 포퓰리스트들은 지식인과 전문직 종사자들에 더 크게 의존한다. 그 예로써 제 1차 페론체체가 부에노스 아이레스 대학의 교직원들을 대규모로 숙청했던 것과1966년에 행해진 엘리트 표본조사에서 지식인들의 범주 내에서 단 한사람도 ANAPO의 지지자라고 주장하지 않았음을 통해 단적인 면을 볼 수 있다. 또한 노동자, 농민 출신의 대표자를 비교해 볼 때 민주주의적 포퓰리스트 정당의 지도층에서 보다 잘 대표되는 경향이 있다. 권위주의적 민중주의는 농업노동자들과 아예 연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연맹은 오래가지 못했고 다분히 형식적인 면이 강했다.둘째로 살펴볼 점은 이용 가능한 대중이라는 지지세력에 관한 것이다. 귄위주의적 민중주의 운동은 어느 정도 농촌지역으로부터 지지를 받지만 민주주의 포퓰리스트들 만큼 농민들에게 의존하였던 것은 아니다. 보통 권위주의적 민중주의의 핵심적 지지세력은 도시에 기반한 빈민층이었으며 민주주의적 민중주의의 핵심세력은 조직화된 노동 계층과 농민들이었다.셋째, “이데올로기와 프로그램”에 관해 살펴보자.권위적 포퓰리스트 이데올로기와 프로그램은 본질적으로 사후에 만들어진 것이며 어느 경우에서도 모호하고 부정형적인 경향을 보인다. 어떤 중심된 프로그램 또는 이데올로기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단지 “널리 확산된 감정상태”만이 있었을 뿐이었다. 또한 이들은 소극적인 태도를 취했으며 어떤 실질적인 구조적 변화나 발전 도 “근대화”를 위한 계획보다도 대중들에게 즉각적인 이득을 강조하였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민주적 포퓰리스트들은 보다 구체적이고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발전을 위한 프로그램과 논리적 근거에 비중을 두었다. 그들은 더욱 적극적이었고 구조적 개혁의 문제가 대중에 대한 즉각적 혜택보다 우위를 차지했다. 또한 민족주의가 권위적 민중주의의 중요한 요소가 아닌 반면 민주주의적 민중주의는 명백히 민족주의적?반제국주의적이다. 끝으로 권위주의적 민중주의 지도자들은 자신들을 선전하는 방법으로 전통적 권위주의적 상징과 제도들에 의존하는 등 전통적 정치문화를 되살리기 위해 노력했지만, 민주주의적 민중주의는 그보다 덜 전통적이었으며 세속화되고 민주화된 상징물을 찾으려 하는 등 근대화 지향적인 모습을 보였다.넷째로, 두 가지 민중주의의 조직과 지도자 유형을 살펴보자. 두 가지 모두 공통적으로 강력한 지도자를 특징으로 하고 있지만 권위적 파퓰리스트들은 지나치게 개인 지도자의 리더쉽에 의존했으므로 지도자가 죽거나 임기를 마치게 되면 그 체제는 유지되기 힘들었으며 제도화도 잘 이뤄지지 않아 체제 자체가 일시적이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민주주의적 민중주의 정당들은 일반적으로 고도로 제도화되어왔으며 그 리더쉽 구조는 전적으로 개인에 의존하지 않았으므로 라틴아메리카의 민중주의는 대중기반과 다계급적 구성을 공통점으로 하지만 지도부의 상이한 배경에서부터 시작하여 그들의 추종자 , 이데올로기와 각 정책들까지 상당히 많은 차이점을 보였다. 민주주의적 민중주의처럼 민주화를 촉구하고자 하는 동기에서 일어나 그 나라의 민주화에 기여한 반면 권위주의적 민중주의는 라틴아메리카의 정치계에 만연되어있는 권위주의적 사회를 형성하는데 영향을 끼쳤다. 이렇게 민중주의는 각각 다르게 변화하는 환경 또는 조건들 아래서 발생해 왔으며 각 국가의 상이한 정치에 각기 다른 영향을 끼쳤다.2.조합주의 정치문화1960년대 라틴아메리카를 바라보는 많은 학자와 공직자들은 한마디로 “폭발직전” 이라는 시각에서 라틴아메리카가 폭력적인 대 변혁을 겪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그 후 라틴아메리카는 “비혁명적 사회”로 겉보기엔 본질적으로 변함없이 보수적인 지역이라는 반대논의가 형성되어왔다. 게릴라 운동은 광범위한 지지도 성공도 거두지 못했고 구시대의 공산당은 오늘에 이르러 뒤떨어져 늙고 지친 관료제가 되어버렸다. 전통적 구조와 제도는 붕괴되지 않고 상당히 복원되고 있음이 확실하다는 해석이 이 시기에 웨스턴 정부의 공직자들의 사고에 반영되어 있었다.이런 대조적인 견해를 통해 우리는 이베리아-라틴의 사회구조 속에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한 ‘뭔가 특별한’측면들이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베리아-라틴 국가들의 특수한 전통과 유산을 기본적으로 고려하여 그들의 사회적 구조를 이해해야 할 것이다. 과연 이베리아- 라틴아메리카 사회에 내재한 특수성은 무엇일까?이 국가들은 근대 세계의 형성에 따르는 개신교 개혁, 자본주의의 발흥, 과학혁명, 산업혁명과 그에 따른 많은 결과들의 영향을 거의 받지 못했다. 이들은 근대화경향으로부터 단절되어있었고 중심부에서 떨어진 주변부에 위치하여 있었다. 또한 전통적, 권위주의적, 가톨릭적, 위계적 사회질서와 정치문화를 많은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존속시키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이들의 도덕적 이상주의 , 철학적 확실성의 연속적인 관념, 국가와 사회에 대한 유기적이고 조합주의적인 전통은 스페인 황금기의 정치사상에서 발견된다. 빅토리아, 수아레스 등 스페인과 라틴아메리카 사회 건설에 중심인 그들에 의해 토마스주의적 개념와 절대국가 건설이라는 왕권의 신성화에 기여했다. 그들이 사회와 국가를 보는 시각은 유기적인 것이다. 이는 인간의 법을 자연법, 신성법에 존속시키는 것이다. 집단의 원리나 보편적 의지를 위해 개인을 중시하는 전통적 권력을 고수하려고 노력한다. 인간을 어떤 확고하고 보다 높은 목표와 통일체에 복종시키는 조합주의적 체계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조합주의적 정치 문화는 시간이 지나면서 특히 19세기 전반 자유주의로 인해 위협받게 되지만 이 또한 질서와 진보를 강조하는 실증주의 지배적인 규정 속에 수용?동화되었다. 전통적?유기적 조합주의철학은 비록 어느 정도 희석된 형태이기는 하지만 한편 그에 대한 도전들은 계속 좌절되고 흡수되었다. 이런 정치구조를 앤더슨은 “살아있는 박물관”이라 비유하였다. 하지만 이런 끈질긴 전통에도 위기는 있었다. 과거의 결속력을 토대로 하는 이해관계의 공통된 기초가 더 이상 존재하니 않을 때, 계급사이의 “조화”라는 관념이 계급갈등에 자리를 내어줄 때, 조합적 구조내에서 수많은 이해관계의 축이 전통적 구조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 중첩될 대, 사회적 쟁점이 더 이상 소수의 엘리트 집단의 문제로 한정되지 않고 범사회적으로 확대되어 대중 동원의 정치가 시작될 때, 새로운 교육과 이념이 과거의 온정주의와 당연한 진리를 대체할 때, 국민의 분열이 증가되고 양극화 될 때, 유기적으로 “가족”으로서의 국가라는 이상은 더 이상 유지하기 힘들다. 질서와 안정의 틀은 점차 변동의 철학에 의해 압도당해 왔다. 외부로부터의 새로운 압력과 결부된 새로운 이데올로기와 이해관계 및 내적으로 조직되어 새로운 제도적 형태가 결합되어 낡은 기존의 제도들은 미증유의 도전을 겪게 돠었다. 그러나 이런 모든 변동에도 불구하고 이베리아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의 전통적인 유기적-조합적-엘리트주의적-가산제적 질서는 상당히 강하게 생존하고 있다. 그 예로 지배적 엘리트들이 노동자와 농민을 계속 동원하여 그들의 전통적인 조합적 구조의 공식적 부속물로 편입시킴으로써 대중적 불만을 분산 시키고 그들의 특권적 지위를 보존하는 경우, 미국 그리고 다른 외적 압력을 극복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는 경우, 새로운 발전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내는 경우, 실제 내용보다 도 더 변화된 외양을 제공할 수 있는 새로운 제도적 장치를 세우는 경우, 근대화를 행한 변동의 핵심적 요소들을 계속 지도 및 통제하는 경우이다.
    사회과학| 2008.06.28| 4페이지| 1,500원| 조회(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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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양문화의 이해]야스쿠니신사 독서감상문
    일본 정치가들의 신사참배는 아시아 여러 국가들을 자극하는 미묘한 문제이다. 그래서 8월15일이 되면, 일본 총리나 정치인들의 신사참배를 놓고 과거 제국주의 일본의 피해를 입은 아시아 각국의 거센 비난을 받는다. 조상신을 숭배하는 일인 신사 참배가 무엇이 잘못이길래 매스컴을 그렇게 떠들썩하게 만드는 것일까? 식민 지배의 역사와 전쟁책임의 왜곡과 회피마저 철저히 왜곡하는 일본이기 때문에 신사참배가 그렇게도 비난받아야 하는 것일까?를 읽게 되면서 야스쿠니 신사의 성립 배경, 다른 신사들과는 달리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야스쿠니 신사의 성격 등 평소에 수박 겉 핥기 식으로만 알아왔던 일본의 한 문화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더 자세하게 알게되었다.는 오에 시노부라는 일본사람이 쓴 책이다. 처음 책을 봤을 때 일본 사람이 쓴 책이기 때문에 야스쿠니 신사에 대한 무조건 적인 옹호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책장을 한 장 한 장 읽어가면서 그것은 나의 큰 편견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 오에 시노부는 일본인이지만 상당히 객관적인 시선으로 그리고 여러 가지 믿을만한 자료들을 제시하며 야스쿠니 신사의 성립배경과 야스쿠니 신사가 내포하고 있는 상징성을 냉철하게 파고 들고 있다.왜 지금 야스쿠니 신사인가..야스쿠니 신사 사무소는 현재 “야스쿠니 신사의 개요”라는 제목의 팸플릿을 내고 있다.“이와 같이 야스쿠니 신사에서는 전장에서 전사한 군인, 군속 뿐만 아니라 문관, 민간인, 여성도 포함한 다종 다양의 제신을 받들고 있으며 일본 국민 누구나가 숭경하고 봉찬하기에 합당한 신사입니다”라고 이 팸플릿에는 적혀있다.과연 신사의 합사 기준은 공정하고 객관적이었을까?1920년당시 러시아혁명을 간섭하기 위해 일본은 시베리아에 대병력을 파견하고 있었다. 아무르강 하구의 항구마을 니코라예프스크에도 재류 일본인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이사와가 대대가 파견되었다. 이곳에서 니코 수비대와 빨치산과의 격전이 벌어졌고(이 때 일본군 병력은 정규군 수비대 이외에 재류민, 자위단과 재향군인 413명이었다.) 열세에 있던 니코 수비대를 돕기 위해 일본군 구원부대가 니코에 진격을 개시했지만 빨치산은 항복한 군인, 외교관, 재류민 생존자 전원을 살해하고 니코에서 철수하였다. 사건 희생자중 명예전사로써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된 것은 군인 368명,군속12명, 영사관이었던 문관2명 합계382명 뿐 수비대와 함께 무기를 들고 싸웠던 재류민, 자위단과 재향군인 413명, 전투 중에 밥을 짓고 부상자의 간호에 힘을 기울였던 재류 부인들의 이름은 “야스쿠니 신사 충혼지”의 명부에서 발견할 수 없었다. 여기에서 보면 같은 상황에서 실사를 같이 했던 일본 국민 사이에 합사 기준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확실한 민관의 차별이 엄존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야스쿠니 신사는 어떤 곳인가일본은 자생적 민간신도가 51.2% 불교 신자가 48.2% 나머지 제종교가 0.6%를 차지하고 있다. 신도의 사원인 신사는 말 그대로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따라서 신사는 일본인들의 조상을 모셔놓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고 그 조상이란 가문의 조상, 마을의 조상, 문명을 전해준 조상 등 우리네 조상이 많은 것처럼 많을 수밖에 없다. 조상신을 숭배한다는 점에서 예전 우리 나라 집집에 있던 사당과 별반 차이가 없다. 그런 일본 내에는 신사의 수가 8만개가 넘는다. 이런 점에서 일본은 신사의 나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신사를 사찰로 하는 신도의 교인들이 신사에 참배하는 것이 무슨 문제이겠는가? 문제는 야스쿠니 신사이다.야스쿠니 신사는 우리가 이해하는 의미에서 ‘종교’적 신앙의 장소가 아니라 국가주의적, 군국주의적인 영웅에 대한 숭배 및 전투적 국민 정신의 함향을 위해 만들어진 국가주의 신사이다.패전후 일본 점령정잭의 입안,결정,실사에 커다란 역할을 한 것은 연합국 중심이되온 일본의 점령,관리에 임했던 미국이다.미국이 초기 대일 정책에서 취한 방침은 일본 국민에 대해 천황이 신성 불가침의 절대적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일본 국민에게 천황제에 대한 비판의 자유를 인정하는 것으로 신격적 존재로서의 천왕의 절대적 지위에 관한 인식을 바꾸는 것을 일본 국민 스스로에게 맡기는 것 이상의 두가지 점에 있엇다.“군국주의 일본으로부터 일소하려면 군부와 천황사이의 긴밀한 관계를 가능한 단절하지 않으면 안된다”라는 정책을 취함으로써 그 고리를 어떻게 단절할 것인가가 점령정책의 중대한 사안이 되었고 그 중심에 국가 신도로써의 야스쿠니 신사가 있었다. 그 당시 야스쿠니 신사는 군부의 관할하에 있었고 다른 종교에 대해서는 국가 신도에 대한 이교 또는 이단으로 간주하여 심한 탄압을 행하였다.또한 문무성에서는 신사참배를 국가에 대한 교육상의 의무라고 규정하고 종교상의 이유에 대한 신사참배 거부는 불충, 비애국적인 행위라고 규정해버렸다. 이는 개인의 종교적 신조로써 어느 설을 믿고 교의를 주장할 것인가는 완전히 개인의 자유에 속하는 문제로 국가의 개입이 허용되는 문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타종교를 치안유지법과 불경죄로 탄압했다는 것은 대 일본제국의 국가기구 그 자체가 천황을 교주로 하는 하나의 종교 교단이 되어 권력적인 이단 탄압을 자행했다는 것이다. 천황을 중심으로한 ‘제정일치’의 지배체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정치와 종교가 국가권략 아래서 일체화 되었을 때의 무서움을 전쟁 전 이단 탄압의 역사가 잘 가르쳐 주고 있다. 치안 유지법으로 검거된자는 그 전원이 정치 종교로써의 국가신단, 근대 천황제 이데올로기의 이단자로써 국가의 제단에 공물로 바쳐진 희생양이었다고 해도 말해도 좋다.그리고 그 국가 신도의 중핵적 존재의 하나로써 야스쿠니 신사는 도조 전 수상등 태평양 전쟁의 B급C급 전범을 포함한 A급 전범 14명을 합사하고 있는 피로 물든 재단이다.야스쿠니 신사는 패전 이후 정교 분리의 원칙에 따라 국가로부터 분리되었다. 야스쿠니 신사는 현재 신사측과 그와 결탁하고 있는 우익세력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따라서 그들이 전범을 모시던 말던 그것은 그네들의 종교적 자유이므로 간섭 할 수 없다는 것이 일본 정부의 지금까지의 입장이었다. 그러나 야스쿠니 신사에 천황과 국무대신이 공식참배를 하는 것은 헌법 제 20조가 금지한 ‘나라 또는 그 기관의 종교적 활동’에 해당한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또한 야스쿠니 신사에 대하여 어떤 형식으로든 국비 또는 공비용 지출은 헌법 제 89조에 의해 금지되어 있는 ‘종교상의 조직 또는 단체의 사용 또는 편인 또는 유지를 위한 지출’에 해당한다는 것 또한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이런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야스쿠니 신사는 ‘순수한’ 종교가 아닌 정치적으로 특별한 의미를 갖는 국가적인 시설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야스쿠니 신사는 국가의 종교 시설이며 국가의 군사시설로, 따라서 국민들의 화합을 위한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수단이었다. 전쟁에 대한 희생자를 국민들에 대해 비극이라던가 비참하다든가 하는 생각을 들지 못하게 하고, 오히려 역으로 영광이고 명예라고 생각하도록 꾸며진 존재가 야스쿠니 신사였다.이 글의 저자를 이러한 구조에 대한 인식에 이르게 까지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틈나는 노래로 돌아가라 어머니의 꿈길로”라는 내용을 담고 있는 “야스쿠니 노”의 작사자가 바로 이 책의 저자인 오에 시노부의 아버지이다. 죽은 자의 영혼까지도 천황의 국가가 독점하는 것에 대한 아픔을 노래한 이 곡에서 “틈나는 대로 돌아가라 어머니의 꿈길로”라고 밖에 말할 수 없게 한 야스쿠니 신사에 대한 의문이 오에를 일본 근대사를 전공하게 만들었다.지은이는 A급 전범을 모시는 야스쿠니 신사를 국가가 호지하거나 또는 국가의 대표가 공식참배 하는 것은 일본 국민이 제 2차 대전의 전쟁책임과 전쟁 범죄를 스스로 공식적으로 면죄했다는 비난을 전세계로부터 받게 될 것임을 경고하고 있다. 교과서에서 침략의 문자를 말살시킨 문무성 교과서 검정이나 중국에 이르기까지 모든 아시아 각국의 격렬한 비난의 대상이 되어 중대한 외교문제로 발전한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나는 이 책에서 야스쿠니 신사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들을 얻을 수 있었다. 일본의 군사사와 종교사를 치밀하게 분석하고 또한 여러 문헌과 포츠담 선언 당시의 일본에 대한 미국의 정책을 담은 문서들, 전사자의 유족들의 증언, 야스쿠니 위헌소송에 대한 판례를 예로 들면서 야스쿠니 신사에 대한 깊은 이해를 도왔다. 국가신도로써의 야스쿠니는 천황 통치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고 국민들의 신앙의 자유마저 억압한 하나의 강력한 지배 수단임을 알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일본의 종전 기념일에 일본 고위 관료들의 신사참배는 그들에게 있어서 정치적으로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처럼 느껴진다.그렇다면 과연 대다수의 일본인들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모두 오에 시노부와 같이 야스쿠니 신사를 천황의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생각할 것인가..
    독후감/창작| 2008.06.28| 4페이지| 1,500원| 조회(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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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제정치]911테러에 대한 고찰
    2001년 9월 11일을 기억하시는가..누구도 막을 수 없던 초강대국 미국의 위신을 하루 아침에 땅바닥으로 떨어뜨린..미국의 심장부인 워싱턴과 뉴욕에서 상상조차 못했던 상상 최악의 동시다발 테러가 발생하였다. 미국은 국가 재난에 준하는 초유의 비상사태에 돌입하였고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이 날 수 천명의 인명피해를 초래한 이번 테러 사건에 직면하여 전군에 비상경계령을 내리는 한편 이날 저녁 대 국민 담화를 통해 사태 수습책을 밝히고 대 테러 응징을 천명하였다. 전 세계는 자유와 평화의 나라 미국에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미국은 테러의 배후로 사우디 아라비아 출신 테러 주모자 오사마 빈 라덴을 지목하고 그를 비호해 주고 있던 탈레반 정권과 오사마 빈라덴에 대한 공습을 하였다.부시 대통령은 아프간 공습에 대하여 “탈레반 정권의 군사력과 테러 조직의 기지 및 통신망을 무력화하기 위해 계획”됐다고 공식 발표했다. 또 9월 11일 미국에서 발생한 테러에 대한 보복 공격은 ‘반 테러 전쟁’이라고 선포하여 테러를 일으키는 집단과 또한 그 테러 집단을 은닌 보호해주는 세력까지도 응징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미국의 결정에 대해“찬성한다. 테러는 이 땅에서 척결되어야 마땅하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의 아프간 공습은 정당하며 여기서 발생하는 오폭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테러를 전세계에서 몰아내기 위해 치뤄야 할 어쩔 수 없는 희생일 뿐이다.‘라는 의견과“미국의 보복 전쟁은 심각하게 고려되어져야 한다. 테러 응징이라는 이름아래 무고한 민간인이 죽게 된다면 그것은 또 다른 형태의 테러일 뿐이다. 전쟁은 전쟁을 부른다. 피는 피를 부른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미국의 보복 전쟁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다 ”라는 의견으로 나뉘어 졌다.미국은 이번 테러로 인하여 6천명의 민간인 인명 손실이 있었고 수 조원에 달하는 경제적 손실을 받았다. 이에 대해 미국은 “자위권”발동 이라는 이름으로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공습을 행하였다. 반 테러라는 깃발을 높이 쳐들고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 보복전쟁을 실시했다.어떤 나라든 자국에 이런 테러가 발생한다면 가만히 보고만 있을 나라는 하나도 없을 것이다. 무고한 생명을 앗아가는 테러는 반드시 근절되어야 마땅하다.미국은 이번 9.11테러로 인하여 많은 것을 잃었다. 세계 막강 파워를 자랑하던 미국의 자존심은 무참히 꺾여 버렸다. 세계적 명성을 자랑하던 쌍둥이 빌딩 또한 미국의 자존심처럼 무참히 꺾여버렸고 완벽을 자랑하던 미 국방부 펜타곤 또한 쑥대밭이 되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통해 미국은 모든 것을 잃은 것만이 아닐 것이다. 미국의 방공시스템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과 더불어 미국의 적이 얼마나 늘었는가를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미국은 그런 일이 발생한 원인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자유와 평등과 평화를 외치며 전 세계를 손아귀에 넣고 주물렀던 미국은 자신의 모습을 반성해 봐야 할 것이다. 물론 미국이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다. 미국은 인류 역사상 전세계 발전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만약 지금의 지위에 미국이 아닌 중국 또는 러시아가 있었다고 생각해 보면 아마 지금 우리는 지금처럼 자유롭게 생활 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또 미국이 아니었더라면 전 세계가 이만큼 자유와 인권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갈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그러나 과연 미국이 세계사에 많은 공헌을 했다하여 지금 미국이 전세계 곳곳에서 저지르고 있는 온갖 만행을 눈감아 줘야 하는 것인가?1948년 5월 14일, 팔레스타인의 땅에 ‘위대한 이스라엘’이 건국을 선포했다. 아랍 국가와 이슬람 세계의 수많은 반대가 있었지만,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아랍인의 땅에 유대국가를 건설했다. 이 때 2천년의 떠돌이 생활에 종지부를 찍게된 유대인들은 그 동안의 역경을 딛고 일어서 마침내 자신들의 왕국을 건설했다. 반면 그 날 수백 만명의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은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빼앗긴 채 조국 탈환을 다짐하며 쫓겨났다. 유대인들은 유대인 박해와 나치학살로 온갖 민족적 차별과 종교적 박해를 견뎌가며 지금은 세계 최강의 미국이라는 나라를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거대한 세력으로 성장하였다. 그렇기 때문인지 미국은 이스라엘에 대하여 너무나도 관대하다.이스라엘 법원은 7살짜리 소년을 총으로 쏘아 죽인 이스라엘 병사에 대하여 구속을 할 만한 중대한 범죄가 아니라며 그 병사를 풀어준 사실이 있으며 비무장 15세 소년을 죽인 이스라엘 병사에 대하여 무죄판결을 내린 적이 있다. 또 이스라엘은 유엔의 반환 요구에도 굴하지 않고 곳곳에 유대인 정착촌을 만들어 아랍인을 무력으로 내몰았다. 이에 돌맹이와 화염병 종교적 신념에서 벌어지는 자살 공격으로 저항하는 팔레스타인들에 대해 탱크와 헬리콥터로 무장한 이스라엘군의 무차별 총기 난사와 조직적 학살이 있었다. 이런 이스라엘의 태도에 서구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유엔인권위원회에서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지역의 폭력에 대항하는데 있어서 과도한 무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강력히 비난했다고 한다. 또 유엔인권 고등판무관은 팔레스타인 지역 이스라엘군의 감축을 촉구하고 ‘일반 팔레스타인의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봉쇄와 이동 제한 및 다른 경제적 제재 조치들이 즉각 해소 되어야 한다’고 밝혔다고 한다. 유엔 조사관들은 보고서에서 ‘이스라엘 보안군이 과도하고 부적절한 무력을 행사해 왔다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고 지적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런 서구의 여론에 눈 깜짝 하나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미국에 돈줄을 대주고 있는 후원자로서의 미국이 막강 파워를 자랑하며 떡하니 뒤에서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이스라엘이 아무리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행위를 한다고 할지라도 어떤 나라도 그것을 자신있게 막지 못한다. 이스라엘을 든든하게 지원해 주는 미국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매년 이스라엘의 18억 달러를 포함 총 30억 달러씩 지원한다고 한다. 1인당 GNP가 1만 7천달라인 경제 강국 이스라엘에 미국은 엄청난 원조를 하고 있는 것이다.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취임 후 중동국가 지도자 샤론 총리를 워시텅으로 초대하고 팔레스타인 자치기구에 국제 감시단을 파견할지 여부를 둘러싼 유엔,안보리 표결에서 거부권을 행사해 팔레스타인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혔다고 한다. 과연 이런 미국이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는 민주주의 국가인가?..이런 평화의 나라에는 전쟁을 부추기는 거대한 언론권력 CNN이 있다.우리는 9.11 미 테러를 주요 방송 채널을 통해 접했고 세계의 반응을 지켜 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이번 사건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고 애도의 뜻을 보내는 반면 팔레스타인에서는 도저히 믿겨지지 않는 반응이 나왔다. 테러 사건 직후 CNN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기뻐 춤추며 허공에 총을 발사하는 등 이번 참사를 즐기는 듯한 모습을 반복적으로 방송으로 내보냈기 때문이다. 그 당시 테러리스트들의 신원이 전혀 파악되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이미 미국 정부와 언론은 범인들을 아랍쪽으로 몰고 가고 있었고 그런 ‘호전적인’ 팔레스타인들의 모습을 본 나로써도 그들이 범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장면은 1991년 쿠웨이트 침공 당시의 화면이라는 것임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사실은 팔레스타인과 이슬람세계의 잔인한 모습을 머리 속에 각인 시킨 뒤에 밝혀졌다. 팔레스타인 언론에 따르면 ‘당시 예루살렘의 한 사원에서는 수많은 아랍인들과 팔레스타인이 참석한 가운데미국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기도회가 열리고 있었다‘고 하지만 나는 그런 모습을 미국의 언론보도를 여과없이 그대로 방영하는 우리 나라의 언론에서 한번도 본적이 없었다.이런 점에서 CNN은 근거없는 화면을 전세계에 방영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증오심을 심어주고 감정적으로 흥분하게 만드는 해서는 안 될 범죄를 저질렀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과연 이런 미국적 시각아래서 생활해 온 우리들의 세계를 보는 시각은 올바른 것인가?
    사회과학| 2008.06.28| 4페이지| 1,500원| 조회(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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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남미사회의이해]중남미영화감상문
    [요약]언제부터인지 나도 모르게 라틴 음악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러한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된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막연한 친근감은 내가 스페인어를 공부하고 중남미 지역학을 공부하리라는 확신을 서게 만들어 주었고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중남미에 더욱 빠져들게 만들었다. 그런 인연으로 지금 스페인어와 중남미 사회에 관한 수업을 듣고 있는데, 그것은 그동안 내가 생각해 왔던 중남미의 미지의 것들에 대한 환상을 완전히 깨게 만들어 주었다. 덕택에 여태까지 가지고 있던 중남미에 관한 신비감보다는 현재 라틴아메리카가 처한 절실한 현실을 조금이나마 인식 할 수 있게 되었다.내가 본 영화는 “중앙역”“미션”“1492콜롬버스”인데 주로 느낀 것은 식민지배 과정에서 행해진 잔혹한 행위들에 대한 것이었다. 신대륙 발견에 관한 “1492콜롬버스”와 “미션”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점은 잔혹한 원주민 노동력 착취와 식민 지배 역사에 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식민 역사가 낳은 경제적 빈곤과 혼란에 대한 현재의 모습을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중앙역”을 통해 확인 할 수 있었다. “중앙역”을 본 후 가장 먼저 느껴지는 감정은 ‘따뜻하다’였다. 하지만 내 기억 속에 더 강하게 남은 것은 좀도둑을 총으로 쏴 죽인 장면 이었다 .아이들을 죽여 장기를 판다는 것 또한 현재 라틴아메리카가 처한 경제적 빈곤과 사회적 혼란의 모습을 작지만 강하게 보여주는 것 같다.“미션과 콜롬버스를 봤을 때 공통적으로 눈에 들어오는 것은 원주민에 대한 잔혹한 노동력 착취였다. 미션의 경우에는 정복자의 잔인한 원주민 학살 장면이 가장 잊을 수 없는 장면이었다. 영화를 보면서 개인적으로 예수회의 선교조차도 자연과 함께 순수하게 살아가는 원주민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폭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에서는 선교의 과정과 결과가 긍정적으로 그려졌지만, 내가 보기에는 원주민들도 자기들 고유의 종교가 있는데 꼭 그렇게 까지 포교를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멘도자가 원주민을 동물처럼 잡아서 사고파는 모습, 또 들이 보는 앞에서 원주민의 손목을 자르는 영화의 한 장면이 안타까웠다.“중앙역”각기 서로 다른 애절한 사연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하나하나 스쳐간다. 영화에서 쓰인 언어가 스페인어였는데 그들의 말 하나 하나가 나에겐 너무 사랑스럽고 따뜻하게 느껴져 왔다. 또한 너무도 어색한 그들의 모습이 전에 알고 지냈던 사람들처럼 친근하게 느껴졌다1998년에 브라질과 프랑스의 공동 제작으로 만들어진 월터 살레스 감독의 영화 “중앙역(central station)”은 나에게 그런 감정으로 다가왔다. 처음에는 그냥 가벼운 영화라고 생각했지만 영화 중간 중간에 나오는 믿겨지지 않을 사건들이 나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전직 교사였던 도라는 은퇴 후 별다른 직업 없이 글 모르는 사람을 위해 대신 편지를 써주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 편지들을 부치기는커녕 비웃으며 모두 쓰레기통에 버린다. 어느 날 아버지를 보고 싶어 한다는 말로 편지를 쓰러온 여인과 그의 아들 조슈에를 만나게 된다. 그러나 그 여인은 갑작스런 교통사고를 당해 죽게 되고 혼자 남겨진 어린 조슈에는 혼자남아 갈 곳도 없이 중앙역 주의를 맴돌게 되었다. 도라는 그런 조슈에를 보고 집으로 데려가지만 그녀는 매정하게도 죠슈에를 입양기관을 사칭한 장기 매매단에 팔아 버린 후 그 돈으로 tv를 장만한다. tv를 보며 뿌듯해 하는 마음은 어느새 죄책감으로 바뀌고 조슈에를 구하기 위해 도라는 필사적으로 탈출을 시행한다. 무작정 리오를 도망쳐 나온 도라는 조슈에가 아버지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려 하지만, 자신을 장기 매매단에 팔아 넘겼던 도라를 조슈에는 따르지 않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감정의 골은 점점 사라지게 되었고 마지막에 조슈에는 자신의 친형들을 만나게 되면서 도라와 헤어지게 된다. 결국 두 사람은 어느새 한층 더 성숙해진 모습으로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중앙역”은 우리 마음에 잔잔한 감동을 던져주는 감동적인 영화임에 틀림 없다.그러나 그런 영화 중간 중간 묻어나먹는 일이 만연한 사회..그들은 그런 곳에서 살고 있다. 자그마한 물건하나를 훔치다가 총에 맞아 죽는 일이 발생하는 사람 생명의 가치보다 조그만 물건하나를 더 귀하게 여기는 그들의 일상..그들은 그런 곳에서 살고 있다. 영화감독의 원래 의도를 내가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중앙역”은 내가 따뜻한 감동 하나와 더불어 이 영화가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는 지극히 현실적인 그들의 안타까운 모습들은 우리로 하여금 뭐가 더 소중한가를 다시 한번 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준다“미션”거대한 폭포수를 배경으로 웅장한 화면으로부터 시작되는 영화“미션"은 소수민족인 과이나족에대한 예수교 신부들의 헌신적인 선교와 그와 대조적으로 넘치는 권력욕을 가진 정치가들의 갈등을 중심으로 한 영국 영화이다. 난 미션 (The Mission:1986) 이라는 영화를 그에 사용된 음악이 유명하다는 것 외에는 아는 것이 없었다. 그냥 영화소개 프로에서 그렇게 스쳐지나간 그냥 평범한 영화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을 계기로 내가 새롭게 접한 미션은 그렇게 많은 상을 거머쥐게 한 음악보다도 인간이 법접할 수 없는 경외의 영역을 가진 때묻지 않은 자연의 모습과 순수한 원주민들의 모습이 더욱 인상적이었다.예수교회의 신부들은 선교활동을 통해 과리니 족을 감화시킨다. 가브리엘 역의 제레미 아이언스와 원주민들의 첫 만남은 음악을 통해 이뤄졌는데, 이 낯선 선교사에 대한 아무런 반항이 없었던 것은 원주민들이 그를 신으로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가브리엘의 과라니 족과의 생활도중 멘도자라는 용병이자 노예사냥꾼이 과라니족을 잡아 노예로 팔아넘기곤 했다. 멘도자는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이 동생을 사랑하게 알게 되자 멈출 수 없는 분노로 인해 동생을 살해하게 된다. 그 죄로 인해 감옥에서 폐쇄적인 생활을 하던 그는 가브리엘 신부와 만나게 되고 이 과정에서 멘도자는 가브리엘 신부의 권유로 죄 값을 참회하기로 하고 신부가 된다. 멘도자가 자신의 죄 값을 치루기 위해 갑옷과 칼등 여태까지의 그의 삶을 나타내치르게 되었다. 총과 칼로 무장한 포루투칼의 군대와 신성한 신앙심으로 뭉친 선교사들과 자신들의 영토를 지키기 위해 돌과 창으로 대항했던 원주민들과의 전쟁은 말할 것도 없이 원주민들의 전멸로 막을 내렸다. 그들이 그토록 지키려 했던 소중한 보금자리는 탐욕스런 정복자에 빼앗겼다.내가 영화 미션을 보면서 느꼈던 점은 과연 선교라는 것이 그들의 자연스러움을 해치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과연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물론 문명의 유입으로 원주민들의 생활이 더욱 편해질 수는 있겠지만 결국 서양의 힘에 의해 강요된 문명은 자꾸만 그들의 본연의 고유한 모습을 잃어가게 만드는 것 밖에 보여지지 않는다. 투철한 신앙심으로 선교활동을 하는 신부들의 희생정신은 물로 높이 평가할 만 하지만 서양에 의해 무자비하게 강요되어진 “문명이라는 것은 자연과 동화되어 살아가는 원주민들에게는 오히려 그들의 순수함과 그들 고유의 소중한 삶의 방식을 파괴하여 불행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밖에 생각되어지지 않는다. 또한 미션에서 자신들의 탐욕스러운 삶을 위해 원래 그 땅의 주인인 원주민들을 힘이 없다는 이유하나만으로 철저하게 무시하고 너무도 잔인하게 폭력적으로 학살하는 장면은 정말 눈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잔혹했다. 미션의 마지막부분에 나오는 장면중의 하나인데. 군인들과의 전쟁 중에 수적으로나 또 무기의 열세로 신부들과 원주민들이 점점 죽어 가는 상황에서 남은 아이들이 항복의 표시로 배 위에서 4명이 손을 머리위로 올린 채 일렬로 서있는데 군인들은 인정사정 볼 것도 없이 바로 총으로 너무나도 간다하게 그들을 날려버렸다..과연 얼마나 많은 원주민들이 이런 식민화 과정에서 고통 받고 또 얼마나 많이 살해당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정말 끔찍했다“1492콜롬버스”세계사에서 아주 획기적인 하나의 사건으로 평가되는 신대륙 발견을 영화화 한 “1492콜롬버스(1492The conquestof paradise :1992)리틀리 스콧감독과 시고니 위버 ,제라드 드 빠르디유 등이 활약한 이 영화에서는 영국 미국 프랑스 스페인는 않았다. 하지만 우연한 계기로 콜롬버스는 지원자를 만나게 되고 그로 인해 이자벨여왕의 신임을 얻어서 드디어 그의 꿈이 이루기 시작했다1492년 산타마리아 호를 비롯한 3척의 배로 신대륙 발견을 위해 서쪽으로 항해하던 콜롬버스는 예정의 2배가 넘는 2개월여 동안 극심한 공포와 선원들의 반란 위험 등의 위기를 가까스로 모면한 채 태초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과나하니 섬을 발견하게 된다. 처음 섬을 발견했을 때 그들은 그곳을 인도의 일부라고 생각하여 식민지로 개척한다. 본토 대륙을 발견하기 위하여 2번째 항해를 한 콜롬버스는 서인도 제도에 민주적이고 이상적인 신세계를 건설 하던 중 원주민과의 갈등 ,귀족들의 반대로 인해 난항을 겪다가 갑작스런 허리케인으로 인해 그의 신세계는 황폐화되게 된다. 그 후 귀족들의 미움을 사 감옥에 갇히게 되지만 끊임없는 도전정신과 모험정신은 그가 죽는 날까지도 지워지지 않았다사람들은 콜롬버스의 항해를 “신대륙 발견“이라 칭한다. 우리 또한 아무렇지도 않게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과연 ”신대륙 발견”이라는 말이 정당화되어질 수 있는 것일까? 콜롬버스가 발견했다고 하는 원래의 땅은 예전부터 자신들의 문명을 이루며 오래 전부터 살아온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서양인들은 탐욕에 눈이 멀어 너무도 잔인한 방법으로 그들을 짓밟았다신대륙 발견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 유럽자본주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하고 또한 그들이 세계를 더욱 손쉽게 지배할 수 있도록 만든 계기였다. 그뿐만 아니라 식민지배 이후 500년 동안이나 라틴아메리카를 불평등한 사회구조 종속적인 경제구조 또한 혼혈의 문화를 만들게 한 아주 중요한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우리는 단지 서구문명의 힘이 막강하다는 이유로 그들과 같은 시각으로 신대륙 발견을 이해해서는 안 된다. 스페인과 포루투칼 등 당시 식민사업에 열을 올렸던 나라들이 얼마나 잔혹한 방법으로 그들의 욕망을 채웠는지 또 그 식민지배의 역사가 오늘날까지도 라틴아메리카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다.
    독후감/창작| 2008.06.28| 7페이지| 2,000원| 조회(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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