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지금 왜 문화인류학을 배워야 하는지 설명하시오.서구의 인문주의와 함께 발달해 온 인류학은 소위 원시인에 대한 연구나 인류의 진화에 대한 연구를 통해 인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추구한 학문이었다. 하지만 시기의 변화와 함께 인류학자들은 오지뿐만 아니라 도시나 공장 등 현대 산업사회의 문화에 대해서도 많은 업적을 내고 있다.인류학자들은 세계 여러 문화의 다양성에 주목해오고 있는데 특히 문화를 이루는 인간 생활의 거의 모든 측면이 서로 관련을 맺고 있다는 사실을 중시하고 있다.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버넷 타일러는 문화란 지식, 신념, 예술, 법, 관습을 포함하는 복합 개념이며,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인간이 획득한 어떤 능력과 습관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정의한다.이러한 문화는 인류학의 핵심적인 개념이자 중요한 연구주제 중 하나로, 고급예술이나 품위있는 생활방식이라기보다는 인간의 전반적 생활방식 및 관념체계를 의미한다. 정치학자나 경제학자 등 다른 사회과학자들은 정치, 경제 등 인간 생활의 어느 한 측면을 분리하여 다루고 있으나, 인류학자들은 각 부분과 측면들이 서로 관련을 맺고 있는 방식 또는 그와 관련된 주제들을 주된 연구대상으로 삼아왔다.인류학에서는 자문화보다는 타문화를 주된 연구대상으로 삼고 있는데, 이는 다른 문화를 통해 자기 문화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른 문화와 접촉하며 살아가는 지구촌 시대의 사람들은 과연 다른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어떤 시각과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 이러한 근본적인 질문의 바탕에는 문화인류학을 배워야하는 이유가 내재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우리는 흔히 자신의 윤리나 도덕, 가치 등을 인간 모두가 공유하는 보편적인 것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우리 방식대로 세상을 바라보며 살고 있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문화의 내용은 누구나 공유하는 보편적인 것이 아니며 각각 인간 집단이 처해 있는 특수한 환경과 상황, 또는 주변의 다른 집단과 교류하면서 오랜 기간에 걸쳐 축적된 결과물이기 때문에 그 나름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따라서 어떤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해석한다는 것은 그 문화가 생겨난 특수한 사회적 상황이나 배경,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특수한 역사적 경험을 그 맥락 속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다시 말하면 우리가 누구인가, 그들은 어떤 사람인가 라는 질문을 통해 그들을 이해하고, 우리를 발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문화의 다양성 속에서 내재하는 인간의 공통성을 깨닫기 위함이 바로 문화인류학을 공부해야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
영화 《여고괴담3 ; 여우계단》에서의 여우의 상징< 목 차 >Ⅰ. 들어가는 말Ⅱ. 영화 《여고괴담3 ; 여우계단》에서의 여우1. 영화의 줄거리2. 여우의 상징 - 죽음Ⅲ. 나오는 말Ⅳ. 참고문헌Ⅰ. 들어가는 말한국뿐 아니라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여우를 소재로 하는 설화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야기의 종류와 성격 또한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우리나라에서 보여지는 여우의 이미지는 부정적인 인식이 대부분이다. 술책을 잘 쓰고 교활하며, 위선적이고 나쁜 꾀를 부리며 ‘여우가 울면 초상이 난다’라는 말이 있듯이 여우는 죽음을 상징하는 동물이기도 하다.우리는 이 낯설지 않은 소재인 여우를 영화에서도 접할 수가 있다. 《여고괴담3 ; 여우계단》가 그 예이다. 현재 여고괴담시리즈는 4편까지 상영된 상태이다. 이 중 본고에서는 3편 ‘여우계단’를 중심으로 한국에서의 인식하고 있는 여우의 상징이 이 영화에서는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Ⅱ. 영화 《여고괴담3 ; 여우계단》에서의 여우의 상징1. 영화의 줄거리학교 기숙사로 오르는 숲길에 28개의 층계로 된 계단이 있다. 여우가 소원을 들어 준다는 전설이 있어서 여우계단이라 불린다. 여우계단의 전설은 간단하다. 간절히 소원을 품고 한 계단씩 오르면, 없던 29번째의 계단이 나타나서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입시에 물들어 있는 여고생들은 그 소원의 답이 여우계단의 끔찍한 저주와 함께 되돌아온다는 것을 잊은 채 친구들 몰래 여우계단을 오르게 된다.“여우야, 여우야, 나 , 항상 진성이 옆에 있게 해줘.” 소희가 소원을 빈다. 진성과 소희는 발레를 전공하는 무용반 단짝친구다. 하지만, 진성이는 매일 밤낮 안 가리고 피나는 연습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타고난 재능을 가진 소희에게 밀려 항상 2등이다.어느 날, 서울 발레 콩쿨에 나갈 교내 대표를 뽑는다는 공고가 붙자 진성이는 잔뜩 설레하지만 소희에게 학교 대표의 자리를 뺏기게 되고 진성은 홀린 듯 여우계단으로 향한다. 자신이 서울 발레 콩쿨에 나갈 수 있게 해달라는 내용의 소원을 빌기 위해서이다.다음 날, 깨진 유리가 든 토슈즈를 신고도 학교 대표로 뽑힌 소희는 진성을 찾아간다. 서로에게 무언가 화가 난 이 둘은 다투게 되고 그러던 중 소희가 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지게 되는 사고를 당한다.한편, 학교 얼짱인 소희를 동경하는 미술반 뚱보 혜주는 모든 아이들의 놀림감이 되기 일쑤였다. 급기야 많은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큰 망신을 당한 혜주는 여우계단을 올라 소원을 빌게 된다. 살이 빠지게 해달라고 말이다.다친 소희를 대신해서 콩쿨에 출전한 진성은 1등으로 입상한다. 어느 날 밤, 진성이의 기숙사 방 창문을 통해서 병원에 있는 줄만 알았던 소희가 몰래 찾아온다. 소희는 진성이에게 여우계단에서 빌었던 소원을 고백한다. 자신과 영원히 함께 있기를 소원했다는 소희의 말을 듣고 진성이는 미안해한다. 그러나 다음 날, 학교에서 진성이는 그전날밤 소희를 만나기 전에 벌써 소희가 자살하여 죽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충격에 빠진다.뚱뚱했던 혜주는 점점 야위어가고, 자신이 동경하던 소희의 죽음에 대해 안타까워 다시 여우계단에 오르게 된다. 다시 소희를 살려달라고 소원하게 되고, 소희의 영혼이 혜주의 몸에 빙의된다. 하지만 이는 혜주의 환각(소희의 영혼이 혜주의 몸에 빙의되었다는 사실)이고 소희의 영혼은 다시 살아나 학교를 자유롭게 떠돌며 학생들에게 공포를 준다. 모든 게 엉망이 되자 진성이는 다시 여우계단을 찾아가 처음으로 되돌려 달라고 빌게 된다. 아이들의 소원이 부른 여우계단의 저주는 학교를 죽음으로 몰아간다.2. 여우의 상징이 영화는 학교전설로 전해지는 여우계단이 중심소재가 되어 이야기가 전개된다. 여기에서 여우계단은 소원을 들어주는 대신 끔찍한 저주도 함께 전한다. 끔찍한 저주는 곧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에서 나타나는 여우는 한국 민속에서의 여우의 이미지가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한국 민속에서의 여우는 악물(惡物), 죽음, 지혜, 간사함, 교활함, 성욕등을 의미하고 있다. 긍정적인 상징과 부정적인 상징을 고루 가지고 있는 동물로 보여진다. 하지만 한국인의 인식 속에서는 긍정적인 부분보다 부정적으로 많이 작용되어지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여우는 인간의 목숨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죽음의 이미지와 연결되어 있다.민간의 속신에서 여우의 울음은 죽음을 의미하여 ‘북쪽에서 여우가 울면 그 동네에 초상이 난다.’고 하였다. 북쪽은 공동묘지가 있는 북망산을 상징하며, 음과 암을 가르킨다. 여우 중에서도 북쪽의 여우는 죽음을 상징한다. 여우의 울음은 죽음을 알리는 소리로, 옛날 사람들은 이를 저승차사의 출현으로 인식하였다.또, ‘밤에 여우가 울면 불길하다’고 하였다. 밤은 암흑과 죽음, 귀신과 맹수가 활동하는 궂은 때이므로, 여우의 울음소리는 이런 것들과 부합되어 죽음을 상징하게 된다. 특히 환자들에게는 더욱 강하게 인식되어, 이 때문에 여우가 몹시 울면 동네의 병자가 죽는다는 속신이 생기기도 했다.이 영화에서도 여우를 죽음의 이미지로 보는 것이 가장 적합할 것으로 보인다. 여우가 죽음과 관련된다는 이러한 관념은 여우의 생태적 습관으로부터 기인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중국의 왕필(王弼)의 《周易?解卦》注 에는 “여우는 숨어 지내는 동물이다.”라고 되어 있다. ‘바위?굴’, ‘숨어 지내는 습성’등의 표현들은 여우의 어둡고 무거운 이미지를 만들어내었고 이는 여우가 무덤 근처에 사는 동물로 죽음과 관련된다고 할 수 있겠다. 여우계단이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계단에 진짜 여우가 산다는 의미보다는 계단 뒤에 어딘가에 숨어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이미지로 형상화된다.
Ⅰ. 머리말서구 지향적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우리의 문화도 하루하루 달라지고 있다. 이러한 급진적인 변화에 우리는 “우리 것이 좋은 것!”,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다.”라는 말을 많이 하게 된다. “우리의 것” 또는 “한국적인 것”으로 전통 또는 민속 문화를 예로 들어 말하는 경우가 많다. 전통 또는 민속 문화는 국가/민족 정체성을 형성하고 통합하기 위한 자원으로 끊임없이 동원되며, 이는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우리의 삶과 문화를 형성하는 기제로서 작동하고 있다. 그 안에 무형문화재가 속해 있다.무형문화재는 “연극?음악?무용?공예기술 등 무형의 문화적 소산으로서 역사적?예술적 또는 학술적 가치가 큰 것”으로 정의되고, 국가에서 지정?관리하는 중요무형문화재와 시?도에서 지정?관리하는 시?도 지정 무형문화재로 나눌 수 있는데, 이제는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보존제도보다는 광역자치단체 지정 무형문화재 보존제도에 대한 연구도 심층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러한 연구는 지방화 시대에 따른 행정 분권화 및 지방자치단체 문화재 보존 역량강화를 노력하고 있는 국가적 차원에서도 필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한다.국가가 ‘무형문화재’를 지정하는 일차적 목적은 전통의 ‘보존’이다. 국가는 사라져가고 있는 전통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겠다는 정책 목표를 가지고 문화재를 지정하는 것이다. 즉, 국가는 전통을 현재의 것과는 다른 것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오래된 것일수록 전통의 전형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전통이 ‘오래되고 변화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대부분의 전통이 정치적으로 조작된 것이며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이 연구는 울산 울주군의 외고산 옹기마을의 울산 옹기장을 대상으로 한다. 울산 옹기장은 울주 외고산 옹기협회가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울산 무형문화재로는 제4호로 공식 등록된 상태이다.전국 최대 옹기 집산지인 울주군 온양읍 외고산 옹기마을은 1957년 경북 영덕의 허덕만이라는 사람이 이 곳으로 정착해 오면서 옹기를진들을 양성하면서부터 현재의 옹기마을이 형성되어 왔다. 6-70년대부터는 전국 각지에서 350여명의 옹기장인과 도공들이 모여 번성기를 이루어 한국전통옹기의 맥을 이어온 중요한 지역이다. 보리고개로 어려운 시기라 옹기를 배우려고 하는 사람과 각지의 도공들이 몰려와 급속도로 마을이 성장했다.울산에서 옹기업이 번창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옹기를 만드는 데 사용하는 흙의 질이 좋고, 굴을 지을 수 있는 좋은 지형을 갖추고 있고, 겨울에도 영화로 내려가지 않는 대체로 온화한 기후와 울산과 부산 사이에 위치하여 편리한 교통 등 때문이다.그러나 80년대 이후 산업화로 인한 옹기 수요와 옹기전통문화에 대한 관심도가 낮아지면서 지금은 128가구 중 40여 가구가 옹기업에 종사하면서 그 맥을 잇고 있다.그 중 옹기를 업으로 하는 업주들끼리의 친목도모 모임으로 외고산 옹기협회가 있다. 협회원들은 대부분 옹기제작 30-50년 이상 종사해 온 8명의 사람들로, 전통 옹기(발)물레 성형, 전통유약 제조와 시유, 전통굴 소성 등 전통 옹기 제작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Ⅲ. 무형문화재 옹기장 지정까지울산 외고산 옹기협회는 2009년 2월 5일, 울산광역시 무형문화재 제 4호 옹기장 기술보유단체로 지정되었다. 울산광역시 무형문화재는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시에 있는 문화재로서 문화관광부장관이 지정하는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되지 아니한 문화재 중 울산광역시장이 향토문화보존에 필요하다고 인정하여 지정한 문화재로서 그 유형은 다음과 같다.무형문화재: 무형문화재법 제2조 제1항 제2호의 무형문화재 중 중요한 것. 문화적 소산으로서 향토문화 보존에 필요한 것.울산 외고산 옹기마을의 옹기의 제작공정과 기법은 타지역과 거의 비슷하다. 배가 볼록 나온 형태에 좁은 입지름과 밑지름이 특징이다. 외고산 옹기마을의 옹기협회가 옹기장으로 지정된 이유는 옹기의 제작공정이나 기법이 다른 지역과의 차이 때문이라기보다 전국 최대의 옹기집산지인 외고산 옹기마을의 전통문화를 보존하고자하는 이유에서이다.전국 옹기업체 현황을 살펴보면술보유단체 지정에 대한 찬성, 반대 의견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이다.찬성: 전통방식 사용할 수 있는 사람들 기술은 다 최고. 그러나 효율적인 면을 생각하고 경제적인 면을 생각했을 때 현대방식을 사용하게 되는데, 순수 전통방식을 사용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100% 전통을 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니 유두리있게(?) 문화재지정을 할 수 있어야 한다.반대: 지금 현재 다른 지역에는 순수 전통방식을 사용하는 사람이 있다. 무형문화재보유자는 완전 전통을 고수하는 사람만 지정되어야 한다. 그러니 이곳에서도 순수 전통방식만 사용하는 사람들만 지정하는 게 맞다.이렇게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 울산 옹기장이 그동안 끊임없는 개인별 문화재지정 신청에도 불구하고 계속 받아들여지지 않다가 옹기협회가 단번에 옹기기술보유단체로 지정될 수 있었던 배후에는 어떤 것들이 작용했을까?Ⅳ. 문화재지정과 전통의 정치성2009년 2월 5일자로 옹기협회가 옹기기술보유단체로 울산 무형문화재 지정이 된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했던 것과 같이 문화재 지정과 함께 사람들 사이에서는 암묵적인 비판과 갈등이 계속되었다.문화재 지정에 따라 옹기협회 내에서의 갈등, 문화재보유자격을 얻은 옹기협회원들과 옹기협회에 가입하지 않아 문화재보유자격을 얻지 못한 일반 도공들 간의 갈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갈등 양상을 조장하게 된 가장 큰 이유로는 지방자치단체인 울산시의 정치성이 크게 작용하였기 때문이라고 본다.1. 옹기협회 내 갈등옹기협회는 총 8명의 회원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옹기를 만드는 방식에 있어서 아직까지 전통방식을 고수하는 회원과 현대방식을 이용하는 회원으로 나뉜다. 이는 1980년대 이후 산업화가 이루어지면서 점차 옹기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 줄어들고 그에 따른 수요가 줄어들게 되면서부터이다.전통방식은 직접 손으로 빚고 전통굴에 구워내는데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전통굴의 경우 굴의 크기에 따라 열전도가 다르기 때문에 일정하지는 않지만 작은 굴의 경우 4일, 큰 굴의 경우 10~15일 정도 걸리는 오랜 면 제대로 옹기값을 받을 수 있고 우리가 후세에게 전해줄 수 있는 명분이 생기는 거지. 근데 실질적으로는 현대방식이 돈벌이가 더 좋아. 생산능력 차이가 많이 나니까. 재래방식으로 5개 만들 거 기계로 만들면 15개 만들 수 있고. 무형문화재를 시에서 인정을 하고 하니까 (전통방식으로) 어쩔 수 없이 바꾸는 거지. 하하하!한편, 지금까지 전통방식을 고수해온 옹기업자 입장에서는 전통방식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문화재 보유대상자가 되었다는 것에 대해 문화재법을 비판하며 서운하고 아쉬운 마음을 나타냈다.모르겠어. 이게 단체로 받는 거 자체가 잘못되어 있거든.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불만을 가지고 있었지. 왜냐면은 지금 현대식으로 하면서 그런 걸 받았다는 게 부끄러운 거거든. …… 만약 아직 문화재 지정이 안 됐을 때라면 단체보다는 개인으로 되는 게 맞지. 왜냐면 할 수 있는 사람이 무형문화재를 받아야 되는 거 아닌가. 대를 이어서 전통식으로 해서 물려줄 수 있는 사람들. …… 현대식하는 사람한테 서운하기도 한데 한 동네에 있으니까 양보를 하고 하는거지.옹기협회를 옹기장 보유단체로 지정하는 조건으로 무형문화재 지정 목적에 맞게 앞으로 전통방식을 따라야 한다. 즉, 옹기장들이 무형문화재 지정을 계기로 전통기술을 전승하는 본래의 취지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현재 현대방식으로 옹기를 만들고 있는 사람들도 점차적으로 전통방식을 이용하여 전통굴에 구워내는데 협조해야 한다.2. 옹기협회와 지정되지 않은 도공들 간의 갈등한편 옹기협회가 문화재보유단체로 지정되자, 협회사람들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이곳에 정착하여 계속 전통옹기 만드는 일에 종사하고 있는 도공들은 불만을 토로했다.옹기협회는 옹기업을 하는 사람들이 모인 단체로, 옹기업을 하지 않고 업주 밑에서 옹기를 만드는 일만 하는 사람은 협회에 들 수 없는 게 규정이다. 이런 규정 때문에 옹기협회 회원 중에는 옹기를 다룬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고 전통기술을 사용하지 않는 데에도 옹기협회 회원이라는 이유만으로 무형문화재 기술지정할 가치가 있느냐는 지적이 나오면서 무형문화재 지정이 성립되지 못하였다. 그러다 2009년에 울산시청은 갑자기 옹기협회를 무형문화재 보유단체로 지정하게 된다.이러한 현상에 울산시청 문화예술과에서는 현재 대부분의 옹기장이 현대방식으로 작업하고 있는 이러한 실정에서 순수 전통방식만을 고집하다가 전통 문화 보존이라는 본래 취지도 살리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 하에 단체 지정을 하게 되었고, 울산이 옹기집산지이기 때문에 어느 한명을 지정하여 소수의 보유자 중심으로 전승되는 '문화독점화'를 벗어나, 지역주민 스스로가 전승의 주체로 자리매김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했다고 밝혔다.그러나 필자가 조사한 바로는 단순히 그러한 이유 때문만이 아니다. 이 배후에는 어떤 일들이 작용되고 있었던 것일까?2006년 이전에 개인으로 신청했을 때에는 전통가마 활용, 옹기 제작기술의 완성도와 정통성, 기술 전승 등 전통문화 보존을 위한 조건을 제대로 갖춘 옹기장이 없다는 이유로 지정 재검토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2009년에는 2006년 이전과 거의 같은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심사기준을 완화하여 보유단체로 지정하게 된 것이다. 심지어 몇 년 동안 지정이 되지 않고 보류상황이었던 것을 6개월 만에 이뤄내었다.전통옹기문화 계승과 발전을 위함이라는 기본 전제는 같지만 무형문화재 지정에 따른 도공들과 지방자치단체 울산시청의 입장은 확연히 다르다. 시의 입장에서, 세계옹기엑스포 개최지의 명분을 마련하기 위해 옹기장이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는 것이 시급했던 것이다.매년 옹기축제를 열고, ‘2009 울산세계옹기문화엑스포’를 여는 울산에서 옹기장 무형문화재가 한 명도 없다는 지적이 계속되었고, 옹기를 울산의 소중한 전통문화유산으로 계승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무형문화재 지정이 시급하다는 것이었다.울산이 공업도시로 사람들의 머리 속에 인식되어 있는데, 이런 딱딱하고 어두운 듯한 이미지를 좀 더 밝고 건강한 이미지로 개선시키고자 전국최대 옹기 마을이라는 강점을 극대화 시켜서 “옹기하면 울산 외고산!”이 바로다.)
[무속론 report]감 상 문- KBS 다큐멘터리 ‘진도’, 영화‘사이에서’, 황루시 『우리무당이야기』 -‘무속’이라는 것은 우리나라의 원형과 특징을 그 어느 것보다도 비교적 많이 드러내고 나타낼 수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민속’이라는 명칭 아래, 가장 먼저 조사와 연구가 시작된 것이 바로 ‘무속’인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무속의 정기의례는 세시의례의 리듬과 일치하고 그에 따라 민속을 연구하기에 큰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하지만, 요즘 시대에 ‘무속’에 대해 미신적이고, 불가능하고, 뭔가 실제적이지 않다고 여겨지는 인식들이 늘어가고 있다. 기독교, 천주교인들이 대다수이며, 그들은 죽은 이의 혼도 몸과 함께 간다고 생각하는 것이 대부분이다.필자 또한 마찬가지로 무속문화에 대해 부정적인 면을 생각하게 된다. 부정적이라기보다는 왠지 모를 공포 때문에 민속학 4학년생임에도 불구하고 이번 무속론 수업을 듣기 전까지는 ‘무속’을 이유 없이 멀리하기도 했다. 그래서 ‘굿의 현장’에도 가본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현지조사 할 때에도 ‘무속’에 대한 주제를 다루려하지 않았었다. 이는 황루시의 말처럼, 대중매체를 통해 접한 무당의 모습이 무시무시하고 권위적인 모습이라 무속과 굿에 대한 편견을 가지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지금은 매우 얕고 낮은 지식임에도 불구하고 무속에 대해 새로운 것을 하나하나 알아가고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들뜬다. 특히, 2주에 걸쳐 시청한 ‘사이에서’라는 영화와 KBS 다큐멘터리 ‘진도’는 필자에게 ‘무당’이라는 주제에 대해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도와준 매개체라고 하겠다. 거기에 황루시의『우리무당이야기』를 읽으니 ‘무당’에 대해 더욱 이해가 쉬웠다. 그 중에서도 영화‘사이에서’와 황루시의『우리무당이야기』는 무속에 대한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다른 수업시간에 가끔 이름 정도만 들을 수 있었던 무당의 실제 굿하는 모습에 대한 묘사라던지, 실제 사진과 VCR을 통해 필자가 직접 가서 굿판을 보고 있는 듯한 새로운 경험을 한 것만 같다.‘사이에서’라는 영화는 ‘이혜경’이라는 무당과 신병을 앓고 그녀를 찾아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들이 무당이 되는 과정, 그들이 겪는 고통, 번뇌 등을 그대로 찍어내고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로, 대부분 다큐멘터리라고 하면, 이것이 어떤 종류의 다큐멘터리라 하더라도 나레이션이 있어서 우리들의 시선과 생각을 이끌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나레이션보다도 ‘무당’과 그 ‘무당’ 주변 인물들과의 소통, 대화를 그대로 들려준다. 이것으로 좀 더 흥미를 갖고 내 시각으로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한 장면장면 마다의 의례적 상황이 나올 때, ‘이는 어떤 이유로 이런 것을 하고 있다.’라는 약간의 설명이 첨부되었다면 이해가 한층 더 빨랐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있다.이 영화를 보면서 ‘신병’에 대해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다. 신의 뜻을 이어받으라는 암시 정도로 받아들여지다가, 신의 뜻을 받들지 않으면 병세가 날로 악화된다. 그러다 신의 뜻을 받아들이고 무(巫)의 길로 들어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 깨끗하게 나아버린다. 제 몸도 못 가누고 아들 등에 엎혀다녔던 여자가 멀쩡히 두발로 걷고 생활하는 것 보면, 말로 설명 안되는 일들이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또, 신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친인척이 신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왜 그렇게 된 것일까? 정확한 해답을 얻진 못했지만, 매우 흥미로웠다.『우리무당이야기』는 ‘무속이란?’ 이라는 딱딱한 문체로 서술해나가는 개론서가 아닌, 재미있는 이야기를 전해듣는 듯한 느낌으로 재미있게 읽었다. 작가가 어떻게 해서 ‘무속’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는지부터 시작해서 그녀가 만난 무당, 그녀가 본 ‘굿의 현장’, ‘무속’에 대한 그녀의 짧은 생각을 순서대로 정리해 이야기 해주는 듯 했다. 그러면서 필자도 마치 그녀와 함께 보고 느낀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무당이라고 하면 무섭고 가까이 다가가 이야기 한번 붙이지 못할 사람으로 여겼었는데, 황루시는 아무렇지 않게 친구같이 대하고 ‘무당’들의 일상에 스며들어 함께 하고 있었다.세가지 매체를 통해 ‘무속’에 대해 좀 더 쉽게 접근하여 이해하려고 해보았다. 그러나 이 매체들이 과연 옳기만 한 것일까? 책과 VCR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그대로 받아들여도 되는 것인가? 읽는이, 보는이 각자마다의 약간의 거름망작용을 한 후에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예를 들자면, 『우리무당이야기』에서 무당을 나누는 기준을 단순히 강신무와 세습무로 나누고 있다. 이는 무속학회 등을 비롯해 많은 학자들이 그렇게 받아들이고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무당을 이분법적으로 확실히 구분할 수 있느냐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우리가 본 VCR과 책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강신무를 보면 신어머니-신딸의 관계가 존재한다. 또 세습무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 이는 그냥 단순히 신이 내렸다고 해서 무당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자신이 되고 싶다고 쉽게 무당의 길로 들어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즉, 무(巫)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신어머니로부터 무당의 몸가짐, 접신방법 등을 학습하게 된다. 이런 점을 볼 때, 책의 내용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또, 우리나라의 무당은 대부분 빙의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사이에서’를 보면 혼의 넋을 달래는 과정에서 무당이 “눈물이 난대”이런 식으로 말을 건네고 있다. 이런 식의 말투는 제 3자가 중간에서 말을 전달해주는 식의 전개이다. 과연 이것이 빙의된 것이라고 볼 수 있는가? 도 의문이다.
바가지의 상징< 목 차 >Ⅰ. 들어가는 말Ⅱ. 바가지의 상징1. 비범한 인물의 탄생2. 벽사3. 질병퇴치4. 금기5. 부정적(否定的)개념6. 생산성7. 악기Ⅲ. 나오는 말Ⅳ. 참고문헌Ⅰ. 들어가는 말봄에 박씨를 뿌려서 싹이 나와 한여름 동안 자라나면 늦 여름철에 박이 지붕으로 올라가 동그란 박이 된다. 박을 따다가 반쪽으로 켜서 속을 파내고 껍질을 뜨거운 물에 삶아서 건져 응달에 서서히 말리면 바가지가 완성된다.바가지는 한국 가정의 필수용품으로서, 쌀을 퍼내는 쌀바가지, 장독에 두고 쓰는 장조랑바가지, 물을 퍼내는 물바가지, 소의 먹이를 떠내는 쇠죽바가지 등 용도가 다양하다. 바가지는 비단 살림도구에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박에 구멍을 뚫어 눈과 입을 만들어 탈바가지로 쓰기도 하고, 통박과 한지를 이용하여 등(燈)을 만들기도 하며 바가지에 따라서는 조롱박이라고 하여 작은 호리병 모양의 박도 있다.이렇게 우리 생활의 일부분이었던 바가지가 가지는 여러 상징 중에서 비범한 인물의 탄생, 벽사, 금기, 복, 악기 등으로 나누어 살펴보도록 하자.Ⅱ. ‘바가지’의 상징1. 비범한 인물의 탄생실제 박이나 바가지에서 탄생한 인물들은 아니지만, 박의 모양을 하고 있는 알 등에서 태어나 바가지가 비범한 인물들의 탄생에 상징적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할 수 있다.① 박혁거세 탄생설화『삼국유사』의 박혁서게 탄생설화를 보면, ‘사내아이가 알에서 났다. 그 알은 박과 같았다. 향인들이 박을 朴이라 하므로 그 성을 박이라 했다.’는 기록이 있다. 난생모티프는 영웅이나 시조들의 출생과 연루되어 있다. ‘알’과 ‘박’의 차이는 전자는 모태가 동물이고, 후자는 식물이라는 것뿐이지만 둥글다는 점과 표피를 깨고 출현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다.박혁거세는 후에 큰 인물이 됨으로 박에서 탄생했다는 것을 비범한 인물의 탄생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② 이알평 탄생설화이알평은 경주이씨의 시조로, 기원전 117년 한무제 원수6년 갑자에 하늘로부터 진한 땅의 표암봉인 박바위로 처음 내려와, 양산촌장으로서 부족들을 다스리며 혁거세를 양육시켜 신라 초대왕으로 추대한다. 6부 촌장의 의장으로서 역사적으로 유명한 화백회의제도를 시행하였다. 신라건국의 모체(母體)인 사로(斯盧)의 6부(六部) 중 알천양산촌(閼川陽山寸)을 다스렸던 인물이다.여기에서 박바위는 실제 밝음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는 하나, 이알평이 박을 깨고 나왔다는 전설의 소재가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2. 벽사벽사는 요사스러운 귀신을 물리친다는 뜻으로 예전부터 사람들은 나쁜 일이 일어나는 것은 사악한 기운, 즉 악신(惡神) 때문이라고 믿었다. 즉, 벽사란 악신을 몰아내는 것이고, 벽사를 위한 장식이나 도구들은 악신을 몰아내는 주술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벽사를 위한 도구로서 바가지가 많이 사용되는데, 바가지를 두드리거나 깰 때 나는 소리로써 악한 기운을 몰아낸다고 믿는 한국인의 의식구조를 엿볼 수 있다.① 무속의 도구질병이 돌아 무당이 굿을 할 때, 바가지를 마루에 엎어놓고 두 손으로 마루를 문질러 소리를 내면 병이 사라진다고 믿었다. 이는 무속의 축귀법 중에서 음향법에 해당하는 것으로, 귀신이 요란한 소리에 놀라 달아나게 하는 방법이다.② 혼례에서의 바가지신부가 탄 가마가 처음으로 신랑 집에 들 때, 문전에 미리 피워놓은 모닥불을 타고 넘게 하거나, 신부가 가마에서 내려 모닥불을 넘어가도록 한다. 이 때, 시어머니는 바가지나 호박을 들고 나와 문전에서 땅에 던져 깨뜨린다. 이것은 바가지나 호박이 깨지면서 내는 큰 소리가 신부 집에서 붙어 온 잡귀나 길에서 따라온 악귀를 쫓아낸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또, 납채(納采) 때에도 바가지를 엎어놓고 발로 밟아 깨뜨리는데, 위와 같은 이유에서이다.③ 장례에서의 바가지사람이 죽으면 사자밥을 문전에 베풀어 놓고, 전염병이 돌면 잡귀가 먹고 멀리 가게 하기 위해 밥과 음식, 짚신을 큰길 삼거리에 놓아둔다. 이 때에도 바가지를 함께 놓거나, 음식을 바가지에 담아서 놓아둔다. 바가지는 취사용 도구로 사용되지만, 두드리면 소리가 크게 나는데서 벽사의 기능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또, 사람이 죽어 방에서 관을 내갈 때, 맨 앞의 사람이 문 밖에 엎어 놓은 바가지를 밟아 큰 소리가 나게 깨뜨리고 마당으로 나간다. 이 역시 잡귀를 쫓는 음향법이다.3. 질병퇴치벽사와 비슷하게 바가지의 주술적 기능을 이용한 행위로 보여진다. 질병을 퇴치하거나 재액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박이 부적의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①《동국세시기》의〈상원조〉조선시대 홍석모가 쓴 《동국세시기》의〈상원조〉에 의하면, 남녀 아이들이 겨울부터 파랑 ? 빨강 ? 노랑으로 물들인 호리병박을 차고 다니다가 정월 대보름 전야에 남몰래 길가에 버리면 한 해 동안의 재액을 물리칠 수 있다고 믿었다.② 여름철 병치레 예방여름철에는 더위를 먹고 배탈이 나거나 식욕이 없어서 잔병에 걸리는 수가 있다. 이것을 예방하기 위해 박의 꼭지 부분을 도려내어 구멍을 뚫어 차고 다녔다고 한다. 이 또한 질병 방퇴의 주술적 방법 중 하나인 것이다.4. 금기(禁忌)속신어는 우리의 생활이 반영된 이상과 감정을 독특한 양식의 언어로 표현한 전승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속신어 중에서도 금기어에 바가지가 예로 쓰여지고 있는 것으로 바가지가 금기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① 물독에 바가지를 엎어 띄우면 배가 엎어진다.바닷가 어촌에서 많이 쓰이는 이 표현은 부인들이 바가지를 엎어놓는 것이 배를 엎어놓은 것과 비슷해서 나온 유감주술이다. 바가지를 엎어 놓지 말라고 하는 말로 금기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② 사내가 바가지로 물을 마시면 수염이 안 난다.남자가 부엌에 드나드는 것을 경계하는 말이다. 바가지가 주로 여인들의 취사용구로 많이 쓰이다보니 유교의 남녀분업사상에서 이런 말이 생겨난 듯 하다. 남자가 바가지로 물을 마신다고 수염이 정말 안 날까 싶지만, 이 한마디만으로도 남자의 행동을 제지할 수 있을 것 같은 금기어이다.5. 부정적(否定的)개념‘바가지 차다’, ‘바가지 쓰다’, ‘바가지 긁는다’ 등의 표현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많이 쓰이는 관용구이다. 여기에서 바가지의 의미는 긍정적이기 보다는 부정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① 바가지를 차다.옛날에 동냥아치들이 동냥을 다닐 때 바가지를 들고 다녔는데 여기에서 비롯된 표현으로, 속된 표현으로 쪽박 찬다고도 말한다. 재산이 바닥나서 거지 신세가 되다, 무언가에서 이익을 보지 못하고 완전히 망한 상태가 되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② 바가지 쓰다.‘바가지 쓰다’라는 말은 큰 손해를 보거나 피해를 당했을 때 쓰인다. 이 표현은 갑오경장 이후 개화기에 중국에서 들어온 ‘십인계’라는 노름에서 비롯되었다. 1부터 10까지의 숫자가 적힌 바가지를 이리저리 엎어 섞어놓고 각각에 돈을 대며 숫자를 맞히는 도박으로, 바가지에 적힌 숫자를 맞추지 못하면 돈을 잃었다. 이후 터무니없는 값을 내고 손해를 보는 것을 ‘바가지 썼다’라고 하게 되었다고 한다.③ 바가지 긁는다.이 말은 남편이 아내에게 듣는 것이 대부분이다. 아내가 생활의 어려움에서 오는 불평이나 불만을 늘어놓으면서 잔소리를 하는 모습을 ‘바가지 긁는다’라고 표현한다.‘바가지 긁는 소리’는 무척 시끄럽고 듣기 싫은 소리에 속한다. 그래서 아내가 정도이상의 잔소리를 늘어놓게 되면 이를 빗대어 ‘바가지 긁는 소리’라 했고, 그 행위를 ‘바가지 긁는다’고 표현해 왔다.6. 생산성박은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는 사례들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이 두 가지의 상징이 서로 밀접한 연관성을 지닌다고 판단하여 크게 생산성으로 보고 하위개념으로 풍요와 다산으로 서술하고자 한다.① 풍요물을 떠 마시거나 밥을 지을 때 바가지를 사용했다. 들일을 나갈 때에는 바가지에 밥을 담았고, 술을 떠서 마시기도 했다. 대농가에서는 일꾼들의 식기용으로 작은 바가지를 수십 개씩 장만해 두기도 했다. 이는 풍요를 기원하는 관습의 일면으로 볼 수 있다.또한, 남해안 지방에는 2월 초에 대나무를 땅에 꽂고 윗부분을 몇 갈래로 쪼갠 다음, 그 위에 정화수를 담은 바가지를 올려놓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이 풍속은 가뭄이 들지 않게 비를 많이 내려 풍년이 들기를 기원하는 데서 비롯되었다.② 다산충남 해안 지방에서는 신부 집이 사주 단자를 받았을 때, 바가지에 그 사주 단자를 넣어 성주 앞에 고한 후 풀어 보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이는 둥글고 씨가 많은 박의 성질에 따라 예부터 바가지가 다산을 상징하기 때문이다.7. 악기① 수부희놀이수부희(水缶戱)란 초파일에 부르던 민속음악이라고 할 수 있는데 물장고라고도 하고 물박치기라고도 한다. 에서 '초파일에 물동이에 물을 담고 그 위에 바가지를 엎어놓고 빗자루로 두드리면서 소리를 내는 것을 물박치기(水缶戱)라고 한다'라는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