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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측량]세계 측량의 역사 시대별 및 특징별 완벽요약 평가A+최고예요
    세계 측량의 역사 시대별 요약◎B.C 3000년경 - 이집트 나일강 하류의 대 홍수의 범람에 따른 경작지 정리(측량의 시초)B.C 3000년경 나일강 하류에서 범람하는 경작지를 정리하기 위해 시작된 측량은 당시의 과학전체에 차지하는 위치가 중요하여 , 측량 및 지도에 대한 학문과 기술이 과학발달의 척도로 여겨졌다. 이와 같이 시작된 측량기법은 거대한 피라미드의 사변이 정확하게 동서남북을 나타내고 사면과 저면이 이루는 각이 모두 일정한 것은 놀랄만한 측량작품으로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B.C 2500년경 - 바빌로니아의 도시건설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지도로서는 바빌로니아 시의 북방 약25Km에 위치하는 폐적의 도시 가술에서 발굴된 점토판 위에 그려진 지도로서 B.C 2500 년경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B.C 1700년경 - π값 = 3.1605 당시 3을 사용하던 바빌로니아와 히브류인들에 비해 훨씬 우수측량의 기원이 이집트에서 비롯되었다고 단정하기에는 불확실한 점이 없지 않으나 적어도 기원전까지는 다른 민족보다도 이 분야에 있어서 앞서 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B.C 1700년경에 그들은 π의 값이 3.1605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하는데, 이 π의 값은 바빌로니아, 헤브류 인들이 사용한 3이라는 간단한 정수에 비하면 매우 정확한 값이었다.뿐만 아니라 그들이 건설한 피라미드는 자오선에 대하여 매우 정확하게 그 방위가 정해져 있음을 보면 천문측량에 의하여 남북의 방위를 정확히 측정한 증거라고 할 수 있다.◎B.C 1550년경 - 아메스 신궁의 파피루스에는 원의 근사계산법에 대한기록발견.◎B.C 1400년경 - 나일 강의 범람에 따른 토지의 경계 설정.조세목적의 토지분할 측량.헤로도투스에 의하면 기원전 약 1400 년경에 세소트리스가 이집트의 토지를 분할하여 조세의 목적으로 지도를 만들었다고 한다.해마다 나일 강의 홍수는 토지의 구획을 휩쓸어 버렸으며, 측량기술자는 그 토지의 경계를 복원하도록 지명되었다.◎B.C 1300년경 - 이집트의 와이키의 지도가 종이의다고 전해짐.◎B.C 500~300년경 - 중국에서 성문화 된 것으로 추정되는 주공구장의 공고의 장에 3:4:5의 비례에 의한 직각설정법이 기재되어 있다고 전해짐그리스인 피타고라스(BC572~500)와 아리스토텔레스(BC384~322)는 육지에 접근하는 범선이 범주의 선단으로부터 서서히 보이기 시작하는 것을 하나의 논거로 하여 대륙의 구형 설을 제창하였다. 특히 피타고라스는 직각삼각형에 있어서 3평방의 정리를 논술하여 수학에 있어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였다. 히파르쿠스(AC190~125)는 삼각법을 창안하여 1년을 365일 5시간 5분 12초로 산정하였다.◎B.C 300~400년경 - 로마인의 도시건설을 위한 지도제작.◎B.C 220 년경 - 에라토스테네스에 의한 지구의 호장 측량.지구의 실제크기와 참모습을 경정하는 일은 수세기 동안 걸쳐 인류의 호기심을 돋구었다. 역사기록에 의하면 그리스인 에라토스테네스에 의하여 BC220년에 최초로 지구의 호장측량이 시도되었다고 한다.그는 이집트에 있는 시에네와 알렉산드리아 두 지점에서 태양의 그림자 길이를 재어서 그 두 지점간의 자우선호에 해당되는 각도를 확인하였다고 한다. 시에네와 알렉산드리아 두 지점간의 거리는 대상들의 1일 평균 여행거리에 카라반 일수를 곱하여 결정하였다.에라토스테네스는 기하학의 기초원리를 응용하여 각과 호를 결정함으로써 지구의 자우선호장을 약 25,000 마일로 계산하였다. 결과적으로 약간 큰 값을 얻기는 하였지만 놀랍게도 이 값은 현대의 값에 대단히 가까운 값이었다. 물론 실제의 지구는 적도반경이 극반경보다 긴 평편한 타원체이다.◎B.C 120년경 - 그리스 헤론이 디옵터를 소개하여 측량의 응용분야 확대.헤론은 과학을 측량에 응용하는 데에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는 기원전 120년경에 공학에 관계되는 몇 편의 중요한 논문을 저술하였다. 그 논문들 중에는 디옵터라고 하는 기구가 언급되어 있었는데, 그것은 야외측량에 사용된 것으로서 관측치를 계산하고 제도 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고 한다. 디옵터는 최초의안 그리스와 이집트 측량 기사들에게 가장 권위가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B.C 50년경 - 로마제국의 시저에 의해 과세의 공평을 기하기 위한 토지의 경계측량.시저는 로마제국 전반에 걸쳐서 과세의 공평을 기하기 위하여 토지의 측량을 실시하였다. 이것은 전국적으로 지적측량이 실시된 세계 최초의 일로 전해지고 있다.◎A.D 150년경 - 그리스 톨레마에우스에 의하여 단원추몰영법에 의한 토레미 도법의 세계지도가 제작되었음.◎A.D 6세기 -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기록 중의 하나는 AD 6세기경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되는 라틴 원본으로 된 코텍스 아세리아누스이다. 여기에는 로마인들이 실시한 측량에 대한 설명기사가 수록되어 있고 또한 그 중에는 프론티누스의 논문으로부터 인용한 기사도 수 페이지가 포함되어 있다. 이 원본은 겔버트에 의해서 AD 10세기에 발견되었으며, 그것은 측량학에 크게 공헌한 바 있는 그의 기하학에 대한 저서의 기초로 이용되었다.6세기중~7세기 초에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측량에 대한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통일신라 - (경덕왕) 주, 군, 현을 표시하는 지형도인 신라구주현총도 제작◎고려시대 - 목종(11세기 초)때 전국을 10도로 나눈 고려지리도, 현종때 5도로 개정한 도양계주현총도, 인종때 지명, 연혁, 국토의 위치를 기록한 삼국사기 지리지 제작.◎A.D 13세기 - 중세기에 들어와서 그리스와 로마의 과학은 아랍인에 의하여 계승되었다. 그러나 측량기술은 별로 진전하지 못하였다. 다만 측량에 관한 몇몇 저술이 있었는데 그것은 실용적 기하학이라고 하는 것이 타당하다. AD 13세기에 들어와서 본피소는 Pratica Geometria를 저술했는데 그것에는 측량에 대한 설명을 담고 있다. 그는 또한 Liber Quadratorum을 사용하였는데 그것은 주로 사단한을 다룬 것이다. 그것은 정사각형의 놋쇠에 눈금이 새겨진 것으로 시준을 할 때에는 표적이 움직일 수 있게 되어 있었다.그 당시에 또 다른 기기 중에는 아스토로라베라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중심에이었다. 이 십자형 표척의 길이를 알고 각을 측정함으로써 비례식에 의하여 거리를 측정할 수 있게 한 것이다.◎A.D 15세기 - 아라비아인의 컴퍼스 발명과 이를 이용한 해안지도 작성(근대 측량의 시작)15세기에 접어들면서, 즉 문예부흥시대의 도래는 측량. 지도의 분야에도 커다란 변혁과 발전을 가져왔다. AD 1538년에 멜카톨에 의한 멜카톨 몰영법의 고안, AD 1590년경에 평판발명.◎조선시대 - 태종 2년에 흔일강리역대국도지도의 세계지도 제작.◎ 1600년 - 영국인 길버트의 지자학 이론의 발표, 1608년에 네덜란드사람 리퍼세이의 볼록렌즈에 의한 천체 망원경의 발명 1609년의 이탈리아사람 갈릴레오의 볼록, 오목렌즈의 조합에 의한 망원경의 발명.◎ 1631년 - 프랑스 비어니어에 의해 비어니어 발명비어니어의 발명으로 초소눈금 이하의 값을 측정에서 얻을 수 있게 되었다.◎ 1640년 - 영국사람 가스코인에 의한 차선의 발명과 시거 측량법의 창안.◎ 1669년 - 피칼드의 망원경부 측량기계의 발명.◎ 1670년 - 오기리브에 위한 트래버스 측량법의 창안, 1670년 프랑스 사람 테베노에 의한 기포관의 발명.◎ 17세기 - 오기리브에 의한 트래버스 측량법의 개발정상기의 동국지도는 현 지형도와 축척, 수륙교통, 연해항로가 비슷하다.◎ 1730년 - 네덜란드 크루퀴우스가 등고선 고안.◎ 1740년 - 씨손이 와이레벨 고안.◎ 1831년 - 더드의 트랜싯 고안. 트랜싯은 1831 년에 더드에 의하여 제작되었다고 하나 이보다 훨씬 이전에 필라델피아의 측량기술 제조인 드라퍼가 제작하였다고 한다.◎ 1834년 - 김정호의 청구도에는 10리마다 좌표격자가 삽입되어 있고 경위선표와 투영법이 설명되어 있으며 축척은 1:160,000으로 제작되었다.◎ 1848년 - 그라바트가 덤피레벨을 발명.◎ 1861년 - 청구도를 보완한 대동여지도는 실제의 우리나라 지도와 유사하며 축척은 1:162,000으로 제작되었다. 전국을 22단으로 나누었으며 도로선상에 십리간격으로 점을 찍고 하천,0 한국전도를 제작◎ 18~19세기 - 영국과 프랑스의 측량사업 확장, 정확도 향상방안, 측지측량실시◎ 19세기 중엽 - 프랑스의 로세다에 의한 최초의 사진측량 실시.◎ 20세기 초 - 독일의 풀프리히에 의하여 입체도화기 및 정밀좌표 관측기가 만들어지면서 근대사진 측량의 기초가 쌓여졌다.◎ 1900년 - 우리나라 최초의 토지조사사업으로 지적측량 시작◎ 1910~1918년 - 일본의 토지조사국에서 1/50,000지형도, 1:1,200지적도 제작.(현대측량사업의 근원)◎ 1933년 - 수준측량의 기준으로 원산원점 사용.◎ 1936년 - 일본의 중국진출을 위한 측량이 시급히 필요함에 따라 조선토지측량표령을 발동.◎ 2차 세계대전 - 군사지도 작성, 원격탐측의 필요성 대두로 측량의 급격한 발달.◎ 1945년 - 해방 후 미군정청이 항공사진측량을 수행하여 1:50,000 국토기본도를 수정보완.◎ 1950년 - 6.25전쟁이후 지도투영법을 TM투영에서 UTM투영으로 변환.◎ 1957년 - 국방부 산하 지리연구소를 발족하여 육군측지부대와 공동사업으로 3,4등 삼각점의 정비◎ 1961년 - 내무부 산하의 국립건설연구소로 이관하고 측량법을 제정.◎ 1966~1969년 - 항공사진측량 국토기본도 개선제작(한국, 네덜란드협정)◎ 1971년 - 측량사의 면허제도 실시◎ 1974년 - 건설부 국립지리원을 창설하여 1:5,000 국토기본도 제작을 착수◎ 1975~1993년 - 정밀 1차 기준점 측량을 삼변측량으로 수행하여 삼각점과 성과 갱신.◎ 1981~1985년 - 국립지리원내에 한국경위도 원점 설치.◎ 1975~1995년 - 정밀 1차 기준점 측량(1,2등)실시.◎ 1986~진행중 - 정밀 2차 기준점 측량(3,4등)실시.◎ 현재 - 제 1,2차 세계대전을 통해서 측량은 여러 가지 상황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왜냐하면 측량과 지도제작에서 측량기기 개선과 측량방법의 진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진전은 계속되어 우주개발계획으로 연장되었다. 새로운 측량장비와 시스템이 미사일
    자연과학| 2006.04.27| 6페이지| 10,000원| 조회(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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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광]여가는 자유선택 이다.-그렇다-
    논쟁. 여가는 자유 선택이다여가는 자유선택 이라는 논쟁을 풀어가기 위해서 먼저 여가의 정확한 개념과 의미를 알아보았다.여가의 개념은 『어떤 일을 하고 남는 시간, 또는 일과 일 사이에 한가로운 시간』,이라고 정의된다.여가의 정의는 시각적 정의, 활동적 정의, 상태적 정의로 볼수있는데 이 정의들은 각각의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이러한 여가의 상세한 여러가지 정의를 종합해 보아도 " 여가는 자유선택이다. " 라는 논쟁은명확히 해결되지 않는 듯 하다.내가 생각하는 여가는 자유선택 이라고 생각한다.여가의 개념과 시간적정의 『어떤 일알하고 남는시간, 또는 일과일 사이의 한가로운 시간』『인간의 생활시간을 크게 생활필수시간, 노동시간 및 자유시간으로 대별하게 될 때에 여가는 생활필수시간과 노동시간 등 구속시간을 뺀 나머지 자유시간』를 놓고 보았을때 흔히들 한가로운 시간이 생기는 것은 의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저절로 생긴다고 생각 할수도 있고 그런시간들은 자유선택이 아니라 필수조건이라고 생각할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시간은 다른누군가의 의지에 의해서 생긴다거나 인간생활의 필수요소라고 하기 보다는 자신의 욕구를 자기의 권한으로 선택한 자유시간 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자유시간에 만족을 추구하기 위해 스스로 선택해서 하는 여러활동이 여가 활동일 것 이다.말하자면, [대구 가톨릭 대학교 학생들은 Book review 를 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선정도서를 일고 감상문을 작성해서 제출해야한다.] 그럴때는 책을 읽는 시간은 많은 학생들에게 노동이나 구속시간으로 받아들여 진다. 하지만 생활필수시간과 노동시간등의 구속시간외의 자유 시간에 자신이 읽고싶은 책을 다른사람의 강요없이 스스로 선택해서 읽는다면 그 시간만큼은 자신이 선택한 여가활동에 속하는것이 되는것이다.또 여가의 상태적 정의 『여가는 작은 욕구와 성취감을 맛보려는 인간의 상태속에 존재하며시간도 아니고 활동도 아닌 마음의 상태』에서 보면 마음의 상태라는 말에서 마음의 상태는 자기 스스로가 행하는 자유선택에서 오는 것이지 자신의 선택에 의하지 않고 자신의 의지가 아닌것으로는 마음의 상태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자신의 욕구와 의지가 없고 가족들과 함께 가족 구성원으로서 가지는 시간같은 경우나 직장생활에서 그 무리의 일원이기 때문에 요구되는 일하는것이 아닌 다른활동들이 본인에게 욕구와 성취감없이 자신의 자유선택이 아닌 사회적 요구에 의해서 하는 활동이라면 그것 또한 본인이 선택하였지만 그것은 여가가 아니라 또 다른 종류의 일이 될 수 있는것이지 여가를 즐기고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인문/어학| 2006.03.18| 2페이지| 1,000원| 조회(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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