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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버핏의 주변인물
    버핏 조직의 구성원에 대한 설명필립 피셔필립 피셔는 성장주 투자의 아버지라 볼 수 있는 현대적인 투자이론 개척자이다. 1907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출생으로 스탠포드 대학 비즈니스 스쿨을 거쳤고 투자자문회사 '피셔 앤드 컴퍼니'를 설립해 투자자문가로 평생 활동했으며 스탠포드 대학에서 투자론을 강의하기도 하였다. 벤저민 그레이엄이 기업의 양적 측면. 즉, 재무제표상의 수치를 중요시 했다면 필립 피셔는 기업의 질적인 측면인 최고경영진의 탁월한 능력, 연구 개발(R&D) 역량 등을 강조했고 사실 수집이라는 단순하면서도 훌륭한 기업조사방식을 선보인 바 있다. 버핏은 예전에 피셔의 저서를 접한 후에 샌프란시스코로 직접 찾아서 피셔에게 기업의 질적인 면을 분석하고 기업에 적용시키는 법을 훈련받은 바 있다.찰리 멍거 - 버크셔 해더웨이 부회장멍거는 변호사 출신으로 과학, 역사, 철학, 심리학, 수학 등 다방면으로 지식 분야에 열성적으로 관심을 보여왔다. 버핏과는 1959년에 처음 만났고 1962년 버핏과 함께 투자 조합회사를 설립하고 운영하여 지금까지 동업자이자 2인자로서 버크셔 해더웨이의 눈부신 성장을 같이 이끌었다. 멍거는 버핏에게 재무적, 법률적 등 다양한 분야의 경험요소로 버핏의 등 뒤에서 투자 조언을 아끼지 않고 있고 항상 버핏과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 격렬하게 토론하며 의사결정을 하고 있다. 버핏 또한 멍거가 있었기에 지금의 자신이 존재하는 것이라고 항상 이야기 해 왔다.토니 나이슬리 - GEICO社 공동 CEO토니 나이슬리는 1961년 보험회사인 GEICO에 입사하여 한번도 회사를 옮기지 않았으며 1993년 5월에 공동 대표이사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 버핏은 GEICO사의 주식을 1951년에 처음 샀었고 이후 44년 뒤인 1995년에 지분 모두를 인수하였는데 이 거래에 대해서 나이슬리는 주주나 자신 그리고 버핏 모두에게 최고의 거래였다고 평가하였다. 그러한 결과로 1995년 2백 30만 건이던 자동차 보험 계약이 2000년 말에는 2배가 넘는 4백 70만 건으로 성장하였다. 그리고 누군가 버핏 밑에서 일하기가 어떤지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보다 더 좋은 고용주 밑에 있는 사람은 없다. 남들이 어떤 사람이든 어떤 사업을 하든 나는 상관하지 않는다. 그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 고용주이다. 나는 정말로 그가 나를 자랑스레 생각하게 하고 싶다.”루이스 심슨 - GEICO社 공동 CEO심슨은 1970년 프린스턴에서 경제학 석사를 받은 뒤, 여러 투자회사를 거쳤다. 1979년에 GEICO에 부사장 겸 CIO(최고투자책임자)로 합류하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2년에 한번씩 모여 투자에 대해 논의하는 일종의 특급 투자자 모임인 ‘버핏 그룹’의 일원이 되었다. 그가 입사한 이후로 17년간 심슨은 2억 8천만 달러이던 자산 가치를 11억 달러로 불려 놓았다. 버핏은 루이스에게는 감탄할만한 품성인 지성, 인격, 침착성을 두루 갖췄다고 평가했고 간접적으로 버핏 은퇴 후에 버크셔를 책임질 인물로 심슨을 언급했다고 한다. 그리고 심슨은 버핏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훌륭한 사람이다. 워렌 같은 사람이 또 있을 것 같지 않다. 그와 함께 일하는 가장 좋은 점은 그가 궁극적으로 완전히 공정하고 합리적이라는 사실이다. 그는 상대방이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둔다. 그리고 상대방이 잘해내면 박수 쳐준다. 그렇지만 상대방이 그리 잘해내지 못해도 이해한다. 그는 멀리 내다보기 때문이다.”아지트 자인- 버크셔 해서웨이 재보험 사업부아지트 자인은 미국과는 반대편 쪽에서 태어난 인도 사람이다. 그는 현재의 자리에 이르기까지 아주 먼 거리를 여행했다. 1951년에 태어난 자인은 1973년 인도 IBM에 입사했으며 상사의 권유로 미국으로 건너와 1978년에 하버드 경영대학원을 졸업하고 맥킨지에 입사했다. 이후 다시 버크셔로 자리를 옮겼고 자인은 14년이라는 짧은 기간 14명의 인원으로 78억 달러의 보험 유동자금을 관리하는 회사를 키워냈다. 그는 재보험 사상 가장 규모가 큰 계약을 성사시킨 사람으로 알려졌으며 버핏의 후계자 중에 하나로 지목된 상태다. 자인의 버핏에 대한 평가는 이러하다. “그는 영리하고 재빠르며 단호하고 든든하다. 내가 득실을 따져보느라 10일 동안 고민한 거래를 그에게 가져가 의논하면 그는 5분 만에 나보다 두 걸음을 앞서나간다. 그러고는 대답을 들려준다. 그리고 버핏은 나를 비롯하여 이 업계의 모든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는 윗사람이라고 생각한다.”로즈 블룸킨 - 네브래스카 퍼니처 마트로브 블룸킨 여사는 러시아에서 온 이민자 출신으로 타협 없는 원칙, 근면, 불굴의 의지로 100년 이상의 특별한 인생을 살았다. 그녀는 미국에서 가장 뛰어난 소매상인 중 한 사람으로 월마트의 샘 월튼에 해당되는 여성이다. 1937년 44세의 나이에 창업한 네브래스카 퍼니처 마트(NFM)는 그녀가 죽었던 1998년까지 60년 동안 매년 매출을 신장시켜왔다. NFM은 다른 전국 규모 소매상들에 비해 직원당 매출은 40% 많고 순이익률은 두 배나 되었다. 1983년 어느날 NFM에 온 버핏은 그녀에게 인수를 제의했고 B여사도 단번에 이를 수락하여 지분의 80%를 5천 5백만 달러에 버핏에게 넘겼다. 이는 일반적인 주택 거래보다도 빨리 이뤄진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녀의 가족은 안정적으로 경영권을 유지하였고 계속적으로 회사를 발전시켰다.
    경영/경제| 2009.06.13| 3페이지| 1,000원| 조회(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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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워렌버핏의 일화
    의사소통을 위해 노력하라“오늘밤 이 홀 밖에 ‘록 콘서트’라고 쓴 간판을 내걸면 록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몰려들 것이고, ‘발레 공연’이라는 간판을 내걸면 발레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몰려들 것이다. 하지만 발레 공연을 하는데 ‘록 콘서트’간판을 내걸거나, 반대로 록 콘서트를 하는데 ‘발레공연’간판을 내걸면 엄청난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다. 버크셔 해더웨이라는 곳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유일한 표지판이자 방법은, 다시 말해 내가 투자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투자처를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보고서와 투자 정책뿐이다.”'No!'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돼라①1992년 웰스 파고의 주식 매입에 관해 설명을 해달라는 전화 요청을 받자, 버크셔 해더웨이의 한 여직원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고 한다.“버크셔 해더웨이의 임직원들은 회사의 포트폴리오나 그에 관한 소문에 대해 일체 언급하지 않는 것이 회사의 오랜 정책입니다.”②투자활동에 대해 버핏은 전혀 입을 열지 않는다.“내가 그 주식에 관해 말하면, 저가의 매력적인 그 주식의 가격이 급등할 것이다. 금융계라는 곳은 함보로 말을 해서는 안 되는 곳이다.”③미국 정부 채권 불법 배입 스캔들을 해결하기 위해 살로몬의 임시 회장직을 맡았을 때 그가 보여준 태도는 버핏의 간단명료하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모습을 잘 보여준다.“살로몬은 어떤 벌금도 지불할 것이며, 합법적으로 타당한 요구에 관한 한 신속히 해결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부당하거나 과잉 요구에 관해서는 끝까지 법적으로 맞설 것이다. 우리는 과거의 부적절한 관행에 대해서는 시정할 것이지만, 부당한 처우에 관해서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모범을 보여라살로몬의 임시 회장직을 맡고 있는 동안 버핏은 주주들에게 말했다.“규칙도 중요하지만, 모범적인 행동을 장려하는 분위기가 훨씬 더 중요합니다. 내가 살로몬의 회장으로 있는 동안에는 내 자신을 회사의 최고감사채임자(Chief Compliance Officer)로 생각하겠습니다. 나는 살로몬의 9,000여 임직원들에게 나의 이런 노력에 협조해 줄 것을 간곡히 부탁했습니다. 또한 그들에게 규칙 이상의 모범을 보이도록 당부했습니다. 직원들은 어떠한 것이라도 비즈니스를 위한 행동을 하기 전에는, 기자가 그 행동을 신문의 1면에 기사화했을 때 자신의 가족이나 친구가 읽어보아도 과연 떳떳한 행위인지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살로몬의 행위가 비록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더라도, 일반 대중들을 불쾌하게 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고용은 잘하고 관리는 적게하라버핏은 항상 훌륭한 관리자들을 찾고 있는데, 그의 고용 양식에는 다음과 같은 단 한가지의 질문만이 있다고 한다. “당신은 열정적인가?” 버핏은 다음과 같은 경영자를 원한다고 말했다. “경영자들이 기업을 경영하는 데 내 도움이 필요하다면, 아마 우리 모두 곤경에 처하게 될 것이다.”경험을 중시하라버크셔 해더웨이는 정년이 없다. 버크셔의 CEO들은 평균 23년 이상을 일하고 있다.“물고기에게 땅 위를 걷는다는 게 어떤 것인지 설명할 수 있겠는가? 단 하루라도 땅 위에서 지내보는 것이 수천 년 동안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 낫다. 마찬가지로 단 하루라도 기업을 경영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낫다”“어떤 의미에서 볼 때 기업 경영 능력은 나이와 무관하다. 돈을 굴리는 데는 신체적 능력이나 잘 발달된 근욱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정신적인 기능만 정상이면 찰리와 나는 과거와 같이 계속해서 회사를 잘 운영할 수 있을 것이다.”자본 분배를 잘하라“우리는 철강 산업에도 신발 산업에도 관여하고 있지 않다. 그렇다고 특정 산업에 집중적으로 관여하고 있지도 않다. 우리가 보험 사업을 크게 하고는 있지만 거기에만 전념하는 것은 아니다. 반드시 어느 길로 가야한 한다고 정해 놓은 것은 없다. 그래서 사업성이 있는 경우에는 어느 곳에라도 투자할 수 있다.”
    경영/경제| 2009.06.13| 2페이지| 1,000원| 조회(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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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령왕릉 답사와 출토유물
    공주 무령왕릉 답사기목차1. 예술과 문화의 도시 백제로 떠나다.2. 사전 조사와 답사의 감상i. 무령왕ii. 무령왕릉iii. 출토 문화재3. 답사 여행을 마치며1. 예술과 문화의 도시 백제로 떠나다.2006년 5월. 사찰 답사를 위해 경북 영주에 있는 부석사 무량수전을 갔던 적이 있다. 우연히 관광버스 맨 앞자리에 앉아, 눈에 보이는 것마다 초록 일색이던 고운 풍경을 한참이고 내다봤었던 기억이 있었는데, 그 감회를 다시 느끼고자 일부러 맨 앞자리 좌석을 예약하고 공주로 향했다. 5월의 여행. 그 여유롭고 가슴 두근거리던 부석사 답사여행이 군대 있을 때에도 한참이고 떠올랐었다. 다시 학교에 다니게 된다면, 같은 계절에 여행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참으로 많이 했었다. 그렇게 2년이 지나 제대하고 2개월이 지난 뒤, 이번 수업을 통하여 공주로 답사를 가게 되었다. 얼마나 기대가 컸는지 모르겠다. 같이 답사여행을 한 친구에게도, 정말로 좋은 추억이 될 것이라 어지간히도 호언장담을 해놓고 답사여행길에 올랐다.여행길에서의 전 국토는 온통 초록. 눈이 아플 지경이었다. 초록이 지쳐 가을이 된다는 어느 시에 나오는 구절이 자연스레 떠오를 만큼 보이는 곳마다 너무도 생명력 넘치는 초록빛이었다. 그렇게 바깥 구경도 하고 편안하게 단잠도 자면서 2시간 만에 충청남도 공주에 도착하였다.남국의 따뜻한 햇빛. 내리자마자 정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씨도 더없이 좋았고 지대가 평평하여 가시거리가 굉장히 멀리까지 닿았다. 이 곳에서 살았더라면 내 시력은 몽골인 시력처럼 8.0 정도는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여튼 나는 25살 5월. 이토록 맑은 날씨 속을 헤치고 무령왕릉과 공주역사박물관. 교과서에서만 보던 아름다운 문화의 나라, 백제를 찾아왔다.2. 사전 조사와 답사의 감상i.무령왕삼국사기와 무령왕릉 지석의 내용에 따르면 무령왕은 462년, 즉 백제 개로왕 8년에 동성왕의 둘째아들로 태어났고 생전에는 사마(斯麻),혹은 융(隆)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무령왕이 14세 되던 해인 475년 백제는 고구려의 침입을 받아 개로왕이 죽고 수도 한성(漢城)이 함락당하는 비운을 맞게 된다. 나라가 위기에 처하게 되자 문주왕은 지금의 공주인 웅진(熊津)으로 수도를 옮기고 재건에 나섰다. 하지만 왕권이 약화되어 문주왕, 삼근왕, 동성왕 등이 모두 귀족세력에 의해 죽음을 당하게 된다.이러한 어려운 시기에 동성왕의 뒤를 이어 즉위한 사람이 무령왕이었다. 40세(501년)의 늦은 나이에 왕위에 오른 그는 원숙한 경험을 바탕으로 왕권을 강화하고 나라의 안정을 도모하게 된다. 그는 오랜 전쟁으로 피폐해진 민생을 안정시키고 백제에게 가장 큰 위협이었던 고구려의 거듭되는 침입을 물리쳤다.또 신라, 왜(倭), 중국 남조 양(梁)나라 등과의 우호관계를 통해 동아시아 국제무대에서 백제의 위치를 확고하게 했다. 백제가 사비시대에 새로운 중흥기를 맞이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던 무령왕은 묘지석에 기록된 대로 계묘년(癸卯年, 523년)에 62세로 세상을 떠났다.-인터넷 네이버 발췌이 글을 읽고 무령왕의 대략적인 업적을 알 수 있었다. 즉, 고구려의 침입을 받아 한성에서 웅진으로 천도한 백제는 국가적 혼란기를 겪였고, 왕권이 약하여 자주 교체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무령왕이 집권하게 되면서 왕권 강화와 민생안정을 통하여 나라의 기틀을 다시 한번 바로잡았으며 외교를 통하여 고구려에 대한 견제와 문화 교류 함께 이룩하였다는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실제로 답사를 가서 위의 내용과 다른 내용을 접하진 못했지만, 무령왕릉의 규모를 직접 눈으로 보게 되니, 얼마나 왕권이 강했으며 중요한 인물이었는지를 짐작하게 해주었다.2.무령왕릉1971년 7월 5일 공주시 금성동에 자리한 송산리고분군 안에서 역사적인 발견이 이루어졌다. 송산리 6호분의 배수로에 대한 보수공사 도중 이곳에 새로운 왕릉이 있음을 알리는 벽돌[塼]들이 드러났던 것이다. 이렇게 알려지게 된 무령왕릉은 발굴도중 무덤의 주인공에 대한 내용을 적은 묘지석[誌石]이 발견되면서 다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게 된다. 지석에 새겨진 기록으로 이곳이 백제 제25대 왕인 무령왕(武寧王)의 무덤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지석의 발견으로 무령왕릉은 우리나라에서 무덤에 묻힌 주인공을 확인할 수 있게 된 최초의 왕릉이 되었다.고분 구조는 중국 남조에서 유행하던 벽돌무덤(塼築墳) 형식을 모방하고 있고 봉토의 평면은 직경 20m 가량의 원형이며 분구의 동남쪽에서 둘레돌(護石)이 발견 되었습니다. 전혀 도굴이 되지 않아서 고분의 축조 연대와 피장자가 분명히 밝혀졌고 백제의 수준 높은 유물이 그대로 발견되었다. -자료 발췌, 한국의 해치와 사자 中 백제 무령왕릉무령왕릉은 사실상 전면적으로 닫혀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사전 조사를 하지 않았더라면, 상당히 곤란할 뻔 했다. 직접 가보지 않았을 때에는 무령왕릉의 발굴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잘 몰랐지만 직접가서 보니 발굴당시의 기대에 찬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굉장히 대규모였다. 무덤이 발견 되었을 당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을까. 규모도 엄청났고 그 안에 매장된 문화재만 108종, 3000천점이 넘는다고 한다. 아쉽게도 현재 무령왕릉은 아래 그림과 같이 폐쇄된 상태였고 오른쪽 사진은 개방되어있는 송산리 고분이다.I)고분의 구조중국 남조에서 유행하던 벽돌무덤의 형식을 모방하고 있다. 봉토의 평면은 직경 20m 가량의 원형이며 분구의 동남쪽에서 둘레돌[護石]이 발견되었다. 널방[墓室]은 연꽃무늬를 새긴 벽돌로 쌓았는데, 남북방향을 축으로 한 긴 네모꼴의 평면을 갖고 있다. 남북길이 4.2m, 동서너비 2.72m이며 높이는 2.93m이다. 긴 벽인 동·서벽은 점차 위로 올라가면서 아치 모양으로 만곡하며 짧은 벽인 남·북벽은 거의 수직으로 올라가고 있다. 널길[羨道]은 남벽 중앙부에 설치되었으며 널길과 널방의 사이는 한 단 낮고 널길바닥과 널방바닥은 거의 수평을 이루고 있다. 왕과 왕비를 합장했는데 왕이 동쪽, 왕비가 서쪽에 놓였고 머리 방향은 입구 쪽인 남쪽을 향하고 있다. 왕과 왕비 모두 옻칠된 목관에 각기 안치되어 있었는데 목관 표면은 꽃 모양의 금·은제 장식으로 꾸몄다. 널길에는 돌로 만든 석수(石獸) 1마리가 입구 쪽을 향해 놓여 있었으며 그 앞에는 왕과 왕비의 매지권(買地券)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 발췌 백제 무령왕릉 석수무령왕릉 내부는 폐쇄 되어있었지만 공주 박물관에 가보니 무령왕릉의 내부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놓은 모형이 있었다. 왕과 왕비의 관의 크기는 달랐지만 거의 같은 형태였고, 관에는 옻칠이 된 모습을 구현해놓은 것 같았다. 무덤의 입구 부분에는 석수라는 동물이 있었는데 진묘수로 불린다고 한다. 무덤을 지키고 죽은 자를 저승으로 인도하는 안내자의 역할을 했다고 하는데, 그런 역할을 맡기기엔 다소 약해보이는 모습이었다.3. 출토 유물출토된 유물에 대해서 사전조사를 해보니 무령왕릉에서는 모두 108종 2,906점이라는 많은 양의 유물이 발굴되었는데, 이 유물들은 그 가운데 17점이 국보로 지정될 만큼 뛰어난 것들이다. 이들은 왕의 장신구, 왕비의 장신구, 무기류, 청통제품, 자기류, 목제품으로 크게 분류 할 수 있었다.왕의 장신구 - 금제 관장식, 심엽형 귀걸이, 뒤꽂이, 은제 허리띠, 금동 신발왕비의 장신구 - 금제 관장식, 귀걸이, 목걸이, 금·은제의 팔찌 외 다수.무기류 - 단룡문환두대도, 철모, 손칼청동제품 - 거울, 용기, 숟갈, 다리미자기류 - 청자, 백자목제품- 두침, 족좌내가 가장 관심 깊게 본 것은 관장식 귀걸이와 같은 금속공예품들이었다. 백제문화라고 할 때 가장 떠오르는 것이 정교함일만큼 참으로 예쁘고 미적 감각을 잘 살려 만들었다.
    인문/어학| 2009.06.13| 5페이지| 1,000원| 조회(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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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리스인 조르바 독서감상문
    나는 이 작품을 수업시간을 통하여 먼저 접하게 되었다. 설명을 듣는 내내 조르바와 두목의 관계가 어쩐지 나와 내 가장 친구의 관계와 비슷한 점이 많아서 많은 공감을 하면서 보게 되었다. 나는 사실 그 친구를 만나기 전까지는 자유에 대한 동경을 하면서도 사실 그것을 제대로 표현하거나 누리지 못하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친구를 만나고 나서 생각의 전환이 많이 되었던 것 같다. 우리는 만난 지 5분 만에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을 만큼 성격이 서로 잘 맞았지만, 같은 성격은 아니었다. 그 친구는 윤리의식이라든지 자신이 가진 삶의 기준은 조르바보다는 보편적이지만, 조르바만큼 유쾌하고 자유를 누릴 줄 아는 친구였다. 우리의 신분이 학생이건 한국인이건 간에 ‘지구인’으로서의 사명을 가지고 자연과 함께하는 기쁨이라든지, 즐겁고 유쾌하게 사는 것에 대한 의미를 배우게 되었다. 눈치 없는 사람이 아니라 눈치를 안보는 사람. 다만 안타까운 것은 고등학교 3학년 때 만나게 되어 학업은 순조롭지 못했다. 하지만 그 친구 덕분에 스물다섯인 지금에도, 늘 자주 만나지만 19살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나중에 더 나이가 들어 노인이 된다해도 19살로 금방 돌아 갈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마음속으로는 재밌는 생각들이 넘치는데 참으로 걱정도 많고 눈치도 많이 보는 사람이다. 예를 들면, 70년대 분위기가 나는 우울한 시외버스터미널 대합실에서 생일잔치를 해보고 싶었는데, 그걸 친구에게 말하자 그건 곧 아무렇지도 않게 현실로 실현 되었다. 결국 그 친구 생일날 직접 최고로 우울한 생일을 몸소 보여줬었다. 또 한 번은 학교 선생님께서 다짜고짜 자신의 차를 밀라고 시켰을 때에도(부탁이 아닌 명령이었다.) 나는 눈치를 보고 밀어주려고 했는데, 그 친구는 ‘일단 먼저 시도를 해보신 뒤에 안되시면 저희가 도와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었다. 또 싸움을 잘하는 학교 선배가 다른 후배들을 일렬로 세워두고 훈계를 했는데, 그 모습이 웃기다고 사진을 찍으러 갔었다. 선배가 때리려고 하자 아버지가 경찰이라고 거짓말을 했고 결국 선배는 손도 못 댔었다. 롯데월드 입구, 인파 속에서 엎드려 뻗쳐 자세로 사진도 찍었고, 서울 시청에서 비둘기를 손으로 사로 잡아 보기 도 했고, 유치원 아이들과 치사하게 먹을 것으로 흥정도 하고, 주차비를 내지말고 지나가라며 손을 흔드는 아저씨에게 창문을 열고 하이파이브를 하고 지나가고, 예비군 훈련 때는 악수를 청하는 전대장님께 가위를 내기도 했었다. 조만간 있을 나의 생일은 이슬람 사원에서 할 예정이다.여튼‘법이 보호해준다’는 것을 매우 잘 인식하고, 그 한도 내에서 마음껏 자유 민주주의를 느끼며 살게 되었다. 또한‘아침에 구름이 멋있다. 저녁에 석양이 예쁘다.’문득 전화가 와서 이런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어느 덧 나도 조르바만큼은 아니지만 어떻게 춤을 추는 것이냐고 물어보면서 춤을 따라 추는 두목의 입장이 된 것 같다.나는 사람에게 제 나름의 냄새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 냄새는 아주 복잡하게 섞여 있어서 별로 의식하지도 않은 채 살고 있고, 이건 누구 냄새, 저건 누구 냄새, 이렇게 구별하기도 어려워요. 우리가 아는 건 고약한 냄새 하나. 소위 인간성이라는 냄새가 있다는 겁니다.사실 나는 더러운 것이나 비신사적이고 비윤리적인 것은 몸에서 거부한다. 때문에 조르바의 행동을 전부다 이해 할 수는 없었다. 조르바는 그런 나에게도 인간성의 냄새가 난다고 뭐라 하겠지만, 나는 조르바가 너무 지나친 것이 아닌가 하는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조르바는 인간을 자연과 마찬가지로 자유로운 존재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다른 사람들처럼 인간성에 대한 불쾌한 냄새는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왜요?’라고 묻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행하는 것. 자신의 생명을 사는 것.하지만 보통의 인간들은 그렇지 못하다. 인간들이 끊임없이‘왜요’라고 묻고 이 물음에 답을 할 수 있을 때만 행동한다는 것이다. 여기가 조르바가 혐오하는 인위적인 것. 즉 인간의 냄새가 묻어 나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인간의 행동. 그것을 조르바는 무서운 죄악이라고까지 이야기한다. 조르바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매순간에 집중하는 인물이다.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행동에 충실하며, 자신이 하고 있는 행동에 충실하다.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지 않는 자연적인 인물. 향기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자연 뿐. 작품의 배경이 되는 크레타 섬은 그런 자연의 향기를 잘 표현해 주고 있다. 크레타 섬은 소금, 샐비어, 박하, 레몬, 오렌지, 수박, 백리향 등이 향기가 나는 자연의 공기이다. 조르바는 그 향기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다른 사람에게 전파한다. 오르탕스 부인에게 먼저 그 향기를 전파하고 그 부인은 두목에게 향기를 옮긴다. 아픈 오르탕스 부인이 꼬마를 시켜 조르바를 불러오라 했을 때, 꼬마는 두목에게서 조르바의 향기를 느끼게 된다. 인간의 냄새를 가졌던 두목이 조르바와 과부를 통해 자연의 향기를 가지게 된 것이다. 오르탕스 부인과 화자가 자연의 향기를 가지게 된 것은 그들이 조르바와 같은 자유를 획득 했다는 것이다. 자연의 향기는 어떤 물음 없이 하고 싶은 행동과 하고 있는 행동에 충실할 때 가질 수 있는 향기인 것이다. 짧디 짧은 우리의 인생에서 우리가 섬길만한 영원불멸한 것의 해답을 조르바는 알고 있다.
    독후감/창작| 2009.06.13| 2페이지| 1,000원| 조회(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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