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이인성 『한없이 낮은 숨결』- 단절의 시대, 소통에의 갈망 -??Ⅹ?Ⅸ. 서론. 작가소개가. 연작소설 『한없이 낮은 숨결』Ⅰ. 본론. 소통의 도구로써의 해체0) 배경 없는 배경1) 등장하지 않는 인물2) 언어의 해체가. 리얼리즘 소설과의 차이0) 눌변과 달변1) 현실과 그것을 현실2) interactive - 소통에 대한 노력나. 독자와의 소통은 가능한가0) 당신-나-우리 - 독자와의 상보적 대화1) 이인성-다수의 나 - 작가 내부의 의사소통2) 한계Ⅱ. 결론??Ⅹ?Ⅸ. 서론. 작가소개1953년 12월 9일 피난 중 진해에서 태어났다. 1969년 경기고등학교에 입학하여 문예반 활동을 하며 1학년 때 처음 써 본 소설이 교내 문학상에 당선되는데 이것이 진로 결정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1973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불어불문학과에 입학해 1학년 때 ‘향연문학상'에 소설 「여름나기」가 당선되고, 이듬해 2학년 때는 대학신문사에서 주관하는 '대학문학상'에 소설 「나만의, 나만의, 나만의」가 당선되면서 작가로서 길을 걷기로 한다. 학부 시절 문우들과 동인지 『언어 탐구』를 만들어 이 해 가을 첫 호를 간행하고, 1975년에는 프랑스 유학에서 돌아온 김현을 만나게 되어 수학하게 되는데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글쓰기에의 욕망은 더욱 커지지만 사회에 나갈 자신이 없어 대학원에 진학한다. 입학하자마자 휴학을 하고 방위복무를 시작하며 이 때 「낯선 시간 속으로」의 첫 구상과 메모가 이루어진다. 1980년에는 광주항쟁이 터지기 직전 계간 『문학과 지성』 봄 호에 중편 「낯선 시간 속으로」를 발표하면서 등단하게 된다. 2년 후 한국외국어대학교 불어과의 전임강사를 시작으로 교단에 서게 되고 이 무렵 새로운 세대를 중심으로 한 무크지 간행을 구상하여, 이성복 · 정과리가 함께 편집동인이 되고 문학과지성사가 출판을 밑받침하는 『우리세대의 문학』을 창간한다. 1989년에는 연작소설집 『한없이 낮은 숨결』을 간행하고 이 소설집으로 한국일보 창작문학상을 받는다. 주요 작품으로다. (중략) 언어의 눈이 흠칫 물러선다. (중략) 얼결에 멈춰 서 있던 언어의 눈이 서둘러 그들을 따라 돌며, 주자들과 차량들의 뒷모습을 비춘다. 짧은 사이. (『그는 왜 그럴 수밖에 없었을까』, 135~141면)일반적 소설의 배경이라 할 수 있는 시공간이 배경으로 나타나는 부분은 전편을 이루고 있는 12개의 연작들 가운데 절반인 6개(『그때 그를 당신도 보았다면』~『이미 그를 찾아간 우리의 소설 기행』) 정도이며, 그나마도 이는 일반적인 소설에서의 배경의 쓰임새인 뒷배경이 아닌 작가가 소설의 내용을 풀어나가는 목적 자체로 존재한다. 크게는 독자인 ‘당신’이 작가인 ‘나-이인성’과 소통을 취하는 것, 작게는 그 소통을 원활히 하기 위해 전통적 이야기 방식인 일방적 말하기 구도를 벗어나고자 자신이 소설을 쓰는 이유, 혹은 소설의 존재방식을 파헤치는 것이 작품 내의 목표인 작가에게는 배경이라는 소설의 중요한 요소 역시 ‘소설가가 소설을 쓰는 방식’이라는 생명체를 관찰하던 도중에 만난 다큐멘터리의 촬영 대상일 뿐일 수 있다.침, 꼴깍. 사이.이하, 이 연극 놀이의 대본은 반쪽만 인쇄된 것으로서 그것은 내가 빛기둥 밖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연기할 부분에 한정되어 있다. 나머지 반은, 빛기둥 속에서 당신이 연기하며 채워 넣어야 한다.그럼, 묻겠습니다. 당신 이름은?(중략) 첫 질문이라 아직 너무 막막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당황하진 마십시오. 당신에게, 자백할 시간과 기회는 얼마든지 부여되어 있으니까요.당신이 대답의 연기를 하는, 사이.(중략)이 대답도, 어쩌면 당신 삶의 역사를 차분차분 뒤져봐야 나올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그래서 여전히 난감하십니까? 그러면, 이렇게 할까요? 일단은 질문과 함께 두서없이 떠오르는 생각들을 그냥 진술토록 하시고, 뒷심문들과 연결돼서 다시 살아나는 문제들을 보충·수정해나가는 방법으로. 괜찮겠습니까?당신이 대답의 연기를 하는, 사이.(『당신 자신인 당신을 향한 물음들』, 77~79면)‘현실과 가까운 것처럼 꾸며진 일상적인 느낌의’ 배 발전시키기 위해, 작가는 한구복이라 이름붙인 ‘그’를 만들어 낸다.요약? 그건 요약할 수 없는 기록인데… 대강의 줄거리 말일세. 줄거리라야, 한 마라톤 선수가 경기 중에 갑자기 선두로 나서 독주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또 갑자기 상식 밖의 과속을 내다가 쓰러진다, 한참 만에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서 천천히 주로를 따라간다, 그러다가 방향을 바꿔 산동네의 자기 집으로 간다, 그리곤 다시 뒷산을 넘어 마라톤 코스의 종착점인 운동장에 가본다, 그 정도 아닌가… 그럼, 중요한 건 뭔가? 그걸…, 나도 잘 모르겠단 말이네.(『그를 찾아가는 우리의 소설 기행』, 203면)이인성이 현실에서 모티프를 얻어 소설을 쓴 점에 있어서는 다른 작가들의 경우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재현하기보다는 재현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밝히고자 한다는 점에서 그들과 다르다.) 재현의 문제점을 스스로에게 묻고 고민하는 과정의 파트너로 선택된 인물이 독자(당신)라면, 파트너인 독자를 이끌고 문제점의 해답을 찾는 행위의 촉매로 활용되는 인물이 ‘그’이다. 소설에서 ‘나’와 ‘당신’이 동등한 입장에서 ‘우리’가 되고자 하는 이 불가능할 것만 같은 노력 속에 불완전하나마 ‘우리’는 그를 찾아가기 위해 길을 떠난다. ‘나’는 이야기꾼이자 작가 자신이며 작가로부터 비롯되어 그와 겹쳐져 있으면서도 다른 어떤 나들 중 하나이자 당신으로서 나이다. 그러나 과연 ‘당신’은 ‘나’와 같이 ‘그’를 대했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아있으며, 이것을 풀기 위해 ‘나’로서 이인성은 직접 소설의 전면에 드러나 ‘당신’으로서 독자에게 ‘그’로서 등장인물을 찾아가는 작업에 동참해주기를 간절히 요청한다. 창작과 독서 행위는 원래 텍스트 밖에서, 각기 다른 시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나, ‘나’는 ‘독자’가 텍스트 속 여행에 참여해주기를 직접 요구하고 있으며, 이에 독자는 ‘독자’라는 대명사로 작품 내에서 발언권을 행사하기도 하며 인물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2) 언어의 해체인물과 배경이 평범하지 못했듯이 문체 역허우적거리며 자기 말을 찾아 나서는 것이 눌변이다.1) ‘주어진 현실’과 ‘주어지게 만든’ 현실‘주어진 현실’이란 것을 셀 수 있는 것으로 가정하고 세어보자. 대한민국에 ‘주어진 현실’의 개수는 아마 4천만이 넘을 것이다. 각각의 사람들에게 ‘주어진 현실’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공의 작가인 조세희가 독자에게 제시한 ‘주어진 현실’은 수많은 것들 중의 하나일 뿐이다. 수많은 것들 중의 단 하나일진데, 독자들이 공감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이것은 조세희의 ‘주어진 현실’이 과연 단 하나만 존재하는 진실에 가까운 것인가, 아니면 수많은 독자가 기만당하고 있는 것인가. 수많은 작가들이 자신만의 작품으로 독자들을 자기에게 ‘주어진 현실’속으로 끌어들인다. 여기에 끌려온 독자들은 자신의 주어진 현실’은 망각한 채, 작가의 세계만이 긍정적 혹은 부정적이라고 여기며 자신의 존재라는 것을 점차 잊어간다.이것이 사회의 제도적인 억압과 무엇이 다른가. 소설이라는 무기로 당대의 부조리한 현실을 고발하려고 했던 작가의 치열한 전투에 대해 이인성은 다른 시각으로 보고 있다. 이인성의 작품은 ‘주어진 현실’을 규정하지 않는다. 대신 ‘주어진 현실’을 ‘주어지게 만든 현실’에 대해서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끊임없이 고문한다. 기성의 작품들이 현실에 대해 자신만의 색깔을 발산하고 있을 때, 이인성은 세상에 대해 소리치는 것 대신, 개개인의 내면에 주목한다. ‘주어지게 만든 현실’에 주목하는 것이다. 사람마다 성장과정과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설사 하나의 사회현상을 보더라고 시각차는 존재한다. ‘주어진 현실’에 대한 작가의 거리와 독자의 거리가 같아질 수 없음은 ‘주어지게 만든 현실’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인성은 이 '주어지게 만든 현실'에 대한 고찰의 방법으로 기존의 소설이 취하던 방법론을 과감히 깨뜨린다. 주인공이 없고, 사건이 없고, 극적전개가 없다. 언어의 본질을 탐구하는 과정을 통해서 이인성은 “주어지게 만든 현실”에 대해 한 걸음 한 걸음 나가려고 한, 우리는 현체계의 근원적 뿌리부터, 즉 문학적 소통의 출발점부터, 그러니까 글쓰기와 글읽기의 과정에 개입되는 여러 국면부터 정면으로 문제 삼아야 된단 말입니다. (『당신에 대해서』 24면)이인성은 독자를 연극놀이의 배우로 초대하고 있고, 또 독자에게 자신도 배우로서 초대해 달라고 말하고 있다. 연극무대에서 와 의 관계는 어느 하나 정해진 것이 없는 상황에서 함께 연극무대를 장식해야할 동반자이다. 상호교감의 과정을 통해 와 이 가 되어 함께 연극무대를 하나의 로서 만들어내는 것이다. 와 은 가 되길 위한 노력의 과정 속에서, 타인과의 무수한 교감에 의해 작가인 와 독자인 은 수많은 복수 주체로 자기답게 된다. 는 이야기꾼이자 작가 자신이며 작가로부터 비롯되어 와 겹치면서 또 다른 들 중 하나이자 당신에 대한, 당신으로서의 이다. 또한 와 같을 것이다.나. 독자와의 소통은 가능한가0) 당신-나-우리 - 독자와의 상보적 대화이인성의 『한없이 낮은 숨결』은 작가가 독자에게 글을 전하는 일방적인 글쓰기 형식이 아니라 작가와 독자 간의 소통, 상보적 대화를 추구하는 글쓰기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반복되는 빈칸들은 독자를 위한 침묵의 공간으로서 작용하며, 독자들로 하여금 그러한 침묵의 공간을 채우는 묵시적인 의무를 지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글쓰기 형식은 기존에 존재했던 독자와 소설가와의 전통적인 관계를 회의적으로 바라보고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텍스트 내에서 당신(독자)와 나(작가)는 끊임없는 교신을 벌인다. 여기에서 당신(독자)와 나(작가)의 소통과정이 탄생한다. ‘당신’과 ‘나’에게 말을 걸기도 하고 함께 ‘그’를 찾아가자고 요청하기도 한다. 이러한 끊임없는 교호 작용를 통해 당신(독자)와 나(작가)는 우리로 거듭날 수 있게 된다.우선, 이 소설을 읽으려는 당신에게, 잠깐 동안 눈을 감도록 권하겠다. (중략) 분명, 당신은 눈을 감지 않았거나 너무 일찍 눈을 떴다. 그렇다면, 그러므로, 이제 이 순간, 돌연히, “오, 빌어먹을! 면)
이문구 -한국 근대화의 잉여/결핍: 1970년대 도시화로 인한피폐한 농촌의 현실에 대하여-Ⅰ. 서 론1. 작가소개2. 1960~1970년대 경제발전과 소외된 농촌3. 연작소설로서의 『우리동네』Ⅱ. 본 론1. 작품 분석1) 허울뿐인 새마을 운동의 모습과 농촌 생활의 피폐함2) 왜곡된 정치의식3) 농민 권익을 보장하지 않는 ‘농협’4) 농촌 공동체의 파괴와 가정의 불화5) 신문물의 도입으로 인한 농촌 일상의 변화6) 농촌을 벗어난 공장 노동자들의 노동력 착취문제7)『우리동네』에 나타난 언어의 특징Ⅲ. 결 론Ⅰ. 서 론1. 작가소개1941년 4월 12일 충청남도 보령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랐으며, 6·25전쟁으로 아버지와 형들을 잃고, 이어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 15세 때 가장이 되었다. 1959년 중학교 졸업 후 상경해 막노동과 행상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1961년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에 입학해 김동리, 서정주 등에게 수학했다. 단편소설 『다갈라 불망비』(1963)와 『백결』(1966)이 김동리에 의해 『현대문학』에 추천되어 등단했다. 등단작품의 독특한 문장과 문체에 주목한 김동리는 추천사에서 '한국 문단은 가장 이채로운 스타일리스트'를 얻게 되었음을 밝히고 있다.우리말 특유의 가락을 잘 살려낸 유장한 문장으로 작가 자신이 경험한 농촌과 농민의 문제를 작품화함으로써, 소설의 주제와 문체까지도 농민의 어투에 근접한 사실적인 작품세계를 펼쳐보여 농민소설의 새로운 장을 개척한 작가로 평가된다. 주요작품으로 『이삭』(1968),『암소』(1970),『관촌수필(1~3)』(1972), 『우리동네』 등이 있다.2. 1960~1970년대 경제발전과 소외된 농촌1960년대 ‘개발과 성장’의 구호아래 진행된 60년대의 도시화는 한마디로 농촌의 와해 위에 이루어진 ‘농민의 도시화’였다. 국가의 농업부문에 대한 적극적 착취는 ‘저임금-저곡가’라는 형태로 공업적 도시화의 생산적 기반을 제공하였으며, 농촌은 ‘조국 근대화’의 미명아래 내국 식민지의 위치 또는 이중(二重) 식민지의 역할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정치적 고려와 더불어 미국의 농산물 수출정책이 이시기를 전후하여 크게 변경되었다는 것도 정부의 농업정책변화를 초래한 중요요인으로 작용했다. 1950년대의 「PL480」을 통한 미국의 농산물의 도입은 비록 농산물 수입에 지불조건이 무상원조에서 장기저리차관의 형태로 변경되기는 했지만 1960년대에도 지속됨으로써 정부는 식량의 안정적 수급을 위한 농업생산력 향상에 대한 부담을 지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1971년 미국의 전격적인 PL480에 의한 식량공급의 중단은 정부로 하여금 부족한 식량의 도입에 막대한 외환을 지불해야 하는 부담감을 안겨주었다. 1970년대의 새마을운동과 농업지원정책의 강화는 이와 같은 식량공급 구조의 급작스런 변화를 또한 그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앞서 말한 ‘새마을운동’을 운동을 좀 더 살펴보자면, 여기에는 박정희 정권이 장기집권의 유신시대에 국민의 의식을 한데 모으기 위한 의도가 숨어있었다. 1971년에 제창된 새마을운동은 ‘조국근대화’라는 기치 하에 ‘근면?자조?협동’의 정신을 가지고 국민 개개의 생활 향상과 자유로운 성장은 물론 국가의 발전과 중흥을 이룩하려는 사회혁신운동이라고 내세웠다.새마을운동은 농촌?도시?학교?공장을 불문하고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그러나 이 운동은 민간주도가 아닌 관 주도로 진행되는 과정에서 국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보다는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에 의한 강제성을 띠었기 때문에 부작용도 많았다. 결국 유신시대를 통해 절대빈곤은 해결되었지만 날로 심화되어 가는 상대적 빈부의 격차와 장기집권에 따른 정치적 부작용 및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로 국민의 지지가 약화되자 ‘긴급조치’ 발동으로 정권을 유지해갔다. 그러나 장기집권과 반민주적인 통치를 반대하는 학생?지식인?종교인?정치인의 민주화운동과 고도성장의 경제적인 분배에서 소외당한 근로자?농민?도시빈민의 생존권 요구를 긴급조치로 억압함으로써 국민의 저항에 부딪쳤다. 유신시대 동안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10%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보였으나 빈부격차는 갈수록 심화되이문구 『우리 동네』는 부동의 작품으로 인식되고 있다.셋째로, 이문구의 『우리 동네』연작품에 대해 ‘연작품’이라는 점에서 주목되는 각별한 시각이다. 이문구는 『관촌 수필』과 『우리 동네』를 통해서 이 시기의 연작품들 가운데 연작 형태로서도 그 가능성과 문학적 성과를 획득한 것으로 평가된다. 아홉 편의 단편 소설의 결합을 통해 농촌 현실이 상황성을 확대해 보이고, 개별 단편은 서로 다른 각도에서 농촌 현실을 보여준다. 즉 이문구는 그가 관심했던 당대의 농촌 현실의 중첩된 문제들을 확대해 보이기 위해서 아홉 편의 『우리 동네』를 연작화했던 것으로 보인다.넷째로는, 작가 이문구와 그의 『우리 동네』 연작품이 표시하고 있는 사회 문화적 변동의 시각이다. 『우리 동네』 역시, 이 작품이 쓰인 1970년대 후반기의 시대적 상황과 연계되어 도시화, 산업화의 가속도가 엄청나게 신장되면서, 국토의 지형적 변화나 물질적 삶의 형태, 혹은 여기에서 파생되는 윤리? 가치관이 변화 등 사회?문화적인 제반 요소의 급격한 변도에서 비롯된다. 다만 『우리 동네』연작품을 통해 작가가 보다 새롭게 탐색하고 있는 것이 농촌 사회의 변동 요소이고, 이러한 변동을 농촌의 지형적이거나 생활 문화 혹은, 농민들의 의식에 가해진 가치관의 변화 등 문화 변동적 요소들에 논점을 두고자 하는 것이다.Ⅱ. 본 론1. 작품 분석1) 허울뿐인 새마을 운동의 모습과 농촌 생활의 피폐함새마을운동은 1970년대 우리나라 농촌의 상징물이다. 정부가 1971년부터 새마을 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인 속사정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견해가 다르다. 그러나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의 피폐한 농촌 현실이 그 배경임은 말할 나위 없다.박정희 정권은 농촌문제의 심각성은 잘 알고 있었지만 문제의 원인이나 처방은 올바르게 알지 못했다. 농촌 문제의 원인을 잘못된 경제정책이 아니라 농민의 게으름 탓으로 돌리고, 농업과 농촌에 대한 투자를 통해서가 아니라 농민의 정신자세를 바꿈으로써 농촌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새마을 운동은 농민의 근면?면 아시겠지만 주로 논보리 파종하는 장면을 클로즈업시킬 테니까요. 술과 화투로 세월 하던 과거의 농촌에 이젠 농한기가 없어졌다는 것을 보여주자는 거니까…….”-「우리동네 류씨」 中-‘새마을운동’의 구호를 되살리려는 단막극의 제작이 아이러니하게도 새마을 운동으로 인해 못쓰게 된 밭에서, 피폐화된 농촌에서 강제적으로 진행된다. 농촌을 살리자는 의미의 새마을 운동을 드러내는 단막극 촬영을 위해 민방위대원 전원과 예비군 전원, 마을 주민 모두가 비상대청소를 하고 또 전체적으로는 평소에 잘 쓰지 못하는 여러 농기구를 강제로 빌려오게 하는 등의 모습은 새마을 운동이 농민들을 위하기보다는 오히려 부담을 주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결국 허울뿐인 새마을운동의 성격을 잘 나타내주는 단면이라 할 수 있다.2) 왜곡된 정치의식「우리 동네의 정씨」의 내용에서는 선거를 둘러 싼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생긴다.정은 김이 당선될 경우, 이번 일을 구실로 두어 가지 이용해 먹을 계획이 서자 식전부터 안팎 동네를 후지르고 다니며, 아무나 붙들고 어렴성 없이 도장을 부탁했다. 그가 이틀 동안에 얻은 도장은 예순 둘이나 되었다.“우리게는 장 인물 웂어 웂어 했더니 인제 됐어. 어서 와서 연설 한마디 허여.”“암 먹고 안찍어줄 수 웂구, 이 댐에 나오면 여기두 한 표 있어.” 동네 사람들이 다 모인 마당에서는 자장면 잔치가 한창이었다.-「우리동네 정씨」中-여기서 변이라는 사람은 자신이 협의회 간부기 때문에 자신의 말 한마디면 면과 시의 서장이 꼼짝 못한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이것은 그 당시 권력을 가진 자라면, 어떤 사건에서 정당성의 문제와 상관없이 그 사람의 말 한마디에 좌지우지되었기 때문에 당시 사회에서 공정성과 투명성은 실현되기 어려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씨가 자장면을 시키자 동네 사람들이 한 표 던져 줄테니 선거를 나가라는 말은, 물질적으로 베풀면 표 하나 정도는 흔쾌히 던져줄 수 있었던 그 당시 농민들의 정치에 대한 무지한 권위 의식을 살펴볼 수 있다.3) 농민 권익을 보장하지 의한 농촌의 희생이 이 이상 계속되지 않는다는 판단이 서기 전에는, 여태껏 몸서리나게 받아온 차별과 업신여김을 팔자소관으로 돌려가면서까지 그대로 농사에 매달려 덧없이 죽어날 생각은 조금도 없었던 것이다.-「우리동네 장씨」中-반면 현실에서의 농협은 우리동네 장씨의 한 부분에서 잘 드러나듯이 농산물 판매사업에는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농협의 사업은 본래 농산물의 공동판매가 중심이 되어야한다. 그러나 판매사업은 힘이 드는 반면 이익을 남기기 어렵고 자칫하면 적자를 보기 일쑤였다. 그래서 조합은 되도록이면 판매사업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조합이 돈벌이가 되는 정부 대행사업과 신용사업 그리고 구매사업에 치중하고 농민의 농산물은 팔아주지 않으니 농민들은 농협을 ‘돈놀이하는 신용금고’,‘조합직원을 위한 조합’,‘대기업의 대리점’이라고 비난한다.4) 농촌 공동체의 파괴와 가정의 불화외래의 소비문화 침투와 농촌의 궁핍한 생활은 남녀관계, 가족관계에 갈등을 가져온다. 『우리동네』의 가정치고 남편과 아내 사이에 갈등과 긴장이 없는 집이 없다. 이 씨의 집이 그렇고, 류 씨의 집, 강 씨의 집, 김봉한 씨의 집이 그렇다.정은 지드근히 사려 욱기를 누르고 중얼거렸다.“끙, 눈썰미 있는 여편네 같으면 눈 하나 깜짝 않구 벌써 지지구 볶구 해냈을 텐디, 저런 그루된 것을 지집이라구 밤이면 불 끄구 자니, 에라 이 불쌍헌 늠 …….”“그러니께 그런 깬 여편네 있걸랑 읃어 살어. 나는 중국집 근처도 못 가봐서 짜장면에 된장을 푸는지 꼬치장을 푸는지, 열 번 쥑인대두 모르는 답답선이니께.”-「우리동네 정씨」中-위의 대화는 「우리동네 정씨」에서, 짜장면을 시켜달라고 학생들이 데모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씨가 아내와 나누는 대화 중 한 부분이다. 정씨와 귀숙어매의 불륜관계, 그리고 정씨가 자신의 아내와 귀숙어매를 비교하는 내용, 정씨의 아내가 귀숙어매의 존재를 알고있다는 점 등은 가정의 붕괴 현상을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우리동네 류씨」에서 드러나는 남편들의 외도 현장 묘사와 『우었다.
8. 새로운 시가(시조, 경기체가, 가사)의 출현과 성격목 차1. 서론2. 본론 (1) 시대적 상황과 담당층(2) 경기체가의 출현과 성격(3) 시조의 출현과 성격(4) 가사의 출현과 성격(5) 경기체가-시조-가사3. 결론1. 서론경기체가-시조-가사, 이 세 장르의 문학 작품들이 공존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이 주제를 처음 받아 드는 순간 이러한 의문이 드는 것은 필연적일 것이다. 본 발표문은 그러한 의문에 초점을 두고 시작했으며, 공존 할 수 있었던 이유와 함께, 세 장르의 공존 의의를 파악해 보고자 한다. ‘갈래나 갈래 체계는 문학 담당층의 공동성과’ 라는 조동일 선생님의 말씀에 힘입어, 그 연유를 주체적 작가층의 성향과 시대적 배경을 중심으로 탐구 해 볼 것이며, 더불어 경기체가-시조-가사의 형식적인 면의 연관성도 밝히고자 한다.2. 본론(1) 시대적 상황과 담당층신라시대와 고려전기를 풍미했던 향가는 고려후기에 들어서자 자취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향가가 사라진 뒤 한동안은 새로운 시가형식이 출현하지 못했고, 고려 말, 조선조에 들어선 후에야 ‘경기체가-시조-가사’ 라는 시가형식이 발생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역사 전반의 동향과 집권층의 변화에 관련시켜 이해해야 그 의미가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역사의 변화는 집권층의 변화와 함께 설명 할 수 있으며, 집권층의 변화는 그 기반이 되는 사상과 의식 속에서 이해되고, 그러한 사상이 그들의 문학을 형성하는데 반영하기 때문이다.고려전기에는 신라의 전통을 이은 문벌귀족이 지배세력으로 나서서 상층문화를 형성하였고, 그 결과 향가를 이어올 수 있었다. 하지만 무신란이 일어나면서 문벌귀족의 세력은 약화되었고, 향가의 존재기반 역시 무너졌다고 할 수 있다. 무신집권기와 원 간섭기를 거쳐 친원파인 권문세족이 국권을 잡게 되었으며, 그 무리는 견문이 모자라고, 의식수준이 낮아 지배이념을 가다듬지 못했고, 향락적이고 유흥적인 속악정재와 속악가사 즐기는 수준에 그쳐 상층문학을 재건할 수 없었다. 이때 향리출신인 신흥사幾體歌)는 고려후기부터 조선 중기까지 신진사인과 사대부에 의해서 향유된 국문문학의 한 장르로, 조선전기에 본격적인 발전하게 되었다. 하지만 향유기간이 길었던 것에 반해 현전하는 작품은 26편에 불과하다.《고려사》악지에 속악가사의 하나로 소개한 은 경기체가의 첫 작품이다. 속악가사로 취급된 것은 노래로 불렀기 때문이다. 노래로 부르는 관습은 조선시대로 이어졌으며,《악장가사》에는 조선시대에 이루어진 경기체가 몇 편을 속악가사로 수록했다. 연장체, 중간에 반복되는 후렴구, 3음보로 이루어진 시가의 형식적인 면에서도 경기체가는 고려 속악가사의 장형과 상통한다. 하지만, 경기체가는 교술로, 고려가요는 서정으로 장르적 성격이 나눠지기 때문에 속악가사와는 차이점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경기체가라는 명칭은 "경(景) 긔엇더하니있고" 또는 "경기하여" 라는 대목이 공통적으로 되풀이되는 데서 유래되었다.은 최씨 무신정권에서 벼슬하는 문인들이 놀면서 즐기기 위해서 지은 노래로 알려져 있어 속악가사와 다름이 없다 할 수 있으나, 새롭게 등장한 세력이 다른 어떤 노래에서도 볼 수 없었던 독특한 관심사를 나타냄으로써 속악가사와는 다른 특징을 갖는다.● 한림별곡(翰林別曲)元淳文 仁老詩 公老四六李正言 陳翰林 雙韻走筆沖基對策 光鈞經義 良經詩賦위 試場ㅅ景 긔 엇더하니잇고琴學士의 玉荀文生 琴學士의 玉筍文生위 날조차 몃부니잇고(해석)유원순의 문장, 이인로의 시, 이공로의 사륙변려문이규보와 진화의 쌍운주필유충기의 대책문, 민광균의 경서풀이, 김양경의 시와 부아, 과거 시험장의 모습,그것이 어떠합니까 ?금의가 배출한 많은 제자들, 금의가 배출한 많은 제자들아, 나까지 모두 몇 분입니까?「한림별곡」『樂章歌詞』이 노래에서 작자층을 알 수 있는 단서는「금학사(琴學士)의 옥순문생(玉荀文生)」이라고 한 데서 찾을 수 있다. 금학사는 금의(琴儀) 라고 하는데, 이들은 지방향리 출신의 인재가 과거에 급제해 중앙정계로 진출하기 시작해서 한림의 문인을 이룬 신흥사대부로 볼 수 있다. 이 노래 역시 좌주와 함께 과 모아 개념화 하고 장면화 하였다.이 나온 지 한 세기 정도 지나서 안축(安軸, 1287~1348)이 , 을 지었고, 안축의 작품은 에서 보인 새로운 형식을 이어 경기체가라는 하나의 장르를 형성하게 한다. 또한 혼자서 창작할 수 있는 경기체가의 첫 예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관동별곡(關東別曲)“해천중(海千重) 산만첩(山萬疊) 관동별경(關東別境)벽유당(碧油幢) 홍련막(紅蓮幕) 병마영주(兵馬營主)옥대경개(玉帶傾盖) 흑삭홍기(黑紅旗) 명사로(鳴沙路)위 순찰ㅅ경(巡察ㅅ景) 긔 엇더니잇고.삭방민물(朔方民物) 모의기풍(慕義起風)위 왕화중흥ㅅ경(王化中興ㅅ景) 긔 엇더니잇고.”「관동별곡」『謹齋集』● 관동와주(關東窩主)「관동와주」『謹齋集』고려 말엽의 문인 근재(謹齋) 안축(安軸)이 1330년(충숙왕 17) 강릉도(江陵道)를 존무(存撫)하고 돌아오는 길에 거기서 보고 느낀 바를 한시집 로 다루고, 그 요지를 정리해 을 지었다. 이 두 작품을 비교함으로써 경기체가의 특징을 알 수 있는데, 의 내용이 임지에 가서 민심을 살펴 시대의 병폐가 무엇인지 파헤치고, 생업이 침해된 백성이 어떠한 참상을 겪고 있는 가를 찾아내서 안타까워하며, 왕의 덕화가 사실은 명분상에 그친다는 점을 문제로 삼고, 경치를 즐기려고 찾아오는 고관대작 때문에 백성의 고통이 얼마나 가중되는가를 실감 있게 표현한 작품이라면, 은 문제의식을 드러내었다기보다는 경기체가라는 형식 속에 곳곳의 경치를 서술하고 관인의식과 자부심, 그리고 자신의 거동을 자랑하는데 치중한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竹嶺南 永嘉北 小白山前千載興亡 一樣風流 順政城裏他代無隱 翠華峯 王子藏胎爲 釀作中興景 幾何如淸風杜閣 兩國頭御爲 山水淸高景 幾何如(해석)죽령 남쪽, 안동 북쪽, 소백산 앞의천 년의 흥망 속에도 풍류가 한결같은 순흥성 안에다른 곳 아닌 취화봉에 임금의 태를 묻었네아, 이 고을을 중흥시킨 모습 그 어떠합니까청렴한 정사를 베풀어 두 나라(고려와 원나라)의 관직을 맡았네아, 소백산 높고 죽계수 맑은 풍경 그 어떠합니까「죽계별곡고려 후기에서 조선 초에 걸쳐 크게 유행하게 된다. 경기체가는 그 기풍의 면에서는 권문세족에게 둘러싸인 왕이 음란한 속악가사를 즐겼던 것과 그리 다르지는 않다고 하겠으나, 스스로의 학식과 체험을 동원해서 신흥사대부들의 득의에 찬 모습을 전에 볼 수 없던 방식으로 나타낸 점이 새로운 이념을 구현하는 데에 있어 긴요한 노래로 계승될 수 있었던 이유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사물과 사실을 존중하는 그들의 사고가 사물을 열거하면서 감탄하는 형식에 너무 치우쳐, 경기체가의 서정성과 상상력을 배제하였고, 그 결과 가사가 성장함에 따라 경기체가는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3) 시조의 출현과 성격시조(時調)는 경기체가에 이어 나타났다. 시조는 경기체가만으로 감당할 수 없는 또 다른 표현 영역을 개척하는 데 있어서 긴요한 구실을 했는데, 사물과 심성의 관계를 사물에만 치우쳐 다루었던 경기체가와는 달리 내면의식의 문제를 절실히 다룰 수 있게 하였다. 시조라는 명칭은 '시절가조'(時節歌調)에서 나오는 것으로 '시절가'란 '이 시절의 노래'라는 뜻이 있는 말이며, 여기에 곡조를 뜻하는 '조(調)'가 붙은 것으로, 단시조형인 평시조가 향가나 속요의 영향을 받아 고려말경에 그 형식이 정립된 우리나라 고유 시가이다. 시조를 이전의 대표적인 서정양식인 향가와 견주어 본다면 형식상으로는 처음 넉 줄이 두 줄로 줄고, 마지막 한 줄은 그대로 있어 다섯줄이 석 줄로 줄어든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사뇌가에서는 숭고한 이상을 추구하고자 했던 기풍이 강한데, 시조에서는 일상적인 삶의 영역에서 우아한 것을 추구하는 쪽으로 바뀐 점을 내용상의 변화라 하겠다. 더불어 시조는 향가처럼 초월적인 이상을 생각하지 않으며,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 주위의 여건과 자기 자신의 올바른 관계를 찾고자 하였다.종장 서두에서 볼 수 있는 특이한 규칙까지 갖추도록 형식을 가다듬고, 특정 작자가 나서 개인의 작품으로 창작되어진 시조는 고려 후기 또는 말기에 생겨났으리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물론 이하 여러 시조집을 보면,제는 세월이 흘러 늙음이 닥쳐오는 것을 사람의 힘으로 막을 수 없으니 순리를 따라야 하며, 헛된 노욕에 사로잡히지 말아야 한다는 지혜를 담은 노래라 할 수 있다. 늙음을 한탄하는 사연을 묘미 있게 나타내 뚜렷한 개성을 갖추었다. 표현이 흥미로우면서도 속되지 않고, 꾸미지 않은 가운데 기발하다. 자기 마음을 성찰하는 자세로 야단스럽지 않은 가운데 격조 높은 표현을 얻었다. 속악가사에 탐닉해 질탕한 놀이를 벌이는 궁중에서 멀리 물러나서, 경기체가에서 볼 수 있는 자기 과시도 멀리하고, 풍류보다는 품위를 앞세우는 노래를 시험 삼아 지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다른 경향으로 이조년과 이존오의 시조가 있는데, 이는 자연에서 소재를 찾아 그 시대의 격동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는 개인의 번민을 토로한 작품이다. 주위에서 흔히 보는 경물을 노래한 것 같이 하고서는 소망하는 바를 이루지 못해 번민하는 심정을 토로하는 작품을 볼 수 있다. 사람이 하는 일과는 무관한 세계를 서정시에서 자아화 하는 방식으로 당대의 정치에 관한 주장을 은근하게 나타낸 것이며, 이러한 방식은 후대 사대부 시조의 기본 방향이 되었다.이처럼 고려 말기 신흥사대부가 시조를 필요로 했던 이유는 고려와 조선건국 사이에서 고민하는 사대부의 심정과, 나아가 세상을 바로잡지 못하고 번민하는 심정을 토로하자는 데 있었다. 이러한 절박한 상황 속에서 다양하고 묘미 있는 표현과, 신흥사대부의 내면세계를 보다 정제되게 표현한 4음보 3장의 형식으로, ‘압축의 미’, ‘절제의 미’라는 시조만의 독특한 색깔을 갖게 되었다고 생각한다.(4) 가사의 출현과 성격가사의 출현은 시조와의 관계 속에서 발생되었다고도 할 수 있는데, 중세후기문학에서 시조와 가사는 각각 단가와 장가로써, 나란히 상보적 관계로 발전했다는 사실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시조는 스스로 즐기며 부르는 노래이고, 가사는 듣는 이에게 일러주는 말이라는 근본적인 차이로 시작하여, 그 장르의 담당층에도 차이를 보이며, 서정시와 교술시로 구분 할 수 있는 각각의 특성을 지
정화진 「쇳물처럼」, 방현석 「새벽출정」, 공지영 「동트는 새벽」불타는 연대기의 추억 - 그 많던 전사들은 어디에 있는가< 목 차>Ⅰ. 서론Ⅱ. 본론1. 1980년대 사회적 배경2. 1980년대 노동소설 양상1) 1980년대 노동소설 맥락화2) 좌절과 승리의 교차3. 1980년대 한국의 여성노동운동1) 1980년대 여성노동문제의 특질2) 여성 노동자의 정체성과 노동 운동의 한계4.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현실Ⅲ. 결론Ⅳ. 토론거리Ⅰ. 서론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는 산업화와 고도성장이라는 급격한 사회변화에서 한국대학생들은 ‘대학교육이 대중화 되는 과정’에서 대학생활을 했다. 1980년에 이른바 ‘7ㆍ30 교육개혁’, 그리고 1987년까지 시행된 ‘졸업정원제’는 이전까지 선택받은 계층으로 간주된 대학생들의 특권적 지위를 흔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정권은 자본주의 사회 시스템에서 학력 자본의 약화로 대학졸업이 보장해 줄 수 있는 입지를 축소시켰고, 1980년 5월 광주를 억압했다.한편 1983년 학원자율화조치는 대학 내에서 상대적 자유의 숨통을 틔어주었고, 학생활동가들은 노동운동가와 조직적으로 연대하기 시작했다. 1980년 초 경인지역의 노동야학과 대학생들의 공활(방학을 이용해 공장에 취업하는 활동)이 이뤄졌으며 더 나아가 대학생들은 적극적으로 학생신분을 버리고 노동현장에 투신하기도 했다.이 시기의 노동현장과 문학의 만남으로 이루어진 노동소설은 이러한 노동현장에 투신한 대학생출신의 작가들에 의해 씌어졌다. 실제로 정화진은 서강대학교 영문과 출신이었고, 방현석은 중앙대 문창과 출신이였으며, 공지영은 연세대 영문과를 다녔다. 이들 대부분은 대학생이라는 신분을 버리고 노동현장에 투신한 경험을 갖고 있었으며, 노동현장에서 소설을 창작해 소설을 발표하기도 했다. 최초 대학 진학시 문학 전공을 희망했다가 자기 결단을 통해 노동운동에 투신했던 이들이 다시 소설을 통한 운동의 실천으로 접어든 것이다. 이들은 ‘소설을 통한 운동의 다원적 전개 가능성’을 발견하고, 1980는 극에 달했다.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말로 국민들을 속이려 했으나 국민들은 이제 더 이상 전두환 정권을 믿지 않았다. 전두환 정권의 4.13 호헌조치에 이어 민정당 전당대회 날 6월 항쟁의 불길이 타올랐다. 노동운동 진영은 다른 사회운동 세력들과 함께 6월 항쟁에 참여하였고 6.29 선언으로 6월 항쟁은 막을 내렸다. 사회는 급변하였지만 노동자들에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당시 3년 연속 3저현상 - 저금리, 저유가, 저물가 - 으로 호황을 누리고 있었지만 정부의 기본 정책은 노동자들의 임금인상을 억제하는 것이었다. 6월 항쟁이후 억눌려왔던 노동자들의 요구가 폭발한 것이 87년 노동자대투쟁이었다. 당시 전국적으로 전 사업에 걸쳐 규모와 지역, 업종을 불문하고 총 3,311건의 노동쟁의가 발생하였으며 (6월 29일부터 10월말까지), 그 가운데 파업은 3,235건으로 하루 평균 44건, 총인원 122만 5,830만명이 참가했다. 대부분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난 것이었으며 공통된 구호는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 노동자 대투쟁의 열기는 1989년까지 이어졌다. 3저 호황이 끝나고 성장이 둔화되면서 산업구조조정이 진행되자 이에 대한 노동자들의 저항도 강도 높게 벌어졌다.2 . 1980년대 노동소설 양상 -「쇳물처럼」, 「새벽출정」, 「동트는 새벽」을 중심으로1) 1980년대 노동소설 맥락화노동 소설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노동자의 입장에서 당면한 노동현실ㆍ노동문제의 해결과 극복을 위해 노력하는 층을 포함하고 있는 텍스트이다. 때문에 이러한 특질을 바탕으로 한 소설은 노동자의 생활이나 체험 자체를 그대로 내포하고 있다. 실제로 정화진과 방현석도 노동현장에 투신한 대학생출신 작가들로 그들의 체험을 근거로 한 소설은 실천 지향적인 노동소설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이를 1970년대와 비교해 보았을 때, 70년대는 노동문학은 노동의 제반문제를 민족사적 차원에서 분석ㆍ평가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1980년대 노동문학은 계급적 성격이 훨씬 더 강화되었다. 이는 는 타자와의 관계, 주체를 둘러싼 상황, 그리고 주체 내부의 동력을 통해 ‘계급 정체성을 구성’해 나간다. 이는 1980년대 이데올로기에 호명된 주체의 저항적 성격이 밑바탕이 된다. 그들은 지식인의 만남을 통해 상호 연대로서 의식화 하는가 하면, 소모임 활동 혹은 노동야학에서 이뤄진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자아의 표현을 지향했다. 80년대 노동소설은 70년대부터 시작한 이러한 ‘자아발견’에서, 나아가 가난하고 못 배운 ‘공돌이, 공순이’라는 의식을 벗고, 삶을 스스로 인식하려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특히 노동현장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담으려는 다양한 매체들 ―『실천문학』, 『삶의 문학』 등과 노동문제에 관한 부정기간행물들인 『현실과 전망』, 『함성』, 『우리들』, 『청춘』) ―의 노력도 80년대 노동소설이라는 서사장르의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새벽출정」, 「쇳물처럼」, 「동트는 새벽」은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을 통해 전환점을 맞이한 이후 씌어졌으며, 노동현장에 투신한 대학생출신의 작가들에 의해 창작되었다. 노동자이자 작가이고 지식인이었던 학출 노동자는 전태일의 분신, 지식인들의 노동현장 투신, 현장노동자들의 자기표현, 노동자 의식의 성장 등을 밑받침으로 하였다. 그리고 이로부터 80년대 노동자 계층의 역사적 경험을 서사화 시키고, 형상화 시켰다. 노동자 계층의 수난의 역사를 기록한 것이자, 어둠속에서 희망 찾기와 연결되는 것이었다.2) 좌절과 승리의 교차‘지식인은 자기배반을 통해 민중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 -싸르트르1980년대 노동소설은 지식인의 역할 변화모습이 인상적으로 형상화 되어있다. 마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지섭이가 이제 ‘노동’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현장에 뛰어드는 것과도 같다. 이러한 관점에서 「쇳물처럼」은 ‘근욱’이라는 인물을 제시함으로써 지식인의 노동계급 되기‘를 보여주고 있다.불리한 형세를 눈치 챈 전 상무는 그러나 퇴역 군인 답게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오히려 오기를 부리며 불량 얘기를 꺼낸 것이다. (중략) 평소인 인물로 그리고, 노동자를 갈등하는 인물로 그렸지만 「새벽출정」의 대부분은 ‘패배’, ‘절망’ 이후의 상황에서 시작되고 있다. 세광물산 여성 노동자들이 100일이 넘는 장기농성으로 하나 둘 직장을 떠나는 장면이 도입부로 설정된 것 또한 「쇳물처럼」의 천 씨가 김장보너스를 받는 모습과는 사뭇 대조적이다.또한「새벽출정」에는 「쇳물처럼」의 ‘근욱’과도 같은, 「동트는 새벽」에 ‘정화’같은, 그리고『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의 ‘지섭’이와 같은 ‘지식인 노동자’가 등장하지 않는다. 이는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양상을 대변하고 있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이후 노동현장은 이른바 ‘학출 노동자의 선도 투쟁’에서 ‘각성한 노동자의 일상 투쟁’으로 그 투쟁양상이 변했다. 즉 지식인 인테리겐차의 운동에서 노동자 대중운동으로 주체가 이동한 것이다. 이 와중에서 노동자들은 숱한 패배의 경험을 하게 되었고, 투쟁의 과정에서 보다 강한 주체로 거듭났다). 방현석은 소설 속에서 이러한 상황을 포착해 서사화하고 있는 것이다.물론 「새벽출정」도 각성한 노동자 였던 철순이의 죽음으로 일시적인 승리를 쟁취한다. 하지만 철순의 민주노동열사장 장례식이 끝나고 28일간의 파업농성을 성공적으로 마친 이후 회사의 적대행위가 시작되었다. 그리고결국 미정과 민영은 철순이 없는 상태에서 철순이와 미정과 민영이 꿈꾸는 “노동자의 눈물 없는 해방의 새날을 위해” 투쟁하게 된다. 150일간의 투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새벽출정」은 노동자들의 투쟁을 ‘새로운 출발’이라는 소재로 다루면서도 노동자들의 투쟁은 분명 거칠 수밖에 없기에 결코 승리적 관점이 등장하지 않는다.‘철순아, 이기고 돌아올게.’ 민영은 손가락으로 먼지 쌓인 작업대 위에 썻다. 새벽 5시 정각, 조합원 전원이 식당에 모였다. 모두들 옷을 단단히 차려 입었다. 식당 안은 팽팽한 긴장이 감돌았다. (중략) 캄캄한 새벽하늘에 펄럭이는 깃발들만 소리 없는 함성으로 이들의 출정을 배웅했다.)하지만 노동 운동의 난관 봉착이라는 좌절의 내용을 내포하되어온 노동조합 활동 속에서 남성 그리고 여성 노동자들이나 여성노동자운동의 활동가나 노조의 가분조차도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거나 탈피하지 못하였기 때문이기도 하다.여성 노동자의 문제를 소설과 연관하여 크게 두 가지로 제시해 보자면, 첫째는 모성보호의 문제 둘째는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와 관련 있는 노동자안에서의 남녀차별의 문제이다.첫째, 모성보호란 모성기능이 사회적 노동에 의해서 파괴당하지 않도록 자본의 무제한적인 착취로부터 사회적으로 특별히 보호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업은 그 속성상 모성보호에 대한 경비를 여전히 낭비로 생각하기 마련이었다).미정은 세광에서, 적어도 생산직 노동자 중에서 가장 많은 자유를 누렸다. 300여 명 중에서 매월 생리휴가를 찾아 먹는 유일한 사람이었고, 월차를 쓰고 싶은 날 쓰는 것도 그녀 외에는 없었다.(중략)“나, 뭐가 남았냐구? 많지. 자기공장 7년에 만성두통, 신경통, 소화불량, 위장병, 이정도면많이 남은 거 아냐?”)에서 세광물산의 여공 등은 생리휴가는 물론이요 월차도 마음대로 쓸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특근과 잔업에 시달려야 했다. 회사가 공정의 합리화와 기동성 있는 제품의 생산이라는 가치를 내걸고 기존의 생산라인을 둘로 분리하고 나서는 점심시간까지 죽여 가며 일해야 했다. ‘신나와 안료 냄새 자욱한 도자기 공장’ 속에서 말이다.그러나 의 여공들이 집중하고 있는 문제는 ‘모성보호’가 아니라 노동 3권의 쟁취였으며 에서는 아예 ‘모성보호’의 문제가 언급되지 않고 있다.이는 당시의 여성 노동자의 모성보호가 자본가들에 의해 얼마나 착취되었는가를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데, 특히나 우리나라에서는 실제로 80년대까지 여성들이 어떠한 피해를 입고 있는가가 전혀 조사되어 있지 않을 정도로 여성노동자의 모성보호와 관련해 무심 했다).둘째, 남녀 차별의 문제를 보자면, 이는 사회 내의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와 밀접과 관련을 맺고 있는데, 이는 현실세계에서 ‘여공’에 대한 사회의 인식과 남성과의 임금 차이 등으로 나타났는데인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Ⅰ. 머리말1. 작가소개2. 1980년대초의 정치적 상황과 3S정책3. 노태우가 당선될 수 있었던 이유4. IMF 사태의 원인Ⅱ. 본문1. 작품의 배경2. 표현상의 특징3. 만화적 상상력과 개그가 이끄는 탈주4. 야구, 자본주의, 프로5. ‘나’의 변화를 중심으로 한 작품 분석6. 삼미 슈퍼스타즈가 추구했던 야구와 참된 삶7. 세명의 ‘그녀’Ⅲ. 맺음말Ⅳ. 토론거리Ⅰ. 머리말박민규는 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서 '삼미'라는 야구팀을 소재로 해 유년의 아픔, 성장의 고통, 상실,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 참된 삶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본 발표문에서는 작가 박민규가 어떠한 문학적 형상화를 통해 소설의 주제를 표현하고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1. 작가소개1968년 울산에서 태어나 중앙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2003년 『지구영웅전설』로 문학동네작가상을 수상한 직후,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으로 제8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 일약 주목받는 작가가 된다. 박민규는 30편의 단편을 신춘문예에 지원했지만 예심을 통과했던 것은 「카스테라」뿐이었는데, 등단 후 예전에 신춘문예에 떨어진 작품들이 주요 문학상 후보에 올랐다고 감회를 밝혔다.2. 1980년대 초의 정치적 상황과 3S정책독재자 박정희가 10월 26일 사망함으로써 대한민국은 민주화에 대한 열망과 함성으로 가득찼다. 유신 체제의 몰락은 시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불어넣어주었고, 이러한 사회적 상황은 ‘서울의 봄’(1979년 10·26 사건 이후부터 전두환이 12·12 쿠데타와 광주 학살의 자행으로 봄날의 햇볕을 다시 겨울 찬바람 속으로 되돌렸던 1980년 5월 무렵까지의 시기)으로 묘사되었다.민주주의화를 후퇴시킨 두 주역 전두환과 노태우는 1951년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절친한 친구인 둘은 ‘하나회’라는 군부 내 사조직을 만들고 정치 군인화를 꾀하는 한편, 나란히 베트남전에 참전하여 실전 경험을 쌓기도 했다. 그리고 전두환은 국987년 12월 16일의 제13대 대선에서 노태우는 36.6%를 얻어 각각 28%와 27%를 얻은 김영삼과 김대중을 제치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당시, 노태우가 예상외의 득표를 많이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음과 같다.첫째, 국민들에 대한 우민화 정책이 성공했다는 점이다. 지금도 마찬가지겠지만 당시 전두환이 어떤 과정을 통해 정권을 획득했고, 민정당이 어떤 만행을 저지른 정당인지에 대해서 국민들은 거의 알지 못했다. 전두환 정권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모두 빨갱이로 간주되었고, 광주사태는 신문지상에 단 한줄로 간단하게 보도되었다. 매일 저녁 국민들은 땡전뉴스로 시작되는 어용언론에 의하여 마치 평양방송이 김일성을 찬양하듯이 매일같이 전두환을 찬양하는 언론 보도에 의하여 7년간을 세뇌당하였다. 당시 6월항쟁을 지지했던 계층이 일부 학생들과 넥타이부대로 대변되는 화이트칼라 계층이었던 반면, 6월항쟁이 한창일 당시에도 대부분의 국민은 저놈들은 다 빨갱이라고 손가락질을 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민들은 6월 항쟁이 무엇인지, 민정당 정권이 왜 나쁜지(심지어 나쁜지 안 나쁜지 조차도) 전혀 모르는 상황하에서 대선을 맞이하게 되었던 것이다.둘째, 정부 권력에 의한 언론통제가 극심하였다. 노태우 후보에 대해서는 9시 뉴스에 그의 일대기가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보도되는 사례까지 있을 정도였다. 반면, 야당후보에 대한 보도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노태우 후보의 연설 보도는 구름같은 관중들을 비추어 주었고, 야당후보의 연설 보도는 싸우고 얻어맞는 장면을 집중적으로 보여주었다.셋째, 금권선거가 극에 달했다. 대선후보 연설회에는 민정당 마크가 찍힌 각종 선물보따리가 가득하였다. 국민들은 하다못해 사탕봉지라도 하나 얻어 들고는 정말 즐거워하였다.넷째, 지역감정을 최대한 이용하였다. 당시 전라도 주유소에서는 김대중 만세 세번을 외쳐야 기름을 넣어 준다더라, 경상도에서는 전라도 사람 잡아 죽인다더라 하는 식의 유언비어가 공공연하게 유포되고 있었다. 이는 양 김 씨를 특정지역에 지지기반을 둔 지역대표후 디자인의 크고 검은 눈동자였다. (163쪽)2) 독특한 행 띄우기와 문단 나누기 방식그때쯤 근처의 카페에서 나를 기다리겠다고 했다. 이런맙소사.끓는 물의 세례를 받은 동결건조김치처럼 나는 부풀어 올랐고, (168쪽)다시금 돌아와 내 손에 잡히는 부메랑의 질감을 확인할 수 있었다.그것은, 이제는 세상에서 사라진 별 삼미 슈퍼스타즈였다.그날 밤 나는 새로운 사실 한 가지를 알게 되었다. (125쪽)소설 속에는 이처럼 독특한 행 띄우기와 문장과 문장 사이를 큰 간격으로 띄우는 형식이 자주 등장한다. 작가의 인터뷰를 참고하자면 이런 기법을 쓸 때 특별한 공식이 있는 것은 아니고 그저 즉흥적으로 작가가 좋을 대로 쓰는 것이라고 한다. 어려서부터 우리는 학교 국어교육시간에 문단을 띄우는 법칙 등과 같은 정해진 글 쓰는 양식을 배우고 글을 감상하는 법을 배운다. 획일적이고 규격화된 삶에 갇혀져 있는 우리에게 작가 박민규의 글은 독자가 지금까지 머릿속에서 갖고 있던 획일화된 글쓰기 체제의 틀을 깨는 역할을 한다. 그런 그의 글을 읽으면서 독자는 일탈의 자유를 느끼게 된다.3) 차용해온 문체소설의 문체 중 일부는 차용해온 것으로 볼 수 있다.우선, 소설에 나오는 “오 놀라워라”와 같은 영탄조의 문체는 소설 초반부에 나오는 ‘국민교육헌장’의 우스꽝스러운 경건함을 차용해서 그것들을 희화하는 것이다.또, 소설에는 쉼표, 쉼표가 장장 2쪽 동안 끊임없이 계속 이어지는 문장이 한번 나오는데 이 문장은 단 한 문장으로 쓰인 박태원의 「방란장 주인」과 같은 실험적인 소설들의 긴 만연체들을 차용한 것이다.목은 쉬고, 허리는 아프고, 다른 무엇보다 원더우먼의 팬티처럼 소매에 별이 잔뜩 박힌 삼미 슈퍼스타즈의 촌스런 잠바를 우리는 입고 있었고, …(중략)… 또 지나치는 강원도의 산들이 지나치게 아름답기도 해서―나는난생처음으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또한 기존 소설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작가의 재미있고 특이한 문체는 무협지나 만화책에서 차용해온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런모조리 죽이고 싶도록 만들었던 이 경기”(65쪽)와 같은 말장난이 그러하다.이러한 개그는 대중문화의 일상화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프로의 세계’를 뒤집으려는 작품의 주제 의식을 드러내는 서술 방식이라고도 할 수 있다. 뚜렷한 인과성을 가지는 핵심과는 관계없고 쓰잘데기없어 보이기까지 하는 이 수다스러움은 시간과 노력의 경제성을 최고의 원칙으로 하는 프로의 세계에 딴지를 거는 방식인 것이다.4. 야구, 자본주의, 프로1) 작가는 왜 ‘프로야구’라는 스포츠에 주목했는가흔히 야구는 ‘자본주의의 스포츠’라 불린다.사실 단순히 스포츠로서의 야구는 자본주의와 크게 상관이 없다. 돈이 없으면 글러브 대신에 맨 손으로 공을 잡아도 되고, 방망이가 없으면 각목으로도 얼마든지 야구를 즐길 수 있다.대신 야구가 프로의 무대에 오르게 되면 자본주의와 크게 연관이 있게 된다. 프로스포츠의 가장 큰 특징은 돈을 받되 ‘메리트시스템’(사원의 임용이나 승진을 그 사람의 전문능력을 기준으로 행하는 방법)에 의해 받는다는 것이다. 선수는 경쟁자를 누르고 야구를 더 잘하면 잘할수록 훨씬 더 많은 보상을 받는다. 이에 의해 프로야구는 자본주의의 약육강식의 체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일반 회사원이 회사에 다닐 때 연봉협상 결과는 신문에 나오지 않는다. 반면 야구선수들의 연봉협상 결과는 신문에 대문짝하게 나온다. 프로야구는 이 사회가 메리츠시스템에 의해서 체계화되는 사회라는 것을 전시하는 전시장으로서 작용하는 것이다. 또한 프로야구팀을 운영함으로써 기업은 광고 효과를 톡톡히 누릴 수 있으며, 최초로 경기 관중에게 돈을 받은 프로스포츠는 야구였고, 최초의 프로팀도 야구팀이었다. 선수를 트레이드하고, 급료를 지불하는 계약을 맺고, FA제도를 도입하고, 상업적인 광고를 허용하고, 경기 중계권료를 받은 최초의 스포츠는 모두 야구였다. 또 프로야구는 매 경기마다 입장권을 판매한다. 경기 중간중간에 최소 16번 이상의 휴식시간이 있어 CF를 넣기에도 좋다. 돈이 안되면 연고지를 옮겨도 죄가 되지 않고, 자신의 삶을 희생하면서까지 노력해가면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얻고자 하는 것인가? 돈? 과연 돈이 삶의 전부인가? 돈으로 구입했던 그 많은 물건들은 진정 나에게 필요했던 것인가?이런 관점을 프로라는 단어가 암시하고 있다. 박민규 작가는 이런 대목을 짚어내어 독자들에게 경쟁으로만 물들어져 있던 자신의 삶을 다시한번 돌이켜보도록 하고 있으며 국민들에게 프로가 되어야만 한다고, 더 많은 재화를 소비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프로스포츠와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있다.5. ‘나’의 변화를 중심으로 한 작품 분석1) 1982년, 아직은 순수했던 ‘나’1982년 1월 주인공 ‘나’는 국민학교 졸업을 앞둔 소년이었다. 교복을 맞추기 위해 ‘나’는 아버지와 함께 교복사를 찾아가는데 아버지는 주인공의 학생복을 엘리트 학생복지로 해달라고 말한다. 아버지는 사회에서 성공하려면 엘리트가 되어야 하며 좋은 대학을 나와야 한다고, 쉴 새 없는 경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말한다.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아직 주인공은 이 문장의 의미를, 프로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던 순수했던 시절이었다.그해 3월 ‘어린이에겐 꿈을! 젊은이에겐 낭만을!’이라는 구호와 함께 마침내 프로야구가 출범했다. ‘나’와 조성훈의 응원에도 불구하고 삼미 슈퍼스타즈는 연패의 행진을 계속하고 이들은 낙담하고 슬퍼한다. 비록 시합 성적은 좋지 않지만 어느새 두 소년의 마음속에는 삼미 슈퍼스타즈라는 별이 하나의 우상으로서 자리잡게 된다.성적이 좋지 못했던 삼미팀은 마침내 1985년 6월 해체되게 된다. 삼미의 고별전을 본 주인공은 그날밤 한가지 깨달음을 얻게 된다.평범하다고 생각해온 내 인생이 알게 모르게 삼미 슈퍼스타즈와 흡사했던 것처럼, 삼미의 야구 역시 평범하다면 평범하다고 할 수 있는 야구였단 사실이다. …(중략)… 결론은 프로였다. …(중략)… 세상은 이미 프로였고, 프로의 꼴찌는 확실히 평범한 삶을 사는 것이었다. …(중략)… 문제는 ‘평범’의 기준에 관한 것이다. 과연 어떤 것이 평범인가? …(중략)… 중산층. …(중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