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리스문화와 로마 문화의 공통점1. 인간중심적이었다.2. 실용적인 학문이 발달하였다.3. 여러가지 철학이 발달하였다.4. 공화정제를 기반으로 하였다.5. 로마가 맨 처음 그리스의 신화를 받아들였으므로 두 나라의 신들은 이름만 다를뿐 누구인지는 다 같았다.6. 그리스는 페르시아라는 강력한 라이벌이 있었고, 로마는 카르타고라는 강력한 라이벌이 있었다.(2) 그리스문화와 로마문화의 차이점1. 로마는 후에 제정으로 바뀌게 되었다.2. 그리스는 테베, 아테네, 스파르타 등 도시국가 하나 하나로 이루어져 있었으나 로마는 영토형 국가였다.3. 로마는 조금 더 사치스럽고 향락적인 문화(콜로세움 경기, 목욕)들이 발달했다.4. 로마는 후에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국교로 선포하는 등 종교적 국가가 되었다.5. 그리스는 제한적인 민주정치였으나 로마는 조금 더 발전된 형태의 민주정치였다6. 그리스는 각 국가의 시조가 누구인지 명확히 밝히고 있지 않지만 로마는 로물루스와 레물루스가 건국하였다는 것이 명확히 밝혀져 있다.(3) 그리스 문명고대 그리스 문명은 여러 면에서 지중해 분지지대의 수많은 문화들의 부흥과 발전에 기여했을 뿐 아니라, 서구사상의 뿌리이자 정수이며 마르지 않는 수원이다. 우리의 문명에도 그리스문화가 씨를 뿌린 흔적이 수없이 많으며, 해마다 사학자 및 고고학자들은 현장탐험을 하고, 실험실 연구들로 고대 그리스인들의 지적이고 미적인 면모에 대해 전혀 새로운 사실을 밝혀내고 있다. 고향이 다뉴브 강가이고 스스로 헬레네 족 이라는 한 무리의 유목 민족이 그리스로 내려와 그리스에 살던 에게 인에게서 배운 철제무기 제조 기술로 이들을 섬으로 쫓아내고 그들의 섬과 고대 문명 최후 상업적 지주였던 트로이를 점령함으로 그리스가 역사 전면에 등장했다.그리스와 로마는 인류 문명의 기초가 되는 중심적인 국가이며 이들 나라가 만든 정치제도와 법 제도, 사회 시스템 등이 아직도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로마의 문명은 그리스가 기초가 되었고, 그리스의 문명은 크레타와 페니키아로부터 전수 받았 있다.1) 그리스의 주택문화수세기 동안 주택은 고대그리스인들의 일상생활에서 주변적 역할을 했다. 일을 할 때, 정치를 할 때, 한가한 시간을 보낼 때면 기후가 좋아 많은 시간을 밖에서 보냈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주택은 주로 밤시간의 피난처였고 식사도 밖에서 할 때가 많았다. 아르카이크 시대(megaron, 개방된 현관과 홀을 지닌 건축형태)에서 비롯된 원시적이고 기본적인 구조에서 좀 더 다양하게 구분된 형태와 설계로 변화했다. 정사각형이나 직사각형, 때로는 한쪽이 반원형으로 돌출된 구조도 있었으며, 1층에는 방들이 한 줄로 이어지거나 또는 양쪽에서 서로 마주보고 있었고, 어떤 경우에는 안마당이 딸려 있기도 하고 다른 주택과 함께 마당을 사용하기도 했다. 골조로는 목재 거푸집(Pise)을 널리 사용했고, 암반 위에 굽지 않은 벽돌을 쌓아서 회반죽을 칠해 마무리하기도 했다. 그에 비해 지붕은 일률적이었다. 빗물을 모으고 저장하고 배급하는 용도로 사용된 퀴클라데스 전통의 평평한 지붕을 위주로 했고, 가끔씩 한쪽이나 양쪽이 경사진 지붕이 있었다. 기원전 5세기 후반에 합리성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도시계획의 등장에 따라 건축가들은 가사공간의 기능성과 편리성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생활방식이 개인적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것의 영향은 칼키디케 반도에 위치한 올륀투스의 건축물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점점 더 구분이 분명하고 표준화된 형태를 갖추면서 실제로 그리스 주거건축의 전환점이 되었고, 그리스 건축역사에 큰 혁신을 가져왔다. 가장 일반적인 평면도를 보면 방들로 둘러싸인 안마당은 적어도 한 면이 아케이트로 되어 있고, 거실, 부엌 그리고 작은 욕실이 있었다. 이층의 일부를 주거공간으로 사용한 건축물들도 발견되었고, 올륀투스의 동쪽에서 발굴된 단독주택들은 아케이트로 된 중정을 둘러싼 많은 방들을 자랑하는데, 이는 후기 헬레니즘시대와 로마시대 귀족들의 별장의 시조라고 볼 수 있다. 신화의 주인공들이 묘사된 조약돌 모자이크는 그런 주택의 또 다른 대표적인 특징이다.그리에 기초한 경제가 탄생했다. 그리고 금이 장신구와 다른 사치품들보다 널리 사용되었다. 미노스의 장신구들은 그레테 미술의 전형적인 자연주의를 반영하고 있으나, 기법상으로는 이집트와 동방의 모델과 더 많은 공통점이 있다. 돋을새김, 상감세공, 도금술을 주로 사용했고, 거기에 준보석과 유약을 바른 테라코타를 결합했다. 8세기에는 귀족고객들을 위해 귀고리, 반지, 팔찌를 만드는 세공인들 사이에 추상적이고 비구상적인 기하학적 주제가 우세했다. 이 시기에 시작된 금사슬과 미세과립 기법은 오리엔탈 양식과 함께 다음 세기에 유행했다. 오리엔탈 양식은 동물과 상상력에 기초한 주제, 우아한 ‘바로크’장식, 의상, 가재도구, 장신구에서 볼 수 있다. 그리스는 지중해에서 가장 무역이 활발했으며, 장인들의 식기류, 목제나 청동제 장식장들은 그리스 미술의 높은 수준을 보여준다.3) 그리스의 연극서양연극의 기원은 그리스 문명의 탄생과 그 시기를 함께하며, 그리스극에서 극작가와 배우는 각자 사상과 공연을 통해 주관적인 차원을 넘어 새로운 자아, 운명, 차원에 도달한다.아테나이에서 공연된 탁월한 연극들은 흔히 아테나이와 디오뉘소스를 기리기 위해 정기적으로 열리는 제전과 경기에 따르는 축제의 일부로 무대에 올려졌다. 이러한 축제는 정부에서 준비를 했고, 부유한 아테나이 시민들이 후원했다. 연극행사는 경연대회 형식으로 이루어졌으며, 매년 1차 선발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세 명의 극작가가 참여했다. 각각의 극작가들은 하루 동안에 세 편의 비극과 풍자극 한편씩 네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원형극장은 그리스인들의 또 다른 발명품이었다. 직선, L자 혹은 U자 형태의 계단식 좌석에서 관람객들은 연극공연을 관람했을 뿐만 아니라 종교의식에 참여했다. 원형극장의 가장 놀라운 특징 중 하나는 완벽한 음향효과이다. 모든 소리가 높낮이, 강도, 길이의 변화 없이 무대에서부터 관람석의 꼭대기 줄까지 고스란히 전달된다.4) 그리스미술의 특징1. 동적이다. 이집트 미술의 경우, 주지적인 그림으로써, 대상자체를 그린 것인간적인 외모와 성격을 가졌다. 따라서 이러한 신화에 근거한 그리스미술들은 매우 사실적일 수 밖에 없었다. 예를 들어 메두사의 머리나 니케의 날개와 같이 비현실적인 면이 존재는 하지만, 비슷한 시대의 이집트 미술등과 비교해보면, 확실히 그리스 미술은 사실적이다.3. 합리적이다. 이집트 미술에서는 강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나무는 옆에서 본 모양, 강은 위에서 본 모양, 물고기는 옆에서 본 모양 등 시점에 구애 받지 않고 가장 잘 표현될 수 있는 시점에서 그린 그림들을 모아놓기도 했다. 그러나 그리스 미술은 나름대로 일관된 시점을 가지고 있으며 인체비례 등에서 정확성을 추구했다. 따라서 그리스 미술은 매우 오래된 고대미술임에도 불구하고 현대에서 충분히 쉽게 해석이 가능할 만큼 합리적으로 그려진 그림들이다.4. 인간이 주요 소재가 된다. 인간만이 자연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믿고 있던 그리스인은 인간의 현실적인 모습을 그려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더 완전한 이상의 경지에까지 끌어올렸다. 그리스인들이 그토록 추구했던 인간의 아름다움 그것은 조화·통일에 의한 이상 미의 탐구였다. 그리스인은 초기에는 이집트인처럼 형태를 중시한 개념적인 작품을 만들기는 했어도 생각하는 근본에는 인간의 모습으로 생각했고, 또 세계 최초의 민주정치를 발명한 그들의 마음 밑바닥엔 현실의 인간을 모든 세계관의 척도로 하는 사고법이 있었다. 이 정신이 미술을 형식주의에서 탈피시켜 바로 자연주의에로 이행시켰던 원인이었다.5. 조각, 특히 초상조각이 발달하였다. 그리스 미술은 사실 회화보다는 조각이 대부분으로, 이러한 조각의 발달이 다시 그리스 미술에 큰 플러스 요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비례를 중요시하는 그들의 회화와 조각은 다시 건축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4) 로마 문명로마가 제국의 수도가 된 후의 기록에 의하면 BC 800년 경에 라틴족인 로물루스가 로마시를 세웠으며, BC 700년 경에는 역사상 수수께끼인(아직 그들의 문자를 해독 못해서) 에트루리아족이 침입해 로마를 지배했는데, 이들로부터 건 지중해의 요충지 시칠리아의 지배권을 놓고 부딪치게 되는데 이게 1차 포에니 전쟁이다. 카르타고가 은을 얻기 위해 스페인(히스파니아) 지역을 점령하고 힘을 키우자 로마가 2차 포에니 전쟁을 일으킨다. 카르타고의 한니발은 막강한 로마 해군을 피해 육로로 험한 알프스를 넘어 북 이탈리아를 점령한다.그 후 로마의 장군 스키피오는 B.C. 206년에 스페인(히스파니아) 정복하게 되고, BC 205년에 카르타고에서 한니발을 물리침으로써 카르타고의 항복을 받아낸다. BC 197년에는 그리스 지역의 마케도니아를 정복하고, 시리아와의 전쟁에서도 이겨 소아시아를 점령한다. BC 151~146년에 로마는 카르타고, 마케도니아, 아카이아 동맹과 싸워 이겨 발칸 반도와 아프리카까지 영역을 확장한다. 스페인 총독 활동을 하다가 돌아온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뛰어난 재능으로 제 2인자가 되는데 군사적 영예를 더 얻으려고 프랑스, 라인강 건너 튜튼족, 영국 까지 원정을 가게 되는데, 이때 원로원에선 카이사르의 라이벌 폼페이우스를 평생의 독재자로 임명한다. 이 소식을 들은 카이사르는 알프스를 넘어 갈리아 지방의 루비콘강을 건너 로마를 점령했고, 폼페이우스는 그리스로 다시 이집트로 퇴각을 한다. 카이사르는 권력을 독점했지만 암살당하고, 그의 조카 손자 옥타비아누스가 로마의 전권을 잡고 첫 황제가 된다.이 민족의 국경침입으로 콘스탄티누스는 337년 지금의 터키 지역의 비잔티움(콘스탄티노플)로 수도를 옮기고 그 아들들이 동. 서로마의 2개의 나라로 나누어 통치를 하게 된다. 4세기가 되자 신비의 아시아 기마민족 훈족의 유럽 출현으로 유발된 이민족의 침입이 이어졌다. 브리튼은 앵글족·색슨족·주트족에게 넘어갔고, 스페인(히스파니아)는 수에비족·서고트족이 왕국을 건설했고 반달족, 부르고뉴족, 동고트족,알레마니족, 프랑크 족의 침입이 계속 되던 중 475년 게르만 출신 용병 오도아케르 장군이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 황제를 폐위하고 스스로를 왕으로 선포함으로써 서로마 제국은 막을 내렸다. 한편 동로마의 황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