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00약속시간이 지난지 한참이 지나서야 나타난 한 친구는 심각한 표정으로 늦은 이유에 대해서 설명을 한다.“집에 일이 생겨서 말이야”기다림에 지쳐버려서 나타나기만 하면 화를 내줘야지 라고 다짐하고 있던 상대방은“아 그렇구나..”라며 내야겠다던 화는 어디로 가고 어쩔 수 없음을 표하고 만다.그 사람이 말한 집이라는 것은 어떤 이유가 되기에 사람을 관대하게 만드는 것일까. 그것은 집의 중요성이 분명 약속보다도 더 중요함을 내포하고 있음이 모두의 기본적 사고에 바탕되어있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나중에야 조심스럽게 무슨일이냐며 물게 될 수도 있지만, 그 자리에서 선뜻, 집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 다짜고짜 캐물어내지 않는것은 ‘집’이란 단어 자체에 그 사람의 프라이버시 개인적인 사생활이 담겨 있음을 인식하고 있음이 아닐까. 또한 그 사람이 말한 ‘집’ 이란 것에서 우리는 두 가지를 상상할 수가 있다. 정말로 물리적인 그 사람이 살고 있는 집에 대해서 말하는 것일 수도 있고, 집안 가족 관계의 집안일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전자의 경우 도둑이 들었다거나, 가스가 망가졌다거나 이런 종류의 일이 생겼을 수도 있는 일이고, 후자의 경우는 선뜻 가족관계간의 문제라던가 가족중 한사람의 이야기에 대한 가정 내부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물질적 또는 추상적이라는 차이점은 있지만 어찌되었던 우리는 그 두 가지를 합쳐서 집이라고 이야기 한다. 그 외에는 앞서 말한 중요성과 가치성 그리고 프라이버시를 내포하고 있음은 모두 공통된 사실이다. 비유하자면, 우리가 흰자와 노른자를 담고 있는 계란껍질을 모두 합쳐서 그저 계란이라고 부르듯이 말이다.집이란? 01본론에 들어가기 앞서 ‘집’ 이란 것의 일상적인 인식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그럼 이제 일상적이지 않은 ‘집’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가보도록 하자. 집이란 것은, 인간이 가지는 기본적 세가지 의?식?주 중의 하나이다. 우리는 사람이 이 세가지 중의 하나라도 잃게 되면 인간으로서의 제대로 수행능력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신이 잘생겼는지 못생겼는지를 판단할 수도 없다. 우리는 사회속에 살아가기 때문에 남과 나는, 남과 나의 차이점과 비교 경쟁으로부터 시작한다. 남을 통해 비로소 자신을 되돌아 볼 수가 있어지고, 남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자아는 형성되어 간다.그리고 집은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 맞이하는 1차적 사회라고 한다. 한 생명으로 태어나서 가장 처음 마주대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 그리고 새로운 가정을 이루고, 죽는 날까지 자신이 소속된 가장 1차적 사회. 그것이 바로 주거이다. 우리는 사회에 나가기 이전에 주거사회에서 사람으로서 기본 속성을 배운다. 엄마 라는 말을 익히고, 걸음마를 시작하여, 숟가락질을 하고 젓가락질을 하는 것을 배우는 것처럼. 부모님께 갖춰야할 예절, 형제지간의 예절, 웃어른에 대한 예절 등을 공동생활을 통하여 배운다. 잘못을 저질렀을 때에는 회초리를 통해 그것이 잘못된 것을 깨닫게 되는 곳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사람으로서 해야할 기본 도리를 배운다. 1920년, 외국에서 늑대가 키운 두명의 소녀가 발견된 적이 있었다. 그 소녀들은 교육자들과 목사부부에 의해서 따뜻한 가정으로 옮겨져 새로운 인간사회 생활을 시작했으나, 일년만에 죽고 만다. 2001년도에도, 개가 젖을 먹여 키운 11살 소년이 발견되어 화제가 된적이 있었다. 소년은 늑대들과 ‘가족’을 이루어서 늑대의 젖을 먹고 자라나고 있었다. 소년은 인간사회로 옮겨졌지만, 끝내 정신병원에 가고 말았다. 위의 기사들에서 사람에게 있어서 가정에서 배우는 사회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가 있다. 전자의 기사에서 말한 두 소녀들은 1년간의 가족생활을 통해서 단어 45개와 포크질 하는 법만을 배웠다. 이미 두 소녀들은, 어떤 학습과정으로도 어릴적 가정에서 배워야할 기본 사회성을 배우지 못하였기 때문에 인간으로서 사회에 적응할 수가 없어져 버린 것이다. 후자의 소년의 별명은 개소년이었다. 소년이 개 가정에서 배웠던 것은, 암캐의 젖을 물고 쓰레기통을 뒤져서 식사를 하고, 사나움 뿐이었다. 옛 동화 미운오리새끼에서 거주란 보호가 이루어지는 공간이며, 그런 공간을 통해서 인간은 본연의 근원을 형성해 나간다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사람은 자신만의 공간 안에서 자신의 본질을 깨닫는 다는 말인데, 예를 들어 회사에 취업한 신입사원들 사이에서 이런 말을 한다. 인턴이나 연수과정을 거친 후, 부서 내에 ‘자기 자리가 생겼다’ ‘내 자리가 생겼다’라고 말을 한다. 이 것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잘 알수 있는 기분이겠지만, 회사라는 조직에서 내가 할 일이 생겼다 라는 것이고, 그런 역할을 수행해내기 위해서 나의 위치 뿐 아니라 장소적 위치로서도 나의 조직 내의 본질을 일깨워준다. 사람에게 있어서 자기 공간이란 것은 묘한 소속감을 가지게 한다. 개인적으로도 2학년이 되어서 설계실에 처음으로 자기 자리를 배정받았을 때의 그 기분이 생각난다. 대학이라는 커다란 조직사회에서 내 자리가 생겼다는 것은 어떤 소속감 뿐만 아니라, 1평도 안되는 공간이지만 캠퍼스 내의 내 영역은 나를 공부하고 있는 학생으로서, 본연의 위치를 깨닫게 해주었다. 집에 형제 자매가 많은 사람이라면, 주거지 내에서 내 방이 생겼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을 주는지 알것이다. 어릴적 초등학교때, 친구가 “어제 우리집 이사했는데 내방이 생겼어!” 라고 뛰어오를듯이 기뻐하는 모습을 종종 본적이 있다. 공간은 사람에게 안정감 또한 준다. 하루 이틀 그리고 몇 달 시간이 흘러가면서, 나의 장소에 내가 가진 사물과 기억들까지 하나하나 더해가면서, 나의 장소는 나와 끊을수 없는 관계적 의미를 가진다. 공간에 행위까지 이루어져서, 안정감에 익숙함 까지 더해진 장소는 나라는 존재에게 휴식감까지 준다. 나조차도, 나의 주거 그중에서도 내 방은 특히나 주거 안에서 나의 가장 본원적 근원지이고, 근원지로서의 내게 주는 의미 또한 크다. 밖이라는 생활을 통해서 여러 사람을 부대끼고 사회라는 공동체 중의 일부로서 행위하던 내게 주거의 공간은 그중에서도 나의 공간은 지친 내게 휴식을 주는 공간이다. 이제부터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고, 다면 더할나위 없다.철학자란 어떤 직업인가. 그러고 보니 우리는 철학자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잘 모른다. 내가 생각하는 철학자란 삶을 고찰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인생과 인간의 근원적 존재론에 대하여 고찰하는 사람. 사전적 정의로 철학자란, 철학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철학이란 뭐길래. 철학의 사전적 정의는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근본 원리와 삶의 본질 따위를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한다. 우리는 철학자의 인간행태에 대하여 알지 못한다. 그가 어디로 출근을 하며, 어떤 행위를 통해서 수입을 얻고 어떤 업무를 하는지 알지 못하는 흔하지 않은 직업이다. 다만, 우리는 한가지쯤은 예상할 수 있다. 그 사람이 상당히 생각이 많고, 심오한 사람일 거라는 것쯤은. 그렇다면 생각이 많은 사람에겐, 생각하는 공간이 필요하겠다고 생각을 했다. 나는 아무것도 없는 큰 방을 그리고 생각하는 작업실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 방 한가운데에 책상을 하나 그렸다. 그리고 그 앞에 오랜 시간을 앉아도 불편하지 않을 큰 의자를 하나 그렸다. 가만 뚫어져라 보다보니, 어느 수험생의 방과도 다를게 없다. 누가 이 방을 보고 철학자의 집이라고 떠올릴 것인가. 불현듯, 철학자란 인간세계에 대한 근본 원리를 따지는 사람이니깐 인간세계를 보면서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창문을 그려 넣었다. 아주 커다란 창문을 통하여 지나가는 사람과 창밖의 나무에 꽃이 피고 지는 것을 바라 볼 수 있도록 하였다. 하루종일 의자에 앉아서 창밖으로 지나가는 사람을 구경하는 철학자를 상상했다. 생각해보니, 철학자는 본인의 존재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시선으로 바라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그의 책상앞에 탁상 거울을 하나 놓았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철학자의 집이라고 할수 있을까. 나는 결국 종이를 구겨 버리고 새로운 종이를 꺼내들었다.인하대의 철학과 김진석 교수는 철학자를 더러운 직업이라고 말하였다. 「더러운 현장에 깨끗한 원칙의 옷을 입고 오는 사람은, 은유적 차원에서 현장을 ‘더럽히는’게 아닐까. 그정도는 아니라크산티페의 이야기. 소크라테스의 아들도 어머니의 잔소리는 누구도 참기 어렵다고 실토하고 있고 안티테네스도 크산티페가 과거, 미래를 통틀어 가장 시끄러운 여자였다고 평론 하는 것을 보니, 과장 일지도 몰라도 없는 사실은 아니리라. 그리고 개인적으로 여자의 입장에서 왠지 크산티페의 입장도 제법 이해가 간다. 본연의 업무인 석공일도 하지 않은 채 동네 청년들을 일깨우고 있었는 소크라테스는, 가족을 위하여 빵과 생선을 구하러 동분서주하던 크산티페의 눈에 그저 동네 노는 건달 즈음으로 여겨지지 않았을까. 그러니 크산티페가 “너 자신을 알라”고 절규하는 그를 보며 얼마나 제 주제에 맞는 소리인가 하고 분개했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니체는 크산티페야말로 소크라테스가 필요로 했던 여성이며 그녀가 비록 의도하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로 하여금 자신의 고유한 천직에 더욱더 매진하도록 기여했다고 주장한다. 그녀가 계속 질책을 퍼부어 평화롭지 못한 가정에서 그를 광장으로 내보어 철학의 완성을 이루도록 했다는 것이다. 악처가 철학자를 완성시켰다라..나는 종이위에 잔소리가 심한 악처를 그려내었다. 배고픈 가정에 자식이 울어도 나몰라라 등돌 리가 담배를 곱게 피우는 철학자를 그려내었다. 가만 보다보니 이건 한편의 꽁트 삽화일 뿐이었다. 나는 다시 종이를 구겨 버리고 만다.가만 생각을 통하여 묻는다. 철학자는 우리와 무엇이 다른가 하고. 철학자란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다. 특별한 기술과 특별한 장비를 통하여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고, 그는 우리보다 좀더 깊이 있고 심도 있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다. 인간이 가진 사유와 존재론적 모든 형상에 대해 그는 깊이 생각한다. 남보다 깊이 생각한다. 그게 그사람의 특징인것이다. 고로, 철학자의 집은 특별하지 않다. 잔소리가 심한 아내는 어느 집이나 모두 있는 법이다. 생각할 수 있는 책상이 놓인 방은 어느 주거에나 모두 있다. 우리는 시작부터 오류를 범했다. 철학자의 집은 특별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철학자의 집은 다르지 않았다. 그도 한사람의
Pai Chai University - College of ArtArchitect Jo Byung SooCONTENTS1. SYNIPSIS ....... 3 p2. ARCHITECT .......3. ANALYSIS(1) 형태(입면) ......(2) 평면 체계 .......(3) 단면 체계 .......(4) 재료 .......4. CONCLUSION......1. SYNOPSIS건물명배재대 예술관대지위치대전광역시 서구 도마들 439-6번지외 25필지지역 ? 지구자연 늑지지구외 1건, 최고고도지구(20m)도로남측 :11m 도로 / 서측 : 5m 도로용도교육연구시설대지면적203,499.20㎡ (63,071.01평)가상대지면적5866.75㎡ (1,774.69 평)건축면적3,971.3m2지상층 연면적9,958.6m2 (3,012.5평)연면적9,958.6m2 (3,012.5평)건폐율67.7 %용적률169.7%규모지상 5층최고 높이15.70 m (구조철근콘크리트조조경기존 조경며적 + 추가 신설면적주차교통영향 평가 실의필에 의거 22로 작업을 이끌고 가고 있으며 미국 몬태 나 주립대학교 건축과에서 객원교수로동양사상과 건축이라는 강좌를 개설하여한국 및 동양을 소개하며 설계 수업 진행미국 건축사.2. ARCHITECTOther project etc.파주 어유지 동산 ,카메라타 황인용 음악 스튜디오, 숲 언덕 주택 배재대학교 예술관신사동 램프 빌딩, 종로구 서미갤러리 등의 project들이 있으며 특히 예술관은 미국 건축전문저널인 ‘ArchitecturalRecord'사의 2004년 세계11대건축에 선정돼 소개됐다.3. ANALYSIS(1) 형태(입면)전체적으로 볼때, 예술관의 볼륨은 주어진 대지의 형상 그대로 채워져 있다. 대지가 가지는 부드러운 곡선의 형태가 그대로 솔리드하게 채워지고, 솔리드한 매스는 필로티에 의하여 3층정도 높이에 들어올려져 있는데, 그 형상이 마치 그랜드 피아노와 유사한 형태를 하고 있다.그리고 그 매스는 각기 비 규칙적으로 보이는 틈에 의하여 나눠지는데, 그 틈도 크게 매스의 틈과 창의 틈으로 나눠진다. 매스의 틈은 복도와 램프, 계단 등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매스의 분절감이 들정도의 느낌은 아니다. 그리고 또한 이 예술관의 특징되어버린 창의 불규칙한 틈들은, 그랜드 피아노를 닮은 예술관은 ‘건반’ 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이다. 자칫 재료의 특성상 무거워 보이는 매스에 세로로 긴 창들은 채움과 비움을 대조하여 보여줌으로써 매스의 무게를 줄여준다. 이 창들은 나중에 내부에서 또한 크게 반영이 된다. 창은 단지 창으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부의 볼륨들과 관계한다고 생각한다. 복도를 바라봤을때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의 그림자는 복도에서 리듬감이 느껴졌다. 창의 폭이 좁아서 시야의 폭이 좁아 보일 수 있지만, 불편할 정도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또한 다른 부분들은 특히나 그렇지 않은데, 대지의 밖에서 정면을 바라보았을때, 필로티 된 부분의 Y자 기둥은 왜 굳이 Y자 모양이었을까. 다른 매체에서는 이 Y자 모양의 기둥이 산과 접해 있는 대지의 특성상 나무의 느낌을 준다고 술이라는 범주 안에서 함께 묶어 볼 수 있다. 예술관은 이 세 개의 서로 다른 학부들에게 공평하게 주어진다고 보여 진다. 음악은 디자인에서부터 보여지는 피아노 건반 그리고 창문의 리듬감, 미술은 전체적인 조형성에서부터 시작하여 잠시후에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디테일한 색상의 사용들. 그리고 색색깔의 타일로 이루어진 매스라던가, 디테일한 부분에서 잊지 않고 반영이 되며 이러한 것들은 또다시 건축이라는 물질적 매개체 안의 범주로 보여지기 때문에 참 공평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평면의 구성에 있어서도 각 학부는 각기 다른 세션에 분리 되지만, 학생들은 건물을 이동하면서, 내부 중정 데크를 통하여 서로 혼합된다. 그들은 건축인이, 음악인이, 미술인이 아니라. 예술인 이라고 건물은 얘기해주고 있다.Design Process(2) 평면처음 예술관을 접했을때는 예술관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취하지 않은 상태였다. 개인적으로 답사를 할때는 두가지 경우가 있는데, 알고 가는 경우와 모르고 가는 경우이다. 처음 건물을 대할 땐 나는 늘 모르고 답사하기를 좋아한다. 다른 이의 평가 되어진 요소들이 아닌 내 스스로 느끼고 평가 한 뒤 다른 이들의 평가와 비교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알고 갈경우는 중요하다고 평가된 몇 개의 부분만 보고 오는 경우가 생기는데, 모르고 갈 경우는 구석구석 아주 작은 디테일까지 쳐다 보게 된다. 가끔 단점은, 미세한 부분을 보다가 중요한 부분을 놓치고 올 때도 있다. 여하튼 이러한 경유로 나는 ‘잘 모르고’ 배재대 예술관에 들어갔다. 그리곤 이내 길을 잃고 말았다. 특히나 층 개념에 대해선 완전 무지해지고 말았다. 분명 나는 1층으로 진입을 했으나, 그곳이 1층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구분 할 수 있는건 내 위치가 건물의 내부인지 외부인지 고작 이정도 였다. 어디서부터 1층을 규정해야 할지 모르니깐, 내가 있는 이곳이 몇 층을 올라왔는지 모르겠다. 또한 건물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보니, 내가 몇 층을 올라왔었는지가 점점 헷갈리께 어느 길로 가야 빠른 길인지를 아직도 친구들과 이야기 한다고 했다. 정해진 수직코어가 없기 때문에 이용자는 더 그렇게 느꼈을수 있다고 생각한다. 답사를 하는 동안 나는 ‘처음’ 건물을 접했기 때문에 헤매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미 그 이용객들은 그 동선의 복잡함에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건물의 속성이 “예술대” 이기 때문에 용서할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하면 너무 긍정적인 평가인지도 모르겠다.1F1층의 주차계획을 보다보면 앞서 말한 1층이 1층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나의 경험이 이해가 갈것이라고 생각한다. 배재대 정문을 통과하여 11m 주도로를 통해 길게 올라오다 보면 오른편에 위치한 예술관은 필로티로 높이 띄어져 있는 하부를 주차장으로 이용하고 있다. 차량은 장애인 차량을 포함하여 22대의 자동차를 주차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대지 자체가 산자락에 위치하고 있으며 경사를 깎아들어가는 계획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준층을 어디로 두느냐의 문제가 생겨버린것이다. 물론 주 진입은 차량이 들어가는 도로를 통하기 때문에 기준층은 1층이지만, 내부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1층은 지하같은 느낌을 준다. 고로 내부 중정의 2층 데크를 건축가는 기준층으로 여겨지도록 의도했던것 같다. 사실상 건물의 1층보다는 윗층을 많이 더 많이 쓰게 되는 이용자의 입장에서는 내부 중정이 레벨 업 되었다는것은 내부 중정으로서의 긴밀성이 높아지는 것을 의미한다.예술관의 전체적인 평면은 볼륨에서 파악할 수 있듯이 세 개의 다른 학부들이 사용하는 한 개의 매스가 틈을 이용하여 분리되어 이루어져 있는데 이러한 틈을 기준으로하고 매스를 분리하는 원칙은 각 세 개의 매스를 연결하는 계단과 램프 즉 수직적으로 예술관을 이동할 수 있는 연결 매개체로 나누어지게 된다. 이렇듯 예술관 입면에서도 상부로 돌출되어 보이고 있는 세 개의 계단실은 분리되어진 예술관의 매스를 연결해주는 매개체가 된다.우리가 예술관을 들어가기에 앞서 그 부드러운 곡선미를 보았다면 한가지 우려되는 걱정이 있다. 내역이 특징적으로 보인다. 중정을 둘러싼 부분은 모두 커튼월 처리가 되어있기 때문에, 내부로의 소통성은 상당히 높다. 또한 평면의 구성또한 각 속성에 따라 분절된 매스로 학생들이 흩어진다면 중정은 그다음으로 모이는 공간이다. 또는 모였다가 흩어지는 공간이다. 시작점이자 끝점이 되고 가장 유동성이 강하며 가장 공적인 커뮤니티요소가 가장 강한 공간이다.재미있는 공간이다. 떠한 상황에도 유동적으로 반응할수 이는 공간으로 때로는 공연장으로서 때로는 휴게실로서 만남의 장소로서 그렇게 이용될수 있는 공간이다.이렇게 2층과 3층의 개인 음악연습실들이 즐비하여 있다. 배재대 뿐 아니라 다른 어느 대학의 음악연습실과 마찬가지로 작은 유닛들이 즐비한 이공간은, 방음과 차단과 그리고 좁은 공간을 답답하지 않게 하는 오픈이 주요 관건이라고 생각하는데, 창의 사용도 그러하며 문의 색채사용은 답답 할 수 있는 연습실을 활동적으로 바꾸어놓았다.그리고 4층과 5층은 내가 가장 많이 헤맸던 부분이다. 어쩌면 4,5층이 복층으로 쓰인다고 생각되는 이 두 층은 일단 다른층에 비해 평면이 가장 복잡하다. 4층의 음악학부는 음악 감상실, 교수 연구실, 강의실, 도서실 음악학과 사무실, 예술대학장실, 컴퓨터 음악실, 세미나실로 구성되어있고. 미술학부는 한국화실, 자료실 사진실/암실, 미술학부 사무실, 자료보관실, 컴퓨터 자료실, 시각디자인실로 구성되어있다. 건축학부는 건축과 교수연구실, 건축학과 사무실, 캐드연습실, 실내건축 실기실이 배치되어있다. 이렇듯 다양한 실들이 각기 다른 세 분류안에서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복잡할 수도 있는데, 직선과 곡선의 벽면 사용은 동선을 참 잘 이끌어 주고 있다. 때론 답답할 수 있던 공간들은, 윗층과 복층 사용으로 인하여 시각적 개방감을 안겨주었다.(4) 단면체계앞서 나의 경험에서 말했듯이, 이곳은 몇층인지를 잘 모르게 한다. 레벨의 혼란을 준다. 그나마 4,5층은 분리가 되어 있지만 4,5층 안에서 조차 오르내리는 일이 많고 이미 층에 대한 개념을 잃은채 건물을 겪.
건축물의 창의 상세표현1. Project Analysis >오피스 빌딩의 기준층의 창의 표현 관찰.건축물에 있어서의 창이라는 것은, 건물축물의 가장 외피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내부 벽체 안에 창을 두는 경우는 흔치 않다. 고로 창이라는 것은 건축물의 외부에 설치되면서, 창밖에서 이루어지는 햇빛이라던가, 경치 풍경을 내부로 끌어들이기 위함이다. 또한 외부에서 보았을때 창이라는 것은 외벽안에 쌓여진 건물 내부를 들여다 볼수 있는, 건물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을 외부로 표출시키기 좋은 하나의 방도라고 생각한다.현재 우리나라에 우후죽순 지어지는 오피스 건물들을 보면 문득 그런생각이 든다. 왜 오피스들은 하나같이 커튼월을 선호하는 것일까? 사실 사무실이라는 곳은 창이 있다하더라도 창을 볼 여력도 없거니와, 오피스 빌딩이 위치하고 있는 곳이 특히나 그렇기 때문에 창밖을 볼일도 없고, 낮이면 쏟아지는 햇빛에 모니터 가 반사되어 잘 보이지 않는다거나, 정말 밝은 낮이어도 형광등 한번 꺼질일 없는 곳이 오피스 란 공간인데, 왜 오피스들은 하나같이 커튼월 소재로 짓는걸까. 사회적 흐름의 분위기가 마치 반짝반짝한 느낌을 주는 최첨단 공법의 커튼월 소재의 건축물은 오피스를 분양했을때 인식도가 굉장히 선호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오피스도 상업적인 목적을 위해서 지어지는 건물이기 때문에 그런 이유만으로도 굉장히 합당할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외에도 커튼월과 오피스의 만남의 이유는 더 많았다. 사회는 회사가 직원에게 얼마나 많은 복지를 안겨주느냐 얼마나 좋은 근무환경을 제공하느냐가 회사의 능력을 좌우 한다. 그렇기 때문에 창 이라는 것의 존재가 인간에게 주는 편안함 때문에, 창이 많은 업무 환경은 보다 답답한 업무 환경에 트인 시야를 제공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커튼월 소재의 건축물은 초기 시공비가 많이 들어서 그렇지 운영에 있어서는 효율적인 에너지 시스템을 제공한다고 배웠다.그래서 이번 과제를 기회삼아 오피스와 커튼월의 관계에 대해서 좀더 알아볼 려고 한다.하여 건축물 두곳을 선정함에 있어서, 일단 먼저 본 적이 있는 건물안에서 추렸다. 건축물에 대한 나의 선경험이 있지 않으면 정보에 의한 선입견으로만 건물을 평가할 수 있기 때문에 먼저 본적이 있는 건축물에서 선정하였다. 언젠가 동아미디어 센터를 보면서 느꼈던 생각은 저 건물 참 투명하다 였다. 반면 동부금융센터는 저건물 참 단단하다 싶었다. 사소한 감상과 이유이지만, 본격적으로 두 건물에 비교평가 하고 싶은 이유가 되었고, 이제부터 같은 커튼월 소재를 이용한 두 오피스 건물이 비교점 들에 대하여 좀더 알아보고자 한다.2. 개요동아 미디어 센터건물명동부금융센터종로구서린동159-1외필지1위치서울시 강남구 대치동 891-1번지외8필지일반상업지역,재개발지구,주차장정비지구,1-2종미관지역지구일반상업지역, 도시설계지구, 1종미관지구1670.70M2대지면적3351.70 M2 (1031.89평)23215.14M2연면적1298.24 m251.25%건폐율38.73%1029.185%용적률1101.34%지하5층,지상21층규모지하 7층, 지상 35층철골콘크리트조구조철골조알루미늄복합판넬, THK18투명복층유리외장재료커튼월자주식 93대주차대수320대102.98m최고높이152.05m배치도본 건물의 대지는 종로 일대의 재개발 지구 중 한곳으로 남다른 역사적 의미를 지닌 곳이다. 특히 근대 초기의 건축을 상징적으로 대변하는 일민 문화관과 연계하여 현대적 이미지를 갖는 건물을 계획함으로써 과거와 현재가 교류할 수 있는 건물이 되기를 의도하였다. 이러한 대지가 지니는 특별한 역사성을 고려하여 광화문 일대의 새로운 랜드 마크로 작용하도록 해야 하는 요구조건과 함께 현대적 이미지의 합리적 기능을 수행해야 하는 요구조건이 제시되었다.배치계획동부증권 사옥은 서울시내의 강력한 시각적 랜드마크로 계획되었다. 이 26층짜리 빌딩은 삼성동 교차로의 포스코센터에 인접한 테헤란로 남쪽 3350평방미터의터에 위치한다. 이건물은 테헤란로를 정면으로 향하고 주변의 건물들과 융합하여, 일치된 거리의 벽면을 구성한다. 도 이건물은 거리의 벽면과 동쪽 포스코 센터의 오픈광장을 하나의 도시구성요소로 묶어주면서, 둘사이의 매개체 역할을 한다. 보다 적극적으로 건물매스를 통합하고 북동쪽 코너의 스케일을 줄임으로서 빌딩으로의 주접근을 향한 제스처를 만들어내며, 도로와 주변광자으로부터 건물로 들어오는 주요입구를 이루도록 해준다. 건물의 진입은 아래쪽의 조각정원 위로 놓여진 가늘고 팽팽한 브리지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외부에서 복층의 로비공간으로의 통과는 파사드를 관통하면서 빌딩으로의 진입을 가이드하는 빛나는 글래스월에 의해 프레임 지어진다.기준층평면외부 입면은 올 커튼월 (all curtain wall)로 1층 부분은 아트리움 쪽의 SPG공법과 4-side ssg로 처리하였으며, 2,3,4,층 부분은 일정한 모듈의 2-side ssg로처리하고 수평방햐으이 보가 돌출되도록 하였다. 5층이상에서 역시수평선을 강조하기 위해 썬쉐이드(sun-shade) 수평의 루버를 설치하도록 하였다.입면계획건물의 외형은 교차되고 기울어지고 포개진 형태들의 역동적인 상호작용으로 구성된다. 테헤란로를 따라 걷는 사람에게 건물의 외관 디자인은 두 개의 각기 다른 모습으로 보여진다. 건물의 정면이나 후면에서 보면 건물은 공간을 관통하는 조각된 매스들의 구성처럼 보인다. 하지만 측면에서 보면 투명막으로 연결된 역동적 사선구조의 평면구성으로 보인다. 이같은 다른 모습들은 건물에 쓰인 서로 다른 타입의 커튼월에 의해 증대되어 진다. 정면이나 후면의 커튼월은 chacha하게 튀어나온 물리온과 부드러운 반사면의 색유리창이다 바깥쪽에서 보면 이것은 벽면을 통합하고 건물의 볼륨을 강조해주는 반투명의 외관을 만들어 낸다. 이표현은 측면에서는 사선 파사드의 가장자리를 드러내는 모습으로 바뀐다. 이러한 평면들 사이의 공간의 개방성은 내부사용자들의 편안함을 보장하면서 동시에 완전한 투명성을 허용하는 “더블월” 구조의 사용으로 얻어졌다.올 커튼월 all curtain wallSPG 공법, 4-side SSG2,3,4층의 2-side SSG사용공법더블월 구조반사감과 칼라감이 적은 투명 유리유리전면부와 후면부는 반사재질의 남색빛유리양 측면은 남색빛유리의 보다 투명한 소재알루미늄 루버로, 흰색빛깔이 난다.창호색상은색 스틸수직 수평 모두 같은 재질의 알루미늄 샷시 이나 수평 프레임은 루버로 돌출 되어있으나 수직 프레임은 유리에 같은 레벨로 위치하기 때문에 비교적 수직 프레임의 강조가 덜함.샷시스틸 루버로 이루어지며 수직 샷시는 유리보다 셋백되어 잘 보이지 않음.건물의 정면부는 남쪽을 향하고 있고주출이구는 남서쪽에 위치하고 있다.향정면부는 북서쪽을 향하고 있고주출입구는 북동쪽에 위치하고 있다.남서쪽에 위치한 세종 문화회관 또는 시청앞에서 이루어지는 각종 행사들 그리고 대로변의 차량 소음으로 인하여 소음의 피해가 크다. 커튼월 창문을 거의 열지 않을 것이다.소음정면 북서쪽의 테헤란로에서 일어나는 차량 소음이 가장 심한데, 창문을 열어두는 곳이 몇곳 되지 않아 소음의 피해는 적을 듯 싶다.건물의 매스 자체가 굉장히 얇은 편이다. 이를 효과적으로 이용하기 위하여 수평프레임을 강조하였고, 수평프레임 또한 루버의 다양함을 줌으로써 지루하지 않은 수평선을 만들어 주었다. 동아미디어센터의 미적 표현이 잘 이루어진 부분은 주출입구의 원형공간을 얼마나 적극적으로 활용했냐에서 보여진다. 로비는 지상 4층까지 뚤려있어서 좁은 공간이지만 비교적 시원하게 느껴질수 있고 건물의 평면 또한 원형로비와 잘 어울러지는 곡선형을 띄고 있고, 이를 잘 표현해주기 위한 썬쉐이드 수평루버가 건물의 이미지를 가장 적절하게 마무리지어주고 있다. 썬쉐이드의 수평루버의 디테일의 반복은 건물의 최종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크게 기여한다.
도시설계-대학로 계획-| 동승동 - 대학로지난 달에, 경상도에 살던 친구가 서울에 올라와서 내게 '서울구경'을 부탁한적이 있다. 막상 서울 구경을 떠나려했더니 딱히 떠오르는 곳이 없었다. 요즘은 서울 뿐아니라 지방 도시들도 왠만한 수도권 도시들만큼 잘 발달되어 있는데 서울이라고 특별할 곳이 뭐 있겠느냐 싶어 친구에게 가고싶은 곳이 있는지를 물어보았다. 그러자 친구는 "대학로"에 꼭 가고 싶다고 했다."대학로?"우리는 대학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동승동, 혜화역, 문화, 예술, 연극, 공연 등. 청춘이 만연한 거리 대학로. 처음 서울촌놈인 나로서는 명동이나 동대문이 아닌, '대학로'가 왜 더 가고 싶은지 이해하지 못했다. 지방엔 문화 공연 시설이 거의 없다는 것과 그런 행사가 자주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얘기를 듣고 나니 뒤늦게 이해가 갔다.이제 대학로의 이미지는 누구에게나 그렇게 자리 잡았다. 문화 예술의 거리.내가 처음 대학로를 방문했던 것은, 고등학교 처음 연극을 보기 위해서다. 그때의 대학로의 느낌을 나는 아직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처음 지하철에서 내려서 내가 본 것은 붉은 벽돌의 도시였다. 지나치게 새것도 아니었고 지나치게 오래된 벽돌이 아닌, 마른 먼지가 잔뜩 낀 붉은 벽돌의 동네. 영화 표를 구매해서, 작은 소극장을 찾다가 길을 잃기도 했다. 내게 대학로는 붉고 작은 길로 복잡한 동네였다.동숭동의 대학로는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의 전신이었던 경성제국대학이 있던 장소다. 지금도 남아있는 문예진흥원 청사는 최초의 근대적인 한국인 건축가 박길룡이 설계한 경성제대 본관으로 당시의 건축적 흔적이다. 1970년대 중반, 서울문리대가 관악산 캠퍼스로 이전하면서 대학부지는 단독주택지로 쪼개져 분양되었고, 본관을 포함한 중심지역만 공공문화지역으로 지정되어 현재의 '마로니에 광장'이 되었다. 문예진흥원 청사와 미술회관, 문예극장- 김수근이 설계한 3 건물이 둘러싸고 있는 공원의 또 다른이름이다. 나머지 지역은 모두 개별 자본의 처분에 맡겨진채 불과 20년 동안 급속하게 변화되는 건축물들의 진열장이 되어왔다.70년대 말에 '문화예술'의 장소로 시작한 이 지역은 80년대와 90년대를 지나면서 '대중문화'의 장소로, 그리고 '소비와 상업'의 장소로 탈바꿈하고 있다. 건축물의 변화는 더욱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70년대 말까지는 원래 조성목적에 충실하게 상류층의 단독주택들이 도시조직을 이룬 가운데, 문예진흥원의 세건물 외에는 아키반 사옥(김석철) 이나 토탈디자인 사옥(문신규) 정도가 예외였을 정도였다. 대학로변에는 샘터사옥(김수근)과 해외개발공사(김수근)이 자리잡아 김수근 풍의 붉은 벽돌집이 아니면 이 지역에 입주할 자격이 없는듯했다. 예의 토탈사옥이나 오감도 등이 충실히 이 도시의 재료 규범을 따랐고, 아예 전돌사 라는 벽돌회사 건물이 자리잡았을 정도다. 서울시는 약1km정도의 구간인 대학로변을 문화예술낭만의 거리로 지정하였다.이제 대학로는 예술과 소비의 두 기로에 사이에서 긴장감을 이룬 채 존재하고 있다. 문화 예술시장의 불황으로 정체기를 겪었던 대학로는, 그러나 소비의 목적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고정된 소비자들이 붐비기 떄문에 다시 문화예술의 정체성 회복은 어렵지 않은 길이라고 본다.|| GOOD드디어 주말이다. 일주일의 고된 피곤함을 뒤로 하고, 주말의 달콤한 휴식을 맛보기 위하여 친구들과 약속을 잡는다. 대학로에서 친구들을 만나서 밥을 먹고 연극이나 한편 봐볼까.생각만해도 사람이 북적북적 댈 것이 상상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대학로에서 만나기로 약속한다. 왜냐면 대학로는, 그게 매력이기 때문이다.초기 동승동은, 서울대학교 부지가 이전을 하고 나서 주택부지로 사용되었다. 아주 작은 모듈의 대지 형태와 크기들, 주거지를 위한 작은 골목들 까지. 70년년대 말, 주거지로 사용되던 동승동에 문화 예술이 스며들어오기 시작했다. 김수근의 문예회관이 지어지던 그 시점부터 주택지에 살던 사람들은 점점 집을 팔고 타지로 떠나가버렸다. 동승동은 더 이상 조용한 동네가 아니다. 아직도 동승동 저 뒤쪽편에는 주거지로도 사용되고 있지만, 사실상 주거의 목적보다는 주거의 옷을 입은채 상업및 예술 활동을 하는 곳이 많아졌다.대학로의 특징은 이 점에서부터 시작한다. 주거지역에 문화 예술 및 상업시설이 스며들기 시작하면서 스케일의 이질감이 일어났다. 공연장을 넣기엔 무척이나 작은 건물이다. 이곳에 공연장이 있을 거라고 미처 생각조차 못했지만, 그곳엔 수십개의 소극장들이 즐비해 있다. 공연장이란, 대규모의 인원을 수용가능해야 하며, 여러 혼잡을 피하기 위하여 대기공간등의 여유분이 계획적으로 꼭 필요한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지하실 한켠을 개조한듯한 이곳의 공연장들은 그런 계획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행여나 화재라도 난다면 소방차가 들어가기도 비좁을뿐더러, 피난에도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는 작은 규모이다. 그러나 이런, 대학로의 단점이 곧 이 동네의 특징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대학로에 가면 아기자기한 작은 스케일의 건물과 골목길들을 발견할 수도 있다. 우리는 여지껏 본적없는 아주 작은 공간에서 공연을 볼 수 있다. 저멀리에서 눈코입의 형체라도 보인다면 좋은 자리라고 안심하며 보던 공연들과는 차이가 다르다. 배우의 눈빛과 땀방울 숨소리마저 함께 느낄수 있는 곳이 바로 대학로의 소극장들이다. 우리는 대학로에 가면 비좁다고 느끼지만, 이것은 대학로만의 매력이다. 골목 깊숙이 몇십년된 아줌마의 파전을 먹으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눌수 있을 것 같은 매력적인 장소가 되었다.이런 특징 때문에 대학로에 가면 길을 잃는다는것. 그것 또한 신선한 즐거움이다. 대학로엔 수십개의 소극장들이 있다. 우리는 대학로를 자주 찾으면서도 불구하고 소극장 하나를 찾을땐 소극장 전용 지도가 없으면 전혀 알지 못하고 길을 헤메게 된다. 처음 찾는 이에겐 불편할 수도 있지만, 이것은 새로운 묘미가 되고 말았다. 일종에 대학로는 한번 깊이 들어가볼만 하다. 그것이 매력이 되버린것이다. 스치는 동승로는 동승로가 아니다. 골목 구석 깊이 깊이 찾아서 다녀보지 않으면, 그것은 동승로를 가보았다고 할 수가 없는 것이다.그리고 그 중심에 마로니에 공원이 있다. [문예극장, 미술회관, 샘터사옥, 해외개발공사] 가 붉은 벽돌로 그 AREA를 영역짓고 있다. 그 중심의 마로니에 공원. 마로니에 공원이 더 가치가 있는 이유는 각종 이벤트 하기엔 더없이 좋은 장소 이기 때문이다.그리고 김수근. 아기자기 스케일의 이질감을 뒷받쳐줄 가장 최고의 아이템으로 붉은 벽돌이 선정되었다. 김수근의 스타일이라서 일수도 있지만, 이 대학로만큼 붉은 벽돌을 가장 아름답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도시도 없으리라. 아이템이 특성을 뒷받쳐준 덕분에, 대학로는 철저하게 특징적인 옷을 입게 되었다. 철저한 궁합이 딱 떨어졌고, 그 사이에 김수근이 있었다. 이제 대학로는 일종의 규칙이 되어버렸다. 마치 붉은 벽돌이 아니면 어떠것도 적응할수 없어보였다. 어떤이는 그곳에 새로운 시도를 도전하였고, 그것이 성공하는 모습도, 실패하는 모습도 우리는 여러 가지를 보아왔다. 그리고 이 규범을 순순히 따른 건물들은, 안정적 규범을 잘 따랐기 때문에 이질감없이 자리잡았다. 그것이 그리고 또 하나 대학로의 특징을 부가해주게 되었다.|| NOT GOOD도시계획에 있어서 오픈공간을 계획하고 실행하는데에 있어서 종종 잊혀지는 중요한 사회문제중 하나가 있다. 그것은 바로 HOMELESS. 노숙자들에 관한 이야기다.대학로는 마로니에공원을 중심축으로하여 다양한 문예활동이 이루어진다. 늘 각종 공연료를 받지 않는 무료 공연들이 야외에서 이벤트성으로 이루어지는 청춘의 열기의 중심이 되는 그 마로니에 공원의 다른 면모를 우리는 본적이 있으나 모르는척 하고 있는지 모른다.현재 마로니에 공원엔 일주일에 한번 이상씩 급식차가 온다. 마로니에는 사실상 독거노인들 뿐만 아니라 노숙자들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급식차가 오는 시간이 되면, 긴 행렬이 이어지고 그곳에서 각종 사회봉사활동이 이루어진다. 왜? 그곳은 오픈공간이기 때문이다. 인사동이건, 종로이건, 그 차이는 없다. 대학로라서 모인것 보다기 보다는 그곳이 마로니에"공원" 이라서 모인것이다. 그들에게 자유로운 주거지(?)를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재미교포 친구가 한국을 방문했을때, 대학로를 다녀와서 내게 이렇게 말했었다."이곳엔 HOMELESS가 너무 많아서 무서웠어요"그제서야 나는, 이곳 동승동에 노숙자가 많았었지 참.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매주 급식차 앞에 선 긴 행렬을 봤으면서도, 우리는 그것에 대해 눈여겨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사회약자이고 우리와 상관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재미교포의 친구의 말을 들은 이후로 나는 대학로에선 홈리스들만 보였다.건축가는 사회선구자적 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사소한 계획 디자인으로서 사회 선구자적이고자 하는 계획들은 많이들 생각해내면서도, 노숙자에 대한 정확한 해답을 찾는 이는 아직 없다. 서울역 정도 되야 노숙자의 심각함에 대해 언급이 되지만, 그렇다고 서울역의 노숙자들에 대한 정확한 해답이 나온것도 아니다.이것은 잠시 대학로를 떠나서 도시 계획시의 오픈공간에 대한 풀리지 않는 문제점에 대해서 언급을 한것이다.둘째로, 대학로에는 이른바 삐끼가 너무 많다. 이곳 동승동에는 각종 공연들이 수십차례 피고지는 꽃처럼 행해어진다. 사회적인 이유도 있기도 하지만, 예술분야가 대중에게 따뜻한 사랑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각종 예술분야들이 쓰러져 가고 있다. 서로 엄마 모이한번 먹겠다고 입벌리는 둥지안의 새끼 새들처럼. 그들에게는 자신들을 홍보할 기회가 필요하다. 우리 공연합니다. 우리 공연 재밌습니다. 우리 공연 보러와주세요.
04년 한여름 날의 도산서원06년 늦봄의 도산서원Ⅰ. 서론푸르른 나무가 우거지고, 옹기종기 작은 스케일의 장방형 공간들이 내 동선을 감싸 안는 그 아늑한 공간을 나는 잊지 못한다. 도산서원. 04년 여름에 동아리 사람들과 한여름에 그곳을 찾은 적이 있다. 땡볕에 모자를 썼지만 햇빛이 눈이 부셔서 인상을 찌푸리고 한손엔 노트를 연신 부채질 해가며 벌건 얼굴을 해가지고 돌아다니던 때였다. 그 시원한 아늑함과 새파란 모습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건축을 처음 접해서 떠난 답사였고, 그 전에 큰 규모의 절들을 보다가 만난 도산서원 인지라, 그 아늑함 스케일이, 그 편안함이 그 이후로도 머릿속에 떠나지 않았었다. 그래서, 한국 건축사 수업시간에 답사를 다녀와야 했을 때 그곳에 꼭 다시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수업을 핑계 삼아 나는 가고 싶었던 곳을 다시 갈 수 있었다. 더욱이 설계반 사람들과 답사겸 MT를 떠나게 되었는데, 나의 적극추천으로 같은 반 사람들과 도산서원을 둘러볼 수 있게 되었다. 그때는 고작 1학년때여서, 아무것도 모르고 떠났지만, 나름 3학년이 된 지금 다시 찾은 그곳을 나는 얼마나 제대로 볼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나는 답사를 떠났다.Ⅱ. 본론1. 개요도산서원 : 사적 제 170호위치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산 61특징 : 서원 양식을 정립한 최초의 서원퇴계 이황(1501~1570) 선생이 1557년(명종 12년) 도산서당과 농운정사를 짓던 도중 1558년 8월 나라의 부름을 받아 서울로 올라가면서 건물의 설계도 옥사도자한부를 벗 이문량에게 주면서 중 법련을 시켜 마무리하게 했다. 그러나 법련이 갑자기 죽고 정일이라는 중이 계속 일을 맞아 1561년(명종 16년), 이를 완성하였다. 그 후 제자 정사성이 입학할 때 그의 아버지가 역락서재를 지어주었다. 여기에 하고직사가 덧붙여진 것이 도산서당의 모습이다.1570년 퇴계가 세상을 떠나고 3년상이 지나자 제자들은 선생을 모실 사당과 서원을 짓기로 결정해서 사후 4년인 1574년에 서원 창건 위계를 우선으로 할 것인가도 문제였다. 규모나 교육기관으로서의 격은 당연히 서원이 한 차원 위지만, 선생의 도산서당은 역사적인 정통성과 상징성의 면에서 존중되어야 했다.여러 가지 문제와 지형적인 이유로 결국 새로운 서원은 기존의 서당영역 뒤쪽 높은 곳에 자리잡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서당의 상징성과 서원의 위계를 동시에 부각시키는데 성공한 계획이었다. 기존 서당 일곽의 영역성을 최대로 존중하면서 새 서원의 기념성을 극대화시키는 방법이었다. 또한 기존 영역과 새 영역의 공간적 흐름을 하나로 묶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물론 기존 서당영역은 어느 정도 변할 수밖에 없었다. 도산서당과 농운정사 사이의 공간에 주진입로는 만들었기 때문에 두 건물 사이의 관계가 단절됐다. 그러나 이 공간에 주 진입로를 만들었기 때문에 두 건물 사이의 관계가 단절됐다. 그러나 이 공간에 진입로를 냄으로써 도산서당의 상징성을 극대화시킬 수 있었고, 새 서원으로 진입하는 훌륭한 매개공간을 만들 수 있었다.서원부분(빨강) 서당부분(초록)도산서원 배치도[가] 서당부분서당 부분이 입구 쪽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서당부분부터 둘러보고 들어가 보도록 하자.바깥에서a. 역락서재서원의 가장 아래에 위치한 건물로 선생의 제자 정지헌을 선생에게 취학시킬 때 지헌의 부친이 특별히 지어준 집으로 현판의 글씨는 퇴계 선생의 친필이다. 도산서원의 입구 바깥쪽에서부터 한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부수적인 건물이란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이것도, 기부금 입학의 일종인가 하는 생각을 하고 웃음이 났다.? 역락(亦樂)의 뜻 - '유붕자원방래(有朋自遠方來) 불역락호(不亦樂乎)!' 즉 벗이 멀리서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b. 도산서당입구에서보이는 도산서당퇴계선생이 기거하던 건물이다. 도산서당은 세칸밖에 안되는 지극히 작은 건물이다. 그나마 재력이 부족하여 4년이나 걸렸던 건물로 1557년에 착공하여 1561년에 완공하였다.퇴계 선생께서 학문을 연구하고 많은 제자를 교육하였던 곳이다. 선생께서 49세 말엽에 풍기군수를 사임연못 동쪽 산기슭에서 솟아나는 조그마한 샘물이다. '어린 제자를 바르게 가르치다'라는 뜻도 있다.농운정사 1분 스케치c. 농운정사농운정사는 도산서당 서쪽에 있는 8칸의 건물로 도산서당과 함께 선생께서 세운 건물로 당시 문도들이 거처하며 공부하던 곳이다. 제자들이 자율적으로 심체공부에 전념하기를 바라던 선생의 정신을 반영하여 '工'자형으로 건축했다.공부하는데 밝게 하기 위하여 사방에 창문을 많이 내어 채광을 살리고 맑은 공기가 들어오도록 해서 정신을 맑게 하였다. 공부한 마루를 '시습재'라 하고 뜻은 '학이시습 불역열호' 즉 '때때로 익히고 학문하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이다. 나이 든 제자들은 동쪽방, 젊은 제자들은 서쪽방에 기거토록 하여 제자들간에 서로 부담이 없도록 하였다.제자들이 쉬는 마루를 '관란헌'이라고 하는데 흐르는 낙동강의 푸른물을 바라보며 흐르는 물의 순리를 터득케 하였다.d. 하고직사하고직사 1분 정면 스케치서원을 관리하는 수호인(守護人)들의 살림집으로 상?하 두 고직사(庫直舍)가 있다.ㄷ자형 민가 건축양식으로 됐고 건평 50.6㎡, 총 9칸의 납도리 맞배집이다. 대청칸은 측랑칸보다 20㎝ 정도 높였고 기단도 경사를 이루어 지형을 따라 이루었으나 전면만 자연석을 가공없이 사용하여 쌓았고 지붕은 대청칸과 측랑칸의 높이 차이를 단 없이 합각을 이용하여 처리하였다. 전면의 농운정사와의 관계가 절묘한다. 工자형 농운정사 건물의 오목한 뒤뜰을 향해 ㄷ자 하고직사의 동쪽 날개가 향하고 있는 모습이다. 거꾸로 말해서 농운정사에서 하고직사로 들어가면, 우선 하고직사의 동쪽 날개 모서리가 정면으로 나타난 후에야 비로소 안마당으로 연결된다. 이는 정사 뒷마당의 서비스부와 고직사의 부엌을 최대로 가깝게 하기위한 배치로 해석할수 있다.[나] 서원 영역일반적으로 서원은 사당이 있는 제향구역과 강당과 재실을 갖춘 강학구역으로 크게 나뉜다. 이 두 구역이 서원건축의 핵심을 이루고 있으며 여기게 부차적인 구역이 뒤따라 완성된 서원의 경역을 이루고 있다. 기본 배치구도는 전면에 대칭으로 자리하고 있어 강당과 함께 교육공간의 핵심을 이룬다. 동재를 박약재, 서재를 홍의재라 한다. 정면 3간, 측면 2간의 툇간을 가진 건평 24.5㎡의 맛배집 홑처마집으로 동 서 같은 건물.서서그린 1분 러프 스케치c. 동?서광명실서원의 중심축을 따라 걷다보면 좌우로 펼쳐지는 공간이 있다. 그리고 그 끝에는 같은 형태의 건물이 양쪽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이 서원의 장서고라고 하니, 위계적으로 차차 진행되는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누형식으로, 건물 자체의 높이를 또한 높였다는 것은 이 건물에 대한 위계의 암시가 아닐까 또한번 생각해 본다. 동광명실은 1819(순조 19년)에 세운 건물로 역대 왕의 내사서적과 선생이 친히 보시던 수택본이 있고, 서광명실은 1930년에 증건된 건물로 문도를 비롯한 국내 유학자의 문집 등 근래에 발간된 각종 책들이 있다. 1,217종에 4,917권이 보관되어 있으며, 현재 전국 서원 가운데에서 장서로는 고서와 진본이 가장 많다. 현재는 도난의 우려로 유물전시관에 보관되고 있다. 정면 3간 측면 1간, 건평 12.5㎡의 맛배, 굴도리, 누마루집이며 축대를 이용하여 전면은 단층, 후면은 2층 누마루로 되어 있어 주위 툇마루에는 계자난간을 설치하였다. 서광명실은 동광명실보다 마루 바닥 높이가 20㎝ 낮고 구조는 같다.d. 장판각서원에서 찍어낸 각종 목판을 보관하는 곳이다. 서원의 다른 여느곳을 둘러보다가, 유일무이하게 채색이 되지 않은 건물을 발견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오래된 나무는 오래되보여야 한다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오래된 나무가 색이 입혀져 있지 않은 모습이 난 더 좋다. 하지만, 서원의 위치나 위계상으로 보았을때 이곳이 색이 칠해져 있지 않다는것은, 그만한 위계가 있다는 것을 살짝 느낄 수 있었다.정면 3간 측면 2간 건평 34.5㎡ 맛배 5량집 홑처마 구조로 사방이 판벽으로 되어 있고 정면 양측은 판문 2매로 되어있으며 중앙칸 역시 판 2분합 덧문으로 되어있다. 내부는 우물마루를 깔았고 판각을 보관 치우쳤다는 점이다. 충심축선은 도면상에는 강렬한 요소지만 실제로는 잘 인식되지 않는 가상의 선이다. 중심축을 따라 강당 뒤에 사당을 배열하면, 실제로는 사당이 강당에 가려버리기 때문에, 최상의 위계를 가져야 할 사당의 상징성이 부각되기 어렵다. 또한 제사의례에도 방해가 되는 기능적인 결함을 갖는다. 도산서원과 같이 사당을 강당 옆으로 비껴서 배치하면 실제적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 진입로를 따라 들어온 흐름은 일단 강당의 정면에서 멈추어지며, 강당의 모퉁이를 돌아서면 다시 사당영역의 정면을 대할 수 있다. 또한 사당문 앞에 넉넉한 마당을 확보할 수 있어서 충분한 제례공간을 활보할 수 있고, 강당에서는 제례절차를 지휘 감독할 수 있는 위치로 확보된다. 이러한 예는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두 곳밖에 없다. 두 곳은 퇴계나 그 수제자와 연고를 맺고 있다. 형식적인 규범보단 실질적인 변용을 중시했던 퇴계정신을 구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마] 서당과 서원의 매개공간서당 영역과 서원 영역 사이의 경계를 없애는데 공헌한 요소는 동,서광명실이다. 진도문 옆에 서 있는 두 건물의 위치에 주목하자. 두 건물은 서원영역 바깥에 위치하지만, 누각형식으로 처리해 서원 마당에서 출입이 가능하다. 다시 말해, 위치는 서원 담장 바깥이지만, 소속은 서원 마당에 속해 있는 이중성을 갖는다. 기존 서당 영역이세 보면 독립된 2층 건물이지만, 서원 마당에서 보면 마당을 감싸는 단층 건물이 된다. 이러한 이중성은 서당영역과 서원영역을 통합하는 중요한 매개가 된다.3. 분석가. 도산서당(1). 외부적 확장이 집은 삼칸제도(三間之制)에 따라 건축되었다고 한다. 방과 마루 부엌이 각각 1칸씩, 온돌과 마루와 흙바닥이라는 가장 근원적인 건축요소들을 최소의 규모로 가지고 있는 형식이다. 그러나 이 집은 3칸이 아니다. 부엌쪽으로 반칸을 늘렸고, 마루쪽은 아예 한칸을 늘려 가적지붕)까지 달았다. 기록에 의존하지 않는다면, 4.5칸 집이라 불러야 마땅하다.그러나 퇴계는 어디까지나 3칸이 변형 확장된 것으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