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Bronze개인
팔로워0 팔로우
소개
등록된 소개글이 없습니다.
전문분야 등록된 전문분야가 없습니다.
판매자 정보
학교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직장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자격증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판매지수
전체자료 7
검색어 입력폼
  • 정보사회론 정보성찰성감시
    앤서니 기든스는 영국에서 중요한 사회이론가로, 그는 지금에 와서야 정보시대에 진입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근대사회의 시작부터 정보사회였다고 주장한다. 즉, 오늘날 정보가 중요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다니엘 벨의 탈산업사회를 인식하는 것과 같이 체제적 단절을 표현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그는 과거 맑스나 베버의 근대성에 대한 설명이 현실을 과도하게 단순화 했다고 본다. 근대 세계의 형성에는 이러한 위대한 정통들이 과소평가하거나 간과한 다른 요인들도 작용했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하면서 근대성에 관련해 부각된 감시, 그리고 폭력, 전쟁 및 국민 국가라는 특징을 강조한다.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과거에 비해 더 조직화되어 있다. 학교체제나 유통, 제조 등의 분야를 보면 과거에 비해 엄청난 조직적 증가가 이루어 진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생활을 조직화하기 위해서는 개인들의 활동에 관한 정보가 체계적으로 수집되어한다. 즉 일상적 감시는 효과적인 조직화를 위한 전제조건으로, 조직화와 감시는 접착 쌍둥이로서, 근대 세계의 발전과 함께 성장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개인 자유의 감소가 암시되어 있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조직화의 증가가 사람들의 자유의 증가와 연관되는 것을 볼 수 있다.이렇게 점점 증가하는 생활의 조직화라는 특성은 기든스의 성찰적 근대화 이론의 핵심적 요소이다. 그는 개인의 생활이 점점 고정된 공동체나 자연에 의해 지배되지 않고, 집합적으로뿐 아니라 개인적으로 사람들이 점점 살아가는 방식을 스스로 선택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모든 곳에서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맺는 관계가 사회적으로 구성되며, 따라서 선택된다는 것에 대한 인식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이전에 비해 더 많은 자유와 삶에 대한 통제력을 가지고 있지만, 이로 인해 정해진 대로 행했던 과거의 삶보다 더 불안하고 불확실하다.대부분의 논자들은 감시의 성장에 대해 비관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 이런 견해가 널리 수용되고 있다화는 개개인의 이름, 생일, 주거 등의 고유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게 알려진 상황을 말하고, 개인성은 사람이 자신의 운명을 책임지고 삶에 대한 진정한 선택과 통제를 하는 것과 관련되는데, 이것은 일반적으로 사회적 조직화의 증가와 그에 따른 감시에 의해 위협받는다고 생각된다. 물론 개체화가 사람들에 대한 정찰과 감시를 필요로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정보 수집은 개인의 개인성을 높이기 위한 전제조건이 될 수도 있다. 사회가 개인의 개인성을 존중하고 지지하기 위해서는 그들에 대해 많은 것을 알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많은 영역에서의 감시는 서비스를 통해 고객의 개인성을 높여줄 수 있는 조직의 운용을 위한 기반으로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전화통신망은 모든 사용자들을 개체화 시키면서 엄청난 양의 정보를 수집한다. 이러한 정보를 바탕으로 전체 지국을 포괄하는 원격 통신망이 형성되어, 우리는 전화번호를 누르는 것만으로 친구관계나 업무관계 등과 같은 자아와 개인성에 대한 감각을 증진시켜준다.이렇듯 사람들에 대한 정보의 증가와 개인성의 감소를 직접적으로 동일시할 수 없다고 할 때, 또 다른 역설도 언급되어야 한다. 시골생활에서 도시생활로 이동하면서, 폐쇄된 공동체로부터 일상행위에 대한 이웃의 세세한 주시, 지역적 소문, 대면접촉에 의한 침해 등에서 자유로워진다. 그러나 도시사회는 공동체적 생활양식보다 더 사회적으로 조직화 되는 과정에서 개인들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수집하게 된다. 또한 과거에 말과 기억이 정보를 수집하고 저장하는 주요 수단이었으나 오늘날에는 다양한 수단으로 수집되고 저장되고, 축적된다. 즉, 도시에서 우리는 주변의 간섭은 떨쳐버릴 수 있지만, 세무기관이나 의료서비스 또는 정부의 감시는 거의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이렇게 수집된 정보는 현대 조직체의 기능을 위해 필수적이다. 이런 정보들은 미디어나 교육기관 등을 통하여 다른 개인들에게 피드백 되고, 이를 통해 사람들의 기대 등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된 개인들은 자신의 생활을 영위하는시킬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직화의 증가와 개인의 자율성의 관계에 대한 충동적 판단에 주의해야 한다.기든스는 일상적 감시와 조직화의 확장에 대한 이해를 위해 국가의 역할에 대해 초점을 맞춘다. 그는 우리가 말하는 사회는 국민국가를 지칭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사회와 국민국가를 동일시하는 것은 대부분 문제가 없지만, 동의어가 아니라는 것은 인식할 필요가 있다. 국민국가라는 개념은 17세기 말과 18세기에 등장한 독특한 특성을 가진 특수한 유형의 사회이다. 그는 이 국민국가의 초기부터 정보가 특별한 중요성을 가지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국가는 최소한 그 구성원에 대해 알아야 하고, 국가 권력이 관리를 목적으로 한 지속적인 정보 수집, 저장 및 통제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국민국가는 처음부터 정보사회라는 것이다. 국민국가가 정보의 수집과 저장에 대해 특별한 관심과 의존성을 가지고 있고, 이로써 중대한 결과를 초래했다는 주장을 더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국민국가의 주요특징을 알 필요가 있다.첫째, 근대 세계는 국민국가로 구성된다. 이것은 세계화를 과소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국민국가로의 분화를 강조함으로써 현대생활이 가진 매우 중요한 측면의 감수성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국가에 대한 소속감이 존재의 중요한 요소이다. 예로 대중들은 세계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구호를 따르는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자신의 국기로 스스로를 포장한 것을 볼 수 있다.국민국가의 두 번째 특징으로 전쟁이라는 조건 속에서 형성되었고 확실한 방위력을 보유함으로써 존속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과거 영국의 강한 국주들이 귀족들을 패배시키고, 그들을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대신 자신들의 통제 하에 둘 수 있었던 것을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즉, 확실한 방위력은 국민국가의 전제조건이며, 이러한 원칙은 근대 역사에 걸쳐 검증되었다.또 20세기동안 근대적 전쟁, 방위가 사회 전체와 훨씬 더 결정적으로 관련성을 가지게 되었다. 이것은 더 많은 구로 만들었다. 이렇게 현대적 전쟁의 폭력성이 증가된 것 뿐 아니라, 전쟁이 사회적 영역으로 더 깊숙이 확장되는 방식이 존재한다. 이것은 산업활동과 전쟁을 위한 대비사이에 긴밀한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 방위가 그 수행에 필수적인 장비를 생산할 수 있는 산업적 능력에 크게 영향을 받으면서, 전쟁의 산업화가 20세기의 중요한 특징이 되었다.그러나 이런 산업전이 붕괴되고 점차 정보전으로 대체되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정보전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군대가 확산됨에 따라 이를 지휘, 통제하는 체계가 발전되었다. 또한 전쟁의 기간이 대부분 상대적으로 단기간인 즉시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더 이상 인구의 동원을 필요로 하지 않고, 소수의 전문적인 병사로 복합적인 고성능 컴퓨터 장비를 다루는 데 능숙한 인력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그리고 국내 및 각국의 인식관리도 신경을 쓰게 된다. 이것은 전쟁수행에서 여론이 중요한 요소가 되고 반전 분위기의 확산이 군사 지도자의 우려 대상이 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특히 절박한 쟁점이다. 정보전은 매우 정교한 기술을 이용하여 수행되고, 사이버전의 기술은 정보로 포화되어있다. 또 더 이상 전쟁을 위한 시민이나 기업의 동원을 필요로 하지 않고, 대신 최신 산업적 기술혁신을 전쟁의 목적으로 확보하는 것에 의존하게 된다. 이런 특징을 가진 정보전이라 부를 수 있는 전쟁으로 단지 5주 동안 지속된 걸프전이 있다.1945년 이후 세계를 덮고 있던 냉전의 종식으로 인해 국방제도를 운영할 필요성이 사라졌다고 믿을 수도 있지만, 국경을 보호하는 것이 모든 정부의 일차적 의무이기 때문에, 국가 이익에 영향을 미치는 정보를 얻고자 한다. 불량국가와 테러주의자들은 지속적인 감시를 정당화 시키고 있다. 이로 인해 전 세계에 걸쳐 사건과 활동을 일상적, 지속적으로 감찰하고 감시하는 기술이 상호연결도니 거대한 체계가 등장하였다. 컴퓨터와 더불어 위성은 감시활동의 요체로, 이는 적으로부터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 일반인들은 볼 수 없도록0개의 터미널이 주컴퓨터에 연결된 통신망을 가진 연합 컴퓨터 국을 운영하고 있다. 이는 분명히 적으로 간주될 수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노동조합원, 국회의원들, 언론인 등에 대해서도 이루어진다. 이는 감시의 주요 형태 중 하나로 보는 범주적 의심의 확산을 촉진하는데, 이를 통해 사회 질서에 대한 실제적 또는 잠재적 위협이 세심한 감시를 받게 된다.정보전의 발전은 보다 정교한 선전기법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엄청 확산되어 정보를 원하는 방향으로 내보내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선전을 통해 만족스러운 성과를 얻는 것이 매우 어렵게 되었다. 이로 인해 전쟁의 전개를 둘러싼 불안한 추측들이 광범위하게 보도될 것이다. 또한 이런 가변적인 정보흐름은 극단적인 갈등을 초래할 수도 있다.기든스는 국민국가간의 원천이 약화된 것을 포착하기 위해 적 없는 국가라는 말을 만들어 내어 오늘날 전쟁의 문제는 국가의 내부와 여러 국가에 걸쳐 나타나고, 어떤 통일된 국가의 믿음이나 이해관계를 표명하지 않는 다양한 형태의 근본주의와 관련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한 예는 불확실한 세계에서 확실성을 주장한다는 특징이 발견된다.과거에는 자국의 국경이나 이해관계가 위협받지 않으면, 다른 주권국가 내부의 희생자에 대한 우려 때문에 개입하는 것은 어려웠다. 그러나 정보전은 전략적이거나 영토적인 관심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다루어야 하고, 이러한 요소들의 핵심적 특성으로 민주주의자를 창출하려는 노력은 인간이 국가보다 더 중요하다는 인류에게 심어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국민국가의 감시의 확장을 이해하기 위해 국민국가의 토대형성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과거에는 국가의 외적 경계를 지키기 위해서 군대의 무력에 의한 강요라는 형태로 나타났지만 장기간 존속을 추구하는 국가에서는 더 많은 것이 요구되었다. 국가는 징집과 세금 징수 등의 이유로 인해 국민에 대한 지식이 필요했다. 따라 감시는 그 초기부터 우선순위가 되었다. 내부 국민을 감시하는 방식은 확산을 추적하는
    사회과학| 2010.03.18| 4페이지| 2,000원| 조회(197)
    미리보기
  • 정보사회론 7장 정보와 민주주의
    오늘날 과거보다 더 많은 정보들이 순환하고 있다는 점은 대부분 동의 하지만, 정보시대를 선언하는 것에 대해 주저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정보의 생산과 분배에서 정보의 조작, 포장 등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통해 정보가 오염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극단적으로는 일반인들에게 공개되는 정보의 부적합성으로 인해 민주적 과정이 손상된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신빙성 있는 정보들을 접하지 못한 시민들이 사려 깊고, 식견 있는 유권자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오늘날 민주주의라는 개념은 확장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의미하는 바는 가변적이다. 변화된 사회 환경과 더불어 민주주의 개념이 확대되는 것이다. 신뢰성 있는 정보자원도 민주주의 사회의 중요한 구성요소로 볼 수 있는데. 이것은 국민의 생활수준, 이민의 규모, 결혼 이혼율에 대한 정확한 자료에 접근할 수 없다면 유권자들이 경제정책, 국가 정체성, 가족관계 등에 대해 의사표현을 제대로 하기 힘들기 때문이다.공공영역은 정부로부터 독립적이고 당파적 경제세력으로부터도 자율성을 누리는, 합리적 논쟁의 장으로서, 일반 시민들도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으며 동시에 그들에 의해 검열을 받는 영역이다. 즉 여론이 형성되는 곳이 바로 이러한 공공영역이다. 공공역역에의 정보, 즉 자유로운 논의를 통한 행위자들의 견해가 일반인들에게 공개된다. 공공영역의 이상의 정보는 모든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는 신뢰할 수 있는 공개적이기 때문에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보의 역할에 대한 모형으로 인식될 수 있다.공공영역의 동학과 나아가는 방향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적인 면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하버마스에 따르면 공공역역은 18세기 영국에서 자본주의 사회의 핵심적 특징으로 인해 출현했다고 한다. 신흥 자본가들이 국가와 교회에 투쟁할 수 있을 정도로 부를 축적하게 되면서 귀족들에 대한 의존성을 줄이고 전통적 권력과 분리된 비판의 영역을 형성함으로써 나타난 것이다. 또 시장이 성장한 결과 언론자유와 의회개혁에 대한 지원이 강화되기 시작했다. 자본주의가 확장됨에 자본가들에 의해 자본주의 국가가 탄생되었고, 국가에 대한 투쟁의 역할을 점점 상실하게 되고, 그로써 공공영역의 자율성이 감소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추세를 이전 시대로의 직접적 회귀라고 주장하지 않고, 공적 문제가 다양한 정책과 전망 간의 경쟁의 영역이기보다는 권력가들의 전시를 위한 행사로 전락하는 방식을 '재봉건화'라는 용어를 사용해 표현하였다. 두 번째로, 매스 커뮤니케이션 체계 내부의 변화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우리는 매스 커뮤니케이션이 공공역역의 효과적 운영에 중심적이라는 사실을 기억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20세기 동안 독점적 자본주의 조직으로 발전하였고, 그에 따라 공공역역에 대한 신뢰성 있는 정보의 제공자에서 여론의 형성자로 바뀌었다,이 두 가지 측면은 사회적 관계에 대한 자본주의의 장악력 확산과 강화를 표현하는 것이지만, 18세기 말부터 공공영역을 보강하기 위한 목적으로 국가를 이용하려고 투쟁한 또 다른 것이 존재한다. 하버마스는 부르주아 공공역역은 시장과 정부 사이에 위치하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을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교수, 법률가, 의사 등과 같은 전문직의 중요한 부분들은 자본주의가 국가와 사회 속에서 장악력을 공고화함에 따라, 이에 공공영역이 완전히 손상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노력했고, 부분적으로 성공을 거두기도 하였다. 그는 특히 방송에 관련하여 이 문제를 지적한다. 그는 공공방송기관을 설립함으로써 방송의 공론기능이 자본주의적 기능에 의해 잠식당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오늘날 기업 자본주의와 공적 서비스 에토스 간에 형성되는 긴장관계에 대한 검토가 요구된다.하버마스에 의하면 공공역역의 미래가 불안하다는 결론을 피하기 어렵다. 그는 공공영역은 광고논리의 침투에 의해 약화되는 한편 홍보활동의 침투에 의해서도 타격을 입는다. 즉 여론관리를 공공영역의 종말을 보여주는 것으로 간주한다. 즉, 정교한 여론 조작에 의해 도출된 합의 속에서는 결코 공적 논의를 형성했던 합리성이 존재할 수 없고, 이런 여론조작을 통해 기만고 전달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것들에 대해 하나하나씩 알아보겠다.먼저 공익방송 조직은 영국에서 가장 중요한 정보제도에 속하며, 이는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도 마찬가지 이다. 공익방송은 일상적 기능의 수행해서 정치, 기업 등의 외부적 압력으로부터 제도적으로 분리된 유형으로 간주될 수 있다. 또 특별한 계층의 이익보다 공동체 전체의 이용 및 이익을 위해서 만들어지는 방송이라고 할 수 있다. 공익방송이 정부나 시장으로부터 자율적인 위치, 왜곡되지 않은 의사소통을 강조하는 방송 종사자들의 에토스, 그리고 경제적 부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에 대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하버마스의 공공영역 개념을 반영하고 있다.BBC는 사적 자본의 이해관계로부터 독립된 국가기관으로 설립돼야 한다는 급진주의자와 부수주의자 간의 독특한 합의로 인해 이들은 방송서비스는 국가 이해에 의한 공기업에 의해 운영되어야 하며, 그 지위와 의무는 공공 서비스와 상응해야한다는 분위기를 만들어 냈고, 상업적인 것과는 거리를 두고 운영되도록 설계되었다. 그러나 방송이 상업적 요구로부터 어느 정도 분리된다 할지라도, 방송이 사회의 일부분이고, 그 사회에서 자본은 막대한 힘을 발휘하고 있었기 때문에 완전히 자유로운 정보제공자로서의 능력을 발휘할 수 없다. 새롭게 출현하는 대안적 매체들은 공중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오락을 판매하는데 몰두하고 있다. 이런 상업 방송으로 인해 줄어드는 공익채널에 대한 시청자 수로 인해, 비자발적 세금에 의한 지원이나 일반 공중을 대상으로 적다는 주장이 유효성을 상실하게 된다. 이렇게 점점 공익방송이 쇠퇴하게 되고, 이로 인해 공공영역으로서의 방송의 역할이 약화되고 있다. 몇몇 사람들은 소프라노, 위기의 주부들 등과 같은 혁신적 프로그램을 거론하며 상업 방송도 고품질의 방송을 제공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극히 일부이다. 그렇다고 요구되는 가입비를 낼만한 집단을 대상으로 국한하면, 지불능력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정보를 제공한다는 공공영역의 원리가 손상을 받는다. 그러 공공영역의 특징을 일부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국고에서 나오는 기금 감축으로 인한 특수영역에서의 상업화의 문제, 정치적 우익에서 공공도서관의 사서들의 개인의 이익을 챙긴다는 지적, 또 공공도서관이 시대를 따라잡지 못해 전자적 정보전달이라는 현대적 형태보다 서적에 뒤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또한 무료 서비스 기능의 도서관이 정보를 상업 목적으로 이용하려는 조직에 제공하게 될 때 나타나는 모순을 지적한다. 따라서 그런 것에는 요금이 부과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공공도서관의 참고도서 제공에 대한 관심으로, 이런 도서관의 기능은 공적 서비스와 고급영역의 이상형에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참고도서는 장서의 10%정도에 불과하고 연간 도서구입이 5%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자유시장주의자들은 장기이용자들에 대한 정기 입장권제도와 더불어 매일 입장료를 받아야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도서관의 사업적 가능성에 대한 열의와 통한다.과거에는 정보가 공유되고 무료인 자원으로 간주되었으나, 지금은 정보가 사적 소비를 위한 상품으로 간주되고 있다. 무료냐 유료나 하는 논쟁에 대한 결론은 점점 더 요금의 징수를 주장하는 사람들 쪽으로 모아진다. 공공도서관도 도서관간의 도서대출 요청, 비도서자료, 예약 서비스 그리고 컴퓨터를 이용하는 정보에 대하여 요금을 부과하고 있다. 즉 공공도서관도 점점 상업적 관행을 도입하는 쪽으로 변하고 있고, 이것은 정보 및 정보활용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이러한 추세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정보비용의 실질적 감소에 따라 실제로 개인들이 자신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직접 구입할 수 있는 호의적 입장에 있다는 주장과 만난다. 또한 대안적 정보공급수단이 발달함에 따라 도서관은 백과사전을 보유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도서를 구입하는 사람은 상층의 사회계층으로 이루어진다는 점과, 도서관을 많이 이용하는 사람이 책도 많이 산다는 점, 또 구입하는 책이 대부분 도서관에서 제공되는 것에 비해 가벼운 도서라는 점 후원자의 모색이 나타나게 되었다. 즉, 이를 통해 상업적인 측면을 갖게 되면서 공공영역에 손상을 입는다.우리가 알고 있는 정보의 대부분이 정부의 정보서비스로부터 나온다. 이혼의 양상, 직업의 변화, 범죄의 추세 등 모든 것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처리하는 작업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유일한 기관이 정부이기 때문이다. 정부 정보서비스는 공공영역의 개념에 잘 들어맞는다. 이것은 확실한 기반지식 없이는 이성적 논의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신뢰할 만한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 의미 있는 정치를 생각하는 것은 어렵다. 그래서 정확하고 체계적으로 수집된 정보가 정부에 의해 만들어져야 한다는 견해가 등장했다. 이와 함께 이러한 정보를 수집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면밀하고, 공평하게 수집되고 분석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정보를 상품으로 취급하는 경향과 통계자료의 충실성을 위협하는 정부의 개입증가 경향이 정부 정보서비스의 정통적 역할을 훼손하였다.위에서 언급한 것들은 정보관리로 이어진다. 공공영역은 그 공적 서비스 기능에 대한 내부의 공격에 침해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정보 포장이라는 보다 일반적 발달에 따라서도 어려움을 겪었다. 이와 관련된 것으로 사람들을 설득하는 수단의 폭발적 증가를 들 수 있는데, 이것은 정치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이런 것들은 오늘날 증가한 정보는 이중적 가치를 지닌다는 것을 말해준다.20세기 전후 세계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수단과 그 목적에 대한 확산으로, 흔히 정보관리라 불린다. 이 정보관리는 리프만, 버네이스 관점에서 보면, 선전은 현대세계는 위기시에 원자화된 구성요소의 조정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고, 긍정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여기서 선전은 체계적이고 자의식적인 정보관리로, 자유민주주의에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것으로 제시된다. 그러나 하버마스는 정보관리의 성장으로 인해 홍보 기술자들에 의한 여론의 회유와 조작을 수용하기 때문에 밝고 합리적인 공중에 대한 공공영역의 쇠퇴를 보여주는 것으로 간주한다.
    사회과학| 2010.03.18| 5페이지| 2,000원| 조회(169)
    미리보기
  • 과학기술과 사회
    오늘날에는 과거 보다 정보와 통신에 대한 중요성이 늘어난 것은 여러 수치들로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정보폭발은 현대 생활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러한 변화에 대해서 새로운 사회의 출현이라고 보아 과거와의 단절을 주장하는 이론가들(다니엘 벨)도 있으며, 과거와의 연속된 사회로 보는 이론가들도 있는데 이번장에서는 현대 사회에서 정보의 중요성이 커졌음은 인정하면서도, 지속적 발전에 대한 중심적 역할을 강조하는 이론가들 중 하버트 쉴러에 대해 알아본다.허버트 쉴러는 비판이론가로 20세기 후반 동안 정보영역의 추세에 관해 논평했던 인물이다. 그는 학문의 영역에 늦게 들어 왔지만 정보시대의 인식에 상당한 영향을 미쳐왔다. 그는 정보문제에 대해서 정치경제학적 접근을 발전 시켰는데, 이 접근은 몇 개의 중요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 번째로 정보의 배후를 보아야 한다는 주장으로, 미디어들의 메시지 배후에 놓인 구조적 특징을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고, 정보 통신에 대한 체계적 분석을 주장한다. 그들은 TV방송이나 소프트웨어 회사 등과 같은 특정 현상을 전체 사회경제적 체제의 기능이라는 맥락 속에 위치시키려 하고, 이것은 변함없이 자본주의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총체론적 분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조잡하고 폐쇄된 접근이라는 비난을 받는다. 그리고 역사, 즉 추세와 발전의 시대구분에 대해 강조한다. 정치경제학자들은 자본주의 발전의 다양한 시기와 각 시기가 보여주는 특정한 제약과 기회의 중요성에 관심을 기울인다. 쉴러는 특히 마지막 특성인 커뮤니케이션에서의 현대적 추세에 관심을 가진다. 그의 출발점은 현 시기 자본주의에서는 정보와 통신이 경제체제의 안정 및 번영에 상당한 중요성을 지닌다는 것이다.쉴러는 정보를 새로운 종류의 사회에 대한 신호로 간주하지 않고, 이런 정보와 엄청난 기술에도 자본주의의 우선순위와 압력은 그대로 남아있다고 본다. 그는 자본주의가 극복되었다는 관념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지배적이었던 시장경제의 요구가 정보영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있는 사회는 기업 자본주의 사회라는 것이다. 이것은 현대 자본주의는 독특한 특성을 가진 기업적 제도에 의해 지배되는 자본주의이다. 이들은 전국적 또는 국제적 범위를 가진 조직체들이다. 이들 기업이 경제를 지배하면서 경제의 수준을 결정한다. 쉴러는 이런 이유 때문에 기업 자본주의의 우선순위가 정보영역에서 특히 많은 영향력을 끼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정보와 정보통신기술을 만들어낸 힘이 어떻게 그것의 생산물에 의해 대체될 수 있는가 라고 반문한다. 즉 오랫동안 형성된 자본주의 체제의 측면은, 자본주의 구조저거 구성요소이자 운영의 절대 요건으로, 정보사회의 특징적 요소인 것이다. 따라서 정보사회는 자본주의적 요구를 반영하는 것이다.그는 기업 자본주의가 규모와 범위 면에서 증가함에 따라 초국적 제국을 만들어 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우리는 20세기 동안 세계시장의 형성과, 기업의 세계적 확장을 목격할 수 있다. 정보와 기술은 이러한 발전에 의해 촉진 되었고, 정보통신망은 세계시장의 운영에 필수적인 사업 서비스와 연결시키기 위해서도 중요하다. 하버트 쉴러는 이것을 통해 정보가 기업적 요구에 종속되는 방식을 나타낸다고 보았는데, 정보는 특수한 종류로서 압도적으로 기업의 우선순위를 표현한다는 것과, 기업적 이해를 실현하기 위하여 개발되었다는 것이 그 근거이다. 하버트의 아들 댄 쉴러는 정보와 기업활동 간의 상호관계를 강조하였다. 그는 미국 국내시장, 초국적 커뮤니케이션, 미국 정부가 주도적 역할을 수행한 영역에서의 텔레매틱스(컴퓨터와 커뮤니케이션 설비)를 설명한다. 그는 기업의 확장은 정보통신망에 대한 필요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보통신망의 구축은 필수불가결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기업의 규모가 증가하고 외부에서 지사를 확장시켜 나감에 따라 텔레매틱스만이 기업 수요에 따라 나타나는 복합적인 산업적 및 상업적 활동을 통제하고 통합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것이 기업에 적합하도록 구성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 초기부터 계획적으로 기업의 이해관계가 선호하는 방식으로 발전했다.국제. 즉, 엄청난 프로그램을 통해 추구하는 미국 미디어의 일차적 목표는 시장을 개방시키고 가능한 방대한 세계시장을 개척하는 것이다.허버트 쉴러는 매스미디어가 초국적 제국에 대하여 이데올로기적 지원을 하는 직접적 방식도 강조한다. 그 방식으로 뉴스의 제작과 분배에서 차지하는 미국의 위치에서 유래한다. 미국의 미디어는 자신의 나라의 관심사가 반영되고 세계적 사건과 추세가 대개 미국적인 시각에서 보도되는데, 뉴스에서의 경쟁, 시장, 그리고 기업 신용등과 같은 용어는 정상적이고 바람직한 조건으로 간주되는 것으로 묘사하는데 문제없이 사용된다. 그리고 편향된 보도, 즉 사건에 대한 압도적인 대도시적 의제를 제시하고 세계의 나머지 지역은 전쟁, 재앙, 쿠데타와 같은 문제 지역으로 보도가 가능하다.이에 대해 허버트 쉴러는 신세계정보 질서에 대해 강력히 주창했는데, 그는 미디어가 표현하는 것의 밑바탕에는 불평등한 구조적 관계가 존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가난한 국가들의 투쟁을 적극적으로 표명하기 위한 전재조건은 정보 제국주의에 도전하는 것이라고 하였다.시장원리는 자본주의의 핵심적 관심사인데, 허버트 쉴러는 이 시장원리가 정보적 영역에서도 특히 이윤 최대화의 추구가 많은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보는 이윤이 발생하는 곳에서 생산되고 상품화 되고, 판매되는 상품은 시장가치의 영향을 담지하고 있다. EMI의 경우 이익을 올릴 가능성의 거의 없는 의료전자에서 철수하고 소비자 오락물에 집중하는 전략으로 이익을 극대화시킬 수 있었다. 정보산업의 기업들도 마찬가지로 시장원리에 따라 운영되고, 최대수익에 전망이 있는 분야로 생산을 조절한다. 이것은 하드웨어의 측면이 아닌 연구개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연구개발 역시 그 기업의 이익 창출을 위한 연구개발에만 기업들은 투자한다. 심지어는 연구를 위한 연구의 시대는 끝났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결국 국내 정보기술, 정보는 시장이 정하는 방향으로 발전하였다.많은 정보는 그 자체로 이로운 것이라는 가정이 일반적이지만, 꼭 그렇지 많주의 사회의 다른 생산품들과 마찬가지로 취급할 수 있다. 따라서 정보는 매매 당사자들끼리 거래될 수 있는 상품으로 생각 할 수 있다.정보의 상품화에 대한 반대의견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정보영역에서 상품화가 가속되는 것을 목격했다. 예로 브랜드의 높아진 가치평가를 생각해볼 수 있다. 물론 상품도 여전히 중요하지만 나이키나 리바이스 같은 브랜드 가치의 중요성도 최근 크게 증가한 것을 볼 수 있다. 오늘날 이름과 같은 무형물이 실제적 가치를 넘어서는 경제적 가치를 가진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다.정보의 상품화에 수반되어 나타난 현상으로 지적 재산과 그 보호에 대한 관심을 볼 수 있다. 저작권이나 특허가 이런 것이다. 이것은 시장관계를 과거에는 배제되었던 영역에 끌어들이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정보의 가치를 극대화시키기 위한 것들이다.이보다 더 중요한 쟁점은 과학적 연구의 출판과 상품화를 향한 압력에 관한 것이다. 일부에서는 과학적 지식이 자유롭게 공유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공적 이익을 위한 공유로 공산주의 정신을 보여준다. open source가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이에 반대되는 입장으로 과학적 지식이 독점적이고 소유권의 적용대상이며 따라서 그 지식에 대한 대가를 지불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쉴러는 정보통신기술에 따라 촉진되는 정보의 상품화 방향이 우리 문화의 점점 더 작은 부분에 대한 권리에 대해서도 보상이 이루어지는 지불체계를 거쳐 전달되는 사회를 향해 움직이고 있는 경향에 대해 한탄하며 정보는 시장에서 매매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공공재라는 생각을 견지했다.정보영역에서도 시장이 중심적 역할을 담당하는 것을 위에서 보았다. 시장이 분배기제라는 사실은 그것이 소득과 부에 의해 차별화된 사회에 대한 대응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즉 계급 불평등이 정보사회에서도 중심적인 힘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정보시대가 정보격차를 드러낸다는 것을 근거로 제시된다. 예로 인터넷에 부유한 사람들이 빨리 연결된다는 많은 증거가 존재한다. 또한 정보의 생산과 그, 규모가 확장됨에 따라 발달된 정보통신망이 필요해졌다. 이 정보기술은 구입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증가시키기 위해 제공한다. 수익성에 대한 기업자본의 압도적 이해관계를 고려할 때 기술혁신의 역사는 비용을 부담한 사람들에 의해 형성된다고 볼 수 있다. 기업에서의 컴퓨터화가 진행되면서 근로자들이 배제되고, 그것은 관리를 강화하는 보다 효과적인 수단으로 활용되었고, 통제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힘을 부여했다. 또 기업은 정보통신망을 이용할 수 있게 됨으로써 정보폭발이 단지 소유주의적 근거에서 사용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되었다. 즉, 경제적 영향력이 가장 큰 기업부문이 주요 정보서비스를 제공받게 되고, 정보는 일단 구입되고 나면 사적소유로 된다는 이유 때문에 일반인들은 볼 수 없게 된다. 이것은 정보 사회에서 소유주의 원리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쉴러와 비슷한 노선의 비평가들은 자본주의의 계급이해 속에서 관계의 정보화는 시민에 대한 감시의 강화로 표현된다고 한다. 예로 국가는 자본주의 국가이며, 감시가 확장되는 경제적 목적은 자본주의 관계를 강화라는데 있다. 여기에서 사람들의 일상생활 속으로 더 깊숙이 파고들어 소비자 자본주의를 만들어내고 강화시킴으로써 자본주의체제를 확장시킨다는 것이다.소비자 자본주의란 개인의 필요에 대해 대가를 지불함으로써 사람들이 생활을 구매하는 방식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된다. 이 소비자 자본주의가 정보혁명에 의해 조장되고 있다고 주장되는 몇 가지 방식이 있다. 첫째로 TV는 개별 구매자들에게 재화와 용역을 판매하는 이전 보다 더 철저한 수단이 됨과 동시에 소비주의적 생활양식을 지원하는 것으로 발전되는 것을 볼 수 있다. TV에 실린 프로그램들은 더 많은 소비를 자극하려는 사람들의 영향을 담게 된다. 특히 광고주와 후원자들은 자신의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더 잘 전달하려한다. 둘째는 광고를 제외 하더라도 TV 프로그램 자체가 소비주의적 생활양식을 조장한다는 것이다. 즉 TV를 통해 방영되는 성공, 아름다움
    사회과학| 2010.03.18| 4페이지| 2,000원| 조회(141)
    미리보기
  • 과학기술과 사회
    카스텔의 통신망 사회를 알아보기 전에 카스텔이란 인물에 대해 알아본다. 카스텔은 구조주의적 맑스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맑스주의에 대한 비판을 수용하여 정교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탈맑스주의자라고 볼 수 있다. 그가 맑스주의를 넘어섰지만 여전히 그의 사고에 맑스주의가 영향을 미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그는 단순히 자료를 쌓아가면서 상황을 기술하는 것 뿐 아니라 이론적으로도 매우 정교하게 발전시키는 경험주의 사회학자이다.카스텔은 정보시대는 새로운 사회의 등장을 예고한다는 주장을 한다. 그러나 단도직입적으로 정보사회의 등장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정보 자본주의라는 개념을 사용해 새로운 관계의 등장을 보여주는 발전 경향을 주목한다. 그는 심층적 변동을 강조하는 듯이 보이기도 하고, 동시에 자본주의가 지속되고 있을 뿐 아니라 과거보다 더 대담하고 견고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즉 자본주의의 발전과 정보통신기술의 등장이 결합되어 정보 자본주의가 가능하게 되었다고 주장해 양쪽 모두를 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핵심적 쟁점에 대해서 애매한 태도를 취하는 대신 진정으로 새로운 사회를 표현하는 것은 통신망 사회의 출현이라고 명백하게 진술하고 있다.또 그는 우리가 정보시대로의 변동을 경험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정보시대의 핵심을 통신망의 확산이라고 보고, 통신망 사회가 지구적 차원에서 증대되는 통합과 사회적 분리 간의 간극을 더 크게 만든다고 본다. 그에 따르면 정보시대의 출발은 자본주의 위기에 기업들의 이윤창출을 위한 구조조정 과정과 동시적으로 발생한다. 이는 세계화라는 장기적이며, 지속적으로 가속화되는 과정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결국 통신망 사회는 전 세계에서 공간적 제약 없이 자본주의 활동이 이루어진 사회라고 말한다. 그는 세계적 통합이 주된 추세이기는 하지만, 그에 상응하여 참여자들의 적응성을 극대화시키려는 요구도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에 세계화로 인해 국민국가가 약화되고 세계시장 속에 편입되기는 하겠지만 그 역할은 중요하게 지속될 것이라고 주장한다.그는 세계화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통신망 사회가 단순히 세계화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통신망 사회는 조직의 형태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즉 탈관료제화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기업이 기업 내의 위계구조가 무너지고 권력이 통신망을 통해 실제적으로 활동하는 정보노동자로 이동한다는 것이다. 즉, 초국적 기업도 통신망 사회에서 중대한 위기를 맞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변화하지 않으면 붕괴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용신망 사회에서는 모든 것이 지구적 시장에서의 대응속도와 적응성의 문제이기 때문에 통신망이 매우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기업은 통신망에 대한 접근을 가진 사람들에게 권력을 이양해야 한다고 한다. 카스텔은 또한 노동관행과 고용구조에서 나타나는 변화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이는데, 과거의 노동보다 정보노동이 더 만족도가 높으며, 과거보다 더 개인화가 되어있다고 한다. 또 통신망 사회의 변화된 환경은 사람들이 정보 자본주의의 전반적 변동성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일에서 나타나는 유연함에 적응해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그는 정보 자본주의의 문화적 결과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오늘날 통신망 사회의 가장 중요한 점은 통신망에 어떤 것이 떠도는 것이 아니라 통신망에 대한 접근 자체라는 것이다. 즉 가장 중요한 문화적 영향은 통신망에 대한 접속의 문제이고, 이를 통해 필요할 때 언제나 누구하고도 상호작용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인터넷에 대한 접근의 확장을 정보시대 시민원의 하나로 주장한다. 그러나 통신망이 오락을 중심으로 운영된다면 그것은 진정한 상호작용이 아니라 중앙집권적 세력에 의해 상호작용하게 되는 사람들이 나타날 것이라고 우려한다. 카스텔은 통신망 시스템에 대한 참여의 대가로 그 논리와 언어 진입지점, 암호와와 해독 등에 적응해야 한다고 한다. 이것은 정보통신기술의 문화적 효과는 민주적 커뮤니케이션의 전망보다도 근본적인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또한 카스텔은 초시간적 시간의 개념을 도입하면서 통신망 사회가 시간의 한계를 넘어 영원한 우주의 창출을 추구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널리 알려진 근대사회에서의 시공축약에 관한 논의를 수용한다. 나아가 통신망 사회는 생활양식의 경계 흐리기를 초래하는데 이것 또한 정보통신 문제와 연결시키고 있으며, 초시간성의 문화를 촉진시키는 데 기여한다고 본다. 초시간적 시간의 숭배 속에 우리는 영원한 현재를 살아가게 된다. 그에 따라 우리는 초시간적 정신적 지형에 노출되었고, 체제적 동요, 지속적 즉각성, 연속성의 결여, 즉흥성 등을 조장하는 통신망 사회의 문화 속에서 동시에 나타나는 것이다.카스텔은 사회의 제도와 가치를 변화시키는 의도적인 집합적 행위인 사회운동에 관심을 가졌다. 국민국가는 점점 통신망 사회의 세계화 추세에 따라 도전받고 있고, 그에 따라 국민경제의 통제가 매우 어렵게 되어, 국내적 쟁점에 대해 관심을 가졌던 노동운동은 입지가 심각하게 약화되었음을 깨닫고 있다. 카스텔은 우리 사회는 질서 잡힌 감옥이 아니라 무질서한 정글이라고 진단하였다. 즉 모든 것은 근원이 없고 불확실하며, 전통이 붕괴되고 과거의 확실성이 영원히 사라진다. 이에 대항해 카스텔은 정체성이 형성되어 행위하게 됨으로써 통신망 사회는 저항의 운동과 심지어 기획 정체성을 촉진 할 것이라고 분석한다. 예시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환경운동과 여성운동을 자세히 묘사하는데, 이들 운동의 영향은 엄청났고 앞으로도 분명히 지속될 것이다.카스텔은 통신망 사회가 과거의 계층화 형태를 붕괴시켜 근본적으로 새로운 형태의 불평등이 초래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수평적 기업의 발전과, 세계적 차원에서 정보시대가 조직적이지만 지도적 자본가 계급이 없는 자본주의를 가져 온 새로운 형태의 계층화에 따라 권력관계, 자원분배, 미래전망 등에서의 변화가 수반된다. 오늘날에는 지배계급 대신에 통신망 지향의 숙련된 정보노동자가 자본주의의 운영을 책임지고 있다. 그 대신 일반노동자는 정보 자본주의에서 변화에 대처하기 어렵게 만드는 그들 스스로의 고정성 때문에 지속적으로 위협받고 있다. 이렇게 정보 자본주의 주변으로 내몰린 사람들은 보수가 적고 불안정한 고용기회를 얻고, 최악으로는 조직범죄 집단의 일부로 들어가게 된다. 이러한 새로운 분리가 발생함에 따라 기존의 동원 형태가 붕괴된다. 카스텔의 이런 것들에 대한 강조를 볼때 새로운 시대가 우리에게 도래하였다는 광범위한 영역의 믿음을 요약적으로 보여준다.카스텔은 급진적 정치운동의 주축이 되었던 노동계급은 수적으로 감소하고 있으며 비 육체노동, 특히 여성노동력에 의해 대체되고 있다. 둘째, 노동계급의 사회에 대한 기여가 줄고있다는 점을 근거로 전통적 노동계급의 종말을 예고했다. 결국 일반 노동자들은 초기 훈련과정에서 배운 업무를 매일 반복하며 직업 안정성을 추구함으로써 고정되어 있는 반면, 새로운 정보노동자들은 변화를 적극적으로 추구하고, 정보노동은 오늘날 부의 일차적 원천이 되고 있다.정보노동의 범주는 능력주의라는 사고를 상기시킨다. 전통적 자본주의에서는 노동자들이 부를 창출하고 그 부를 부자들이 상속해가는 것에 반해, 능력주의에서 성공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능력과 교육체계에서의 훈련에 달려있다고 본다.
    사회과학| 2010.03.18| 3페이지| 2,000원| 조회(158)
    미리보기
  • 과학기술과 사회
    표준적인 과학 기술관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과학 기술의 내용자체가 보편적 합리성에 기초한 것으로 가치중립적이라 간주하고, 단지 그것이 사용되는 사회적 구조가 선한 것이냐 악한 것이냐에 따라 과학 기술의 사회적 결과가 좋거나 나쁘게 나타난다고 주장하거나, 과학적 지식이 이해관계에 영향을 받았고 따라서 가치중립적이지 않다고 하여도 그것은 참된 과학이 아닌 사이비 과학이기 때문이며, 올바를 과학적 방법은 이런 사이비 지식을 제거하는데 목적을 둔다고 주장하여 참된 과학적 지식은 가치의 오염에 무관하므로 사회학적 분석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자신을 사회로부터 방어해왔다. 하지만 사회학에서는 과학 기술을 추상적 논리나 도덕성에 입각해서 검토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회 제도와 마찬가지로 과학 기술자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를 경험적으로 분석하는 접근을 취한다. 이것은 과학 기술 활동이 관찰된 현상에 대한 특정한 해석의 선택으로 이루어지고, 이러한 해석의 틀이 훈련과 사회화를 통해서 습득되며, 과학기술자 집단의 사회적 상호 작용에 의해 재생산 되므로 어떤 과학 기술도 사회적 과정을 초월해서 구성될 수 없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즉, 모든 과학 기술이 사회 문화적 산물의 성격을 벗어 날 수 없다는 말이다. 이런 사회적 구성주의의 접근을 따르면 문제는 '과학 기술을 더 빨리 발전시킬 것이냐 아니냐', '선용하느냐 악용하느냐'가 아니라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과학 기술을 발전시킬 것이냐'에 있고, 이는 근본적인 권력 관계의 변화, 사회질서의 변화까지 불가피하게 함축하고 있는 선택이 될 것이다.전통적으로 사회학에서의 과학은 사회적 영향에서 자유로운 특수 영역으로 간주되어왔다. 2차 대전 후 서구가 장기 호황을 누리며, 과학과 사회 진보에 관한 낙관론이 팽배하던 시기에, 사회와 학계에서의 표준적인 과학관의 핵심은 물질세계가 보편적인 자연법칙에 의해 지배되고 있으며, 자연법칙의 진실은 합리성의 보편적 원칙들을 따르는 인간 주체에 의해 밝혀 질 수 있다는 믿음 이었다. 이러한 과학관이결정된다고 보았다, 이리하여 머튼의 기능주의 과학사회학과는 달리 과학 지식의 내용 자체를 다루는 '과학지식사회학'이 출범하게 되었다. 새로운 과학지식사회학을 지탱해주는 인식론적 근거들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특히 증거에 의한 과학적 이론의 과소 결정 명제와 관찰의 이론 의존성 명제가 중요하다. 이 두 명제들은 자연과학에서의 지식 생산이 사회과학적 탐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근거를 제공하였고, 과학 지식을 분석 대상으로 삼는 새로운 과학사회학의 힘찬 출범을 도왔다.1970년대 이후 전개된 과학지식사회학은 과학 지식의 내용이 어떻게 사회적 요인에 의해 영향 받거나 구성되는가를 밝히려는 노력을 해왔다. 지식사회학의 문제의식을 과학에 까지 확장시킨 새로운 접근에 의해 근대 과학은 사회적 맥락과는 무관한 지식이 아니라, 다른 문화적 지식과 마찬가지로 역사성, 가변성을 가지는 특수 지식 체계로 이해될 수 있게 되었다.기술에 관한 사회학적 분석은 오래전부터 존재하였으나 현대의 사회학에 체계적으로 계승되지 못해서, 최근까지 기술사회학은 과학사회학에 비해 크게 뒤떨어진 영역으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최근의 기술사회학 이론들은 한결같이 기술의 내용이 결정되는 과정은 사회적 요인들이 깊게 개입되기는 하나의 사회적 과정이며, 따라서 기술에 수반되는 사회적 결과 역시 이러한 사회적 과정을 이해함으로써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다만 과학지식사회학적 기초가 다양하기 때문에 기술사회학 이론들 역시 다양한 분파들로 나뉘어 있다. 그 중에는 기술의 발전은 자체의 논리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사회 집단들의 이해관계가 개입되면서 다양하게 전개될 가능성을 지닌 불확정적인 것이며, 각 기술적 인공물의 형태는 사회적 협상의 결과를 반영해 준다고 보는 이론도 있고, 기술과학의 진위란 내재적 기준이 있다기보다 서로 다른 행위자들과의 연결망 구축과 경쟁에서의 성패에 달린 것이라고 보는 이론도 있다. 그러나 행위자들의 활동을 중심으로 하여 기술이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과정을 설명발전이 과학에 의해서가 아니라 기술 자체의 동력에 의한 것임을 주장했다. 즉, 과학과 기술의 관계가 서로 독립적인 두 지식들 사이의 상호 작용이라고 주장하였다.과학자와 기술자 집단이 서로 다른 가치 체계를 지닌 상이한 집단임을 암시하는 증거는 여러 가지가 있다. 과학 교육에서는 자연 현상에 대한 합리적 이해, 근본적 원리의 추구 등이 중시되지만, 기술 교육에서는 상대적으로 근본적 원리나 이론의 중요성이 과학에 비해 덜하다. 그리고 기술자사회의 가치는 '효용'과 '디자인'으로 압축해서 표현할 수 있다. 그들은 철저하게 기존의 기술적, 경제적 조건과 가능성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지며 실질적으로 소용이 없는 이론은 별로 주목받지 못한다. 반면에 과학자들은 하나의 이론이 자연현상을 설명하고, 다른 현상을 예측하는가에 관심이 있다. 물론 그들의 연구가 언젠가는 인류의 복지에 기여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만 이런 생각이 그들의 연구의 내용이나 범위를 결정해주는 것은 아니다.과학과 기술의 관계를 규명하는 작업을 위해 과학과 기술을 명확하게 정의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 방법으로는 과학과 기술의 차이를 부각시킴으로서 접근하는 방법이 있다. 1960년대 까지는 과학은 자연을 다루고 기술은 인공을 다루고 있다고 간주했다. 이들은 과학의 법칙은 보편적이고 미래 예측적이지만, 기술의 규칙은 구체적이고 처방적이라는 주장을 이끌어냈지만, 많은 경우 과학의 대상인 자연은 자연 그대로의 자연이 아닌 인간이 만든 자연이었으며, 기술자의 인공도 자연과 유리된 인공이 아니라 자연의 연장으로서의 인공이었던 것이기 때문에 그 주장은 본질적인 차이가 될 수 없었다. 또 다른 차이점은 동기와 과정인데, 과학의 동기는 지적 호기심이고, 기술의 동기는 실질적인 유용성이라는 것이다. 비슷한 구분으로 과학은 궁극적으로 자연을 이해하기 위한 목적이고, 기술은 인공물을 만들고 개량하기 위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즉 '과학은 지식이고 기술은 물건이며, 과학은 이론이고 기술은 실천이다.', 또 '과학은 정신노동의 산물 인데, 암묵적 지식이란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지식이다. 이런 암묵적 지식은 비법의 구전 등의 '접촉'을 통해 전달된다. 현대 기술과 공학에서는 암묵적 지식의 영역이 많이 감소되었으나 아직 기술 지식의 중요한 특성으로 남아 있다.1973년 과학사학자들과 기술사학자들은 한 학회를 열었는데, 이 학회에서 발표된 논문들은 과학이 기술에 영향을 미치고, 기술이 다시 사회에 영향을 미친다는 어셈블리 라인 식의 과학과 기술을 비판하고, 과학지식과 기술지식 사이의 동등한 수준의 상호 작용을 통해 상호 영향을 주고받음을 지적했다. 특히 공학에서 볼 수 있는 체계화된 기술 지식의 특성은 무엇이며, 과학적 공학의 성립에 과학이 응용되었다고 할 만큼 과학의 영향이 크지 않았는가 등의 문제들이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겨졌다. 휴스는 공학의 내용과 방법이 과학을 따온 것이 아니라 엔지니어의 적극적 실천의 결과임을 강조함으로써 이후 공학을 이해하는 데 하나의 넓은 틀을 제공하였다. 1970년대 후반부터 실제로 공학이 과학적이라고 불릴 수 있는 여러 근거를 가지고 있지만, 과학과는 다른 무엇이 있다는 점을 여러 각도에서 밝혀냈다. 기술사학자들은 19세기 중엽 이후 등장한 '과학적 공학'이 마치 과학의 이론을 기술에 응용한 것과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지만 그 내면에는 엔지니어들이 과학의 법칙이 인공적인 기술에 적용될 수 없음을 인식하고 과학과는 다른 독자적인 지식 체계를 세웠음을 강조하였다. 1980년대 기술사학자들은 공학을 과학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율적인 기술의 지식으로 간주했으며, 점차 과학과 기술을 독자적으로 발전하면서 상호 작용하는 두 개의 독립된 분야로 간주하기 시작하였다.하지만 지식으로서의 기술에서 출발하여 기술의 독자성을 강조한 주장들은 기술을 지식으로 본 대신 과학도 그대로 지식으로, 즉 이론적인 활동으로만 보았다. 하지만 기술의 지식적 측면이 강조되기 시작하던 때 몇몇 과학사회학자들은 '실천으로서의 과학'이란 명제를 가지고 과학에 대한 이해를 재조명 하였다.그러나 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과학자의 실천에 주목함으로써 과학과 기술의 상호 작용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다.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과학적 효과들 중 많은 것들이 기술 산업으로 유입되기도 한다. 물론 과학적 효과, 기기, 인력이 과학자의 실험실에서 기술로 유출되는 것만은 아니다. 그 역방향의 유입도 무시할 수 없다. 이렇듯 현대 거대과학의 경우 엔지니어와의 협동 연구와 그에 따른 역할 분담은 필수적이다. 실제로 20세기 중요한 기술적 발견이라는 것들을 살펴보면, 트랜지스터의 개발에서의 물리학자와 화학자 전자공학자의 협동연구, 레이저의 발명에서의 물리학자와 전자공학자들의 상호작용을 보면, 과학적 관심과 기술적 관심, 과학자와 기술자가 떨어져 있지 않고, 서로 관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과학 연구와 산업 기술의 거리가 가까울 때 이 둘에게 모두 유익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과학과 기술은 교육과 학회, 규범과 같은 제도에서 어느 정도 분리되어 있지만, 기술자들의 실천 속에 과학의 다양한 요소들이 사용되고 있으며, 과학자들의 실천에 기술의 다양한 요소가 관련되어 있듯이, 이 둘의 경계를 찾는다는 것은 무척 어렵다. 앞에서의 많은 논의를 통해서 현대 기술이 전부 과학의 응용인 양 생각하는 것이나, 현대기술은 과학과 무관한 독자적인 영역인양 생각하는 것 모두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모든 과학 연구가 기술 산업적 응용을 낳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모든 기술이 과학 이론, 법칙의 응용은 더더욱 아니고, 과학과 기술은 서로가 만나는 다양한 종류의 접점들을 만들어 왔고 이런 경향은 계속 증대 되고 있다.세계 2차 대전 중 과학 기술자들의 전쟁 연구와 관련하여 '연구 개발'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연구 개발'과 같이 연구와 개발을 묶어서 생각하는 것은 둘 사이의 실질적인 차이를 무시하는 것이다. 하지만 순수연구와 응용연구 사이에 확고한 경계를 정하는 것도 오류인 것이, 둘 사이를 순수연구는 산업 기술과 무관한 것이고 응용 연구는장했다.
    사회과학| 2010.03.18| 5페이지| 2,000원| 조회(172)
    미리보기
전체보기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5월 22일 금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7:44 오후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