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Bronze개인인증
팔로워0 팔로우
소개
등록된 소개글이 없습니다.
전문분야 등록된 전문분야가 없습니다.
판매자 정보
학교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직장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자격증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판매지수
전체자료 4
검색어 입력폼
  • 그리스도인의 성화에 미치는 성령의 사역
    그리스도인의 성화에 미치는 성령의 사역1. 시작하는 말우리나의 기독교는 국민 총 인구의 25%가 넘는 1,200만명 이상이다. 숫자상 막강한 종교이다. 그리고 기독교의 메시지는 매일 수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지고 있다. 또 교회도 주일 예배에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 3% 정도의 염도를 가진 바닷물은 거대한 항공모함과 500,000톤이 넘는 초대형 유조선을 띄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굵직굵직한 비리의 한 가운데 크리스챤들이 위치한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부르심에 따른 칭의 이후 하나님의 성화의 사역에서 멀어져 있는 명목상의 그리스도인, 즉 한 마디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상실함으로서 그리스도인이 서 있어야 할 자리를 모르고 아무 곳에나 서 있었기 때문이다.출애굽 얼마 후 이스라엘 민족은 시내산 아래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법(율법)을 받기 전에 먼저 하나님은 그들의 정체성을 확신시켜주시면서 하나님을 섬기며 장차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확장시켜나갈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나에게 속한 소유”라고 말씀하셨고,) 하나님은 마지막 날에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나라에 끝까지 남은 자들에게“나의 특별한 소유”라고 말씀하셨다)하나님의 특별한 소유로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레위기 11:45). 하나님은 이 말씀을 계속 하신다(레 19:2; 20:7; 벧전 1:15-16; 마 5:48...).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자기와의 사귐에 불러내시는 하나님의 엄숙한 명령에서 나오는 성화를) 거부한 이스라엘 백성의 결국은 주전 722년 사마리아의 함락과 주전 586년 예루살렘의 함락이었다. 주전 539년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은 또다시 말라기 선지자 이후 하나님의 말씀이 끊어진 암흑기 400년으로 들어갔다.이 땅위에서의 모든 삶을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살도록 예수 제자로서의 부름 받은 우리의 삶은 끊임가들은 이 구절은 성례(세례와 성찬) 역시 성화의 방편이라는 점을 제시한다. 즉 말씀을 통하여 교회를 죄악으로부터 정결하게 하신다. 그 외에도 디도서 2:14, 고린도전서 1:30에서도 역시 그리스도는 우리의 의로움과 거룩함이 되셨다고 언급하였다.)성령 하나님 역시 우리의 성화의 주체이시다. “하나님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벧전 1:2),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로마서 15:16).그러나 삼위 하나님의 사역은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기를...원하노라”(살전 5:23).)따라서 성화는 결코 우리 스스로, 우리 자신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2.2. 성화의 목적모든 신자들, 그리고 오직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 거룩하게 된 사람들 속에는 거룩하게 된 무엇이 있다. 성화의 주체는 신자의 전 인격에 있는 것이다(the whole person). 성화는 영혼의 한 가지 기능적인 문제가 아니며 몸의 일부분의 문제도 아니다. 성화는 전 영혼(whole soul)과 온 몸(whole body)의 문제이며, 모든 믿는 신자의 영혼과 온 몸의 문제이며, 모든 믿는 신자의 완전한 본성(entire nature)의 문제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반드시 설명되어져야 한다.)우리의 전 본성은 본래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 우리의 전 영혼은 그 기능과 능력면에서 틀림이 없었다. 이것이 하나님의 모양인 것이다. 몸은 하나님의 계획대로 된 것으로 자연적인 필요를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의 본질상 필요한 부분으로서 하나님의 형상과 관계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본래적으로 의로운 협동에 의해서 된 일이다.)죄가 들어옴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형상은 손상을 입었고 그리고 그것을 잃어버렸다. 이것은 우리 영혼의 어떠한 하나의 능력이(one power) 소멸된 것이 아니고, 한 리 안에 있는 죄를 죽이는 사역을 하시는 분이시다. 성령께서는 죄를 죽이시는 분이시다. 이것은 또한 우리들의 의무이다. 우리는 성령의 은혜로 죄를 죽이는 일을 실천해야 한다. “너희가 영으로서 몸의 행실을 죽이면(mortify) 살리라.”(로마서 8:13) 우리는 몸의 행실을 죽여야 한다. 우리는 육체를 죽여야 한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이것을 할 수 없다. 이것은 성령 안(in)에서 또는 성령에 의해서(by) 될 수 있는 일이다. 그리스도인들의 마음 속에 있는 죄의 세력과 죄의 치세는 성령에 의해서 약화되고 손상을 받아 마침내는 멸망받고 만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은 확고하게 증거되었고 널리, 그리고 충분하게 증명되었다.)모든 죄를 죽이는 근거는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이시다. 성령께서는 당신의 전(temple)이 되는 그리스도인들의 인격 속에 거하신다. 그러나 죄로 오염되고 타락한 사람의 심령 속에 성령께서 계신다는 것은 적당하지 않다. 성령께서는 죄와 죄의 영향력이 미치는 곳에 계시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그래서 성령께서는 죄를 옮겨 놓으시고 그 대신 성도를 소유 하신다. 성령께서는 그 사람 안에 계시면서 그의 거룩하심으로 그 사람을 거룩하게 만드신다. 이것이 우리 안에 있는 죄를 척결하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성령께서는 우리들의 마음 속에 있는 좋지 않은 습관과 요소, 성질, 행동 등을 뽑아버리시고, 정반대의 마음을 주시고 좋은 습관, 요소, 성경, 행동 등을 심어주신다. 성령께서는 죄를 죽이는 사역을 그의 은혜를 통하여 실제적으로 공급하고 지원한다. 왜냐하면 죄를 척결하는 데에는 성도들이 성화되어 적극적으로 그들의 의무를 실행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신적인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를 지도하시고 도와주시는 성령께서는 우리들에게 죄를 박멸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고 죄를 죽이는 사명을 또한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으로부터 복음의 은혜와 복음의 의무에 대해서 배워야 한다.)3.2. 죄 죽임과 소생우리는 이제 다음과 같은 것을 질문해야 한다못박고 모든 육의 일에서 자신을 금하는 실천을 훈련해야 한다. 비록 그들 안에 육의 쓴 뿌리가 남아 있어 본성의 부패로 인도하려 하지만, 성령을 좇아 살 때 위로부터 받는 능력이 그것을 계속하여 발 아래 밟아서 그것이 일어나 그들을 괴롭히지 못하게 한다. 그리하여 계속되는 새로운 공격 속에서도 영에 속한 신자들은 성령으로 충만하여 그것들을 분쇄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리는 기회를 삼는다. 이러한 계속적인 밤낮의 투쟁과 훈련을 통해서만 마음과 삶의 거룩함을 이루는 성화의 길이 진행되며, 성령의 열매들을 맺게 되는 것이다.)4. 성화를 위한 성령의 적극적 사역4.1. 성화와 그리스도인의 행동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성령 충만을 받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한복음 15:5)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을 통해 신자 안에 거하신다.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해지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통해 일하시고 열매를 맺게 하신다. 성령 충만을 받지 못하며 열매도 맺지 못한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구원 받기 전에도, 또 신자가 된 후에도 우리의 죄를 깨우쳐 주시고, 복음을 깨닫게 하시고 하나님 나라로 이끄시고, 복음 전할 힘을 주시고, 기도 가운데 우리를 인도하신다. 사실 우리는 성령이 없이는 아무 일도 못한다.)우리가 구원의 입구에서 영적 변화를 체험하면서, 즉시 죄의 세력이 사라지고 마음에서 뿌리뽑혔다고 상상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죄는 일시적으로 정지된 상태에 있었지 멸절된 것은 아니며, 유혹이 다시 오며, 죄가 되살아난다는 것이다. 신자의 현실적 실존 체험 속에서는 바울 사도의 말처럼 두 세력, 즉 상반되는 두 원리인 육과 영이 서로 싸우며, 우리의 본성이 하나님의 은혜와 적대하고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신자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성령의 증거를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죄의 권세 정욕과 육의 악한 세력들이, 비록 그를 정복하지는 못하지만, 아직 “지배”임을 밝히는 것이다. 에베소서 5:18은 성령 충만을 알코올의 지배를 받는 것과 대비시킨다. 하나님이 이 본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은 생각 없는 물질로 자신을 채웧 행동의 지배를 받지 말고, 성령으로 충만하여 그 분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 즉, 성령께서 우리의 행동을 다스리셔야 한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삶을 이끄시면 타고난 기질의 지배를 받던 옛날처럼 행동할 수 없게 된다. 성령께서 우리의 감정을 다스리시는 까닭에 행동이 변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감정적인 모습 그것이 우리의 본 모습이다.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면 자신을 추스르지 못한다. 성령께서 우리의 삶을 다스리시면 타고난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사랑과 희락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로 행할 수 있다. 한마디로 그 사람의 행동을 보면 그가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 자신이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인지 확인하고 싶다면 스트레스를 받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지 보면 확실하다. 바울과 실라는 복음을 전하다가 투옥되자 기뻐하고 찬양함으로 성령 충만함을 드러내 보였다. 그것은 인간에게 부자연스러운 행동이다. 그리고 성령 충만한 삶의 증거이기도 하다. 우리가 삶의 시련과 고달픔을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감사와 기쁨으로 맞게 된다면, 그것은 성령이 하신 일이 분명하다.)5. 성화된 그리스도인의 의무“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립보서 2:13)” 여기에서 의미하는 뜻은 우리의 순종과 구원의 문제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12절에 더 잘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두렵고 떨림은 구원받는 데 필요한 요소이다. 모든 은혜스러운 사역은 내적으로는 우리의 의지가 있어야 하겠고 외적으로는 적당히(proper) 의무를 의행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 즉 내적인 요소와 외적인 요소이다.)
    인문/어학| 2009.11.19| 9페이지| 3,500원| 조회(384)
    미리보기
  • 12소선지서에 대한 단일체적 해석
    12소선지서에 대한 단일체적 해석1. 서 론최근 들어 학자들은 12소선지서가 한 권의 책으로 편집되었는가, 아니면 짧은 개별 선지서들을 읽기 위한 합리적 방식으로 수집되었는가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그중 애드가 콘래드와 폴 하우스와 같은 학자들은 12소선지서를 단일체적으로 해석을 하는 것에 대한 연구를 주력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12소선지서를 이해하기를 부분들을 통해 전체를, 전체를 통해 부분을 이해하려고 했다.12선지서의 저마다 다른 독자들은 마치 다른 감상자들이 한 작품의 다른 특징들에 주목하듯이 12선지서의 다른 특징들에 주목할 것이다. 한 작품을 보거나 읽을 때 드러나는 특징들은 전체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것이다.)영어 성경과 히브리 성경의 본문 배열 가운데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는 선지서 말미에 이르러 드러난다. 영어 성경은 12소선지서를 개별 예언서들로 간주하며, 이 책들을 소선지서라고 칭한다. 이러한 명칭은 그 책의 중요성 보다는 그 분량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반면 히브리 성경은 이 책들을 열두 부분으로 전개된 단일 예언 작품으로 간주한다. 더욱 애매한 사항은 이 같은 두 종류의 12소선지서 배열이 수세기에 걸쳐 전해 내려왔기 때문에, 어느 것이 원 순서인가를 결정하는 일이 더욱 힘들게 되었다는 점이다.)소선지서란 말은 기록된 예언의 분량을 기준으로 한 말이다. 비교적 적은 분량의 이 선지서들이 우리에게 주는 이점은 그들의 메시지를 통해 우리가 많은 예언 문학의 특징과 상징과 주제들의 복합성을 깊이 연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연구가 활발히 일어남에 대해서 폴 하우스나 애드가 콘래드와 같이 12소선지서를 단일체적으로 해석하는 학자들의 입장을 중심으로 해서 그들의 견해를 살펴보고, 12소선지서를 왜 단일체적으로 봐야하는지를 이 글을 통해서 살펴보려고 한다.이를 위하여 12소선지서를 단일체적으로 해석하기 위하여 12소선지서의 상호 연관성을 살펴보며, 12소선지서에 나오는 사상의 의미를 주제별로 간략하게 파악하여, 단일체적 해석서를 전단일 문예체로 취급한다. 그는 트렌스 콜린스와 같은 편집 비평학자들의 견해에 동의 한다: “선지서의 구성은 현대 양식의 구성-여기서 다양한, 심지어 상이한 항목들의 병렬은 양식의 문제로서 세련된다-과 매우 일치한다.” 그렇지만 이 문예 구성체를 해석하기 위한 에드가 콘래드의 방법론은 시간을 거쳐 발전된 12선지서의 통시적 역사에 집중했던 편집 비평과는 다르다. 에드가 콘래드는 12선지서를 현재의 본문 그대로 이해하려 한다. 그는 우리그 한 문예체를 그 자료들이나 발전과정을 탐구하지 않고 본래의 한 문학 작품으로 감상하듯이 12선지서를 이해하고자 한다.)2.4. 12소선지서의 개요에드가 콘래드는 12선지서를 두부분으로 나눈다: (1) 호세아에서 스바냐까지 (2) 학개에서 말라기까지. 두 부분의 병렬은 차이점을 돋보이게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차이점 가운데 어떻게 12선지서가 하나의 전체로 구성 될 수 있는가를 알게 된다. 이 차이점들은 다음과 같다: (1) 전반부(호세아-스바냐)는 앗수르의 발흥 및 그 세력을 보여주는 웃시아 왕에서 요시아 왕의 기간을 역사적 배경으로 소개하는 반면, 후반부(학개-말라기)는 유다의 왕가가 몰락한 페르시아의 다리오 왕 통치 시대를 그려준다; (2) 전반부는 선지자들의 정체가 혼란스런 시기임을 보여주는 반면, 후반부는 그 정체가 명확해진다; (3) 전반부는 천사들/사자들(??????)의 출현을 족장 야곱 시대에로의 추억으로 이해하며, 이러한 회상이 단 한 곳, 즉 호12:5(영역본 12:6)에 발견될 뿐이지만 후반부는 천사들/사자들(??????)로 가득하다. 그렇지난 이 두 부분의 병렬은 우리로 하여금 그 전체를 보도록 도와 준다. 한 구성 작품으로서의 12선지서는 과거 선지자들의 흥망성쇠와 천사와 같은 사자들의 출현 및 그 시대를 보여준다. 12선지서의 예언은 곧 종식될 과거의 제도로서 그 가치를 지닌다.)2.5. 12소선지서의 상호 연관성2.5.1. 호세아는 야곱, 출애굽, 광야의 생활, 가나안 정착, 다윗의 선택, 위가 없다. 에돔의 행위는 오직 여호와의 직접적인 간섭만이 이방인을 구할 수 있음을 입증해준다. 회개는 기대할 수 없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날은 단지 이스라엘만이 아닌, 온 백성을 정화시키는 대리자로서 임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간섭은 요나의 배경을 마련해준다.)2.5.5. 요나는 요엘, 아모스, 오바댜의 몇몇 진술들로 말미암아 야기될 수 있는 점들, 즉 여호와가 비유다 족속들을 상관치 않는다는 우려를 완화시켜준다. 요나는 심지어 옛 이스라엘의 모든 대적들 중 가장 악하고 강력한 족속인 앗수르인들조차 사랑하시고 돌보신다는 사실을 증거한다. 그러나 12소선지서의 흐름은 이러한 관점에 대한 확증을 필요로 한다. 하나님은 앗수르인들로 하여금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을 깨닫도록 하기 위해 한 선지자를 보내 말씀을 선포케 하신다. 사명을 꺼리는 요나의 주저함은 이스라엘과 나라들간의 반목에 집중하는 12소선지서의 강조점과 연속선상에 있다. 이러한 반목 현상은 그들이 여호와의 날까지 서로 화목하지 못할 것임을 보여준다.)2.5.6. 미가는 아브라함 시대로부터 종말에 이르는 하나의 완전한 역사를 바라본다. 하나님의 족장 약속은 먼저 출애굽, 가나안 정복 그리고 다윗 왕조를 가져다주었다. 그 다음 왕국의 붕괴가 찾아온다. 왕국의 파멸 후 새 언약, 새 정복, 새 다윗 및 하나님의 새 도성이 도래할 것이다. 이러한 약속들은 일련의 자손들이 역사와 결부된 약속들, 즉 그들의 현재를 지탱케하며 그들의 미래에 희망을 던져주는 약속을 소유하고 있음을 뜻한다. 전대의 예언들과 같이, 미가는 역사를 단기적 관점과 장기적 관점으로 해석한다. 그리하여 미가서는 현재의 실제들과 아울러 미래의 가능성 또한 무시하지 않는다. 미가가 종결 될 때 화와 갱신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은 예고되었을 뿐 아직 성취되지 않았다. 하나님은 청종할 것을 요구하시면서 이스라엘과 열방의 죄악을 폭로하신다. 이에 대해 청중들이 합당한 반응을 보이지 않음은 심판의 필연성을 시사해 준다. 이제 12소선지서를 바라본다. 학개는 이와 같은 보다 더 위대한 미래가 성소를 건설함으로써 하나님 왕국을 구하는 이스라엘의 고대와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학개는 실로 하나님의 역사를 주전 520년에 고정시킨다. 그러나 그는 이후에 이루어질, 아직 구체화되지 않은 보다 큰 하나님의 역사를 전망한다. 그의 시간관은 분명 그 전대의 선지자들과 동일하다.)2.5.11. 스가랴가 학개와 같은 동시대 사람들처럼 동일한 소명을 품고 사역한다 하더라도 그의 성격과 표현은 그 동시대 사람들과는 매우 다르다.)스가랴의 예언은 학개의 예언을 보충한다. 그도 역시 성전의 완공과 영적생활의 회복에 관심을 가졌다. 학개는 새 시대가 동터 오는 사실과 관련하여 백성으 책임감을 강조하였다. 스가랴는 포로 후기 공동체가 그들의 조상들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며, 약속한 구원을 이루어 가는 점에서 그를 신뢰하도록 촉구하였다. 학개와 마찬가지로 그도 성전과 다윗왕조의 미래에 큰 중요성을 부가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의 백성과 함께하는 하나님의 임재에 초점을 맞추었고, 이 점에서 그의 관심은 에스겔이 가졌던 관심에 더 가까웠다.)스가랴는 과거를 너머 현재의 상황과 기회를 숙고하기에 이른다 그는 하나님의 백성이 회복에 관한 예언의 말씀이 그들 자신의 세대에서 어떻게 성취되어지고 있는지를 보게 하였다.)2.5.12 말라기는 12소선지서와 타선지서를 긴밀하게 연결시킨다. 12소선지서를 마감하는 말라기는 이스라엘과 열국의 죄악, 피할 수 없는 징벌 및 심판 이후에 찾아올 갱신을 보여준다. 약 주전 450년을 배경으로 하는 말라기는 앗수르의 사마리아 침략으로부터 바벨론의 예루살렘 함락을 거쳐 선민과 약속의 땅을 지배할 페르시아의 통치까지 이르는 12소선지서의 역사적인 대서사시를 마무리한다. 그리고 12소선지서가 보여 준 미래를 강조한다. 즉 말라기는 남은 자들을 위해 역사에 개입하실 하나님의 간섭하심에 초점을 둔다. 달리 말하자면, 말라기는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명확히 틀을 제공한다. 에덴 동산으로부터의 추방과, 바벨에서 언어와 민족들의 나누임,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이집트에서의 재앙과 승리, 정복, 이스라엘과 유다의 역사에 있어 하나님의 심판, 사마리아의 멸망(722 B.C.), 산헤립의 예루살렘 포위(701 B.C.), 니느웨의 멸망(612 B.C.), 이집트의 패배와 바벨론의 흥기(605 B.C.), 예루살렘의 멸망(586), 바벨론의 종말(538 B.C.)-이 모든 것이 여호와의 날의 보다 큰 종말론적 틀 안에 위치한다. 각 심판은 여호와의 날의 개입이자 서곡이다. 각 심판은 반드시 신의 현현으로 해석되어야 하며, 각 신의 현현은 최종적인 여호와의 날을 지시한다. 그때에는 모든 반대가 없어지고, 하나님이 그의 충성스러운 신민들 가운데 함께 거할 것이다.)사도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5:1-15에서 여호와의 날 교리를 발전시킨다. 그의 가르침은 선지자들의 가르침과 명백히 연속되나, 세 가지 면에서 불연속을 보인다. 첫째, 그리스도가 죄인들에 대한 하나니므이 심판을 극한의 정도까지 겪으면서 하나님의 진노를 감당하였다. 둘째 남은 자들은 예수가 메시아이며 주이심을 고백하는 유대인과 이방인들로 이루어진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는 만물을 그의 지배 아래 둘 영광의 주이다. 그는 모든 반대가 제거될 때까지 그의 왕국을 다스리도록 아버지에 의해 임명된 거룩한 전사이다.)그리스도 안에서 주의 날을 고대하며 사는 경건한 자들은 “밤에 도적같이”(살전5 : 2 ; 참고, 벧후 3 : 10) 그리스도가 갑작스럽게 오시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피할 수 없는 멸망이 홀연히 이르는 것은 모든 불경건한 자들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이스라엘은 보통 “여호와의 날”이 이 나라가 변호를 받는 날, 용사이신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적들에게 심판을 행하시는 날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아모스는 이 개념을 뒤집었다. 여호와의 날은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을 의미했으며, 용사이신 하나님은 이 백성의 죄를 심)
    인문/어학| 2009.05.28| 11페이지| 3,500원| 조회(871)
    미리보기
  • 학기 중 리포트인 소논문입니다. 구제를 위한 바울의 헌금 모금과 분배에 대한 성경의 원리와 교훈에대한 내용입니다.
    구제를 위한 바울의 헌금 모금과 분배에 대한성경의 원리와 교훈200610014 박성철목 차1 서론 / 11.1. 연구내용 / 22. 본론 / 32.1. 바울의 헌금신학 / 32.2. 성도들을 돕는 헌금 / 42.3. 바울의 재정에 관한 생각 / 52.3.1. 바울의 재정정책 / 52.4. 헌금의 자세와 목적 / 72.5. 소유분배의 방법 / 83. 결론 / 9참고도서 / 111. 서론어느 교회 추수감사절에 주일학생들이 사과, 감, 배 대추 등을 감사 예물로 교회에 가져왔다. 그 날 오후 성가대원들이 연습도중 그 과일들을 나누어 먹었다. 그것을 본 주일학생 하나가 하나님께 바친 과일들을 왜 성가대원들이 먹느냐고 어머니께 물었다.과일을 성가대원들에게 준 교회의 처사나 그것을 먹은 성가대원들이 잘못을 저질렀다 할 수 없으나, 그렇다고 하여 그 어린 마음의 분노를 단순히 유치하다고 웃어넘기기도 어렵다. 차라리 그 과일을 양로원이나 고아원에 보냈더라면 주일학생의 불만도 듣지 않고 오히려 성경 교육의 좋은 소재가 되었을 것이다.교회에 바친 돈이라 하여 다른 돈과 특히 다른 것은 아니고 교회의 사역을 위하여 정당하게 사용하는 것이 나쁠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재정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은 그 돈은 성도들이 하나님께 바친 돈이란 사실이다. 돈 자체가 달라서가 아니라 바친 목적이 신성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른 어떤 돈보다 더 신중하고 깨끗하며 투명하게 사용해야 할 것이다.일반적으로 불의하게 번 돈은 아무렇게나 쓰고 피땀 흘려 번돈은 매우 아껴가며 쓴다. 우리나라에 과소비와 사치, 낭비가 극심한 것은 불로소득을 누리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는데 일리가 있는 설명이다.물론 그리스도인들은 정직하게 열심히 일해서 소득을 얻고 따라서 그 돈을 매우 조심스럽고 귀하게 아껴 써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성도들이 하나님께 바친 돈을 쓸 때는 개인의 돈보다는 훨씬 더 조심스럽게, 가장 정직하고 깨끗하게,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가 언급한 성경의 여러부분을 예를 들면서 왜 예루살렘을 위해서 헌금을 해야 했는가를 살펴보도록 한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서 바울이 제시한 헌금의 다양한 동기들과 그 중요성을 알고 현대 교회에 헌금의 참 의미도 제안할 수 있을 것이다.2. 본론2.1. 바울의 헌금신학바울은 고린도후서 8:1-6에서 마케도니아 지방의 교회들을 예로 들면서 그들이 극심한 가난에도 불구하고 자진해서 많은 헌금을 한 것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라고 했다. 이럴 경우 헌금은 자신을 먼저 주께 바쳤다는 헌신이 전제된다. 또한 다른 사람을 위한 헌금은 믿는 자들에게 베풀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대한 합당한 응답이라고 한다.)“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8:9)그러므로 헌금에 참여함은 첫째, 다른 사람을 위해서 스스로 가난해지신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이 된다. 둘째, 바울은 헌금을 유대인의 영적 빚에 대한 이방인들의 물질적 상환으로 이해함으로써 유대인들의 우선성을 인정한다. 셋째, 그는 ‘공평’이라는 원칙을 내세우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필요한 만큼 다 똑같이 만나를 먹었던 것처럼, 넉넉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궁핍을 덜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여유 있는 교회와 형편이 어려운 교회 사이의 “섬김”과 “봉사”의 원칙을 제시한다.)바울은 헌금을 성전세와 같은 것으로 제도화하지 않고, 필요할 때 교회에 그 필요성을 설득하면서 모금하였다. 그는 그때마다 애 헌금을 해야 하는가, 낼 때에는 어떤 심정으로 할 것인가를 가르치고 있다. 그는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헌금을 위해 이방 교회들이 예루살렘 교회에게 영적 빚을 졌기 때문에 그 대가로 물질적 헌금을 해야 한다든지, 공평의 원칙에 근거하여 지금 낼 수 있는 사람은 마지못해 하지 말고 축복을 받은 사람의 행위로서, 복을 받은 사람의 행위로서 너그러움을 보이라든지, “모금”, “호의”, “섬기”, “선물들에게 특별히 거룩한 날이다. (2) 각 사람이 참여하여야 한다. 바울은 소수의 부유한 자들이 그 사업을 도맡아 모든 영광을 다 누리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교회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에 분열이 생기게 된다. (3) 수입에 따라 드려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번영케 하심으 따라 매주 얼마씩 드려야 함을 말한다. 이처럼 구제 사업은 체계적이어야 한다.)이렇게 구제금이 모아지면, 다음 단계는 그것을 예루살렘에 전달하는 것이다. 바울은 자기가 고린도교회에 가면, 그들이 인정한 사람에게 편지를 서 주어서 직접 선물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가게 하겠다고 말한다.(고전16:3) 여기서 생각해볼 것이 있다. 왜 교회가 인정하는 대표가 구제금을 가지고 가서 전달해야 하는가? 두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많은 돈(당시에는 동전)을 전달하는 것이 안전과 책임이 따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만이 유일한 이유는 아니다. 바울이 볼 때, 교회의 대표가 직접 가서 전달하는 것은 선물 그 자체만큼이나 중요하다. 특별히 그 섬김이 이방 교회와 유대 교회의 하나됨에 기여하기를 원한다면 더욱 그렇다. 사람은 구제금 모금에 얽힌 이야기와 주는 자들의 마음까지도 함께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울 자신도 합당하다면 같이 갈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전16:4))2.3. 바울의 재정에 관한 생각주님은 그의 가르침에서 돈 문제에 대하여 놀랄 만큼 두드러진 강조를 하셨다. 이런저런 방법으로, 공관 복음서에서 6구절 중 한 구절에, 그리고 주님께서 드신 38개의 예화 중 16개에 돈이 소재로 들어가 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는 돈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인생의 중요한 항목 중의 하나라는 것을 인정하셨던 것이다. 돈은 우리의 대화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 중의 하나요, 가장 열심히 추구하는 것 중 하나이기도 하다. 돈은 아무도 무관심할 수 없는 것이다.)바울은 이 보편적인 문제를 매우 잘 알고 있었고, 따라서 돈을 다루는 데 있어서 매우 신중을 기했다. 새로 생긴 교회들에게 재 않았다. 바울이 선교한 네 개 지역의 어느 교회도 예루살렘 교회나 안디옥 교회에 재정적으로 의존하였다는 기록이 없다. 바울은 처음부터 자신이 세운 교회들이 자립할 것을 기대하였다. 바울 자신이 선교지의 교회를 경제적으로 도울 수 없었고, 바울의 파송 교회인 안디옥 교회 역시 경제적인 도움을 줄 수 없었다. 그러니까 아예 처음부터 자립이라는 용어 자체를 사용할 필요도 없이 모든 교회는 당연히 자립하는 교회여야 했다. 실제로 바울이 선교한 지역의 교회들은 모두 재정적으로 자립한 교회들이었다. 오히려 그 교회들은 예루살렘 교회의 가난한 사람들을 도왔다.)마지막으로 바울은 선교지의 교회들이 스스로 재정을 운영하도록 하였다. 바울은 어느 교회의 재정 문제도 간섭하지 않았다. 물론 그가 예루살렘 교회의 가난한 자들을 위한 구제 헌금을 모금하였지만, 그는 단지 그리스도인으로서 그 형제들을 돕기 위한 사랑을 나누자는 의미에서 모금을 요청하고 그들이 자발적으로 헌금한 것을 전달하는 역할만을 감당하였다. 바울이 이처럼 처음부터 선교지의 교회들로 하여금 선교사를 의지하지 않도록 하고 바울 자신도 선교지의 교회의 재정에 관한 한 스스로 운영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바울이 빠른 시간 내에 선교지의 교회를 떠나도 교회가 계속해서 서갈 수 있도록 하였다.)바울의 이같은 재정 자립 정책은 우리를 매우 의아하게 만든다. 바울에 의해 세워진 교회들이 어떻게 스스로 재정을 운영할 수 있는 자립 교회가 되었을까? 도대체 어떻게 선교지 성도들의 능력만으로 선교를 감당할 수 있었을까?다음과 같은 이유를 생각해볼 수 있다. 그는 봉급을 지불하는 사역자를 쓰지 않았다. 평신도 중에서 헌신되고 지도력이 있는 사람들을 장로로 세워서 그들로 하여금 모든 목회 사역을 감당토록 하였다. 물론 후에 교회가 성장하여 전임 사역자를 대우할 만한 능력이 생겼을 대는 전임 사역자를 모셨겠지만 일단 초기에는 봉급을 지불하는 전임 사역자를 고용하지 않았다. 그는 또한 모임을 위한 건물을 세우지 않았다. 그의 사역은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원하여 헌금할 때 하나님은 기쁘게 받으신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도 자원하여 그들의 형편과 처지를 따라 헌금에 참여하기를 바란다.)바울은 어려움 중에서도 이렇게 헌금하게 하는 목적을 말한다.) 바울은 평균 혹은 공평의 원리를 제시한다 이 헌금의 목적은 예루살렘 성도들을 평안하게 하고 고린도 교인들은 어렵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에서 공평의 원리를 실현하려는 것이다.)고린도후서 8:14)에서는 바울이 여기서 산술적 평균을 의도한 것은 아니다. 그의 의도는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에서 여유 있는 사람들이 부족한 사람들을 돌아보게 하려는 것이다. 그것은 나아가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에서는 부자도 없고 가난한 자도 없는 공평을 실현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공평의 원리를 성경을 인용한다.) 만나 이야기에서는 각자가 거둔 양이 기적적으로 필요에 따라 동일하게 되었는데, 바울은 여유있는 자가 잉여물을 부족한 자에게 제공함을 통하여 공평의 실현을 촉구한다. 그러나 바울은 로마서 15:27)에서 제시된 것과 복음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일치에 관한 것은 언급하지 않는다.)바울은 이 헌금의 목적에 관한 교훈을 결론지으면서 하나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하나님의 말할 수 없는 은사”란 하나님의 지극히 풍성한 은혜이다. 바울은 이 직무가 단순히 이방 교회들의 헌금을 거두어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해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에 참여하는 사람들과 수혜자들 모두에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하게 제공되는 사역임을 깨달았다. 바울은 그렇게 우리가 예상할 수 없을 정도로 깊고 풍성한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한다.2.5. 소유분배의 방법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분배에 대한 방법은 분명하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선물로 주신 것은 나누어 가져야함이 마땅하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누어 가지려고 하지 않는 처사는 우상 숭배자와 같은 처사이다. 이 명령은 명백할 뿐만하니라 소유의 상징적 기)
    인문/어학| 2009.05.28| 11페이지| 3,500원| 조회(493)
    미리보기
  • 사람을 세우는 사람 요약 정리
    200610014 박성철1부 진리위에 서기1. 확신엘리야의 삶과 사역을 관찰해봄으로써 우리 시대에 적용할 수 있는 세가지 핵심원리들을 보게 될 것이다.(1) 엘리야는 하나님의 실존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하나님은 살아계시며 엘리야는 그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다. 기독교가 진리임을 사람들에게 가장 강하게 확신시켜 주는 것이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기독교의 능력이라는 것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하나님의 능력이 당신의 삶을 변화시킬 때 당신은 거짓된 세대에게 줄 참된 메시지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2) 엘리야는 자신이 하나님의 대리자임을 확신했다.우리 각자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대리자들이 되게 한다. 하나님은 언제나 자신의 대리인으로서 자신을 섬길 한 사람을 찾고 계신다. 이 세상 어디에서나 하나님을 대표할 사람들을 온갖 부류의 사람들로부터 부르고 계신다. 하나님은 그 사람들이 당신 안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생명을 보게 되기를 원하신다.(3) 엘리야는 하나님의 자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엘리야가 왕과 정면 대결할 용기를 어디에서 얻었는가? 그것은 그의 기도생활의 산물이라고 믿는다. 기도 덕분에 엘리야는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하나님의 자원에 대한 굳건한 확신을 발전시켜 나갔다. 당신은 성경에서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믿을 수 있고, 그래서 하나님이 자신의 약속을 이행하시기를 기도할 수 있는가? 기도와 믿음, 이것이 엘리야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위하여 자신이 몸담은 사회에 영향력을 끼치려고 사용한 도구들이다. 당신도 이것을 똑같이 사용할 수 있다.2. 교통깊은 확신을 가지고 자신의 사회에 참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과 홀로 시간을 보내는 사람인 것이다.(1) 명령엘리야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효과적인 사역자가 되기 위해서 혼자 시간을 보내면서 하나님으로부터 조용히 들어야 했다. 그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자원이 필요했다.최종적으로 볼 때 중요한 것은 당신이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듣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듣고 있 사람이 될 것인가를 기준으로 선택하신다.(1) 선택하라이 세상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영적 담장에 양 발을 걸치고서는 그대로 있고 싶어한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만 생활의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믿지는 않는다. 자기의 삶을 거짓 것에 넘겨주는 일은 결단코 좋은 것이 될 수는 없다. 우리는 진리를 수호해야 한다.(2) 서라엘리야는 적대적인 군중들 앞에서 조차도 하나님을 위해 혼자라도 굳게 서 있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대결의 방법을 정한다. “너희는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나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니 이에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이시니라.”(3) 믿음엘리야는 하나님을 믿었다. 그것이야말로 그가 우상숭배의 거짓과 싸워 이길 수 있게 해준 강한 믿음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인간이 만든 그들의 교리들을 얼마나 신실히 믿는지 상관없이 우리의 닻은 변함없는 영원한 진리인 것이다.(4) 공개성하나님은 당신의 삶이 투명해서 사람들이 당신이 누구인지 누구의 편에 서 있는지 알기를 원하신다. 아무도 나중에 속임수를 썼다고 당신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당신의 싸움에서 공개적이고 당당한 것이 되게 하라.(5) 담대함엘리야는 세 번이나 제단에 물을 붓는 행위를 통해 그의 마음속에 실제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그에게 담대함을 주었다. 단지 더 멋진 추억을 남기기 위해서 하나님이 이루실 일에 장애물까지 두도록 만든 담대함을 말이다.(6) 기도엘리야는 사람들이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깨달아 아는 것과 자신은 단지 그분의 대리인이라는 것을 알도록 간구했다. 단순하고 짧으면서도 요점이 있는 기도였다. 한 신실한 사람의 담대한 기도 덕분에 하나님 예배가 다시 시작되었다.(7) 승리첫째, 하나님은 하나님 더하기 한 사람이 대다수라고 확신하는 사람을 사용하신다.둘째, 하나님은 문제를 바라보는 사람보다는 가능성을 바라보는 사람을 사용하신다.셋째, 하나님은 자신의 능력보다는 자신이 하나님께 쓰임받을 수 있다는 유용성에 초점을 맞추는 사람을 사용하신다당신을 통하여 그분이 일하실 수 있도록 해드리는 것이다.(2) 어리석은 기도의 위험성엘리야의 포기하려는 태도가 그의 표본됨을 감소시키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기도는 우리가 우리 자신의 연민에 빠져 있을 때, 우리 기도의 내용이 한심한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나님이 약속하고 이행하신 좋은 일들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고 그분에 대한 우리의 헌신은 흐려진다. 더 나아가 엘리야처럼 우리가 진짜 원치 않는 것들을 구하기 시작한다. 기도는 당신이 원하는 것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구하는 것이다.(3) 당신의 필요를 소홀히 하는 것의 위험성오늘날 사탄이 그리스도인들을 꾀어내기 위해 사용하는 모든 속임수들 중에서 아마도 자신을 소홀히 여기도록 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것은 없을 것이다. 엘리야도 이와 동일한 함정에 빠졌다. 엘리야는 닳아서 쇠진해지고 고갈되었다.하나님은 자비롭고 부드럽게 엘리야의 육체적 필요를 채우셨다. 그렇게 하신 것은 하나님 자신을 나타내 보이실 그 순간에 엘리야가 준비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4) 내가 없으면 안된다고 느끼는 것의 위험성하나님께 없어서는 안될 존재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우리 믿는 자들은 모두 필히 알아야 한다. 우리는 단지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도구일 뿐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용하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위험스러운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용하실 때 우리가 그 승리를 가져오는 장본인들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6. 자신감진정한 자신감은 단순히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아니다. 그것은 결과에 대한 확신감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라 불가능한 것이다. 그것은 초자연적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그분의 삶을 살아가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자의 자신감이란 우리 자신들보다 위대한 분에 대한 믿음을 갖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1) 당신이 힘을 새롭게 하라무대 밖으로 나오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서 그분의 일을 이루시기 위해 우리에게 꼭 필요 어떤 분이신지를 알아야할 절실한 필요를 가진 세상에게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다시 보여줄 수 있는, 보잘것 없지만 사용할 수 있는 그릇이 되는 것, 이것이 당신의 헌신이다.2부 당신의 세대를 섬기기7. 멘토링멘토링은 성경에서 발견할 수 있는 단어는 아니지만그 원리는 성경 전체를 통하여 발견된다. 실은 가장 좋은 예를 보려면 선지자 엘리야와 그의 후계자 엘리사의 관계 이상 더 찾아볼 필요가 없다.엘리야의 후계자를 지명함으로써 하나님은 그분 자신이 신실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계셨던 것이다. 사실 엘리야는 횃불을 엘리사에게 넘겨줌으로써 그 미래를 시작하는 특권을 누리게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하라고 요청하신 것이 이것이다. 왜냐하면 엘리야가 무대에서 떠난 후에도 이스라엘은 여전히 한 선지자가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에서 나는 하나님이 나와 당신에게 멘토로서 봉사하기를 요청하고 계신다고 믿는데 그 이유는 우리가 무대를 떠날 때 여전히 그 자리에는 경건한 사람들이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그리스도를 알기 위해서는 그분과의 관계가 필요한 만큼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한다는 것 역시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일이 필요하다. 관계들 중 가장 도움이 되는 것 중 하나가 멘토링이다. 왜냐하며 우리들 대부분은 우리가 무엇을 알아야 할 필요보다는 누군가 우리를 아는 사람을 더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를 믿어주고 곁에 있어 주고 지도해 주며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범을 보여 주는 그 누군가가 필요하다.성경은 그들의 관계에 대해 우리에게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멘토링을 했던 방법들에 대해서 상세히 알려 주고 있지는 않지만 오늘날 우리들에게 훌륭한 모본을 보여 주고 있다.첫째, 엘리야는 주도권을 가지고 행동했다. 하나님의 지시에 순종해서 그 엘리야는 엘리사를 적극 찾아 나서서 밭을 갈고 있는 그를 만나 자기의 겉옷을 그의 위에 던졌는데. 이것은 엘리사가 그의 뒤를 이어 선지자가 될 것임을 상징하는 것이다. 엘리야는 기다리지 않고 선제 행동을 취했다. 엘리야는 후. 종의 자세를 가지려면 겸손이 필수적이다. 작은 일에 충성스럽다는 것이 증명된 다음에는 당신은 더 나아가서 더 귀한 책임들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다. 겸손한 사람은 그가 성장해야 할 부분이 여전히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그는 그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여전히 배울 것이 있음을 인정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이런 사람이 멘토의 도움을 받을 준비가 된 사람들이다.셋째, 그는 믿기 어려울 만큼 충성스러웠다. 엘리사는 세 번이나 엘리야를 떠날 기회가 있었지만 최후의 순간까지 엘리야와 함께 있었다. 수련을 받는 사람에게 있어서 충성은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인데 그것은 멘토링의 관계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간의 관계이기 때문이다.8. 사역사역자라는 말은 “종”이나 “하인” 이라는 의미의 라틴어에서 파생된 것이며 “더 작다”라는 의미를 가진 어근인 마이너스라는 단어에 근거한 것이다. 그렇다면 원칙적으로는 “사역자”는 더 낮은 지위나 계급을 가진 사람으로서 섬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것이 그 직분인 사람인 것이다.“사역”의 정의가 무엇인가? 사역은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가깝게 가도록 움직이는 것이다.엘리사의 사역에서 주목해야할 첫 번째 원리로서 위임의 원리이다. 엘리사는 자기 자신의 권위로써가 아니라 그의 삶을 하나님께서 사로 잡으셨다는 근거하에 나아갔던 것이다. 이것만이 효율적인 사역의 유일한 토대이다. 만일 하나님의 일을 하고 싶다면 당신은 먼저 하나님께서 그 일로 당신을 부르셨다는 것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 당신의 일이 될 것이다.엘리사의 사역에서 얻어지는 두 번째 원리는 확증의 원리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맡기신 사역을 확증하시기 위해서 누군가 의문을 제기할 때가 있을 것인데 그 때는 주님께 기도하라. 당신이 지금 하는 일을 주님이 인정하신다는 것을 연관된 모든 사람들이 분명히 알게 해달라고. 그들의 의심을 풀어줌으로써 당신은 자신감을 얻게 될 뿐만 아니라 동지도 얻게 될 것이다.엘리사의 사분이다.
    독후감/창작| 2007.05.02| 10페이지| 2,000원| 조회(920)
    미리보기
전체보기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5월 22일 금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1:38 오전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