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듀이 John Dewey◆듀이의 생애와 저서◆듀이의 사상1. 실용주의 교육 사상1) 등장배경2) 듀이의 실용주의 교육사상◆교육의 목적 : 성장과 경험의 재구성◆교육내용◆교육방법◆듀이가 현대 교육에 미치는 영향◆나의 교육관듀이(John Dewey 1859∼1952)듀이(J. Dewey, 1859~ 1952)는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실용주의 철학자이며 진보주의 교육운동에 사상과 이론을 제공한 교육사상가이다. 그는 매우 체계적이고 포괄적인 교육이론을 전개하였으며, 1896년에 “듀이 학교”라는 실험학교를 설립하여 자신의 교육이론을 실천에 옮겼다. 현대 교육학은 바로 그의 교육론의 보완과 대안과 비판의 전개라고 말할 정도로 교육학계에 끼친 그의 영향력은 대단하다고 볼 수 있다.◆듀이의 생애와 저서듀이(1859~1952)는 1985년 10월 20일 미국 버몬트주의 중류 가정에서 태어났다. 폭 넓은 교양을 갖춘 엄한 아버지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그가 살던 뉴잉글랜드 지역은 경치가 아름답고 산수가 수려해 그는 어려서부터 자연히 학교 내에서의 형식적인 생활보다는 자유스럽고 아름다운 대자연이라는 환경 속에서 성장 발달했다. 그는 교과과정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오히려 혼자 생각하거나 책읽기, 대화, 체험한 모든 것들이 중요했다. 이런 자연스러운 환경에서 얻은 경험의 세계는 후에 진보주의 교육관을 창안케 했다.듀이는 15세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버먼트 대학에 입학했다. 당시 대학에는 스코틀랜드 철학자인 교수가 있었는데 듀이에게 많은 감화를 주었다. 스코틀랜드 철학은 관념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고 인간의 직관이라는 능력을 중시하는 것으로서 기독교 가정에서 신앙적으로 교양을 쌓은 청년 듀이의 마음속에는 신앙과 감각적 경험과의 사이에 모순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하여 듀이는 대학 4년 동안 콩트를 공부하게 되었으며 학문이란 사회적 여러 가지 조건과 상호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양자의 상호관계를 이론적으로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대학고 대학으로 옮겼다. 이곳에서 당시 아동 교육을 위해 헌신하고자 하는 교사들의 집단과 접촉하는 동안 이상적 교육 이론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 실험학교를 창설했다. 시카고 대학에서의 봉직 기간 동안 주로 도덕의 문제에 관심을 두었고 심리학상의 개념을 가지고 도덕이라는 것을 설명하고자 시도했다. 이러한 도덕론의 연구를 정리하여 1922년 저서 「인간성과 행위」를 발표했다. 듀이는 미시간 대학에 있을 때 독창적 철학을 모색했고 시카고 대학에 와서 경험 철학을 바탕으로 실험학교를 세워 그의 지성론과 도덕론, 교육론을 독자적인 것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실험학교는 7년 만에 폐교되었고 이로 인해 시카고 대학을 떠나게 되었다.1904년 그의 나이 44세에 듀이는 가족을 구라파에 두고 컬럼비아 대학에 취임하고자 뉴욕으로 왔다. 이때부터 그의 화려한 학자적인 생활이 시작되었는데 1908년 「논리학」을 필두로 1909년 「교육에 있어서의 도덕적 원리」「명일의 학교」, 1916년 「민주주의와 교육」「경험논리학 논문집」, 1920년 「철학의 개선」, 1922년「인간성과 행위」, 1925년에 「경험과 자연」, 1926년 「확실성의 탐구」, 1927년 「공중과 그의 문제」, 1930년 「신?구 개인주의」등의 많은 저서들을 내놓았다.대공황 기간 동안 그는 여러 나라를 돌아보며 민주주의 사상과 보수주의 사상을 비교해 볼 수 있었다. 특히 일본과 중국 여행이 가장 영향력이 컸었는데 일본에서는 일본의 자유주의자들과 개조를 요망하는 진보주의자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했다. 1920년 발표한 저서 「철학의 개조는」동경대학 강의 내용을 묶은 것이다. 1919~1921년까지 듀이는 중국에 머물렀는데 이 30년간 그는 중국의 정치사상, 산업에 관한 30편에 가까운 논문을 발표했고 그의 방문은 민주주의적이며 민족의식이 급속도로 확산되던 중국에 있어서 교육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크나큰 원동력이 되었다. 1928년 그는 혁명이후의 러시아를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 때 교육에 삶의 환경조건을 개선하고 재구성 하는 데에 유용해야 하며, 진리란 인간의 경험으로부터 나오는 가설적인 것이라고 주장하고 그 가설은 경험을 통하여 검증되어야 할 것으로 보았다. 이런 입장은 진리가 선험적으로 존재한다는 선험주의와 진리가 인간 경험과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철학적 이원론을 부정한다. 따라서, 실용주의에서는 진리의 절대적 가치를 부정하고 인류와 사회의 발전과 진보에 의미 있는 것으로서의 진리의 가치를 중시한다. 윤리적?도덕적 규범 역시 영원불변한 절대적 가치로 보지 않고, 시대와 사회변동에 따라 그 사회 진보에 기여할 수 있도록 수정되고 개선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인다.2) 듀이의 실용주의 교육사상듀이의 실용주의 교육은 진보주의 교육이라고도 부른다. 이러한 그의 교육사상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 두 부분, 즉 전통적 교육관에 대한 비판과, 경험의 개념에 입각한 진보적 교육관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① 전통적 교육관에 대한 비판듀이에 따르면, 전통적 교육 구조는 본질적으로 위로부터 교수-학습을 주도하는 방식을 취한다. 그러한 교육은 단지 성숙을 행하여 배우는 학생에게 성인의 표준과 교과내용 및 방법을 부과하며, 학생들의 경험, 능력을 별로 배려하지 않아, 이러한 상황이 학생들로 하여금 학습의 진전에 적극적으로 참여치 못하게 한다.1)교육의 목적 측면전통적인 교육 목적 혹은 목표는 젊은이들로 하여금 미래의 책임과 삶의 성공을 위한 준비를 하도록 하는 것이며, 수업자료 속에 포함되어 있는 지식 체계와 미리 마련된 형태의 기능을 획득하는 일이다. 따라서 배우는 이의 태도는 유순, 수용적, 복종적이어야만 한다. 행위의 기준과 규칙들은 과거로부터 발전되어 왔으므로, 도덕적 훈련은 과거 기준과 규칙에 일치하는 행동 습관을 형성하는 것이 된다. 결국, 학교는 이러한 행동 규칙을 습관화하는 특수한 기구로 인식되어, 학생의 사회적 경험과의 연관성을 거의 상실하고 있다. 또 한 가지 문제점은, 경험의 종류를 결정하는 학습자의 내적 요인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사상과 베이컨의 경험론 등에서 채용한 개념으로 루소의 자연주의 교육사상을 거쳐 듀이의 진보주의 교육이론을 형성하는 주개념이 되었다.cf. 경험의 개념경험 : 능동적 요소와 수동적 요소의 특수한 결합.능동적 요소: 해 보는 것: 실험이라는 의미와 연결.수동적 요소: 당하는 것: 무엇의 작용으로 무엇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소극적 성격이 두 가지가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는가에 따라 경험의 성과 또는 가치가 달라지는데,듀이는 이런 경험과 교육 사이에는 유기적 관계가 있으며, 새로운 진보적 교육 철학은 일종의 경험적이며 실험적인 철학을 따른다고 말한다.그러나 모든 경험은 반드시 교육적이지만은 않다. 어떤 경험이라도 이후에 하게 될 경험의 성장을 막거나 왜곡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면 그 경험은 비교육적인 것이다. 비교육적인 경험은 무감각, 감수성이나 감응의 결핍, 태만한 태도, 부주의한 태도를 조장한다. 이는 후속되는 경험의 질에 부정적으로 영향 미치기 때문이다.또한, 매우 특수하게 서로 연관되지 않은 개별적인 경험들도 비교육적이다. 경험 그 자체로는 좋거나 흥미로운 것이지만, 서로 축적되어 상호 관련성을 맺지 못해, 미래의 보다 풍부한 경험을 하게 될 가능성이 제한되고 그 결과는 또 다시 이후의 경험 영역을 좁혀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즉, 경험의 교육적이나 비교육적이냐는 경험이 가진 ‘질’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교육의 목적 : 성장과 경험의 재구성●듀이가 정의한 교육“교육이란 경험을 개조 또는 재조직함으로써 경험의 의미를 더해 주고 후속 경험의 진로를 지도할 능력을 증대시키는 것”경험의 개념과 원리에 입각한 새로운 진보주의 교육은 성인과 미성년자 사이에 전통적 학교에서 있어 왔던 것보다도 훨씬 다양하고 친밀한 경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문제는 개인적 경험을 통한 학습의 원리를 해치지 않으면서 어떻게 그러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느냐이다.과거 전통적인 교육은 ‘준비(preparation)'의 과정으로 대학이나 성인 생활에 필요한 일정한 기술주사회는 상호 협동적 경험의 공유를 방해하는 종교적?인종적?지역적?경제적 차별이 없는 사회이다. 또한 민주사회는 인간적인 교육의 가능성과 개인의 성장의 가능성을 높이도록 다양한 경험이 공유되는 사회이다. 그에 있어서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은 이러한 민주사회를 이룩하는데 있다. 듀이의 진보주의 교육사상은 해방 이후 우리나라에서 미군정 시기에 적극 수용되어, 교육목적, 학교구조, 교수방법, 커리큘럼, 교과서 등을 개혁하는 철학적 기초로 채택되었으며, 6-3-3 학제와 커리큘럼 트랙의 도입 등은 미국의 행정 지향적 진보주의에 영향 받은 것으로 진정한 의미에서 듀이의 사상과 거리가 멀다.●듀이가 제시한 훌륭한 교육목적의 세 가지 기준①각 개인이 지니고 있는 상이한 상태, 환경, 타고난 소질에서부터 현재 당면하고 있는 문제 들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검토하여 이를 기본 토대로 목적을 설정해야 함②하나의 고정된 목적으로 만들지 않아야 하며, 목적설정에 있어서 융통성을 두어야 함③모든 수단은 우리가 이것을 획득하기까지는 일시적 목적이며, 목적은 이를 성취하는 즉시 다음 활동을 전개시키는 수단이 됨. 목적은 우리가 참여하고 있는 활동의 미래 방향이며, 수단은 현재 방향즉, 개인적, 사회적 목표를 향해 지속적으로 생장할 수 있도록 개인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 ‘교육’◆교육내용경험의 원리 : 듀이 교육사상을 가장 특징적으로 나타내는 원리경험 안에서 경험에 의하여, 경험을 위하여 이루어지는 과정으로서의 교육성장의 원리 : 경험은 성장의 원리에 의해 교육적 의의가 확증됨미성숙성과 가소성에 근거를 두면서 어린이의 내부로부터 나오는 성장하려는 힘을 억압하지 않고 자유롭게 활동하도록 하는 원리지성의 원리 : 인간성의 요소를 충동, 습관, 지성으로 파악하는 듀이의 인간이해에 근거한 원리지성이란? 인간은 자신의 신체적 욕구와 생명의 보존을 위해 대상이나 환경에 맞추어 가려는 본질적 경향이 있으며, 이때 그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과 방법을 수고하는 것.지성은 경험을 개조하는 과정, 즉 인간의 경험있다.
프로여자농구의 밀착유니폼, 성차별인가 아닌가?스포츠선수에게 유니폼은 중요한 환경적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옷을 착용하느냐에 따라 경기력에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가령 수영복이 헐렁하다면 육상복이 두껍다면 기록은 기존과 큰 차이가 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운동선수의 유니폼에 관심이 많다.그런데 요즘 여자 선수들의 유니폼을 보면 좀 낯 뜨거울 때가 있다. 여자 배구 경기를 보더라도 바지가 엉덩이가 거의 다 보일 정도로 짧은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배구 경기는 농구경기에 비해서는 그렇게 많이 뛰거나 움직임이 많지 않다.그러나 예전 여자농구 선수들이 몸에 딱 달라붙는 원피스 유니폼을 입고 농구를 하던 시절을 생각하면 너무 하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몸매가 좋고 마른 선수들이라면 그렇게 거부감이 들진 않겠지만 일반 여성들이라면 당연히 거부감이 들 것이다. 그냥 입는 옷도 아니고 운동을 하기 위해서 쓰는 옷인데 거부감이 들고 불편하다면 오히려 경기력 향상이 떨어질 것이다. 그런데 그 유니폼을 착용하게 한 이유가 경기력 향상이었다. 그런데 다른나라에서는 예전부터 원피스 유니폼을 착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유난히 우리나라에서는 이 유니폼 착용을 성차별이 아니냐는 여론이 거세게 일었다. 나는 이 부분이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다른나라와 우리나라의 문화적 차이는 무시할 수 없는것이다. 예전부터 몸을 감추던 여성들의 패션이 아직도 어느정도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프로남자농구에 비해 여자농구는 아마도 볼거리가 적은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래서 관객동원이나 흥행에 있어서도 매우 저조하다. 그래서 생각해낸 방안이 보여지는 볼거리로 의상을 택한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만약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안한다면 문제 될 것은 없겠지만 여자선수들의 몸매를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은 당연히 성을 상품화하는 것이 된다.
역사란 과연 무엇이며 우리들에게 시사하고 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이런 생각들을 누구나 한번쯤은 해 보았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영토라고 주장하거나 교과서를 왜곡하면 우리나라 국민들은 하나같이 목소리를 높여 사실규명을 주장한다. 그렇다면 과연 역사의 정의는 무엇일까? 무엇이기에 이토록 국민들은 역사왜곡에 분노를 하는 것일까? 이런 관점에서 중국이 주장하고 있는 동북공정에 대해 애기해 보려고 한다.중국은 동북지방의 역사, 지리, 민족문제 등을 연구하는 국가적 연구 사업을 2002년부터 5년간의 프로젝트로 실시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동북공정이다. 이 연구에서 중국은 여러 가지 근거를 들어 고구려사가 중국사임을 피력한다. 그 주장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민족구성상 고구려의 조상은 원래 중국의 한족에서 갈라져 나갔으면 이에 대한 근거로 고이설과 상나라 설을 주장한다. 둘째, 영토와 역사적인 면에서 고구려의 건국 장소는 중국영토 내부였으므로 중국 땅에 세운 왕조는 모두 중국사였다 라는 것이다. 셋째, 조공책봉제도를 가지고 주장하는 바는 고구려가 독립국가가 아니라 중국에 조공을 바치고 책봉을 받았던 지방정권이라는 점을 내세운다. 넷째, 고구려와 수당과의 전쟁은 국가 간의 전쟁이 아니라 중국 통일 과정에서 발생한 내전이었다라고 주장한다. 다섯째, 고구려 멸망 후 대다수의 유민이 중국에 귀속되었고, 고구려와 고구려는 이름만 유사 할 뿐 관련이 없으며 고려는 신라에서 성장한 국가라고 주장한다.이와 같은 중국의 주장을 반박하기위해 우리가 알아야 할 부분이 바로 역사란 무엇인가의 정의라고 본다.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것이다. 사실만을 가지고 같은 역사를 만들 수 없다. 같은 사실을 가지고도 해석하는 역사가의 관점에 의해 결과가 모두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사실을 배제한 채 역사가의 주관적인 관점을 가지고 역사를 만든다면 그것은 역사소설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역사를 연구하는 역사가들의 역사철학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게 된다. 왜냐하면 역사란 역사가들이 과거에 일어났던 행동이나 사실들의 이유를 알지 못한다면 제대로 된 재현을 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이런 관점에서 중국의 동북공정은 그 시작부터가 잘못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의 패권주의를 위해 여러 가지 의도와 결과를 이미 정한 채 역사연구를 시작하였고 이를 연구한 기관도 역사연구를 전문적으로 하는 기관이 아닌 정부차원의 기관에서 이루어 졌기 때문이다. 사실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재조명했다는 점이다. 또한 현재 중국영토 내에서 일어났던 과거의 역사를 자신의 역사라고 주장하는 것은 역사라는 것의 개념파악이 전혀 되지 않았고 다른 국가의 배려가 고려되지 않은 독단적인 주장에 불과하다.
건강, 건강지상주의는 왜 문제인가?정상적인 인간이라면 누구나 건강하게 오랜 삶을 영위하는 것을 가장 큰 목적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먹는 것, 입는 것, 운동 등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고 또 건강하게 살기위해 일을 하고 돈을 번다. 바로 ‘웰빙’ 참살이는 원하기 때문이다.건강하다는 것은 또한 그 사람이 자신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노력하느냐가 관건이 되기도 한다. 매일 운동을 거르지 않고 하는 사람들이나 먹는 것을 조절하며 섭취하는 사람들이나 모두들 목적은 모두 건강한 삶을 위한 것이다.그러나 이러한 건강을 너무 지상하다보니 생겨나는 문제점들도 있게 되었다.운동을 하면 무조건 건강해질 것이라는 단편적인 생각 때문에 사람들에게 여러 질병이 발견되고 있다. 고관절의 이상이 라던가 근육비대증, 갑작스런 운동으로 인한 심장질환, 발목의 인대 손상이나 허리 디스크 등 무리한 운동으로 인하여 오히려 건강을 해치고 있는 것이다.또한 건강하기 위해서 운동을 하기 때문에 운동을 하는 목적이 생기게 된다. 이러한 목적이 생기게 되면 자연스럽게 운동에 대한 강박관념이 생겨나게 된다. 내가 즐거워서 하고 싶어서 하는 운동이 아닌 목적 있는 운동이 되기 때문에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거기에 따른 정신 질환이 생겨날 위험성도 내포하게 되는 것이다.결론적으로 운동이 건강과 직결된다는 우리들의 상식은 그 한계성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또한 건강한 인체를 얻기 위해 몸에 좋다는 건강식품이나 채식위주의 식단은 지나치게 되면 오히려 영양불균형이나 내장비만과 같은 질병을 초래할 수 도 있다.물론 운동을 하지 않으면 더 많은 질병을 얻을 수 도 있다. 비만이 라던가 당뇨병, 고혈압등과 같은 운동부족으로 인한 질병들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운동을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한 수단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즐기면서 하는 취미생활의 일환으로써의 운동을 통해 건강한 삶을 살아야 되는 것이다.
스포츠 선수들에게 도덕성은 왜 필요한가?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기본적으로 도덕성이 필요하다. 도덕성이 결여된 사람은 그 크기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어른을 공경하지 않는 젊은이들,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남을 전혀 배려하지 못하는 이기주의자들, 그것을 뛰어넘어 범죄자들 까지 다양하고 많은 부류의 비도덕한 사람들이 있다.이러한 사람들이 많은 사회는 결코 건강한 사회라고 말하기 힘들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려서부터 예의범절을 배우고 하지 말아야 할 행동과 반드시 해야 할 행동들을 배우 게 되고 학교 수업에서도 도덕과 윤리라는 과목을 배우게 된다. 이처럼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도덕성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다.하물며 페어플레이정신을 기본 원칙으로 하는 스포츠선수들에게 도덕성이 결여된다면 그 문제는 심각하게 될 것이다. 과격한운동일 수록 도덕성은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요즘 급부상하고 있는 스포츠인 K-1을 예로 들어보자. 보호 장비라고는 마우스피스와 권투글러브가 전부인 이 스포츠는 거의 목숨을 담보로 하게 되는 경기이다. 한 선수가 쓰러져 힘조차 쓰지 못할 때 자신이 맞은 것이 분하여 쓰러진 상대를 더 때린 다던가 심판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마구 덤벼대는 괴물 같은 선수들을 보게 된다. 이러한 선수들을 보면 K-1이 과연 스포츠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이런 선수들은 남을 배려하는 마음과 스포츠맨쉽이 결여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사람이 경기를 하게 된다면 그것은 스포츠라기보다는 폭력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운동선수들에게는 도덕성을 아무리 강조하여도 부족할 것이다.나는 스포츠를 통하여 선수들이 도덕성을 기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제도화된 규칙과 룰이 적용되는 스포츠는 해야 될 행동과 하지 말아야 될 행동이 엄격히 구분되어있기 때문에 도덕적인행동을 하기에 더욱 적합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스포츠선수가 도덕성이 결여된 경우 또 사회적인 큰 파장도 일으킬 수 있다. 2002년 동계올림픽에서의 오노선수라든가, 2004년 하계올림픽에서의 폴햄 선수들은 부정적인 행동으로 우리선수들의 승리 빼앗아 갔었다. 이때 국가 간의 불신과 국민들 간의 비난은 아주 큰 사회적 파장을 몰고 왔었다. 또 이번 독일 월드컵에서 지단선수의 박치기는 그 행위만으로도 선수의 명예가 바닥에 떨어지고 비난과 조롱을 받았다. 그 모습을 벨소리로 만든 회사는 대박을 냈다는 기사도 본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