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자학의 세계- 목 차 -1. 진경시대로의 초대2. 18세기 조선 성리학의 심화- 호락논쟁(人物性同異論)3. 조선 후기의 예술 세계- 조선후기의 문풍과 진경시문학- 겸재 정선과 진경산수화풍- 단원 김홍도의 생애와 예술- 진경시대의 백자와 서예4. 조선 성리학과 예술사상 토론1. 조선 왕조의 문화 절정기, 진경시대로 들어가며(발표:김혜준)- 조선성리학의 성립과 진경시대의 이념적 배경‘진경시대’는 조선 왕조 후기 문화가 조선 고유색을 한껏 드러내면서 커다란 발전을 이룩하였던 문화절정기를 일컫는 문화사적인 시대 구분 명칭이다. 그 기간은 조선 숙종(1675~1720)대에서 정조(1777~1800)대에 걸친 125년간이라 할 수 있는데 숙종 46년과 경종 4년의 50년 동안은 진경문화의 초창기라 할 수 있고, 영조 51년의 재위 기간이 그 절정기이며 정조 24년은 쇠퇴기라 할 수 있다.진경문화가 이 시대에 이르러 이처럼 꽃을 활짝 피워낼 수 있었던 것은 그 문화의 뿌리가 되는 조선성리학이라는 고유이념이 이 시대에 이르러 완벽하게 뿌리를 내렸기 때문이었다. 원래 조선 왕조는 주자성리학을 국시로 천명하여 개국한 나라였다. 그래서 원(元) 지배시대에 중국으로부터 수용해 들여 아직 선구적인 학자들만이 그 얼개를 짐작하고 있는 생소한 이념인 주자성리학을 이념기반으로 하여 새 왕조의 문화를 창조해 가게 되니 조선 전기 문화 전반에서 중국풍이 만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중국의 뿌리를 옮겨다 심었으니 당장은 중국 꽃이 그대로 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주자성리학 이념도 우리 문화 풍토 속에 들어와서는 이에 적응해 가면서 변질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우리 선조들은 이 중국 발원의 주자성리학 이념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난 다음 발전적으로 심화(深化)시켜 조선성리학이라는 고유이념을 창안해 놓는다. 그 고유이념 창안의 장본인은 율곡(栗谷) 이이(李珥, 1536-1584)인데, 율곡이 조선성리학을 창안해 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앞 세대인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있었다. 우리 국토의 북쪽 변방에 터잡아 살면서 우리에게 복속해 오던 여진족이 명이 임진왜란에 우리를 돕느라 피폐해진 틈을 타고 강성해져서 청나라를 건국하고 중원을 넘보면서 성리학적 국제 질서를 파괴해 가고 있었던 것이다. 명의 종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물론 우리와의 관계도 평등 이상의 관계를 요구하고 나서게 되니 성리학적 이상국가의 건설을 꿈꾸며 인조반정을 성공시킨 조선성리학파들이 이런 무리한 요구를 수용할 리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 두 차례에 걸친 침략을 받게 되고, 특히 병자호란에는 남한산성으로 피난하였던 인조가 청군에게 포위당하여 청 태종에게 항복하는 치욕을 당한다. 이로 말미암아 조선 지식층들은 심각한 좌절감에 빠지게 되고 이후 자기 회복의 방법을 놓고 성리학의 절대 신봉이냐 이의 탈피냐 하는 두 가지 노선으로 갈리게 되었다. 결국 이러한 상반된 이념대립은 유교의 이상정치 형태인 예치(禮治)를 실현하는데 예에 대한 해석의 차이를 보이게 됨으로써 국상 중에 왕대비의 복제 문제가 도화선이 되어 예송이라는 원리 논쟁으로 비화하게 된다.이와 더불어 문화적으로 우리보다 열등한 여진족이 무력으로 중국을 차지했더라도 중화의 계승자가 될 수 없는데, 하물며 그 야만 풍속인 변발호복을 한민족에게 강요하여 중화문화 전체를 야만적으로 변질시켜 놓았으니 중국에서는 이미 중화 문화 전통이 단절되었다는 판단을 하면서 중화문화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면서 주자성리학의 적통을 발전적으로 계승하고 있는 조선만이 중화문화를 계승할 자격을 갖추었으므로 이제는 조선이 중화가 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도 일어났다. 이런 생각은 당시 문화적으로 열등하다고 여겼던 여진족에게 치욕을 당하고 그 힘에 눌려 살아야 한다는 민족적 자괴감을 보상해주기에 충분한 것이어서 상하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게 된다. 이로 말미암아 조선이 곧 중화(中華)라는 조선중화주의(朝鮮中華主義)가 조선 사회 전반에 점차 팽배해 가기 시작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율곡학파에서는 조선성리학을 바탕으로 문화 전반에서 조선고유색을 발현해가장 쟁점이 되었던 호락논쟁은 당시 주도층이었던 노론내의 사상분화를 반영하는 사건이기도 하다. 호락논쟁은 논쟁 당사자 몇 사람이 논쟁하는 선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집단적 성격을 띠면서 조선말기까지 지속되었다.이황과 기대승 사이에서 촉발된 사단칠정 논쟁으로 조선 주자학의 이기론은 독자적인 발전을 이루었고 그 결과 이이의 이통기국론이 제출될 수 있었다. 이이의 학문 전통 아래서 미발시에 심의 정체는 어떠하며[미발심체론], 인성과 물성은 같은가 다른가[오상론]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또 한번의 이론 검토가 이루어진 것이다. 18세기 조선의 성리학자들은 그들이 직면한 사회변동과 국제질서에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이념을 모색해야 했다. 호락논쟁은 새로운 사회질서와 인간관의 모색에 주목하며 검토된 논의였다.(2) 논쟁의 전개1) 성性 개념의 다의성성(性)이란 인간 또는 사물 안에 내재된 理, 성은 구성상으로는 ‘기 안의 리’(氣中之理)인데, 이것은 보는 관점에 따라 두 가지 이상의 함의를 지닌다.(다음은 이간과 한원진의 논쟁을 가상으로 꾸며본 것이다.)# MC儒 : 오늘 두 대감님 모셔놓고 인간과 사물의 성이 동일한가에 대해서 얘기해 볼까 하는데요. 경기도에서 이대감님하고 충정도에서 한대감님 나오셨습니다. 안녕하세요. 각자 인사하시고 생각을 말씀해주시죠.# 이간(同論) : 네, 반갑습니다. 경기도 사는 이간이라고 합니다. 인간과 사물의 성이 같나 다르나 이런 주제인거 같은데 당연히 같죠.『중용(中庸)』의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에 대한 주희에 주석을 보세요. 만물이 모두 리(理)라는 것을 부여받아 기(氣)로써 형태를 이루잖아요. 이 때 각기 부여된 리가 곧 성이 되니까, 인간을 포함하는 만물의 성이 근본적으로 같다고 생각되네요.# 한원진(異論) : 저는 충청도에서 온 한원진이라고 하네유. 전『맹자집주(孟子集註)』나 『대학혹문(大學或問)』에도 주희의 글을 봤는데유. 그분께서『맹자집주 孟子集註』에는 기에는 차이가 없지만 품부 받는 리가 다르기 때문에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된다론에서 가치론의 문제로 귀결, 성에 오상이 어떻게 갖추어져 있는가를 문제시하게 되는데 구체적으로 선악의 가치 실현 가능성을 미발(未發)의 심체(心體)문제에서 다룬다.② 리만을 가리켜 말한다면 본연지성이라 하고 리기를 겸하여 말한다면 기질지성이라고 한다.③ 한원진은 기질지성, 즉 심체도 성과 대비되는 기의 측면에서 고찰 하므로 심체에서 기가 발하지 않았을 때에도 기의 선악이 드러나지 않은 것뿐이지 본체에 기의 청탁미악이 존재. 혈기가 마음에 용사(用事)하는 것을 미발이라고 한다.④ 이간은 심체의 기와 일반적인 기질을 구분, 이간의 미발은 단지 외물에 접촉하지 않은 상태가 아니라 천명(天君)을 따르는, 즉 리의 실현 가능태를 말한다.(3) 논쟁 이후의 인물성론화서 이항로, 노사 기정진, 한주 이진상 등을 통해 관점의 차이를 인정하고 포괄하려는 시도가 이어진다. 이항로는 집단적 존재와 개별적 존재의 사이에 내재하는 무수한 층차와 그들 간의 다양성도 인정하지만, 결국은 근원적인 보편의 원리인 하나의 리로 귀결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는 점도 인정한다. 그러나 주리론의 입장을 취하는 그로서는 대동, 합동에 치중하게 된다. 한편 기정진은 다양한 만물가운데서 리의 동일성을 보고, 하나의 이치 가운데서 다양한 만물의 가능성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동론과 이론을 모두 비판하지만 동론에 무게를 둔다. 이진상은 성의 본체적인 면을 유성(有性), 현상적인 면을 위성(僞性)으로 구분하고 동론과 이론을 비판하는데, 역시 리일의 통일성, 동일성에 비중을 두는 까닭에 동론에 무게를 둔다. 세 학자 모두 리를 강화함으로써 외세에 대처하고 성리학적 이상 국가 체제 정비를 희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4) 논쟁의 의의1) 성 개념의 다의성 특히 주희의 성 개념 혼란을 정리하였다.2) 중국(명) 이외의 새로운 세력(청)에 대한 대처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북학파, 특히 홍대용과 박지원은 사람을 포함은 만물이 모두 똑같이 기로 구성되고 공통된 생명의 원리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만물은 균등하다고 에 힘입은 새로운 예술양식을 창출하는 데까지 이르렀는데, 정선은 기존의 조선 화단의 전통을 이으면서 조선의 산하를 직접 여행하고 사생하여 화폭에 표현하는 ‘진경산수’라는 새로운 화풍을 구축하였다. 이병연 역시 국내 곳곳을 여행하며 그 지방의 기후, 풍물, 지형, 인심과 더불어 경승(景勝)을 찬미하고 노래하는 사경시(寫景詩)를 지어내니 이는 겸재의 진경산수에 상응되는 진경시로 평가할 만하여 시화(詩畵) 쌍벽을 이루었다.새벽 빛 한강에 떠오르니,언덕들 낚시 배에 가린다.아침마다 나와서 우뚝 앉으면,첫 햇살 종남산에서 오르리라. )-목멱조돈 / 이병연 (목멱산은 서울 남산의 딴 이름이다.)이병연의 이러한 시풍은 평지에서 돌출된 것이 아니다. 당시에 고조되고 있던 문원(文苑)의 대세를 반영하였다고 보아야 하며 그의 스승인 김창흡에 소급해 보아야 할 것이다.정조는 이들 형제의 시문(詩文)을 평하여,농암 김창협의 시문은 우아하고 깨끗하고 삼연 김창흡의 시문은 맑고 고담하다. 김창흡은 부귀한 가문의 자제로 초야에서 종신하였으니 시가 그러한 까닭이 있다.라고 하였다. 형인 김창협의 시문이 우아하고 깨끗한 데 비하여 동생 김창흡의 시문은 맑고 고담하다는 평은 형제의 시문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평가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정조의 비평은 결코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삼연 김창흡의 시는 근래에 이러한 품격이 없었다. 비록 중국의 이름난 시인에는 못 미친다 하더라도 생각건대 부끄러울 바가 없다.뿐만 아니라 형인 농암 김창협에 대해서는 더욱 신랄한 비평을 하여,우리나라의 문체는 김석주와 김창협에 이르러 일변하여 한세상을 풍미하니 모두 이를 좇았다. 대개 전시대 사람을 능가한 듯싶지만 원기(元氣)는 아득하여 부진하였다. 문폐(文弊:문장의 폐단)가 이에서 점차 생겨났다.라고 하였다. 김석주나 김창협의 문체가 비판대상이 된 것은 정조가 표방하는 고문(古文), 즉 순정문의 문체에 위배된다는 뜻이니 이들이 바로 조선적 색채가 강한 문체를 구사하였다는 반증도 될 수 있다. 이와는 달리 영설명)
주자학과 조선 성리학주자학과 조선 성리학의 관계는 단순화 시키자면 부자(父子)의 관계쯤으로 설명할 수 있다. 주자학이란 남송시대에 주희가 집대성한 성리학 사상을 말하는 것이고, 조선 성리학이란 주희가 집대성한 성리학이 조선 사회에 맞게 재구성된 사상을 일컫기 때문이다.주자학이 조선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기에 조선 성리학으로 발전했는지를 논의하기에 앞서, 내 자신이 인간과 사회의 관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집고 넘어가고 싶다. 나는 인간의 존재가 아주 미약하다고 생각한다. 길어야 백년도 살지 못하는 인간이 태어나고 죽고, 태어나고 죽는 과정 속에서 현재의 문명이 세워졌다는 걸 생각해보면 이 세상은 역시 인간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신비함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역시 인간은 미약하다. 수천 년의 역사가 흘러오는 동안 인간은 같은 방식의 갈등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송 대(宋代)의 왕패논쟁이나 조선시대의 호락논쟁이나 내용은 다르지만 그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둘 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해석과 가치관의 차이를 끝내 좁힐 수 없었던 것뿐이다. 오늘날의 정치판을 보면 다들 납득할 수도, 이해할 수도 있는 나름대로의 주관을 가지고 정치에 임하고 있다(몇몇 졸렬하고 이기적인 소인배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인들은 이른바 의식 있는 사람들의 집단이면서도 유치하기 이를 데 없는 촌극을 벌이곤 하고, 대중은 자신들이 뽑아놓은 정치인들에게 불만을 가지게 된다. 이 사회가 도저히 인간의 근시안으로는 완전히 포용할 수 없는 예민하고 거대한 유기체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역시 결론은, 인간은 미약하다.나는 항상 이 ‘인간은 미약하다’라는 명제를 전제로 하여 역사와 사상을 인식하기 때문에 조선 성리학이나 당쟁정치에 대해서도 결과론적인 판단을 하고 싶지는 않다. 물론 끝내 조선은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일본에게 침략당한 36년은 한반도의 씻을 수 없는 암흑기로 남았지만 신이 아닌 인간들이 꾸려가는 국가인데 흥이 있으면 망도 있는 법이지 않은가. 나 자신의 일생조차 내다볼 수 없는 인간이 한 나라의 미래에 대해서 완벽히 조망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과거에 대해서 ‘이 때 이랬으면 좋았을 텐데.’, ‘저 때 저랬기 때문에 그 기회를 놓친 건데.’라고 미련을 떨 것이 아니라 ‘이런 상황에서 이런 식으로 대처했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진행되었다’는 알고리즘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사실 알고 보면 인간 사회에 존재하는 일들은 세부사항은 조금씩 다르지만 그 본질은 거의 비슷한 법이다. 현대에 겪을 수 있는 문제점들 중에 과거사에서 그 유사한 바를 전혀 찾을 수 있는 경우는 흔치않다.식민사관의 영향이 크기는 하지만, 여전히 후손들에게 가장 유치하게 여겨지는 조선 정치인들의 사례는 아마 ‘예송논쟁’일 것이다. 현대인들은 상복을 일년을 입든 삼년을 입든 무슨 상관인지 도대체가 이해할 수가 없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를 보라. 5.31 지방선거 결과는 과연 성숙한 민주국가의 시민들이 투표한 것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만큼 유치한 결과를 보여주었고, 평택의 대추리는 미군 때문에 쑥대밭이 되고 있는데 국민들은 월드컵이라는 스포츠 축제에 젖어 전혀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가 아무리 다양한 사상과 가치관, 사건들에 노출된다고 해도 결국 취사선택하여 우리의 시간과 사고를 소비하는 분야는 한정되기 마련이다. 하물며 간접 경험의 폭도 좁고, 이용할 수 있는 매체도 거의 없었던 조선 시대에야 어련했을까. 그나마 주자학 관련 책이라도 구할 수 있고, 한문이라도 배울 수 있었던 양반들 씩이나 되었기 때문에 유교적 예도에 대해 알기에 상복을 일년 입자, 삼년 입자 논쟁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논쟁의 본질만 보자면 참으로 고귀하고 성스럽기 그지없다. 각자가 추구하는 방향이 왕권 강화냐, 신권 강화냐의 차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 논쟁 때문에 정작 민생은 돌봐지지 못했고, 연거푸 두 번이나 발생한 논쟁은 결국 민생을 나락으로 떨어뜨려놓고 만 것이다. 일종의 나비효과라고 볼 수 있다.나비효과는 이 뿐만이 아니다. 성리학은 귀족정치의 폐단에 불만을 품은 사대부가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고, 조선이 개국한 이후에도 양반들 사이에서만 퍼졌다. 민중들은 그를 싫어했기 때문도 아니요, 양반들이 자신들만의 것으로 고집한 때문도 아니다. 대다수의 민중들은 먹고 살아가는 문제가 더욱 시급했기 때문에, 아마도 철학이나 사상을 공부할 수 있는 형편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조상들께 제사를 지내고, 아들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유교적 관습들이 민중들 사이에도 골고루 뿌리내린 것을 보자. 이 또한 나비효과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강대국의 사상이 주변 국가에 전파되고, 또 그 사상을 교육받은 지배층의 사상이 피지배층에도 직?간접적 영향을 주고, 그런데 주변 국가의 사회 전반이 강대국의 사회를 쏙 빼닮지 않고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하고. 우리는 여기서 개인 개인을 넘어서 사회가 가지고 있는 유기체적 성질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를 공부함에 있어서 경제, 유적처럼 드러나는 실체에만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그 저변에 깔려있는 사상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영원한 일꾼, 표트르 대제; 표트르 대제의 청동 기마상1. 표트르 대제의 개혁2. 러시아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표트르 대제의 상징적 의미3. 상징적 의미의 원인4. 표트르 대제의 또다른 상징적 의미 또는 그늘5. 소감제까브리스뜨 광장의 표트르 대제 동상뻬뜨로-빠블로프스카야 끄레뽀스찌1. 표트르 대제의 개혁표트르 대제는 1703년, 상트 페테르부르그라는 도시를 건설했고 1712년에는 수도를 그 곳으로 옮겼다. 천도의 첫번째 이유는 바로 국가 방위를 위해서이다. 남쪽으로는 아조프 해를 두고 터키와 전쟁을 했고, 북쪽으로는 발트 해의 지배권을 놓고 스웨덴과 다투었다. 핀란드 만으로 흘러 들어가는 네바 강 어귀의 삼각주는 스웨덴과 북방 전쟁을 치르는 데에는 대단히 적합한 곳이었다. 즉 상트 페테르부르그는 러시아 북서쪽 경계에서 외적의 침입을 막아내는 요새로 지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뻬뜨로-빠블로프스카야 끄레뽀스찌 (베드로와 바울의 요새)는 요즘도 건설 당시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며 북방 전쟁의 흔적을 보여준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상트 페테르부르그는 여전히 부흥하는 거대 도시로 남을 수 있었다. 표트르 대제에게 필요했던 건 튼튼한 요새뿐만 아니라 경제, 행정 개혁의 발판이었기 때문이다. 1697년, 라이프니츠가 황제에게 편지를 보내 러시아 개혁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조언했다고 한다.1) 과학과 예술을 위한 기관을 만들 것.2) 재능 있는 외국인들을 초대할 것.3) 필요한 외국 문물들을 도입할 것.4) 신하들의 해외 연수를 장려할 것.5) 평민들의 국내 교육을 진작할 것.6) 현 단계에서 러시아에 필요한 것들을 파악할 것.7) 러시아에 부족한 것들을 보충할 것.상트 페테르부르그에는 러시아 최초의 공공 도서관, 박물관, 서점이 지어졌다. 또한, 글자와 산술, 기술, 의술 등을 가르치는 초등, 중등학교부터 화학 약품 제조를 위한 실험실, 수학 및 기타 자연 과학을 가르치는 대학과 아카데미가 연달아서 건설되었다. 해군성, 식물원, 궁중 극장, 인쇄소, 직물 공장, 종이 공장, 도자기 공장 등 러시아의 과학, 기술, 산업의 기초가 이때 다져졌다. 도시는 표트르 대제의 꼼꼼한 계산과 실천에 의해 정비되었다. 상트 페테르부르그는 인간이 건설한 지상의 도시였고 신을 찬양하는 사제가 아니라 러시아 최고의 ‘두뇌’와 장인을 배출하는 산실이었다. 물론, 도시 건설과 사회 발달의 초점이 군의 근대화 목적에 부합된 물질적 문물 위주로 서구화를 진행했기 때문에, 직접적인 정치 효과를 거둘 수는 없었다. 그러나 러시아가 후진성 인식에 따른 서구문명의 우위 인정과 함께 극복수단으로 제시된 국가에 대한 전 국민적 봉사책무 강요 및 서구문명의 합리성 존중 속에서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2. 러시아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표트르 대제의 상징적 의미제까브리스뜨 광장의 표트르 대제 동상은 러시아 최초의 기념 동상이라고 한다. 1782년, 예까제리나 2세가 표트르의 후계자임을 과시하기 위해서 프랑스의 조각가 팔코네에게 부탁해서 만들어졌다. 예까제리나 2세는 일명 계몽 군주라고 불리는데, 이처럼 개혁과 국민 계몽에 앞장섰던 예까제리나 2세는 표트르 대제의 개혁 정신과 실천성을 매우 존경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표트르 대제는 러시아에서 '개혁', 그 자체를 의미했다고 여겨진다. 알렉산드르 뿌시킨의 시에서 그는 표트르 대제에 대해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때로는 학자,때로는 전사,때로는 선원,때로는 목수,전지전능한 영혼을 가진 그,구세주 대사원 맞은편의 표트르 대제 동상그 영원한 일꾼이 왕좌 위에 있었다."1825년 12월의 젊은 장교 및 전문직업인들을 중심으로 모반사건-일명 "제까브리스뜨 난"이 이 동상 앞에서 시작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이다. 청동기사상 뿐만이 아니다. 표트르 대제의 계획 도시인 상트 페테르부르그에서 1905년 5월, 10월 혁명과 1917년 10월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시작된 것 또한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또, 구세주 대사원 맞은편의 표트르 대제 동상도 비교적 현대에 지어지긴 했지만, 그 의미는 비슷한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모스크바 시장 루즈꼬프가 서구화의 기수라는 자신의 이미지 메이킹을 위해서, 러시아 역사상 서구화의 상징인 표트르 대제의 동상을 어마어마한 높이로 건설했다고 한다.서유럽의 중심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지정학적 여건이나, 유연하게 생활하기 힘든 척박하고 추운 자연환경 등의 조건으로 인해 러시아에서는 대대적인 개혁을 실시하는 것이 오랜 역사 속에서 아주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표트르 대제의 강력한 추진력을 바탕으로 한 문화와 행정 개혁은 러시아 국민들에게 아주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 변화를 지향하는 러시아의 지식인들과 통치자들은 황제를 칭송했고 문화와 과학, 창조의 요람인 상트 페테르부르그를 사랑했다.3. 상징적 의미의 원인상트 페테르부르그로의 천도는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는 1147년에 형성되기 시작한 고도이다. 우랄 산맥 서쪽 지역을 놓고 볼 때 동서남북의 중앙에 자리하고 오까 강, 볼가 강, 돈 강, 드네쁘르 강의 상류에 위치하여 교통이 편리한 곳이다. 또한 모스크바를 둘러싸는 숲들은 천혜의 방어벽을 형성한다. 1812년 나폴레옹의 무적 군대는 모스크바를 거의 점령하다시피 했지만 퇴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2차 세계대전의 화염 또한 모스크바를 건드리지는 못했다. 모스크바는 한마디로 수도로서의 명당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도시다. 표트르 대제의 대담한 결정은 당대 모스크바 토박이 귀족들의 불만을 자아내거나 경악시키는 정도로 그치지 않았다. 상트 페테르부르그의 건설과 수도의 이전은 러시아 전체 역사의 운명을 뒤바꾼 혁명적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모스크바가 위치한 대륙의 중앙은 서구 문물에서는 고립된 곳이기도 했다. 모스크바에 뿌리를 내린 종교와 인맥, 계급은 바다에서 자유롭게 이동하기를 꿈꾸었던 표트르 대제의 발목을 붙들어 맸다. 표트르 대제는 이 곳에서 먼 대양으로 나아갈 수도, 마음대로 인재를 등용할 수도 없었다.이 진취적인 군주가 몇 백 년에 걸쳐 형성되어온 고답적 전통을 끊기 위해서는 인습의 도시를 떠나야 했다. 그리고 저 넓은 세상으로 인도하는 바다를 향해 배를 띄우고, 돛을 높게 올려서 자신의 꿈을 자유롭게 실현하기 위해 표트르 대제는 대양과 유럽에 가까운 공간에 둥지를 틀어야 했다. 북서쪽 변방에 상트 페테르부르그라는 도시가 태어난 것은 상식을 초월하는 표트르 대제의 결정에서 비롯되었다. 황제의 이 비범한 결단은 러시아가 그때까지 알지 못했던 근대 문화를 보고 수용할 수 있는 '유럽으로 향한 창'을 열었다고 여겨진다.표트르 대제는 이 같은 결단력과 진취적인 변혁을 추구한 것뿐만 아니라, 매우 실천적이고 개방적이었던 군주이기도 했다. 그는 국사를 자신의 결정으로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전제 군주였지만 스스로 활동하는 미덕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외적들과의 전쟁에서 병졸로 들어가 보병과 수병의 직무를 밑바닥에서부터 공부했다. 1697-1698년 사이 표트르 대제는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프러시아, 스웨덴 등을 순방했는데 그것은 군주로서가 아니라 서구 문물을 배우려는 학생의 입장에서였다. 표트르 미하일 로프라는 평민으로서 유럽을 돌아본 이 특이한 지도자는 근대 과학 지식에 경도되었다.4. 표트르 대제의 또 다른 상징적 의미 또는 그늘상트 페테르부르그는 물론 훌륭한 도시이지만, 자연적 조건은 거의 최악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생활에 적합지 않다. 연 평균 기온은 4.2도로 쌀쌀한 편이고, 일조량은 일년에 31일이다. 게다가 4월에서 11월 사이 222일 동안 126~158일은 비가 내리며, 12월에서 3월까지는 거의 매일 눈이 내린다. 도시는 건설 당시부터 현재까지 거의 300번의 홍수가 일어났다. 매년 한번씩 일어난 셈이다.상트 페테르부르그의 건설은 자연과의 투쟁이었다. 수도를, 그것도 자연 조건이 좋지 않은 곳에 건설하는 일은 막대한 재정을 요구했다. 1714년 표트르 대제는 도시에 들어오는 모든 배와 사람들이 돌을 가져오도록 하는 칙령을 내렸다. 이 법을 위반할 경우엔 은화로 범칙금을 내도록 했다. 또한 수도 건설에 모자라는 예산을 충당하기 위해 표트르 대제는 백성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부과했다. 신체의 한 부분으로 없어서는 안됐던 수염을 군주는 잘라버리도록 압박했다. 표트르 대제는 고관들의 수염을 손수 깎아주기까지 했다고 한다. 또 시체를 넣는 관, 목욕, 꿀벌 등에 대해서도 세금을 매겼다. 교회도 황제의 단호한 결심 앞에서는 큰소리를 내지 못했다. 표트르 대제는 교회의 종을 녹여 무기를 제조했고 막강한 세력을 휘두르던 교회를 국가의 관청인 ‘신성 종무원’으로 만들어 교회의 재산을 국가에 귀속시켰다. 황제는 ‘전체를 위해 개인이 희생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믿었고 백성들이 자신의 신조에 따라주기를 원했다. 앞길을 가로 막는 장애는 어떤 경우라도 용납하지 않았다.
헐리우드 속의 동아시아목 차1. 서론2. 미국 영화 속에서 만나볼 수 있는 동아시아3. 미국 드라마 속에서 만나볼 수 있는 동아시아4. 세계 모델 순위에 오른 아시아계 모델5. 결론교과명동아시아 사회?문화담당교수제출일자학과학번이름1. 서론일명 글로벌 시대, 21세기의 지구에서는 다른 나라의 존재와 이미지에 대해서 상당히 해박한 지식들이 공유되고 있다. 그리고 그 어느 곳보다도 다양한 인종과 민족의 문화가 모여 용광로처럼 끓어오르고 있는 나라, 바로 미국에서는 이런 관심과 지식이 더 발달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미국에 형성되어있는 각 국가의 이미지는 단순히 미국만의 문화에서 그치지 않는다. 전 세계 모든 나라의 문화 컨텐츠가 역시 전 세계의 모든 나라로 완전히 쌍방향 교류가 이루어지지는 않지만, 미국 특히 헐리우드에서 생산된 영화, 드라마, 음악 등은 거의 모든 나라로 파급되기 때문에 미국 문화에 반영된 한 나라와 민족, 인종의 이미지는 그 의미가 가히 절대적이다. 특히, 동아시아와 직접 교류하기 어려운 지역에서는 헐리우드에서 형성된 동아시아의 이미지가 여과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금부터 미국 영화와 드라마, 그리고 패션 속에 반영된 동아시아 한국, 중국, 일본의 이미지를 살펴보고 그 숨어있는 의미를 알아보고자 한다.2. 미국 영화 속에서 만나볼 수 있는 동아시아올해 겨울 ‘게이샤의 추억’이라는 영화가 개봉했다. 헐리우드의 자본으로 제작되었고, 감독을 비롯한 모든 스텝들은 헐리우드 출신이었으며, 대사 역시 영어로 구성되었다. 그리고 게이샤라는 일본 기생의 역할은 중국인 배우인 장쯔이와 공리가 맡게 되어 일본과 중국, 양국에서 엄청난 논란을 일으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헐리우드의 대형 자본과 영화계의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했으며, ‘시카고’를 감독했던 롭 마샬이 감독을 맡았다는 이유만으로도 수많은 영화 팬들은 이 새로운 시도에 큰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뚜껑을 열어본 결과, 동아시아의 영화 팬들은 대다수가 거의 절망에 가까운 실망감여성이 보기에 답답하기까지 할 정도로 말이 없다. 하지만 위기에서는 엄청난 강인함을 발휘하기도 한다. 또한 사무라이들의 무술에 대해서는 미화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만약 사무라이들이 진정 그토록 신비롭고 특별한 무술을 가지고 있었다면, 지금 일본의 군대는 서양식으로 현대화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점에선 ‘킬 빌’이라는 영화 역시 마찬가지다. 여자 주인공 더 브라이드(우마 서먼)는 자신을 배신한 남자 빌을 죽이기 위해 일본의 무술을 배우고, 이소룡의 노란색 트레이닝복을 입는다. 또한 그녀를 상대하는 빌의 부하들 역시 일본인인데, 그 중 빌 바로 아래의 우두머리 오렌 이시 역할은 루시 리우라는 재미 화교가 맡고 있다. 이 영화에서는 일본과 중국의 문화가 어수선하게 혼재되어있음을 볼 수 있고, 주인공이 배운 일본 무술은, 무시무시한 무기들을 지닌 고수들에게 초월적인 힘을 발휘하는 것을 볼 수 있다.그림 에 등장했던 동방명주지금까지는 일본을 배경으로 하며 일본인을 주인공으로 한 미국 영화들을 보았다. 특히 먼저 살펴본 영화 두 편은 제목부터 게이샤, 사무라이라는 일본 문화가 반영돼있고 그 만큼 많이 표현되어있기 때문에 먼저 살펴보았고, 지금부터는 중국과 우리나라가 일부 반영된 영화들에 대해서 소개해보고자 한다.2006년 5월, ‘미션 임파서블 3’가 개봉되었는데 이 영화의 1/4 가량이 중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영화를 보면 상해가 얼마나 거대 도시로 성장했는지를 실감할 수 있는데 특히 상하이 명물인 ‘동방명주’ 빌딩이 자주 등장해 관객들의 시선을 끈다. 하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상하이의 야경을 풍부하게 담고 있고, 매기 큐라는 중국계 혼혈 배우를 캐스팅 하는 등 철저히 중국 시장을 공략한 의도가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이 유명한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는 중국에서 상영 허가를 받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영화에서 톰 크루즈가 여자 친구를 구하기 위해 도착한 상하이는 엄청난 빌딩들이 즐비한 대도시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그 이면에 좁은 골목과 지붕 곳곳에 대나무 하지만 경찰은 그 사람들은 절대 편의점에 안 나오는 일이 없다면서 강도가 들은 것을 직감한다. 짧은 장면이지만, 이 장면을 보면 미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한국인들이 매우 근면하고 성실한 점, 또 한국인에 대해서 그런 이미지가 지배적이라는 점 등을 알 수 있다. 또 ‘브레이크 아웃’이라는 영화는 변형된 바이러스가 미국전역을 휩쓸게 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 바이러스의 숙주인 원숭이를 보호하고 있던 것이 '태극호' 라는 한국배 이다. 주인공인 더스틴 호프만과 한국 사람들이 대화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한국인들이 처음에 닥터라는 단 한마디를 알아듣고 약간 후진국적인 이미지로 표현된다. 왜 한국의 어선이 원숭이를 태우고 있는지, 미국의 어부들은 외국어를 얼마나 알고 있는지 의아하다. ‘스피어’라는 영화에서는 한국인은 한 명도 나오지 않고, 한국에 대해서는 오직 대사 한마디만 등장할 뿐이지만, 한국제 상품에 대해서 미국인이 가지고 있는 인식을 확인할 수 있다. 내용은 태평양 해저 깊숙한 곳에서 외계에서 온 것처럼 보이는 우주선이 발견되자 정부는 각 분야전문가들로 구성된 팀을 만들게 된다. 심리학 박사, 생화학자, 수학자, 천제 물리학자 4명이 그 팀일원인데, 이 알 수 없는 물체를 수학자(사무엘 잭슨)가 보자 "뭔지는 잘 모르지만, 뒤집어 보면 한국제 라고 써있을거야"라고 말한다. 미국 내에 한국제 상품이 아주 다양하며, 특이한 상품들이 많은 모양이다.뿐 만 아니라, 요즘 미국 영화에선 북한이 자주 등장한다. 냉전 시대에 소련을 공공의 적으로 삼아 수많은 첩보영화들―대표적으로 007 시리즈―이 만들어졌는데, 소련 붕괴 이후에 그런 영화에 등장할 만한 적국 세력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북한이 위조 달러를 국가적으로 생산하는 등 세계적으로 상당한 만행을 저지르고 있기 때문이다. 역시 007 시리즈가 가장 노골적으로 북한을 등장시키기 시작했다. ‘007 어나더데이’에서는 소련을 대체하는 적국으로 북한이 등장하는데, 북한의 한 장군이 세계 목표를 꿈꾸는 악당이종적인 편견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논란도 있었다. 선은 여기서 역시나 순종적이고 가정적이며, 약초에 아주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등 미국인이 한국인에 대해 가지고 있는 신비감을 다시 한 번 보여준다. 그런데 그녀는 아무리 더운 날에도 고수하고 있던 무릎길이 스커트와 니트 카디건을 벗어버리고, 남편의 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비키니를 입은 뒤로 자기주장을 펴기 시작한다. 한국의 여성상이 변화했음을 상징했으면 좋겠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선이 주위의 외국인들에게 영향을 받고 남편으로부터 서서히 독립하는 과정을 보여주기 때문에 살짝 아쉬움이 느껴진다.‘길모어 걸스’라는 드라마에서는 주인공과 가장 친한 친구가 바로 재미 교포 레인 킴이다. 그녀는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라 다분히 미국적이며 이로 인해 근대적인 어머니, 할머니와 늘 갈등을 빚는다. 그녀는 락 밴드의 드러머이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락 음악을 사탄의 음악이라고 하고, 성경을 강요하는 등 독실한 개신교의 신도이지만 정작 레인의 결혼식에는 스님을 불러놓고 한국의 전통 혼례를 치른다. 불상까지 등장한다. 한국의 전통 의식에 대해서 잘못된 상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만 그나마 한복은 비슷하게 입었으니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많은 한인 교포들이 독실하게 개신교를 믿고, 여느 미국 가정과 달리 귀가 시간 등에 엄격한 점 등이 반영된 것으로 생각되지만, 한국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자녀에게 엄격하다 못해 억압적인 부모님의 교육관이나 우스꽝스러운 결혼식 장면은 역시 아쉬움을 남긴다.그림 에 등장한 한국 전통 혼례식‘섹스 앤 시티’라는 시트콤에서는 주인공과 그녀의 연인이 이국적인 데이트를 하기 위해서 코리아 타운을 찾는 장면이 잠시 나오기도 한다. 미국인들이 한국인의 문화를 재미 교포와 코리아 타운을 통해서 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최근에 미국 드라마에서 이렇게 한국인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동안 자주 등장했던 중국인이나 일본인에 대해서 이국적인 매력을 더 이상 느끼지 못하기 때문인 듯하다. 그래서인지 최근의 미국 중국인 야오린인데, 그녀는 미국에서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는 화교로서, 잔꾀를 잘 쓰고 사소한 일로 가브리엘과 분란을 일으키곤 했다. 영어 발음이 어색하고, 미국 사회에 반발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미국에서 성장한 화교가 아니라, 화교 1세대를 연출한 캐릭터인 것 같다. 이 드라마는 미국의 중산층 가정들이 사는 LA의 교외 지역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인지 유색인종이 유난히 등장하지 않고, 중국인들은 오직 가정부로만 등장한다. 게다가 노예로 팔려온 순진한 처녀나, 청소 하나 제대로 못하는 아줌마로 무시당하는 모습으로 비춰지는 등 중국인이 상당히 비하되어 있다.4. 세계 모델 순위에 오른 아시아계 모델세계의 패션 시장은 대표적으로 뉴욕, 파리, 밀라노, 런던, 도쿄를 꼽을 수 있다. 그래서 유명 모델들은 자신의 국적과 상관없이 이 도시들을 오가며 활동하고, 패션계에는 ‘모델’이라는 직업이 있을 뿐이지 국적은 중요하지 않다고도 볼 수 있다. 그래서 세계 패션계에 등장한 모델들은 국적과 상관없이 순위가 매겨지며, 인기나 외모 등에 따라 일주일에 한 번씩 그 순위가 업데이트된다. 하지만 모델이 되는 그 자체엔 ‘인종’이라는 제약이 그 어느 분야보다도 엄격하게 적용되고 있다. 인종이 다를수록 서양인 위주로 형성된 미의 기준에 맞기 힘들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미의 기준이 서양인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듯이, 패션 중에서도 성대한 패션쇼를 할 정도의 하이패션 계에서는 인종 차별의 벽이 더더욱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례적으로 세계 모델 계에 입성해 승승장구를 하고 있는 한국인과 중국인 모델이 있어 큰 관심을 받고 있다.한국인 모델은 ‘Hye Park’, 본명 박혜림으로 중학생 당시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가 2005년에 인터넷 오픈 캐스팅을 통해 뉴욕 패션계에 데뷔했으며 현재 모델 순위 31위를 차지하고 있다. 31위는 동양인으로서 최초, 최고의 순위이며 샤넬과 프라다의 쇼에 선 최초의 아시안 모델이라는 타이틀그림 www.models.com의 모델 순위 31위, 33위에해졌다.
신의 대리인, ‘정령’슬라브 신화의 레쉬(Leshij)와 그리스 신화의 하마드뤼아데스(Hamadryades)1. 슬라브 신화의 레쉬(Leshij)2. 그리스 신화의 하마드뤼아데스(Hamadryades)3. 레쉬와 하마드뤼아데스의 공통점4. 레쉬와 하마드뤼아데스의 차이점5. 고대적 정령의 의미6. 현대적 정령의 의미 재해석1. 레쉬(Leshij)슬라브 문화에 등장하는 ‘레쉬’는 숲(Les)라는 러시아어에서 유래한 숲의 정령이다. 레쉬는 숲의 주인이자 동물들의 보호자이다. 레쉬는 다른 정령들과 마찬가지로 주로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다. 러시아인들에게 있어 그는 벨트를 하지 않은 농부로 그려진다. 야로슬라블 지방의 농민들은 레쉬가 까프딴이라고 하는 띠달린 긴 소매옷을 걸치고 발에도 맞지않는 가죽 신발ㅇ르 신고 눈을 반짝거리면서 다녔다고 말한다. 또 스몰렌스끄 지방에서는 레쉬가 마치 흰 옷을 입고 있었다거나 놀란 표정을 지었다는 말로 전해내려온다. 그리고 그는 숲에서 가장 큰 나무처럼 갑자기 키가 커졌다가 어떤 때는 풀잎처럼 작아지기도 한다고 사람들은 믿고 있다.또 하나 특징적인 것은 레쉬가 숲에 살고 있는 짐승들의 통치자라는 것을 표시하기 위해 몽둥이나 매를 들고 다닌다는 점이다. 버섯의 주름은 바로 레쉬에게 채찍으로 맞은 자국인 것이다. 나무꾼들 역시 레쉬의 피해자인데, 레쉬는 나무꾼들의 도끼를 감추기도 하고 그들의 손수레나 썰매가 꼼짝 못하도록 하기도 한다. 그래서 러시아 농민들은 숲으로 들어갈 때 보호해달라는 기도를 드리기도 하고, 특히 레쉬가 겨울잠에 들어가는 10월 4일 무렵에는 숲에 들어가기를 꺼린다.기독교 문화가 널리 전파된 이후로 레쉬는 다른 정령들처럼 이중적인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숲과 식물의 주인으로서의 특징은 점점 사라지고, 힘이 세고 두려운 존재로, 그리고 영리한 농부에게 속임을 당하는 어리석은 악마로 그 성격이 탈바꿈되었다. (출처 : ‘문화로 본 러시아’, 김형주)2. 그리스 신화의 하마드뤼아데스(Hamadryades)‘하마드뤼아데스’는 나무의 요정으로 ‘나무(dryas)'와 '함께(hama)'하는 이들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 나무의 요정은 그 요정 자체의 의미보다는 이 요정에 얽힌 신화를 통해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엘레우스라는 지역에는 대지의 버금 여신이오, 곡식의 으뜸 여신인 데메테르의 신전이 있는데 그 신전 뒤에 산과 나이를 견줄 만큼 거대한 참나무 한그루가 있었다. 이 나무는 나무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다. 그런데 에뤼시크톤이라는 사람이 신과 나무에 대한 불신으로 그 나무를 베어버렸다. 그 나무에 살던 하마드뤼아데스는 피를 흘리며 죽었고, 다른 하마드뤼아데스들이 데메테르에게 이 사실을 고하여 에뤼시크톤에게 벌을 줄 것을 요청했다. 데메테르는 기아의 여신 리모스에게 에뤼시크톤을 처벌하도록 부탁하였고, 에뤼시크톤은 영원한 기아에 허덕여 전 재산을 잃고 딸 마저 팔았으며, 결국 자신의 팔, 다리, 입술까지 모두 뜯어먹고 죽게 되었다. (출처 :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187-198)3. 레쉬와 하마드뤼아데스의 공통점‘레쉬’나 ‘하마드뤼아데스’의 근거지는 모두 ‘숲’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숲에 살면서 나무를 지키는 숲과 나무의 주인 역할을 했다. 또한 그들은 대지모신인 ‘모꼬쉬’나 곡식의 여신인 ‘데메테르’를 섬겼다.레쉬가 나무꾼들을 괴롭히고 손수레를 빼앗고, 하마드뤼아데스가 귀한 나무를 함부로 베어버린 에뤼시크톤에게 복수한 일화들을 살펴보면 그들의 의미를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들은 숲을 지키고 보호하는 자연의 수호자였던 것이다. 인간은 도구를 사용할 수 있게 된 이후로 점차 자연을 정복하고, 도구화하여 인간 생활의 편리를 위해 이용해왔다. 하지만 인간은 자연의 두려움에 대해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신과 정령의 존재를 신화로 만들어 무리한 자연정복을 경계해왔던 것이다.또 레쉬는 숲에서 휘파람을 불고, 웃고, 노래를 불렀으며 하마드뤼아데스는 여럿이 모여 춤을 추고 놀았다. 이는 인간이 숲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며 간직한 아름다움을 깨닫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숲의 정령이 부르는 노래와 그들이 추는 춤을 상상하여 자연의 아름다움을 찬양했던 것이다.4. 레쉬와 하마드뤼아데스의 차이점레쉬는 난쟁이로 변하여 나무 숲 속에 몸을 숨기기도 하고, 숲 속을 지나는 여행객이나 사냥꾼을 혼란에 빠뜨려 길을 잃게 하기도 했다. 심지어는 어린 아이를 유괴하여 도중에 살인을 저지르기도 하였다. (출처 : 러시아 문화 예술 천년의 울림, 이덕형)하지만 하마드뤼아데스는 직접 사람에게 행동을 취했다는 내용을 찾아보기 힘들며, 사람에게 말을 하거나 신에게 사람들의 악행을 전하는 정도로만 행동하였다.이를 통해서 슬라브 문화와 그리스 문화에서 인식하고 있는 ‘정령’의 의미가 약간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슬라브 문화에서 정령은 보다 적극적이고 실존적인 존재인데 반해, 그리스 문화에 나타나는 정령들은 피상적인 영혼에 가깝다. 이런 차이점을 자연 환경의 차이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좀 더 북쪽에 위치한 러시아에서 자연환경은 보다 척박했으며, 사람들에게 주는 혜택이 인색했을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그리스는 따뜻하고 풍요로운 지중해에 위치해 사람들이 자연으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았을 것이다. 그런 차이점으로 인해 슬라브인들은 자연환경을 좀 더 두려워하고, 적극적인 존재로 생각하게 되었고, 반면 그리스인들은 인간 생활을 그다지 거스르지 않는 자연환경을 피상적인 존재로 생각하게 된 것은 아닐까.5. 고대적 정령의 의미그리스 신화에서 정령(demon)들은 항상 착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사악하다고 할 수도 없다. 또한 그들은 저승의 신, 하데스와 어떤 관계도 맺고 있지 않다. 그 정령들은 오히려 인간들과 상대하는데 있어서, 모든 신들에 의해서 고용된 대리인이라고 할 수 있다.그리스의 정령들은 영어의 '데몬(demons)'이 되었으며, 후에 구약성서에 나오는 '우상'과 '무서운 존재'라는 의미의 히브리 어를 나타내는데 사용되었다. 에드워드 필립스의 1706년판 영어 사전에는, '데몬은 ... 성서 속에 서는 항상 악마나 악령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씌어 있다. 그러나 영국인들은 '데몬'이라는 말을 경멸적인 의미로 사용되던 초기부터 오히려 고대 그리스적인 시각으로 쓰고 있었다. 이 두 가지 관용법은 14세기 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참조 : http://myhome.hanafos.com/~hidesmk)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레쉬는 모꼬쉬를 섬겼고, 하마드뤼아데스는 데메테르를 섬겼다. 레쉬와 하마드뤼아데스는 여신과 인간 사이의 대리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신들은 레쉬와 하마드뤼아데스로 하여금 인간들이 자연에 대하는 태도를 관찰하여 상벌을 주도록 한 것이다. 그들은 매우 객관적인 입장에서 인간의 행동을 판단했으며, 인간이 먼저 해악을 끼치기 전에 인간을 공격하는 일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