Ⅲ. 세계와 그 속의 모든 생명에 대해 창조신앙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1)들어가는 말창조는 단순한 시간적인 순서에서 첫째일 뿐만 아니라 논리적인 순서에서도 맨 처음의 것이며, 모든 윤리적이고 종교적인 삶의 기초이다. 아우스트랄로 피테쿠스 아파렌시스에서 호모 하빌리스, 호모 에렉투스 등의 순서로 이어져 원숭이가 사람이 되었다는, 현대 사회의 주를 이루는 이론인 진화론에 반해, 창조에 관한 지식은 성경으로부터 기원하며 신앙을 가짐으로 믿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볼 때 오늘날에는 창조 신앙이 이 사회로부터 많은 도전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2)창조와 진화(1)인간은 원숭이가 진화한 것인가아프리카 침팬지와 고릴라의 DNA는 사람과 99퍼센트 일치한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사람이 그들과 1퍼센트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생각 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수 천년, 어쩌면 수 만년 동안 원시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그들과, 하루가 다르게 발전을 이룩하는 인간이 어떻게 차이가 적다고 말할 수 있냐는 것이다. 그들은 단지 수 많은 동물 중에 인간에 가장 근접한 형태를 갖고 있을 뿐이지, 언어를 사용하고, 끊임없이 사고하는 인간과 빗댈 수 있는 그러한 종류의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윈의 때부터 진화론과 창조론은 항상 첨예한 대립을 이루고 있다. 진화론을 그냥 하나의 이론으로 보고 관대하게 받아들여도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기독교인들은 그럴 수가 없는 것이, 진화론자들의 이론을 인정하는 순간, 창세기에 기록이 되어 있는 하나님의 창조를 전면으로 부인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많은 창조론자들이나 ‘창조과학회’등에서는 보다 과학적인 근거들을 내세움으로서 진화론을 부정하고, 또한 그들이 제시하는 근거들 중에는 수긍할 수 있는 것들이 상당히 많은 실정이다. 원숭이로부터의 진화를 인정하면, 인간의 특별한 위치와, 인간만이 가진 가치와 존엄성을 설명할 수 없게 되고, 인간은 단지 큰 동물 세계의 한 부분에 불과하게 되어 버린다.(2)창조의 여러 가지 근거들앞서 말했듯이창조신앙은 기본적으로 성경에 기인한다. 그리고 그 증거들은 창세기와 같은 제한적인 부분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성경 전체에서 발견된다. 또한 그 증거들은 해석이 의심스러운 구절들로 이루어지지 않고, 세계의 창조를 역사적인 사실로 언급하는 상당수의 명쾌하고 분명한 진술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오직 주는 여호와시라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과 일월 성신과 땅과 땅 위의 만물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 보존하시오니 모든 천군이 주께 경배하나이다 (느 9:6)’ 과 같은 것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물론 다른 여러 신화나 설화에서도 나름대로의 세계의 기원에 대한 설명이 있긴 하지만, 대체로 이원론적이거나 다신론적인 요소들이 특징이고, 신들 사이의 격렬한 투쟁의 결과로 묘사하는 것들이 많은데, 그것이 바로 성경의 단순성과 건전성과 비교되는 점이다. 6일간의 창조 사역을 마치고 7일 째 안식을 취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성경은, ‘7일’이라는 기간이 물리적으로 현대의 7일 보다 훨씬 긴 시간인지, 아니면 찰나의 시간인지, 혹은 지금과 같은지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우리에게 창조의 신앙을 분명하게 갖도록 도와주는 근거임에 틀림없다.(3)창조와 진화의 통합 가능성여러 가지 근거를 들어 진화를 주장하는 학자들의 이론을 어느 정도 받아들여 창조와 진화를 통합해보려는 시도가 20세기 초에는 칼 베트, 티티우스 등에 의해, 20세기 후반에는 피콕, 바버 등에 의해 이루어지게 되었다. 진화론이 점점 더 많은 근거들을 갖고 다가오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진화론을 이단으로 규정하여, 진화론은 무조건 창조의 대립 꼭지로 보는 것을 경계했던 것이다. 그들은, 인간의 종을 진화에 귀속시킴으로 인간을 자연의 세계에 환원 시키는 것, 창세기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에서 모든 피조물들 가운데 인간이 가장 마지막에 등장한다는 점 등에서 창조론과 진화론의 통합 가능성을 제기 한다. 또한 기독교에서는, 그렇게 통합을 이루어낼 때, 오늘날 자연의 재난들을 극복할 수 있는 사고의 모델을 제시하고, 인종주의, 식민주의, 제국주의 등의 인간의 차별과 사회 계층화를 거부하고 모든 인류의 동등함을 요구할 수 있는 근거를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3)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창세기 2장 28절에 보면,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라는 말씀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말씀이 인간이 창조물에 대해 가져야 할 태도에 대한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우리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해져야 한다. 물리적으로 볼 때 출생률이 매우 낮은 우리나라의 여건을 따라가서는 안 된다는 말이고, 또 그렇다고 그냥 많은 아이들을 낳고 기르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의 사랑을 전하는 사람들을 번성케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또한 땅을 정복하고,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하시는 말씀은, 간혹 어떤 이들은 ‘다스리다’라는 말을 위계질서적인 다스리는 의미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나는 그 말도 맞다라고 생각하지만, 그냥 문자 그대로 다스리다라는 말로 해석해고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올바로 다스린다는 것은, 피지배 대상, 혹은 정복 대상에게 반감을 사지 않고,
Ⅰ. 현대세계에서 신학은 어떤 학문이며 어떤 과제를 가지는가1)들어가는 말인간은 이성적인 존재이기에, 자신이 알고자 하는 어떤 것들에 대해 분명하게 이해하고 싶어 한다. 그러므로 성경의 교리적 진리들이 그저 믿음으로만 받아들여지는 방식으로 이해 하고(물론 기독교인 당사자에게 그러한 자세는 반드시 요구되는 것이지만), 그러한 방식으로 세상에 전하려 한다면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기독교인은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분명히 보여주신 영원한 원리와 진리에 따라 생각하고, 그것을 올바르게 전하려고 노력을 해야 하는데, 바로 그것이 신학이라고 할 수 있다.2)현대 이전의 신학의 역사(1)고대교회는 위와 같은 노력을 오래 전부터 시작해왔다. 3세기 초부터 성경의 교리적 진리들을 완전하게 제시하고자 한 책들이 많이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처음으로 교리 신학을 체계적으로 제시한 오리겐의 「원리에 관하여」와, 기독교에 대한 변증을 다루었던 락탄티우스의 「신성 상요집 7권」, 그리고 5세기에 사도신경에 대한 해설을 다룬 어거스틴의 「신앙 핸드북」이라는 책 등이 그것이었다. 또한 교회는 367년에 구약과 더불어 27권의 신약성서를 정경으로 채택함으로써 신학을 할 수 있는 기본적 토대를 확실히 정립하였다고 볼 수 있는 때이다.(2)중세중세에는 아일랜드로부터 기독교 수도원 운동과 신앙적 계몽 운동이 전개되었고, 로마의 멸망으로 봉건 사회가 형성되게 되었는데, 이에 교회의 대주교는 영주처럼 많은 부를 소유하게 되어 타락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개혁 운동이 전개되게 되어, 신앙적 계몽을 주창한 ‘클루니 수도회’, ‘시토회’ 등의 수도원 운동과, 세계에 대한 부정적 태도와 금욕적 생활을 주장한 ‘카다리파 운동’과 더불어 ‘도미니크회’와 ‘프랜시스회’등이 출연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수도원들에서 학교가 발전하여 스콜라 신학이 발전되었으며, 교육제도도 발전하게 되었다. 즉 중세기는 고대에 정립된 성경과, 여러 교회적 기본 원리들을 바탕으로, 그것들을 어떻게 학문적으로 풀어나갈 것인지, 보다 현대의 신학에 한 걸음 다가서게 된 시기라고 할 수 있다.(3)근대중세기가 로마를 중심으로 한 유럽의 기독교적 발전을 이룬 때라면(물론 이것은 서구적인 시각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지만), 근대는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을 시작으로, 루터의 종교개혁, 그리고 ‘예수회’와 ‘마테오리치’등의 동양 선교가 이루어진 시기였다. 즉 이 시기는, 서양에 국한되어 있었던 기독교가, 동양으로 퍼져나가게 된 시기였으며, 너무 학문적인 것에 치중하던 중세와 달리, 기독교가 어떤 하나의 ‘마음의 종교’가 된 시기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루터의 종교개혁과, ‘존 웨슬리의 회심’이나 ‘1차 영적 대 부흥 운동’등에서 볼 수 있다.3)현대의 신학19세기는 ‘위대한 선교의 세기’라고 불리울 정도로, 유럽의 제국주의의 팽창과 더불어 기독교가 팽창한 세기였다. 특정 몇몇 국가에 국한되게 선교가 되었던 근대와 달리 이제 세계 곳곳에 기독교가 퍼지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신학은 애매하게 기독교는 이렇다 저렇다, 하는 것에서 그치게 된 것이 아니라, 기독교가 퍼져나간 각 지역의 특성에 맞게, 또한 필요에 맞게 발전하게 되었다. 예를들면 라틴 아메리카의 정치 현실 속에서 민중을 구하고자 했던 ‘구키에레즈의 해방신학’이나, 우리가 보기에는 다소 원시적인 형태의 모습을 많이 띄고 있으나 그 역시 기독교임을 부정할 수 없는 ‘아프리카 기독교’를 들 수 있다. 이렇듯, 현대에 들어서 신학은 우리 인간의 삶의 기준점이며 적용점이 되어 버린 것이다.
오경 같으면서 다른 구절들1. 창세기 8:20~21, 레위기 1:9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로 단에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창)그 내장과 정강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단위에 불살라 번제를 삼을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이라 (레)2. 창세기 17:14, 출애굽기 4:25,26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양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 하였음이니라 (창)십보라가 차돌을 취하여 그 아들의 양피를 베어 모세의 발 앞에 던지며 가로되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남편이로다 하니 여호와께서 모세를 놓으시니라 그 때에 십보라가 피남편이라 함은 할례를 인함이었더라3. 창세기 48:19, 신명기 33:17아비가 허락지 아니하여 가로되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그도 한 족속이 되며 그도 크게 되려니와 그 아우가 그보다 큰 자가 되고 그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 하고 (창)그는 첫 수송아지 같이 위엄이 있으니 그 뿔이 들소의 뿔 같도다 이것으로 열방을 받아 땅 끝까지 이르리니 곧 에브라임의 만만이요 므낫세의 천천이로다 (신)4. 창세기 50:24, 출애굽기 3:16~17요셉이 그 형제에게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를 권고하시고 너희를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창)너는 가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실로 너희를 권고하여 너희가 애굽에서 당한 일을 보았노라 내가 말하였거니와 내가 너희를 애굽의 고난 중에서 인도하여 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땅으로 올라가게 하리라 하셨다 하면 (출)5. 출애굽기 13:3, 신명기 16:3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애굽에서 곧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온 그날을 기념하여 유교병을 먹지 말라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너희를 그곳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니라 (출)유교병을 그것과 아울러 먹지말고 7일동안은 무교병 곧 고난의 떡을 그것과 아울러 먹으라 이는 네가 애굽땅에서 급속히 나왔음이니 이같이 행하여 너의 평생에 항상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온 날을 기억할 것이니라 (신)6. 출애굽기 13:9, 신명기 6:8이것으로 네 손의 기호와 네 미간의 표를삼고 여호와의 율법으로 네 입에 있게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능하신 손으로 너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니 (출)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신)7. 출애굽기 20:6, 신명기 7:9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출)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오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그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 (신)8. 출애굽기 22:21, 신명기 10:19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합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땅에서 나그네 이었었음이니라 (출)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음이니라 (신)9. 출애굽기 25:22, 민수기 7:89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괘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출)모세가 훼막에 들어가서 여호와께 말씀하려 할 때에 증거괘 위 속죄소 위의 두 그룹 사이에서 자기에게 말씀하시는 목소리를 들었으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심이었더라 (민)10. 출애굽기 34:13, 신명기 12:3너희는 도리어 그들의 단들을 헐고 그들의 주상을 깨뜨리고 그들의 아세라 상을 찍을 지어다 (출)그 단을 헐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상을 불사르고 또 그 조각한 신상들을 찍어서 그 이름을 그곳에서 멸하라 (신)11. 레위기 19:19, 신명기 22:9~11너희는 내 규례를 지킬지어다 네 육축을 다른 종류와 교합시키지 말며 네 밭의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며 두 재료로 직조한 옷을 입지 말지며 (레)네 포도원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라 그리하면 네가 뿌린 씨의 열매와 포도원의 소산이 다 빼앗김이 될까 하노라 너는 소와 나귀를 결의하여 갈지 말며 양털과 베실로 섞어 짠 것을 입지 말지니라 (신)12. 레위기 23:3, 신명기 5:13~14엿새동안은 일할 것이요 일곱째날은 쉴 안식일이니 성회라 너희는 무슨 일이든지 하지 말라 이는 너희 거하는 각 처에서 지킬 여호와의 안식일이니라 (레)
MADE IN USA이 책은 기소르망이 62년 처음 뉴욕에 가면서부터 지난 7월까지 미국을 여행하거나 연구하며 자료를 모으고 현장을 찾고 사람들을 인터뷰한 뒤에 쓴 약 40년동안의 조사 결과다. 이는 현재 우리나라 국민들처럼 미국에 대해 정확한 지식 없이 그 나라에 대한 기호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람들에게는 미국을 좀 더 명확히 알 수 있는 정확한 보고서라 할 수 있다.그는 1장에서는 미국사회를 단적으로 모든 것을 흡수해서 미국식으로 바꿔버리는 하나의 용광로 즉 ‘멜팅폿(melting pot)’으로, 또는 각자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뒤섞이는 ‘샐러드 보울(salad bowl)’로 표현했다. 하지만 용광로이건 샐러드 보울이건 미국 전체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그리고 신에 대한 공통의 신념을 가지고 있다고 표현하였다. 3장은 현재 우리나라의 현실과도 유사했다. 외모지상주의의 면모를 보여주었는데, 과연 이것이 단지 개인만의 필요(needs)에서 이루어진 것인지 아니면 그들이 속한 사회가 그들을 그렇게 몰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하여 생각하게 하였다. 또 관심 있었던 부분은 4장 이었다. 이 부분도 현재 우리나라의 종교의 현실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이제 더 이상 종교단체는 순수한 목적의 단체는 아닌 듯싶다. 규모에 의해 신앙이 평가되고 순수 신앙으로 사람들에게 전파되는 것이 아니라 자극적이고 세속적인 방법으로 영역을 넓히는 현재 종교계의 실태를 보면서 비단 이 이야기가 미국의 이야기만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제국주의적인 미국의 종교의 모습을 보면서 이제 경제, 정치, 문화 게다가 종교마저도 미국의 복제품이 되는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도 들었다. 또한 흥미로웠던 것은 7장에서 보여준 캘리포니아 주지사로 당선된 아놀드슈왈츠제네거에 대한 내용이었다. 저자는 그의 당선 요인을 미국에서는 지식계층은 현실에 대하여 무지하다는 의식이 있어 정부에 순응하고 유순한 지식층보다는 정부에 대한 비판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더 선호한다는 것이라고 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우리나라 정치에도 뭔가 새 바람이 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관심이 있게 본 부분은 바로 한국과 관련된 10장 '제국적 민주주의' 부분이다. 저자가 오늘날의 한국 사회를 통틀어 '반미적'이라고 평가하며 다른 전제 없이 '한국인들은 미국이 미군 주둔을 정당화하기 위해 북한의 위협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믿는다'고 단언하는 부분에서는 저자가 해외언론에 소개된 한국의 이미지만 보고 있지 않는가 하는 의심이 든다. 인터넷이나 신문 등을 찾아보면 이 책의 저자 기 소르망은 중립적 입장, 즉 여행자적 입장으로 이 책을 출간하였다고 표현하고 있지만 이 부분은 저자의 잘못된 표현이라 생각이 든다.
Ⅰ. 중세 기독교1) 새로운 질서요약(1)야만족의 왕국로마인들이 단지 약탈자라고만 생각했었던 ‘야만족’들은, 실제로는 로마 제국에 자리를 잡고 문명의 혜택을 누리고 싶어 하는 무리였다. 따라서 그들은 원하는 지역을 점령하거나, 그렇지 못한 경우에도 한 곳에 정착을 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반달족은 북아프리카 해안 지방을 정복했으며, 시실리, 코르시카, 사르디니아 등까지 점령을 하였고, 서고트족은 발칸 반도 일대를 휩쓴 후 로마를 점령했고, 8세기 초까지 스페인 지역까지 통치한 것을 들 수 있다. 각 무리 마다, 기독교에 대한 생각이나 태도가, 조금씩 달랐는데, 각 지역들이, 다른 어떤 무리에게 정복에 됨에 따라, 그때 그때 많은 갈등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또한 갖가지 침입과 약탈에서 모면 될 수 있었던 아일랜드에서는, 선교사 콜룸바를 스코틀랜드에 파견함을 시작으로 선교의 중심지 역할을 하기도 하였는데, 그에 따라 아이리쉬 전통과, 로마 전통을 따르는 기독교간의 마찰을 해결하기 위해 휘트비에서 회의가 소집되기도 하였다.(2)베네딕트의 수도원 운동교회가 제국주의와 결탁하는 모습을 보여주게 되자, 초대교회에서 나타나던 헌신의 수도생활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동방 제국에서 강성했으나, 서방 제국에서도 나타났는데, 그들은 동방 제국과는, ‘보다 실질적이라는 점’, ‘은둔생활 보다 공동체 생활을 추구했다는 점’, ‘공식적 계급 제도와 계속적 갈등을 겪지 않았다는 점’,에서 다르게 나타났다. 이러한 서방 수도원의 형성에 중요한 인물이 베네딕트인데, 그는 정통주의와 아리우스파 사이의 갈등을 잘 이해하고 있었으며, 그로 인해 박해도 받은 인물이다. 그는 극단적 금욕생활을 하였고, 그로 인해 널리 알려진 그의 명성에 따라 많은 제자들이 모이게 되고, 비슷한 성향의 수도 공동체들도 세워지게 되었다. 또한 그는, 극단적 금욕주의 대신, 질서와 규범을 통한 수도 생활을 추구하는 「규율집」이라는 것을 작성했는데, 그것은 그 후 수 세기에 걸친 서방교회 수도원 운동의 기본 모습열하게 진행되었던 이 논쟁은 787년 제7차 세계 종교 회의에서, 하나님께만 드릴 수 있는 예배(라트리아)와 성상들을 대상으로 할 수 있는 예배(둘리아)를 구별하면서 끝난다.(3)동방의 분파 교회들페르시아 교회는 410년 독립을 선언하고, 다른 기독교 신자들은 이들을 네스토리우스파 라고 규정했다. 또한 단성론자들이라 불리우는 아르메니아인들이 있었다. 페르시아와 로마 제국의 완충 지대였던 아르메니아의 통치자들은 콘스탄틴 대제보다 앞서 기독교 신자가 되었었는데, 그것은 성경이 아르메니아어로 번역되는 것 까지 영향을 끼쳤다. 아르메니아는 결국 페르시아에게 유린당하는데, 그 와중에서도 그들의 신앙을 고수 하였다. 이집트와 전통적으로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던 이디오피아 기독교는 단성론자로 불리웠고, 이집트와 시리아는 비잔틴 제국의 영역 내에서 단성론이 가장 강하게 나타났던 곳이었다. 시리아에서는 칼케돈파와 단성론자들로 양분 되었는데, 단성론자들은 후에 ‘야곱파’로 불리게 되었다.(4)아랍 정복 후의 동방 정교아랍인들의 정복 이후, 동방 교회는 주로 북,북서쪽으로 확장하였다. 그리하여 그 지역 중심으로, 원래 존재하고 있던 서방 기독교와 동방기독교 사이의 경쟁이 일어나게 되었는데, 이에, 콘스탄티노플 측에서는 키릴과 메토디우스 형제를 선교사로 파견하였고, 그들로 인해 헝가리인들로 인해 사라진 모라비아 왕국내에서, 슬라브인들 중 일부는 서방 교회에, 또 다른 일부는 동방정교에 흡수되기도 하였다. 정교의 선교 활동중 가장 큰 성공은 러시아의 개종이라 할 수 있다. 러시아에서는 서방이 아닌 동방의 비잔틴 제국에서 선교사들을 요청하였는데, 그것은 로마로 부터는 더욱 멀어지는 결과를 초래시켰다.샤를마뉴에 의해 서방이 회복이 됨으로써, 동방과 서방의 관계는 더욱 더 악화 되었고, 867년, 필리오케라는 단어로부터 문제가 야기된, ‘포티우스의 분열’이라는 사태가 일어나기까지 한다. 계속 된 분열 양상은 결국, 11세기, 훔베르트 추기경이 성 소피아 성당에서 미카엘 케룰라리우스 및 었던 사람들을 쉽게 잊어버리는 것과 같이 말이다.스칸디나비아인들과, 헝가리인들이 침입을 하는 와중에도, 그들, 즉 침입자들에게도 기독교가 전해지는 것을 보고 또 한번 놀랐다. 침입자들은 정복자들에 대해 자연히 하찮게 여기게 될텐데, 그들의 종교를 받아들였다는 점은, 분명히 기독교가 대단한 종교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4) 개혁과 부흥 운동요약(1)수도원 개혁운동스칸디나비아인과 헝가리인들은 수많은 수도원들을 약탈하고 파괴하였는데, 그러면서 수도원을 지켜야 할 귀족들과 감독들은 오히려 수도원을 사유재산화하기 시작했고, 점점 수도원은 본래의 목적을 잃어가게 되었다.에퀴테인의 공작 윌리엄 3세는, 향후 거대한 개혁의 중심지가 될 소규모의 수도원을 창설했다. 그는 수도원장으로, 수도원 개혁을 위한 열성을 가진 베르노를 초빙하였고, 그의 요청에 따라 윌리엄은 자신이 갖고 있던 클루니를 수도원 부지로 제공하였다. 그는 사도들에게 속한 재산에 손대는 것을 명문화하여 금지시키기도 했다. 이후 클루니 수도원은 오도, 아이마드, 마이율, 휴 등의 위대한 원장들로 인해, 위대한 개혁 운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클루니 수도원은 개혁의 전성기를 맞게 되었으며, 다른 교회들에게도 전반적 개혁의지를 불어 넣어 주게 되었다. 그러나 클루니 수도원은 수도사와 수녀들의 결혼문제, 축적된 부로 인해 불거진 재산 사용에 관한 문제 등으로 인해 점점 타락하게 되었다.이에 반해 또 다시 새로운 수도원 운동이 일어났는데, 그것은 11세기말 모레스메의 로버트가 창설한 시토 수도원이었다. 시토회 운동을 대표하는 인물은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드라고 할 수 있는데, 그는 그의 뛰어난 설득력과 시대에 끼칠 수 있었던 영향력 등을 통해, 한 세기 전의 클루니가 담당하였던 것과 동일한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2)교황 주도의 개혁수도사 힐데브란트는 그레고리 6세가 임종할 때까지 동행하였던 사람이었는데, 그의 임종 2년 후, 로마를 향해 가는 소수의 순례자들을 이끌고 있던 브루노의 동행 요청에 응하였다스투리아스 지방에서 명맥을 유지하였으며, 프랑크족은 보다 동방으로 진출하게 되었다. 바로 이 두 세력이 ‘레콩키스타’라고 부르는 이슬람에 대항한 기나긴 저항을 시작했는데, 이들은 종교를 초월한 동맹의 모습까지 보였다. 1002년, 코르도바의 마지막 칼리프가 사망함으로써 모슬렘의 영역들이 수많은 소왕국들로 분열되었는데, 이에 1085년, 옛 서고트족의 수도였던 톨레도를 수복하였고, 1212년, 기독교 왕들은 나바스 데 톨로사 전투에서 연합 전선을 결성하였으며, 1492년, 페르드난드와 이사벨라가 그라나다를 함락시킴으로써 긴 저항은 끝을 맺었다.(4)이슬람에 대한 공격의 결과들여러 차례의 걸친 전쟁들은, 기독교와 이슬람, 라틴 신자들과 비잔틴 신자들 사이의 증오심과 적대심을 깊어지게 하였다. 또한 십자군 원정과 스페인 재정복은 교황의 세력을 강화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였으며, 기독교의 경건 생활에도 큰 영향을 미쳤으며, 십자가 고난의 세부적 상황에 관한 시, 저서들이 나타남에 따라 성 유물 숭배가 가열되기도 하였다. 명상 혹은 성경 연구에 시간을 보내는 대신 전투를 위주로 하는 군사적 수도회의 설립도 있었으며, 프랑스 및 이탈리아 일부 지역에서는 고대의 마니교와 비슷한 교리들이 번성하기도 하였는데, 카타리파나 알비파 등이 있었다. 그리고 십자군 원정은, 도시들이 성장하게 하였으며, 부르주아라는 새로운 계급이 나타나게 하는데 일조하였다.Comment처음으로 기독교인들이 뭔가 하나가 되었다는 느낌을 받는 부분이라서 일단 이제까지의 대립적인 모습과 다르다는 면에서는 보기 좋다고 생각했다. 물론 앞서 말했듯이, 예수님의 사랑을 전해야하는 기독교가 종교적인 이유를 들어가며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많은 나쁜 일을 자행한 것은 이해 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그나마 그 전처럼 계속 자기들끼리 싸우는 것보다는 조금 더 낫다고 이해한 것이다. 그 많은 십자군 원정이 1차를 제외하고 거의 모두 실패했다는 것이, 바로 그 순수하지 못한 그들의 의도 때문이었다는 느낌이 나에게 에 걸쳐서 어떤 영향력을 끼치기는 매우 힘든데, 중세 시대에, 로마도 아니고, 유럽 전역에 걸쳐서 자신의 힘을 떨친 그는, 몽고의 징키스칸과 비슷한 느낌으로 받아들여도 되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때로는 수도회를 통해, 혹은 이슬람의 공격을 통해, 혹은 이처럼 단 한 사람을 통해, 많은 것을 바꾸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스콜라 신학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몰랐는데, 안셀름, 아벨라드, 피터 롬바르드 등의 사람들의 소개를 통해 어느 정도 알게 되어 좋았고, 여행을 갔을 때나, 외국의 사진으로 접했던 고딕 양식 건물들이, 어떤 역사성을 갖고 있는지도 대강 알게 되어 유익했다.7) 몰락요약(1)새로운 상황화폐 경제는 12~13세기에 발전하여서, 중세말의 상황을 결정짓는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였으며, 부르주아 계급은 점차 막강한 영향력을 소유하게 되었다. 이 계급은 봉건 영주들의 이해관계와 대립되었는데, 그래서 그들은 국왕들을 지원하여 귀족들에 대항하였다. 국왕 역시 이를 통해 이익을 얻었고, 이러한 과정들을 통하여 프랑스, 잉글랜드, 그리고 스칸디나비아 제국 등의 근대 국가들이 발전하게 되었다. 이 시게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였던 것은 국가주의였는데, 이것은 우주 전체에 대한 권위를 내세우는 교황의 주장을 잠식시켰고, 교회의 개혁을 희구하게 되었다. 1337년에는 백년 전쟁이라 불리우는 제1차 유럽 대전이 발발하여서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나게 되었는데, 그 중 하나로는 잔다르크가 많은 활약을 떨치다가 마녀 사냥의 피해자가 되어 화형에 처하게 된 것을 들 수 있다. 이 전쟁이 종식된 후 국가주의적 경향이 강화 되었고, 교황의 영향력은 약화되게 되었다. 1473년에 나타난 흑사병과, 곧이어 나타난 패스트의 창궐은 종교적인 영향을 끼치게 되었는데, 많은 이들이 시대 정황상, 삶 자체를 죽음을 위한 준비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순례와 성 유물 숭배 혹은 그 유물들의 매매 등이 성행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결국 콘스탄티노플은 모하메드 2세에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