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1이슬람 문화..PAGE:2개념정리 아랍, 중동, 이슬람의 관계이슬람교의 기원과 주요인물그리스도교와의 충돌과 이슬람교 쇠퇴이슬람교의 아시아 진출이슬람교의 건축물(스페인)이슬람교의 문화(의식주, 결혼, etc)목 차..PAGE:3아랍, 중동, 이슬람의 관계아랍- '아랍어'를 국어 또는 공용어로 사용하는 지역아랍어를 사용하는 중동국 + 북아프리카의 아랍어 사용국 + 동아프리카 해안과 인도양 사이의 작은 섬나라인 코모로 정도로 이들은 '아랍 연맹'을 이루고 있음중동2차 세계대전 때에 영국군에서 처음으로 사용한 문구(Middle East).유럽과 인도의 중간에 있는 유럽 기준 동쪽 지역이라는 뜻.동으로는 파키스탄, 서로는 터키, 북으로는 카프카스 3국정도를 '중동'의 범위..PAGE:4아랍, 중동, 이슬람의 관계이슬람'이슬람'이라는 종교가 크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역을 말함.중동과 아랍의 합집합에 동유럽 일부(알바니아와 코소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등), 동남아시아의 이슬람국(인도네시아, 브루나이, 말레이시아, 방글라데시), 그리고 중앙아시아의 유목민 국가(~스탄), 중국의 위구르 자치구 정도가 포함된 개념...PAGE:5이슬람교 기원1) 이슬람교란?이슬람교는 7세기 초 아라비아의 예언자 무함마드가 완성시킨 종교.정식 명칭은 ‘알이슬람’ 이것은 “유일 절대의 알라의 가르침에 몸을 맡긴다.”는 말로서, 귀의를 뜻함..PAGE:6이슬람교 기원2) 주요인물무하마드이슬람교의 창시자사회개혁운동가평등주의를 주창한 박애주의자아부 바크르이슬람교의 초대 칼리프(570~634)마호메트를 보좌하고 이슬람교를 확대하는데 공헌..PAGE:7이슬람교 기원2) 주요인물우마르이슬람 제 2대 칼리프.이슬람의 '바울로'라고 불림.- 무함마드를 박해하다가 617년개종하여 교단의 최고 지도자가 되었음.사라센 제국의 기초를 닦음.우스만 이븐 아판- 이슬람국가 제3대 칼리프(재위 644∼656).코란의 표준본을 정하였으나 정책에 불만을 품은과격파에게 살해당함.후사인 이븐 알리- 무함마드의 손 오주① 증언(샤하다) : “나는 알라 이외에 신이 없음을 증언합니다.”② 예배(살라트) : 일정한 시각에 규정된 형식에 따라 행함.예배는 하루에 다섯 번, 특히 금요일 정오에는모스크에서 집단예배를 행함.반드시 메카가 있는 쪽을 향하고 행함.③ 희사(자카트) : 국가재정의 근간을 이루며, 비 이슬람 국가에서는 선교기반이 이루어지는데 필요불가결한 무슬림의 의무.이슬람교 기원..PAGE:104) 무슬림들의 의무- 오주④ 단식(샤움) : 성년인 무슬림은 매년 라마단 월간(9월) 주간에 음식, 흡연, 향료, 성교를 금하고, 과격한 말을 삼가며 가능한 한 코란을 독송.단, 음식은 흰 실과 검은 실의 구별이 안 될 만큼 어두워진 야간에는 허용.⑤ 순례(하주): 모든 무슬림은 매년 하주의 달(이슬람력 제 12월)에 카바 신전 부근 또는 메카 북동쪽 교외에서 열리는 대제에 적어도 일생에 한 번은 참가할 의무가 있음.하지만 능력이 없는 자는 참가 하지 않아도 됨.이슬람교 기원..PAGE:115) 세계의 이슬람교의 분포 및 주요 국가사우디 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쿠웨이트터키알제리카타르인도네시아바레인이슬람교 기원..PAGE:12그리스도교 문화와의 충돌..PAGE:13그리스도교 문화와의 충돌◈ 십자군 전쟁이란?십자군- 서양 중세 그리스도교의 군대를 지칭하는 말- 라틴어로는 크르와사트(croisade)- 가슴에 큰 십자문양을 새겨놓은 갑옷을 입었기 때문에 십자군이란별칭이 붙은 군대원인 : 동로마제국(비잔틴제국)이 셀주르투르크의 압박에 서로마교황에 지원을 요청함으로써 시작, 총 9차의 전쟁목적 : 이슬람 국가로부터 성지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한 목적으로설립된 부대예루살렘 탈환한 기간 : 1099년 1187년, 1229년 1244년대부분의 기간 이슬람이 예루살렘 지배..PAGE:14그리스도교 문화와의 충돌..PAGE:15그리스도교 문화와의 충돌시기가 지남에 따라 교회의 교황권 강화, 영주들의 영토 확장 등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목적 성향으로 변질됨.◈ 십자군 전쟁이 실패한 이유① 제대로 무장하여기독교 유럽과 이슬람교 중동의 활발한 문물 교류서양세계는 십자군을 통해 비잔틴제국과 이슬람제국의우수한 문화에 접근 가능이슬람제국 : 수학, 화학, 의학, 문학, 예술(특히 건축) 등에서 뛰어난 업적비잔틴제국 : 철학, 신학, 문학, 예술 등에서 창조력 발휘.고대 그리스의 고전을 보전하고 연구함으로써인류문화에 이바지..PAGE:17그리스도교 문화와의 충돌현재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 충돌지역가자지구란?이스라엘 안의 이슬람민족 거주지이스라엘점령지 33% +팔레스타인자치 67%이집트와 이스라엘의 끊임없는 분쟁지역유대인들이 120여 개의 국제법상 불법 정착촌 건설로 현재 가장 긴장이 높은 상태..PAGE:18그리스도교 문화와의 충돌..PAGE:19622년 이슬람교 시작1000년경 기독교의 쇠퇴. 기독교 제국의 50%가이슬람에 넘어가고 이슬람교는 확장1000년~1500십자군 전쟁으로 서구는 암흑시대가 시작되었고 이슬람교는 아시아 동유럽으로 진출.1500년 서구의 확장과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의식민지화로 이슬람은 쇠퇴기를 겪게 됨.이슬람교의 쇠퇴..PAGE:20불교도, 마니교도, 네스토리안 기독교도들로 나뉘어져 있던 중앙아시아에 대한 이슬람 세력 확장은 이슬람제국의 호라산 총독 쿠타이바 이븐 무슬림에 의해 시작됨.당시 호라산 외곽 지역은 튀르크계 군소 부족 집단들이 거주함. 705년 쿠타이바는 트란속시아나와 박트리아, 그리고 부카라 지방을 공격하였으며, 712년에 이르러서는 사마르칸트 지역까지 그 세력을 확장함.이슬람군의 공격을 받은 군소 튀르크계 부족들은 카파칸카간의 통치하에 있는 돌궐제국에 도움을 요청하였으며, 카파칸 카간의 조카 큘테킨의 지휘아래 돌궐군대가 즉각 파견되었음.그러나, 아랍군과 돌궐군간의 최초의 전쟁은 아랍 이슬람군의 승리로 돌아가고 돌궐군은 스텝 내부로 패퇴하게 됨.이슬람교의 아시아 진출..PAGE:21이슬람이 중앙아시아로 진출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그 이후 발발한 ‘탈라스 전쟁’.아랍군은 중국의 중앙아시아 지배에 대해 반발한 돌궐계 부족들의 요청으아 스텝에서의 중국의 영향력은 영구히 제거 되었으며, 이 지역에서 이슬람의 위상은 크게 높아지게 됨.이슬람교의 아시아 진출..PAGE:22이슬람교의 아시아 진출한국에 이슬람교가 전파된 것은 약 9세기 전후 신라시대.이후 고려시대에 들어와 보다 발전된 교류가 있었으며, 중국 대륙을 원나라가 지배하면서 이슬람문명과의 교류는 더욱 활발하고 자연스럽게 이루어짐.특히 고려시대에는 이슬람 상선이 왕래한 기록이 남아있으며 수도 개성의 외곽에는 예궁이라고 불리는 모스크를 짓고 정착하여 생활함...PAGE:23이슬람교의 아시아 진출고려시대 이슬람교의 영향은 조선시대 초기까지도 계속되었는데, 특히 조선초기 과학발전에 큰 영향을 줌.그러나 중국 명나라의 등장으로 쇄국정책을 취하면서 서역과 교류가 단절되었고 유교가 발전하면서 이질적인 문화는 배척되었음.이후 세종대왕 때에 들어서 모든 아랍의 의식과 율법이 금지됨...PAGE:24이슬람교의 아시아 진출유교와 불교, 그리스도교문화 속에서 살아온 한국인에게 생소한 이슬람교가 그 두꺼운 벽을 뚫고 한국에 전래된 것은 1955년.이슬람교의 전파는 1955년 9월, 6 ·25전쟁 때 유엔군으로 참전하였던 터키 부대의 압둘가푸르 카라이스마엘 오울루 종군 이맘(Imam:성직자를 가리킴)과 주베르코취 종군 이맘의 지도와 협조 아래 김진규와 윤두영이 선교를 시작함...PAGE:25이슬람교의 아시아 진출당시 천막에서 시작한 성원에는 터키 수상의 방문 등 많은 이슬람국가 지도자들이 방문하기도 하였으며 당시 208명의 무슬림이 있었음. 이후 한국 이슬람교 협회를 발족하고 초대 회장 김진규, 부회장 겸 사무국장 윤두영과 신도 70여 명으로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에서 시작됨.초창기 10여 년 간에 선교 · 운영의 난관을 극복하고 1965년 한국 이슬람교 중앙연합회로 재발족, 1967년 3월 재단법인 한국이슬람교로 인가되어 신도 7,500명의 교세를 갖게 됨...PAGE:26이슬람교의 아시아 진출이후 이슬람교는 1970년대의 중동 건설 붐을 타고 두드러지게 교세을 비롯하여 예배의식의 용어 및 교리의 토착화 등 여러 가지로 많은 어려움을 가지고 있음.2009년 기준으로 국내 거주하는 무슬림은 약 20만명이며 한국인 무슬림은 약 3만 5천명정도...PAGE:27한국의 이슬람..PAGE:28이슬람교의 건축물 (스페인)스페인은 8세기 초부터 약 800년간 이슬람 세력의 지배를 받음.이슬람의 지배는 스페인의 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고, 그 결과 다른 유럽에서는 볼 수 없는 이슬람의 문화유산을 만날 수 있음...PAGE:29이슬람교의 건축물 (스페인)..PAGE:30이슬람교의 건축물 (스페인)..PAGE:31이슬람교의 건축물 (스페인)..PAGE:32이슬람교의 건축물 (스페인)..PAGE:33이슬람교의 건축물 (스페인)..PAGE:34이슬람교의 건축물 (스페인)..PAGE:35이슬람교의 건축물 (스페인)..PAGE:36이슬람교의 건축물 (스페인)..PAGE:37그 밖의 이슬람의 궁전..PAGE:38이슬람의 문화1) 복식문화지역마다 약간의 차이를 보이나 대개 위 아래가 하나로 된 긴 장옷 형태가 일반적.단도 : 장옷을 입은 허리에는 다양한 장식을 한 단도를 차는데, 이것으로 남성다움을 과시.단도의 형태와 색깔 그리고 재료에 의해 신분과 부족을 구분함.남성 전통적 의복..PAGE:39머리 : 다양한 줄무늬로 디자인함.그 이유는 부족간 구별과 통치 가문을 드러내기 위해 사용되기 때문.어깨 : 직사각형의 망토를 장옷 위에 걸치는데, 이것은 옷의 기능뿐만 아니라 온도차가 매우 심한 밤의 사막 여행에서 휴식과 수면을 위해 몸을 덮는 담요의 기능까지 겸하고 있음.1) 복식 문화이슬람의 문화..PAGE:40② 여성 전통적 의복*여성이 베일을 쓰는 이유?인간은 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남녀가 함께 있으면 가르침에 어긋난 성적 관계에 빠지기 쉽다고 생각함. 여성의 베일 착용도 남자들이 음란한 생각을 갖지 않도록 하기 위한 예방책인 것. 여성 입장에서도 남자를 유혹하지 않는다고 선언하는 결과가 됨.이슬람의 문화..PAGE:41이슬람의 문화♣여성 전통적
Book Review-신문 읽는 기술-학과 :학번 :이름 :제출일 :이 책에서는 신문을 읽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있다. 간략하게 그 방법들을 나열해보자면 ‘페이지의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시선의 방향을 옮길 것, 성공하고 싶다면 경제면을 꼭 정독할 것, 스크랩을 통해 정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것, 정보의 속뜻을 파악하여 올바른 견해를 가질 것, 속독-정독-속독 3단계 나눠 읽기를 통해 필요한 정보를 골라가며 읽을 것, 지속적으로 구독하여 진행 상황을 이어서 파악할 것, 국제뉴스를 구독하여 글로벌 인재가 될 것, ㆍㆍㆍ’등 7가지 이상의 요령을 제시하고 있었다. 이러한 방법들을 제시해 준 것에 대해서 내가 느낀 점은 신문의 내용이 다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사진, 내용 구성, 연재물 등을 다 놓치지 말고 읽으라고 강조하고 있는데, 지나치게 신문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듯 했고, 신문 업계가 상황이 예전만하지 못하니 제발 좀 많이들 읽어서 도와달라고 발버둥치는 것 같이 느껴졌다. 신문을 자주 접해보지 않았기에 약간 낯설다는 느낌을 갖고 있던 나에게 이 책은 “신문이 최고니까 무조건 읽어야 한다.”라며 순진한 사람을 꾀는 약장수 같은 존재로 느껴졌다. 그렇기에 책을 읽어 내려가는 내내 부정적인 시각을 갖게 되었는데, 억지로 시키면 하기 싫어지는 사람의 심리를 반영하지 못한 이 책의 단점이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 유사한 부작용을 초래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이러한 다소 삐딱한 시선으로 책을 읽으면서 ‘왜 이렇게 이 책에서 신문을 읽는 것이 좋다고 강조하는지’ 궁금해졌고, ‘이렇게까지 강조해야할 만큼 신문의 영향력이 줄어들었는지’, ‘이렇듯 영향력이 약해진 신문이 왜 아직까지도 사회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에 대해 궁금해졌다. 먼저, 이 책에서 ‘신문을 읽어야 하는 이유’로 주장한 첫 번째 근거는 ‘신문을 외면하면 세상 이야기에서 멀어지게 된다.’는 것이었다. 매일 수많은 기자들의 노력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여 판매되는 신문에는 세상의 이야기가 알차게 담겨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한 반론을 제기해보면, 내 생각엔 이 글이 기성세대의 입장에서 기술된 것이기에 이러한 주장을 하는 것 같다. 신문이 아니더라도 휴대폰을 통해 실시간으로 중개되는 동영상 뉴스와 인터넷 뉴스, SNS를 통해 다양한 소식을 접하는 젊은이들이기에 위와 같은 주장은 곧게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신문을 읽지 않으면 세상과 멀어진다는 것은 할머니가 우는 아이를 달랠 때 호랑이가 잡아간다며 겁주는 것과 같이 현재 처해있는 난감한 상황을 모면하기에 급급한 표현으로 느껴졌다. 이처럼 과도한 일반화라는 오류를 범하면서 “신문을 읽지 않으면 큰일 난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는 점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저자가 말한 것처럼 신문의 정보력은 나도 인정하는 바임을 밝힌다. 두 번째 이유는 ‘고급 정보로의 가공이 용이하다.’는 것이다. 단순한 정보의 나열뿐인 인터넷과는 달리 신문은 그러한 단순 정보들을 수집하고 재가공 과정을 거치면서 보다 전문적인 내용으로 탈바꿈한다. 학력이라고는 초등학교 졸업이 고작인 정몽준 회장이 매일 신문을 읽으며 사업에 관한 정보를 축적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현대의 기적을 일구었다는 내용을 읽으며 솔깃하긴 했으나, 타인의 가공을 거쳐 제공된 정보에서 바른 길을 찾는 것 역시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단순나열 된 정보만큼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현재 ‘신문으로 국제사회 읽기, 한국 사회의 이해와 미래구상’이라는 2개 강의를 통해 신문을 직ㆍ간접적으로 매주 접해보고 있는데, 신문사마다 성향이 다르다보니 같은 내용도 다르게 풀이해놓고 있었다. 아무리 신문이 고급정보로의 가공이 용이한 정보매체라고는 하나 이렇듯 신문마다 입장이 다르다면 둘을 다 접해보고 자신에게 맞는 것을 찾거나 중간지점을 찾아야 한다는 말인데, 그러기에는 너무 시간과 정성을 쏟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여기서 앞서 언급했던 ‘신문의 영향력이 줄어들었는지’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었는데, 그 첫 번째로는 ‘정보매체의 급속한 발달’을 들 수 있다. 신문-TV-인터넷-모바일의 순서로 정보매체 혁신이 일어나면서 사람들은 점차 편한 것을 추구하고,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고 정보를 손쉽게 접할 수 있는 등 시간대비 효율성을 중요시하기 시작했다. 신문은 아날로그 시대의 대표적 산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느림의 미학이라고 표현되는 과거 아날로그 시대에는 이러한 신문의 영향력이 막강했을지 모르겠지만 속도경쟁이 극한에 이른 현대 사회에서는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신문의 영향력이 줄어든 것이다. 두 번째로는 ‘작은 금액이지만 지속적인 금전적 지출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그깟 1000원도 안하는 신문 값이 별거냐 싶지만, 그 천원이 쌓이고 쌓이면 많은 사람들이 교통비 혹은 소규모 재테크 비용으로 사용하는 금액이 된다. 사회복지영역에서는 그 소액을 모아 1명의 아동과 결연후원을 할 수 있는 금액이다. 이처럼 한 달에 3만원이라는 금액은 다른 많은 기회비용을 과연 신문에 투자할 가치가 있는지를 물어보게 한다. 신문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는데 굳이 돈을 들여가며 신문을 구독하겠는가. 대다수의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러한 기회비용을 다른 곳으로 사용하기로 선택을 했기에 신문의 영향력이 줄어들었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Book Review문서서식포탈비즈폼이 책을 읽은 이유는 단지 ‘사람 사는 이야기’가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수많은 봉사활동을 통해 현장의 모습을 보고 있다. 하지만 업무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장기알 같은 역할의 준전문가로써 활동하고 있을 뿐이기에 진정한 현장의 모습을 보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었고, 그 때문에 늘 취직 후 내가 맞닥들여야 하는 복지현장의 업무에 대해 알기를 갈망하고 있었다. 그러한 갈망을 해소해 준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이런 사람 만나봤어?’ 한눈에 보기에도 현장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제목이었다. ‘관악사회복지’라는 단체가 활동하며 일어났던 일들을 엮어서 만든 이 책은 나와 같은 예비 사회복지사들이 읽으면 도움이 될 이야기들이 많이 있었다.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지역의 학생들이 스스로 관악사회복지에 찾아와 봉사단을 만든 것이다. ‘햇빛’이라 불리는 이 봉사단은 한 학생이 자신이 생각했던 봉사활동의 모습과 직접 봉사활동을 가본 후 느낀 모습이 달라 괴리감을 느끼던 학생이 관악사회복지를 찾아가 직접 만들었다고 한다. 그 후 친구들을 데려와 인원을 늘리면서 자체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푸드뱅크에 등록 된 음식을 배달해주는 단순한 역할을 했지만,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그들만의 봉사프로그램과 문화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이 부분이 가장 기억에 남는 이유는 두 가지 때문이다.첫 번째 이유는 요즘 나도 이와 유사한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때는 올해 초 2월 달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 당시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던 나는 후배를 통해 올해 어린이재단에 취직한 선배가 대학생봉사단을 만들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린이재단 취직을 목표로 작년부터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던 나는 무조건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일을 그만두고 준비단계에서부터 참여를 하기 시작했다. 봉사단의 효과성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갖고 계셨던 어린이재단 대구지역본부장님을 설득하기 위해 부족했던 인원을 친구들을 끌어들이며 구색을 갖추기 시작했고, 마침내 2월 한 달 동안 활동을 해보고 후원자 모집이 목표치를 달성하면 정식 활동을 허가해주겠다는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 그 후 백지상태였던 이 계획을 시간이 날 때마다 모여 채워가기 시작했다. 정기후원자 모집 캠페인을 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은 후 이젤에 거치할 사진과 글 등의 각종 자료들과 스크립트, 후원 신청서 등 모든 것을 팀원들이 직접 만들었고, 캠페인을 할 장소 섭외도 직접 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고, 어린이재단 본부에까지 우리 이야기가 들어가 전국적으로 확대되어 실행되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 후 3월 중순. 대가대, 대구대, 경북대 등 대구, 경북 대학생들로 구성된 VANDI봉사단 1기가 정식으로 출범했고, 나와 친구들은 초창기 멤버로써 합류해 대구역과 시내 중앙파출소 앞 광장 등의 대구시 곳곳에서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을 하면서 이 책에 나온 ‘햇빛’의 구성원들이 느꼈을 생각과 어려움들을 직접 경험할 수 있었기에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 같다. 항상 봉사활동을 가면 사회복지사 선생님들이 계획해둔 프로그램에 따라 활동했기에 직접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몰랐었다. 그러다 올해 초 반디 활동을 통해 그러한 경험을 해볼 수 있었고, 그 덕분에 나 스스로가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다.두 번째 이유는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봉사단을 운영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3월말에 동구자원봉사센터에서 주최한 봉사프로그램 공모사업에 당선되어 4월부터 직접 운영하고 있는데, 한정된 예산에 맞춰 계획대로 진행하기 위해서는 해야 할 것이 너무도 많았다. 단순하게 신청했던 예산이 배정되면 프로포절에 작성한 일정대로 바르게 사용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그게 아니었다. 사소한 것까지 서류화하고 활동당시 찍은 사진을 통해 정기 간담회라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증명해야 했던 것이다. 봉사활동을 다닐 때는 사회복지사 선생님들께서 다 해주시니 아무 생각 없이 활동을 했었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몰랐던 것을 알 수 있었다. 2년 뒤 사회복지사가 되어 취직하면 일상이 될 일들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니. 나 스스로가 한심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이기도 했다. 이제라도 알았으니 취직 후에는 남들보다 훨씬 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햇빛’의 구성원 중에도 고등학생 자원봉사자에서 대학생이 되고, 사회복지사가 되어 관악사회복지의 직원이 된 사람이 있었다. 그분처럼 학생 때 많은 경험을 해본다면 요즘 원하는 ‘경력 같은 신입’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 때 실수하는 것은 용서받을 수 있지만, 직원이 된 후 실수하는 것은 막중한 책임이 따른다. 기왕 배우는 것이라면, 책임이 따르지 않는 학생 때 최대한 많이 배워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관악사회복지에 ‘햇빛’이 있다면, 안심 제1종합사회복지관에는 ‘둥근세상’이 이끄는 그린프로젝트가 있다. 올해 한해만 하고 끝날지, ‘햇빛’처럼 장기적으로 이어질지는 하기 나름일 것이다. 많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아직 미숙하니 실수하는 것은 당연한 법. 좌절하지 않고 우수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갈 것이다. 내가 배운 것들을 후배들에게도 알려주기 위해서, 그리고 ‘햇빛’처럼 선후배간 교류할 수 있는 전통을 물려주기 위해서라도 말이다.사회복지에서는 ‘정의란 무엇인가’, ‘워킹푸어’ 등의 책들처럼 이론적인 측면도 중요하다. 이론을 통해 가설을 세우고, 접근방법을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활동은 이론만 가지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뜨거운 가슴을 가지고 누구보다 열심히 책임감을 가지고 클라이언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문제를 해결해주는 관악사회복지의 구성원들처럼 ‘행동’할 때 비로소 바람직한 복지사회가 구현되는 것이다. 이것은 사회복지정책에서도 적용되는 이야기이다. 좋은 정책이 개발되어도 행동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활동을 통해 정책이 실현되고 그로 인해 정책이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점을 깨닫게 하기 위해 교수님께서 이 책을 북리뷰 도서로 선정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봤다. 다른 책들은 사회에 발생하고 있는 문제들에서 일정한 법칙을 찾고, 그것을 활용하여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회 전체의 흐름을 볼 수 있는 눈을 길러 정책안을 제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관악사회복지 구성원들의 이야기를 통해 일상에서 일어나는 작은 일들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교수님이 의도한 목표를 달성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인본주의이론◈ 목 차 ◈Ⅰ. 현상학이론 ..........01Ⅱ. 자아실현의 경향 02Ⅲ. Rogers의 현상학 03Ⅳ. 완전히 기능하는 사람 .......04Ⅴ. 클라이언트중심치료 ...........05Ⅵ. 인카운터 그룹 ....06Ⅶ. Maslow의 생애 ..08Ⅷ. 인본주의이론의 기본원칙 .08Ⅸ. Maslow의 욕구단계이론 ...09Ⅹ. 인간동기의 종류 11?. 자아실현인의 특성 .............11?. Maslow 이론의 평가 .........13인본주의이론- 인간이 건전하고 자발적이며,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고, 합리적이고 건설적인 방향으로 나가는 미래지향적 존재라고 보는 이론.(Rogers의 현상학이론과 Maslow의 자아실현이론이 있다.)Ⅰ. 현상학 이론 : 인간마다 현실을 달리 지각하고 개인의 주관적인 경험이 행동을 지배한다고 보며, 자기 자신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를 강조한 이론이다.- 인간마다 현실을 달리 지각하며 주관적인 경험이 인간행동을 지배한다고 본다.- ‘지금- 여기(here-now)의 주관적 체험, 의식 현상(어떻게 경험하고 지각하는지)" 강조.- 인간은 통합된 유기체로 행동하기 때문에 전체론적(wholistic)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 자기(self) 강조 : 인간이 어떻게 행동하는가는 그의 무의식적 힘에 의한 것이 아닌 그가 세계를 어떻게 지각하느냐 하는 내적 의식의 틀에 았다. 인간의 본성에 대해 아주 비판적이었으며 인간의 미래에 대해서도 회의적이었던 Freud와는 대조적으로 인간은 나면서부터 성장 지향적이고, 진보하려고 하며, 조건이 잘 갖추어져 있을 경우에는 자아실현을 향해 나아갈 것이라고 보았다. 즉, 인간을 자기의 내재적 잠재력을 실현하려는 실현 경향성을 가진 존재로 파악했다.Ⅱ. 자아실현의 경향1. 자아실현이란자아 실현(self-actualization)은 매우 광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서 윤리 교육과의 관련뿐만 아니라 교육의 목적 자체라고도 할 수 있다.2. 자아실현의 경향- 인간에게 가장 기본적 욕구는 자기를 유지하고, 증진시키며 실현하려는 욕구라 하였다.- 로저스는 자기유지, 자기향상, 자아실현이 모두 포함되는 것으로 이해하여야 한다고 보았 다.- 로저스는 모든 인간은 자신을 유지하려는 경향과 성장잠재력을 선천적으로 지니고 태어 난다고 보고 있다.- 인간은 음식물을 섭취하여 필요한 자양분을 공급받고, 위험에 직면하여서는 방어적으로 행동함으로써 자기유지의 목적을 성취하려는 성향을 지니고 있으며, 성숙을 지향하고 상 향이동하려는 경항(upward-moving tendency)을 가지고 있다.- 인간은 독립성, 자기책임성, 자기규제, 자율성, 자아통제의 수준이 높은 수준으로 나아가 려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로저스는 인간은 고통이나 성장방해요인에 직면하여 극복할 수 있는 성장지향적 유기체 라고 보고 있다.- 자아실현의 과정을 통하여 모든 인간은 삶의 의미를 찾고 주관적인 자유를 실천해 감으 로써 점진적으로 완성되어 간다고 보았다.① 경험에의 개방 : 자신의 경험을 수용하고 거절하는 것이 자유로워서 유동적이고 적응력이 있는 삶을?살며, 무엇이 수용되어지든 간에 자신의 경험에 대하여 장애를 느끼지 않는다.② 자신에 대한 신뢰 : 자신의 감정에 대하여 정확하게 인지하고 수용한다.③ ‘계속되는 성장 의지‘로 건설적이고 창의적인 삶을 살며 자유롭다.④ 그들의 행동은 ‘예측 가능한 것‘이 아니라, ‘믿을 만한 것’이다. 평가한다.- 가치의 조건은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이전의 경험을 무시하게 되며 사람들의 행동을 제 한하고 현실을 왜곡함. 그러므로 가치의 조건과는 무관하게 무조건적인 긍정적인 관심을 주거나 받는 것이 필요하다.- 각자는 경험을 통해 가치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동은 부모의 양육 태도에 따라 가치의 조건화를 형성한다.? 아동은 기본적 욕구인 ‘긍정적 자기존중’을 얻으려 노력하므로 가치의 조건화 태도 형성? 부모로부터 긍정적 자기존중을 받기 위해 자기가 하는 경험에 폐쇄적이 되어 실현화 경향성을 방해하게 된다.? 가치의 조건화는 외적 준거에 따라 아동을 평가하는 데서 비롯된 것임→ 착한 아이가 되기 위해 내적 경험을 무시하게 됨: 성숙된 인간이 되는 것에 주요한 방해의 원천.- 갈등, 불안, 공포 등의 정서적 문제도 가치의 조건화와 관련됨.ex. 가치의 조건화가 주관적인 내적 경험과 불일치 할 경우 위협으로 느껴지고 불안과 두려움을 야기하게 됨.Ⅳ. 완전히 기능하는 사람- 완전히 기능하는는사람은 심리적 발달과 사회적 진화의 바람직한 결과.- 로저스는 훌륭한 삶이란 인간이 어떤 방향으로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내적 자유.* ‘완전히 기능한다.’ : 자신의 잠재력을 인식하고 능력과 재질을 발휘하여 자신에 대한 완벽한 이해와 경험을 풍부히 하는 방향으로 이동해 나가는 것.* 심리적으로 좀 더 자유로운 사람은 좀 더 완전히 기능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현재 진행되는 자신의 자아를 완전히 자각하는 사람이다.* “완전히 기능하는 사람은 최적의 심리적 적응, 최적의 심리적 성숙, 완전한 일치, 경험에 완전히 개방되어 있는 사람이다. 이러한 사람의 특성은 정적이지 않고 과정 지향적이다. 즉 완전히 기능하는 사람은 계속적으로 변화하는 사람으로 과정 중에 있는 사람이다” (Rogers, 1959)1. 경험에 대한 개방성- 가치에 상관없이 모든 감정과 태도를 자유로이 경험할 수 있고 위협을 받는 것이 없다.- 긍정적, 부정적 정서들을 더욱 폭넓게 받아들인다.2. 실존적인터 그룹(encounter group)은 친밀한 상호작용을 통해 각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과 타인과의 관계를 맺는 방법에 관한 더 많은 것을 발견하게끔 하는 소집단이다. 이것은 치료과정에서 사람들이 융통성, 자발성, 개방성 등을 개발하거나 회복하도록 하는 집단이다. Roger는 개인을 보다 완전하게 기능하도록 도와주는 이러한 집단의 잠재력에 큰 흥미를 가졌다.인카운터 그룹은① 대개 적은 인원으로 구성② 한번에 낳은 시간 동안 만남을 유지하거나, 짧은 시간 동안 여러 번 만나기도 한다.③ 특별한 계획이 사전에 구성되지는 않으며, 환경을 비구조화시켜 구성원들이 집단 과정이 진행됨이 따라 자신들의 감정과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자유로이 탐색 할 수 있게 한다.* 일반 집단치료는 상당히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거나, 즉각적인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도와주기 위한 것.* 그러나 인카운터 그룹은 이미 정상적으로 잘 기능 하는 사람들의 능력을 증진시키기 위해서 계획된 것.1. 사회복지실천과의 연계성①개인의 자기결정권, 사회적 책임과 절대적 가치를 우선시하는 접근으로 사회복지철학에 밑바탕②무조건적 긍정적 관심의 강조는 사회복지사와클라이언트의 치료적 관계형성에 도움이 됨.2. 로저스(Rogers)이론의 평가- 심리치료와 상담역에서 공헌을 함- 인간본성의 긍정적인 측면과 자기개념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공감 받음.- 클라이언트의 말을 비판 없이 그대로 받는 순전한 현상학을 취하고 있으며 클라이언트에 관한 자료들의 신뢰도와 타당도가 의문.- 기본적인 인간본성에 대한 선한 측면을 너무 강조하고 있으며. 인간의 악한 면과 부적응 적인 인간에 대한 설명 부족.- 인간의 무의식적 과정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음.- 인간은 생활에 있어서 적절한 발전을 지향하는 기제에 대한 명백한 증거가 없으며 학습 을 통한 인간행동의 발달을 무시함.3. 로저스 이론의 장점▶ 로저스의 이론은 이론보다는 치료기법에 관하여 영향을 많이 끼쳤으며, 치료적 관계의 구성요소로서 비위협적인 환경, 비심판적 태도간본성의 선함- 인간의 본성이 본질적으로 선하고 존경받을 만하다고 보며 아무리 못할지라도 중간위치.- 인본주의 이론은 인간의 본성에 대해 인도주의적이며 낙관적인 태도를 보임.(4) 인간의 잠재적 창조성- 창조성은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잠재적으로 가지게 되는 인간본성의 공통적 특질- 창조성은 누구에게나 잠재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갖기 위한 특별한 자질이나 능 력이 요구되지 않음. 보편적인 인간의 기능 이면서 여러 가지 형태의 자아표현을 초래.(5) 심리학적 건강에 대한 강조- 신경증환자보다는 건강한 사람을 대상으로 인간의 강점, 장점, 잠재능력등과 같은 긍정적 이고 건설적인 측면이 연구되어야 함Ⅸ. Maslow의 욕구단계이론(Need Hierarchy Theory)1) 생리적 욕구(Physiological needs)생리적 욕구는 인간의 욕구 중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강하다. 모든 사람은 더 높은 단계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노력하기 전에 생리적 욕구가 어느 정도 만족되어 있어야 한다.2) 안전욕구(Safety need)이 욕구가 생기는 주된 이유는 모든 개인이 확실하고, 잘 정돈되고, 조직화되고, 예측할 수 있는 환경 내에서 생활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퇴직이나 실업, 질병 등에 대비하여 저축이나 보험에 가입하여, 종교를 통하여 안전감을 획득하는 행동 등으로 표현된다. 이러한 안전욕구는 사회가 실업위기, 전쟁, 범죄, 사회조직의 해체 그리고 자연적 재해와 같은 상황에 직면하였을 때 특히 강하게 나타난다. 안전욕구는 유아, 신경증이나 정신이 불안정한 성인에게 가장 필요하며 어느 정도의 조직과 질서가 필요하다. cf.조직과 질서가 전혀 없는 허용과 자유는 아이의 안전욕구를 위협한다→ 아이에게 자유와 대처할 정도의 제한이나 제약이 필요하다.3) 소속과 애정에 대한 욕구(Need for belonging and love)소속과 애정에 대한 욕구는 생리적 욕구와 안전욕구가 충족되었을 때 나타나는 욕구다. 이런 욕구에 의해 동기화된 개인은 타인과 애정적인 관계 둠.
Book Review< 징비록 >징비록은 국보 132호로써 우리민족의 참혹했던 수난사인 임진왜란, 정유재란을 기록한 서애 유성룡선생의 문학작품이다. 이 책에서는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6년 전에서부터 왜란에 의해 파천하기까지의 기록과 파천한 평양에서 파병된 명나라 구원군을 맞이하기까지의 기록, 왜적의 철군과 정유재란에 관한 기록, 원본에서 녹후잡기라고 제목을 붙인 부분 등 4부로 나누어 역사를 설명해주고 있다.서애 유성룡선생이 징비록을 집필하게 된 까닭을 살펴보자면, 임진왜란 전?후의 국가안보상황을 파악하여 그 잘못을 깨닫고 미리 경계하여 훗날 환난이 없도록 삼가고 조심하자는 뜻의 ‘여기징이비후환’ 이라는 구절에서 알 수 있다. 본인의 역할을 다 하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며 나라에 충성을 다하고자하는 간절함과 죄를 빌기 위한 뜻이 담겨있는 것이다.이야기는 왜란 전 국 내?외의 정세를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1586년. 그 무렵 우리나라는 명나라와 왜국과 화친을 맺고 있었다. 왜국에서 먼저 사신을 보내와 화친을 청했고 그 후 양국 간에 왕래가 시작되었다고 전한다. 그러다 무사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겐지왕을 죽이고 왕이 되면서 양국의 평화로웠던 화친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신하국임에도 불구하고 사신을 보내와 우리나라의 기강을 문제 삼는 등의 오만방자한 행동을 취했고, 통신사로 왜국에 건너간 우리나라 관리들에게 무례한 대접을 하였으며, 서신을 통해 전쟁가능성까지 내비친 것이다. 이에 통신사로 왜국을 다녀 온 우리나라 관리들은 조정에 긴급히 정황을 보고했고, 생각 있는 관리들과 임금님은 명나라에 왜국의 계획을 전하며 더욱 긴밀한 관계를 맺고 국내의 치안을 재정비하는 등 대비를 하였다. 이미 왜국의 계획을 알고 있었던 명나라는 우리나라의 태도를 보며 더욱 안심을 했다는 후문이 있다. 이러한 대비에도 불구하고 성을 재정비하는 것에 소홀하였고 군정의 근본, 장수 뽑는 요령, 군사훈련방법 등 제대로 정돈된 것이 없어 전쟁에 큰 피해를 입게 된 원인이 되었다. 생각 있는 관리들에. 4월 13일 대마도에서 출발한 왜국의 배들이 우리나라에 총구를 들이대었다. 구름떼 같은 왜적에 성은 순식간에 함락되었고, 심지어는 공포에 떨며 성을 버리고 도주하는 장수들까지 생겨났다. 가장 앞장서서 왜적과 싸워야할 장수들이 자신의 목숨만을 생각하여 도망치는 일들이 빈번하게 발생하자 민심은 흉흉해졌고, 군사들 또한 전의를 잃어 왜국이 파죽지세로 부산을 점령시킬 수 있도록 돕는 꼴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 조정은 장수 신립에게 군사를 주어 북진하는 왜군을 막도록 명하였고, 통신사를 다녀왔던 김성일에게도 관직을 내리며 왜군과 싸우도록 명한다. 이렇듯 치열한 접전이 이루어지던 때, 조정에서는 천도를 해야 한다는 말까지 떠돌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충주에서 왜군과 전투하던 신립이 패함과 동시에 강물에 뛰어들어 자살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군사들의 시체들이 강을 뒤덮었다는 것. 그로인해 군의 사기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조정의 계책에도 불구하고 당시 경상도의 수군, 육군의 장수들이 모두 겁쟁이였기 때문에 참담한 패전의 결과들을 연이어 초래한 것이라고 서애 유성룡선생은 기록하고 있다. 군사를 한번도 출동시키지 않고 겁에 떨며 도주한 장수가 대다수였다는 말이다. 그런 인물들이 어떻게 장수가 되어 한 지역을 책임지는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백여 년을 넘게 이어져온 평화로운 시대에 안주하였기에 그런 상황이 발생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심지어는 전략의 요충지인 상주를 지키는 군사가 없어 상주를 지나가는 것을 두려워했던 왜군들이 그곳을 춤추고 노래하며 지나갔다고 하니 말 다한 것이다. 원인을 파악해보자면 성을 지어놓고 성의 크기가 작다하여 지형상의 중요도는 상관하지 않고 사람들이 많이 살 수 있는 곳으로 성을 옮겨버린 것이다. 어이가 없다. 군사학에 대해 거의 모르는 내가 봐도 한심한데 서애 유성룡선생이 봤을 때는 어땠을지. 아마 뒷목잡고 쓰러지지 않았을까 싶다. 다행히 이 부분에 대해 서애 유성룡선생이 기록해둔 부분이 있는데, ‘장수가 군사를 쓸 줄결국. 연속된 대패에 4월 30일 새벽. 임금님의 파천이 행해졌다. 평양으로의 파천을 본 백성들과 군사들의 사기는 보지 않아도 알 것 같다. 5월 3일. 왜군이 한양을 점령했고, 도성을 지키던 모든 군사들과 백성들은 도주했다. 파천을 할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지만 그로인해 그나마 남아있던 전의는 거품 사라지듯이 날아 가버린 것이다.5월 7일. 임금님께서 평양에 도착하였고,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왜군이 우리나라를 침략한 후 첫 승전이라 할 수 있는 신각의 한양전투. 그러나 장수들의 잘못된 의견에 의해 큰 공을 세운 신각은 사형에 처해진다. 무슨 일처리가 이 모양인지. 안타까울 정도다. 왜군은 한양을 지나 임진강에 이르게 되었으나 그곳을 지키던 우리 군사들에 의해 쉽게 건너지 못하고 대치하게 되었다. 그러나 대치 10여일 후 지략이 부족했던 장수들에 의해 임진강 전투에서 패배하게 되고, 길을 내주게 된다. 왜적은 함경도까지 순식간에 쳐들어갔고, 두 왕자가 적의 수중에 들어가는 치욕을 맞게 되었다. 왜국의 장수 가토 기요마사에 의해서.6월. 드디어 명나라에 우리나라의 정황이 닿게 되었고, 명나라의 관리가 파견되어 전세를 살피기에 이른다. 왜군이 대동강까지 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임금님은 군사들과 백성들을 안정시킨 후 6월 11일. 영변으로 피란하게 된다. 이전 한양의 상황과는 다르게 백성들과 군사들 모두 성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이 강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임금님은 영변, 박천을 거쳐 가산으로 행차하셨고, 평양은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왜군에 함락되고 만다. 그로인해 우리 군이 평양성에 모아두었던 10만여석의 군량미 또한 왜군의 차지가 되고 말았다. 군량미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왜군의 북진소식을 들은 난민들이 혼란을 틈타 약탈을 일삼은 것이다. 그들이 약탈한 곡식들은 명나라의 구원병들을 위해 마련해둔 것이었기에 문제가 심각했다. 이에 유성룡선생은 백성들을 달래어 다시 군량미를 모울 수 있도록 준비하였다. 대단한 인물이 아닐 수 없다.정도로 위급한 상황이었기에 가뭄에 단비 오듯 기쁜 소식이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왜적이 평양을 함락한 후 수개월간 움직임이 없었고, 그 덕분에 민심과 군이 재정비할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이제 나라의 변란이 회복되기 시작하는 기운이 감돌기 시작한 것이다.7월. 명나라 장수 요동 부총병 조승훈이 5천여명의 구원부대를 이끌고 입국했다. 그는 부대를 이끌고 평양성을 총공격했고 그 사기는 하늘을 찔렀다고 전한다. 그러나 자신감만 충만한 나머지 전술을 고려하지 않았고, 그로인해 패배하고 요동으로 후퇴하는 일이 발생한다. 이로 인해 사기가 다시 바닥으로 떨어질 무렵. 거제에서 왜란의 첫 대승 소식이 들려왔다. 전라수군 절도사 이순신, 경상우수사 원균, 전라우수사 이억기 등의 장수들이 힘을 합친 결과였다. 이순신과 원균의 의견 대립이 있긴 하였으나 성공적인 작전 수행으로 대승한 것이다. 이 전투에서 거북선이 처음 등장하게 된다. 노련한 전술과 거북선이 만나 우리나라에게는 연승을, 왜적에게는 연패와 좌절감을 맛보게 하였다. 이 해전에 의해 일본은 평양으로 보내려던 지원병들과 물자들이 끊어져 수개월만 움직이지 않은 채 평양성 내에 머물렀던 것이다. 진정 나라를 구원한 대승이라 할만하다. 두 번째 명나라의 지원병은 유격장군 심유경이 이끌고 왔다. 때는 9월. 그는 당당히 평양성으로 들어가 왜장 고니시 유키나가와 대면하였고, 왜국을 꾸짖었다. 목숨을 잃어도 아무렇게 않는 상황임에도 오히려 대장부의 기세로 왜군의 존경을 받으며 군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일명 휴전선이라 불릴만한 표지목을 세워 우리나라와 왜국의 전투를 잠시 중지시키기에 이른다. 후대에 발생한 일이지만 마치 6.25를 보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강대국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상황. 이때 우리나라의 각 고을에서는 의병활동이 강하게 이루어졌다. 모든 곳이 승리하지는 못했지만 그 효과는 대단했다. 12월. 명나라에서 대부대를 파견하였고, 왜국을 진압하기 시작했다. 불화살과 대포를 앞세워 평양성을 시작으로 남쪽으로 진군했다. 그생하면서 이 행렬은 멈칫하게 된다. 이를 뒤집은 것이 바로 권율장군의 행주산성 전투이다. 왜국의 치솟던 전의를 꺾은 것이다. 이후 4월 20일. 한양을 되찾았고, 왜군은 두 왕자를 돌려보내며 남쪽으로 후퇴를 연속했다. 1953년 10월. 드디어 임금님의 행차가 한양으로 돌아왔다. 왜국은 연속된 패배로 항복을 알리는 표문을 보내왔고 명나라와 우리나라는 이를 수용한다. 그러나 부산에서 군을 후퇴시키지 않고 말을 바꿔가며 버티던 왜국을 본 명나라는 다시 지원병을 파병하기에 이른다. 이때 큰 공을 세운 이순신 장군이 감옥살이를 하게 된다. 은례를 버리고 공에 눈이 먼 원균 때문이었다. 나라가 빼앗길 위기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신 못 차린 조정의 판단은 추후 해전에서 연패를 초래한다. 뒤늦게 한산도에서의 대패를 통해 정신 차리고 이순신을 다시 전선에 투입시켰다.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 그의 행보가 명나라의 지원에도 패배의 연속이었던 우리나라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었다. 1958년 10월. 대승을 거둔 것이다. 그러나 그날.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는 말과 함께 이순신은 전사했다. 이 후 왜국은 모두 후퇴하였고, 우리나라에 평화가 찾아왔다. 이로써 왜란이 끝난 것이다. 녹후잡기에서는 왜란 전?중 일어난 일을 몇 가지 적어두었는데, 왜란 전 기이한 일들이 발생했다고 한다. 혜성이 꼬리를 길게 남기며 지나갔고, 한강 물이 3일간 붉게 물들었으며, 죽산. 현 해남군에서는 돌들이 스스로 일어섰고, 통진현. 현 김포에서는 쓰러졌던 버드나무가 일어났다. 민간에서는 ‘장차 도읍이 옮겨질 징조’라는 말이 떠돌았다고 한다. 또한 도성에서는 항상 검은 기운이 서려있었다고 전해지는데, 하늘이 이처럼 경고함이 간절함에도 인간들이 깨닫지 못했다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녹후잡기에서는 일본의 전쟁방법을 간사하고 교활했다고 이야기한다. 남을 속이는 잔꾀에서 비롯된 전술들이 우리나라를 위태롭게 했다는 것을 분해하며 지형을 이용한 전술로 방어했다면 제 아무리 조총을 가진 왜군이라도 패퇴시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