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사학위청구논문미셸푸코의 권력과 지식의 관계목 차Ⅰ. 서론Ⅱ. 구조주의와 미셸푸코Ⅲ. 권력과 지식의 의미1. 권력의 의미2. 지식의 의미Ⅳ. 권력과 지식의 관계1. 담론과 권력 -『광기의 역사』1) 중세 - 르네상스 시대2) 고전 시대 이후2. 처벌과 권력 -『감시와 처벌』1) 공개 고문 시대 - 징표(mark)로서 군주의 권력2) 개혁주의 시대 -기호(sign)로서 휴머니스트들의 개혁3) 사법적 감금 시대 - 감옥의 탄생3. 성과 권력 -『성의 역사』1) 성에서의 권력2) 고전 시대의 은폐된 성3) 성 과학 시대의 주변적 성Ⅴ. 지식인의 역할Ⅵ. 나오는 말참고 문헌Ⅰ. 서론학문은 시대적 산물이다. 사회 각계에서 과학을 중시하는 것이 오늘날의 흐름이다. 이런 분위기를 가장 충실히 반영하는 곳은 교육 현장이다. 정부는 국가 시책이라는 명목으로 각 학교에 조용히 정권에 유리한 것을 지지하도록 종용한다. 학문의 자유가 보장된다는 대학교조차 그 시대의 사회적 문제와 직?간접적으로 떨어질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으며, 또한 맺을 수밖에 없다.이밖에도 우리가 어릴 때부터 치르는 각종 시험은 객관적인 지식이라고 하지만, 이것도 권력에 의한 획일적인 지식의 재생산일 뿐이다. 사회적 중점에 놓이는 어떤 이론도 권력과 무관할 수 없다. 미셸푸코(Michel Foucault)의 말대로 객관적이고 가치 중립적이라고 하는 과학적 지식조차도 근대에 인간 과학적 지식에 의해 광인을 정상, 비정상인으로 구분했듯이, 권력을 합리화하는 하나의 도구일 수 있다.본고에서는 푸코의 사상의 흐름 중 ‘역사?철학적 비판의 계열’에 초점을 맞추어, ‘지식은 권력의 산물’이라는 푸코의 주장에 입각하여 푸코 사상에서의 지식과 권력의 관계에 대해 서술해 보고자 한다. 푸코가 역사. 철학적 비판의 계열에서 집요하게 탐색한 작업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권력이 어떻게 지식을 조정하여 자기의 목적에 부합하게끔 이용했고, 지식은 어떻게 권력에 봉사했는가 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의 전체적 작업을 이해할 때, 정신의학이나 설명된다. 여기에는 중심적 권력의 실재성도 필요 없고 토대 결정론을 주장하는 마르크스의 국가 권력 모델도 필요 없다. 중심적 권력이 법을 논한다면 미시권력(주변적 권력)은 규범을 말한다. 그것도 그물 조직에 관한 무수한 전략에 의해 만들어지는 기술적 성질의 규범이다. 주변적 권력은 법이라는 특권 대신에 목적이라는 관점을 대치시키고, 금지 사항이라는 특권 대신에 전략적 유효성이라는 관점을, 주권이라는 특권 대신에 권력 관계의 다층적이고 유동적인 영역을 대치시킨다. 푸코는 바로 이러한 권력 개념을 통해서 즉, ‘권력의 미시 물리학’에 의해서만 사람들은 오랜 동안 정치사상을 지배해 왔던 군주법의 체계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2. 지식의 의미푸코가 지식을 통해서 밝히고자 하는 것은 지식의 정의를 규정하거나 지식의 원천(source)을 해명하거나, 지식의 본질을 찾고자 하는 ‘지식의 일반 이론’이 아니다. 푸코가 탐구하고자 하는 것은 구체적인 지식의 모습과 그 지식을 성립시킨 구체적인 생산과정이다. 그래서 푸코가 제기하는 문제는 ‘지식이란 무엇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해서 특정 시기에 특정 수준의 실천을 통하여 이러저러한 유형의 지식이 성립할 수 있었는가?’이다푸코가 말하는 지식은 ‘지적인 구성물’이다. 지적인 구성물이라는 것은 지식이 생산된 것, 실천을 통해서 생산된 것임을 말해 준다.) 지식이 생산된다는 것은 지식이 단순히 실재에 대한 반영이나 상징에 그치는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실재의 수동적인 수용이나 실재에 대한 관념의 표상만으로 지식은 성립되지 않는다. 지식의 성립을 위해서는 실천이 필요하다. 푸코에게서 실천은 특정 시공의 역사의 장에서 이루어지는 물질적이고 제도적인 실천이다. 이는 지식이 현실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제 관계망 속에서 성립된다는 것을 말해 준다. 이것이 지식의 생산에 있어서 하나의 결정적 계기로 작용하여 지식이 물질성을 갖게 한다. 여기서 결정적이란 것은 지식이 실천을 통해서 성립되고 실천은 특정 역사의 광기와 정신착란을 겁내고 조롱도 했지만 광인에 대한 악마적 매력을 느끼기도 했고, 신천지를 찾아가는 순례자로 여기기도 했다. 또한 거짓말하는 사회에서 거짓말의 거짓을 밝히는 진실의 증언자로 여기기도 했고, 죽음의 상징으로서 전율을 느끼기도 했다.2) 고전 시대 이후17세기에 들어와 광기나 정신 착란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많이 바뀌게 된다. 푸코가 말하는 고전 시대의 시작이다. 르네상스 시대와 달리 고전주의 시대에 이르면, 광인은 걸인이나 부랑아와 마찬가지로 취급되었다. 그들은 노동을 하지 않음으로써 부르주아적 권력에 의해서 반사회적 존재로 규정되었다. 권력은 사회에 위험한 존재인 이들을 사회로부터 격리시켜 구빈원과 같은 곳에 수용했다. 여기서 광기와 이성의 구별이 시작되었다. 근대(18세기 말)에 이르면, 광인은 걸인이나 부랑아와 같은 다른 반사회적 인간과 구별되었다. 급속한 산업혁명으로 노동자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자 걸인이나 부랑아는 수용소에서 해방되어 노동자로 충원되었다. 그러나 광인은 노동이 불가능한 인간으로 간주되어 따로 수용되었고, 이들은 노동자로 충원되기 위하여 인도주의라는 차원에서 치료가 시작되었다.) 이때 세워진 정신병원에서 광인은 치료라는 미명하에 훈육의 대상이 된다. 의사들은 일반인이 광인에게 말을 걸지 못하게 하거나 광인 앞에 거울을 세워 둠으로써 광인이 그 자신을 스스로 객관화시켜 스스로를 인식하게 만든다. 또한 광인에게 체벌을 가함으로써 광인이 자신을 주체적으로 지배하는 인간이 되도록 만들려고 하였다. 이렇게 하여 광기와 이성의 엄격한 구별이 완성되며, 동시에 이성에 의한 광기의 지배가 시작된다. 광인은 강제적으로 부르조아 권력이 요구하는 주체로 만들어졌다. 물론 이때 광인은 스스로 주체로 인식하는 과정에서 정상인에 대한 열등감, 모멸감을 느끼므로, 권력에 의해 강요된 주체이지 참된 주체는 아니다. 광인이 부르주아적 권력에 의해 산업사회에 적합한 인간형으로 배제된 것과 같이 푸코에 따르면, 근대 이성적 인간 과학은 부르주아적 권력의 결때 절차에 있어서 범죄자의 찬양으로 돌아선 군중 반항 유형도 제거되었다. 만약 범죄가 스스로 교훈이요 공개적으로 보여진 모든 사람에 대한 도덕적 교훈이라고 한다면, 그의 행위에 대한 대중적 담론은 이론적으로 볼 때, 배움을 베풀기로 의도된 교훈들을 강화할 것이다. 군중의 시인은 마침내 ‘영원한 이성의 선교사’라 부르는 자들과 결합할 것이다. 처벌이 추구한 목적은 영혼의 개혁과 사회의 교도화를 동시에 이루는 것이다.이와 같이 인간주의적 개혁가들이 내세운 최상의 목적은 사회적 효용에 대한 고려였다. 처벌은 공포를 조장해서는 안되며, 참회를 일으켜야 했다. 제재는 근거가 뚜렷하고, 비편파적인 동시에 교육적이어야 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사회의 재통합이라는 의도는 사라지게 된다. 따라서 고전주의 시대적인 사고의 몇몇 경향들인 사회계약론, 공리주의, 표상의 기호학 등이 처벌에 대한 새로운 규준 속에서 결합되었다. 푸코에 의하면 이데올로기주의자 같은 18세기 후반의 사상가들은 계몽된 자기 이익의 이론과 연결된 표상의 이론들을 발전시킴으로써, 산업주의가 만연되기 시작하던 사회에 인간에 대한 권력의 행사에 있어서 일종의 일반적 기법, 즉 정신을 권력에의 등록부 표면에 놓고 육체를 사상의 통제를 통해 굴복시킨다는 모범을 제공해 주었다.)푸코는 계몽사상가들이 꿈꾼 규율 문화는 19세기 서구 사회에 나타날 부르주아적 질서를 예견했다고 본다. 근대인은 규제의 도가니 - 세세한 규율과 그의 부차적인 규율들, 검열, 학교, 兵舍, 병원, 작업장 등에서…… 삶과 육체의 가장 작은 단편이라도 감독하는 일- 속에서 태어났다. 계몽 사상이 제시한 유토피아는 실현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는 서구 근대 문화의 넓은 영역에 걸쳐 충만하기에 이르렀으며, 이러한 적용의 대표적 예가 감옥이다. 푸코는『감시와 처벌』에서 고전주의 시대의 규율 사상과 19세기 초.중반을 통해 일어난 형벌 기관의 감시 모형의 발생, 즉 현대적 의미의 감옥의 탄생 사이에 깊은 연관 관계가 있음을 제시하고 있다. 계몽된 푸코는 권력이 지식의 형태를 통해 얼마나 철저히 효과적으로 행사되는가 하는 것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푸코가 성욕이라는 개념을 사용한 것은 쾌락을 얻기 위하여 인간의 성적 행위를 가져오게 하는 원동력으로서의 성을 단순히 말하는 것이 아니고, 오늘날 서양 사회에서 종교와 교육과 도덕 관습과 정신 의학과 생물학이 지배하고 있는 성 과학과 관련되어 나타난 것이다. 즉 어떻게 성이 인식의 영역으로 서양 사회에서 구성되었는가를 구조주의적 진술 방식에 의해서 밝히고, 또 서양의 현대 사회가 아닌 다른 사회(동양)에서 아직도 성이 과학이 아니고, 관능(官能)의 술(術)로 남아 있는 진실을 추구하는 의도를 푸코의 3부작이 담고 있다. 즉 푸코는 오늘날 서양의 성 과학과 성의 본질을 존중하는 관능(官能)의 술(術)을 비교함으로써 이른바 성 과학의 현주소가 인간에 관한 현대 문명의 억압과 어떻게 연관되는가를 해석하려고 한다. 푸코의『성의 역사』3부작 중 권력과 담론 부분을 가장 많이 다룬 제1권『앎의 의지』를 중심으로 내용을 살펴보기로 하자. 푸코는 이 책의 연구 목적을 ‘어떻게 여러 권력 장치들이 육체- 구체적인 온갖 육체, 기능, 생리적 과정, 감각, 쾌락-에 직접적으로 연결되는지를 보여 주는 것이다.’라고 밝히고 있다.)1) 성에서의 권력푸코에 의하면 17세기이래 권력은 인간의 생명에 대해 두 가지 형식으로 지배하기 시작했다.) 첫째 형식은 인체의 해부 정치(anatomo -politique)부분이다. 이것은 인체의 생명에 대한 권력 행사와 관계되며 인체의 여러 가지 능력의 활용이나 실현을 직접 다루는 규율과 기술에 의해 이뤄졌다.둘째 형식은 인구의 관리와 통제의 형식이다. 여기에서 언급하려는 것도 바로 이러한 형식이다. 생체 권력)의 출현은 서구의 산업 발달과 직결된다. 그것의 출현은 인간 존재의 복잡한 현상들이 지식과 권력 관계를 계산하기 시작하면서였다. 생체 권력은 절대 권력이 경제적이고 능률적인 권력 형식을 갖추기 위해 인간의 삶의 과정에 대한 직접적인 관심을 가.
동양철학의 한계와 발전 방향요즘 사람들은 공자曰, 맹자曰 이라면 따분해하며 하품하기 일쑤이다.공자와 맹자의 말이 해가 되는 것도 아니고 들어보면 실보다는 득이 있을 텐데 그들은 왜 전혀 귀기울여 들으려 하지 않는 것일까?중국철학의 논리에 따르자면 사람들은 모두 선한 것을 따르기 좋아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는데, 그렇다면 시대가 변했다하더라도 여전히 선한 삶을 권유하는 그들의 사상에 현대인들은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고 따라야 하는 것이 아닌가?현대인들에게 중국철학이 따분하고, 고리타분한 사상으로 존재하게된 원인은 동양철학이 현대인의 관점에서 볼 때 합리적이지 않다라고 판단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현대인들은 왜 동양철학을 합리적이지 않다라고 판단하였을까? 그 원인들을 살펴보자.그 첫 번째 원인을 들자면 중국철학의 퇴보적 성격이라고 할 수 있겠다.현대인들은 첨단과학의 발달로 물질적 풍요로움을 누리고 있다. 이는 서구문명 즉, 서양철학의 발전적이고 자연 분석적 사고방식에 의한 결과물이라 말할 수 있다. 서양철학은 자연과 인간을 분리된 것으로 생각하고 자연을 연구하고 분석하는 태도를 취했다. 그러나 동양철학은 자연과 인간을 하나로 봄으로써 자연에 대한 객관적 탐구활동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대표적으로 도교의 경우 무위자연을 내세우며 유유자적의 생활을 이상적인 삶의 태도로 삼는다. 이는 진보적 사고가 아니며 과거 원시시대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다. 또 다른 중국철학의 퇴보적 성격을 들어보자. 또 다른 퇴보적 성격은 중국철학의 지향점이 과거 이상사회로의 복귀에 있다는 점이다. 이는 역사발전의 논리를 간과하고 있는 것이며, 현실성 없는 목표라고 할 수 있겠다.두 번째 원인은 그들의 사상이 전달하는 바가 정확치 않다라는 것이다.하나의 개념이 의미하는 범위가 너무나 포괄적이고 추상적이어서 어떠한 정의를 내리고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 예로 공자의 仁과 노자의 道를 들 수 있겠다.공자의 仁은 인간 심성론의 덕목을 포괄한 개념이고, 노자의 道는 우주의 실상을 포괄적으로 나타내는 개념이다. “억지로 이름을 붙여 도라 하고, 강제로 이름을 붙여 크다라고 한다”는 노자의 말은 그들이 제시하는 개념이 얼마나 추상적이고 포괄적인가를 단면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하겠다. 도식화되고, 명료화된 체계적인 지식을 요구하는 현대사회에서 이러한 포괄적이고 추상적인 개념들은 속된말로 현대인들에게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로 들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세 번째 원인은 중국철학 원문해석의 모호함이다. 중국철학은 다양한 해석영역을 지닌 한자로 기록되어 있으며, 표현 방법 또한 격언이나 우화 비유 등을 사용하여 전하고자 하는 뜻을 정확히 알기 어렵다. 그리하여 잘못된 해석이 나올 수 있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잘못된 해석이 행해진 대표적 예로는 논어 자한편 17장 子曰;吾未見好德如好色者也의 구절이다. 이 구절은 본래 "나는 보임새 좋아하듯 덕을 좋아하는 자를 보지 못하였다."라고 해석되어야 옳으나, "나는 여색 좋아하듯 덕을 좋아하는 자를 보지 못하였다."라고 잘못 해석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경우가 확대되면 그들이 내세우는 옳음이 다르게 해석되어 행해질 확률이 높고, 이런 일이 비일비재해진다면 그들의 사상은 오히려 존재하지 않는 편이 더 낫다 하겠다.네 번째 원인은 그들의 주장은 신빙성이 없다는 것이다. 중국철학에서는 대부분 주장의 정당성을 하늘에서 구하고 있다. 하늘은 절대적으로 권능하고 한 존재이며 그들의 주장이 하늘의 뜻이라는 것이다. 이는 이성적 사유가 아니며 지극히 미신적인 것이다. 공자가 말하길 예는 합리적인 것이므로 인간들이 반드시 지켜야하는 질서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합리적이다라는 기준 것은 무엇인가? 공자는 합리적인 기준 또한 예가 수용하면 합리적인 것이고 예가 수용하지 못하면 비합리적인 것이라 말한다. 이는 분명 오류이며 예를 지켜야하는 정당한 근거가 되지 못한다.다섯 번째 원인은 행위자, 즉 인간의 존재에 대한 탐구?인식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서양철학의 경우 모든 지식탐구에 앞서 인간의 존재에 대한 탐구가 먼저 이루어졌다. 그러나 동양철학은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것인가에 대한 탐구 즉, 윤리적 측면에만 치우쳐 윤리적 행위를 하는 행위자 - 인간의 존재에 대한 탐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다시 말해 행위에 대한 탐구는 있지만, 행위 하는 사람에 대한 탐구는 없는 것이다.
1.군가산점 제도의 개요공무원채용시 제대군인에게 가산점을 부여하는 제도는 1961년부터 시작되었다. 1961년의 제도는 병역법과 군인사법의 규정에 의해 정부가 국가 및 지방공무원(6급 이하 및 기능직)의 채용과 국가기관, 지방자치단체, 교육법에 의한 교육기관 및 민간기업(종업원수 20인 이상, 단, 제조업은 200인 이상)의 모든 직급의 근로자 채용 시 제대군인에게 가산점을 부여토록 한 것이다. 이 제도는 1984년 국가유공자 예우 등에 관한 법률(제34조 ① … 필기시험의 각 과목별 득점에 각 과목별 만점의 10%를 가산한다)로 명문화되었으며, 1997년에는 제대군인지원에 관한 법률(제8조 ① … 각 과목별 만점의 5%범위 안에서 …)로 이를 다시 확인하고 있다.2.헌법재판소 판례(군가산점제도는 1999년 헌재의 위헌판결)1999년 “병역법에 따라 군복무를 이행한 것을 개인의 특별한 희생으로 보아 일일이 보상할 수 없으며, 제대군인에 대하여 사회정책적 지원을 강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할지라도 그것이 사회 공동체의 다른 집단에게 동등하게 보장되어야 할 균등한 기회 자체를 박탈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헌재.1999)3.군가산제의 부활조짐“군필자 가산점 제도는 반드시 법적으로 부활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방부는 부활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이상희 국방부장관(2008년 10월 7일 국정감사 中)군필자에게 공무원 임용시험 등에서 얻은 각 과목별 득점의 2% 내에서 가산점을 부과하되 응시 횟수와 기간을 제한한다.-(2008년 1월 13일 국회국방위원회 통과)군가산점제 찬성 여론이 우세하고 있다. 한 경제지가 18일 누리꾼 473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88%가 이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한국여성정택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지난 8월 1000명의 20~30대 남성만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는 73.8%가 찬성했다. 심지어 2006년 국방대학교 안보문제연구소에서 실시한 조사에선 군가산점제에 찬성한다는 여성이 60.3%로 나타났다. 2002년 48.5%에 비해 10%포인트 이상 증가한 수치다.4.군가산제의 찬성 여론이 증가하게 된 요인군가산점제 옹호론자는 최근 여성의 사회진출 증가세를 근거로 든다. 고조흥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 9월 공청회에서 “여성이 (공무원)하위직에서 70% 이상을 차지하는 상황 속에 50대 50으로 가자는 것일 뿐 여성에게 불이익을 주자는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5.찬성여론배경의 문제점전반적으로 여성운동에 대한 역풍이 불고 있다는 인상”이라며 “지금까지의 여성운동에 대한 전체적 반격 성격이 있다”고도 분석했다. 그는 “고위 공직자 자제들의 군복무 면탈 사례 등을 보면서 사회적 박탈감을 느껴오던 남성들이, 여성들한테 화살을 돌리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안상수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외무고시 합격자의 70%가 여성이라고 해도 알고 보면 30명 중 18명인, 일부 분야 소수의 이야기인데 그걸 모든 분야로 확산된 듯 알파걸이니 하며 착시현상을 불러일으킨다”고 말했다. 여성의 사회진출 증가를 과장하는 ‘여풍 담론’과, 언론의 ‘여풍 보도’가 여론의 왜곡을 불렀다는 것이다.안상수 한국여성정책연구원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박선영 연구위원은 지난 9월 열린 ‘군가산점제 부활안의 쟁점과 대안’ 토론회에서 “남성과 여성의 대학 진학률이 거의 같음에도 경제활동 참가율은 큰 차이가 나고, 특히 대졸 이상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저 수준인 점은 여성이 사회로 진출하는 데 구조적 차별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공무원 시험 등에서 여성 합격률이 상승하는 것 또한 상대적으로 고용상 차별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에 여성들이 몰리는 현상일 뿐이라는 설명이다.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박선영6.군사산점재도입 부적절(가산점은 특정 집단에게 책임을 강제하는 것이다.)국가인권위원회가 병역의무를 마친 사람에게 공무원 채용 시험 등에서 가산점을 주는 ‘군필자 가산점 제도’에 대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냈다.인권위는 1일 한나라당 김성회 의원이 군가산점제를 도입하는 내용으로 발의한 ‘병역법 개정안’에 대해 “병역의무를 지지 않는 대다수의 여성이나, 신체상의 이유로 병역이 면제된 남성 또 귀화자, 중학 중퇴 이하자 등 사회적 약자들도 배제한다”면서 “형평성을 유지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합리적인 방법이라 인정하기 어렵다”고 검토 의견을 밝혔다. 인권위가 군 가산점과 관련해 공식적으로 의견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김 의원은 지난 7월 병역의무 이행자가 취업할 때 과목별 득점의 2% 안에서 가산점을 부과하되 선발인원을 20% 이내로 하고 가점 부여 횟수와 기간을 제한하는 내용의 병역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다.인권위는 “김 의원의 안대로 적용할 경우 9급 공채에서 2006년 기준으로 여성 합격률은 15% 정도 감소하는 등 현저히 불리한 영향을 주게 된다”면서 “미세한 점수차로 합격 여부가 좌우되는 현실을 고려할 때 가산점 비율을 하향 조정하고 적용범위를 제한하더라도 여성과 장애인에 대한 불평등 효과가 크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따라서 “병역의무 이행자의 사회 복귀 지원이라는 입법 목적에 비해 공직 진입 기회를 박탈할 소지가 지나치게 크다는 점에서 비가산점 응시자의 공무담임권을 침해한다”고 설명했다.인권위는 이어 “사회적 약자에게 병역의무 이행자의 불이익에 대한 책임을 전가하거나 이들의 희생을 요구하는 방식이 아니라 사회공동체 모두가 부담하는 합리적이고 적절한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한겨레신문 송경화 기자7.군가산점은 행정편의주의적인 발상문제는 정부 역시 대안 마련에 소극적이라는 데 있다. 예산 때문이다. 사회적 연대에 기반한 안들은 대부분 추가비용을 요구한다. 예를 들어 군 복무기간의 봉사마일리지 제도, 군필자를 위한 국민연금제도등 이다. 일부 사람들은 이를 이유로 비용과 노력 면에서 가장 효율적이라며 가산점제에 찬성하기도 한다. 지극히 행정편의주의적인 발상이다.8.특정집단에게 군가산점제를 요구해서는 안된다.한상희 건국대 법대 교수는 “군대에 강제로 끌려가 인간 이하 생활을 했다는 게 문제라면 국가한테 보상이나 군 개혁을 요구해야 한다”며 “엉뚱하게 여자들한테 2~3년을 보상해 달라는 논리구조”라고 여론의 비합리성을 비판했다.불합리한 군가산점제도를 대체할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현 시점의 문제는 군가산점제도의 찬반 갈등이 남자대 여자의 대결의 구도로 인식되고 있다. 군인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남성이 법안 반대에, 이득 볼 거 없는 여성이 찬성에 더 많은 표를 준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이런 식으로 남자는 찬성, 여성은 반대의 입장을 계속 견지하고 있다면 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서론1.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본론2.예술영역에서의 아름다움(ⅰ)팝아트(ⅱ)패러디결론1.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흔히들 예술의 아름다움이란 말을 많이 사용하는데 거기서 말하고 있는 아름다움이란 것은 무엇일까? 아름다움이란 말은 한마디로 정의내리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상으로서의 아름다움이 있을 수 있고, 실용적 가치의 아름다움, 외적인 아름다움, 내적인 아름다움 등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것은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그렇다면 나의 관점에서의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이것을 알기 위해서 먼저 사전적 의미 그대로 마음속에서 좋은 느낌을 자아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무엇인지를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이 글에서 그것은 ‘창조’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을 것 같다. 음악가가 음악을 만들어 내듯이, 예술가가 예술을 만들어 내듯이, 부모가 우리를 만들어 내듯이 ‘창조’한다는 것이다. ‘창조’라는 단어는 ‘유’에서 ‘무’를 만들어 낸다는 것인데, 이것은 신만이 가능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글에서는 창조란 단어에 다른 뜻을 부여 할 것인데 누군가 만들어 내놓은 것이 자신에게는 ‘무’가 될 수 있고, 그것을 자신의 관점에서 다시 표출해 내놓은 것이 ‘유’가 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것을 그냥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면 자신에게 어떤 의미도 될 수 없다. 그것을 다시 생각하고 표출하는 것이 ‘유’가 되는 것이고, 그것이 자신만의 창조가 되는 것이다. 역시 이것도 개개인마다의 차이가 있듯이 확실한 기준은 없다. 그리고 아름다움의 위치는 외적인 부분에 위치하는 것이 아니라 내적인 부분에 위치하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다면 어떤 작품이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으면 모두가 동감할 수 있고 같은 아름다움을 느껴야 하기 때문이다.‘아름다움’이라는 것은 외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부에 존재해 있는 것이고 그것의 정의를 내려 본다면 자신의 관점이 들어간 하나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것은 자신만의 창조가 된다. 그리고 그것이 모두의 공감을 많이 얻을수록 아름답다고 표현되어지는 것이다.일반적으로 “아름답다”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쓰이는 예술분야에서 더 자세히 알아보고, 각자 개인들의 관점이나 주장이 많이 표현된 예술 작품들에서는 어떤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아름다움이 자신에게 다가와서 또 어떻게 표현되고 그것을 이해해야 하는지 살펴보겠다.2. 예술영역에서의 아름다움우리가 일명 대가라 불리우는 작가들, 그리고 그들의 작품들, 그것들은 단순히 그들이 자다가 일어나 혹은 살다가 문득 떠올린 새로운, 순수한 창조인 것일까? 많은 작가들이 진술하길 나는 누구의 화법과 색채 혹은 그림의 사상에 영향을 받았다라고 진술하며 그 증거들이 무수히 많이 남아있다.창작의 세계인 미술에서 이 같은 차용은 과거에는 부정적 의미를 지녀온 것이 사실이다. 창조적 개인의 독창성이 담긴 원작만이 진품이고 다른 사람이 이를 차용하는 행위는 일반적으로 거부되어 오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앞에서 말했듯이 ‘아름다움’이란 창조하는 것이라 했고 이것은 다른 사람의 어떤 것을 자신의 관점으로 파악하는 것이라고 정의 될 수 있다. 아름다움이라는 것의 존재는 외적인 부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적인 부분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현대에는 다양한 형태의 차용이 성행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작가가 다른 사람의 작품을 모방해서 작품을 만드는 것을 독창성이 없다는 이유에서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던 때도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차용 미술을 미술 표현의 또 다른 방법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러한 차용 미술 작품은 예술 작품의 의미를 새롭게 하거나 무관심 속에서 의미를 잃어가는 예술 작품에 대한 관심을 유발시키는 계기를 제공 할 수도 있다.(ⅰ)팝아트‘팝아트’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은 영국의 미술평론가 로렌스 앨러웨이이다. 1950년대 중반 영국에서 시작된 팝아트는 60년대 들어 미국으로 건너가면서부터 화려한 꽃을 피우게 된다. 그 토대를 제공한 것은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라는 당시 미국의 물질적 풍요. 그래서 팝아트는 ‘미국의 미술’이라고도 불린다.팝아트는 텔레비전이나 매스 미디어, 상품광고, 쇼윈도, 고속도로변의 빌보드와 거리의 교통표지판 등의 다중적이고 일상적인 것들 뿐만 아니라 코카 콜라, 만화 속의 주인공 등 범상하고 흔한 소재들을 미술 속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이라는 이분법적, 위계적 구조를 불식시키고, 산업사회의 현실을 미술 속에 적극적으로 수용하고자 한 긍정적인 측면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다다이즘에서 발원하는 반(反)예술의 정신을 미학화시키고 상품미학에 대한 진정한 비판적 대안의 제시보다 소비문화에 굴복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매스 미디어와 광고 등 대중문화적 시각이미지를 미술의 영역 속에 적극적으로 수용하고자 했던 구상미술의 한 경향을 말하는 것인데, 내가 본 팝아트는 직접적으로 감지된 현실이 아니라 디자인이나 대중매체 가운데에서 발견되는 현실에 대한 지금까지의 표현방식을 그 음미의 대상으로 삼고 있었는데 팝아트는 대중문화에 대한 비판이나 도전 등 직접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지는 않고, 단지 원래의 대중문화를 그것의 소재이자 정보로서 이용하는 중립적 입장에 서있다고 할 수 있었다.바로 이점은 팝아트에 있어서 비판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점 자체가 팝아트의 특징인 만큼 팝아트의 아름다움이 엿보인다. 앞에서 말한 팝아트의 특징 때문에 미술가들은 의도적으로 다양한 양식을 혼합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게 되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미술가들 자신만의 의도가 나올 것이고 설령 같은 표현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미술가들 개개인 마다 의도나 주장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이다.팝아트의 작품들은 같아 보이는 여러 형식들이 있더라도 작가들의 서로 다른 아름다움이 있게 되고 이점이 팝아트의 비판의 내용이 될 수도 있지만 같아 보이는 표현방식이 사용된다 하더라도 라도 그것은 같은 내용이 아니기 때문에 팝아트 자체가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다고 보인다.(ⅲ) 패러디‘패러디’란 문학이나 예술분야에서 특정 작가의 약점이나 특정 문학유파의 과도한 상투성을 강조해보이기 위해 그들의 문체나 수법을 흉내 내는 일종의 풍자적 비평이나 익살스러운 조롱조의 글이라고 볼 수 있다.패러디라 하면 먼저 있던 것들을 부정적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패러디도 그것을 다르게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보고 싶다. 패러디의 가장 큰 특징으로는 존재하는 것들의 고유성 보다는 목적이 더욱 중요하게 부각된다는 점이다. 좋은 점이든 나쁜 점이든 작가들의 여러 가지 관점이나 주장하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패러디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내포하고 있을 것이다. 이 같은 표현은 정치권부터 경제, 사회 문화 등 패러디는 과거의 정치적인 면에 한정되어 있던 틀에서 벗어나 다양한 면으로 확장되어야 하는 것이다.
운명을 알 수 없다는 것은 자유로운 선택을 가능하게 한다.그리스전성기 시대, 최고의 비극작가로 대중들의 추앙 받던 소포클레스는 신들의 힘과 위대함을 인식하고 신을 공경하는 경건한 생활을 하지만 그에게 있어 신은 인간으로서는 알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존재로 인식된다. 소포클레스와 더불어 3대비극작가로 불리던 에스컬로스가 시종일관 신들의 위대함을 표현하자고 했다면 소포클레스는 비극작품을 통하여 인간 존재의 한계성을 보여주려 했다고 말할 수 있다. 신의 경건함과 숭고함의 절대성을 인정하면서도 그에 굴하지 않고 신이 정해놓은 운명적 인생길에 끝없이 대항하려는 인간의 의지를 잘 드러내고 있다.이러한 소포클레스의 사상과 신념은 현존하는 그의 비극 중 예술성에 있어서나 극구성에 있어서나 최고의 걸작이라 불리는 오이디푸스 왕에 잘 반영되어 있다. 오이디푸스 왕의 줄거리를 살펴보면 이러하다.도시 국가 테베에 지독한 전염병이 유행해, 도시 전체가 악취 나는 죽음의 도시가 된다. 사제와 국민들은 이 난국에서 벗어나기 위해 오이디푸스 왕에게 도움을 청하러 온다. 그들은, 오이디푸스 왕이 스핑크스의 문제를 풀어 나라를 불행에서 구한 적이 있기 때문에, 이번에도 자신들을 도울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국민의 고통을 잘 알고 있는 왕은 그들을 돕기로 결심하고, 이미 자신의 처남 크레온을 아폴로 신의 거처인 델피로 파견해 신탁을 받아 오라고 명한바 있다. 때마침 델피에서 월계관을 받아쓰고 귀환한 크레온은 신탁을 받아 왔다며, 선왕 라이오스를 죽인범인을 잡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눈먼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는 왕에게, 제발 그 범인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지 말라고 간청한다. 이상히 여긴 왕은, 혹시 테이레시아스가 그 범인이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의심하며, 누가 범인인지 어서 말하라고 다그친다. 마침내 에티레시아스는, 선왕 살인자는 오이디푸스 왕 자신이라고 말한다.오이디푸스 왕은 진상을 밝히려고 나선다. 선왕은 외아들을 산 속에 버렸고, 어떤 강도들에게 살해된 것으로 되어있어, 왕 자신이 죽였다고 믿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이디푸스 왕 자신은 코린토스왕가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선왕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하지만 그는, 자신이 언젠가 테베로 오다가 길에서 마차를 타고 가던 어떤 노인과 그의 마부를 말다툼 끝에 지팡이로 때려죽인 일이 생각난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의 단독 범행이었지, 강도들과 함께한 짓은 아니었다. 그 때 코린토스의 한 사신이 나타나, 오이디푸스 왕은 코린토스 출신이 아니라 입양아라고 증언한다. 한편, 오이디푸스의 왕비이자 어머니인 이오카스테는 선왕이 살해된 시점과 오이디푸스가 노인과 마부를 살해한 시점이 일치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오이디푸스 왕이 범인임을 확신하고 혼자 조용히 왕궁으로 돌아가 목매어 자살한다. 그 다음 목자 한 명이 출현해, 자신이 오이디푸스 왕자를 산에 버리라는 명령을 어기고 코린토스의 한 목자(지금 증언한 사신)에게 넘긴 그 신하였음을 증언하고, 또한 선왕이 어떤 노상강도에게 맞아 죽을 때도 수행하고 있다가 목숨을 건진 유일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모든 이야기들을 종합해 보건대, 자신이 선왕 라이오스 살해자임이 더 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게 된 오이디푸스 왕은, 스스로 자신의 두 눈을 수 없이 칼로 찔러 장님이 되어, 자기 발로 걸어서 테베를 떠난다.사람들은 이 작품을 보면서 그의 부모에게 행한 행위가 그의 도덕적 결함에서 왔다고 보지 않는다. 그가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말려들어 운명의 가혹함에 처한다는 것에 동정표를 던진다. 오이디푸스 왕이 더욱 비극적일 수 있는 이유는‘비극적 결함’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정해졌다는 것이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지은 죄로 파멸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인생을 살면서 크나큰 실수를 한 것도 아니고, 그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그의‘비극적 결함’은 이미 운명적으로 결정되어 있었다. 그 비극적 결함이라 함은 작품내부에서 살펴볼 수 있다. 라이오스 왕은 젊었을 때, 엘리스의 펠로프스왕의 궁궐로 망명하고 있었는데, 그곳의 아름다운 왕자 크류이시포스를 사랑하여 이른바 동성애를 범하여 펠로프스왕의 저주를 받게 된다. 그 저주는 라이오스에는 자식을 낳아선 안 되며, 만약 이것을 어기면 그 아들 손에 죽으리라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라이오스왕은 아내 이오카스테에게서 아들을 하나 얻게 되는데, 그가 바로 오이디푸스였다. 그는 아비를 죽이고, 어미와 결혼한다는 저주스러운 운명을 타고난 사람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