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문자메시지 커뮤니케이션 비교목차1. 서론2. 일본의 문자메시지 체계3. 일본의 문자메시지의 특징3.1. 구어적 표현3.2. 문어적 특성의 활용4. 한국 문자메시지와의 비교5. 결론주제어: 한·일 문자메시지, 통신언어, 문자메시지 커뮤니케이션1. 서론이 조사는 최근 중요한 의사소통의 수단으로서 자리 잡은 문자메시지의 커뮤니케이션이 가지고 있는 특징 중, 특히 일본의 문자메시지가 가지고 있는 특징을 알아보고 한국의 문자메시지와 비교해 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휴대전화 메시지 커뮤니케이션은 종종 ‘문자 회화’, ‘메일 회화’라고 말해질 만큼, 우리의 일상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의사소통의 수단이 되었고, 젊은이들에게는 이를 통한 의사소통이 평상시처럼 이야기 하고 있다는 의식이 강하다. 그런데 문자메시지 커뮤니케이션은 그 구성이 문어체를 기초로 하고 있기 때문에, 대면 회화에서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이 사용된다. 또한 문어체가 가지고 있는 규범을 이용해 기존의 문어체와는 또 다른 특징들도 찾아 볼 수 있다.이번 조사에서는 일본의 문자메시지가 가지고 있는 특징을 음성적 특징을 보완하는 구어적 표현의 측면과, 문어체인 것을 활용한 문어적 특성의 두 가지 측면에서 알아본 후, 한국의 문자메시지와 어떤 점이 다른지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2. 일본의 문자메시지 체계우리나라에서는 통신사와 상관없이 보내는 사람이 요금을 부담하고 아무에게나 메시지를 전송하는 것이 가능하다. 반면 일본에서는 통신사가 같은 경우에만 메시지 전송이 가능하며 요금도 쌍방부담의 형식이다. 그런데 일본의 휴대전화번호는 모두 090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번호만으로는 통신사를 알 수가 없기 때문에, 휴대전화 번호를 이용한 메시지 이외에 단말기 별로 메일 주소를 만들어서 사용한다. 통신사 별로 NTT도코모는 ~@docomo.ne.jp, 소프트뱅크는 ~@softbank.ne.jp, auKDDI는 ~@ezweb.ne.jp의 형식의 메일 주소를 사용한다. 따라서 일본에서는 한국의 문자메시지와 유사한 개념으로 携?メ?ル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본 조사에서는 일본의 携?メ?ル를 한국의 문자메시지와 같은 개념으로 보고 조사하였다.3. 일본의 문자메시지의 특징3.1. 구어적 표현문자메시지는 그 구성이 분명 문자언어이기 때문에 전달 할 수 없는 음성정보인 프로미넌스), 억양, 말과 말사이의 간격, 강조 등이나 시각정보인 몸짓이나 얼굴 표정들을 직접 말을 하듯이 표현함으로써 보완하는 표현을 구어적 표현이라고 한다.① 종조사의 다양한 활용「バイトがんばってね」「?り散?だよ」「川原もおいでよ。待ってるよ」)위의 예문에서 ね와 よ 같은 종조사의 쓰임이 보여지는 데 이것은 실제 언어생활에서 사용되는 다양한 종조사를 통해 문자만으로는 표현 할 수 없는 감정을 표현하였다. 예문의 ね는 가벼운 다짐의 뜻을 지니며, よ는 상대에게 힘들었던 상태를 알리는 뜻을 지닌 종조사이다.② 조사의 생략「ご飯食べてく」「ユニフォ?ムもらえてよかったね」위의 예문에서 ご飯과 ユニフォ?ム 다음에 와야 할 격조사 を가 생략되었다. 이것은 실제 언어생활에서는 글을 쓰는 것과 같이 문장의 모든 형식을 갖추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나타나는 표현형식이다.③ 체언으로 끝나는 형태「しかも傘?れて最?」「今?業中」「愛深まった感じ」)체언으로 끝나는 형태 역시 실제 언어생활에서 글쓰는 것과 같은 정형성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나타나는 표현형식이다.④ 축약형, 변형「がんば!」「あんがと!」「おつかれ!」실제 언어생활에서 사용하는 구어체의 경우, 여러 가지 상황에 맞닥뜨려 발생하는 실수가 전후 발화 상황에서 그대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실제 언어생활에서 일어날 수 있는 실수나 표현상의 변화가 굳어진 것들이 메시지에서 드러난다.⑤ 음조표현「難しい日程だねぇ─」음조표현은 각 개인마다 가지고 있는 언어 습관, 상황에 따른 감정표현을 대체하는 표현방식이다.⑥ 의성어, 의태어글자로는 감정을 표현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기 때문에 이를 대체하는 의성어와 의태어의 표현이 많이 보여진다.⑦ 와카모노 코토바「今って?食?るでしょ?」「まじ、疲れた」「あけおめです。ことよろです。」)문어체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특징이 정형성이고, 하나의 완전한 문장을 써야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는데 와카모노 코토바의 사용은 젊은이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어휘, 표현법을 그대로 가져와 문자메시지에서 사용한 것이다.⑧ 유아어, 경비어, 고어, 방언유아어, 경비어, 고어, 방언 모두 일상 언어생활에서의 다양한 표현법에 속하지만, 문어체에서는 잘 사용되지 않는 표현법이다. 하지만 문어체에서는 잘 사용되지 않는 표현법이다. 하지만 문자메시지에서는 이 표현들을 자연스럽게 사용함으로써 일상언어와의 차이를 줄이고 있다.⑨ 감동사, 응답사감동사나 응답사는 일상 언어생활에서 다양한 표정이나 몸짓 등 비언어적인 정보들을 보완해주는 표현이다.⑩ 이이요도미(言いよどみ)), 이이사시(言いさし))일상 언어에서 말과 말 사이에 집어 넣는 표현이나, 말끝을 흐리고도 완성되는 표현은 문어체에는 원래 나타나지 않으나, 이를 그대로 표현함으로써 실제 말을 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강조한다.3.2. 문어적 특성의 활용휴대전화 메시지가 문자언어인 점을 이용한 표현을 문어적 특성의 활용이라고 한다. 특히 구두점을 생략하거나, 다양한 그림기호의 사용 등 종래의 문어체의 규범으로부터의 일탈이 현저한 것이 특징이다.① 가타가나의 사용「チョ─つまんね~」「?スギダよ」가타가나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용법인 강조의 용법을 활용한 표현으로 어떠한 감정의 상태를 강조할 때 사용함으로써 문자언어의 단점을 보완한 표현이다. 위의 예문에서 チョ─, スギダ의 경우 하찮고, 떫은 정도가 강한 것을 가타가나를 통해 표현한 것으로, 실제 언어생활에서는 프로미넌스나 강조등을 통해서 드러나는 표현이다.② 로마자·외국어 사용, 서양만화의 기호 사용문어체가 가지는 형식적인 측면을 탈피한 표현으로, 같은 표현이라도 구어체로 표현할 수 없는 재미있는 효과가 가능한 표현 방법이다.③ 구두점의 생략, 그림기호의 다양한 사용구두점은 문어체의 중요한 형식 중 하나인데, 메시지에서는 구두점을 생략하는 대신에 단순한 공백이나, 그림기호 등을 사용해서 이를 대신한다. 특히 그림기호는 문자로 표현하기 힘든 다양한 감정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수단이다.4. 한국 문자메시지와의 비교일본의 携?メ?ル가 가지고 있는 특징을 한국의 문자메시지에서도 대부분 찾아 볼 수 있다. 이것은 빠르고 쉽게 대화하려는 젊은 층들의 언어습관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한·일 대학생들이 문자메시지를 이용하는 목적에 관한 조사)에서 '급한 용무는 아니지만 전할 말이 있을 때‘라는 응답이 한국 67.8%, 일본 42%로 가장 높은 응답율을 보였다. 이처럼 문자메시지를 사용하는 계층은 이미 문자메시지를 대화의 연장선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하지만 한국의 문자메시지는 일본의 携?メ?ル에 비하여 분량의 제약이 더 크다. 한국의 문자메시지 하나로 전달할 수 있는 분량은 80bytes로 이는 한글 약 40자에 해당한다. 따라서 띄어쓰기의 생략이나 소리 나는 대로 쓰는 식의 표현을 통해 분량을 줄이려는 노력이 일본의 메시지에 비해 더 자주 나타난다.표본을 구하기 힘들어, 본인의 문자메시지 내용을 확인해 본 결과, ‘음’, ‘슴’, ‘임’등의 명사형태(체언)로 대화를 끝내는 형태가 자주 보였고, 긴 내용의 경우 띄어쓰기를 거의 하지 않는 모습이 발견되었다. 또한 일본의 문자메시지에 비해 주어의 생략이 두드러졌다. 한국의 문자메시지가 갖는 가장 큰 특징 중, 웃음의 표현이 있다. ‘ㅋㅋ’, ‘ㅎㅎ’와 같이 한국의 문자메시지에서는 웃음의 표현을 웃음 소리를 이용하여 나타내고 있다. 반면 일본에서는 ‘웃다’라는 뜻을 지닌 글자를 이용해 (笑)로 표현한다.
世阿彌의 「忠度」 감상문이전에 접했던 「井筒」가 伊勢物語를 전거로 하여 창작한 작품이라면, 이번의 「忠度」는 忠度라는 한 인물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작품인 만큼, 감상과 더불어 忠度라는 인물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고 싶었다. 수업시간에서 접한 源氏와 平氏의 일화에서 분명 平忠度는 주류가 되는 인물은 아니었다. 무가로써 이름을 떨쳤던 두 가문의 이야기의 주인공이 아니었던 그에게 世阿彌가 집중했던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실제로 검색사이트에서 忠度를 검색해보니 그에 대한 역사적인 사실이나 관련된 能작품에 대해서 별다른 자료들이 없었다. 일본 검색사이트에서도 한두 줄의 간략한 정보밖에는 찾을 수가 없었고, 그마저도 ‘문·무에 능했던 장수’ 라는 단순한 정보가 전부였다.그러나 수업시간에 접한 忠度는 전장에서 손자뻘의 장수의 지휘를 받았던 것으로 보아 결코 무에 능한 장수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戰功에 대한 특별한 언급도 없었던 그가 무에 능했다는 평을 받는 것은 아마도 당시에 큰 세력이었던 源氏와 平氏가 아무래도 무가를 대표했던 가문이기 때문에 忠度 역시 무인으로서의 능력을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世阿彌는 왜 忠度를 자신의 작품의 주인공으로 삼았던 것일까. 世阿彌는 분명 足利義?의 절대적 후원을 받아 번영을 누리긴 하였지만, 그의 인생의 후반기를 유배지에서 보냈기 때문에 그 인생이 극명히 대조를 이룰 만큼 역경도 많았던 인물이다. 미천한 어머니 밑에서 아버지도 일찍 여의고 외로운 인생에서 내면적으로 침잠했던 忠度의 입장에서는, 한때나마 좋은 시절도 있었던 世阿彌를 부러워 할만도 하지만 世阿彌는 그런 忠度의 신세를 자신의 그것과 유사하게 여겨 그를 작품위로 올려서 위로한 듯 하다. 아마도 忠度가 오랫동안 살아 歌道를 걸었다거나, 혹은 平氏의 세상이 되어 그의 작품의 ?人知らず로 실리지 않고 그의 이름으로 실렸더라면 아마도 그는 주목받지 않았을 것이다.작품을 읽으면서 가장 눈에 들어왔던 것은 前場의 前シテ가 ワキ인 행각승을 대하는 태도이다. 대개 前場에서 다른 모습으로 화하여 등장한 前シテ가 後場에서 ワキ에 의해 구제의 길로 인도되는 형식이 일반적인 夢幻能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前シテ는 ワキ와 그 무리를 계속해서 비난하고 있다. 그것도 한번이 아니라, 어부가 산에 가는 이유를 모르는 것에 대해 한번, 벚나무를 앞에 두고 잠자리를 찾는 것에 무교양을 나무라며 두 번, 忠度의 묘표를 두고 그 주인에게 조문을 하지 않는 것에 세 번이나 비난하고 있다. ワキ가 이후에 염불을 외어 성불을 기원하자 前シテ의 태도가 바뀌기는 하였지만, 아무래도 그의 태도는 다른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과는 사뭇 다르다.ワキ는 작품 첫머리에 등장하면서 자신을, 俊成를 가까이서 모시다가 출가하여 여기저기 수행을 위해 돌아다닌다고 소개하고 있다. 俊成가 당대 최고의 문장가로 이름을 날렸던 점을 미루어 볼 때 그를 가까이서 모셨다 함은, 그 역시 文을 하던 자임을 의미할 것이다. 그런데 그 일을 그만두고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는 것은 文의 길, 즉 歌道를 버린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歌道라는 것은 생전에 忠度가 그리도 가고 싶었던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 가고 싶었던 그 길을 버린 자와, 그 길을 가지 못하고 죽어서 이승을 떠도는 자의 묘한 대비는 과연 작가인 世阿彌가 의도 했던 것일까? 속세를 떠나 출가했다지만, 자신이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던 그 길을 스스로 떠난 ワキ를 작품 속에서 세 번이나 비난한 前シテ의 입장이 이해가 되기도 한다. 다른 작품속의 ワキ와는 달리 이 작품의 ワキ가 단순한 승려가 아니라 俊成를 가까이에서 모시다 출가한 자라고 특정한 것은 아무래도 작가인 世阿彌가 忠度의 망집을 더욱 극대화 시키기 위한 장치가 아니었나 싶다.後場에 등장하는 後シテ의 태도 역시 자신의 처지와는 다르게 너무나도 당당하여 당황스럽다. 이전에 접한 바 있는 「井筒」의 경우 シテ는 業平를 그리워 해 그의 유품을 몸에 걸친 채로 영혼의 합일을 바라는 춤을 통해 잠시나마 지복의 경지를 맛보게 되는데, 여기서 ワキ는 그녀의 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녀를 위해 성불을 빌어주는 역할을 한다. 그렇다고 해서 シテ가 ワキ에게 직접적으로 무언가를 요구하거나 원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忠度」의 後シテ는 어딘지 모르게 당당하다. ワキ에게 자신의 작품이 ?人知らず로 되어 실명이 빠진 것이 ‘망집 중에 으뜸’이니까 定家에게 그 잘못된 사항을 고쳐줄 것을 전해달라고 노골적으로 요구한다. 이 부분 역시 ワキ와 シテ의 처지가 너무나도 극명하게 대비되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平氏가문에서 환영받지 못한 인물로 살아간 것에 대한 원망, 그 원망과 외로움을 이겨내기 위해 매진했던 歌道를 끝까지 갈 수 없었던 현실, 만약에 平氏가 집권했다면 자신의 작품이 실명으로 실릴 수 있었을 상황 등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나는 그렇게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던 것을, 너는 스스로 박차고 나오지 않았느냐? 그러니 네가 나의 못다 이룬 한을 풀어주어야겠다’ 라고 シテ가 외치는 듯 하다. 작가인 世阿彌가 쓴 能이론서인 「風姿花?」의 발문에서 ‘예능인이라 하여 다 예도의 사람이 아니다. 도를 아는 자만이 예도의 사람이라 할 수 있다.’라고 한 것처럼, シテ의 입장에서 본 ワキ는 歌道를 알지 못하는 자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 입장에서라면 シテ가 가지고 있는 지나치게 당당한 태도가 이해될 만 하다. 하지만 그런 シテ의 바람은 이뤄질 수 없는 것이기에 그가 더 안타깝게 느껴지고, 한편으로는 勅撰集에 작품이 올라간 歌人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처럼 보인다.
世阿彌의 「井筒」 감상문이전에 일본에 여행을 갔을 때 에도-도쿄박물관에 들른 적이 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일본 에도시대의 여러 가지 생활상을 연출해 놓은 전시품이었는데, 그 중 네모난 무대 위에서 가면을 쓰고 연기를 하고 있는 모습을 미니어쳐로 만들어 놓은 것을 본적이 있다. 그때는 일본의 연극이라고 하면 가부키만을 떠올렸기 때문에 그냥 그런가 보다 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그 무대에 소나무가 있었던 걸로 보아 아마 ‘노(能)’의 무대였던 것 같다.하지만 수업 중에 영상을 통해 본 노의 장면은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천천히 늘려 말하는 대사와 로봇이 움직이는 듯이 딱딱 끊어 움직이는 배우들의 연기, 음산한 느낌이 들게 하는 코러스 등 지루한 장면들의 연속이었다. 노가 정식으로 공연되면 하루에 다섯 곡이 상연되었다고 하는데, 과연 당시의 사람들은 어떤 점에서 노를 좋아했던 것일까?노의 여러 작품 중 우아하고 유현한 전개를 잘 보여주는 카즈라모노(?物)의 하나인 이즈쓰(井筒)는, 제아미의 대표작으로서 지금까지도 큰 사랑을 받아오고 있다고 한다. 제아미가 당시의 쇼군인 아시카가 요시미츠(足利義?)의 비호아래 절대의 우위와 번영을 누렸다고는 하나, 일본인들에게 익숙한 이세모노가타리(伊勢物語)의 내용을 기반으로 하여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이런 작품을 창작한 것을 보면, 그의 작품은 당시 사람들에게 충분히 사랑받을 만한 매력이 있었을 것이다.아마도 그 매력의 기반은 작품에 깔려 있는 ‘한’의 정서가 아닐까 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성의 한은 좋은 이야깃거리였고 많은 문학작품에서 주제로 사용되었다. 이즈쓰의 기반이 된 이세모노가타리의 23단은 어릴 적 우물가에서 결혼을 약속한 남녀가 성인이 되어 결혼을 하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워지게 되자 남자가 외도를 저지르게 되는데 남자는 아무런 기색이 없는 여자를 오히려 의심하지만 그러한 자신을 걱정해 주는 아내의 모습을 보고 감동하여 다시 돌아온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즈쓰의 여주인공인 아리쓰네노 무스메(有常娘)는 남편인 나리히라(業平)가 다시 돌아와서 행복한 것이 아닌, 당시의 한과 미련으로 죽어서도 성불하지 못하는 여자의 모습으로 묘사된다.자신이 아닌 다른 여자를 만나러 가는 남자를 진심으로 배웅하고 걱정해 줄 수 있는 여자가 실로 몇 명이나 있을까? 아마 아리쓰네노 무스메도 외도하는 나리히라를 보면서 단순한 걱정만이 아닌 질투와 한, 원망, 애증 등의 복합적인 감정을 속으로 가졌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죽어서도 이상이라고 할 수 있는 극락에 가지 못하고 나리히라와의 추억이 깃든 장소를 떠돌며 그를 추억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모습은 전장(前場)에서 주인공이 마을 여인으로 가장하여 나와 성불을 위한 서원을 빌면서도, 원망과 한에서 벗어나지 못해 ‘어떤 소리를 통해 깨어나야 할까’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드러나고 있다. 후장(後場)에서 마을 여인으로 가장한 아리쓰네노 무스메의 정체를 안 행각승은 꿈 속에서 그녀를 불러내고, 나리히라를 그리워한 아리쓰네노 무스메는 그의 유품을 몸에 걸친 채로 영혼의 합일을 바라는 춤을 통해 잠시나마 지복의 경지를 맛보게 된다. 하지만 모든 것은 일시적이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원래대로 돌아오게 된다. 작품이 끝이 나면서 아리쓰네노 무스메는, 자신의 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나리히라와 다시 만나게 해줄 또 다른 구원자를 기다리면서 구천을 다시 떠돌게 된다. 아마도 작품이 상연되면서 노가쿠시(能?師)들의 연기와 전체적인 한의 분위기가 조화를 이루면서 관객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