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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의 세계화의 시비(是非)에 대하여 (일본어)
    中学校や高等学校過程で教科書を通じて学んだ現代社会の特徴には必ず「グロバール化」という用語が登場したりした。1980年代と1990年代を臨んで地球村の各地で進行されたグロバール化の波は政治、社会、経済などの多様な方面に大きい影響を及ぼしたが、その中私たちに強く体感されたことはまさに文化のグロバール化であった。当時には確かにグロバール化に対する漠然とした憧れと盲目的な追従が存在したので、韓国はいわゆる「文化先進国」だと思われるアメリカ、日本の文化を受容する立場であった。しかしいつのまにか韓国は世界各地に文化を伝えるようになって、「韓流」という名前のこの現象は近くのアジアの国々だけではなく過去に文化先進国だと思われたヨーロッパなどの地にも広がっていた。数日前フランスのルーブル美術館の前でフランス若者たちが韓国歌手のコンサートを追加で開いてくれることを要求しながら韓国歌手たちのダンスをしてデモをしたことがその例と言える。 ところで人々は現在の「韓流」に代表される韓国文化のグロバール化に対しては肯定的な現象だと思いながらも、一方では文化のグロバール化に対してよくアメリカや日本の巨大文化が固有文化を食い荒らして行く過程と思うきらいがある。こういう「文化帝国主義」に対する恐ろしさは人々に‘文化のグロバール化の中で私たちは文化アイデンティティを探さ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紋切り型の返事をするようにしたし、これは次の宣言文でも現われる. ― 今日グロバール化という名前で進行されている各種貿易協定は文化を商品で眺めて貿易の対象だけで思っている。画一的な経済論理と利潤論理の中で文化の多様性の増進と文化のアイデンティティ問題は論議から除かれたし、各国が自国の固有文化を保存、発展させる仕事はもっと難しくなった。韓国の文化アイデンティティを保存、発展させて世界文化の多様性に寄与することは韓国政府の義務だ。(世界文化機構のための連帯回の出帆宣言文の中で、2002.5.7) ― 果して文化のグロバール化は、各国が彼らの固有した文化を保存して発展させることを難しくする、「力の論理」を持った存在だろう? 文化のグロバール化の中で私たちは文化アイデンティティを探すことができなかったら巨大文化に食い荒らされてしまうはずだろう? 現在の「韓流」現象は私たちが文化アイデンティティを探したから可能だったことだろう?上の質問に対する私の返事は‘いいえ’である。文化のグロバール化がいつも正しいとか悪いと言うことはできないが、 私は概して正しいと思う。 しかし実際に多い人々が文化のグロバール化を否定的に見ていることが事実だ。フランスの文化批評家であるギ・ルマンは自分の著書『開かれた世界と文化創造』という本でアメリカ文化を象徴するマクドナルド、マッキントッシュとプランス語で世界を意味する「ル・モンド(Le monde )」の結合語である「マク・モンド(Mc monde)」という新造語を出した。 これは現在を個別性と多様性を無視したまま画一的にアメリカ的考え方を強いられる「マク・モンド」の文化帝国主義時代に規定したことであった。ここで注目して見る点は、文化のグロバール化を否定的に思う人々は基本的に文化のグロバール化にどんな意図や目的があると思うというのだ。 彼らが共通的に信じている文化のグロバール化の目的は、まさに、‘相対的に影響力の強い文化が弱い文化を従属させて勢力を広げて行くこと’だ。こんな立場なら彼らの立場が理解できたりする。しかし彼らの信頼とは違い、文化のグロバール化そのものには特別な目的がないと思う。グロバール化に対する不安感の中でまだ地球上には多様な文化が共存していることがまさにその証拠だ。 大部分の人々はグロバール化を単純に地方共同体と国家を世界の舞台で遠く引いて行く力と思うが、これはグロバール化が持っている結果論的な側面の一つでむしろその反対の效果を生んだりする。 西洋文化の侵犯に対して自国の固有文化を守ろうとする動きは、グロバール化にそのような目的があってはなくグロバール化の過程の連続であるのみだ。イギリスの社会学者アンソニ・ギドンスもやはり彼の著書『疾走する世界』で, メディア技術による革新の拡散であるグロバール化を経済的だけでなく政治的・技術的・文化的だと主張しながら、単一の過程ではなく複雑な一連の過程で、このような過程たちは矛盾するとか相反する方式で作動していると思った。文化のグロバール化はただ文化的側面で世の中の人々の相互依存的な連結網が増大される現象であることだ。そのものとしてはどんな目的を持って作用すると思うことができない。 それなら国々で起きる他の文化に対する対処の動きをどのように理解できるか? 人々は文化のグロバール化に対処する方案に固有文化のアイデンティティを探そうと努力する。多くの学会や団体でこれを研究しているし、地域文化を祭りや特産品を通じて伝えようとする。ところで他の人々に ‘これはほんとに私たちの物です’と堂々と言える純粋な「私たちの物」というのが存在することができるか? 過去から現在に至るまで他の文化の影響を全然受けないでつながった文化はない。過去韓国を見ても中国、日本といつも影響を取り交わしたし、遠くはアラビア商人たちを通じて彼らの文化にも影響を受けた。高麗時代の象眼青磁が中国の技法に我が国の技法を加えて特有の色を作り上げたという事実がよく知られているように。このような文化が長時間つながって土着化を通じて変形を成しながら固有の文化と言われるが、その根源には明らかに他の文化との交流が含まれている。アンソニ・ギドンスもやはり‘伝統が変化に影響を受けないと思えばそれは神話だ’という表現を通じて純粋な私たちの物と全面的に他人の物を区別しやすくないことを指摘した。このような現象は特に文化的側面でもっと目立つ。このごろの「韓流」現象も同じである。「韓流」を通じて伝わる文化コンテンツは大部分がドラマ・映画・音楽のような部分である。この中で韓国固有のものだと言えることがいくつやあるか? 韓国のドラマは創始期に日本ドラマのストーリーラインを模倣したという指摘をたくさん受けたし、映画はたとえイム・グォンテク監督が韓国的素材を土台にした『西便制』『酔画仙』などの作品で国際映画祭で受賞したと言っても、海外に普及されることは大部分有名な俳優たちを先に立たせた娯楽を主とする映画が主類である。音楽的側面でも海外ファンが好むことは韓国の『アリラン』ではない最新アイドル音楽である。私たちが誇らしく思う「韓流」の中でも実際真正な韓国の物は探してみにくいというのだ。どんな人々は‘私たちが伝えた大衆文化コンテンツたちが私たちの伝統的なものではないと言っても、その中に含まれた韓国的な情緒や儒教文化的同質性が「韓流」の伝播に大きい影響を及ぼした’と主張するが、調査された結果によれば実際はそうではない。忠南大学校社会研究所のソン・ビョンウ、ヤン・ウンギョン教授の研究によれば、中国内に韓国ドラマが人気あるのは韓国的情緒と儒教文化という同質性のためと言うより、韓国ドラマが持っているストーリーラインとエピソードに起因したというのだ。韓国ドラマに対する視聴所感を取り交わす中国のインターネットサイト「ktv202.xilubbs.com」と中国中央放送(cctv)視聴者掲示板の1年間の文を分析したこの研究では、特に中国人たちが韓国ドラマの中で映る家父長的な家族の姿を見ながら、韓国が中国の儒教文化に影響を受けたにもかかわらずむしろ中国よりもっと強く儒教文化を固守しているという点に驚いたという事実を見せてくれる。 このような点に映して見ると、ある文化が他の文化に影響を及ぼして受け入れられることはその文化のアイデンティティを通じて訴えるのではないということが分かる。ここで文化のグロバール化の役割が現われる。前述のとおり文化のグロバール化は文化的側面で世の中の人々の相互依存的な連結網が増大される現象である。文化のグロバール化を通じて増大された連結網によって私たちは他の文化を理解して受け入れることができるいわゆる「文化的リテラシー(literacy)」を持つようになって、これが他の文化をもっと易しく受容することができるきっかけになるのである。もちろん文化のグロバール化を通じる文化的リテラシーの普及も重要だが、個別文化が他の文化に伝える時、普遍性を持つように変容されることも重要である。 村上春樹の小説が全世界的に人気あるのが人々が日本文化を憧れたためではなく、春樹の小説がどの国人が読んでも自分がいる所のように感じられる普遍性を持ったからだというコラムを読んだ事がある。一方、韓国作家たちの小説は特有の韓国的色彩を翻訳しにくて作品性にもかかわらず全世界的に読ませる作品がほとんどない。このように各文化は普遍性を持つように変容して交流されて、これを通じて育てられた文化的リテラシーはまた新しい文化を受容する根本になって、各文化はこの基盤を土台で文化を発展させて行くということが窮極的な文化のグロバール化と言える。このように主張すれば、ハリウッドの映画と日本アニメみたいな巨大文化はその力によって普遍性を排除して他の文化を食い荒らして行くと聞き返す人もいるだろう。これは現代社会で最大の影響力を発揮する経済論理に文化も脱することができないということを見せてくれる。お金になるのに敢えて他の文化に合わせてくれる必要がないというのである。過去にアメリカと日本の文化が韓国に無分別に進出したことに比べて、今日はそうではないということはやはり、この経済的な側面の影響だと思う。しかし全地球が共感できる文化的土台が文化のグロバール化によって作られるということは非常に肯定的だと考える。文化というのはそのものだけでは確かな境界を作るのが大変である。私たちが憧れたアメリカと日本の文化ということもやはり私たちの文化、周辺国の文化とのまわりから境界されて区分されるのである。文化のグロバール化は過去からその影響に対して多くの論議があって来たし、それが正しいなのか正しくないなのかに対しても多様な意見があった。不幸にも過去のような純粋な文化交流は今日の経済論理によって消えたし、巨大文化が各文化を従属させて行くことのように見えたりする。しかし肯定的でも否定的でも私たちが思う現象が全て文化のグロバール化の過程の一部であり、文化のグロバール化の志向する地点はまさに文化的リテラシーの普及による文化発展という点で見ると、文化のグロバール化は確かに正しいのである。-参考文献ソン・ビョンウ、ヤン・ウンギョン.2002.「韓国大衆文化の現住所とグローバル化方案」イ・ゾンハ.2005.「世界化時代の文化画一化批判と反比版」キム・ゾンス.2008.「文化生産のグローバル化による新しい文化政策パラダイムの模索」イ・ソンヨン.2006.「グローバル時代の海外文化受容」
    인문/어학| 2011.06.23| 4페이지| 2,500원| 조회(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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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일 문자메시지 특징 비교
    한·일 문자메시지 커뮤니케이션 비교목차1. 서론2. 일본의 문자메시지 체계3. 일본의 문자메시지의 특징3.1. 구어적 표현3.2. 문어적 특성의 활용4. 한국 문자메시지와의 비교5. 결론주제어: 한·일 문자메시지, 통신언어, 문자메시지 커뮤니케이션1. 서론이 조사는 최근 중요한 의사소통의 수단으로서 자리 잡은 문자메시지의 커뮤니케이션이 가지고 있는 특징 중, 특히 일본의 문자메시지가 가지고 있는 특징을 알아보고 한국의 문자메시지와 비교해 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휴대전화 메시지 커뮤니케이션은 종종 ‘문자 회화’, ‘메일 회화’라고 말해질 만큼, 우리의 일상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의사소통의 수단이 되었고, 젊은이들에게는 이를 통한 의사소통이 평상시처럼 이야기 하고 있다는 의식이 강하다. 그런데 문자메시지 커뮤니케이션은 그 구성이 문어체를 기초로 하고 있기 때문에, 대면 회화에서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이 사용된다. 또한 문어체가 가지고 있는 규범을 이용해 기존의 문어체와는 또 다른 특징들도 찾아 볼 수 있다.이번 조사에서는 일본의 문자메시지가 가지고 있는 특징을 음성적 특징을 보완하는 구어적 표현의 측면과, 문어체인 것을 활용한 문어적 특성의 두 가지 측면에서 알아본 후, 한국의 문자메시지와 어떤 점이 다른지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2. 일본의 문자메시지 체계우리나라에서는 통신사와 상관없이 보내는 사람이 요금을 부담하고 아무에게나 메시지를 전송하는 것이 가능하다. 반면 일본에서는 통신사가 같은 경우에만 메시지 전송이 가능하며 요금도 쌍방부담의 형식이다. 그런데 일본의 휴대전화번호는 모두 090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번호만으로는 통신사를 알 수가 없기 때문에, 휴대전화 번호를 이용한 메시지 이외에 단말기 별로 메일 주소를 만들어서 사용한다. 통신사 별로 NTT도코모는 ~@docomo.ne.jp, 소프트뱅크는 ~@softbank.ne.jp, auKDDI는 ~@ezweb.ne.jp의 형식의 메일 주소를 사용한다. 따라서 일본에서는 한국의 문자메시지와 유사한 개념으로 携?メ?ル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본 조사에서는 일본의 携?メ?ル를 한국의 문자메시지와 같은 개념으로 보고 조사하였다.3. 일본의 문자메시지의 특징3.1. 구어적 표현문자메시지는 그 구성이 분명 문자언어이기 때문에 전달 할 수 없는 음성정보인 프로미넌스), 억양, 말과 말사이의 간격, 강조 등이나 시각정보인 몸짓이나 얼굴 표정들을 직접 말을 하듯이 표현함으로써 보완하는 표현을 구어적 표현이라고 한다.① 종조사의 다양한 활용「バイトがんばってね」「?り散?だよ」「川原もおいでよ。待ってるよ」)위의 예문에서 ね와 よ 같은 종조사의 쓰임이 보여지는 데 이것은 실제 언어생활에서 사용되는 다양한 종조사를 통해 문자만으로는 표현 할 수 없는 감정을 표현하였다. 예문의 ね는 가벼운 다짐의 뜻을 지니며, よ는 상대에게 힘들었던 상태를 알리는 뜻을 지닌 종조사이다.② 조사의 생략「ご飯食べてく」「ユニフォ?ムもらえてよかったね」위의 예문에서 ご飯과 ユニフォ?ム 다음에 와야 할 격조사 を가 생략되었다. 이것은 실제 언어생활에서는 글을 쓰는 것과 같이 문장의 모든 형식을 갖추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나타나는 표현형식이다.③ 체언으로 끝나는 형태「しかも傘?れて最?」「今?業中」「愛深まった感じ」)체언으로 끝나는 형태 역시 실제 언어생활에서 글쓰는 것과 같은 정형성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나타나는 표현형식이다.④ 축약형, 변형「がんば!」「あんがと!」「おつかれ!」실제 언어생활에서 사용하는 구어체의 경우, 여러 가지 상황에 맞닥뜨려 발생하는 실수가 전후 발화 상황에서 그대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실제 언어생활에서 일어날 수 있는 실수나 표현상의 변화가 굳어진 것들이 메시지에서 드러난다.⑤ 음조표현「難しい日程だねぇ─」음조표현은 각 개인마다 가지고 있는 언어 습관, 상황에 따른 감정표현을 대체하는 표현방식이다.⑥ 의성어, 의태어글자로는 감정을 표현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기 때문에 이를 대체하는 의성어와 의태어의 표현이 많이 보여진다.⑦ 와카모노 코토바「今って?食?るでしょ?」「まじ、疲れた」「あけおめです。ことよろです。」)문어체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특징이 정형성이고, 하나의 완전한 문장을 써야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는데 와카모노 코토바의 사용은 젊은이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어휘, 표현법을 그대로 가져와 문자메시지에서 사용한 것이다.⑧ 유아어, 경비어, 고어, 방언유아어, 경비어, 고어, 방언 모두 일상 언어생활에서의 다양한 표현법에 속하지만, 문어체에서는 잘 사용되지 않는 표현법이다. 하지만 문어체에서는 잘 사용되지 않는 표현법이다. 하지만 문자메시지에서는 이 표현들을 자연스럽게 사용함으로써 일상언어와의 차이를 줄이고 있다.⑨ 감동사, 응답사감동사나 응답사는 일상 언어생활에서 다양한 표정이나 몸짓 등 비언어적인 정보들을 보완해주는 표현이다.⑩ 이이요도미(言いよどみ)), 이이사시(言いさし))일상 언어에서 말과 말 사이에 집어 넣는 표현이나, 말끝을 흐리고도 완성되는 표현은 문어체에는 원래 나타나지 않으나, 이를 그대로 표현함으로써 실제 말을 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강조한다.3.2. 문어적 특성의 활용휴대전화 메시지가 문자언어인 점을 이용한 표현을 문어적 특성의 활용이라고 한다. 특히 구두점을 생략하거나, 다양한 그림기호의 사용 등 종래의 문어체의 규범으로부터의 일탈이 현저한 것이 특징이다.① 가타가나의 사용「チョ─つまんね~」「?スギダよ」가타가나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용법인 강조의 용법을 활용한 표현으로 어떠한 감정의 상태를 강조할 때 사용함으로써 문자언어의 단점을 보완한 표현이다. 위의 예문에서 チョ─, スギダ의 경우 하찮고, 떫은 정도가 강한 것을 가타가나를 통해 표현한 것으로, 실제 언어생활에서는 프로미넌스나 강조등을 통해서 드러나는 표현이다.② 로마자·외국어 사용, 서양만화의 기호 사용문어체가 가지는 형식적인 측면을 탈피한 표현으로, 같은 표현이라도 구어체로 표현할 수 없는 재미있는 효과가 가능한 표현 방법이다.③ 구두점의 생략, 그림기호의 다양한 사용구두점은 문어체의 중요한 형식 중 하나인데, 메시지에서는 구두점을 생략하는 대신에 단순한 공백이나, 그림기호 등을 사용해서 이를 대신한다. 특히 그림기호는 문자로 표현하기 힘든 다양한 감정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수단이다.4. 한국 문자메시지와의 비교일본의 携?メ?ル가 가지고 있는 특징을 한국의 문자메시지에서도 대부분 찾아 볼 수 있다. 이것은 빠르고 쉽게 대화하려는 젊은 층들의 언어습관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한·일 대학생들이 문자메시지를 이용하는 목적에 관한 조사)에서 '급한 용무는 아니지만 전할 말이 있을 때‘라는 응답이 한국 67.8%, 일본 42%로 가장 높은 응답율을 보였다. 이처럼 문자메시지를 사용하는 계층은 이미 문자메시지를 대화의 연장선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하지만 한국의 문자메시지는 일본의 携?メ?ル에 비하여 분량의 제약이 더 크다. 한국의 문자메시지 하나로 전달할 수 있는 분량은 80bytes로 이는 한글 약 40자에 해당한다. 따라서 띄어쓰기의 생략이나 소리 나는 대로 쓰는 식의 표현을 통해 분량을 줄이려는 노력이 일본의 메시지에 비해 더 자주 나타난다.표본을 구하기 힘들어, 본인의 문자메시지 내용을 확인해 본 결과, ‘음’, ‘슴’, ‘임’등의 명사형태(체언)로 대화를 끝내는 형태가 자주 보였고, 긴 내용의 경우 띄어쓰기를 거의 하지 않는 모습이 발견되었다. 또한 일본의 문자메시지에 비해 주어의 생략이 두드러졌다. 한국의 문자메시지가 갖는 가장 큰 특징 중, 웃음의 표현이 있다. ‘ㅋㅋ’, ‘ㅎㅎ’와 같이 한국의 문자메시지에서는 웃음의 표현을 웃음 소리를 이용하여 나타내고 있다. 반면 일본에서는 ‘웃다’라는 뜻을 지닌 글자를 이용해 (笑)로 표현한다.
    인문/어학| 2011.06.23| 3페이지| 2,000원| 조회(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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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일(在日)가수 박보(朴保)의 노래 분석 - 상이군인의 노래 (일본어)
    民族的浮き沈みが多かったユダヤ人たちの離散を意味する単語であるディアスポラ。しかしこのごろには故国を去って生きている人々の数も相当なのみならず、その形態も多様だからこのディアスポラを拡大解釈するのが一般的である。カヒフトエルェリアン(Khachig Tölölian)はディアスポラを‘超国家的な瞬間に現われる典型的な共同’と広く規定しながら移住民、難民、亡命者、少数民族共同体のような多様な形態の超国家的共同体を全部にディアスポラ含ませた。在日朝鮮人社会は日帝強占領期という特殊な歴史的脈絡の中で強制的に故郷を晒せて去らせて‘日本に定着するようになったコリアンディアスポラである。しかし在日朝鮮人社会に対する私たちの認識は実に歴史的脈絡とはかけ離れていることが事実である。ワールドカップが開かれた去年、ブラジルと北朝鮮の競技で北朝鮮の主戦攻撃手チョン・デセは涙した。当時今更話題になったが、人々はその涙の複雑な意味が分かろうとするより、単純なゴシップとして受け入れた。 彼が涙した理由は何だろう?時代が変わったが、 彼らに対する差別と苦痛は続くようにする。実際に2002年9月17日から2003年1月27日間の約五ヶ月ぐらいの期間に発生した在日朝鮮に対する脅威事件の中で確認されたのが319件というのだけ見てもいまだに彼らは社会の弱者に間違いない。彼ら自らの権益のためのさまざまな活動たちは社会多様な方面で起きたが、その中文学、音楽などの文化的分野での活動たちは人々にもっと易しく近寄る役目を遂行した。金城一紀の小説『GO』のように在日朝鮮人として生きて行く姿をそのまま見せてくれようとしたりしたし、新井英一の歌「淸河への道」のように自分の根を探す過程を歌で作ったりした。今度の調査では在日朝鮮人たちが文化的活動を通じて何を伝えようとしたのかを、在日歌手である朴保の歌、「傷痍軍人の歌」の歌詞の意味と背景の分析を通じて調べようとした。「在日朝鮮人慰安婦ソン・シンドの闘い」という副題が付いたあるドキュメンタリーを見たことがある。『オレの心は負けてない』というタイトルのドキュメンタリーであったが、たとえ裁判では負けたといえどもオレの心は負けなかったというソン・シンドの10年間の闘いを扱ったのであった。内容自体も悲しかったが、ドキュメンタリーのエンディングとともに流れる歌は確かにバンドの伴奏に合わるで哭の音みたいでもあって個人の感情を極大化させるような感じの歌であった。朴保という在日歌手の「傷痍軍人の歌」歌という曲であった。ドキュメンタリーでは韓国語の歌詞だったが原曲は日本語になった歌詞であった。歌に対する分析の前に歌手に対して調べた。朴保、彼は1955年、日本山梨県甲府市で韓国人のお父さんと日本人のお母さんの間で次男に生まれた。1977年に広瀬友剛という名前でデビューしたが、 韓国歌手ソン・チャンシクの「ウェブルロ」を日本語と歌うために韓国を出入りしながら自分の根が韓国の大邱という事実を悟った後‘朴保’に改名した。以後、パンソリとソウル、レゲエ、ロックを合したパワフルな音楽を創出することで‘アジアのボップ・マリ’と呼ばれた。1983年単身でアメリカへ行ってバンド活動をしている途中、1992年日本に帰って来た後兄さんと一緒に‘朴保バンド’を結成して活動していた。彼が「傷痍軍人の歌」でして伝えたかったことは何だったろうか? 歌はこのように始める。[子供のころのお祭りだった。彼らを見たのは白い着物に松葉杖、アコーディオンの音。ある者は手をうばわれ足を取られて、ある者は両目失って生きるしるべもない]時代的に朴保自分が1955年生まれであることから見て戦争を直接に経験した世代ではないだろう。それでも彼は戦争で負傷して帰って来た傷痍軍人を祭りで目撃することで歌を始める。彼は戦争を経験しない世代のことは明らかであるが、在日朝鮮人が発生するようになった最大の理由が戦争であった。1920年代日本は韓国で安っぽい労動力を日本に持ちこもうと積極的な求人活動をしたし、植民政策に疲弊された朝鮮人たちは貧乏を避けて日本に渡って働き口を求め始めた。このように徐徐に始まった日本移住は1939年から始まった強制徴集で加速化になったし、その結果1938年に約80万人であった日本内朝鮮人数が1945年解放頃には2百万人に近くなった。日本が急に敗亡して、大勢の朝鮮人たちが故郷に帰ったが、日本政府が本国に持って帰ることができる財産を極度に制限したし、故国が南北で分かれて政治的理念で混乱したから日本残留を決めた人も約65万人に達した。 日本に居残った人々は自ら団体を結成して祖国がまた一つになれば故郷に帰ると決心したが、朝鮮戦争(1950‾1953)まで起こると彼らは祖国分断が現実なのを悟るようになるちの形成で一番重要な役割をしたことは第二次世界大戦と朝鮮戦争という二度の大きい戦争であったし、朴保は歌の始めから戦争を話している。それなら手と足を失った人々、 両目失った人々は単純に戦争の惨状を意味することではないだろう。歌のタイトルでもあった傷痍軍人は戦争で負傷した人々を意味する。これはすなわち彼らが戦争のまた他の被害者というのを言うのに、歌の中で負傷した人々はすぐ在日朝鮮人たちを意味するに間違いない。二度の大きい戦争によって在日朝鮮人たちが形成されたし、その結果残ったことは傷だけだったのだ。特に二つの目を失って頼る所がないということは韓国にも、北朝鮮にも頼ることができない現実を反映したのである。歌は続く。[何の保障も残されず、情けのかけらもない。ただ年老いて死に絶える。忘れさられてく]在日朝鮮人1世代は日本の収奪と同化政策の中で民族的アイデンティティを失わないために努力した。その結果日本社会で多くの差別と逼迫を受けたが、反対に韓国や北朝鮮からの人道的支援さえもらうことができなかった。彼らの立場で残っている情けのかけらさえないと感じられたはずだ。それほど忘れて、歳月が経って2世代、3世代を迎えたが、状況は変わったのがない。[誰のために死んだのか? 大義名分何ゆえにどこへ行っても知らん顔、誰に聞いてもわからない。]戦争が終わった後、彼らに残ったことは何だったろうか? 在日3世であるイ・ブングオンは写真作家として在日朝鮮人1世代たちが世の中に存在する間、在日の歴史を残すために1世代を取材した記録を集めて本を出した。取材内容の中でハン・ソンドンさんはこのように回答した。‘家族、兄弟もお互いに分けられて争った。すべて死んだ。残ったことは死体と廃墟だけだった。’このように戦争の中で彼らは殺さなければならない理由も死ななければならない理由も分からなかったまま加害者と同時に被害者に残った。 1世代らは結局、[異国の地に葬られ人としてうかばれたか、霊は眠れずさまよい今も泣いている。][戦争はまだ終わっていないと隣に座るお前に言う。使い古された言葉だと白けてお前は俺に言う。]ここで朴保は戦争はまだ終わらなかったとこの歌の核心を話す。彼らの親が経験した苦難はまだ終わらないで今までつながっているというのだ。しかしこの問題を歴史と別個で見る人々はもう 古された言葉だと答えるだけだ。[だけだ終わっていないのさ。オモニの涙が分るかよ、アボジの歩いた長い道が。]彼はもう一度強調する。特に彼はここでお母さんとお父さんを、韓国語の音で言いながら強調する。二度の戦争は終わっても、残された彼らの生の桎梏は続いているからだ。しかしオモニが流した涙の意味と、アボジが歩いた道が分かるにはもう時間が過ぎた。[爺さんは俺に言ってた。てめえの尻拭いもできないで何が国際貢献PKO。]もう1世代たちは多くの時間が過ぎながら大変な現実を受け入れてそこに順応して生きて来るようになった。歌を通じて人々にこの事実を伝えようとする彼にお爺さんが言うように、小さな力で何かを果たして見るにはあまりにも多い時間が経ったと、既存世代たちが言うのである。[一緒に戦争に行った仲間たちと、みんなと、みんなと一緒にしておくれと、爺さんは俺に言ってた。しゃがれた、しゃがれた声で振り絞るの声が忘れられないよ。]解放以後日本残留を決めた人々は直ちに「在日本朝鮮人連盟」を組み合わせて朝鮮人の帰国を助ける一方、民族学校を建てて子たちに朝鮮語を教え始めた。彼らは皆一緒に故国に帰る日を待ったが、朝鮮戦争以後南と北に分けられると在日の中でも政治的、理念的に割れるようになったし、どんな方にも属することができない状況がなってしまうのである。[戦争はまだ終わってないよ。おふくろが、おふくろが俺に言ってた。そっちじゃ、そっちじゃないよ。そっちいっちゃだめだよ。戦争はまだ終わってないよ。]もう一度朴保は歌を通じて戦争は終わらなかったということを話す。文字のどおり戦争を意味するのではない、戦争を通じて残された在日朝鮮人たちが日本社会の中で差別を受けて、どの集団にも属することができないのに自らのアイデンティティを探して生きて行くために戦争を絶えずしているというのである。お母さんの世代はそっちは言ってはいけないと言いながら結局は果たすことができないと言う。しかし彼は終わりにもう一度戦争はまだ終わらなかったと歌いながら、続いて自分の歌を通じて日本社会と韓国社会、そして在日社会で彼らの存在を知らせようとするのである。従軍慰安婦だったソン・シンドの生を話したドキュメンタリーのエンディング曲であるが、この曲は単純に従軍慰安婦の問題だけではなく在日朝鮮人全体が経験している差別と苦痛の問題が今も続いているという事実を忘れずに積極的に知らせることをある社会の文化的産物であり、その社会を理解す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してくれる通路と言う。朴保の歌は在日朝鮮人たちが持っている考えが反映されたことで、 同時に彼らの考えを作って行く役割も遂行するであろう。日本の中で南と北を皆一緒にしながら生きる彼らにこの歌は彼らのアイデンティティを思い起してくれる。シェイクスピアが言ったように、バラにバラという名前が付かなくても人々はその香としてバラを覚えるであろう。彼らが日本社会でどんな名前と呼ばれても過去を忘れずに未来に向けて進もうというその心、香りだけは忘れないことを朴保はこの歌で伝えようとしたのに間違いない。▶ 參考文獻ユ・ヨンミン、2009、ディアスポラ音楽とアイデンティティ;在日朝鮮人の音楽東京新聞、2003.2.6カン・ゼオン、2000、在日韓国・朝鮮人-歴史と展望イ・ブングオン、2009、在日同胞1世、記憶の向こうキム・ファンぎ、2006、在日ディアスポラ文学朴保公式サイト、 http://www.lanote.jp/pakpoe/【歌詞】「傷痍軍人の歌」- 朴保子供のころのお祭りだった彼らを見たのは白い着物に松葉杖、アコーディオンの音ある者は手をうばわれ足を取られてある者は両目失って生きるしるべもない★傷痍軍人、従軍慰安婦、松代大本営何の保障も残されず情けのかけらもないただ年老いて死に絶える忘れさられてく誰のために死んだのか大義名分何ゆえにどこへ行っても知らん顔誰に聞いてもわからない★くり返し×2異国の地に葬られ人としてうかばれたか霊は眠れずさまよい今も泣いている一握りの権力者一億二千の魂と暗闇天井のしかかるどこへも逃げられない★くり返しWounded soldier,Comfort woman,Matsushiro War bomb Shelter戦争はまだ終わっていないと隣に座るお前に言う使い古された言葉だと白けてお前は俺に言うだけど、だけど現実は戦争はまだ終わっていないのさオモニの涙が分るかよアボジの歩いた長い道が爺さんは俺に言ってたてめえの尻拭いもできないで何が国際貢献PKO一緒に戦争に行った仲間たちとみんなと、みんなと一緒にしておくれと爺さんは俺に言ってたしゃがれた、しゃがれた声で振り絞るの声が忘れられないよ戦争はまだ終わってないよおふくろが、おふくろが俺に言ってたそっちじゃ、そっちじゃないよそっちいっちゃだないよ
    인문/어학| 2011.06.23| 7페이지| 2,500원| 조회(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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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아미의 忠度(타다노리) 감상문
    世阿彌의 「忠度」 감상문이전에 접했던 「井筒」가 伊勢物語를 전거로 하여 창작한 작품이라면, 이번의 「忠度」는 忠度라는 한 인물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작품인 만큼, 감상과 더불어 忠度라는 인물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고 싶었다. 수업시간에서 접한 源氏와 平氏의 일화에서 분명 平忠度는 주류가 되는 인물은 아니었다. 무가로써 이름을 떨쳤던 두 가문의 이야기의 주인공이 아니었던 그에게 世阿彌가 집중했던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실제로 검색사이트에서 忠度를 검색해보니 그에 대한 역사적인 사실이나 관련된 能작품에 대해서 별다른 자료들이 없었다. 일본 검색사이트에서도 한두 줄의 간략한 정보밖에는 찾을 수가 없었고, 그마저도 ‘문·무에 능했던 장수’ 라는 단순한 정보가 전부였다.그러나 수업시간에 접한 忠度는 전장에서 손자뻘의 장수의 지휘를 받았던 것으로 보아 결코 무에 능한 장수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戰功에 대한 특별한 언급도 없었던 그가 무에 능했다는 평을 받는 것은 아마도 당시에 큰 세력이었던 源氏와 平氏가 아무래도 무가를 대표했던 가문이기 때문에 忠度 역시 무인으로서의 능력을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世阿彌는 왜 忠度를 자신의 작품의 주인공으로 삼았던 것일까. 世阿彌는 분명 足利義?의 절대적 후원을 받아 번영을 누리긴 하였지만, 그의 인생의 후반기를 유배지에서 보냈기 때문에 그 인생이 극명히 대조를 이룰 만큼 역경도 많았던 인물이다. 미천한 어머니 밑에서 아버지도 일찍 여의고 외로운 인생에서 내면적으로 침잠했던 忠度의 입장에서는, 한때나마 좋은 시절도 있었던 世阿彌를 부러워 할만도 하지만 世阿彌는 그런 忠度의 신세를 자신의 그것과 유사하게 여겨 그를 작품위로 올려서 위로한 듯 하다. 아마도 忠度가 오랫동안 살아 歌道를 걸었다거나, 혹은 平氏의 세상이 되어 그의 작품의 ?人知らず로 실리지 않고 그의 이름으로 실렸더라면 아마도 그는 주목받지 않았을 것이다.작품을 읽으면서 가장 눈에 들어왔던 것은 前場의 前シテ가 ワキ인 행각승을 대하는 태도이다. 대개 前場에서 다른 모습으로 화하여 등장한 前シテ가 後場에서 ワキ에 의해 구제의 길로 인도되는 형식이 일반적인 夢幻能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前シテ는 ワキ와 그 무리를 계속해서 비난하고 있다. 그것도 한번이 아니라, 어부가 산에 가는 이유를 모르는 것에 대해 한번, 벚나무를 앞에 두고 잠자리를 찾는 것에 무교양을 나무라며 두 번, 忠度의 묘표를 두고 그 주인에게 조문을 하지 않는 것에 세 번이나 비난하고 있다. ワキ가 이후에 염불을 외어 성불을 기원하자 前シテ의 태도가 바뀌기는 하였지만, 아무래도 그의 태도는 다른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과는 사뭇 다르다.ワキ는 작품 첫머리에 등장하면서 자신을, 俊成를 가까이서 모시다가 출가하여 여기저기 수행을 위해 돌아다닌다고 소개하고 있다. 俊成가 당대 최고의 문장가로 이름을 날렸던 점을 미루어 볼 때 그를 가까이서 모셨다 함은, 그 역시 文을 하던 자임을 의미할 것이다. 그런데 그 일을 그만두고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는 것은 文의 길, 즉 歌道를 버린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歌道라는 것은 생전에 忠度가 그리도 가고 싶었던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 가고 싶었던 그 길을 버린 자와, 그 길을 가지 못하고 죽어서 이승을 떠도는 자의 묘한 대비는 과연 작가인 世阿彌가 의도 했던 것일까? 속세를 떠나 출가했다지만, 자신이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던 그 길을 스스로 떠난 ワキ를 작품 속에서 세 번이나 비난한 前シテ의 입장이 이해가 되기도 한다. 다른 작품속의 ワキ와는 달리 이 작품의 ワキ가 단순한 승려가 아니라 俊成를 가까이에서 모시다 출가한 자라고 특정한 것은 아무래도 작가인 世阿彌가 忠度의 망집을 더욱 극대화 시키기 위한 장치가 아니었나 싶다.後場에 등장하는 後シテ의 태도 역시 자신의 처지와는 다르게 너무나도 당당하여 당황스럽다. 이전에 접한 바 있는 「井筒」의 경우 シテ는 業平를 그리워 해 그의 유품을 몸에 걸친 채로 영혼의 합일을 바라는 춤을 통해 잠시나마 지복의 경지를 맛보게 되는데, 여기서 ワキ는 그녀의 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녀를 위해 성불을 빌어주는 역할을 한다. 그렇다고 해서 シテ가 ワキ에게 직접적으로 무언가를 요구하거나 원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忠度」의 後シテ는 어딘지 모르게 당당하다. ワキ에게 자신의 작품이 ?人知らず로 되어 실명이 빠진 것이 ‘망집 중에 으뜸’이니까 定家에게 그 잘못된 사항을 고쳐줄 것을 전해달라고 노골적으로 요구한다. 이 부분 역시 ワキ와 シテ의 처지가 너무나도 극명하게 대비되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平氏가문에서 환영받지 못한 인물로 살아간 것에 대한 원망, 그 원망과 외로움을 이겨내기 위해 매진했던 歌道를 끝까지 갈 수 없었던 현실, 만약에 平氏가 집권했다면 자신의 작품이 실명으로 실릴 수 있었을 상황 등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나는 그렇게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던 것을, 너는 스스로 박차고 나오지 않았느냐? 그러니 네가 나의 못다 이룬 한을 풀어주어야겠다’ 라고 シテ가 외치는 듯 하다. 작가인 世阿彌가 쓴 能이론서인 「風姿花?」의 발문에서 ‘예능인이라 하여 다 예도의 사람이 아니다. 도를 아는 자만이 예도의 사람이라 할 수 있다.’라고 한 것처럼, シテ의 입장에서 본 ワキ는 歌道를 알지 못하는 자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 입장에서라면 シテ가 가지고 있는 지나치게 당당한 태도가 이해될 만 하다. 하지만 그런 シテ의 바람은 이뤄질 수 없는 것이기에 그가 더 안타깝게 느껴지고, 한편으로는 勅撰集에 작품이 올라간 歌人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처럼 보인다.
    독후감/창작| 2011.06.23| 2페이지| 1,500원| 조회(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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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아미의 井筒(이즈쓰) 감상문
    世阿彌의 「井筒」 감상문이전에 일본에 여행을 갔을 때 에도-도쿄박물관에 들른 적이 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일본 에도시대의 여러 가지 생활상을 연출해 놓은 전시품이었는데, 그 중 네모난 무대 위에서 가면을 쓰고 연기를 하고 있는 모습을 미니어쳐로 만들어 놓은 것을 본적이 있다. 그때는 일본의 연극이라고 하면 가부키만을 떠올렸기 때문에 그냥 그런가 보다 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그 무대에 소나무가 있었던 걸로 보아 아마 ‘노(能)’의 무대였던 것 같다.하지만 수업 중에 영상을 통해 본 노의 장면은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천천히 늘려 말하는 대사와 로봇이 움직이는 듯이 딱딱 끊어 움직이는 배우들의 연기, 음산한 느낌이 들게 하는 코러스 등 지루한 장면들의 연속이었다. 노가 정식으로 공연되면 하루에 다섯 곡이 상연되었다고 하는데, 과연 당시의 사람들은 어떤 점에서 노를 좋아했던 것일까?노의 여러 작품 중 우아하고 유현한 전개를 잘 보여주는 카즈라모노(?物)의 하나인 이즈쓰(井筒)는, 제아미의 대표작으로서 지금까지도 큰 사랑을 받아오고 있다고 한다. 제아미가 당시의 쇼군인 아시카가 요시미츠(足利義?)의 비호아래 절대의 우위와 번영을 누렸다고는 하나, 일본인들에게 익숙한 이세모노가타리(伊勢物語)의 내용을 기반으로 하여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이런 작품을 창작한 것을 보면, 그의 작품은 당시 사람들에게 충분히 사랑받을 만한 매력이 있었을 것이다.아마도 그 매력의 기반은 작품에 깔려 있는 ‘한’의 정서가 아닐까 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성의 한은 좋은 이야깃거리였고 많은 문학작품에서 주제로 사용되었다. 이즈쓰의 기반이 된 이세모노가타리의 23단은 어릴 적 우물가에서 결혼을 약속한 남녀가 성인이 되어 결혼을 하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워지게 되자 남자가 외도를 저지르게 되는데 남자는 아무런 기색이 없는 여자를 오히려 의심하지만 그러한 자신을 걱정해 주는 아내의 모습을 보고 감동하여 다시 돌아온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즈쓰의 여주인공인 아리쓰네노 무스메(有常娘)는 남편인 나리히라(業平)가 다시 돌아와서 행복한 것이 아닌, 당시의 한과 미련으로 죽어서도 성불하지 못하는 여자의 모습으로 묘사된다.자신이 아닌 다른 여자를 만나러 가는 남자를 진심으로 배웅하고 걱정해 줄 수 있는 여자가 실로 몇 명이나 있을까? 아마 아리쓰네노 무스메도 외도하는 나리히라를 보면서 단순한 걱정만이 아닌 질투와 한, 원망, 애증 등의 복합적인 감정을 속으로 가졌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죽어서도 이상이라고 할 수 있는 극락에 가지 못하고 나리히라와의 추억이 깃든 장소를 떠돌며 그를 추억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모습은 전장(前場)에서 주인공이 마을 여인으로 가장하여 나와 성불을 위한 서원을 빌면서도, 원망과 한에서 벗어나지 못해 ‘어떤 소리를 통해 깨어나야 할까’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드러나고 있다. 후장(後場)에서 마을 여인으로 가장한 아리쓰네노 무스메의 정체를 안 행각승은 꿈 속에서 그녀를 불러내고, 나리히라를 그리워한 아리쓰네노 무스메는 그의 유품을 몸에 걸친 채로 영혼의 합일을 바라는 춤을 통해 잠시나마 지복의 경지를 맛보게 된다. 하지만 모든 것은 일시적이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원래대로 돌아오게 된다. 작품이 끝이 나면서 아리쓰네노 무스메는, 자신의 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나리히라와 다시 만나게 해줄 또 다른 구원자를 기다리면서 구천을 다시 떠돌게 된다. 아마도 작품이 상연되면서 노가쿠시(能?師)들의 연기와 전체적인 한의 분위기가 조화를 이루면서 관객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독후감/창작| 2011.06.23| 1페이지| 1,000원| 조회(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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