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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육철학 및 교육사
    교육철학 및 교육사 리포트과거제도와 교육조선시대 과거제도와 한국교육에 관한 연구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일 어 교 육 전 공오 하 얀目 次Ⅰ. 서론조선시대의 과거제도Ⅱ. 본론科擧의 성격 및 목적조선시대 科擧制의 정비와 운영3. 科擧의 종류科擧시험 과목과거급제자의 진출Ⅲ. 맺음말韓國 科擧制의 요약 및 제언Ⅳ. 참고문헌Ⅰ. 서론조선시대의 과거제도과거제도는 10세기 이후 거의 천여 년 동안이나 실시되어 오던 한국의 전통적인 관리선발방법이다. 조선시대의 과거제도는 유교를 국가의 지도이념이자 실천윤리로 삼아 중앙집권적 관료체계를 확립하기 위하여 주로 유교경전을 통해 관리를 선발하는 제도였다. 과거제도의 도입은 고려시대 광종 9년(서기 958년)에 되었지만 조선시대에 이르러 본격 시행되었으며 원칙적으로 천민과 서얼을 제외한 모든 공민은 과거에 응시할 수 있었다. 능력주의에 따라 관리를 등용하고자 했던 조선시대의 과거제는 양인이나 양민뿐만 아니라 양반들에게 조차도 국가의 높은 관리가 되기 위한 필수 관문이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과거에 합격하는 것을 필생의 업으로 여겼다.본 레포트에서는 조선시대 과거제의 전반적인 모습과 과거제가 우리 교육에 미친 영향에 대해 알아보도록 한다.Ⅱ. 본론科擧의 성격 및 목적고려와 조선시대에는 국가의 모든 인민과 재산이 국왕에게 소속되는 전제왕권의 시대였다. 또한 고려시대를 지배하던 불교는 고려 말 그 한계에 부딪치며 쇠퇴하였고, 조선의 건국과 함께 주자학이 시대의 ‘이데올로기’로 대두되어 이 시기에는 경학의 가르침을 따르는 전형적인 주자학적 사대부를 양성하고 선발하기 위하여 경학의 진흥이 ‘교육’이라는 개념을 뛰어넘는 시대적인 목표가 되었던 때 이기도 했다.따라서 과거제도는 이러한 주자학적 사대부를 양성하고 선발된 우수한 인재들을 중앙에 두어 전제군주의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방법으로 자리잡게 되었다.그렇기에 조선시대의 과거에는 무과나 잡과보다 문과가 더욱 중요시 되는 특성이 나타나기도 한다.또한, 태조는 고려말에 부패했던 좌주문생제와 국자감시를 없애고관학은 국가의 이데올로기인 주자학 보급의 근거지일 뿐만 아니라 신왕조에 맞는 새로운 인재를 양성하는 요람이 되게 된다. 이것은 국가의 교육정책이 무엇이었는지를 말해주는 중요한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이렇듯 조선시대의 과거제 정비는 보다 능력 있는 인재를 중앙에 두기 위한 국가의 개혁이었다.또한 이는 과거 급제자를 많이 배출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서 가문의 성쇠가 결정된다는 말이므로 양반들 스스로도 공정한 경쟁을 해야만 했다.조선왕조는 외면적으로 보면 전제왕권이 확립되어 있는 국가였지만 내면적으로 보면 과거에 급제한 양반들이 정권을 좌우하는 양반관료제 국가였으며 국왕은 이 양반관료제 국가의 수장에 지나지 않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바로 이 점이 조선시대 관료제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으며 과거도 이러한 특성에 맞도록 운영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科擧의 종류조선시대 과거에는 문과, 무과, 잡과와 문과의 예비시험인 생원시와 진사시가 있었다.문•무과와 생원•진사시는 양반들이 많이 보는 시험이었고 잡과는 중인들이 많이 보던 시험이었다. 조선시대 과거의 종류문과문과는 정규시험인 식년시와 특별시험인 각종 별시로 구분되어 있었다.( 1) 식년시식년시는 문과뿐만 아니라 모든 과거시험의 정규시험으로서 3년에 한번씩 실시되었다. 식년이란, 십이지중 자,묘,오,유년을 말하는데 3년마다 돌아오는 바로 이 때에 실시되어 식년시라 한다.문과의 식년시는 크게 대과와 소과로 나누어지며 초급 문관 시험인 소과에는 생원과(生員科)와 진사과(進士科)가 있었고 이를 생진과(生進科)라고 통칭하기도 하였다.이 시험에는 초시(初試)와 복시(覆試)가 있었고 여기에 합격한 자를 생원, 진사라 불렀다.중급 문관 시험인 대과에는 진사와 생원, 하급 관리, 성균관 유생들이 응시하였으며, 초시와 복시를 실시하여 급제자를 선발한 후에 전시(殿試)에서 그 등급을 결정하였다.즉, 문과의 경우에는 그 단계가 생진초시-생진복시-문과초시-문과복시-문과전시로 나누어져 총 5단계를 차례로 거쳐야만 문과급제가 되는 것이 원칙시 향시와 한성시로 나뉘어지고 초시에 합격한 자를 2차 시험인, 복시에서 재선발하여 생원과 진사 각각 100명씩 합격시켰다고 한다.또한 생원, 진사시에 합격한 사람은 입격이라 불리웠고 그들에게는 성균관에 들어가 일정 기간동안 공부한 다음 문과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주었다.무과원래 고려 시대에는 숭문언무(崇文堰武:글을 존중하고 무술을 쓰지 않는다)라고 하여 지방의 반독립적인 무적(武的) 향리 세력을 억누르고 중앙 집권적인 문치주의를 확립하기 위해 무과를 실시하지 않았다.하지만 조선에 들어서는 각 지방의 절제사(節制使)들이 가지고 있었던 사병(私兵)을 혁파하고 중앙의 군제를 강화하는 한편, 양반 관료제를 균형적으로 운영하는데 필요한 제도적인 기반을 만들기 위하여 무과가 도입 실시되었다.그리하여 무과의 과거시험은 태종 2년 1월에 최초로 개설되어 문과시험과 함께 식년시와 각종 별시로 실시되었다.무과에는, 문과와는 다르게 소과가 없었으며, 초시와 복시, 전시의 3단계로 되어 있었다.선발방법은, 문과와 같이. 초시와 복시를 실시하여 합격자를 결정하고 전시에서 그 등급을 정하였다.무과의 시취인원은 먼저, 식년시에서는 28인의 정원을 대체로 준수하였고 별시에서는 항상 식년시보다 많은 인원을 선발하였다.특히 세조 때에는(1455-1468) 북방의 여진정벌 등과 같은 전쟁에 많은 군인이 필요하게 되어 백성들의 회유책으로 별시 문과를 많이 실시하였고 무과 응시자 3천여 명 중 무려 1813명을 급제시키기도 했다고 한다. 이러한 무과의 남발은 조선후기 무과가 만과(萬科)라는 이름으로 불리게되는 시작이 되었다고 하며, 만과는 무과의 급제 인원을 천인들에 이르기까지 많이 뽑는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조선 후기로 갈수록 그 정도가 심하였다고 한다.잡과특수 기술과 관련된 관리 등용 시험인 잡과에는 역과(譯科), 의과(醫科), 음양과(陰陽科), 율과(律科) 등의 4과가 있었으며, 초시와 복시 두 단계로 구성 되어 있었다.조선 초기에는 율과 대신에 서리(書吏)를 뽑는 이과(吏科)가 중장에는 주로 시, 부, 표, 종장에서는 시무책을 시험 보게 되어있었다.먼저 초장에서는 경서의 뜻을 말로 물어보는 구술시험과 경서의 내용 중 일부를 논문식으로 답안지를 써서 내는 제술 시험이 있었다.초장에서 합격한 자는 중장에서 부 1편과 표, 전 중에서 1편을 주로 시험 보았다고 한다.중장이 끝나면 총 33명이 과거에 합격하게 되며, 마지막 전시에서 대책·표·전·잠·송·제·존·논·부·명 10과목 중 한 과목으로 과거급제의 등급을 매겼다.이처럼 과거시험은 시험 과목이 과중하고 내용도 어려워 어릴 때부터 소학, 사서삼경, 시·부·책 등을 20여 년간 공부하여 생원진사는 보통 35세, 문과는 평균 37,8세나 되어야 합격할 수 있었다고 한다.무과무과의 고시 과목은 크게 Hyperlink "http://100.empas.com/dicsearch/pentry.html?i=240873" 강서와 무예 두 종류가 있었다.그 중 강서는 복시에만 있는 시험으로 사서오경 중의 하나, Hyperlink "http://100.empas.com/dicsearch/pentry.html?i=240348" 무경칠서 중의 하나, 그리고 ≪자치통감≫·≪역대병요≫·≪장감 박의≫·≪소학≫· 중의 하나를 각각 희망대로 선택하여 ≪경국대전≫과 함께 고강하였다.무예는 초시 복시 전시 모두에서 시험 보여야 했는데조선 전기는 Hyperlink "http://100.empas.com/dicsearch/pentry.html?i=236156" 목전·철전·편전· Hyperlink "http://100.empas.com/dicsearch/pentry.html?i=236536" 기사·격구의 6기가 있었으나, 후기에는 Hyperlink "http://100.empas.com/dicsearch/pentry.html?i=241140" 유엽전, 과녁· Hyperlink "http://100.empas.com/dicsearch/pentry.html?i=236220" 조총·편추를 신설하고, 기사를 기추로 변경하는 한편 격구고 관직에 없었던 자라면 종 7품직에 진출할 수 있었다.그리고, 생원• 진사시는 원칙적으로 문과에 응시하기 위한 예비시험이지 관리등용을 목표로 하는 시험이 아니었기 때문에 관직을 주게 되어있지 않았으나 보통 생원 또는 진사인 자는 낮은 관직을 받거나 고을의 유지로서 넉넉히 살아가는 모습이 여러 연구에서 밝혀졌다고 한다.이것으로 미루어보아 고급관리가 되려면 반드시 과거, 특히 문과에 급제해야 했음을 알 수 있다.Ⅲ. 맺음말韓國 科擧制의 요약 및 제언이상의 내용을 토대로 조선의 과거제도는 다음과 정리해 볼 수 있다.첫째, 한국의 과거제도는 전제왕권을 확립하기 위한 수단으로 운영되었다.왕은 국왕은 양반귀족들을 끊임없이 자기의 직속 관료로 삼으려 하였고 또한 주자학적인 우수한 인재를 선발하여 중앙에 두어 왕을 보좌하도록 하였다.조선시대 관료나 관리의 임용과 해임은 전적으로 국왕의 권한으로 되어있었으며 관료들이 국왕에게 충성을 약속하고 그 명령에 복종하는 대가로 왕은 가신들에게 행정권한을 위임하는 형태를 취했다.둘째, 한국의 과거제도는 능력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관료나 관리를 선발하는 데에는 혈통과 능력이 기준이 될 수 있는데 혈통주의는 기존의 기득권층의 특권을 계속해서 보장해주는 폐쇄적인 관리선발 방법인 반면 능력주의는 능력있는 인재를 확보하는 개방적인 관리 선발 방법이다.또한 이는 양반층 사이에만 국한되는 내용이 아니었으므로 국왕은 양반층의 기득권을 보장해주면서도 관료임명에 있어서는 비양반 자유민과 공개경쟁을 통하여 관리를 선발 하는 것으로 관료사회의 능력있는 새로운 관료들을 부단히 충원하여 국가의 청신한 기풍을 불러 일으키고자 하였다.또한 여기에는 철저한 시험주의가 적용되어 아무리 기세가 등등한 양반이라 해도 일정한 시험을 치루지 않고서는 고급관료가 될 수 없도록 제한하였다.다시 말해 조선시대는 신분사회라는 한계가 분명 존재하고 있었지만 그 기저에는 생동하는 능력주의가 깔려 있었다고 할 수 있다.셋째, 한국의 과거제도는 문치주의와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9.
    교육학| 2010.05.12| 14페이지| 1,000원| 조회(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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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시대의 과거제도 PPT 파일
    과거제도와 교육 발표자 : 교육철학 및 교육사Contents 교육철학 및 교육사 2 科擧의 성격 및 목적 조선시대 科擧制의 정비와 운영 科擧의 종류 시험 과목 韓國 科擧制의 요약 및 결론 과거급제자의 진출• 과거는 科目에 의하여 관리를 선발하는 관리등용시험 으로써 10 세기 이후 거의 천여 년 동안 실시되어 오던 한국의 전통적인 관리선발 방법 科擧의 성격 및 목적 과거제도 • • 시험을 통하여 개인의 능력 을 기준으로 관리를 선발 → 가문의 혈통을 기준으로 관리를 선발하는 세습제를 개혁하는데 가장 적합한 인재선발 방법이었다 . • 과거제도는 개방성 , 엄밀성을 수반함 ( 천민을 제외한 양인이상의 양민이면 누구나 ) • 武科보다는 文科가 중시되었음 • 과거제도는 무력으로 천하를 통일한 전제군주가 문치주의를 강화하기 위하여 실시한 인재선발 방법이었다고 할 수 있다 . 성 격 • 전제왕권을 강화하기 위하여 실시된 국가시험제도 • 양반층 사이의 공정한 경쟁 ( 양반관료제 국가 ) 목 적“ 문 • 무 양과는 偏廢해서는 안 된다 . 안으로 국학을 세우고 밖으로 향교를 세워 생도를 늘리고 열심히 가르쳐서 인재를 교육해야 한다 . 과거는 본래 그 나라를 위하여 인재를 뽑는 것인데 座主門生은 사사로이 은혜를 베풀어 심히 그 법을 만든 뜻에 맞지 않는다 . 지금부터 중앙에는 성균정록소가 , 지방에는 각 도의 안렴사가 재학 중에 있는 경학에 밝고 행실 이 바른 자를 뽑아 그 나이 , 본관 , 삼대와 통한 바 경서를 일일이 적어서 성균관장이소에 올린다 . 거기서 통한바 경서를 시범보여 4 서 5 경과 ‘ 통감 ’ 이상에 통한 자는 그 통달한 경서의 많고 적음 과 알아낸 사리의 정밀함과 소략함으로 그 높고 낮은 등급을 정하여 제 1 장 입격자로 하여 예조 에 보낸다 . 예조에서는 표문 ∙장주∙고부를 시험하여 중장 ( 中場 ) 으로 하고 , 책문을 시험하여 종장 ( 終場 ) 으로 한다 . 삼장에 완전히 합격한 33 인을 이조에 보내어 재주를 헤아려 탁용 ( 擢用 ) 하게 하고 , 감시실록 권 1, 태조 원년 7 월 정미조 조선시대 科擧制의 정비와 운영 정책발의 배경 태조 이성계의 즉위교서 • 첫째 , 문 / 무 양과를 균형적으로 운영한다 . • 둘째 , 고려의 과거제의 유풍인 좌주문생제와 국자감시를 없앤다 . • 셋째 , 관학 ( 官學 ) 을 육성하여 과거제와 유기적으로 연결시킨다 . → 문무양반체제를 지탱하는 제도적 기반으로서의 관료 공급원이 확보되게 됨 → 좌주문생제와 국자감시의 제도적 철폐로 과거에 공정을 기하고자 함 → 관학은 국가의 이데올로기인 주자학 보급의 근거지이자 새 왕조에 필요한 새 인재를 양성하는 요람으로 역할 하게 됨 요 약. 科擧의 종류 : 문과 • 무과 • 잡과 • 생원 • 진사시 문 과 식 년 시 과거의 정규시험 3 년마다 한 번씩 실시 ( 식년 : 子 , 卯 , 午 , 酉년 ) 시험단계 - 총 5 단계로 구성 소 과 : 생진초시 - 생진복시 대 과 : 초시 – 복시 – 전시 초시 : 향 시 ( 지방 -240 인 ) 한성시 ( 중앙 -40 인 ) 관 시 ( 성균관 -50 인 ) 복시 : 33 인 선발 전시 : 복시 합격자 33 명을 갑 , 을 , 병 3 단계로 나누어 등급결정 별 시 국가의 경사가 있거나 성균관 유생의 사기를 북돋아 주기 위해 실시했던 비 정기 시험 별시의 종류 : 증광시 , 별시 , 외방별시 , 알성시 , 정시 , 춘당대시 , 절일제 , 황감제 , 전강 , 도기과 , 반제 , 관학유생응제 등 .. 양반들을 회유하기 위한 특별시험 응시자격을 엄격히 묻지 않음 1 회 평균 14.1 인을 선발. 科擧의 종류 : 문과 • 무과 • 잡과 • 생원 • 진사시 생원 • 진사시 • 문과의 소과로 , 문과 과거시험을 보기 위한 예비시험 • 초시와 복시로 구분 • 절차 및 선발방법 : 1 차 시험 ‘ 초시 ’ – 한성시 ( 중앙 , 200 인 선발 ) 향 시 ( 지방 , 500 인 선발 ) 2 차 시험 ‘ 복시 ’ – 초시 합격자 중 각 100 인 선발 ( 예조에서 실시 ) • 시취인원 : 생원 100 명 , 진사성균관에서 수학한 뒤 문과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을 취득할 수 있었다 .고려의 과거제 : 문치주의의 확립을 위해 무과를 실시하지 않음 ( 숭문언무 崇文偃武 ) 조선의 과거제 정비 : 태종 2 년 (1402) 1 월 , 무과 최초 개설 무과의 과거시험 과거의 종류 : 문과 • 무과 • 잡과 • 생원 • 진사시 식 년 시 • 초시 , 복시 , 전시 3 단계로 구성 • 선발방법은 문과와 동일 • 시취인원 : 28 명 ( 정원 ) 별 시 • 문과와 같은 각종 별시 설행 • 식년시보다 많은 인원을 선발 • 만과 ( 萬科 ) : 잦은 별시를 통해 군사를 보충하고자 함 무 과고려의 과거제 : 문치주의의 확립을 위해 무과를 실시하지 않음 ( 숭문언무 崇文偃武 ) 조선의 과거제 정비 : 태종 2 년 (1402) 1 월 , 무과 최초 개설 무과의 과거시험 과거의 종류 : 문과 • 무과 • 잡과 • 생원 • 진사시 식 년 시 • 초시 , 복시 , 전시 3 단계로 구성 • 선발방법은 문과와 동일 • 시취인원 : 28 명 ( 정원 ) 별 시 • 문과와 같은 각종 별시 설행 • 식년시보다 많은 인원을 선발 • 만과 ( 萬科 ) : 잦은 별시를 통해 군사를 보충하고자 함 무 과• 잡과의 종류 : 역과 ( 譯科 ), 의과 ( 醫科 ), 음양과 ( 陰陽科 ), 율과 ( 律科 ) • 잡과의 과거시험은 초시와 복시 두 단계로만 구성 • 식년시 , 증광시 , 대증광시에만 실시됨 ( 태종 2 년에 첫 실시 ) • 응시자격 : 잡학생도와 7 품 이하의 전 • 현직 기술관 • 시취인원 : 식 년 시 – 46 인 증 광 시 – 46 인 대증광시 – 역과 27 인 , 의과 11 인 , 음약과 21 인 , 율과 11 인 ( 총 70 인 ) 과거의 종류 : 문과 • 무과 • 잡과 • 생원 • 진사시 잡 과초시 • 조선 초기 : 사서의 ( 대학 • 논어 • 맹자 • 중용의 ) 1 편 및 오경의 ( 시경 • 서경 • 역경 • 예기 • 춘추 ) 1 편 • 정조 이후 : 오경의 중 춘추를 제외한 사경만 보게 됨 •두 작성 ( 성편 ) 하지 못하면 실격 • 채점 방법 : ( 거수자 ~ 삼하 ) 10 등급으로 나누어 채점 삼하 ( 三下 ) 이상 합격 , 그 외 次上 • 次中 • 次下 • 更 • 外는 불합격 시험과목 ( 식년시 기준 ) 생원시의 시험과목 복시 • 초시의 이듬해에 실시 • ‘ 소학 ’ 과 ‘ 가례 ’ 를 임문고강 ( 강서시험 , 책을 펴놓고 읽는 것 ) 하게 하였다 .초시 • 부 1 편 , 시 1 편 ( 잠이나 명을 출제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 • 시는 18 구 , 부는 30 구를 채우는 것이 보통이었음 • 채점 방법 : ( 거수자 ~ 삼하 ) 10 등급으로 나누어 채점 삼하 ( 三下 ) 이상 합격 , 그 외 次上 • 次中 • 次下 • 更 • 外는 불합격 시험과목 ( 식년시 기준 ) 진사시의 시험과목 복시 • 초시의 이듬해에 실시 • 초시와 동일하게 실시 • 시와 부에서 각각 50 인씩 선발 • 합격 발표까지 6 개월이 걸림초 • 복시 • 초장 : 경학시험 ( 강경과 제술시험 ) • 중장 : 시 • 부 • 송 • 잠 • 명 • 표 • 전 중 2 편의 제술시험 • 종장 : 책문시험 • 채점 방법 : ( 상상 ~3 하 ) 9 등급으로 나누어 채점 초 • 복시를 막론하고 3 장의 성적을 통산하여 채점 • 33 인을 선발 시험과목 ( 식년시 기준 ) 문과 ( 대과 ) 시험과목 전시 • 문과의 최종시험 • 초 · 중 · 종장 구별 없이 대책 · 표 · 전 · 잠 · 송 · 제 ·· 존 · 논 · 부 · 명 10 과목 중 1 편 ( 대책이 주로 출제 ) 으로 등급을 결정• 강서 와 무예 두 종류의 시험 실시 • 강서 : 4 서 5 경 중 택 1, 무경칠서 중 택 1, 통감 • 병요 • 장감 • 박의 • 소학 중 택 1, 경국대전을 고강해야 했다 . • 무예 : 조선전기 - 목전 • 철전 • 편전 • 기사 • 격구 등 6 기 조선후기 - 유엽전 • 과녁 • 편추 신설 / 격구 폐지 임진왜란 이후 – 조총 과목 신설 시험과목 ( 식년시 기준 ) 무 과 시험과목 초시 • 상서 190 인 선발 복시 • 식년 봄에 강서와 무예로 고시 ( 초시 합격자만 응시가능 ) • 복시에서 28 인 선발 전시 • 복시 합격자 28 인을 다시 무예로 고시하여 등급을 정함 • 갑과 3 인 , 을과 5 인 , 병과 20 인 급제• 초시와 복시만 있고 , 전시는 없었음 • 시험과목 : 각 과의 전공서적과 경서 및 경국대전 • 각 전공에 따른 상세 시험 과목 및 방법 ( 도표 참조 ) 시험과목 ( 식년시 기준 ) 잡 과 시험과목시험과목 ( 식년시 기준 ) 잡 과 시험과목문과급제자의 70% 는 정품 문관직에 , 30% 는 종품 문관직에 임명됨 • 장원급제자 (1 명 ) : 정 6 품직 또는 가 4 계 • 갑과 (2 명 ) : 정 7 품직 또는 가 3 계 • 을과 (7 명 ) : 정 8 품계 또는 가 2 계 • 병과 (23 명 ) : 정 9 품계 또는 가 1 계 과거급제자의 진출 문 과 • 갑과 (3 명 ) : 종 7 품계 또는 가 3 계 • 을과 (5 명 ) : 종 8 품계 또는 가 2 계 • 병과 (20 명 ) : 종 9 품계 또는 가 1 계 무 과 • 1 등 : 종 7 품직 또는 가 1 계 • 2 등 : 종 8 품계 또는 가 1 계 • 3 등 : 종 9 품계 또는 가 1 계 잡 과한국의 과거제도는 전제왕권을 확립하기 위한 수단 으로 운영되었다 . 韓國 科擧制의 요약 및 결론 1 한국의 과거제도는 능력주의 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 2 한국의 과거제도는 문치주의 와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 3 한국의 과거제도는 신분사회의 제약 을 받고 있었다 . 4 한국의 과거시험은 관학의 학교시험과 일직선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 5韓國 科擧制의 요약 및 결론 1 과거제도는 조선시대의 정치 • 사회 • 학문 • 문화 • 제도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 2 과거제도는 한국인의 학구열 • 교육열을 자극하는 데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 3 조선초기 과거제 정책은 시대의 이데올로기와 교육정책이 합의되었음을 시사한다 .Thank You ! 경청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how}
    교육학| 2010.05.12| 19페이지| 2,000원| 조회(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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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시대의 과거제도 PPT 발표문
    먼저, 과거제도는 10세기 이후 거의 천여 년 동안이나 실시되어 오던 한국의 전통적인 관리 선발방법입니다.조선시대의 과거제도는 유교를 국가의 지도이념이자 실천윤리로 삼아 중앙집권적 관료체계를 확립하기 위하여주로 유교경전을 통해 관리를 선발하는 제도로, 도입은 고려시대 광종 9년(서기 958년)에 되었지만 조선시대에 이르러 본격 시행되었습니다.원칙적으로 천민과 서얼을 제외한 모든 공민은 과거에 응시할 수 있었으며 능력주의에 따라 관리를 등용하고자 했던 조선시대의 과거제는 개방성을 수반하는 성격을 띠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양인이나 양민뿐만 아니라 양반들조차도 국가의 높은 관리가 되려면 반드시 이 국가고시를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과거에 합격하는 것을 필생의 업으로 여겼습니다.고려와 조선시대에는 국가의 모든 인민과 재산이 국왕에게 소속되는 전제왕권의 시대였습니다. 또한 고려시대를 지배하던 불교는 고려 말 그 한계에 부딪치며 쇠퇴하였고, 조선의 건국과 함께 주자학이 시대의 이데올로기로 대두되어 이 시기에는 경학의 가르침을 따르는 전형적인 주자학적 사대부를 양성하고 선발하기 위해 경학의 진흥이 ‘교육’이라는 개념을 뛰어넘어 시대적인 목표가 되었습니다.따라서 과거제도는 이러한 주자학적 사대부를 양성하고 선발된 우수한 인재들을 중앙에 두어 전제군주의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방법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조선시대의 과거에는 무과나 잡과보다 문과가 더욱 중요시 되는 특성이 나타나기도 합니다.여기, 양반들 간의 공정한 경쟁이라고 하는 것은, 조금 뒤에 나올 태조 이성계의 즉위교서 내용을 보시면 이해하시기 수월 하실텐데요,이성계는 고려말에 부패했던 좌주문생제와 국자감시를 없애고 과거를 통해 양반들이 공정한 경쟁을 하도록 발의하였습니다.왕은 과거에 급제한 양반들을 국왕의 아래에 두어 왕권을 강화하고자 하였고,양반들은 그들의 일정한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과거를 보았습니다.또 과거급제자를 많이 배출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서 양반가문의 성쇠가 결정되었는데 3년마다 돌아오는 바로 이 때에 실시되어 식년시라 합니다.문과의 식년시는 크게 대과와 소과로 나누어지며 초급 문관 시험인 소과에는 생원과(生員科)와 진사과(進士科)가 있었고 이를 생진과(生進科)라고 통칭하기도 하였습니다.이 시험에는 초시(初試)와 복시(覆試)가 있었고 여기에 합격한 자를 생원, 진사라 불렀습니다.중급 문관 시험인 대과에는 진사와 생원, 하급 관리, 성균관 유생들이 응시하였으며, 초시와 복시를 실시하여 급제자를 선발한 후에 전시(殿試)에서 그 등급을 결정하였습니다.즉, 문과의 경우에는 그 단계가 생진초시-생진복시-문과초시-문과복시-문과전시로 나누어져 총 5단계를 차례로 거쳐야만 문과급제가 되는 것이 원칙이었습니다.초시는 다시 향시, 한성시, 전시로 나눌 수 있는데 향시는 지방에서 보던 문과의 첫 시험이고 8도에서 총 240명을 합격시켰습니다.한성시는 서울에서 보던 초시로 40인을 선발하였고 관시는 성균관에서 실시하던 초시로 50인을 선발했습니다.이렇게 초시 합격자 330여명이 다시 복시를 보고 이 중에 33인만을 문과 급제자로 선발하였습니다.전시는 국왕이 친림하여 보던 과거의 마지막 단계로 복시 합격자 33인을 성적에 따라 갑과 3명, 을과 10명, 병과 20명으로 등급을 나누었습니다. 갑과 3인중 1등을 장원이라 하였고 2등은 방안, 3등을 탐화라고 하였습니다.한편, 문과에 급제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식년시 뿐만 아니라 각종 별시도 있었습니다.별시에는 증광시, 별시, 외방별시, 알성시, 정시, 춘당대시, 절일제, 황감제 등 여러가지가 있었는데보통 나라의 왕이 바뀌거나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에 설행 되었습니다.그러나 사실상 각종 별시는 약 7개월에 한번씩 실시되었다고 합니다.식년시는 3년에 한번씩 실시한 반면, 각종 별시를 자주 실시한 이유는 가문과 신분을 유지하기 위한 양반들의 집요한 요구 때문이었습니다.잘 아시다시피 과거는 관직을 차지하기 위한 유일한 관문이었고 양반들 또한 과거에 합격해야만 관직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또한 양반 자신이 관 쓰지 않는다)라고 하여지방의 반독립적인 무적(武的) 향리 세력을 억누르고중앙 집권적인 문치주의를 확립하기 위해 무과를 실시하지 않았습니다.하지만 조선에 들어서는 각 지방의 절제사(節制使)들이 가지고 있었던 사병(私兵)을 혁파하고 중앙의 군제를 강화하는 한편, 양반 관료제를 균형적으로 운영하는데 필요한 제도적인 기반을 만들기 위하여 무과가 도입 실시되었습니다.그리하여 무과의 과거시험은 태종 2년 1월에 최초로 개설되어 문과시험과 함께 식년시와 각종 별시로 실시되었습니다.무과에는, 문과와는 다르게 소과가 없었으며, 초시와 복시, 전시의 3단계로 되어 있었습니다.선발방법은, 문과와 같이. 초시와 복시를 실시하여 합격자를 결정하고 전시에서 그 등급을 정하였습니다.무과의 시취인원은 먼저, 식년시에서는 28인의 정원을 대체로 준수하였고 별시에서는 항상 식년시보다 많은 인원을 선발하였습니다.특히 세조 때에는(1455-1468) 북방의 여진정벌 등과 같은 전쟁에 많은 군인이 필요하게 되어 백성들의 회유책으로 별시 문과를 많이 실시하였고무과 응시자 3천여 명 중 무려 1813명을 급제시키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무과의 남발은 조선후기 무과가 만과(萬科)라는 이름으로 불리게되는 시작이 되었다고 하며,만과는 무과의 급제 인원을 천인들에 이르기까지 많이 뽑는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조선 후기로 갈수록 그 정도가 심하였다고 합니다.특수 기술과 관련된 관리 등용 시험인 잡과에는 역과(譯科), 의과(醫科), 음양과(陰陽科), 율과(律科) 등의 4과가 있었으며, 초시와 복시 두 단계로 구성 되어 있었습니다.조선 초기에는 율과 대신에 서리(書吏)를 뽑는 이과(吏科)가 있었고잡과는 대체로 그 격이 문과나 무과에 비해서 낮았고 수요가 적었으므로 식년시와 증광시, 대증광시에만 행해졌습니다.시취(試取) 시험인 잡과(雜科)에는 잡학 생도와 7품 이하의 전직 및 현직 기술관들이 응시할 수 있었으며잡학 생도는 소정의 교육 과정을 이수한 다음에 잡학 시험이나 기술관 취재(取材) 시험을 볼 수 경학, 중장에는 주로 시, 부, 표 , 종장에서는 시무책을 시험보게 되어있었습니다.먼저 초장에서는 경서의 뜻을 말로 물어보는 구술시험과 경서의 내용 중 일부를 논문식으로 답안지를 써서내는 제술 시험이 있었습니다.초장에서 합격한 자는 중장에서 부 1편과 표, 전 중에서 1편을 주로 시험 보았다고 합니다.중장이 끝나면 총 33명이 과거에 합격하게 되며, 마지막 전시에서 대책·표·전·잠·송·제··존·논·부·명 10과목 중 한 과목으로 과거급제의 등급을 매겼다고 합니다.이 처럼 과거시험은 시험 과목이 과중하고 내용도 어려워 어릴 때부터 소학, 사서삼경, 시·부·책 등을 20여년간 공부하여 생원진사는 보통 35세, 문과는 평균 37,8세나 되어야 합격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무과의 고시 과목은 크게 Hyperlink "http://100.empas.com/dicsearch/pentry.html?i=240873" 강서와 무예 두 종류가 있었습니다.그 중 강서는 복시에만 있는 시험으로 사서오경 중의 하나, Hyperlink "http://100.empas.com/dicsearch/pentry.html?i=240348" 무경칠서 중의 하나,그리고 ≪자치통감≫·≪역대병요≫·≪장감 박의≫·≪소학≫· 중의 하나를 각각 희망대로 선택하여 ≪경국대전≫과 함께 고강하였습니다.무예는 초시 복시 전시 모두에서 시험 보여야 했는데조선 전기는 Hyperlink "http://100.empas.com/dicsearch/pentry.html?i=236156" 목전·철전·편전)· Hyperlink "http://100.empas.com/dicsearch/pentry.html?i=236536" 기사·격구의 6기가 있었으나, 후기에는 Hyperlink "http://100.empas.com/dicsearch/pentry.html?i=241140" 유엽전, 과녁· Hyperlink "http://100.empas.com/dicsearch/pentry.html?i=236220" 조총·편추)를 신설하고, 기무관직에, 잡과 합격자는 기술관직에 임명되었는데간단히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먼저 문과 급제자들의 70%는 정품 문관직에, 30%는 종품 문관직에 임명되었습니다.그 중 장원 급제자는 가장 좋은 처우를 받게 되었는데, 만약 기존에 관품이 없었다면 종 6품직을 하사받게 되어있었고관품에 있던 자가 장원급제를 했다면 가4계로 승진이 됩니다.무과의 경우에는 장원이 따로 없었고 갑과 급제자들이 가3계로 승진하거나 종 7품계로 진출하게 되어있었습니다.또 잡과의 경우 1등 2등 3등으로 등수를 매겨 과거 급제 이전에 관직에 있었다면 가 1계로 승진할 수 있었고관직에 없었던 자라면 종 7품직에 진출할 수 있었습니다.그리고, 생원 진사시는 원칙적으로 문과에 응시하기 위한 예비시험이지 관리등용을 목표로 하는 시험이 아니었기 때문에생원진사시 합격자에게는 관직을 주게 되어있지 않았습니다.이것으로 미루어보아 고급관리가 되려면 반드시 과거, 특히 문과에 급제해야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이제 발표를 마무리하면서 조선의 과거제도를 다음과 정리해보겠습니다.첫째, 한국의 과거제도는 전제왕권을 확립하기 위한 수단으로 운영되었습니다.왕은 국왕은 양반귀족들을 끊임없이 자기의 직속 관료로 삼으려 하였고또한 주자학적인 우수한 인재를 선발하여 중앙에 두어 왕을 보좌하도록 하였습니다.조선시대 관료나 관리의 임용과 해임은 전적으로 국왕의 권한으로 되어있었으며 관료들이 국왕에게 충성을 약속하고 그 명령에 복종하는 대가로 왕은 가신들에게 행정권한을 위임하는 형태를 취했습니다.둘째, 한국의 과거제도는 능력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었습니다. 관료나 관리를 선발하는 데에는 혈통과 능력이 기준이 될 수 있는데혈통주의는 기존의 기득권층의 특권을 계속해서 보장해주는 폐쇄적인 관리선발 방법인 반면 능력주의는 능력있는 인재를 확보하는 개방적인 관리 선발 방법입니다.또한 이는 양반층 사이에만 국한되는 내용이 아니었으므로 국왕은 양반층의 기득권을 보장해주면서도 관료임명에 있어서는 비양반 자유민과 공개경쟁을 통하여 관리를 선발 하
    교육학| 2010.05.12| 18페이지| 1,000원| 조회(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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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의 일본어 교육과정 - 1차시기 이전
    제1차 교육과정 이전경국대전기 (1985년 이전, 조선시대)• 태종14년, (1414년) 사역원에 왜학을 두어 일본어 역관을 양성토록 함•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일본어 교육이 잠시 단절• 1609년, 기유약조를 통해 국교가 재개된 후 실용 회화중심의 일본어교육 시작학부령기 (1895년 ~ 1911년, 개화기)• 제 1차 학부령기 → 1894년, 갑오개혁에 의해 새로운 법령제정1895년 7월 19일, 소학교령 공포 후 외국어학교, 소학교 등이 설립일본어가 선택과목으로 설치됨• 제 2차 학부령기 → 1906년, 을사보호조약과 함께 통감부가 설치된 후 새로운 개정법령이공포되면서 일본어가 정규과목이 되었음• 제 3차 학부령기 → 1907년, 한일신협약에 의한 차관정치 시작사립학교령 및 각급 학교령이 개정 공포된 후 일본어 교육은 외국어학교의 특수교육이 아닌 소학교의 보통 교육으로 발전하게 됨조선교육령기 (1911년~1945년,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조선교육령’을 기준으로 일본어 교육이 시행된 시기교수요목기 (1945년~1954년, 미군정기)• 미군정청에 의하여 교육관계법령이 발령된 시기• 교수요목에 의해서 교육이 시행된 시기• 이 시기의 법제는 일본어 교육을 포함하고 있지 않음• 1946년 3월 군정청 학무국이 문교부로 개편,• 1946년 9월 1일 문교부에서 교수요목을 발표 (각급학교의 교육과정)일본어 교과교육론 – 교육과정 -
    교육학| 2010.05.12| 1페이지| 1,000원| 조회(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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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의 일본어 교육과정 각 시기별 정리표 및 교육과정 원문
    < 대한민국 일본어 교육과정의 변천 >교수요목기(1945~1954)제1차 교육과정기(1955~1963)제2차 교육과정기(1963~1973)제3차 교육과정기(1973~1982)제4차 교육과정기(1982~1987)8·15 광복 후 미군정청 학무국에서 교수요목을 제정하여 교과서를 편찬하여 쓰던 교수요목시대정부수립과 6·25전쟁이 끝난 후 미국의 진보주의 교육사조에 따라 신교육이 강조된 1955년의 1차 교육과정 개정5·16 군사정변 후 민족주체성과 경제발전이 강조된 1963년의 2차 교육과정 개정학문중심의 교육과정에 따라 산업화 사회에서의 국민의 자질함양과 인간교육을 강조한 1973년의 3차 교육과정 개정경제 제일주의로부터 복지사회와 정의사회의 실현이라는 방향으로 제5공화국의 출범과 함께 실시된 1981년의 4차 교육과정 개정이 시기의 외국어 과목으로는 영어밖에 없었음고등학교 외국어과목에 영어, 독일어, 중국어 과목이 개설되었으나,이 시기 고등학교 외국어과목으로 영어, 독일어, 중국어, 불어, 에스파냐어가 개설1973년, 고등학교 외국어 교과 과정에 제2외국어로 일본어가 신설됨거의 모든 고등학교에서일본어를 가르치게 됨일본어 교육과정은 없었음일본어 교육과정은 없었음(체육고등학교의 일본어 교육)일본어 교육과정은 없었음(특수학교 고등부의 일본어 교육)(실업고등전문학교의 일본어 교육)1973. 02 실업계와 인문계 고등학교 모두에 일본어 과목 개설4차 시기 고등학교 일본어 교육과정 원문 참조위 내용은 교육과정평가원 홈페이지에 개제된 내용에 의거하여 정리하였습니다.1차 시기 (1977.02) > 체육고등학교 외국어과 > 일본어 교육과정 원문(1) 목 표(가) 표준적인 현대 일본어의 기본 어법을 익히게 하여 듣기, 읽기, 말하기, 쓰기의 기초적인 기능을 기른다.(나) 일본인의 생활과 그 나라의 문화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켜, 국제적 협조심과 안목을 기르고, 우리 스스로의 발전에 도움이 되도록 한다.(다) 일본어를 통하여 우리 나라의 문화와 현황에 대한 개략적인 소개를 할 수 있 기① 히라가나, 가다까나를 익혀 쓰기::⑨ 주어진 단어, 관용구, 문형을 사용하여 예문을 만들기, 간단한 편지 쓰기2) 언어 재료(가) 어 휘 : 기본 어휘 3,000어 내외를 점차로 반복 이수하도록 하며 그 밖에, 전문적 기술적 용어 등을 포함하여 200어 이내를 추가 사용 할 수 있다.(나) 소 재 : 소재는 될 수 잇는 대로 우리 나라의 생활 내용에서 많이 선정하도록 한다.(다) 문 형 : 기본적으로 일상 회화에 필요한 간단한 문형을 먼저 가르치고 그 기초에서 출발하여 발전적인 문형을 단계적으로 가르친다.(라) 문법 사항 : 문법은 일본어의 이해력과 표현력을 뒷받침하는 한도 안에서 기본적인 사항을 문장에 따라 귀납적으로 지도한다.지도에 있어서는 다음 사항을 포함한다.① 동사의 활용, ② 형용사와 형용 동사의 활용, ③ 명사와 대명사, ④ 조사의 용법, ⑤ 조동사의 용법과 활용, ⑥ 부 사, ⑦ 연체사, ⑧ 접속사⑨ 경어의 용법, ⑩음 편(3) 지도상의 유의점(가) 내용의 지시에 있어서는 특히 문장의 길이와 복잡성 등을 고려하여 쉬운 것에서 어려운 것으로, 구체적인 것에서 추상적인 것으로의 순서를 지켜야 한다.(나) 초기 단계에서는 구두 훈련을 통한 언어 학습을 중시하며,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문법 용어의 도입을 피하여야 한다.(다) 문법은 이해력과 표현력을 뒷받침하는 한도 안에서 기본적인 사항을 문장에 따라 귀납적으로 지도한다.(라) 정확한 발음과 듣기의 지도를 위하여 시청각 자료를 적절히 이용하도록 한다.(마) 지도에 있어서는 이미 습득한 언어 재료에 의한 반복 수련과 응용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바) 사전의 사용 방법을 지도하여 학생이 자습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 주도록 한다.2차 시기(1979.03) > 특수학교 고등부 > 외국어과 > 일본어 교육과정 원문(1) 목표1) 표준적인 현대 일본어의 기본 어법을 익히게 하여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의 기초적인 기능을 기른다.2) 일상 생활에서 사용되는 기초적인 일본어를 상대방의 구형에 따라 듣활에 관한 내용, 가까운 생활 주변에 관한 내용,자기 또는 제 3자를 간단히 소개할 수 있는 내용, 우리 나라의 문화와 전통 및 사회, 역사, 인물 등에 관한 내용, 일본어의 생활, 문화, 사회, 경제 등에관한 내용과 기타 국제 이해에 도움이 되는 내용, 간단한 편지를 읽고 쓸 수 있는 내용, 국내외 여행 및 관광에 관한 내용(다) 문 형 : 말읽고 말하기를 훈련의 기초 기능으로 삼기 위하여 의문 문형과 응대분형을 중심적으로 가르친다.(라) 문법 사항 : 문법은 일본어의 이해력과 표현력을 뒷받침하는 한도 안에서 기본적인 사항을 문장에 따라 귀납적으로 지도한다. (세부내용 상동)(3) 지도상의 유의점 : 상동2차 시기(1973.02) > 실업고등전문학교 > 외국어과 > 일본어 교육과정 원문지도 목표 :(1) 현대 일본어의 발음과 기본 어법을 익히게 하여, 일상 생활에서 사용하는 쉬운 말과 글을 이해하는 능력과 아울러 간단한 발표력을 기른다.(2) 장차 실업 생활에서 일본어를 유익하게 활용하여, 우리 나라의 경제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 어학적 소양을 기른다.(3) 일본의 문화, 경제 등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켜, 국제적 협조심을 기르는 동시에 우리 스스로에 대한 자각을 다지게 한다.(4) 폭넓은 전문적 지식을 갖추기 위해 자진하여 일본어로 된 자료 및 문헌 등을 연구하는 태도를 기른다.2. 지도내용(1) 언어 기능 : 상동(2) 언어 재료< 어 휘 >상용의 빈도가 높은 일상 상용어 가운데 2,500어 내외를 점차로 반복 사용하도록 하며, 그 밖에 전문적 기술용어로서 300~500어 정도를 추가 사용할 수 있다.< 소 재 >소재는 필수적인 어학 기초 자료 이외에 일본의 사회, 문화, 경제 등을 다룬 자료를 포함하되, 실업 전문 교육의 계별 특수성을 고려하여 실업 및 과학 기술에 관한 내용을 아울러 지도한다.⑦ 신체, 계절, 일기, 행사 또는 기타 생활 주변의 일에 관하여 문답을 할 수 있는 내용⑧ 우리 나라의 사회, 역사, 인물 등에 관한 내용⑩ 현대인의 취미, 오각 자료를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이용하도록 한다.(5) 학습 지도에 있어서는 새로운 단어나 지식의 암기 이해보다 이미 습득한 언어 자료에 의한 반복 수련과 응용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6) 일본어 사전의 사용 방법을 지도하여 학생이 자습할 수 있도록 기틀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7) 실업 전문 교육의 특수성과 전문성을 고려하여 계별 실업 내용에 관한 설명문, 시사문, 서한문 등을 아울러 지도하되 어떠한 부문에만 치우치지 않도록 전체적인 균형을 고려하여야 한다.제3차 교육과정기 (1973.02) > 고등학교 외국어과 일본어 교육과정 원문1. 지도 목표(가) 현대 일본어의 발음과 기본 어법을 익히게 하여 일상 생활에서 사용하는 쉬운 말과 글을 이해하는 능력과 아울러 간단한 발표력을 기른다.(나) 일본의 문화ㆍ경제 등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켜 국제적 협조심을 기르는 동시에 우리 스스로에 대한 자각을 다지게 한다.(다) 장차 실업 생활에서 일본어를 유의하게 활용하며 전문적 지식을 갖추기 위하여 자진하여 일본어로 된 자료 및 문헌을 연구하는 태도를 기른다.2. 지도 내용가. 언어 기능 : 상동나. 언어 재료(1) 어휘 : 기본 어휘 3,000어 내외를 점차로 반복 이수하도록 하며, 그 밖에, 전문적, 기술적 용어등을 포함하여 200어 이내를 추가 사용할 수 있다.(2) 소재 : 소재는 될 수 있는 대로 우리 나라의 생활 내용에서 많이 선정하도록 한다.(가) 간단한 인사 교환을 할 수 있는 내용(나) 구체적인 실물과 그림을 놓고 간단한 문답을 할 수 있는 내용(다) 수업을 중심으로 한 학교 생활에 관한 내용(라) 가족 및 가정 생활에 관한 내용(마) 가까운 생활 주변에 관한 내용(바) 자기 또는 제3자를 간단히 소개할 수 있는 내용(사) 신체, 계절, 일기, 행사 또는 기타 생활 주변의 일에 관하여 문답할 수 있는 내용(아) 우리 나라의 문화와 전통 및 사회, 역사, 인물 등에 관한 내용(자) 일본인의 생활 및 일본의 문화, 사회, 경제 등에 관한 내용과 기타 국제 이해 교육과정 원문가. 목 표일본어 사용 능력을 기르고, 일본인의 문화를 이해시킴으로써 우리 문화 발전에 기여하게 한다.1) 일상 생활과 일반적인 화제에 관한 비교적 쉬운 말을 듣고, 말하고, 읽고, 쓰는 능력을 기른다.2) 일본인의 생활 및 문화에 관하여 폭넓게 이해한다.나. 내 용1) 언어 기능가) 듣기와 말하기⑴ 발음을 익힌다.⑵ 쉬운 말의 내용을 듣고 이해한다.⑶ 인사말 등 간단한 대화를 나눈다.⑷ 잘 아는 소재에 관하여 말한다.나) 읽 기⑴ 카나 문자와 교육 한자를 익혀 쓴다.⑵ 간단한 말을 받아 쓴다.⑶ 구두로 익힌 쉬운 말을 글로 쓴다.⑷ 제한된 문형 및 어휘를 이용하여 간단한 글을 짓는다.⑸ 간단한 우리마을 일본어로 옮긴다.⑹ 학생 주변에 관한 것을 글로 쓴다.2) 언어 재료가) 소 재⑴ 일본인의 생활과 우리 일상 생활 및 문화 전반에 관한 것을 선택하되, 올바른 가치관 형성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한다.ㆍ 학교 생활에 관한 것ㆍ 일상 가정 생활에 관한 것ㆍ 기타 사회 생활 주변에 관한 것⑵ 글의 형식은 대화체, 서술체 등 다양하게 선정하되, 내용 구성에 있어서는 다음 사항에 유의한다.ㆍ 학생들의 흥미, 필요, 지적 수준 등을 고려하여, 학습 동기를 유발할 수 있는 것ㆍ 내용이 정확하고 실용적인 것나) 발 음ㆍ 현대 일본어의 표준 발음으로 한다.다) 어 휘ㆍ [별표 1]의 기본 어휘를 포함하여 사용 빈도가 높은 2,200 내외의 어휘를 선정하여 사용한다.라) 문형ㆍ문법ㆍ 문형ㆍ문법 사항은 사용 빈도와 활용도를 고려하여 기초적인 것으로 한다.다. 지도 및 평가상의 유의점1) 지 도가) 초기 단계에서는 구두 훈련을 통한 언어 학습에 중점을 두고, 가급적 문법 용어의 도입을 피한다.나) 학습한 내용을 활용할 수 있는 단계에까지 반복하여 익히도록 한다.다) 어휘와 글을 자연스러운 문맥 속에서 제시하여 익히도록 한다.라) 문법 위주의 수업 방법을 피한다.마) 직독, 직해의 습관을 기르도록 한다.바) 각종 시청각 자료 및 기구를 충분히 사용하여 학습 효과를 높이력]
    교육학| 2010.05.12| 9페이지| 1,000원| 조회(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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