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고구려/ 발해 유적지를 다녀와서..- 0 0 0 -중국 답사를 하면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고 왔는지 짧게 적어 봅니다. 2006년 6월 26일부터 7월 1일까지(5박6일)기간 동안 심양, 집안, 통화, 백두산, 돈화, 동경성, 연길, 화룡, 용정까지 많은 곳을 다녀왔다.제1일 6월 26일(월)그토록 기다리던 월요일 아침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짐을 챙겨 집을 나섰다. 약속장소로 18명의 연구실 식구들이 하나 둘 모이고 우리는 교수님의 여행 일정을 들으며 청주공항으로 출발했다. 청주공항에 들어서자 점점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공항에서 우리는 서로의 여권사진을 보고 즐거워했다. 수속 절차를 끝내고 청주에서 심양까지 가는 CZ 690편 항공기를 탔다. 중국 항공기라서 승무원들이 중국사람 이였으나 크게 불편한 점은 없었다. 점심때가 되어 우리는 기내식을 맛볼 수 있었다. 기내식은 입에 맞지 않아 거의 먹지 못해 아쉬웠다. 식사를 다 마쳐갈 무렵 항공기는 심양에 도달해 있었다. 1시간 조금 넘게 날아왔는데 심양에 도착했을 때는 시간을 더 벌수 있었다. 한국이 중국보다 1시간 더 빠른 이유에서였다. 심양공항에서 입국 절차를 밟고 심양공항을 빠져나왔다. 심양을 본 나는 개발이 끝나지 않은 개발구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심양에서 우리는 가이드 분을 만나 여행 일정을 안내 받았다. 우리는 바로 버스를 타고 집안으로 이동할 예정 이였다. 가이드 분은 심양에 대해 짧게 설명해 주셨다. 중국에는 56개의 민족이 있는데 1개를 제외하고 55개의 소수민족으로 이루어졌으며 심양은 조선족, 몽골족, 회족, 만주족, 유골족이 있다. 심양은 요령성에 위치하며 2천여 년의 오랜 역사를 지닌 고도이고, 면적은 8.515㎢이고 인구는 356만 명인 도시로 옛 이름은 봉천, 만주어명은 무크덴이다. 또 정치, 경제, 문화, 교통의 중심지이며 중공업도시이다. 나는 5년후 쯤 더 발전 될 심양을 모습을 그리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심양에서 집안까지 5시간이 넘게 소요되었다. 버스로 이동하는 동안 않고는 장군총의 장대함을 설명하기 힘들 정도다. 장군총을 뒤로하고 대략 500미터쯤 떨어진 태왕릉비를 향해갔다.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기리는 호태왕 비에 이르렀을 때는 가슴한곳이 뿌듯했다. 역사교과서에 나온 호태왕 비를 직접 보면서 이제는 타국이 되어버린 이 땅에서 그 당시의 국력과 영토를 규명할 수 있는 소중한 한 자료를 보며 고구려를 다시금 떠올려 본다. 호태왕 비는 서기 414년에 고구려 제20대 장수왕이 그의 아버지인 19대 광개토대왕의 치적을 기러기 위해 세운 기념비이다. 높이 6.39m, 무게 37톤, 각 면의 너비가 1.5m 가량의 큰 규모로 4면에 44행, 1802자의 명문이 새겨져 있다. 중국 관리인들의 철저한 감시 속에서 우리는 태왕릉으로 향했다. 태왕릉은 국내성에서 동쪽으로 4㎞떨어져 있고, 장군총의 네 배가 넘는 크기이며, 높이도 높아 마치 작은 산처럼 보인다. 애석하게 많이 파괴되어 현재 확인 가능한 것은 7층인데, 계단을 쌓은 방법은 장군총과 마찬가지로 잘 다듬어진 긴 네모꼴 돌덩어리를 겹쳐서 쌓아올렸다. 원래의 모습이 손실된 것을 보여 이곳 집안이 우리 영토라면 이렇게까지 방치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오회분 5호묘이다. 1962년에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발굴 정리되었기에 국내에는 비교적 덜 알려져 있다고 한다. 높이는 8m, 무덤 둘레가 약 180m, 벽화의 내용은 7세기의 전형적인 벽화 양식에 따라 청룡 백호 주작 현무의 사신도가 네 벽에 그려져 있었고, 각종 문양들 또한 짜임새 있게 새겨져 있었다. 또한 가이드 분에 의하면 벽화의 내용은 문명 발달에 기여한 신들을 형상화하여 풍부한 설화적 내용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용을 탄 신선이나, 학을 탄 선인 등이 보여주는 다분히 주술적인 느낌, 그것은 태고적 기복신앙이 나 농업을 주업으로 삼았던 당시의 생활모습에서 연유한 것임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우리는 다시 집안으로 와서 점심식사를 했다. 점심식사는 한국에서 가져온 음식들과 함께 먹어야했다. 식사를 마치고 찾 수도였음을 알 수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그것은 마치 북에서 오는 적을 막는 기다란 성곽같이 생겼다고 한다. 국내성 성벽은 고구려 성벽의 한 형식으로 조선시대 말기까지도 그 축조수법이 전해져 내려왔다. 성벽은 북쪽뿐인데 이것도 아파트 건물 사이에 4∼5단 정도 남아 있을 뿐 이어서 빈약한 상태였다. 현지 주민들에 의하면 이러한 성벽들은 광복 때까지만 해도 7∼8미터의 높이로 잘 보존되어 있었다고 하는데, 훗날 주위의 주민들이 가옥을 지으면서 하나 둘 가져가 윗부분은 아예 없어지고 말았다고 하니 어처구니가 없다. 아무튼 오늘 내가 고구려 유적을 답사하면서 느낀 점은 타국이 되어 버린 옛 땅에서 한숨을 쉬는 일뿐 이였다. 타국 땅에 방치되어 있는 유적과 유물들에 대한 대책을 한번 생각해야 한다.제3일 6월 28일(수)새벽기차를 타서 그런지 몸이 많이 피곤했다. 기차는 6인 1실로 비좁았고 중국 특유의 냄새도 나긴했지만 좋은 추억이 되었다. 언제 또 이런 여행을 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기차에서 내려 다시 버스를 타고 백두산으로 향했다. 분단의 아픔만 없었더라면 이리도 먼 길을 돌아오지 않았어도 되었을 것을 우리 민족의 영산 백두산이 멀리서 나마 보일까 싶어 계속 창밖을 내다보았다. 백두산 입구에 도착해서 입장료를 내고 장백산 이라고 적힌 관문을 지나 25㎞를 더 들어가서 백두산 천지까지 오를 수 있는 지프형 차로 바꿔 탔다. 지프는 아찔한 백두산 길은 잘 올라갔다. 천지까지 길을 만들어 운행하는 모습을 보며 중국인들의 사업수안이 꽤나 좋아보였다. 백두산 천지에 도착해 벅차오르는 마음을 가다듬고 우리연구실 식구들 모두 모여 기념사진을 찍었다. 백두산은 백색의 부석이 얹혀 있으므로 마치 흰 머리와 같다 하여 백두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일행이 올라가서 보게 된 백두산은 안개한 점 없는 수려한 모습 이였다. 깎아지른 절벽 아래로 펼쳐진 천지의 장엄함이란 실로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였다. 오늘과 같은 날은 1년 중 3번 있을까 한 날이라며 가유적을 이런 식으로 관리 하고 있었다. 그들은 고구려도 발해국도 자기네들의 역사로 뜯어 고치는 시점에서 왜 이 귀중한 문화유적은 알아보지 못하고 방치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억울한 마음을 진정시키며 성산자 산성으로 향했다. 성산자 산성은 당조시기 발해국의 초기의 성터이다. 성벽은 산의 지세에 따라 흙과 돌로 수축하였는데 둘레의 길이는 2000m이다. 성은 대체로 타원형을 이루고 있으며 동쪽과 서쪽에 각기 성문이 있고 성안에는 거주지, 연병장과 연못이 있다. 상산자 산성은 많이 훼손되어 옛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었다. 산성의 형태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이곳을 마지막으로 오늘 일정은 끝이 났다. 숙소를 찾은 우리일행은 간단히 호텔식 저녁을 먹고 가이드 분을 따라 발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백두산을 갔다 온 터라 많이 피로한 상태였다. 발마사지를 받고 나서 피로감이 씻기는 듯했다.제4일 6월 29일(목)이제는 중국의 생활방식에 적응을 한 듯, 아침 일찍 일어나 조식을 다 먹고 서둘러 나갈 준비를 했다. 우리일행이 오늘 처음 갈 곳은 발해의 서울이었던 상경용천부이다. 오늘의 흑룡강성 영안시 동경성이 그 유적이다. 상경인 동경성은 용천부에 설치된 수도로 돈화 오동성으로부터 300리 떨어져 있었다. 상경은 제3대 문왕(대흥 18년)때인 755년 이곳으로 옮겨 왔으며, 그 후 잠깐 동경 용원부로 가 있은 기간(785∼794)을 제외하고는 나라가 망할 때까지 계속 발해의 수도였으며 170여 년 동안 동방의 큰 도시로 번성하였다. 발해 상경은 오랜 세월을 지나는 동안 많은 변천을 가져왔지만 여기서 근래 수십 년 동안에 옛날 대발해국의 수도였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유적 유물들이 많이 발굴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성터·왕궁 터가 남아있다. 우리일행이 상경용천부에 들어섰을 때 안내지도를 보고 숨이 막혔다. 한국과 일본사이의 동해가 그 지도에선 일본해로 표기되어 있었다. 처음부터 기분이 썩 좋지가 않았다. 성터에 들어갔을 때 발굴이 진행중이였다. 중국정부에선 철저히 이방인을 통제했다. 우오늘 일정을 살펴보았다. 우리는 화룡시 서고성으로 이동해 발해국 5경중 중경현덕부 옛터를 답사하고 3.1만세운동 희생용사 묘소 참배, 윤동주 생가 방문 등의 일정으로 짜여 있었다. 첫 번째로 찾은 곳은 무력으로 독립운동을 하자 했던 대종교 신교들 3기의 무덤 이였다. 우리일행은 견건한 마음으로 참배했다. 3기의 무덤은 왼쪽부터 독립군 서일, 홍암나설, 이대교주 김교헌의 묘였다. 이곳에 있는 그들의 묘는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맨 흙에 비석만 있을 뿐이었다. 빗방울이 떨어져 우리는 버스를 타고 독립군이 청산리 전투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대승과 전과를 올린 청산골 입구의 마을 뒷산에 우뚝 세워진 청산리 대첩기념비로 이동했다. 이 청산리항일대첩기념비는 한국의 독립운동유공자에서 자금을 들여와서 건설하였다. 조선족들이 이 기념비를 지키고 있었다. 이 산골짜리 그리고 연변조선족자치주의 각 골짜기에서 나라를 되찾기 위한 일념으로 일본군과 항일 투쟁의 현장에서 피를 흘렸던 선열들의 명복을 빌어본다. 두만강에서 가까운 용정시는 북간도의 수도로서 조선족이 가장 많이 사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더불어 독립을 위한 저항의 자리가 되었기에, 아직도 강한 우리 민족성도 남아있다고 하였다. 용정시에는 '선구자' 노래가사에 나오는 '한줄기 해란강'과 '일송정 푸른 솔'이 있다. 원래 있던 소나무는 말라죽고 지금 있는 소나무는 조선족 자치정부에서 민족정기를 고취하고자 백두산에서 옮겨 심어 놓은 것이라고 하였다. 용정으로 가다 보면 길 오른쪽의 야산 위에 자그마한 정자가 하나 눈에 띄는데 이것이 바로 그 유명 한 '일송정'이다. 우리일행은 멀리서나마 일송정을 바라보았다. 우리일행은 서둘러 화룡에 있는 서고성의 중경 현덕부를 찾아 갔다. 중경은 3대 문왕 때 천도한 뒤 742년부터 755년까지 13년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발해의 수도였다. 서고성 부근에는 정효공주묘와 발해무덤떼가 밀집되어있고, 용해사 고산사등의 유적지가 모여 있어 수도로써의 위상을 높여준다. 마을입구로 들어서 살펴보려 했는데 이었다.
청동의 과학적 연구방법1. 도입 2. 유물분석의 분류 2-1 비파괴분석법 2-2 파괴분석법 3. 유물분석법 4. 연구사례CONTENTS1. 도입청동유물의 효율적 보존과 복원 전시를 위해서는 청동의 성분원소와 제작기술 , 원료 산지, 보존처리 방안 연구가 선행되어야 하고, 이러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당시의 제작기술을 이용하여 원래의 형태로 복원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자연 과학적 연구 방법이 적극적으로 도입되어야 한다.고고학적 자료의 해석은 각종 양식과 문양 등 육안감정에 의한 형태학적 연구 에 의존하여 유물의 편년설정 및 제작기술 그리고 당대의 문화적 배경이 추론 되 어 왔으나, 최근 발달된 자연과학적인 분석기법이 고고학 연구에 도입되면서 알 려져 있지 않던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지고 있다. 이러한 자연과학적 연구방법으 로는 현재 산지연구와 제작기술, 절대연대측정 등이 대표적이다.국내에서 현재까지 전국의 유적에서 출토된 청동기에 대한 고고학적, 미술사적, 문화사적인 검토에는 많은 업적이 있었지만 과학적으로 성분을 분석한 예는 그 리 많지 않아 청동기 문화의 흐름이나 기원에 대한 논의를 시도하기에는 자료가 부족한 실정이다. 따라서 이들 청동기의 과학적 조사 결과를 정리하여 종합하면 청동기 제작과 관련된 여러 정보를 얻을 수 있다.2. 유물 분석의 분류비파괴법 (비파괴분석법)그 상태그대로 분석하는 비파괴법 분석 후에도 자료는 전혀 변하지 않음. X선・γ 선과 같은 방사선 또는 적외선・자외선과 같은 광선을 사용하거나 자기를 사용하는 경우 등 다양한 방법 형광X-선분석법 (XRF) 양성자 유발 X선 분석법(PIXE)파괴법 (파괴분석법)자료의 일부분을 채취하여 조사하는 파괴법 아주 작은 부분이기는 해도 자료의 형상이 변함. 원자흡광분광분석법 (AAS) 유도결합플라즈마 발광분광분석법 (ICP-ES) 열이온화질량분석법(TIMS) 주사전자현미경(SEM) 에너지분산형X선분석법 (EDS) 녹 등의 광물종류와 화합물의 분석은 X-선회절분석법(XRD)이 응용.분석방법의 분류◎ 전자현미경(SEM )◆ 주사전자현미경에 의해서 유물을 관찰 분석 할 경우 ① 직경 5mm 크기의 시료를 사용하여 관찰 할 수 있는 면을 밑으로 하고 에폭시계수지에 고정하여 자동회전 연마기에 경면까지 연마한다. ② 진공정착장치에 넣어 통상탄소로 증착한다. ③ 약 5초간 SEM의 시료실에 넣어 배기시키고 진공으로 한다. ④ 형상 조직 등의 관찰은 반사 전자상 관찰로 실시한다. ⑤ 필요에 따라 상의 목적 개소에 전자선을 쏘이고 X선 분석을 실시한다. ⑥ 또, 필요에 따라 전자선을 스캐닝 시켜서 원소의 매핑분석을 실시한다.◎ 구성원소를 정성․ 정량하는 방법명 칭설 명적 용발광분광분석(ES)시료 중의 원소를 스파이크 방전과 아크 방전을 여기시켜서 발광한 광을 분석하고 다 원소를 동시분석.미소량분석법. 대형기기분석법, 주요원소분석, 미량원소 분석은 곤란함.형광X선분석법(XRF)X선을 시료에 조사하고 발생하는 특성X선(형광X선)을 분광하여 다 원소 동시분석.비파괴분석법. 대형기기분석법, 주요원소분석, 미량원소분석은 곤란함.에너지분산형X선분석법(EDS)특성X을 검출기에 에너지 분광하여 원소분석. 투과형이나 주사전자현미경에 부설시킴.미소량분석법. 많이 보급. 주요원소분석, 분석조작이 용이함.중성자방사화분석법 (NAA)원자로 내에서 중성자로 조사하고 생성핵중의 감마 선에너지를 측정. 다 원소를 고감도에 정량.미소량분석법. 흑요석이나 토기의 지표가 되는 미량원소분석에 많이 사용.입자여기X선분석법 (PIXE)이온가속기로 가속한 양자나 이온을 시료에 조사하여 극미량 원소를 분석.미소량분석법. 미량원소 분석 가능. 시료의 비파괴분석이 가능.유도결합플라즈마발광분석법 (ICP-ES)고주파 자계로 무전극 방전에서 분석. 극미량까지 검출이 가능하고 다 원소를 동시에 분석.미소량분석법. 미량원소분석법으로 중래의 원자흡광분석법 보다 많이 사용됨.열이온화질량분석법(TIMS)다른 동위원소의 존재 여부를 알 수 있으며 혼합물 속에 들어 있는 이온의 상대적인 양을 측정.미소량분석법. 동위원소의 질량과 실리콘, 납과 황) - 정량분석에 한계가 있다. - 원소번호 6 미만은 검출 불가. - Beryllium window를 사용할 경우, 탄소, 질소, 산소 등 원소번호 9 미만 검출 불가.3) X-ray Spectroscopy (EDS)4) 중성자방사화분석법(NAA)원리: 분석하고자 하는 시료를 원자로의 내부에 넣으면 235U의 핵분열에 의해 생성된 중성자가 시료 중의 원자핵에 충돌하여 핵반응을 일으킨다. 그 결과 원래 의 원자핵과는 다른 핵이 생성된다. 이 생성핵은 일반적으로 방사성을 띠게 되므 로 일정한 시간이 지난 후에 β선 및 감마선을 방출하여 딸핵으로 파괴되어 변한다. 이때에 방출되는 감마선의 에너지는 생성핵에 따라 정하여져 있으므로, 이 감마 선에너지를 측정하면 원래 시료 중에 함유되어 있는 원소를 확정할 수 있게 된다. 또 그 에너지의 선 개수는 시료 중 원소의 수에 비례하므로 그 원소를 정량 하는 것도 가능하게 된다.분석: 원자로에서 중성자 조사 시에는 분석코자 하는 시료를 직경 3cm 높이 10cm 의 금속 용기에 넣는다. 동전이나 도기 및 자기편 같은 작은 유물의 경우에는 시료 의 직접적인 채취없이도 비파괴분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표준 용기보다도 큰 유물 일 경우 약 50~100mg의 시료 채취가 필요하다.PIXE의 원리 -고에너지로 가속시킨 양성자를 시료에 조사시키게 되면 원자 내의 내각 전자들이 에너지를 받아서 여기하게 된다. 이와같이 생성된 빈 공간을 외각에 있는 전자들이 채우게 되며 이때 전자의 에너지 준위 차이 만큼의 에너지가 X-선 또는 Auger전자로 방출되게 된다. 이와같이 발생되는 특성 X-선의 경우 원소마다 고유한 에너지 값을 갖게 되므로 X-선의 에너지와 발생 빈도를 측정하면 그 시료의 정성 및 정량 분석이 가능하여 진다.PIXE의 특징- ① 원소의 정성 및 정량분석 가능 ② ㎛~mg 시료로 ppm 정도의 미량원소 분석가능 ③ 다원소 분석시료의 신속한 분석가능 ④ 시료의 비파괴 분석이 가능5) 양성자 유발 X-선 발생 (PIomic cloud)에 분석물질이 특징적으로 갖는 파장의 복사선을 쬐어주면 분석 대상 원자는 그 파장의 빛을 흡수하여 바닥상태에 있던 최외각의 전자가 높 은 에너지 준위로 전이를 일으킨다. 이때 들뜬 원자로 되면서 흡수하는 빛의 세기 를 측정하는 방법이 원자흡수 분광법이다. 광원 → 시료원자화장치 → 단색화장치 → 검출기7) 원자흡광분석(AAS)특징: 공존 이온의 방해가 적고 선택성이 좋기 때문에 거의 모든 금속 원소의 고감도 분석에 사용할 수가 있다. 고대 청동유물의 조성, 동전 , 토기, 유리, 흑요석, 석기의 정량분석에 가장 많이 사용된다.◎ 화합물 ․ 원소분포 등을 해석하는 방법명 칭설 명적 용X선회절법(XRD)X선을 조사하고 시료에 따라서 회절되는 X선을 측정. 격자간격으로부터 화합물 동정.미소량분석법. 각종 화합물을 동정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많이 사용. 비파괴분석뫼스바우어분광법(MS)흡수법과 산란법으로 나뉘고 감마선의 원자 흡수를 측정하고 에너지를 해석.미소량분석법. 청동기의 녹중에 주석등의 상태분석에 사용. 철과 주석에 한정되어 있음.오제전자분광법(AES)전자 충격시에 나오는 오제전자의 스펙터메트리를 측정. 마이크로 영역(0.1㎛)의 표면 원소분석.미소량 분석법. 표면분석 장치 중에서는 많이 사용. 표면도금층 해석에 사용됨.표면전리형질량분석법 (TIMS)시료를 용액화하여 시료봉에 끝에 달아서 가열 증발하고 분석기에 보내져서 질량분석.미소량분석법. 고감도의 동위체 분석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청동기의 산지결정등에 사용.원리: 시료 중 원자에서 산란되는 X선의 회절각과 강도는 물질의 구조에 따라 독특하기 때문에 그 회절 각으로부터 정성 분석, 강도로부터 정량 분석을 할 수 있다. 결정에 X선을 쬐면 결정 중 각 원자는 입사 X선을 모든 방향으로 산란시키 며, 이 산란된 X선들이 합쳐져 회절 X선을 형성하게 된다. 회절이 일어나기 위한 필요조건은 2dsin Θ =nλ이다. 특징: 무기・유기 결정, 분말, 액체, 무정형 물질의 동정이나 구조(원자간 거리 분포 선1. 미륵사지 출토 청동유물의 금속학적 연구 2. 청주(淸州) 사뇌사지(思惱寺址) 출토 청동유물의 금속학적 조사 3. 부여 능산리 절터 제3건물지 출토 청동덩어리에 대한 금속학적 분석 4. 금강유역 세형동검의 과학분석 (1)-청원 문의면 수습 세형동검-4. 청동기의 연구 사례연구 목적본 연구에서는 미륵사지 출토 백제말기, 통일신라시대 및 고대의 청동유물에 대하여 화학분석과 금속조직조사를 통해 금속학적 해석을 시도하고 중국, 일본등 동양권에서 조사결과와 비교 검토하여 당시 우리나라 청동기 기술, 제작 기법등을 고찰하였다.연구방법1.연구대상 시료의 선정 2.성분분석 - 1) 습식분석(WET) 2) 원자흡수분광분석(AAS) 3) 유도결합플라즈마(ICP)발광분광분석 4) X선회절분석(XRD) 3.미세조직 – 1)광학현미경 2)주서전자현미경품종별화학조성미세조직대접,주발 2점,접시Cu : 74.8∼79.4 Sn : 18.6∼21.l대접-수지상조직이 조대한 것으로 미루어 주조후 서서히 응고된 것 주발-주조상 결함은 없으며 결정입계의 부식에 의해 발생된 아산화동이고 주로 Triple Point 부근에서는 납이 알갱이 크기로 편석되어있음 접시-납이 0.45%로 많지 않아 조직사진에서도 납을 발견하기 어려움.불상82Cu -7.0Sn -l0.3Pb Pb의 함량이 많고 주석의 함량이 적음구리는 조직내에 일정하게 분로 주석은 초정고용체의 둘레에 편석을 일으키며 납이 편석하고 있는곳에는 구리나 주석은 존재하지 않고 순수 납으로 편석.동경67.4Cu -25.8Sn -4.9Pb중구, 일본출토 동경의 조성과도 유사 수지상조직이 매우 잘 발달되어 냉각속도가 빨랐을 것으로 추정.장식품Cu:80.0~82.1,Sn:13.0~14.7,Pb: 3.4~3.8현재의 청동주물 규격과 비교시 상당히 합리적인 조성 수지상조직으로 나타나며 납입자가 골고루 분포되어 있음. 이는 냉각속도가 커서 납이 골고루 분포된 것으로 해석.수저류Cu:74.5~78.7,Sn:17.1~20.3,Pb: 3.4~3.7Sn의 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