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혁명에 대해서먼저 글을 씀에 앞서서 동학농민혁명에 대해 동학란, 동학농민운동, 갑오농민전쟁등의 다양한 용어들이 있음에도 역사는 보는 이에 따라 주관이 개입됨을 부정 할 수 없기 때문에 여기서 동학농민혁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겠다. 그 이유는 이번에 동학농민운동에 대해 공부하면서 -매우 깊이 있는 공부는 아니었지만- 나름대로의 판단에 의해 동학농민혁명이라는 용어가 가장 알맞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지금부터 동학농민혁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양해를 먼저 구하고 시작하겠다.동학농민혁명에 대해서는 고등학교 국사교과서에서 배웠다. 그러나 그 내용이 너무나 단편적이고 수능이라는 시험을 기준으로 공부를 하다가 보니 역사에 대해 깊이 있는 공부를 하지 못하고 수박 겉 핥기식의 공부를 하였다. 앞에서도 언급하였지만 역사를 아무리 객관적으로 쓰려고 해도 서술자의 주관이 들어가지 않을 수 없게 되어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역사를 공부하면서 나의 생각이나,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서 주관적이지 못하고 교과서의 내용을 마치 내 것 이냥 받아들이기만 했다. 그래서 그런지 아직도 동학농민혁명 -그 당시 교과서에서는 동학농민운동이라 배웠다.- 에 대해 확실한 개념이나 주관이 잡혀있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수업의 교과서(이이화의 못 다한 한국사 이야기)에서도 동학농민혁명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 요즘 읽고 읽는 조정래의 “태백산맥”이라는 책에서 농민들의 삶을 보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7할 8할을 차지하던 농민들이 지주계급에 의해 엄청난 수탈로 고달픈 삶을 살아가는 것을 보면서 어떻게 저런 환경에서 삶을 지탱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그들도 사람이기에 극에 달한 상황에서는 몸부림 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동학농민혁명 또한 지배계급에 의한 수탈을 견디다 못한 농민들의 혁명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고등학교 국사책에서 배웠던 동학농민운동이라고 해봐야 겨우 반봉건, 반외세를 외치던 농민운동이며 결국에는 청일전쟁의 빌미부해 보겠다.동학농민혁명의 배경이 되는 시대상황은 19세기 말로 조선왕조는 내적 부패?비리?모순과 외세의 침투위협 등으로 전통적 통치체제가 붕괴의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내적인 모순은 크게 외척세도통치에 따른 정치기강의 혼란과 삼정의 문란을 통한 국가수취체제의 붕괴 등을 들 수 있다. 18세기 이후 노론 일당의 전제화로 변칙 운영되어 오던 조선왕조의 정치는 19세기로 접어들면서 외척세도 중심체제로 변질되어 정칙기강의 문란을 극대화시켰다. 외척세력은 독단적인 권력을 행사하며 과거제도의 모순, 매관매직의 악순환, 법도와 기강의 문란 등 정치적 혼미를 초래했다. 이러한 세도정치로 인해 사회는 부정부패?모순의 현상이 만연되었다. 특히 관직의 매매현상이 만연하였다. 이러한 관직의 매매현상은 관직을 사들인 관리로 하여금 소위 본전을 뽑는다는 말처럼 관리가 된 후에 농민을 향해 배의 수탈과 착취를 통해 그전보다 더 많은 부를 축척하려 하였다. 그래서 관리가 바뀌어도 수탈이나 착취의 정도는 비슷하였다. 정치기강의 문란과 관료의 부패는 경제적 파탄도 초래하는 근원적 요인이 되었다. 즉 국가의 기본적 수취체제인 삼정의 극심한 문란을 초래함으로 백성들의 생활을 도탄에 빠뜨림은 물론 국가재정도 파탄에 이르게 하였다. 특히 양반들의 축재수단 중 첫째수단으로 떠오른 환곡을 통한 고리대는 농민들의 엄청난 착취 수단이었다. 환곡과 전정의 폐해는 곡창지여긴 호남이 더욱 자심하였다. 설상가상으로 기근과 질병?한발 등이 농민들을 더욱 궁지로 몰아갔다. 그래서 화적?초적 등 각종 도적이 비반하였고 홍경래의 난, 임술민란등이 계속 일어나 어지러운 사회를 더욱 혼미케 하였다. 국내의 위기상황 가운데 서세동점적인 물리적 침투는 민심을 동요케 하고 혼란을 더욱 고조시켰다. 영?프랑스 연합군의 북경침입등은 중국은 매우 강한나라라고 생각하던 우리에게 정신적 충격과 위기의식을 느끼게 했다. 따라서 동학사상의 득도와 동학혁명은 이러한 19세게 후반 조선사회의 대내외적 위기를 민중 스스로 극복하는 과정 속에서출신으로 전라도지역의 사정을 잘 알고 있어서 전봉준등 농민들에게 회유의 글을 보내 농민들과 협의하여 고부농민들의 봉기는 일단 진정국면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용태는 사태가 진정되어 가자 관군 8백여 명을 이끌고 고부성으로 들어가 조병갑의 행위를 정당화시키고 오히려 농민봉기에 참여한 농민들과 동학교도를 역적으로 몰아 처벌하였다. 전봉준은 이용태의 탐학으로 인한 사태가 심각해지자 백산에 집결하여 새롭게 일어나게 되었다. 백산에서 관군을 맞이하여 기습을 통해 승리를 이끌어 낸다. 이에 전라감사 김문현은 관군을 동원하여 혁명군을 토벌토록 명하였다. 그리하여 황토현에서 동학혁명군과 관군사이에 치열한 피의 전투가 전개되었는데, 이 전투에서도 도학혁명군이 승리함으로 고부일대를 석권하게 되었다. 한편 이러한 전봉주을 선두로 한 동학혁명은 처음부터 제2교조인 최시형 등 동학상층부인 북접과는 상호 협의없이 전개된 것이었다. 북접의 최시형은 전봉준 둥이 동힉농민군을 이끌고 봉기할 때 종교적 양심과 태도를 강조하며 전투적 봉기를 반대하였다. 그러나 북접에서도 하층 농민교도들은 봉기에 호응 하였고, 백산 황토현전투에서 도학혁명군이 승리한 뒤에는 북접의 동학교도도 적극적으로 지지하며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동학혁명군은 백산 황토현 등지에서 승리한 기세를 모아 전주로 향하였다. 그러나 혁명군의 기세에 눌려 모두 도망가고 말았다. 이에 동학혁명군은 저항도 받지 않고 전주성안으로 무혈 입성할 수 있었다. 한편 1894년 5월 31일 전주성이 동학혁명군에 의해 함락되었다는 보고를 받은 조선정부는 6월 2일 밤 궐내에서 긴급 중신회의를 열고 청군파병 요청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하였다. 논의 끝에 청군의 파벼을 요청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하여 군대의 파병요청을 받은 청은 조선정부의 원병요청을 조선내에 자국의 세력을 구추하기 nl한 호기로 삼기 우해 즉각 약 2,800명의 청군을 충청도 아산만에 출동시켰다. 청군의 조선파병이 이루어지자 일본도 주한일본공사관과 거류민의 보호를 구실삼아 청군을 제압할 수 11일 마침내 정부와 동학혁명군 사이에 전주화약이 성립되었다. 이 때 동학혁명군은 전라도 53개 주 ? 읍에 민간자치 개혁기관으로 전라도 일대의 행정과 치안을 회복하기 위하여 집강소를 설치하고 전주화약 이후 짧지만 약 3개월 동안 정부에 제시한 폐정개혁안을 비롯해 여러 가지의 개혁을 추진하였다. 특히 집강소에서는 탐관오리들에 의한 수세탈수를 바ㅗ자비 위해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지방관의 행정을 점검?감시하고 신분차별을 철폐하기 위한 화동도 전개하는 등 아래로부터의 근대적 개혁을 시도하였다. 조선정부는 국내정세가 안정되자 청일 양군의 공동철병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일본은 철병요구를 거부하고 오히려 조선주둔 병력을 증강시켜나갔다. 그리고 조선에 친일정권을 세우고 조선정부의 내정개혁을 강요하였다. 마침내 일본군은 청국군함에 포격을 가하여 격침시킴으로써 청일전쟁을 일으켰다. 이에 동학혁명군은 침략자인 일본군과 싸우기 위해 반봉건적 운동에서 반외세를 외치며 재차 기병할 것을 결정하였다. 동학혁명군은 관군과 일본군이 수비하고 있는 공주로 진격해 들어갔다. 일부 관군은 일본군과 합세하여 공주로 통하는 세성산 우금치 등지에서 동학혁명군의 북상을 막고자 하였다. 따라서 공주를 중심으로 치열한 전투가 전개된다. 먼저 세성산에서 전투가 벌어졌는데 여기서 근대적 무기를 갖춘 일본군의 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참패하게 된다. 세성산전투 이후 논산에 주둔해있던 동학혁명군의 주력부대는 10월 22일부터 공주성 공격을 개시한다. 이 과정에서 관군과 이인?효포를 거쳐 우금치에 이르기까지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하였다. 근대적 무력으로 공격해 오는 일본의 막강한 무력 앞에서 동학혁명군은 제대로 힘을 발휘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3면으로 공주를 포위하고 총공격을 개시하는 등 치열하게 맞섰다. 하지만 일본군뿐만 아니라 관군의 공격까지도 받으며 싸워야 했다. 이에 관군에게 격문을 띄워 동족끼리의 공격을 즉각 중지하고 공동보조하여 일본군을 격퇴할 것을 호소하였다. 또 일반민중들과 관군을 상대로 동도선왕조의 말기적 폐해와 전근대적 봉건체제에 저항하여 일어난 동학혁명은 당시 민중이 겪고 있던 고통의 근본원인이었다.여기까지가 책을 요약한 것이다. 이렇게 책을 읽으면서 중간중간 요약되었지만 동학농민혁명에 대해 소상히 알 수 있었다. 사실 교과서에서는 전투에 관해서도 단지 황토현에서 승리를 하였지만 우금치 전투에서는 일본의 화력에 밀려 대패하였다고만 나와있다. 사실 요약하면서 나도 그렇게 하였지만 책에서는 상세히 나와 있었다. 그래서 단편적인 사건들을 나열한 국사교과서보다 사건들 사이의 연결된 내용을 읽으면서 공부하니 훨씬 이해가 쉬웠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먼저 나는 농민들이 들고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사회상황을 보면서 가슴이 아팠다. 지방관리나 지주들은 환곡이라 하여 농민들에게 춘궁기에 곡식을 꾸어주고 거기에 몇 배에 이자를 쳐서 받았던 것이다. 거기다가 처음 빌려 줄때부터 쌀뿐만 아니라 온갖 잡곡과 다른 내용물을 섞어서 준 것이다. 농민들은 속는 일 인줄을 알면서도 그들에게 곡식을 빌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누군가 먹는 것으로 장난을 치는 것이 가장 비열한 행동이라고 하였다. 왜냐하면 먹는 것은 즉, 식은 인간을 목숨을 지탱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사람에 목숨을 함부로 대할 수 없듯이 먹는 것을 가지고 사람들을 협박하고 농락하는 일이야 말로 강하게 처벌 받아야 하는 일이다. 그리고 위에서도 보았듯이 조병갑에 행태를 보라. 어찌 관리라는 자가 방곡령을 이용하여 자신의 부를 축적하며 수많은 농민들을 굶겨 죽일 수 있는가? 이러한 상황에서 아무리 농사를 지어도 수탈과 착취로 인해 먹을 것조차 없는 사람들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계속 살아가라고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사람들은 어떤 일에 대한 보답이 주어지지 않을 때 일의 능률은 현저하게 떨어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들에게 있어서 농사는 정말 죽지 못해 하는 일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회, 경제, 정치적 상황은 농민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백성들을 생각하는 신하한명이
통일문제연구우리조가 발표한 것에 대한 감상문을 쓰라고 하니까 처음에는 막막했습니다. 저희 조는 개성공단에 대해 조사했는데 다른 조는 한미동맹이니 탈북자니해서 쓸 말들이 많을 것 같은데 개성공단에 대한 감상문을 쓰는게 그것도 한 장 이상을 쓸려고 하니까 한숨만 나왔습니다. 지금 이렇게 말하는 것도 어쩌면 글자수를 채우기 위한 의도가 약간은 담겨있다고 볼 수도 있지요.아무튼 개성공단, 이것도 곰곰이 생각해보니 할 말이 많더군요. 사실 개성공단이 1988년부터 시작된 사업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참 놀랐습니다. 개성공단, 송구스러운 말일지 몰라도 통일문제연구반 수업을 하면서 자세히 알기 시작한 것이라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얼마나 진행되었는지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뒤늦게라도 이렇게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 다행인 것 같아요. 노수미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우리가 무언가를 많이 알고 넘어가기보다는 통일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앞으로도 계속 지켜봐주기를 바란다는 그 말씀이 가슴에 와 닿았듯이 말입니다.관심을 가지고 본 개성공단은 미숙한 제 눈으로 보아도 참 뜻 깊은 일인 것 같습니다. 6.25전쟁이후, 서로가 서로에게 입은 상처로 인해 분노하고 적대시하고 있을 당시에 이런 일을 누가 감히 상상이나 했었겠어요. 아직도 비무장지대를 사이에 두고 서로가 총구를 겨누고 있는 상황이지만 개성공단과 같은 일이 계속해서 추진된다면 통일의 물꼬를 트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산가족들이 처음 만났을 때 그 서먹서먹함이 서로 이야기하고 손을 마주잡았을 때의 눈물로, 감격으로 변화하듯이 자꾸 만나고 이야기하고 부대끼면 어쩔 수 없는 한민족이기에 어쩔 수 없는 한 핏줄이기에 이념도 사상도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앞에서도 말했듯이 개성공단의 의미와 역할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하지만 개성공단이 말처럼 쉽게 성사되지만은 안은 것 같습니다. 남녁에서 북녘에서 작고 큰 문제가 생기면 몇 년씩이나 아무 진전 없이 시간만 흘러가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15년이나 계속 추진되고 있는 사업이지만 그만큼의 성과를 이루고 있지 못하고 있습니다. 통일이 되기 위해서는 각 나라의 원수들만 힘을 써서도 각 나라의 고위관리들만이 노력하여서 되는 것이 아니라 온 국민이 한마음이 되어 관심을 가지고 애착을 가지고 노력하고 서로를 이해하려 할 때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통일의 물꼬를 트기위한 개성공단 역시도 우리 모두의 지속된 관심이 필요로 하지 않은가 생각합니다.통일문제연구반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제가 컴퓨터를 워낙 좋아하지 않아서 사실 수강신청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입학하고 선택수업을 한다고 하자 부랴부랴 학생처에 가서 아직 마감되지 않은 반을 찾다가 보니 통일문제연구반이 되었는데 교수님 섭섭해 하지 마세요. 종강한 이 시점에서 이반 잘 선택했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전 통일 당연히 해야 하고 빨리 이루어져야 한다고 항상 생각하고 있었는데 자꾸 세대가 지나면서 분단이라는 사실에 무감감각해진 일부 친구들 가운데 통일을 꼭 할 필요가 있냐고 할 때마다 가슴이 아팠습니다. 무엇이라고 잘 설명해주고 싶은데 아는 것이 없으니 해줄 이야기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초등학교교사가 된다면 분명 초등학생들 중에서 저에게 물어보는 학생이 꼭 있을 것입니다. 통일이 왜 되어야 하냐고. 그런데 수업을 듣고 나서 남을 완전히 설득시킬 자신은 없지만 통일에 대한 큰 그림정도 그리고 통일문제에 대해 활짝 열어 놓은 귀는 앞으로 통일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더 공부하면서 꼭 학생들에게 통일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고 통일에 대한 마음을 심어 줄 수 있는 선생님이 될 수 있는 길을 조금이나마 배우고 가는 것 같습니다.
1. 현재 점차 다원화되고 있고, 민족의 통일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사회과 교육과정과 교과서, 사회과 교사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 현 상황을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하시오.통일에 관한 교육은 초, 중, 고를 망라하고 사회교과나, 윤리교과에서 언급되고 있다. 하지만 그 내용면에 있어서 여러 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먼저 교과서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통일에 대한 한쪽 측면, 즉 통일을 반드시 해야만 한다는 의견만을 제시하며 강조하고 있다. 몇 십년동안 들어온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문구를 아직까지도 초등학교 교과서에 제시함으로써 오랜 시간의 경과에 따른 사회의 변화에 대해 전혀 고려하지 않음을 볼 수 있다. 이미 우리는 다양한 이해관계와 다양한 집단들로 나뉘어져 다원화 된 사회를 살고 있다. 다원화된 사회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다양한 의견에 대한 존중이라고 할 수 있다. 다원화된 사회에선 결코 어느 한 가지 입장만을 고수 할 수 없다. 하지만 사회교과에서 제시하고 있는 통일단원의 내용을 보면 전혀 그렇지가 않다.우선 통일을 해야만 한다는 주장만을 전개하고 통일에 대한 내용, 다시 말해 왜 통일을 해야만 하는가에 대한 당위성이나 통일을 하였을 때에 우리에게 생길 변화에 대한 내용을 제시해 주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학생들에게 아무리 통일에 대해 필요성을 역설하더라도 학생들은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통일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제시해 주지 못함으로 학생들의 공감대 형성도 힘들다. 또한 통일에 대한 교육에 앞서 북한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통일은 결코 남한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남한과 북한이 함께 이루어가야 할 과제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사회과 교과서에서 다루는 북한에 대한 내용은 빈약하기 짝이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입장에서만 북한을 기술하고 있다.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과 교육과정, 교과서, 사회과 교사의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먼저 사회과 교육과정에서는 위에서도 언급하였듯이 통일에 대한 교육에 앞서 북한을 이해하는 교육과정이 필요로 한다. 단순한 북한의 지리나, 자연환경이 아니라 북한의 사회모습, 문화에 대한 다양한 제시가 필요하다. 그러한 교육과정은 학생들로 하여금 북한과 남한의 차이에 대해 이해 할 수 있는 폭을 넓혀주고 나아가서 통일의 당면과제에 대해 생각 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줄 것이다.교과서에 있어서는 가장먼저 다원화된 사회에 알맞은 통일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제시해 줄 필요가 있다. 뿐만 아니라 통일에 대한 당위성이나 통일을 하였을 경우 생기는 변화에 있어서도 장점만이 아니라 단점에 대해서도 기술함으로 학생들에게 통일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갖게 해주어야 한다. 정작 통일에 대한 필요성은 강조하지만 통일단원의 내용은 매우 부족하다. 질적인 면 뿐 만 아니라 양적인 면에서도 더 늘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