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설론 - 춘향전< 고소설론 발표과제 >춘 향 전성명 : 고상준, 05125850, 국어국문학과김민지, 05103609, 국어국문학과김주화, 03100312, 국어국문학과이금순, 04210036, 국어국문학과- 목 차 -서론본론1. 판소리와 판소리계 소설2. 『춘향전』의 전승3. 『춘향전』의 실존 인물설과 작자문제4. 『춘향전』의 발생과 기원5. 『춘향전』의 근원설화6. 『춘향전』의 현대적 수용 양상결론※참고문헌서론은 숙종 말에서 영조 초에 형성되어 후대로 전승되면서 수많은 수용자와 만나 다양하게 변모, 성장해 왔다. 현재까지 알려진 의 이본은 100여종에 달하며, 내용면에서도 개성적인 면모를 드러내고 있어 춘향전의 적층적 성장과정을 잘 보여준다.은 연구사적 측면에 있어서도 문학사적 의의나 주제의식의 역사적 의미 등을 잘 알 수 있는데 지금까지 50여종의 이본의 200여명의 논자에 의해 600여 편을 상회하는 논문이 쓰여졌다. 민족고전의 대표격인 에 대한 연구는 1920년대의 단편적 비평에서부터 1980년대의 본격 연구에 이르기까지 60년에 걸친 연구사를 보여주고 있다.본론에서는 의 전승, 인물과 작자 문제 그리고 발생과 근원설화에 대하여 대하여 중점적으로 알아본 후에 오늘날에 이어져 내려오는 의 수용 양상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본론1. 판소리와 판소리계 소설)판소리계소설은 일반적으로 판소리 사설의 영향을 받아 소설로 정착된 작품을 말한다. 판소리계소설은 형성 과정에서부터 판소리 사설과 상호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후대에 이르러는 판소리계소설의 향유층과 작가의식, 그리고 시대의 변화를 수용하여 다양한 변화가 나타났는데, 그 양상은 각각의 작품에 따라 다르다.일반적으로 판소리의 구비문학적 성격이 판소리계소설의 기록문학적 성격으로 변모되면서 부분보다는 전체의 논리적 결구가 강화되었다. 그리고 문자로 정착되면서 대체로 비속하거나 불합리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향유층의 의식에 맞는 형태로 변화되었다. 또한 세태를 반영하고 풍자하는 방향으로 변화되기도 찍어내는 방식이기에 나무에 새기는 목판본보다는 저렴한 비용으로 단기간에 많은 책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리고 수요자도 많았다.개화기 시대 1912년 보급서관판가 나온 후 1952년 세창서관판가 나오기까지 근 40년 동안 끊임없이 간행되었다. 이들 중 어떤 이본은 천연색의 그림을 대폭 삽입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본들은 마치 연극의 대본처럼 만든 것도 있다.내용에 있어서도 처럼 당시에 불려진 창본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도 있고, 처럼 장편의 국문필사본을 활자화한 것도 있다. 뿐만 아니라 나 처럼 내용의 개작이 심하거나 독특한 구성을 보이는 활자본도 있다. 춘향전의 이본에는 창본이 다수 존재한다. 창본은 처럼 전승이 끊어진 창본도 있으나, 대개는 현존하는 창을 채록한 것이다.)3. 『춘향전』의 실존 인물설과 작자 문제실존인물설1965년 4월 24일 남원에서 ‘府使成公安義善政碑(부사성공안의선정비)’가 발견됨으로써 제기되었다. 이가원은 성도령, 이춘향설을 주장한다.이른바 성바꿔치기설인데, 안동에 살고 있는 권모가 춘향가를 지어 주었는데 실존인물이었던 성이성과 이춘향을 모델로 삼았으며, 성이성은 성부사의 아들인데 그의 후손이 예안, 봉화, 상주 등지에 살고 있으므로 바로 쓰지를 못하고 둘의 성을 바꿔쳤다. 그 결과 이춘향, 성도령은 성춘향 이도령이 되었다는 것이다. 성 바꿔치기설을 인정한다면 성부사는 춘향의 아버지가 아니라 시아버지가 되는 셈이다.김동욱↔이가원성이성이 암행어사였던 점은 인정하지만 춘향과 관련되는 언급이 없고 논리상의 비약이 심해 실존인물과 직접적인 관계로 보기 어렵다.문헌 기록과 소설에서 춘향의 나이가 16세이고 경술년이라는 년기까기 일치하고 있다고 하였다.)작자 문제설성경은 『춘향전』의 저자를 임란 때 의병장인 조경남이라고 주장하였다.)근거1조경남은 남원에 살았고,근거2향전 근원 설화의 하나로 지목하던 성이성 암행어사의 스승근거357년간 전란 중심의 일기인 『난중잡록』과『속잡록』그리고 200년의 역사를 요약한 『역대요람』을 편찬할 정도로 상당한 에서 발생설화를 덧붙였다. 근원설화만으로는 형성과정을 밝히기 어렵기에 발생설화를 설정하고 근원설화가 발생설화에 소속하는 것임을 분명히 했다. )5. 『춘향전』의 근원설화 근원설화를 둘러싼 논의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나뉜다.)1이 국내의 어떤 설화에서 기원했으리라는 설2춘향과 이도령을 역사적으로 실재했던 인물로 보는 설3중국 문학의 절대적인 영향하에 발생했다고 보는 설실재했던 인물로 보는 설은 전술한 이가원의 주장과 동일하다. 이에 대해 춘향을 실존 인물이라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지적도 있으나 성이성의 암행어사 설화가 형성에 영향을 끼쳤으리라는 추정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한편 이 중국의 , , , , 등 중국문학의 영향 하에서 발생하였다는 주장도 있었다.그러나 세 가지 설 중에서 가장 타당성을 얻고 있는 것은 국내의 어떤 설화에서 기원하였으리라고 보는 설이다.이제까지 알려진 의 근원설화는 관탈 민녀 설화, 신원설화, 암행어사설화, 열녀설화, 염정설화로 다음과 같은 표로 나타낼 수 있다.근원설화춘향전과의 연관성관탈 민녀 설화- 도미설화- 도화녀 설화- 지리산녀 설화변학도가 춘향를 빼앗으려는 사건(관리가 평민의 여자를 빼앗으려는 사건)신원 설화- 남원 추녀 설화- 아랑 설화- 박색터설화- 심수경설화- 향랑설화춘향이가 옥중에서 말하는 내용(억울하게 죽은 혼의 원한 풀이 내용)암행어사 설화- 어사 이시발의 실제담- 박문수 설화- 성이성 설화- 김우항 설화- 노진 설화이몽룡의 암행어사 출두열녀 설화- 지리산녀 설화- 도미 설화춘향이의 정절(한 남자에게 정조를 지키는 이야기)염정 설화- 성세창 설화이도령과 성춘향의 사랑명경 옥지환(明鏡玉指環)교환 설화- 중국의 서상기(西廂記) 등신물(信物) 교환을 내용으로 한 설화각 설화들을 자세히 다음과 같습니다.- 관탈 민녀 설화관탈 민녀 설화는 권력자에 의해 민간의 여자가 수탈당하는 이야기가 담긴 설화로서 여성이 시련과 고난을 겪고 그것을 극복하는 모티프가 담겨 있다.탐관오리 변학도의 부임과 춘향에 대한 수청 요구리킨다. 은 다른 무엇보다도 이도령과 성춘향의 사랑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 그러므로 염정설화에서도 의 기원을 찾을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해당하는 구체적 설화로써는 , 등이 있다.이도령과 성춘향의 결합과 이별 [애정 설화]- 명경 옥지환 교환 설화이별 하면서 거울이나 옥지환(반지) 같은 일종의 신물을 교환한다. 대부분 염정설화와 관련이 있지만 건국신화에서도 등장한다.이도령이 성춘향과 헤어질 때 불망기를 준다. [명경 옥지환 교환 설화]김태준을 비롯한 초기 연구자들은 대개 이런 다양한 설화가 의 형성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특히 김동욱은 이전에 논의되어 오던 여러 설화들을 형성에 소재가 되는 것은 근원설화로, 의 발생에 관한 것은 발생설화로 구분하고 근원설화를 4가지로 분류하여 그 하위에 개별적 설화들을 포함시켰다.그러나 후대로 오면서 이런 다양한 설화에서 의 기원을 찾기 보다는 단일한 설화로 그 범위를 좁혀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 설성경은 의 전반부는 염정설화나 신원설화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그리고 후반부는 암행어사설화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간주하고 두 가지 설화의 합성을 통해 이 나왔다고 보았다. 또한 그보다 더 후기 학자인 김종철은 작품의 구조에 치중한 연구를 통해 의 핵심구조에 대응하는 근원설화는 오직 염정설화 뿐이라는 견해를 제시하기도 하였다.6. 『춘향전』의 현대적 수용 양상1) 영화에 투영된 『춘향전』춘향전은 20세기에 접어들며 다양한 예술양식으로 거듭나기 시작하였다. 그럼 춘향전이 왜 영화화되기 시작했을까? 영화 춘향전은 192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이루어지고 있는데 초기의 시작은 당시에 문맹률이 80%나 가까웠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영상과 소리를 통해 작품을 온전히 감상하게 되니 수용자의 입장에서는 가장 매력적인 장르가 된 것이다.)영화 춘향전은 소설 춘향전을 기반으로 한다. 영화 춘향전은 소설 춘향전이 기본적인 줄거리의 큰 변화 없이 각 시대에 따라 춘향의 성격, 내용, 제목을 달리하여 변화하듯이 영시대의 춘향전을 봄으로써 당시 시대가 선호하는 여성상을 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2) 현대시에 투영된 『춘향전』춘향전은 영화뿐만이 아니라 현대시에서도 많은 모습으로 변화 되어 우리의 곁에 다가왔다. 현대시에 수용된 춘향전은 크게 3가지의 테마로 나뉘어 발전하였으며, 그 테마를 세부적으로 보면 다음과 같다.- 불교적 인연설불교적 인연설에 바탕을 두어 패러디한 작품들은 불교의 윤회세계를 밑바탕으로 작품을 창작하였다. 작품을 예로 들어보자면 서정주의 「추천사」「춘향유문」등이 있는데 여기서 소개할 작품은 춘향유문이다-서정주의 ) 전문-이 시의 구조는 춘향이 죽음을 앞에 두고 이도령과 헤어진 후 유언을 남기는 독백형태이다. 시적 화자는 춘향 자신인데도 ‘나’ 대신에 3인칭 화자 형태로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여 감정을 절제하고 있다. 서두에서부터 청자를 의식하면서 하직 인사를 하는 춘향의 모습은 사랑의 영원성을 확신하기에 의연한 태도이지만 내면적으로는 죽음과 이별의 두려움을 떨치지 못하며 현실에 집착하기에 지상과 천상을 잇는 영원한 사랑을 갈망한다. 그는 불교적 상상력을 통해 영원한 사랑을 노래한다.) 화자는 죽음과 이별을 두려워하면서도 죽음을 통해 사랑의 승화를 확신하는 내면적 갈등을 나타낸다.안녕히 계세요도련님지난 오월 단오ㅅ날, 처음 만나든날우리 둘이서 그늘 밑에 서 있든그 무성하고 푸르든 나무같이늘 안녕히 안녕히 계세요저승이 어딘지는 똑똑히 모르지만춘향의 사랑보단 오히려 더 먼딴 나라는 아마 아니 것입니다.천길 땅밑을 검은 물로 흐르거나도솔천의 하늘을 구름으로 날드래도그건 결국 도련님 곁 아니예요?더구나 그 구름이 쏘내기되야 퍼부을 때춘향은 틀림없이 거기 있을 꺼예요!이 시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춘향은 현세의 삶의 고통을 좀더 내세에는 행복한 삶으로 살 수 있도록 바라는 불교적 인연설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민중의식민중이란 중세 봉건사회가 무너지고 근대 시민 사회가 형성되는 역사 발전 단계에 나타난다. 그것은 역사의 주체이며 사회적 실체로서 정치적, 경제적,
◆서론순수와 가난 , 때 묻지 않음이 공존하는 시인 천상병 .. 천상병 이란 시인의 이름을 들을 때 마다. 하루치의 막걸리와 담배만 있으면 스스로 행복 하다고 서슴없이 외쳤던 시인, 세속적 명리를 떨쳐버리고 순수한 시를 고집한 시인으로 기억된다. 실제로 천상병 시인은 일생을 가난하게 지내왔으며 물질적인 것에 대해 크게 욕심내지 않았다. 어쩌면 이러한 자신의 가치관이 고스란히 시에 녹아들어 ‘천진성’과 ‘소박성’은 천상병 시의 특질로 흔히 쓰이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그의 시정신으로 해서 그의 시에는 세속의 삶의 거추장스러움이 전혀 드러나 있지 않으며, 그는 모든 것으로부터 늘 자유롭고 막힘이 없으며, 사물에 대한 자신의 느낌에 충실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성격과 생애를 바탕으로 그의 시세계를 탐구해 보고자 하였으며 전기시 위주로 작성하였다1. 천상병 시인의 생애일본 효고현 히메지시에서 출생. 1955년 서울대학교 상과대 4년 중퇴.1949년 마산중학 5학년 때, 《죽순(竹筍)》 11집에 시 《공상(空想)》 외 1편을 추천받았고, 1952년 《문예(文藝)》에 《강물》 《갈매기》 등을 추천받은 후 여러 문예지에 시와 평론 등을 발표했다.1967년 7월 동베를린공작단사건에 연루되어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가난 ·무직 ·방탕 ·주벽 등으로 많은 일화를 남긴 그는 우주의 근원, 죽음과 피안, 인생의 비통한 현실 등을 간결하게 압축한 시를 썼다.1971년 가을 문우들이 주선해서 내준 제1시집 《새》는 그가 소식도 없이 서울시립정신병원에 수용되었을 때, 그의 생사를 몰라 유고시집으로 발간되었다. ‘문단의 마지막 순수시인’ 또는 ‘문단의 마지막 기인(奇人)’으로 불리던 그는 지병인 간경병증으로 세상을 떠났다.《주막에서》 《귀천(歸天)》 《요놈 요놈 요 이쁜 놈》 등의 시집과 산문집 《괜찮다 다 괜찮다》, 그림 동화집 《나는 할아버지다 요놈들아》 등이 있다.미망인 목순옥(睦順玉)이 1993년 8월 《날개 없는 새 짝이 되어》라는 글 모음집을 펴내면서 유고시집 《나 . 그는 어렵고 불행한 생활로 이어지는생애를 보내면서 삶의 어두움, 외로움, 죽음등의 문제를 다루는 시를 많이 지었다. 이러한 시를 쓰면서도 맑은 눈과 청순한 시정신을 구현하려고 애썼다. 그는 맑고 투명하게 사물을 인식하는 눈을 가지고 있다. 그의 시는 순진무구한 시정을 드러내고 있는데 현실 삶의 즐거움이나 괴로움을 말 할 때에도 천진한 상상력을 잃지 않는다. 특히 세속 삶에 대한 거추장스러움을 벗어버리는 소박한정서는 죽음과 가난함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허무주의와 구차함에 떨어지지 않는 자연스러움과 당당함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천상병의 시에서 우리는 순진무구(純眞無垢)와 무욕(無慾)을 읽을 수 있다. 그는 현란하거나 난해하지 않으면서도, 사물을 맑고 투명하게 인식하고 담백하게 제시한다. 죽음을 말하면서도 결코 허무나 슬픔에 빠지지 않고, 가난을 말하면서 구차스러워지지 않는다. 그의 시들은어떻게 보면 우리시사(詩史)에서 매우 이단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시인이라는 세속적 명리(名利)를 떨쳐버리고 온몸으로 자신의 시를 지킨, 진정한 의미의 순수 시인이라 할 수 있다.2.천상병 시인의 시세계2-1.가난과 초월의식천상병의 시는 처음부터 줄곳 가난의 정조가 깊게 메여있다. 그 스스로가 돈에 대한 관념이 없는 사람이라고 자칭하듯 그는 가난을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생활하고 있다. 그에게 있어 가난은 분명 그가 택한 것이 아니였다. 그러나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라고오늘 아침을 다소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은한 잔 커피와 갑 속의 두둑한 담배,해장을 하고도 버스값이 남았다는 것.오늘 아침을 다소 서럽다고 생각는 것은잔돈 몇 푼에 조금도 부족이 없어도내일 아침 일도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가난은 내 직업이지만비쳐오는 이 햇빛에 떳떳할 수가 있는 것은이 햇빛에도 예금통장은 없을 테니까...나의 과거와 미래사랑하는 내 아들딸들아,내 무덤가 무성한 풀섶으로 때론 와선괴로웠음 그런대로 산 인생 여기 잠들다, 라고씽씽 바람 불어라........-격성 같은 엄한 조건 하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그와 반대로 우리에게 창조물들이 단순한 아름다움을 즐기는 것 이라고 말한다. 그는 진정 가난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자이다. 왜냐하면 단순한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눈을 통하여 자신의 축복을 셈하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무한한 자연과 햇빛 앞에서는 부자도 가난한자도 평등한 것 이여서 그의 가난은 떳떳한 것이라고 자위한다.)아버지 어머니는고향산소에 있고외톨박이 나는서울에 있고형과 누이들은부산에 있는데,여비가 없으니가지 못한다.저승 가는 데도여비가 든다면나는 영영가지도 못하나?생각노니, 아,인생은 얼마나 깊은 것인가.--가난이란 불행하지 않고 극복하려는 그에게도 가난으로 인한 좌절이 있었는데, 그것은 추석 때 고향을 방문하려고 했지만 여비가 없어 갈 수 없는 자신의 체험에서 영감을 얻어 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 시는 단순히 가난에 대해 넋두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에게 반문을 해 해학과 여유를 보여주기도 한다. 게다가 가난하기 때문에 어쩌면 저승에도 못 갈 수 있다는 가난한 자의 행복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뿐 성탄이 약속되는 때는 언제인가? 마음의 평화를 느낄 때이다. 우리는 자신이 가질 수 없는 사물을 바랄 때 결코 기쁨을 발견 할 수 없을 것이다. 천상병 시인은 단순한 말로 자신이 이해했던 바를 설명하고 있음과 동시에 눈물겹도록 따뜻하고 비장한 그의 초월의식을 느끼게 한다.점심을 얻어먹고 배부른 내가배고팠던 나에게 편지를 쓴다.옛날에도 더러 있었던 일,그다지 섭섭하진 않겠지?때론 호사로운 적도 없지 않았다.그걸 잊지 말아주기 바란다.내일을 믿다가이십년!배부른 내가그걸 잊을까 걱정이 되어서나는자네한테 편지를 쓴다네-전문-점심을 얻어먹고 배부른 내가 배고팠던 지난날의 내게 쓴 편지형식의 시다. 여기서 ‘배부른’의 상황은 분명 예정보다 나아진 상황일 테고, 화자는 혹시나 배고팠던 기억을 잊을까봐 스스로에게 걱정이 된다고 한다. 한 그릇 점심을 배불리 먹은 것에서도 지난날의 배게 만든다. 이렇듯 그는 자신의 삶을 아주 솔직하게 그려내고 있다. 거기엔 뿌리 깊은 가난으로부터 그가 겪어야 하는 생생한 일상의 모습이 있고, 인생과 삶을 바라보는 깊은 성찰을 보여준다. 이는 곧 그의 빈곤에 대한 관조적인 자세와 초월의지에서 가능한 것 이였다.2-2. 자유지향의식1950년대와 60년대를 거친 시인에게 ‘자유’를 언급하는 데는 필수적으로 ‘양심’과 ‘반성’이라는 그물이 필요하다. 이것은 전쟁과 혁명을 통과했던 모든 시인들에게 해당되는 것이다. 천상병 역시 이 시기를 거쳐 왔고 그가 시의 순수를 주장했건 현실 참여를 모색했든 간에 그들은 전쟁과 혁명의 와중에 살아남았고 도피했다는 그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전후시인들은 전쟁의 참화를 딛고 살아남은 존재감을 눈물겹게 선양해야 하며, 자유를 향한 혁명의 좌절을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부자유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양상은 달랐지만 김수영이 말했듯) 천상병 역시 예술적 충동을 삶의 근본적인 진실에서 뗄 수 없었기 때문에, 삶과 저작을 통하여 자유를 요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1)꿈꾸는 새초기에 천상병의 시를 지배하는 자유 이미지는 ‘새’로 표상된다. 기표로서의 ‘새’는 시적 주체의 투사체이며 나아가 초월적 이미지의 ‘우주새’ 로서 언급되기도 한다.)그러나 실재적 ‘죽음’이 존재하는 공간적 이미지와 연결됨을 고려할 때, 타인으로부터 나를 체감하는 대자자적 pour soi이미지라기보다는 하나의 개체로서 운명적으로 체득한 즉자적 en soi 이미지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죽음 앞에 시인은 실천 적이기보다는 관조적이다.새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내 영혼의 빈터에새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 때는내가 죽는 날그 다음날산다는 것과아름다운 것과사랑한다는 것과의 노래가한창인 때에나는 도랑과 나뭇가지에 앉은한 마리 새정감에 가득찬 계절슬픔과 기쁨의 日알고 모르고 잊고 하는 사이에새여 너는 낡은 목청을 뽑아라살아서좋은 일도 있었다고나쁜 일도 있었다고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위 시는 있는 자기가 아니라 죽어가는 자기ㅡ그 죽음의 실천’이 바로 정직한 시라고 말했던 김수영의 말을 빌린다면, 위의 시는 정직하지 않다. 시인은 죽어가는 자신을 관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정직과 비실천의 원죄의식은 스스로를 고독한 죽음의 공간 속에 배치하도록 요청하고 있다. 그러므로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내 영혼의 빈터’는 시인이 설정한 양심의 공간이다. 그 공간은 죽음의 공간이기는 하지만, 새로움의 모색을 가능하게 하는 역설의 공간이기도 하다.1연에서 보이는 ‘내가 죽는날’과 ‘그 다음날’, ‘새날’ 과의 대비와 2연에서 부르는 ‘산다는 것과 아름다운 것과 사랑한다는 것’ 에 대한 노래와 3연의 ‘낡은 목청’ 의 노래의 대비 속에서 시인은 새날의 새가 되어 돌아올 것을 희구하고 있다. 그 새는 죽음 앞에 정직하지 못한 이시는 그러나 슬픔과 기쁨의 공존 속에서 비록 관념적이지만 새로움의 실천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역설적으로 정직한 시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개인적 역사성 속에서 귀납적으로 천상병은 고독한 죽음을 실천했기 때문이다.새 . 2그러노라고뭐라고 하루를 지껄이다가,잠잔다.바다의 침묵, 나는 잠잔다.아들이 늙은 아버지 편지를 받듯이꿈을 꾼다.바로 그날 하루에 말한 모든 말들이,이미 죽은 사람들의 외마디소리와서로 안으며, 사랑했던 것이나 아니었을까?그 꿈속에서......하루의 언어를 위해, 나는 노래한다.나의 노래여, 나의 노래여,슬픔을 대신하여, 나의 노래는 밤에 잠잔다.이 시는 1960년 1월 ≪자유문학≫에 발표된 작품으로서, 초기 죽음의 내면적 실천을 보여주고 있다. ‘하루의 언어’는 죽음을 포용하는 언어다. ‘이미 죽은 사람들의 외마디 소리’ 와 화해하는 그 꿈을 위해 시인은 새처럼 지저귀고 있다. 그 새가 흘리는 언어는 하루 종일 지???였던 반복적 행위를 통해 끊임없는 자기 반성을 요구하고 있다. 그 양심의 언어로 노래하기 위해 잠을 자고, 중얼거리고, 침묵하고, 꿈을꾼다. 이 모든 행위의 궁극적 목적은 그가 겪었던 슬품을 치유하기 위한
김소월의 시에 투영된 전통과 미의식1. 서론 .22. 김소월 ................23. 시대적 배경과 문학적 배경 ...........34. 김소월의 시에 담긴 전통과 미의식 ..............44-1 민족의식의 형상화 ......44-2 본질적 의식세계의 추구 ..............64-3 전통적 민요조와 시적 지향 ........75. 결론 ................101. 서론현대 문명의 발달로 다원화된 사회에서 다양한 문학 작품이 창작되고 소멸되기도 한다. 그 가운데 생명력을 지니고 연구 검토되는 것의 하나가 김소월의 작품이다. 김소월의 작품은 한국적 정서와 민요적 율조, 여성적 어조, 전통의 미학적 표현으로 탁월한 작품이 많이 있다. 한국적 정서는 다양하게 나타난다. 그것이 유형, 또는 무형으로 남아 후손에게 전해지는데 특히 민요는 민족의 전통과 정서를 담고 있다. 민요적 가락을 시와 융합하여 시적 기교계관을 가지고 있었다. 김소월은 조부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그것은 부친이 일찍 병에 걸려 아버지의 역할을 못하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의 조부는 한 가문의 족장으로서 권위를 가지고 종손을 돌봤으며, 그는 가문의 대를 이을 종손으로 총애를 받았다. 그러나 소월이 성장하면서 조부와의 의견 차이로 거리가 생기고 소월은 처가에서 말년을 보낸다.부친 김성도는 불의의 사고로 정신질환자가 되었다. 그의 어머니는 남편의 사고로 소월에게 애정을 쏟았으나, 문맹이었으므로 소월은 단절감을 느꼈다. 그러나 어머니 장씨는 동서(계희영)와 의좋게 지냈다. 계희영은 신학문을 알았고, 언문을 익혀 고대소설을 접할 수 있었다. 김소월은 숙모(계희영)의 문학 지식을 바탕으로 문학적 감수성의 자양분을 얻을 수 있었다.소월은 1915년 13세 되던 해 처음으로 고향을 떠나 오산중학에 진학하였다. 김소월은 김억을 여기에서 만났는데 숙모에게서 들었던 고대 소설 및 구전이야기, 그리고 남산학교 시절 익혔던 문학세계를 체계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이 때 그의 작품 「가는 길」,「못잊어」, 「예전에 미처 몰랐어요」,「진달래꽃」,「접동새」,「엄마야 누나야」 들이 쓰여 졌다. 이 작품들은 김소월의 대표작이기도 한 만큼 그의 주요 작품이 오산시절에 쓰여졌고 시인으로서 자질이 이미 나타났음을 알 수 있다. 안서와는 사제지간이었으나 소월의 6촌 누이가 안서의 아내였으므로 사돈 사이이기도 하였다. 오산이 폐교되어 소월은 배재고보에 편입하게 된다.조부는 신학문을 접한 사람들이 독립운동이나 사상운동에 빠지는 것을 보고 경계의 시선으로 외지에서 공부하는 것을 반대하였다. 그러나 그는 배제고보에 편입하였고 국어과목은 100점이었으나 수신과목은 성적이 낮았다. 그것은 혼자 있기를 좋아하고 비사교적 성격 때문인 것으로 보여진다.동경에 4,5개월 머물다가 귀국하여 작품을 잡지사나 신문사에 보내 발표하였다. 동경유학에 실패하고 서울에 체류하던 소월은 1923년 시인으로서 명성을 얻었다. 1920년 『창조』에 데뷔한 후 박종화는 이 때 김소월은 오산학교에 다니고 있었으나 일본에 의해 폐교 조치되었고, 김소월은 졸업예정자로서 졸업장을 받았다. 3.1 운동이 일어나긴 전 문예 동인지 『창조』(1919.2)가 김동인을 중심으로 창간되었으며 김소월은 1920년 이 잡지에 「낭인의 봄」등 발표한다.1920년 《동아일보》,《조선일보》가 발행이 허가되었고, 6월 25일에는《개벽》이 창간되었다. 1922년에 배재고보에 입학하는데 1925년 김소월의 나이 24세에 카프가 결성되어 계급문학이 발생하였다. 그리고 그 해 김소월의 시집 『진달래꽃』이 발표되었다. 카프문학에 반대하는 민족문학파는 시조의 부흥을 주장하는 이은상, 최남선 등이 있으며, 한용운의 『님의 침묵』(1926)이 발표하여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그리고 해외문학파의 결성으로 외국문학이 소개되었다. 그리고 1930년 시문학파는 순수 시 운동을 전개하였으나 김소월은 주변인으로 정주에서 살다가 1934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4. 김소월의 시에 담긴 전통과 미의식4-1. 민족의식의 형상화현대 문학사에서 1920년대는 민족주의 문학파 혹은 국민문학파나 일제말기의 문장파, 전후의 전통파 등을 하나의 경향 혹은 유파로 본다. 그런데 기존의 논의에서 포괄적인 개념이 없었는데 최근의 연구에서 1920년대를 ‘전통주의’라는 포괄적인 개념으로 묶어 거론하였다.전통주의에 대하여 과거를 현재적 관점에서 새롭게 구성하고 그것의 부활, 혹은 지속을 도모함으로써 과거와 현재 사이의 살아있는 관계를 정립하거나 기획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전통 속에서 종교적 우주관을 찾으려는 경향에서 그 특징을 찾고 있다. 일반적으로 전통주의의 특성은 문학사의 연속성을 인식하고 문학의 자율성을 지키며 전통미학의 계승을 추구하는 문학적 경향으로 1920년대는 민족적 정체성 추구라는 특수성을 지닌다. )하소연하며 한숨을지우며세상을괴롭어하는 사람드이어!말을납무지안토록 죠히?임은다라신이세상의 버릇이라고, 오오 그대들!맘에 잇는말이라고 다할?보냐.두새번 생각하라. 우선그것이저부터 밋지의 감시 속에서 살아야 했던 사람들의 무의식적 긴장일 수 있고, 낯선 땅이 되어 버린 내 조국일 수 있으며, 지식을 갈구하기 위해 건너갔다고 학업을 계속하지 못하고 돌아설 수 밖에 없었던 동경 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같은 하늘 아래에서 존재하는 곳에서 타인으로 머물러 있을 수 밖에 시적화자는 나라를 잃은 한민족의 긴장과 설움을 대변하기도 하는 것이다. 남의 나라 땅에서 낯설은 생활의 흔적은 그를 그 낯선 곳에서 서 있지 못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돌아왔고 그는 김억의 일상의 삶, 즉 동아일보 지국을 운영하고 그마저 여의치 않자 술로 세월을 보냈다. 위의 시에서 그는 하고 싶은 말을 못하는 것을 말하고 있다.김소월의 시는 민족적 슬픔과 그 슬픔을 초월한 시 로서 전통적인 한의 정서를 표상하고 여성적 정조로 표현하였으며, 민요적 율조와 민중적 정감을 내포하고 민족 의식을 형상화하고 있다.그의 한의 미학으로 알려진 대표적인 시 「진달래꽃」을 뚜렷한 잘못도 없으면서 버림받았으나 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밖에 없었던 화자로서는 님의 떠남을 진실이 아닌 것으로 받아들이고 다시 돌아오리라고 믿는다. 그리하여 곱게 님을 보내드리며 떠나가는 님에게 진달래꽃을 뿌려준다. 그리고 자신의 과오에 대한 책임을 느끼며 성찰하는 등 복합적 감정의 구조를 보여 준다.소월의 시에서 보편적으로 대하는 한의 감정이란 상대방을 미워하면서도 사랑하고, 긍정하면서도 부정하고, 이별하면서도 그것을 만남의 예비라고 생각하는 것, 즉 모순의 복합적인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우리 고전 문학에 반영된 일반적 정서이기도 하며, 거문고나 판소리의 흐느낌, 동양화의 끊일 듯 끊어지지 않는 선의 감정이기도 하다. 소월은 바로 우리 민족의 심층에 전승되고 있는 이 같은 한의 감정을 詩化했기 때문에 민족적인 공감을 받을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4-2. 본질적 의식 세계의 추구인간의 본질은 삶을 살면서도 죽음을 피해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태어나는 일정한 시간이 있다면 죽음에 이르는 시간은 예측하기 힘 것이다.이와 같이 개인과 개인, 개인과 전체의 단절은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부정적 세계관이 지배적으로 드러나며 이러한 정서가 인간과 자연, 혹은 주관과 실제 현실에서의 거리를 갖게 한다. 이 시는 그의 내향성(introversion)을 잘 표현하고 있다. 내향성이란 자기 억압적이지 공격적, 개방적 성격은 아니다. 소월의 이런한 내향적 성격은 사색적, 비사교적 성격으로 나타나 있으며 이 시에서는 그의 이러한 성향이 잘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그것이 시를 통해 분출됨으로써 그는 음성언어로서의 억제에서 문자언어로서 표현의 미학을 거쳐 세상과 소통하였음을 알 수 있다.산그늘에 주저 안젓는 서울의 거리!이리저리 찌어진 서울의 거리!창백색의 서울의 거리!거리거리 전등은 소리 업시 울어라!....상점과 회사의 건물들은히스테리의 여자의 거름과도 갓치어슬어슬 흔들나며 멕기여 가면서검누른 거리 우에서 방황하여라!이러할 때러라. 백악의 인형인듯한귀부인, 신사, 또는 남녀의 학생과학교의 교사, 기생 또는 상여는하나 둘식 아득이면 떠돌아라.아아 풀 낡은 갈바람에 꿈을 깨 힌 쟝지 배암의우울은 흘너라 그림자가 떠돌아아.......사흘이나 굴믄 거지는 밉쌀스럽게도스러질 듯한 애닯은 목소리의『나리마님! 적선합시오, 적선합시오!.』......거리거리는 고요하여라!집집의 창들은 눈을 감아라!이때러라, 사람 사람, 도는 왼 물건은깁픈 잠 속으로 들러하여라「서울의 거리」일부이 시는 미련과 좌절, 원망과 자책이 보여주는 정서상의 불연속이다. 식민지 상황에서 서울은 정상적인 서울이 아니고), 그것을 보는 시적 화자의 시선도 뒤틀린 자아이다. 이 시는 소재적 측면에서 일상생활을 소재로 한 도시시이다. 그러나 도시의 공간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시선은 냉소적이다. 귀부인이나 거지에게까지 모든 사람들에게 애정을 보이지 않는 시적화자는 ‘밉쌀스러운 거지’이다. 그러나 그것은 화자에게만 국한 되는 것이 아니라 사물에게 까지 확장된다. 거리가 고요하고, 집집들의 창들은 눈을 감는다. 그리고 깊은 잠속으
우리 고전 다시 쓰기 - 고전소설편우리 고전 다시 쓰기 , 제목만 들어봐도 그다지 재미있는 책이 라는 느낌은 오지 않을 것 이다. 말 그대로 우리 고전 소설을 재 해석 해서 분석해 놓은 책 , 이라는 설명이 가장 적합하지 않을까 ? 우리 고전 다시 쓰기라는 책은 우리가 흔히 알고 배웠던 고전소설에다가 그것을 리메이크 해놓은 여러 개의 작품들이 실려 있다 . 크게 설화 , 고전소설 , 연구논문 , 자료 4개의 파트로 나뉘어 져 있는 책은 들여 다 보면 볼수록 왠 만한 전공 책 못 지 않을 만큼 소설에 대해 자세히 설명되어있다. 한번 책을 스르륵 훑어보았을 때에는 분명 한국어로 기술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나라 말인양 무엇을 이야기 하고자 하는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 북리뷰는 써야겠고 책의 내용은 무슨 말 인지 모르겠고 .. 그래서 내가 결정한 방법은 파트별로 골라보기 방식 , 좋지 않은 방법 인줄은 알겠지만 한부분이라도 이해하고 넘어가는 것이 더 좋다고 판단하였기에 그리 결정 한 것이었다.내가 읽은 부분은 고전소설 다시쓰기부분 제 2부 파트다여기에는 구운몽, 춘향전, 심청전, 흥부전, 별주부전, 허생전 총 6개의 원전이 실려있는데, 이 6개는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 까지 한 번씩은 배우고 넘어갔던 이야기들이라 대충 읽어도 이해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막상 페이지가 한 두장씩 넘어감에 따라 그것은 내 착각이었다. 원전은 읽기가 쉬웠으나 다른 작가에 의해 다시 쓰여진 작품들을 이해하기란, 얼마나 막막하던지 ... 다시쓰여진 작품들은 소설의 형태도 있었고 또 시의 형태로 지어진 것들도 있었다 , 게다가 한자들은 간간히 왜 그렇게도 많은지 , 읽을 수 있는 한자의 수 보다 읽을 수 없는 한자의 수가 더 많아서 국문과 학생이라고 말하기 창피할 정도였다 .6 작품 중에서도 몇 가지 기억에 남는 작품들이 있었는데 , 그것은 별주부전의 다시 쓰기판 장용학님의 이라는 작품과 이태준님의 그리고 , 춘향전판의 김주영님의 최인훈님의 이 기억에 남는다.별주부전 하면 다들 떠오르는 것이라고는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 일 것이다. 나 역시 그랬었고 고쳐 써 보았자 토끼와 거북이의 상황이 바뀌거나 줄거리가 조금 변형된 것이겠지 이 정도였다. 그러나 별주부전의 두 번역판(?)은 토끼와 거북이의 이야기를 사람들의 이야기로 바꾸어놓았다 . 처음에는 이게 뭔 내용이냐면서 작가가 실수로 글을 다른 것을 실은 것은 아닐까 생각을 했었다 . 근데 뒤에 해석본을 보고 난 다음에서야 의도한 바가 먼지 알 수 있었다 . 되게 신선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 원전 별주부전에서의 토끼의 역할과 거북이의 역할과 사회적 배경들을 사람의 입장으로 바꾸어놓으니 원전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보다는 조금 더 강하게 말하고자하는 바가 확 다가오는 것 같았다.춘향전에서의 외설 춘향전은 우리가 생각하는 줄가리 중간중간에 새로운 인물들을 집어넣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 예를 들자면 , 장돌림이라는 인물은 에서 가장 핵심적 인물이다 . 장터를 돌아다니며 물건을 파는 천한 장사꾼이지만 경험과 넓은 견문을 통해 실의에 빠진 이몽룡에게 용기를 주기도 하고 , 과천 객사에서 변학도를 골탕 먹여 지배 계층에 대한 민중의 조롱과 항거를 익살스럽게 표현하기도 한다.또 , 최씨 부인 , 이방과 도모하여 변사또로부터 춘향을 구출해낸 인물이다. 양반과 상민사이를 오가는 장돌림의 종횡무진한 활동, 최씨 부인의 배?과 대담성은 춘향과 이도령 중심의 을 장돌림과 최씨 부인의 눈을 통해본 새로운 춘향전으로 바꾸어 놓았다고 할 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