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역사와 법◇서평-미국의 심리학자 매슬로우는 인간의 욕구의 단계를 5가지로 구분하여 나타내었다. 첫 번째 단계는 생리적 욕구로써 의식주 해결의 욕구이다. 두 번째 단계는 안전의 욕구로 신체나 감정적인 위험으로부터 보호되고 안전해지려는 욕구이다. 세 번째 단계는 소속감과 애정의 욕구로 집단에 소속되고 타인과 친교를 나누고자 하는 욕구인데, 이 것이 어느정도 충족되면 인간은 어느 집단의 단순한 구성원 이상의 것이 되기를 원한다. 다시말해 내적으로 자존?자율을 성취하려는 욕구 및 외적으로 타인으로부터 주의를 받고, 인정을 받으며 집단 내에서 어떤 지위를 확보하려는 네 번째 단계를 추구하게 된다. 일단 존경의 욕구가 어느 정도 충족되기 시작하면 다음에는 “나의 능력을 발휘하고 싶다”, “자기계발을 계속하고 싶다”는 자아실현욕구가 강하게 나타난다. 이것이 다섯 번째인 자아실현욕구의 단계로 자신이 이루려는 것 혹은 될 수 있는 것을 성취하려는 욕구이다. 즉 계속적인 자기발전을 통하여 성장하고 자신의 잠재력을 극대화하여 자아를 완성시키려는 욕구이다.전통시대의 수많은 중국인들이 왕후장상이 되고자 하는 열망을 가졌던 것도 이러한 시각에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왕후장상이 되면 수많은 부귀영화를 얻게되어 의식주 해결과 신변의 보호는 물론이고 타인으로부터의 인정, 부러움, 찬사, 존경을 한꺼번에 받게되어 위에서 언급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5단계의 욕구를 거의 한꺼번에 충족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사실 이렇게 상류사회로 편입되고 싶어하는 열망과 노력은 비록 그 모습과 형태는 다르지만 시대를 막론하고 언제나 또 어디서나 존재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전통시대부터 있어왔던 수많은 반란(물론 사족(士族)들이 유가적인 대의명분에 따라 반란을 일으킨 경우는 다른 경우로 볼 수도 있지만 필자는 그들 역시 상대적으로 더 나은 지위와 명예를 전혀 추구하지 않았다고는 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7,80년대에 가난과 어려운 집안 환경을 무릅쓰고 공부해 고시에 합격하여 판?검사나 고위공무원이 되었다는 성공스토리들, 평범한 여주인공과 재벌 2세가 사랑에 빠지는 드라마 이야기, 또 자식 교육을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는 부모들, 이 모든 것들이 상류사회로 편입되고 싶어하는 욕망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이렇게 상류사회로의 편입되고 싶어하는 열망과 노력은 인간의 보편적인 특성이기는 하지만 전통시대의 중국인들이 왕후장상이 되고자하는 열망은 그 시대와 장소의 영향으로 나름대로의 특수성을 가진다. 우선 전통시대의 황제와 왕후장상들이 가지는 권력과 부귀영화가 일반 백성이 누릴 수 있었던 것에 비해 너무나 큰 것이었다. 책에서 소개된 황제의 궁성, 그들의 여인, 그들을 시중하는 인원, 그들의 능과 침전 등만 보아도 당시 일반 백성들의 생활과 너무도 동떨어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대로 일반 백성들의 삶은 너무도 궁핍했다. 이 책의 앞부분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중원평원은 계절풍의 영향으로 강우는 대개 폭우성을 띠고 평원 내부는 지대가 평탄하기 때문에 물이 빠지지 않아서 수해를 입는 경우가 많다. 한편 계절풍은 강우를 일시에 집중시키는 반면 가물었던 기간이 길어 심할 경우 큰 가뭄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따라서 전통시대의 중국인들은 매우 빈번하게 홍수 또는 가뭄에 시달렸으며 종종 거기에 메뚜기 떼에 의한 피해가 겹치기도 했다. 또 관리들의 수탈과 외적의 침입까지 겹쳤을 때에는 극도의 궁핍에 시달려 식인을 하는 경우까지 자주 발생하였다. 이렇게 왕후장상과 일반 백성들의 생활은 그 격차가 너무나 컸고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왕후장상에 대한 전통시대 중국인들의 동경과 열망은 다른 시대 어느 사회에서의 그것보다 훨씬 컷을 것이다.두 번째로 미천한 출신의 무뢰배나 하급 관리, 장사꾼 심지어 개백정 ? 천민 출신에서 왕후장상이 된 경우를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진시황의 친아버지이자 진의 승상이었던 여불위와 한(漢)나라 고조 유방이 그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는데, 전통시대의 중국인들은 이러한 미천한 출신의 황제나 왕후장상의 등장을 보면서 책에서 언급했던 주(周)나라의 윤씨 집의 노비 이야기나 당나라 때의 소설에 등장하는 노생의 ‘한단지몽’에서 본 것처럼 계층을 막론하고 누구나 왕후장상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이는 다른 사회와 비교해보면 더욱 확연히 알 수 있다. 우선 서양의 역사를 보면 왕권이 약화되었을 때 대귀족 간의 세력다툼에 의해 왕이 바뀌는 경우는 있었지만 평민이나 노비 출신이 세력을 형성하여 왕이나 귀족에 오른 경우는 찾아볼 수 없다. 또 전통시대 중국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던 가까운 한반도만 하더라도 왕이 된 경우는 주몽이나 온조왕처럼 왕족 또는 이성계와 같이 중앙에서 활동하는 관료이거나 왕건처럼 최소한 지방귀족의 자제였다. 그리고 진골, 부여씨와 8성(姓), 문벌귀족, 권문세족, 사대부, 노론벽파 등의 용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전통적인 귀족들의 부와 권력의 세습이 일반적이었으며 평민 출신이나 노비 출신으로 여기에 오르는 경우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었다. 또 나말여초나 여말선초와 같이 나라가 바뀌는 시기에 상류층(엄밀한 의미에서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부와 권력을 가지고 있는 소수의 사람들이라는 의미에서 왕후장상과 같은 맥락으로 생각했다)들이 교체되는 양상을 보더라도 나말여초의 호족들이나 여말선초에 등장한 신진사대부들은 이미 이전 사회에서도 일정 이상의 부와 권력을 지닌 상류층이었고 따라서 거시적인 시각에서 본다면 진골에서 호족으로, 권문세족에서 신진사대부로 교체되는 것 또한 상류층 내부에서의 권력관계 이동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조선 후기 신분질서의 문란으로 양민이나 노비가 양반 신분을 사는 경우는 있었지만 양반 신분 자체가 왕후장상과 같은 의미를 지니는 것은 아니며 이미 일정 이상의 부와 권력을 지닌 상태에서 양반신분을 산 것이므로 이러한 케이스는 별개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상류사회로 편입되고 싶어하는 열망은 시대나 장소와 관계없이 보편적인 것이긴 하지만 전통시대 중국이 가지고 있던 중국만의 특수성에 의하여 그 결과는 다른 사회들과 매우 상이하게 나타난다.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중국의 자연적 환경 때문에 발생했던 수많은 가뭄과 홍수, 메뚜기 떼의 출현, 관리들의 수탈, 이민족의 침략 등으로 식인을 해야 할 만큼 극단적인 상황에 몰리는 경우가 매우 빈번했다. 물론 항상 그런 것은 아니었으나 다음과 같은 순환을 과정을 거치면서 일반 백성들은 아주 짧은 시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궁핍할 수밖에 없어진다. 먼저 왕조기 교체 직후에는 국가에서 개간을 장려하고 백성들이 개간한 토지를 장부에 올려 소유권을 보장하고 매매를 금지하는 방법으로 보호하고자 한다. 또 가능하면 전쟁을 일으키지 않고 토목공사도 최소화하여 생업을 방해하지 않도록 배려하고 세금징수도 최소한으로 유지하는데 이러한 정책을 ‘휴양생식(休養生殖)’이라고 한다.그러나 왕조 중기가 되면 사정이 달라진다. 국가는 휴양 생식 정책을 포기하고 대외 전쟁과 토목 사업을 벌이고 지배층들의 부귀영화를 확대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세역을 징수한다. 게다가 매년 찾아오는 자연 재해로 인해 축적이 없는 농민들은 목숨을 이어가기 위해 곧잘 몇 됫박의 곡식을 얻는 대가로 가지고 있던 토지를 넘기고 소작농이나 노비로 전락한다. 그리하여 부자의 토지는 산천을 경계로 할 정도가 되고 고래등 같은 기와집의 처마가 몇 리에 걸쳐 펼쳐지는데, 가난한 사람은 송곳 꽂을 만한 땅도 갖지 못하는 상황이 된다. 이처럼 일반 백성들이 겪는 가난과 궁핍함과는 반대로 왕후장상들은 일반 백성은 상상할 수 없는 정도의 엄청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었다.이렇게 왕후장상과 일반 백성과의 너무나 큰 차이는 생존의 욕구를 위협 받고 있던 다수의 백성들로 하여금 ‘앉아서 굶어 죽느니 차라리 왕후장상에 도전해보다가 죽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만들었고 이는 곧 행동으로 표출되어 아주 짧은 시기들을 제외하고 중국역사 내내 민란이 끊이질 않게끔 만들었다. 더구나 미천한 출신의 황제나 왕후장상의 등장을 경험은 이러한 민란들의 기폭제 역할을 하였고 이러한 민란이 세력을 얻고 확산되어 때때로 중앙정부를 전복하고 새로운 황제를 등장하게 하거나 또는 중앙정부에 그에 준하는 타격을 주었던 대동란으로 발전하기도 하였다.이것 역시 다른 사회와 비교해보면 더욱 확연히 알 수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서양사회에서는 민란으로 인해 왕조가 교체된 적이 없으며 민란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피지배계급이 주체가 되어 지배층에 도전한 경우가 없었다. 중국과 가까운 한반도에서도 많은 민란이 발생하기는 하였지만 왕조를 전복시키고 새로운 왕이 등장한 적은 한번도 없으며 오히려 대부분(특히 민란이 매우 빈번하게 발생했던 조선후기)의 민란들의 궁극적인 목적 자체도 왕조의 교체를 통해 자신들이 왕후장상이 되려는데 있었다기보다는 부패한 관리와 무거운 세금 징수와 같은 것에 항의하고 이를 시정을 요구하는데 있었다.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상류사회로 편입되고 싶어하는 열망이 모든 인간에게 보편적인 것이라면 왜 현대국가에서는 민란과 같은 피지배층의 봉기가 발생하지 않는 것일까.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를 생각해볼 수 있다. 우선 과거 황제, 왕?후?장?상, 공?후?백?자?남, 친왕?군왕?국공?군공?현공?현후?현백?현자?현남 등과 같이 신분제가 명백하게 존재하고 심지어 우리가 지금 수업시간에서 배우는 것처럼 죄에 대한 처벌까지 신분에 따라 차등을 두는 것과는 달리 대부분의 현대국가에서는 공식적인 신분제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의 소유의 정도에 따라 다른 사회적 지위를 가지기는 하지만 그 경계가 확실치 않으며 그 자체가 비공식적인 구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