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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학]근현대사 개인사 인터뷰 평가A좋아요
    탈도 많고 일도 많았던 19세기에서 20세기 대한민국. 책에서만 읽고 상상하던 그 시절을 할아버지 한분을 통해 보다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이번 인터뷰에 만난 할아버지는 68세의 할아버지이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의 극단의 고통이나 시대의 고난을 겪으신 세대는 아니지만 시대가 시대인 만큼 평범해 보이는 할아버지의 인생에는 결코 평범 이란 단어를 붙일 수 없었다. 시대가 워낙 많은 일들로 가득했기에 산전수전 다 겪으신 분들의 소재도 많겠지만 인터뷰한 이재홍 할아버지는 그분들에 비해서는 보다 순탄하게 평범하게 살아오셨지만 이분 역시 시대의 영향이 이야기를 해주시는 표정과 눈에 묻어남을 느낄 수 있었기에 레포트 소재로 선택하게 되었다. 이재홍 할아버지는 나에게는 외가 쪽 친척 할아버지인데 어머니의 외삼촌이시고, 나의 외할머니의 동생이시다. 4남매 중 막내이신 할아버지는 1939년에 서울 무교동에서 태어나셨고 45년 광복이 일어나기 전에 6년 정도의 일제식민을 경험하신 분이다. 비록 어린나이이긴 하지만 어린아이가 본 광복과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본격적인 인터뷰 내용을 문답형식으로 써보겠다.Q1. 태어나서 6년 정도의 일제식민을 경험하시면서 느끼고 영향 받은 것이 있나요?솔직히 말해서 일제에 대한 느낌이 없다고 하셨다. 우리나라가 지배를 받는다는 것과 굴욕이라는 것을 느끼기엔 무척 어렸기 때문이셨다. 우리가 요즘 영화를 통해서 일제시대의 참혹함과 잔인함을 극하게 느끼고 어린아이에게까지도 매정한 일제시대를 생각하지만 현실로는 그렇게까지 심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어린아이를 괴롭히고 아이에게까지 심하게 하는 그런 일은 드물었다고 한다. 하지만 어린나이에도 우리나라가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고 하셨다. 식민지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제대로 모를 때이지만, 집안의 막내로 큰형과 누나, 어머니, 아버지의 모습과 간혹 들리는 심각한 대화를 들을 때면 할아버지가 멋모르고 뛰놀고 자라가는 이 나라가 그리 행복한 곳은 아님을 느꼈다고 습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의 월드컵과는 다른 모습이긴 하지만 그 기쁨과 행복의 느낌은 비슷할 것이라고 말해주셨다. 할아버지 본인은 광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부모님과 주위 어른들이 너무나도 좋아하시고 밝게 웃으시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고 한다. 지금은 곁에 안 계신 부모님이시지만은 그때의 그 좋아하시던 모습을 생각하면 생생하다고 하셨다. 그땐 그날이 그렇게 좋은 날인지 몰랐지만 커가면서 그리고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행복하고 좋았을지 알 것 같다고 하셨다.Q3. 1950년 6.25전쟁6.25시절에는 할아버지께서 12살 정도이셨다. 이때는 어느 정도 사회에 대한 관심과 주위 어른들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는 나이였기에 전쟁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할 수 있었다고 하셨다. 큰 형은 총을 매고 전쟁터에 나가야하는 나이였기에 피해갈 수 없었고 할아버지는 비록 전쟁터에 나가지는 않았지만 항상 걱정되는 마음과 더한 걱정으로 밤을 지새우는 부모님의 모습에서부터 전쟁의 두려움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할아버지의 큰형은 미군과 함께 하는 카투사 쪽에서 일하셨고 다행히 일반 우리나라 군인들이 겪는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나 살아 돌아오실 수 있었다고 한다. 형을 통해서 들은 미군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고 한다. 우리나라를 도와주는 막연히 착한 천사만은 아니었다고 한다. 알게 모르게 여러 비리도 있었고 야심도 많은 국가가 미국이었다는 말을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었다.할아버지 말에서 흥미로웠던 점은 내가 알고 있던 전쟁의 모습과 다른 생활이었다. 피난을 어디로 가셨냐고 물어보았을 때 처음 6.25가 터졌을 때는 피난을 가지 않고 그냥 집에 있었다고 한다. 집이 그 당시에는 서울 필동 이었는데 처음에는 집밖을 나가도 군인들 모습을 볼 수 없었다고 한다. 그 당시 집이 어느 정도 부유하였기에 라디오가 있었고 금방 해결될 문제니 집에 있으라는 이승만 대통령 말에 피난길에 오르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간간히 들려오는 대포소리와 폭음을 견디지 못하고 기대에 쭉 앉아있었는데 그곳에 가서 총도 만져보고 얘기도 하고 같이 앉아있기도 했다고 한다. 또 6월,7월 한창 더울 때이기에 동네 아주머니들은 큰 통에 물도 가득 담아 와 마시게 해주시고 먹을 것도 나눠주고 했다 한다. 아주머니 눈에는 자식과 같은 아이들 이었을테니 또한 같은 민족이기에 총을 겨루고 적으로 대한다는 생각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 일사후퇴 때는 피난을 가게 되었는데 남쪽의 친척집이 있어 무작정 그곳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집과 모든 것을 잃는 다는 생각으로 시작된 피난길에서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너무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고 하셨다. 그러다 본 거주지로 돌아와서는 집을 찾았다는 행복감과 함께 망가져버린 마을의 모습이 주는 허무감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할아버지께서 어이가 없으셨던 것은 그 와중에도 긴박한 피난길에도 귀하고 좋은 물건을 사람들이 싹 다 가져가는 도둑맞는 집이 한둘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런 어이없음과 시대를 피부로 느끼면서 점차 경찰이 되고 싶단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Q4. 김일성에 대해서...김일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냐는 질문에 할아버지 첫 대답은 귀신이라고 하셨다. 요즘 반공교육이 잘못되었다는 말도 나오고 있는데 할아버지 말씀을 들어보니 어느 정도 잘못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김일성은 무조건 나쁘다. 인간이 아니다. 귀신이라는 생각을 너무 확 박히게 되었다고 한다. 책에서는 공산주의는 무조건 나쁜 것이고 지옥이라고 하였고 김일성은 도깨비 뿔을 가지고 있는 피를 흘리는 그런 모습으로 형상화되었다고 한다. 그 당시에는 학교에서, 어른들이 그렇게 가르치니 어른들 말대로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공산주의가 내세우는 뚜렷한 사상이나 이념은 들어보지도 못했을 정도로 막무가내의 교육이었고 그 당시 그것을 옳다고 느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런 영향으로 다행히 우리 집안에는 북쪽으로 가신분이 안계셨고 이산가족의 아픔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시대를 직접 겪은 다. 그 당시 기계공학과를 다니다 입대하셨기에 배치를 포병으로 받으셨다 하셨다. 입대하여 전방에서 포를 나르고 장전하고 하는 힘겨움뿐만 아니라 전쟁이 터진지 10년이란 세월이 흘렀어도 느껴지는 두려움도 컸다고 하셨다. 그 당시로는 진짜 이렇게 있다가 전쟁이라도 다시 터지면 제일 먼저 죽겠다는 생각도 하셨다고 한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로 글을 쓰는 서무를 뽑는 일에 필체에 자신이 있던 할아버지는 지원하셨고 경쟁을 뚫고 합격하여 그 후의 군 생활은 다소 쉽게 할 수 있었다고 하셨다. 사무실에서 앉아 군대의 공문서를 작성하는 일이 주 작업이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컴퓨터나 그런 기계가 있지 않았기에 모든 문서를 손으로 작성해야했고 필체가 그만큼 중요한 시대였다고 하셨다. 깔끔했던 필체덕분에 최전방에서 편한 사무직으로 옮길 수 있었던 기회를 갖으실 수 있었던 것이다. 할아버지는 지금은 예전보다 병역기간도 짧고 시설이나 제도도 많이 개선되었으며 게다가 전쟁의 두려움도 줄어들었는데 병역기피와 관련된 사건이 왜 이리 많은지 이해할 수 없다고 덧붙이셨다. 힘든 것은 다 힘들겠지만 그 힘듦이 차츰 잊혀지면서 하나의 추억이 되는 거라고 말씀해주셨다.Q6. 경찰이 되기까지...할아버지는 한양공대 기계공학과에 다니셨는데, 졸업하고 그쪽으로 나갈 생각이었으나, 제대 후 집안이 약간씩 어려워지기 시작하면서 학교를 복학할 수 없게 되셨다고 한다. 그러면서 사회에 나와 할 수 있는 일중, 어린시절 잠시 관심을 갖았으나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경찰직에 다시 관심을 갖게 되셨다고 한다. 주위 친구들 중에 경찰에 관심을 많이 가진 친구가 있어 그 친구를 따라 여러 정보를 얻을 수 있었고, 시험을 봐서 합격하게 되셨다. 지금과 다른 점이 많았는데, 먼저 경찰시험에 있어서 그 당시에는 학력을 그리 중요시 여기지 않았다고 한다. 대학을 졸업하든 고등교육까지만 받든 간에 상관없이 시험에 합격하면 순경이 될 수 있었고 학력에 따라 직위가 결정되는 게 아니라 무조건 똑같이 처음부터 시작해서 올라가야하는 것이 느꼈다한다. 어린아이가 울면 순경 온다고 할 정도였고, 제 아무리 망나니라도 순경이 나타나면 조용해지는 시절이었다 한다. 지금의 경찰들을 각각 총까지 가지고 있는데도 범죄자들이 무서워하지 않고 오히려 칼을 들이대고 싸우는데 그 당시엔 무기라곤 곤봉하나였음에도 범인들을 제압할 수 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경찰들의 위신이 많이 떨어졌고 힘도 약해졌음을 말씀해주셨다. 미국과 비교하면 너무나도 경찰들의 위신이 떨어졌음을 알 수 있는데, 미국은 요즘까지도 경찰이 가지고 있는 카리스마와 명예가 크고, 그로 인해 국가보안과 질서가 제대로 잡혀갈 수 있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 할아버지는 다시 경찰의 위신이 서야 나라의 질서도 제대로 잡을 수 있을 거라 말씀하셨다. 예전 경찰의 사회적 우대를 보면 신기한점이 또 있었는데, 어디를 가든지 돈이 필요 없었다고 했다. 전차를 타도 공짜였고 지방 어디를 가게 되도 교통요금, 식비 등 돈을 낼 필요가 없었다고 한다. 돈을 내면 오히려 되돌려주었다고 한다. 그만큼 사회에서 순경에 대한 이미지와 명예는 컸었던 것 같다. 또한 식비가 들지 않았는데, 점심이 되면 경찰서 주변의 음식점에서 돌아가며 음식을 해왔기 때문이었다. 처음 경찰서에 들어가고 며칠은 그렇게 먹었는데, 어느 날 선임이 이제 나가서 밥을 먹으라고 시켰다고 한다. 돈이 별로 없으니 걱정이었지만, 한 음식점을 들어가 일단 밥을 먹고 어찌어찌 계산을 해야 하기에 계산대에 가서 주인에게 얼마냐고 물으니 음식점 주인이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왜이러시냐고 그냥가시라고 막 그랬다고 한다. 그러면서 사회의 전반적 분위기가 그럼을 알 수 있었고 그다음부터는 그런 경찰생활에 익숙해져갈 수 있었다 한다. 할아버지로부터 들은 이 이야기는 처음 듣는 이야기라 꽤 흥미로웠다. 그런 명예가 있었지만, 봉급은 정말 적었다고 한다. 그런 봉급을 명예와 사회적 지위가 매꿰 준 것 같다 말씀하셨다. 경찰생활을 하면서 여러 사건을 보셨을 텐데 어떤 게 기억에 남는지 물어보니 많이 당황해하셨다. 30년 경찰생활에서었다.
    인문/어학| 2006.08.10| 5페이지| 5,000원| 조회(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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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후감]누가 내 치즈를 옮겼나
    < 여전히 변하고 있는 나의 치즈를 생각하며…>-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스펜서 존슨의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라는 책은 많은 학생들이 한번쯤 읽어보았을 것이다. 많은 히트를 친 이 책에는 이 책이 성공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 바로 현대인의 큰 문제와 고민을 다루고 하나의 지침서가 되어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나 또한 이 책을 이번까지 세 번 읽었는데, 그 때마다의 느낌이 다른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매번 읽을 때마다 전과 다른 고민에 빠지고 따라서 다른 교훈을 얻게 되고, 더불어 나를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 수 있었다. 내가 이렇게 같은 책을 여러 번 읽으면서 질리지 않고, 무언가 다른 새로운 것들을 느끼고 얻을 수 있는 이유는 아마도 이 책에서 표현하고 있는 나만의 치즈가 달라서 일 것이다. 처음에 단순히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에는 치즈에 대한 생각보다는 책 줄거리를 따라서 이해하고 그냥 재미있게 보았었다. 그리고는 분량이 워낙 작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 하는 치즈에 초점을 맞추어 읽어보았다. 이 책이 과연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읽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낀 것과 같은 교훈을 느낄 수 있었고 더불어 나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었다.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는 시대에서 가장 크게 변하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란 생각을 했었다. 내가 이 책을 다시 진지하게 생각해 본 때가 고2때이었다. 고3을 앞두고, 대학이라는 목표에 도달 해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의무감에 여러 심적 갈등을 가지고 있었던 때이었었다. 중학교 때부터 국어나, 사회가 싫어서 또 수학이 재미있어서 천상 나는 이과체질 이라고 생각하며 아무런 갈등 없이 지내왔었다. 그리고, 공부에 대한 욕심도 있었기 때문에 내신성적이 나쁘지도 않았었다. 그렇게 고등학교에 들어가게 되고, 내신성적은 노력하는 만큼 더 올라갔으나, 문제는 모의고사였다. 유난히 기분변동에 민감한 나는 모의고사 성적에서도 그것을 알 수 있었다. 그날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서 성적이 크게 좌지우지 되는 것이었다. 문제가 쉽든 어렵든 상관없는 나의 성적 그래프에 담임선생님은 나의 수능을 걱정하셨었다. 기분이 좋은 날의 모의고사 등수는 꽤 상승했었고, 무언가 안 좋은 날엔 쉽든 어렵든 등수가 떨어지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다음 해에 있을 수능에 대한 부담감과 걱정이 커져갔었다. 그 전까지는 나의 성적에 대한 큰 걱정을 갖지 않았고, 또한 당연히 내가 원하는 대학에 쉽게 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남들과 같이 열심히 고3 생활해서 수능까지 무난히 치러서 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그런 나의 모의고사 성적표들 앞에서 나는 여러 고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나는 교대를 갈 지 다른 사범대학을 갈 지도 망설이고 있을 때였었다. 그러다가 내가 내린 결정은, 수능을 포기하고 수시 1학기로 대학을 가자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교대를 포기한 것이었다. 교대는 수시 1학기를 지원할 수 없었기 때문에 사범대학을 가서 선생님이 되겠다는 것으로 생각을 굳혔었다. 그때의 나의 치즈는 “수시 1학기 합격”이었던 것 같다.나에게는 새로운 모험이었다. 많은 친구들이 수능공부에 매진하던 고2 겨울방학 때, 나는 내 목표를 위한 공부를 시작했었다. 수시 1학기에 지원할 대학을 알아보고, 혼자 내신 성적의 퍼센트를 매겨 학과의 우선순위를 정해놓았었다. 그리고, 필요한 서류를 알아보고 조금씩 자기소개서와 면접준비를 해나갔다. 내 주변의 아이들은 지금껏 해왔듯이 꾸준히 수능준비를 해나갔고, 나는 그런 모습에 불안감을 느끼기도 했었다. 수시 1학기에서 떨어진다면, 나는 다시 주변 친구들처럼 수능 공부에 매달려야 하는데, 만약 그때 시작한다면 변함없이 꾸준히 공부하던 친구들에게 많이 밀릴 것 같단 생각 때문이었다. 그래서 더욱 독하게 수시를 준비하였고, 수시 1학기 아니면 대학을 못 간다는 생각으로 고3을 맞이하였다.수시 1학기 원서를 낼 때까지도 정말 많은 고민을 해야 했다. 선생님이 되고 싶었지만, 대학에 가기 위해서 성적에 맞는 학과를 지원해야 함에 있어서 갈등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담임선생님하고의 갈등도 무시할 수 없었다. 담임선생님께서는 성적이 아까우니 하향지원하지 말고 상향지원하라고 하셨고, 나는 수능에는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안전하게 낮춰서라도 대학에 가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 여러 갈등으로 최종적으로 6개의 학교에 원서를 내게 되었었다. 연세대 이학계열, 홍대 수학교육학과, 이대 과학교육학과, 고대 화공과, 성균관대 화공과, 한양대 화공과. 이렇게 지원하게 되었는데, 고대, 성균관대, 한양대는 선생님이 되겠다는 것을 약간 누르고 하고 싶은 화학에 초점을 맞춰 원서를 썼었다. 그리고 이대는 수학교육학과 과학교육학과중 고민을 하다가 안전하게 하향 지원하여 쓴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연세대는 사범대학이 아니었기에, 이학계열에 들어가서 교직이수를 하여 선생님이 되겠다는 목표 하에 원서를 쓰게 되었다. 그런데, 정말 알 수 없는 결과가 나왔었다. 이대가 먼저 발표가 났는데, 믿고 하향 지원했던 것이 1차에서 떨어진 것이었다. 그리고, 이대 과학교육학과 보다 높은 홍대와 연세대 성균공대에 합격을 하였다. 합격한 것은 정말 기뻤지만, 마지막까지도 큰 갈등을 해야 했다. 홍대 수학교육과와 연세대 이학계열 사이에서의 갈등이었다. 홍대를 간다면, 내가 원하는 선생님이 되기란 다른 것에 비해서 쉬울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어렸을 때부터 연세대를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고 분위기나 캠퍼스 등에 있어서 연세대가 더 끌렸었다. 만약 연대 이학계열에 들어간다면, 과를 정하고 교직을 이수하는데 더 큰 노력을 해야한 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런 고민 중 내가 내린 결정은 연세대였다. 그리고 이렇게 벌써 2학년이 되어 화학과란 전공을 선택하여 대학생활을 하고 있다.내가 대학을 들어오기 전만 해도 나의 치즈는 정말 많이 변하고 그에 따라 많은 갈등을 했어야 했다. 그에 따라 나 자신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보면 “치즈냄새를 자주 맡아보면 치즈가 상해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란 글을 볼 수 있는데, 나는 이런 대목들을 생각하면서 나 자신과 나의 목표를 많이 점검하고 분석하여 고쳐야 할 때가 되면 새로운 목표를 위한 방향으로 전환했었다. 그것이 내가 지금 이런 대학생활을 할 수 있는데 도움이 된 것이라고 본다.여전히 나의 치즈는 지금도 변해가고 있다. 현재 나의 치즈는 2학기 말에 있을 교직시험에 합격하여 교직이수를 할 수 있는 자격을 얻는 것이다. 학점과 면접이 그 조건이기 때문에 그것에 맞춰 노력을 해야 한다. 하지만 요즘 또 새로운 치즈를 찾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란 불안감을 갖고 있다. 교직을 이수할 수 있는 학생을 뽑는 비율이 줄어들었고 그만큼 더 어려워졌기 때문에 만약 내가 합격하지 못한다면 새로운 길로 방향전환을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일단 교직 자격을 얻기 위해 학년 말까지 노력을 하고 만약 합격하지 못한다면, 따로 교직 공부를 하여 임용고시를 준비할 생각이다. 혹은 화학과의 특성을 살려 새로운 직업에 대한 고민을 해볼 생각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 때 다시 이 책을 읽고 나 자신을 바라볼 계획이다. 아마도 다시 읽을 때엔 지금과 또 다른 생각과 느낌으로 다른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독후감/창작| 2006.08.10| 3페이지| 3,000원| 조회(6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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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학 자기소개서]연세대 자기소개서
    수험번호KCZ20011자 기 소 개 서? 지원자 기재사항성 명주민등록번호고등학교연 락 처전화번호 : 휴대전화번호 :지원 모집단위서울캠퍼스 이학계열(과)원주캠퍼스 학부(과)2004년 06 월 03 일지원자 자필 서명연세대학교 총장 귀하1. 자기소개서는 평가 요소로서 중요한 자료이므로 반드시 본인이 작성하여야 하며, 사실에 입각하여 정직하게 자신의 능력이나 특성, 경험 등을 기술하십시오.2. 청색, 흑색 필기구(연필 제외)를 사용하여 자필로 작성하거나, 워드프로세서로 작성하십시오.3. 반드시 본 서식을 사용하여 작성하십시오.(서식은 본교 홈페이지에서 내려 받거나 복사하여 사용할 수 있습니다.)4. 분량은 정해진 서식(2매)을 초과해서는 아니 되며, 워드프로세서를 사용할 경우 폰트 크기는 ‘10’으로 작성하십시오.5. 기술 범위는 본 서식에 있는 내용에 한하며, 3번 문항과 4번 문항의 경우 한 가지 주제만 선택하여 기술하십시오.6. 자기소개서를 작성한 후 입학원서와 함께 일괄 제출하십시오.7. 표지와 본문이 분리되지 않도록 좌측 상단을 묶어 주십시오.8. 자기소개서는 입학 전형 및 입학 후 학생 지도 자료로 활용되며, 비공개 문서로 관리될 것입니다.수험번호KCZ200111. 남들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장점(특성 혹은 능력)과 보완 ? 발전시켜야 할 단점(특성 혹은 능력)에 대하여 기술하십시오(자신의 장점을 발휘할 수 있었던 사례와,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기울인 노력이 있다면 구체적으로 설명하십시오).나의 장점은 매사에 적극적이고 경험을 중시하여 많은 활동을 한다는 것이다. 또한 맡은 일에서 만큼은 인정을 받고자 열심히 하는 ‘악바리’ 근성이 있다는 것이다.그것을 단적으로 잘 보여주는 예가 있는데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학급임원을 해온 것이다. 모든 일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여 초등학교 시절 “조그마한 것이 당당하다.”는 평을 받으며 전교 어린이 회장과 걸스카우트 최고지위인 대대보장까지 올랐었다. 중학교에서는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선거준비를, 고등학교에 올라와서는 총 학생회 홍보부장으로, 선거관리부위원장으로 활동하였다. 빼지 않고 적극적인 장점으로 대인관계를 넓힐 수 있었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 여러 가지를 얻을 수 있었다.반면에 나의 단점은 천성적으로 잠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나는 한마디로 ‘새 나라의 어린이’ 이었다. 중1말까지 취침시간이 9시이었던 나는 여러 가지 피해를 입었기에 지금껏 가장 큰 고민사항과 단점이 되어 왔다. 그것의 피해는 9시 이후의 드라마나 프로그램을 소재로 이야기하는 친구들로부터 대화상대가 될 수 없었던 것이었고 대인관계를 중시하는 나에겐 엄청 큰 타격이었다. 또한 성적에도 관심이 많고 여러 활동에 참여하려는 나로서는 잠이 큰 걸림돌이었다.이것을 느낀 후부터 단점을 고치기 위해 여러 방법을 시도하였다. 우선 10시까지 학원수업을 들으며 성적향상을 위해 잠을 참기 시작했다. 그래도 다른 학생들과 비교했을 때 잠이 많았기에 시험기간에는 아예 단점을 피하는 방법을 사용했고 점차 피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님을 인식한 후엔 새로운 방법을 해나갔다. 내가 찾아낸 최상의 방법은 스트레칭과 다이어트운동이었다. T?V를 보면서도 할 수 있었고 잠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었다. 고3인 지금 아직도 잠이 많은 편이지만 끈임 없이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나중에 기회가 주어진다면 잠으로 고민하는 다른 학생들에서 잠을 이겨낸 방법과 잠을 피한 공부법을 전해주고 싶다. 사람이 부쩍 대는 지하철에서도 서서 자는 한 소녀의 잠을 이긴 이야기를 말이다.2. 고등학교 재학 기간 중 학업 이외의 활동 영역(사회봉사 활동, 교내 ? 외 클럽 활동, 단체 활동, 취미 활동, 문화 활동)에서 가장 소중했던 경험을 소개하고, 이러한 경험이 자신의 성장에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 기술하십시오.초등학교시절부터 여러 활동을 해온 나에게 최고의 추억은 총 학생회에서 활동한 것이다.고등학교에 입학하여 면접을 치룬 뒤, 홍보부차장이란 직책을 맡게 되었다. 합격소식을 받은 순간 면접 시 학생회란 학생을 태운 학교란 운송수단이 원활히 운행될 수 있도록 하는 윤활유와 같은 존재라 말하고 좋은 윤활유가 되겠다고 한 약속이 생각났다. 그리고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하고자 다짐하였고 활동을 하면서 힘든 일이 있을 땐 항상 이 약속을 떠올리며 2배로 열심히 해왔다.2년간 학교의 행사를 홍보하며 여러 소식을 전달하는 역할을 해왔다. 신입생 예비소집일 학교홍보, 대의원회의 홍보, 각종 대회홍보 등 여러 가지 임무를 수행하면서 훌륭한 임원이 되고자 노력하였다.학생회 활동 중 가장 생각나는 일은 수능시험 고3 선배들에게 힘을 주고자 했던 활동이다. 수능 선물을 준비하던 중 문제가 발생하여 빵집에서 앞치마를 메고 직접 찹쌀떡을 만들었던 때가 생각난다. 얼굴에는 밀가루가 묻고, 교복은 얼룩지고, 끼니는 망친 떡으로 때우는 고생 속에서 ‘선물이란 진심에서 우러나야 한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또한 학생회 임원들이 내 인생에 있어서 소중한 사람이 되었음을 느끼며 친목을 다질 수 있었다. 수능 날에는 아침 5시 반까지 와서 선배들에게 힘이 되고자 응원을 하였다.그 밖에도 스승의 날에는 교문 앞에서 선생님 한분 한분께 인사로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였고 현충일에는 국립묘지에서 참배를 하는 등 여러 경험을 하였다.이런 여러 가지 활동을 하면서 비난을 받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것들을 감수하면서 임원끼리 뭉쳐 좋은 결과를 맺고자 노력하였고 일을 마무리 지을 때는 보람된 삶을 살고 있음을 느꼈다. 비록 나쁜 평을 들을 때에는 속상하기도 했지만 그런 경험이 있었기에 나 란 사람이 강하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단체생활의 중요성을 느꼈고 진실한 사람의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학생회 임원으로 일하고 있고 현재는 홍보부장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이 자리가 나에게 있어 정말 소중한곳 임을 느낀다.수험번호KCZ200113. 다음 중 하나를 선택하여 □ 안에 ∨표를 한 후, 그 주제에 맞게 자유롭게 기술하십시오.∨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친 가장 중요한 사건이나 경험을 설명하고, 그것이 자신의 가치관 혹은 인생관에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를 기술하십시오.고등학생 시절 자신이 겪었던 가장 큰 위기 혹은 좌절 상황을 설명하고, 그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과정에서의 자신의 감정과 노력을 기술하십시오.고등학생 시절 자신이 가장 관심을 기울였던 사회 문제가 무엇인지 설명하고, 그 문제의 해결을 위해자신이 앞으로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를 구체적으로 기술하십시오.중3시절 집안에 가장 큰 고난이 있었는데 아버지께서 교통사고를 당하신 것 이었다. 병원응급실에서 본 피범벅으로 누워있는 아버지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큰 병원임에도 불구하고 접수가 되지 않았다고 피조차 닦아놓지 않은 의사들을 보았을 땐 너무 많이 화가 났었다. 그때까지 교사가 장래희망이었던 나는 새로운 다짐을 하였다. 그런 의사들과 차원이 다른 진정한 의사가 되기로 진로를 바꾸었다. 적성에 맞지도 않는 의사가 되겠다고 다짐한 나는 흔들릴 때면 그 시절을 생각하며 마음을 바로잡았었다.그러던 중 아버지는 공무원이란 직업을 그만두셨고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진로문제로 고민하던 나에게 아버지는 솔직한 이유를 말씀해주셨다. 공무원으로 일해 오면서 세상이 변할수록 후배들과 다른 사람들 인심에서 고약한 냄새가 나서 더 이상 생활할 수 없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아버지는 내가 진로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을 하면서 행복을 느끼는 것이라며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하셨다. 또 세상에는 할 일이 많기 때문에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그것을 통해 여러 가지를 배우라고 하셨다. 그 후 내 가슴 깊은 곳에 숨겨두었던 교사란 장래희망을 다시 펴기 시작했고 여러 경험을 하고자 바쁘게 생활하였다. 나의 적성에 맞고 그동안 되고 싶었던 교사가 되어 다음세대에서는 그런 의사, 그런 공무원들이 나오지 않도록 교육시키겠다고 다짐하였다. 이 일로 다양한 경험을 통해 배우는 삶을 살자는 인생관도 세울 수 있었다. 아버지는 현재 꿈을 위해 사업을 하고 계시고 나 역시 꿈을 향해 전진하고 있다.
    학교| 2006.07.31| 3페이지| 6,000원| 조회(3,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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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학 자기소개서]성균관대 수시 자기소개서.
    2005학년도 수시1학기신입생 모집요강Ⅰ. 모집단위 및 모집인원 2Ⅱ. 전형일정 3Ⅲ. 지원시 유의사항 3Ⅳ. 학업우수자(면접형) 4Ⅴ. 교과우수자(논술형) 5Ⅵ. 특기자 6Ⅶ. 제출서류 7Ⅷ. 전형료 7Ⅸ. 합격자 등록 8Ⅹ. 학교생활기록부 반영방법 8ⅩⅠ. 전화상담 및 교통안내12ⅩⅡ. 서식성균관대학교성균관대학교 수시1학기 전형을 한 눈에 !!!자신의 학업유형에 맞는 전형을 찾아보세요 !!!2005학년도 수시1학기 주요사항○ 접수기간: 2004.6.3(목)~6.7(월)○ 접수방법: www.uway.com/www.passok.co.kr/www.applybank.com○ 전형일정: 논술고사- 7.22(목)~7.23(금), 면접고사- 8.5(목)~8.6(금)합격자 발표- 1단계: 7.30(금), 최종: 8.13(수)전형유형학업우수자(면접형)교과우수자(논술형)특기자(영어/리더십/올림피아드입상자)모집인원?모집단위180명(인문,사회,법학,자연과학,공학,정보통신계열)180명(인문,사회,법학,자연과학,공학,정보통신계열,약학)영어특기자 20명(인문/사회)리더십 13명(사회/공학)올림피아드 6명(의예)지원자격1,2학년 학생부 반영교과 “평어평점 4.2 이상”인 자- 인문계: 국어,영어,수학,사회교과 전과목- 자연계: 국어,영어,수학,과학교과 전과목- 영어특기자 : 토익 900, 토플 250, 텝스 800 이상자- 리더십 : 총학생회장 출신자- 의예: 본교 수학과학경시 및 수학,물리,화학,생물올림피아드 3등 이내전형요소학생부 + 면접 + 자기평가서(60%) (30%) (10%)학생부 + 논술 + 자기평가서(40%) (50%) (10%)학생부 + 실적 + 면접(10%) (60%) (30%)전형방법- 모집인원의 50% 학생부와자기평가서로 최종선발- 모집인원의 1배수 면접 실시- 1단계성적(70%) + 면접(30%)- 학생부, 자기평가서, 논술고사 성적에 의한 총점 선발- 모집인원의 3배수 면접 실시- 1단계성적(70%) + 면접(30%)학생부 반영- 활용지표: 평어 60% + 석과목 / 자연계: 국어, 영어, 수학, 과학교과 전과목) 전체 평어 평점평균이 4.20 이상인 자(단위수 반영)○ 국내 고교 1, 2학년 학생부 성적이 2개 학기 이상 있을 경우에만 지원가능2. 전형요소 및 반영비율학교생활기록부자기평가서면접고사합계예시1단계60%10%-70%- 모집인원이 16명인 법학과의 경우,- 1단계 성적만으로 상위 8명 최종 선발- 후 순위 16명이 면접에 응시, 상위 8명 선발2단계1단계 성적 70%30%100%3. 선발방법○ 무시험 선발: 모집인원의 50%를 1단계 전형(학생부와 자기평가서 성적)만으로 최종선발○ 1단계 선발: 무시험 선발인원 50%를 제외한 나머지 지원자 중 학교생활기록부와 자기평가서 성적으로 면접고사 대상자 선발(모집인원의 1배수) 단, 무시험 선발인원을 제외한 나머지 지원자가 모집인원의 1배수를 초과하지 않을 경우, 전원 ‘면접고사 응시자격’ 부여○ 최종 선발: 1단계 성적과 면접고사 성적에 의한 총점순으로 선발○ 동점자 선발기준① 학생부 반영교과 2학년 성적이 높은 자② 학생부 반영교과 1학년 성적이 높은 자③ 면접고사 성적이 높은 자※ 1. 1단계 사정시에는 ①과 ②의 순서로 적용합니다.※ 2. 상기 기준에도 불구하고 동점자 발생시에는 해당자 전원을 선발합니다.4. 면접고사○ 1단계 합격자 및 면접대상자 발표: 2004. 7. 30(금) 14:00○ 일자: 2004. 8. 5(목)~8. 6(금)○ 장소: 2004. 7. 30(금) 14:00, 입학안내 포탈(http://admission.skku.edu)에 게시○ 평가방법: 고교 학업을 정상적으로 수행한 것을 전제로 한 기초수학능력 측정(통합교과형)○ 면접시간: 1인당 15분 내외○ 준비물: 수험표, 신분증(주민등록증, 학생증, 여권 등), 필기구5. 제출서류○ 입학원서 1부, 학교생활기록부 1부, 자기평가서 1부○ 서류제출 방법 및 유의사항은 p.7을 반드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Ⅴ. 교과우수자(논술형)1. 지원자격○ 2005년 2월 고교 졸업예정자(조기졸업예정을 제출하여야 합니다.3. 수학?과학경시 및 올림피아드입상자 전형 지원자는 수학?과학부문의 영재성을 입증할 수 있는 추가의 입상실적에 대하여 면접 기초자료로 사용하오니 증빙서류를 제출하기 바랍니다.4. 학교생활기록부와 입학원서에 기재한 주민등록번호 또는 성명이 다른 지원자: 주민등록초본 1부 제출5. 자기평가서의 우수실적 증빙서류는 자기평가서 뒷면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Ⅷ. 전형료1. 전형료: 70,000원 (인터넷 접수 수수료는 본교에서 부담합니다.)2. 전형료 반환학업우수자(면접형) 및 특기자 전형에 지원하여 1단계 사정에 불합격하였을 경우,서류전형 및 공통경비를 제외한 30,000원을 전형료 반환계좌로 환불합니다.Ⅸ. 합격자 등록1. 기간: 2004. 8. 23(월) ~ 8. 24(화) … 2일간2. 장소: 우리은행 전국 지점3. 합격 및 등록관련 유의사항가. 입학성적이 본교가 설정한 수준에 미달하거나 지원자격 부적격자로 판정된 자는 지원인원에 관계없이 선발하지 않습니다.나. 고교 졸업예정자가 졸업하지 못하는 경우와 입학원서 및 제출서류에 허위사실을 기재하는 경우 입학 후에라도 합격 및 입학을 취소합니다.다. 고사시간에는 휴대용 무선통신기기를 사용할 수 없으며, 위반할 시에는 부정행위로 간주합니다. 또한 커닝, 대리시험 등 여타의 부정한 방법으로 합격 또는 입학한 사실이 확인 될 경우에는 입학한 후라도 합격 또는 입학을 취소합니다.라. 전염성 질환을 가진 자는 선발하지 아니할 수 있습니다.4. 미등록 충원 및 추가합격에 관한 유의사항가. 선 순위 합격자가 등록개시일 이전에 등록 포기할 경우 추가합격자를 선발할 수 있습니다. 이 때 본 대학이 취한 각종 방법으로도 연락이 되지 않는 자는 선 순위의 예비후보자라 할지라도 미등록 충원대상에서 제외합니다.나. 등록을 포기하고자 하는 합격자는 2004. 8. 20(금) 17:00까지 성균관대학교 입학관리팀으로 등록 포기각서를 제출하여야 합니다.제출처: ? 110-745 서울시 종로구 명륜동3가 53번지 성균관대학교하8591.0391.091.077.5 이상224.00% 이하9588.0388.088.075.0 이상335.00% 이하10585.0385.085.072.5 이상347.00% 이하11580.0380.080.070.0 이상560.00% 이하12575.0375.075.067.5 이상575.00% 이하13568.0368.068.065.0 이상785.00% 이하14559.0359.059.062.5 이상985.00% 초과15550.0350.050.062.5 미만9나. 평어 반영방법평어 평점등 급점 수검정고시평균점급간 점수차학업우수자교과우수자특기자4.80 이상1600.0400.0100.097.0 이상-4.65 이상2599.0399.099.096.0 이상14.45 이상3597.0397.097.094.0 이상24.30 이상4594.5394.594.592.0 이상2.54.20 이상5592.0392.092.089.0 이상2.54.10 이상6589.0389.089.085.0 이상34.00 이상7586.0386.086.080.0 이상33.80 이상8583.0383.083.077.5 이상33.50 이상9579.0379.079.075.0 이상43.35 이상10575.0375.075.072.5 이상43.00 이상11571.0371.071.070.0 이상42.70 이상12566.0366.066.067.5 이상52.50 이상13561.0361.061.065.0 이상52.00 이상14556.0356.056.062.5 이상52.00 미만15550.0350.050.062.5 미만6ⅩⅠ . 전화상담 및 교통안내1. 상담전화가. 입학상담: 입학관리팀나. 인터넷상담: http://admission.skku.edu다. 장학금?등록금?기숙사?학사 상담(1) 장학안내(학생지원팀): 02)760-1075(2) 등록금안내(재무팀) : 02)760-1122(3) 기숙사 안내(기숙사)? 인문사회과학캠퍼스: 고시반, 양현재 (☎ 02)744-1225)? 자연과학캠퍼스: 봉룡학사(☎ 031)290-5181~5182), 2년간 학교의 행사를 홍보하며 여러 소식을 전달하는 역할을 해왔다. 신입생 예비소집일 학교홍보, 대의원회의 홍보, 각종 대회홍보 등 여러 가지 임무를 수행하면서 훌륭한 임원이 되고자 노력하였다. 이런 여러 가지 활동을 하면서 비난을 받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때마다 임원끼리 뭉쳐 좋은 결과를 맺고자 노력하였고 일을 마무리 지을 때는 보람된 삶을 살고 있음을 느꼈다. 비록 나쁜 평을 들을 때에는 속상하기도 했지만 그런 경험이 있었기에 나란 사람이 강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이런 나의 빼지 않고 적극적인 면이 있었기에 대인관계를 넓히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 여러 가지를 얻을 수 있었다. 또한 리더의 기질을 제대로 갖추게 해주었고 이로써 어떤 일을 하든 자신감 있게 해결하게 되었다.반면에 나의 단점은 천성적으로 잠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나는 한마디로 ‘새 나라의 어린이’ 이었다. 중1말까지 취침시간이 9시이었던 나는 여러 가지 피해를 입었기에 지금껏 가장 큰 고민사항과 단점이 되어 왔다. 그것의 피해는 9시 이후의 드라마나 프로그램을 소재로 이야기하는 친구들로부터 대화상대가 될 수 없었던 것이었고 대인관계를 중시하는 나에겐 엄청 큰 타격이었다. 또한 성적에도 관심이 많고 여러 활동에 참여하려는 나로서는 잠이 큰 걸림돌이었다.이것을 느낀 후부터 단점을 고치기 위해 여러 방법을 시도하였다. 우선 10시까지 학원수업을 들으며 성적향상을 위해 잠을 참기 시작했다. 그래도 다른 학생들과 비교했을 때 잠이 많았기에 시험기간에는 아예 단점을 피하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방법으로 시험이 일찍 끝나 집에 오면 1시간정도 밥을 먹고 휴식을 취한 뒤 바로 시험공부를 시작하였다. 쉬지 않고 하여 11시쯤 완전히 마스터 한 후 잠자리에 들곤 하였다. 대신 아침잠은 이길 수 있었기에 5~6시쯤 일어나 한 번 더 점검하는 공부법을 사용하였다. 그 결과 성적문제는 해결 할 수 있었고 오히려 더 상승세를 보였다. 그러나 점차 피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님을 인식한 후엔 새로운 방법을 해나갔다. 함.
    학교| 2006.07.31| 23페이지| 6,000원| 조회(7,5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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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후감]브루스 커밍스의 한국현대사 읽고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현대사란 책은 제목 그대로 저자 브루스 커밍스가 바라본 시각에서 한국현대사를 서술한 역사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예전부터 역사나 사회 쪽으로는 흥미가 별로 없었고, 게다가 역사를 너무 어려워하여 일반적인 지식이 많이 부족했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읽으면서도 한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어렵게 느껴지고 잘 몰랐던 부분이 많았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저자 브루스 커밍스는 한국인도 아닌 미국인이면서 한국의 역사를 이렇게까지 잘 알고 있고, 또 자신만의 정확한 소견이 있다는 것이 훌륭하다 느껴졌다. 한국인인 나 자신이 자신이 국가적 역사를 잘 모르고 있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꼈고, 뒷부분을 읽어가면서 과거 보다는 현재에 초점의 맞춰, 한국의 위치와, 우리나라를 바라보는 다른 나라의 시각, 그리고 나와 같은 국민들의 역할 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리고 한국의 역사를 한국어로 한국인들에게 편찬했다는 점에서 그의 용기를 크게 삼게 되었다. 한국에는 그보다 한국의 역사를 잘 안다고 생각하는, 그리고 실제로 겪은 한국지식인층이 버젓이 있고, 조그만 잘못이라도 발견되면 민감해지는 북한과의 이야기 등, 다루기 어려운 소재였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의 의견과 비평을 소신껏 써왔다는 점이 정말 대단하게 느껴졌다. 한국인인 나보다도, 한국의 위치를 잘 알고, 한국의 입장을 잘 알고 있는 그를 통해 다른 새로운 사실은 물론이거니와 가지고 있던 생각까지 바꿀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내가 이 책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보고 말하고 싶은 것은, 8장의 태양왕의 나라 : 북한과 더불어 10장의 세계 속의 한국의 위치에서의 북한과의 관계와 통일적 요소를 서술한 부분이고, 또 하나 9장의 미국의 한인들이란 소제목의 부분이다. 이 책은 총 10장으로 되어있는데, 한민족의 기원에서부터 조선왕조, 분단, 민주주의 운동, 그리고 오늘날에 오기까지의 역사적 일들을 순차적으로 서술해 오고 있다. 앞부분의 역사적인 면은 다 읽지는 못했지만, 책이나 교과서등을 통해 많이 들어보고 접해본 부분이라 쉽게 넘길 수 있었는데, 미국인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북한과의 관계, 한국의 위치 등, 현대적인 요소는 나에게 있어 참신한 부분이었다.먼저, 9장의 미국의 한인들 부분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이 장에서는 소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미국에 살고 있는 한국계 미국인들에 대해 쓰여 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그들은, 한국인인가 미국인인가 란 질문이 계속 되새겨졌다. 이 질문은 독자나 다른 사람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실제 한국계 미국인들에게도 해당되는 질문이라 생각했다. 정작 그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1세이건, 2세이건, 심지어 1.5세이건 간에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수없는 고민을 할 것이라고 본다. 1세라면, 그나마 한국인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우세할 것이지만, 그렇다면 2세는 자신을 미국인이라고 생각할까? 그렇다면, 그들은 그들의 부모를 거부하는 것이 되는 것인가? 정말 그들이 미국인이라고 생각한다 할지라도 그들이 미국이라는 한 사회에서 진정한 미국인이 되고 그러한 대접을 받을 수 있을까? 이것이 저자가 알리고 독자들로 하여금 생각해 볼 수 있게끔 제시한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처음부분을 보면, 한국계 미국인들은 20세기의 다른 어떤 국민들만큼 이나 복잡하고 다양한 역사를 지닌 다양한 인종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한 그들 안의 생각일 뿐 이었다. 특히, 미국인들에게는 전혀 생각되지도 못하는 부분이었다. 한국인이, 중국인, 일본인과 외향상 비슷하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한국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서양인, 즉 미국인, 프랑스인 정도는 구분한다. 또한 중국인, 일본인도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서로 떨어져 무리를 짓고 살아가는데 어찌 다른 국민이 같게 보일 수 있을까? 이것은 관심유무에 대한 문제라고 생각하였다. 말 그대로, 미국인들은, 서양인들은 한국이라는 나라와 한국인에 대해 별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책을 읽으면서 한국인들이 처음 미국에 정착했을 때 받은 대우와, 그들의 생활면을 보면서, 앞서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심각함을 느낄 수 있었다. 처음에 우리 한국인들은 지금 우리가 막 부리고 있는 외국인노동자와 같은 위치였다고 보면 되겠다. 책 내용 중 호러스 앨런이 하와이 지사인 쌘포드 돌에게 한국인에 대하여 말한 부분이 생각난다. “한국인들은 인내심이 있고, 근면하며, 오랜 복종의 습관으로 인해 다루기 쉬운 유순한 인종이다.” 이 말은 언뜻 보면 앞부분은 인내심, 근면 이런 말들로 좋은 평 인거 같긴 하나, 이 말을 제대로 들여다보면, 한국인은 그들이 마음껏 부릴 수 있는 한낮 노동자에 불과한 존재였던 것이다. 실제로 많은 한국인들이 미국에서 돈을 벌기 위해 사탕수수농장 노동을 많이 했다 하는데, 이는 백인들이 도저히 할 수 없는, 하기 싫어하는 일이었기에 가능한 많은 일자리가 주어졌고, 저임금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은 그 일을 해왔다는 것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현대의 모습과 견주어 외국인 노동자를 대하는 우리시대를 바라볼 수 있었다. 종종 한국사업주들이 외국인 노동자를 학대하고, 무자비로 일을 시키는 자료나 보도를 본 적이 있다. 현대 사회에서 많은 논란이 되는 부분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것이 한국인들이 미국인들에게서 겪은 모습이라니...... 그런 불의를 겪은 민족이 이제는 어느 정도 성장했다고,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는 말이 생각나게끔 행동을 하다니...... 정말 부끄러운 대목이었다. 이 부분뿐만 아니라 9장의 많은 부분에서 한국인이 인종적인 우대는커녕 그들이 멸시하는 흑인과 별 다를 바 없는 존대를 받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백인들이 흑인을 멸시하는 것은 정말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 한국계 미국인들 또한 같은 대접을 받았다니...... 이런 과거적 사실이 정말 애처롭게 느껴졌기는 하나 더 가관인 사실이 눈에 띄었다. 점차 자리를 잡기 시작한 한국인들이 오히려 같은 처지에 있던 흑인을 자신보다 아래로 두고 차별을 한다는 점이다. 차별을 받아본 자들이 어찌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는지...... 그의 말에 따르면, 미국계 한국인들은 인종의 순위를 매길 때 자신, 즉 한국인을 백인 다음으로 두고, 흑인을 가장 천한 인종으로 여긴다고 한다. 정말 아이러니하거니와, 낯부끄러운 사실이었다. 미국에서 한국인은 “모범적인 소수민족”에 불과했다. 앞서 한국인 자신을 다양한 개성을 지닌 존재란 생각이 우스울 만큼 미국인은 한국인에 대한 시선을 한가지로 통합시켰고, 진실로 그런 양, 더 바꾸지도 고양시키지도 않았다. 그러나 열심히 일을 하는 한국인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면서 “약삭빠른 아이들”이란 인식을 조금 변화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동양의 검둥이”란 취급을 사라질 수 없었다고 한다. 김난영의 소설 을 인용한 부분이 있어서 글을 읽는데 더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었다. 소설적인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의 한국계 미국인들의 위치와 상황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오늘날 우리는 미국에 대해 많은 반미감정을 가지고 있다. 젊은층으로 갈수록 미국에 대한 저항과 비판을 많이 하게 된다. 미국의 연륜이 있으신 어른들이 생각하기에는 미국은 한국을 살려주고 키워줬다고 생각하기에 이런 젊은층의 저항이 배은망덕한 것이라고 부정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저자 브루스 커밍스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런 저항으로 비로소 한국이 제대로 된 독립국가가 되고, 선진국을 향한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불공평한 입장을 자신의 목소리로 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의미인지 나 또한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반미, 친미, 라는 용어가 등장했다는 것 자체가 우리 한국인의 정신이 트기 시작했다는 것 아닐까? 현재, 미국에 살고 있는 한국계 미국인들 중에는 사업적으로 성공한 많은 엘리트, 자수성가 모델들이 많이 있다. 박찬호가 메이저리그에서 활동하는 최초의 한국인이 되었을 때, 많은 미국인들은 그가 한국인인지, 성이 박인지도 잘 몰랐고 심지에 신문의 머릿기사도 “김치를 먹는 최초의 다저스 선수” 였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 많은 미국인들이 박찬호를 환호하고 그를 응원하게 되었다. 또한 한국인 음식점들도 많은 대세를 따라 크게 성장하고 있으며 일류대학의 젊은 한국인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사회가 변했다고 해서, 앞서 말한 “나는 한국인인가? 미국인인가?” 라는 질문이 없어질 수 있었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많은 한국계 미국인들은 그들의 지위가 아무리 올라갔다고 하더라도, 미국인과 한국인이라는 딜레마 속에서 많은 갈등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많은 한국학생들이 유학을 지향하고 있다. 아무리 반미라고 할지라도 많은 젊은이들은 외국생활을 꿈꾸며 특히 미국을 이상국가라고 생각하며 유학을 그리고 있다. 나또한 기회가 주어진다면 유학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인지해야할 것은 무엇인지. 우리는 개성 있는 다양한 인종이라는 점, 하나로 묶어 설명할 수 있는 저가치의 존재가 아니라는 것, 한국가의 떳떳한 국민이라는, 선진국 어디에도 굴하지 않는 한 민족이라는 점을 명심하고 어깨를 피고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본다.
    독후감/창작| 2006.07.31| 4페이지| 4,000원| 조회(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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