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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주탐사계획
    보이저호▷보이저계획목성·토성 및 그 위성의 관측을 목적으로 한 미 행성탐사계획. 1977년 9월 보이저 2호를 쏘아 올렸다. 보이저 2호는 파이어니어탐사체보다 500㎏ 이상 무겁고, 안테나 지름도 3.66m나 되어 파이어니어 안테나보다 약 1m 길며, 관측기기의 중량도 3배 이상인 105㎏을 탑재하였다. 자세제어방식(姿勢制御方式)도 정밀도가 높은 3축제어방식을 채택하여 사진을 촬영할 때의 자세제어는 0.05°였다. 관측기기는 탐사체의 본체에서 뻗은 붐 선단(先端)의 플랫폼에 부착되어 있다. 이 플랫폼은 본체의 자세와는 독립적으로 그 방향을 제어할 수 있어, 임의의 각도에서 사진촬영이 가능하였다. 보이저 1호도 같은 형의 탐사체로, 2호보다 16일 늦게 쏘아 올렸으나, 궤도 관계로 2호보다 약 4개월 빨리 목성에 접근하여 목성으로부터 28만 6000㎞되는 곳을 통과하였고, 2호는 64만 3000㎞되는 곳을 통과하면서 목성 표면의 대적반(大赤斑), 대기의 요란(擾亂), 그에 따르는 소용돌이의 움직임 등의 상세한 상(像)을 송신해 왔다. 또한 보이저 탐사체의 카메라는 목성의 4개의 위성인 가니메데·칼리스토·유로파·이오 등을 상세히 촬영하는 데 성공하였다. 또 1호가 목성에서 멀어질 때, 노출시간을 길게 하며 촬영한 사진으로부터 목성에도 가는 고리구조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2개의 보이저호는 목성의 중력장의 힘으로, 다음 목표인 토성으로 향하였다. 1호는 1980년 11월 11일에 토성의 가장 큰 위성인 타이탄으로부터 4030㎞ 되는 곳을 통과하고, 타이탄의 대기가 질소로 이루어져 있음을 밝혀냈다. 그 밖에 토성고리의 상세한 구조 및 고리 안에 어두운 선이 방사상으로 뻗어 있다는 사실 등을 알아냈다. 2호는 1980년 11월에 토성과의 랑데부 후 탐측하였고 1986년 1월 천왕성 가까이를 통과하였으며, 1989년 9월에는 해왕성에 접근하였다.▷인간이 행성 탐사를 위해 우주선을 쏘아 올리기 시작한지는 40년이 훨씬 넘는다. 비록 실패했지만 1960년 10월에 러시아보이저 1호가 앞으로도 항해를 계속해서 태양계와 우주의 경계선인 태양경계면(Heliopause)을 통과하는 데는 약 10년이 더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플루토늄 원자력 에너지를 이용하는 보이저 1호의 동력원은 2020년 정도까지 작동할 것으로 예상되므로, 태양계의 끝을 벗어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된다.그렇다면, 보이저 1호와 같은 우주 탐사선은 어떻게 해서 그토록 먼 거리를 오랫동안 항해할 수 있을까? 가급적 적은 에너지로 행성에 갈수 있는 비행 방법과 궤도에 관한 아이디어를 처음으로 낸 사람은 독일의 월터 호먼이었다. 그는 1925년에 발표한 논문을 통하여 지구가 태양을 도는 공전궤도와 탐험하려고 하는 행성의 공전궤도를 타원으로 연결하는 새로운 비행궤도를 만들어 비행할 것을 제안하였는데, 이는 행성의 공전에너지를 이용하여 우주선을 최소의 에너지로 행성에 보낼 수 있는 효과적인 궤도로서 일명 ‘호먼 궤도’라고 불린다.모두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의 화성 탐사선 등은 가급적 호먼 궤도를 지켜왔다. 그러나 우주 탐사선 자체의 추진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탐사선을 목성 외곽으로까지 더욱 멀리 보내려면 호먼 궤도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이에 관한 해결책을 제시한 사람은 1961년 무렵 캘리포니아 공대 제트추진연구소에서 인턴 직원으로 근무하던 대학원생 마이클 미노비치였다. 그는 우주선의 궤도를 잘 설계하여 행성에 접근시키면, 그 행성의 인력에 의하여 끌려 들어가면서 속도가 빨라지고, 이후 행성을 스치듯이 지나가면 그 가속력 덕분에 더 먼 거리를 효과적으로 여행할 수 있다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하였다.이처럼 행성의 인력을 이용하여 우주선의 새로운 추진력을 얻는 방법을 ‘ 스윙 바이(Swingby)'라고 하는데, 특히 목성은 태양계 행성 중에서 가장 크고 무거우므로 이런 방법을 적용시키기에 매우 적합하다.사실 보이저 1호와 보이저 2호는 이른바 '그랜드 투어 계획'이라 불리던 목성 이후의 행성들을 탐사할 목적으로 계획, 제작된 것이었다. 1976년부년 전에 발사되었던 미국 NASA의 보이저 (Voyager) 1, 2호 우주 탐사선이, 4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작동 중이다. 1977년 8월 20일과 9월 5일에 각각 발사된 두 우주 탐사선은 아직도 우주의 처녀지를 지나서 태양의 영향이 줄어드는 우주공간을 향해 항해를 계속하고 있다."두 우주선은 약간의 노화 현상을 보이기는 하지만, 앞으로도 20년 이상 작동을 할 것 같다"고 NASA Jet Propulsion Laboratory의 보이저 시스템 엔지니어인 Tim Hogle씨는 말했다.보이저 1호는 지구로부터 78억 마일, 이보다 더 먼저 발사된 보이저 2호는 63억 마일 떨어져 있다. 애초에 1톤 무게의 이 우주선들은 목성과 토성을 방문한 후 1981년에 임무를 마칠 계획이었다. 그러나 NASA는 이들의 임무를 연장하여 보이저 2호는 해왕성과 명왕성을 탐사하였다. 1979년에서 1989년 사이 두 탐사선은 48개의 위성과 네 개의 행성을 조사하였다. "이 10년동안의 탐사는 아마도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임무였다"고 보이저 임무의 기획 담당자였던 Charles Kohlhase씨는 말했다.보이저 1호는 1980년 목성을 통과하면서, '태양계 행성들의 공전 궤도면'으로부터 위쪽으로 이탈하였다. 이로부터 9년 후 보이저 2호는 해왕성을 통과하면서 행성 궤도면의 아래쪽으로 이탈하였다. 오늘날까지 두 우주선은 태양으로 점점 멀어져 가는 항해를 계속하고 있다. 플루토늄이 붕괴하면서 얻어지는 열로 310와트의 발전을 하며, 지구로의 통신을 위해 23와트 송신기를 사용한다. 보이저 1호는 지구와 쌍방향 통신을 하는데 23시간이 걸리며, 보이저 2호는 18.5시간이 필요하다. 1980년도에는 300여명이 이 임무에 종사하였으나, 지금은 십 여명 정도가 이 임무를 맡고 있다.이미 십여 년 전에 태양계 최 외곽에 위치한 행성을 지나쳤지만, 태양계를 구성하는 마지막 물체와 작별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4만년을 더 여행해야 한다. 혜성 핵의 집합체인 Oort's cloud라고 로 기울어지는 것은 상층 대기의 안개 때문이다.보이저2호가찍은 천왕성보이저 2호는 해왕성에 성공적으로 접근한 후 이번 탐사의 최대 관심사인 트리톤 위성에 4만km까지 다가갔다. 이 과정에서 목성의 위성 이오나 천왕성의 위성 미란다에서처럼 보이저 탐사상 예기치 못한 광경이 목격됐다. 보이저 2호는 트리톤에 접근하는 과정에서 6개의 위성을 추가로 발견했다. 그리고 트리톤과의 만남을 끝으로 12년 동안 지나온 길을 벗어났다. 현재는 매년 4억7천만km씩 지구에서 멀어지고 있다.보이저2호가찍은 트리톤매리너호▷매리너계획화성·금성·수성에 무인탐사기 매리너를 보내 이들 행성의 사진촬영과 대기(大氣) 및 표면조사를 하는 미항공우주국(NASA)의 행성탐사계획. 매리너라는 말은 <항해자(航海者)>라는 뜻이다. 발사로켓은 1호부터 5호까지가 아틀라스 아제나형, 6호부터 10호까지는 아틀라스 센토르형이다. 1962년 7월 금성을 목표로 발사된 1호가 실패한 뒤 같은해 8월에 발사된 2호는 12월에 금성 근방 약 3만 5000㎞를 통과하였다. 금성은 두꺼운 구름으로 뒤덮여 있고 자기장(磁氣場)의 징후가 없으며 표면온도는 약 430℃로 낮과 밤의 변화가 거의 없다는 자료를 송신해 왔다. 1964년 11월 화성을 목표로 발사된 3호는 실패하였고 같은달에 발사된 4호는 1965년 7월에 화성으로부터 9600㎞의 거리를 통과, 화성 역시 자기장의 징후가 없고 표면 기압이 지구의 1% 이하임을 분명히 밝혔으며 21장의 사진도 전송해 와 화성 표면에도 달과 같은 크레이터가 있음을 알려주었다. 1967년 6월에 발사된 5호는 금성으로부터 4000㎞ 상공을 지나면서 대기를 관측하였고 1969년 2월과 3월에 발사된 6호와 7호는 화성으로부터 각각 3400㎞ 및 3500㎞ 상공을 통과하여 화성 표면 사진을 각각 75장(6호)·126장(7호) 전송해 왔다. 1971년 5월에 발사될 예정이었던 화성탐사기 8호는 발사에 실패했고 같은달에 발사된 9호는 중량 1030㎏의 대형탐사기로, 사상 최초로 지구 이지구의 안쪽에 있기 때문에 비행과정 도중에 태양중심 궤도로 진입할 때에 지구 궤도 속도보다 감속할 필요가 있다. 1973년 11월 3일 케이프케네디우주기지에서 발사된 매리너 10호는 태양중심 궤도로 진입할 때 금성 부근의 5300㎞인 곳을 통과하고, 금성의 중력장을 이용하여 궤도를 첨예하게 안쪽으로 구부림과 동시에 감속하였다. 그리고 1974년 3월 29일 수성에서 690㎞되는 거리까지 접근하여 최초의 관측을 하였다. 이 접근거리는 임의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나중에 2번의 근접관측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 주의 깊게 결정된 것이다. 첫번째 접근 후에 매리너 10호는 인공행성이 되어 태양을 도는 공전궤도로 진입하여 1974년 9월 22일에 두번째, 1975년 3월 17일에 세번째의 근접관측을 하였다. 이러한 3번의 근접관측에 의해서 고분해능사진(高分解能寫眞)을 포함해 많은 귀중한 관측데이터가 얻어졌다. 전송되어 온 사진의 총수는 2300장이며, 분해능은 20㎞에서 150m까지 다양하다. 매리너 10호의 탑재 관측기기로는 초점거리 1500㎜, 68㎜인 2대의 텔레비전카메라와 적외선복사계·자외선스펙트로미터·자기력계·플라스마측정기 등이다. 크기는 본체가 1.3×1.3×2.3m, 태양전지패널의 길이 8m, 자기력계붐의 길이 6m이다.▷매리너2호, 매리너4호-1962년 8월에 발사된 미국의 매리너 2호로서, 109일의 비행 후에 금성으로부터 3만 4000㎞ 떨어진 곳을 통과하며 금성의 표면온도와 그 대기의 구성 등을 측정하여 자료를 전송해 왔다. 1964년 11월 발사된 매리너 4호는 화성으로부터 약 9600㎞까지 접근하여 표면사진 21장을 전송해 왔지만 기대하였던 운하(運河)는 없었다 수성 최초의 수성관측사진, 미국 매리너10호 촬영, 1974년 3월 29일파이오니어호파이오니어계획탐사기(명칭 Pioneer)에 의한 달·행성 또는 행성간 공간의 탐사계획. 0호부터 2호는 미국 공군, 3호·4호는 미국 육군이 담당하였고, 그 이후는 NASA에 의해 행해졌다. 서베이어계획·하였다.
    자연과학| 2007.11.29| 9페이지| 3,000원| 조회(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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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럽배낭여행 체험수기
    해외체험학습 수기7월의 하늘은 잔뜩 흐리기만 했다. 공항으로 가는 버스 안, 잔뜩 흐린 창밖풍경만큼이나 내 마음도 옅은 불안함에 잡혀 있었다. 평소에는 느끼지도 못할 만큼 너무나 익숙한 환경에서 벗어남을 잘 알기에 오감이 서릿발처럼 곤두서 있었다. 언제 다시 배낭 하나에 의지해 낯선 환경으로 떠날 수 있을지, 이 기약없는... 그래서 더욱 설레이기만 하는 유럽으로의 배낭여행의 첫 걸음을 이제 막 내딛었다. 몇 번을 짐을 꾸리고, 다시 풀고 했었는지... 이젠 드디어 시작이다.중력을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 치는 비행기는 소음과 진동을 안고 날아올랐다. 어두컴컴한 창 아래로 인천공항의 야경이 반짝이고 있었다. 장장 9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경유지인 두바이에 도착했을 때, 이미 주위는 낯설기만 했다. 중동지역이니만큼 중동특유의 옷차림의 많은 사람들과 마주쳤다. 두바이에서의 4시간 휴식을 마치고 다시 런던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맡겼다.잠을 깨우는 승무원의 얘기에 눈을 떴을 때, 이미 런던 상공에 들어와 있었다. 12:00 개트윅공항에 약간 불안하게 착륙한 후, 우리는 입국심사대를 향해 부지런히 걷기 시작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런던으로 들어가기 위한 마지막 심사인 입국심사대 앞에 줄을 지어 서있었다. 한국사람들의 목소리가 아직도 많이 들리는 게 안정을 찾는데 도움이 되었다. 몇 가지 간단한 인터뷰를 마치고 공항을 빠져나왔다. 드디어 런던, 언젠가 한번은 와보고 싶었던 나라 영국에 첫 발을 내딛은 것이다. 한동안 넋을 놓고 둘러보고 있었으나 TV에서 자주 보았던 건물스타일과 주위에서 들려오는 영어가 환상에서 현실로 데려다 주었다. 정신을 바싹 차리고 가장 가까이 있는 ‘i'를 찾았다. 배낭여행자들의 등대역할을 해주는 인포메이션센터에서 런던의 맵을 얻은 후 숙소를 찾기 위해 도심으로 나가는 트레인에 몸을 실었다. 창밖으로 보여지는 영국의 정원모습들과 영국인들의 모습이 낯설기만 하다. 몇 번을 조사하고, 또 몇 번을 헤메인 후 라임하우스역근처에 숙소를 잡았다. 우리는 우선 배낭을 풀어헤치고 가장 편안한 복장으로 갈아입은 후, 첫 목적지인 런던타워로 향했다. 런던타워의 모습은 멀리서 보아도 웅장했다. 정말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었던 성을 직접 보고 있으니 신기하기만 하다. 하지만 이보다 더 신선한 충격은 주위의 런던 시민들이다. 자유롭고 활동적이며, 패션이 또 한 번의 문화적 충격을 가져다준다. 런던타워에 서려있는 과거와 현재를 각자 한국에서 준비해간 여행책자를 교환해보면서 공부도 하고, 또 여유롭게 공원을 거닐어도 보았다. 아직은 어려서 그런지, 문화재보다는 지나다니는 사람들사이에 느껴지는 정서와, 낯선환경이 주는 약간의 두려움과 자유스러움에 취해들었다. 우리는 조금 더 그러한 감성을 느껴보기 위해서, 템즈강을 끼고 걸어보기도 하였다. 물론, 원래 있었던 계획은 아니나 영국의 지하철이 워낙 변덕이 심하고 잦은 파업과 공사로 인해 지연이 되었기에 가질 수 있었던 소중한 기억이다. 템즈강을 끼고 피카디리 서커스로 걸으면서 한국에서는 가지지 못했던 자유로움을 한껏 느낄 수가 있었다. 아는 사람들도, 아는 언어도 들리지 않는다. 템즈강을 끼고 조깅하는 사람들의 친절한 인사를 받으며 우리는 트라팔가 광장까지 들어왔다. 트라팔가 광장은 이미 많은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다. 트라팔가광장을 내려다 보고 있는 내셔널갤러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다. 내셔널 갤러리에서 내려다 본 트라팔가광장의 저녁을 아름답기만 했다. 런던의 상징 2층 버스와 빨간 전화부스가 어우러져 한폭의 그림을 그려내고 있었다. 우리는 이후 내셔널갤러리에서 미리 공부해온 자료를 토대로 그림에 대한 해석을 제 각각 설명하며 감상했고, 트라팔가 광장의 사자상도 올라가보고, 또 유명한 펍을 찾아 헤메이면서 그저 즐거움과 신기함에 젖어 들었다. 펍에서는 우리도 동네 앞 펍을 찾은 영국인들마냥 즐겁게 떠들고 얘기하면서 런던에서의 생활을 즐겼다. 숙소에 들어오자 마자 곤한 잠에 빠져 들어버렸다. 이로 인해 시차부적응이란 단어는 사라져버렸다. 이튿날도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버킹엄궁에서 근위병교대식도 인산인해를 이룬 관광객들과 맞부딪혀가며 보고, 공원에 둘러앉아 아침에 싸온 빵으로 점심을 먹고, 또 저녁에는 피카디리 서커스에서 뮤직컬도 보았다. 이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했지만, 나를 가장 큰 충격에 빠뜨린 것은 이 나라의 교통문화였다. 보행자가 신호등을 무시하고 위험천만하게 도로를 건너다니는 것 이었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영국에서 보행자가 무단횡단을 하다가 사고가 났을 경우는 무조건 보행자의 과실이 인정된다고 하였다. 템즈강에서는 깜빡이고 있는 가로등을 보았는데 여기서는 무조건 보행자에게 교통의 우선권이 부여된다고 하였다. 쌩쌩 달리는 차도에 조심스럽게 내려서자 정말로 다들 멈추어 서는 것이 아닌가? 단 한대의 차도 내 앞으로 지나가지 않았다. 정말 한국에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였기에 너무나도 큰 충격이었다. 운전자들이 반드시 지켜주는 보행자 우선구역, 이는 교통에 대한 앞선 시민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되어졌다.런던에서의 마지막 밤. 우리는 타워브릿지로 향해가고 있었다. 휘황찬란한 불빛을 몸에 휘감고 있는 타워브릿지를 템즈강이 실어다 주는 여름의 뜨거움을 날려버릴정도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걷고 또 걸었다. 서울 한강의 야경보다는 휘황찬란하진 않지만 어딘지 모르게 웅장함이 느껴지는 타워브릿지와 주변의 아담하고 예쁜 풍경에 우리는 또 다시 젖어들었다. 운이 좋았었는지 마침 우리는 타워브릿지가 다리를 들어올리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영국에서의 마지막 밤을 이렇게 마무리하고 숙소에 돌아와 우리의 주목적지인 프랑스로 입성하기 위한 여러 서류를 챙겨두고, 또 그동안의 짐들을 다시 배낭에 정리한 후 마지막 밤을 아쉬워하며 잠이 들었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과 여행 할 수 있는 것이 너무나 기쁘고, 행복함에 내일 프랑스는 더욱 잊혀지지 않을 추억들로 꾸며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11:00 런던에서 저렴한 항공기를 이용해 프랑스 파리에 도착했다. 여기는 또 다른 언어가 귓가를 울린다. 훨씬 부드럽지만 높은음의 프랑스어가 신경을 곤두세우게 한다. 파리는 런던의 여름보다도 더운 것만 같다. 배낭을 울러멘 우리는 모두 더위에 지치기 시작했다. 영국과는 또 다른 느낌의, 또 다른 구조의 지하철을 타고 우여곡절 끝에 숙소를 찾아 들어갔다. 우리의 숙소는 북역에 있는 한국으로 말하자면 이태원같은 곳이었다. 유럽인들이 아닌 이 동네는 인도인들과 흑인들의 동네인 듯 했다.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다시 지하철을 타고서는 도심으로 나왔다. 기업견학은 내일로 미뤄두고 몽마르뜨언덕과 노틀담의 곱추로 유명한 노트르담 성당을 둘러보고, 씨테섬을 지도만을 보면서 걸어다니며 퐁네프의 다리도 거닐어보면서 영국과는 또 다른 프랑스만의 매력에 빠져본다. 몇 해전부터 시행되고 있는 ‘파리 드 비치’도 거닐어 보았다. ‘파리 드 비치’는 어떠한 익명의 기업이 파리시민들의 여름을 위해 제공했다고 한다. 멀리 바닷가에서 모래를 공수해와서 세느강 주변에 마치 바다와 같은 느낌을 주고자 하였던 것이다. 지금은 많은 시민들이 나와서 이 ‘파리 드 비치’에서 선탠도 하고, 휴식도 취하고, 또 밤에는 댄스파티도 벌이기도 했다. 익명의 기업이 이토록 거금을 들여서 시민들에게 제공하면서도 자신들의 기업명을 밝히지 않았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진실로 기업과 관계된 마케팅을 다 제쳐두고서 스폰서의 이미지가 아닌. 순수한 기부의 형식으로 제공한다는 것은 ‘노블리스 오블리제’정신이 이미 정착된 유럽인들이기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프랑스 기업탐방을 마치고 남는 저녁시간에 아직까지 보지 못한 파리, 아니 프랑스의 상징인 에펠탑을 보기 위해 우리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우리는 없는 돈을 털어서 유람선을 타기로 하였다. 유람선으로 가면서 멀리 보이는 에펠탑을 보며 설레이기만 했다. 유람선 터미널 앞, 횃불모양의 조각상이 보인다. 여기는 바로 영국의 다이애나 황태자비가 비운의 교통사고로 우리 곁을 떠난 그 지하도 위에 세워졌다고 한다. 횃불모양의 조각근처에는 그녀를 추모하는 많은 사람들의 애타는 마음이 글씨로 남겨져 있었다. 다이애나 추모비 뒤로 보이는 에펠탑의 화려한 불빛이 왠지 어색하기만 느껴진다. 다이애나비의 생전 베풀었던 사랑과 마음에 평온을 빌며 유람선으로 향했다. 유람선은 해가 질 무렵 출발했다. 시원하게 세느강을 가로 지르며 파리 시청사, 퐁네프의 다리, 자유여신상을 지나갔고, 이에 맞추어 파리는 지니고 있던 매력을 한껏 과시했다. 너무나 아름다운 도시였다.
    사회과학| 2007.11.29| 5페이지| 4,000원| 조회(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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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문]한국의 전통
    프롤로그어릴 적 학교 가는 길 어귀에는 도깨비가 항상 있었다. 웃고있는 것인지, 화나 있는 것이지 모를 표정으로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 친구들은 항상 하교 길에 돌로 만들어져 있는 도깨비근처에서 숨바꼭질도 하고, 장난도 쳤던 기억이 있다.몇 일전, 수업시간에 보았던 시청각자료를 보며 문득 어릴 때 동네에 있었던 도깨비가 생각났다. 나에게 동사무소 앞 도깨비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항상 그 자리에 있었고, 가끔은 도깨비 앞에 음식이 놓여있거나, 금줄이 늘어져 있었던 것이 기억났다. 아이들은 그냥 도깨비라고 불렀고, 어른들은 벅수라고 불렀었다. 그래서 동네이름도 벅수골이었다.저번 주말, 집에 급한 일이 생겨서 갑작스레 내려가게 된 통영, 우연찮게 내가 어릴때 다니던 초등학교 길을 가게 되었다. 무심코 지나치긴 했지만, 벅수가 있어야 할 자리에 그저 아스팔트로 덮혀 있었던 것 같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어릴 적의 나에게는 친숙하기만 했던 돌벅수였는데 점차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잊혀져버려 지금은 그 곳에 정말 돌벅수가 있었는지도 무신경해져 있는 나를 보면서 약간의 반성도 조금 생겼다.학교어귀에 있던 돌정승 벅수는 몸체에 土地大將軍 이라고 조각이 되어있었다. 한때 동사무소였던 건물 앞에 서있었는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바다를 끼고 살아가던 통영사람들이 왜 토지대장군이라고 썼었는지 궁금증이 일어난다.돌장승, 솟대,,,그리고 돌탑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그리고 다른 문화의 풍경을 내 나름의 감정과 생각을 넣어서 사진에 담아오는 것을 즐긴다. 예전에 전남으로 여행을 떠났을 때, 솟대라는 것을 처음으로 보았었다. 어떤 연유나 전래에서 세워졌는지는 몰랐지만 노을이 내려앉기 시작하는 바닷가에 서있는 솟대를 보며 ‘노스텔지어의 손수건’이 생각나서 연달아 셔터를 눌러댄 적이 있었다. 어떤 이상향에 대한 갈망과도 같은 느낌이었다. 시청각자료를 보기 전까지는 몰랐었지만, 내가 솟대를 보면서 그러한 느낌을 받은 것은 우연일까? 아마도 솟대는 힘든 시절, 누군가에게 마음을 쏟아 기대고 싶고, 간절히 바라는 마음의 표현이지 않았나 싶다.또 언젠가 한번은 남도의 어느 절 앞에 있는 자그마한 돌장승을 보며 따뜻하다고 느낀 적도 있었다. 많은 세월이 흘렀기에 윤곽도 흐트러져, 얼핏 보면 돌덩이 같은 장승을 본 적도 있었고, 농촌마을 어귀에 나무를 깍아 만든 장승도 보았으며, 장승마을에도 가본 적이 있다. 대다수의 나무장승이나 돌장승이 무서운 얼굴형상을 하고 있지만, 나에게 그 얼굴은 할아버지가 귀여운 손자에게 장난을 걸때 짓는 듯한 웃음을 뒤에 감춰둔 채 짐짓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는 듯 하였다. 아마도 옛날 사람들에게도 장승은 귀신에겐 무서운 것이지만, 사람들에게는 말동무요, 친구요, 옆집 할아버지 같은 후덕한 존재였을 것이다. 내 어릴 적 동네의 돌장승은 이빨도 뾰족하고, 눈도 부리부리하게 뜨고 있었지만 동네사람들에게는 항상 웃고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었다. 장승은 우리에게는 삶에 있어서의 여유며, 한번쯤 짓게 되는 미소를 가져다 주는 것 같다. 이러한 장승이 세워져있는 동네어귀에는 항상 커다란 나무가 있어 여름이면 곧잘 그 아래에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낮잠을 즐기시거나 쉬고 계시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는고, 마을에 큰 일이 생기면 사람들이 당산나무 아래 모여 의논하는 모습을 영화에서나, 다큐멘터리에서와 같이 심심치않게 찾아 볼 수 있다. 장승과 마찬가지로 당산나무(통영,고성에서는 당산나무라 불리었다)도 동네사람들을 하나로 엮어주는 장소를 제공해주고, 또 사람들의 마음에 안정을 주는 존재였을 것이다. 시청각자료를 보면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마을사람들이 모여 풍악을 울리며 힘을 합쳐 장승木을 베고, 또 장승을 만드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합치기에 부족함이 없는 행사라고 생각했다.돌탑은 아마 대한민국 어느 곳을 가더라도 쉽게 찾을 수 있다. 태백산맥 정상에 쌓아져있는 제탑도 있고, 지리산 꼭대기에 있는 돌탑도 있으며, 이러한 것 이외에도 산길을 오고가는 등산객들이 쌓아놓은 자그마한 돌탑까지 돌탑은 우리에게 하나의 의미가 되고 있다. 심지어는 아시아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고 하니 이는 동양인들의 정서와 가장 부합하는 행위이며 문화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한국의 전통사회에서 마을에 세우는 돌탑안에는 무엇인가 의미있는 것을 넣었다고 한다. 하지만, 굳이 그렇게 커다란 돌탑뿐만 아니라, 작은돌탑이더라도 무언가를 바래는 마음을 담아 큰 돌 위에 작은 돌 하나를 놓아두고, 다시 그 작은 돌 위에 다른 누군가가 돌을 놓고 이러한 마음들이 모이고 모여서 돌탑의 모습을 이룩해간다. 이러한 자그마한 돌탑도 사람들에게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돌탑은 항상 나에게 카메라를 들이대게 한다. 무질서하게 쌓여있는 듯하면서도 무너지지 않고, 자연 어디에나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조용한 산사에도 잘 어울리고, 등산로 옆에도, 산책로에도, 또 약수터에까지도 어디에 두어도 주변에 쉽게 동화되고 부드러운 감정을 살려준다. 어떠한 인연으로도 묶여지지 않은 사람들이 우연적으로 쌓은 돌탑을 보며 나라가 어려울 때 나라를 생각하고 발 벗고 나섰던 민초, 우리네 선조들이 떠올라지곤 한다. IMF당시의 금모으기 행사도 이러한 돌탑을 쌓는 작은 마음에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해본다.
    인문/어학| 2007.04.01| 2페이지| 1,000원| 조회(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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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복지사업과 사회사업
    인간과 복지사회복지사업이란 무엇인가?사회복지사업(NASW)의 국제단체는 다음과 같이 사회복지사업을 정의한다 - 사회복지사업은 개인이나 그룹커뮤니티가 그들의 맡은 기능을 하고 이 목표를 사회에 관한 긍정적인 상황을 만들고 있는 친목회에 대한 능력을 높이거나 회복시키도록 도와주는 전문적인 활동을 일컫는다. 사회복지사업은 다음과 같은 목표를 가지고, 행하고 있다.1. 사람들이 명확한 서비스(음식이나 주택이나 소득 등)를 얻도록 도와준다2. 상담역할과 정신요법을 개인과 가족과 그룹에게 제공한다.3. 커뮤니티나 그룹이 친목회와 의료적 혜택을 제공하거나 향상시키도록 도와 주고, 그리고 적절한 입법절차를 수혜 받게한다.사회복지사업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사회복지사업은 사회구성원들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정확한 역할에 대해 명확히 선을 가를기가 힘들다.먼저, 고객이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도움을 필요로 할 때 사회복지사업은 상담가역할을 해주고, 사회복지는 친목회와 의료혜택을 향상시키기 위해 조직과 커뮤니티단체가 협력하는 것을 도와준다. 그리고 고객에게 기본적인 기술과 그 기술의 기반을 제공하고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방향을 제시하기도 한다. 또한 사회복지사업은 사용가능한 자원을 연결함으로써 그들이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받도록 도와준다.만약 자원의 사용이 불가능하다면 사회복지사업은 고객을 위하여 서비스향상을 위해 변호할 수 있다.그리고, 사회복지사업은 긍정적인 사회적 변화를 증진할 입법절차에 참가한다. 그러한 참여는 입법자가 사회복지와 질을 향상시키는 법을 통과시키도록 촉구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으며, 또한 사회적인 이슈와 고객요구에 대하여 전화나 서신을 통해 사회복지사업은 사회적으로 책임 있는 의견을 나누고, 주어진 임무를 위해 그들 자신이 채택한 업무를 행한다.무엇이 사회복지사업을 의미하는가? 그리고 누구의 복지에 대해서 우리는 말하고 있는가? 이 문제의 해답을 말하기 위해서는 먼저 당신이 한 시민이고, 투표자이기 때문에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서 비판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하고, 또 그러한 당신의 의견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누군가의 복지향상을 위해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복지사업은 수많은 사회구성원 가운데에서 일반적인 복지와 관계가 있는 명백한 개념이다. 어떤사람이 사회로부터 무엇을 혜택받는가? 그리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과 접촉이 잘되는가..위와 같은 두 가지 사항이 잘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사회복지사업이다.
    사회과학| 2006.12.10| 2페이지| 1,500원| 조회(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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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동학대에 관한 의견
    1. 프롤로그우리 주위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도록 감춰져 있거나, 우리 스스로가 무심코 넘겨버리는 그 어딘가에 우리의 힘을 필요로 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 중에는 힘없고, 외로운 노인들도 있고, 한 가정의 아버지였지만 실직으로 인해 노숙자가 된 사람도 있으며,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부도덕한 악행으로 인해 고통받는 여성들도 있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은 쉽게 우리 눈에 띄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태의 심각성이 나오기 마련이다. 한 예로써 몇 년 전 군산에서의 화재로 인해 밝혀진, 온갖 부정적이고 불법적인 빚과 채무로써 얽매인 유흥업계에서 매춘여성들을 사육하듯 감금한 사실이 밝혀짐으로써 사회에 큰 충격을 던졌었다.하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사실을 몇 주전에 알게 되었다. 예전에 소방관으로써 생활할 때에도 여러 끔찍하기까지 한 환경에 둘러쌓여 도움의 손길을 구하는 사람들을 수없이 보아왔지만, 이 보다 더한 환경에 처한 사람이 있었다.긴급출동 SOS 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알게 된 사실이다. 10월 24일 자 긴급출동 SOS 에서는 내가 보았던 프로그램 중 가장 충격적인 내용을 다루었었다. ‘아이가 되어버린 청년’이라는 내용을 이야기 했는데, 정말 하나의 광적이고 괴기스런 소설같은 이야기였다. 어떻게 인류최고의 영광을 누리고 살며, 시민의식 자체가 향상된 이 시대에 한 개인이 이렇게 어둠속에 십여년 동안 묶여 있는데도 알지 못한다는 것인가? 이를 보면서 언젠가 한번은 우리 사회가 이러한 내용에 대해 마음과 마음을 열고 이야기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을 했다.2. 본문앞에서 언급한 이유와 또 개인적인 사상 및 관심으로써 사회복지에 관한 아티클을 조사하기 시작하다가, 마침 알맞은 주제를 찾게 되었다.허남순 교수님(한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2000년)이 조사 연구하신 “아동학대 신고의무자들의 아동학대에 대한 인식과 신고행동에 영향을 주는 요인에 대한 연구”라는 아티클을 선정했다. 이 아티클에 대한 개략적인 발제는 다음과 같다.이 연구는 아동학대신고 의무자들 중 학대그에 영향을 주는 요인들의 발견에 목표점을 두고 있었다. 연구의 필요성은 아동학대 자체가 한 개인의 아동시절에서 신체적, 정서적 성장과 발달, 그리고 가정이나 학교에서의 적응문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나아가서는 성인이 되어서 까지 그 해악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 동안에는 법적 제도적 미비와 신고 인식 부족으로 인해 학대받는 아동을 구해내기에 역부족이었으나, 국회에서는 2000년 아동복지법을 개정했고, 이에 따라 아동학대를 정부 차원에서의 개입이 정당화 되었으며, 이로써 아동학대방지는 신속한 발견과 신고가 중요시 되고 법적, 제도적으로 보호받기에 이르렀다고 한다.아동학대는 한 특정사회가 아동에 대하여 어떤 양육방법을 정상, 비정상으로 규정짓기에 매우 어려워 아동학대를 정의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래서 더욱 학대가 의심되는 아동을 발견하였을 경우, 신고를 하기에 불분명해지게 된다. 하지만, 아동학대에 대한 감시와 신고라는 활발한 참여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동학대 방지 확대를 기대하기에 어려우므로 발견자가 신고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러한 조기발견과 개입은 어려움에 처한 아동을 돕는데 효과적일 뿐만 아니라, 더 심각한 학대와 나아가서는 가정폭력의 악순환을 방지하는 방법이기도 하다.외국에서는 이미 아동학대를 발견하였을 때 신고하는 행동에 영향을 주는 요인들에 대한 연구가 나와있으나, 국내에서는 아직 미비한 실정이다. 이러한 요인들에 대한 선행연구로는 미국을 예로 들 수 있다. 미국은 아동학대 신고의 52%가 신고의무자에 의한 것이었으며, 28.8%가 친구나 친척등에 의했으며, 무려 21%가 익명의 사람들에 의한 것이었다. 아동학대 신고증가에 대한 견해로는 미국내 두 가지의 쟁점이 있었다. 하나는 아동학대 및 방임현상이 실제로 증가했다는 것이고, 다른 한가지는 학대를 신고하는 사람들의 자발성이 커진 결과에 의한 것이라는 논점이었다.하지만, NIS-2(아동학대방지협회)에 따르면 신고의무자들의 자발성이 높아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한국에서는 신고의무자들의동학대의 정도가 심각하지 않거나, 증거가 확실치 않아서, 신고제도 및 절차를 몰라서, 업무가 많아서 등 개인적인 이유가 많았다.한국에서의 연구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아동학대를 발견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조사자는 116명 중 25&인 29명이, 여자는 75%로 87명이 응답했다. 여자 응답자가 많은 이유는 신고의무자로 명시된 직종에 종사하는 많은 비율이 여성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신고의무자의 직종으로는 교직공무원, 의료직, 사회복지사, 종교인 등이 규정되어있다. 또 한가지 놀라운 사실은 응답자중 37.1%가 아동기 학대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진술하였다는 것이다.응답자들이 일년간 발견한 학대가 의심되는 아동들은 1세 1부터 17세까지 다양하였으며, 남자가 69.8%, 여자가 30.2% 였다. 학대가 의심되는 아동을 발견한 사람 중에 실제로 신고한 응답자는 35.3% 였고, 64.7%는 신고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되었다.(차트 2) 특히 응답자의 38.8%가 자신이 만난 아동이 학대를 당하고 있다고 매우 확신하거나 확신하고 있었지만, 학대를 신고하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보아 아동학대에 대한 인지와 관계없이 많은 신고의무자들이 아동학대를 방임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차트 3)신고하지 않은 경우, 그 이유를 조사하였을 때신고할정도로 심각하지 않았다가 45.8%였고, 신고해야 별 효과가 없을 것으로 판단이 36.1%, 학대여부가 불확실해서가 25%, 신고후 부가될 책임이 부담스러워서 18.1% ,아동의 가족으로부터 비난받을까봐 15.3% 순으로 나타났다.3. 결론본 연구는 아동학대신고 의무자들이 학대당하는 아동을 발견하였을 때 아동학대를 신고하는 사람과 신고하지 않는 사람간의 차이와 신고행동에 영향을 주는 요인이 무엇인가를 밝히는 데 목적을 두었다. 본 조사에 의하면, 응답자들이 발견한 피학대 아동의 연령은 1세부터 17세까지 다양했으며, 심각하거나 아주 심각한 경우가 49%로서 신고의무자들이 발견한 아동들의 반수가 심각한 상태였으며, 응답자들의 69.8%가 당하고 있다고 생각한 아동을 실제로 신고한 경우는 35.5% 밖에 되지 않았고, 64.7%의 응답자가 학대가 의심되는 아동을 발견하였음에도 신고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이는 신고의무자들의 무관심이나 지식 부족으로 많은 아동들이 학대 상황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신고의무자들이 아동학대를 신고하지 않는 경우에 이에 대한 제재를 가할 수 있는 제도나 장치가 없음으로 현재 제도상으로는 신고의무자들의 자발적인 협조에만 의존해야하는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는 신고자와 비신고자 간에는 아동학대에 대한 인식, 신고지식, 아동학대에 관련된 교육이나 연수를 박은 경험에서 차이가 있을 것으로 가정하였는데, 이와 같은 가설은 모두 수용되었다.또 모든 변수를 투여했을 경우 아동학대를 신고하는 행동에 유의미한 영향을 주는 용인으로는 응답자의 직업이나, 학대관련 교육경험, 발견한 아동의 심각한 정도만 유의미한 요인으로 나타났다.허남순 교수는 앞의 연구를 통하여 다음과 같은 제언을 하였다.1. 신고의무자들이 종사하는 직장에서는 종사원들을 대상으로 정기적인 교육, 지침서 배포, 아동학대 관련정보를 게시판에 부착한다.2. 아동학대 관련 교육은 단순히 학대에 대한 인식이나, 신고지식에 대한 것뿐만이 아니라 신고를 하는데 장애가 되는 신고에 따른 부정적인 생각이나 감정을 해결해 주는 내용으로 구성되어야 한다.3. 신고의무자들이 근무하는 병원, 학교, 사회복지시설의 책임자들이 직원들의 아동학대 신고를 지지하는 분위기를 형성하여야 한다.4. 정부나 아동학대 예방센터는 병원, 학교, 유아워, 사회복지시설 등 신고의무자들이 근무하는 직장에서 직원들을 대상으로 사용하거나, 직원들에게 배포할 수 있는 다양한 지침서, 강의를 개발하여 요청이 없더라도 정기적으로 배포한다.5. 신고의무자들이 대학이나 대학원 재학 중에 아동학대에 대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교과목 중에 아동학대 관련 과목을 첨가하거나 다른 교과목 중에서 다루도록 한다.6. 아동학대 신고를 자극하여 신고, 잠시 긴급출동 SOS를 언급했었다. 취재는 다음과 같이 시작되었다. 개집과 같은 곳에 아이가 갇혀있다는 제보가 들어온 것이다. 주인 같은 사람이 하루에 한번 우유 하나만을 놓고 간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아이의 존재를 확인하지 못했고, 취재진도 처음에는 반신반의 하였다. 하지만, 취재를 위해 조사하던 중, 개집이 아니라 허름한 컨테이너에 기저귀와 우유팩이 있는 것으로 보아 누군가가 아이를 키우고 있는 것은 분명하였으나 아무 인기척이 없었다. 확신을 가진 취재팀이 밤을 새워 컨테이너를 지켜보고 있다가 문득 창고에서 괴음이 흘러나왔고 취재진이 뛰어가본 결과, 컨테이너 안에는 아이로 보이는 작은 체구의 남자가 있었다. 취재를 계속함으로써 밝혀진 사실은 이 아이를 컨테이너에 가둔 사람은 다름 아닌 친부모라는 것을 동네주민을 통해 알게 되었다. 취재진은 즉시 경찰인계 하에 부모를 조사했는데, 정작 당황스러운 것은 부모 스스로가 뭐가 문제인지 인식을 못한다는 것이었다. 부모를 따라 창고 안으로 들어서자 앙상하게 뼈만 남아 나이조차 가늠하기 힘든데다, 창고에 갇혀 지내서인지 전혀 걷지도 못하고 기어다닌 정도의 행동만이 가능한 남자가 있었다. 보기만 해도 참혹한 광경이었다. 부모는 아이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가둬키울 수 밖에 없었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부모의 보살핌이라는 것이 하루에 한번정도만 들러 기저귀를 갈아주고, 분유 탄 우유를 먹이며 고작 20분 정도만을 머무는 것이 모두였다. 하지만 정말 경악을 금치 못한 사실은 아이를 데리고 의료진에게 검사를 받는 과정에서 밝혀졌다. 겉모습은 6세정도 이지만, 실제나이는 30세에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자기 손으로 이마를 때리는 자기학대로 인해 이마에는 6cm 가까운 혹이 있었으며 영양실조로 온몸은 뼈만 남아있는 상태였다. 부모는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유전자이상이라는 소리를 듣고 부끄러운 마음에 병원에도 찾아가지 않고 기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겉보기에는 심각한 정신이상일지 모르지만, 검사결.
    사회과학| 2006.12.10| 6페이지| 2,000원| 조회(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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