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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문]아이작 디네센과 일곱개의 고딕이야기
    Seven Gothic Talesby Isak Dinesen“Gothic Novel"이란 원래 Harace Walpole의 The Castle of Otranto를 시작으로, 주로 중세시대를 배경으로 지하감옥과 통로가 있는 미로 같은 성을 배경으로 유령이 등장하고 신비롭고 초자연적이며 선정적(sensational)인 사건들을 다루는 소설 장르이다. 이들은 문명화된 인간 심리 밑에 있는 괴팍하고 비이성적인 충동이나 악몽같은 공포를 보여준다. 그러나 중세시대를 배경으로 하지 않더라도 어둠과 공포로 덮인 분위기 속에서 섬뜩하고 으스스한 사건들을 보여주고 탈선적인(aberrant) 심리학적 상태를 다루는 소설도 ”Gothic Novel“이라는 범주로 확장시켰다.● Dinesen의 ‘Gothic Novel'Dinesen은 사회적인 문제를 다루기 보다는 독자들을 즐겁게 하고 깜짝 놀라게 해주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에 흥미가 있었다. 그녀는 아이들이 유령얘기에 놀라면서도 재미있어 한다는 것을 생각하고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이 방법을 사용하기로 한 것이다. Dinesen의 소설은 학대받는 여인, 유령들, 미스테리한 사건들로써 오싹한 두려움을 자아낸다. 그녀는 이 책에 나오는 7가지 이야기들이 기괴하고 어두운 분위기에서, 초자연적이며 신비로운 요소들을 다루기 때문에 이들을 묶어 ‘Gothic'이라고 했으며 또한 영국 낭만주의 시대의 'gothic'과 관련이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 이는 영국의 고딕쟝르가 초자연주의적인 공포와 가장 가까웠기 때문이다.Dinesen은 여러 비평가들에 의해서 decadent하다는 말을 듣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글을 읽는 데에는 어떤 박학다식함은 필요 없다고 했으며 자신의 글은 춤과 같이 육체적이고 본능적인 요소를 가지는 이야기로서 이는 현실과 사회적 관념을 거부하고 인위적 수단과 인공 낙원에 대한 관심, 관능적이고 퇴폐적인 것으로부터 새로운 미를 추구하는 형식이며 충분히 decadent하다고 인정했다.●Narrative이 이야기들의 목소리는 등장인물들보다 나이가 든 세대이다. 이는 고전주의 작가들이 귀족청중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서 이야기했던 그 목소리로써, 고상하고 한가하게 담론을 하는 동안 삶에 대한 직관력을 전해주곤 했다. 마찬가지로 Dinesen도 ‘author'가 아닌 ’storyteller'로 불리우길 바랬으며, 이야기를 하는 동안 “What is human being?" , "What is God's intention with creation?"이라는 물음을 생각나게 함으로써 인생에 대한 깨달음을 주고 싶어했다.● Setting그녀는 자신의 글이 사실적으로 쓰여지길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불필요한 상세한 묘사들을 생략하는 것과 더불어 현실이라는 시간을 배제하고 시간적 배경을 현실과 먼 과거, 약 100년 전으로 정했다. 이는 이야기들이 그녀의 상상력 속에서 자유롭게 조합되고 자아인식이나 사회적 인식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한 방법이었다. 이 소설 속의 setting (홍수가 나서 고립된 상황, 알프스의 눈 덮힌 산, 이국적인 장소, 수녀원 등)은 신비스럽고 두려운 분위기를 만들면서 인간의 내면 세계가 표출되기 쉽도록 한다.● CharacterDinesen의 이야기에 나오는 인물들은 한마디로 정상인이 없다. (Frederick Schyberg) 이 책에 나오는 이성적인 관계는 무척 독특하고 역사, 계층, 성 등에 의해서 억압받는 인물들을 다루는데 이들은 자유롭길 원하고 각자의 상황에서 탈출하기를 원하고 있다. 이런 인물들을 표현할 때 심리학적 용어를 쓴다면 변태(perverts), 과대망상(megalomaniacs), 복장도착자(transvestites)등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Dinesen의 말을 빌리자면 그들은 'Dreamer'이며 무럭무럭 자라지도 않고 열매도 맺지 않지만 그 어떤 나무들보다 풍성한 꽃을 피우는 나무에 비유한다.) 이들의 성격을 6번째 이야기인 Dreamer에서 기행(eccentricity), 위트(wit), 상상력(imagination), 건방짐(impudence), 어리석음(folly)으로 표현했다.● ThemeDinesen은 이야기의 진실에 이르는 과정을 ‘Nemesis'라는 용어를 써서 설명하며 이는 한 사람의 'psychic assumption')을 통해 결정되는 사건들의 실같은 행로라고 말한다. 즉, 아무리 사소하고 처음에는 그냥 지나치는 순간들도 우리를 만들어내는 힘을 가진 중요한 순간들이며 그것들이 우리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더불어 우리를 억압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실은 욕망(desire)이며 그걸 이끄는 바늘은 이야기(tale)라고 정의했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그녀의 몇 가지 작품의 주제가 ’desire'라는 것은 자연스러울 것이다.◎The Deluge at Norderney이 이야기에서 Dinesen은 행동보다 정물화를 그리는 듯한 묘사로써 그녀의 의도를 전달하려 한다.1835년 Holstein의 Atlantic coast의 거대한 홍수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다. 여기에 삽입된 각 이야기는 4명의 귀족적인 인물들이 차 오르는 물 때문에 마구간에 갇혀서 밤을 보내며 나누게 되는 이야기들로, 마치 저녁식사를 하면서 담소하듯이 자신의 생각을 교환하면서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인물들은 가면을 벗고 진정한 identity를 드러내게 된다. 나이든 부인인 Miss Malin은 남자들을 무시했고, 그 시대에서 특이한 여자로 호기심을 사면서 결혼을 포기한 채로 살며 자신이 방탕한 여자라고 상상하고 그 속에서 살고 있다. 젊은 남자인 Jonathan은 젊은 청년으로 코펜하겐에서 자신의 우울한 모습이 유행처럼 번져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고 숭배하는 것이 싫어졌고 우울증을 고치기 위하여 의사를 찾아서 이 곳으로 오게 된 것이다. Calypso는 여성임을 자각하는 것을 억제 받아오다가 erotic painting을 배우면서 여자로써 사는 것에 대한 즐거움과 힘을 알게된다. 그러던 어느 날, 거울을 보고 자신의 본성을 깨닫게 되는 여자이다. 이는 Dinesen이 거울을 보고 자신의 진정한 본성을 깨닫게 연출한 인물들 중 하나이다. 마지막으로Cardinal은 그의 얼굴에 붕대를 벗음으로써 사실은 Cardinal이 아닌 Kasparson이라는 배우임을 알린다. 그는 비록 그가 Cardinal을 죽이고 그의 행세를 했지만 자신 때문에 원래 Cardinal이 사람들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이라고 한다.◎The Old Chevalier이 글은 독립적인 여성에 대한 의견을 제시한다. Dinesen은 스스로 생각하고 사회에 도전하는 여성의 가치를 높게 평가한 것이다.이는 실패한 사랑의 이야기로 Baron이 불륜의 관계를 맺어오던 여자가 자신을 음독하려 했던 거로부터 도망쳐 거리에서 만난 여자에게 사랑을 느낀다. 그녀가 순수하다고 생각하다가 돈을 건네보는데 뜻밖에 그녀는 그 날밤의 일이 감정이 전혀 개입되지 않은 것처럼 돈을 받아서 떠나버린다.◎The MonkeysCloster Seven이라는 고딕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수녀원을 배경으로 수녀원의 원장을 통하여 인간의 영혼이 악마적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이야기는 gothic motif의 전형적인 것들을 몇 가지 보여준다. double(수녀원장), innocence pursued(Athena), sadism(Boris)이 그것들이며 중심주제는 'double'이다. 조카인 Boris가 어느 날 찾아오고 그를 결혼시키기 위하여 Athena를 강간하라고 시킨다. 여기서 Dinesen은 Athena를 나약한 여자가 아닌 키도 크고 대담하고 주장이 뚜렷한 여자로 그려내고 있다. Boris가강간하려는 장면에서 그녀는 심하게 반발하고 그를 물기도 하고 때리기도 한다. 반면 Boris는 변태적이고 이기적이며 우울한 인물로 그려진다. 마지막 장면에서 수녀원장이 원숭이 모습으로 변화하는 장면은 신비스럽고 공포적인 gothic요소를 담고 있으며 인간이 악마로 변하는 모습을 상징한다고 보아진다.◎The Roads Round Pisa이 이야기는 사건을 자세히 설명하기보다 상황을 보여줌으로써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Dinesen의 또 다른 기법을 볼 수 있다. 처음엔 독자들이 잘 이해할 수 없는 실마리들이 나오고 나중에 그것들이 다 합쳐져 하나의 스토리가 구성된다.이 글은 인간이 살면서 하게 되는 실수나 오해에 대한 것이며, 또한 마치 Hamlet을 연상시키는 Augustus와 정열적인 Italian의 모습이 대조적이다.Augustus가 마차사고를 당한 노부인을 간호하다 부탁을 받고 그녀의 손녀인 Rosina를 찾아서 Pisa로 가면서 이야기의 전말을 듣게 되는 내용이다. Prince Potenziani는 자신이 성불구자이기 때문에 친구인 Nino에게 대신 잠자리에 들어주기를 부탁하고 Rosina 또한 사랑하는 남자가 따로 있어서 친구 Agnes에게 잠자리를 부탁한다. 이런 사정을 모르는 Prince는 아내가 처녀임을 증명하면서 이혼소송을 내고 사실임이 밝혀지면서 친구가 약속을 어겼다고 생각하고 화가 나서 Duel을 하게 되고 duel 직전 Agnes에 의해서 사실을 알게된 Prince는 자신이 오해하고 있었음을 알고 충격으로 죽고 만다. 이는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이며 많은 실수와 오해를 하고 사는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고 할 수 있다.◎The Supper at Elsinore이 이야기는 Elsinore를 배경으로 세 남매의 이야기이다. 결혼식 전날 남동생 Morton이 집을 나가고 두 자매는 도시로 이사해서 살다가, 남동생의 유령이 나타난다는 말을 듣고 Elsinore로 와서 저녁을 같이 보내게 된다. 그들은 대화를 나누게 되며 두 자매는 그가 죽기 전에 경험한 모험담에 흥미와 부러움을 나타내고 자신들도 자유에 대하여 갈망하고 있음을 얘기한다. 이 이야기에서는 새에 대한 이미지가 많이 쓰이고 있는데 이는 두 자매의 갇힌 상황과 ‘cage'로부터 벗어나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인문/어학| 2006.09.11| 5페이지| 1,000원| 조회(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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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문]여인의 초상 : 대상으로 고정된 여성
    『여인의 초상』: 대상으로 고정된 여성『여인의 초상(The Portrait of a Lady)』는 19세기 유럽 사회에서 젊은 미국 여인인 이사벨의 자유와 독립에 대한 경로를 다룬 소설이다. 그녀는 아름답고 지성적이지만 세상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고 순진한 여인이다. 그녀가 자유와 독립을 추구해 가는 모습은 빅토리아 전통에 매이지 않은 신여성의 이야기가 되며 여기서 헨리 제임스의 페미니즘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다. 헨리 제임스(Henry James)가 페미니스트 작가는 아니더라도 그가 보여준 작품세계는 전통적인 여성상에 도전하며 여성에게 이사벨 아처처럼 능동적인 여인을 통하여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하여 사고하도록 자극한다. 그러나 이 소설을 읽으면서 받은 개인적인 감상은 이사벨이 능동적인 주체라기 보다는 사회의 제도와 인습, 문화에 의해 대상으로 전락해버린다는 것이다. 특히, 케이트 쇼팽(Kate Chopin)의 『깨어남(The Awakening)』과 비교해보면 그러한 인상을 더욱 지울 수가 없다. 알프레드 하베거(Alfred Habegger)는 헨리 제임스가 여성의 참정권을 강하게 반대했으며 직업을 가지는 것에 대하여 강한 반발을 가지고 있었다고 주장함으로서 제임스를 여성주의 작가로 생각하는 것에 대해 반대한다.헨리 제임스는 그 시대에서 여성과 남성 사이의 차이점과 여권운동에 대한 강한 관점을 가진 남성일 뿐 아니라 그의 남성성은 극도로 문제시되었다.He was not only a man, of his time, with a collection of opinions about the differences between men and women and a strong point of view on the women's rights movement, but his own masculinity was problematic in the extreme. (Habegger. 6)헨리 제임스는 여성 인물들에게도 활기 있고 자유스러움을 주장하게 한다. 그러므로 표면적으로는 그가James may have known that good fiction does not force the author's opinions on the reader, but he could not keep his ideas, prejudices, and conflicts out of his writing.(Habegger, 6)서술자는 독자들을 관찰의 위치에 자리잡게 하면서 이사벨을 관찰의 대상으로 만든다. 대상이 된 이사벨은 인물로서의 주체성을 잃어버린다. 서술자가 이사벨을 경솔한 여자로 이야기하면 독자들은 그녀의 결정이나 생각에 의심을 품게 된다. 워버튼이 이사벨에게 청혼을 했을 때 서술자는 독자에게 그녀를 경솔한 사람으로 보지 말아달라고 말한다. 그러나 곧 이사벨을 참을성이 부족하고 무엇을 판단할 때 너무 빨리 또 자유롭게 결정한다고 덛붙인다. (121-122)) 이러한 설명은 독자들에게 이사벨이 경솔하다는 선입견을 주고 그녀의 성격 중 일부를 확정 지워 놓는다.서술자 외에도 이사벨의 특성을 확인시켜 주듯 주변 인물들은 그녀에 대해 말하고 평가하며 관찰자 역할을 한다. 또 한번 이사벨은 대상으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첫 장에서부터 터체트 부인의 전보로 인하여 이사벨은 독립적인 여성으로 묘사된다.(27) 그리고 랄프는 아버지에게 독립의 의미를 묻는다.그러나 누가 독립심이 강하고, 또, 그 단어는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나요? 그리고 그 단어가 도덕적인 의미로 쓰였을까요, 혹은 재정적인 의미로 쓰였을까요? - 독립이란 단어가 그들이 부자라는 뜻인지요, 혹은 아무런 의무 밑에도 있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인지요? 혹은 제멋대로 하기를 좋아한다는 의미일까요?But who's "quite independent," and in what sense is the term used? - that point's not yet settled. . . . and is it used in a moral or in a financial sense? Does it mean that the- 대부분의 미국 여자애들이 그렇듯이. 그러나 대부분의 미국 여자애들처럼 그 애는 어리석게도 실수를 저지르고 있는 거야.It would be a kindness to take her about and introduce her to the world. She thinks she knows a great deal of it-like most American girls; but like most American girls she's ridiculously mistaken. (60)이사벨은 랄프, 워버튼, 터쳇부인, 터쳇씨, 마담 멀, 팬지, 헨리에타 그리고 오스몬드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등장인물에 의해 끊임없이 관찰당하고 평가받는다. 결혼할 여자로서 어떠한가를 평가받을 뿐만 아니라 어머니, 아내, 미국인에 이르기까지 그녀를 평가하는 기준과 카테고리는 여러 가지로 나뉘어진다.더구나 어떠한 자리나 정체성에 대한 자격과 능력에 평가받는 대상이 되는 것 외에도 그녀는 주어진 상황을 어떻게 처리하는 가에 대한 실험적 대상이 되기도 한다. 랄프와 터쳇씨의 악의 없는 음모가 그것이다. 랄프가 자신의 아버지에게 유산상속에 대한 요구를 하면서 이사벨에게 막대한 재산을 남기도록 부탁한다. 아버지는 그 이유를 묻고 랄프는 독립심이 있는 여성에게 돛대를 달아 주어 항해를 어떻게 하는지 보고 싶다고 말한다.“난 사촌에게 관심이 많아요.” 그가 말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바라시는 그런 종류는 아니에요. 난 오래 살지 못할 거에요. 그러나 전 이사벨이 자기 자신을 가지고 무엇을 하는지 볼만큼은 살고 싶어요. 그녀는 정말 저에게서 독립적이에요; 전 그 애에게 아주 작은 영향을 줄 수 있을 거에요.”"I take a great interest in my cousin" he said, "but not the sort of interest you desire. I shall not live many years; but I hope I shall live long enough to see what 화가 공존하는 거대한 조직체 안에서 무력한 대상으로 전락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이 소설은 터쳇 부인과 헨리에나의 만남, 오스몬드와 이사벨의 결합 등을 통해 유럽인과 미국인의 대립, 그 이면에 존재하는 유럽문화와 미국문화의 대립을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이사벨로 하여금 완전히 새로운 유럽문화와 직면하게 하고 새로운 대인관계를 겪게 함으로써 삶의 의미를 반추하게 하고 가치를 판별하게 하여 인생에 대하여 더 깊게 인식하도록 한다. 그러나 이 과정을 통해 얻게 된 인식이 이사벨을 더욱 억압하고 대상으로 만드는 기제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은 흥미로울 것이다.이사벨은 미국의 문화 속에서 성장하여 유럽의 문화 속에서 생활하게 된 여성이다. 갑자기 다른 문화 속에 편입된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은 점을 고려한다면 그녀의 사고체계와 현실의 충돌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 소설의 도입부분에서 이사벨이 랄프와 터체트씨를 만났을 때 “터쳇부인이 영국에서는 사람들이 매우 조용히 도착한다고 말씀해 주셨지요. 그리고 전 그게 괜챦다고 생각했어요.("Your mother told me that in England people arrived very quietly; so I thought it was all right.", 31)”라고 말하며 자신이 다른 문화권에 있다는 것을 인식한다. 유럽 문화를 의식하고 그것에 따라 행동하려는 이사벨은 앞으로 자신만의 문화를 비롯하여 사고마저 바뀔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확고한 위치를 확보하지 못한 그녀의 생각과 가치관들은 유럽문화와 가부장적 문화 앞에서 좌절당할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터쳇부인은 헨리에타를 만나는 장면에서 미국여성을 “가여운 미국 여성들! 그들은 노예들의 노예지요.(Poor American ladies! They're the slaves of slaves. 115)”라고 말함으로써 미국을 영국의 식민지로 대상화시키고 그 안의 여성들에게서 또 한번 주체성을 빼앗는다. 이것은 비단 헨리에타에게만 적용되는 표현이 아니라 이한 쾌락의 대상으로 묘사되며 남성을 위한 도구가 되어 ‘오스몬드의 재현(422)’으로 나타난다.이 소설에서 헨리에타는 미국의 저널리스트로서 이사벨보다 더 개혁적이며 행동을 수반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그러나 이 여성마저도 결혼이라는 결말을 맞이하면서 소설 초반부에서 이사벨이 했던 “여성이 할 수 있는 다른 일”은 없다는 것을 작가가 드러내는 것이다. 헨리에타가 결혼하는 이유는 이사벨의 것보다 더욱 우스꽝스럽지만 당시 사회의 시각을 드러내 준다고 할 수 있다.“결혼은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라 생각합니다. 친구들 사이에 끼워 주지 않아 참을 수 없었어요. 앞으로는 저에게도 사람들에게 지지 않을 만한 훌륭한 권리를 가지게 된 거에요!” 그녀는 순진할 정도로 자랑스러워하며 말했다."That's the key to the mystery, I believe. I couldn't endure to be kept off. Now I've as good a right as any one!" she added with artless elation.(602)이사벨은 헨리에타의 결정에 실망을 느끼며 “결혼을 하려는 여성은 많이 변해야 해요”라고 말하는 헨리에타를 씁쓸하게 바라본다. 하베거는 제임스가 여성의 참정권을 비롯하여 직업을 가진 여성에 대하여 경멸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함으로써 헨리에타의 결말에 대해 제임스의 의견이 나타난 것이라고 해석한다.기본적인 사실은 그의 중년말까지 제임스가 여성의 참정권과 직업에 참여하는 여성에 대해서 경멸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The basic fact is that up until his late middle age Henry James was of the most part contemptuous of women's suffrage and women's entry into the professions. (Habegger. 6)이 소설에서 나타나는 가부장적 요소는 비단 부부관계에서만 드러나는 것을 아니다. 아버지와 딸의 관계, 이사벨과 그녀의 아버지
    인문/어학| 2006.09.11| 11페이지| 1,500원| 조회(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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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프리카 문학에서 백인작가와 흑인작가의 태도 평가B괜찮아요
    아프리카문학에서 백인작가와 흑인작가의 비교아프리카 문학에서 백인 작가와 흑인작가의 작품을 비교하기에 앞서 무엇이 아프리카 문학인가에 대한 정의가 필요할 듯싶다. 일반적으로 아프리카 문학의 범주 안에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하거나 아프리카의 경험을 표현한 창작물’이라고 정의하고 있지만, 이 경우 유럽의 작가가 쓴 작품이 단지 배경이 아프리카 대륙이므로 그 작품을 아프리카 문학으로 취급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가 벌어질 수 있으며, 아프리카 작가의 작품이 단지 유럽을 배경으로 했다고 해서 그것을 아프리카 문학에서 제외시켜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아프리카는 식민지배라는 특수한 환경으로 인해 다른 나라와는 구분되는 특수성과 다양성을 갖게 되었고 아프리카가 겪었던 역사적인 사건들은 아프리카 문학을 정의하는 데 있어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들이 60년대를 전후해 유럽 식민주의의 예속으로부터 풀려나 독립을 할 수 있었던 반면, 남아프리카는 1994년 흑백의 구분이 없는 선거가 실시됨에 따라서 소수 백인 통치가 종결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아래에서 치누아 아체베(China Achebe)는 아프리카 문학을 ‘아프리카의 민족문학과 인종 문학의 총체’를 의미하는 문학으로 다시 정의하고 있다.민족문학은 국어/민족어로 쓰여진 문학을 가리킨다. 국어를 판단의 잣대로 사용하기 때문에 국가 전역은 하나의 지역으로 간주되고 독자는 지역 간 경계를 인식하게 된다. 인종 문학은 한 국가 내 다수의 인종집단이 생산해 내는 문학 일체를 지칭한다. 이러한 기준을 적용할 경우 나이지리아의 민족 문학은 영어로 쓰여진 문학이 될 것이고 인종 문학은 하우사어, 이보어, 요루바어 등으로 쓰여진 작품들을 총칭하게 된다.(아체베, 183)이 때 영어는 유럽의 영어가 아닌 아프리카 대륙 안에서의 영어임에 주목하여야 한다. 즉, 유럽의 작가가 쓰는 영어가 아닌 아프리카 작가가 쓰는 영어로 그 범위를 함축시킨 것이다. 아프리칸스로 작품을 쓰는 응구기(Ngugi Wa Thin 전혀 동떨어진 민족으로 간주되어 왔다. 이러한 담론이 식민지배를 통하여 식민지에 퍼져 있는 상태에서 프란츠 파농은 탈식민주의의 특성을 적대적인 두 힘의 대결로 보고 그것을 바꾸는 일이 ‘탈식민주의’의 과제라고 주장한다.탈식민화는 개개인에게 심대한 영향을 끼칠 뿐만 아니라 그 개개인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는다. 탈식민화는 식민화되었던 사물에게 자유를 수여함으로써 그 사물을 인간으로 바꾸는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가장 후위의 것이 전위가 되고 가장 전위의 것이 후위가 되는 것을 실천하는 것이 탈식민화다. (파농, 13)후위와 전위가 바뀌어야 하는 실천의 문제에 있어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이 주체와 타자의 자리바꾸기이다. 지금까지 타자로 있었던 흑인들을 주체로 끌어오는 일이 중요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 아체베는 외부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아닌 내부로부터의 통찰, 즉 자신의 내부에서 나오는 목소리로 쓰여지는 문학을 주장한다.대학에서 난 아프리카에 대해 쓴 소름끼치는 소설 (조이스 캐리의 『미스터 존슨』을 포함하여) 몇 권을 읽고 우리가 해야 할 이야기는 재능 있고 좋은 의도에서 쓸지라도 다른 이들에 의해서 말해질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At the university I read some appalling novels about Africa (including Joyce Cary's much praised Mister Johnson) and decided that the story we had to tell could not be told for us by anyone else no matter how gifted or well intentioned. (Walder, 7)이러한 주장은 탈식민주의 작가로서 자성적인 글을 쓴다는 꾸찌의 글에서조차도 힘의 상관구도를 떠나서 흑인은 항상 타자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당연히 제기될 수 있는 주장일 것이다. 『추락(Disgrace))』에서 페트루스(Petrus)가 힘의 관계에서 분명종적인 열등함 때문에 지배받는다는 서구담론의 절대성이 가진 모순을 지적하는 것이 되었다.아체베는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다 (Things Fall Apart))』에서 흑인들의 목소리를 중심으로 끌어오면서 그들만의 주체성을 회복하고자 한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다』에서 익보(Igbo)부족인들은 백인을 표현할 때 ‘분필처럼 흰’ 사람들이며 ‘발가락도 없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문둥병 환자들을 공손하게 부르는 ‘white skin'으로 비유한다.“그것은 하얀 분필처럼 흰 백인들의 이야기같네” 오비리에카가 말했다. . . “그리고 이 백인들은 발가락도 없다던데,”“그들을 본 적 있어?” 마치가 물었다.“너는 있어? 오비리에카가 물었다.“그들 중에 한명이 자주 여기를 지나다니지” 마치가 말했다. “그의 이름이 아마디야”아마디를 알고 있던 사람들은 웃었다. 그는 문둥이였고 “하얀 피부”는 문둥이들을 위한 공손한 호칭이었던 것이다."It is like the story of white men who, they say, are white like this piece of chalk," said Obierika. . . "and these white men, they say, have no toes.""And have you never seen them?" asked machi."Have you?" asked Obierika."One of them passes here frequently," said Machi. "His name is Amadi."Those who knew Amadi laughed. He was a leper, and the polite name for leprosy was "the white skin."(TA, 74)이러한 호명에는 우열의 질서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알고 있는 지식의 한계 안에서 비슷한 비유를 찾아낸 것이므로 다분히 관습적이며 문화적인 비유이다. 그러나 『철의 시대』와 같은 백인 작가의 글쓰기에서 백인들을 호명하는 ‘아프리카너(며 각 작가가 추구하는 주제가 달라지게 된다. 즉, 자신이 어떤 주체성을 가지게 되는 가에 따라서 탈식민주의 시기를 보는 견해가 달라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차이는 각각의 작가가 작품에서 그려내고 있는 주제의식의 차이를 가져오게 되었다. 흑인을 주체로 내세우는 아체베에게 있어서 흑인주체의 인식과정에 자연스럽게 수반되는 것이 민족적 주체성이며 고유한 민족 주체성의 회복을 주제로 하고 있다. 그리고, 식민시대의 종식을 경험한 꾸찌는 지배자였던 백인의 위치에서 인식하게 되는 죄의식과 그 안에서 무기력한 자신들의 존재성과 정체성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다』는 나이지리아 민족의 독특한 삶과 문화의 특성을 탐구하여 형상화시킴으로써 반식민주의의 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이 작품은 전통적 부족사회에서부터 서구문화의 유입이 시작되어 진행됨에 따라 한 부족의 사회구성체가 어떻게 변이되어 가는 지를 탐구하고 있다. 아체베에 있어 가장 중요한 작업은 무엇보다 아프리카에 대한 아프리카인의 주체적 시야를 설정하는 일이며 식민화 과정에서 소외되었던 민족의 주체성을 회복하는 것이었다.식민지 국가의 민족문학은 제국주의의 역사적 상황에서 중심권에서 배제되어 목소리가 억눌린 주변부의 담론으로써만 존재해 왔지만, 문화적 다원성이 부각되는 후기 제국주의 시대에서 과거 식민지 국가들의 고유한 문화적 정체성을 탐색하여 민족적 주체성을 확립하려는 시도라고 하겠다. 민족적 주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탈식민주의 담론의 첫 번째 과제는 제국주의의 이념이 식민지 국가와 민족에 부여한 식민주의 담론의 모순을 지적하는 일이다. 식민주의 이념을 창출하였던 그 식민지 언어로써 식민지 지역의 경험을 반영하는 새로운 담론양식을 생산하는 일이다. 식민지의 문화를 재구성하여 제국주의 침략에 따른 역사적 단절을 회복하고 식민지 상황에서 민족 독립의 역사적 과정의 변이 과정을 분석하여 서구 중심의 제국주의 역사가 아닌 대안적 세계를 제시하며, 민족의 정체성을 탐색하는 일이다. (홍덕선, 1997)식민지의 타자들자신에 의해서 쓰여지는 고백적인 글이 될 것임을 암시하며 정확한 청자의 설정이 없다는 점에서 이 글은 독자들이 그녀의 고백을 듣는 청자가 된다. 이 시대의 역사적 사건에 대하여 함께 죄의식을 느끼고 사회개혁의 운동에 참여하자는 메시지로 들린다. 『철의 시대』의 많은 에피소드들이 그 당시 사회적 상황을 토대로 구성되었으며 그러한 운동의 전개에 따른 커렌의 심경변화와 고백적 성찰은 독자들의 반응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반성적 고백과 더불어 꾸찌의 작품이 관찰하는 또 하나의 주제는 존재에 대한 물음이다. 식민지배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무력함을 알게 된 커렌은 이러한 자신의 삶을 인형의 삶과 비교한다.나에게는, 언젠가 한때 내가 살아 있었다는, 살아 있다가 삶으로부터 강탈당했다는, 어떤 기억보다 오래된 암시들이 있었다. 요람에서부터 도둑질은 있었다 : 어린애가 강탈당하고 그 자리에 인형이 놓여져, 젖이 먹여지고 양육되고. 내가 나(I)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그 인형이다.I have intimations older than any memory, unshakable, that once upon a time I was alive. Was alive and then was stolen from life. From the cradle a theft took place: a child was taken and a doll left in its place to be nursed and reared, and that doll is that I call I. (AI, 109)이러한 존재에 대한 물음은 자기반성적인 고백과 무관하지 않다. 헤드(Dominic Head)는 “커렌의 발전은 자신의 무기력함을 인식하게 되는 과정에 기초하며 그것은 소멸해가는 식민지적 질서와 공범자라는 것에 대한 일종의 보상이 된다.(Head, 130)”라고 말하고 있다.문화의 충돌아체베는 식민지배의 상황을 익보문화와 서구문화의 충돌과 대응관계를 보임으로써 설명하려고 한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다』의 후
    인문/어학| 2006.09.11| 11페이지| 1,500원| 조회(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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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홍글씨에 나타난 이데올로기적 영향
    『주홍글씨』에서 나타나는 이데올로기와그로 인한 작가의 한계Ⅰ. 서 론현대에서 이데올로기는 문학 이론의 핵심적 개념이 되었고 마르크스의 계급이론에서 나온 것이지만 불평등 관계의 재생산이 ‘자연스러운’ 또는 ‘정상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성이나 인종 등 다른 분야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자연화’와 ‘정상화’라는 용어는 우리가 어떤 특정 조건을 의문의 여지가 없거나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방식을 일컫는다.이런 면에서 문학이 중요한 공헌을 하는 지식의 형식이나 삶을 재현하는 방식은, 마르크스에 의하면 사회에 작용하는 경제적 힘의 관계에 따라 결정되는 방식으로 사람들이 자신을 재현하고 이해하게 하는 의식의 형식을 창출한다. 가장 단순한 차원에서 이데올로기는 사회의 지배계층의 힘을 합법화하는 방법으로 여겨지고 있다. 마르크스주의 이론가들은 이데올로기를 실제의 역사적 상황을 왜곡시키는 환상, 또는 허위 의식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 보고 있다.) 즉, 이데올로기는 비슷한 방식으로 사건을 전도시키는 작용을 한다.아마도 가장 효과적인 이데올로기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보이지 않게 우리를 감싸고 있는, 또한 애쓰지 않고 우리의 욕망과 신념 그 자체의 모습을 지니는 듯이 보이는 것이다.지금까지 위대한 걸작들이라고 일컬어져 온 작품들은 아마도 오랜 세월을 지내면서 독자들에게 읽는 재미를 제공해 왔을 것이다. 그러나 정말 우리 현대의 페미니스트들이 남성 쇼비니스트들의 걸작품들을 즐길 수 있는 것일까? 우리가 만약 비판적인 페미니스트라면 이러한 작품들을 즐길 수 있기는 무척 어려워 보인다. 왜냐하면 "이데올로기는 언어에 이미 각인되어 있으므로 그 어떤 언어 형태도 이데올로기와 무관할 수 없다"는 캐더린 벨지 (Catherine Belsey))의 주장과도 같이, 아무리 사회전복적인 견해를 지닌 남성 작가였다 할지라도 그가 가부장제 체제 내에서 살면서 그 제도권의 언어를 사용하는 한 그는 그 사회의 이데올로기를 벗어 던질 수 없기 때문이다.이렇듯, 한 사회에서 개인이 이데Melville의 흰 고래와 같이 그 뜻이 복합적이고 난해한 것도 있다. The Scarlet Letter에 나오는 상징들은 복합적인 경우가 많으나 대개 그 뜻은 분명하다.이 작품은 두 청춘 남녀가 정열을 나누는 과정은 아예 생략되고 청교도 사회의 엄격한 규율을 깨뜨린 간통사건의 결과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작품 서두에서 우리가 만난 "문명사회의 악의 꽃"인 감옥에서 막 나온 죄인 헤스터는 밖에 피어 있는 "들장미 덤불"로 상징되는 자연의 여신과 같은 강렬한 첫인상을 우리에게 준다.우선 작품의 제목 The Scarlet Letter는 물론 Hester의 가슴 위 주홍글씨 A"를 가리키며, 이 A"자는 간음과 원죄를 상징한다. 그러나 Hester가 그녀 가슴 위에 곱게 새겨 달고 있는 이 붉은 A"자가 후에 Angel", "Able" 또는 Mercy"등의 뜻으로 해석되기도 한다.이 작품에 있어 A"자 다음으로 중요한 상징은 청교도주의를 상징하는 교수대가 있다. 작품의 처음과 중간, 그리고 끝에 나오는 교수대(絞首臺)는 작품의 배경과 구성면에서 중요하다. 교수대 이외에 청교도주의를 상징하는 것으로 육중한 감옥과 묘지, 그리고 다소 무리가 있을 지 모르나 감옥 앞에 있는 보기 흉한 잡초를 들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청교도주의를 상징하는 회색 그리고 검은 색과 같이 음산하고 부정적이며 엄격한 도덕주의와 죽음을 상징한다.여기서 호손이 그리고 있는 헤스터의 모습은 죄인이라기 보다는 우아한 자태의 위엄있는 상류층 귀부인을 연상시킨다. 또한 그는 그녀의 그 우아한 자태 이면에 감추어져 있는 격정적이고 야성적인 기질을 당당하게 드러내 보이고 있는 헤스터의 모습을 묘사한다. 따라서 햇빛을 받으며 교수대 위에 서 있는 헤스터의 모습은 죄인의 치욕적인 모습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감정과 정열에 솔직할 수 있는 용기를 지닌 여자의 모습으로 암울하고 위선적인 청교도 사회를 뚫고 나타난 찬란한 아름다움 그 자체인 것이다.헤스터의 죄는 청교도 사회의 거짓 믿음 즉 인간의 영과 정신을 다는 청교도 사회를 대표하는 목사로서 그 사회의 율법과 도덕에 얽매어 있는 인물로, 자신의 삶 자체라고 할 수 있는 청교도의 율법을 어긴 죄로 인한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모습으로 일관되고 있다. 헤스터가 이러한 나약한 딤즈데일을 파멸로 이끈 악마로 볼 때, 숲속의 헤스터는 딤즈데일을 다시 유혹함으로써, 즉 간음의 재결합을 유혹함으로써 그의 영혼에 치명타를 날리게 된다는 기존의 해석이 가능하다.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하는 화자의 설명에 따르면, 그녀가 칠링워스의 신분을 딤즈데일에게 비밀로 한 것 역시 딤즈데일의 영혼을 파괴하는데 치명적인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헤스터는 딤즈데일을 파멸로 이끈 악마라고 간주될 수도 있다. 칠링워스는 이기적인 의도에서 헤스터를 사랑이 없는 결혼 생활로 유인했을 뿐만 아니라, 청교도 사회에서 부정한 계집의 남편이 받아야 할 굴욕을 당하기가 싫어서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도 않는다. 이런 로저 칠링워스에 대해 로렌스는 세익스피어 이후로 그리고 빅토리아조 시대에 이르러 몰락해버린 참된 남성의 권위와 통제력 대신 유약한 지성의 전통의 힘을 지지하는 남성 인물로 본다.이러한 진정한 남성다움을 상실한 두 남자들에게 헤스터는 파괴적인 악마의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이 로렌스를 비롯한 기존의 읽기들이 보여주는 헤스터에 대한 기본적인 태도이다.로렌스는 『주홍글자』의 핵심적인 갈등을 진정한 남성다움의 상실과 여권의 신장으로 보고 있다. 그는 그 갈등의 부정적인 결과로 진정한 인간 관계를 파괴하는 측면을 제시한다. 이러한 그의 견해는 작품의 핵심을 단순히 죄로 인한 헤스터와 딤즈데일의 소외와 고독, 칠링워스의 타락한 지성의 죄로 보는 전통적인 견해와는 달리 높이 사줄 점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갈등의 부정적인 결과를 비록 나약해진 남성들에게도 그 책임을 돌리기도 하지만, 그들을 위협한 여자를 "악마"로 간주하여 억압함으로써 그 갈등의 해결을 로렌스는 찾고 있는 것이다.근대에 이르러 사색과 사상의 자유에 힘입어 해방잡을 수 없이 확대되었다.제2장 "장터"와 제3장 "알아봄"에서 교수대 위에 펄을 안고 선 헤스터를 둘러싼 광경은 마녀 재판과 처형에 비교될 수 있는 장면이다. 가부장적 사회를 위협하는 존재로서의 마녀 헤스터를 응징하는 가부장적 목소리들이 이 장면을 압도하고 있다. 마을 여자들도 헤스터에게 내린 형벌이 너무 가볍다고 비판하면서, 낙인찍기나 교수형 같은 중형으로 다스려야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들 여자들의 목소리는 바로 가부장제 사회의 이데올로기를 오히려 증폭하여 반향하는 스피커의 구실을 할 따름인 것이다. 화자는 또한 음산한 감옥과 붉은 야생 장미의 대조를 통해 헤스터의 편을 드는 듯하지만, 사실은 끊임없이 그녀를 응징하는 가부장적 목소리로 돌아가고 있다. 3장에 이르러 헤스터가 공개적인 수모를 당하는 현장에 칠링워스가 나타나며, 벨링햄 총독을 비롯하여 교회 원로들과 딤즈데일이 등장한다. 총독과 원로의 강권에 의하여 헤스터의 교구목사인 딤즈데일에게 헤스터의 정부를 밝히도록 그녀를 설득하라는 임무가 주워진다. 바로 그 당사자인 딤즈데일의 웅변은 진실을 말하라고 하면서 또한 은닉하라는 의미를 내포하는 이중적인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한편 가정의 천사, 정숙한 어머니를 요구하는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를 대변하는 칠링워스는 자신의 아내 헤스터가 부정한 여자로 처벌을 받고 있는 것을 목격하자 아내로서의 헤스터의 존재를 부정하고 자기의 소유물인 아내를 부정으로 취함으로써 자신의 남성적 에고에 치명타를 준 남자에 대하여 복수심을 갖는 것으로 이 상황에 대처한다.작품 속에서 헤스터는 마녀에 비유될 뿐이고, 직접적으로 마녀로 등장하는 여자는 벨링햄 총독의 누이인 히빈즈 부인이라는 과부이다. 그녀는 놀라운 통찰력을 보여주며 자신의 견해를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여자이다. 그녀는 이런 통찰을 속으로 품고 있지 않고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그 사회에서 격리 대상이 되고 마녀로 주목받게 된다. 그녀는 불륜을 범한 죄로 사회와 격리된 채 살아가는 헤스터야말로 위선적인 사회제도와 종장 사회의 모순과 획일적 논리를 꿰뚫어보고 자유로운 개인의 의지를 실현할 용기가 있는 여자이지만, 신의 섭리로 주어진 펄 덕분에 앤 허친슨과 같은 운명을 벗어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그러나 화자의 이러한 헤스터의 운명에 관한 언급은 청교도 사회의 이데올로기적 구성물에 불과한 여성의 속성 즉 여성성(femininity)의 개념에 근거한 이야기일 뿐이다. 사실 이 작품은 사회가 여자에게 부여한 속성들-부드러움, 애정, 열정, 헌신, 모성애, 희생-이 여자를 어떻게 구속하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여자는 이같은 여성성, 여성의 미덕의 범주에 특히 모성애에 자신을 구속시키고 이를 자연적인 것처럼 만드는 청교도 사회의 이데올로기에 따라 자신의 자연스러운 성적 충동 또는 욕망을 스스로 죄로 여기게 되고, 고통과 헌신이 숭고한 것이며 여성의 고유한 특성으로 믿게 되는 것이다. 헤스터 역시 사회가 부과한 이러한 젠더의 틀을 순순히 받아들임으로써 구원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는 것이 어머니로서의 헤스터의 면모를 보았을 때 하는 기존의 설명이다.펄은 태어남으로써 이미 헤스터의 죄를 드러내고 있으며 헤스터에게 있어 자신의 죄에 대한 산 증거자인 동시에 그녀의 양심에 매서운 채찍질을 가하는 형벌의 역할을 한다고 화자는 강조한다. 펄은 마치 헤스터의 죄의식을 일깨워주기 위해 만들어진 아이처럼 항상 그녀에게 살아있는 A자로 인식된다는 것이다. "악마의 자식" 또는 "마녀의 아이"로 지칭되기도 하는 펄은 헤스터의 숨겨진 억압된 모습인 것이다. 작가는 뜻밖에도 펄을 유럽의 어느 부유한 상속자와 결혼하는 것으로 처리하여 정말로 자유롭고 평등한 미국 사회의 건설과 관련한 새로운 주인공으로서의 그녀의 가능성을 더 이상 모색할 여지를 남겨 두지 않고 있다. 그리고 길들여질 수 없는 야성적인 펄이 죽어가는 아버지 딤즈데일에게 입맞추고 눈물을 흘림으로써 사회의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순응할 것을, 딸로서 아버지에게 기꺼이 예속될 것을 약속한다는 화자의 설명은 펄이 결국 남성사회의 여성으로 성장하게16)
    인문/어학| 2006.09.11| 10페이지| 1,500원| 조회(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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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젤라 카터와 `Passion of New Eve`
    The Passion of New Eve고대 철학부터 육체는 이성, 정신보다 열등한 것으로 여겨졌다. 플라톤은 육체가 정신을 감금한다고 했으며 이성의 작용을 방해하는 것으로 보았다. 17세기, 데카르트는 육체와 정신세계를 다른 실체로 보는 이원론을 주장했고 하나의 도구일 뿐 주체성을 가지지 않는다고 보았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정신과 이성중심의 체계에 도전하는 움직임이 철학, 인류학, 문화 관련 학문들을 통해 나타나기 시작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과학의 발달, 급성장한 소비문화, 페미니즘, 포스트 모더니즘의 이론이 발전하면서 육체, 정신, 존재, 정체성 사이의 관계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육체는 부차적인 대상이 아닌 중심적인 연구과제로 떠올랐다. 스피노자는 육체를 스스로 발생하고 성장하며 변화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기계와 다른 것이며 사상과 도구, 육체와 정신은 한 인간이 동시에 가지는 요소로 보았다. 즉, 데카르트가 조장했던 육체와 정신의 이원론의 전통을 부정한 것이다.그렇다면, 남성우월주의의 사회가 주입해 놓은 여성의 신체를 해체시킴으로써 사회적으로 규정되어 오던 인식의 문제도 전복시켜 재구성할 수 있는 것이다. 안젤라 카터(Angela Carter)의 소설인 The Passion of New Eve(1977)에서 여성의 신체를 통하여 신체가 가지는 의미를 고찰하고 사회적으로 규정되고 무의식적으로 억압받아온 여성들이 신체를 통하여 어떻게 다시 태어나게 되는 지 알아보기로 하겠다.이제 여성을 생물학적인 열성의 존재에서 빼내어 사회학적인 형성된 열성 생명체로 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생물학적으로 열등한 존재라면 아무리 개선하려해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학과 의학의 발달로 그러한 것은 없다는 것이 밝혀졌고 사회학적인 영향을 생각 안 해 볼 수가 없다. 이것은 푸코와 연결되는 고리로써 역사성을 가진 몸이라고 할 수 있다.푸코(Michell Foulcaut)는 육체가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라고 하고 이를 통하여 어떻게 권력이 이유로 마른 여자를 선호하였고 그러한 여자가 남성을 유혹하지 않는 정숙하고 금욕적인 여성들로 생각되었었다. 자본주의의 소비문화가 도입되면서 여성의 미는 상품화로 전락되었고 이로 인해 여성들의 아름다운 몸 만들기는 대중들의 대상이 된다. 보들리야르는 육체가 과거의 절제와 금욕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해방되었지만 그것은 단지 사물로서의 해방일 뿐 실제는 미의 윤리와 결합된 상품으로 전락되었다고 주장한다. 여성들의 몸매를 억지로 줄여주었던 코르셋이나 발을 못 자라게 했던 전족, 긴 머리, 다이어트, 성형수술 등의 예들은 남성우월주의 사회에 의해서 생긴 여성들의 미에 대한 노력이었다.트리스테사는 몸은 남자지만 여성의 역사가 새겨진 몸으로 가장하고 여자로 보는 남성들의 응시(gaze)에 의해서 그렇게 형성되어 간다. 남성이면서 남성의 여성에 대한 투영을 몸에 간직한 그(녀)는 남성의 상상력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128-129)) 여성의 몸으로 살면서 여성의 역사를 겪는 트리스테사는 남성욕망의 객체로서 여성의 이미지를 지닌다. 욕망의 객체가 된다는 것은 수동적인 것이며 수동적 경우에 존재하는 것은 부재하는 것과 다름없다. (137)) 그녀의 얼굴은 창백하고 눈은 푹 들어가 있으며 항상 슬픔에 차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121)) 스크린의 스타로 살아오던 그(녀)는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하는 스크린에 의해서 또 하나의 남성적 응시의 매개체 역할을 한다. 스크린으로 비유되는 미디어의 발달은 여성의 성의 상품화를 부추겼고 그 안에서 여성들은 더욱 빠르고 넓게 사회가 무의식적으로 강요하는 미의 기준을 모방하고 발전시킨다. 트리스테사는 그러한 영향으로 인해 더욱 자아를 잃은 객체로서 대중들로 보여지는 남성들의 환상적 욕망의 대상으로 전락한다.카터는 Sadian Woman에서 “여성캐릭터의 모델이 되는 여성성에 대한 생각은 남성적 사회의 산물이다.” (110)라고 했다.)Eve의 외모는 남성의 성적인 환상의 구체적 형상물인 렐리아(Leliah)의 한 변형으로 비자아(not-sel아지만 거울 속의 ‘나’는 타자이다. 이는 여성과 남성의 관계가 아니라 여성과 여성자신들의 관계이다. 여성의 분리된 정체성이 하나가 되기 힘들다. 그래서 많은 작가들이 거울의 이미지를 사용한다. 이브가 여자가 되면서부터 그녀 역시 거울을 보고 생각에 빠지곤 한다. 여자들은 거울을 통해 자신들을 거울을 보는 주체임에도 불구하고 보여지는 객체로 바꾼다. 즉, 거울은 구경거리로 전락하는 자신들을 묵인하는 역할을 한다. 카터의 소설에서는 여자들이 보여지는 객체로서 또한 보고자 하는 본성에 대하여 좀 더 깊이 들어간다.카터에게 남성적인 주체는 여성에 대한 그들의 에로틱한 환상으로 여성에게서 자율적인 주체성을 빼앗는다. 남성의 응시는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한다. 존재 자체가 아니라 재현(representation)의 기관이다. 이는 자아확인이나 자아재현이 될 수 있는데 이들은 여자들을 타자(other)로 만드는 데에 의존한다. 이러한 재현 속에서 구축된 남성들은 여자들 자체를 남성적인 시각에 자신을 던져버린 여자만큼 공허하다. (30)) 남성의 시각에 의해 렐리아는 희생자나 옷 입은 고깃덩어리가 된다.(28.31)) 트리스테사의 몸도 마찬가지이다.거울의 이미지와 연결되어 이 소설에서 다루어지는 모티브 한가지는 연금술이다. 연금술은 여러 가지 금속을 합쳐 금을 만들어낸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적으로 말하면 물, 불, 흙, 공기로 인간을 만들어내는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남성과 여성의 두 성을 가지는 복합적 인물을 만들어 내는 것을 뉴욕에서 만났던 연금술사인 바로슬라프(Baroslav)가 이바(Eva)에게 금을 주는 장면으로 암시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연금술의 특징이 사물의 본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재현에 촛점을 맞춘다는 것이며 이 점에서 거울과 일맥상통하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카터는 Mother를 통하여 가부장제의 사회의 여성의 몸에 대한 인식을 파괴한다. 그녀에 대한 묘사는 이블린이라는 남성의 서술을 통해 말하여진다. 육체적 과장, 뒤틀림을 보여주면서도 신화들을 통해 여성의 육체와 성욕을 통제하고 억압하려 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러한 이유로 카터는 anti-mythic의 길을 선택한다. 그녀는 신화를 특정한 상황에서 고통을 무디게 하기 위해 가짜 세계를 다루는 ‘consolatory nonsense'라고 한다. 이는 신화에 나오는 여신의 이미지인 Mother와 관계가 있다. 이 소설에서 Mother의 모습은 더 이상 도발적이거나 유혹적이지 않다. 그녀는 불모의 지대에 생명을 창조해놓는 여신이다. 보통 여신의 모습은 아름답고 환상적이지만 그녀의 육체는 큰 몸집에 아이에게 젖을 물릴 수 있는 즉, 생명을 유지해갈 수 있게 하는 가슴이 여럿 달리도록 수술을 한 몸이다이브 역시 여자로 살아온 과거가 없이 다만 몸만을 가지게 되는데 이에 남성적인 시각이 새겨진 몸을 갖게 되면서 그녀는 여성으로의 역사를 시작하게 된다. 처음에는 몸만이 여성이었으나 정신적으로 점점 여성처럼 되어 간다. 즉, 여성으로 살아온 경험이 없이도 여성의 역사가 담긴 몸을 가짐으로써 그녀는 여성이 되어가며 그 억압과 슬픔을 같이 느끼게 된다. 여기서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는 우월성의 사고를 환기시킬 필요가 있다. 이브가 생물학적 여성에서 사회적인 여성으로 변해 가는 과정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수술 이후 초반에는 이브가 험난한 일(강간과 학대)을 당하면서도 담담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완전한 여성이 아니라 아직은 남성으로서의 주체적인 입장이 무의식에 깔려 있다고 본다. 안젤라 카터는 여성의 몸의 담론에 대하여 몇 가지 시도를 하는데 그 중에 하나가 이분법적인 사고의 거부이다. 여성/남성, 자아/타자, 정신/몸 등 서양문화의 이분법적인 사고에서 벗어나길 원한다. 그 이유는 이렇게 나뉘어진 상반되는 분야들은 수직관계의 지배, 종속의 관계와 우열관계를 가지기 때문이다. 즉, 여성과 남성의 수직적 지배관계와 정신과 몸의 우열관계를 동시에 파괴한다. 이 소설에서 정신과 육체는 뗄 수 없는 것으로 때로는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기도 하지만 육체가 정신을 남성이였다. 여성들의 욕망과 성은 자신들의 경험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에게 욕망의 대상이 되는 경험이다. 그러나 이브가 테리스테사와 사막에서 사랑을 할 때 이브는 더 이상 수동적이지 않다. (149)) 소설의 초반부에서 썩은 도시 뉴욕에서 렐리아의 육체를 욕망의 대상으로 탐닉하고 버렸던 이바는 그것이 자신을 사막으로 내몰아 Beulah로 데려가려는 음모의 일환이었음을 알게된다. 레일라의 수동적으로 보이던 육체는 한 순간 음모의 주체가 되고 반면 이바가 어리석은 대상이 되어버린다.사막이라는 곳은 사회의 규범이나 지배권력에서 소외된 곳이다. 이 곳에서 여성은 더 이상 열등한 존재가 아니며 자신들만의 사회를 구축하는 주체가 된다. 뉴욕에서 임신한 렐리아가 낙태를 하게 되고 불임이 될 거라는 소리를 듣고 이바(Eva)는 서부의 사막으로 떠난다. 이 불임(sterility)는 이 소설의 또 하나의 모티브가 된다. 여성의 불임과 불모의 사막지역은 묘한 대칭을 이룬다. 물이 말라버린 사막과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여성의 몸이 sterility와 Infertility, the post-menopausal part of the earth로 말하여 진다.(40) 레일라에게 준 불임을 이블린은 자신의 한 부분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마음의 풍경이 사막의 풍경과 같다고 한다. (41) 사막여자들에게 잡히고 이 여자들은 깨진 남근상(phallus)의 상징이다. 이 여자들은 여성의 자궁을 본따서 지하도시를 세웠다. 생명이 없는 사막에서 생명을 생산해내는 여성의 자궁처럼 생긴 지하도시에는 여자들만이 살고 있다. 그 중에 Mother는 풍요로운 생명력과 모성을 상징하는 몸을 가지고 있다. 여성들만의 도시인 곳의 우두머리의 이름은 ‘Mother'인데 ’goddess of fertility‘(77)인 그녀는 자신의 몸을 성형하여 가슴을 여럿 달린 여자로 만드는데 이블린이 말했듯이 괴물같아 보이는 그녀는 모성을 간직한 몸이었다. 이는 불모의 땅에서 인공적으로 만들어 낸 아 있다.
    인문/어학| 2006.09.11| 9페이지| 1,500원| 조회(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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