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적 보상을 받기 원하는 우리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저자: 이옥수 출판사: 푸른 역사인도는 우리에게 보통 인구가 많으며 신비와 명상의 나라로 알려져 있다. 책의 제일 처음에 나오는 뮤지컬배우들의 생각처럼 나도 별반 다를 것 없이 인도에 대해서 생각했었다. 제일 처음 떠오르는 것은 카레 그리고 우리와는 달리 시간이 멈춘 듯, 여유롭게 사는 인도인의 삶과 문화를 통해 인생을 재충전할 시간과 또 다른 전환점을 가질 수 있다고 말이다. 어디서 이렇게 신비한 이미지가 떠오르는 것일까? 라고 평소에도 종종 생각했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 명쾌한 해답을 얻었다. 책을 보기 전 인도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한 이미지는 카스트 제도에 기인한 철저한 신분사회, 열악한 생활환경, 전 국민적 종교인 힌두교 등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우리도 철저했던 신분사회가 있었으며 한때는 일제식민지 시대를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인도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에는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여기서 제일 크게는 심리적으로 보상받기를 원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우리도 과거 흡사 비슷한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피해자가 아니라는 시각으로 인도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인도를 동양의 타자로 바라보면서 한때는 막강한 힘을 가졌던 대영제국의 공범이 되어서 심리적 보상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다. 익숙한 피해자로서의 처지가 아니라 가해자의 처지를 경험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어찌 보면 우리에게 인도는 부정해야 할 동양이거나 지우고픈 아픈 기억의 다른 이름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부정하거나 지우고 싶다고 해서 우리의 비슷한 과거까지 지워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기에 나는 강대국들의 그런 인식심기에 대해 동조할 수 없으며 현재까지도 오리엔탈리즘을 완성시키려는 태도를 용납할 수 없다. 나는 이런 여러 가지 의미해서 ‘심리적 보상을 받기 원하는 우리’ 이라는 제목을 붙였다.일단 우리가 인도를 이렇게 바라보게 된 데에는 인도를 식민지로 두었던 영국이 가장 큰 영향을했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이란 동양과 서양 간의 인식론적 구분을 창조하고 확인하는 데 일조하였고, 서양이 동양에 대한 연구와 서양에 의해 재현되고 지지된 어떤 이념적 관점을 말했다. 결국 오리엔탈리즘은 서양이 동양을 내려다보는 관찰자 입장이 되는 것이다. 수동적인 동양은 역동적인 서양의 부정적인 새김장식으로 정의되며 우수한 서양에 비해 동양은 항상 열등한 입장이며 동양이 후진적, 비합리적이라면 서양은 진보적,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영국이 인도에 그렇게 까지 한데에는 식민지가 된 인도를 좀 더 편하게 통치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오리엔탈리즘은 크게는 동양과 서양 간의 인신론적 구분을 창조하고 확립하는 이념적 관념이고 작게는 그들의 식민지 이었던 인도를 전 세계 사람들과 영국인 자신들, 심지어 인도사람들 그들에게까지 미개하다는 인식을 심어놓길 바랬던 것이다.영국은 인도를 베일 안에 가려있는 신비하고 알 수 없는 미지의 땅 이라는 이미지를 제일 공들여 각인시켰다. 사실 신비한 인도라는 표현도 푸코가 말한, 통치와 연계된 지식의 범주에 들어 있다. 서구사상에서 신비한 이란 단어는 이성적이란 표현의 반대 의미로 쓰였다. 따라서 영국이 창조한 신비한 인도라는 이미지는 인도의 합리성을 부정하고, 인도를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근대 영국의 지배에 종속시키려는 전략의 하나였던 것이다. 또한 무시무시하고 알 수 없는 어둠으로 꽉 찬 정글과 악이 가득하며 역병과 기근으로 질병이 많은 혼란 속에 있는 땅 이라는 인식을 심어 놓음으로써 자신들의 지배를 마치 도움의 손길처럼 합리와 시키는데 일조했다. 그리고 피부색에 있어서도 자신들의 피부색깔인 백색은 신사적이고 아름다운 이미지를 부여하면서 검은 색이거나 황색계열의 사람들은 이것을 타고난 약점으로 두고 마치 원숭이와 같은 취급을 하면서 동일한 인간이 아님과 동시에 자신들과의 큰 차이를 두었다. 그리고 기후차이와 문화차이일 뿐인 의상에 있어서도 자신들과는 다른 것을 성적으로 유혹적이며 관능적으로 표현함으로써 낮고 천한 조함으로써 저항하지 않는 식민지로 확립시키고 혹시나 영국에 정치적인 위협이 될 수 있는 위험요소를 제거하고 싶었을 것이다. 또한 영국이 스스로 수행하고 있다고 믿는 문명화의 대상에서도 그들은 제외되기 때문에 더더욱 인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영국은 인도에게 있어 시간의 개념마저 빼앗았다. 늘 시간이 정지되어 있으며 역사가 부재한 곳, 변화하거나 발전할 수 없는 반 근대, 반 문명의 이미지로 채색시켰다. 인도인은 천성이 게으로고 나태해서 발전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내일에 대한 희망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도 없는 수동적 인간이며 무력한 사람들의 천국, 구제 불능의 나라로 묘사했다. 결국 그들을 천성적으로 게으른 인종으로 만든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정지된 인도, 환상적인 인도의 이미지는 영국이 정치적으로 의도한 것이다. 이는 영국의 불안한 심리와 함께 인도 안에서도 인정을 받아야 하는 모순 속에 위치한 영국의 불안한 권위를 반영했음을 알 수 있다.이에 대한 내용들을 읽으면서 우리가 수업시간에 보았던 애나&킹이 떠올랐다. 영국여자인 애나가 미얀마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자신의 아들에게 하는 말이었다. “엄마가 영국에 살지 않았어도 인도는 영국 식민지니까 영국에 산 것과 마찬가지야” 라는 말이었다. 이것은 오리엔탈리즘을 몰랐다고 하여도 황당한 소리가 아닐 수 없다. 어떻게 남의 나라인 타국에 살았으면서 자국에 사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러한 대사들은 오늘날까지도 영국이 인도를 자신들이 지배하였던 나라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며 끊임없이 오리엔탈리즘적인 요소들을 다양한 매체로 각인시키고 있는 것이다.더불어 이 책에서는 특히 많은 영화나 저서 그리고 저명한 사람들의 말을 많이 인용했다. 그런데 뜻밖에 정말 놀란 것들은 생각하지 못했던 유명한 저서나 영화에서 무심코 흘려 읽거나 본 사이에 수많은 오리엔탈리즘적인 요소들이 있었다. 대표적으로는 유명한 추리소설 셜록 홈스의 시리즈물중 를 살펴보면 인도에 대한 부정적인 묘사와 영국의 인도통치를 정당화하는 표현이 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국은 투쟁이 아닌 영국 군대에 고용된 일부 인도인 용병 세포이들의 하극상인 폭동이라는 말로만 치부하여 ‘세포이 난’이라고 짧게 말했다. 그 안에는 역시 우리밖에 통치할 수 없다는 이미지를 구축시킨 것이다. 여기서 가슴 아픈 사실은 아직도 우리가 세계사를 배울 때 인도의 ‘제 1차 독립전쟁’이 아닌 ‘세포이 난’ 으로 배우고 있다는 현실이다. 우리도 한때 일제식민지를 거친 나라로써 3.1운동에 대해 생각해보면 이와 유사할 것이다. 일본에서는 별거 아닌 평민들의 시위라고 다른 나라에게 각인시켰겠지만 3.1운동은 우리가 아직도 역사로 중요한 일로 배울 만큼 큰 독립운동이었으며 각계각층의 사람들, 수많은 우리나라의 백성들이 나와서 독립을 위해 시위한 것이라는데 큰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같은 아픈 기억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양이 동양을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각인 오리엔탈리즘이 동양이 동양을 바라보는 시작조차 변질시켰다. 오리엔탈리즘의 변형인 복제오리엔탈리즘과 박제 오리엔탈리즘이 생긴 것이다. 결국 19세기의 제국주의자 영국에게 감염된 우리의 인도보기는 영국의 시각을 그대로 복제한 꼴이다. 복제 오리엔탈리즘을 아무리 부정하고 싶어도 인도는 우리의 얼굴이자 자화상인 것이다. 인도를 명상과 종교의 나라로 박제하여 이성적으로 반듯한 영국의 통치를 정당화한 논리가 우리나라에서도 끊임없이 복제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시선도 백인들 못지않게 냉정하고 오만하기는 마찬가지이다.우리나라에서 인도를 여행한 후 글을 집필한 몇몇 사람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강석경 씨와 류시화 씨가 그들이다. 조금씩의 차이는 존재하겠지만 결국은 복제오리엔탈리즘의 시각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소설가 송기원 씨는 인도인들을 아귀라고 표현하는가 하면, 강석경 씨는 그의 이라는 책에서 많은 부분에 있어 시각이 영국과 흡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도의 사회제도와 문화 관습을 이해하지 못한 채 스스로 낮게 등급 매기는가 하면 때로는 인도가 후진국인 것은 가난때들은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은 인도 평원에서 메마르고 건조해진 내 감성에 촉촉하게 물기가 스며드는 것 같다고 저서 했다. 이는 개인적인 차이였을 수도 있지만 대개는 은연중에 힌두음악을 소음으로 여기고, 익숙한 서양 음악을 진정한 음악으로 고양한 것이다. 이렇듯 우리 머릿속 안에는 우리도 모르게 복제 오리엔탈리즘이 스며들어 있는 것이다. 손으로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면 원시적이며 미개하다는 생각부터 하게 된다. 하지만 와인이나 스테이크의 얘기를 듣게 되면 고급스러운 품위를 떠올리는 것 또한 우리가 쉽게 생각의 오류를 범하는 복제 오리엔탈리즘이다.강석경 씨와는 조금 다른 측면이었지만 류시화 씨 역시 복제 오리엔탈리즘의 굴레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그의 가장 큰 덕목이자 죄목은 인도를 시간 속에 박제했다는 점이다. 류시화 씨가 만난 인도인들은 마치 피터 팬처럼 영원히 자라지 않는 영국인의 열등한 존재, 곧 영국인의 눈에 비친 인도인의 모습을 근사하게 본 것이다. 인도의 정신주의가 과학과 물질문명을 이룩한 서양이나 그 유사종인 우리보다 우수하다고 보고 말하고 있지만 그래서 인도가 우리보다 후진국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것이다. 또한 자연주의를 동경하는 시인의 순수한 마음과 눈을 보여주는 한편, 동시에 발전하지 않은 낙후한 인도의 이미지를 강조하는 박제 오리엔탈리즘을 다시 한 번 재확인 했다. 그리고 신비한 인도를 그려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인도를 친숙하게 만들고 있지만 결국 정형화되고 박제된 이미지로 인도를 더욱 신비하고 낯설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도 가지고 있는 대표적인 모순이 아닐까 싶다.우리는 인도의 힘든 현실이나 복합적이고 갈등이 많은 사회의 이미지 뒤로 숨어버린 슬픔이나 고통은 우리와 무관한 아름다움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여러 책들은 인도를 제대로 보여주지도 못하며 독자들로 하여금 일정한 거리를 두고 타자의 가난과 고단한 삶을 고통 없이 구경하게 만들 따름이다. 결국 의무와 책임 없이 잠시 동화 같은, 그림 같은 세상으로 도피하는 것한다.
‘너’와 ‘나’의 축제가 아닌 ‘우리의 축제’를 위해현대사회 축제의 특징을 과거 축제와 비교해 설명축제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노래와 춤을 비롯한 예술이 총망라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축제는 제의적 요소와 유희적 요소가 함께 어우러짐으로써 신에 대한 경외와 감사가 표해짐은 물론 일상성의 탈출과 감정·행위의 과잉분출 및 삶을 근본적으로 긍정하는 태도로 인해 구성원들의 심리적 카타르시스와 사회적 유대강화를 도모하는 것이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축제는 동일하게 이와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시대의 변화에 따라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 먼저 과거축제와 현대축제의 특징 및 기능을 살펴보고, 공통점 및 차이점을 알아보며 현대사회의 축제가 어떻게 발전해 나가야 하는가를 서술하고자 한다.우리나라의 축제의 시원은 아마 제천의례가 아닐까 싶다. 이때에는 갖가지 음식을 차려놓고 하늘의 신께 제사를 지내며 음주가무를 즐겼다고 한다. 부여의 정월 영고, 고구려의 10월 동맹, 예의 무천과 마한의 농공시필기인 5월과 10월 등의 제천의례 모두 현재의 축제에 큰 영향을 미쳤다. 과거 축제는 시원에서 알 수 있듯 제의적이며 민속적인 성격이 강하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또한, 국가적이고 종교적이며 공동체를 위한 개념이 강했다. 이는 신앙적으로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기능에도 큰 역할을 차지했다. 과거 축제는 민속학적으로 보면 세시풍속으로 행해졌다. 과거 축제를 조금 더 깊이 살펴보자. 역사학적으로보면 제정일치 시대에 제천의식으로서 축제가 행해졌고, 연극학적인 측면에서는 축제를 통해 연극이 발생하였다. 인류학적인 측면에서는 제의적 반란에 의해 사회 질서를 강화시키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과거 우리는 농업이 기반이 되는 사회였다. 따라서 과거 축제는 당연히 농업이라는 사회적 여건을 기반으로 행해졌다. 위의 특징들을 기능적으로 살펴보면 종교적 기능으로는 초자연적이고 초인간적인 존재의 힘에 의한 풍요다산을 기원하고 악귀와 질병을 퇴치하였으며, 인간의 공포심과 불안감을 해소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정치적·사회적 기능으로는 역할을 분담하여 집단을 조직하였으며 축제를 통해 공동체 의식과 유대감을 강화시키고 협동심과 단결심을 고취하였다. 생산 활동을 중단하고 오락적이고 예술적인 표현 욕구를 충족시키고 금기와 억압, 법규를 벗어나 자유와 해방, 일탈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게 하였다. 이 밖에 윤리적인 기능들도 있었는데, 과거 축제의 역사를 살펴보면 고대 사회에서는 제천의식으로 이루어졌다.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도예에는 무천이 그 예이다. 신라시대에서 고려 시대에 이르기까지 팔관회가 개최되었으며, 연등회가 축제로서의 역할을 담당했다.이에 반해 현대 축제는 이벤트적이고 비즈니스적인 성격이 강하며 대부분 관광객들을 위해 존재한다. 국가적이고 종교적인 공동체 축제에서 지역 공동체의 축제 시대로 이행하였다. 과거 신앙적이고 사회적인 기능은 축소되고, 오락적이고 경제적인 기능들은 확대되었다. 지방 자치제가 도입되면서 지방화 시대에 맞춘 민간 주도의 지역 문화 축제로서의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사회 축제의 기능을 살펴보면 원초 제의성의 보존기능이 있고 지역민의 일체감 조성 기능이 있다. 또한 전통 문화의 보존 기능과 경제적인 기능을 갖추고 있다. 즉 축제를 통해 관광 수입을 증대하여 각 지역의 토산품이나 특산품 판매량을 증대시키는 경제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관광적 기능을 들 수 있는데, 지역 축제를 통한 만남과 지역적인 소속을 확인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현대로 올수록 전통 문화 보존 기능과 관광 기능이 강화되고 있다. 이는 도시화나 산업화가 이루어진 사회나 지역 공동체의 경우 공동체의 고유성과 전통성이 존재하지 않을 뿐 아니라 제의로서의 특징을 갖출 사회적 여건이 사라졌기 때문이다.먼저 눈에 띄는 두드러진 차이는 자연에 대한 의존성이다. 자연에 대한 의존성이 강했던 과거에는 축제의 제의성이 강조되었으나 현대사회로 올수록 유희적 성격이 강해졌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현대로 올수록 축제 주체와 객체의 분리, 관광객 유인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 등의 경향이 두드러졌다. 이와 같은 축제의 성격변화는 농경사회로부터 산업사회로의 이행과 조응하는 자연스런 현상으로 볼 수 있다. 또한 현대축제는 해당 사회의 홍보 및 경제적인 가치실현은 물론 정체성을 강화하는 등의 많은 성과들도 나타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러한 변화가 과도한 예상낭비를 초래함은 물론 상업적 행사에 치중하고 축제주체의 공동체 행사가 되지 못함으로서 축제 본래의 의미와 목적을 벗어난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현대사회의 축제 역시 인간사회집단의 삶의 한 부분으로 집단적인 행위전승이자 동시에 축제주체 내부와 더 큰 외부세계간의 적극적인 의사소통의 매개가 되고 있음은 분명하다. 전통사회의 집단의례와 현대 산업사회의 축제 모두가 사회성격이 다른 두 사회집단의 현실적응을 위한 매개라는 점에서 볼 때 지향하는 바가 유사하다. 즉 전산업사회의 집단의례가 사회통합과 공동체의 유지존속 및 집재 권력의 강화를 목적으로 하고 있듯이, 현대사회의 축제행위가 지향하는 경제적 수익 증대와 지역홍보 및 정체성 강화전략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아울러 오늘날의 축제는 지역문화전통의 발굴과 계승 및 지역 홍보와 정체성 강화는 물론 관광객 유인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와 문화정치의 현장이자 중요한 매개로 활용되고 있으므로 넓은 시각에서는 전통사회의 집단의례가 갖는 기능과 다르지 않다.다만 전통사회의 신분관계와 강한 영역성, 폐쇄적인 사회상황과는 달리 물리적인 경계가 허물어진 현대사회의 경우 지역축제가 외부인을 겨냥하여 개최된다는 사실이다. 지역사회가 축제를 통해 외부세계에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고 장점을 알림으로써 자아정체감을 강화하고 관광객을 유치하여 경제적 수익을 획득하는 행위는 적극적인 현실적응전략의 일환으로 생각해볼 수도 있다. 지방자치제도 실시 이후 다양한 축제들이 괄목할만한 양적 증가현상이 나타났다. 현대에 오면서 축제는 그 범주는 물론이고 개념정의 자체가 혼란스러울 정도로 각종 축제들이 난무하고 있다. 긍정적으로 본다면 그만큼 ‘문화의 시대’, ‘지방화시대’ 답게 축제가 활성화되었다고 볼 수도 있으나 부정적으로 보면 실제로는 축제다운 축제가 별로 없다고도 볼 수 있다. 인위적이건 자의적이건 간에 축제를 위해 실제 많은 돈이 투자 되고 그 투자만큼의 성과를 보지 못하는 것이 현대축제의 현주소라고 생각한다. 축제 주최지 또는 주최들은 축제를 더 크게만 만드는 것에만 의의를 두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인 것 같다. 심지어 같은 토산물을 주제로 하는 지역의 축제들도 있는데 그런 경우 축제의 범위가 크면 된다는 생각에 말 그대로 축제 개최지를 넓게만 잡아 대부분의 축제가 ‘속 빈 강정’ 같은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물론 축제로 인해 지역이 유명해지는 장점도 있지만 알맹이 없는 축제는 관광객을 점차 감소시켜 결국 지역민들의 축제로 전락해버리곤 한다. 이에 대한 가장 큰 원인은 홍보와 콘텐츠의 부족 그리고 상업적 느낌이 강하다는 대에 있다. 이러한 점을 문제점을 극복하고 성공적인 축제로 이끌기 위해 현대의 축제는 과거축제를 현대축제에 접목시켜 재실현하고 아울러 우리 고유문화유산인 전통축제를 계승해야 할 것이다.
2012년 6월 17일망중립성에 대한 고찰- 카카오톡 보이스톡 논란 중심으로 -Ⅰ. 서론Ⅱ. 본론ⅰ. 망중립성 정의ⅱ. 과거부터 시작된 망중립성 논란ⅲ. 현재 카카오톡 ‘보이스 톡’ 논란ⅳ. 망사업자(이동통신사)의 입장정리 및 분석ⅴ. 콘텐츠 사업자의 입장정리 및 분석Ⅲ. 결론Ⅰ. 서론망중립성 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되기 시작한 하나TV때부터 지금까지 이 논란은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다. 현재 이 문제가 다시 이슈화과 되고 논란에 중심에 서게 된데는 카카오톡의 보이스톡 서비스 때문이다. 회원 약 오천만명을 보유하는 카카오톡에서 보이스톡 서비스를 제공해 단순히 무료 문자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무료 통화 서비스를 제공한다니 이동통신사들 발에 불이 떨어진 것이다. 이동통신사들은 이러한 논란에 매출이라는 칼을 뒤에 숨기고 전면에는 서비스 품질등의 이유를 들어 논란 속 자신들의 위치 및 입장을 피해자로 언론플레이 힘쓰고 있다. 언론플레이 속 중립을 지켜야 할 신문 역시 편파적이긴 마찬가지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번 기말과제를 통해 중립적인 입장에서 사건의 본질을 파헤쳐 망사업자와 콘텐츠사업자의 입장정리 및 분석을 하고 분석을 통한 대안 및 결론을 내려고 한다.Ⅱ. 본론ⅰ. 망중립성 정의망 중립성이라는 용어는 1990년대초 미국에서 처음 언급됐으며, 유럽연합(EU)가 정보사회보고서에서 ‘망규제는 상호접속 및 상호운용성을 요구한다.’는 내용으로 망 중립성이란 용어를 사용하며 확산되기 시작 했다. 이 용어는 망 사업자가 어떠한 콘텐츠에 대해서도 차별 없이 동등하게 취급해야 한다는 개념으로,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상호접속, 비차별, 접근성의 원칙을 통신망에 동일하게 적용하는 것이다. 세 가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비차별성 : 네트워크 사업자의 트래픽을 포함한 모든 트래픽은 네트워크상에서 동일하게 취급받아야한다.- 상호접속 : 네트워크 사업자가 다른 어떤 네트워크사업자와도 상호접속을 허용하고 요구하는 의무와 권리를 가진다는 원칙이다. 설사 그것이 경쟁업체의 망이라도 합리 타개하고자 한다. ITU-T의 NgN (Next generation Network)이나 우리나라의 BcN(Broadband convergence Network), 영국 BT의 21CN(21st Century Network)과 같이 기존 인터넷 아키텍처의 변화를 꾀하는 All-IP 기반 컨버전스 인프라에 대한 논의도 ISP 등 네트워크 사업자들이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제기된 것으로 볼 수 있다.그럼 과거 한국에서 시작된 망중립성 논란들에 대해 살펴보자.1. 하나 TV우리나라에서 네트워크중립성에 대한 논의가 이슈화되고 있는 것은 LG파워콤이 대용량트래픽 전송에 따른 비용문제를 이유로 망을 빌려주고 있는 하나로텔레콤에게 관련서비스(하나TV)를 차단하면서 수면위로 부각됐다. 22만명에 달하는 LG파워콤망을 쓰는 하나로텔레콤 가입자들이 하나TV에 가입할 수 있는 길이 원천적으로 막히면서, 다른 대용량 콘텐츠 업체들(네이버 등 포털, 곰TV, 판도라 TV등 VOD업체들)과의 형평성 문제가 대두된 것이다.2. 방/통 융합방송통신융합추진위원회 전문위원회 회의에서는 최근 3~4차례 수평적 규제체계에 따른 사업자 분류체계에 대해 정통부, 방송위, 문화부가 자신의 입장을 표명했다. 정통부는 전송/콘텐츠 사업자 2분류안을, 방송위·문화부는 네트워크/플랫폼/콘텐츠 3분류안을 주장하면서, 네트워크중립성 문제를 자신의 입맛에 맞게 끌어들여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정통부는 "(방송위와 문화부의) 네트워크·플랫폼·콘텐츠 3분류안은 네트워크사업자에게 설비투자 유인을 제공할 수 없어 네트워크 고도화를 통한 IT산업발전의 가치사슬을 사장시킨다"며 네트워크사업자(통신사업자)의 서비스사업진출을 전면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반면 방송위와 문화부는 "네트워크 보유자의 지배력 남용을 방지하려면 융합시대에 맞는 서비스사업자에 대한 지위(플랫폼)를 별도로 규정하며, 대신 설비투자 유인을 감소시키지 않게 하기 위해 플랫폼사업자에게 유상으로 인프라를 공용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예를 들어보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인터넷망제공업자(ISP)가 망을 이중화해 차별적인 요금을 적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ⅲ. 현재 카카오톡 ‘보이스 톡’ 논란현재 카카오톡 보이스톡 서비스가 출시된지 약 한달만에 망중립성 문제는 새로운 화두로 이슈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현재 카카오톡에서 보이스 톡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반발을 든 집단은 당연 이동통신사들이다. 처음 카카오톡이 출시된 이래로 문자 수요가 감소하여 매출에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하며 카카오톡의 현 무료전화 서비스는 매출에 막대한 손해를 입히고 서비스 품질을 저해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서로간의 입장 차에 관해서는 뒤에서 더 구체적으로 다룰 예정이다. 사실 '보이스 톡'과 같은 무료통화 서비스 프로그램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외국 어플 스카이프는 현재 세계의 25%의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으며 한국에서 역시 네이버 어플인 무료통화 메신저 라인이 있고 영상통화 역시 가능한 탱고 및 터치 등의 어플이 존재하고 있다. 이들 어플이 서비스를 제공할떄는 묵묵부답이던 이동통신사들은 카카오톡이 이와 같은 서비스를 내놓자 마자 여러 주장들을 펴며 공세를 퍼 붓고 있다. 이는 왜 그런것일까? 당연히 회원수가 얼마되지 않는 타 서비스는 이용률도 저조할 뿐더러 매출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데 굳이 입장표명을 하여 일을 시끄럽게 만들필요가 없다는 판단에서 였을것이다. 하지만 5천만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는 카카오톡에서 이와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은 이전보다 큰 매출감소 그리고 이에따른 한국 시장 변화를 고려한 판단일 것이다. 5천만 회원 보유 어플답게 일순간 보이스톡은 뜨거운 감자가 되었고 이동통신사들은 망중립성의 기본적 정의도 모른채 카카오톡과 같은 콘텐츠 사업자들을 무임승차로 지칭하여 자신들의 피해자 입장에 포지셔닝 하였다. 급기야 카카오톡에서는 이동통신사들이 보이스톡의 연결을 제한한 증거를 가지고 있다는 얘기까지 나오다 결국 시한을 정해 그 전까지 신청한 사용자들만이 사용할 수 있게 일단 협의 하였다. 이치가 증가하는 것.)을 고려할 때, 트래픽 혼잡은 피할 수 없는 현상이므로 가격기구를 통하여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본다. 결국 요금에 따라 망 서비스의 질에 차이를 두는 이중화된 시스템을 통하여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문제가 없을 뿐만 아니라 ISP가 CP에게 차별적인 가격을 설정하는 것도 경제학적 논리에서는 문제가 없다고 본다.② 불필요한 규제가 될 가능성망 중립성을 통해 정책당국이 인터넷 네트워크 운용에 대한 지배력을 증가시키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있다. 즉, 망 중립성이 가격 규제와 다르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모든 규제가 그렇듯 가격규제도 자원배분의 왜곡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요금체계를 단순화시키고 경직화시켜서 서비스의 다양성을 어렵게 만든다. 또한 사업자는 제한된 환경에서 수익을 창출해야 하므로 서비스 품질의 저하를 초래한다. 결국 비용과 효용이라는 측면에서 모두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 따라서 망 중립성이 가격규제를 비롯한 불필요한 규제로 악용될 소지가 있기 때문에 이는 의회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 자유시장(free market)의 원리와 공정경쟁을 통하여 결정되는 것이 바람직하다.③ 인터넷 환경 개선과 서비스 개발을 위한 투자재원 확보ISP와 케이블 사업자 등은 발전된 인터넷 인프라 구축을 위한 투자재원 확보 측면에서 망 중립성에 반대한다. 현행 인터넷 인프라와 최선형 서비스에서는 ISP 네트워크의 입구(ingress point)와 출구(egress point) 사이에 막대한 대역폭을 확보하지 않는 이상, CP와 사용자 간의 고품질 정보전송은 매우 어렵다. 그래서 품질 개선을 위한 지속적인 투자가 요구되는데 트래픽 량에 따른 독립적인 형태의 과금 체계에서는 ISP 등 네트워크 사업자에게만 일방적으로 투자를 요구한다. 사용자에게 인터넷 종량제를 전격적으로 시행하는 것이 여러 이유에서 어려운 이상, 네트워크 사업자들이 투자의 부담을 떠안게 된다. 따라서 CP와 ISP간 일반적인 비즈니스 관계 수준의 정산모형이나 기준을 마련하여야구에 대해 콘텐츠 사업자가 요구를 거절해야 할 이유는 없다. 때문에 IPTV사업 등에 따른 망 품질 개선을 위한 투자에는 현재 콘텐츠 사업자도 투자는 동의하고 있다. 망을 이용하는 사용자의 입장에서 보아도 망 품질 개선을 위한 투자에 적극 참여하여 망 품질이 개선된다면 콘텐츠 사업자의 이득은 자연히 따라오게 되어 있다. 하지만 투자비용에 따라 망을 이중화하여 차등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자본력이 부족한 콘텐츠 사업자가 발전이 불가능하고 따라서 수준이 정체되기 때문에 비효율적이다. 또한 콘텐츠 사업자간의 자금의 빈부격차를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전체적인 발전을 도모할 수 없다. 임대료를 지불하고 망을 사용하는 컨텐츠 사업자와 돈을 받고 망을 빌려주는 망 사업자의 현 시장체제의 관계에서는 권력 관계가 불가피하다. 때문에 컨텐츠 사업자들은 망 중립성 논의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제약 없이 말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지 않는다. 이러한 사업구조를 고려했을 때, 컨텐츠 사업자의 권리문제 또한 진지하게 논의되어야 진정한 자유경쟁체제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ⅴ. 콘텐츠 사업자의 입장정리 및 분석‘네트워크 중립성’은 인터넷은 전기와 같은 공공재이기 때문에 모든 콘텐츠를 망에 부담을 주는 정도와 관계없이 동일하게 다뤄야 한다는 개념이다. 네트워크 중립성에 대해 망사업자는 차세대 인터넷 망 투자나 품질 향상을 위해 트래픽을 많이 잡아먹는 온라인사업자에게 망 이용료를 부과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며 네트워크 다양성을 주장하고 있다. 그에 반해 콘텐츠 사업자는 이러한 생각을 이해하지만 콘텐츠 질 저하와 소비자에 대한 요금 전가를 막을 제도적 장치를 먼저 마련해야 한다며 반대를 하며 네트워크 중립성을 외치고 망 이용료를 내는 것에 반발 하고 있다.① 국내 콘텐츠 유통을 원활히 하기 위해.망중립을 하지 않은 상황에서 생기는 예를 들고자 한다. 2010년 어느 날. 마이너신문사 콘텐츠유통팀을 맡고 있는 김 팀장은 요즘 심사가 괴롭다. 회사의 동영상 콘텐츠 유통을 책임지고 있는 그를 괴롭히는
-문장강화 감상문-열의 아홉이 아닌 독창적인 ‘하나’가 되기 위해어느덧 4학년이 되어 부랴부랴 취직준비를 하느라 본질적인 공부는 잠시 접어둔 채 공장의 기계처럼 자격증을 취득하는 기술적인 공부에만 목을 매어 살게 되었다. 민들레 씨앗처럼 빠르게 날아다니는 시간 앞에 기본기를 다질 시간은 사치스럽다 여겨졌다. 아마 과제가 아니었다면 나는 이 책을 읽을 일이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며, 책을 다 읽은 지금 최영묵 교수님께 진심어린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나는 사람끼리의 인연은 물론이고 사람과 사물사이의 인연도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런 면에서 이 책과 나 그리고 필자이신 고 이태준선생과의 인연에 감사하며 서평을 시작하려 한다.세상에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듯 사람마다 각기의 다른 마음과 생각 그리고 감정을 글로 표현하는 방법 역시 다르다. 어떤 문장은 시적일 수도 있고 산문적일 수도 있듯이 다양한 것은 어쩔 수 없는 ‘필연태’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강조하여 말하고 있는 것은 자신만의 개성 있는 문장을 쓰라는 것이다. 책의 많은 부분에서 글을 쓰는 절차나 방법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지만 그 형식을 담아내는 내용은 자신의 독창적인 생으로 다양하게 표현되어 질 수 있는 ‘기능태’라 하였다. 이런 면에서 볼 때, 나는 추사 김정희가 말한 ‘사란유법불가무법역불가 -난초를 그림에 법이 있어도 안 되고 법이 없어도 또한 안 된다 -라는 말을 기능태에 관점에서 해석 해보았다. 추사 김정희의 말과는 달리 나를 포함한 수많은 대학생들은 ‘법에 따라서만 난초를 그리는’ 일을 반복하는 듯하다. 절차나 방법상의 필연태에 얽매여 틀에 박힌 글쓰기가 만연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태준은 과거 조선시대의 문장이 수사 관념에만 얽매여 맹목적으로 한문체를 모방하여 개성을 상실한 것이라고 했는데 이는 오늘의 우리 대학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베끼기 문화’와 다를 바 없다. 즉, 자기 생각을 자신의 개성을 가지고 표현하는 방법에 익숙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이 비단 대학사회만의던 적이 부지기수 이었다. 개성과 독창성을 상실해서 사고의 빈곤을 가져오고, 이러한 사고의 빈곤으로 인해 부족한 어휘로 내 생각을 제대로 글로 표현해내지 못하고, 다시 개성 없는 틀에 박힌 글쓰기로 인해 사고가 제한되어 버리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체에 대해 설명한 부분에서 ‘강건체’의 예문으로 제시된 민태원의 ‘청춘 예찬'을 읽으면서 나만의 뚜렷한 이상도 없이 남의 글이나 짜깁기해서 보고서를 작성해왔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정지용이나 이상과 같은 작가는 그들만의 독특하고 섬세한 문장의 개발을 통해 우리 문장을 발전시켰는데 이 책을 통해 그들의 개성적인 글쓰기를 배울 수 있었다.“쌀은 곡식의 하나다. 밥을 지어먹는다.”는 문례에서 “무는 채소의 하나다. 김치를 담가 먹는다.”는 문장을 생각해 내는 편벽된 사고에서 벗어나는 것이 책을 읽는 가장 중요한 의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쌀은 농부의 피와 땀이다. 고로 우리는 그 농부의 피와 땀을 밥으로 지어 먹는다.” 정도로 조금은 사고의 전환이 필요할 듯싶다. 창조적인 생각과 관련해서 광고계에 일하시는 분으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얼음이 녹으면 뭐가 될까요?” 라는 질문에 열에 아홉이 대답한다는 “당연히 얼음이 녹으면 물이 되죠” 라는 대답을 했었다. 그 분이 말씀하시길 창조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의 대답은 “얼음이 녹으면 봄이 온다” 라는 대답이었다. 창조적 생각의 정답은 없지만 제한된 사고에서 벗어나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창조적 생각의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자신만의 생각과 개성이 드러난 글을 쓰기 위해서는 남들이 모두 생각하고 있는 것을 상투적인 형식으로 쓴 글은 의미가 없다. 결과적으로 창조적인 글을 쓰기 위해서는 열의 아홉이 말하는 뻔 한 글, 이야기가 아닌 개성 있는 하나가 될 수 있는 연습과 능력을 길러야 한다.나는 이 책 전체에서 개성적인 문장 쓰기에 주목했다. 문장작법의 측면에서 본다면 물론 1940년대에 나온 책으로 오늘날의 문장작법에 관한 책과 크게 다 사고를 출발 으로 이를 날카로운 관찰력으로 관찰하고, 참신하게 표현 해낼 수 있는 어휘를 찾고, 새로운 단어를 창조해 내고, 구체적으로 완성시키는 데에 이 문장작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개성적인 문장작법은 곧 그 내용도 개성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하는 필수 요건이라고 할 수 있다.이 책에서는 제1강부터 4강까지는 문장작법의 의의 및 문장과 언어의 제 문제와 요령 등을 다루었고 제5강부터 제8강까지 실제 글을 쓰는 방법을 다양한 예문을 통해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는데 이태준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 찾은 제재를 자기가 관찰하고 느끼기에 따라 얼마든지 독창적인 것으로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를 바탕으로 쓴 글을 더 다듬어 완벽에 가까운 글쓰기로 만들기 위해 퇴고를 거치는데 이때 처음 글 쓸 때의 생각과 신선함을 잃지 않아야 된다고 말했다. 결국 내용과 형식 모든 면에서의 독창적인 글쓰기에 대해 언급함으로써 개성을 살릴 수 있는 글쓰기의 방법에 대해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 또한 책의 첫 장에 언급되었던 “글은 곧 말이다.” 라는 명제에서 볼 수 있듯이 언어에 대한 바른 인식이 우선되어야 좋은 문장을 쓸 수 있다. 글은 말로 이루어지고, 말로 자신의 생각을 쓰면 글이 된다는데, 좋은 글을 쓰려는 노력은 좋은 말을 쓰려는 노력이라고 하니, 언어에 대한 바른 인식을 바탕으로 좋은 말로 자신의 생각을 쓰면 이것이 바로 좋은 글이 될 것이다. 제9강에서 이태준은 문장의 현대화에 있어 언문일치는 필수적인 조건이지만 언무일치 문장은 민중들이 일상생활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는 어투를 문장화한 것이어서 예술가의 문장이기 어렵고, 개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현대적인 문장이 되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상·정지용·박태원·이효석·김기림 같은 이들을 예로 들면서 현대적인 문장이란 일반 대중이 즐겨 쓰는 어휘와 어법을 바탕으로 하면서 그것에 예술성을 더하여 독창적으로 개발한 문장이라고 정의한다. 결국 핵심이 되는 것은 개성적인 글쓰기 인 것 같다.창의적인 글쓰기와 더불어 내가 또 곧 그들이 이러한 원칙을 무시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글을 쓰는 오류를 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 통해 크게는 미래의 언론이이 되어 작게는 현재 기사작성 과제들에 있어 최대한 객관성 있는 기사를 쓰도록 노력해 사회의 거울이 되는 언론이이 돼야겠다고 생각했다.이 책은 문장작법에 대한 전반적인 전형을 주로 제시하고 있지만 그것보다 중요하게 사고와 개성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으므로 이 책을 통해 사고력을 키우고, 독창적인 시각으로 자신의 개성을 살려 표현해내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여태껏 열중 아홉으로 “가을은 독서의 계절입니다” 라는 흔한 오프닝 멘트를 생각해 왔지만 “벌써 한 해의 3분의 2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고 생각할 수 있는 창의적인 사고를 갖춰야겠다. 앞으로 새 언어의 탐구자로서 나만의 독창적인 생각을 글로 표현하기 위해 일상생활에서도 항상 창의적인 생각을 하며 끊임없이 개성 있는 글쓰기를 위해 노력하며 살아야겠다.하나. 홍기문의「문단인에게 향한 제의」에서본문내용: 언어의 미. 한 언어를 미화시키는 그것이야말로 문단인의 특수한 업무요 또 직책이 아니랄 수 없다.(생략)그러나 현재의 조선어를 더한층 미화시키는 것도 오직 문단인을 기다리어 서 가능하겠지마는 조선어가 목하 가지고 있는 미 그것도 그들의 힘을 빌 려서 발휘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아직도 문학적으로 발달되지 못한 조 선어에 무슨 미가 있겠느냐고는 물을지도 모르되 한 언어는 그 독특한 문 체를 가지듯이 반드시 독특한 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선정이유: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삼는 예술인은 아니더라도 우리말이 가지고 있는 미 와 독특한 문체를 항상 잊지않고 기억해야 하나, 그동안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책에 나온 예시를 인용하자면 “가령 ‘발갛게, 벌겋 게, 볼고레하게, 불구레하게’나 ‘파랗게, 퍼렇게, 포로소름하게, 푸루수름 하게’ 등의 말을 살피어보라. 조선어가 아닌 다른 말에 어디 그렇게 섬세 한 색채감각이을까 그의 암시와 함축과 여운을 가진 담화가 더 마음에 들었다.셋. 주요섭의「사랑손님과 어머니」에서본문내용: 어떤 토요일 오후였습니다. 아저씨는 나더러 뒷동산에 올라가자고 하셨습 니다. 나는 너무나 좋아서 곧 가자고 하니까 “들어가서 어머님께 허락 맡 고 온” (이하생략)선정이유: 중학교 때 처음으로 가장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 바로 ‘사랑손님과 어머니’ 이었다. 당시에는 사랑내용 때문이었나 싶었다. 그러나 ‘문장 강화’를 통 해 평어·경어와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어 더 친근감을 느끼고 재미있게 읽 을 수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흔히 ‘습니다 문장’은 읽는 사람이 더 개인 적인 호의와 친절을 느끼게 하며 독자를 훨씬 빠르게 이해시키고 감동시 킨다고 한다. 이가 집중력 부족하던 어린 시절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던 이유였다. 마치 나긋나긋 읽는 사람의 귀 옆에 와 소곤거려 주는 것 같 아, 내가 들어주지 않는다면 들어줄 사람이 없는 듯한 느낌이 마치 소설 책의 읽는다는 느낌보다는 내 눈앞에 아이 옥히가 자신이 이야기를 주저 리 꺼내놓는 듯한 느낌이었다.넷. 김소월의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본문내용: 봄가을 없이 밤마다 돋는 달도예전엔 미처 몰랐어요이렇게 사뭇차게 그리울 줄도예전엔 미처 몰랐어요달이 암만 밝아도 쳐다볼 줄은예전엔 미처 몰랐어요이제금 저 달이 설움인 줄은예전엔 미처 몰랐어요선정이유: 감상문에서 언급한 김소월의 시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김소월은 시에서 ‘이 렇게 사뭇차게 그리울 줄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라고 표현했다. “사뭇차게 그립다.” 나 역시 이렇게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소월의 시를 읽으며 상투적이지 않은 독창적인 표현에 늘 갈망하고 끊임없이 고민해야겠 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본다.다섯. 정지용의 시 「다시 해협」에서본문내용: 마스트 끝에 붉은 기가 하늘보다 곱다.감람 포기포기 솟아오르듯 무성한 물이랑이여!선정이유: 포기포기 무성한 양배추 말에다 형용한 ‘탐스러운 물결이 갈피갈피 솟는 바 다’. 김소월의 시 ‘예전엔 미처.
디지털 전환 정책에 관한 연구기대효과 및 문제점 그리고 대안을 중심으로목 차제 1 편 서 론제 2 편 디지털 전환에 대한 일반적 고찰1. 디지털방송의 의미2. 디지털방송으로 인한 변화제 3편 디지털 전환에 대한 심화적 고찰1. 디지털방송의 기대효과1) 이용자 측면2) 방송사 측면3) 정부 측면4) 정보통신 산업계 측면2. 해외의 디지털TV 사례3. 디지털방송의 문제4. 디지털방송의 방안제 4편 결론제 1 편 서 론자의든 타이든 현대 세상에서의 아날로그 시대는 종언의 막을 내리고, 디지털 시대가 도래 했다. 디지털 시대에 사는 우리는 일상에서 사용하는 대부분의 전자기기 역시 디지털 신호를 통해 정보를 입력 받고, 출력한다. 현대인에게 있어 이젠 필수품이 되어버린 스마트폰, MP3, 노트북 등도 모두 디지털 신호를 이용하여 작동한다. 하지만 우리가 가장 많이 접하는 매체인 TV는 대부분이 아날로그 신호를 사용하고 있다. 이 아날로그 신호를 바꾸는 것이 디지털 방송으로의 전환이다. 2012년 12월 31일부터 공중파 방송에 대하여 본격적으로 디지털 방송이 시작된다. 즉 이후로는 현재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아날로그 TV로는 공중파 방송을 더 이상 시청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디지털 방송으로의 전환을 통해 고화질, 고음질, 채널수 증가 등 얻을 수 있는 이점도 있지만, 현재 우리나라에 널리 퍼져있는 아날로그 TV의 보급을 고려해 보았을 때, 앞으로 디지털 전환 시작 전까지 디지털 TV의 보급이나 디지털 방송 수신 장치를 많은 TV시청자에게 평균적으로 제공하는 것에 무리가 따르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만약 충분한 공급이 이루어졌더라도 미처 준비를 하지 못한 시청자들의 혼란이 벌써 걱정된다. 또한 디지털로 전환하는 비용 역시 많이 든다. 이 외에도 가장 논란이 되는 쟁점으로 기존 방송사업자들의 기득권을 변화된 방송환경에 얼마나 보장해주는가 하는 문제다. 일반적으로 기존 지상파방송사업자의 기득권을 우선적으로 인정한다는 차원에서 기존사업자에 대한 사업권을 우 추월했다.이런 상황 등을 고려해 디지털 전환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지난달엔 ‘디지털 전환 활성화 기본 계획’을 확정했다. 올해 대국민 인식을 확산하고, 2010년 아날로그 TV 방송을 시범 종료한 뒤, 2011~2012년 디지털 전환 실행을 본격화하며, 2013년부터 후속 조치를 한다는 4대 추진 전략을 담고 있다. 방송사들도 지난해 10월 출범한 사단법인 DTV KOREA를 중심으로 전환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출처 : 열린백과 Opentory ; 디지털방송2. 디지털방송으로 인한 변화디지털 전환으로 인한 텔레비전의 컴퓨터적인 사용이 장래 수용자들에게 가져올 또 다른 변화의 하나는 지금까지의 방송 패러다임이 바뀐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방송은 정보의 생산, 분배, 그리고 소비의 측면에서 수직적, 중앙집중적 전달체제였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이 방송에 도입되고 네트워크 기술이 발전하면서 홈쇼핑, 홈뱅킹, 주문형 비디오, 정보검색, 인터넷 접속 같은 쌍방향 데이터 방송이 가능해짐으로써 방송은 이제 일방적 전달체제를 의미하는 방송을 넘어 수평적 쌍방향적 정보통신 매체로의 변환도 가능해진 것이다.수십 년을 이어오는 TV라는 매체의 소비행태나 문화를 되짚어볼 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는 아직 TV를 각종의 정보서비스를 활용할 수 있는 지능형 컴퓨터로 받아들이는데 익숙지 않다는 사실이다. 물론 TV매체를 소비하는 행위가 절대적으로 수동적인 것인가에는 의문의 여지가 있지만, 상대적으로 볼 때 방송시스템의 구조가 그러하듯, 텔레비전은 수동적인 미디어 소비자들을 키워왔으며 TV매체의 소비문화나 사용행태 역시 대단히 수동적이며 소극적이다. 예를 들어 인터넷 TV나 오랜 역사를 가진 쌍방향 TV가 수용자들로부터 별다는 호응을 받지 못한 이유의 하나는 수동적 시청행태와 맞지 않는 TV 매체 사용의 변화 때문이다.또 하나 아직 우리에게는 낯선 것이지만 디지털 TV의 정체성과 관련해 주목해야 할 것은 확산되어가는 ‘TV의 유료화’ 경향이다. 케이블이나 위성과환과 관련된 당장의 현안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또 이를 중요한 과제로 인식하기에는 현시점에 디지털 수상기나 수신기의 보급이 많지 않다는 반론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기술과 관련한 우리의 경험은 문제에 대한 관심이 빠르면 빠를수록 더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기술과 문화, 더 나아가 사회의 변화는 병렬적인 것이지 순차적인 것은 아니다.제 3편 디지털 전환에 대한 심화적 고찰1. 디지털방송의 기대효과1) 이용자 측면아날로그 방식의 단점인 전송 시 방송품질(화질, 품질) 열화를 디지털화로 해소할 수 있으므로 시청자는 기존 아날로그 방식이 제공하기 어려운 고품질의 방송서비스를 향유할 수 있게 된다. 또한 다음과 같은 방송서비스의 다양성과 선택의 폭을 제고할 수 있다. 다채널화로 다양한 프로그램 시청이 가능하며 현재 아날로그 방식보다 최대 4배 이상의 채널이 사용 가능하다. 인터넷 등 새로운 부가서비스 제공에 따라 이용자 욕구가 충족될 수 있으며 고선명 TV시청이 가능하다는 점이다.2) 방송사 측면지금까지 지상파방송은 시청료, 광고료 수입으로 운영되어 왔으나 디지털화로 위성방송이나 케이블TV처럼 지상파방송도 다채널화가 가능해져, 스포츠 영화 등 전문방송과 제한수신 기술을 통한 유료방송을 할 수 있게 되어 방송사의 사업다각화와 방송 산업 시장의 투자 활성화를 이룰 수 있다. 또한 홈쇼핑, 데이터방송 등 양방향의 새로운 부가서비스가 가능해져서 방송 사업이 멀티미디어의 주력산업으로 발전할 계기 마련할 수 있고 방송의 디지털화로 방송과 통신, 컴퓨터는 디지털이라는 공통기술을 갖게 되어 전송과 프로그램 제작, 수신기면에서 상호접근하게 되므로 방송?통신 융합추세에 효과적 대처 가능하다.디지털 전환을 통해 21세기를 대비한 방송신기술 개발할 수 있고, 이러한 디지털화는 멀티미디어 시대를 여는 기술 기반이 되기도 한다.3) 정부 측면정부는 디지털화를 방송기술발전 및 관련 산업의 국제경쟁력 향상의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 디지털 방송은 컴퓨터산업, 반도체, 부품 산업년 7월 17일 ‘Communication Act 2003’을 제정하여 발표하면서 방송·통신융합규제기구인 오프컴(Ofcom)을 발족하여 디지털 방송 전환을 앞당기고 있다. 동시에 공영 방송인 BBC와 상업 방송 BSkyB가 주축이 된 무료 디지털 지상파 방송인 ‘프리뷰(FreeView)’를 통해 양질의 디지털 방송 시청을 보다 용이하게 하고 있다. 무엇보다 영국은 디지털 방송 전환 추진을 위해 ‘디지털 TV 실행 계획(Digital Television Action Plan)’이라는 큰 정책적 틀을 실행하고 있다. 한편, 독일의 경우도 베를린 지역에서의 단계적인 디지털 전환 추진 정책으로 아날로그 방송 중단인 Switch-Off가 빠른 시일에 이루어질 수 있었다. 이는 베를린 지역에 대한 구체적인 조사와 분석을 통한 정책 추진과 홍보 활동을 통해 수용자들의 디지털 수신을 유도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아시아 국가 일본의 경우 일본 민간 방송 연맹은 지상파 TV 방송의 디지털화는 막대한 설비 투자만 요구할 뿐, 새로운 수입 증가는 기대할 수 없다고 반발하고 있으며, 특히 지상파 방송에서 디지털로 전환하면 일본 전국의 민간 지상파 TV 방송사(합계 126개사)의 디지털화를 위한 설비 투자액은 약 6651억 엔으로 추정되지만 수입 증가는 극히 미미해 민방의 경상이익률이 절반 이하로 크게 낮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아울러 중계소 및 방송 기기 등의 설비 투자 외에 디지털 방송 방식에 맞는 프로그램 제작 등의 경비도 연평균 9~20%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에 따라 도쿄 등 3대 도시권의 주요 방송사의 경우 경상 이익률이 현재 약 9%에서 2%로 계속 낮아질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에, 따라서 재무 구조가 취약한 지방의 민간 방송사들은 적자로 전락하고 흑자 전환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 등 이에 대한 우려의 소리가 높다.한편 최근에 일본의 우정성에서는 아날로그 방식의 하이비전 TV에 대한 현재의 시험 방송을 중단하는 방향으로 검토하고 있다. 일본의 우정성의 이 TV 수상기 시장이 가전제품 시장의 중심이 될 정도로 소비자들에게 다가가고 있는 등 예정대로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고화질과 다채널, 다양한 부가 서비스 등 디지털 방송의 편익이 크게 홍보되면서 소비자의 구매를 자극하고 있으며, 이미 텔레비젼 구입의사를 가진 소비자들은 대다수가 디지털 TV의 문전에서 서성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와 같은 낙관적 전망 이면에는 유한한 방송 자원을 이용하는 디지털 시대 방송 정책에 있어, 지상파 디지털 방송 실시와 관련한 대부분의 논의가 기술적, 경제적 문제에 모아지면서 방송의 공익성을 구현하기 위한 방안과 디지털 방송의 궁극적인 수혜자인 국민 즉 소비자의 입장이 간과되고 무시되어왔다는 치명적인 문제점이 내재되어 있다.무엇보다, 막대한 국민적 부담 즉 디지털 TV 수상기를 구매해야 하는 소비자의 부담을 전제로 한 지상파 디지털 방송 전환과 관련하여, 소비자의 의견을 수렴하고 반영하는 최소한의 절차도 부족했다는 점이다. 대다수의 소비자가 방송방식의 결정이나 디지털 방송 전환 일정 등에 대해 모르고 있다는 점은 정부 당국이나 공급자들이 디지털 TV 수상기 공급과 구매 촉진 이외에 이에 상응한 소비자 정보 제공에는 극히 소홀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국민 전체에 미치는 지상파 디지털 전환 정책의 중요성에 비추어, 최근 개정한 방송법에 조차 지상파 디지털 방송 전환의 근거를 마련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정부는 법률적 근거조차 불분명한 방송 정책을 서둘러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 되어 행정 편의주의라는 비판을 받게 되었다는 점이다.방송의 전송방식 표준 결정에 있어, 어떤 방식이 전체 국민의 이익과 소비자 편익에 부합될 것인가라는 점은 매우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비교실험 등 객관적이고 성실한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졸속으로 특정한 이해에 입각해 결정했다는 논란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 결정은 한 번의 결정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모든 소비자의 경제적 부담과 나아가 국가 경제의 이해에 치명적인 영향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