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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의적 발상의 모순-대학생동거 반대의견
    편의적 발상의 모순‘대학생 동거’ 반대의견요즘 현대사회에 급속도로 외국문화가 들어오면서 성문화의 개방성과 이로 인한 전반적인 사고 변화로 인해 대학생들의 ‘동거문화’가 확산되고 있는 추세이고 현재 우리나라에서 대학생을 중심으로 혼전 동거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동거는 연인끼리 한다는 개념도 없어졌고, 대학 주변에서 함께 자취할 남녀를 찾는 광고나 인터넷상으로 조건에 맞는 동거 파트너를 구하는 사이트도 많이 생겨났다. 이렇듯 사랑이 없어도 얼마든지 동거 생활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젊은 대학생들의 생각은 사회적인 문제로까지 확산되고 있다.이런 사회적인 문제들을 바라보는 ‘대학생 동거생활’의 타당성을 주장하는 이유들은 다양하다. 어떤 이들은 기존 결혼제도의 문제점에 주목한다. 그들은 남성위주의 가부장제 사회와 여성에게만 강요되는 순결주의로 인하여 기존의 결혼제도는 남녀 간의 평등한 삶을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심을 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오늘날 급격히 증가하는 이혼율은 부조리한 결혼제도에 대한 여성들의 의식 깨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러므로 ‘결혼하기 전에 한번 살아봄’으로써 서로에 대한 그릇된 환상과 결혼제도의 부조리한 점들로부터 벗어난 자유로운 만남을 시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기존의 결혼이 여와 남 모두를 위한 완벽한 제도라고 볼 수는 없지만, 그것이 곧 ‘대학생 동거’를 정당화한다거나 결혼의 보완수단으로 만들 수는 없다.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는 대학생 동거는 결코 남녀평등을 위한 수단이 될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하여야 한다. 결혼제도라는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도 평등권을 담보 받지 못하고 있는 여성의 권리가 법적인 울타리 밖에서는 더더욱 보장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아직도 적지 않은 우리 국민들이 결혼과 여성에 대하여 보수적인 문화를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더욱 그러하다.또한 대학생 동거를 통하여 결혼을 했을 때, 이혼율을 낮출 수 있다는 것은 환상이다. 이미 다른 나라에서의 통계를 통하여서도 우리는 혼전동거를 통하여 이혼율을 낮추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어려운 일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제 혼전 동거를 지지하는 이들에게 남은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들이다. 그 하나는 기존의 결혼제도보다는 쾌락적 삶을 추구하기에 혼전동거식의 삶이 자유롭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규범적 잣대에 의한 사회문화나 제도가 아닌 삶의 양식의 다양성을 보장하고, 자기와 다른 것들에 대한 관용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양한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사회공동체의 통합을 위하여서는 사회문화적 규범의 합의과정 역시 필수적임을 간과할 수 없다.‘대학생 동거문화’를 반대하는 쪽을 바라보는 시선은 대부분 구시대적 발상이라 부른다. 하지만 이러한 반대쪽 의견은 수렴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곧 생명과도 결부되는 임신과 낙태, 사생아와 미혼모라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인문/어학| 2008.09.27| 2페이지| 1,000원| 조회(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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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성이 살아가는 실존적 상황에 대한 면밀한 탐색 -오정희의 「불꽃놀이」를 중심으로
    여성이 살아가는 실존적 상황에 대한 면밀한 탐색-오정희의 「불꽃놀이」를 중심으로-목 차1. 머리말2. 기다림을 견디는 환상 -?그림자 밟기?3. 황폐한 내면으로부터의 탈주 -?파로호?4. 비일상이 지닌 또 하나의 의미 -?불꽃놀이?5. 여성으로 태어나는 것의 의미 -?옛우물?, ?불망비?5. 맺음말1. 머리말‘여성 작가’라는 상위 범주 내에서 여성 소설가의 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작가’라는 통칭 대신 ‘여성 작가’라는 이름으로 여성 소설가를 호명하는 것은 작품 세계가 그리고 있는 진정성이 여성의 삶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에 있기 때문이다. 여성의 삶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은 전통 학문의 여성에 대한 이해가 여성의 산 체험과 명백한 모순을 보이고 있다)는 데에서 출발하여 여성적 시각에서 여성의 삶을 다시 사유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가부장적 상징계에서 주변화 된 ‘여성성’)을 복원하고, 더 나아가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고정 관념과의 치열한 대결을 지향하고 있다.여성주의적 주체에 의한, 여성의 현실에 대한 소설을 읽는 경험은 우리의 일상을 점령하고 있는 매체에서 생산하고 있는 행복한 일상의 이미지가 여성의 실존과 얼마나 유리되어 있는가를 절감하는 순간 더욱 소중하게 다가온다. 수많은 여성 잡지들이 추구하고 있는 ‘행복한 그녀’의 모습은 도대체 어디에서 기원하고 있는 것인가.) 인테리어와 요리, 패션과 육아가 여성 잡지의 주요 항목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이 어떠한 존재로 호명되고 있는가를 반증하고 있다.그러나 사진과 영상이 그리고 있는 화려한 스펙타클의 창을 뛰쳐나와 구체적인 현실에 발을 내딛을 때, ‘행복한 그녀’는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만다. TV 드라마나 광고에서 생산하고 있는 행복한 일상의 이미지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그것이 현실과는 소통하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것은 구체적인 역사적 맥락을 상실하고서도 처음부터 자연스러운 것으로 제시되는 하나의 이미지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성의 실존적 상황을 드러낸 것이다.경옥이 시인의 꿈을 가지고 있던 시절, 민수는 결혼 선물로 시집과 시론집을 준다. 그러나 지금 그 책들은 ‘먼지를 뒤집어쓴 채 서가에 꽂혀’ 있을 뿐이다. 먼지 쌓인 책처럼 꿈은 던져진 채, 방치된 채 잊혀 졌지만, 경옥은 지진의 감지를 통해 그것이 무절제하게 들끓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다.그러나 경옥이 내면 깊은 곳에 자신의 꿈이 무절제하게 들끓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하다라도 일상은 변한 것이 없다. 그것은 새벽에 지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멀쩡하게 돌아가고 있는 일상의 묘사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 ‘창으로 뽑아낸 호스로 물을 뿜어 차를 닦고 있는 새댁’과 ‘자전거의 안장 나사를 조이고 있던 러닝셔츠 차림의 중년 남자’, ‘쨍쨍히 노래 부르며 고무줄 놀이하는 아이들’이 그리고 있는 풍경은 그저 ‘평범한 늦봄 저녁’일 뿐은 그 어디에도 지진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여성을 둘러싸고 있는 일상은 여성의 욕망을, 꿈을 질식시킨다. 여성이 설령 자신 속에 끓어오르던 살아있는 에너지를 느낀다 할지라도 따뜻한 봄볕같이 흘러가는 일상은 여성이 자기 고유의 삶에 접근하는 것을 차단한다. 가정이라는 고립된 성 속에서 여성이 세상과 교통할 수 있는 길은 어디에 있는가. 여성은 어디에서 박제화 된 일상을 박차고 나갈 충만한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것일까.)여성은 가정이라는 사적 영역 속에서 끊임없이 누군가를 보살피는 노동을 하며 살고 있지만, 그것은 사회적인 가치로 평가받을 수 없다. 단 하루도 빠뜨릴 수 없는 일상적인 가사노동은 무차별적이며 구분되지 않으며 개성이나 주체성을 확보해 줄 수 없다. 따라서 여성은 가정이라는 닫힌 공간 속에서 타인과 구분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사회적 성취를 꿈꿀 수 없다.)가정이라는 사적 영역에 매임으로써 여성은 공적인 영역으로부터 배제되고 밀려난다. 그것은 사회적 관계로부터의 단절인 동시에 여성이 인간으로서 창조적이고 주체적인 활동을 하는 데 양식이 될 수 있는 모든 감수성으로부터의 단절이다. 경옥은 안주도 알맞고 화제도 편안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옥의 내면에서 밀려드는 ‘깊은 상처받은 느낌, 쓸쓸함’의 또 다른 모습이다. 그 모든 쓸쓸함과 패배감이 어디에서 기원하는지 모르는 경옥은 그림자놀이의 환상으로, 상상적 현실로, 자폐적 혼자말로 일상을 견뎌갈 뿐이다.3. 황폐한 내면으로부터의 탈주 -?파로호??그림자 밟기?에서 여성의 내면적 욕망이 일상을 스쳐 지나가는 미세한 흔들림으로 표현되었다면, ?파로호?에서 그것은 일상의 질서를 깨뜨리는 파괴적인 에너지로 그려진다. 그렇기 때문에 ?파로호?에서 그려지고 있는 일상은 주인공 혜순이 박차고 나올 수밖에 없는, 보다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전개된다.소설의 제목 ‘파로호’는 극단적인 일상을 감당해 내는 혜순의 내면 풍경을 반영하고 있는 호수의 이름이다. 혜순은 신문에 실린 흑백사진에서 ‘바닥을 드러낸 거대한 호수의 황량한 모습’에 이끌려 ‘파로호’를 찾는다. 혜순이 하필 황량한 호수의 모습에 마음이 끌리게 된 것은 그것이 자신의 내면 풍경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혜순은 퇴적지의 낯선 풍경에서 오히려 친숙함을 느끼게 된다. 호수의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혜순은 불분명한 것들이 분명해지는 느낌을 받고, 곧 ‘이러한 황폐함과 황량함을 글로 쓸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혜순은 사실 오래 전부터 글을 쓸 수 없다. 일상을 박차고 나올 수 있는 파괴적 에너지로써 소설 쓰기를 선택했지만 막상 그녀를 기다리는 것은 굳어버린 말들이다. 그녀의 말들이 ‘어둠속에서 사라져버린’ 지독한 정신적인 공황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혜순의 가족은 병언의 실직 이후 미국행을 선택하게 된다. ?파로호?에서 ‘미국 유학’이라는 설정은 ‘낯선 땅에서 아이들을 기르고 살아야 한다는 짐승 같은 본능과 불안’을 통하여 보다 극단적인 일상의 단면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이다. 중학교 국어 교사였던 혜순은 미국에서 시간제 파출부를 하며 아이들을 키우고, 병언은 생선 가게 점원을 하면서 대학원 강의를 듣는다. 그러나 이러한 생활의 피곤함보다기’라는 또 다른 생으로의 출발을 선택하기 때문이다.혜순의 새로운 선택에 대하여 병언은 냉소적이다. 그리고 그는 아내가 왜 가정을 떠나면서까지 글쓰기를 선택해야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혜순에게 소설쓰기는 단순한 작업을 넘어서서 일상 속에서 잃어버린 자신을 찾아가기 위한 몸부림이다. ‘잃어져가는 말에 대한 복수’로 명명되는 소설쓰기에 대한 열망은 일상 속에서 아이들과 남편들을 위하여 소비되던 자신의 실존적 상황에 대한 거친 항의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림자 밟기?에서 자폐적 수준에 머물렀던 경옥의 혼잣말을 극복하고, 여성으로서의 고립감과 고독함을 벗어나 세상과 교통해보고자 하는 욕망이다.미국에서 돌아와 파로호를 찾아가는 길은 혜순이 자신의 실존적 상황에 홀로 부딪히는 과정을 형상화하고 있다. 밑바닥까지 드러낸 황량한 호수를 걸어가며 혜순은 어둠 속에 묻힌 말들을 되찾고자 한다. 사십 년 동안 물속에 묻혀있다가도 싹을 띄운 ‘목화’는 혜순이 곧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작가는 ‘물 빠질 때를 기다려 싹을 틔운’ 목화를 통해 혜순도 말의 물꼬를 틀 수 있을 것이라고 암시하는 것이다. 그것은 감나무와 대추나무의 생명력을 통해서도 전달된다.혜순은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습관적으로 물을 마시거나, 소금을 집어먹는다. 그리고 이천 매가 넘는 남의 소설을 토씨 하나 빼지 않고 원고지에 옮겨 적는다.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솟아나오는 간절한 절박감과 갈증. 그것은 여성이 자신의 실존과 대면하는 고뇌의 과정을 보여준 것이다. 이처럼 자유로운 실존의 험난한 영광 속에 자신의 자부심을 놓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여자는 자기의 역사, 자기의 문제, 자기의 회의, 자기의 희망을 인류의 그것과 융합시킬 수 있다.) 혜순이 호수 바닥에서 발견된 차돌에서 여인의 얼굴을 발견하는 것은 황량한 파로호를 바라보는 그녀의 고뇌가 세월을 견뎌온 이름 없는 여인들의 운명과 맞닿아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수만 년의 세월을 견뎌낸 차돌에 새겨진 여인의 얼굴에서 혜순은 과 에서 혜순은 느낌과는 거리가 멀다. 축제가 가져다주는 일상과의 단절은 오히려 사람들을 ‘막바지’로 몰고 있는 것이다.그러한 불안과 위기의 순간 표면으로 떠오르는 기억은 일상의 질서 아래로 묻어두었던 것들이다. 축제가 만들어 내는 비일상의 불안 속에서 관희와 인자가 떠올리는 기억은 각기 다르지만, 그것이 부재하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라는 점에서 비슷하다. 태어난 지 다섯 달이 되지 않아 부모와 헤어진 관희, 그리고 관희의 아들로 살아가는 영조는 그 아비가 누군지 모른 채 살아간다. 이들 부자는 ‘아버지의 부재’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녔지만, 일상 속에서 그것은 드러나지 않는다. 영조의 출생과 관련된 비밀을 캐내는 것은 일상의 질서에 균열을 가할 수 있는 위험한 일이다. 그래서 영조와 인자는 영조의 출생에 대하여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색하지 않는다.동리는 어둡고 강변 쪽으로부터 은은한 폭죽 소리와 함께 조그만 빛의 점 하나가 쏜살같이 솟구쳐올랐다. 이러 그것은 이해할 수 없는 함성으로 하늘을 뒤덮었다.그가 누구였던가, 남편이 오래 집을 비웠던 어느 봄날, 혼곤한 낮잠 속에서 꿈결처럼 받아들였던 사내. 남편은 옛 무덤에서 녹슨 탈을 찾아 돌아왔고, 달을 채운 아이는 그녀의 자궁을 찢고 가슴을 찢고 세상으로 나왔다.강쪽에서 또다시 불꽃이 오르고 외침이, 탄식이, 흐느낌이 정욕과 혼란으로 가득 찬 어둠을 찢으며 흩어졌다.(「불꽃놀이」,160쪽.)인자는 폭죽 소리가 터지는 불꽃의 파편 속에서 영조를 잉태했던 낯선 사내를 떠올린다. 일상 속에서 잊고 있었던, 혹은 드러나지 않던 출생의 비밀은 불꽃놀이가 있던 날 밤에 일상의 수면 위로 떠오른다. 축제를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모두 동네를 비웠던 날, 인자는 십 년 전 어느 날에 찾아와 영조를 업은 자신을 유심히 바라보았던 그를 생각한다. 영조의 출생에 얽힌 비밀. 그것은 인자와 관희 모두에게 불안한 무엇이다. 인자는 언젠가 영조가 자신의 ‘더듬이가 가리키는 대로 그 어떤 가냘프고 확실한 회로를 따라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늘 불.
    인문/어학| 2008.03.19| 13페이지| 3,000원| 조회(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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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인생의 ‘기이한 은총’ -김기택 네 번째 시집 『소』를 중심으로-
    내 인생의 ‘기이한 은총’-김기택 네 번째 시집 『소』를 중심으로-◎ 작가소개1957년 경기도 안양에서 출생하였으며 중앙대 영문과를 졸업하였다. 198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 「꼽추」가 당선되면서 시단에 등단하였다. 시집으로 『태아의 잠』(1992), 『바늘구멍 속의 폭풍』(1994), 『사무원』(1999)이 있으며 김수영문학상(1995), 현대문학상(2001), 이수문학상(2004), 미당문학상(2004)을 수상하였다.◎ 들어가며책상 앞에 앉기 전 먼저 하는 일은 어제 펼쳐 놓았던 책을 하나씩 덮는 일이다. 반듯한 책상의 등짝이 오늘 펼칠 일들과 맞아 떨어질 정도로만 드러나면 정리는 끝난다. 하지만 이에 소요될 시간을 가늠할 수는 없다. 잊고 있었던 메모나 편지들, 언제 주머니에서 꺼내놓았는지 모를 동전이, 쌓아놓은 책 바닥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뜻밖에 마주하는 사물들은 오래 내 손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하루걸러 며칠을 걸러 닦아도 잊혀 지지 않는 책상의 귀퉁이엔 언제나 먼지의 자취가 남아있다. 좁은 틈새에도 무시할 수 없는 공간이 있다는 걸 알려주려는 듯 누군가 그곳에 희부연 알갱이들을 저장하고 있다. 그 복작복작한 책상이 치우고 치워도 끝이 없는 내 마음 같다. 나와 기억을 나눠가진 사람의 이름들을 책장에 잘 꽂아둔다. 버리기 아까운 일은 모퉁이에 끼워놓고, 공간만 차지하는 생각들은 쓰레기통에 버린다. 가끔 구겨진 봉지를 정리하듯 기억들을 펼쳐보면, 그것은 무엇을 들여오고 남겨진 껍데기인지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시간이 그 자리를 밟아 함께 떠났기 때문이다. 단지 봉지의 크기로 들여온 물건의 부피만을 짐작할 수 있다.김기택 시인의 시집은 내게 ‘움직이는 소리’를 듣게 했다. 먼지 같은 조금의 힘도 없는 가볍고 작은 입자에 불과한 것들이지만 그것만큼 끈질기게 존재하는 것도 찾기 힘들다. 창을 열고, 온 몸으로 바람을 만들어 먼지를 내보내지만 결국 다 쫓아낼 순 없다. 입으로 부는 것은 먼지의 움직임을 건드리는 것일 뿐 그 방향 자체를 바꾸진 못한다. 방으로 햇빛이 들어오지 않아 먼지는 형체를 숨기고 있을 뿐, 그것은 항상 우리와 함께 살고 있다.풀벌레들의 작은 귀를 생각함 / 김기택텔레비전을 끄자풀벌레 소리어둠과 함께 방 안 가득 들어온다어둠 속에서 들으니 벌레 소리들 환하다별빛이 묻어 더 낭랑하다귀뚜라미나 여치 같은 큰 울음 사이에는너무 작아 들리지 않는 소리도 있다그 풀벌레들의 작은 귀를 생각한다내 귀에는 들리지 않는 소리들이 드나드는까맣고 좁은 통로들을 생각한다그 통로의 끝에 두근거리며 매달린여린 마음들을 생각한다발뒤꿈치처럼 두꺼운 내 귀에 부딪쳤다가되돌아간 소리들을 생각한다브라운관이 뿜어낸 현란한 빛이내 눈과 귀를 두껍게 채우는 동안그 울음소리들은 수없이 나에게 왔다가너무 단단한 벽에 놀라 되돌아갔을 것이다하루살이들처럼 전등에 부딪쳤다가바닥에 새카맣게 떨어졌을 것이다크게 밤공기를 들이쉬니허파 속으로 그 소리들이 들어온다허파도 별빛이 묻어 조금은 환해진다그의 시집을 읽고 나면, 입술이 딱딱해진다. 모든 말들이 혓바닥을 간질이다 식도로 미끄러져 사라진다. 아무것도 말할 수 없는 대신 눈을 감고 적막한 귀를 쓰다듬는다. 불안이 귓바퀴에 다닥다닥 붙는다. 아니다. 이것은 편안한 고요다. 형상 있는 모든 것이 수면 아래로 잠기고, 나는 입이 묶임으로 어느 협소한 공간에서 시간이 굴리는 미물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브라운관이 뿜어낸 현란한 빛이 내 눈과 귀를 두껍게 채우는 동안 그 울음소리들은 수없이 나에게 왔다가 너무 단단한 벽에 놀라 되돌아갔을 것이다’ 보이는 세계에서 들리는 세계의 길로 귀의 방향을 돌리자, 놀라 돌아섰던 소리들이 하나 둘 제자리로 돌아왔다. 시인의 걸음을 따라 ‘물빗자루’와 ‘풀벌레’와 ‘나이테’, ‘나방’, ‘유리창의 송충이’들이 천천히 돌아온다. 시인의 깊고 냉철한 사물과의 소통이 소음으로 가득 찬 내 귓속을 청소하고 확장시켜 주었다.가로수 / 김기택지나가는 차들과 행인들에게 걸리적거리지 않으려고 최대한 가지를 쳐낸 가로수들이 전봇대처럼 전선을 따라 도로변에 줄지어 서 있습니다. 가로수들이 껴입은 더러운 껍질은 긁혀있거나 벗겨져 있거나 스티커가 붙어있거나 현수막을 지탱하는 끈에 붙들려 있습니다. 남루하고 칙칙한 이파리들이 박쥐처럼 가지에 떼지어 달라붙어 있습니다.무성한 잎으로 여러 상점들 간판을 가리던 나무 하나는 분노한 톱에 베어져 그루터기만 남아 있습니다. 한 때 생명을 담았던 그 그릇에는 파문을 일으키며 퍼져가는 나이테가 있습니다. 그 나이테의 무늬 속에는 생명이 바삐 드나들던 맑은 소리와 함께 혹한의 시간과 두꺼운 매연과 소음이 레코드판처럼 녹음되어 있습니다. 목 없는 통닭의 다리처럼 움직이지 않는 뿌리는 여전히 힘차게 땅을 움켜쥐고 있습니다.녹슨 상수관과 부글부글 끓는 하수도, 전화선과 가스관이 어지럽게 매설된 땅속에 가로수들은 시추공처럼 박혀있습니다. 그래도 봄이 오면 어김없이 매장량이 한대인 초록빛을 뽑아 올립니다. 고엽제 같은 매연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저돌적인 생명, 그 고집불통의 습관을 막을 힘이 이 가로수들에게는 없습니다. 모두가 지루하고 긴 삶을 각오한 지 오래입니다.현재는 개인주의가 팽배해지고, 인터넷과 핸드폰이 보급된 대신에 문자화된 대화가 만연하면서 폭은 넓지만 형식적인 관계들이 주를 이루게 되었다. 사람들은 ‘지나가는 차들과 행인들에게 걸리적거리지 않으려고 최대한 가지를 쳐낸 가로수들’처럼 제 몸을 세상의 투입구에 넣기 위해 알맞은 크기로 다듬어갔다. 서로 딱딱한 벽을 세우고 인위적인 연기를 하며 단단히 마음의 문을 여미고 있다.소가죽 구두 / 김기택비에 젖은 구두뻑뻑하다 발이 잘 들어가지 않는다신으려고 애쓰면 애쓸수록구두는 더 힘것 가죽을 움츠린다구두가 이렇게까지 고집을 부린 적은 없었다구두 주걱으로 구두의 아가리를 억지로 벌려끝내 구두 안에 발을 집어넣고야 만다발이 주둥이를 틀어막자구두는 벌어진 구두 주걱 자국을 천천히 오므린다제 안에 무엇이 들어왔는지도 모르고소가죽은 축축하고 차가운 발을 힘주어 감산다시인은 현실을 판단 없이 흡수하는 사람들을 ‘제 안에 무엇이 들어왔는지도 모르고 축축하고 차가운 발을 힘주어’ 감싸는 소가죽 구두로 표현하면서 사람들의 씁쓸한 처지를 보여주었다.기이한 은총 / 김기택소음 속에서 음악 소리가 들린다.어느 거리에선가 시위대가 외치는 노래일는지 모른다.고층 유리창에 부딪혀 흩어진 소음의 바람에다내 마음이 멋대로 붙인 곡인지도 모른다.스스로 폭풍이 되고 천둥이 될 만큼 거대해진 소음 속에서어지럽게 쌓인 음과 가락이 서로 부딪치며 섞이다가우연히 한 음을 얻어 지금 나에게 찾아온 것인지도 모른다.집중하여 들어보면 그 소리는고속 엔진이나 바퀴 소리들이 내는 화음 같기도 같고경적 소리와 급정거 소리, 비명이 서로 뒤엉켜 울다가공기 속에서 정화되어 은은하게 퍼져가는 소리 같기도 하다
    인문/어학| 2007.12.18| 4페이지| 1,000원| 조회(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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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육의 필요성 - 배움이란, 우리들의 끊임없는 노력 평가A좋아요
    교육의 필요성- 배움이란, 우리들의 끊임없는 노력‘공부를 놓으면 그 순간 늙어 버린다.’ 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우리는 끊임없는 교육 속에서 살고 있다는 말이다. 눈을 뜨면서부터, 우리는 ‘배움’에 익숙해지고, 그것을 통해 세상을 알아간다. 어쩌면 교육의 필요성이라는 자체가 무의미해 질 만큼, 교육은 우리의 일상에서 이미 떼버릴 수 없는 중요한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교육의 필요성에 관해 우리는 늘 곁에 있는 만큼 우리는 그 필요성을 망각하고 살아가고 있다. 오늘은 우리가 망각하고 살아가는 그 교육의 필요성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 의미의 교육의 의미는 세대 간에 이루어지는 특정의 교섭으로 생명체의 성장 및 적응, 소멸과 같은 불가피한 ‘자연적 과정’과는 완전히 구별되는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하고 있는 교육의 범위는 무궁무진하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만이 교육이 아닌, 우리가 살아가면서 알게 되는 지혜와 지식, 모두가 교육의 의미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본론으로 들어가 교육의 필요성은, 한마디의 설명하다면 인간 삶의 특징 고찰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것들을 다섯 가지로 나누어 본다면,첫째, 인간이란 자신이 이해하는 대로의 존재이고 인간이 사는 세계는 ‘이해의 대상’으로 이뤄져있다. ‘사물’이 아닌 ‘의미’로 이루어진 세계의 거주자인 것이다. 이것은 우리 인간의 무궁무진한 지성과 감성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인간이 동물과 가장 큰 다른 점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의 사물로 보는 것이 아닌, 사물에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우리는 이해하는 대로의 존재인 것이다. ‘이해의 대상’이라는 것은 서로가 함께 공존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 또한 말해준다.둘째, 인간은 예견된 만족을 위한 욕구를 가진 피조물이다. 흔히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고 한다. 이러한 인간의 욕망을 채울 수 있는 것은 끊임없는 배움이고, 그 배움을 위한 것이 바로 교육이다. 우리의 욕망, 좀 더 낳은 생활과 윤택한 생활을 위한 강한 욕구인 것이다. 그러한 욕구를 위해 서로 경쟁을 하게 되고, 그 경쟁이 있음으로서 우리는 더 큰 배움에 도달 하게 된다.셋째, 인간의 삶은 그가 수행하는 행위로 이루어지며, 각각의 행위는 자기 자신과 세계에 관한 신념의 표현이면서 인간됨을 드러내는 기회가 된다. 우리들의 삶은 각자의 개성이 있다. 그것은 개개인의 수행의 차이와 배움, 배경, 지식의 차이들도 있을 것이다. 각각 자신의 세계에 대한 애착들 또한 대단하다. 그러한 좀 더 낳은 인생을 위해 인간은 늘 질주를 본능으로 삼고 있다.넷째, 인간이 추구하는 만족은 사람과 사람사이의 교섭결과, 만족추구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 (선택과 이해를 통한 인위적 관계)속으로 들어감을 의미한다. 내 옆에 있는 동료가 한없이 세상을 살아 갈 수 없다. 그만큼 우리의 인생에 대인관계는 절실한 존재이기도 하다. 혼자 남은 세상은 재미없다. 그런 가족, 친구, 동료가 있는 세상에서 꼭 지식이 아닌, 우리가 원하는 배움 또한 깊이가 있다고 생각이 된다.다섯째, 인간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비추어 인식하는 것과 같다. 즉, 이해를 통해 이뤄지는 다양한 관계에 참여를 통해, 이해를 요구하는 지적 유산으로서의 다양한 언어를 향유함으로써 사람들과 관계 맺는 것이다. 태어나서 가장 먼저 교육받는 것 중에 한가지라고 볼 수 있는 것이 ‘언어’ 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언어는 무심코 알고 있는 언어가 아니다. 처음부터 특별한 배움을 한 것은 아니지만 언어는 이미 생활 속에서부터 특별해져 있는 것이다. 그것이 교육이다.이러한 특징 가진 인간은 예견된 결과, 바라는 결과에 비추어 할 일 선택하고 수행하며, 그것은 학습의 도움이 있어야 가능하다. 즉, 인간이 된다는 것이 잠재적 가능성이 실현되는 것과 같은 ‘성장’의 과정이 아니기 때문에 교육이 필요한 것이다.교육의 필요성에 이어 교육목적을 살펴보면, 교육목적이란 교육활동을 통해서 도달하고자하는, 인간행동의 이상적인 변화 내지 그 성취점으로서 교육이 나아가야 할 기본적인 방향 또는 지침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목적은 교육활동에 방향을 제시해주고 그 목적 달성을 위한 가장 효과적이고 능동적인 노력을 촉발시키는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이러한 교육목적은 일정한 교육활동을 통해서 달성하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에 교육목적은 학생의 입장에서 보면 행동의 변화나 종착점 행동의 형태로 제시되게 된다.?또한 교육 과정을 하나의 순환과정이라고 생각할 때 교육목적을 세우는 일은 교육과정의 첫 번째 절차가 되며, 교육 목적은 교육이 지향하는 방향의 제시이자 제시된 방향에 따라 전개되는 교육활동의 지침이 된다.교육의 목적으로는 외재적 목적과 내재적 목적이 있다. 외재적 목적으로는 교육은 하나의 도구와 같아서 인간이 선택하는 어떤 목적이든 이것을 달성하는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다고 보는 것으로, 교육의 목적을 교육활동 안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교육활동 밖에서 주어지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교육은 수단이다. 우리가 어떤 것을 달성하고자 할 때, 교육은 수단으로 결정지을 수 있는 것이다. 내재적 목적 교육목적은 교육과정 자체 속에 존재하며, 교육은 다른 어떤 것의 수단으로서의 가치를 가지기 전에 그 자체로 가치로운 것이다. 즉 교육하는 것, 그 자체가 교육의 목적이라는 주장한다. 교육은 그 자체가 교육이라는 말이나 진배없다.
    교육학| 2007.12.18| 3페이지| 1,000원| 조회(7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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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야겠다- 정호승의 시 세계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야겠다-정호승의 시 세계-◎ 작가소개정호승1950년 경상남도 하동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성장하였다. 대구 계성중학교와 대륜고등학교를 거쳐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경희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197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석굴암을 오르는 영희〉로 당선되었고,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시 〈첨성대〉로 당선되었다. 1982년에는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위령제〉로 당선되기도 하였다.1976년 김명인, 김창완, 이동순 등과 함께 반시(反詩) 동인을 결성하여 활동하였고, 1979년 첫 시집 《슬픔이 기쁨에게》를 출간하였다. 이후 시집 《서울의 예수》(1982)와 《새벽편지》(1987) 등을 통하여 1970년대와 1980년대 한국 사회의 그늘진 면을 따뜻한 시각으로 들여다보았다. 그는 암울한 분단상황에서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정치적·경제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슬프고도 따뜻한 시어들로 그려내었다. 《샘터》 편집부와 《월간조선》에서 근무하였고, 2000년 현대문학북스 대표가 되었다.1989년 제3회 소월시문학상, 1997년 제10회 동서문학상을 수상하였고, 2000년 제12회 정지용문학상을 수상하였다.그 밖의 주요 작품으로 시집 《별들은 따뜻하다》(1990),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1997), 《외로우니까 사람이다》(1998),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1999), 시선집 《흔들리지 않는 갈대》(2000), 《내가 사랑하는 사람》(2000) 등이 있고, 수필집 《첫눈 오는 날 만나자》(1996)와 동화집 《에밀레종의 슬픔》 《바다로 날아간 까치》(1996), 《연인》(1998), 《항아리》(1999), 《모닥불》(2000), 장편소설 《서울에는 바다가 없다》(1993) 등이 있다.◎ 들어가며정호승의 시집에도 사랑, 외로움, 그리움, 슬픔의 감정이 가득 차 있다. 표면만 보면 그것은 감상적인 대중 시집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사랑이 어떤 사랑이며, 외로움은 어디에서 오고, 그리움과 슬픔은 무엇으로 이어지는가 하는 점이다. 요컨대 감정의 유형이 아니라 정서의 맥락이 중요하다.사람들이 쉽게 느낄 수 있는 감정을 정호승이 글로 어떻게 아름답게 표현했으며, 그의 시를 접해 보고 감상에 들어가도록 하자.슬픔이 기쁨에게 / 정호승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귤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 주겠다.내가 어둠 속에서 너를 부를 때단 한번도 평등하게 웃어 주질 않은가마니에 덮인 동사자가 다시 얼어 죽을 때가마니 한 장조차 덮어 주지 않은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흘릴 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추위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길 하며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야겠다.이 시의 핵심 구절은 "슬픔의 평등"이다. 슬픔이라는 정서는 만인이 부둥켜안을 수 있는 계기를 베푸는 큰 힘이다. 이것이 "슬픔의 힘"이다. 이 슬픔은 지금 부재하고 있는 그 어떤 것을 기다리는 "기다림의 슬픔"이다. 따라서 '슬픔'은 '기쁨'에게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고 말한다. '사랑의 소중함이 결코 가벼운 것은 아니나 사랑도 슬픔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임을 이시는 암시한다.이렇게 던져진 '슬픔'의 역설은 이후 정호승 시의 곳곳에서 그 자장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정호승 시의 처연한 목소리가 감동력을 더하는 것은 전통 리듬의 차용한다기보다는 한국인의 생래적 어조가 시인의 정조와 자연스럽게 만난 것이라고 하는 편이 좋겠다. 이 리듬 덕분에 지독한 슬픔도 노래가 되고, 비극적 인물에게 의지력을 심어 줄 수 있는 것이다.혼혈아에게 / 정호승초승달 움켜쥐고 키 큰 병사들이병든 네 엄마 방을 찾아올 때마다너의 손을 이끌고 강가로 나가시던 할머니에게너는 이제 더 이상묻지마라 아가야그리울 수 없는 네 아버지의 모습을꼭 돌아온다던 네 아버지의 거짓말을묻지 마라 아가야전쟁은 가고나룻배에 피난민을 실어 나르던그 늙은 뱃사공은 어디 갔을까학도병 따라가던 가랑잎같이떠나려는 아가야 우리들의 아가야너의 조국은 아프리카가 아니다.적삼 댕기 흔들리던 철조망 너머로치솟아 오르던 종다리의 품속이다.이 시의 주인공 역시 아직까지도 사회 문제로 남아있는 ‘혼혈아’이다. 그것도 축복과 사랑이 담긴 탄생의 주인공이 아니라, 상처의 탄생으로 태어난 혼혈아이다. 시인은 한국을 떠나가려는 혼혈아에게 조국은 너에게 상처 입힌 한국임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은 피 흘리는 자들의 나라로 한을 가진 나라로 그려지지만 눈물의 나라가 아니라 평화를 위해 싸우는 나라로 그려지고 있다. 이처럼 슬픔과 비극의 상황을 한국적인 한의 정서에서 미래지향적으로 전환시키는 점은 그의 초기 시, 「슬픔의 기쁨에게」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사랑 / 정호승나는 너의 시체다5월의 푸른 강물 위로 떠오른차디찬 너의 죽음이다너와 나의 끝없는 사랑을 위하여그 누군가가 강가로 끌어올린꽃다운 너의 시체 위에 내리는 햇살이다너는 나의 시체다봄날의 강물 위로 말없이 떠오른너는 나의 분노의 시체다너와 나의 운명을 사랑하기 위하여모든 죽음의 눈물을 아름답게 하기 위하여눈부신 너의 주검 위로 지나가는 바람이다.강렬하고 비극적인 '사랑'의 모습을 해부하고 있다. 한편이 한편을 시체로 만들 수밖에 없는 사랑, 사랑 중의 주체는 부풀고, 부푸는 만큼 대상을 자신의 실존 속에 종속시키려 한다. 사랑을 목말라 하는 나는 "눈부신 너의 주검 위로 지나가는 바람"이 된다. "나는 너의 시체"가 되고 "너는 나의 시체"가 되는 사랑은 그가 또 다른 시'어떤 사랑'에서 보여주는 "내가 너를 사랑했을 때/너는 이미 숨져 있었고/ 네가 나를 사랑했을 때/ 나는 이미 숨져 있었다"고 탄식하는 가혹하는 사랑이다.
    인문/어학| 2007.12.18| 4페이지| 1,000원| 조회(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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