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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랑스 부조리극
    Ⅰ. 부조리극과의 조우처음 부조리극을 만났을 때는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En attendant Godot≫의 줄거리를 들었을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고도’라는 이름 자체도 비행기에서나 들을 법한 그 ‘고도’를 가리키는 줄 알 정도로 문외한인 나는 내용이 황당무계하고 어이없어서 그랬을까 부조리극에 관심이 가지 않는 것은 물론이며 별로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던 것으로 기억한다.그 이후, 선생님의 추천으로 프랑스 2인극 Festival 중 이오네스코의 ≪의자들 Les chaise≫을 보게 된 것이 부조리극과의 두 번째 만남이었다. 평소에 보던 연극과는 사뭇 다른 진행과 대사들이 놀랍고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에 몰입되어 같이 웃고 심각해지며 부조리극에 대한 생각을 조금 바꾸게 되었다. 황당무계함안에 의미심장한 말들이 오가고 그 어이없는 상황들이 아이러니하게도 조금은 이해가 가고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인터넷을 통해서 자료를 찾고 기사를 보는 등의 일을 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 때 뿐, 난 이내 부조리극이라는 것을 잊어버렸다.세 번째, 부조리극과 만났을 때는 올해 프랑스 희곡 강독 수업을 시작하고 나서다. 희곡에 대한 수업을 들은 적이 없어서 선택한 수업에선 이오네스코의 ≪대머리 여가수 La Cantatrice Chauve≫를 듣게 되었다. 나는 부조리극이라는 것에 겁을 약간 냈었는데 언어유희를 반복하는 내용이 꽤나 내게는 흥미롭게 느껴졌다. 더불어 전에 두 번의 이은 만남과는 달리 부조리극이 친근하게 다가왔다. 그동안 배운 강독들과는 달리 문장이 쉬운 이유도 있겠지만 부조리극이라는 어렵게 느껴지는 암호를 조금은 쉽게 풀어갈 수 있는 단서를 발견한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관심을 바탕으로 부조리극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Ⅱ. 부조리극과의 대면1. 부조리극(1) 부조리극의 ‘부조리’「설명이 되는 세계는 근거가 충분치 못해도 믿음이 가는 세계다. 그렇지만 갑자기 환상과 이상의 빛을 빼앗긴 우주 속에서 인간당토 않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랑의 구어에서 ‘부조리하다’는 그저 ‘우스꽝스럽다’는 의미일 수 있다. 그러나 카뮈는 이 단어를 그런 의미로 쓰지 않았으며 우리 또는 부조리극이라 할 때 그런 의미로 말하는 것은 아니다. 카프카에 대한 에세이에서 이오네스코는 이 용어를 어떻게 이해하는지 이렇게 썼다. “부조리 하다는 것은 목표가 없는 어떤 것이다. [....] 만일 인간이 그의 종교적, 형이상학적 또는 선험적인 뿌리에서 떨어져 나간다면 파멸이다. 그의 무든 행위는 무의미하고, 부조리하고, 쓸모없으며 싹도 나기 전에 질식해버리는 것이다.”)(2) 부조리극과 반연극의 정의전쟁의 잔혹함을 겪고 현대 문명 속을 살아가는 현대 인간의 존재와 삶의 문제들이 무질서하고 부조리하다는 것을 소재로 삼은 연극 소재로 삼은 연극 사조로써 실존주의와 초현실주의 사상을 배경으로 제 2차 세계대전 뒤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났다. 부조리극이라는 용어는 영국의 비평가 마틴 에슬린(M. Esslin)이 베케트, 이오네스코, 핀터 등 1950년대 이후 등장한 일련의 작가군을 논하면서 처음으로 언급했다. 이들 연극을 부조리극으로 명명하면서, 에슬린은 부조리극을 “통합된 원칙을 잃고 분열된 세계 속에서 느끼는 인간존재의 우주적 상실감을 표현하고 하는 연극”)으로 정의했다. 또한 에드워드 올비(E. Albee)에 의하면, 부조리극은 “실존주의 철학에 입각한 예술로서 인간의 허구적 환영을 지탱하는 도덕적, 종교적, 정치적, 사회적 구조의 붕괴로 인해 의미가 유실된 세계에서 의미를 찾아내려는 연극”) 이다. 요컨대 부조리극은 1950년대 이후 등장한 새로운 연극양식으로, 반 사실적이고 반대중적인 무대실험을 통해 현대인의 실존적 부조리를 형상화한 연극이라 할 수 있다.부조리극은 사실주의적인 전통 연극기법 대신 소의 ‘반反연극’의 기법을 통하여 부조리한 상황을 제시한다. 1950년에 공연된 이오네스코의 ≪대머리 여가수 La Cantatrice Chauve≫를 통해서 반연극이라는 명다. 혹은, 전복시키고자 한다. 그것은 현실의 재현이, 아이러니컬하게도 관객의 현실감각을 마비시킨다는 발견 때문이다.따라서 반연극은 비현실적인 장면, 플롯의 해체, 비논리적인 극 행동, 우연적인 요소 등을 의도적으로 추구한다. 그리하여 관객에게 감정이입의 태도 대신 객관적 비평의 태도를 갖도록 조장한다. 그 결과, 현실의 피부가 아니라 그 이면의 숨은 속살, 은폐의 진실을 직시하도록 유도한다.(3) 부조리극의 주제와 형식부조리극의 탄생은 20세기 서구인이 처한 존재론적 상황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니체가 ‘신神의 죽음’을 선언한 이후 서구인은 세계와의 유대감을 상실하고 소외된다. 데카르트적인 합리주의에 기반을 둔 물질문명의 대두는 기독교적 형이상학의 휴머니즘 전통을 폐기하고 인간을 수량화된 기계로 환원시킨다. 그 결과 두 차례에 걸쳐 일어난 전쟁의 참화는 문질문명의 종점을 충격적으로 예시하면서 서구 지식인들의 뼈아픈 자기반성을 촉발하게 된다.이러한 배경에서 사르트르와 카뮈로 대변되는 ‘실존주의’ 철학이 나타났다. 이후 실존주의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새로운 윤리학이자 인간학으로 자리 잡게 된다. 부조리극은 주제의 측면에서 이러한 실존주의 철학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다.‘부조리不條理’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이는 카뮈이다. 그는 ‘인간과 삶, 그리고 배우와 무대 사이의 단절’로 인해 발생하는 ‘이방인異邦人으로서의 감정’을 두고 ‘부조리absurd’라 명명하였다. 이러한 실존적 소외의 감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데서 부조리극은 탄생한다. 요컨대 기존의 연극이 이성과 논리를 통해 세계를 과학적으로 이해하려는 합리주의에 기초해 있다면, 부조리극은 이성과 논리의 모순을 부각시킴으로써 세계를 분열된 폐허로 바라보는 허무주의적 세계관에 기초해 있다.한편, 부조리극은 형식의 측면에서도 자기 파괴적이다. 마틴 에슬린은 “플롯이나 스토리 개념의 부재, 자동인형과 같은 등장인물, 시작과 끝의 부재, 꿈과 악몽의 반영, 논리적 맥락에서 벗어난 대사” 등을 부조리극의 특징화된 현실을 풍자함으로 쓴웃음(black humor)을 짓게 한다. 아울러 무대장치는 극도로 간소화 되어 하나의 시적 상징으로 기능한다. 넓게 보면 이런 특성은 상징주의, 표현주의, 초현실주의 등의 전통을 계승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종합하면, 희랍극에서 근대극에 이르기까지의 서구 연극이 세계의 불합리성을 합리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면, 부조리극은 세계의 불합리성을 불합리한 그대로 표현하고자 한다. 이러한 내용과 형식의 일치를 통해 부조리극은 인간 조건의 궁극적이고 본질적인 리얼리티를 계시한다. 이 점이 부조리극을 여타의 연극과 구분 짓게 하는 가장 핵심적인 본질이다.2. 부조리극의 대표 작가들과 작품들(1) 사무엘 베케트 Samuel Beckett의 ≪고도를 기다리며En attendant Godot≫(1952)사무엘 베케트(S. Beckett, 1906~1989)는 부조리극의 개척자이자, 현대극의 시조이다. 그의 대표작 ≪고도를 기다리며En attendant Godot≫는 오늘날 현대연극의 대명사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그것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시골길에서,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라는 두 사람의 떠돌이가 고도(Godot)라는 인물(이를테면 절대자)을 기다리는 동안 부질없는 대사와 동작을 주고받으며 시간을 보낸다. 거기에 노예 럭키를 데리고 포조가 등장하여 역시 두서없는 대화를 나누다가 떠났는데, 심부름하는 양치기 소년이 와서 "고도는 내일 온다."고 알려 준다. 두 사람은 계속 기다린다. 제2막(다음날)에서도 거의 같은 내용이 되풀이되는데, 이번에는 포조가 장님이 되어 있으나 럭키는 달아나려고 하지 않는다. 관객은 고도가 누구인지 갈수록 알 수 없게 되지만, 두 사람은 여전히 기다리고 막이 내린다.이처럼 이 연극은 특별한 줄거리가 없다. 오로지 ‘끝없는 기다림의 연속’만이 있을 뿐이다.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라는 두 주인공은 연극에서 시종일관 수다를 떤다. 그러나 끝없는 수다의 연속에도 그들의 대화는 텅 비어 있다. 왜냐하면 그들의 대화는 의사소통을 위한한다.(2) 의젠 이오네스코 Eugene Ionesco의 ≪대머리 여가수 La Cantatrice Chauve≫의젠 이오네스코(E. Ionesco, 1912~1994)는 반연극의 창시자이다. 1948년 희곡 ≪대머리 여가수 La Cantatrice Chauve≫로부터 반연극이란 용어가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이 작품은 별 주목을 받지 못했다. 프랑스 국립극장에서 공연을 거부하는 통에 1950년 프랑스 녹탕뷜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결과는 참패였고, 엄청난 스캔들과 함께 논쟁만 불러일으켰다. 이오네스코의 작품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En attendant Godot≫가 발표된 1953년 이후의 일이다.≪대머리 여가수 La Cantatrice Chauve≫는 여러 측면에서 부조리극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교과서적인 작품이다. 플롯의 부재, 꼭두각시와 같은 등장인물, 동문서답식 대화 등이 그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특성은 ‘언어적 혼란’ 이다. 이 작품의 대화는 시종일관 상투적인 단어를 반복하거나 상대방의 말을 앵무새처럼 흉내 냄으로써 이루어진다. 등장인물들은 자동인형처럼 끊임없이 수다를 떤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말을 많이 하면 할수록 말의 의미는 점점 더 모호해지고 혼란스러워진다.그 줄거리는 정확히 표현하기가 어려운데, 스미스부부의 대화와 하녀 마리의 어처구니없는 혼잣말, 마틴 부부의 서로 처음 만난 사람들처럼 하는 대화 (결국 서로를 알아차리지만), 마틴 부부의 방문과 스미스 부부의 대화, 소방관장의 방문, 그리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면서 대화가 계속 이어지면서 막이 내린다. 이러한 내용은 이오네스코가 영어를 배우기 위해 산 회화 교본에 나와 있는 장면들을 각색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모든 장면이 이해가 되기도 하고 수긍이 가기도 하였다. 이오네스코에게는 영어 교본이 낯설게 느껴졌던 것이고 의미가 모호해졌으며 단어 하나하나가 의미가 없어진 채 빈 껍데기가 되어버린 것이다.이처럼 의미가 없어지고 해
    예체능| 2010.01.02| 6페이지| 1,500원| 조회(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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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리스탄과 이죄와 로미오와 줄리엣 - 피라모스와 티스베이야기를 소재로 한 텍스트를 중심으로
    1. 주제를 선정하며‘그리스?로마신화’ 가 만화책으로 나와서 초등학생들 사이에서는 큰 유행이 된 적이 있었다. 나에게는 9살 어린 막내 동생이 있어서 유행을 한 그 책을 집에 모두 소유하고 있고 많이 읽기도 하였다. 그래서 report 주제를 받았을 때, 어렵지 않게 다시 주제를 생각해냈다. 워낙 재미있기도 하고 집에서는 신화에 나오는 인물의 이름 맞추기 놀이도 자주 했기 때문에 몇 차례나 다시 읽곤 했다. 하지만 아직도 머릿속에 정리되어 있지 않은 부분들이 있어서 모두 꺼내와 방에 쌓아두고 다시 읽기로 하였다. 마침 주제로 정한 부분을 포함하고 있는 책은 찾지 못해서 여러 가지 주제를 놓고 다시 고민을 했지만 내가 잘 알고 있는 부분을 쓰는 것이 좋다고 판단되어 결국 누구나 다들 알법한 ‘피라모스와 티스베’ 의 소재로 한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가지고 설명을 하고자 한다. 물론 인물 분석은 ‘피라모스와 티스베’에 한정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전체 그리스?로마 신화의 인물들을 가지고 분석하도록 하겠다. (편의상 로마신의 이름표기를 따르지 않고 그리스 신의 표기만 명시하였다.)2. 주관적 텍스트 분석(1) 트리스탄과 이죄앞서 1학기 중세 불문학을 다룰 때 배웠던 텍스트인 트리스탄과 이죄는 불행한 결말을 통해 피라모스와 티스베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트리스탄은 불우하게 태어나서 영웅적인 면모를 보인다. 이는 그리스?로마 신화에 흔히 나타나는 영웅에 대한 이야기와 비슷하다. 예를 들면 나중에 올림포스의 신들을 도와 기간테스를 물리치게 된 헤라클레스 역시 어렸을 때부터 헤라의 질투로 갖은 고생을 하고 - 예를 들어 헤라는 갓난아이에게 뱀을 보내 아이를 죽일 모의를 하고 헤라클레스를 미치게 만들어 열두 가지 과업을 하게 만드는 등의 고난 - 결국 영웅이 되어 헤라에게 인정을 받는다.이렇게 트리스탄은 영웅적 면모를 보이나 외삼촌의 신부감을 보고 우연치 않게 사랑의 묘약을 마시고 둘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이런 소재는 죄를 짓고 아르고스의 왕에게로 피신해 있던 미남 벨레로폰을 아르고스의 왕비인 안테이아가 사랑에 빠진 (서로 사랑하는 사이는 아니지만) 예를 들 수 있다.이 후에도 그 사랑을 멈추지 않고 - 사랑의 묘약 때문에 멈출 수는 없었겠지만, - 과감하게 사랑의 도주를 시도한다. 이 점에서 이죄의 성격은 이아손을 도와 황금의 양털을 차지할 수 있게 했던 메데이아를 떠올릴 수 있다. 또, 사랑의 묘약이라는 장치는 에로스의 황금 화살촉을 떠올릴 수 있다. 결국 외삼촌이 두려워 이죄를 다시 돌려보내고 이죄는 마르크왕과 결혼하게 된다. 이 부분에서 트로이 전쟁의 원인인 메넬라오스의 부인이었다가 파리스의 부인이 되었던 헬레네를 떠올리게 되었다. (물론 헬레네는 다시 메넬라오스의 부인이 된다.)그 이후에 트리스탄은 (금발의)이죄를 잊지 못해서 동명이인인 흰 손의 이죄를 만나서 결혼하게 된다. 그러나 끝까지 (금발의) 이죄를 사랑했기 때문에 그는 죽을병에 걸려서 다시 그녀를 찾게 된다. 물론 그녀 외엔 병을 고쳐줄 사람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로맨틱하게 생각해보면 죽기 전에 그녀를 한 번이라도 보고 싶은 남자의 마음이기도 할 것이다. 이 부분에서는 헬레네와 결혼했던 파리스가 죽을 때가 돼서야 병을 고치고자 첫 번째 부인을 찾아간다는 대목을 떠올리게 한다. 이 상황을 흰 손의 이죄는 질투를 하게 되고 모순되게도 (금발의) 이죄를 데려오는 것은 그녀의 처남이 맡게 된다. 여기서 한 번쯤은 들어본 흰 돛, 검은 돛 얘기가 나오는데 결국 흰 손의 이죄의 거짓말로 - 여기서 작은 악녀의 탄생을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 트리스탄은 슬픔에 빠져 죽게 되고 그 사실을 안 (금발의) 이죄 역시 죽게 된다는 비극적 결말을 보인다. 여기서 흰 손의 이죄는 메데이아를 떠올리게 한다.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심지어는 친동생을 죽여가면서 이아손의 사랑에 매달렸지만 이아손은 그런 메데이아의 집요한 모습에 질려 다른 사람과 결혼하려 했고, 메데이아는 자신의 아이들을 죽이고 새 신부를 고통스럽게 죽이는 등의 일을 한 뒤 떠나는 결말을 보인다. 이는 죽음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비극적 사랑이자, 둘이 함께 할 수 있는 무언가는 죽음이라는 매개체로 통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 같다. 이것은 즉, 피라모스와 티스베와 동일하게 적용되는 소재이다. 피라모스와 티스베는 서로에 집에서 몰래 도망치기로 하고 나와 약속을 했는데, 사자에게 물어뜯긴 티스베의 옷자락을 본 뒤 피라모스가 티스베가 죽은 줄 오해하고 자살을 하게 되고 뒤늦게 온 티스베는 피라모스의 자살에 자신 역시 죽음을 선택하게 된다.(2) 로미오와 줄리엣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는 원형이 피라모스와 티스베일 정도로 이야기의 형태가 거의 일치함을 알 수 있다. 두 집안의 반대로 몰래 사랑을 나눠야 하는 것과 비극적인 죽음의 형태가 바로 그것이다. 소재에 대한 이야기는 이쯤에서 각설하고, 로미오와 줄리엣의 인물을 분석하도록 하겠다.우선 로미오는 그리스?로마신화에서 사랑에 자주 빠지고 쉽게 타인에게 반하는 제우스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그는 로잘린을 마음에 담고 간 파티에서 줄리엣을 우연히 보게 되어 사랑에 빠졌다. 제우스는 슬하에 수많은 아들과 딸들을 두고 있었는데, 그것은 한 여자의 아이들이 아닌 헤라의 아이들인 아레스, 헤파이스토스 등, 레토의 아이들인 아폴론과 아르테미스 등의 여러 부인들 사이에서 자녀를 두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여러 여자를 마음에 두고 끊임없이 마음이 변하는 제우스의 성격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생각한다. 또, 로미오는 집안의 반대가 심한 사랑에 정신없이 몰두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여기서는 프시케에게 푹 빠진 에로스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프시케의 미모가 사람들에게 칭송받자, 아프로디테는 에로스에게 프시케를 아무와도 사랑할 수 없게 만들고 그런 아프로디테의 방침에도 에로스는 프시케와 사랑에 빠져 몰래 사랑을 나눈다. 또, 쉽게 싸움에 말려들어 줄리엣의 사촌을 죽음으로 이르게 하는 것을 보면 - 두 집안은 원래 사이가 안 좋았다지만 - 성격이 급한 아레스의 면모를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론 줄리엣의 죽음이라는 판단 앞에 자살을 선택하는 것이 피라모스와 동일하며 피라모스의 사랑과 견줄 만하다. 이번엔 줄리엣을 보자. 줄리엣 역시 신화의 여러 여자 인물들을 통해 비슷한 면을 찾을 수 있는데, 초반 사랑의 속삭임을 나눌 때의 줄리엣은 여러 인물을 통해 대변된다. 예를 들자면 제우스와 사랑에 빠진 다나에라든가 오리온을 사랑한 아르테미스 등을 들 수 있다. 줄리엣이 죽은 사람인 것처럼 설정되는 부분은 사랑하는 자를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메데이아의 이아손에 대한 헌신적 사랑과 (결국 사랑은 떠나갔지만.) 조금 강도가 다르지만 사랑하는 에우리디케를 저승세계까지 갔던 오르페우스와 비교할 수 있다. 결말은 앞에서 마찬가지로 티스베의 결정을 줄리엣도 따름으로서 연인의 죽음 앞에 자신도 죽음으로 끝을 낸다.
    인문/어학| 2010.01.02| 3페이지| 1,000원| 조회(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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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실주의,자연주의,상징주의,초현실주의,실존주의
    사실주의에서실존주의까지들어가기 전에2Ⅰ. 사실주의와 자연주의2Ⅱ. 상징주의61. 상징주의 시의 발전 경로62. 상징주의 시인의 작품 소개 82-1. 보들레르 82-2. 베를렌느 92-3. 랭보 92-4. 말라르메 11Ⅲ. 초현실주의121. 초현실주의의 발전 경로122. 초현실주의에 대해132-1. 표현기법132-2. 초현실주의 선언문 142-3. 초현실주의 의의 142-4. 초현실주의 작가의 작품 소개152-4-1. 브르똥 152-4-2. 엘뤼아르 162-4-3. 아뽈리네르 17Ⅵ. 실존주의171. 실존주의의 발전 경로172. 실존주의 작가의 작품192-1. 사르트르 192-2. 까뮈 192-3. 보부아르 22나오며23들어가기 전에처음 report의 주제를 받았을 때, 막연한 주제에 그 내용을 어떻게 써야할지 막막했다. 그래서 우선은 적당하게 주제를 나눈 후에 계획을 잡아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어떤 작품이나 작가 혹은 시대를 하나의 문예사조 안에 묶어버리는 일은 실제로는 불가능하다. 그것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다양한 경향의 작품과 작가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며, 한 작품 속에도 대개는 관점에 따라 여러 경향이 나타나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부분에 있어 전체적으로 작품을 놓고 텍스트 분석을 하기에는 무리가 따르기 때문에 여기서는 사조를 통해 파트를 나눠 살펴볼 것이다. 각 내용마다 다른 내용으로 살펴 볼 가능성이 있어 제목이나 다른 부분에 있어 일관성이 없을 수 있음을 미리 양해드린다.Ⅰ. 사실주의와 자연주의1789년 프랑스 대혁명으로부터 1815년의 나폴레옹 몰락에 이르기까지 프랑스 전역을 들끓게 했던 역사적 대사건들이 19세기 전반기에 고전적 규범에 반대하는 새로운 흐름을 낳음에 따라, 상상력을 통한 개인의 몽상, 번민에 싸인 내면심정의 토로, 감정의 고조와 비약, 이상에의 동경 등 무한한 자유로움을 추구하며 자아를 중심으로 한 작품들, 자서전적 작품들로 대변되는 낭만주의가 우세하게 된다. 특히 까다로운 규칙의 제약이 없는 소설에서하는 학자.Naturalistme/naturaliste - A) 철학의 영역 (17세기 이후) : 자연의 바깥에는 아무 것도 존재 하 지 않으며, 일체의 형이상학적 혹은 초자연적 설명을 배제한다는 주의. ‘자연주의자들은 신을 전 혀 인정하지 않으며 물질적 실체만이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 그러한 의미의 자연주의 자는 무신론자, 유물론자, 스피노자 철학자의 동의어이다.’ (디드로 『백과사전』1765)B) 미술의 영역(19세기부터) : 자연의 정확한 모방에 힘쓰는 예술이론. ‘자연주의 유파는 주장 하 기를, 예술은 그의 온갖 양식 하에 그리고 모든 단계에서 생명의 표현이며, 그 유일한 목적은 자 연을 최대한의 힘과 응집성으로 이끌면서 재현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과학과 평형을 이 루는 진실이다. (까드따나리 Castagnary) 『1863년의 살롱』))따라서 자연주의자란 작가이기 이전에 철학자, 학자, 화가였다. 19세기 후반기의 과학은 급속도로 발전하면 대중에 점점 친숙해진다. 낭만주의에 식상한 많은 지식인들은 오귀스뜨 꽁뜨(Auguste Comte)가 『실증철학강의 Cours de philosophie postive』(19830-1842)에서 전개한 이론에서 돌파구를 찾는다. 또한 1859년에 출판된 다윈의 『종의 기원』도 그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자연주의 문학이론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주게 된다. 그의 이론의 요점은 생물의 종들은 자연도태의 법칙과 유전법칙의 메커니즘에 따라 그들이 처한 환경의 작용으로 변화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문학에 최초로 적용한 사람은 땐느 (H. Taine) 이다. 추상적인 논리와 분류의 신봉자인 그는 개인을 역사적 사회의 체험에 입각하여 이해하려고 했다. 따라서 인간을 결정하는 본질적 요소를 ‘시대’, ‘종족’, ‘환경’의 3요소로 보았던 것이다. 땐느의 이 이론은 자연주의에 직접적인 근거를 마련해 주었고, 졸라는 다윈의 진화론에 뤼까스(P. Lucas)의 『유전의 철학적, 생리학적 시론 Traite 언어에 대한 독창적인 고찰과 시적 표현의 특수성에 대한 예민한 의식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이다. 말라르메의 눈에는 종교적인 언어인 시는 더할 나위 없는 언어로서, 거기에선 일반적 언어의 낱말이 더욱 순수한 뜻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그 언어는 사상과 본질의 세계를 환기해 주는 것이다. 이러한 말라르메의 시는 20세기에 와서 발레리로 이어져 상징주의 시의 완성에까지 이른다. 따라서 보들레르로 시작되어 말라르메를 거쳐 발레리로 이르는 시의 흐름을 하나의 큰 흐름이라고 한다면, 보들레르부터 랭보를 거쳐 아뽈리네르(Apollinaire 1880-1918)를 통하여 초현실주의 운동에 이르는 시의 흐름 또한 큰 흐름의 하나이다. 따라서 보들레르, 베를렌느, 랭보, 말라르메는 상징주의를 논하는데 있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품들을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오늘 날 프랑스 시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반드시 거쳐야 할 시인들인 것이다.2. 상징주의 시인의 작품 소개[보들레르, 베를렌느, 랭보, 말라르메를 중심으로]2-1. 보들레르 [Baudelaire, Charles-Pierre] (1821 - 1867)CorrespondancesLa Nature est un temple ou de vivants piliersLaissent parfois sortir de confuses paroles ;L'homme y passe a travers des forets de symbolesQui l'observent avec des regards familiers.Comme de longs echos qui de loin se confondentDans une tenebreuse et profonde unite,Vaste comme la nuit et comme la clarte,Les parfums, les couleurs et les sons se repondent.Il est des parfums frais comme des chairs d'enfants,Doux comme les 게 밝은 빛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는 것은 아이에게(아이이기 때문에) 매혹적인 ‘유혹entreprise’ 내지는 경험일 것이다. 그러나 아이가 능동적인 인식의 주체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베일을 겹겹이 두른 여신을 멀리서 보았을 때부터이다. 非본질에 둘러싸인 본질은 아이의 인식의 회로를 미끄러지듯 피해 달아난다. 조금씩 여신의 베일이 벗겨짐에 따라 아이와 여신의 거리는 좁혀진다. 즉 비본질의 껍질이 벗겨지면서 본질에 다가가게 되는 것이다. 아이는 본질을 인식하는 동시에 튕겨져 나간다. Innocence의 세계에서 가능한 본질에 대한 바른 인식은 Reality의 세계에서는 불가능하게 된다. 성적(육체적, 현실적(세속적)) 욕망과 인식에의 욕망의 딜레마. 이것이 바로 이 보여주는 욕망의 실체이다.2-4. 말라르메 [Mallarme, Stephane] (1842-1898)Le vierge, le vivace et ..Le vierge, le vivace et le bel aujourd’huiVa-t-il nous dechirer avec un coup d’aile ivreCe lac dur oublie que hante sous le givreLe transparent glacier des vols qui n’ont pas fui !Un cygne d’autrefois se souvient que c’est luiMagnifique mais qui sans espoir se delivrePour n’avoir pas chante la region ou vivreQuand du sterile hiver a resplendi l’ennui.Tout son col secouera cette blanche agoniePar l’espace infligee a l’oiseau qui le nie,Mais non l’horreur du sol ou le plumage est pris.Fantome qu’a ce lieu son pur eclat assigne,Il s’immob회를 제공하고자 한 것이었다.2-2. 초현실주의 선언문Manifeste du surrealisme합리주의를 부정하고, 무의식의 외재화(外在化)에 의한 인간의 해방을 선언하였다. 1924년에 '제1선언'이, 1929년에 '제2선언'이 출판되었다.'제1선언'에서 브르통은 쉬르레알리슴을 "구술·기술, 그 밖의 모든 표현 방법으로 사고의 참다운 움직임을 표현하고자 하는 마음의 자동기술법(오토마티슴). 이성(理性)에 의한 모든 검열을 배제하고 미학상(美學上)·도덕상의 일체의 선입주(先入主)로부터 떨어져 이루어지는 사고(思考)의 참다운 복사(複寫)"라고 정의하였다. '제2선언'에서는 쉬르레알리슴과 유물사관을 제창하고, 자기의 정치적 입장을 명확하게 함과 더불어 A.아르토, F.스포, R.데스노스, A.마송, F.피카비아 등으로부터 쉬르레알리스트의 자격을 박탈하였다. “초현실주의란 이전에 무시해 온 결합된 어떤 형태가 갖는 우월성, 꿈의 무한한 힘, 그리고 아무 이해관계가 없는 사고의 역할에 대한 믿음에 기초를 두고 있다.” -1924년- “예술품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 일은 아니다. 우리가 거의 자각하지 못했던 아름다움이나(...) , 지금까지 표현되지 않은 것이 있는데(....) 이 미개척 분야를 밝히는 것이 초현실주의의 목적이다.” -1929년-2-3. 초현실주의 의의초현실주의자들이 인간 정신이라는 빙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무의식과 욕망의 영역을 탐구하고 그것의 자동 기술적 발현을 기도했던 것은 이른바 현실의 너머에 있는 보다 우월한 현실, 즉 초현실(super reality)의 세계로 들어서기 위함이었고 그곳에서 진정한 현실을 만나기 위함이었다.초현실주의에 대한 열광은 1930년대 이후로 점차 줄어들었지만 완전히 소멸한 것은 아니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소규모로 유지되고 있다. 20세기 미학에서 이 운동의 중요성은 이러한 것에 대한 관심이 없던 때에 놀랍고도 이국적인 것의 부활을 보여주었다는데 있다.2-4. 초현실주의 작가의 작품 소개2-4-1. 브르똥 [Andr것이다.
    인문/어학| 2010.01.02| 24페이지| 3,000원| 조회(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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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쁠레이아드 (플레이야드)
    쁠레이아드 (La Pleiade)1. 쁠레이아드 (La Pleiade)(1) 쁠레이아드의 형성1550년을 전후하여 파리의 생트-쥬느비에브 언덕의 「코크레학원」(College de Coqueret) 에 모여든 몇몇 젊은 문학도들은 당대의 탁월한 인문학자 장 도라(Jean Dora) 의 지도하에, 그리스 ? 로마의 고전연구에 몰두하였다. 이 연구를 통해 프랑스문학을 혁신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한 이들은 공동의 이론과 우정으로 결합되어 하나의 그룹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롱사르에 의해 처음에는 「분대」(la Brigade)라는 전투적인 이름으로 불리웠으나 그후 알렉산드리아의 7대 시인을 모방하여 다시 「쁠레이아드」 (La Pleiade)) 라 명명하게 된 이 그룹은 롱사르를 주장으로하여 조아생 뒤 벨레, 장 도라, 장 앙투안 드 바이프, 레미 벨로, 퐁튀스 드 티야르, 에티엔 조델 이렇게 일곱명이었다.(2) 쁠레이아드의 이론이들은 일견 모순되는 듯한 이중의 야망을 표방하였다. 하나는 그리스 ? 로마 문화의 보고를 최대한 훔쳐내는 일이었고, 또 하나는 오랫동안 우상화되었던 라틴어에서 탈피하여 모국어인 프랑스어를 확립시켜 문학적 표현의 새로운 도구로 연마하는 일이었다. 그들에게 있어 고대문화는 완성의 영원한 모델이었고 따라서 새로운 문학과 예술의 창조를 지향하는 데 있어 그것을 모방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은 당연한 명제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그들은 모국어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긍지를 지니고 있었으며 프랑스어를 연마하여 풍요하게 만듬으로서 고대문학 또는 이탈리아 문학에 필적할 만한 새 문학을 창조하기를 원하였다. 이러한 것이 뒤 벨레가 대표로 집필한, 프랑스 문학사상의 최초의 문학 선언문이라 할 「프랑스어의 옹호(擁護)와 선양(宣揚)」(Defense et Illustration de la langue francaise) (1594)의 주된 프로그램이었다.그러나 고대의 모방과 프랑스어의 옹호라는 두 명제가 상반되는 듯이 보이는 것은 외견상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쁠레이아드파 시인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프랑스어에 의한 새로운 문학의 창조에 있었으며 고대의 모방은 하나의 그리고 최선의 방법이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실상 빈약하고 메마른 프랑스어를 활력있고 풍요한 언어로 만들기 위해 고전어를 과감히 차입하였는가 하면, 중세에 틀에 박힌 문학 장르대신 고대의 위대한 형식들 오드(ode)), 서사시, 서정시, 비극, 히극, 그리고 이탈리아의 소넷(sonnet)) 등을 도입함으로써 문학적 표현의 새 지평을 열고자 시도하였다. 그들이 고대에 대한 무한한, 거의 절대적인 찬양과 존경의 마음을 품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찬양과 존경은 새로운 프랑스문학 창조에 대한 정열과 의식을 짓누르기는 커녕 오히려 고양시켰던 것이다.(3) 쁠레이아드 선언 - 뒤 벨레 「프랑스어의 옹호(擁護)와 선양(宣揚)」(Defense et Illustration de la langue francaise) (1594)공격적 풍자서이자 시의 변호서인 이 책은, 프랑스 문학 속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최초의 문학비평 작품이다. 이 선언문은 원래, 궁정시인 시빌레(Thomas Sibilet)의 시법(詩法) (Art poetique)에 대한 비판을 위해 구상된 것으로서, 논쟁적인 의미가 짙은 것이었다. 1부는 라틴 어로 쓰기를 고집하는 위마니스트들에 대한 공격으로서, 프랑스 어로 쓸 필요성을 증명한다. 제 2부는 연구를 멸시하는 무기력한 프랑스 시인들에 대한 화살을 돌리고, 고대어와 고대 문학에서 빌려 옴으로써 프랑스 어와 프랑스 문학을 풍부하게 할 필요성을 증명한다. 이는 즉 구체적으로 말하면 첫째, 무엇보다도 먼저, 롱도(rondeau)) 라거나 발라드(ballade)) 등과 같은 중세의 형식들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된다. 둘째, 고대인들이 창조한 장르들을 모방하지 않으면 안된다. 셋째, 프랑스 어를 풍부하게 하여 수많은 새로운 관념들을 표현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새로운 낱말들을 창조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 세 가지의 주요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다.2. 쁠레이아드의 작가들(1) 뒤 벨레 Joachim Du Bellay(1525~1560)① 생애 및 업적글라티니 출생. 1526년에 바욘, 1532년에 파리의 주교(主敎)를 지내고, 프랑수아 1세를 섬겨, 영국 ·이탈리아에 외교관으로 파견되었다. 1535년에 추기경이 되어 1536∼1537년의 프랑스와 신성(神聖) 로마 제국 사이의 전란 중에는 육군 중장으로서 활약하였다. 1541∼1544년 리모주 주교, 1544∼1553년 보르도 대주교가 되어, 1546∼1556년에는 르망 주교를 겸임했는데, 앙리 2세의 대관(戴冠)과 동시에 신임을 잃고 1553년 이후에는 로마에서 살면서 오스티아의 주교를 역임했다. 라틴어로 쓴 《시집》 《서간집》 등을 남겼다.(2) 롱사르 Pierre de Ronsard (1524.9.11~1585.12.27)?① 생애 및 업적루아르 지방 방도무아의 라 포소니에르 성관에서 출생. 프랑수아 1세의 황태자 오를레앙공(公)의 시종으로 입궁하여 스코틀랜드 ·독일 등에 체재하였다. 18세 때 병으로 청각에 이상이 생겨 사임하고 파리의 코크레 학원에 입학하여 J.바이프, J.뒤벨레와 함께 교장이며 그리스 학자인 J.D.도라의 지도로 고대문학 연구에 몰두하였다. 그들은 프랑스어를 더 없이 순결한 그리스어 ·라틴어의 위치까지 끌어올리려는 이상을 가지고 공동선언 《프랑스어의 옹호와 현양 Defense et illustration de la langue francaise》(1549)을 발표하였으며, 롱사르 자신도 그 이상의 실현을 위하여 고대그리스의 시인 핀다로스풍(風)의 서정시 《오드집(集) Les Odes》(1550)을 발표하여 새로운 시의 유파인 플레야드파(派)의 대표자가 되었다.이탈리아의 시인 페트라르카풍(風) 소네트 《연애시집 Les Amours》(1552∼1556), 장엄한 장시 《찬가집 Les Hymnes》(1555∼1556)을 발표하여 당시 프랑스 시인의 일인자가 되었고, 12음절로 된 알렉산드랭 시구(詩句))를 확립하여 고전극시의 길을 연 것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당대의 참상을 논하는 시 Discourse des Miseres de ce Temps》(1562)는 종교전쟁에서의 자기변호와 가톨리시즘에 대한 지지를 읊은 종교적 내용의 장시를 포함한 시집이며, 《프랑스 시학제요(詩學提要)》(1565)는 산문으로 쓴 유일한 시론으로 고전시인 ·신(新)라틴 시인의 모방을 권고하고, 고어 ·신조어(新造語) ·지방어의 채용 등을 주장하였다. 《엘렌의 소네트 Sonnets pour Helene》(1578)는 사랑과 더불어 노쇠와 죽음을 음영(陰影)으로 묘사한 롱사르 시의 최고봉이다. 생콤의 수도원에서 생애를 마친 롱사르는 16세기 프랑스 최대의 시인이며, 중세 서정시와 근대의 상징시를 잇는 계승자로서의 역할을 하였고, 특히 시형식의 개혁을 실천한 공적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3) 뒤 벨레와 롱사르의 작품 소개 - 뒤로.3. 마치며(1) G. 랑송의 평가쁠레이아드의 노력은, 보다시피, 광범하고 방법적인 것이었다. 이 시인들은 17세기와 마찬가지로, 고대 문학의 숭배에서 착상을 얻었다. 17세기가 성공하고 있는데서 그들이 실패한 까닭은 무엇인가?그것은 그들이 모방을 함으로써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 줄을 몰랐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들이 그들의 [고대로부터의] 무의식적 영향의 중압 아래 짓눌렸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들이 훗날 브왈로가 선언한 저 위대한 원리, 그 고대인들에게 대한 숭배는 이성에 기초를 두지 않으면 안 된다는 원리는 무시했기 때문이다. 고대인들은 그들이 자연을 재현한 정도에 따라서만 권위를 갖고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쁠레이아드 시인들은 자연 그 자체에 대한 것과 같은 정도의 권위를 순진하게도 고대인들에게 인정했다. 그들은 고대인들이 제공하고 있는 외형적인 것, 상대적인 것, 국지적(局地的)인 것 까지도, 그들이 제공하고 있는 영원한 것과 마찬가지로 노예적으로 모방 ? 재현했다. 그런 결과, 그들의 업적의 일부는 오늘날 죽어버렸다. 그것은 그리스 ? 로마에 관한 박식에 불과한 부분이다. 그러나 다른 일부는 살아 남아 있다. 그것은 개인적인 기질이 모방을 물리치고 모방에서 단호히 해방된 부분이다.(2) 나의 생각비록 G.랑송은 쁠레이아드파의 한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지만 이 발표를 준비하게 되면서 나는 다른 생각을 갖게 되었다.비록 고대 그리스 ? 로마의 작품을 본받으려 했다지만 그들은 모국어에 대한 넘쳐나는 사랑으로 시를 썼고, 그들의 노력이 아니었다면 소네트형식의 아름다운 시와 프랑스 시의 묘미라는 알렉산드랭 역시 제대로 확립이 되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프랑스에는 수많은 주옥같은 시들이 있고, 그들은 나와 우리의 감성을 자극한다. 정말 최고의 시인도 있을 것이고 영향력 있는 시인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굳이 이렇게 말하고 싶다. 르네상스 시기의 최고의 시인은 롱사르와 쁠레이아드파의 시인들이었으며 그들의 시는 지금의 우리가 읊어도 마음을 풍요롭게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4. 참고 자료40명의 프랑스 작가들/ 바꺼르; 반스 [공]엮음; 이규식 옮김. 서울: 문경출판사, 1996.프랑스 문학: 중세에서 현대까지/ 李桓; 元潤洙 공저. 서울: 하서, 1987.프랑스 시의 이해/ Alain Vaillant [지음]; 김다은; 이혜지 공역. 서울: 東文選, 2000.랑송佛文學史 / G. Lanson ; P. Tuffrau 共箸 ; 丁奇洙 譯. 서울 : 乙酉文化社, 1984. (최완복 옮김, 을유 문화사)www.france.co.kr/literature/엔싸이버 백과사전네이버 백과 사전뒤 벨레 / 얼마나 행복한가, 율리시스는...얼마나 행복한가, 율리시즈는, 그토록 멋진 여행을 했으니,항금 양털을 쟁취하고서,예의 바르고 지각있게, 천지들 곁에서,시대의 나머지를 살러 돌아온 그 이는 얼마나 행복한가!슬프도다, 언제나 내 작은 마을의 굴뚝에서연기가 솟아 오르는걸 다시 보려나, 어느 계절에야
    인문/어학| 2007.10.02| 5페이지| 1,000원| 조회(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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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문학] 중세의 특징, 트리스탄과 이죄 (트리스탄과 이졸데) 평가B괜찮아요
    1. 중세의 특징일반적으로 중세는 서기 5세기에서 15세기에 이르는 약 천년에 걸친 긴 시기를 가리킨다. 더 정확하게는 서로마 제국이 붕괴한 476년부터 동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이 함락한 1453년에 이르는 기간에 해당되는데, 이 중세는 말하자면 ‘고대’와 ‘현대’ 사이에 걸쳐 있는 셈이다.이 시간에 나타난 특징으로는 사회적 주축은 봉건제도였다. 중세기의 정치적 ? 사회적 성격을 투징짓는 이 제도는 계속되는 정치적 혼란과 전란 속에서 거의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제도이다. 대다수의 무력한 백성들은 그들을 보호해 줄 강력한 인물을 중심으로 모여들었는데, 이들은 보호를 받는 대신 몸과 재산을 바쳐 영주에게 절대적 복종을 맹세함으로써 이 양자 사이에 종주와 가신의 강한 유대가 생겨났다. 군웅할거의 긴장된 사회 하에서 세력다툼과 군신간의 신의와 충성의 관계에 바탕을 둔, 명예라는 도덕적 가치를 고양한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주세문학에 있어 하나의 영속적인 주제가 될 것이다.중세의 사회적 구조가 봉건제도에 의해 특정 지워지는 것이라면 우리는 중세를 지탱하고 있는 또 하나의 정신적 지주를 보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다름 아닌 기독교이다. 갈리아를 침입한 프랑크족의 왕 클로비스가 기독교로 개종한 이래 기독교 정신 및 교회의 권위는 중세인의 사고와 생활을 지배하여 그들의 거칠고 난폭한 성향을 누그러뜨리는데 기여하였을 뿐만 아니라 기사도의 명예의 개념에 종교적 의무를 부과함으로써 독특한 중세적 모랄을 키워나갔다. 교회는 봉건제도 하에서 왕권을 옹호함으로써 왕권의 신장에 크게 기여하였는데, 987년 카페 왕조의 수립 이후, 오귀스트왕, 성 루이 왕으로 이어지면서 기반을 다져간 왕권과 더불어 교회의 권위도 크게 신장하였다.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와 같은 지속적인 사회구조와 정신적 흐름을 배경으로 하여 한 시대가, 또는 한 집단이나 한 개인이 창출한 문화의 독창적이고 다양한 형태들이다.2. 트리스탄과 이죄원래의 트리스탄 이야기는 프랑스어로 쓰였기 때문에 여주인공 이졸데는 이죄(Iseut) 또는 이졸드(Isolde)라고 불러야 옳다. 켈트인(人)의 옛 전설을 소재로 하여 12세기 중엽에 프랑스에서 이야기로 엮어졌는데, 그 사랑과 죽음의 강렬함과 아름다움 때문에 거의 전(全)유럽에 보급되어 서구 연애문학의 전형이 되었다. 로누아의 왕자 트리스탄은 태어나기 이전에 아버지를 잃었고, 어머니는 그를 낳고 얼마 안 있어 죽었다. 콘월의 왕인 백부 마르크 밑에서 지용(智勇)을 겸비한 젊은 기사로 성장한 그는 아일랜드의 거인 몰오르트를 쓰러뜨리고 국난을 구했다. 백부의 아내가 될 미녀를 찾아 아일랜드에 가서 용을 퇴치하고 왕녀 이죄를 데리고 개선하는 도중, 해상에서 시녀의 실수로 마르크와 이죄가 마셔야 할 ‘사랑의 음료’를 마심으로써 트리스탄과 이죄가 관계를 맺는다. 그것은 사랑과 죽음의 음료로, 이를 마신 자는 하루를 못 만나면 병이 나고 사흘을 못 만나면 죽는다고 한다. 그래서 이죄는 마르크왕의 왕비가 되었으나 연인인 트리스탄과 항상 만나고 있었다.어느 날 이 일이 발견되어, 두 사람은 처형을 피하여 깊은 숲 속으로 도망쳤으나 3년 뒤에 왕과의 화해가 성립되어 이죄는 궁정으로 돌아오고 트리스탄은 추방된다. 트리스탄은 이죄를 사모하여 브르타뉴에서 이죄와 같은 이름의 아내를 얻었으나, 연인을 잊을 수 없어 병상에 눕게 되며, 연인을 데리고 올 사자(使者)를 보내 놓고 그녀의 도착을 기다리면서 마침내 숨을 거둔다. 그가 죽은 직후에 이죄는 도착하지만 그녀도 슬퍼한 나머지 죽고 만다.3. 내가 본 트리스탄과 이죄프랑스의 중세문학 중 내가 중심적으로 말하고 싶은 작품은 트리스탄과 이죄이다. 이 작품은 여러 작품의 모태가 되기도 하고 지금까지 꽤나 많은 이야깃거리들을 만드는 소재가 되기도 한다. 이 트리스탄과 이죄를 선택한 이유에는 위에 말했던 중세적 요새를 담는 내용이기도 하지만,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이야기이기도 하고 그것이 중세시대라는 아주 먼 과거에 파격적인 불륜이야기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1) 주관적인 텍스트의 분석트리스탄은 불우하게 태어나서 영웅적인 면모를 보인다. 이는 그동안 우리가 쉽게 접했던 영웅 소설들과 비슷한 내용을 보인다. 해리포터만 봐도 그렇다. 해리는 불우하게 태어나서 외삼촌네 집에 얹혀살며 구박을 받고 그리고 결국 영웅이 된다. 이런 소설의 모태 역시 중세의 이야기에서 비롯됐다고 나는 생각했다.이렇게 트리스탄은 영웅적 면모를 보이나 외삼촌의 신부감을 보고 우연치 않게 사랑의 묘약을 마시고 둘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여기서 “사랑의 묘약”이라는 장치 자체를 나는 귀엽다고 생각했다. 요즘 현대 연애물에서 보면 그 우연한 장치를 실제적으로 독자가 공감할 수 있게 만드는 반면에 이 때는 사람들이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사랑의 묘약”이라는 깜찍한 장치를 써서 ‘이 사랑은 어쩔 수 없었다.’ ‘사랑에 빠지는 것은 당연하다.’ 라는 것을 내세워 이 과감한 사랑에 대한 면죄부를 받고 싶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이 후에도 그 사랑을 멈추지 않고 - 사랑의 묘약 때문에 멈출 수는 없었겠지만, - 과감하게 사랑의 도주를 시도하지만 결국 외삼촌이 두려워 이죄를 다시 돌려보내고 이죄는 마르크왕과 결혼하게 된다. 이 점에서 중세시대의 분위기라고 생각이 되었다. 아무리 사랑이 위대하다고 해도 외삼촌인 마르크왕의 보살핌을 받고 있는 기사, 즉 주군과 가신의 관계였던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을 보게 되더라도 피가로의 약혼자를 그 집의 주인인 백작이 먼저 취하려고 하는 그런 소동을 바탕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즉, 주군과 가신의 관계가 엄격하고 실제로 더 강압적이고 착취되고 있는 부분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그 이후에 트리스탄은 (금발의)이죄를 잊지 못해서 동명이인인 흰 손의 이죄를 만나서 결혼하게 된다. 이 부분에서 나는 조금 진보적인 이야기의 경향을 느꼈다. 요즘에도 흔히 접할 수 있는 내용이기도 해서일까? - 이상하게 불륜소재는 그저 파격적이란 생각이 되는 반면에 동명이인의 여자와 결혼은 진보적이고 그 때 생각할 수 없는 소재라고 스스로는 생각했다. - 결국 가신의 운명을 받아드리고 중세사회의 질서를 받아드린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문/어학| 2007.10.02| 3페이지| 1,000원| 조회(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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