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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동지역의 축제
    안동의 축제개념축제는 인간의 이념, 인물 혹은 사건 같은 지나간 것을 공동의 기억 속에 저장하고 그것을 현재의 차원에서 규칙적으로 특정한 시간 내에서 다시 불러내어 기리는 공동체적인 행사이다. 축제는 원시사회에서 뿐만 아니라 문명화 과정에서도 지속해 온 문화적 현상으로서 인간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그런 점에서 축제와 문화는 서로 분리 될 수 없는 것이다.종류1.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⑴유래 및 특성①유래 : 안동문화는 시대별로 편중되지 않고, 종교적으로 편향되지 않은 유형적 자산뿐만 아니라 무형문화재도 많아 남성대동놀이인 차전놀이, 여성대동놀이인 놋다리밟기, 화전싸움, 저전논메기 소리, 내방가사, 행상소리 등 다양하게 전승된다.안동지역에 이렇게 풍부한 문화유산이 전승되는 것은 안동이 가진 가치 지향적 철학에서 기인한다. 문화적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였으며 문화수용과 계발에 적극적이었기 때문이다. 이 결과 동양의 모든 문화가 안동에 유입되었고 유입된 이후 안동만의 가치관으로 재편성되어 꽃을 피운 것이다.따라서 안동문화는 동양의 가치관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가운데 안동다운 특징을 보여주는 수준 높은 지향점을 보여준다. 이러한 문화적 자산이 탈춤페스티벌을 가능하게 하는 배경이다. 즉, 문화유산의 가치 속에서 정적인 마음의 고요함을 배우고, 탈춤이 가진 신명을 통해 동적인 발산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탈춤축제는 안동문화를 답사하는 것과, 축제의 신명을 함께하는 것이 태극처럼 조화롭게 구성되어 있다.②특성 :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은 ‘탈춤’이라는 재미있는 주제를 통해 신명나는 세계적 축제의 장을 열어가고 있다. 6년 연속 문화관광부 최우수 축제로 선정될 만큼 가장 한국적이고 다른 축제와의 차별성을 가지고 있다. 주요 행사로는 중요무형문화재를 비롯하여 국내외 30여개 전통탈춤공연과 탈댄스경연대회 등 현대탈춤공연으로 전통과 현대가 한마당 되는 판을 열고 있다. 또한 안동민속축제가 동시 개최 되어 남성대동놀이 ‘차전놀이’와 여성대동놀이 ‘놋다리밟기’를 비롯하여 안동지역 민속행사 30여 종을 체험할 수 있다.③ 기능우리나라의 하회별신굿 탈놀이를 알림과 동시에 여러 나라의 탈춤들을 구경할 수 있게 하여 여러 나라의 문화를 동시에 접하면서 우리나라의 문화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해준다.⑵안동민속축제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과 동시에 개최된다.전야제 행사로 서제, 불꽃놀이, 성황제등 각종 민속행사가 열리고 놋다리밟기, 차전놀이, 저전논매기, 연합풍물놀이 등이 진행된다. 그 외에 예술행사인 국악공연등과 안동시민이 참여하는 다양한 이벤트가 있다.1968년, 민속의 보존발굴이라는 취지 아래 ‘안동민속제전’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안동민속축제는 그 뒤 ‘안동민속제(제6회)’, ‘안동민속문화제(제9회)’로 명칭이 변경되었다가 제15회 대회에 이르러 주최가 안동시로 이관되면서 안동민속축제라는 이름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2.빙고 페스티벌⑴유래빙고페스티벌은 안동 석빙고 장빙축제를 말한다. 안동의 특산품인 은어를 겨울에 임금님께 진상하기 위해 만든 석빙고에 얼음을 채빙하여 넣고 장빙제를 지내던 데서 시작된다.⑵전승안동지역의 석빙고는 모두 2기가 있었으며 목조로 된 빙고를 포함하면 이보다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남아있는 석빙고는 안동시 도산면에 있었던 것을 안동댐 건설로 인하여 1976년 현재 위치인 안동시립민속박물관으로 이건한 것이다.이 석빙고는 원래 영조 13년인 1737년에 당시 선성현감으로 부임한 이매신이 당시 목조빙고를 개축하여 만든 것이다. 목조 빙고는 삼한시대부터 활용된 것으로 전해오는 것으로 이매신은 이 목조빙고를 매년 관리함에 많은 부역이 들어가는 것을 염려하여 고친 것으로 추정되며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안동 낙동강 은어를 임금님께 진상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당시 여름 임금님께 진상한 공물 중에는 지역 특산물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중 안동지역 낙동강 은어 30미도 함께 목록에 들어있었던 것이다. 음력 7월 낙동강 은어는 산란하기 전 시기이며 동시에 낙동강의 험한 물살을 헤치고 올라온 고기들이라 그 맛이 일품이었다. 따라서 이매신은 이러한 은어를 싱싱하게 임금님께 진상할 목적을 가지고 석빙고를 개축한 것이다.⑶유래석빙고에 겨울이면 단단해지는 얼음을 채빙하여 보관한 후 여름까지 그 얼음을 그대로 보관되도록 하기 위한 행사를 안동에서 재현한다. 먼저 안동에서 가장 얼음이 좋은 암산 스케이트장에서 전통방법 그대로 쓱싹쓱싹 얼음을 채빙한 후 석빙고까지 운빙을 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얼음을 석빙고에 넣는 것이 바로 장빙으로 이 때 물과 비의 신인 현명씨에게 제사를 지내게 되는데 국가적인 제사이기 때문에 4배를 행하며 진설도와 축 등이 국가의전 책자인『국조오례의』에 기록되어 있을 정도이다.안동석빙고는 임금에게 진상하기 위한 은어 저장고였으므로 사한제에 의거한 제사를 지내며 제관은 부사로 진행된다.3.성주풀이⑴개념성주란 성조(成造)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것은 ‘집을 이룬다’는 뜻이다. 풀이는 신화를 일컫는다. 즉 집을 만든 신화적 이야기를 성주풀이라고 하는 것이다. 신화란 성스러운 이야기이자 세계관이 담겨 있다. 말하자면 이것은 우리 집이 만들어진 사연과 세계관의 근거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성주풀이는 노래로 불려진다. 성주풀이 즉, 우리 집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하는 부분에서 바로 안동문화의 중요성이 드러난다. 신화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첫 구절이다. 성주풀이의 첫구절은 ‘성주의 본향이 어드메뇨, 성주근본이 어드메뇨, 경상도 안동땅 제비원이 본일래라’로 시작된다. 이를 좀더 자세하게 말하면 집을 이룬 성주는 안동땅 제비원이 고향이라는 것이다.⑵유래안동땅 제비원에서 솔씨가 날아와 우리 마을 뒷산에 자리를 잡고 나무가 되어 해가 지나서 커다란 나무가 되었다. 집을 짓기 위하여 큰 나무를 구하려고 산속에 들어갔는데 이나무 저나무 보았지만 모두가 허사였고 오직 제비원에서 온 나무가 대들보(집에서는 가장 중요한 부분)로 사용되기에 적합하여 마을 사람들과 함께 이 나무를 가져와 집을 지었다는 내용으로 구성된다. 그리고 말하기를 이렇게 제비원에서 날아온 나무로 집을 지었으니 집이 앞으로 크게 번성할 것이라는 것을 말한다.
    인문/어학| 2009.04.16| 4페이지| 1,000원| 조회(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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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풍물
    악기의 종류와 특징1)꽹과리(쇠)① 명칭과 유래꽹과리 별칭은 광쇠, 꽝쇠, 꽹매기, 소금, 동고, 쟁 등이며, 그 유래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신라시대 때 만들어졌다는 것과 고려 공민왕 때 주나라에서 만들어져 중국 명나라 때 들어왔다는 기록이 있다. 꽹과리를 만들 때는 놋쇠를 녹여 만드는데, 놋쇠는 구리와 아연을 섞어서 만든 것으로 구리의 합금 비율이 높으면 소리가 높고 맑게 나고, 아연의 합금 비율이 높으면 소리가 낮고 탁해진다. 또 요즘에는 금이나 은을 섞어 금쇠, 은쇠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음색에 따라서 숫 꽹과리와 암 꽹과리로 나뉘는데 숫 꽹과리는 소리가 야물고 높으나 암 꽹과리는 소리가 부드럽고 낮다. 숫쇠와 암쇠가 서로 받아치며 하는 놀이(짝쇠, 짝드름)는 마치 암쇠와 숫쇠가 서로 화답하듯 화음이 잘 어울려 리듬악기로서 으뜸이라 할 수 있다. 예전에는 제례악에서도 사용되었으나 현재는 풍물 판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② 꽹과리의 크기직경이 21cm(7치), 둘레부분의 높이는 3.6cm(1치 2푼)가 평균크기인데, 요즘은 판의 성격과 양식이 변화되어서인지 크기가 작고 울림이 많지 않은 꽹과리가 선호되고 있다.③쇠의 선택이 꽹과리가 어떤 판에서 무슨 용도로 쓰여 질 것인가를 고려해야 한다. 마당 판에서는 크기가 크고 소리 울림이 좋아 푸진 맛이 있고 힘을 느낄 수 있는 악기를, 무대 판이나 실내용으로는 음색이 뚜렷하고 좀 작은 크기로 울림이 마당 판보다는 조금 작아도 될 악기를 골라야 한다. 용도상으로 보면, 상쇠는 치배들의 중간 중간 가락을 잡아주고 판을 지휘하는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음색이 뚜렷하고 높아 전 치배들에게 전달이 잘 되는 숫쇠를, 부쇠는 상쇠를 도와 끊김 없이 원 박만으로 쳐야 하기 때문에 소리가 부드러운 암쇠를, 그리고 삼쇠 이후부터는 잔가락과 기교를 부리며 판을 풍성하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숫쇠와 암쇠를 번갈아서 쓴다.④쇠 관리법소리를 내는 넓은 면적을 바닥에 닿지 않도록 해야 한다.(징 보관도 동일) 이는 바닥에 꽹과리의 넓은 면적이 닿으면 소리가 변질 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꽹과리를 오랫동안 사용하려면 연습용과 공연용을 따로 사용(깨진 쇠도 울림이 있다면 연습용으로 사용)하는 것이 경제적이나, 관리 측면에서 더욱 좋을 것이다. 그리고 보관은 꽹과리 가방에 넣어 보관하거나 가방이 따로 없을 경우에는 두꺼운 천에 싸서, 소지품 가방에 넣어 가지고 다니는 습관이 필요하다.2)징①명칭과 유래징은 고취악 즉 옛 군악에 사용된 연유로 해서 고취징이라 부르며 그 밖에 나, 금, 금라, 금정, 대금 등의 호칭이 있다. 놋쇠로 만든 타악기로 원음은 “정”이었으나 징이라는 명칭으로 굳어졌다. 또한 징은 꽹과리와 같이 고려 공민왕 때 중국 명나라에서 들어왔다는 기록이 있지만, 그 쓰임에 있어서는 단순함으로 보아 고려 이전에 사용된 제기였음을 추측된다.②모양과 쓰임새징의 쓰임은 다양해서 취타를 비롯한 무악, 풍물 등에 쓰이며 절에서도 사용된다. 특이한 쓰임으로는 제주도에서 징과 꽹과리의 중간형태의 크기인 “무구”가 있는데, 징이나 꽹과리와 같이 사용되기도 한다. 그 모양새는 각 쓰임에 따라 다르지만 풍물에서 주로 쓰이는 징은 지름 36cm(1자 2치) 둘레 10cm(3치)가 평균적이다. 요즘은 그 보다 작은 징이 쓰이기도 한다. 징 채는 예전에는 대략 30cm정도 둥그렇게 깍은 나무 막대에 짚을 엮어 만들어 사용했지만 요즘은 실이나 천으로 감아 마무리는 헝겊으로 감싸서 고무줄로 묶어 사용한다.③음색징은 소리가 낮고 은은한 쇠 악기로 꽹과리와 음색의 조화를 이루며, 장단의 첫 박을 맞춰주는 중요한 역할과 가락을 감싸 앉는 울림으로 다른 악기 소리를 받쳐주며, 풍물악기 중 가장 멀리 울려 퍼진다. 굿판에서 징수는 풍물을 가장 오래 한 사람이 잡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을 만큼 징의 역할이 중요하다.④고르는 법과 보관법징을 고를 때는 모양보다는 소리를 중요하게 들어봐야 한다. 징소리는 음색이 일정하며, 울림이 길고, 울림의 끝이 쳐지지 않는 여유있는 소리로 고르는 것이 좋다. 그렇게 구입한 징을 보관할 때는 꽹과리와 마찬가지로 징 표면이 바닥에 닿지 않도록 보관하며, 되도록 징 가방에 넣어 세워 두던지 징걸이에 걸어 보관해야 한다. 또 징채를 사용하다보면 채 머리가 빠지고 흐트러지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게 될 정도로 방치하지 말고 징 채를 구입한 즉시 머리 부분을 다시 헝겊으로 감싸 고무줄로 단단히 묶어 사용하면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고 좋은 소리를 낼 수도 있다.3)장구①명칭장구는 풍물악기에서 북, 소고 등과 같이 가죽악기로 분류된다. 양편 머리가 크고 그 허리가 가늘다 하여 세요고(細要鼓)라고도 한다. 흔히 사람들 중에서 장고냐? 장구냐? 로 의견이 분분한데, 한자로 지팡이 장(杖)과 북 고(鼓)를 쓰면 “장고”가 맞고 노루 장(獐)과 개 구(狗)를 쓰면 “장구”가 맞다.②유래장구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고려 문종 30년(1076년)에 대악관현방을 정할 때 장고업사(장구 연주자)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의 장구보다 작은 크기의 장구를 요고(腰鼓)라 하며, 인도에서 만들어져 중국 남북조 시대를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왔다고 한다. 장구가 요즘에 쓰이는 형태로 크기가 커진 것은 고려 때로 추측되며, 장구가 중국에서 만들어져 우리나라로 전해진 것에 대하여 두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중국 한 무제때 만들어져 고려 예종왕 9년 송나라에서 새로운 악기가 들어올 때 장고이십면이 포함되었다는 기록에 의한 설이고, 다른 하나는 장구가 중국에서 당나라 때부여 쓰여 고려 때 들어왔다는 견해이다.③구조왼쪽(궁편)은 소가죽, 말가죽을 대어 가죽을 두껍게 해 소리가 낮으며, 오른쪽(채편)은 보통두께가 얇은 양가죽이나 말가죽을 대 높은 소리를 낸다. 가죽으로는 개가죽이 소리도 좋고 울림도 커서 가장 좋게 쳐준다. 옛날엔 노루가죽을 궁편에 대고 개가죽을 채편에 대었지만 요즘은 양쪽다 개가죽을 대어 많이 쓰인다. 장구통의 재료는 사기, 쇠, 나무, 양펄 등을 쓰는데, 현재는 가벼우며 소리에 있어서도 좋은 편인 나무통이 가장 널리 쓰인다. 현재 가장 많이 쓰는 통은 오동나무 장구통이며, 무겁기는 하나 다른 나무에 비해 좋은 소리를 내는 소나무 통도 쓰이고 있다.장구통 모양은 궁편 쪽이 넓어 소리 울림이 크고, 채편 쪽은 궁편보다 길고 좁아 소리 울림이 적다. 장구통의 궁통과 채통을 이어주는 곳을 흔히 조롱목이라 하는데, 조롱목이 너무 넓으면 소리가 헤프고, 조롱목이 너무 좁으면 소리가 되바라진다. 장구 조립은 가죽둘레에 8개의 쇠고리를 걸어, 무명을 꼬아 만든 줄 로 얽어매고 죔줄을 좌우로 움직여 소리를 조절한다.장구의 채로는 궁채(궁글채)와 열채(가락채)가 있는데, 궁채는 대나무 뿌리를 잘 삶아서 똑바로 편 다음, 끝부분에 박달나무와 같이 단단한 나무나 뿔을 끼워서 만들고, 열채는 대나무를 깎아서 만든다.④관리법악기는 쇠보다 가죽악기가 날씨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 통은 조심히 다뤄 깨지지 않도록 하면 되지만, 가죽은 여름에는 습기를 먹어 누굴누굴해지며, 소리가 잘 나지 않고, 겨울에는 날씨가 건조해 수분이 말라 소리가 탱탱 거리며 잘 찟어진다.통은 깨지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과 6개월에 한번씩, 가죽과 만나는 통 둘레에 채가 맞아 움푹 깍여 있는 자리를, 장구를 해체 한 후 사포로 다듬어 다시 매어 쓰는 것이 좋다.가죽은 풍물을 치고 난 뒤, 꼭 가죽상태가 어떤지를 확인하고 보관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가죽이 조금이라도 찢어져 있을 경우에는 투명한 스카치 테이프를 붙여 더 찢어지지 않도록 한다. 여름에는 연습 후나 모임시간에 바람이 잘 통하는 그늘에 30분 정도 말려 가방에 보관하고, 겨울에는 장구를 치기전에 물을 가죽에 발라 치도록 한다.채는 나무로 만들어져 여름에 습기를 먹어 곰팡이가 잘 슨다 곰팡이가 슬면 물걸레로 곰팡이를 닦아주고, 그늘에 말려서 쓴다.그 외에도 장구는 되도록 악기 가방에 넣어 보관한다. 장구를 바로 샀을 경우에는 부전을 조이지 않고 물이나 막걸리를 먹여 조금씩 꾸준히 두들겨서 길을 들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예체능| 2007.10.24| 4페이지| 1,500원| 조회(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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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북공정
    ▣ 동북공정의 개념동북공정이란?동북공정이란 ‘동북변강역사여현상계열연구공정’의 줄임말로 동북 변경의 역사와 현황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 프로젝트로 풀이 된다. 중국 사회과학원에서 조직 동북3성(요령성, 길림성, 흑룡강성)의 성 위원회가 참여하고 지원하는 학술연구 프로젝트이다.이 작업을 통해 중국이 얻으려 하는 것은 한민족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의 정통성을 이어 받은 고구려의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하려는 것이다. 접근 방향은 중국은 한족(漢族)을 중심으로 55개의 소수민족이 만든 국가라는 것이며 현재 중국 국경 안에서 이루어진 모든 역사는 중국의 역사이므로 고구려사와 발해의 역사는 한국의 역사가 아니라 중국의 역사가 된다는 것이다.▣ 동북공정의 발단동북공정의 출발은 중국측의 입장으로는 잘못된 역사 바로잡기 운동에서부터 시작이 되는데 곧 주변국의 입장에서 보면 역사의 왜곡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할 것이다. 중국은 일찍이 서남공정에서 보여주듯이 소수민족의 불만을 잠재우고 한민족 대단결을 위하며 초기에 소수민족분쟁의 단초를 없애기 위하여 서부대개발과 같은 국가적 차원의 국책사업을 추진하였다. 동북공정은 또 다른 형태의 서남공정에 연장선상에 존재하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구상된 기획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결국 동북공정의 시작은 이미 서남공정에서부터 의도되고 기획된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주요 쟁점 문제(1) 고구려의 족원(族源)고구려인의 조상은 중국사람이다.중국인들 주장의 근거가 되는 라는 책은 편찬자와 편찬연대가 불명확한 역사서이다. 또한 전욱 고양씨가 실존인물이라고 가정하더라도 전욱 고양씨는 기원전 2500년경, 고이는 기원전 10세기경 사람이기 때문에 무려 1500여년이라는 긴 시간차이가 난다. 따라서 고구려인의 선조가 될 수 없다. 고구려인의 조상은 중국의 한족이나 유목민족이 아니라 만주와 한반도 일대에서 농경생활을 하던 동이족의 일족이었다.(2) 책봉-조공 관계고구려의 왕은 중국의 신하였다.조공과 책봉을 통해 중국은 세계 질서의 으뜸이라는 명분을 얻을 수 있었고, 주변국가는 경제적·문화적 실리를 취할 수 있었다. 따라서 조공과 책봉이라는 외교형식을 근거로 삼아 고구려가 중국의 지방정권이라고 보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만약 중국의 주장처럼 조공과 책봉이 중국에 대한 종속의 근거라면 백제와 신라, 왜 등도 모두 중국의 지방정권이어야 한다.(3) 고구려의건국과 강역(彊域)고구려의 수도였던 평양이 중국 땅이었다.중국은 고구려는 중국 군현인 집안에서 시작하였고 평양은 고조선을 멸망시킨 한이 낙랑군을 설치한 곳이라는 새로운 학설을 내놓고 있다.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은 현재의 중국 땅 안에서 일어났던 일을 모두 중국사로 보는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이라는 중국의 역사인식에 위배된다. 평양 일대는 현재 중국이 아닌 북한 땅이기 때문이다. 고구려가 중국 군현으로 된 고조선의 옛 땅 안에서 일어난 것은 오히려 고구려가 건국과정에부터 중국의 침략을 물리치면서 자주적인 발전을 이룬 나라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다.(4) 수. 당과의 전쟁고구려와 수·당의 전쟁은 중국의 집안싸움이었다.중국의 역사서인 , 에는 당 고조가 '고구려와 중국은 별개인데 굳이 지배하려 들 필요가 있느냐'라고 말한 내용이 기록돼 있다. 물론 고조의 이 견해는 신하들의 반대로 철회되고 결국 중국 중심의 천하 건립을 위해 고구려를 공격한다. 이처럼 고구려와 수·당 간의 전쟁은 두 국가 간, 두 세력권 간의 충돌과 갈등의 결과였다.(5) 고구려 유민(遺民)과 계승중국으로 끌려간 고구려 유민들이 더 많기 때문에 그 역사도 중국사다.고구려가 멸망한 후 고구려 유민들 가운데 일본과 신라보다는 중국으로 흡수된 사람들이 더 많았다. (그러나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신라로 내려간 고구려 유민들은 신라의 힘을 빌어 고구려를 부흥시키기 위해 나·당 전쟁에 앞장섰고 신라는 당 침략군을 몰아내기 위해 고구려의 왕족 안승으로 하여금 금마저에 보덕국이라는 나라를 세우도록 하였다. 또 후삼국시대에는 후고구려로, 이후에는 고려로 고구려 계승의식이 이어졌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고구려 계승의식을 가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러므로 한나라의 역사는 유민 수의 많고 적음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유민들이 갖고 있던 자의식과 역사의식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6) 고구려와 고려는 이름만 닮았다.왕건의 선조는 백두산 근처에 살다가 황해도로 내려온 사람이며, 고려라는 나라 이름도 옛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또한 고려의 정책에서도 고구려 계승의식이 잘 나타난다. 건국 직후부터 북방 진출을 꾀하여 고구려의 수도였던 서경을 중시하고 이곳을 북진정책의 전진기지로 삼았다. 거란의 침입 때에도 서희는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라는 것을 외교적 담판을 통해 확인시키고 영토까지 확장하였다. 반면 중국에는 고구려를 자신들의 역사로 기록한 역사책이 한권도 없으며 오히려 송대 이후의 역사서에는 고려를 고구려의 계승국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동북공정의 추진 목적첫째, 중국은 동북공정을 통해 국가의 안정적인 통합을 꾀한다.중국의 소수민족의 거주 지역은 천연자원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국경지역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이 지역의 통합은 중국에 매우 중요하다.중국은 동북공정의 목표로 국가통일, 민족단결, 변경안정을 명시하고 있다. 동북지역의 불안정은 다른 소수민족 지역의 불안을 야기함으로써 결국 전 중공의 불안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둘째, 중국은 동북공정을 통해 남북한이 통일된 이후의 조선족 이탈을 막으려고 하는 것이다.동북공정에서 목표하는 지역은 동북 3성으로 길림성과 흑룡강성·요녕성이 그것이다. 여기에는 특히 조선족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곳이다. 문화적으로는 중국이 아니라 한국적 요소가 짙으며 경제적으로도 지금도 연변조선족 자치주는 지금 현재 한국 경제에 예속되어 있다. 지금 사정도 이러한데, 통일이 되면 이것은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이행될 수 있다. 이때문에 조선족들의 이탈을 방지하고, 자신들의 국경과 영토를 문화적이고 경제적인 것과 연계시키지 않으려는 정당성을 역사해석에서 확보하려는 것이 바로 동북공정이다.셋째, 동북공정의 목표는 남북한이 통일된 이후에 발생할 수 있는 영토분쟁에서 역사적인 선점을 해 두려는 것이다.지금도 중국과 한국의 영토문제는 분쟁의 소지가 있다. 영토분쟁 이후 지금의 형태로 고착화 된 것은 간도협약을 통해서였다. 을사조약이 무효화됨에따라 여기에 기반해서 이루어졌던 간도협약 역시 무효가 된다. 중국은 이러한 영토분쟁의 가능성을 역사 해석을 통해 미리 막으려는 것이다. 동시에 동북공정에서 목표하는 대로 역사가 해석되면, 한국의 역사적 영토는 최악의 경우 한강 이남으로 밀려나게 된다. 이것은 중국이 한반도 문제, 특히 북한의 문제에 개입할 수 있는 역사적 실마리를 마련해 주는 결과를 낳게 된다.넷째, 중국은 동북공정을 통해서 중국의 신제국주의를 위한 역사적 근거를 확보하려고 한다.중국은 그들의 역사를 한족 중심의 역사로 기술하면서, 동아시아의 역사를 '한족 팽창사'로 정리한다. 동아시아의 중심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규정하는 순간, 중국은 동아시아의 맹주자리를 되찾기 위한 역사적 근거로 이를 이용하게 될 것이다. 중국의 새로운 신제국주의 정책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역사학자들이 동아시아의 역사를 한족과 한민족을 포함한 만주족과의 교섭사로 보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세계유산 등재북한과 중국의 고구려 유적이 세계문화유산으로 개별 등재됨에 따라 북한과 중국은 유네스코에서 유적 보존을 위한 기술적?재정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얻게 되었다.학자들은 동시 등재로 인해 중국이 고구려사를 마치 중국사인 것처럼 선전할 수 있는 근거가 생겼다며 중국이 신청한 고구려 유적이 내용이나 질적인 면에서 북한 유적보다 우수한 것은 우리에게 무척 아픈 부분이라고 지적했다.중국은 지금까지 고구려사를 자국 역사로 편입시키기 위한 작업을 해왔는데 이번 개별 등재는 중국에 고구려 역사의 귀속성 문제에 대해 나름대로 근거와 논리를 갖추게 해주는 역할을 할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있다.
    인문/어학| 2007.10.24| 4페이지| 1,500원| 조회(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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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들어가는 말요즘 양식 있는 사람들 가운데 고스톱 망국론을 펴는 이가 많다. 고스톱에 대하여 비판론을 강하게 펴면 펼수록 스스로의 도덕성이 확립되는 것처럼 착각하는 경향까지 있다. 어떤 의도에서든 고스톱을 일방적으로 나무라기만 하는 사람들은, 화투는 노름이며 도박이라는 고정관념을 근거로 한 도덕적 당위성을 업고 있을 뿐, 재미와 즐거움을 함께 갈무리하고 있는 이 놀이의 생생한 경험을 애써 숨기고 있는 이들이다.고스톱을 나무라는 사람들이 드는 몇 가지 이유는 고스톱의 도구로 쓰이는 화투는 일본 것이라는 민족적 감정을 내세우는가 하면, 도박이니 노름이니 하여 주색잡기의 하나로 몰아붙이기도 하고, 한탕주의 사행심을 조장하는 투기로 취급하기도 한다. 더러는 고스톱의 규칙 가운데 ‘피박’이나 ‘멍텅’, ‘설사’, ‘쓰리 고’ 등 변형규칙을 내세워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조장하는 놀이라고 면박을 주기도 한다. 이런 비난들은 우리나라사람들이 민족주체성도 없고, 도박이나 투기에만 빠져 있으며, 자본주의사회의 가장 큰 맹점인 빈부격차의 심화를 즐기는, 그래서 볼 장 다 본 민족처럼 여기게 한다. 우리나라사람들 90퍼센트 정도가 이 놀이를 한 경험이 있어서 고스톱을 비난하는 것은 우리민족 전체를 비난하는 것이다.고스톱은 오늘의 향락문화의 주범도 아니며 투기를 조장하는 근거를 마련해주고 있는 것도 아니다. 고스톱으로 한탕 크게 해서 축제를 할 수도 없고, 이로 인해 빈부차를 심화시킬 수도 없다. 고스톱을 비난하는 것은 화투에 대한 편견에 사로잡힌 귀족적 지식인들이 지적 고상함을 가장하기 위해서이거나, 아니면 가진 자들이 자신의 매판적이고 투기적인 축제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또는 가진 자들이나 즐길 수 있는 값비싼 놀이에서 비롯되는 갖가지 폐단을 의도적으로 가리기 위한 엉뚱한 비난에 지나지 않는다. 예사 사람들은 범접하기도 어려운 그들의 고급스런 외제놀이들이 빚어내는 계층간의 위화감 조성, 각종 공해의 유발 및 과소비 조장문제는 제쳐두고, 소박한 예사 사람들이나 하는 일상적인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하여 성급하게 일본놀이로 간주하는 것은 지나친 단견이다. 왜냐하면 일본의 화투 역시 16세기 포르투갈 상인들로부터 서양 트럼프를 본받아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트럼프 그대로 즐기다 이 놀이가 널리 퍼지자, 나라에서 금령을 내려 이를 금지하게 되고, 이 금령을 피해 만들어낸 것이 화투이다. 모방의 명수인 일본인들은 트럼프의 하트·다이아몬드·클로버·스페이스의 네 기호와 숫자를 변형시켜, 춘하추동의 화조풍월로 바꿔버린 것이 바로 ‘하트’가 아닌 화투이며 이때가 19세기 중반이었다.그런데 이 트럼프가 동양에서 발생하여 11세기 이후에 유럽에 전해졌다는 사실은 알아도 그 뿌리가 우리나라 전통놀이인 투전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흔하지 않을 것이다.투전놀이 방법에는 놀이에 사용되는 투전의 매수나 인원수에 따라 ‘동동이’, ‘갑오잡이’, ‘쩍쩍이’, ‘소몰이’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소몰이’ 방법이 요즘 고스톱놀이와 구조적으로 흡사하다.고스톱이 왜색임을 주장하는 이들은 화투의 그림이 일본 것이라고 한다. 사실이다. 트럼프의 그림이 유럽인들의 문화풍토를 담고 있듯이 화투의 그림도 일본의 문화풍토에 바탕을 둔 것이다. 우리그림이면 더 좋겠지만, 투전이 트럼프로, 트럼프가 화투로 변형되면서 다시 한국으로 들어온 것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이 것이 마음에 안 들면 그림을 우리 것으로 바꾸면 될 것이다.3. 고스톱의 역사와 사회사고스톱이 이 땅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시기는 1960년대 말이며, 대중적인 놀이로서 민중 속에 널리 파고들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였다. 그리고 1980년대에 들어서자 예사 사람들을 중심으로 아랫사람과 윗사람들이 두루 즐기는 놀이로 일반화되기에 이르면서, 정치풍자 고스톱이 새로운 규칙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른바 싹쓸이 규칙과 거기에 따른 변형규칙, 즉 전두환 고스톱을 기점으로 정계 거물급 인물들의 정치행태가 고스톱의 규칙으로 반영되면서 고스톱은 점입가경에 이른 셈이다.고스톱의 생존사는 곧 않은 채 잘못된 편견에서 비롯된 일방적 매도라는 것을 쉽사리 짐작할 수 있다.4. 고스톱은 과연 도박인가예사 사람들이 고스톱을 노름이나 도박으로 여기는 것은 화투에 대한 부정적인 관념 때문이다. 종래 화투놀이는 아무나 할 수 없었다. 여유가 많은 건달들이나 하는 놀이였다. 일제 초기부터 화투놀이는 기생집에서 하이칼라잡놈들이 주로 즐겼던 놀이로, 이른바 ‘주색잡기’라 하여 소비적이고 퇴폐적인 놀이로 비난받아왔다. 살림도 제법 있고 글자깨나 깨치면서 새 문물은 익혔지만 마땅한 일자리를 얻지 못한 건달패들이, 막일은 손에 잡히지 않으므로 기생집을 전전하면서 화투노름을 즐겼던 것이다. 따라서 화투는 ‘주색잡기’로 , 또는 ‘하이칼라 잡놈들’이나 하는 노름으로 고정관념화 되어 버렸다.도박, 즉 노름은 ‘돈이나 재물을 걸고 서로 따먹기를 겨루는 짓’으로서, 일시적 오락의 정도에 불과한 때를 제와하고는 형법상의 범죄가 된다. 서울시민 90퍼센트 정도가 고스톱을 한다는데, 이를 도박이라 한다면 우선 서울시민 모두를 도박꾼으로 모는 셈이다. 고스톱을 즐기는 대다수 사람들이 일시적으로 놀이삼아 하기 때문에 도박의 범주에 들 수 없을 뿐 아니라, 그 금액 또한 푼돈이므로 도박으로 간주 될 수 없다.빠찡꼬와 같이 순전히 기계에 돈을 넣어서, 또는 복권과 같이 적은 금액을 투자하여 일확천금을 노리는 것이 도박이자 한탕주의이지, 놀이의 수단으로 푼돈이 오고가는 것은 도박이라 하기 어렵다.5. 고스톱은 카드놀이고스톱은 한탕주의 투기가 아니라 카드놀이의 일종이다. 세계 각국 모든 카드놀이가 지니고 있는 보편성을 띠면서 우리 나름대로의 문화적 특수성을 지니고 있을 따름이다. 카드놀이는 화투든 트럼프든 우연성으로 비롯되는 확률성의 행운과 이러한 흐름을 읽어낼 수 있는 놀이꾼의 재치와 솜씨에 달려 있다. 서양의 카드놀이인 트럼프는 고상한 놀이나 품격 있는 놀이로 보면서 고스톱은 투기로 몰아세우는 것은 자학적인 종속성을 드러낼 뿐이다. 더러 외국 항공기를 이용하면 트럼프를 기내봉사의 하나로 손될 때 마다, 그 사건이나 주역들을 소재로 삼아 적절히 규칙화하는 일은 예사로 넘길 수 없다. 특정인물이 개인적인 슬기를 발휘하여 이런 규칙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민중적 공감대에 의해 자연스레 생산 전승 향유되는 것으로서 이 시대의 민중적 현실인식의 역량을 드러내는 공동체의 산물이다. 이러한 역량은 고스톱 이전에도 있었다. ‘섰다’판의 경우 점수 나는 족보에, 38선을 뜻하는 3·8광땡이 있는가 하면 1·4후퇴를 뜻하는 1·4, 5·16을 상징하는 5·7, 10·26을 상징하는 10·8이 있다. 물론 앞의 두 족보는 해방 후와 6·25전후에, 뒤의 두 족보는 5공화국 이후에 생겨난 것이다.7. 민중적·민주적 놀이종래의 화투에서 가장 중요시 되었던 혈연에 바탕을 둔 귀족주의를 배격하는 것이 고스톱의 중요한 변화이다. 그 결과 민화투에서 가장 으뜸으로 여겼던 비·풍·초를 고스톱에서는 가장 쓸데없는 것으로 여겨 민중, 즉 피가 주인이 된 고스톱 판에서는 혈연적 기득권, 신분적 특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따라서 고스톱은 민화투와 반대로 천덕꾸러기로 여기던 피를 존중하고 양반 패로 존중되던 비·풍·초를 별 볼일 없는 것으로 격하시킴으로써, 귀족화투인 민화투를 뒤짚어 엎고 밑으로부터 치받쳐 올라온 민중화투라 해도 좋겠다.민중화투로 주목되어야 할 규칙 가운데 하나가 규칙의적용에 관한 규칙이다. 민화투는 규칙이 고정적이어서 정해진 규칙을 따르기만 해야 한다. 그러나 고스톱은 놀이에 들어가기 전에 놀이에 참여하는 사람들끼리 의논하여, 이미 개발된 수십 가지의 규칙들 가운데 적용할 것을 선택한다. 새 규칙을 만들어 넣기도 하고 굳어진 규칙을 제외시키기도 한다. 그 결과 다양한 변형규칙이 많고 또 그때마다 새로 개발된 규칙도 있어, 놀이에 들어가기 전에 규칙의 적용을 합의해나가는 동안 규칙에 대한 이해의 폭도 넓히고, 그 규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까지 깨치는 기회가 된다. 참여자의 합의에 의해 제각기 적절한 규칙을 적용하고 도출해내는 방식은 가장 민주적인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다. 이 놀이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고스톱이 대화의 장애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하는, 오히려 고스톱 놀이가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원만하게 하는 구실을 한다. 고스톱 판을 벌이면 자기도 모르게 서로 평등한 놀이꾼의 일원이 되면서 놀이 법칙에 따라 스스럼없는 사귐이 이루어지게 된다. 화투패를 들고 놀이에 몰입하고 있는 경우에도 틈틈이 가족문제나 시사문제를 화젯거리로 삼아 대화의 물꼬를 틀수 있을 뿐 아니라, 패를 놓고 쉬는 사람들은 좀 더 적극적인 대화의 판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또 고스톱은 상대편의 사람됨이나 인성을 이해하는 데에도 적지 않은 도움을 준다. 어지간히 좋은 패를 들지 않으면 치려고 하지 않는 신중파를 비롯해서, 여러 가지 인간형이 있는데, 놀이판이기 때문에 자신의 사람됨을 특별한 경계 없이 비교적 순조롭게 드러내어 고스톱을 즐기는 동안 자연스레 사람들의 인간성을 이해하는 기회가 된다.그렇다고 해서 고스톱을 즐기라고 권장하지는 않는다. 어느 탈옥수가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구호를 내걸고 경찰과 대치하다가 죽은 것처럼, 다만 가진 게 적은 예사 사람들이 쉽게 하는 놀이라고 해서, 지적 고상함으로 장식하고 값비싼 장비를 갖춘 특수한 사람들의 놀이와 애써 구별하여, 일방적으로 도박이라는 올가미를 씌우는 행위에 대해 쓴 이는 그 부당성을 비판하고 누명을 벗기고자 한 것이다. 그리고 아무 데서나 판을 벌이고 푼돈을 주고받는 놀이라고 해서, 목돈을 쓰면서 특정한 공간에서 놀이를 즐기는 양식 있는 사람들의 품격에 거슬리는 천박한 놀이로 규정하는 불공정성에 맞서서 고스톱놀이의 ‘무전유죄’를 옹호하고자 한 것이다. 고스톱놀이에 씌워진 억울한 누명을 벗기고 그 비난의 불공정성을 바로잡는다고 하여 이 놀이가 지니고 있는 허물이 다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카드놀이의 일반이 가지는 허물은 고스톱이라고 해서 예외 일 수 없다.9. 인터넷 고스톱인터넷이 활성화 되면서 많은 성인 남·녀가 인터넷 고스톱에 심각한 중독성을 보이고 있다. 인터넷 고스톱이 언제부터 활성화가 됐는지 모 된다.
    인문/어학| 2007.10.24| 5페이지| 1,500원| 조회(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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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간
    이야기는 시계 소리와 함께 시작한다. 아마도 괘종시계의 소리일 것이다. 아주 무겁고 느리게 뚜벅뚜벅 뒤로 다가오는 듯한 소리. 그런 다음 무시무시하게 클로즈업된 성형수술 장면이 이어진다. 눈을 찢는 장면이 보이면, 그 다음은 가슴을 열고 실리콘을 넣는 장면이다. 한 여자가 선글라스를 쓰고 커다란 마스크를 한 채 큰 액자를 들고 병원에서 나온다. 그런데 그때 급하게 지나가던 세희가 그만 그녀와 부딪치면서 액자를 떨어뜨리고 만다. 세희는 미안하다고 하면서 깨진 액자를 들고 다시 끼워드릴게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라면서 들고 간다. 하지만 선글라스를 쓴 여자는 세희의 뒷모습을 본 다음 그냥 뒤돌아서서 인파 속으로 사라진다. 이제부터 이 액자는 일종의 윤무를 시작한다. 혹은 하나의 순환처럼 세희에게 운명을 넘겨준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세희가 그걸 들고 간 곳은 작은 카페이다. 거기서 지우(에서 병장으로 나온 하정우. 그런데 이 영화에는 에 출연한 배우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이를테면 지우의 친구로 뚱보 병장이 나온다)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 세희가 지우에게 액자를 보여주면서 어때, 예쁘지, 라고 하자 지우는 야, 무슨 미친 여자 같다, 고 대답한다. 그런데 지우의 차와 가벼운 접촉 사고를 일으킨 다음 두 여자가 지우와 명함을 주고받자 그걸 본 세희가 다가가 도대체 왜 처음 보는 남자에게 명함을 주냐고 따져 묻는다. 그러자 한 여자가 세희에게 말한다. 뭐, 이런 미친년이 있어. 말하자면 여기에는 광기 혹은 미쳐가는 과정이 있다. 혹은 미친, 좀더 정확하게 미쳐가는 여자에 대한 이야기.세희는 여자들이 지우에게 관심을 갖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자꾸만 신경쓰여 견딜 수가 없다. 그래서 침대에서 지우에게 말한다. “나 미친 거 같지, 나는 어떤 여자가 지우씨에게 눈길을 주면 그 눈을 파버리고 싶어.” 그러더니 그녀는 지우에게 “아까 그 차 박은 여자 생각하면서 (섹스)해달라”고 요구한다. 그리고는 그걸 확인하고 세희는 또 괴로워한다. 세희는 몇 차례고 돌아오고 또 돌아오는 그 카페. 지우는 새희에게 세희가 돌아올 테니 헤어지자고 말한다. 새희는 헤어질 수 없다고 소리치고 화를 내지만 지우는 어쩔 수 없다고 그녀를 두고 떠나간다. 이제 이야기는 원점으로 돌아간 것일까?방향을 바꾼 게임, 영화의 또다른 시작그런데 영화는 여기서부터 진짜 시작이다. 다시 그 카페에서 지우가 세희를 만난다. 그런데 거기서 그녀는 종이로 만든 세희의 가면을 쓰고 지우를 기다린다. 그런 다음 지우에게 “가면을 벗기고 새로운 여자를 만나줘”라고 하소연한다. “너 정말 무서운 여자다”라고 비명처럼 외친 지우는 그 자리를 떠난다. 그 만남은 참담하게 끝난다. 지우는 떠나고 세희 혹은 새희는 그 종이가면을 쓴 채 거리를 가로질러 자기 얼굴을 고친 성형외과를 찾아간다. 그리고 거기서 종이가면을 찢어버린 다음 떠난다. 그 의사 앞에 이번에는 지우가 찾아온다. 그리고 의사에게 묻는다. “이제 저는 어떻게 하면 좋아요, 저에게 좀 알려 주세요.” 의사는 그에게도 수술을 해준다.이제 게임은 반대 방향으로 진행된다. 지우가 사라지고, 세희 혹은 새희가 지우를 찾아다닌다. 아무리 찾아 다녀도 찾을 수 없자 세희 혹은 새희는 지우가 그 병원에서 그녀와 마찬가지로 성형수술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세희 혹은 새희는 지하철에서 우연히 마주친 선글라스를 쓰고 큰 마스크를 한 채 사진기를 든 남자를 찾아 강변까지 쫓아간다. 혹은 전에 함께 갔던 섬의 조각상들이 늘어서 있는 그 해변가를 찾아가 지우와 함께 앉았던 손가락 위에 앉는다. 항상 만나던 그 카페에 가서 무작정 기다리기도 한다. 거기 혼자 온 남자에게 시선을 돌리기도 한다. 그리고 그 남자에게 손 한번 잡아보아도 되느냐고 말한다. 어느 날 자기 집 초인종을 두번 잘못 누른 남자에게 집에 들어오라고 한 다음 커피를 대접하고 손을 잡아보고 그냥 가라고 말한다. 그 다음 언제나 가던 그 카페의 그 자리에 다른 남자가 앉아 있자 다른 자리에 앉아서 마냥 바라본다. 그러자 그 다른 남자가 그녀에게 곁에 앉아도적을 안고 다시 되돌아와서 그 장소에서 되풀이된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아홉개 혹은 열개의 신이 나온 다음 그 신을 계속 반복시키는 중이다. 그중에서도 카페는 마치 고정점처럼, 정박지처럼, 그들이 떠날 수 없는 장소인 것처럼, 돌아오고 또 돌아온다. 그때 이 카페는 감정의 감옥처럼 여겨진다. 여기서 이야기는 앞으로 나아가는데 공간들은 뒷걸음질쳐서 다시 되돌아와서 그 장소에서 반복한다. 그때 이 둘 사이를 매듭짓는 것은 시간 속의 기억과 그것 사이의 경험이다. 이 반복 안에 차이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이 되돌아오는 반복 안에서 처음에는 지우가, 그런 다음에는 세희 혹은 새희가 마주치는 것은 원래 그 안에 머물러 있던 극단적인 모습들의 일부일 뿐이다. 말하자면 비로소 그들은 자신들의 사랑의 실재와 도착적으로 만나는 중이다. 그 안에서 반복의 시간은 근거의 와해라는 내기를 통해서 분산되기 시작한다. 그때 이 분산은 마지막에 도착증과 강박증 그 사이 어딘가에 비스듬히 기대어 서게 된다. 지우는 사라지고, 그녀는 세희와 새희 그 사이 어딘가에 선다. 그때 이 반복에는 비극적이지만 어딘가 희극적인 측면이 있다. 다 알고 있는 새희, 그런 다음 이제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잃어버리는 세희. 다 갖고 있었던 지우, 그런 다음 이제 자기가 갖고 있었던 것을 잃어버리는 지우. 세 사람의 숨바꼭질. 말하자면 김기덕의 경기장 안으로의 초대.쉴새없는 대화, 사실은 자문자답이 시간의 흔적을 따라가면서 김기덕은 다시 자신의 영화 안의 인물들의 언어를 회복한다. 아니, 회복이라기보다는 말의 네트워크 안으로 들어간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김기덕은 이후 급속하게 자기 영화에서 언어를 잃어갔다. 이를테면 목소리를 잃어버린 한기. 그런 다음 은 거의 대사없이 진행되고 있으며, 의 마지막 3분의 1에 해당하는 아버지와 딸의 여행에서 둘은 거의 대화하지 않는다. 에서 집을 나온 아내와 소년은 단 한마디도 나누지 않는다. 의 할아버지와 소녀는 (들으려는 우리를 제쳐놓고) 그들끼리만 귓속말을신 역시 성형 수술을 한 후 여자 곁을 떠난다. 여자는 남자를 찾으러 이 남자 저 남자를 전전하지만, 결코 남자를 찾을 수는 없다. 그들은 마침내 시간의 미궁 속에 갇히고야 만다.얼굴, 그 힘센 기표의 세계로그런데 왜 성기가 아니고 얼굴이란 말인가. 에서처럼 '강간'이라는 야만의 결혼식을 올려서라도 가지고 싶어 했던 여성 성기를 포기하고, 감독은 에서 끊임없이 ‘지워진’ 얼굴의 되돌이표 속에서 새로운 서사를 이끌어 간다. 그러니까 지우는 세희와 즐겨 찾던 단골 카페에서 스스로를 ‘새희’라 소개한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 어느 날 그는 사랑해라고 반복해 쓰여 있는 그래서 뭔지 잘 모르겠는 편지를 받는다. 새로운 새희와 사랑에 빠지는 지우 앞에 새희는 사진으로 만든 가면을 쓰고 나타나 자신이 바로 그 세희였음을 고백하고, 지우는 그녀를 성형해준 외과 의사를 찾아가 자신 역시 성형 수술을 통해 새롭게 태어나게 해달라는 주문을 한다. 이 성형을 한번 ‘기억’의 문제로 바꿔보자. 뭐 생각나는 영화 없을까. 여자는 남자와 헤어진 상처가 너무 괴로워 라쿠나 클리닉에 가 남자와 연관된 기억을 모두 지운다. 새로 나타난 여자친구는 남자를 알아보지 못한다. 변심한 여자 친구에 충격을 먹은 남자, 그 이유를 알아봤더니 여자 친구가 기억을 지웠다는 것이다. 남자 역시 여자 친구와 관계된 기억을 똑같은 병원에 가서 지우기로 한다. 바로 의 줄거리다. 이밖에도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사랑에 관한 기억과 시간성의 문제는 허진호의 에서도 역시 탐구된 주제였다.그러나 기억의 미로가 아니라, 김기덕은 그러한 시간성의 문제를 철저히 ‘얼굴’이라는 기표에 천착함으로써 구체화, 물질화시킨다. 세희는 예전의 얼굴을 다시는 찾을 수 없다는 성형외과 의사 앞에서 ‘예쁘게’가 아니라 ‘다르게’ 해달라고 주문한다. 그녀는 지우에게 ‘맨날 똑같은 얼굴이라서 미안하다’고 한다. 기호학을 찾을 것도 없이 기표는 오직 차이에 의해서만 존재한다(고양이라는 기표가 고양이인 까닭은 그것이 강아지도 닭도 해도 달도 아와 소리라는 단순하고 구체적인 청각 이미지로 관객들에게 다가간다. 이때 시간이라는 기표는 마치 시계 초침처럼 찰칵대면서, 글자라는 기표가 시계라는 기호를 대치한다.정말 흥미로운 것은 그가 시간성에 대해 탐구하면서도, 정작 영화라는 매체가 본래적으로 가지고 있는 시간 이미지로서의 영화 만들기에는 거의, 아니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즉 대부분의 감독들이 시간을 탐구한다고 했을 때, 내용과 형식을 조화시키려 든다. 예를 들어 송일곤 감독은 영화의 시간성을 탐구하기 위해 에서 여자 주인공의 자살 사건을 중심으로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도록 재배열하고, 전혀 편집 없이 한 컷이 한 신이 되게 하는 극단적 롱테이크로 시간성을 테스트해봤다. 그러나 김기덕 감독에게 영화란 어디까지나 아주 구체적이고 강렬한 이미지로 분절되는 하나의 화시 즉 ‘그림시’이지, 편집이나 길게 찍기 등의 방법을 통해 시간을 필름 속에 각인하는 그런 오쏘독스한 정통 방식에는 얼씬도 하지 않는다.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결론적으로, 나는 가끔 짐승이었던, 악어였던 김기덕 그가 그립다. 카를로비바리영화제 사진 속에서 생전 처음 양복 입은 그를 볼 때처럼 가끔 요즘 그의 영화들이 매우 낯설 때가 있다. 이 걸작이라고 모든 평론가들이 입을 모을 때마다 한강에 다시 악어가 어슬렁거렸으면 싶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알겠다. 에 이르러 마침내 이들 야생동물들이 내뿜는 동물적 에너지로 충만했던 한 세계가 허심탄회하게 명멸하는 걸 목도하게 된다. 이 영화 속에서 틀림없이 당신은 전작들의 팔팔한 에너지와 보는 이를 압도하는 직설의 힘이 슬그머니 빠져버린 김기덕, 한결 서정적이고 부드러워진 김기덕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는 변화된 자기를 좀 알아달라고 땡깡, 하소연, 투덜, 불평, 불만, 협박, 애원 같은 모든 제스처를 취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사랑받기를, 관객들과 접속하기를, 그는 대한민국과 절연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랑받으려는 것이다.그러나 이 사람에게도 변하지 않는 것은 있다. 아마도 영원히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말한다.
    예체능| 2007.10.24| 9페이지| 2,000원| 조회(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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