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관련 조사 보고서*노인빈곤*1.현재실태통계청의 올 5월 고령층(55~79세)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 근속기간은 20년10개월(남자 23년3개월, 여자 18년8개월)이다. 퇴직 평균 연령은 53세(남자 55세, 여자 52세)이다. 평균 수명은 78세. 결국 20년간 일하고 퇴직후 25년간을 소득없이 살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의 23.8%만이 노후생활을 준비했다고 응답했다. 10명 중 8명이 아무런 대비를 하지 못한 것이다.또한 노인들이 빈곤에 빠져드는 가장 큰 원인은 고령화와 함께 찾아오는 ‘만성질환’ 때문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2005년)에 따르면 90% 이상의 노인이 1개 이상의 만성질환을 갖고 있었다. 3개 이상의 만성질환자도 55%나 됐다.그러나 지난해 노인복지 예산의 전체 규모는 5005억원. 정부 예산의 0.42%로, 유럽(15% 수준), 일본(3.7%), 대만(2.9%)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2.가장 큰 문제점이렇게 혼자살기 힘든 질병을 가지고 있거나 약한 노인들이 혼자 살고 있는 점이다. 독거노인은 1998년 49만4695명에서 2004년 73만5000명으로 48%나 증가했다. 이들 대부분은 빈곤층에 속해있다. 65세 이상 노인 438만명 중 기초생활보장 혜택을 받는 이들은 35만8000명, 이들 중 독거노인이 20만6000명이다. 특히 자식이 있지만 부양을 받지 못하고 있는 독거노인들은 기초생활 보장도 못 받고 있다.3.사례①이모(88) 할아버지가 사는 곳은 서울 상도동 철거민촌의 빈집이다. 한때 전셋집(3000만원)과 1000만원 이상의 여윳돈을 가지고 있는 그가 수돗물도 나오지 않아 빗물로 식수를 대신해야 하는 이곳에 오게 된 것은 4년 전 생긴 협심증 때문이다. 6번 입원하고 3번 수술하면서 돈은 모두 사라졌고 지금은 국가보훈처에서 받는 월 10만원이 유일한 수입이다.→질환에 따른 문제②김씨는 부엌도 없는 단칸방에 살면서 1주일에 6일 동안 오전 4시간씩 빌딩 청소부로 일한다. 월급은 20만원이다.하지만 김씨는 아들 한 명이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보장 대상자로 인정받지 못 했다. “아들한테 용돈 한번 받아 본 적 없고 같이 살아 본 적도 없는데…. 자식 때문에 정부 지원도 못 받게 됐어요..”→실생활을 고려하지 않은 법에 의한 피해* 아동, 청소년 빈곤*1.현재 실태빈곤가족아동과 관련된 통계를 보면 결식아동이 19만이고 다른 사회에서 찾아볼 수 없는 소년소녀가장세대가 7천여명, 2만여명의 아동이 270여개의 영?육아시설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기초생활보장수급자 가구의 아동이 16만명, 교육부 학비지원아동이 40만명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정부에서는 전체예산의 0.075%만인 840억원을 배당하고 있고 미취학아동만 어린이집 보육료 지원을 받고 있으며 취학아동에 대한 공식적인 지원체계가 결여되어 있고 학대아동 30만명을 위해 단지 17개의 아동학대예방센터가 있는 실정이다.2001년 12월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중 18세 미만자는 전국 332,628명으로 남자 168,460명, 여자 164,168명이다.2.문제점빈곤으로 인하여 아동은 신체적 건강, 인지능력, 학업성취와 심리사회적 문제 등 다양한 문제를 경험한다. 가족해체로 인하여 아동은 우울, 불안, 사회적 철회 등 심리사회적 문제를 갖게 되고 반사회적 행동이나 비행 등 행동장애를 일반가정의 아동보다 좀 더 나타내는 것으로 보고 되고 있다. 저소득실직가정의 경우 자녀의 문제행동으로는 자살충동(63.8%), 폭력사용(57.3%), 음주경험(50.8%), 음란만화 잡지구독(40.7%), 음란영화비디오 시청(39.2%), 흡연경험(33.7%), 절도(32.7%), 가출경험(15.6%), 이성과의 성적 접촉(12.6%), 약물남용(5.5%) 등으로 보고 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교육의 차이로 빈곤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수업료를 내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고교생이 지난 한 해만 1만8,317명에 달한 것으로 조사됐다. 빈곤아동의 왕따문제 또한 심각한 수준이다.3.사례1987년생인 K양은 초등학교 4년에 생모가 사망하고 부친과 생활하였는데 부친이 폐결핵과 과음으로 노동력을 상실하고 요양중에 있으면서도 소녀에게 심한 체벌을 하는 등 부적절한 훈육으로 인하여 초등학교때는 비교적 양호한 생활을 보였으나 중학교 이후 지각 및 준비물부족 등으로 벌을 받는 등 문제가 나타나다가 2학년 때 장기결석으로 자퇴하였다. K양은 자퇴후 부친의 체벌이 두려워 귀가하지 못하고 친구집, 오락실 등에서 잠을 자고 수차 남의 집에 들어가 물건을 훔치는 등 절도범행을 반복하였다. 비행의 원인이 부친의 체벌 등 보호력 부재에 있다고 보아 4호처분을 하여 부산부녀복지관에 위탁하여 보호하고 있다.→저소득자녀의 절도 행동*여성빈곤*1.현재실태우리 사회에서 여성은 여전히 빈곤계층의 대표적 집단을 형성하고 있고, 가난의 여성화 현상은 좀처럼 완화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여성 빈곤층의 심각한 현실은 한국의 성공적인 경제성장, 높아진 기술력 그리고 새 천년에 대한 높아진 기대감의 뒤안길에 놓여 있는 우리 사회의 모순을 직시하게 한다.2000년 통계에 따르자면 전체 빈곤인구 중 빈곤여성의 비중은 55%였으나, 빈곤가구 중 여성가구주 비율은 전체 가구 중 여성 여성가구주 비율인 18.5%의 2.5배인 45.8%였다.여성가구주 가구 중 빈곤가구 비율은 21.0%로 남성가구주 가구 중 빈곤가구 비율 7.0%에 비해 3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남성 가구주 가구의 경우 빈곤율이 97년 경제위기 이전 수준으로 거의 회복되었으나, 여성가구주 가구의 경우에는 그 비율이 경제위기 이전의 2/3 수준으로 겨우 회복된 것으로 드러나 여성가구주 가구의 빈곤이 고착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2.문제점여성이 빈곤정책의 최대 수혜자가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은 성(sex)에 따라 구조적으로 분리되어 있는 노동시장의 문제가 가장 크다. 여성이 빈곤정책의 수혜대상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여성이 일을 통해 적정한 소득을 벌 수 있도록 적극적인 노동시장정책을 시행하는 것이 가장 핵심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빈곤여성의 일자리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고민하지는 않고 마치 이들이 수혜자로 계속 머물고 싶어서 수혜비율이 늘어나는 것인 냥 생각하는 것은 빈곤여성의 현실을 몰라도 너무나 모른 처사이다.또한 여성빈곤화가 주로 노령 계층에 집중되어 있음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빈곤 여성가구주 가구의 절반 이상이 65세 이상의 여성이다. 노년층의 소득보장을 담당하는 국민연금제도는 소득 활동자 중심이다. 따라서 여성의 경우 경제활동 참가율이 낮고, 설혹 참가하더라도 그 기간이 짧고 고용 형태가 불안정하고 저임인 경우가 대부분이다.3.통계자료*장애인 빈곤*1.현재 실태조사결과에 따르면 장애인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157만원으로 2005년 2/4분기 도시근로자 가구소득 302만원의 52%에 불과했다. 195만에 달하는 장애인 가구 중 국민기초생활보호 대상자 가구는 26만 가구로 13%를 차지해 비장애인 가구 6.8%에 비해 2배 정도 높았다.장애로 인한 추가 비용은 월 15만5천원으로 2000년의 15만8천원에 비해 오히려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15세 이상 장애인 경제활동 참가자는 78만명으로 경제활동참가율은 38%로 나타났다. 실업자 비율은 미취업 원인을 고려할 때 23.1%인 것으로 집계됐다.취업분야는 단순노무직 28%, 농어업 19%, 기능원 및 관련 기능 근로자 12% 등 주로 단수업무에 편중돼 있었다. 취업 장애인의 월평균 소득은 115만원으로 상용종업원 월평균 임금 258만원의 45%에 불과했다.2.문제점장애인들은 사회에서 여러 가지로 차별을 받고 있지만 빈곤에 가장 큰 문제가 되는 차별은 노동시장으로부터의 차별이다. 먼저, 노동시장에 진입하기 전의 차별이다. 장애인중 60%이상이 초등학력 이하로 노동시장에 고용되는 것이 힘들다.고용된다고 하더라도 임금상의 차별을 받고 있다. 임금상의 차별(노동력 및 노동평가의 차별)은 특정 노동력의 가치 평가 기준이 객관적이고 과학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장애인노동자의 노동력은 다른 노동력과 동일한 가치생산물을 자본에게 가져다 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특정노동력은 종종 낮게 평가된다. 이런 차별이 가능한 것은 노동시장 진입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고용된 장애인들은 고용상의 차별을 감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3.사례지난 2월 18일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자인 한 장애인이 강서구청 현관 셔터 문에 스스로 목을 매 숨진 사건이 발생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고인은 구청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18일에만 3번씩이나 자살 기도를 했다고 한다. 이 사건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강서구청에는 어렵게 살아가는 장애인 수급자를 외면하고 결국 죽음으로 몰아갔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하지만 구청은 고인이 상습적으로 소란을 피우는 등 문제가 많은 사람이었고 자기들은 할만큼 했다는 식으로 변명했다.
일본문화와 인형일본은 인형왕국이라 불릴 만큼 많은 종류의 인형이 있으며 또한 그 인형들은 다양한 용도와 목적으로 사람들의 생활과 깊은 관련을 갖고 있다.일본에서는 먼 옛날부터 이어내려 온 히나마쓰리(ひな祭り) 등의 풍습이 독자적인 인형문화를 발전시켰다.또한 이는 인형을 단순히 완구라는 영역에 국한시키지 않고, 장식하여 감상하는 미술품으로까지 그 가치를 격상시켜 왔으며 이에 더해 민중에게 친숙한 노(能)나 가부키(歌舞伎)등의 테마를 가미시켜 수 없이 많은 다양성을 창출해 왔다.오늘날도 장인의 전통적인 공법에 의한 일본 인형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으며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있다. 또 한편, 많은 창작인형 작가도 등장하여 인형은 미술계에도 많이 진출하고 있다.일본인형의 특색으로 고훈(굴껍질의 분말. 이를 아교로 녹여 만들어진 액을 인형에 두텁게 발라 세부를 창칼로 조각) 세공에 의한 조각적이며 차분한 표정의 아름다움과 고금의 의상풍속을 풍부하게 표현한 색채미 등을 들 수 있다.지금부터는 일본의 전통문화 속에 있는 인형을 알아보고자 한다.1. 히나마쯔리1)히나마쯔리(ひなまつり)의 유래와 의미히나마쯔리는 3월3일에 여자아이의 성장과 행복을 기원하는 행사로, 모모노셋쿠(桃の節句)라고도 한다. 그 기원은 고대 중국에서 3월에 막 태어난 여자아이가 3일 후에 죽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술을 준비하고 강으로 떠내려 보냈다는 고사에서 시작되었다. 이것이 3월3일 물의 축제이고, 이 날에는 사람들이 물가로 나와 몸에 붙은 병이나 재앙을 없애는 행사를 가졌다.이러한 행사가 일본에 전해져 고대 일본에서는 신상에 일어날 수 있는 불결한 일이나 재난등을 인형에 옮겨, 흐르는 강물에 떠내려 보내면서 액막이를 했는데 이를 히나나가시(ひな流し)라고 하였고 , 이러한 풍습은 일본의 각지에 전해져 그 모습이 남아 있는데, 아와시마 신사에서는 3월3일 전국에서 봉납된 인형을 배에 실어 바다로 떠내려 보낸다고 한다.이것이 일본 여자 아이들의 인형놀이와 결부되었고 ,오늘날과 같이 히나인형을 장식하고 여자아이의 무병과 행복을 기원하는 큰 축제로서 확립하게 된 것은 에도시대(江戶時代1603-1867)이후의 일이다.이 행사는 궁정의 여성들 사이에서 성대하게 행해졌다고 한다. 이 행사가 궁정에서 뿐만 아니라 일반서민 사이에 보급되면서 현대와 같은 히나마쯔리의 형태가 이루어졌다. 그렇지만 일반서민이 히나인형을 살 수 있게 된 것은 明治시대 말경부터이다.2)히나인형(ひな人形)의 기원과 의미헤이안 시대에는 귀족여성 사이에서 종이 인형에 옷을 입혀서 를 즐기는 풍습이 있었다. 이것이 에도 시대에 그 형태가 정리, 정착되어 히나마쯔리 때에 히나인형을 장식하게 되었다.히나마쯔리에 히나인형을 장식하는 것은 여자아이가 예쁘게 성장하고 커서 좋은 인연을 만나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바람과 인형에 좋지 않은 재난이나 재앙 등을 옮겨 그것들을 피할 수 있도록 하는데 그 의미가 있다. 그래서 3월3일이 지나면 바로 치우는 것이 관습으로 되어 있다.여자아이가 태어나서 처음 맞는 3월3일에 장식해 두었던 인형은 소중히 보관해 두었다가, 매년 히나마쯔리 에 장식하면서 여자아이가 매년 건강하고 튼튼하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축하한다.3)히나인형 장식하기히나당상 은 1단, 2단, 3단, 5단, 7단까지 다양하게 구성할 수 있다.제대로 인형을 구성한다면 모두 15개가 된다. 하지만, 집안이 좁은 관계로 공간에 맞게 1단만 장식하는 경우도 있다.최고 윗 단 에는 한 쌍의 남녀 히나인형을 놓고 그 양쪽에 등롱을 놓고, 그 뒤에는 병풍을 친다. 가장 윗단의 남자 히나인형을 오다이리사마(お內裏さま), 여자 히나인형을 오히메사마(お姬さま)라고 한다.가격은 천차 만별인데, 천만원대에서 십만원대를 위아래로 왔다갔다 한다. 비싼 경우는 7개(최대층갯수) 히나단 히나인형의 기모노를 마치 정말 사람처럼, 그대로 입혀놓은 경우라고 할 수 있다.4) 히나마쯔리 지내기히나인형은 히나마쯔리 10-20일정도 전의 *大安의 날에 장식하는 것이 적당하다.그리고 3월3일 당일이나 그 전날 저녁에 아기의 할아버지, 할머니, 친척, 친구들을 초대하여 파티를 한다. 이 때 먹는 음식에는 생선초밥과 대합장국, 시로자케(白酒), 히시아라레 등이 있다.?왜 남자인형은 오른쪽이고 여자인형은 왼쪽일까?사실은 일본의 관동지방과 관서지방에서는 놓이는 위치가 서로 반대이다. 남자인형이 바라보는 쪽에서 왼쪽에 놓이는 형태가 관동지망의 형태이다. 이것은 '오른쪽이 상위'라는 생각에 따른 것이다.한국말도 마찬가지이지만, 제일 뛰어난 부하를 '오른팔'이라 하고, '左遷'(좌천: 지위가 낮아짐)이라는 단어에서도 오른쪽의 의미를 알 수 있다.한편 관서지방에서는 여자인형이 오른쪽에있는데, 여성의 힘이 세고 남성과 대등하다 라는 의식에서부터 나온 것이라는 설이 있다.현대에 와서는 히나인형의 대부분이 관동에서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에 관동지방의 형식이 전국적으로 퍼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따라서 남녀인형의 위치를 어느쪽에 두든 상관이 없다고 한다.2.분라쿠1)분라쿠일본의 전통 인형극으로 거의 실물 크기의 인형들이 작은 사미센[三味線] 반주로 영창되는 사설(辭說), 즉 조루리[淨瑠璃])에 맞추어 연기한다. 일본에서 인형을 놀리는 기술을 처음 선보인 것은 11세기경 집시처럼 떠돌아다니는 구구쓰마와시[傀儡回師 : 인형을 놀리는 사람]였는데, 이들은 중앙 아시아로 부터 기술을 전수해온 것으로 짐작된다. 17세기말까지만 해도 손발이 없는 원시적 형태의 인형이 이용되었다. 인형을 놀리는 사람들은 18세기 이전에는 무대 뒤에 숨어 있었으나 그 뒤로는 모습을 드러낸 채 인형을 움직였다.오늘날의 인형은 키가 보통 0.3~1.2m로 몸체는 없어도 나무로 만든 머리와 손발이 달렸으며, 정교한 의상도 갖추었다. 인형을 다루는 데는 모두 3명이 필요하다. 18세기 의상을 입은 우두머리 조작자는 머리와 오른손을 놀리고 눈·눈썹·입술·손가락을 움직인다. 관객의 눈에 띄지 않게 검은 옷과 두건을 쓴 2명의 조수는 왼손과 발을 움직인다. 인형을 다루는 기술은 인형의 감정연기와 지극히 사실적인 몸짓과 움직임이 정확하게 동시에 이루어지도록 하는 오랜 연습이 필요하다.2)분라쿠 명칭의 유래분라쿠 라는 명칭은 우에무라 분라쿠켄[植村文樂軒]의 이름을 딴 것으로, 그는 18세기에 지카마쓰 몬자에몬[近松門左衛門] 원작의 극으로 최고 경지에 이른 인형극의 대가였다. 그뒤 분라쿠는 뛰어난 조루리 작가가 배출되지 않아 쇠퇴했다. 1837년 설립된 유일한 전통 분라쿠 극단인 아사히자[朝日座 : 원래 이름은 분라쿠자(文樂座)였음]는 오늘날까지 오사카의 명물로 유명하며 정기적으로 도쿄 공연도 갖는다.3)분라쿠의 역사人形遣い(닌쿄오즈카이-인형을 조종해서 다루는것)=傀儡回し(쿠구쯔마와시)는 헤이안 시대 부터 大道芸人(길거리에서 공연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16세기에 전해진 샤미센(三味線)의 발달이 당시 인기의 淨瑠璃姬(죠루리히메)라는 이야기야 맛물려 古淨瑠璃가 탄생하게 되고 음악과 인형의 결합이 각종의 人形淨瑠璃를 발생하게 했다오사카에서 人形淨瑠璃의 꽃을 피게 한 것은 竹本義太夫(타케모토기다유우)이다. 貞享元(1684)년「竹本座」를 만들고 古淨瑠璃에서 독립해 샤미센의 가락에 붙여 정숙하고 단아한 곡조로 이야기하는 義太夫節은 순식간에 인기를 불러 일으키고 작자 近松門左衛門 作의「曾根崎心中」의 대성공으로 人形淨瑠璃가 본격적인 오사카의 명분을 확립했다竹本座(타케모토자)는 近松와 座元兼 作者인 竹田出雲의 힘으로 18세기전반에 황금기를 맞이했다 이 시대의 淨瑠璃의 걸작들은 카부키 에도 흡수되어 지금도 공연되고 있다竹本座가 쇠퇴한 후,19세기 초에 植村文樂軒(우에무라분라쿠겐)이 오사카에서 만든 흥행 가설극장이「文樂座(분라쿠자)」로 막부 말기에서 명치시대 전기에 걸쳐 대표적인 극장이 되었다. 이로 공연된 人形淨瑠璃도 「文樂」라 불리게 되었다. 지금에서는 전국 각지에 전해지는 옛날 그대로 변함없는 人形淨瑠璃가 「○○文樂」라고 이름 붙여질 정도로 일반명사로서 통용되고 있다.文樂座는 명치42(1909)년에 松竹가 계승하게 되었다. 다이쇼15년(1926)년의 文樂座소실, 전쟁재해,文樂의 분열과 재합류 등의 커다란 사건들을 겪으면서 전통을 지켜왔다.?일본 영화속에서 발견한 분라쿠돌스 (ドル-ズ: Dolls, 2002)감독 : 기타노 다케시-영화 해설두 연인의 비극적 행로를 축으로 세 연인들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초현실적 분위기의 작품.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10번째 영화로, 제59회 베니스영화제 경쟁 진출, 제7회 부산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되었다. 감독 스스로 자신의 최초 연애영화라고 천명했던 이 영화는 사랑을 테마로, 일본 전통 인형극인 분라쿠에 등장하는 인형 이야기를 영상화하여 풀어간다.3.단고노셋쿠1)단고노셋쿠단고의 단(端)은 최초라는 의미가 있으며, 고(午)는 말을 의미한다. 즉 단고노셋쿠라고 하는 것은 5월 첫 번째 말(午)의 날을 의미하는 것으로 예전에는 5월 5일을 단고노셋쿠라 지칭하지 않았다. 중국 한(漢) 시대에 와서 고(午)의 발음이 고(五)와 같다고 해서 5일이 된 것이다. 또 다른 명칭으로 창포의 절구(菖蒲の節句)라고도 불리운다. 창포는 아주 신비한 힘을 가진 약초로 알려져 중국에서는 이 날 창포주를 마셨고, 그 풍습이 일본에 전해져 재앙을 물리치는 약초로 널리 퍼지게 된 것이다. 일본에서는 창포 잎을 베개 밑에 깔거나, 창포 잎을 띄운 창포 탕에 목욕을 하는 등의 습관이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