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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북한 경제 발전 과정
    남·북한의 역사와 현황 및 발전과정Ⅰ. 남·북한 분단 이전의 상황조선은 1910년 8월부터 1945년 8월까지 일본의 단독지배 아래 놓였으며, 1945년 8월에 제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전함에 따라 해양세력을 대표한 미국과 대륙세력을 대표한 소련에 의해 분할 점령됐다. 그리고 1948년 8월에 미국의 점령지역에서 대한민국(남한)이 성립됐고 소련의 점령지역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이 성립됐다.남한과 북한은 일본식민지통치가 남긴 공동의 유산 위에서 출발했다. 남농북공의 정책을 추진한 일본식민통치의 결과, 남한에서는 농업이 산업에서 주류를 형성했고 쌀과 면화를 비롯한 농산물들을 주로 산출했으며 경공업이 성장했음에 반해, 북한에서는 남한에 비해 풍부한 지하자원들을 바탕으로 중공업이 성장했다. 이 일본식민통치의 유산에, 남한에서는 미국의 원조가 그리고 북한에서는 소련의 원조가 추가됐다. 남한과 북한의 개별적?분리적 국가건설은 그러한 토대 위에서 출발했다. 1950년 6월에 시작돼 1953년 7월에 멈춘 이른바 코리아의 전쟁은 남과 북의 성취를 오유로 돌려놓았다. 그러나 남과 북은 각각 새로운 재생의 길을 걸어 오늘날에 이르렀다.Ⅱ. 남·북한의 현 실태(1) 남한우선, 산업의 측면에서 남한은 농경국가에서 완전히 벗어나 2008년 현재 농가인구는 전국인구의 6.4%에 지나지 않는다. 대한민국 건국 직후인 1949년 현재 농가인구가 전국인구의 71.4%였음을 상기할 때, 이 수치는 농경국가로 출발한 남한이 농경국가에서 완전히 벗어났음을 말해준다.그 대신에 남한은 상업국가로, 동시에 무역국가로 자리를 잡았다. 2008년, 남한의 국내총생산에서 수출은 63.5%를 차지했으며, 세계 무역에서 남한은 수출과 수입에서 각각 2.7%와 2%를 차지했다. 남한은 오늘날 ‘선박 및 IT강국’으로 불린다. 서울의 한반도선진화재단이 2009년 8월 14일에 발표한 ‘대한민국의 종합국력 분석결과’에 따르면, 남한의 경제력은 ‘세계의 20대 주요 선진국들 및 산업화 국가들(G20)' 가운데 11위에 이르렀다. 산업만을 놓고 볼 때, 국가의 성격 자체가 바뀐 것이다.둘째, 남한은 과학과 기술에서 많이 발전시켰다. 앞의 ‘분석결과’에 따르면, 과학과 기술에서 남한은 세계에서 7위를 차지하고 있다.셋째, 국방력을 비중있게 키웠다. ‘분석결과’에 따르면, 남한은 국방력에서 8위에 이르렀다.넷째, 남한은 더 이상 국제 관계에서 완전히 소외된 채 주변열강의 처분에 자신의 운명을 맡긴 무기력한 나라가 아니라 활발한 해외진출을 통해 여러 나라들과 각종 협약을 맺은 나라이다. ‘분석결과’에 따르면, 남한은 외교 활동에서 7위를 차지한다.모든 것을 종합해 봤을 때, 남한은 11위인 인도와 12위인 러시아에 다음가는 13위의 나라이다. 국민성에 있어서도 로웰의 『조선』이후 여러 서양인들의 저서들에서 되풀이 되듯이, 후기 조선시대의 ‘안으로 움츠러드는 성격’은 ‘밖으로 진출하려는 성격’으로 바뀌었다. 같은 맥락에서, ‘바다로 나아가기를 꺼려하는 성격’에서 벗어나 ‘원양으로까지 진출하는 성격’으로 바뀌었다. 오늘날 남한인들은 세계의 곳곳에서 활기차게 움직이고 있으며 한걸음 더 나아가 우주로의 진출을 시도하고 있다.(2) 북한첫째, 2010년 북한경제는 마이너스 성장을 달성했다. 대부분의 북한경제의 거시지표는 초라하기 작이 없고, 투자부족과 외부자본 유입의 감소로 경제전반에서 생산이 위축되고 있으며 자본의 감가사각도 가속화되고 있다. 20~30%의 낮은 공장 가동률로 경제 성장 원동력을 상실하고 있다.둘째, 비효율적인 주체농법의 고수와 국영농장의 운영으로 식량생산이 증가하지를 못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의 곡물생산은 매년 100만 톤 이상의 식량이 부족한 상태다. 그리고 2011년의 경우 기상조건이 중요 변수지만 만성적인 비료와 영농물자의 부족으로 식량난은 계속 심화될 것을 예상된다.셋째, 북한의 산업 전반에 걸친 생산부진으로 인한 공급부족으로 높은 인플레이션 압력을 받고 있다. 다수의 주민들은 개인이 소장하고 있던 구화폐의 무력화로 빈민층으로 몰락하였고, 생필품의 명목 가격은 급격하게 치솟았다.뿐만 아니라 이러한 인플레이션에 정부의 재정적자가 결합하여 최악의 상태로 나아가고 있다. 북한의 재정은 1990년대 중반부터 급격하게 감소하여 심각한 유동성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2000년대에 들어서는 그 규모가 1990년대 초반의 약 25% 정도로 위축되었는데, 이러한 국가 재정의 부족은 식량 및 공공재 공급의 감소를 가져오고, 성장을 위한 자본축적을 불가능하게 하여 궁극적으로 사회 전반에 걸쳐 자원부족 현상을 초래하고 있다.넷째, 북한의 핵개발로 인해 2000년 이후로 외국으로부터의 지원이 대폭 감소한데 이어 천안함 피격 사건과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인해 한국의 대북지원 역시 대폭 감소함으로써 북한의 경제난은 더욱 심화되었다.모든 것을 통합해 봤을 때, 최근의 화폐개혁을 포함한 여러 경제정책의 실패와 무기력성으로 김정일 정권의 권위는 급속히 추락하고 있다. 북한정권은 물질적 자극보다 정치·도덕적 자극이 중요하다는 북한식 사회주의 경제관리 사상을 독려하고 있지만, 그 실효성을 기대하는 북한주민들은 거의 없는 상태다. 앞으로 북한경제는 주민들이 생계를 유지하도록 만들어주는 유일한 장소인 장마당의 시장경제와 계획경제가 두 축으로 분리되어 공존하면서 작동할 것이며 국가 영향력은 갈수록 감소하며 퇴화될 것이다.Ⅲ. 남한의 흥융·북한의 패망의 배경과 원인(1) 남한1) 국가의 산업화상공업은 후기 조선부터 서서히 성장하기 시작했으며 특히 개강 이후 서양열강과의 교류가 확대되면서 상공업의 성장속도는 그 이전 시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빨라졌고 이러한 성장의 흐름은 일제의 조선식민지배 아래서도 지속됐다.대한민국이 건국된 이후, 역대 정부들은 모두 상공업의 진흥을 통한 경제성장을 추구했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대한민국의 경제성장의 원동력을 농업에서 찾지 않고 상공업에서 찾으면서, 1950년 봄에 토지개혁을 실시해 토지자본이 산업자본으로 전환되고 대지주들이 산업자본가들로 전환될 수 있게 만들었다. 이로써 남한에서 1950년대에 추진된 산업화의 물적 기반이 마련됐다.남한에서의 탈농업화 및 상공업화는 1960년대 이후 더욱 빨라지게 되었는데, 1960년 4월 하순의 ‘시민혁명’ 이후, 특히 1961년 5월 16일의 ‘군사정변’ 이후, 남한의 역대 정부들은 수출입국의 구호 아래 수출품목의 확대와 증산에 역점을 둔 관주도형 경제개발정택을 일관되게 추진했다. 그 흐름 안에서 1970년대 중반 이후 중화학공업이 육성되면서 산업과 수출품목의 성격 자체를 선진화시켰다. 그 정책은 자연히 과학과 기술의 진흥과 발전을 동반했다.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은 국가발전을 선도하는 중요하면서도 필수불가결의 인재들로 존중을 받게 됐다. 동시에 그 정책은 기업의 성장과 발전을 뒷받침했다. 이 과정에서 상업에 종사해 돈을 버는 것이 수치스러운 일로 여겨지지 않고 오히려 한 인간의 중요한 성취로 받아들여지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남한에 기업가정신 그리고 더 나아가 자본주의정신이 광범위하게 확산되었다.2) 남한의 국제화해외지향적인 정책은 남한의 해외진출 및 국제교류를 넓혔으며, 국제사회에 깊이 개입되고 국제사회에 의해 깊이 ‘침투된’ 남한을 개방사회로 바꾸어놓았다. 1960년대에 이뤄진 일본과의 국교수립 및 베트남 진출, 1970년대에 이뤄진 중동 진출, 그리고 1980년대 후반과 1990년 초기 사이에 이뤄진 북방권 진출은 그러한 전환에서 촉매제의 역할을 수행했다.3) 사회계급의 변화남한이 이처럼 상업국가?무역국가로 성장발전하면서 농업은 과거처럼 주된 산업의 지위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었다. 농업이 국민 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950년대에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크게 줄어들었다. 1953년 현재 47.3%였던 것이 2008년에 약 2.5%로 격감한 것이다. 농업인구가 전체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 역시, 1950년대에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크게 줄어들었다. 자연히 과거의 지주계급은 힘이 크게 줄어드는 가운데 사실상 와해됐고 소작인계급 역시 소멸됐다. 남한이 농업국가로부터 상업국가?무역국가로 확실하게 바뀜에 따라 지주와 소작인 계급 및 그들 사이의 봉건관계가 소멸됨으로써, 남한에는 근대국가가 성립될 수 있었고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의 토대가 마련될 수 있었다.4) 남한의 교육열모든 과정에서 한국인 특유의 교육열에 바탕을 둔 우수한 인재들의 성취욕구가 크게 작용했다.5) 정치적 측면정경유착은 정치과정의 정상성을 왜곡시켰고 건강성을 훼손시켰으며, 공직세계는 흔히 부정부패로 표현되는 비리에 부분적으로 오염됐고, 지역 사이에 벌어진 발전격차와 계층 사이에 벌어진 소득격차는 국민통합을 가로막았다. 국가안보와 통치효율의 명분 아래 민주절차가 경시되고 인권이 억압되기도 했다.그러나 남한은 이러한 문제점들 속에서 자기성찰을 거듭하는 가운데 개혁을 꾸준히 추진해 근대국가로 확실하게 자리를 잡았으며 선진국의 반열에 들어서게 되었다. 남한의 한인들은 상대적 의미에서 ‘좋은 정부’ 또는 ‘현명한 정부’를 만나지 아니한 경우에도 특유의 창의력과 추진력을 발휘하여 막스 베버가 근대국가의 특성으로 간주한 ‘법적?합리적 지배’를, 비록 부분적으로는 미흡한 점들이 남아 있다고는 해도, 이루어냈다.
    사회과학| 2011.11.09| 7페이지| 1,000원| 조회(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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