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감상문 안수길 北間島안수길의 장편소설인 북간도는 현재 압록강 이북의 조선족이 거주하고 있는 간도지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최초 북간도 이주자인 ‘이한복’이란 인물을 시작으로 4대에 걸쳐서 조선 말기부터 해방 전까지의 우리나라 정세와 북간도 지역의 이주민들의 생활을 상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한복’이란 한 인물의 가족사를 통해서 당시의 간도로 이주한 조선 농민이 겪은 온갖 수난과 그곳에서 꿋꿋이 역경을 이겨내는 우리 민족의 의지를 볼 수 있었다.이한복은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할아버지를 존경하였고 할아버지를 통해서 북간도는 청국의 것이 아닌 우리의 땅이라고 알고 있었다. 아버지 이장손이 죽고 이한복이 가장이 되었을 때 그는 농사에 전념을 하게 되지만 계속되는 흉년과 경복궁 중건으로 인해 날로 불어만 가는 조세를 견딜 수 없어 압록강을 건너 북간도 지역의 기름진 땅에 몰래 농사를 짓게되고 이로 인해 관가에 붙들려가게 된다. 그러나 나라의 육진정책으로 인해 강제 이주된 농민들의 처참한 현실을 인정안 부사 이정래는 백두산정계비를 근거로 해서 북간도 지역 농사를 허락한다. 이때부터 북간도 지역으로 많은 농민들이 이주하기 시작했고 이한복의 가족도 북간도 비봉촌으로 이주한다.이때부터 북간도 지역에 우리 민족이 살기 시작할 때이다. 그러나 이주한 농민들과 청국 사람들과의 반목으로 갈등이 점차 심해진다. 3대의 창윤이는 15살 때 청국 사람의 감자를 훔치다 걸려들어 청국의 복장과 변발을 하게 되는 치욕을 겪게 되어 청에 대한 반감을 짙게 갖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지주 동복산의 송덕비를 제막하는 날 비각을 불태우고 용정촌으로 가서 사포대에 지원하게 되는데 후에 비봉촌에 돌아와 외삼촌 정세룡을 대장으로 세워 사포대를 조직한다.한편, 일본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승전하여 한반도에 영향력을 확장하기 시작했고, 전략상 중요한 남만주 지역의 철도 부설권 획득과 북간도 지역을 청에게 넘기는 조건으로 간도조약을 체결(1909)함으로써 간도지역의 농민들은 청국의 이민자가 되었다. 한일 합방(1910) 이후 비봉촌 사람들이 대거 노령으로 떠나고 이창윤도 대교동으로 옮겨 일부 농지와 기와 제작으로 생계를 잇는다.1917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한반도와 북간도 지역에서는 3.1 운동을 포함해 항일 운동과 의병들의 전투가 이어졌다. 4대의 이정수는 자신에게 항일 의식을 길러주었던 주인태와 같이 독립선언서를 인쇄하여 만세를 부르짖게 되고 이에 3.1운동에 가담했던 수많은 조선인들이 사살되고 합동 매장된다. 일제의 탄압으로 독립단체의 활동이 삼림지대의 무장투쟁으로 확산되고 조선은행에서 15만원을 탈취하여 총기를 구입하려 했던 윤준희는 정보누설로 체포된다. 이정수는 독립운동에 가담하고 전투에도 참전하지만 독립군 소탕령에 의해 정수는 자수를 하게 되고 출옥 후에 영애와 결혼을 하게 되지만 다시 청림교 사건으로 인해 6년형을 받고 복역을 하다가 해방을 맞는다.북간도 소설을 읽고 문화지리 수업에서 배운 이민의 요건과 연관시켜서 생각해 보았다. 우리나라 농민들이 북간도로 이주를 하게 되고 또 그곳에서도 다른 지역으로 이주를 계속하는 것을 보면 이민을 갈 수 밖에 없는 Pull effect와 Push effect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북간도로 이주하는 가장 큰 Pull effect는 간도의 비옥한 토양이다. 농업을 주 생업으로 하고 있는 농민들이기 때문에 비옥한 농토에 대한 갈망은 누구보다도 컸을 것이다.‘.....쟁기나 보습, 괭이로 파 뒤집으면 시커먼 흙이 농부의 목구멍에 침이 꿀꺽하고 삼켜지게 했다. 씨를 뿌리기만 하면 곡초가 저절로 쑥쑥 소리라도 들릴 듯이 자라 올라갔다. 거름이 필요 있을 까닭이 없었다. 한두 번 기음만 매어주면 다듬이 방망이만큼 탐스러운 조이삭이 머리를 수그렸다. 옥수수 한 자루가 왜무우같이 컸다......’ - 본문에서그리고 북간도는 강압적으로 조세를 거둬들이지 않았다는 것도 그 요인중에 하나이다. 위도 상으로 북쪽에 위치하기 때문에 논농사는 지을 수 없고 밭농사로 유지하고 있는데 소설 속에서 나온 작물은 콩, 조, 수수, 감자, 팥이 전부이다. 기후도 냉랭하고 토지도 척박하고 좁은 곳에서 생산량이 적을 수밖에 없는데 밭작물로 생계를 잇고 또 높은 조세까지 농민이 부담하는 것은 고역이었을 것이다. 새로운 땅에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조건은 농민들을 끌어들이는 충분한 요인이다. 반면에 압록강 이남 지역의 높은 세금은 Push effect로 작용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Pull effect는 새로운 땅을 향한 막연한 희망이었다. 막연하지는 않더라도 위에 인용된 글에서 보는 것과 같이 과장된 기대심리로 인한 안락한 삶에의 희망이 바로 그들을 북간도 지역으로 끌어들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