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ort(문명의 미래와 생태학적 윤리)과목명: 현대사회와 인간◈ 21세기의 문명사적 의미와 과제 ◈1. 21세기(미래)의 의미21세기란 시대적으로 본다면, 새로운 백년의 시작일 뿐 아니라 새로운 천년의 시작이다. 그러나 세기란 역사적 편의에 따른 인위적 구분일 뿐, 그 자체로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21세기가 특별히 중요한 이유는 문명사적으로 하나의 전기가 될 것이라는 데 있다.과거에는 농경사회, 산업사회 등 한 시대를 특징짓는 이름들이 그 시대가 지나간 뒤에 명명되었으나, 현대인들은 벌써 미래를 정보사회라고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고 있다. 다음 세기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것은 바로 변동의 속도와 폭, 인간생활에 미칠 영향, 그리고 높은 의식 정도에 따른 것이다.사회변동은 테크놀로지 발달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기원전 1세기 농경시대의 시작이 인류에게 안정된 공동체적 사회를 형성할 수 있게 해 주었다면, 18세기 이후 기계문명의 발달은 인류에게 산업화에 따른 새로운 형태의 사회를 가져다주었다. 19세기 후반 전기 및 항공산업의 발달은 초문화(super-culture)의 등장을 예고하여 주었다.21세기에 인류의 생태학적 활동공간은 훨씬 더 확장될 것이며, 인류는 새로운 문명사회로 진입하게 될 것이다. 21세기에 인간은 자연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수만년 된 과제를 달성할 수 있게 될 것이다. 20세기 이전의 인류문명이 자연 의존적이었다면, 21세기 이후는 자연극복의 문명이 될 것이다. 원료 또는 에너지 등의 물질적 중요성이 퇴색되는 대신, 지식 또는 정보와 같은 정신적 요소가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다.새로운 문명의 시작이란 단순한 생산양식의 변화나 정치체제의 변화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과의 관계나 분배방식은 물론, 인간의 의식이나 가치관, 성원들 간의 상호작용 양식, 삶의 형태나 목적 등 생활구조 전체가 바뀌는 새로운 사회적 패러다임의 등장을 의미하는 것이다. 21세기는 질적으로 과거와 전혀 다른 새로운 문명의 시작이 의 힘을 바탕으로, 21세기에는 식량, 주거, 연료, 의료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물질적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게 될 것이다. 인류문명이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궁핍에서 벗어나 풍요의 시대를 맞이하게 되는 셈이다. 따라서 사회적 관심의 초점은 물자의 생산, 분배로부터 보다 풍요로운 생활환경, 삶의 보람 등으로 옮겨질 것이다.2) 생활수준의 향상 및 사회환경의 변화는 자의식의 변화, 일과 여가에 대한 태도 변화, 문화향수에 대한 욕구 등 의식구조에도 중요한 변화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생활정보망의 확충 및 자동화로 가사노동은 크게 줄어들 것이며, 미래사회 가치관의 가장 큰 특징은 인권 또는 인간성 존중이 될 것이다.3) 21세기에는 자율성과 다양성의 원리가 더욱 강조될 것이며, 다원주의적 자세가 불가피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미래사회의 조직은 개인의 자율성에 바탕을 두게 될 것이며, 생산위주의 라인조직에서 개발위주의 매트릭스 조직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국가의 기능 및 중간 관리계층인 관료제의 필요성이 줄어들 것이며, 대신 공간적 한계를 넘어 공통의 기능을 중심으로 정보망을 형성하는 기능적 조직이 발달하게 될 것이다.4) 사회성원들은 정치인들에게 더 이상 물자의 고른 분배를 요구하지 않게 될 것이다. 따라서 정치이데올로기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이며, 정치제도는 본질적인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21세기에는 압박과 피압박의 정치구조가 자율체제로 대체될 것이며, 전 인류가 독재자의 학정에서 해방될 것이다.5) 국가 중심적이던 삶의 공간구조도 바뀌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국가는 물자의 생산 및 분배를 위한 협동 뿐 아니라, 포괄적 생활의 기본단위였다. 그러나 삶의 조건이 달라지고, 생산 및 분배가 국가 이상의 차원에서 이루어지게 되면, 국가의 지위는 하나의 사회조직으로 상대화될 것이다. 사람들은 관심영역에 따라 함께 일할 수 있는 초지리적 단위에 오히려 일차적 귀속감을 갖게 될 것이며, 동호인 집단이 보다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다.보전시켜 왔다.그러나 인간이 이룩한 과학 문명의 급속한 발전은 오랜 세월 속에 형성된 자연 환경을 극히 짧은 기간 동안에 급속히 파괴시켰다. 더욱이 자연 환경은 파괴되면 다시는 원상태로 회복되기가 어렵고 또 영원히 회복되지 못하고 있는 많은 실례들을 우리 주변에서 보고 있는 것이다. 과학 기술과 산업 혁명이 급속히 발전되면서 인구증가, 도시화, 산업화가 촉진되어 1650년 세계 인구는 5억5천여만에서 1850년에는 11억7천여만 명으로 200년 동안 2.7배 증가한 것이 생활 수준이 향상되고 의학 기술이 발달하여 사망률이 낮아지고 도시화와 산업화가 조혼을 조장하여 출생율이 높아져 1987년에는 50억이 넘어섰고 1999년에는 60억이 넘어서 2050년 이전에 100억명을 초과할 전망이어서 토지 면적은 변동이 없음에도 인구증가로 인한 인구 과밀현상으로 인구는 도시로 집중되었고 이로 인해 식량자원의 확보와 공업용수 부족현상 주택난으로 인해 임야개발 등으로 산림녹지가 줄어들고 훼손되어 자연환경이 악화되었다.다음으로 심각한 오염으로 인한 지구의 기상이변을 들 수 있다. 이산화탄소와 다른 온실가스의 현재와 같은 방출이 대기의 온도를 상승시킴으로 인해 지구 온난화의 주범이 되는 것이다. 이산화탄소의 주요 원천은 인구의 증가, 자동차 수요의 급증, 산업 국가들의 공장증설로 인한 에너지 수요의 증가에 있다. 그리고 개발도상국들의 열대림이 대규모 벌채되거나 화재로 인하여 사막화가 되면서 이런 현상이 가속화된 것이다. 그 결과 지구의 복사 에너지를 차단하는 온실효과(Greenhouse Effect)로 기온이 상승하고 위험스러운 자외선으로부터 생명체를 보호하는 오존층을 약화시키고 있다.이와 같이 세계환경의 양적 관계와 과도 성장에 의한 생태학적 위기를 인식하는 것은 인간의 행동 나아가서 현대사회의 전체적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꿀만한 새로운 형태의 도덕적 사고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불가결의 것이라 하겠다.2. 자연중심적 환경윤리철학적인 면에서 자연주의란 우리가 살고 있는 가시적 세계에며 그로 인한 인간의 소비성향에 의한 환경 파괴로 인간들 스스로가 저지른 범죄로 인하여 고통을 받게 될 것이며 인간은 생존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자연 환경에 의존해야되고 자연 환경이 제공하는 도움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고 하였다. 이러한 사실들을 인식한다면 우리는 루우틀리 부부가 지적한대로 이기심이나 인간 우월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하였다.자연 자체는 가치의 근원(source of value)이다. 가치는 자연 근원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우리가 자연세계에서 발견된 가치를 찬미하고 존중할 때 인간의 의식은 향상된다. 인간만이 단순한 가치를 자연에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도 인간에게 가치를 전달한다. 따라서 인간과 자연사이의 가치에는 상호 관련적인 측면이 있으며 자연의 세계를 단지 인간의 부를 생산할 수 있는 측면에서만 보아서는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은 그 자신의 자연적 과정에 의해 지배되는 상호 작용적, 상호 의존적인 생명의 관계 망으로 이해된다. 인간은 전 지구에 통합되며 우리의 존재 본성에 의해 우리가 속한 더 큰 공동체로서의 우주에 통합된다고 본다.그로 인해 자연주의적 시각은 어떤 자연 대상과 생태계가 본래적 가치를 가지며 인간 관심에서 벗어나 그 자체로서의 도덕적으로 생각하여야 할 만한 권리를 가진다고 주장한다. 자연주의 윤리는 각 생명 유형을 존중하며 더 큰 전체의 부분으로 이해하여야 한다고 한다. 따라서 인간중심적 환경윤리보다 자연중심적 환경 윤리가 더욱 필요하다고 본다.3. 인간중심의 환경윤리동양의 전통적인 환경에 대한 사상은 인간과 자연을 하나의 통합된 전체로서 생각하여 왔다. 생물은 생명, 인격, 초자연적인 정령과의 미분화된 상태에서 각기 상호 의존적 유기체로 인식하고 있으며 우리 나라의 민간 신앙에 나타나는 자연관으로 겁인간은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간다겂 고 하는 말은 생태학적으로 보면 자연계의 모든 물체가 상호 의존과 순환하는 속에서 유지되고 있다는 생태학적 순환을 나타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의 전통사회는 농경사회로 벼패러다임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 두 패러다임은 인간 행동의 두 개의 세계를 보여준다. 합리적 패러다임은 세상을 보는 시각이 합리적이다. 여기서 모든 인간의 행위가 합리적이냐 비합리적이냐에 의해 평가된다. 합리적 패러다임에서는 이성적 판단과 이것을 뒷받침하는 객관적 증거가 중시된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이유에 근거하지 않는 인간의 생각이나 행동은 비문명적인 것 즉 야만적이거나 미신적인 것으로 취급된다. 이타적 패러다임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자비와 양심과 이상으로 엮어져 있다. 여기서는 인간의 행동을 이기적이냐 이타적이냐에 의해서 평가된다. 이타적 패러다임에서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이상적인 삶을 인간이 따라야할 행동의 표준으로 삶고 이러한 삶을 이타적인 행위에서 찿는다. 환경윤리 역시 건전한 삶과 직결되므로 인간의 행동은 합리적이고 삶을 이끌어 가는 행위로 이루어져야한다.둘째, 환경문제는 단순한 환경문제의 오염이 아니라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로 생명존중운동, 인간성 회복운동에서 고려되어야한다. 생태론적 삶의 방향과 그 구체적인 방안이 모색되고 실현되어야한다.셋째, 환경교육을 통해 자연보전과 환경보호에 대한 도덕적 인식이 제고되어야한다. 자연은 그 자체로서 존재이유를 가지고 있음을 모든 사람이 깨닫고 공동체주의적인 사고 방식을 갖고 있을 때 자연보전이 가능한 것이다. 또한 자연에 대한 생태학적 지식에 대한 교육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인간에 대한 인간과 지배와 착취가 철폐되어야만 인간들간의 관계가 평화로울 수 있는 것처럼 인간에 의한 자연의 지배와 착취가 종식되어야만 인간과 자연의 계가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에 있어서의 환경에 대한 문제의 관심은 쾌적한 환경에서 안전하게 살고 싶은 욕구로 그 어느 때보다 높으며 이것을 실현시키기 위한 욕구 또한 강하게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문명의 발달과 그 이후... 그리고 해결책 ◈1. 문명의 발달과 그 이후문명의 형성에 따라 도시가 발전하면 자연이 주는 위협에서 해방되어 생활이 보다 쾌적해지지만,
‘가족의 탄생’ 을 보고...과 목 :교 수 님 :학 과 :학 번 :이 름 :제 출 일 :* 결혼과 가족을 주제로 한 영화, 책 등을읽고 독후감 or 영화후기 * 을 보고.....‘결혼과 가족을 주제로 한 영화, 책’ 이라고 했을때, 내 머릿속에 떠오른 영화제목은...‘결혼은 미친짓이다’, ‘바람난 가족’... 그리고 책 제목은... ‘아내가 결혼했다’...솔직히 나의 결혼관은 매우 긍정적이다. 그런데 왜 이런 영화들, 이런 책들이 생각났을까?요즘 사회에서는 새로운 가족형태에 대해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것이 당연한 이유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결혼문제, 가족문제가 점차 거치고 있기 때문이다.그래서 일까? 이 ‘가족의 탄생’ 이라는 영화는 비록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각종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휩쓸었다.이 영화는 가출했던 남동생이 느닷없이 20살 연상을 아내라고 데리고 오는 장면부터 시작된다. 여기서도 기가 막힐 노릇인데 올케가 데리고 온 전처의 딸... 이야기가 이어질듯 하더니 영화는 또 다른 이야기가 전개되었다.계속 사랑에 빠져 상대가 바뀌는 엄마... 그런 엄마의 갑작스런 죽음에 의붓아버지의 아들을 떠안게 된 나... 그리고는 또 다시 이어지는 또 다른 이야기....난 여기서 ‘도대체 이 영화는 단편영화인 것인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참으로도 골치가 아픈, 별로 연결도 되지 않는 가족들의 이야기가 2개나 나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의 궁금증은 3번째 이야기를 보면서 차츰 풀어졌다.헤플 정도로 정이 많은 여자, 그리고 이런 여자에게 질려버린 한남자... 이 여자가 자신의 집에 남자를 데리고 가면서 이 여자가 문소리 올케 (고두심)이 데리고 온 전처의 딸이라는 것을 알았다.그러면서 난 이 정상적이지 않은 가족에게 무엇인가 모를 감동을 느끼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할머니, 엄마, 딸... 그리고 그 딸의 남자친구.. 뭐 이런식의 지극히 평범한 가족이지만 그 가족이 형성되기까지의 많은 시련과 우여곡절을 확인하고 나면 누구든 가족의 소중함을 새삼 느낄 수 있는 그런 영화다.그래서 '탄생'이라고 하는 거창한 단어까지 끌어다 썼는가 보다.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이 영화의 모든 주인공들이 지하철에서 서로들 지나쳐 가는 장면이었다. 겉으로 보면 아무 상관없을 사람들도 혈연이 아닌 사랑으로 가족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어쩌면 일상에서 스쳐지나가는 인연들도 특별한 사이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암시를 하고 있는것 같았다.다른 시각으로 본다면 여기서 탄생한 가족이 ‘정상적인 가족들은 해체 되고 비 정상적인 사이가 모여 탄생한 가족’ 일 수도 있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사회가 급변하면서 이런 가족들이 증가 할 것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래서 이 영화가 주목받았듣이....문득 수업 시간에 시청했던 ‘새로운 가족형태’中 3번째 이야기가 생각났다. 이혼한 두 가족이 서로 함께 의지하며 같이 사는...
『한국의 근대성, 그 기원을 찾아서』를 참고하여,민족개념의 유효성의 관점에서 그 의의와 한계를구체적 사례를 통해 고찰하시오.과 목 명 : 문화철학교 수 님 :학 과 :학 번 :출석번호 :이 름 :‘민족’...... 사전적 의미로는, 한 지역에서 태어나 생활하면서 언어?습관?문화?역사 등을 함께하는 인간 집단이다. 나 역시 지금까지 민족이라 하면 이렇게 여겨왔다.『 한국의 근대성, 그 기원을 찾아서』는 한국의 근대성을 민족, 섹슈얼리티, 병리학을 통해 엮을 책이다. 그 중 ‘민족’에 대해서 살펴보았는데, 솔직히 어려운 단어를 사용한 것도 아니였는데 내용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민족, 민족주의, 단일민족, 한민족 등....... 민족하면 생각나는 것들이다.‘민족은 상상의 공동체’ 민족주의자, 기독교신자, 민족에 대한 불타는 열정, 마치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이 초월적 거처, 그것은 대체 어떤 모습으로, 어떤 경로로 이 땅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던 것일까?독립문, 독립가와 애국가. 국기 등.......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것들 속에도 ‘민족’이 담겨있다. 단적인 예로 이런것들은 축구경기에서 볼 수 있다.2002년 월드컵을 기억한다면, 당연히 ‘붉은악마’를 떠올릴 것이다. 너도나도 할것없이 붉은티를 입고 “오 필승 코리아~”를 외치던.......신문기사로 예를 들어 월드컵속에 담겨져있는 우리의 민족주의를 살펴보자월드컵, 민족주의를 넘어 애국주의로문화일보|기사입력 2006-06-22 14:38 |최종수정2006-06-22 14:38지난 19일과 13일 저녁, 한 편의 드라마 같은 태극 전사들의 통쾌한 골에 취해 온 국민이 한 목소리로 ‘대∼한민국’을 외치던그 순간, 우리는 예전과는 색다른 풍경을 접할 수 있었다. 우리와는 조금 다른 외모에, 부정확하고 어눌한 발음이지만, 주위 사람들과 거리낌 없이 한 데 어우러져 한마음으로 대한민국의 승리를 응원하던 외국인 며느리들과 이주 노동자들이 바로 그 새로운 광경의 주연들이었다. 기자들이 한국 팀의 경기에 대한 소감을 묻자 “‘우리나라’가 이겨서 너무 좋아요”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외국인 며느리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바야흐로 글로벌 시대 변화의 중심에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현재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다른 나라 출신 인구는 100명당 1명 꼴이다. 특히 국제결혼을 통한 이주민은 6만5000여명에 이르며, 그 가정의 2세 역시 2만5000여명이다. 지난해 국내에서 결혼한 100쌍 가운데 13쌍 남짓이 국제결혼이었다니, 그 규모를 가히 짐작할 만하다. 이 추세대로라면 2010년에는 이들의 2세만도 10만명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특히 점점 떨어지는 우리 젊은 세대의 출산율을 감안할 경우, 2020년 쯤에는 신생아 셋 가운데 하나는 다문화 가정에서 태어날 것이며, 그들의 대다수가 이른바 ‘코시안(Korean+Asian)’이라고 불리는 동남아시아계의 혼혈인들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매년 늘어나는 이주 노동자 수 역시 만만찮다. 우리나라 중소기업에 절대적인 노동력을 제공하고 있는 이주 노동자의 수는 최소 80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이처럼 급속한 사회 구성원의 변화 속에서 우리 사회는 국민적 유대감과 결속력을 지속적으로 유지 발전시키기 위해 새로운 ‘시대정신’을 요구받고 있다. 그런데 우리 정치권은 어떤가. 정치 엘리트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안위를 위해 화합과 협력의 장을 만들기보다는, 새로운 대립의 각과 편가르기만을 계속하고 있지 않은가. 정권 획득에 필요한 단순 다수의 지지만 얻으면 된다는 근시안적 사고는 내부의 단결을 위한 긍정적인 민족주의보다는, 자신들의 권력 유지를 위한 하나의 지배 이데올로기로서의 수정 적 민족주의를 강조하고 있다.특히 현 정권은 우리 사회를 친미와 반미, 가진 계층과 못 가진 계층 등의 이분법적 구조로 재단하고 계속적인 내적 분열을 도모함으로써, 통합과 화합보다는 파벌화된, 편 가르기 정치로 몰아가는 우를 범하고 있다. 만약 정치권이 지금과 같은 분열과 대립의 정치적 동원만을 계속한다면 우리 사회는 불신과 혼란으로 가득 찰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대외적 위상에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그렇다면 이러한 위기를 막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그 해답은 애국주의 속에 있다. 애국주의는 민족주의와 달리 인종·종교·지역을 기반으로 하지 않고 한 공동체의 가치와 신념을 중심으로 그것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기반으로 형성된다.최근국제여론조사저널(IJPOR)이 발표한 국가 자긍심 순위에서 가장 대표적인 다민족·다문화 국가인 미국이 70%로 33개국 가운데 1위로 나타났다. 반면 우리나라는 22위였다. 마치 온 사회 구성원이 하나가 된 것같은 길거리 응원문화가 아직 국가에 대한 자긍심과 애국주의로까지는 이어지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게 아니겠는가.그러나 이번 월드컵 응원에서 보여준 우리의 단결된 모습에서, 특히 외국인 며느리들과 이주 노동자들까지 포용하며 하나가 되는 모습에서 우리는 우리 국민에게 배타적인 민족주의가 아닌 포용적인 애국주의로 나아갈 수 있는 희망의 불씨를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 정치권은 이제 이러한 희망의 불씨에 물을 끼얻는 행위를 그만해야 한다. 미식축구 영웅 하인스 워드가 지난 달 복지재단을 세우면서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무엇이었는지를 잘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 [김성수 / 한양대 교수·국제정치학], 1909년 1월 10일자, 논설에서 보면, ‘청국과 일본과 서국에 유학하는 자와 혹 가서 사는 자 흔히 외국 계집을 다리고 있는자 많으니, 오호라 외국계집을 취하는 날은 곧 애국심을 죽이는 날이라 하노라’ 라는 구절이 있다.지금에야 국제결혼이 이상하거나, 흉한것이 아니지만, 거의 100년전에는 다른나라 사람과 결혼하는것 자체를 동물보듯이 하였으니, 국제결혼을 하여 2세를 낳는것은 어떠하였을까?적국놈에게 시집가는 년들이며 적국의 년에게 장가가는 놈들은 불칼로 반신을 끊나니 이는 반신지옥이니라.......라는 구절은 우리나라가 철저한 단일민족주의 사상을 가졌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이 시기에는 민족과 인종이 그다지 큰 변별성을 지니지 않은 채 혼용되어 쓰였는데, 그 이유는 무엇보다 민족의 핵심적 지표가 인종적 순수함에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뒷날 2차 세계대전의 악몽을 겪으면서 인종, 인종주의가 파시즘적 악마성과 직접 포개지기 전까지 이 두 용어는 자연스럽게 넘나들고 있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모든 민족주의는 인종적 혈통에 근거할 수밖에 없다. 그것을 노골적으로 표방하느냐 않느냐 하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다른 인종이 섞여서는 절대 안 된다는 이런 식의 집착은 우리 민족은 수수한 단일 혈통을 면면히 이어왔다는 역사 관념과 함께 작동한다. 즉 이런 사유체계에서 볼 때, 역사란 단일민족의 서사여야 하는 것이다.*************************************************************************************우리나라 ‘민족주의’에 대한 한계성.......예) "단일민족"이 죽어야 "대 한국인"이 산다언제부터인지 우리는 "단일민족"에 대한 자부심과 그 의미에 매우 많은 가치를 부여해왔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그 삐뚤어진 의미를 새로이 가져야 한다.결론부터 말하자면 "배타적 민족주의"의 관념에서 벗어나 "개방적 민족주의"로의 시대적 이해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제 자신 역시, 민족주의가 편협된 교육속에서 높은 가치관으로 이해되었던 세대(世大)이었다. 하지만 근래 미디어를 통하여 변화되어가는 우리사회를 보게되면서, 자신도 몰랐던 "민족주의"라는 가치관의 인식 속에 숨어있던 파렴치로 혼란이 오기 시작했다.우선 "민족"이란무었인가? 또, "국가"는 무엇인가? 를 그 사전적 의미로 보면 "같은 지역에서 태어나 생활하면서, 같은 문명과 언어와 역사를 가진것"이 "민족"이고, "일정한 영토에 살면서 주권을 가진 공동체"를 "국가"라 정의하고 있다. 얼마전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CERD)는 보고서를 통하여 "한국이 민족 단일성을 강조하는 것은 그 영토내에 사는 서로 다른 민족.국가 그룹들 간의 이해와 관용, 우의 증진에 장애가 될 수 있다"고 우려를 표시한 뒤, `순수혈통'과 `혼혈'과 같은 용어와 그에 담겨 있을 수 있는 인종적 우월성의 관념이 "한국 사회에 여전히 널리 퍼져 있다는 데 유의한다"고 경고하였다.우리의 이웃이 이제는 러시아인, 필리핀인, 베트남인, 중국인, 등임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런 이웃이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시작은 그들이 외국인노동자, 국제결혼, 등, 여러 형태의 관계에서 문제는 시작되는듯하다. 우리는 우리나라의 경제가 IMF경제를 뼈저리게 격었음에도 불구하고, 물질과 정신의 경계를 혼돈하면서 생기기 시작한 것이라는 생각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가 싫어하는 우리의 일을 그들에게 맡기면서 신분사회에나 있음직한 "천민" 취급을 하기 시작했고, 결혼 적령기인 우리나라 남녀 성비율의 불균형속에서, 우리나라와 상대적으로 빈국(貧國)의 여성을 "반려자"가 아닌, 마치 "노예"나 "애완동물"쯤으로 생각하는 나쁜 정신이 통용되기 시작했다.
모두가 알고있듯, 각 민족마다 교제에서 사용하는 방식은 모두 완전히 똑같지는 않다. 서로 다른 민족의 교제방식을 이해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이것은 사람들이 서로 다른 문화를 넘어서서 교제중의 장애를 극복하는데에 도움이 된다. 여기서는 중국인의 교제 방식에 대해 몇가지 소개 하고자 한다.1. “(다음에)다시 말해요” - 중국인의 거절방식중국인의 처세할대의 심리는 “서로 화목하고 사이좋게 지내다”, “화목함을 중히 여기다”이고 이것은 인간관계 부분을 반영한다.중국인은 일반적으로 서양인처럼 그렇게 솔직하지 못하다. 게다가 비교적 함축적인것을 보여주며 언어상으로는 자주 모호한 것으로 나타난다.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어떤일로 도움을 청하거나 어떤 문제에 대해서 당신의 의견을 구 할때에 만약 직접적으로 거절한다면, 중국인이 볼때 쉽게 ‘부조화’을 야기시키고, 또한 직접적으로 (바로) 거절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고 중국인의 처세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다.상대방을 불쾌하게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바로 함축적이고 모호한 말들로써 간접적으로 상대방을 거절하면 된다. 자주 사용하는 말로는 이런것들이 있다.“(다음에)다시 말해요”“생각을 좀 해보고 다시 말해봅시다”“우리 다시 연구(고려,상의)해 봅시다”“다시봅시다” 등등....한 단락의 대화를 보자.A : “소장님, 여기 인사 이동 보고서입니다.”B : “당신의 일은 들어 잘 알고 있네. 우리 좀 더 생각해 봅세나.”A : “좀 더 빨리 대답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며칠 후, A는 또 B를 찾아간다)B : “자네 보고서는 이미 상부에 올렸네. 상부에서는 좀 더 생각해보겠다고 말씀하시네.”A : “그렇다면 언제쯤이나 답을 주실 수 있는지요?”B : “내가 보기에 자네는 여기서 일을 잘했지 않은가..? 자네에 대한 인상이 좋으니 인사 이동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얘기 하세나.”사전에는 “연구다”, “고려하나”, “말하다”, “생각하다”, “보다” 등의 단어에는 모두 “거절”의 의미가 없다. 하지만 위의 대화에서는 이런 단어들이 모두 거절의 기능을 하고 있다.서로다른 문화간의 교제에 있어서 이러한 언어방식을 사용하는 것은 종종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외국인에게 대답하기 어렵거나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에 대해서 중국인은 종종 이러한 “중국식”의 방식을 사용해 대답한다. 게다가 상대방이 그 말의 숨을 뜻을 알 것이라 여긴다. 하지만 외국인은 오히려 자식이 이미 거절 당했다는 것을 조금도 알지 못하고 또한이 문제가 상대방이 진짜 연구, 고려, 상의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계속해서 “연구는 다 했나요?”하고 묻는다. 결과적으로 계속 같은 대답을 듣고 최후에 가서야 이미 거절을 당했음을 알아 차리고 자연히 매우 화를 내게 된다.왜 직접 “안돼!”라고 말 하지 않은거야? 정말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이야~~?2. “오늘 이후에 ~했으면 한다” - 중국인의 비평방식중국인은 전통적인 유교사상의 깊은 영향으로 인해, 비교적 내향적이고, 함축적이며 진중하고 또한 인내심이 강한 성격이 형성되었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따지지 않고, 자신이 언어와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것을 중시하며, 다른 사람에게 체면을 살려야 한다. 그래서 중국인은 다른사람을 비평할 때, 서양인처럼 그렇게 진솔하면서 단도직입적이지 않으며 “빙빙돌려서 말하는것”을 좋아한다. : 먼저 성과나 우한 점을 칭찬한 다음에 “그러나”라는 말로 화두를 돌리고, 다시 한 두가지 부족한 점을 지적한다 ; 혹은 성과나 우수한점을 크게 칭찬하는 것을 기초로 하여 “바란다”의 방법으로써 상대방의 결점을 고치고,잘못을 고치게끔 격려한다. 겉으로 보기에, 사람에게 주는 느낌은 : 성과와 우수한점은 “큰 것”, “많은 것”,그러나 부족하거나 결점은 “작은 것”, “적은 것”이다. 심지어 고치거나 말거나 모두 개의치 않으면서 단지 “바란다”라고 하는것 이다. 사실 중국인은 “글나”와 “바란다”뒤의 내용에 진정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며, 여기에서 성과나 우수한점은 단지 표면적이고 주된 것이 아니며, 중요한 것은 “그러나”와 “바란다” 뒤에 있는 내용이라는 것도 잘 안다. 아래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말하는 내용은 아주 좋은 예이다.“우리반은 분위기도 좋고, 학생들이 공부도 열심히 하고, 성적의 향상속도도 빠른것 같아요. 그 외에도 학생들이 잘 단결하고, 서로 잘 도와주고... 근데, 고금 고쳐야 할 점이 있어요. 여러분 모두 이후로 반 전체 관심을 가지고, 문화 체육활동을 더 활발히 해서, 우수한 반의 영광스런 칭호를 얻는데 온 힘을 다 쏟길 바랍니다.” ^^서로 다른 문화간의 교제에 있어 중국인의 이러한 비평방식도 또한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 예를 들어 중국인 선생님이 이러한 방식으로 외국인 학생들의 결점이나 잘못을 지적한다고 하자.그러나 종종 외국인 학생들은 오히려 선생님의 “말 속의 숨은 뜻”과 문제의 심각성을 알지 못하여, 선생님의 이러한 ‘비평’에 대해 상관하지 않고, 결점이나 잘못을 고치지 않게된다. 그러나 중국인 선생님으로서 체면을 구기는 단도직입적은 비평방식을 사용하는것을 원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중국영화라 하면, 하늘위를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며 서로 싸우는 무협영화나, 광활한 토지가 나오는 영화이거나, 중국전통의상을 입고 경극을하는 영화 이거나 했다. 하지만 ‘여인사십’은 그저 소소한 일반가정의 한 에피소드를 담고 있는영화이다.내 나이 40살이 되면 난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이 영화에서처럼 나도 시장에서 물건들의 값을 깎고, 남편과 시부모님 문제로 티격태격 하며, 자신의 직장과 가정 사이에서 갈등을 하고 있을까?영화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그리 넉넉지 않은 살림에 회사일과 집안일 두가지에 쫓기며, 고약한 시아버지 비위를 맞추어야 하는 여인. 이 영화에 나오는 ‘손부인(소방방)’이다. 고약한 시아버지는 며느리의 생일 때 축하는커녕 맛있는 음식만 자기 혼자 다먹어 버리고는 가버리는 그런 사람이다. 그런데 어느날 시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리고 그 시아버지는 충격으로 치매에 걸리고 만다.그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가 유일하게 알아보는 이가 있는데, 바로 그토록 미워했던 첫째 며느리(손부인)이다 . 아들도 못알아보고, 딸도 못알아보고, 손자도 못알아보는데...... 그 첫째 며느리만 말이다.치매에 걸린 시아버지...... 버터 대신 비누를 빵에 끼워먹고, 우산을 낙하산 삼아 옥상에서 뛰어내리고, 며느리 앞에서 소변을 실례 하는 등 온갖 치매증상으로 집안은 엉망이 되고만다.평소 시아버지의 총애를 받았던 성공한 둘째아들과 며느리는 온갖 핑계를 대며 아버지 모시기를 거부하자 손부인은 시아버지를 시설양로원으로 보내 버리지만 얼마 되지 않아 도로 모시고 온다. 그래서 사이가 안 좋았던 나이 사십의 여인네와 치매에 걸린 시아버지는 서로를 의지하며 또 다른 삶을 향한 길을 조금씩 터가기 시작한다.고통은 연달아 온다고 했던가. 엎친데 덮친격으로 직장에서 손부인은 신참내기 여직원의 능숙한 컴퓨터 실력에 밀려 찬밥신세가 되고만다. 힘든 것은 남편도 마찬가지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버지의 수발을 들랴, 몸과 마음이 녹초가 된 그가 동료들과 어울려 술집에서옛 노래를 부르자 동료들이 촌스럽다며 야유를 보내는 모습은 요즘의 직장에서 겪는 우리 아버지들의 영락없는 바로 그 모습이기도 하다.부부가 동시에 직장에서 구 세대로 낙인찍혀 힘든 나날을 보내고, 시아버지의 날로 심해지는 치매현상과 할아버지의 수발을 들던 손자까지 애인한테 버림을 받고만다.이렇듯 온 가족이 힘든 나날을 보내는 가운데 인생의 반전이 찾아온다. 손부인의 회사 사무자동화 프로그램이 다운되면서 회사업무는 순식간에 마비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때 손부인은 그 동안의 엄청난 기억력과 노하우로 진가를 발휘, 다시 옛 명성을 찾게된다.치매증상이 악화된 시아버지를 모시고 온 가족은 시골로 놀러가는데, 이 때 잠시 재정신이 든 시아버지는 ‘세상은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말을 하며 며느리와 딸에게 꽃을 꺾어준다.아버지에게 꽃을 받은 가족들은 그 사이 시아버지는 밭이랑을 지나 가족들의 시야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가족들에게 손을 흔들고는 그대로 쓰러져 세상을 떠난다. 그리고 그가 떠난 그 집엔 그가 항상 기다리던 그러나 오지 않던 비둘기가 모이를 쪼고 있었다.나는 시아버지가 며느리에게 ‘세상을 살 만한 가치가 있다’라고 얘기하는 부분에서 가슴이 찡함을 느꼈다.중간중간 엉뚱한 말을 하는 시아버지의 말을 재치있게 받아내는 며느리. 자칫 무거운 분위기로 흐를수도 있고, 가슴이 답답해 질수 있는 소재가, 재치있는 설정 이라던지 유머로 즐겁게 해준다.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의 조금은 귀엽게까지 느껴지는 행동이랄지, 식구들의 모습...... 가족간의 따뜻한 사랑이 보여진다.난 노인문제에 관심이 많다. 우리 부모님도 그럴 것이고, 나 또한 시간이 흐르면 당연히 노인이 될 것이다. 요즘은 저출산으로 노인이 차지하는 비율도 높아지고 있다. 실버산업도 발전하고 있으며, 그만큼 우리사회는 ‘노인’에 대해서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