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방송 : SBS(2003년 12월 3일~2004년 2월 5일 방송종료)시청률 40% 이상2.기획의도우리의 길지 않은 생에 가치 있는 것은?우리의 길지 않은 생에서 참으로 가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혹자는 사랑을, 혹자는 돈을, 명예를, 권력을 이야기할 것이다. 에리히프롬은 저서 ‘사랑한다는 것’에서 이렇게 말했다. ‘진짜 사랑’을 제대로, 멋지게 할 수만 있다면, 그것 자체가 성공적인 삶, 가치 있는 삶이라고……. 사랑이 한 없이 가벼워지는 시대, 사랑 이 가벼워지면 가벼워질수록 사람들이 ‘진짜 사랑’을 갈구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천국의 계단은…….‘천국의 계단’은 금지된 사랑,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몸부림치는 네 남녀가 영원히 끝나지 않을 사 랑을 완성하는 공간이다. 너무나 아프고 가슴시리지만 감히 운명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애절한 사 랑이 야기를 통해 ‘관습과 금기를 뛰어넘는 힘, 누군가를 제대로 사랑한다는 것’의 의미를 묻고자 한다.현실에서는 도저히 없을 것 같은 순백의 사랑이야기!하지만 있었으면 좋겠고, 있을지도 모르는 사랑이야기를 통해 누구나 가슴 속 깊은 곳에 숨겨둔 자신 만의 ‘천국’에서 위로를 받으며 진정한 사랑의 향기를 음미해 보았으면 한다.3.줄거리천국을 찾는 네 젊은이의 사랑과 야망에 대한 러브로망!!‘천국의 계단’은 인간의 운명과 의지, 관습과 금기에 도전하는 네 남녀의 치열하고 가슴 저린 사랑이야기다.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사랑이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랑은 천국에나 존재 할 수 있다고 믿기에 우리는 모두 천국으로 향하는 계단의 입구를 찾아 헤맨다. 드라마 “천국의 계단”은 천국을 향한 각기 다른 가치관을 가진 네 명의 사랑이야기다.천국은 ‘순백의 피아노건반이 있는 눈 덮인 놀이공원’ 같은 순결한 세상이라고 믿는 남자 송주, 천국은 그 놀이 공원에서 오빠와 함께 같은 곳을 보는 것이라고 믿는 여자 정서,사랑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천국을 기꺼이 희생하며 영원히 어두운 지옥의 길을 걸을 수도 잇는 남자 태화, 천국은 돈으로 얼마든지 살 수 있으며 남의 것을 뺏어서 라도 꼭 천국의 문으로 들어 가야하는 여자 유리,그들 모두는 지금 치열한 삶의 한가운데 사랑이라는 운명 속에 살고 있다. 사랑하고 좌절하며 자신들이 믿는 천국의 계단을 한걸음씩 오르면서…….그들의 사랑마저 가로막는, 하늘이 정해 놓은 거부할 수 없는 운명…….태어나기 전부터 운명적인 인연으로 맺어진 송주와 정서!서양화가인 송주모와 건축가인 정서부는 어른들끼리의 절치한 친분으로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랐다.성장한 후 각자 다른 배우자와 결혼을 하기는 했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단순한 친구 이상의 오랜 우정이랄까, 남매 같은 편안함이 있다.그런 토양 위에서 태어난 송주와 정서는 마치 일란성쌍둥이처럼 비슷한 교감을 하며 자란다.글로벌 그룹의 외아들인 송주는 본격적으로 경영수업을 쌓게 되고, 유학을 준비한다. 피아노에 관한 탁월한 능력을 지닌 송주는 유학가기전, 놀이공원 야외 특설무대에서 정서에게 아름다운 세레나데를 연주한다. 두 사람은 자신들의 앞날을 알지 못한 채 마냥 행복하게 천국 같은 시간을 보낸다. 다시 만날 것을 확신하면서…….놀이공원의 회전목마를 타고 천국으로 올라가자는 재회의 꿈을 안고…….유학을 떠나기 전 서로의 영혼을 나누듯 목걸이를 교환하는 두 사람, 그러나 이것이 이들의 사랑을 갈라놓는 시발점이 될 줄은 아무도 모른다. 두 사람의 운명적인 사랑은 맺어질 수 있을까?4.등장인물1.차송주 (남, 고2~20대 후반)?민 회장의 외아들, 어린 시절에는 신동의 피아니스트, 현재는 백화점과 놀이공원등을 포함한 글로벌 그룹을 상속받은 경영일선의 지휘자.?아역연기자 :백성현 성인연기자 :권상우?어려서부터 피아노를 좋아하고 재능을 보였지만 글로벌 그룹의 외아들인 자신의 신분 때문에 피아노를 취미로만 즐긴다. 아쉬울 것도 없는 것이 송주가 피아노를 치는 이유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되기보다는 오직한 여자 정사가 좋아하는 곡을 들려주고 싶어서기 때문이다.정서와 송주는 일란성 쌍둥이처럼 닮았다. 두 사람은 마치 하나의 몸인 것처럼 자란다. 두 사람은 숨소리만으로도 서로의 마음을 가늠하는 텔레파시가 통하는 사이다.2.한정서(여,중3~20대 중반)?한교수의 외동딸, 피아니스트를 꿈꿨다. 하지만, 현재는 글로벌 그룹의 임시직 직원.?아역연기자 :박신혜 성인연기자 :최지우?유명 건축가이자 대학교수인 한교수의 무남독녀 외동딸에서 천애고아로 극과극의 인생유전을 거친다. 이상적인 부모 밑에서 유복하게 자랐지만, 갑작스런 병으로 엄마를 잃은 후 아버지와 단 둘이 살았다. 하지만 엄마 없는 그늘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밝고 순수하고 구김이 없다. 여리면서도 내면은 강한 외유내강의 스타일, 타인의 감정을 먼저 헤아릴 줄 아는 깊은 심성의 소유자3.한태화(고2~ 20대 후반)?태미라의 아들, 유리오빠, 정서의 법적 오빠, 모작화가?아역연기자 :이완 성인연기자 :신현준?다른 사람들의 일에 철저히 무관심하고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살고 있는 자폐적인 성격. 자의식이 강하고 애정을 갈구하고 있다. 자기 자신 외엔 아무도 믿지 않는다. 낳기만 하고 자신들을 버린 생모 태미라에 대한 증오를 가슴깊이 품고 있다. 정서를 처음 봤을 때 충격을 받았다 그녀에게는 자기 말이 상대방에게 단 한번도 거부된 적 없는 사람 특유의 경쾌한 솔직성이 있었다. 타인으로부터 철저하게 배타 당했던 태화는 정서의 ‘미소’에 영혼의 울림을 받는다.4.한유리?태미라의 숨겨진 딸. 태화의 동생. 정서와는 법적 자매. 뉴욕대 경영학 석사. 글로벌 그룹 기획실장.?아역 연기자 : 박지미 성인 연기자 : 김태희타고난 미모로 신분상승을 꿈꾸는 인물. 남들 앞에서는 착하고 반듯하며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천사표 인양 행세하지만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떤 짓도 서슴지 않는 승부욕의 소유자. 오기로 똘똘 뭉쳐있고, 욕먹어도 마음먹은 건 가져야 한다. 절대 지고는 못 산다. 오빠와 함께 세상에 버려진 순간부터 특유의 강인한 의지로 교과서에서 배울 수 없는 인생을 일찍이 터득했다.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한 두 남자 ,송주와 태화가 정서에게 순정을 바친 것만으로도 견딜 수 없다. 결국은 태미라의 인생마저 파멸로 이끈 채 추락한다. 남의 인생에 치여 자기 인생을 망치는 어리석은 인물이다.5.그밖의 인물 : 태미라 (유리와 태화의 생모, 정서의 새엄마), 한수하(정서의 아버지, 유리와 태화의 새아버지), 민서현(송주의 모) 등등5.드라마 정보1.메가 버스극중 송주가 정서를 위해 준비한 메가 버스, 이 버스에서 송주는 정서의 품에 기대어 잠이 들고 정서는 슬픈 러브스토리에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2.파스쿠찌극중 태미라와 한유리가 항상 작전회의를 하던 바로 그까페이다. 두모녀는 이곳에서 정서와 송주를 갈라놓을 방법은 많이 생각했다.3.천국의 계단 핸드폰줄극중 정서와 송주, 유리가 가지고 다니는 핸드폰 줄, 정서가 전화를 걸때 송주가 전화를 걸때 옆에 달린 핸드폰줄4. 송주가 던진 부메랑어린시절 바닷가에서 던지던 부메랑, 송주와 정서가 즐겁게 바닷가를 뛰며 던지던 부메랑 , 그리고 송주가 아이스 링크에서 정서를 그리워 하며 던지던 부메랑 “사랑은 돌아오는 거야 ” 이한마디가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5.극중 정서와 송주가 나누어 가진 목걸이 중 정서의 목걸이드라마 속 정서와 송주가 나누어 가진 목걸이 중 정서가 가지고 있는 목걸이, 4회에서 정서가 손으로 꼭 잡고 잠자던 모습, 기억 상실증에 걸렸지만 송주를 생각하는 것 같음6.천국의 계단 롯데월드 촬영장극중 나오는 송주와 정서가 어린시절 가장 많이 놀던 곳이다. 이곳에서 어린시절 정서와 회전목마를 타고 스케이트도 타고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장소이다. 이후 이곳에서 태화는 회전목마 옆에서 벽화 그리는 일을 하고 송주는 놀이동산의 운영자로 나타난다.6.드라마평드라마 ‘천국의 계단’은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했던 인기드라마이다. 시청률 장사를 너무나 잘할 수 있는 요소를 골고루 갖췄기 때문이다. ‘천국의 계단’은 어린이를 비롯한 젊은 세대들의 욕망을 충족시킬 판타지적 캐릭터에서부터 예전 신파극과 오늘날의 멜로물에서 단골 소재인 복잡한 인연의 집안끼리의 자식들 사랑까지 말이다.
로봇 시나리오학과 :학번 :이름 :담당교수마음(心)집에서 창문 밖을 내다보았을 때, 나는 나뭇잎들이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어. 나는 혼자 중얼거렸지. “왜 모든 물건들은 항상 아래로 떨어져야만 하는 걸까? 왜 위로는 떨어질 수 없을까?”계절이 가고 과일이 익어도, 총구 밖으로 튀어나온 총알도, 저 높이 던진 공들도 결국엔 다 아래로 떨어지고 만다.나는 가지가 앙상한 나무들과, 나무들 주변의 땅 위에 수북이 쌓여있는 나뭇잎을 생각해 보았어.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어. 그때 갑자기 나뭇잎들이 위쪽으로 떠오르기 시작했어. 꿈일까, 만 화속에서만 보던 광경인데, 이제 나뭇잎들은 나뭇가지에 달라붙고 있는 거야. 자석에 철가루가 몰려 붙듯이, 그리고 지금은 빨강색 ,노랑색, 갈색 대신에 나뭇잎들이 녹색으로 변하는 것이다. 분명히 매서운 바람이 부는 늦가을인데, 다시 여름이 오는 걸까?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을 전부 K에게 말했다. 그 애가 한말은 “시간이 거꾸로 갈 수 있니? J양?” 가 전부였다. K는 나의 생각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고, 그냥 스쳐 지났다.정말 바보 같은 질문이다.하지만, 그런 바보 같던 질문이 이젠 당연한 질문이 돼 버렸다.지금은 자연의 법칙까지도 변화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 공상과학영화에서만 나왔던 일들이 현실화 되고 있는 것이다. 자연의 법칙이라는 명제에서는 각 종교계의 반발이 일고, 네티즌들의 분쟁도 만만치 않지만 지구의 한쪽에서 이미 모든 게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가상세포’라 불리는 컴퓨터 내에 진짜 세포와 똑같은 구조와 기능을 갖춘 ‘사이버 미생물 로봇’...... 키보드를 두드려 가상세포에 적절한 자극을 가하면 실제와 유사한 반응이 나타난다. 이를 이용하여 실제 실험 없이 컴퓨터에서 세포 실험도 하고, 질병을 유발하는 원인 유전자를 발굴하기가 수월하다고 하는데어느 새 자연 깊숙이, 우리 몸속까지 들어와버린 로봇들…….갑자기 밀려오는 공포감과 함께 미래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현존해 있는 로봇들은 단순히 휴머노이드 형태를 띤 로봇들이었다. 영화에서 인조인간이라는 것이 나오긴 했지만, 이제 겉모습만이 아닌, 내장기관을 구성하는 체세포자체가 로봇인 것이다. 복제가 아니기 때문에 생명윤리에 관한 논란에는 대항할 수 있다. 하지만 구성조직이 치밀하여 거의 인간과 다름없다고 봐도 될 것이다. 6백만 불의 사나이가 재현되는 것은 아닐지…….누군가가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아니 아버지께서 홀린 듯 무언가를 응시하면서 손가락을 움직이고 계신다. ‘신체착용’을 전제로 한 최신통신수단…….컴퓨터로,아…….그래서 자연물이 변하고 있었구나…….아버지가 연구하시던, 길거리의 가로수들도 인공체세포로봇으로 만들어진 로봇나무들인 것이다. 날씨가 추워지고 나뭇잎이 떨어지자, 우리 구역의 파란 잎사귀를 보고 싶다는 주민들의 요청에 따라 떨어진 나뭇잎이 다시 나뭇가지에 올라붙어 울창한 나무가 조성되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서인지 아빠의 실험실도 차가운 실험도구 대신 이제는 컴퓨터로 가득 차있었다. 컴퓨터에서 세포를 배양하고 있었다.우연히 보게 된 모니터 안의 풍경,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신 것 같았어.세포로봇이 이제는 모든 물질에 투입된다는 것이다. 그 로봇들을 태워 우주의 달 표면에,지구의 땅속에, 태양의 뜨거운 온도를 뚫게…….구조적으로 바꾼다는 내용의 보고서, 이런 식이라면 이젠 달의 모양도 마음대로 바꾸고 로봇세포로 구성된 인조인간이 나타는 건 아닌지. 티비에서만 보던 로봇은 그래도 인간이 조종할 수 있었는데, 인간처럼 로봇도 세포로 구성된다면…….순간 아찔함이 느껴졌다.K와 진지하게 미래에 대해 고민해 보았다. 나는 자꾸만 나쁜 쪽으로, 우려되는 마음이 컸지만 K는 다 잘될 것이라는 낙관적인 생각이다. 오히려 아토피 때문에 키우지 못했던 애완동물대신에 털 안 빠지는 인공세포로 조직된 강아지를 기를 수 있다는 기대감에 들떠있는 듯했다. 그렇다면 그런 인공세포조직의 강아지와 교감이 가능할까? 강아지라는 것은 옛날부터 인간과 가장 친숙한 동물이었고 무언의 감정이 오가고 강아지는 주인을 잘 따르는 듯하던데. 세포의 수, 조직이 실제의 강아지와 같아지면 과연 심리도 그에 상응할까?삭막할 미래에 대해, 우리 인간은 그래도 차별화된 무언가가 있어야 될 것 같다. 사유하는 능력? 기억력 따윈 로봇이 앞설 테니까, 창의력? 등은 아무래도 인간이 앞서겠지?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 배려하는 마음, 누군가를 증오하는 마음, 무언가에 설레는 것, 고마울 줄 아는 것, 스트레스를 받는 것, 등은 인간이 유일하지 않을까?나 혼자 세상에 대해 고민하는 것 같았다. 모두들 평온해 보였다. ‘감정’이라는 것에 깊이 생각해 보았다. 생물이라는 것은 모두 감정을 가지고 있는 듯한데, 인공세포로봇은 무생물로 분류 되겠지? 감정의 인간의 삶의 거의를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어떻게 될까? 나의 끝없는 고민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렇게 잠들었다.
아방가르드학과 :학번 :이름 :담당교수 :‘아방가르드’ 에 대하여1. 서론새로움에 대한 추구가 형식과 내용에 끊임없는 변화를 자극하던 지난 20세기에 아방가르드는 흔히 미술을 포함한 현대 문화와 문명 발달을 설명할 때 가장 자주 등장하는 단어들 중의 하나로 각광받았다.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아방가르드에 대한 담론적 구성들이 어떻게 되어 왔는지, 그리고 현대의 아방가르드 개념이 어떻게 정립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고찰해 보고자 한다.2. 아방가르드의 개념제 1차 세계 대전 무렵부터 기성 예술과 전통을 부정하고 나선 다다이즘이나 초현실주의 등의 전위적인 예술운동을 통틀어 이르는 말. 전위파, 전위예술.아방가르드라는 용어는 혼동의 원인이고 산물이다. 아방가르드의 근본적 모순은 이름이 지어진 이후 발생하게 된다. 아방가르드는 원래 군대에서 쓰이는 용어로써 전투 중 군대의 본대에서 떨어져 나와 본대가 진군하는 방향의 선봉대로써 일부병력을 의미하는 전위대이다. 아방가르드용어는 이처럼 처음에는 군사적인 의미로만 사용되었다. 이처럼 아방가르드개념이 전쟁용어이기는 하지만 프랑스 혁명의 여파 속에서 그 개념은 정치적 색채를 띠게 된다. 아방가르드라는 단어는 중세부터 사용되기 시작하였고 그것의 문화적, 이론적 언급은 르네상스 시대에 구체화되었다. 보편적으로 아방가르드라는 개념은 지적 급진성을 띠는 특정한 문화적 실천을 대변하는 용어였다. 아방가르드는 형식적인 측면에서는 새로운 재현 방식을 표방하고, 내용에서는 과거의 관습을 배격하는 이중적인 성격을 보인다.아방가르드가 주장하는 다른 차원의 접근은 포스트모더니즘이 주장하는 일상적, 일방적 관점으로부터의 탈피라는 의도와 일치한다. 포기올리에 따르면 이 용어를 최초로 문학적으로 사용한 예는 1845년 샤를 푸리에의 제자가 거의 알려지지 않은 팜플렛에서 찾아 볼 수 있다고 한다. 나중에 신구논쟁의 테마를 예견하는 시기인 16세기 후반부에 프랑스의 인문주의적 법조가이자 역사가였던 에티엔 파스키에는 라는 그의 책에서 “아방가르드: 라는 용어를 은유적으로 사용했다.또한 로드리그가 자신의 대화록에서 아방가르드라는 용어를 예술에 적용하였다. 이와 같은 유토피아적 사회주의자들의 암시에도 불구하고 이후의 메타포 사용은 급진주의적 경향을 띠게 된다. 19세기 내내 아방가르드 용어는 진보적 예술가들, 과학자들, 기업자들에게 드물게 적용되고 주로 정치적 좌파와 이 좌파의 무정부주의 패거리를 특징화하는데 사용되었다.급진주의적인 정치언어로 자주 사용되는 아방가르드 용어는 문학이나 예술이 적용될 겨우 자신의 역할이 주로 당의 선진 사업에 있는 것으로 인식하는 예술가로부터 기대하게 되는 참여의 유형으로 향하게 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이 1860년도 보들레르가 아방가르드용어와 개념을 거부한 이유일 것이다.3. 모더니즘 시대의 아방가르드고전적인 것은 낭만적인 것으로 대치되고 낭만주의는 결과적으로 다변화되는 19세기를 경과하는 모든 역사적인 유산들을 단절시켜버리는 매우 급진적인 모더니티 의식을 낳았다. 기술공학과 마찬가지로 모더니즘은 인간이 만든 형식들 내지는 만들어진 어떤 사물에 근거를 두고 있었다.무에서 어떤 작품을 창조하는 궁극적으로 신과 같은 모더니즘행위와 모더니스트들의 시각은 민주주의적 목적을 내포하고 있다. 외양적 실체보다는 작업논리로서의 구조에 역점을 두고 있다. 특히 2차 세계대전 이후 뉴욕에서 추상표현주의를 태어나게 하고 활성화시킨 비평가 클레멘트 그린버그는 예술의 순수성을 존속 시키려 노력하였고 60년경 추상표현주의의 폐지에 뒤따른 불확실한 기간에 이르러 색면 회화 작가들을 등장시켜 새로운 유형의 평면을 도출함으로써 모더니즘의 정신을 확실히 하였다.3. 포스트 모더니즘시대의 아방가르드포스트더니즘은 모더니즘에 대한 반응으로 긍정과 부정을 모두 포함한 것이다. 또 물성을 드러내고 산업소재를 이용해 가공되지 않은 성격을 그대로 나타냄으로써, 작품에 존재하던 관념적 고리를 끊는다. 또 주제로서의 관객의 경험을 인정하고 단순한 형태와 기본법칙에 의한 제작을 시도한다.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것은 모더니즘과 아방가르드가 개념적으로 명확히 구분되고 역사적 아방가르드이 수법들이 종합적으로 이해될 때 해결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아방가르드의 의미는 1825년 생시몽이 ‘과학자에 대한 예술가의 사회적 의무’를 주장하고 1845년 라베르당이 ‘사회의 개혁을 목표로 한 예술가의 역할’을 주장함으로써 정치적 급진주의의 이상으로 출발했지만, 1880년대 이후 예술적 의미의 아방가르드의 의미가 분리되기 시작하면서 오히려 순수예술분야의 극단적 실험이라는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그리고 무엇보다도 모더니즘의 실험들을 이끌게 된 진정한 의미의 아방가드르는 20세기 초의 역사적 아방가르드이며, 모더니즘의 새로운 수법들은 이러한 아방가르드의 실험의 결과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전시회 감상제출일 :학과 :학번 :이름 :바람속의 글, 그림-가을부채 전시회를 다녀와서-평소에도 전공 교수님께서 )숱한 전시를 소개해주시고, )미립 얻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종로구 일대의 작은 갤러리부터 분당쪽 큰 디자인센터까지 )가을 중 싸대듯, 이곳 저곳을 다닌다. )굴러 온 호박처럼 교양 과목에서 전시회를 다녀오라는 교수님의 말씀에 나는 흥미를 안고 발걸음을 )내밟았다. 서울 여러 곳을 다녀보아도 평창동은 안가 봤었는데 이번 기회에 가게 된 것이다. ‘바람 속의 글, 그림’ 이란 타이틀로 열리는 부채 전시회를 하는 곳은 영인문학관. 그곳은 위치 설명부터 복잡했다. 30분마다 다니는 마을버스, 그리고 급경사로 )이음찬 도로, 여기저기 보이는 암벽, 저택이 나왔다가도 작은집들이 옹기종기 보이는, 서울 도심에서 )더트기 힘든 곳 중 하나가 아닐까 )지레짐작 했다. 아무튼 진흙 속의 진주를 찾는 기분으로 도착했다. 갈 때 마다 ‘전원 일기’ 느낌이 나셨다고 하는 교수님의 말씀이 이해가 갔다.영인 문학관은 작지만 알차 보이는 곳이었다. 한적하고, 부담 없이 와서 돌아볼 수 있는 여유로움을 가진 곳이었다. ‘부채’ 라하면 선풍기를 쓰는 지금에 우리입장에서 옛날 할아버지, 할머니들께서 여름철 )한더위를 )식히는 수단으로 쓰였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금의 부채라 하면 광고 판촉용도의 플라스틱 부채가 있다. 이는 참 불행한 일이 아닐까 싶다. 전통적인 부채가 옛날 같은 생기가 없어진 것이다. 옛날에는 무척이나 실용적이었던 물건 부채.가장 )찾을모 있는 물건이자 가장 흔했을 것이다. 지극히 당연한 물건, 평범한 것은 등한시 되는 것이 당연하다. 여름철이 지나 가을이 다가올 무렵, 부채의 일이 끝난 뒤에는 구석에다 치워놓는다. )불 없는 화로, 딸 없는 사위와 마찬가지 처지가 된다.그 형체가 또 매우 검소하기 때문에 짐짓 눈여겨보지도 않는다. 원래 찾을모를 위한 것이므로 외양을 화려하게 꾸밀 리 없다. 이를 대변해주듯 건물 바깥쪽에 크게 ‘가을에 보는 부채전’ 이라고 쓰여 있었나.이런 부채바람 속에 글과 그림을 담았다는 작품들을 보게 된 것이다. 실용성을 배재한, 부채의 예술성을 돋보이게 했다 고한다. 다양한 문인과 서예가등이 참여하여 자신들의 개성을 뽐내 보인 결과물들이었다. 이름을 들어 봄직한 김동리, 김남조, 구상, 조병화, 서정주 님들의 작품은 문예가여서 그런지 필력과 )드레가 느껴지는 글씨(시)들이 주를 이루었다. 그들의 그림체도 보고싶었는데…….쭉 보고 있는데 한곳에서 나의 시선을 붙잡은 )갓짓한 부채가 2개 있었다. 하나는 우리의 전통을 상징하는 부채에 그에 걸맞은 태극문양에서 동기를 얻어 빨강과 파랑의 색채의 아름다움을 적절히 배치시키고 가운데 간단한 풍경화로 마무리한 이승택님의 작품이었다. 이렇게 강한 색채가 들어감에 불구하고 )수수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외양이 화려하지는 않으나 침착하고 깊은 무언가가 있었다. 어두움이 적절히 가미된 빛깔, 조용한 무늬, 적적함이 )마뜩했다.또 이와는 대조적으로 )버금가는, 내 입가의 미소를 짓게 함과 동시에 시선을 끌었던, 부채는 다름 아닌 다 접혀지고 타 버린 듯한 어두운 먹으로 색칠해버린 부채였다. 수많은 부채들이 자신감 있게 펼쳐져 무늬를 보여주는 대신에 이것은 한없이 움츠려 든 것 같은 느낌. 독특했다. 부채는 활짝 펴서 부채질을 해야 바람이 부는데, 다 접어 버린데다가 탄 듯한 느낌을 주니 부채질을 할 수 없고, 바람과 대조적인 더운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이 부채 역시 내가 공예품을 볼 때 제일로 생각하는 수수함이 느껴졌다. 수다스러움이 없는, 어딘지 침묵의 요소가 강하게 포함 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조용한 자태를 취하고 있는 듯한, 먹이라는 한 가지 색이 빛깔 없는 빛깔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것을 포함 한 듯 했다.동양적인 아름다움을 물씬 느낄 수 있었다. 일본과 같은 다른 나라 부채도 몇 점 있었지만 나는 한국의 부채를 보는데 에 여념이 없었다. 한국인이라서 )시나브로 끌리는 무언가가 있었나. 다른 나라 부채들이 생각보다는 개수도 적도 각 나라별 특징을 확연히 구분할 무언가가 없었기 때문인 것도 있다.이밖에 전통적인 부채모양과 대조적인 일러스트와 같은 무늬를 그려 넣은 부채들도, 젊은이들의 감수성을 대변하는 듯 )실팍했고, 부채 외에 문인이 쓰던 물건들, 붓등도 함께 )함초롬하게 전시되어 지루함을 달랠 수 있었다.)해거름, 부채전시를 다 보고 자연의 부채질을 느끼며 영인 문학관을 벗어나는 )끝걸음에 아쉬운 점이 있었다. 물론 관장님과 작가님의 설명이 있는 날 못가고 그전에 )지레 왔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같은값이면 다홍치마라고 각 부채의 옆에 그림의 간단한 설명과, 작가소개가 덧붙여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 소책자에서 관장님도 아쉬워 한 )개 털에 벼룩 끼듯 전시장이 좁아 그 아름다움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것은 나도 동감하는 바이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나도 한번쯤은 부채를 캔버스로 하여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 본래의 용도로 사용할시기가 지나면 이렇게 예술품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부채를 새롭게 경험해보았다. 또 작고 알찬 ‘영인문학관’ 이라는 곳도 알게 되어 기쁘다.?작가소개- 이승택 (1932- 설치미술가) -이번 가을부채 전시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빨강과 파랑의 조화를 부채에 보여주신 이승택님에 대해서 조사하였습니다.이승택은 1932년 함남 고원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 조각과를 졸업했다. (1997) (1973) 등에 참가하였으며, 90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측 커미셔너를 역임했다. 현재는 서울시립대 대학원에서 현대조각사를 강의하고 있다. 편역서로 《현대조각-전통과 혁신》, 저서로 《세계 여체조각사》가 있다.한국 실험예술의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는 노년의 ‘청년’ 작가 이승택. 반세기에 걸친 그의 장구한 예술의 궤적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름 석 자는 미술계에서는 아직도 생소한 듯하다. 그것은 아마도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 경향과 차별되는 표현 이념과 그 양식이 갖는 독창성 때문일 것이다. 조로화 현상에 쉽사리 물들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작업을 통해 늘 신선함을 가지는 작가 이승택을 만나 그의 예술세계를 들어본다.1950년대 인천의 맥아더 장군상 제작 이후 헝겊·불·장독 등 자연 소재를 사용하는 환경적 설치작업과 행위예술로 접어든 것은 70년대라 할 수 있는데, 71년 시립중앙정보센터에서 가진 첫 개인전의 전시 작품은 어떤 경향이었나.나의 작품은 당시로서는 무모하다 싶을 정도의 실험으로 가득찼었다. 난 발언하고 싶었다. “손대지 마시오”가 아니라 “이 물건으로 무엇을 만들어도 좋습니다”라고. 오늘에 와서야 이를 두고‘실험미술’이라 칭하기도 한다.그런 파격적인 전시에 대한 주위의 반응이 궁금한데 ….당시 우리 미술계는 60년대의 앵포르멜적 유행과 70년대의 모노크롬 성향들이 지배 담론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때문인지 그 당시 내가 노끈·로프·각목·비닐 등의 오브제들을 사용한 사실은 기성 작가들에게는 물론이고 평론가들에게조차 거북스러운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일종의‘반항’정도로 인식한 것이다.그렇다면, 화단에 팽배해 있던 고루한 지배 논리에 대해 본인이 제기한 미학적 논리의 근저에는 무엇이 있는가.내가 보기에 당시 우리의 현대미술은 뚜렷한 개성도, 확고한 목적의식도 없는 남의 것 따라하기의 반복판이었다. 우리의 문화구조가 독창적인 우리 것을 찾으려는 지적 작업에 무척이나 게으른 탓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빈곤한 편견에 대해‘비조각’‘반개념’의 구체화 작업으로 응수했다. 나의 그러한 개념틀은 고착된 것들을 과감히 해체하는 새로운 창조 과정의 중심축이라 할 수 있다. 그때부터 나에게는‘재야 작가’라는 꼬리표가 붙어다녔다.조각이라는 장르에 대한 재성찰 작업이 80~90년대 들어 자연이라는 확장된 공간을 통해 보여져 왔는데, 어떤 의미가 있는가?▲ 행위사진에 착색 1986 이승택은 연기 불 바람 대지를 소재로 하여 탈물질적 조각으로 불리우는 실험적 작품을 해왔다.환경과 함께 한 나의 행위작업은 변화와 실험으로 가득차 있었다. 동시대의 특정 장르와 표현양식에 구애받고 싶지 않았다. 뉴욕의 참여도 그런 의도에서 결정했다. 이 프로그램은 실험성이 강한 작가들을 지원하기 위한 취지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퍼포먼스의 정신이 그런 것이라 생각한다.최근 미술 대중 행사에 퍼포먼스가 빈번하게 등장하고 있다. 그 표현 형태도 연극·무용·음악·영상과 결합하여 무척이나 다양하다. 시대의 표정인 듯싶다. 신세대 퍼포먼스 작가들에게 한 마디 한다면?
서대문 형무소에 다녀와서학과 :학번 :이름 :담당교수 :서대문 형무소에 다녀와서가보지 않은 문화공간을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문화공간을 좋아하는 터라 거의 안 가본 곳이 없는 듯 했다. 아니면 내가 생각지 못한 문화공간을 찾지 못했을 수도 있다. 문화공간을 알아보다가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 이란 곳이 눈에 들어왔다. 형무소라는 말에 좀 무섭기도 하고 그래서인지 흥미를 불러일으키기엔 충분했다. 마침 어린이날에 행사를 한다고 하니 그때에 맞춰 방문하게 되었다.형무소라는 곳은 낡고 음침하고 그런 분위기 일줄 알았는데 역에서 내리면서부터 깔끔하게 정돈된 잔디밭, 빨간 벽면, 망루 에 한층 기대를 하게 만들었다. 일본 순사 복장을 한 사람과 유관순 복장을 한사람이 맞이해 주었다. 빨간 벽돌의 담을 지나서 체계적으로 관람 방향과 순서가 정해져서 효율적으로 볼 수 있었다.어렸을 때 독립기념관 같은 곳을 간적이 있는데 잘 기억에 남지는 않지만 지루했고, 그냥 교과서적 내용이구나! 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오늘은 들어서는 때부터 가슴 찡한 무언가가 느껴지고, 새로웠고 입시때 국사와 근현대사 공부를 열심히 했던 터라 독립활동 일지 등이 눈에 쏙쏙 들어왔다.처음에 간 곳은 추모의 장, 들어설 때 종이 태극기를 나누워 주길래 그것을 들고 일제의 침략에 저항하다 투옥되었던 서대문 형무소 설립 배경을 영상으로 보았다. 항일 저항사가 사건별로 정리 되어 있었고 강우규 의사가 남대문에서 폭탄을 투척한 의거장면이 첨단 영상 매직기법으로 진짜 생생하게 재현되어서 마냥 신기했다. 생각했던 것은 철창과 빨간 벽돌이었는데 제법 체계적이고 많이 준비가 되어 있더라.제일 기억에 남는 것들은 체험의 장이다. 박물관들과는 다르게 전시와 더불어 체험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 흥미를 끌기엔 충분했다. 지하로 내려가자 애국지사들을 구금하고 고문했던 악명 높은 보안과 지하 감방 고문실이 있었다. 들어서는 순간부터 비명소리가 재현되고 있었다. 좀 무섭기는 했다. 채찍으로 때리고, 손톱사이에 나무바늘로 찔러서 고문을 하고, 전기고문을 하고, 마네킹과 혈흔, 청각적 효과로 생생하게 재현되었었기 때문에 정말 가슴이 아려왔고 일본에 대한 분노가 느껴졌다. 처음부터 끝까지 놓치지 않던 생각은 애국지사들은 어떻게 저런 모진 고문을 감당해낼 수 있었을까, 나라면 할 수 있었을까, 특히나 유관순은 같은 여자이고, 고등학생 이였다는 점에서 나에게 존경스러운 인물로 확고히 자리 잡게 되었다. 얼굴만 내밀고 작은 관이 서있는 듯한 형상의 앉지 못하게 하는 고문은 정말 참혹했다. 들어가 보았는데 옛날 사람들은 키가 작았던지 나는 무릎을 구부려야 했다. 거기에 갇혀있으면 온몸이 마비가 된다고 하니 그걸 보고 있는 내 마음은 너무너무 답답하고 날 숙연하게 만들게 했다. 어렸을 때 박물관의 경험과는 달리 정말 나에게 와 닿는, 아는 만큼 보인다고나 할까.중간 중간 형무소 관리자들이 사진을 많이 찍어주었다. 때마침 포토 페스티벌 중이라는 것이다. 수갑도 체험하고 머리에 이상한 것도 쓰고 애국지사가 되어 큰 태극기 앞에서 사진도 찍었다. 그다음으로 옥사로 옮겨갔는데 실제로 안창호선생, 강우규선생이 구금된 옥사도 들어가 보았다. 한방에 7-8명이 들어가서 질병, 전염병이 제일 문제였다고 한다. 옥사에 싸늘한 기운이 애국지사의 자취를 느끼게 해주었다.재판체험과 사형체험은 가장 기억에 남았다. 애국지사를 이론적으로 기리는 것도 좋지만 직접체험을 하는 데에 많은 투자를 한 것 같았다. 사형 줄이 내려오고 밑에 의자가 자동센서로 내려가는데 그 위에 내가 앉았는데 섬짓 깜짝 놀라 소리도 쳤다. 그밖에 구멍 안에 내 얼굴을 넣고 버튼을 누르면 고문 받는 사람의 얼굴에 내 얼굴이 비춰서 마치 내가 고문을 받는 듯한 상황이 연출 되었다. 비명소리와 함께, 옆에서 지나가는 꼬마가 하는 말, “엄마, 무서운데 왜 이런 곳에 와?” 꼬마는 아직 이해를 못하겠지.추모비 앞에서 종이에 하고 싶은 말을 담아 실에 꿰고 불을 지폈다. 조국 독립을 위해 일제의 침략에 항거하다 순국하신 선열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나도 이번만큼은 추모비 앞에서 묵념을 하고 우리나라 독립을 위해서 일제에 항거한 애국지사들을 기리며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존경한다고, 선열들의 노력으로 우리 후손들이 이렇게 발전해서 잘 살고 있다고 진심으로 추모했다.추모하고 발길을 돌리는데 저 멀리 일본어로 대화하면서 입구로 들어서는 일본관광객이 보인다. 씁쓸함과 만감이 교차되었다. 여기서 그들이 조상들의 잘못을 대신 사과하고 반성해가는 날 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출입이 금지된, 조국독립의 한을 품은 채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간 선열들의 넋이 서려있는 사형장, 그 바로 옆에는 사형을 집행한 시신을 형무소 밖 공동묘지까지 몰래 버리기 위해 일제가 뚫어 놓은 비밀 통로가 있었다. 일제란 정말 잔인하고 치밀하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일제가 그들의 만행을 감추기 위해 패쇠했지만 다시 복원하였다고 한다. 그 밖에 여성만을 투옥시키려하는 지하 감옥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