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line)이란....미술에서의 선은 기하학에서의 선과 구별된다. 미술에서는 표정을 가진 역동적인 선을 의미하고, 기하학에서는 점과 점을 잇는 공간 측정의 수단을 의미한다. 조형요소로서의 선은 감정을 가진 ‘하나의 선’, 즉 표현적인 특수한 선을 의미한다. 마치 존 듀이가 ‘미적 경험’을 ‘하나의 경험’이라고 지칭하고, 그것의 독특한 표현적 의미를 부각시킨 것과 같은 뜻으로 그렇게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하나의 선(a line)’은 ‘일반적인 선(line-in-general)’, 즉 형을 이루고 있는 부분적인 선이나 설명적인 선과는 차이가 있다. 물론 ‘하나의 선’은 펜, 연필, 크레용, 막대기 등 끝이 뾰족한 도구로 만들어진 한정된 지면 위의 한 흔적이다. 기하학에서의 선도 ‘무수한 점들의 연속’이다. 이러한 정의에서도 선이 ‘역동적’이라는 점을 의식하게 된다. 하나의 선은 ‘행위성’ 즉 운동성을 내포하고 있다. 선을 긋는 데는 ‘어떤’ 행동이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표현적인 하나의 선은 방향(direction), 정위(ori-entation), 운동감 등의 에너지를 갖는다. 운동의 효과는 형의 연속에 의해서 얻어지는데, 이 형의 연속형태는 가늘고, 날카롭다. 때로는 선적이질 않고 모두가 집합적으로 한 개의 방향을 가진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의 선’은 움직임에 의해 만들어지는 한 행동의 표현적 흔적이다. 반대로, ‘일반적인 선’은 관찰자(보는 이)에게 보고되는 지각의 결과로서 이 형태들은 일정한 정위와 방향을 가진다. 우리가 지금 살피려는 것은 조형 요소로서의 ‘하나의 선’ 즉 의도가 분명한 표현적인 성질을 가지는 선에 관한 것이다.우리는 글씨를 쓰거나, 또는 모래나 흙이나 길 위에 표지를 하기 위해 선을 활용한다. 거기에는 근육운동이 필요하며, 그러한 선택적인 동작은 학습이 되어야 한다. 글씨 쓰기를 배울 때 선을 ‘잘못’그으면 그 문자나 단어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결과를 낳는다.선은 한 개인에게 자기 자신의 ‘의도’를 드러내는데 쓰인다. 이 때문 가지는 잠재력을 가지고 살아남게 된다. 그런데 미술에서는 선의 의미에 대한 합의가 문자에 있어서의 그것과는 다르게 작용한다. 미술가는 선의 특성에 대한 비법적?상직적인 기원에까지 직관적으로 그 약속들을 추구해간다. 그것이 아주 ‘표현적’이고 또 넓게 받아들여질 경우, 그 선은 사람들이 거의 즉각적으로 알아보고 이해할 수 있게 되고, 그것은 다시 새로운 시지각의 약속의 기초가 되는 것이다. 아동화나 현대 화가들의 직감적인 표현들은 특히 이 점을 잘 말해준다.선의 대표적인 성격은 길이이며, 속도와 도구의 변화에 따라 여러 가지 느낌을 가진다. 선은 긋는 속도의 빠르고 느림의 변화, 굵기의 변화, 농담의 변화, 도구의 변화 등으로 우아한 느낌의 선, 속도감이 있는 선, 단순한 선, 평범한 선, 복잡한 선, 강한 선 등의 섬세한 느낌을 표현할 수 있다.선은 점의 이동 방향이 일정할 때에 생기는 직선과 이동 방향이 항상 변화할 때에 나타나는 곡선으로 크게 나눌 수 있으며, 표현 방법상 기하학적인 선과 자유로운 손 그림(프리핸드) 선으로도 구분할 수 있다. 이 때, 기하학적인 선은 완벽하고 단정한 느낌을 주며, 손 그림 선은 자유로운 느낌이 들게 한다. 점의 이동방향이 일정하면 직선이 되고, 방향이 늘 변화할 때에는 곡선이 된다. 지그재그의 선은 간격을 두고 이리저리로 방향을 바꾸는 선으로, 각 부분은 직선이지만 성격은 직선과 곡선의 중간에 위치한다. 예를 들면, 정다각형의 변은 직선이지만, 변의 수가 많아질수록 원에 가깝게 된다.즉, 선은 모든 형의 대표자이다. 따라서, 직선계와 곡선계는 선의 큰 두 가지 계통을 이루는 동시에, 모든 형태의 기본적 성격을 결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왜냐하면, 모든 형태는 직선적이거나 곡선적이거나 또는 그 양자의 혼합에 의한 것으로 구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의 기능으로는 두 점 간의 연결 (지도에서의 노선도), 강조(밑줄), 상황의 변화(그래프), 사물과 사물의 경계(경계선), 거짓 존재와 외관의 표시(점선이나 윤곽선) . 수세기를 거치는 동안 한자의 경우는 좀더 구체적인 상형적 상징들이 점점 추상화되었다. 서양의 문자 형태들은 비록 묘사적이고 회화적인 기능을 상실하긴 했지만, 일정한 선의 조합과 기본적인 물질조건들의 관계를 알아볼 수가 있다.하나의 수직선은 바람이 없는 날의 나무와 같아 보인다. 또는 달리거나 떨어지거나 잠자고 있거나 죽은 사람들과는 반대로, 긴장하여 똑바로 서 있는 사람 같아 보이기도 한다. ‘수직’이라는 것은 운동감이 없는 것을 나타내며, ‘죽음’과는 대립되는 ‘생명’을 나타낸다. 수직의 의미는 더 나아가서 존엄성, 변화에 대한 저항, 시간의 무한성 등에까지 확대될 수도 있다.경험론적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지관적인 의미들은 궁극적으로는 인간이 직립하는, 즉 두 다리로 서는 동물이라는 사실에 입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인간이 수만 년의 진화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 오늘날 소위 인간의 본연으로 일컬어지는 것의 한 부분인 ‘수직 동물’에 이르는 ‘경험적인 반응’을 발전시켜온 것이다. 곤충이나 물고기, 또는 인간보다 오래된 다른 짐승들은 수직에 대해 인간과는 다른 느낌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예컨대, 언제나 몸체가 지면에 대해 수평상태로 되어 걸어 다니는 개의 경우는 ‘수직’보다는 ‘수평’이 인간과는 다른 개 나름의 좀더 일반적인 경험적 성격을 느끼게 할 것이다.‘수평’에 대한 연상적인 의미는 말 자체에 드러나 있다. 평원에 우뚝 솟은 산은 계속 이어지는 지평 위에서는 하나의 극적인 초점이 될 수 있다. 그 산은 또한 지평선에 의한 계속적 운동에 대해 하나의 차단물이 되기도 한다. 거친 파도의 형상은 바다의 수평, 즉 ‘고요함’을 깨트린다. 그래서 낭만주의 미술은 ‘질풍노도(tempestuousness)'를 상징화하기 위해 파도형태를 사용하기도 했다.어린이들은 흔히 6, 7세가 되면 그림을 그릴 때 ‘기선(base line)’을 구사하기 시작한다. 도화지 하단에 그리는 기선이라는 이 수평선은 우리들이 걷는 지면을 나타낸다. 또 우주론적인 의미로는 밑변 위에 얹혀 하나의 삼각형을 이룰 때, 또는 직사각형의 귀퉁이를 연결할 때만이 비로소 안전한 것으로 의식된다. 후자의 경우에, 그 사선은 하나의 트러스(truss)를 형성하여, 직사각형을 불안정한 나란히꼴로 찌그러뜨리려는 어떤 외부의 힘에 맞서 대항하여 버티는 안정감을 강화시켜준다. 건축자로서의 인간의 이러한 공학적인 연상에다가 번갯불 같은 톱니 모양의 대각선을 추가하면, 격변적인 의미들을 나타낼 수도 있다. 돌이나 나무의 균열이나 터진 곳에서도 역시 톱니 모양의 사선들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쓰는 도구나 자연에 있어서의 이러한 종류의 사선들은 붕괴와 파괴를 상징한다.곡선의 둥근 선들에 있어서는 그 의미가 대단히 복합적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직선보다 단정적?예측적이거나 또는 정확하게 측정 가능하지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성들만으로도 원, 타원, 곡선 등은 여성적인 느낌이나 의미와 연결되어진다. 부드러운 곡선은 생명력과 여성을 상징한다. 둥근 선들은 특히 남성에게는 에로틱한 자극을 불러일으키며, 출산 및 양육과 연결되는 여성의 신체적 특징을 연상시켜주기도 한다. 남성 본위의 이러한 곡선의 해석도 이제는 여권론자들의 주장 때문에 최근에는 대체로 남녀 모두에게 공통적인 것으로 해석되는 경향이다.‘곡선’, 예컨대 유선형이나 나선형은 일정한 자연현상의 ‘운동성’을 암시한다. 광선은 직선으로만 나가지만, 물은 물체의 주위를 맴돌아 흐른다. 그래서 곡선을 ‘유선(流線)’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흐르는 물줄기는 여러 모양의 소용돌이와 동심원들을 갖는다. 사람의 귀도 소용돌이 모양으로 생겼다. 소의 뿔, 이오니아식 석주, 소라껍질도 그러하다. 신생아는 갓 태어날 때는 ‘소라껍질’ 형태처럼 나선형의 자세로 태어난다고 한다. 그래서 어떤 원시인 문명에서는 나선형의 장식이나 부적이 여성의 다산을 촉진하는 데 효험이 있다고 믿어지고 있다. 오늘날 뉴욕이나 파리의 초현대 문명의 여성들도 나선형의 장식용 목걸이를 즐겨 걸고 다닌다. 아마도 하나만의 자녀를 갖는 것마저도 고 형태의 양감과 운동을 묘사하기 위해 어둡거나 악센트가 주어진 선들을 구사하고 있다. 그림자 부분을 없애버림으로써, 부드럽고 통통한 멋쟁이 신사에게서 고전적인 우아함이 드러나고 있다. 앉아 있는 인물의 두 손은 서로 맞잡고 있는 형태를 이룬다. 그의 모습은 뚱뚱한 얼굴과 더불어 대단히 정확하고도 단순한 선으로 완성되어 있다. 자연주의 관점에서 볼 때에도 피카소는 이 작품에 힘을 주기 위하여, 기본적인 주상형태(자연형태 속에 내재하고 있는 공 모양, 원뿔 그리고 원통)를 처리하는 방법을 구사하고 있다. 여기에서 앉아있는 인물의 머리에 갸우뚱하게 씌워진 모자는 얼굴의 특징에 매력을 더해준다. 이는 반대로 서있는 인물이 쓰고 있는 모자의 각진 선이 이중 턱의 맥 빠진 둥근 모양을 완화시키는 일을 한다.선의 흐름은 운동감을 느끼게 하여 준다. 단순한 흑이나 백의 선은 그만큼 단순하고 명쾌한 운동감을 보여준다. 그러나 선이 좀 복잡한 모습을 띠게 되면 그 운동감이나 표정은 그만큼 심도가 깊어진다.그림 θ-4. 앨버즈, , 1934년선이 면과 결합되면 이러한 성격은 좀더 색다르게 전개된다. 그림 θ-4에서 그러함을 엿볼 수 있다. 이라는 제목의 작품들로 잘 알려져 있는 추상화가 앨버즈는 목판화 에서 달걀 모양의 구도를 보여주고 있다. 이작품은 평평하고 대조적인 면들이 만남으로, 간접적으로 생겨난 선들을 보여주고 있다.앨버즈는 이 작품에서 선과 형이 관찰자의 지각과 함께 작용하게끔 처리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병치되어 있는 형태들에 의해 생겨난 ‘선들’과 계란형의 선으로 이루어진 ‘형들’을 선택적으로 보게 된다. 왼편의 수직 타원과, 가운데와 오른편의 수평타원은 서로 대립되어 있다. 또한 음(陰)의 형(negative shapes, 채색되지 않은 타원들), 즉 딱딱한 물체가 아닌 형들과, 양(陽)의 형(positive shapes, 색칠한 타원들)이 서로 엇갈려 있다. 그래서 우리는 보기에 따라서는 자연형상의 물고기를 ‘볼’수도 있다. 위쪽의 진한 검정 부분은 수면(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