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어중문학 학사논문중국5세대 영화감독 연구1. 서론2. 제5세대의 등장(1)중국영화에서 5세대의 개념 및세대구분(2) 5세대 감독 탄생의 내외적 조건(3) 그리고 5세대의 등장(4) 5세대 감독들의 이전 세대와 다른 특징(5) 정부의 탄압으로 인한 영화산업의 침체(6) 영화인들의 변화3. 장예모와 첸카이거의 작품세계(1) , 그 충만한 감성(2) 와 두 감독의 변화(3) 이국적인 정서의 매력 - 민속영화(4) 동양적 심성에 따르는 비판4. 결론1. 서론1976년 천안문 광장에서 자유를 요구하는 학생과 대중들의 시위로 문화혁명이 종지부를 찍으면서 마오쩌둥(毛??) 정권과 사인방이 무너졌다. 정치적으로 가장 우울했던 암흑의 세월이 끝나면서 중국 영화도 어느 정도 자유를 되찾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속에서 ‘제4세대’라고 불리는 감독들이 다양한 실험정신으로 역사의 비극인 문화혁명으로 망가져버린 진정한 인간의 모습을 되찾고자 하는 책임감으로 무장하고 있는 듯이 보이기도 했다. 이들은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물음을 제기했으며, 경직되고 생기를 잃어버린 당의 정책을 위해 존재하는 수단이 아닌 인간을 위한 예술로서의 새로운 모습을 추구하고자 했다. 이러한 선배들의 영화를 배우고 뒤를 이은 사람들이 바로 제5세대 감독들이다. 그들은 자라난 사회와 시대를 영상에 담고자 하였고, 1985년 첸카이거(陳凱歌)의 가 로카르노 영화제에 입상하면서 세계의 눈길을 받기 시작하였다. 또한 장예모와 티엔주왕주왕(田壯壯) 등이 가세하여 과 이 각각 베를린과 베니스 영화제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리며 중국 영화의 전성시대를 이루게 되었다. 그러나 5세대 감독들은 저마다 다른 개성의 소유자이다. 그들이 영화계에 입문한 시기와 배경이 비슷할 뿐 확연히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영화 이론적 토대나 작품들의 공통점은 적은 편이다. 하지만 이들 5세대들이 중국 영화에 끼친 영향은 공통적으로 가치가 있다 하겠다. 여기에서는 5세대 감독들이 중국 영화사에서 이루었던 초월과 혁명을, 감독들이 현실에 대한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이 신 중국 성립이후에 태어난 이들은 몸소 문화혁명을 체험했다. 첸카이거, 티엔주왕주왕, 우즈니우(吳子牛), 장예모 등은 모두 문화혁명의 시기에 농촌 혹은 변경에서 노동을 하거나 군인으로 일했다. 그들은 이러한 생활체험 안에서 중국 서민의 생활을 충분히 체득했기 때문에 중국의 현실 및 전통, 지방의 풍속과 민간의 전설, 그리고 서민의 의식주를 비롯하여 그들의 연애와 성(性)에 관해서까지 잘 알게 되었다. 생활은 창작의 근원이 된다고도 한다. 5세대는 이전 감독들이 체험하지 않은 생활을 경험하며 미와 생활의 관계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이다.)사회가 개방되는 분위기 속에서 정식으로 영화 학교에 입학하여 영화에 관한 비교적 체계적인 이론을 배우고 실험적인 시도를 통해 영화 창작 능력과 기술을 배양한 5세대 영화인들은 영화가 정치에 종속되고 정치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과거의 영화 관념에서 탈피하여 영화 자체의 예술적인 의미 부여와 작가 자신의 개성적인 심미활동을 강조하면서 의욕적인 영화 제작에 열중한다.) 또한 5세대는 이전 세대와는 달리 졸업 후 오래 기다리지 않고 감독으로서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는데 거기에는 몇 가지의 요인이 있었다. 한 이유는 그들이 감독이 없는 변방의 작은 스튜디오로 자원해서 갔기 때문이다. 첸카이거는 한 인터뷰를 통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졸업 후 나는 2작품의 조감독으로 일했다. 그 후 나는 계속 다른 영화 제작소로 옮겨갈 기회를 찾았다. 나는 베이징영화제작소에서 일했는데 이곳은 너무 큰 제작소여서 너무 많은 선배 감독들이 계시고 나에게는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그들은 스텝도 부족하고 설비도 정비되어있지 않은 변방의 작은 제작소에 들어가 자신의 위치를 확보했다. 5세대의 첫 작품으로 알려진 장쥔자오(張軍釗)의 (1984)은 광시(廣西) 영화 제작소에서 만들어졌고, (1984)역시 광시 영화 제작소에서 만들어졌다. 또 다른 이유는 의 4세대 감독 우티엔밍(吳天明)이 시던 80년대 말에 (1987), (1988)를 발표하면서 주목을 받았던 저우샤우원, 이탈리아 신현실주의의 영향을 받은 (1992), (1996) 등의 작품으로 호평을 받은 닝잉 등이 있다.5세대 감독들의 초기 활동에 돌파구가 되었던 작품은 1983년 광서 영화 제작소에서 장쥔자오가 제작한 이었다. 이 영화는 정지되어 있는 듯 한 특수한 배경을 성절하고 그 속에 여덟 명의 죄수들과 반역자의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죄수들과 함께 수감된 한 명의 팔로군(중국 항일전쟁 시기에 화북에서 활약하던 중국 공산당군)지도원이라는 인물을 통해 그들의 특이한 관계를 그리고 있다. 팔로군 지도원은 항시 죽음을 당할 수 있는 상황에 처해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생사보다는 항일구국에 대한 열정에 사로잡힌 인물로 그려지고 그의 영향을 받아 죄수들의 태도가 결국에는 항일의 흐름으로 바뀌면서 동요된다는 내용이다. 결국 이 영화는 ‘하나’와ㅑ ‘여덟’이라는 특수한 울타리 안에서 공산당원의 절개와 중국인의 민족정신의 선양을 주제로 삼고 있다. 에 뒤이어 첸카이거의 , 우즈니우의 , 티엔주왕주왕의 ,이 발표되었으며 국내외 영화계에서 제5세대 감독들의 작품에 대한 관심도가 부쩍 높아져갔다.)(4) 5세대 감독들의 이전 세대와 다른 특징“외국에 주로 알려진 5세대와 우리 3세대는 길이 다르다. 5세대가 이해하는 중국은 문화대혁명뿐이지만 우리는 항일전쟁, 2차 대전, 국민당치하의 역사를 모두 겪었다. 5세대는 중국에서 가장 어두웠던 시기만을 보았지만 우리는 투쟁으로 어둠을 밝힌 시기도 겪었다. 그러니 그들 세대와 나의 관념은 다를 수밖에 없다. 5세대는 처음 영화를 시작하면서 인물이나 줄거리보다 형식을 중시했다. 나는 그들에게 중국 역사의 현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감동적인 혹은 유머러스한 희망에 넘치는 인간형이지, 스타일이나 외형이 아니라고 늘 말한다.”(씨에진))이렇듯 많은 이들에게 찬사와 함께 비난을 받고 있는 5세대 감독들이 보여주는 그 이전 세대와는 다른 영화의 특징은 무엇인가? 우선 이들을다. 그것은 어쩌면 불균형의 구도나 색채의 표현주의와도 연관될 수 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그들 영상에 대한 ‘비판적 의식’이 ‘집단의 미학’을 역동적으로 표현한 힘찬 카메라워크와 밀착되어 구축되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에서 보여주는 집단의 춤, 노래, 작업,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는 카메라의 집요한 추구가 ‘힘의 영상’을 창출해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힘의 영상’이 다른 어떤 서구의 예술영화들과 중국의 새로운 영화들을 차별화시켜주는 것이라고 하겠다.)또한, 시대에 따라 역사에 대한 이해의 각도가 변한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제4세대와 제5세대의 차이를 통해 증명할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제4세대 감독들은 현실생활 묘사를 중시하면서 현대인과 현대생활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건들을 다양한 각도에서 다루었다. 그러나 그들은 영화의 전통적인 양식과 표현 수법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비해 제5세대들은 새로운 소재나 이야기, 표현 수법을 들고 나와 단시간 내에 영화계를 뒤흔들면서 주도하게 되었다. 이들은 시종일관 강한 색채와 독특한 구도로 시각 효과를 부각시켰고, 전통적인 연극적 서사양식 체계나 윤리화에서도 벗어났다. 그러면서 개방적인 구조와 보편적이지 않은 영상을 이용해 문화, 역사, 권위체계에 대한 의심과 불신을 표현했다. 이들의 영화는 주로 상반되는 개념들이 충돌하는 형태로 그려지는데 예를 들면, 진보?낙후, 문명?야만, 이성?광분, 독립?맹종, 과학?미신, 압력?반항, 봉건?반봉건 등의 사이에서 생겨나는 모순들이 영화서사의 핵심이 된다. 이러한 특징들은 장예모의 작품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의 작품인 (1990)에서 보이는 것처럼 전통적인 인성, 윤리도덕에 대한 과감한 도전은 전통의 한계를 넘어서는 일종의 혁명과도 같은 것이다. 제5세대 감독들은 이렇게 작품 속에서 과거의 역사와 민족의 전통, 윤리체계를 새롭게 그려나가는 시도를 해냈다. 무엇보다도 자신들의 작품을 통해 역사와 전통에 대해 깊이 반성할 수 있는 기회를없는 곳에서만 순수한 중국 영화를 만들 수 있는 형편이다. 중국 정부의 태도가 변화하지 않는 한 앞으로도 외국의 제작 지원을 받아 외국에서 상영되어야 하는 중국 영화는 계속 될 것이다.)3. 장예모와 첸카이거의 작품세계(1) , 그 충만한 감성첸카이거가 (1986)에 이어 (1987)을 발표했던 해에 장예모는 을 감독해 화제를 모았다. 과 가 제5세대의 작품으로 주목받고 있을 당시 그는 이미 , , 에서 인정받는 촬영감독으로 독특한 화면 구도를 잡아내면서 자신의 입지를 굳히고 있었다. 그는 극단적이면서도 대담하고, 간결하면서도 세련된 구도를 통해 강렬한 영상을 그려냈으며 자기만의 독특한 조명과 색채의 운용으로 인상적인 작품을 만들었다. 에서는 흑과 백이 중심인 판화 형식의 색채를 이용해 거친 화면이 주는 독특한 효과를 창출했고 에서 발단 부분에 등장하는 고원의 중첩 화면을 통해 이른 아침과 저녁 무렵의 황토빛 대지를 강조했다. 아울러 그 안에서 온화함과 평화로움을 느끼고 희망을 자아내게 함으로써 작품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한층 북돋아주었다.장예모는 촬영기사로 일하며 갈고 닦았던 기량과 개성을 첫 작품인 에서 마음껏 발휘하였다. 영화의 도입 부분인 경쾌한 가마행렬, 조부와 조모의 결합 장면, 술의 신을 위한 제사 장면 등을 세련된 영상과 단일화된 구성으로 엮어 나갔다.의 줄거리는 매우 간결하다. 붉은색으로 치장한 새색시의 가마 행렬과 함께 ‘나’의 시각을 통해 서술되는 옛날이야기는 조부와 조모의 사랑이야기다. 감독이 의도적으로 조성한 연극적인 연출 안에서 인간관계 또한 그다지 복잡하지 않게 그려진다. 단일한 서사와 화려한 영상은 감독이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와 함축적인 의미를 말없이 관객에게 전달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장예모는 노골적으로 역사적 전통, 봉건질서에 대한 반항적인 의도를 표출하면서 중국 전통문화의 병폐를 드러낸다. 중국 역사에서 장기간 지속되어온 봉쇄와 압박의 잔재는 인간의 육체와 정신 속에 녹아들어 왜곡된 형태로 나타나며, 이러한 .
REPORT세계는 평평한가?세계는 변화한다. 과거에도 그래왔고 지금도 그러하며 미래에도 또한 변화할 것이다. 축복받은 자유의지와 함께 욕망을 가지고 있는 한, 변화하지 않는 인간은 없다. 과거에 지구는 끝이 있는 테이블 같은 모양이었고 1633년 갈릴레이가 ‘그래도 지구는 돈다.’ 고 말했을 때 지구는 둥근 모양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책의 저자인 토머스 L. 프리드먼은 다시 세계가 평평해졌다고 역설한다. 세계가 평평하다는 말은 곧바로 세계화 혹은 글로벌화 등으로 달리 설명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세계가 다시 ‘평평’해졌다는 표현 이외에 현재 우리의 상황을 더욱 확실하게 나타내며 대비를 촉구하는 말이 있을까. 서평을 쓰는 데에 이 책을 선택한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이미 우리들은 학교에서, 신문에서, 그리고 뉴스에서 지구촌 사회, 혹은 세계화에 대한 개념에 익숙해있다. 하지만 그러한 세계화를 주도하는 계층(신분여하가 아닌 활동수준의 여하로) 이외에는 과연 세계화가 우리에게 어떤 변화된 사회를 가져오고 있는지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드물다. 저자 프리드먼은 바로 대다수의 변화에 대비하지 못하거나, 변화에 대비하고 싶은 사람에게 세계화의 원인과 그 영향력이 미치는 중요성에 대해 충고하고 싶어 한다. 그에 따르면 세계를 평평하게 만드는 열 가지 동력이 있고 동력들을 유기적으로 융합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몇 가지 요소들이 있다. 또한 세계를 평평하게 만드는 동력이 융합된 상황에서 90년대 냉전체제에서 개방경제로 노선을 돌린 국가들이 대거 세계시장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 세 가지 조합을 저자는 삼중융합이라고 정의한다.평평해진 세계란 경제적 활동공간을 평평하게 만들어 누구나 공정한 경쟁을 펼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저자가 제시한 열 가지 동력은 활동공간을 평평하게 하는 힘이다. 베를린 장벽 붕괴와 윈도즈의 출현은 여러 가지 의미의 자유를 촉진했고 공통의 표준체계를 만들어 확산시키기도 했다. 세계가 평평해지는 첫 걸음이다. 넷스케이프 출시는 일반인도 인터넷에 접속하여 정보를 얻을 수 있게 하였다. 그리고 워크플로 소프트웨어는 전반적 시스템의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하였다. 다시 말해 우리는 컴퓨터와 인터넷만 있으면 집안에서도 다른 사람의 작업을 검토할 수 있고 협력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의 콘텐츠를 내 것으로 만들 수도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우리가 컴퓨터에서 쓰는 프로그램들이 서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또 다른 세계화의 동력으로는 오픈소싱, 아웃소싱, 오프쇼어링, 공급사슬, 인소싱, 인포밍, 마지막으로 다른 동력들이 더욱 힘을 얻게 도와주는 촉매의 역할을 하는 스테로이드 요소들이 있다. 이러한 동력들은 사실 현재 뿐만 아니라 과거에도 존재해왔다. 그러나 이들이 지금에 와서 폭발적인 융합 효과를 얻을 수 있게 된 것은 앞서 말한 삼중융합에 의한 것이다. 열 가지 동력들이 만들어낸 평평한 활동공간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수평적 협업 등의 비즈니스 양식이 생겨나고, 그런 양식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등장하여 보다 높은 가치창출을 이루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저자가 세계화 2.0 시대라고 말하는 지난 20세기는 수직적이고 통제에 익숙한 조직을 가진 회사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PC와 인터넷, 광섬유를 기반으로 세워진 세계화 3.0 시대는 협력을 통해 가치를 생산하는 수평적인 연결을 중시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기계나 문명만으로는 비약적인 발전을 도모할 수 없다. 새로운 기계에 접목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기술과 새로운 비즈니스 프로세스가 나타나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하여 이제는 누가 절대 강자이고 약자인지 정의내릴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미국은 아직도 경제적인 부분에서 세계 최강국이지만 GDP가 1/20 밖에 되지 않는 인도의 기업이 미국 내에서 미국인을 아웃소싱하여 쓰는 경우도 생기기 때문이다.물론 세계가 평평해져서 국경에 신경 쓰지 않고 최대한 이익을 찾을 수 있는 방법만을 최상의 가치로 여긴다면 어느 순간 자신은 세계화의 어디쯤에 있는지, 자신의 정체성은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될 수밖에 없다. 이렇듯 새로운 관행, 즉 ‘수평화’가 세계 시장 전반에 효과적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다시 새로운 시스템이 필요할 것이다. 또한 평평해진 세계무대에서 어떠한 가치와 규제가 보존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떠한 것이 사라져야 하는지에 대하여 진지한 고민을 시작 할 때가 온 것이다.저자는 기존의 잘 정비된 체제와 시스템, 안정이라는 과거의 유산을 물려받지 않은 나라들, 즉 중국, 인도, 동아시아와 동유럽 국가들이 평평해진 세계에 더욱 잘 적응할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일리 있는 말이다. 프리드먼의 비판대로 과거 2차 세계대전 후에 거의 유일하게 피해를 입지 않았던 미국은 냉전체제에서 승리하며 거의 유일무이한 성장을 이루었다. 그러나 세계무대가 평평해지고 있는 이때, 대다수 미국인들은 과거의 영화에 젖어 위기의식을 갖고 있지 않다. 저자는 그들이 아직도 중국 상하이에 사는 천재로 태어나느니 미국 지방도시의 평범한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이 훨씬 더 풍족한 삶이라고 믿고 있다고 말한다. 이들에게 수평적인 시스템을 도입하려면 오랜 시간과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들어갈 것이다. 반대로 이제 막 시장을 개방한 중국과 인도 등 소위 개발도상국들은 바꾸어야할 시스템이 적다. 그 나라들은 빠른 속도로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체제를 흡수하며 미국인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특히 프리드먼은 인도와 함께 중국의 무서움을 잘 설명해주고 있었다. 중문학과 중국학을 전공하는 나로서는 알면서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부분이었다. 중국의 무서움은 접하기 시작하면 경계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본문 중에서그러나 중국 역시 영원히 높은 지식을 지닌 젊은이들의 저임금 전략으로 평평해진 세계에서 경쟁할 수는 없다. 아직까지 인도와 중국은 자국의 인력 대부분이 미국 등의 선진국에 아웃소싱되어 일하고 있다. 고부가가치를 만드는 높은 연봉의 직업은 아직도 미국의 본사에 있지만 위의 말대로 중국은 단지 만드는 법뿐만 아니라 기술 자체를 익히고 나아가 그 시장을 지배하기를 원한다. 결국 끊임없는 발전과 성과를 내려면 스스로 자신을 대체할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야만 한다는 말이다. ‘대체할 수 없는 사람’이란 ‘그의 일을 아웃소싱할 수 없는 사람’ 이라고 프리드먼은 말한다. 그가 제시하는 대체할 수 없는 사람은 ‘특별한(special)’ 노동자, ‘전문화된(specialized)’ 노동자, ‘자리 잡은(anchored)’ 노동자, ‘적응을 잘하는(really adaptable)’ 노동자이다. 이제 여기서는 우리가 과연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가가 문제가 된다. 특별한 노동자는 말 그대로 절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사람이다. 마이클 조던이나 빌 게이츠처럼 세계 최고의 소득을 올리며 전 세계 시장을 상대로 자신의 재능을 팔 수 있는 사람들 말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인류 전체를 통틀어 유일한 가치가 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란 정말 60억분의 1의 확률이다. 그렇다면 전문화된 노동자의 위치를 노려볼 수 있을까. 이들은 지식을 기반으로 한 노동자들이다. 전문의, 변호사, 엔지니어 등 점차 수요가 늘어나지만 대체할 수 없는 직업의 사람들이다. 전문적인 뇌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수술 자체를 인도나 중국에서 아웃소싱 할 수는 없으니까.앞의 두 가지가 될 수 없더라도 서비스 등 상호관계를 중점으로 한 직업은 소비자와의 신용관계를 중요시 하므로 쉽사리 대체될 수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끊임없이 노력해서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될 수 있다. 정보 시대에서 타인에게 뒤떨어지지 않도록 언제나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여, 자신의 일이 아웃소싱 될 수 있다 하더라도 곧바로 새로운 기능으로 시장에 적응할 수 있는 사람이다. 결과적으로 세계는 이미 평평해지기 시작했고 남에게 대체될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은 이 무대에서 도태되고 말 것이다. 그 변화는 인류의 역사 어느 때보다도 단호하게 이루어질 것이며 점점 심각해질 것이다.프리드먼은 우리에게 경고하며 또한 희망을 이야기한다. 한 번 세계화의 바퀴가 굴러가기 시작한 이상 이는 멈추지 못한다. 핵전쟁이라도 일어나지 않는 이상 역사는 과거로 퇴행할 수 없다. 풍족함과 오락과 경쟁을 알게 된 중국 사람들이 더 이상 과거로 돌아가려 하지 않으려 함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평평해진 세계는 우리들이 정면으로 받아들이고 도전해야 하는 과제이자 더욱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분명 국경 없이 오로지 더 큰 목표와 이익을 추구하려는 행위는 다른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앞서 말한 자아 정체성의 혼란이나 아니면 점점 격차가 벌어져가는 빈익빈부익부 현상 등이다. 그러나 저자는 평평한 세계를 위한 시스템과 그에 맞춘 우리의 노력이 함께 한다면 세계화는 우리에게 더 큰 빛을 가져다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REPORT―중국인터넷 시장 현황1. 잠재된 인터넷 시장, 중국중국은 현재 5,600만 명의 인터넷 인구를 보유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절대 사용자의 규모로는 2위의 인터넷 강국인 셈이다. 중국인들은 다양한 정보를 획득(47.6%)하기 위하여 인터넷을 주로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그 밖에도 인터넷 사용의 주된 목적은 연예오락(18.9%), 사교(14.9%) 등으로 조사되었다.하지만 당초 중국 정부는 인터넷을 공산당 활동의 주요 홍보매체로, 혹은 경제성장의 도구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따라서 정보통신의 인프라 확장에는 큰 도움이 되었지만 내부의 소프트웨어 부분에 대해서는 정부의 강력한 통제가 생기게 되었던 것이다. 그 예로 내부적으로는 인터넷 이용통제를 강화하여 인터넷 이용을 저해하고 있다. 또한 홍콩, 영국 등 중국에 불리한 보도를 하고 있는 언론매체와의 인터넷 접속을 원천적 봉쇄하기도 했다. 1995년 인터넷 상용화 이후 사이버 검열 관련법은 60여 개에 이를 정도로 정부의 규제는 심해지고, 구글이나 알타비스타 등의 검색사이트도 폐쇄되는 지경에 이르렀다.중국 과학기술부는 86년 시작한 863계획(국가 첨단 기술연구발전계획)을 추진하며 15년간 생명과학, 통신설비, 고성능컴퓨터, 중문정보처리시스템, 인공결정체, 광전자 재료 및 부품 등 6개 영역에서 국내외 특허 2000여 개를 획득하는 등, 인터넷 이용률 증가를 배경으로 인터넷 운영에 대해서도 국제적 영향력 확대를 도모중이기도 하다. 이러한 중국 정부차원의 인터넷 시장은 주로 경제 분야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 산업화와 같은 맥락에서 정보화를 추진하고 있다고 생각 할 수도 있겠다.한편?중국의 인터넷 시장은 정부의 이러한 강력한 규제정책에도 불구하고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중국 전자상거래 시장규모는 아직 초기 단계이나 인터넷의 시장의 빠른 발전과 함께 향후 대폭 성장할 전망이다. 2000년 중국의 전자상거래 시장규모는 4,000만 달러(전 세계 규모2,690억 달러)로 전년 대비 6배 확대된 규모이며, 이는고 있으며, 대금결제 형태에 있어서는 물품을 받은 뒤 현금으로 지불하는 방식이 38%로 가장 선호하는 방식이다. 이렇듯 중국 네티즌들의 구매 품목은 서적, 소프트웨어제품, IT제품, CD등이며, 전자상거래를 경험한 네티즌의 69%가 온라인 서점에서 서적과 잡지를 구매한 바 있으며, 38.3%는 오디오 관련 제품들을 구매했으며, 33.2%가 컴퓨터 관련 제품을 구매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중국의 B2C시장도 이제는 점차 인터넷 전자 지불 방식이 확산됨에 따라 규모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까지 많이 사용되고 있는 물건 인도 후 결제방식은 전자상거래 업체들의 경영을 압박하므로, 기업들은 인터넷 전자결제를 선호하고 있으며, 중국 은행들의 결제 시스템들도 날로 발달하고 있다. 또한, 중국 B2C사이트들은 점차 전문화를 이룰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B2B사이트들이 B2C도 같이 겸하는 경우도 많지만, 앞으로는 전문화된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다.현재 중국 인터넷 산업이 발전 국면에 접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전체 중국 인구와 대비해볼 때 아직은 미미한 수준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2000년도에 인터넷을 이용한 사람은 불과 중국 전체 인구의 1.3%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는 전체 인구의 40.6%가 인터넷을 이용한 성숙 단계에 이른 호주 시장에 비해 매우 저조한 수치이며, 현재의 발전 추세를 고려할 때 향후 중국 인터넷 산업의 발전에 높은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다. 이것은 2004년 1월부터 11월, 중국 내 초고속인터넷 접속 사용자가 2,286.3만 가구이며 그 중 ADSL 사용자는 1,636.3만 가구로 모두 전년 말에 비해 1배 증가했다는 통계로 알 수 있다.중국의 인터넷 접속 환경을 살펴보면, 모뎀을 이용하는 방법과 전용회선을 이용하는 방법이 주를 이룬다. 2001년 6월에는 모뎀과 전용회선을 이용한 접속방법이 각각 67.7%, 17.1%로 모뎀을 가장 보편적인 접속수단이었다. 그러나 1년 뒤인 2002년 6월에는 그 비율이 모뎀은 58%, 전용회은 중국의 지역별 초고속인터넷 사용자 분포는 여전히 경제적 차이로 인해 불균형적인 특징을 보이고 있다는 뜻이다. 초고속인터넷 사용자들이 주로 동남 연해지역에 집중되어 있는 상황이 철저히 개변되지 못했다. 광동, 절강, 상해, 북경 등 7개 성과 도시의 초고속인터넷 사용자들이 거의 중국 전역 초고속인터넷 사용자의 절반을 차지한다. 따라서 초고속인터넷 시장구조를 조정하고 초고속인터넷의 잠재시장을 활성화하는 것이 다음 단계 연구과제가 되어야 한다.?이처럼 중국의 인터넷 시장은 아시아에서 가장 큰 잠재시장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현재에도 인터넷 이용자 수 및 전자상거래 규모가 아시아 지역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강력한 규제정책을 비롯하여 낮은 수준의 인프라 및 온라인 정보보호 환경 등이 여전히 시장성장의 방해요소로 남아있다.앞서 보았듯이 중국 인터넷시장은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는 있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이나 미흡한 점 역시 적지 않은 편이다.2004년 중국 내 초고속인터넷 접속 서비스는 유선통신 네트워크 서비스의 돌파구로 차이나텔레콤, 차이나 넷콤 2대 유선통신 사업자의 적극적 추진으로 큰 발전을 가져왔다. 2004년11월말까지 차이나텔레콤의 초고속인터넷 사용자는 1,500만 가구에 근접하며 차이나텔레콤의 초고속인터넷 사용자 성장규율을 볼 때 2005년 신규 사용자 수가 1,000만 가구 좌우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차이나 넷콤은 CNC MAX 브랜드를 통해 2005년과 2006년 2년 동안 1,700만 가구의 신규 사용자를 유치하여 2006년 말 초고속인터넷 사용자 수를 2,500만 가구로 늘렸다.?그러나 초고속인터넷 사용자의 성장은 여러 가지 병목문제에 당면하고 있다. 신식산업부의 데이터에 의하면 2004년 상반기 국내 초고속인터넷 사용자는 매달 평균 8%의 성장률을 보였으나 3분기부터는 성장률이 5% 좌우에 불과했다. 여기에서 살펴볼 때 초고속인터넷 사용자의 성장이 현재 봉착한 문제점들은 주로 다음과 같다. ADSL Modem 성능 저하로 인해 인 정부의 의지가 인터넷의 발전을 촉진시켰다면, 정보에 메말라 있던 중국 국민들의 정보취득 욕구는 인터넷을 통해 유통되는 콘텐츠의 발전을 가져왔다고 말할 수 있다. 중국에서는 초고속 인터넷 망의 보급으로 인터넷 이용 속도가 빨라지면서 정보의 유통이 이전에 비해 훨씬 자유로워졌고, 이에 따라 새로운 유형의 콘텐츠가 속속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신랑(新浪,www.sina.com), 소후(搜狐,www.sohu.com), 왕이(網易,www.163.com), 중화왕(中華網, www.china.com) 등과 같은 포털사이트에서 초기에는 뉴스와 검색기능 등 제한적인 서비스만을 제공하다가, 점차 무료전자메일, 쇼핑, 오락, MP3, 개인 홈페이지 공간 등의 부가서비스가 등장하였으며, 최근에는 음악, 영화, 게임 등 멀티미디어 콘텐츠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중국 인터넷콘텐츠 시장은 1999년 말까지 포털사이트와 전문사이트가 주도권을 쥐기 위해 힘을 겨루는 시기였으나, 2000년 들어서 전문사이트들이 하나 둘 포털사이트에 흡수되면서 포털사이트 위주로 시장이 형성되게 된다. 현재 중국에서는 포털사이트 위주의 백화점식 공급 형태가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가운데, 영화, 음악, 게임 등 전문 사이트가 틈새시장을 공략하고 있는 상태이다. 각 사이트별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중국 국내 4대 포털사이트에는 인터넷에서 제공 가능한 모든 콘텐츠가 갖추어져 있으며, 소비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여기에 특정 분야의 전문적인 정보 혹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른바 ‘전문사이트’가 해당 분야에서 최고의 콘텐츠를 제공하면서 포털사이트와 경쟁하고 있기도 하다.대형 포털사이트는 대부분의 콘텐츠를 자체 생산하지만, 게임, 쇼핑, 단신문자, 동영상 ?등 일부 콘텐츠에 대해서는 아웃소싱이나 전략적 제휴를 통해 제공하고 있다. 전문사이트에서는 해당 분야에 대한 콘텐츠만 자체 생산하고, 부가 콘텐츠는 아예 제공하지 않거나, 제공 하더라도 단순화 또는 웹사이트 링크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편, 세계적인 경기 침체의 영향을 받아 중국 IT 산업도 상당히 위축된 분위기이기는 하지만, 인터넷솔루션 분야의 성장률은 여전히 높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인터넷콘텐츠 솔루션만 독립적으로 제공하기 보다는 각종 소프트웨어 개발 및 SI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에서 인터넷콘텐츠 솔루션도 함께 취급하고 있기 때문에, SI시장을 근거로 인터넷콘텐츠 제공업자의 동향을 살펴볼 수 있겠다. 중국 정부의 지원과 WTO 가입으로 인한 수요 증가, 그리고 SI 업체의 업무영역 확대 등이 인터넷 솔루션 시장의 성장 동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반면 경쟁이 격화되면서, 나눌 수 있는 파이가 줄어들자 야신(亞信), 허리진챠오(合力金橋) 등 중형 SI 업체는 콜센터와 CRM 시스템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고 있으며, 뚱롼(東軟), 션져우슈마(神州數碼) 등 대형 SI 업체는 소프트웨어와 컨설팅 시장으로 업무영역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이처럼 시장이 성숙해 지면서 중국에서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소프트웨어와 컨설팅 간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융합’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SI 업체 중에서도 인터넷 솔루션 분야에 강점을 보유하고 있는 회사는 자기 나름대로의 영역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인터넷 시장의 발전과 더불어 안정적인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海天軟件은 TOM.com 계열회사에 전자메일 시스템을 공급하였을 뿐만 아니라, 인도 회사인 NIIT와 공동으로 산동(山東)에 소프트웨어 인재육성 기지를 설립하였다. 또 북경에 본사가 있는 Uniways(龍尼維思)는 인터넷콘텐츠 관리시스템을 시장에 내 놓고, 중국전신, 263在線 등 10여 개 인터넷 업체에 각종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또한, 중국에서의 인터넷 영화는 영화전문사이트가 오프라인 영화제작사의 인터넷용 판권을 ‘중국 판권관리중심’으로부터 사들여 인터넷 관람객을 대상으로 웹사이트를 통해 제공하는 형태를 보이고 있다. 오프라인의 경우 영화제작사가 배급사 역할까지 함께 담당하는 경우가 많지만, 인터넷영화는 영화제작사에서 제작만
REPORT영화 : 파리대왕1. 시작2. 영화 ‘파리대왕’에서 볼 수 있었던 인간의 사회, 인간의 본성, 공포3. 영화 ;파리대왕‘에서 볼 수 있었던 여성 문제4. 끝1.‘파리대왕’은 영화로만 두 번을 보았다. 감상문을 쓸 영화를 고르는 도중에 사실은 ‘파리대왕’을 보고 싶지가 않았다. 이 영화는 파렴치한 범죄자가 나오지도, 장애인이나 외국인노동자 등 사회적 소수자들이 나오지도 않는다. 세상의 때를 덜 탔다는 아이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줄거리를 끌어나가고 있지만, 이만큼 내가 한 사람의 인간임을 비참하게 느끼게 해준 영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번 보고서는 원작이 말하려고 하는 방대하면서도 날카로운 비판들을 자세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한 번 ‘파리대왕’을 선택했고, 따라서 기억에 남았던 장면을 다시 볼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지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자괴감에 빠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파리대왕’의 원제는 Lord of the Flies로, 기독교의 성경에서 말하는 악마인 바알세불의 의미를 나타낸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파리대왕’ 속의 수많은 상징은 인간의 야만성-문명의 공존이나 정치적인 은유 외에도 다분히 기독교적인 해설이 가능하다. 이를테면 동굴 앞에 꽂아놓은 돼지머리와 그 주위를 날아다니는 파리 떼를 보고 마음속의 목소리를 들은 사이먼이, 그 사실을 다른 아이들에게 알리러 해변으로 뛰어가다가 도리어 아이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장면에서 사이먼을 순교자로 대입시키는 해석 같은 것이다. 하지만 나는 기독교인이 아니고 기독교를 잘 알지도 못하므로 영화를 보면서 생각했던 인간의 본성과 정치적 메타포를 위주로 감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전에는 알 수 없었던, ‘파리대왕’에서 제기될 수 있는 여성문제를 다시 한 번 찾아보려 노력했다.2.‘파리대왕’의 캐릭터를 보면 각각이 우리 사회에서 무엇을 나타내고 있는지 윤곽이 잘 잡혀있다. 우리가 감히 문명이라고 말하는 인간의 사회에서 맡은 정치적 역할들 말이다.지도력과 양심, 선한 마음을 지닌 랄프는 무인도에 도착한 소년들의 첫 번째 지도자가 될 수 있었다. 이성적이고 문명사회에서 습득한 질서와 규범을 실천하려고 하는 조직적인 인물이다. 소라고둥을 권위의 상징으로 내세우고 그것을 가진 사람만이 회의에서 발언을 할 수 있게 하자는 랄프의 주장에서 알 수 있다. 게다가 무인도를 지나는 배나 비행기가 볼 수 있도록 산에 연기를 피우고, 해변에 오두막을 짓는 등 랄프는 전형적인 민주주의 서구 문명을 보여주는 캐릭터이다. 물론 그것이 어른들의 행위를 어깨너머로 답습한 정도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랄프는 현실에 닥친 생존의 위협에 대해서는 라이벌인 잭에 비해서 미비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단지 구조를 기다리고만 있기에는 식욕이 한창인 소년들이 너무 많다.반면에 잭은 좀더 현실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사냥을 하고, 자신의 명령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랄프와는 다른 형태의 무리를 만들고 이끌었던 것이다. 랄프의 민주적인 형태의 조직이 시간이 갈수록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느낀 잭은 자신의 무리에서 독재자가 되었다. 그는 권위적이고 다른 소년들의 죽음에도 별다른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결국 자신의 무리 속으로 들어오지 않는 소년들에 대해서 강한 적대감과 공격성을 보이는 것이 마치 나치의 히틀러 같은 파시스트의 모습이었다.새끼돼지라고 불리는 뚱뚱하고 안경 낀 소년은 외모에서부터 아이들의 따돌림과 놀림을 받는다. 그러나 새끼돼지는 무인도에 표류한 소년들 가운데서 가장 도덕적이고 지식이 있는 존재이며 랄프와 마찬가지로 이성을 대표한다. 새끼돼지가 끼고 있던 안경 역시 여러 가지로 생각이 된다. 안경은 상대적으로 유식해 보이는 이미지를 띈다. 그 안경으로 놀림감이 되기도 하지만 지식을 대변하기도 하듯이 말이다. 또한 안경알은 불을 피울 수 있는 도구가 된다. 잭이 그를 따르는 소년들을 데리고 랄프를 떠나면서 새끼돼지의 안경을 훔치고, 랄프가 사용하지 못하도록 망가뜨린 것도 불은 인간에게 필요불가결한 재산이 되기 때문이다. 어쨌든 새끼돼지는 안경을 잃고 결국엔 어이없게 잭의 수하에게 죽임을 당한다.현대 인간 사회속의 이념과 대립이 소년 각각의 캐릭터로 정형화 되어 나타났다면, 소년들 무리 전체가 겪게 되는 투쟁, 야만성, 공포, 타락 등은 또 다른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바로 순수함의 상징인 아이들조차 이성과 문명이라는 껍데기를 벗기면 어떤 ‘것’이 나타나느냐 이다. 인간의 본성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과연 인간의 심연에 있는 것은 무엇일까. 생존의 문제와 공포의 위협으로 이성과 질서가 허울에 불과할 때,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억눌리고 있던 본성은 어떤 것일까. 어린아이들은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순진무구한 얼굴로 잠자리의 날개를 찢어버린다. 장난으로 상대를 죽이는 일은 짐승조차도 하지 않는데 말이다.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러 소년들의 타락은 극에 달한다. 타락이라고 표현해도 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몇 몇 소년들의 죽음으로 더 이상 살인에 두려움을 갖지 않게 된 소년들은 이제 무리지어 랄프를 ‘사냥’하기 시작한다. 그들의 편에 들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말이다.인간은 모두 끊임없이 악을 만들어내기만 하는 존재라고 한다. 하지만 선과 악을 잣대 짓고 사는 것은 인간뿐인데 과연 무엇이 절대선이고 절대악인지는 정의내리기가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영화의 끝부분에서 랄프를 사냥하던 소년들이, 무인도에 그들을 데리러온 어른들을 발견하고 나서 갑자기 천진하게 울음을 터뜨리던 장면이 기억에 남기 때문이다. 죄의식에 사로잡혀서 였는지 구조되었다는 안도감 때문인지는 알 수가 없지만. 결국 그토록 소년들을 공포로 몰아넣고 괴롭혔던 괴물이란 결국 이성을 벗겨내고 난 후의 인간의 본성이었을지도 모르겠다.영화의 첫 부분에서부터 등장하지만 큰 상처를 입고 빈사상태가 되어 전혀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다가, 나중에 동굴로 들어가 죽은 채 발견되는 유일한 어른이 있었다. 그는 나름대로 조화로운 질서를 잡았다가 마침내 반정부 상태로, 잭의 잔혹한 독재아래 야만스럽게 변해가는 소년들의 사이에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아이들이 도움을 바랄 수 있는 유일한 어른이면서도 아이들에게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는 채 죽어가는 중이었다. 그 어른의 의미는 무엇이었을지 고민해봤지만 정치적인 구도로는 해석할 수가 없었다. 그냥 무인도의 소년들과의 관계만을 놓고 보자면, 쉽게 공포에 먹혀버리는 어린아이들이 보기에 그는 이성과 질서로 아이들을 이끌 수 있는 성인이다. 그러므로 영화 속의 그는 불안한 대들보 위에 세워진 우리 사회의 죽은 희망이며 이상향을 나타내는지도 모르겠다.그렇다면 적지 않은 수의 아이들이 거의 다 잭의 독재 속에서 잔혹하고 야만적으로 변해가게 되었을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처음에는 무인도 생활에서 오랜만에 먹게 된 사냥한 고기의 맛이었을 수도 있다. 그들은 점점 굶주림의 위협을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한 번 피를 보고 두 번 보면서 자신들 속의 야만성에 눈을 떴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가장 큰 이유가 공포심이라고 생각했다. 소년들은 알 수 없는 괴물의 위협 때문에 어둠을 무서워하고 괴물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멧돼지를 죽여 머리를 꽂아놓기도 했지만, 오히려 두려움을 배가시키는 결과만 가지고 오게 되었다.비극적인 죽음을 맞게 되는 두 소년이 있다. 사이먼과, 새끼돼지라고 불리는 이성과 지혜의 상징 같은 캐릭터이다. 사이먼은 소년들이 무의식적으로 두려워하기 시작한 괴물의 목소리를 듣는다. 잭이 그 머리를 잘라 동굴 앞에 창대로 꽂아 놓은 돼지머리에서 말이다. 괴물-돼지머리는 마치 파리들의 대왕인 것처럼 주위에서 앵앵거리는 파리 떼의 한 가운데 있었다. 사이먼이 보고 들은 것을 아이들에게 전해주기위해 숨이 턱에 닿도록 아이들이 파티를 벌이고 있는 해변으로 뛰어가지만, 이미 밤의 어둠과 괴물의 공포에 사로잡힌 소년들은 마구잡이로 사이먼을 살해해버린다. 정말 숨을 멈추고 멍해질 수밖에 없는 장면이었다. 인간의 가냘픈 이성을 공포는 무자비하게 먹어치운다. 앞서 말했듯이 새끼돼지는 랄프와 함께 잭이 있는 무리의 은신처로 가서 설득을 하려다 다른 소년이 아무렇지 않게 밀어버린 바위에 맞아 끔찍하게 죽는다.
REPORT시장경제질서와경제법들어가는 말시장경제와 사유재산제로 요약되는 자본주의 경제체제는 지금까지 인류가 만들어낸 어떤 경제체제보다도 뛰어난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 그것은 자원의 효율적인 분배를 낳을 뿐만 아니라 인간들에게 기본적 자유를 보장하는 제도적 기반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유방임적 시장경제는 부의 집중과 독점을 유발함으로써 부자유와 비효율을 낳는 경향 또한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부정적인 측면은 19세기 후반에 특히 독점자본이 현저하게 증가하면서부터 드러났다. 경제법은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 그리고 바로 그 시기부터, 생성되고 발전된 법이다. 즉 경제법은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문제점을 극복하려는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며 시장경제의 타락을 방지하여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의 활력을 유지하기 위한 법이다. 또한 경제법은 시장에의 규제를 통해서 시장의 활력을 유지한다고 하는 모순을 안고 있는 법이기도하다. 적절한 규제는 시장의 활력유지에 도움이 되지만 과도한 규제는 시장의 잠재력을 잠식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경제법은 국가의 시장에 대한 개입을 정당화시키는 법이면서 동시에 개입의 한계를 설정하는 법이라고도 할 수 있다.이 레포트에서는 시장경제 속에서 발전한 경제법의 의의와 역할을 알아보고, 사회주의 국가로서 시장경제 질서를 받아들인 중국 경제법의 특징과 차이점에 대하여 비교할까 한다.1. 시장경제(자본주의경제)와 경제법의 의의자본주의경제는 자본 계급이 이윤 획득을 목표로 자유로운 활동에 의해 조직되는 경제를 뜻하며, 시장경제라는 말은 경제학상의 용어는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사회주의 경제를 계획경제라고 부르는 데 대한 자본주의의 경제를 부르는 말이다. 시장경제체제 하에서는 사유재산제도를 바탕으로 하여 개개인, 즉 경제주체가 자신의 책임 아래 시장에서 자유로운 생산과 구매를 할 수 있다. 그리고 자유로운 경제 활동 중에서도 가격이라는 요소가 작용하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나름대로의 질서를 유지할 수 있게 만든다. 가격은 시장에서의 상품매매를 성사시키고, 또 이것을 근거로 생산과 소비를 조정할 수 있으며, 자원의 효율적 배분에 영향을 끼치고 경제 구성원의 창의력과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한다. 따라서 자본주의경제에는 시장의 존재가 필수조건이 되는 것이다.초기 자본주의 경제학자들은 시장을 통한 자원의 효율적 생산과 분배 문제는 완전자유경쟁이라는 시장의 전제조건 하에서만 가능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완전경쟁시장은 첫째, 시장가격의 형성에 자의적 영향을 줄 수 없을 만큼의 다수의 공급자와 수요자가 존재하여야 하고 둘째, 거래되는 재화가 동질적인 것이어야 하고 셋째, 모든 경제주체가 거래하고자 하는 재화에 대해서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어야 하며 넷째, 해당 산업에의 진입과 퇴거가 자유로워야 하는 등의 4가지 조건을 만족시켜 주어야한다. 이 4가지 조건중 하나라도 만족되지 않는 것이 있으면 바로 불완전 경쟁시장이 되는 것이다. 불완전 경쟁시장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대두되는 것은 독과점 문제와 도덕문제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출현한 후 거대자본이 시장지배력을 집중 보유하게 됨에 따라, 이러한 독점자본과 경제적 약자 사이에 성립된 종속관계에 대처할 필요성이 생기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 독점자본주의의 불평등관계를 자유경쟁시장이라는 명목으로 방임할 경우, 자유경쟁의 공정성이 소멸되어 경제적 약자의 이익을 방해하고, 자유로운 경쟁 자체도 약화시켜 시장체제의 자동수급조절기능도 마비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독점자본주의의 폐단과 모순을 국가 차원의 규제를 통해 시정함으로써 국민경제라는 공동사회의 공동이익을 실현하려는 것이 바로 경제법이다.그러면 이런 전제 하에 경제법의 형성과 범위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자.2. 경제법의 형성과 범위현재의 경제법 개념은 20세기 초기 독일에서 형성되었다.세계 제1차 대전 중 독일은 전쟁 시 물자의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서 대량의 법규를 공포하게 된다. 1914년 8월 제국회의는 14항목의 전쟁경제법규를 통과시키는데 그중의 하나가《수권법(授權法)》이다. 그리고 1915년 《계약최고가격제한에 관한 통지》, 1916년 《전시국민양식확보조치령》등이 연이어 공포되었다. 그 후 전쟁으로 인한 자본주의경제의 위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종래 개인주의와 자유경쟁을 기초로 하는 시장경제체제 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결국 자본주의가 독점으로 치달으며 생겨난 자본주의 자체의 모순과 오류와, 과학기술의 발달로 급격히 확장된 사회경제규모는 수정된 시장경제체제와 새로운 법규의 제정을 요구하게 되었다. 그리고 영미법의 일부 국가에서도 경제법개념을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다수의 경제법 성질의 법규를 재정하게 되었다.이로 미루어볼 때 경제법은 경제현실과 관련된 역동적인 법이다. 전통적인 법률이론을 중시하는 민법이나 형법에 비하여 경제법은 변화하는 경제현실을 규율하는 법이므로 미래지향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경제법이란 국민경제 전체의 질서를 정당하게 유지하기 위하여 경제를 규율하는 법이기에 사회법에 속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경제법은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하고 그 폐해가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나타난 법 영역이기 때문에 전통적인 민법이나 형법에 비하여 그 역사가 비교적 짧은 편이다. 따라서 경제법의 개념에 대해서도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정의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한편 자본주의의 고도의 발달과 그 폐해를 시정하기 위해 국가가 행하는 경제에 대한 광범위한 개입을 생각하면, 경제법의 영역이 매우 광범위함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역시 대륙법의 영향을 받아 경제법을 두고 있다. 경제법은 크게 경제조직법, 경제활동법, 대외경제법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경제조직법에서는 독점규제법, 하도급거래공정화법, 공업발전법, 특수기업형태법, 중소기업법 등을 다루며 경제활동법에서는 자금?금융구제법, 증권거래법, 물자규제법, 물가규제법, 소비자보호법, 자원규제법 등을 다룬다. 마지막으로 대외경제법에서는 대외무역법, 외국환관리법, 외자도입법, 수출보험법 등을 다룬다.시장경제질서의 경제법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법률은 바로 독점규제법이다. 독점규제법은 사업자의 시장 지배적 지위의 남용과 과도한 경제력의 집중을 방지하고, 부당한 공동행위 및 불공정거래행위를 규제하여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촉진함으로써 창의적인 기업 활동을 조장한다. 또한 소비자를 보호함과 아울러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독점규제법의 실체법적 규정은 크게 경쟁의 자유와 경쟁의 공정을 보호하는 제도로 나눌 수 있다. 전자에는 시장 지배적 지위의 남용금지, 기업결합의 제한, 부당한 공동행위의 제한 등이 속하고 후자에는 불공정거래행위의 금지가 그에 해당된다.시장경제라는 용어는 제2차 세계대전 후부터는 사회주의국가에서도 사용되기 시작하였으며, 따라서 시장경제체제는 사회주의국가들의 중앙집권적 계획경제에 부분적으로 적용되어 갔다. 비록 계획경제에 의해 가격과 생산량이 결정되었다하더라도 소비자의 기호에 따라 결국 생산량과 수요량은 일치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기에 시장 원리가 개입됨으로써 가격과 수급이 조정되고 시장은 원활히 제 가능을 발휘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말했던 자본주의국가에 있어서의 경제법 외에, 계획경제체제하에 있다가 시장경제체제로 바뀌었거나 혹은 개혁개방이후 경제부분에 시장경제질서를 도입하게 된 사회주의 국가 중 대표적인 중국의 경제법은 어떤 식으로 형성되었고 어떻게 특징지을 수 있을까.3. 중국의 경제법 형성과 특징중국은 1978년 제11차 전국인민대표대회 이후 현재까지, 사회주의시장경제라는 명칭으로 경제체제개혁을 진행시키고 있다. 개혁개방이후 경제정책을 '公'에서 '私'로 전환하는 것을 중심으로 하는 경제체제개혁을 진행시키고 있는 중국에서는, 그러나 초기의 많은 새로운 경제정책들이 시장에 대한 경험 부족과 계획경제의 관성으로 인해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21세기를 맞게 되었다. 그러면서 중국의 경제체제개혁은 각종 제도의 구비와 법률적 뒷받침으로 점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중국에서의 법률은 어떤 측면에서 보면 불완전한 모습으로 발전되고 있다. 국가구성원들 사이에 공통으로 인정되는 공통규범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상태에서, 빠른 속도의 경제성장을 위한 과도한 국가공권력의 사용에 대한 우려가 바로 그것이다. 또한 법제도가 완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법이 그때그때 필요에 의해 제정되어지고, 제정되어지는 과정에서 개혁개방이전의 행정위주의 사고방식과 현재 사적자치를 중심으로 하는 사법 사이에 상당한 부분의 혼선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도 유의해야 할 점이다.등소평은 1978년 12월 "국가와 기업, 기업과 기업, 기업과 개인 간의 관계를 법률의 형식으로 규정되어야하고, 그들 간의 모순 역시 법률로 해결해야한다"고 지시한 바 있다. 그리고 많은 중국의 정치지도자들은 "경제건설의 발전에 따라, 우리는 각종 경제법이 필요하다"고 경제법의 필요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한다. 이상의 발언들은 공동소유를 전제로 한 대다수 사회주의 국가들이 계획경제하에서 그 이상을 이루지 못하고 실패하였다는 것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러므로 중국에서의 경제법 확립이 이미 입법기관의 정책적 선택임을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와 동시에 중국에서 경제법에 대한 논의는 법학연구와 법학 교육의 이슈로 떠오르게 된다. 그리하여 1981년 (1986년)이 성립되어 전문적으로 경제법규의 초안을 잡고 수정하는 업무를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