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돗물을 둘러싼 안전/불안의 의견”(부제)수돗물 불신해소는 ‘ 산 넘어 산’vs페놀사건 15주년 맞아 ‘수돗물 불신극복’ 촉구과목 매스미디어의 권력과 영향 ( 교수님)학부학번이름구성서론 - 주제 선택의 이유- 대구 페놀사건에 대한 간단한 정리본론 - 긍정적 주제의 기사, 과 부정적 주제의 기사들의 소개 및 대표적인 기사의 간단한 분석(부정적 기사의 숫자 15개, 긍정적 기사의 숫자 14개)-기사는 날짜순으로 배열/분석함(기사 스캔이 어려워서 기사를 포함한 레포트는 내일 수업시간에 제출하겠습니다 !!)결론 - 기사들에서 도출한 나름의 분석과 나의 생각- 과제를 준비하면서 느낀점- 참고자료1. 주제 선택의 동기? 무심코 신문을 펼쳐서 뒤적거리다가 ‘대구수돗물이 가장 미심쩍다’ 는 제목의 기사를 발견 했었다.서울의 ‘아리수’ 에 이어 대구시가 ‘달구벌 맑은 물’ 을 판매한다는 기사를 전에 본 적이 있었는데 그 제품에 대한 안전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는 내용 이였다.대구는 예전 페놀사태로 인해 수돗물에 대한 불신이 유난히 심한 도시이다.그래서 시민의 불안감으로 인해 수돗물 정수장의 시설이 타 도시보다 매우 뛰어나다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이 기사를 통해서 수질기준을 초과하지는 않았지만 서울, 대전, 부산, 인천 등 다른 도시의 2~5배에 달하는 소독부산물이 검출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대구의 시설이 매우 뛰어나 어느 도시보다도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하니 대구시민으로써 배신감도 느껴지고 놀랍기도 했다.그래서 이 기사를 주제로 자료를 모아서 매스미디어 과제를 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2.대구페놀 사건에 대한 간단한 정리1991년 3월 14일 경상북도 구미시 구포동에 있는 두산전자의 페놀원액 저장 탱크에서 페놀수지 생산라인으로 통하는 파이프가 파열되어 발생했다. 30톤의 페놀원액이 옥계천을 거쳐 대구 상수원인 다사취수장으로 흘러듦으로써 수돗물을 오염시켰다. 페놀원액은 14일 밤 10시경부터 다음 날 새벽 6시까지 약 8시간 동안이나 새어 나왔으나 발견하지 못했고, 수돗물에서 악취가 난다는 대구 시민들의 신고를 받은 취수장 측에서는 원인을 규명하지도 않은 채 페놀 소독에 사용해서는 안 되는 염소를 다량 투입, 사태를 악화시켰다. 페놀 원액이 염소와 결합하여 클로로페놀이라는 발암물질로 바뀌었다. 또한 두산전자는 90년 11월부터 325톤의 페놀을 몰래 방류 해왔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하지만 4월 22일 일어난 2차 페놀 유출사고는 당시 환경처에서 두산전자의 조업재개를 결정한지 불과 10여일 만에 일어난 것이라 더욱 많은 이들을 분노케 했다. 결국 환경처 장관과 차관이 경질되고, 이 사건은 종결국면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그 후 소비자 단체들의 환경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한국에서도 본격적 의미의 시민환경운동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양적으로는 대구 페놀사건을 중심으로 91-92년을 지나면서 전국적으로 100여개 이상의 환경단체가 생겼으며, YMCA, YWCA등 환경문제를 다루지 않던 시민단체들에서도 환경문제를 자신의 운동주제로 삼는 일들이 더욱 증가하게 되었다.3.수돗물에 대한 부정적 입장의 기사들(기사 스캔이 어려워서 기사를 포함한 레포트는 내일 수업시간에 제출하겠습니다 !!)(1)2007년 7월 12일 인터넷 뉴스 기사“ 대구 수돗물, 일부 부적합지역 주변 환경개선 시급 ”(2)2008년 3월 3일 인터넷 뉴스 기사“ 또다시 페놀사태? 놀란 대구시민들 ”(3)2008년 3월 17일 대구신문 기사“ 낙동강 페놀, 식수원 오염 ...수돗물 아직 불안 ”(4)2008년 3월 21일 대구신문 기사“ 수돗물 불신해소 산넘어 산 ”(5)2008년 3월 23일 대구신문 기사“ 2%미만이 그냥 마시는 수돗물 ”(6)2008년 6월 3일 헬스조선 기사“ 수돗물 염소 많으면 기형아 출산 위험 ”(7)2008년 6월 5일 조선일보 기사“ 페트병 수돗물서 인체유해물질 검출 ”(8)2008년 6월 5일 조선일보 기사“ 페트병 수돗물에 유해물질 검출 ”(9)2008년 6월 5일 동아일보 기사“ 페트병 수돗물서 인체유해물질 검출 ”(10)2008년 9월 3일 대구신문 기사“ 대구시민 절반 이상 수돗물 안믿는다 ”(11)2008년 9월 28일 대구신문 기사“ 수돗물 그대로는 안먹어 ””(12)2008년 10월 23일 조선일보 기사“ 수돗물 그대로 마시는 국민1.4% 불과 ”(13)2008년 10월 23일 동아일보 기사“ 수돗물 그대로 마시는 국민 1.4% 불과 ”(14)2008년 10월 24일 매일신문 기사“시간 지나면 소독부산물 10배 늘어 ”(15)2008년 10월 24일 매일신문 사설“영천호 나쁜수질, 무관심 때문 ”4.수돗물에 대한 긍정적 입장의 기사들(1)2006년 1월 18일 대구신문“ 구미 수돗물 안전 ”(2)2006년 3월 17일“ 페놀사건 15주년 맞아 수돗물 불신 극복 촉구 ”(3)2007년 3월 9일 대구신문“ 수돗물 안정적 생산 공급에 주력 ”(4)2007년 3월 13일 대구신문“ 수돗물 3분간만 흘리세요 ”(5)2007년 5월 17일 대구신문“ 대구 수돗물 브랜드명 달구벌 맑은물로 선정 ”(6)2008년 3월 8일 대구신문“ 구미지역 수돗물 폐놀 불 검출 ”(7)2008년 6월 27일 조선일보“ 염소처리 수돗물 ‘성기기형’ 유발...사실무근 ”(8)2008년 7월 16일 한겨례 신문“ 공공건물 새로 지을 때 ‘수돗물 음수대’ 의무화 ”(9)2008년 7월 16일 동아일보 기사“ 서울시, ‘수돗물 음수대’ 설치 의무화 추진 ”(10)2008년 7월 17일 조선일보 기사“ 아리수가 서울시민 목 적신다 ”(11)2008년 8월 24일 조선일보 기사“ 수출 꿈꾸는 서울 수돗물 ”(12)2008년 9월 15일 인터넷 뉴스“ 추석 귀성객들에게 대구 수돗물 공급한다! ”(13)2008년 9월 19일 조선일보“ 서울 수돗물을 탄산수로...이색 아이디어 만발 ”(14)수돗물 불소 농도 조정사업 안정입증 OK5.간단하게 분석하기(1)긍정적 측면의 기사이 기사에서 보면 수돗물에 대해 매우 긍정적으로 분석하고 있다.기사의 제목부터 ‘수출을 꿈꾸는 서울 수돗물’ 로 낙관적인 미래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비약적으로 발전해온 수돗물의 역사에 대해 알 수 있으며, 현재 우리 수돗물의 긍정적인 위치에 대해 파악 할 수 있다.기사에 따르면, 21세기 들어 서울 수돗물은 먹는 물로서의 ‘상품성’ 만들기에 앞장서고 있다.2004년에는 서울시의 수돗물 브랜드 이름으로 고구려 시절 한강물을 이르던 말에서 따온 ‘아리수’를 공식 발표했다.현재 아리수는 페트병에 담겨 서울시 각종 행사와 재난 현장에 무료로 보급되고 있다.하지만 상수도를 운영하는 사업자가 병에 든 수돗물을 시중에 팔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수도법 일부 개정안이 지난 5월 입법 예고돼 국회만 통과하면 올해 안에 시판 될 수도 있다고 한다.서울시는 현재 500ml 한 병 값을 250~350 정도로 잡고 있어 일반 생수 브랜드에 전혀 뒤지지 않는 맛과 질에 가격경쟁력까지 갖춰 서울시 아리수는 먹는 물 시장의 새로운 강자로 등극할 것이라 했다.24일 폐막한 베이징 올림픽의 중국인 자원봉사자와 한국인 응원단을 위해 10만 병의 아리수를 공급하기도 하면서 앞으로는 국내 시장을 넘어서 해외 수출 가능성도 타진하고 있다한다.첫 수돗물을 쏟아냈던 자리에도 전국 최초의 ‘수도박물관’이 들어섰고 ‘아리수 페스티벌’을 열어 ‘물지게 빨리 나르기’ ‘아리수 OX퀴즈’ ‘백일장, 삼행시 짓기’ ‘아리수 빨리 옮기기’ 등코너와 ‘아리수 락 페스티벌’ 등의 다양한 행사도 기획하고 있다고 한다.서울 상수도사업본부 직원들은 ‘아리수’에 대해 관심을 쏟으며 다양한 아이디어가 쏟고 있다.‘아리수’에 탄산가스를 투입하면 맛과 탁도를 모두 개선하여 맛이 좋아지게 하는 등의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내고 있다.이처럼 ‘아리수’에 이어 대구지역에서도 ‘달구벌 맑은물’을 기획하여 추석연휴에 대구를 방문 후 귀가하는 차량에 냉장된 병입 수돗물을 공급 하는 등 홍보 활동을 펼치고 있다.(2)부정적 측면의 기사위의 긍정적 기사의 측면에서 봤던 ‘달구벌 맑은 물’은 긍정적으로 해석 되었다.하지만, 이 최근에 나온 기사 (2008년 10월 24일 매일신문기사)에서는 대구시 병입 수돗물 이른바 ‘달구벌 맑은 물’에 대한 위험적인 내용의 보도이다.정부가 수돗물을 병에 담은 ‘병입 수돗물’의 시중판매를 적극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소독부산물은 물론 발암의심물질까지 검출됐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그중 대구 수돗물이 가장 미심쩍다는 기사이다.‘달구벌 맑은 물’ 에 대한 안전성 실험에서 시간이 경과할수록 소독부산물 중 유해성이 우려되는 클로랄하이드레이트와 총트리할로메탄의 농도가 급격히 높아졌다 낮아지는 경항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수질기준을 초과하지는 않았지만 서울, 대전, 부산, 인천 등 다른 도시의 제품과 비교해 타 도시의 2~5배에 달하는 소독부산물이 검출됐다.“병입 수돗물 제품을 만든 시점부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최대 10배까지 소독부산물이 증가하는 것을 볼 때 제대로 관리 방안이 확보되지 않았다면, 먹는 물 수질기준을 초과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며 병입 수돗물의 시판 계획을 비판했다.정부는 현재 수도법 13조 등에 규정돼 있는 수돗물 판매금지 조항을 개정하는 법안을 10월 중 국회에 제출할 예정으로 알려졌으나, 대구 상수도사업본부는 사업여부에 대한 판단을 보류 중이라고 한다.이 기사는 24일 매일 신문의 첫 번째 페이지에 굵은 글씨로 가장 중요한 기사로 나왔다.대구 매일 신문인만큼, 대구 시민들의 건강을 위협 할 수도 있는 중요한 문제라 판단해 전면적으로 내세운 것이다.하지만 이날 자의 다른 신문들을 찾아봤을 땐 비슷한 내용의 기사를 찾아 볼 수가 없었다.여기서 지역적 이슈의 차이를 느낄 수가 있었다.6.기사들에서 도출한 나름의 분석과 나의 생각긍정적, 부정적 기사의 양 측 입장의 기사를 수집하여 읽어보고 간단하게 분석을 해 보았다.나는 수돗물은 왠지 찜찜하여 그냥 먹지 않고 반드시 끓여 먹었다.이 과제를 진행하면서도 그 생각은 여전히 변함이 없었고, 오히려 부정적인 생각이 더욱 강하게 들게 되었다.
이번 수업시간에 본 영화는 너무나 유명한 ‘트루먼 쇼’ 였다. 너무 유명한 나머지 중학교 시절부터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도덕, 정치, 사회문화, 윤리 시간 등등 여러 수업시간에 선생님들께서 영상자료로 활용하시는 바람에 이번에 본 것 까지 합하면 총 여섯 번이나 되어버린 영화다. 처음에 교수님께서 영화를 보여주시겠다고 해서 잔뜩 기대했다가 첫 화면이 나오는 순간 아 또 트루먼 쇼구나 하며 바로 알아차려버려서 실망해 버렸지만, 어느새 필름이 돌아가면서 또 다시 영화에 몰입하고 있었다. 그만큼 흡입력 있고 무언가 볼 때마다 조금씩 다르게 느껴지는 영화이다.이 영화의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해보면, 30세의 평범한 직장인인 주인공 ‘트루먼 버뱅크’의 이야기 인데, 주인공의 24시간 내내 모든 생활이 TV쇼로 생중계 되고 있고, 자신 이외의 친구, 부인, 부모 등 다른 사람들은 모두 연기자이며 자신만 모른 채 인생을 살아가고 결국에는 진정한 자신을 찾기위한 탈출을 한다는 내용이다.이 영화가 개봉 된 것 이 1998년, 어느새 10년이나 더 된 영화이다. 그렇지만,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도, 지금 다시 봐도 여전히 그 아이디어가 무척이나 참신하고 기발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스토리는 분명 현실적으로는 존재하기 힘든 이야기 이다. 한 사람을 스튜디오 안에 가둬놓고 정작 본인만 모른 채 시청자들의 구경거리로 만들고 본인도 모르는 새 전 서계적인 스타라는 것이 말이다.트루먼 쇼라는 영화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비평이나 리뷰 등을 보면 이러한 점에서 이 영화를 비판하는 분들이 대다수 인 것이 기억난다. 하지만 이 트루먼 쇼라는 시나리오는 어디까지나 영화이다. 현실에선 존재하기 힘들 법 하지만 어떠한 상상이라도 가능하고, 또 표현을 할 수 있는 영화 속 이야기라는 것을 감안하면 그런 사람들은 너무 편협한 시각으로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어쨌든, 이 영화 트루먼 쇼는 여러 각도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영화이다.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표현이라고 하는 사람, 그리고 거대한 미디어에 의한 경종의 목소리를 담고 있는 영화라 하는 사람들도 봤다. 나도 그러한 의견에 공감하며 이 영화에 딱 어울리는 표현을 잘 선택해 이야기 한 것이라 생각한다. 남들과 다름없이 평범한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내 모든 삶이 조작 된 것이며, 제한된 공간에서 적당히 갇혀있는 삶을 살았다는 것을 느끼고, 내 주위에 존재했던 친구, 부인, 부모 등 그 모든 것들이 거짓이며 철저하게 방송을 위해 계산된 것임을 알게 그 순간 트루먼은 잃어버린 자신을 되찾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을 하게 된다. 비록 전 세계적인 인기 쇼의 주인공인 대 스타였지만, 인간다운 참 삶과는 거리가 멀었던 트루먼 그의 인생을 영화로 보고 있자면, 트루먼의 그 삶에 나를 투영시켜 생각해 보게된다.
-발표문버트란드 러셀은 로크를 일컫어 철학자들을 통틀어 최고 행운아라고 말한다. 이론철학분야에서 작업을 완성한 시기에 그와 정치적 견해를 공유하던 정치인들이 영국의 정계를 장악하였으며, 그의 정치사상은 명예혁명과 미국 독립선언문에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대를 잘 타고 난 철학자는 드물다. 이런 점을 봤을 때 러셀의 평가는 매우 적절하다. 당시로 보았을 때 철학자나 온건한 개혁가들이 주로 로크를 추종했다. 프랑스의 로크 추종자들은 옳든 그르든 간에 로크의 인식론과 정치 학설이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로크의 사상은 영국을 넘어 유럽 대륙에 까지 널리 퍼지게 된다.)로크는 영국 경험론의 아버지인 동시에 인식론과 정치철학에 저명한 학자이며, 가장 영향력 있는 계몽주의 사상가이다. 그가 경험주의자인 이유는 인식의 문제에 있어 이성보다는 경험을 중요시했기 때문이다. 대륙 합리론을 대표하는 데카르트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그의 본유관념을 거부한다. 로크는 왜 데카르트의 본유관념을 거부했을까? 이것을 비롯한 로크의 사상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가장 먼저 경험론이란 뜬구름 잡기 식의 탁상공론이나 사변을 배척하고 모든 학문의 기초를 경험에 두려고 한 철학적 경향을 말한다. 로크와 버클리, 흄이라는 세 명의 철학자에 의해 대표된다. 경험론의 선구자로서 로저 베이컨을 들 수 있다. 그는 지식의 원천을 경험에서 찾으려고 했던 최초의 인물이다. 그 이후에 윌리엄 오컴은 유명론을 활용하여 스콜라학파의 사변적인 경향에 타격을 주었다. 프란시스 베이컨 역시 지식이란 실험과 경험에 의해 성립된다고 주장한다. 홉스, 뉴턴과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이 등 역시 경험을 강조한다.)로크는 1권에서 플라톤과 데카르트, 스콜라 철학에 반대하면서 단지 이성에서 유래한 본유관념이나 원칙은 없다는 논증을 펼친다. 또한 어떻게 경험을 통해 다양한 관념들이 생기는지 상세하게 설명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는 본유관념을 거부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그러면 이미 말했듯이 정신을 아무 특성도 관념도 없는 하얀 종이라고 가정해보자. 이 하얀 종이 위에 어떻게 글씨가 쓰이는가? 인간의 분주하고 복잡한, 경계에 구애받지 않는 상상력으로 거의 끝없이 다양한 방식으로 그려 넣은 방대한 기억은 어디에서 오는가? 어디에서 이성과 지식의 재료를 얻는가? 이 질문에 나는 경험에서 온다고 한마디로 답변한다. 우리의 모든 지식은 경험에 기초하며 궁극적으로 경험에서 모든 지식이 도출되기 마련이다,”(2권, 1장, 2절))앞 서 살펴보았지만 로크는 데카르트 식의 본유관념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어린아이나 야만족의 정신 상태에서 보편타당한 관념이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본유관념이란 후천적인 경험이나 감각에 의해서가 아닌, 태어나면서부터 가진 선천적 관념을 말한다. 로크가 살았던 당시 정신은 모든 종류의 사물을 선험적으로 알 수 있는 능력이라 여겼다. 그래서 지식이 지각에 전적으로 의존한다는 로크의 주장은 새롭고 혁명적인 학설이었다.로크의 관념은 아무것도 없는 의식에서 후천적인 경험이 더해짐으로써 생기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관념에는 외부의 인상을 단순히 복사한 단순관념과 그 단순관념에 오성을 결합해서 만든 복합관념이 있다. 단순관념은 외적 경험이나 내적 경험으로 생겨난다. 우리의 감각으로 받아들이는 외부 사물의 성질에는 두가지가 있다. 첫째는 연장, 형상처럼 사물 자체가 가지는 고유한 성질이 있는데, 로크는 이것을 제 1성질이라 불렀다. 둘째는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것들로서 제 2성질이라 불렀다.복합관념은 인간의 오성(이해력)이 단순 관념을 결합해서 만든 것으로 세 가지가 있다. 양태, 실체, 관계가 그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복합관념은 오성의 결합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서는 어떠한 기체의 성질도 지니고 있지 않다. 그러나 한가지 예외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실체의 개념이다. 실체란 성질들이 그들 스스로만 존재하기는 어려우므로 그 성질들을 떠받쳐주고 있는 어떤 것이 있지 않으면 안 될 것이고 이 때 이 어떤 것을 의미한다. 로크의 실체는 일반적인 성질들과는 다르게 우리에게 알려질 수 없는 어떤 것이다. 즉 성질들을 떠받쳐 주는 기체로서의 그러한 실체가 있다는 점은 말할 수 있으나 그 자체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말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실체에 관하여 무엇이든 말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그것에다 성질을 부여하게 되고 어떠한 성질이든 일단 성질을 부여하게 되면 이는 실체 그자체가 무엇인지 하는 질문과는 거리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로크는 실체를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어떤 것 이라고만 부를 수 있을 따름이라고 하였다. 그것은 지각될 수도 없고 기술될 수도 없는 어떤 것일 뿐이다. 성질들이 속해 있고 성질들이 내재해 있는 어떤 것이라는 것이 그것에 대하여 우리가 말 할 수 있는 전부이다.)인식론적 측면 뿐 아니라 정치사회사상에서도 로크는 많은 영향을 끼쳤다. 사회계약설이 로크의 정치사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사회계약설이란 근대국가의 근본문제인 ‘권력’과 ‘자유’와의 관계를 민주주의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제시하였다. 사회에 선행하는 자연 상태를 설정하여, 그 상태에서의 독립, 평등한 개인의 자연권을 긍정하여, 그 확보· 보장으로서의 계약에 의한 정치사회(국가)를 구상한다. 로크는 계약의 목적을 개인 재산권의 보호에 두고, 자연권의 위양은 그에 필요한 한도에서만 승인하여 자유주의적인 권력의 제한을 인정하였다. 그러므로 주권자가 이러한 전제를 무시하면 그를 타도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즉 통치자가 인민의 이익을 배반할 경우 인민의 저항권은 정당화된다.의 중심주제는 ‘과연 누가 정치권력을 보유해야 합당한가?’이다. 로크는 왕권신수설과 정치적 절대주의를 비판한다. 왕권신수설은 왕권은 본질적으로 부권과 같은 것이어서 신의 뜻에 따라 선대로부터 계승되는 것이며, 비록 자의성을 띤다 해도 시민은 이를 거역할 수 없다는 것이다. 로크는 사회계약설의 체계에 따라 입헌민주주의를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정부의 권력을 제한하기 위해 권력분립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독립기관으로서 견제 균형의 원리는 부족하다. 그리고 언제, 어떻게, 누구에 의해 저항권이 행사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모호성이 정부의 한계로 남아있다.로크는 영국 경험론을 발전시킨데 큰 공헌을 했을 뿐 아니라 근대 국가를 형성 하는 데도 큰 영향을 미친다. 로크의 사상은 당시로서는 매우 혁명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인민의 저항권을 인정한 점이 있다. 또한 데카르트에게 사상적 영향을 많이 받았으나 그의 핵심인 본유관념을 거부했다는 것도 놀라운 점이다. 본유관념이란 그 당시에 통용되던 생각이었으나 로크는 이것을 정면에서 반박한다. 그래서 현대에 이르기 까지 로크는 역사 속 죽은 철학자가 아닌 살아있는 철학자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목차Ⅰ.서론Ⅱ.일본의 정원1.정원의 유래2.일본 정원의 역사3.일본정원의 기원 ‘신석’4.일본정원의 특징과 유형Ⅲ.일본정원에 담긴 사상1.신도사상2.불교사상3.도교사상4.음양사상Ⅳ.일본인들의 종교생활과 연결되는 정원문화Ⅴ.간단한 한ㆍ중ㆍ일 정원의 비교Ⅵ.한ㆍ중ㆍ일 정원의 사진들Ⅶ.레포트를 마치며Ⅸ.참고자료Ⅰ.서론일본을 두고 흔히 ‘먼 나라 이웃 나라’ 라는 표현을 쓴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지형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가깝고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다. 때문에 일본은 우리에게 가깝고도 먼 나라이다. 불교사상, 도교사상, 유학사상 등 우리나라의 사상과 많은 부분을 함께 했으나, 오늘날엔 기본적인 생활환경 에서부터 문화, 식습관, 사고방식, 사상, 생활 태도 등 많은 부분에 차이가 있다.나는 이러한 ‘차이’에 대해서 이질적이고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일본철학과 문화’ 수업을 들으면서 내가 가졌던 일본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들이 조금은 바뀌었다. 부정적으로만 보던 일본의 문화와 사상들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그 맥락을 역사를 통해 배웠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와는 다른, 일본만이 가지고 있는 환경, 문화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다.이처럼 우리나라와는 다른 일본만이 가지고 있는 문화에 대하여 생각하던 중, ‘일본의 정원’이 생각났다. 나는 예전에 영남대학교 자연자원대학을 다녔기에, 조경학과 수업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때 조경학 수업에서, 잘 꾸며진 정원의 예로 ‘일본의 정원’ 사진과 영상을 본 적이 있었다. 이번 과제를 준비하면서 그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라, 관련 있는 주제기도 해서 ‘일본의 정원문화’에 대해 이것저것 조사해 보게 된 것이다.내가 본 일본의 정원은, 실용적이면서도 한 폭의 자연을 그대로 옮겨와 축소 시켜 놓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일본사람들의 검소함과 소박함이 정원문화에서도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다. 그에 비해 한국의 정원 문화는 대부분 ‘부자’들의 문화라고 생각되어 진다. 그래서 대부분 ‘정원’들은 화려하고,는 단어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그다지 오래전이 아니다. 정은 작업이나 행사를 하기위한 장소를 가리키는 말로서 평탄한 땅을 의미하고 원은 야채나 과일나무, 또는 화초를 재배하고 있는 둘러싸인 당을 의미하였다. 즉 그 안에 식물이 자라고 있는 소유주의 관리영역을 가리키는 말이라 할 수 있다. 이 두 단어를 결합시켜 정원이라는 포괄적인 용어가 쓰이기 시작한 시기는 19세기말 메이지 시대 이후이다.2.일본 정원의 역사①아스카 나라시대의 정원일본 고대 문헌 기록 중에서, 스이코 천황 때(일본서기, 626년) 정원에 관한 기록이 있다. 당시 실권자였던 소가 우마코는 아스카 강가에 집이 있었는데, 집안에는 연못이 있었고 그 안에는 조그마한 섬을 만들어 두었다고 한다. 즉 정원을 만들어서 이를 보고 즐기기 위한 공간으로 활용했던 것이다. 이 소가씨 일족은 백제로부터 불교를 받아들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집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아스카 나라시대의 정원들은 고고학적인 발굴로 어느 정도 그 내용이 전해지고 있다. 예를 들면 ‘헤이조쿄’에는 한 연못이 있었는데, 연못의 길이는 55미터, 최대 폭은 5미터의 좁고 긴 굴곡을 이루고 있었고, 밑바닥에는 옥돌을 깔았던 것이 확인되었다. 이 연못은 신라의 수도인 경주에 있는 포석정에서 했던 것처럼, 당시 일본의 귀족들이 곡수연을 개최하였던 정원이라고 한다. 곡수연은 궁중의 후원에 구비 구비 물이 흘러내려 가도록 물 구비를 만들어 놓고, 술잔을 띄우고 시를 읊으며 술을 마시던 놀이인데, 중국에서도 3월에 귀족들의 봄놀이로 개최되었고, 이 풍속이 한국과 일본에도 전해진 것이다.②신덴즈쿠리의 정원10세기 중엽 이후, 후지와라씨가 정권을 잡은 후 막강한 재력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양식의 정원을 만들었다. 이들은 정원을 거닐거나 내다보면서 그 아름다움을 즐겼는데, 이러한 귀족들의 저택건축양식을 신덴즈쿠리라고 한다. 신덴즈쿠리 가운데는 대략 1변이 100미터 이상이나 되고 면적이 1헥타르를 넘는 거대한 저택도 있었다고 한다. 신덴은 그 집의 주 기법을 구사한 정원을 통틀어 ‘세키테이’라고 한다.⑥대덕사의 용안사 세키테이14세기말부터 대사원을 중심으로 선승들 사이에 문학이 발달하였다. 또한 중국 송나라에서 수묵산수화가 전해져서, 귀족이 함께 어울려 시가를 지어 부르는 모임인 ‘시회’가 빈번히 개최되었다. 시회를 여는 장소로 선사의 쇼인이 이용되는 경우가 많았기에, 쇼인에 딸린 정원의 조경 양식이 발달하게 되었다. 이 정원은 주로 암석을 2, 3개를 조합하여 폭포를 표현하고, 모래를 깔아서 시냇물이나 바다를 상징하도록 만들어 졌다. 흙이나 나무를 사용하지 않고 폭포에서 떨어지는 자연의 풍경을 상징적으로 표현하였던 것이다. 대표적인 정원으로는 대덕사 대선원에 있는 쇼인의 정원과 용안사의 정원을 들 수 있다. 이 두 정원 다 흰 모래나 잘게 부순 돌로 흐르는 물을 상징적으로 만들어 냈다.⑦다도의 유행과 차니와15세기 후반부터 교토와 사카이의 귀족이나 무사 또는 금융업자 등의 부유 계층 사람들 사이에는 차를 마시고 미술품을 감상하면서 주객 간의 화합을 도모하는 다회가 성행하였다. 다회가 성행하면서, 다회가 열리는 다실에 정원을 만들어 한적한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유행하게 되었다. 후에 귀족들의 대 저택 안에 다실이 조성되기 시작하면서 정원양식에도 변화가 생기게 된다. 신덴즈쿠리풍의 정원의 전통과, 쇼인의 정원 양식을 결합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양식으로 조성한 다실의 정원을 ‘차니와’ 또는 ‘로지’라 했다. 대표작으로는 17세기 초기에 귀족의 별장으로 건축된 가쓰라이궁의 정원이다. 약 7만평방 넓이에 강물을 끌어들여 연못을 만들고 주위를 산보하면서 풍경을 감상하며 즐길 수 있도록 언덕과 건물을 배치하였다.⑧에도 시대의 회유식 정원영주 도쿠가와 요리후사는 막부로부터 에도 시내의 부지를 하사받아 저택과 대규모의 정원을 조성하고 이를 고라쿠엔이라 명명했다. 명나라의 주순수를 초빙하여 설계 자문을 받았기 때문에 중국적이고 유교적인 냄새가 짙게 나타난다. 정원 안에 자신이 좋아하는 명승지를 본떠서 만든 산이나 언덕, 배치법을 지금까지도 이어오고 있다. 일본정원에 있어서 이시구미는 돌 하나 하나가 지니고 있는 특성을 보여줌과 동시에, 집단으로 조화된 돌의 형태에서 그 시대의 종교, 철학, 인간의 이상론 등을 추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시구미란 복수의 돌을 조합해서 미적으로 배치하는 것이며 기본적으로 두 개의 돌을 조합하는 형태 이외에는 홀수가 약속으로 되어 있다.4.일본정원의 특징과 유형①특징-일본 정원에는 교목과 관목뿐 아니라 바위, 모래, 인공 언덕, 연못, 유수 등이 예술적으로 사용된다. 기하학적으로 배치된 서양식의 정원과는 달리 일본정원은 전통적으로 가능한 한 인공적인 요소를 배제하여 자연에 가까운 경관을 조성하였다.경관조성을 위해 정원 조경사들은 3가지의 기본 원칙을 따르는데 그 원칙이란 바로 규모의 축소, 상징화, ‘경치의 차용’ 등이다. 첫 번째 원칙은 산과 강의 자연적 경관을 축소하여 만듦으로서 제한된 공간에 모두 재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이는 도시 안에 산간마을의 경관을 창조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두 번째로 ‘상징화’는 예를 들자면 흰모래가 바다를 상징하는데 쓰이는 것과 같은 추상성을 뜻한다. 세 번째로 조경사들은 정원 뒤 또는 주위의 배경경관을 이용하여 그 ‘경치를 차용’ 하는데 이는 경관조성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일본정원의 기본골격은 바위와 그 바위가 모여 있는 방식에 따라 출발한다. 고대 일본인들은 바위로 둘러싸인 곳에 신이 살고 있다고 믿었으며 이곳을 ‘아마츠 이와사케’(천국으로가는 관문), 또는 ‘아마츠 이와쿠라’(천국의 자리)라고 불렀다. 마찬가지로 울창한 나무숲은 ‘히모로기’(신의 울타리)라고 불렸는데 신성한 장소를 둘러싸고 있다고 믿어지는 해자(垓字)와 도랑은 ‘미즈가키’(水垣-神社의 울타리)라고 불렸다.일본의 정원은 일반적으로 2개의 종류로 나뉘는데 언덕과 연못으로 구성된 ‘츠키야마’(언덕 정원)와 언덕과 연못이 없는 ‘히라니와’(평지정원)가 그것이다. 저택의 정원에는 언덕형식 정원이 사용되었으며, 제한된 공간에서는 평지정한가지로 정착.Ⅲ.일본정원에 담긴 사상일본정원에 담긴 사상을 크게 들어보면, 고유의 토속 신앙인 신도사상, 그리고 불교와 도교를 들 수 있다. 종교적 상징 사상을 정운 구성 원리에 활용하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조형화하는 것은 일본 정원만의 독특한 발상이다. 불교 사상 중, 수미산 사상은 조경의 중요 요소가 되었는데, 수미산이란 “세상의 중심에 우뚝 솟아 있는 초자연의 고산”을 말한다. 수미산의 사면은 황금, 은, 유리, 수정으로 둘러싸여있고, 7개의 금산이 동심원 형태로 둘러싸이고 산 사이에는 바다가 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수미산은 초자연적인 불교적 이상향으로 일컬어 졌고, 따라서 나라시대에 정원을 만들 때 모양을 본뜨는 일이 많았고 한다.도교사상은 주로 ‘신선적’인 의미로 일본에 들어왔는데, 그래서 일본에 들어오면서 자연의 풍경 그 자체를 신선경이라고 하는 등 다소의 의미 변질이 일어났다. 정원의 연못에 만드는 나카지마, 쓰키야마, 이시구미 등은 신선들이 사는 이상세계를 나타내는 것이라 한다. 일본 정원에 소나무가 등장하는 데 이 역시 신선사상에 나오는 십장생민속과도 연관이 있다. 그렇다면, 이 대표적인 신도, 불교, 도교사상과 음양사상에 대하여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①신도사상신도사상이란 대륙에서 건너간 불법에 대응하여 일본에 본시부터 있었던 사상, 의례등 일본 민족 사이에서 발생한 고유한 민족 신앙을 지칭한다. 아직도 전국의 신사를 중심으로 씨족신과 그 고장의 수호신에 대한 제사의례를 행해지고 있다. 이러한 신도사상을 표현하는 정원에는 연못 정원과 가레산스이 정원이 있다.-연못정원일본정원에서 연못은 필요 불가결한 요소이다. 물을 쓰지 않는 가레산스이 양식의 정원도 일단 물을 상상하여 만든다. 상고 시대 이후 정원의 연못은 바다를 표현하고 있으며 정원의 발상은 신과 함께 있다. 신사에 만들어진 연못은 신지이며 연못 안의 섬에 신을 모신다. 이리하여 연못 안에 섬을 만들고 섬에는 골라 놓은 돌을 늘어놓는다. 이것이 연못을 파고 섬 만드는 일본정원 최초의
일본영화는 굉장히 섬세하여 단순한 영화 한 장면에도 의미를 하나하나 부여하기 때문에 사소한 것이라도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된다. 작은 소품이 영화의 반전을 암시하는 상징이 되기도 하고, 전체 상황을 해결 할 수 있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 영화 와 에는 모두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렇기에 두 영화에서 내리는 ‘눈’은 그냥 하늘에서 내리는 ‘단순한 눈’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두 영화에서 ‘눈’의 의미는 무엇인지, ‘눈’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인지에 대해 생각을 해 보았다.눈은 하얗고 깨끗한 이미지로 세상에 왔다가, 날이 따뜻해지면 녹아버린다. 눈에는 한순간 왔다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일시적임’에 대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에서는 오린이 나라야마에서 생을 마감하는 모습에 눈을 뿌림으로써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는 느낌을 더 짙게 표현하려 한 것 같다. 또한 그와 동시에 눈밭에서 성관계를 맺고 있는 두 남녀의 모습을 함께 보여줌으로써,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암시했다. 한 생명이 사라지고, 새로운 생명이 오는 ‘생명의 순환’을 말하는 장면에서 내린 ‘눈’은, 단순히 추운 겨울이라는 배경묘사가 아니었다. 여기에서 ‘눈’은 왔다가 사라지는, 그리고 또다시 오는 ‘순환’의 의미를 더욱 배가시키는 장치로 활용 된 것이다.에서의 ‘눈’도 에서의 역할과 비슷했다. 철도원 오토의 딸 유키코가 태어나고 세상을 떠날 때 모두 눈이 내렸는데, 이것은 왔다가 사라지는 눈의 의미를 명확히 잘 드러낸 장면이다. 유키코는 눈과 함께 이 세상에 왔다가 눈과 함께 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먼 훗날 유키코가 오토를 만나러 다시 올 때도 오토는 눈 쌓인 호로마이역에서 눈을 치우고 있었다. 이처럼 영화 에서의 ‘눈’도 생명의 순환을 뭉근히 드러내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그러나 눈이 의미하는 것은 ‘왔다가 사라지는 것’ 뿐만이 아니다. 에서 다츠헤이가 오린을 나라야마에 데려다 주고 집에 돌아오는 장면에서 그의 아들의 노래 소리가 배경음악으로 크게 깔리는데, “할머니는 운이 좋아. 눈이 오는 날 나라야마에 갔다네." 라는 가사의 노래였다. 이 노래가 의미하는 것은, 나라야마에 앉아 까마귀밥이 되길 마냥 기다리고 있으면 오랫동안 괴롭고 힘이 드는데, 눈이 오면 체온이 떨어져 빨리 죽을 수 있기에 나라야마에 갔을 때 눈이 오면 운이 좋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살아남은 자의 입장에서 내뱉아지는 이기적인 노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