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입체주의(Cubism) 란 : 1900년부터 1914년까지 파리에서 일어났던 미술 혁신운동을 말한다.1908년 마티스가 브라크의「에스타프 풍경」이란 연작을 평하면서 '조그만 입체 덩어리'라고 말한데서 유래되었다.피카소가 「아비뇽의 아가씨들」을 발표함으로써 급격하게 발전한 이 운동은 일반적으로 세잔느풍의 입체주의, 분석적 입체주의, 종합적 입체주의로 나누어 고찰할 수 잇다. 입체파는 르네상스 이후 서양 회화의 전통인 원근법과 명암법, 그리고 다채로운 색채를 쓴 순간적인 현실 묘사를 지양하고, 야수파의 주정적(主情的) 인 표현을 폐기한 대신 시점(視點)을 복수화하여 색 도 녹색과 황토색만으로 한정 시켰으며, 자연의 여러 가지 형태를 기본적인 기하학적 형상으로 환원, 사물의 존재성을 이차원의 타블로로 구축적으로 재구성하고자 했다.피카소, 브라크등이 이 운동의 중심이었고 그 밖에 몽파르나스에서 화면에 밝은 색채와 다이나믹한 율동을 도입했던 F. 레제와 R. 들로네가 있고, 화면의 구성원리를 추구하여 추상예술의 길을 열었던 쿠프카와, 비용, 뒤샹등이 있다. 입체파는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종말을 맞았으나, 그 성과는 그 후의 미술, 디자인, 건축 등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2. 입체주의운동 _ 회화(1) 전기 입체주의 (세잔이즘시대)- 초기큐비즘. 세잔과 흑인 조각의 영향. 기하형으로 단순화.(2) 분석적 입체주의 - 원근법 무시. 평면적 표현. 시각의 복수성. 대상의 철저한 해체, 재구성. 제한된 색채.(3) 종합적 입체주의 - 사실적 요소 부활. 색채 중요시, 색면에 의한 화면구성. 파피에콜레 시도.입체주의 운동은 보통 다음의 새 단계로 구분된다. 제1기는 전기 입체주의, 제2기는 분석적 입체주의, 제3기는 종합적 입체주의이다.이 세 단계를 연대적으로 확연히 구분 짓기에는 어려움이 있으나 대충 제1기는 1907∼09년, 제2기는 1910∼12년, 제3기는 1913∼14년으로 구분된다. 그리고 분석적 입체주의에서 종합적 입체주의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실험적인 파피에 꼴레의 작품이 등장한다.그리고 이 세 단계를 거치는 입체주의의 전개 과정에 있어서의 두드러진 특성은 그 전개가, 예컨대 야수주의와는 정반대로 명석한 논리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는 사실이며, 또한 바로 그 논리성이 입체주의 회화의 기본적인 특성이기도 하다.① 전기입체주의 (1907-1909)② 분석적 입체주의 (1910~1912년)분석적 입체주의의 주역은 역시 피카소와 브라크이다. 이 시기 동안 그들은 더 없이 밀접한 유대 아래 작품을 제작하였으며, 또 실제로 그들의 작품이 서로가 누구의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동일한 문제를 공유하면서 추구하였다. 그리고 이 분석적 입체주의의 기본적인 특성은 대상의 해체와 그 해체된 대상의 자유로운 재구성이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 결과로서 대상의 형상은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형되며, 현실이 오히려 조형적 재구성의 한낱 구실에 지나지 않게 된다. 그것은 필경 회화가 현실에 예속되는 것이 아니라 자율적 질서를 지닌 하나의 독자적인 세계임을 주장하는 것이며, 여기에서 또한 추상 회화의 또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기도 하다.이 분석적 입체주의는 종합적 입체주의 시기에 들어서면서부터 한 사람의 새로운 화가 후안 그리스를 맞이하게 된다. 그는 말하자면 피카소와 브라크가 그때까지의 입체주의 회화의 대변자였듯이 종합적 입체주의의 대변자이며, 이는 그의 작품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곧 종합적 입체주의 회화의 특성을 말하는 것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③ 종합적 입체주의 (1913~1914년)종합적 입체주의의 특성으로는 대체로 다음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색채의 부활, 지극히 단순화된 형태이기는 하나 대상의 형태의 재등장, 큼직한 색면에 의한 명쾌한 평면적인 구성이 그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요소들이 글스의 작품을 특징짓고 있는 것이기도 거니와 그것을 다시 한 번 입체주의의 분석적 큐비즘과 비교해 볼 때, 양자간의 차이는 더욱 명료하게 드러난다. 분석적 입체주의 있어 색채는 일종의 금욕주의에 가까운 단색조(單色調)였고, 대상의 형태는 수정의 잘게 깎인 복잡한 면 속에 해체되고 따라서 화면 역시 입방체형으로 강조된 볼륨의 병치(倂置)였던 것이다.입체주의 있어서의 색채의 부활은 입체주의 자체를 크게 확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동시에 그 시야, 이를테면 소재도 넓어지고 다양해진다. 이러한 확산된 의미의 입체주의를 전개해 나간 사람들 중에서도 특히 두르러진 화가가 페르낭 레제, 로베르 들로네이다.이 두화가를 입체주의 화가라는 이름으로 묶기에는 상당한 무리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들이 입체주의적 조형의 영향을 받은 것만은 분명하며, 그 영향으로서는 일차적으로 대상을 자유롭게 분해시키고 다시 그것을 역시 자유롭게 재구성하는 방법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그러한 입체주의적 시각에 대담하게 색채를 도입했고 나아가서는 입체주의의 본래적인 특성의 하나인 부동성(不動性)에 대신하여 화면 속에 역동감을 부어 넣으려고 시도했다. 그리고 이 역동감은 레제와 들로네에게 있어 그들의 시야를 근대 생활의 정경과 직결시키는 것이기도 했다.입체주의 화가들*피카소 - 아비뇽의 아가씨들( 최초의 입체파 작품. 세잔과 흑인 조각의 영향. 게르니카( 전쟁과 폭력에 대한 항의 표현 ) 거울 앞의 소녀*브라크 - 에스타크풍경( 입체파 명칭 유발 ) 원탁( 분해, 재구성된 형, 모래혼합 )*레제 - 기계와 같은 깨끗한 형태, 금속적 질감으로 대상을 표현.3. 입제추의 조각-Raymond Duchamp-Villon (레이몬드 뒤샹비용) 1876-1918 :프랑스의 조각가, J.비용, M. 뒤샹과는 형제이다. 의학을 배운뒤, 1898년에 조각가가 되었다.1912년경부터 큐비즘(입체파)에 접근하고 그 분파인 섹시옹 도르의 중심적 존재로서 활양하였으나, 제 1차 세계대전 중에 젊은 나이에 죽었다. 6점의 브론즈 연작, -Alexander Archipenko(알렉산더 아르키펭코) 1887-1964제정 러시아 태생의 미국 조각가(1887~1964). 파리에서 입체파 운동에 참가하고, 다시 추상 조각으로 진출하여 여러 실험적 작품을 냈다. 아르키펭코는 20세기가 시작될 무렵 활동한 작가들 가운데 가장 혁신적인 인물에 속했다. 그는 입체주의 발상들을 흡수해서 이것을 기초로 회화와 조각의 결합체, 즉 “입체회화”라는 분야를 발전시켰다. 학교 교육에 염즐을 느낀 아리크펭코는 단 2주만에 하리 미술대학을 그만두고 몽파르나스에 작업실을 냈다. 그는 레제와 만나 가까워지면서 곧장 입체주의 혁명이 소용돌이로 휩쓸려 들어갔다. 1912년부터개인적으로 미술학교를 운영해서 주로 여기에 생계를 의탁했다, 같은 해에 그는 작가 그룹 “황금분할”창립에 관여 했다. 1911-14년에 아르키팽코는 다양한 소재를 사용한 채색 부조작업, 소위 입체회화라 일컫는 작업을 했다. 이 입체회화작업은 회화의 공간적 확장으로 또 다색 입체주의 조각으로도 볼 수 있다. 이러한 작품들은 구상적 주제를 가지며, 작업방식은 종합적 입체주의 양식에 속한다. 이 채색 작품들이 보여주는 빼어난 장식성은 입체주의 형식에 대한 진지한 관심으로 직결되는데, 특히 그 이후에 나온 완전 입체 형태의 인물소품들(메드라노), 목재와 금속 조각, 철사와 유리등을 이용한 거친 아상블라주 작품에서 그러한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작품에 , 따위가 있다.-Ossip Zadkin (오십 자킨) 1890-1967프랑스의 조각가. 현대 조각에 독자적인 지위를 확보하였다. 일찍이 큐비즘(입체파)의 영향을 받고 있었으나, 니그로(흑인) 조각이 갖는 단순성과 힘차고 믿음직스러움에 영향 받아 러시아 출생의 체질에서 우러나온 듯한 환상미와 원시성을 데포르마시옹(deformation:변형·왜곡)에 결부한 작풍을 완성하였다-Jacques Lipchitz (자크 리프시츠) 1891-1973프랑스의 조각가. 큐비즘에서 깊이 영향을 받았으나 정물 부조는 독자적이며, 다이내믹하고 환상적인 표현과 서정적인 소박한 취미의 신비성은 큐비즘을 한 계단 뛰어넘은 것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