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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병양란이 국문학사에 미친 영향(임진왜란, 병자호란) 평가A+최고예요
    《 임병양란이 문학사에 미친 영향 》< 목 차 >Ⅰ. 머리말Ⅱ. 임병양란과 이후의 사회상1. 임진왜란2. 병자호란Ⅲ.임병양란 후의 문학사 변화Ⅳ. 조선후기의 대표적인 문학Ⅴ. 맺음말Ⅰ. 머리말임병양란은 임진왜란(1592)과 병자호란(1636)을 아울러 이르는 말로, 이 이후의 조선 후기는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였다.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은 임병양란과 같은 역사적 사건에 따라 문학에 담긴 사상과 형식도 변모를 거친다는 이론에서 가능한 것으로, 임병양란을 겪은 뒤인 조선 후기는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 제 1기라 할 수 있다. 중세문학을 지키고자 하는 노력과 근대문학을 이룩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서로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얽혀 있으므로, 그 시기를 중세문학의 연장이라고 보는 것을 잘못이고, 근대문학의 시발이라고 해도 무리가 있다.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는 단순한 과도기가 아니고, 그 나름대로의 뚜렷한 특징을 가진 독자적인 시기인 것이다.임진 병자 양대 국란을 격고 난 조선 후기 의 사회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많은 변모를 가져왔다.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피폐는 기존의 봉건적 규범과 질서에 영향을 주었다. 즉, 양반 지배층의 무능과 허식이 폭로되고, 평민들의 자아의식이 싹트면서, 평민 대중의 계층이 사회의 표면으로 부각되기에 이르렀다. 사상적으로는 전통적인 주자학이 관념적이고 형식적인 낡은 이념이라고 비판을 받게 되고, 보다 현실적이고 인간 생활 위주의 근대적 사상인 실학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리하여 문화면에서도 평민 대중의 문화 왕성하게 일어나고, 한글이 더욱 널리 보급되어 갔다.이러한 임병양란 이후의 사회상을 바탕으로, 우리 문학사에는 어떠한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Ⅱ. 임병양란과 이후의 사회상1. 임진왜란임진왜란은 1592년 일본의 조선 침략에서 1598년의 패퇴로 이어진 전쟁을 말한다. 왜란이라고 통상적으로 부르지만 조선과 일본 양국 간의 전쟁이라 하여 조일전쟁, 또는 정유재란과 구분하여 제1차 조일전쟁으로 부르는 시도도 있다.문에 농지를 전쟁 이전 수준으로까지 회복하는 데에는 상당한 기간이 걸렸다. 농민에게는 과대한 부담이 강요되어 농민의 농지 이탈 현상이 증가하였다. 조정에서는 민생을 안정시키고 관리들의 부정을 방지하고자 조세제도를 전면적으로 개편하였다.전쟁 중 자신의 신분을 증명하던 문서들이 모두 불태워지고, 공명첩이 발행되면서 사회절서 유지의 근간인 신분제도가 동요하기 시작했다. 또 궁궐과 서원 등 중요한 건축물과 많은 서적, 미술품 등이 소실되거나 약탈되었다. 사상적으로는 전쟁 중 일본군과 맞서 싸우다가 전사한 인물들을 숭배하는 풍조가 고양된 반면, 일본군에 의한 피해로 조선인들 사이에서는 일본인을 더욱 멸시하고 적대시하는 경향이 깊어졌다.이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조선 시대는 전기와 중기로 구분하기도 한다.2. 병자호란병자호란은 매우 짧은 시기의 전쟁이었지만 임진왜란을 겪고 난 조선에게 매우 큰 피해를 입혔다. 1636년 12월부터 1637년 1월에 사이에 벌어진 전쟁으로 청나라의 조선에 대한 제2차 침입으로 발발하였다. 병자호란은 조선 역사상 가장 큰 패배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데, 몽고에 대한 항쟁이 40여 년간 지속되었고, 임진왜란에서는 7년간의 싸움 끝에 왜군을 격퇴한 데 반하여, 병자호란은 불과 두 달 만에 조선의 굴복으로 끝나고 말았다.정묘호란이후 후금은 조선에 대하여 여러 요구를 하였다. 이 요구에는 식량지원과 명 정벌에 사용할 병선의 제공 등이 포함 되었다. 그리고 조선에 대하여 형제지맹을 군신 지의로 바꿀 것을 요구했는데 이것은 조선을 신하의 나라로 삼으려는 굴욕적 요구였다. 후금의 무리한 요구로 조선 내에서는 척화론이 대두했고, 후금과의 관계는 악화되었다. 이에 따라 홍타이지는 국호를 청이라 바꾸고 1636년 12월 9일 10만 명의 병력을 앞세워 조선을 공격했다.청의 기병은 우수한 기동력으로 순식간에 수도를 위협했고 조선 정부는 종묘와 비빈들을 먼저 강화도로 피난시키고 인조는 세자와 대신들과 함께 남한산성으로 피신했다. 그러나 갑작스런 전쟁으로 남한산성내작품이 쓰였다. 청의 조선에 대한 지배는, 청이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의 침략을 받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영향력을 잃기 시작했고 공식적으로는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노린 일본과의 전쟁에서 패한 후 체결된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끝이 났다. 청으로부터의 독립을 기념하여 독립협회에서는 청의 사신을 맞이하던 영은문을 헐고 독립문을 세웠다. 하지만 이 당시의 조선은 홍수와 가뭄이 겹쳐 농민들이 살기 힘들어지고 효종이 쓰러지자 북벌운동은 허수로 돌아간다.Ⅲ.임병양란 후의 문학사 변화임진왜란을 겪은 후 조선조는 정치, 경제, 문화, 사회 등 각 부문에 걸쳐 일대 혼란을 초래했다. 국가, 사회 기강은 극도로 문란했고, 실의와 절망의 사회풍조는 극에 달해 백성들로 하여금 생존의욕을 잃고 유리방황케 했다. 이에 따라 양반정치에 대한 회의와 불신도 날로 더해가 위정자들로 하여금 혁신적인 경륜과 시책을 펴지 않을 수 없게 했다. 그리하여 민심의 수렴책으로 전제, 세제, 병제 등을 쇄신하여 공정을 기하려 했고, 위정자들도 솔선수범민심수습에 애를 썼었다. 그러나 뒤에 병자호란이 일어나 정국은 바야흐로 파국에 직면했고 민심은 흉흉하여 걷잡을 수가 없었다.임?병 양란 이후는 여러 면에서 변혁의 시기였다. 명분보다 실천과 현실을 중시하게 되면서 실용적인 학풍인 실학이 중시되고, 평민 의식이 급성장했다. 특히 전쟁 중에 무기력했던 유학자의 권위주의를 배격하면서 허례허식보다 인간의 감정에 보다 충실한 분위기로 변했던 것이다. 이런 분위기가 사회 전반에 번졌고, 문학사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조선 후기의 문학 양상은 사상적 변화 요인이 가장 중요한데, 당시의 지배층은 성리학적 질서를 강화하여 자신들의 지배를 확고히 하려 했을 뿐 이러한 사회 변화의 움직임을 수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또 '이와 기'라는 형이상학적 주제에 지나치게 몰두하여 현실과 괴리가 있었을 뿐 아니라, 성리학적 명분론에 집착하여 양반과 상민의 구별을 엄격히 하고, 상업이나 기술학은 양반들이 할 일이 아니라 하여 천시하였다. 이처럼 사회 발을 의미하며 이는 우리나라의 역사와 언어, 국토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실학자들에 의한 국학 연구가 활발해 진다.네 번째의 특징은 민중적이라는 것이다. 지배층의 압박과 수탈에 시달리는 피지배층을 대변하고 그들의 생활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기울여 진다.이러한 흐름은 작품 속에 그대로 투영되어 제재와 주제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왔으며 이런 바탕 위에서 민중의 문학이 왕성하게 대두되어 표현은 사실적으로, 내용은 생활에 가까운 것이 되었다. 따라서 이 시기의 문학은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가 시작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이 시대의 문학의 특징은 양란 이후, 사대부의 권위가 실추되고 현실에 대한 비판과 평민 의식을 구가하는 새로운 내용이 작품 속에 투영되었으며, 비현실적, 소극적인 유교 문학에서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실학 문학으로 발전되었다. 비현실적이며 소극적인 안빈낙도와 음풍영월의 유가적인 문학에서,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문학으로 전환하였다.또한 작품의 제재 및 주제의 변화와 함께 작가의 범위가 확대되었고 산문정신의 영향으로 운문 중심에서 산문 중심의 문학으로 이행하였다. 한글의 보급으로 인해 평민들의 문자 생활이 가능해지면서 문학의 영역에서도 그 두각을 나타내는데, 평민 의식이 담긴 소설, 사설시조의 발달을 그 예로 들 수 있다.가사 장르에서도 여러 가지 주제를 담은 가사들이 등장하는데 주로 긴 장편가사의 등장이 두드러진다. 여행의 여정을 담은 기행가사, 유배의 체험을 담은 유배가사 부녀자들의 문학으로 여류 문학 내간체 수필, 내방 가사의 등장하였다.Ⅳ. 조선후기의 대표적인 문학위에서 살펴본 임병양란 이후의 문학사를 조선후기 대표적인 문학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첫째, 산문 정신의 발달에 영향을 받아 시조는 새로운 파격 형태인 사설시조를 낳게 되었다. 사설시조의 기원은 송강의 '장진주사'를 선두로 하여 이정보, 김수장, 박문욱, 김묵수 등 몇 몇 작가 외에는 대부분 작품들이 작자·연대 미상기에 와서 작자층이 다양해지면서 작품 계열도 여러 방향으로 분화되었다. 주로 현실적인 문제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고 여성 및 평민 작가층이 성장했으며 주제와 표현 양식이 다채로워졌다.박인로의 가사는 전시대의 정철의 가사나, 동시대의 윤선도의 시조에 비해 시어의 구사나 표현의 아름다움에서는 떨어지지만, 중후한 문체로 현실의 문제를 인식하는 길을 개척하여 조선 말기 개화기의 개화 가사나 의병 가사 등에 영향을 주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선상탄, 누항사, 태평사 등이 있다.내방 가사는 주로 영남 지방의 부녀자들에 의해서 지어진 규방 가사로 섬세한 여성들의 희로애락과 접빈객, 봉제사 하는 예의범절, 현모양처가 되는 방법 등 부녀들의 심정과 생활을 노래하였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화전가, 계녀가, 규중행실가 등이 있다.기행 가사는 국내 및 외국을 다녀온 견문을 가사로 기록하였다. 김인겸이 쓴 일동장유가, 홍순학이 쓴 연행가 등이 유명하다.유배 가사는 유배의 체험을 기록한 가사로 안조환의 만언사, 김진형의 북천가 등이 있고, 동학 가사는 서양 세력이 동양을 침략하는 데에 대해 깊은 위기감을 느끼고 동학을 알리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최제우의 용담유사가 유명하다.셋째, 판소리 사설은 그 구성에 있어 강한 개방성을 지니고 있다. 사설은 한 개인의 창작물이 아니라 광대들의 구비 전승을 통해 첨삭·집적된 것이며, 완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완성되어 가는 과정에 있다. 따라서 서사의 기본 골격은 대체로 유지되지만, 서사 진행과 직접 관련되지 않는 삽화나 삽입가요, 재담 등의 출입은 상당히 개방적이다.판소리 사설의 또 다른 구성적 특징은 부분의 독자성이다. 사설을 구성하고 있는 각 대목들은 전체에 완전 종속되지 않고 상당한 독립성을 지니고 있다. 각 대목이 그 자체의 흥미와 감동을 극대화하기 위해 독자적으로 확장되면서, 사설의 앞뒤 내용에 더러 모순이 나타나기도 했는데, 이는 관중을 직접 상대하여 연행되는 판소리에서는 그때그때의 흥미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부분의 감동이 전체의 통다.
    인문/어학| 2007.11.22| 7페이지| 1,500원| 조회(1,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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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년대 시문학사-작가별 정리
    1920년대의 시문학사>3.1 운동, 좌익 이데올로기의 등장, 본격적인 서구 문예 사조의 유입 등이 문학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3.1 운동의 실패로 민족적 좌절을 겪었으나 일제가 문화정치로 전환함으로써 1920년 , 가 창간되었고, , , , 등 동인지와 종합지가 간행됨으로써 문학의 저변이 확대되었고 전문 문학인의 등장으로 문학적 기반이 확립되었다.20년대는 본격적인 현대문학이 이루어진 시기이다. 현대 문학의 다양한 경향을 실험하고, 새로운 기법을 시도하면서 새로운 현대 문학을 모색했다. 이는 문학을 계몽의 수단으로부터 분리시켜 예술 본연의 문학으로 위상을 정립시켰다. 이 시기의 전반기에는 김억, 황석우, 홍사용 등의 작품이 낭만적인 시경향을 보이는데, 이후 한국 근대시는 김소월의「진달래꽃」이나, 한용운의「님의 침묵」같은 작품의 배출로 뛰어난 성과를 거둔다.한편 후반기에는 이러한 낭만주의적 경향을 극복하고 현실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려는 사실주의의 경향을 보였다. 또한 좌익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신경향파'가 등장하자, 민족주의에 바탕을 두고 우리의 전통을 계승하고자 하는 '국민 문학파'가 등장하여 '신경향파'를 계승한 '카프(KAPF)'와 대립하였다.·3.1 운동 : 3.1운동의 실패는 일종의 허무의식과 좌절감을 안겨 준 반면 민족적 정체감을 확인시켜주는 계기가 되었다. 따라서 20년대는 민족주의가 성숙, 민중주의 및 민주주의 기운이 팽배하게 되었다.* 1920년대 시의 경향을 설명하시오.1920년대의 시의 특징은 대체적으로 개인적 정서에 민족적 운율을 깊이 있게 결합시켰고, 서구의 여러 문예 사조를 받아들여 새로운 감각으로 민족적 정서를 표출하였으며, 경향시의 등장과 시조부흥운동이 전개되었다는 점이다.·경향시 : 이 시들의 언어는 매우 거칠지만 시의 영역을 넓힌 점은 인정된다. 시가 개인의 정서와 함께 사회 사상을 반영하고 계급적 성격도 그려낼 수 있다는 인식의 틀을 넓혔다.김소월1. 시인의 삶시인. 본관은 공주. 본명은 정식. 평안북도 구성 출생. 아버연 혹은 신에 대한 향수의 거리]라고 해석하기도 한다.그러나 '저만치'를 시인과 자연과의 정서적인 거리로 이해하는 것은 타당할까? 무엇보다 제3연이 그러한 해석을 거부한다. '새'는 시인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이다. 그런데 그 새는 꽃이 '좋아' 산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저만치'는 시인과 꽃과의 거리라기보다는 산에 피어 있는 꽃들 사이의 거리를 나타내는 말로 이해되어야 한다.여러 꽃들을 떠나서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는 꽃은 시인의 고독한 운명을 발견케 하는 매개물이지 자연 그 자체는 아니다. 그런데 그 외로움의 길은 자신이 '좋아' 선택한 것이다.그러므로 '저만치 혼자서'라는 위치 측정은 타인과의 세계에서 자신을 스스로 소외시키고, 인생을 정면에서 대결하며 살지 못하게 하여 항상 수동적인 자세로 살게 만든다. 그것은 숙명론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는 '저만치 혼자서' 피었다 지는 꽃에서 자신 또는 인간이 '어차피 고독하게 태어났다가 죽는 존재'라는 사실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초혼(招魂)) - 김소월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어!허공중(虛空中)에 헤어진 이름이어!불너도 주인(主人)업는 이름이어!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어!심중(心中)에 남아 있는 말 한 마듸는끗끗내 마자하지 못하엿구나사랑하든 그 사람이어!사랑하든 그 사람이어!붉은 해는 서산(西山) 마루에 걸니웟다.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떠러저 나가 안즌 산(山) 우헤서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서름에 겹도록 부르노라,서름에 겹도록 부르노라.부르는 소리는 빗겨 가지만하눌과 땅 사이가 넘우 넓구나.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여도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어!사랑하든 그 사람이어!사랑하든 그 사람이어!1. 시작(詩作) 배경비탄을 노래한 절정의 시로 소월의 대표작의 하나인 이 작품은 사랑하는 이의 죽음 앞에 선 한 인간의 처절한 슬픔을 노래한 시로서 살아서도 사랑을 짓밟기 쉬운 세상에, 이 시는 죽은 뒤에 더욱 그리운 사랑을 노래했다. 또한 치유될 길이 없는 세계와의 단절을 절감하면서도 단절로 받아들이기를일이 되며, 다른 한편으로는 윤리적?교육적 목적이 없는 예술의 순수성을 닦아가는 지름길이 된다. 그래서 그는 “개념으로 노래를 부르려는 것”과 “개념으로 된 민중시”를 몹시 싫어했다.그는 개념의 시와 함께 당시 유행하던 데카당스의 문학 풍조도 배격한다. 그의 시에 보이는 ‘남성적 건강성’은 1920년대 초반의 우리 시단에풍미하던 퇴폐적인 낭만주의와는 거리가 있다. 민중 지향적인 그가 사회를 병들게 하는 퇴폐주의적 문학을 싫어했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또한 그는 기법상에 있어서 상징적표현이나 사물의 의인화를 시도하였고 「샘물이 혼자서」나 「할미꽃」과 같은 민요조의 서정시는 김억이나 김소월의 이른바 민족적 정서를 담은 민요시의 길목을 닦아 놓았다고 해도 결코 지나친 말은 아니다.1. 불놀이 주요한아아, 날이 저문다. 서편(西便) 하늘에, 외로운 강물 위에, 스러져 가는 분홍빛 놀……. 아아, 해가 저물면, 해가 저물면, 날마다 살구나무 그늘에 혼자 우는 밤이 또 오건마는, 오늘은 4월이라 파일날, 큰 길을 물밀어가는 사람 소리는 듣기만 하여도 흥성스러운 것을, 왜 나만 혼자 가슴에 눈물을 참을 수 없는고?아아, 춤을 춘다, 춤을 춘다. 싯벌건 불덩이가 춤을 춘다. 잠잠한 성문(城門) 우에서 나려다 보니, 물 냄새, 모래 냄새, 밤을 깨물고 하늘을 깨무는 횃불이 그래도 무엇이 부족하야 제 몸까지 물고 뜯을 때, 혼자서 어두운 가슴 품은 젊은 사람은 과거(過去)의 퍼런 꿈을 찬 강물 우에 내여던지나 무정(無情)한 물결이 그 그림자를 멈출 리가 있으랴? ―아아, 꺾어서 시들지 않는 꽃도 없건마는, 가신 임 생각에 살아도 죽은 이 마음이야, 에라, 모르겠다, 저 불길로 이 가슴 태워 버릴까. 이 설움 살라 버릴까. 어제도 아픈 발 끌면서 무덤에 가 보았더니, 겨울에는 말랐던 꽃이 어느덧 피었더라마는, 사랑의 봄은 또다시 안 돌아오는가, 차라리 속 시원히 오늘 밤이 물 속에……. 그러면 행여나 불쌍히 여겨 줄 이나 있을까……. 할 적에 '퉁, 탕' 불티를 날리면서 튀어나 열려는 시인의 소망이 반영되어 있다.이 시의 운율적 특징을 살펴 보면 ‘샘물이 / 혼자서 / 춤추며 / 간다 // 산골짜기 / 돌 틈으로’의배열로 각 연의 1?2행은 모두 4음보로, 3행은 2음보로 구성되어 있으며, ‘간다’를 제외한 모두가 3(4)음절을 1음보로 하는 우리 시가의 전통적 율격 단위를 보여 주고 있다. 또한 1?2연을 부사어로 끝내어 동적인 방향성과 미완성 상태를 나타내고 있으며, 3연은 서술형 종결 어미로써 시상을 마감하고 있다.계몽성과 교술성의 완전한 청산, 3(4)?4조의 정형률 탈피, 균형미 있는 자유시형 확립, 영탄적 어조를 배제한 절제된 감정, 세련된 구어체, 특히 ‘험(險)한’을 제외한 순우리말 사용 등은 동시대의 시 가운데서 이 작품을 가장 뛰어난 것의 하나로 평가하게 한다.3. 빗소리비가 옵니다.밤은 고요히 깃을 벌리고비는 뜰 위에 속삭입니다.몰래 지껄이는 병아리같이.이지러진 달이 실낱같고별에서도 봄이 흐를 듯이따듯한 바람이 불더니,오늘은 이 어둔 밤을 비가 옵니다.비가 옵니다.다정한 손님같이 비가 옵니다.창을 열고 맞으려 하여도보이지 않게 속삭이며 비가 옵니다.비가 옵니다.들 위에, 창 밖에, 지붕에남모를 기쁜 소식을나의 가슴에 전하는 비가 옵니다.■ 핵심 정리▶ 성격 : 서정적, 시각적▶ 어조 : 여성적 어조▶ 표현 : 반복, 도치, 의인, 직유.▶ 구성 : ① 뜰 위에 속삭이는 봄비(1연)② 비가 오기 전의 따뜻한 봄바람(2연)③ 다정한 손님같이 속삭이는 봄비(3연)④ 남 모를 기쁜 소식을 전하는 봄비(4연)▶ 제재 : 비 오는 모습▶ 주제 : ① 고요하고 은근하고 기쁜 봄비의 서정 ② 봄비를 대하는기쁨이 시의 전반부(제1,2연)가 비가 오는 것 또는 오려고 하는 날씨를 감각적으로 표현하였다면, 후반부(제3,4연)는 그것을 보다 정서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봄밤에 ‘몰래 지껄이는 병아리같이’, ‘보이지 않게 속삭이며’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화자는 ‘다정한 손님’이 ‘남 모를 기쁜 소식’을 전해 주러 온다고 생각한다. 우리도향(羅稻香)·박영희(朴英熙) 등과 함께 《백조 白潮》 동인이 되어 본격적인 문단활동을 시작하였다.1919년 3·1운동 때에는 백기만 등과 함께 대구학생봉기를 주도하였다가 사전에 발각되어 실패하였다.또한, 김기진(金基鎭) 등과 함께 1925년 파스큘라(Paskyula)라는 문학연구단체 조직에 가담하였으며, 그해 8월에는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의 창립회원으로 참여하였다.1927년에는 의열단(義烈團) 이종암(李鍾巖)사건에 연루되어 구금되기도 하였다.1934년에는 조선일보 경상북도총국을 경영하였다가 1년 만에 실패하였다.1937년 3월에는 장군인 형 이상정(李相定)을 만나러 만경(滿京)에 3개월간 갔다와서 일본관헌에게구금되었다가 11월말경 석방되었다.그뒤 3년간 대구 교남학교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권투부를 창설하기도 하였다.그의 나이 40세에 학교를 그만두고 독서와 연구에 몰두하여 〈춘향전〉을 영역하고, 〈국문학사〉·〈불란서시정석〉 등을 시도하였으나 완성을 보지 못하고 43세에 위암으로 죽었다. 문단데뷔는 《백조》 동인으로서 그 창간호에 발표한 〈말세의 희탄(?嘆)〉(1922)·〈단조 單調〉(1922)를 비롯하여 〈가을의 풍경〉(1922)·〈이중(二重)의 사망〉(1923)·〈나의 침실로〉(1923)로써 이름을 떨쳤다.특히, 〈나의 침실로〉는 1920년대 초기의 온갖 주제가 한데 결합한 전형이라 할 수 있는데, 어떠한 외적 금제로도 다스려질 수 없는 생명의 강렬한 욕망과 호흡이 있고, 복합적인 인습에의 공공연한 반역·도전이 있으며, 이 모두를 포용하는 낭만적 도주의 상징이자 죽음의 다른 표현인 ‘침실’이 등장한다.이 계열의 작품으로 〈몽환병 夢幻病〉(개벽, 1925)·〈비음 緋音〉(개벽, 1925)·〈이별(離別)을 하느니〉(조선문단, 1925) 등이 있다.이와는 달리 경향파적 양상을 드러내는 작품들로는 〈가상〉·〈구루마꾼〉·〈엿장사〉·〈거러지〉(이상은 개벽, 1925)가 있고,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개벽, 1926)의 사회참여적인 색조로 원숙한 작품을 발표하였.
    인문/어학| 2007.10.12| 36페이지| 2,000원| 조회(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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