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모더니즘과 소비문화서론[포스트 모더니즘과 소비문화]를 이야기하기전에 간단히 포스트 모더니즘의 개념과 소비문화의 개념에 대해 살펴 보겠다. 먼저 포스트 모더니즘의 사전적인 정의는 ‘1960년에 일어난 문화운동이면서 정치 ·경제 ·사회의 모든 영역과 관련되는 한 시대의 이념’이라고 정의 되어있다. 이는 쉽게 한줄로 정의 될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문화예술의 경우는 시기구분이 좀더 세분화되어 19세기 HYPERLINK "http://100.naver.com/100.nhn?docid=83827" 사실주의에 대한 반발이 20세기 전반 모더니즘이었고 다시 이에 대한 반발이 포스트모더니즘이다. 여태껏 대학과 박물관, 화랑 조직 그리고 재단들을 지배하여왔던 본격적인 모더니즘에 대한 특정한 반발로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개성 ·자율성 ·다양성 ·대중성을 중시한 포스트모더니즘은 절대이념을 거부했고 또 통일성을 거부하고, 인간의 탈 중심화, 언어의 한계성, 어떤 중요한 경계나 분리가 소멸된 것이다. 예를 들면 불명료한 성격, 성에 대해 공공연히 이야기하는 것, 사회나 정치를 노골적으로 경멸하는 것 등과 같은 것을 말할 수도 있다. 이것은 과거의 고급문화와 소위 대중문화 혹은 통속문화 사이에 존재하던 구분이 사라진 것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소비문화는 ‘ HYPERLINK "javascript:klink('%EB%8C%80%EB%9F%89');" 대량 HYPERLINK "javascript:klink('%EC%86%8C%EB%B9%84');" 소비와 HYPERLINK "javascript:klink('%EC%86%8C%EB%B9%84%EC%83%9D%ED%99%9C');" 소비 생활 HYPERLINK "javascript:klink('%EC%9C%84%EC%A3%BC');" 위주의 HYPERLINK "javascript:klink('%EA%B0%80%EC%B9%98%EA%B4%80');" 가치관을 HYPERLINK "javascript:klink('%ED%8A%B9PERLINK "javascript:klink('%EB%B3%B4%EB%8B%A4');" 볼 HYPERLINK "javascript:klink('%EC%88%98');" 수 HYPERLINK "javascript:klink('%EC%9E%88%EB%8B%A4');" 있다. 이는 상업성이라는 부분까지 강조하게 되는 것이며 요즘과 같은 산업 사회에서 빼놓을수 없는 부분이다.여하튼 이러한 내용의 포스트 모더니즘을 좀더 쉽고 간결하게 말하자면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행동이나 개념과 같은 것을 포스트 모더니즘이라 칭할수 있다. 그리하여 포스트 모더니즘과 소비문화를 함께 말하는 것은 현대 사회에서는 당연한 일이 될수도 있는 것이다.우리는 이 포스트 모더니즘에 대한 이야기를 소비 중심의 사례를 예로 들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본론현대 사회에서 포스트 모더니즘 현상을 찾기는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패션, 광고, 사회, 문화, 예술 모든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포스트 모더니즘과 소비현상이 같이 일어나는 것을 인지하여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포스트 모더니즘 사회에서 소비문화의 변화를 느기면서 살고 있으나 이를 인지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에서는 음악, 의류, 화장품, 광고 등과 같은 여러 모든 분야에서 포스트 모더니즘과 소비현상의 조화를 같이 자세히 하나씩 찾아보고 이야기 나눠보자(1) 음악우선 첫째로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최근 몇 십년사이에 천천히 퍼지게 되어 유행하여 이젠 자리매김까지 한 음악의 장르 중에 뉴에이지라는 음악의 장르가 있다. 이는 동양적인 사상 기반위에서 태어난 음악으로 고전음악이나 포크 음악 등 여러 장르의 음악을 고루 융합시킨 연주음악이다. 우리는 흔히들 뉴에이지음악은 "서정적이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조용한 음악" 이라고만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뉴에이지음악은 처음 태동한 이후에 아주 여러 형태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즉, 사상적인 기반은 하나이지만 여러 음악적인 형태를 는 상업화됨을 알수 있었다. 예술이라는 분야, 아니 음악이라는 분야가 꼭 예술성만을 띄고 해야한다는 정의는 없다. 하지만, 이 뉴에이지 음악 같은 경우는 기존 음악의 틀을 깨고 동서양 음악의 조화에 목표를 두어 시작하여 포스트 모더니즘의 대표적인 형태로 볼수있는 음악의 형태이고, 이에 더불어 수요와 공급에 수지를 맞춘 소비성을 점차 갖추게된 음악으로 볼수 있다.또, 이런 뉴에이지 음악이 아니여도 우리 가요속에서도 포스트 모더니즘과 소비성이 함께 드러난 부분은 충분히 찾아볼수 있다. 예를 들면, 2002년과 2006년 월드컵을 떠올려보자. 이때는 우리의 승리를 기원하는 수많은 월드컵 응원가가 등장했다. 그 중 윤도현 밴드가 부른 락버전 ‘애국가’라는 월드컵 응원가가 있다. 이는 한 이동통신사에서 월드컵 응원가 및 광고용 음악으로 사용하려고 제작한 노래였다. 하지만 이는 기존 ‘애국가’라는 것에 대한 보수적인 고정관념의 틀을 깨고 락버전으로 리메이크하여 이것을 상업성 광고용 음악, 또 월드컵 응원가로 쓰인 것이 화제,문제가 되었다. 이는 기존 응원가, 광고계, 음악계에서 기피하던 방식이기도 하였으나 이를 과감히 사용하여 강력한 주목효과, 광고효과를 누리게 되었다. 이리하여 이 음악을 사용하였던 이동통신사는 생각보다 더 큰 광고 수익과 그외의 벨소리, 컬러링 등 여러 부수익도 함께 올리게되었다. 이와 같이 음악에서는 장르의 변화 뿐만 아니라 기존의 음악을 변화 시키는 방법도 이용하여 금기시 했던 것들을 가볍게 벗어 던지고 여러 변화들을 시도하고 소비와도 직결 시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2) 광고두번째로 광고에 대한 예를 들어 보자. 광고라는 것은 물건을 잘 팔기 위한 수단으로 쓰이는 홍보물이므로 어떤 광고든지 소비와 직결되어있다. 하지만 이 소비와 포스트 모더니즘이라는 개념이 공존하는 광고는 쉽사리 찾기는 쉽지않다. 왜냐하면 광고는 대중적이지만 눈에 튀어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둘이 공존하는 유명한 광고가 하나 있다. 최근 몇 년 전에 방영된 여성 화장높아지고 관심이 커지면서 이가 바로 소비를 불러 일으킬수 있는 긍정적인 효과를 맛본 광고이다. 당시 도도의 화장품이 여성들의 인기를 받고 있었는 시점에다가 때마침 획기적으로 등장한 이 하리수의 이 화장품 광고는 당시는 큰 수익을 불러 일으킬 만한 가치 있었다. 아마 이 광고 만큼은 현존하는 광고중에서 가장 포스트 모더니즘적이고 광고계에서 오래 남을 장면이 된듯 하다.(3) 춤세번째는 춤에서 찾아볼수 있다. 1990년부터 서태지와 이이들과 듀스의 등장으로 우리나라에는 힙합이라는 장르가 음악과 춤 모든 분야에서 젊은이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고, 아직도 힙합 클럽등의 성행으로 이어지고 있다. 춤 중에는 브레이크 댄스와 힙합댄스 등이 인기를 끌고 있다. 그중에서 브레이크댄스를 전문적으로 춤추는 친구들을 우리는 ‘B-boy’라 부른다. 예전의 B-boy는 공부 안하고 노는 것 좋아하는 중, 고등학생들이 길거리에서 추는 춤이라는 개념이 컸다. 하지만 지금의 B-boy들은 매우 조직적이며 체계적인 학습과 세계 대회와 같은 경연대회를 통해 그들의 실력을 인정받고 향상 시켜나아가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부흥하여 이 B-boy들은 이제 길거리가 아닌 공연장 안, 무대안으로 장소를 살짝 옮겨 춤부고 있는 것이다. 기존의 브레으크 댄스에 현대무용, 한국무용, 째즈..등과 같은 다양한 장르의 춤을 융합하여 예술화 하고 이를 무대위에서 공연하는 방식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너무나도 혁신적인 시도였다. 관객들은 이를 기존의 예술 분야와의 이질감에 즐거워하며 찾는 이들이 늘어나 최근 몇 개월동안 큰 인기를 누려 몇번이나 앙콜 공연을 선보인 ‘B-boy를 사랑한 발레리나’ ‘더 굿’ ‘굿모닝 비보이’ ‘마리오네트’ 등의 다양한 비보이 공연은 음악, 광고 처럼 기존의 틀에서 매우 벗어난 형태로 등장하였고 더불어 큰 수익도 누릴 수 있었던 사례이다. 이 중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 라는 공연은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이 공연은 무언극으로써 몸으로써 모든 것을 10대를 소재로한 영화도 많다. 하지만 2005년 개봉한 ‘제니주노’라는 영화를 보면 지금까지의 10대와는 다른 10대를 겨냥한 것이 보일것이다. 보통 10대의 학교생활이나 폭력, 사랑, 가족 문제에서 한층 더 발전한 10대의 임신이라는 소재였다. 이는 우리나라 사회에서는 쉽게 받아들일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혼전 임신이라는 부분도 민감한 소재인데 미성년자의 임신을 그린 이 영화는 독특한 소재일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이를 주제로 삼아 큰 흥행을 이끌진 못하였지만 유지이상의 수익은 올렸다고 하였으며 무엇보다 관심 만큼은 크게 이끌어었다. 이를 10대를 이용한 상업성이라는 표현도 나왔다. 이 10대의 임신이라는 소재가 수많은, 매우 다양하고 어렵고 재밌는 주제를 다루는 영화계에선 매우 소소해 보일수도 있다. 하지만 역시나 이런 부분도 우리사회에서 매우 금기시 되던 분야이기 때문에 이는 매우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성격을 띄고 있었으며 관객들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게 한것이다.(5) 개인 인터넷 쇼핑몰다섯번째로는 인터넷 쇼핑몰의 확산을 들수 있다. 예전에는 인터넷 포털 싸이트나 옥션과 같은 경매 싸이트에서 옷, 가구, 전자제품 등의 물건을 사고 파는 것이 대세였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 급격히 발전한 개인 인터넷 쇼핑몰의 확산은 포스트모더니즘현상을 설명할수 있을 것이다. 기성복이지만 나만의 스타일, 나만의 기성복을 입고 싶어하는 소비자들의 마음을 한발 먼저 읽어 내려간 패션에 감각있는 사람들이 그들만의 스타일로 코디하여 직접 옷을 입고 사진을 찍어 올려 그 사진을 보고 물건을 사게하는 방식의 개인 인터넷 쇼핑몰이 증가하고 있다. 이는 비단 옷만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옷뿐만 아니라 개인이 직접 만든 소품이며 가구,음식,과일 등 사람의 손으로 할수 있는 모든 것을 팔고 있다. 이는 발전하는 우리나라 현대사회에 가장 알맞게 등장하는 상업성 짙지만 적절한 분야이다. 소비자들의 욕구를 만족시켜주면서 사업자는 수입에 즐거움을 느낄수 있으니 말이다.결론우리는 지금.
Alvaro de Campos알바루 드 깜뿌스(Alvaro de Campos)는 페르난두 뻬소아(Fernando Pessoa)의 가상인물(Heteronimos)로써 Alberto caeiro와 Ricardo Reis와 함께 가장 잘 알려진 가상인물이다.가상인물들은 그의 문학성격의 복잡성과 풍부성에 기인한다. 자신이 처한 현실 앞에 그가 가졌던 다양하고 복잡한 예술적, 철학적 입방과 정신 상태를 표출한 것이다. 페르난두 뻬소아(Fernando Pessoa)는 포르투갈의 시 전통을 잘 보여주고 있지만, 동시에 가장 모더니스트한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상념과 느낌, 의지와 생각, 희망과 실망간의 모순 등 삶의 역설적인 이중성을 보여주며, 고통, 절망, 권태, 구토, 아픔, 향수를 총한 염세적인 태도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또 그는 스스로 1928년 12월에 간행된 쁘레젠쌰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가명으로 쓴 작품은 서명한 이름을 제외하고는 바로 그 작가의 작품이다. 그러나 가상인물로 쓴 작품은 그 작가의 작품이 아니고 마치 어느 연극에서 한 인물이 이야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작가에 의해 탄생된 완전히 새로운 다른 인물의 작품이다. 가상인물 중의 하나인 알바루 드 깜뿌스(Alvaro de Campos)의 다음 시가 이를 가장 잘 집약하고 있다.Multipliquei-me, para me sentir,Para me sentir, precisei sentir tudo,Transbordei, nao fiz senao extravasar-me,Despi-me, entreguei-rne,E ha em cada canto da minha alma um altar a um deus diferente.(나를 느끼기 위해 내 자신을 다수로 만들어야 했다.나를 느끼기 위해 모든 것을 느끼는 게 필요했다.넘쳤다. 허나 내 자신을 비워버린다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옷을 벗고 내 자신을 맡겨 버렸다.그리고 내 영혼의 모든 구석에 서로 다른 신을 위한 제단이 있다.)1917년 ‘Portugal Futurista'지에 페르난두 뻬소아(Fernando Pessoa)는 자신의 이름으로 시를 발표함과 동시에 Alvaro de Campos란 가상 인물로 미래주의 선언인 ‘Ultimatum’을 게재한다.알베로 드 깜뿌스는(Alvaro de Campos)1889년 Tavira에서 태어나 스코틀랜드에서 조선공학을 공부한 선박엔지니어이다. 그러나 리스본으로 돌아온 후 선박 엔지니어로 생활하지는 않는다, 큰 키에 마른 인물로 신경질적이다. 실제의 페르난두 뻬소아(Fernando Pessoa)와 가장 근접한 인물이다. 감성적이며 지적인 시인으로 현대 기계문명을 환호한다. 미래주의 정신과 일치하여 현대의 역동적 현실에 동화한다.Dentro de mim estao presos e atados ao chaoTodos os movimentos que compoem o universo,A furia minuciosa e dos atomos,A furia de todas as chamas, a raiva de todos os ventos,A espuma furiosa de todos os rios, que se precipitam,(우주를 이루고 있는 모든 운동이 내속에서묶여져 있고 잡혀 있다.분자들이 미세한 분노,모든 불길의 분노, 모든 바람의 격분.돌진하는 모든 강들의 분노에 찬 거품.)O binomio de Newton e tao belocomo a Venus dr Milo.O que ha e pouca gente para dar por isso.(뉴톤의 이항식은 미로의 비너스처럼 그렇게 아름답다.남은 것은 이 사실을 적은 사람만이 알고 있다는 것이다.)알베로 드 깜뿌스(Alvaro de Campos)는 문학적이든 인간적이든 반항적인 기질을 보여주는데, 그의 작품을 통해 전통적인 포르투갈의 시 전통을 깨뜨리는 혁명성이 주목된다. 과장되고 역설적인 자유시를 선호하며 일상의 권태, 단조로움, 피곤함 등 부정적인 삶의 모습을 노래하고 있다. 대표작은 [오드마리띠마]로 현재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있을 정도 20세기 포르투갈 문학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는데 의심할 여지가 없다.[개인의견 및 생각]페르난두 뻬소아는 본인 실명 말고도 가상인물로써 자신의 다양한 시의 세계를 다양하게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지금까지 세계 어느 곳에서도 뻬소아와 같이 소설도 아닌 시에서 어떠한 가상적인 나이, 생일, 고향, 성격 등 의 수많은 것들로 진짜 인물인 것 인냥 완벽한 배경을 갖춘 가상인물을 만들어 놓고 시를 쓸 수 있는지 궁금하다. 그는 가상인물을 통한 현명한 선택을 한 것 같다. 뻬소아가 자신의 실명하나로 여러 세계관 혹은 가치관을 표현했다면 지금의 뻬소아 만큼 인정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자신의 이름으로는 모더니즘과 포르투갈의 Saudade를 노래하고, 깜뿌스의 이름으로는 미래주의를 표출하고.. 그리고 다른 가상 인물들로도 각기 다른 노래를 한 것이 그에겐 가장 큰 업적이며, 그가 인정 받을수 있는 이유 중 하나인 것이다. 본인의 모습과 가장 흡사하다는 깜부스라는 인물로서 숨겨진 자신의 내면의 세계를 비추고자한 것 같다. 본의 실명으로도 표현하지 않은 자신의 본 모습을 가상인물로 보여준다는 것이 얼마나 힘겹고 어려운 일인가 다시금 생각도 해본다.
1. 서론실물을 뜻하는 라틴어 'realis'에서 유래한 사실주의는 관념과 상상에 대립되는 이 말은 원래 철학적인 용어로 실재론을 의미한다. 사실주의는 서양의 근대문학에서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이후에 나타난 사조로서 사실을 있는 그대로 충실히 묘사하는 것을 기본 방침으로 하는 현실주의적인 문예사조이다. 이러한 사실주의(Realismo))에 대한 반발로 20세기 초에 나타난 모더니즘(Modernismo)는 1910년을 전후로 유럽과 영미 문학에서 발생한 실험적인 사상들의 표출이었고 이는 예술에 의한 예술이었다. 우리는 이 모더니즘에 대한 개념, 배경, 특징, 모더니즘과 아방가르드, 포스트 모더니즘과의 차이 등을 알아보면서 모더니즘을 올바르게 알아보자.2. 본론1) 모더니즘의 개념예술상에서의 모더니즘은 20세기 초, 특히 1920년대에 일어난 표현주의 ·미래주의 ·다다이즘 ·형식주의(포멀리즘) 등의 감각적 ·추상적 ·초현실적인 경향의 여러 운동을 가리켜 말한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이와 같은 여러 운동을 통틀어 모던 아트(modern art)라고 말하는 경향이 많으나, 이것을 대국적인 견지에서 말한다면 19세기 예술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사실주의(리얼리즘)에 대한 반항운동이며, 제1차 세계대전 후에 일어난 전위예술(前衛藝術: 아방가르드) 운동의 한 형태였다.하지만 모더니즘은 예술 전반에 걸쳐 일어난 운동이다. 모든 예술 분야에 걸쳐 봉건성에 대한 반항, 과학이나 합리성을 중시하며 기계문명과 도회적 감각을 가지고 현대풍을 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할 수 있다.유의할 점은 모더니즘은 모더니티(modernity)와 같은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다. 모더니티는 우리말로 '근대화', '현대화' 를 의미하며 모더니즘은 이러한 모더니티 안에 포함되어 있는 개념이라는 것이다.2)모더니즘의 배경ⅰ) 근대화모더니즘은 근대사회의 성립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말해주는데 즉, 그것이 사회가 근대화의 과정을 밟아 가는 속에서 개인들이 겪게 되는 경험의 표현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말해주고 즉 모더니즘은 주관성과 그것에 기초를 두고 있는 개인주의를 기본 원칙으로 삼는다. 그것은 객체보다는 주체를, 외적 경험보다는 내적 경험을, 그리고 집단의식 보다는 개인의식을 훨씬 더 높이 여긴다. 현상 세계와 인간의 자아 사아에 유기적인 상호 관련성을 인정하던 19세기 작가들과는 달리, 모더니즘 작가들은 모든 가치와 진리가 오직 로부터 출발한다고 굳게 믿는다.모든 가치와 진리가 전적으로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면, 예술사는 객관적 현상 세계 대신에 주관적 실체 세계에서 모든 해답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 예술은 우주나 자연 또는 삶의 실재를 모방하거나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창조해내는 것이라는 것이 모더니즘의 기본 입장인 것이다.ⅲ) 실존주의적 인생관주관적의 개념이 바탕인 실존주의는 대부분 모더니즘 작가들은 비록 철학가는 아니었지만 현대인이 놓여 있는 인간 조건을 실존주의적 관점에서 즐겨 다룬다. 더구나 실존주의라는 것도 추상적인 명제로 이루어진 체계적인 철학 이라기보다는 삶에 대한 구체적인 견해나 태도를 가리키는 편리한 꼬리표에 지나지 않는다. 허무주의와 공허감, 갈등과 긴장을 말한다.20세기에 접어들면서 과학과 기술이 급진적 발전이 자져다 준 충격과 그것에 따른 인간 정신의 약화로 말미암아 인간은 그 어느 때 보다 삶의 실존적 의미를 더욱 실감하게 되었다. 산업의 발달로 인해 인간은 왜 존재하냐는 문제에 이르게 된다. 특히 두 번의 세계 대전은 그동안 인류가 받아 들여 온 가치관에 회의를 갖게 했다. 실존주의는 바로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서 발생했다. 이러한 실존주위는 문학을 통해서 발전했는데 많은 모더니즘 작가들이 의식 또는 무의식적으로 실존주의자들이 주장하고 있는 삶의 문제를 작품에서 다루었다. 실존주의는 인간경험의 구체적이고 극적인 면을 취급하기 때문에 주로 문학 작품을 통하여 전파되었다. 많은 모더니즘 작가들이, 실존주의자들이 주장하고 있는 삶의 문제를 작품에 취급하였는데 그들이 즐겨 사용한 실존적 인생관은 다음과 같다.*자들은 미적 형식에서 이념적 물질적 계기를 발전시켰고 미술에 있어 창조를 제조 로 작가를 생산자 로 대체하는 개념과 기능의 적극적인 변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아방가르드는 점차로 미학과 정치적 영역의 분리, 즉 초기의 아방가르드의 정치적인 도전들이 예술가 개인의 형식적 실험의 제한된 탐구로 떨어져 분리의 입장으로 후퇴했다. 이 같은 정치적 영역과 문화적 영역의 의도된 분리의 정당화는 대중문화를 철저하게 거부하는 양식으로 전개된다. 레나토 포지올리(Renato Poggiloi)는 「아방가르드의 이론」이란 저서에서 아방가르드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첫째, 적극적 행동주의(Activism) - 행동, 다이너미즘, 전진, 탐험정신둘째, 대립의식(Antagonism) - 역사적 사회적 기본질서에 대한 대립의식, 반전통주의셋째, 허무주의(Nihilism) - 파괴성, 유치함, 극단적 행동넷째, 불안(Agonism) - 낭만적 불안, 긴장, 희생, 정신적 패배주의다섯째, 미래주의(Futurism) - 미래의 예술에 대한 예견이나 예고모더니즘과 아방가르드는 다 함께 낭만주의에 깊은 뿌리를 박고 있다. 아방가르드를 특징짓는 이상주의적이고 유토피아적인 경향은 곧 낭만주의 전통의 유산을 물려받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독일에서 아방가르드는 흔히 18세기 말엽 요한 볼프강 폰 괴테와 프리드리히 쉴러로 대변되는 이른바 폭풍과 노도 운동의 맥락에서 이해되어 왔으며, 아방가르드 라는 용어가 흔히 노이-로만틱 (새로운 낭만주의)이라는 표현으로 불리어 왔다는 사실에서도 이 점이 잘 드러난다. 아방가르드는 모더니즘의 동의어도 아니며 모더니즘의 하부 개념이나 상부 개념도 아니다. 모더니즘과 매우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으면서도 모더니즘과는 엄격히 구별되는 독립된 현상이다.i) 다다이즘과 전위적 실험주의다다이즘은 스위스를 비롯하여 독일과 프랑스 그리고 미국 등 여러 나라에 걸쳐 더욱 국제적인 규모로 발전되었다. 다다이즘은 취리히, 베를린, 콜로뉴, 파리, 뉴욕과 같은 대도시를 중심으로 전개되었운동에서 발전되었다면, 초현실주의는 상당 부분 다다이즘에서 발전되었다. 이 사실은 다다이즘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앙드레 브르통이 초현실주의를 창시한 사람이나 다름없다는 점에서도 잘 입증된다. 이 점과 관련하여 초현실주의는 완전히 준비를 갖춘 채 살아있는 모습으로 다다의 왼쪽 귀에서 튀어나왔다. 고 한스 리히터는 주장한 바 있다. 그는 초현실주의는 곧 다다이즘 이라는 등식이 성립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주장은 초현실주의 특유의 성격을 무시한 채 지나치게 다다이즘과 동일시하는 과오를 범한 것처럼 보인다.초현실주의는 몇몇 중요한 점에서 다다이즘과 공통점을 지니면서도 다른 몇몇 중요한 점에서는 그것과 큰 차이를 보여 준다. 예를 들어 초현실주의는 부르주아 사회와 제도 예술을 신랄히 비판한다는 점에서 다다이즘과 매우 비슷하다. 그러나 초현실주의는 다다이즘보다 사회적?정치적 활동에 한결 깊은 관심을 보였다. 초현실주의는 의식의 혁명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사회적 혁명과 정치적 혁명을 목표로 삼았다. 그러니까 초현실주의는 한편으로는 다다이즘이 논리적으로 발전된 운동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다다이즘에 대한 비판적 반작용인 셈이다. 그런데 초현실주의의 계보는 사실상 다다이즘보다 훨씬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파괴성, 급진주의, 예술적 무정부주의, 무질서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초현실주의는 헤겔이나 낭만주의자들 또는 상징주의 전통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브르통이 일찍이 초현실주의를 가리켜 낭만주의의 꼬리 라고 부른 것은 바로 이러한 까닭이 있기 때문이다. 노발리스, 새뮤얼 코울리지, 제라르 드 네르발, 샤를르 보들레르 등과 같은 작가들과 예술가들은 인간의 상상력을 가장 중시할 뿐만 아니라 초현실주의자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꿈, 광기, 최면술, 환각 등을 강조하였다.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사이에 전성기를 맞이한 초현실주의는 미래파나 다다이즘과 같은 다른 아방가르드 운동과 마찬가지로 부르주아 사회와 이 사회의 제도 예술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한련되게 불안 의 역사적 기원을 감춘다고 하더라도 불안에 기초를 두고 있는 어떤 예술 작품도―객관적으로 말해서―히틀러 주의와 핵전쟁의 준비와 관련되어 있다는 죄를 모면할 수 없을 것 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그런데 루카치가 여기서 말하는 ‘불안’이란 바로 카프카의 작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실존주의적 심리 상태나 정신적 상황을 의미하며, 현대인의 이러한 심리 상태나 정신적 상황을 즐겨 묘사하는 그의 작품은 곧 모더니즘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간주된다.그런데 적어도 나치즘이나 파시즘의 관점에서 볼 때 카프카에 대한 루카치의 비판은 엄밀히 따지고 보면 다소 빗나간 느낌이 든다. 왜냐하면 카프카는 결코 나치즘이나 파시즘을 옹호하거나 동조한 적이 없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유태인 부모 밑에서 폴란드의 프라하에서 태어난 그는 오히려 히틀러의 정치 체제가 들어서자 갖은 학대와 억압을 받은 작가이다. 물론 루카치 자신이 분명히 밝히듯이 그는 이 논문에서 카프카의 정치적 성향을 논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기 보다는 오히려 그의 인생관이나 세계관 그리고 그것에 기초를 두는 이데올로기를 논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루카치가 모더니즘 작가들에게서 파시즘 적인 정치관이나 경향을 찾고자 한다면, 카프카보다는 오히려 다른 작가들에게서 찾는 편이 한결 더 타당할 것이다.모더니즘에서 흔히 발견되는 나치즘이나 파시즘적 성향은 고트프리트 벤과 아르놀트 보론넨, 에른스트 윙거 그리고 특히 마르틴 하이데거와 같은 독일 작가들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다른 나라 작가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우선 프랑스의 경우 이른바 『악시용 프랑세즈』그룹에 속한 멤버들 대부분이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 점령군에 동조하였다. 그동안 프랑스 제3공화국에 적지 않은 적대감을 느끼고 있던 루이 페르디낭 셀리느는 나치주의와 파시즘을 지지하였다. 어느 작가보다도 반유태인적 감정을 가진 채 나치즘에 심취하고 있던 그는 프랑스를 침공한 독일 점령군들을 열렬히 환영하였다.
0. 서론현대 사회에서 광고는 오늘날 전 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의 삶에 틀을 잡고 반영하는 가장 중요한 문화적 요소 중의 하나이다.) 이는 어디에나 있으며 모든 사람에게 피할 수 없는 삶의 한부분이 된 것이다. 광고)는 기업이나 개인 ·단체가 상품 ·서비스 ·이념 ·신조 ·정책 등을 세상에 알려 소기의 목적(이익 창출)을 거두기 위해 투자하는 정보활동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상품을 알리고, 알게 모르게 사람들의 인식 속에 그 제품에 대해서 각인 시키는 것이다. TV, 신문, 잡지 등의 여러 매체를 통해 수 없이 많은 광고를 여러 가지 상품을 접하면서 사용자들은 필요할 경우에 우선적으로 어딘가에서 한 번 스쳐 지나갔던, 또는 광고를 통해서 널리 알려진 제품을 선택하게 된다. 이렇게 어떠한 상품을 홍보하여 많은 이에게 알려서 제품의 판매를 촉진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광고인 것이다.광고의 종류를 나누는 여러 가지 기준이 있지만 통틀어 쉽게 보면 제품을 설명하는 제품 광고, 그 제품의 기업 이미지를 높이도록 보이는 기업 이미지 광고, 표현이 대상과 상이한 허위 광고, 타 기업의 광고를 베끼는 모방 광고, 같은 업종의 타사 제품과 비교하여 대조적으로 광고하는 비교 광고, 성(性)을 상품화시켜 남성이나 여성의 원초적인 본능을 자극하는 섹스어필 광고 등이 있다. 우리나라의 광고계 같은 경우는 많이 배우고 창의적인 사람들이 모여서 광고를 제작하여도 법적인 표현의 제약이 많고 아직은 표현기법의 발상이 한계가 있어서 광고가 발전을 더디게 하고 있는 반면에, 브라질은 글을 못 읽는 사람과 파벨라(Favela))가 국민의 80%가량이지만 광고 산업만큼은 유수한 국제광고제)에서 다수 입상하는 등 세계 일류로 인정받으며 광고 선진국인 영국, 미국 등과 겨루고 있다. 이는 글을 못 읽는 사람에게도 상품을 알리고 팔아야 했기 때문에 비쥬얼(Visual)이 더욱 빠르게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우리는 브라질 광고의 배경을 살펴보고 예를 들면서 브라질 광고의 의미를 하나씩 분석 해볼 것이광고에서는 제 1차적인 의미해석이다. 다시, 선물을 받은 부모님은 자식의 마음을 해석한다. 이때 발생하는 현상을 의미 작용이라고 한다. 이것이 제 2차적인 해석인 것이다. 그리고 준 쪽과 받은 쪽의 의미 작용이 동일하게 일어날 경우 성공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일어났다고 할 수 있다.) 광고에서는 제 2차적인 의미)를 더욱 해석할 수 있다. 제 1차적인 의미)는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광고의 내용을 말하는 것이고, 광고에서의 제 2차적인 의미는 그 시대의 사회적, 정치적, 도덕적, 윤리적, 역사적 등의 의미를 접목시켜 생각하는 것에 찾을 수 있다. 공익 광고 (자연 보호)앞으로 볼 몇 개의 공익 광고와 제품 광고를 제 1차적인 접근과 제 2차적인 접근 모두를 사용하여 분석해 보자. 공익 광고 (장기 기증)과 는 공익 광고)이다. 거의 모든 광고가 제 1차적인 분석과 제 2차적인 분석을 둘 다 할 수 있지만 공익 광고와 같은 경우는 조금 다르다. 우선 제 2차적인 분석을 하려면 어느 정도의 숨겨진 의미가 있어야 하는데 공익광고의 경우는 의미자체가 명쾌하게 드러나야 하는 광고이기 때문에 제 2차적인 의미해석이 어렵다. 그래도 위에 두 광고는 어느 정도는 의미해석이 가능 하기대문에 살펴보도록 하자. 우선 의 제 1차적인 의미는 신발이 물고기를 쫓고 그 물고기가 또 물고기를 쫓고 그 물고기가 또 물고기를 쫓는다. 이런 식의 화면을 보여주면서 먹이사슬을 연상시킨다. 그래서 먹이사슬을 연상 시키게 동기유발을 한 다음에 자연보호 공익 광고임을 알리고 있다. 그러나 한 번 더 생각을 한다면 사진 속의 ‘입 벌린 신발=인간의 잔인한 문명’을 나타내고 ‘물고기들=자연’을 나타냄으로써 인간의 잔인한 문명이 자연을 잡아먹음으로써 파괴하고 있다는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의 심장 형태와 눈 형태는 사진에 나타나있는 작은 문구들이 표현을 잘해주고 있다. ‘Don't let life became dust.....because life gose on' [생명이 먼지로 돌아가게 하지마세요...왜냐하인 착하지만 힘세고 뚱뚱한 큰 인형을 쓰러트려 놓고 있음이 보인다. LCD 모니터위의 날씬하고 작은 인형은 작지만 당당한 인간상을 나타내었고, 아래의 뚱뚱한 인형은 덩치는 크지만 우둔한 인간상을 나타내면서 현 사회를 재조명하는 광고였다. Liz 스타킹 광고은 브라질 Liz 사의 스타킹 광고이다. 보다시피 탁자다리나 안경다리에 스타킹을 입혀놓아서 이것이 스타킹 광고임을 소비자가 알 수 있었다. 이 광고의 숨은 속뜻, 제 2차적인 의미는 스타킹 광고는 본래 전통적으로 다리가 예쁜 모델들이 나와 그 스타킹을 신고 예쁜 다리만을 보여줬다. 하지만 이 광고는 다리가 예쁜 모델을 사용하지 않고 안경다리나 탁자다리에 스타킹을 입힘으로써 이 스타킹은 꼭 다리가 예쁜 모델만이 신지 않아도 예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즉, 이 스타킹은 그 어느 누가 신어도 편하고 예쁘다는 점을 강조한 광고이고, 한 번 더 깊이 들여 다 보면 현대사회의 외모지상주의) 사회에 반기를 든 광고임을 알 수 있다. 다이어트 음료은 브라질의 다이어트 음료 광고로써 두 사진 다 아래쪽에 음료수가 보이고 첫 번째 사진은 뚱뚱한 여성이 잃어버린 애완견을 찾는데 알아보면 자신 뒤에 있다. 이 음료수를 마시면 다이어트를 할 수 있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것이다. 두 번째 광고는 달력의 날짜가 점점 얇아지면서 음료수를 마시면 시간이 점점 흐를수록 날씬해진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이 광고에서의 제 2차적인 의미를 살펴보면 뚱뚱한 여자의 몸을 추하고 둔하고 보기시른 형상을 띄게 만들고, 온갖 살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을 강화시키는 효과를 보이고 이런 형상을 제거해야한다는 인식을, 저런 사람은 절대 되지 말자는 인식을 심어줌으로써 현대사회에서의 비만인자는 인간 취급도 못 받는 그런 사회적 풍조를 나타내고 있다. 이런 광고도 역시 의 Liz 스타킹 광고와 같이 외모지상주의 사회를 따라가는 광고로도 볼 수 있다. 샤워기 광고의 샤워기 광고는 샤워기에서 물이 나오는 모습을 보여줌으로 도콜의 샤워기 제품을 광고하고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든다. 이는 여성의 속옷 광고이지만 여성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여성이 예쁜 속옷을 사려고 하고 몸매가 잘 드러나 보이기 위한 속옷을 입는 이유는 모두 남성에게 잘 보이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사진과 같이 관음적인 시각에서 촬영을 한 이유도 이러한 남성의 시각을 의식한 것 이다. 이런 노출과 관음은 섹스어필이라는 개념 속에 포함되는 것이다.3) 노출과 관음 (섹스어필 광고)원래 노출(드러내기)과 관음(훔쳐보기)의 개념은 몇 가지가 존재한다. 하나는 현재 젊은 층에게 인기 있는 싸이월드나 블로그 같은 미니홈페이지로 남의 블로그를 찾아가서 엿보고 싶은 욕구와, 자신을 예쁘게 꾸며서 손님을 끌어들이고 싶은 노출증의 궁합이 맞아 떨어진 사회현상이다. 또 하나는 성(性)적인 관점으로 관음은 타인의 성행위 장면이나 성기를 반복적으로 훔쳐봄으로써 성적 만족을 갖는 비정상인 행위를 의미하고 대부분 남성들에게 많이 나타난다. 노출의 경우는 드러내기로 남성의 경우는 성기를 여성의 경우에는 성기보다 전신을 노출시키는 증세가 많다.우리가 살펴 볼 관점은 성(性)적인 관점이다. 우리는 성적 도구를 논할 때 알몸이나 성교를 노골적으로 묘사하는 것에만 국한 하지 않는다. 성적 행동이나 관심, 동기를 묘사하거나 암시하는 어떠한 표상도 포함된다. 심지어는 언어에 있어서도 이중적인 의미로 해석되어 또 다른 해석이 성적 의미를 뜻하는 경우도 포괄된다. 의 속옷 광고는 명백한 시각적, 언어적 묘사가 있는 광고이다. 우리가 보여줬던 브라질 광고는 정직한 속옷 광고였다. 필요이상의 노출도 없었고 적당한 관음적인 시각이 드러나 있었다. 하지만 현재 브라질 뿐 만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노출과 관음은 섹스어필) 관점에서 매우 잘 드러나고 있다. 우리나라의 국민들의 경우는 광고의 선정적인 내용으로 인해 광고를 다른 사람과 함께 보는 게 민망할 때가 많다고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남녀12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광고의 선정성으로 민망하거나 거북한 유 및 해방의 몸짓이 미치는 영향과 과잉 억압은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주변을 둘러보면 육체의 외견상의 몸짓은 자유로워졌을지 모르나 실제로 억압적인 사회구조는 곳곳에 작동하며 육체가 해방되었다고 주장하지만, 우리는 서로를 용납하기 힘든 좁고 밀폐된 공간 내에 살고 있다. 그렇게 볼 때 광고의 이미지가 권유하는 대로 화장, 패션 등의 외관을 꾸미는 자유를 강박증적으로 추구하는 일반대중, 그들은 행동의 자유를 엄밀히 통제하는 사회적 현실에 대해 무기력하게나마 저항을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광고 이미지가 산출하는 자유롭고 과감한 노출의 육체의 이미지는 위험한 측면도 있다. 그것은 기존의 지배적인 담론과의 충돌 속에서 전혀 상이한 의미를 낳는다. 적어도 유교문화권에서 육체의 노출과 선정적인 몸짓은 곧 자신의 육체의 자발적 공여, 성적 유혹을 의미한다. 그러한 육체의 이미지는 끊임없이 우리들의 성적 욕망을 자극하고 그 분출구는 안마 시술소, 이발소, 퇴폐영업소, 포르노 영화의 탐닉으로 강박증)적 성집착증 환자, 강간 폭력범으로 또 자기 파괴적인 성형수술로 결과하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새로운 담론과 기존의 담론과의 충돌 속에서 새로운 사회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자칫하면 광고 이미지에서의 육체의 해방은 쾌락의 도구로서의 육체의 해방일 뿐, 실제로는 현대사회일반이 고도화된 폭력과 억압구조를 강화하는 고리로 작동할 수도 있다.3. 결론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등의 다양한 이유 덕분에 광고 산업이 발전한 나라 브라질은 다른 나라보다 비주얼(Visual)이 발달한 나라이다. 그 만큼 그 광고 속에 외연적, 내연적으로 수 많은 함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글로는 할 수 없던 이야기를 한 장면의 사진으로 표현 해내고 그것을 보는 사람들이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브라질의 광고가 서서히 다른 나라보다 앞서가는 것이었다. 앞의 광고에서 다뤄졌던 내면적인 의미들은 사기업의 이윤추구의 도구로써의 이미지 은폐,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반기, 현대사회의 냉소적인 인간상, .
1. 서론일본이 강대국으로 국제사회에서 얼굴을 드러낼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는 러일 전쟁의 표면적인 일본의 승리였다. 러?일 전쟁은 러시아와 일본의 전쟁이었지만 사실상 러시아가 우리나라를 대신하여 전쟁을 치른 것이라고도 보는 시각들이 있다. 우리나라의 지배권과 만주를 가지고, 우리나라의 동해에서 싸운 전쟁이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보면, 이 전쟁에서 한반도 역할은 없었다고 볼 수 있다. 러?일 전쟁에서의 고종의 중립 선언은 무용지물이었고, 그 어떤 나라에서도 우리나라의 중립 선언에 귀담아 들어주지 않았다. 그 만큼 그 당시 우리나라는 지리적, 경제적, 군사적, 정치적으로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 정부 또한 이러한 고종의 선언과 매우 흡사한 선언을 하였다. 아무런 위치에 놓여 있지 않은 현 정부. 그 어떤 영향력을 행사 할 수 없는 현 정부. 그 어느 쪽 에서도 우리나라를 옹호해주는 세력 또한 없는 것이 실정이다.그 당시의 동북아의 세력구조, 당시의 일본의 외교 안보 전략, 대한 제국의 대응과 포츠머츠 협상의 타결, 현재 한국의 외교 안보 전략의 바람직한 방향에 대해 여러 시각들을 얘기하면서 재조명 해보고자 한다.본문으로 들어가기 전에 러?일전쟁의 배경, 원인, 결과를 간단히 다시 살펴볼 필요도 있다.2. 러?일전쟁1) 러?일 전쟁의 배경, 원인, 결과러일전쟁은 1904∼1905년에 만주 ·한국 ·동해에서 싸운 러시아와 일본 간의 전쟁이다. 1904년 2월 8일에 일본함대가 뤼순군항을 기습 공격함으로써 시작되어, 1905년 9월 5일에 강화를 하게 된 러시아와 일본 간의 전쟁이다. 한국과 만주(중국 동북지방)의 분할을 둘러싸고 싸운 것이지만, 그 배후에는 영?일동맹과 러시아프랑스 동맹이 있었고, 제1차 세계대전의 전초전이었다. 러시아는 패배의 결과로 혁명운동이 진행되었고, 일본은 전승으로 한국의 지배권을 확립하고, 만주 진출이 확정되었으나 미국과의 대립이 시작되었다.전쟁의 배경은 19세기 후반부터 제국주의로 들어서고 있었는데, 중국의 분할을 가지고 독 일본의 완전한 승리가 아니다. 양국의 펑텐회전에서 부터 한계에 이렀다. 러시아는 ‘피의 일요일’ 사건에 증원군을 투입하지 못해 더욱 힘든 싸움이었던 것이다. 육전에서 패배한 것을 해전에서 만회하려고 발트함대를 불렀는데 장장 7개월간의 운항과 농민들로 구성된 군사로 식량의 고갈 및 사기 저하 등 때문에 일본에게 완전히 묵살 당하여 1시간 만에 발틱함대 38척 가운데 19척이 침몰했고, 사령관 로제스트벤스키를 포함해 6100명이 포로로 잡히며 싱겁게 끝났다.2) 당시의 동북아 세력구조러?일전쟁 당시의 세력구조를 살펴보려면 청일 전쟁에서 부터 거슬러 올라가야한다. 청?일 전쟁의 승리로 체결된 시모노 세키조약의결과로 청이 일본에게 타이완과 요동반도를 함향하게 되는데 이때 러시아, 독일, 프랑스 3국이 점점 세력이 커지는 일본에게 위기의식을 느끼고 만주진출을 방해하기 위해 요동 반도를 반납하게 만들고, 이때 3국 간섭에 힘입은 우리나라는 친?러내각을 내세우게 되면서 아관파천이 일어난다. 그 결과 친?러내각이 확실히 자리 잡히게 되면서 국가 위신이 실추되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나라를 두고 싸운 러?일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우리나라에 대한 여러 나라들과 협약을 맺었다.영?일동맹, 가쓰라 테프트 밀약, 포츠머스조약, 이 3개 조약으로 3개국(영국, 미국, 러시아)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승인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이 추구하던 목적을 다 이룬 것은 아니다. 일본의 목적은 태평양 연안에서 러시아를 완전히 구축하는 것이다. 이유인 즉, 만일 러시아가 태평양 연안에서 땅이 하나라도 소유하고 있다면 그곳에서 함대를 복원하려 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다시금 일본을 위협할 것이다 라고 전망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보이듯이 영국은 일본이 영국과 전쟁을 할 생각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의 많은 함대를 가지고 있다. 오히려 일본은 러시아의 적국인 영국과 동맹을 맺는 것이 유익하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영국이라는 황금 없이는 어떠한 대전을 치를 수가 없기 때문이 군사적 제휴를 고려하더라도, 러시아보다 영국과 손을 잡는 것이 일본에게 더 유리하다는 점을 강조했다.영국으로서도 일본과의 외교적인 협력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영국은 러시아가 동아시아에서 세력을 확장하는 것에 대해 항상 경계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일 양국은 1902년 러시아를 공통의 가상 적국으로 하는 영?일 동맹을 수립하였다.영국과 손을 잡은 일본 정부는 바로 러시아와의 협상에 들어갔다. 정면 충동을 피하고 유리한 교섭조건을 확보하는 것이 주된 목표였기 때문이다. 양국간 협상에 임한 일본 정부의 기본 방침은 만한 교환방식을 기초로 하여 한반도에서 지배권을 확보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러시아는 영?일동맹을 맺은 일본이 한반도를 군사적으로 이용하는 것에 대하여 반대했다.4) 대한 제국의 대응과 포츠머츠 협상의 타결러?일 전쟁의 발발 직후 한국은 곧바로 일본의 통제에 있게 된다. 한반도를 군사적으로 완전 점거 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수차의 조약을 맺어 한국의 주권을 점진 적으로 앗아가는 신중함을 보인 이유는 삼국간섭의 교훈을 결코 잊을 수 없었다. 한편 고종은 제 2차 한?일 조약의 체결은 일본의 강압에 의한 것임을 세계에 성명함으로써 열강의 동정을 얻어 조약을 파기하고자 했다. 고종은 오랫동안 한국정부 고문으로 일했던 헐버트(Hulbert)를 파견하여 미국의 호의적인 지원을 기대했으나 미국의 반응은 냉담했다. 1097년 6월 헤이그에서 제2차 만국 평화 회의가 개최 된다는 소식을 듣고 밀사를 파견하여 이 국제회의에서 호소하여 열강으로 하여금 일본의 보호권을 부인케 하도록 명했다. 헤이그에 파견된 고종의 밀사들은 고종의 전권 위임장을 제시하여 회의참가를 요구 했으나 주최국인 네덜란드정부는 외교권이 없는 한국을 독립국으로 인정 할 수 없으므로 일본공사의 소개 없이는 한국대표를 회의장에 입장시킬 수없다고 까지 하였다.이와 같은 국제적 환경 속에서 국권회복을 위한 외롭고 의로운 의병 투쟁이 전개되었다. 의병투쟁은 척사위정운동으로 러일전 통해 전문을 발송하기로 햇다. 1904년 1월 빠블로브 공사가 람즈도르프 외무 장관에게 보고한 바에 의하면, 불어로 작성된 한국의 국외 중립 선언 전문이 중국에서 프랑스영사의 중개로 미국 등 전 세계의 주용 국가의 외무 장관 앞으로 발송되었다. 이어서 고종은 빠블로브로 통해 러시아와 일본이 국교를 잔절할 경우 공식적으로 러시아의 동맹국이 될것임을 약속하는 선언서를 람즈도르프 외상에게 전달했고, 빠블로브 공사도 이를 공식 접수한 본국의 전문을 고종에게 전달했다.그러나 일본은 1904년 2월 한국 정부의 국외 중립선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군대를 보내 서울과 전국의 군사 요지를 점령하고 한일의정서를 체결 했다. 또한 1905년 6월 아직 포츠머츠 회담이 시작되기전 고종은 전(前) 재무대신 이용익을 뻬제르부르그에 특사로 파견하여 니꼴라이 2세가 한국을 지지해 줄 것을 요청하는 친서를 전달하려고 했다. 이 친서 내용은 다음과 같다.러시아가 항상 한국의 자주권을 지지해 주었던 것은 전 세계에 잘 알려진 일이다. 강화조약을 체결하는데 있어서도 우리나라가 폐하의 의지로 구출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폐하의 배려로 내 나라가 자주 독립을 보존 할 수 있으리라 기대 한다.그러나 이용익은 황해를 건너 가는 도중에 태풍을 만났고 8월말 경 상해에 도착했을 때 쯤에는 이미 포츠머츠 협상이 끝나 버린 상황이었다.이렇게 포츠머츠 협상이 타결되고, 타협안을 일본정부가 허락하고 이를 러시아가 받아들임으로써 강화조약이 성립된 것이다. 정부에선 힘들게 강화협상을 마무리한 이들을 환영했으나, 일본 국민들은 협상조건에 만족하지 않아 폭동을 일으켰다.3. 현재 한국의 외교 안보 전략의 바람직한 방향현 참여정부는 100년 고종의 중립선언과 유사한 “동북아 균형자론”이라는 것을 발표하여 많은 말들이 나오고 있다. 그래서인지 고종의 정책과 비교하여 더욱 여러 의견 들이 쏟아져 나오기도 한다. 현 참여정부에서 발표한 “동북아 균형자론”은 전통적인 균형자론과 차이가 있는데, 그 차이를 표로 정리해보면 과다. 이 중에서도 냉전시대에는 소련의 영향력 팽창을 견제한다는 의미가 강했다. 그리고 소연방의 붕괴와 함께 찾아온 탈냉전 이후에는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을 견제하고 나아가 장차 예상되는 중국의 강력한 부상이 한반도에 던질 수 있는 부정적 효과를 견제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문제는 세력균형논리가 21세기 장기적인 한반도 안정과 평화의 비전으로서 합당한 것인가 하는 점이다. 1945년 한반도의 미소에 의한 분할점령, 1948년 남북 단독정권들의 성립, 그리고 1950년 한국전쟁의 발발과 1953년 휴전선의 현상회복이라는 과정은 미소의 세력균형이 한반도에 투영된 결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특히 한국전쟁이라는 군사적 충돌의 경험을 떠올린다면, 그리고 한반도의 안정을 38선이나 휴전선의 현상을 유지하는 것으로 본다면, 한반도의 안정은 세력균형의 결과라고 보아 무방할 것이다. 그리고 특히 냉전시대에 북한이 소련과 중국에 의존하고 있던 동맹의 정치에 비추어, 남한이 미국과 맺어온 군사동맹의 정치는 세력균형의 전략적 선택이었다고 해서 무리가 없을 것이다. 1994년 5-6월 북한의 핵문제를 둘러싸고 증폭된 군사적 위기 속에서 미국이 결국 군사행동을 포기하고 북한과 포괄적인 정치외교 적 타결을 선택한 것도 중국과 러시아의 견제라는 동북아 세력균형의 결과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이제 우리의 외교정책도 국제정치학도 좁은 한반도적인 시각을 벗어나 ‘아시아적 전망’을 지향해야 한다. 아시아적 전망이라 하는 것은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첫째, 한반도 외교가 좁은 한반도적 시각, 즉 대북정책의 보조수단이라는 차원의 외교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뜻이다. 한국 외교는 전통적으로 대 북한정책에 대한 공동보조를 이끌어내기 위해 한편으로 한?미?일과 협력하고 다른 한편으로 중국과 러시아의 양해를 받아낸다는 것이었다. 그 근본적 목표는 북한견제라는 한반도적 시각에 한정되어 있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한반도적 시각의 핵심인데 이것을 극복해야 한다.현 참여정부의 “동북아 균형자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