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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핑크플로이드의 더월(The Wall)을 보고
    핑크 플로이드의 “ The wall ” 을 보고...핑크 플로이드의 “the wall"은 영화를 잘 모르는 자 들 뿐만 아니라 영화를 잘 아는 자들로 하여금 기존에 알고 있던 영화적 상식과 양식에 대해 많은 것을 고민하고 되새김하게끔 하는 영화이다. 한편의 음악 앨범을 모티브로 제작한 특성상 영화라고 하기에도 그렇고 뮤직비디오라 하기에도 그 장르적 구분이 애매모호한 작품이다. 이 영화에서는 영화를 잘 모르거니와 그 기법에까지 무지한 나에게 실사와 애니메이션의 혼용, 회고와 반복을 통한 과거와 현재/ 현재와 과거로의 시제의 이동, 현실과 환상과의 거리감에서 오는 자아의 분리, 거의 전무한 대사와 음악에 의한 영화의 서사 진행, 과거 기억들의 조각들이 파노라마처럼 수렴되는 정리 기법 등의 낯선 방법과 영화적 허용들로 영화의 이해를 혼동케 하였고, 영화에서 다루는 전쟁과 죽음, 폭력, 획일화된 학교 교육, 섹스 등의 사회에 대한 고발적이고 저항적인 내용들은 이 영화를 3번이나 본 시간을 무기력하게 할 만큼 영화에의 명쾌한 이해는 커녕 많은 호기심과 과제만을 안겨주었다. 따라서 나는 영화에의 접근을 위하여 음악을 주 표현매체로 만든 영화이니 만큼 영화의 장면 장면에 나타난 가사들과 그 가사들이 상징하고 나타내려는 의미와 그 상황에서의 주인공 핑크의 심사를 이해하려 하였고 이와 동시에 이 영화를 연출한 자가 보는 이와 사회에게 어떠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지 감히 유추해 보았고, 영화가 더 나아가 대중문화가 사회에 대해 급부로서의 기능과 그 역할에 대해 고민해 보았다.이 영화는 전반적으로 주인공 핑크의 성장 과정과 그 과정에서 핑크가 사회와 현실과에 있어서 철저히 혼자가 되는 심지어는 자아와의 분리까지 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먼저 주요 줄거리와 그 정황에서의 노랫말을 살펴보았다.영화는 침착하고 평온한 분위기가 비춰지는 상황에서 빠르지 않은 음악이 흐르며 시작 한다. 핑크는 다 타 들어가는 담배를 손에 들고 환상과 과거로 빠져들어 간다. 여기서 그의 동공이 점점 작아타나는데 “IN THE FLESH"란 곡이 나온다. 그 가사를 살펴보면 //흠... 그래.//여러분은 결국 그 공연을 보러가고 싶은 게로군//저 약쟁이의 몽환상태가 주는//어지러움의 스릴을 맛보기 위해서겠지//그런데 명랑하기만 한 그대들로선 도저히//이해할 수 없는 뭔가가 있지 않던가?//그것은 결코 당신들이 목격하리라고 예측하지 못했던 것이었지?//만약 여러분이 이 차디찬 시선들 뒤에 무엇이 도사리고 있는지 알고 싶다면//단지 각자의 길을 꽉 움켜쥐는 수 밖엔 없을 것이야//끝없는 그들의 위장을 경험하는 동안 계속 그렇게// ) 여기서 이 영화의 테마인 벽을 이해하는데 내 나름대로 하나의 단서를 발견 할 수가 있었다. 주인공 핑크는 성장 과정 중에 자신을 가로막고 자신을 벽의 테두리 속에 가두는 현실들에 대해 괴로워한다. 따라서 환상속의 자신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공연에서 대중들에게 대중들이 자각하고 있지 못하던 벽의 이면성에 대해 논한다. 그 벽이란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존재이고 그 후면에는 우리가 볼 수 없고 자각하고 있지 않던 다양한 사회적, 개인적, 세계적 양식들이 존재한다. 따라서 우리는 그것을 뛰어 넘으려 하고 극복하려는 것이다.영화는 화면이 바뀌어 놀이터에서 마저도 혼자가 되어 집에 돌아와 아버지의 유품을 꺼내보는 어린 핑크의 모습이 나옴과 동시에 “ANOTHER BRICK IN THE WALL PART1" 의 음악이 흐른다. 이 곡에서는 //아빠는 바다 너머로 비행기를 타고 떠나셨습니다//우리에겐 추억만을 남겨둔 채//가족 앨범속의 단 한 장 뿐인 사진//아빠, 이것 말곤 제게 남겨 주신 게 뭐가 있나요?//아빠, 제게 주고 가신 게 뭐가 있단 말예요?//고작 벽 속의 벽돌 하나, 벽을 이루고 있는 저 모든 벽돌들 뿐인 걸//) 이란 가사가 불러지며 슬픈 느낌의 멜로디가 흐른다. 핑크는 전쟁으로 인해 아버지를 잃게 되고 그런 아버지의 죽음이 앞에서 얘기했던 자신의 벽 형성에 기인하였다 하여 그것에 대해 씁쓸해 하고 있다.「이러한 아버지의 죽음은로저 워터스’의 가족사가 그대로 반영되었다는 사실이다. 영화가 허구와 상상만이 아닌 개인적 사실은 물론 역사적인 사실 까지 반영하여 전달을 할 수 있다는 강의 시간에 배운 내용을 상기 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와 더불어 나는 여기서 전쟁과 그로 인한 가족해체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고민해 보았다. 오늘날 지금 이 시간에도 세계 여러 곳에서는 전쟁 중 이거나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대치중인 나라와 민족을 곳곳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아직도 전쟁으로 인하여 많은 이들이 죽어가고 있으며 그로인해 그들의 가족들은 핑크와 같이 본인의 의지와는 반하게 상처받고 괴로워하며 그러한 것들로 인해 형성된 ‘벽’에 가로막혀 주어진 가능성 및 잠재력들이 위축되고 있다. 영화는 후에 이러한 벽들을 부수어 나가자고 계속 언급하고 있다.이 후에 특이할 만한 점이 등장하는데 그것은 바로 실사에서 애니메이션으로의 표현기법이 전환 된다는 것이다. 불길함을 상징하는 음악이 깔리면서 검은 독수리가 등장한다. 그 독수리는 세상을 검게 하고 핏물로 뒤덮게 하며 전쟁을 일으켜 많은 군인들을 죽게 한다. 여기서 이 영화의 연출자는 바로 앞 곡에서 실사로 언급했던 핑크 아버지의 전쟁에서의 죽음을 애니메이션이란 기법을 동원하여 다시 한 번 되 집어, 보는 이에게 보다 강한 인상을 남겨주고 있다. 요즘도 가끔 영화중에 실사와 애니메이션을 혼용하는 영화들을 볼 수가 있는데 작금의 영화 제작기술과 “더 월”의 제작 당시 년도의 기술력을 비교해 보았건데 “더 월”의 그것이 전혀 손색이 없다 할 수 있을 정도로 그 테크닉이 뛰어나다는 느낌이다.영화에서 장소는 학교로 이동하며 핑크의 학교폭력과 획일화된 교육에 의한 벽과의 단절과 그에 대한 저항의지를 "ANOTHER BRICK IN THE WALL PART2"에서 보여준다. 그 가사인즉 //우린 교육 따위 필요 없어요.//우리의 생각을 조종하는 그런 교육은 원치 않습니다.//교실에서의 혹독한 야유는 이제 그만//선생님, 애들을 그냥 내버려둬요//이봐요 선생님들, 우릴 이만 하는 학교 교육에 대해 회의하고 아쉬워하는 핑크와 연출자의 무거운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 할 수 있는 노랫말이며 영화의 내용을 잘 읽어보려 하면 그 이해에는 가속이 붙는다. 항상 같은 속도로 이동하며 동일한 생산량을 산출해 내는 컨베이어벨트에서 얼굴은 마스크로 가려지고, 따라서 개인의 개성은 후치된 체 원료로 취급되어 소세지로 가공되어지는 학생들의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나는 여기서 나 자신 또한 그리 받아왔고 오늘날에도 크게 바뀌지 아니한 학교 교육의 문제에 대해 제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인교육은 간과한 체 입시위주의 스파르타식 교육, 개개인의 개성은 뒤로한 체 전체만을 고집하는 학교, 이로 인해 방황하는 학생들과 그 테두리에서 낙오와 일탈 등의 이러한 악 순환적 뫼비우스의 띠는 교육제도의 개편 및 재구성을 운운하는 오늘날에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고 생각 한다. 따라서 바로 뒤에 나오는 학생들이 벽을 허물고 저항하는 장면은 영화에서 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 교육의 현실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하고 있는 것 같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었다. 이 장면은 몇 년 전 우리나라 교육 현실에 대해서 강렬한 비판을 담은 「서태지의 ‘교실이데아’의 탄생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나는 여기서 잠시 서태지의 교실이데아가 발표되었을 당시 우리 사회와 교육에 파도쳤던 그 수위와 범위를 생각해 보았건데, 한편의 영화와 음악이 단순히 그 자체로서는 물론이거니와 훗날 시간이 흘러서도 세인들의 사고와 가치판단에도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영화는 다시 차분한 분위기로 흐른다. 핑크는 부인과의 폴라로이드 사진을 끓어 안으며 엄마를 그리워한다. 핑크는 엄마의 그리움 즉, 모성의 그리움을 아내에게서 찾으려 하는데 아내와의 결혼 생활의 실패는 다시 핑크를 세상과 그리고 사랑에 대해 벽을 쌓게 한다. 여기서 다시 한 번 애니메이션이 등장하는데 어두운 음악과 함께 2송이의 꽃이 결합하여 양이 아닌 음을 상징하는 색채인 검정색의 새로 LL PART3"에서 마치 책장을 빠르게 넘기듯 파노라마의 연속으로 정리를 해주어 영화에의 이해를 도와준다. //날 감싸주는 손길, 다 필요 없다구//날 잠재우려는 저 약들, 필요없단 말야//난 계시의 징조를 이미 목격했고//이젠 아무것도 필요없어//그래, 아무것도 필요없다니까//결국 모든 것은 벽 속에 붙박힌 벽돌들 뿐이었는 걸//당신들도 죄다 그런 벽 속의 벽돌들이었을 뿐이라구//) 지금까지의 내용을 정리해 줄 뿐만 아니라 ”이젠 아무것도 필요없다는“ 가사의 내용을 미루어 보아도, 그리고 다시 현실로의 시점 전환은 전까지 영화가 다루었던 이유들로 하여금 핑크에게 있어 벽의 형성이 다 완성 되었다는 것을 짐작 할 수 있게 하였다. 따라서 영화에서 핑크는 그렇게 자신을 단절 시키고 좌절 하게 끔 한 벽을 만져도 보고 부수려 하고 헤어 나오려 하지만 미약하다. 계속해서 영화는 "NOBODY HOME", "BRING THE BOYS BACK HOME", "COMFORTABLY NOMB") 의 음악을 통하여 핑크의 어린시절 자아와 지금의 벽에 의해 황폐해진 핑크의 만남을 그린다.지금까지의 영화가 과거의 사연들로 하여 핑크를 벽에 부딪히고 벽을 넘어 설 수 없는 존재로 그렸다면 무기력한 핑크를 공연 기획자들이 끌고 나가는 모습에서 부터는 핑크 자신과 감독이 벽을 다르게 바라보는 시각과 벽에 대한 극복과 저항의지에 영화의 무게가 더 실린다. 이 장면에서는 인간을 나약하고 미약한 존재인 벌레에 묘사하여 핑크 또한 벌레의 모습으로 비추어진다. 그러나 핑크는 그러한 상황에 비명을 지르며 마치 누에가 고치를 벗고 세상을 나오듯 그러한 허물들을 벗어 던지며 강인한 모습으로 탈피를 한다. 여기서 다시 영화의 초반에 나온 “IN THE FLESH"의 음악이 나온다. 영화의 초반에는 단순히 핑크의 환상속의 모습이라고만 생각 하였지만 핑크의 심사를 생각해 보았 건데 여기서 나오는 지도자의 모습은 자신의 벽 뿐만 아니라 부조리한 사회의 벽을 제거해 나가고자 하는 핑크의 소망이 투영된 존나간다.
    독후감/창작| 2006.11.22| 5페이지| 1,000원| 조회(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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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서편제 감상문 평가C아쉬워요
    한(恨)의 소리, 영화 ‘서편제’ 를 보고...시작하며...1993년 당시 버스를 타고 종로 단성사 극장 앞을 지날 때면 항상 길게 늘어서 있는 줄을 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때 무슨 일 때문에 그리 인산인해를 이루는지 창밖으로 극장을 지켜보았을 때에 한 맺힌 듯 소리를 치는 듯한 슬픈 눈빛의 여인의 모습이 걸린 영화 서편제의 간판을 보았던 것과 영화의 흥행으로 인해 흥분된 당시의 극장 앞 분위기가 기억에 생생하다. 당시 한국영화 흥행의 신기록 수립과 판소리 열풍의 시발점이었다는 점만으로도 나로 하여금 영화에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던 영화 서편제는 시청등급의 제한에 걸린 나에게 비디오로의 출시까지 기다려야만 하는 지루함을 감수 하게끔 하였다. 그 기나긴 기다림이 지나고 비디오로 출시되자 빌려보았던 영화 서편제, 그러나 영화는 내용자체의 이해는 물론이고 서사의 흐름과 판소리라는 매체를 통한 극중 인물들과의 대화 및 관객과의 의사소통은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당시 영화를 이해하는데 있어 어리숙하고도 부족했던 나에게는 마치 자막이 없는 한편의 프랑스 예술영화를 보는 듯 나를 귀머거리와 눈 먼이 같이 만들었었다. 그러나 13년의 시간이 흘러 수업시간에 다시 보게 된 영화 서편제는 잊혀졌던 나의 유년시절의 궁금증을 다시 불러 일으켰고 그러한 이유로 영화를 볼 때 어두운 조명의 강의실에서 나의 노트와 펜은 영화에 빠져든 나의 궁금증과 호기심의 밝은 불빛 때문에 그리 어둡지 않게 써나갈 수 있었다.영화를 봄에 있어서 특이할 만 한 점은 서편제라는 제목에서도 짐작할 수 있겠지만 판소리라는 음악의 장르가 영화자체의 소재로 사용되었을 뿐더러 ‘The Wall’ 과 마찬가지로 영화의 서사 진행과 극중 대화에 있어서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강의 시간에 다루었던 영화라는 것은 매체를 통해 대중을 다룬다는 영화만의 기능을 다시한번 상기할 수 있었다. 또 영화와 서편제라는 판소리를 이해함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한(恨)과 그것의 승화와 극복에 대해 영화의 장면 습, ‘the wall'에서 주인공 플로이드가 자아의 벽의 형성과정에서 괴로워하고 그 벽을 무너뜨리고 뛰어넘기 위해 저항하는 모습들과 크게 다르지 않고 비슷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비교를 잠시나마 할 수가 있었다. 따라서 영화를 보고 감상함에 있어서 영화의 전개 과정에서 당시의 시대상과 그와 동시에 빚어지는 인물들의 한과 그 한을 풀어나가는 인물들의 모습을 깊이 있게 관찰하려 하고, 그 과정들 중에 먼저 보았던 영화들과 같이, 또는 달리 비교해 볼 수 있는 것들을 고민해 보고자 한다.줄거리 및 그 안에서의 나의 생각과 감상-영화자체의 내적감상과 시대적 감상, 아름다운 청년전태일, the wall과의 비교를 통하여...영화는 1960년대 소리재의 주막에서 시작을 한다. 동호는 어릴적 헤어진 누나 송화를 찾기 위해 소리재 주막을 찾는다. 그러나 누나는 찾을 수가 없었고 그곳에는 누나에게 어깨너머 소리를 배운 다른 사람이 있을 뿐이다. 그 사람의 소리를 들으며 송화를 찾기 위한 영화와 동호의 여정은 과거로 돌아가면서 시작을 한다. 특이하게도 영화의 진행이 ‘아름다운청년 전태일(이하 전태일)’, ‘The Wall' 과 마찬가지로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구성을 보인다. 그러나 서편제에서는 ’아름다운청년 전태일’ 에서의 김영수라는 작중 화자와 같은 설정은 없다는 차이점을 발견 할 수 가 있었다.영화의 시간은 과거로 흘러간다. 떠돌이 소리꾼인 유봉(송화와 동호의 아버지)은 어느 한 마을의 잔치에 소리 공연을 갔다가 과부인 동호의 어머니와 눈이 맞아 도망을 하게 되고 소리를 팔아가며 살아간다. 그러나 동호의 어머니가 출산중에 죽게 되고 송화와 동호의 소리와 북에의 훈련은 시작된다. 어느날 읍내의 공연 후 유봉은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다툼을 하게 된다. 여기서 과거 유봉이 스승의 애첩인 추월이와 눈이 맞아 파문이 되어 떠돌이 소리꾼이 되었다는 인물설정의 배경을 알 수가 있었다.화면이 바뀌어 술집에서 유봉과 송화는 다시 소리를 하게 된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술자리의 손님들이 송인이 양반에게 대드는 것이냐”는 손님들의 호통과 “세상이 바뀌었는데 양반 상놈이 어디 있소”라는 유봉의 외침의 대립은 당시 시대가 개화되었는데도 옛 봉건적 시대의 계급의 귀천함의 잔재가 남아 있었음을 느낄 수가 있었다. 순간 이 장면에서는 ‘아름다운청년전태일’ 에서 전태일이 노동청을 찾아 갔을때 청계천 평화시장의 노동자임을 밝혔을 때 노동청 관계자의 싸늘한 대접과 멸시가 오버랩 되었다.다시 떠도는 유봉, 송화와 동호는 셋이서 아리랑창을 부르며 긴 논밭길을 걷는다. 이때 유봉은 송화에게 그리고 송화는 동호에게 서로서로 그들의 고된 삶과 신세를 소리와 타령에 감정 이입함으로써 격려와 독려를 한다. 화면의 뒷켠에는 그들이 걸어온 구불구불하고도 기나긴 길이 펼쳐져 있는데, 이들이 그 길을 창을 해가면서 지나 왔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 길의 구부러짐과 기나긴 거리가 고달프게 살아온 이들의 모진 삶을 암시해 주는 것이 아닌가 , 또 그 길을 통해 그것을 표현하려는 작가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또 서로 서로가 아리랑 창 속에 그들의 심사와 생각을 반영하여 외치는 모습은 마치 최근의 free style 랩을 통해 대화를 하는듯한 모습을 연상케 하였고, 판소리에도 이와 같은 기능적 측면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신선함을 느낄 수 있었다.계절이 흘러 추운 겨울이 온다. 이들 셋은 장터에서 약장수의 판매터에서 돈타령을 부르며 공연을 한다. 사람들은 몰려들고 이들의 타령소리에 추임새를 넣어가며 시장의 분위기는 한껏 달아오른다. 그런데 이때 요란법석한 관악기와 타악기의 연주를 앞세워 백조악극단이 등장한다. 자연스레 목청에 의존한 유봉과 송화의 소리는 금속으로 주조된 신식의 악기소리에 묻히게 되고 사람들은 그 소리로 몰려 떠나게 된다. 나는 여기서 왜 돈타령이라는 곡이 선곡되었을까? 라는 의문을 품었고 고민을 해 보았다. 빠른 시간안에 대량으로 생산되어 동일하고 기대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차가운 금속으로 제조된 관악기의 등장앞에 긴 인내와 인고의 과정을 필요로 하고 습을 그려 당시의 시대상과 그것에 대한 작가의 인식을 표현하지 아니하였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 따라서 그런 생각의 흐름아래 돈타령이라는 곡이 선곡되었을 것이라는 답을 유추해 보았다. 이는 또한 ‘아름다운청년 전태일’ 에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문제인데 동 시대인 60,70년대를 밑그림으로 하고 있는 영화 전태일 또한 농촌사회의 붕괴과정에서 자본의 등장과 그것에 의해 억압받는 노동자들의 모습에서도 이와 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흔적을 살필 수가 있고 냄새를 맡을 수가 있다.유봉의 송화에게의 소리 연습은 계속된다. 가난과 떠도는 삶에 염증을 느낀 동호는 “소리로 먹고살기 힘든 세상이여!” 라며 유봉과 송화의 곁을 떠나게 된다. 송화는 떠나는 동호를 잡으려 하지만 동호는 떠나고야 만다. 송화는 얼마나 오랜 세월 그 자리에서 있었는지를 짐작 할 수 없을 만한 커다란 고목을 곁에 두고 떠나는 동호의 뒷모습을 울며 지켜본다. 여기서 고목은 왜 화면에 등장하고, 보는이로 하여금 눈에 띄는 것일까? 그것은 변하는 세상과 달리 항상 정지해 있었고, 앞으로고 정지하고 있을 고목과 함께 소리라는 고목을 키워왔고, 앞으로도 키워나갈 송화를 일치시키려는 작가의 연출과 설정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또 그런 고목을 언덕을 중점으로 하여 그곳에 머무른 송화와 그것을 뒤로하고 뛰어가는 동호를 통해 고목은 송화와 동호의 이별과 운명 갈림의 시점을 명확히 해주는 구실을 한다. 그런 고목의 기능과 설정의 역할은 바로 뒤에 영화가 잠시 현실로 돌아오는 모습을 통해 한번 더 기능을 하고 끝난다.동호가 떠나자 송화는 식음을 전폐하고 소리도 작파하게 된다. 유봉은 송화가 다시 소리를 하게 하기 위해 송화의 약에 눈을 멀게 하는 약을 넣어 송화의 시력을 잃게 한다. 앞을 볼 수 없게 된 송화는 유봉에게 “아버지, 다시 소리가 하고 싶어요” 라며 다시 소리를 하게 된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하게 되는 소리는 아이러니 하게도 심봉사와 심청이의 얘기를 다룬 심청전이다. 왜 하필 눈이 멀게 된 송화가 다시 만을 의지한 체 이동을 하여 소리재에 이른다. 앞에서의 장면들에도 나오지만 이 영화는 극중의 장소적 이동은 물론이고 내용상의 이동과 전환에 있어서도 주인공들이 소리를 하며 이동을 한다. 이때 이들의 모습은 제일 행복해 보인다. 비록 서편제가 ‘The Wall' 과는 다르게 먼저 음반이 제작되어 영화화 한 것은 아니지만 'The Wall' 의 영화 전개시마다 음악의 사용됨과 비교할 수 있을 만한 점이라고 생각한다.소리재에서 송화의 고된 소리 연습은 계속된다. 특히 계곡을 향해 사랑가를 부르며 목이 찢어지는 듯한 고음의 발성 메아리는 아직도 귓가에서 어른거리는 듯하다. 유봉은 소리의 가르침에 미쳐가는듯 하다가 서편소리는 소리에 한이 쌓여 있어야 한다며, 그래서 송화의 눈을 멀게 한 것이라 고백을 하고 용서를 구하며, 그 한을 넘어서서 소리를 하라며 당부를 하고 죽는다.그리 유봉이 죽고 화면이 바뀌어 유봉의 친구가 우연히 주막에서 소리를 하는 송화를 만나게 된다. 이 장면에서 송화의 소리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영화를 보는 나 스스로의 충족적인 생각이랄까 한이 서렸고, 그 한을 넘어선 송화의 소리라 생각해서인지 영화에서 그 전과 그리 달라지지 않았는데 송화의 소리가 더 좋아진듯 하였다.영화는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동호는 그리 찾던 누이 송화를 어느 시골의 주막에서 만나게 된다. 동호는 송화에게 자신이 동호임을 밝히지 않은 체 소리를 청하게 된다. 동호의 고수와 송화의 소리는 운우지정을 나누듯 밤새 이어진다. 여기서 다시 심청가가 등장한다. 앞에서 송화가 눈이 멀게 되어 다시 소리를 할 때 심청가를 부르는 장면의 궁금증이 다시 도돌이표로 돌아갔다. 그 물음에 대한 내 생각의 마침표는 동호와 송화의 만남에서 불러지는 심청가에 의해 찍을수 가 있었다.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효녀 심청의 효심은 소리에의 끝없는 욕구에 의해 눈을 잃어가면서까지 소리에 정진하는 송화의 모습에 대구할 수 있는 것이고, 심청의 죽음을 대가로 하여 눈을 뜰 수 있게 된 심봉사는 서편소리의 완성이라는 었다.
    독후감/창작| 2006.11.22| 5페이지| 1,000원| 조회(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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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돼지가 우물에 빠진날
    ‘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 을 보고...Ⅰ.시작하며홍상수 감독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이란 영화, 사실 감독의 이름과 본 영화에 대해서는 과거부터 수차례 들어왔었지만 영화 내에서의 재미거리와 출연배우가 누구인지, 그리고 광고 등의 영화 마케팅과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영화에의 정보 등의 여러 가지 요인들로 인해 영화에의 편식과 낯가림이 심해진 나로서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선뜻 볼 마음의 여유나 가슴에서의 울림이 없었다. 그러지만 이번학기 수업시간 영화상영의 막을 내리는 작품,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은 영화를 다 본 순간 나로 하여금 지난 3편의 작품들 중에 제일 큰 난해함의 절대치를 안겨다 주었고, 때문에 나의 머릿속은 먹지와 공(空)의 상태로 되어 버렸다. 하지만 감독이 이리 영화를 만들었다면 무언가 얘기하고 싶었던 것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미약하고 부족하지만 앞서 본 영화들을 감상하면서 단련된 다른 각도에서 영화를 바라보는 방법으로 영화에의 난해함을 하나씩 제거해 나가고자 하였다. 그러한 방식들의 일환으로 영화가 다른 영화들과 가장 잘 차이를 보이는 극중 서사의 지루한 진행방식(이를 통해 감독은 반복적인 일상사를 다루는 듯 하다)을 해부해 보고, 이러한 극중의 현실들과 그리고 그 속에서 묻어나는 영화 밖의 현실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과 태도를 포착해 보고, 그와 동시에 그 속에서 수업시간에 다루었던 포스트모더니즘이 드러나 보이는 모습을 다루어 보고자 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들을 통해 호두껍질과 같은 단단함속에 묻혀있던 영화에 대한 나의 궁금증을 풀어나가, 영화 해석의 귀결이라 생각하는 돼지가 왜 우물에 빠졌는지 그리고 그것에 대한 감독의 외침을 생각해보고 같이 고민하려 하였다.Ⅱ.본론- 영화의 시상 전개에 있어서 구성의 특징과 그 안에서 묻어나는 현실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과 포스트모더니즘으로의 해부, 이들의 총괄적 묶음‘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는 삶이 무료한 비인기 소설가이자 철저하게 혼자인 지식인 효섭과, 그런 효섭의 글을 지지하고 인간 효섭을 사랑하는 여자 민재, 부족함 없는 한 가정의 아내이지만 그런 삶이 건조하여 효섭과 불륜의 관계인 보경, 겉으로 보기에는 인텔리하지만 늘 아내인 보경을 의심하고 고속버스에서 옆좌석 사람의 구토에도 질색하고, 윤락녀와의 관계에 있어서 찢어진 콘돔 때문에 괴로워하며 힘든 나날을 보내는 등의 결벽에 걸린 보경의 남편 동우, 이렇게 일상생활에서 평범히 관찰할 수 있는 4명의 등장인물이 마치 옴니버스 영화를 보듯 각 인물들을 중심으로 그 인물들의 에피소드들을 하나의 공간이 아닌 다른 공간에 흐트러뜨려 놓음으로써 보는 이들로 하여금, 이러한 난잡할 수 도 있는 구성을 퍼즐을 맞추듯 재배열을 하게끔 강제하고, 따라서「영화의 흐름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관극 태도를 요구한다.」) 영화는 끝마침의 자막이 올라올때까지 이런 구성을 택하고 있다. 이러한 독특한 영화전개의 방식 때문에, 영화를 극으로 치우쳐서보면 지루하다까지 할 만큼 오해의 소지를 낳을 수가 있다. 그러나 감독이 지극히 평범하다 할만큼 지루한 일상을 바탕 삼아, 그 안에서 극중 인물들을 통해 일상 속에서 우리 현대인들의 모습을 투영하여 탐욕과 일탈을 하게끔 하여 현실에 냉소를 퍼붓고 있는 것은 아닌가, 또 그러한 것은 기존의 정형화되고 일반화된 촬영기법과 영화 시상의 전개에 있어서도 독특하고도 파괴적인 방법(효섭이 회식자리에서 노래방기기 앞에서 노래를 권하는 장면, 효섭이 재판과정에서 구류5일 판결을 받을때 마치 벽을 대고 혼자 말하는 듯한 장면 등)을 택하여 기존의 현실과 지금에 있어서 그 현실을 달리 바라보고 파괴하는 포스트모더니즘적 사고의 냄새를 맡을 수가 있었다.수업시간에 다루었지만 본 영화의 이해를 돕기위해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무엇이며, 본 영화에서 이러한 사고와 표현이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는지 간략히 살펴보면,「19세기 사실주의(Realism)에 대한 반발이 20세기 전반 모더니즘(Modernism)이었고, 다시 이에 대한 반발이 포스트모더니즘이다. 사실주의는 대상을 그대로 옮길 수 있다는 재현(representation)에 대한 믿음으로 이런 사실주의에 대해 종교나 외적인 힘보다 인간의 이성에 대한 믿음을 강조했던 계몽사상은 합리적 사고를 중시했으나 지나친 객관성의 주장으로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도전받기 시작하였고, 포스트모던 사회에서는 보편적이고 타당한 지식은 결코 있을 수 없으며, 인식자의 주관에 따른 상대적인 관점에 상호 관계에 의해 형성되어진다는 것이다. 즉, 지식의 절대적인 권력적 속성을 배제한 세계관을 요구하는 상대적이고 다원적인것이다.」)이러한 포스트모더니즘적 모습과 표현은 영화의 시대적 배경인 1990년대 중반의 한국의 현실에서 등장인물들간의 사랑에 대한 방식과 그것의 비극적 결말에 있어서 자명히 드러난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인 1990년대 중반은 정치적으로는 한국의 사회와 역사를 거의 반세기동안 억압했던 군사정권의 물러남과 문민정부의 평화적 정권교체, 경제적으로는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몰락과 신자유주의의 세계화조류의 편승과 수용, 문화적으로는 서구문물의 방대한 국내로의 진입, 기술적으로는 컴퓨터의 발달로 인한 인터넷등의 통신/기술수단의 발전 등 기존의 정형화된 것들이 재정형화를 위한 과정의 과정중이었다. 때문에 이러한 것들은 영화에 있어서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감독은 이러한 시각에서 현실을 바라보았고 이 모든 것들을 아우러 이러한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등장인물들의 어긋난 사랑과 비극적 결말을 통하여 기성을 파괴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등장인물들의 어긋난 사랑과 그것을 통해 감독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따라가 보자.삶에 무기력한 비인기 소설가 효섭은 유부녀 보경과의 불륜을 통해 사랑을 하고 보경이 남편과 섹스를 하지않기를 은근히 바라는 인물이다. 보경 또한 남편과의 건조한 삶속에 효섭과의 불륜을 삶의 한켠으로의 해방구로 삼는 여자이다. 민재는 낮에는 극장매표소 직원이고 밤에는 더빙일을 해나가며 주야로 일을 하며 효섭에게 물심양면으로 한없는 사랑을 주는 여자다. 동우는 아내를 의심하지만 출장중에 모텔에서 윤락녀를 불러놓고, 아내와 자식의 사진을 들여다 보며 갈등을 하다 결국은 윤락녀와 관계를 맺는 인물이다. 이들 모두는 일상에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탐욕적이고 일탈적인 사랑의 소재들이다. 그러나 감독은 이러한 인물들과 상황 설정의 토대위에 이런 일상 속에 지친 현대인의 탐욕스런 사랑을 죽음이라는 비극적 결말로 유인함으로써 마치 반전이라도 된 듯, 나의 예상을 뒤엎고 다시 영화에의 접근을 피드백 시켰다. 보경과의 오붓한 시간에 불쑥 찾아온 민재에게 폭력을 휘두르며 「“넌 순수한거랑 유치한 것도 구별 못해? 니 그 더러운 곰인형, 토끼인형 그런거 끌어안고 있는다고 그게 순수한 건줄 아니?”」) 라며 폭언을 퍼붓는 효섭의 모습을 통해 탐욕과 이기심에 의해 일그러진 사랑에 대한 모습을 나타내고 그와 동시에 그것에의 경고를 우회적으로 하고 있는 듯 하다. 효섭에게 버림받은 민재는 배신감에의해 그에 대한 탐욕과 일탈로 자신을 짝사랑하는 극장동료 직원 민수에게 몸을 허락한다. 그때 민재는 민수에게 “너 나 사랑해?”라며 묻지만 민수는 대답을 하지 아니하고 영화의 끝에 효섭과 민재를 살해하며 피범벅이 된 체 사랑한다고 말을한다. 탐욕스럽고 육체적이고 이기적인 사랑의 방정식에 대해 감독은 풀이과정에 있어서 죽음이라는 답으로써 그 사랑의 방정식을 풀어나간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영화의 결말은 더 충격적이다. 보경은 효섭에게 전화를 하지만 자동응답만이 들릴뿐이다. 소파에서 일어나 두꺼운 신문 한 부를 한 장씩 펼쳐 창이 열려있는 베란다 문쪽으로 신문을 바닥에 깐다. 그리고 나서는 그 신문을 서서히 밟고 배란다쪽을 향해 걸어나가며 자살을 하는 것인지 혹은 창밖을 바라보는 것인지 수수께끼를 남긴체 영화는 감작스레 끝나버린다. 다시한번 독특한 표현기법이 사용된 장면이다. 여기서 신문지의 기능에 대해 생각해 보았는데 신문은 새로운 소식을 전달하지만,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대변(사실 몇 주일씩 반복되는 기사와 광고들도 다반사이기 때문에)하는 것이라 생각해보았다. 그런 지루하고도 반복되는 일상위에 그것을 밟고 지나감으로써(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창이 열려진 베란다를 향하여 걸어나감과 동시에 끝나버리는 영화, 감독은 끝이 아닌 새로운 출발을 얘기하는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영화전체에 깔린 어두운 분위기 같이 또다시 반복적으로 내일 나올 신문에 과 또 다시 그 위를 밟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 대해 암시를 하며 화면을 검게 칠했을 수도 있다는 다양한 생각을 하였다. 이처럼 독특한 마침법을 통해 영화가 끝나고도 감독은 보는이들로 하여금 과제를 안겨주는것이라 생각하였다.
    독후감/창작| 2006.11.22| 4페이지| 1,000원| 조회(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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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태일 감상문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보고...이 영화의 제목에는 주인공의 이름 앞에 왜 아름다운 청년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을까? 예전에도 이 영화를 본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영화에의 광고와 주연배우의 연기에 대한 관심의 치우침, 그리고 영화에서 그리는 시대적 상황에 대한 문제인식이 거의 전무한 상태에서 본 연유로 앞에의 물음에 대한 답은커녕 의문조차 갖질 않았던 나 자신이었다. 하지만 이번 수업을 계기로 다시금 보게 된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은 그 당시 시대적 상황의 어두움에 따른 노동자들의 아픔과 일부 지식인들의 고뇌와 저항에의 한계를 보여줌으로써 그 안에서의 전태일의 인간다움, 근무현장에서 근로기준법의 무시와 사문화에 따른 노동자로서의 저항과 간절한 외침들, 또 그에 따라 자신의 한 몸을 분신하게까지 한 그의 희생과 상황 등은 영화를 본 나로 하여금 가슴 한구석의 씁쓸한 속쓰림과 뜨거운 눈물을 남겨주었고, 왜 그가 아름다운 청년이었는지를 깨닫게 해주었다. 또 더 나아가 영화와 전태일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관심의 원주밖에 머무르고 있는 노동계의 현실과 어려움에 대해 생각해 보게끔 환기시켜주었고, 경직된 노동과 기업 그리고 정부의 관계의 현 상황에 대해 나에게 다시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주었다. 따라서 나는 영화의 흐름에 따라 전개되는 당시 시대적 상황에서의 노동자들의 아픔을 함께 호흡하려 하였고 그런 아픔과 고통들을 토대로 전태일의 죽음이 헛되이 되지 않도록 그의 죽음이 오늘날의 노동에의 현실에 시사하는 점과 미약하지만 한국 노동의 문제점과 그것의 해결책에 대해 나의 짧은 소견을 써 나가고자 한다. 부끄럽지만 그것이 내 나름대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죽음을 기리는 것이라 생각하기에...영화는 「1970년 11월 13일 서울 동대문의 평화시장 앞에서 평화시장 피복공장의 재단사이자 노동운동가로 활동하던 22살의 전태일이 온 몸에 휘발유를 붓고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고 외치며 평화시장 앞을 달리다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는 러진 뒤 끝내 일어나지 못하고 숨을 거둔」) 실화의 사건을 다룬 영화로서 1975년을 현재적 시점으로 하여 당시 권위주의 정권의 시대에 쫓기는 지식인인 김영수라는 인물을 통하여 전태일의 죽음을 회고하는 역순행적이며 액자적인 구성으로 시작한다. 영화의 구성과 진행방식이 약간 혼동스럽기도 하였지만 작중 화자인 김영수라는 인물이 전태일을 기리는 입장이기 때문에 보다 자연스러울 수가 있겠다고 생각하였다.수업시간에 잠깐 다루었지만 60.70년대 군사 쿠데타에 의해 권위주의 및 독재 정권이 서면서 자본의 발전과 공업의 발전, 개발정책으로 인하여 농촌은 분해되고 공업국가 및 도시국가의 모습이 나타나는 당시대에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에서 제시한 근로의 기준 및 여건들은 무시된 채 노동해 나가는 동대문 평화시장의 재단사이다.어느 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잠이 안 오는 각성 성분의 주사를 맞아가며 철야 노동을 해나가는 여공이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모습을 본 전태일은 부당한 근무에의 조건과 노동의 현실에 대해 “공장측에서는 아무런 신경을 써주지 않아요” 라며 문제의 인식을 하게 되고 노동자를 보호하는 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장면에서 피를 토한 여공이 울부짖으며 전태일에게 “손을 씻을데가 없어요” 라는 대사는 당시의 근무 상황이 얼마나 열악하였는지를 짐작케 하였다.자신이 해야 할 일을 깨달은 전태일은 근로기준법 책을 사게되고 이를 공부하여 평화시장의 동료 재단사들에게 근로기준법에서 제시하고 있는 근로의 기준과 조건들을 깨우치고 그들이 처한 부당한 근무여건에 대해 인식하게 한다. 따라서 전태일을 비롯한 그들은 그들이 진정 바보였음을 뒤늦게 자각하고 ‘바보회’ 라는 투쟁에의 모임을 만든다. 나는 왜 모임의 이름을 바보회라 지었을까? 다른 여러 이름들도 있었을 텐데 하필 바보회였을까? 라는 의문을 가졌다. 그러나 그들에게 있어서 근로기준법이라는 존재는 그들의 희망이었고 최소한의 안전망이었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런 근로기준법의 존재자체를 모르고 열악한 근무환경과 대우속에서 살아갔를 바보였다고 깨닫고 그들의 목소리를 한 곳으로 모을 수 있게된 계기인 바보회의 탄생, 그들은 더 이상 바보가 아니었고, 바보회는 그 시작부터 바보회가 아니었던 것이다.그러나 그런 바보회의 목소리는 노동에의 무관심과 정치적 관심 범주 밖으로의 소외 및 행정 편의주의에 의해 무참히 묵살되고 만다. 전태일은 평화시장의 근무현실에 대한 바보회의 보고서를 들고 노동청을 찾아가지만 직원의 차디찬 대접 아래 “읽어 볼 테니 놓고 가요”라는 말을 들으며 아무런 대답도 없이 무력하게 돌아오고 만다. 영화를 보면서 약간 화가 나기도 했지만 이성을 찾고 생각해보니 당시의 상황이나 오늘날의 현실이라 해서 크게 다를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였다. 물론 근무적환경이 많이 개선되었고 바보회와 같이 노동의 목소리를 수렴할 수 있는 형식적인 노조 단체들도 많이 생겨났다 하지만 이 또한 얼마 되지 아니한 것이고, 구조조정 및 비정규직의 문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 대우, 노동소득배분의 문제 등의 수많은 노동의 요구와 갈증 섞인 목소리들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아직도 이들의 외침은 현실정치의 관심의 일차적 타겟에서 요원하다 말 할 수 있겠다.냉혹한 당국의 현실에 부딪혀 무기력하게 돌아온 전태일은 평화시장에서 부당하게 해고를 당하고 막노동판을 전전하게 된다. 막노동을 하면서도 평화시장의 현실에 대해 아쉬움과 개탄의 끈을 놓을수 없게 된 전태일은 작업 현장에서 무덤같은 웅덩이를 파 그곳에 시체처럼 누우며 괴로워한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그곳을 모른체 할 수 없다. 그곳은 내 마음의 고향이다” 라며 전태일은 자신을 추스르며 다시 평화시장으로 돌아온다. 무덤과 같은 장소의 설정과 그 안에서 다시 강해져서 나오는 전태일의 모습을 보며, 마치 다시 태어난 듯 이전의 전태일과는 다른 모습을 보일것 이라는 것을 예측 할 수가 있었고, 영화 역시 이 장면을 전환점 삼아 노동자들의 외침은 앞과는 다르게 탄력을 받게 된다.「평화시장으로 다시 돌아온 전태일은 옛 바보회 회원들과 새로운 동지들을 모아 ‘삼동(친목)장, 동화시장, 통일상가 3건물을 지칭한 삼동회는 ‘불법적이며 비인간적인 노동현실을 폭로하고, 그것을 발판으로 공동 투쟁한다’ 는 목표를 세운다. 삼동회의 활동은 기업주나 당국에 함께 진정하고 호소하는 수준이었던 바보회의 목적에서한 단계 나아갔다」) 그러나 그런 삼동회의 노력도 수포로 돌아가는 듯 하였으나 우연한 기회에 신문사 기자들을 만난 전태일은 평화시장의 근무 현실과 여건에 대해 알리었고 이것을 신문에 기사화하는데 성공하였다.평화시장의 근무여건의 실상이 알려지자 국정감사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노동청 직원들은 갖은 교언영색으로 전태일을 비롯한 삼동회 회원들에게 근무의 개선을 약속한다. 하지만 국정감사가 끝나자 그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예전처럼 귀를 닫는다. 이는 열악한 여건에서 일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정치적 불가역성으로 인해 어쩔수 없이 수렴하는 듯 하면서도 그에 대한 불충분하고도 사후적으로 머무르는 대안들로 아직도 그들을 삶의 따듯한 햇살에서 볕이 들지 않는 사각지대로 몰아넣는 오늘날의 정치, 노동자들의 메아리와 별반 다를것이 없다는 생각을 안겨주는 대목이다.영화에서 노동의 염원과 그것의 해갈에의 외침은 속도가 붙어간다. 삼동회 회원들과 평화시장의 근무자들은 결국 당국이 약속을 이행치 아니하자 시위를 감행하게 된다. 마치 혁명과 같이 아래로부터의 파도가 치는것 이었다. 전태일과 삼동회를 비롯하여 뭉치게 된 노동자들은 근로 기준법의 이행과 처우 개선 등의 목소리를 앞세워 시위를 시작한다. 그러나 이번에도 그들의 희망이 담긴 커다란 풍선이 공권력에 의해 작아져 가자 전태일은 결국 그들의 희망을 위해 비장한 각오로 자신의 온몸에 휘발유를 붓는다. 근로기준법책에 불을 붙이고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인 전태일은 시위의 현장으로 뛰어 들며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나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말라” 는 외침과 함께 죽음을 맞이한다. 뜨거운 화염조차도 노동현실의 타개에 대한 그의 뜨거운 마음보다 뜨겁지는 못했던 것이다.영화는 시간이 흘러 전태일이 분 현장에서 김영수가 전태일의 삶과 죽음을 회상하며 끝맺음을 한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억압된 노동의 과거와 작금의 현실에 대해 안타까웠고, 어떤 연유로 한국의 노동이 탁하게 흘러왔으며, 앞으로 다시는 사회가 전태일의 죽음과 같이 노동자들을 죽음으로까지 내몰지 않게 하고 우리나라 노동의 장및빛 미래를 위해 필요한 몇 몇 사항을 간단히 조사해 보았고, 짧은 나의 생각을 적어보았다.영화의 시대적 배경인 60,70년대의 우리나라 경제는 「관치경제로 국가에서 경제계획을 세워 이끌어나가던 시대였다. 자본은 없고 가진것은 값싼 노동력이 전부였고, 무엇보다도 경제성장을 중요시 해서 분배 보다는 우선성장에 전력을 쑫은 것이다. 그런데 노동운동이 일어나면 분배에 대해 경시 할 수 없으니 노동운동을 탄압하였고」), 따라서 영화에서와 같이 노동자들은 억압받고 소외 될 수 밖에 없었다.오늘날이라고 해서 상황은 크게 다를 바 가 없다. 민주노총의 합법단체 인정, 제3자 개입과 복수노조금지 등의 노동운동 탄압에 대한 법적규제 완화 등이 얼마 되지 않은 오늘날에도 노조의 조직률은 10%를 전후하여 매우 미약한 실정에 머무르고 있고, 노조운동 또한 산별이 아닌 기업별, 노선별로 분산되어 있어 그들의 요구를 보다 강력히 소리치기에 한계가 있다. 또 폐쇄적 보수를 고수하는 정치적 대표체계에서 민주노동당과, 한국사회민주당 등의 노동에 귀를 기울이는 진보정당의 중앙정치로의 진입은 여전히 비좁아 보여 그들의 의견을 정치적으로 수렴하기 위한 필요조건이 부족하다. 「노동과 기업, 정부의 관계 또한 경제구조조정 과정에서 실업과 불안정고용이 중소기업, 대기업, 공공부문으로까지 확대되면서 노동운동의 비타협적 전투성이 눈에 띄게 증가 하였고, 따라서 정부, 기업, 노동간의 갈등은 첨예화되면서 그에 대한 신뢰의 정도가 급격히 약화된 실정이다.」) 또한 정부의 노동시장 유연화와 기업의 다품종 소량 생산체제로의 생산방식의 전환은 저임과 비정규직 노동자를 대량 양산하여 임금의 불평등과 빈곤, 실업 등에 있어서 양극화이다.
    독후감/창작| 2006.11.22| 4페이지| 1,000원| 조회(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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