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티오브조이를 보고..서론‘하늘과 가장 가까운 직업은 의사다’라는 말이 있다. 의사가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일을 하기 때문에 지어진 말이다. 인간의 생명은 귀하다. 그 생명의 근원은 인간의 영역밖이지만 의사가 의술을 행함으로 생명을 연장시킬 수 있는 시대가 온것이다. 하지만 그 생명의 연장영역을 어디까지 허용할것인가에 대한 것은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뇌사자의 장기적출이 과연 옳은것인지, 인간배아복제는 과연 정당한것인지에 대해 우리는 현대의학의 기술과 인간이 지켜야할 윤리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다. 최근 ‘존엄사할머니’에 관한 기사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바가 있다. 이처럼 생명을 다루는 의료기술과 윤리사이의 갈등은 계속 되고 있으며 가리워졌던 문제점들이 하나둘씩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생명의료윤리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생명에 대해 의료기술은 어디까지 간섭되어져야하는지 명확한 기준을 세우는 것은 쉽지않다. 또 그 책임을 누구에게 돌릴것인가에 관한 문제도 명확한 답이 없는 실정이다. ‘생명의료윤리’를 어떻게 정의하고 실천할것인가에 대한 어려움은 많다. ‘윤리’라는 것이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고 풍토에 따라 변할수도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뷰참(T.L.Beauchamp)과 칠드레스(J.F.Childress)는 생명의료윤리의 원칙 4가지를 소개하였다. 그 4가지 원칙은 자율성 존중의 원칙, 악행금지의 원칙, 선행의 원칙, 정의의 원칙이다. 먼저 자율성 존중의 원칙은 의사가 진료를 할때 환자의 자율성을 고려하여 일방적인 진료가 아닌 환자의 동의를 얻고 환자의 자율적 결정을 존중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악행금지의 원칙은 말그대로 환자에게 해를끼치는 의술을 하지 말아야 하는 원칙이다. 선행의 원칙은 환자를 적극적으로 치료하여 복지와 건강을 증진시켜야한다는 원칙이며 정의의 원칙은 누구나 공평하게 진료를 해야한다는 원칙이다. 나는 ‘시티오브조이’라는 영화에서 드러난 의료인의‘선행의 원칙’에 대해 쓸 것이다.본론맥스는 미국의 의사로 한 아이의 수술중 상태가 캘커타로 여행을 하게 된다. 인생의 의미를 찾겠다고는 했지만 아마도 그는 일종의 도피로 인도행을 택했을 것이다. 그곳에서 맥스는 대부의 아들로부터 지갑을 뺏기고 폭행을 당해 인도의 작은 진료소에서 진료를 받게 되었다. 하지만 그곳은 임시방편의 약품들과 낙후된 환경으로 심각한 질병을 가진 환자는 치료를 받기에 적합하지 못할 정도였고 맥스는 왜 조안자매가 그곳에서 봉사를 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마치 바위에 계란치기와 같다고 비유를 했다. 미국과 같이 발달된 곳에서는 의료장비가 충분했고 환자를 살릴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었지만 인도는 환자를 치료할 환경뿐 아니라 인력도 제대로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안은 환자들이 자기를 필요로하기 때문에 그 곳에 머물러있다고 이야기 한다. 조안은 의사는 아니었으나 간단한 치료보조정도는 할수 있었고 그것은 그 동네 사람들의 큰 위안이 되었다. 그들에게 위안이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조안자매가 그곳에 머물수 있는 큰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조안자매는 맥스가 의사출신임을 알고 함께 봉사를 하자고 권유하지만 맥스는 당치도 않다고 말한다. 자신이 돕는다고 해서 열악한 환경에 큰 보탬이 될수 없다고 생각한 탓이었다. 사람의 질병은 다양하고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므로 다양한 전공의 의사와 충분한 양의 약품이 있어야 했지만 그곳은 아픈사람은 많지만 치료할 사람도 없고 예산도 부족해 약품도 확보할수 없는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날 밤 나환자인 한 남자로부터 다급한 연락을 받게 된다. 아내가 출산진통이 시작된지 한참이 되었어도 아기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침 진료소 담당의사는 그 자리에 없었고 조안은 보조 일만 할 수 있을뿐 아기받는 일은 할 수가 없다고 딱 잘라 말한다. 이때 맥스의 눈빛이 흔들린다. 이 상황에서 자신이 무엇을 선택해야할 것인가 고민을 한 것이다. 의사로서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왔고 그래서 의사를 그만두고 다른 일을 찾아볼 것이라고 결심한 맥스였다. 다시는 의술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의 굳은 의지와 긴급한 하게 된다. 긴급하게 청진기와 필요한 약품들을 들고 산모가 있는 곳으로 뛰어간다. 결국 맥스의 도움으로 산모는 건강하게 아이를 낳고 맥스는 두 생명을 살렸다는 안도감과 기쁨을 느끼게 된다. 맥스의 이러한 선택은 ‘선행의 원칙’에 의거한 것이었다. 선행의 원칙은 타인의 선을 적극적으로 증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맥스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의사로서 타인의 건강과 복지를 위해 그곳으로 달려갔을 것이다. 이후에 맥스는 그곳에 머물며 의료봉사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 맥스는 어쩌면 자기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환자가 싫어요~’라는 말에서 그는 환자가 정말로 싫은 것이 아니라 아픈 환자를 고칠 수 없는 자신을 원망하는 마음에서 그러한 말을 내뱉은 것이라 생각이 든다. 아픈 환자를 볼때 자신의 무능함이 가장 먼저 떠올랐으므로 의술을 회피하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의사가 되기로 한 이상 고칠 수 없을 것 같은 환자도 적극적으로 치료해야 하는 게 의료인의 의무이다. 한편 맥스는 나환자들도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을 열어주어야 한다고 건의를 한다. 나환자들은 사람들이 사는 곳과 2시간가까이 멀리 떨어져 살았기 때문에 치료가 필요할 때에도 제때 치료받을 수 없는 열악한 환경에 놓여있었다. 맥스는 진료소를 확장하여 나환자들을 수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것 역시 나환자들의 건강을 증진시켜야 한다는 선행의 원칙에 의거한 행동이었다. 모든 것이 열악했던 기쁨의 도시 진료소에서 환자들은 수동적으로 임시적인 치료에만 의존해왔지만 맥스의 판단으로 그들이 꼭 원치 않더라도 적극적으로 치료를 해야한다는 온정적 간섭주의에 입각하여 주장을 내세운 것이다. 이부분이 온정적 간섭주의라고 생각했던 이유는 나환자들은 치료가 필요했지만 적극적인 요구를 하지 않았고 가능한 범위내에서 치료받기를 원했었다. 게다가 그들이 기쁨의 도시 진료소에 수용되게 되었을 경우 근처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결국 쫓겨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이 있었다. 그들은 꼭 진료소 내부로 들어와야 할 서도 선행의 원칙의 하나인 선한 사마리아인의 법칙이 성립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선한사마리아인의 법칙은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다른 사람의 이익을 생각하는 것이다. 자신이 선한일을 함으로인해 겪게 되는 희생이 어려운일을 겪은 사람이 도움을 받지 못함으로 인해 생기는 안타까운 결과보다 적다면 그일을 적극적으로 시행해야 한다는 원리이다. 조안은 여행중 우연히 그곳을 방문하게 되어 봉사하기로 결심하게 된다. 열악한 환경이라 그곳에 머물면서 겪게 되는 희생보다 마땅한 진료소가 없어 질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고통이 더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결국 의료인인 조안과 맥스의 행동에서 선행의 원칙을 발견할수 있었다. 그렇다면 앞으로 의사가 될 나는 선행의 원칙을 올바르게 적용하며 환자를 진료할수 있을까? 세상에는 많은 가치관들과 윤리관들이 충돌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이 맞다고 확정짓기에는 사례들이 너무 다양하다. 얼마전 의학실습중 정신과병동에서의 일이 생각이 난다. 정신병동에서 하루하루 지루하게 보내는 환자중 한 명이 나에게 다가왔다. 환자는 약을 먹기 싫다고 했다. 약을 먹으면 먹을수록 자신이 정신병에 걸렸다고 인지하고 자신이 더더욱 이상한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고 싶다고 말을 했다. 그 환자는 순간적인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는 장애가 있는 분이었다. 그 말을 들었을때 환자의 마음이 이해가 가면서도 나는 단호하게 말을 해버렸다. 그 약을 평생동안 먹어야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살 수 있다고 말이다. 물론 의학적으로 정신병을 고치기가 정말 힘들고 충동 억제를 위해 약을 먹어야 하는 것은 틀림없는 처방임에도 불구하고 환자스스로는 그런 치료를 받는 것을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 이것은 어쩌면 의사의 윤리중 선행의 원칙에서 온정적간섭주의와 환자의 자율성이 충돌하는 부분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조심히 해보았다. 안락사의 문제도 이와 비슷하게 빗대어 설명할수 있을 것이다. 안락사는 극심한 환자의 고통을 줄여줄 목적으로 고통이 적은 방법으로 사망에 이르도록 하는 켜보는 가족들에게 안락사는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할수 있고 죽음을 예상할수 있으므로 꼭 나쁘다고만 말할 수 없다. 환자가 고통을 덜 겪고 가족들의 정신적 고통을 덜어줄수 있다면 안락사는 인정해야한다는 입장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안락사가 허용된다면 고통을 당하는 사람을 내버려두지 않고 평안하게 죽음으로 이를 수 있게 하고, 특히나 죽음이라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완화시키고 두려움의 기간을 줄일 수 있게 한다. 하지만 환자와 가족들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선행의 원칙을 적용할것인가 아니면 생명의 존엄성을 생각하고 온정적 간섭주의로 치료를 지속할것인가에 관한 것도 그 기준이 모호하고 무엇이 옳다고 말할 수가 없다. 생명의 탄생을 사람의 힘으로 결정할 수 없는 것 같이 생명의 끝도 사람의 힘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종교적인 입장, ‘죽이는 것’과 ‘죽도록 하는 것’의 의미가 차이가 없다는 입장, 의사의 판단이 무조건 다 옳다고 말할수 없다는 입장 등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뇌사자의 장기기증은 과연 합당하다고 말할수 있을까? 뇌사를 사망으로 정의할것인가 말것인가에 대한 논란은 계속 되어져왔지만 현재 의학적으로 뇌사를 ‘사망’으로 인정하고 있고 뇌사자의 장기기증은 법적으로 허용된다. 하지만 인간의 생명은 어디까지 사람의 손에 의해 다루어져야하는 가에 대한 문제는 정확하게 무엇이라고 말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오랫동안 식물인간이었던 사람이 20여년만에 깨어나 사람들에게 놀라움과 기적을 주는 사례도 적지 않으므로 쉽게 판단하는 것도 어쩌면 조심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뇌사환자의 선은 과연 무엇일까? 더 이상 나아지지도 나빠지지도 않는 상황에서 비용만 소비되는 연명치료를 계속해야하는 것인지 아니면 장기기증과 같은 것으로 그 환자의 생명은 포기하더라도 다른 환자의 생명살리는 일에 도움을 줄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어렵기만 하다. 생명의료윤리의 원칙이라는 기준에 의거하여 의료행위를 한다고 하더라도 생명을 다루는 일에는 인간이 모든 것을 결정하기에 어려움이 많다. 한사람의 문이다.
영화 ‘시크릿’ 을 보고..나는 그동안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며 살아왔다고 자부했지만 한편으로는 풀리지 않은 문제들로 인해 나도 모르게 좌절하고 절망할때가 있었다. 이 ‘시크릿’을 통해서 내가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지 알게 되었으며 내 인생에 대한 기대를 할수 있게 되었다. 이 영화에서는 무조건 좋은 마음 즉 긍정적 마음, 감사, 기쁜 등을 가져야 하며 부정적인 생각이나 말들은 금해야 한다고 제시하고 있었다.우리는 무한한 능력을 가지고 있고 동일한 법칙에 적용된다. 바로 유인력의 법칙이다. 이것은 우리가 어느 위치에 있든지 하나의 법칙에 속해있다는 것이다. 높은 곳에 있는 사람이 아래로 떨어지면 추락하게 된다는 중력의 법칙처럼 유인력의 법칙은 어느 누구에게나 예외일수 없는 것이다. 유인력의 법칙이라는 것은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 우리를 그렇게 끌어들인다는 것이다. 마치 우리가 자석인것처럼 말이다. 생각에 의해 모든 것이 작용하므로 원하는 것도 손에 다 쥘수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일어난 일은 우연이 아니다. 우리의 생각이 실체화 된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원하지 않는 것을 생각한다. 하지만 유인력의 법칙은 원하는 것이든 원하지 않는 것이든 모두에 작용한다. 나의 생각이 원하는 것도 끌어오지만 원하지 않는 것도 끌어온다. 과거, 현재, 미래, 기억, 상상 등 모두 내가 생각하는 것은 모두 우주의 유인력에 의해 나의 생각에 작용하여 영향을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원치 않는 것에 집중하면 상황이 더 나빠지므로 원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람직한 환경이 찾아온다. 나에게 일어난 모든 일은 나의 생각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나쁜말을 하는 사람은 나쁜일이 생기고 좋은 말을 하는 사람은 좋은 일이 생긴다. 하지만 그동안 부정적 생각을 많이 했다고 해서 걱정할 필요는 없다. 긍정적 생각의 힘은 부정적 생각의 힘보다 수백배나 더 강하기 때문이다.“Whatever it is you are feeling is a perfect reflection of what is in the process.”라는 말처럼 우리의 감정이 일의 진행과정을 반영해준다고 한다. 감정에 의해 모든 것이 지배된다는 것이다. 좋은 감정과 나쁜 감정이 있는데 좋은 감정을 가지고 아침에 일어나면 모든 것이 잘 되는 것을 느끼지만 아침부터 좋은 감정을 가지지 않으면 하루가 엉망이 된다는 것이다. 언제나 상황이 좋지만은 않다. 상황이 그렇지 않더라도 좋은 감정을 가지고록 해야 한다. 혹시나 기분이 나쁘다면 기분 나쁜 것을 개선해야 한다. 아름다는 것을 생각하거나 좋은 음악을 들어 기분을 좋게 바꾸어야 한다.그렇다면 내가 하는 일은 무엇이고 우주가 하는 일은 무엇일까?먼저 나는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요청을 한다. 다음으로 내가 하는 이 요청에 대한 응답을 우주가 한다. 사람들은 보통 자신의 소원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모르기 때문에 요청하는 것 조차 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위대한 사람들은 자신의 소원이 어떻게 이루지는지 알려고 하지 않았으며 단지 이루어진다는 생각만을 했다. 마지막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수령’ 단계이다. 이것은 내가 요청한 것에 나를 맞추는 것이다. 그러면 기분이 좋아지고 기쁨이 생긴다. 이것이 열정이다. 기쁨과 감사함이 열정에 대한 느낌인 것이다. 만약 이 과정중에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함으로 인한 좌절과 절망을 느끼면 요청한 것에 자신을 맞추지 못했다는 증거가 된다. 나의 느낌이 전적으로 중요함을 깨닫고 느낌에 따라 생각을 조절하면 조금씩 이루어진다는 느낌을 받게 되고 결국 원하는 것을 얻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원하는 것을 얻을때 더 큰 소망의 요청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원하는 것에 대한 감정을 만들기 위해 무엇이든 해야 한다. 큰집을 원하면 그 집에 들어가보든지 차를 원하면 시운전을 해보든지 등과 같은 행동이다. 이것은 원하는 것을 끌어오는데 도움을 준다.또 중요한 것은 내가 원하는 것의 이미지를 생각하는 것이다. 사진을 찍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내가 마치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상상하고 기뻐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이 바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지말고 차근차근 앞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Take the first step in faith, you don't have to see the whole staircase, just take the first step”와 같이 말이다. 나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나와 우주와 조화를 얼마나 잘 이루느냐에 따라 시가다 달라진다. 우주와 조화를 잘 이루는 것이 필요한다.우주와 조화를 잘 이루려면 먼저 감사해야 한다. 감사하는 것에 대한 목록을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감사의 마음은 좋은 것을 끌어오기 때문이다. 말로만 감사한다고 하지말고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느껴야 한다.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고 이미 갖고 있는 것에 감사하는 것이다. 내가 가진 모든 감정을 모으고 원하는 것에 집중하면 그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1. 조사대상-교생실습동안 담임실습반인 1학년 3반을 대상으로 교우관계도를 조사하였다.2.조사 시기-교생실습 3주차 2~3일간 설문지조사를 실시하였다.3.조사방법-총 14항의 질문 중 교우관계에 해당하는 질문에 답을 기준으로 조사하였다.질문내용1. 나의 이름은?2. 나의 생일은?3. 나의 혈액형은?4. 나의 가족관계는?5.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 이름은?6. 나의 이상형은?7. 우리반에서 문자를 가장 많이 주고 받는 친구는?8. 집에 갈 때 같이 가는 친구는?9. 우리반에서 나의 고민을 털어놓는 친구는?10. 2학년때 다른반이 되고 싶은 친구는?11. 우리반에서 다른 친구를 제일 많이 도와주는 친구는?12. 싸이월드를 한다면 우리반에서 일촌인 친구는?13. 짝이 되고 싶은 친구는?14. 교생선생님께 하고 싶은말 쓰기- 이 14항의 질문중에서 ‘7. 우리반에서 문자를 가장 많이 주고 받는 친구는?’ 과 ‘9우리반에서 나의 고민을 털어놓는 친구는?’ 항목이 교우관계를 가장 잘 알수 있는 질문으로 생각되어 두 질문에 대한 내용을 위주로 교우관계도를 작성하였으며 그 외 ‘8. 집에 갈 때 같이 가는 친구는?’과 ‘12. 싸이월드를 한다면 우리반에서 일촌인 친구는?’를 다소 참고하였고, 점심을 같이 먹는 학생들의 집단도 참고하여 작성하였다.4. 결과1) 1학년 3반의 교우관계도교우관계도는 다음도표와 같으며 화살표 방향은 자신이 지정한 사람 방향으로 표시가 되어있다. 화살표가 쌍방향인 경우도 있었으며 이런 경우는 절친한 사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점선으로 표시된 것은 설문조사에는 나타나지 않았으나 쉬는 시간 및 점심시간에 주로 함께 활동하는 학생들 사이를 관찰결과 추정하여 작성한 것이며 중심원에 있는 학생부터 큰원 방향으로 관계가 뻗어나가는 형태이다.2) 다른 사람을 잘 도와주는 친구- 다른 사람을 잘 도와주는 친구는 다음 표와 같이 1위는 반장인 박수진이 7표를 얻었고 이동언, 오승훈이 함께 4표를 얻어 2위를 차지했으며, 김영승과 박찬경이 3표를 얻어 3위를 차지했다.그 외 이00(2), 박00(2), 정00(1), 김00(1), 이00(1), 안00(1), 박00(1), 나00(1)가 다른 사람을 잘 도와주는 친구에 득표했다. 이 결과로 학급임원이 모범이 되어 성실하고 책임감있는 학생이 다른 친구들을 잘 도와주는 것을 알 수 있었으며, 또 남자로서 의리를 지킬 줄 아는 학생이 착한 일에 솔선수범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3) 다른 반이 되고 싶은 친구다른 반이 되고 싶은 친구는 ‘김00’이 23표로 최고로 득표하였는데, 수업시간에 집중하지 못하고 학급 분위기를 흐리거나 욕설을 잘 하는 학생은 꺼려하는 친구 1순위에 올랐다.5. 결과 해석이번 조사로 1학년 3반의 교우관계를 대략적으로 알 수 있었다. 초등학교에서 이제 갓 올라와서 처음 알게된 친구와 친하게 지내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같은 초등학교 출신 친구들끼리 친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편 가까운 자리에 앉는 학생들이 서로 친하다는 것을 보아 좌석배치가 교우관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인이라고 생각된다. 또 가장 바깥원에 있는 학생들은 대부분 말이 없고 조용해서 아직 적응을 다 하지 못한 경우였고 1학년 3반에는 소위 ‘왕따’는 없는 것으로 판단되었다. 그리고 다른 반이 되고 싶은 친구에서 1위를 한 ‘김00’은 큰 목소리, 욕설등으로 학급 분위기를 흐리기는 했지만 학급에 적응도 잘 하고 학급친구들과도 잘 어울리는 듯하게 보였다. 교우관계도 작성을 마치면서 약 3주간 지켜봐온 1학년 3반 학생들을 다시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며, 수업시간에 잘 떠들고 개구쟁이 학생이 많지만 1학년 3반은 서로를 배려 할 줄 알고 ‘하나’ 가 무엇인지 아는 건강한 학급이라는 생각이 든다.
노인이 말하지 않는 것들이라는 제목을 접했을때 노인 복지론 수업시간에 들었던 여러 노인들의 삶이 떠오르며 노인의 심리가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이 먼저 생긴것 같다. 이 책은 일본의 종합케어센터 선빌리지에 의해 만들어졌고 실버산업에서의 50가지 사례로 이루어져 있었다. 노인들에 대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기본바탕으로 하는 책이었고 짧은 각 사례를 읽을때마다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가 다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정도로 노인들의 심리를 잘 파악한것 같았다. 이 책이 우리나라에서 쓰여진것이 아니어서 사고 자체에는 조금 차이가 있을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가지고 노인들 대하는 케어에는 같은 사고와 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앞쪽에 실려진 내용중에 존엄을 생각하는 케어란 일관성, 팀플레이, 자립지원, 재원, 책임, 전문성, 사회성이라고 한다. 상대방을 존중하고 정확한 상황평가를 하며 전문가로서의 자질을 가져 현실에 반영된 교육과 면허갱신 시스템 등이 ‘존엄을 생가하는 케어’를 실현하도록 도와준다.1장에서는 ‘일상의 케어’에서 존엄을 생각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의사소통은 ‘비밀엄수 의무’, ‘눈높이 맞추기’, ‘의뢰형의 언어사용’, ‘웃는 얼굴’의 4개 항목을 케어의 기본으로 한다. 식사는 ‘혼자서 식사하기’, ‘침식분리’. ‘구강을 통한 섭취’의 4가지 기본항목으로 구성된다. 식사에 있어서 ‘존엄을 생각하는 케어’의 궁극적 목표는 마지막까지 고령자가 원하는 구강을 통한 섭취를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다. 배설은 ‘배설하지 전의 도움’, ‘ 앉을수 수 있다면 화장실을 이용’, ‘기저귀는 최후의 수단’, ‘쾌적한 기저귀 사용’의 항목이 있다. ‘모닝케어(세안, 머리단장, 구강케어)는 매일’, ‘속옷 교환은 매일’, ‘음부세정과 청결은 매일’, ‘욕조 입욕은 주2회 이상’이 청결 유지 항목이다. 한편 일상상활속에서 실천할수 있는 재활과 레크레이션은 그 경계를 명확시 구분할수 없다. 생활 속의 즐거운 레크리에이션이 가장 훌륭한 재활훈련이다. 또 침대에서 벗어나기 항목은 ‘매일 바깥 공기 쐬기’, ‘한달에 한번 이상 건물밖에 나가기’, ‘편안하게 앉는 자세’, ‘하루 한번 침내에서 벗어나기’가 있다. 각 일상생활 케어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①‘밀착케어’는 상대방에게 관심을 갖는것에서부터 시작된다. ②이용자를 앞에 두고 이용자에 관해 직원들끼리 이야기하지 않는다. ③커뮤니케이션은 당사자로부터 직접 얻는 정보를 가지고 한다. ④ 누구든지 인생 마지막 순간까지 입으로 식사를 하고 싶어한다. ⑤ 먹고 싶을 때 먹는 것이 바로 가장 맛있는 식사이다. ⑥ 밥이 최상의 보양이라는 점을 명심하라. ⑦배설을 다른 사람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아픔을 가슴에 새겨라. ⑧ 생활의 리듬을 개선하여 자연 배변을 도모하라. ⑨ 기저귀는 최후의 수단, 앉을 수 있다면 기저귀가 필요하지 않다. ⑩ 약한 모습을 드러낼수 있는 환경을 정비하도록 하자. ⑪ 새로운 일에 대한 도전은 우선 처음엔 한사람부터 시작하자. ⑫ 항상 아름다운 사람으로 남고 싶다. 여성에게 자신을 가꾸는 것은 삶의 의욕 ⑬ 집에서 하던 보통의 생활을 지속할수 있도록 하라. ⑭ 이상적인 터미널케어를 하고자 한다면 우선 본인의 의사를 존중해라 ⑮ 본인의 결정과 전문성이 균형을 이룬케어가 중요하다. ? 두려움은 무지에서 나온다 사전 준비와 정확한 지식이 필요하다.로 이루어 있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병상에 누워있는 노인이라도 기본적인 삶을 추구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는 것을 알았으며 그 마음을 깊이 헤아려주면서 그들이 자신의 삶을 계속적으로 유지할수있도록 요양사가 적극적으로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식사나 배설과 같이 하루에 몇 번씩이나 도움을 받아야 하는 노인의 입장을 잘 고려하여 그들이 마냥 도움 받는 사람 취급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또한 도움 받는것에 대해 심리적 불편함을 가진다는 것을 알고 그들이 정상적인 삶을 살수 있도록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한편 이미 외모가 다 늙어서 더 이상 볼품이 없을지라도 그들 또한 아름다운 젊은날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정확한 의학지식으로 케어를 해야한다. 아직 노인에 대한 케어를 해본적이 없는 나로서는 지식만 가지고는 부족하다는 것을 알지만 또 이렇게 간접적으로 사례를 읽으면서 노인의 삶에 대해 한번더 생각할수 있었고 앞으로 내가 노인을 케어할 때 어떤 마음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생각해볼수 있는 1장이었던 것 같다.2장은 치매케어에서 노인의 존엄을 생각하는 내용이다. 일반적으로 시설 입소자의 80%가 치매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치매 고령자들의 생활 장애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인격을 무시하고, 행동을 제한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치매에 결려도 마음은 살아있다’는 말처럼 치매 고령자가 예상치 못한 장면에서 보여주는 온화함, 배려하는 마음, 고민 등은 보통사람과 다르지 않다고 한다. 케어전문가들은 이용자들을 대할 때 그 사람의 장애를 보는 것이 아니라 장애가 있지만 소중한 생명을 가진 인간으로 본다.그러므로 개성을 존중하고 이용자의 요구에 부응하는 케어를 해야 한다. 2장에서 나오는 핵심은 다음과 같다. ①겉으로 나타나는 행동에 숨겨진 심리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자, ②밀착케어를 실펀하기 위해서는 생활방식 뿐만 아니라 그때 그때의 심리상태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③이용자의 심리를 이해하고 건네는 말은 ‘거짓말’이 아니라 ‘안심시키는 말’이 된다. ④아무것도 없어 집안의 분위기를 못느끼게 하는 시설환경이 수집 행위를 증폭시킨다. ⑤서비스 이용은 이용자의 생활 패턴에 맞추어 점진적으로 한다. ⑥행동장애는 케어를 제공하는 사람의 문제라는 인식을 갖도록 하자. ⑦아무의미 없어 보이는 행동에 케어의 힌트가 숨겨져 있다. 이 장에서 나에게 가장 놀라웠던 것은 잦은 배설 케어의 요구가 ‘나를 좀 봐줘요’라는 신호라는 사실이었다. 몸이 아프고 불편하고 정신마저 온전하지 못한 사람은 그리움과 같은 일상적 감정도 없겠지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들도 관심을 받고 싶어하는 한 인간이라는 것에 그동안 내가 너무 무지했구나라고 반성하게 되었다. 또 자신이 치매로 인해 고통받는 노인조차 케어시설에 들어오는 것을 꺼린다고 한다. 마치 자신이 일반사람이랑 같은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 이처럼 치매에 걸린 노인도 주위 사람들의 동정어린 시선 혹은 부정적인 시선을 의식한다. 자신이 치매에 걸렸다는 사실조차도 부정하고 싶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 또한 인간으로 인간은 내면적으로 자신이 추구한 삶을 살고 싶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치매노인을 대하는 케어 요양사도 치매노인을 병든사람 취급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인간적인 점을 생각하며 좀더 인격적으로 대우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3장은 주거와 생활의 관점에서 존엄을 생각하는 내용이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이동이 불편하여 주거지를 바꾸기 힘들어지고 또 바꾸려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고령자가 되어 한번 주거지를 결정하면 그곳이 결국 인생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게 되는 집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시설을 이용할 것인지를 이용자가 아닌 가족이 정한다면 이용자의 만족감을 총족시키지 못할 것이다. 이용자의 만족감은 본인이 인생의 마지막 시간을 어떻게 보낼것인가를 결정할수 있는 자유가 책임을 다 할수 있을 때 얻어지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존엄의 삶의로 연결된다. 존엄을 지닌 삶은 타인에게서 부여받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시기로부터 항상 주변 사람들과 같이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3장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① 이용자간의 관계를 형성할수 있는 ‘관계 형성의 케어’가 중요하다. ② 각자에게 맞는 마음 편한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메뉴가 필요하다. ③ 환경 적응 능력이 있을 때 생활공간을 결정해 두어야 노후에 안심할수 있다. ④ 세대나 장애를 뛰어넘는 환경은 강한 생활력을 창출해내는 원동력이다..
I Am Sam을 보고..아이엠샘 영화는 가족이란 무엇인지 부모란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하는 영화였다. 아아이엠샘은 샘이라는 정신지체 장애를 가진 아빠와 딸인 루시가 함께 살아가는 영화이다. 7살정도의 지능밖에 가지지 못한 샘은 도망간 아내 대신 루시을 혼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독특하게 키운다. 보통 부모는 자식보다 앞서서 길을 인도해주어야 하지만 샘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단지 자신이 아빠라는 것 그리고 딸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샘과 루시는 한 가족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샘의 사랑은 참 눈물겨울정도로 지극했다. 딸‘루시’의 이름도 자신이 좋아하는 비틀즈의 노래 제목을 따서 지은 것이다. 아빠의 사랑이 늘 그렇듯 샘의 사랑도 다른 아빠들의 사랑과 다름이 없었다. 딸을 지켜주고 싶고 딸이 원하는 것을 해주고 싶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같은 마음으로 딸을 키웠다. 루시는 샘의 딸이자 친구나 다음이 없었다. 하지만 지능이 부족해서 삶의 지혜가 부족하다는 것이 문제였다. 샘은 7살 지능 그대로이지만 딸은 이제 점점 자라 아빠보다 더 똑똑해질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우려한 사회에서는 딸 루시를 시설에 맡길 것을 강요한다. 이때부터 샘의 아빠로서 딸을 찾는 권리 투쟁이 시작된다.이영화를 보면서 내가 만약 샘이라면, 아니면 루시라면 어떻게 했을지, 어떤 생각을 했을지 상상을 해보았다. 딸에게 좋은 것을 주고 싶지만 한없이 부족한 그리고 사회적으로 약자인 힘없는 장애인인 아빠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또 아직은 철이 없지만 점차 세상을 알아갈수록 아는 것이 많아지고 두려움이 많아진 딸의 모습이 아니었을까?사회적 눈은 냉담하다. 사회는 현실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지적능력이 부족한 아빠의 밑에서 배운 딸은 결국 사회 부적응아가 될것이고 아빠가 가진 장애를 극복하지 못한 채 사회생활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둘 사이를 떼어놓는 것은 사회복지차원에서 인간의 배움의 권리, 성장의 권리를 주기 위한 처사였을 것이다. 가족이 단지 사랑만으로 울타리 지을 수 없다는 뜻일 것이다. 가족은 혈연으로 맺어진 공동체라고도 한다. 한핏줄이고 한가족이라 할수 있지만 부모의 역할이 가장 크다. 자녀가 잘못된 길을 갈 때 바른길로 인도해줄수 있어야 하고 옳고 그른 것을 잘 분별할수 있어야 한다. 샘과 같은 지적 수준 장애을 가진 아빠는 그러한 역할을 분명 잘 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루시를 사회복지시설에 맡기는 것이 어쩌면 더 현명하다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그러나 다른 한편 장애인의 권리 측면에서 살펴보면 장애인도 정상인처럼 자녀를 양육하고 사랑을 줄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에 초점을 둘수 있다. 이 영화에서 샘이 루시를 되찾기 위해 변호사를 고용하는 장면에서부터 샘이 아빠로서 루시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으며 루시 또한 아빠의 사랑을 얼마나 필요한지 확인할 수 있었다. 장애인은 장애를 가졌지만 그들의 인권은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지능이 낮다 할지라도 사랑을 알고 누구보다 가족이 필요하다. 하지만 사회는 인위적으로 인권을 조정하고 장애인의 권리를 빼앗으려 하고 있다. TV에서 장애인을 가진 부모 혹은 형제, 자녀가 함께 사는 가족을 종종 방영한다. 사회적 시선으로 볼때는 뭔가 답답하고 불행하게 보이기조차 하지만 막상 당사자들은 가족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에 크게 감사하고 행복함을 느끼고 있다. 이러한 행복함을 느끼게 하는 권리를 빼앗는 것이 오히려 더 인권유린이 아닌가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