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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학습 지도안 -I. 우리나라 역사의 시작
    역사 지도안대단원 : I. 우리나라 역사의 시작중단원 : 1.선사시대의 생활2.국가의 성립단원의 개관이 단원은 ‘선사시대의 생활’과 ‘국가의 성립’이라는 두 개의 중단원 으로 구성되어 있다. ‘선사시대의 생활’에서는 우리 민족의 기원, 구석기 시대, 신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의 사회 모습을 다루었고, ‘국가의 성립’에서는 고조선의 성립과 사회 모습, 부여,고구려 등 여러 나라의 성립 배경과 사회 모습을 다루었다.글로벌시대로 타국과의 경계가 없이 하나로 되어 가고 우리 민족의 색채를 조금씩 잊어가고 있다. 또 사회에 우리나라보다는 경제적으로 월등한 나라를 우월화하며 선망화하는 관념이 만연해 있다. 역사교육의 목적은 인간의 과거에 관한 지식을 가르치고 이를 기초로 역사적 사고력과 통찰력을 신장시키며, 바람직한 역사적 가치관과 태도를 함양하기 위한 교육활동이므로 우리는 본 단원을 통해 우리 민족의 근원을 알아보고 이를 통해 바람직한 역사관과 민족의식을 고취하여 국가와 사회에 바람직하게 이바지 할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는데 주안점을 둔다.단원의 목표-선사시대 생활상을 추정해보고 국가의 형성과정을 알아보자.-우리 민족의 뿌리의 근원을 생각해보자.지도상의 유의점학생들의 흥미를 자극하기 위해 수업과 관련된 참신하고 다양한 자료를 활용한다.올바른 역사관을 가지도록 유도한다.실제로 파악할수 없는 과거의 모습이니깐 역사적 상상력을 자극하도록 유도한다.과거- 현재의 모습을 비교하여 달라진 점을 찾도록 지도한다.역사교육의 기본 개념인 시간성과 발달성 계속성의 개념을 이해하게 돕는다.우리 나라의 기원을 파악하고 자긍심과 바람직한 민족성을 갖도록 유도한다.사진을 보면서 어느시대 ,어느 지역의 유물인지를 질문을 하여 실제로 입으로 말하게 하여 기억을 돕는다.학습지도내용I. 우리나라 역사의 시작1.선사시대의 생활1)언제부터 한반도에 사람이 살았을까?(1)과거로 떠나는 여행(2)우리민족의 기원과 삶의 터전2)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의 생활 모습의 차이?(1)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2)자연과 영혼에 대한 생각3)청동기 시대에 달라진 사회 모습은?(1)청동기 시대의 시작(2)달라진 생활모습(3)고인돌을 통해서 알수 있는 것들(4)청동기 시대의 사회 모습2.국가의 성립1)고조선 건국의 역사적 의의는?(1)단군의 고조선 건국(2)고조선의 성장과 변천(3)고조선의 사회 모습2)철기가 보급되어 나타난 사회 변화는?(1)철기의 보급(2)철기 시대의 생활과 사회3)여러 나라의 정치와 사회 풍속은 어떠하였는가?(1)여러 나라의 등장(2)여러 나라의 정치 조직단원의 수업목표주제수업내용수업목표1.선사시대의 생활1)언제부터 한반도에 사람이 살았을까?2)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의 생활 모습의 차이?3)청동기 시대에 달라진 사회 모습은?이해면(인지적 영역)우리민족의 기원과 삶의 터전을 설명할수 있다.구석기와 신석기 시대의 생활모습의 차이를구분할수 있다.청동기 시대에 달라진 사회의 모습을 분석할수 있다.고인돌을 통해서 당시의 삶의 모습을 파악할수 있다.태도면(정의적 영역)민족성과 자긍심의 태도를 가질수 있다.과거 우리 민족의 모습에 관심을 가진다.시간성에 대한 태도를 함양한다2.국가의 성립1)고조선 건국의 역사적 의의는?2)철기가 보급되어 나타난 사회 변화는?3)여러 나라의 정치와 사회 풍속은 어떠하였는가?이해면(인지적 영역)단군의 고조선 건국에 대한 내용을 숙지한다.고조선의 성장과 변천의 과정을 이해한다.고조선의 사회 모습을 파악한다.철기시대의 생활과 사회의 모습을 설명할수 있다.당시 여러나라의 정치와 사회 풍속은 어떠하였는지 파악한다.태도면(정의적 영역)보다 발전적인 방향의 우리나라의 인식을 할수 있다.사회 계층의 분화가 일어 나는 요인에 대하여 관심을 갖는다.당시 사회 풍속과 현재의 사회 풍속을 보다 의미있게 나눠 볼수 있다.지도순서수업단계수업사태지도내용교사학생시간도입1.선행학습 재생의 자극전시 학습 내용 확인 사전지식 확인·인사·출석 점검·단원명 판서·관련된 사전 지식 묻기(우리 나라의역사의 시작)·학생지명·맞으면칭찬·인사·1.우리 나라 역사의 시작·1.선사시대의 생활·지명받은 학생의 대답5분도입2.주의포착교과서 ‘먼저 읽기’를 통해 선사시대의 모습을 인식시킨다.학생들 교과서를 본다5분3.수업목표의 명시 통보수업목표를 제시한다모두수업 목표를 하나씩 읽는다.전개4.학습안내및 지도1)언제부터 한반도에 사람이 살았을까역사가들이 현재남아있는과거의 흔적을근거로 과거의사실을 찾아내는 방법을 설명한다.학생을 지적한다.과거에 일어난 일을 어떻게 알수 있을까?교과서 9페이지 자료를 함께 본다.학생에게 무슨 그림인지 발표시킨다.다른학생들 그림을 본다.35분2)구석기 시대와 신석기시대의 생활모습차이교과서 11-12페이지를 학생들과 함께 같이 읽는다.·책을보면서 설명을 듣는·다.·책을 읽는다.3)청동기시대에 달라진 사회모습?청동기 사용의 의미를 학생들에게 이해시키고 계층사회가 형성된 배경을 인식시키는데 중점·학생들 그림과 함께 경청정리5.성취행동유발본시학습내용정리학생을 지명한다주요용어를 제시하여 시대상과 특징을 발표시킨다.5분6.오류수정및 피드백 제공문제 푼것의 내용을 정리하면서 설명해 주고 정답을 확인한다.학생들은 경청한다.7.파지및 전이·총정리하고 수업목표 달성여부를 확인한다.·학습내용에 대한 질문을 받고 답을하고이해여부를 확인한다.·과제를 내준다·학습내용을 머릿속에 정리하고 기억한다.·의문사항에 질문한다.·학생들 경청한다.9.차시수업예고·차시수업을 예고한다.(국가의성립)·학생들 경청한다.심화과정 교수-학습 방안-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까닭은?1.개요고대 사회에서 제천 행사는 농사가 잘 되기를 기원하거나 추수에 대한 감사의 뜻이 있으며, 동시에 국가 축제로서 백성들의 화합을 의도한 것이었다. 교과서에 제시된 내용은 초기 국가에서 이루어진 제천 행사에 관한 것이다. 이들 자료를 근거로 탐구 문제를 학생들에게 부과하여 수행하도록 지도한다.2.지도요령탐구문제1신석기 시대(가)-청동기 시대(나)-초기국가(다,라,마)의 시대별 차이점을 찾아보게 하는 문제이다. 애니미즘, 샤머니즘의 단계에서 제천 행사가 정치적 행사의 단계, 더 나아가 농경 사회의 축제기능까지 하게 되는 상황을 탐색해 보도록 한다.
    인문/어학| 2008.11.09| 8페이지| 2,000원| 조회(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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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별초 항쟁에 관한 내용
    삼별초의 항쟁몽고와의 기나긴 전쟁몽고의 침략과 배경그때 동아시아 정세는 인류역사상 가장 영향력이 있었던 인물로서 13세기 몽고제국의 징기스칸 출현 이후 통합을 이룩한 몽고는 막강한 군사력을 자랑하며 세계 역사에서 일찍이 볼수 없었던 대제국을 등장시키면서 세계 역사를 크게 다시 쓰고 있었다.고려 또한 그 흐름을 따라 몽고국의 침입으로 기나긴 전쟁의 소용돌이로 휩싸이게 되었다.몽고의 고려 침입은 고종 18년(1231)에 시작되어 동 46년까지 되풀이 되었으며, 고려의 이에 대한 항쟁은 원종 14년(1273)까지 였으므로 그 기간이 무려 40여년에 이른다.일단 우리 역사상 가장 장기적이고 치열했던 항전 사례이기도 하지만, 노비 혹은 지방의 농민들이 이에 광범하게 참여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주목되는 사건이기도 하다.1231년 몽고의 고려 침입이 개시되다!여.몽 양국간의 공식적 접촉이 개시된것은 고종 5년(1218)의 일이다.당시 몽고군은 재흥을 도모하던 거란족을 공격하여 고려 영내에까지 추격전을 전개하였다.평양 부근 강동성에서 공동 군사작전으로 거란족을 섬멸한 양국의 지휘부는 1219년 초 형제의 맹약을 체결하였다.이 무렵 고려는 1170년의 쿠데타의 의하여 정권을 장악한 무인 집권의 시대였고, 특히 집권하 최충헌은 정치권력의 안정을 이루는데 성공, 그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권력은 아들 최우에게 순조롭게 계승될 수 있었다.거란족의 고려 침입으로 성립된 여.몽 양국의 불안한 초기관계는 1225년 공물 징수를 위하여 고려에 파견된 몽고 사신이 국경지방에서 피살되는 사건이 발생함으로써 파탄되었다.몽고는 이 사건을 고려의 계획적 행위로 간주하고, 이에 대한 보복을 구실로 하여 고려에 대한 정복전을 개시하게 된것이다. 그러나 정작 고려에 대한 몽고의 침입은 금 혹은 송에 대한 군사적 조치의 일환으로서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이를 빌미로 몽고군의 고려 침입은 고종 18년 8월에 개시되었다.이때 고려의 방어설비가 집중되어 있던 서북변경의 평안도 지역에서 치열한 전투혹은 세곡의 반입 등에 편리했으며, 적의 공격도 쉽지 않은 지리적 여건 때문에 전쟁시 수도의 최적지로 인정 되었던것 같다.강화천도 문제는 몽고군의 철수 직후부터 논의되기 시작했지만, 국왕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이 천도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논의는 지지부진했다. 그러나 여름이 가까워 오면서 몽고군의 재침 정보가 입수되자 최우는 이를 기회로 강화도의 천도책을 전격적으로 확정짓고 천도를 결행하였다.7월 6일 국왕이 개경을 출발, 다음날인 7일 강화에 도착했는데 궁궐 건축공사는 이제 막 시작한 참이어서 왕은 강화현의 객관을 임시처소로 사용하지 않을수 없었다.문장가 이규보는 “천도란 예부터 하늘 오르기만큼이나 어려운 건데, 공 굴리듯 하루 아침에 옮겨왔네, 진양공의 계획, 그토록 빨리 서둘지 않았더라면, 우리나라는 벌써 오랑캐 땅 되었으리”라고 하여, 천도에 대한 안도감을 시로 읊고 있다. 여기서 진양공은 최우를 말한다.몽고는 몇차례 강화도를 위협하면서 강화도 공격문제를 고려하기도 하였으나 이를 시도하지는 못했다. 대신 고려정부의 자진 복속을 끌어내기 위하여 본토에서의 분탕질을 더욱 거세게 강도를 높임으로써 본토에서의 농민들의 고통은 증가되었다.강화섬은 대몽항쟁의 정치적 거점으로 39년간 고려의 도읍이 되었지만 그 이후로도 14세기 원 합단적의 침입, 17세기 정묘호란,병자호란등 국난의 위기 때마다 국왕과 정부가 이전하는 특별 요충지의 기능을 수행하였다고 한다.끝이 보이지 않는 전쟁의 날강화천도 이후 몽고군은 여러 차례 고려에 쳐들어와 분탕질을 자행하며 고려정부를 굴복시키려 하였다. 대략 고종 46년(1259)까지 되풀이 되었던 몽고군의 침략은 도합 6차에 걸친 침략으로 정리되고 있기는 하지만, 실제 저들의 침입은 11회에 이르고 있었다.전쟁의 상처는 깊고몽고는 고려가 그 굴복의 표시로서 최소한 개경으로의 환도, 국왕의 몽고 친조와 같은 조치를 취할것을 요구 해왔다. 개경의 환도는 원종 11년 항몽파였던 무인정권의 붕괴에 의하여 겨우 이루어 질수 있었다. 이같은 고 한다.대구 부인사 고려대장경의 소실, 고종 25년 경주 황룡사의 소실, 이 같은 사건 모두 몽고군의 침략과 분탕질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불교 국가 였던 고려의 경우 절에서 보유하고 있는 각종 보물,식량,사람 등으로 인하여 사원의 피해도 매우 컸던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불교 문화 유산의 파괴는 다른 한편으로 고려로 하여금 팔만대장경과 같은 거대한 사업을 추진하도록 하는 배경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동시에 몽고와의 전쟁에서의 군사적 한계점 때문에 종교적 해결방안에 크게 의존했음을 말해주고 있다.삼별초는 왜 봉기했나?우선 삼별초는고려 무인 정권기 허약해진 군사력의 보완과 치안유지의 목적으로 최우는 야별초(夜別抄)라는 특수부대를 설치하였다.‘별초’란 ? ‘특별히 가려뽑은’군대. 즉 ‘정예부대’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이들 군사력은 무인정권과의 일정한 관계 속에서 일종의 친위적 군사력으로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대몽항쟁기 항전책을 주도하였던 무인정권을 뒷받침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반몽의 핵심집단으로 그 성격이 굳어지게 되었다.대략 1230년경, 몽고침입 직전에 설치되었던 야별초는 그 뒤 병력이 크게 증가하면서 좌별초· 우별초로 나뉘고 이어 몽고와의 전쟁 속에서 신의군이 편성됨으로써 이를 통칭하여 ‘삼별초’(三別抄)라 하게 되었다.“나라를 돕고자 하는 자는 모두 구정(毬庭)으로 모이라“원종 11년(1270) 왕정복고를 도모하는 쿠데타에 의하여 100년 무인정권은 붕괴되었다.무인정권의 붕괴는 곧 몽고에 대한 복속과 개경에의 환도를 의미 하는 것이었다.고려국왕 원종은 이미 여러 차례 몽고를 드나들며 쿠빌라이의 지원을 받고 있었다. 쿠빌라이는 원종정부를 지원하여 지루하게 끌어온 고려 문제를 해결할 뿐 아니라 남송 혹은 일본 정략과 같은 남은 정복전에서 십분 고려를 활용할 계산이었다.이 상황에서 몽고에 대한 복속을 거부하고 항전의 지속을 주장한 핵심집단이 바로 삼별초였다.배중손이 중심이 된 삼별초가 왕족 승화후 온(溫을) 옹립하고 반몽정부를 공식선언한 것은 6월 반몽세력을 규합하고 나섰다.그리고 6월 3일 새로운 거점으로 예정된 진도를 항하여 강화도에서 출발하였다. 그 이동에는 크고 작은 선발 1천 척이 동원되었다고 합니다.삼별초의 새로운 거점 “진도”삼별초가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제주도 대신 진도에 정부를 세운것은 고려 정통 정부를 자청하며 항몽정신을 계승하기 위했던 목적으로 볼수 있다. 특히 삼별초가 고려 왕족인 승화후 온을 왕으로 추대한 점은 고려를 계승한 신정부 수립을 의미한 것으로 새 왕조가 아닌 고려의 정통왕조임을 처음부터 자임했기 때문이다.진도 정부는 용장산성을 중심으로 성곽, 궁궐 등의 내부적 정비작업과 함께 전라, 경상 연안의 모든 지역에 대한 적극적인 공략에 힘을 기울였다. 연안지역의 확보야 말로 몽고와 개경정부에 대항하기 위한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도 입거 초기 삼별초는 전라도 지역에 대한 지배권 확보를 시도하였다 이는 남부 일대에 삼별초에 대한 지지와 호응 분위기가 팽배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삼별초가 진도에 입성하자 전라도의 많은 군들은 싸우지도 않고 항복하였고 전라도지방의 섬과 연안은 물론 경상도의 남해, 거제, 마산, 동래, 김해 등지가 삼별초의 군사적 활동범위 안에 들어갔다. 이리하여 삼별초는 전라도, 경상도의 조운을 장악하고 공부의 수송선을 차단하는 등 기세가 드높았다.삼별초는 진도를 거점으로 거제도 남해도, 완도를 점령하고 군대를 주둔시켰다. 또한 배후 근거지 확보를 위해 제주도 원정까지 단행했다. 제주도는 고려정부가 삼별초를 해상에서 견제할 수 있는 곳일 뿐만 아니라 일본과 중국을 연결하는 해상교통 요충지로 몽고의 입장에서는 일본을 정벌하기 위한 가장 긴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다.삼별초가 제주와 전라 경상 지역을 점령해 진도에 자리잡은지 6개월 7개월만에 영호남지역과 남해안 , 서해안 연안 도서를 포괄하는 해양 대 세력권을 형성하게 되었다.한편 진도정부는 고려의 정통 정부로써 개경과는 독자적인 정부를 표방하여 일본에 사신을 파견하여 대몽 연합 전선 한 척도 그 곳을 지나지 못하고 있다”고 할 만큼 전락적 요충지라는 점셋째, 도참설의 영향을 들수 있는데 고려 고종때 백승현과 같이 삼랑성 등지의 길흉을 열변했던 판태사국사 안방열이란 술사가 강도 봉은사의 태조 진전에서 점을 쳤는데 반존반망의 점괘를 빼냈다는 점을 들어 삼별초의 진도 거점선정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또한 몽고와의 항쟁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최씨 정권과 동지적 관계를 유지해왔다는 점이 고려 되었을 것이다. 이는 최씨정권이 강진-영암 세력과의 긴밀한 관계를 맺으려 했다는 점, 몽고가 대규모 함대를 동원해서 압해도를 공격했던 점 등을 통해서 살필수 있는 바이다.진도는 제주도 거제도에 이어 세 번째로 큰 섬이다.삼별초의 진도 정부 -삼별초의 몰락의 길이처럼 삼별초가 민중의 지원 아래 반정부, 반몽고 투쟁을 지속해 나가자 이에 당황한 고려와 몽고는 치밀하게 진도 공격을 준비하였다.관군의 이같은 좌,우, 중 삼군의 전략은 삼별초의 전력을 분산, 약화시키는데 절대적인 작용을 했다. 삼별초는 중군의 방어에만 매달려 벽파 부근으로 결집해 좌군의 홍다구가 측면을 치면서 화공을 가하여 오자 삼별초군은 당황했고 전열이 흐트러지게 된 것이다.관군의 작전이 예상대로 진행되고 삼별초가 그 유인책에 휩쓸려 거의 저항을 받지 않고 달려든 홍다구의 좌군은 지막리의 오산하리쪽 두시난골로 접어 들어 용장성의 뒷 골짜기를, 고을마의 우군은 군직기미로 접어들어 도적 굴을 거쳐 용장성 동편이 난곡을 추격하다가 좌군과 만나 합세한 세력으로 삼별초군을 상대하여 일대 접전을 벌이게된다 결국 삼별초군의 적의기만 작전에 걸려들어 패하고 말았다.삼별초의 패인 중 간과할 수 없는 것은 그 동안 여러번 전승을 거둠에 따라 적을 자연 경시하게 되었고 또 진도의 천연적 요새의 방어능력을 과신한 점이다.더욱이 몽고에서 들여온 신무기인 화약 무기의 투입은 삼별초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이처럼 대몽항쟁의 기치를 내걸고 고려의 정통성을 주장했던 진도정부는 불과 10개월 만에 사라지고 말았으며 살아남은 소수는 제주하였다.
    인문/어학| 2008.11.09| 7페이지| 2,000원| 조회(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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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족학 강의 시간에 다뤄지는 가족의 역할 그리고 행복 평가C아쉬워요
    ?건강한 사회와 국가, 나아가서는 평화로운 세계로 만들려면 '가정' 하나하나가 건전해야 한다는 것은 지극히 기본적인 사실이다. 가정은 인간행복의 근원지로 삶의 새로운 에너지를 창출해내고 미래를 설계하는 가장 중요한 공간이기도 하다. 가정은 개인적인 측면과 사회적인 측면을 동시에 지녔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가정이 무너지면 사회와 국가도 무너지는 건 당연하며 지금 현재의 우리도 없을 것이다.그래서 유엔에서도 5월 15일을 '세계 가정의 날'로 선포하기까지 했다. 우리나라도 가정의 소중함과 건전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 ‘5월은 가정의 달’로 정하기도 했다.평온하고 행복해야 할 가정이 지금 우리는 어떠한가?한 가족으로 살지만 동물보다도 대접을 받지 못하는 가족이 있는가 하면, 친구, 동료보다 더 보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다.부부갈등을 비롯하여 가족 간의 몰이해와 불화, 가족 간 대화 단절, 가정 폭력, 가출, 부모 별거와 늘어만 가는 이혼으로 인한 가정 파탄, 자녀 학대, 형제간의 싸움, 자식의 패륜행위, 노부모 학대, 개인 또는 가족 집단자살 등으로 인해 날이 갈수록 가정들이 붕괴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에서 문제가 제기된다.그러면 그 해결책은 무엇인가?먼저 서로간의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부모는 부모로서 역할, 자녀는 자녀로서 역할, 부부는 부부로써 서로에 대한 역할, 형제,자매는 그에 합당한 역할을 함으로써 건전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룰수 있다고 본다.부부의 역할로는 부부는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 이루어지는 첫단계로 매우 중요하다.남편으로서, 아내로서의 역할을 잘 하고 있는지 먼저 잘 살펴보아야 하고,서로의 고충을 이해하고 도와주고 있는지, 아니면 남편의 일방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지 잘 고려해 봐야한다. 예전에는 수직관계 였지만 지금은 평등사상과 여러 가지 사회의 변화에 적응하여 수평적인 관계로 변모하게 되었다.배우자를 정말로 아껴주고 존경하며 사랑하고 있는지, 부부의 갈등 문제를 서로 건전한 방법으로 해결하고 있는지, 또 자녀들에게 얼마나 모범적인 부모 모습으로 비춰 지고 있는지 등을 잘 확인하여야 한다.부모- 자녀 관계에서도 일단 부모들은 너무 자식을 위계적으로 아래로 보고 일방적으로 복종만을 하도록 하는지는 않은지, 그저 학비와 적당한 삶을 제공한다고 부모로서 역할을 다 한다고 오만하지는 않은지, 해주는 것 없이 자식에서 큰 욕심을 부려서 자식을 힘들게 하지는 않은지, 너무 바쁘다고 자녀에게 사랑과 관심을 적게 주고 있지 않은지를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자식된 자로서는, 부모에게 항상 적게 해준다고 투정만 부리는건 아닌지, 자신의 역할을 잘 수행하지 못함으로써 부모에게 정신적 스트레스를 주는건 아닐까, 부모에 대해 존경과 위대함을 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자식된 자로서 효도는 잘하고 있는지 확인해보고 자기의 역할인 공부와 자기 할 일은 제대로 잘 수행하고 있는지도 자식된 자로서는 굉장한 큰 역할임을 알아야 한다.형제자매로서, 한 핏줄로 태어난 소중한 형제자매임을 깨닫고 우애있게 지내고 있는지, 형제자매란 구실로 너무 일방적으로 대하는건 아닌지, 형제자매 간의 불화로 부모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 등을 반성해 보자사회가 변화함에 따라서 현재 우리 생활에서 많은 역할의 변화가 초래 되고 있다.예전에는 가부장적인 가정의 모습의 색채를 많이 드러냈지만 지금은 남녀 평등사상과 여권주의의 신장으로 인해 각자의 역할을 서로간의 편의에 의해서 분담하는 시대로 전환되어가고 있고 이미 전환 되었다.남편은 기존의 가계유지를 혼자 담당하던 모습에서 아내도 일자리를 갖고 가정의 수입원으로 역할을 수행함으로서 맞벌이 부부의 형태가 출현하게 되었다. 이것은 여자의 권리를 획득함으로서 가능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서로의 장점과 단점을 보완하며 예전보다 더 행복한 가정생활을 영위 할 수 있도록 변모하게 된 것 같다.남편은 좀 더 가정을 책임져야하는 부담에서 탈피 할수 있게 된 대신 자녀양육과 일상적인 가사 처리 문제를 어느 정도 도맡아 하게 됨으로써 여성은 고전적이던 모습에서 벗어나 진취적이고 멋진 여성의 모습으로 변할 수 있게 되었다.부모-자녀 관계에서도 항상 부모는 자녀와의 위계질서를 형성하고 복종만을 강요하던 예전의 모습을 탈피하여 좀 더 동등하고 인격을 갖춘 관계로 나아가게 되었다.사회가 전통적인 사회가 몰락함에 따라 급격한 산업화에 의한 핵가족화와 개인주의 성향에 따르는 문제점 또한 정말 상상하지 못할 만큼 큰 문제로 다가오고 있는게 현실이다. 예전에는 친족들과도 가깝게 살면서 서로서로 도와가면서 살았지만 지금은 멀리 떨어져서 왕래가 차츰 줄어들고 있다. 가족들 간에도 개인주의 성향이 생겨나서 더욱더 대화의 단절과 각자의 일에만 매달리다 보니 인간소외와 고립감에 봉착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각종 성범죄, 살인 등 사회적으로 부도덕한 문제들이 아무렇지 않게 여기저기서 발생되어 지고 있다.
    생활/환경| 2008.11.09| 4페이지| 1,500원| 조회(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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